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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日 정상회담] 귀국2세 5명 ‘불안한 日정착’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인 피랍자 2세’ 5명이 22일 귀국했지만 이들이 일본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지 상당한 시련이 예상된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만 16∼22세의 이들은 대학진학률이 10%선인 북한에서 모두 대학에 다니거나 졸업 또는 입학예정인 엘리트들이다.하지만 이들이 북한에서 습득한 교육학,컴퓨터·기계공학 등의 지식은 일본생활에 큰 도움이 안될 전망이다.이들의 부모들은 “일본어 회화 구사가 무리일 정도여서 아이들이 온 게 기쁘지만 심경은 복잡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피랍자 2세중 일부는 귀국 뒤 불안해하는 모습을 비쳤고,부모들도 “지금부터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불안하다.애들도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피랍자 2세가 지난 20년의 기억을 지우고,난생 처음 밟은 낯선 일본 땅에서,북한인에서 일본인으로 변신한 뒤 겪을 ‘정체성의 위기’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상호방문이란 정상외교 관례를 깨면서까지 재방북하도록 한 ‘일본인 납치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은 지난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첫번째 평양 방문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식 시인,일본 내에서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일게 한 핵심 문제다. 일본인 납치는 주로 1977∼1980년 냉전 절정기에 이뤄졌다.2002년 김정일 위원장이 납치를 인정한 일본인 13명 가운데 10명이 1977년부터 3년간 실종됐다. 일본인 납치는 북한의 대남공작 변천사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된다.북한은 한국전쟁 후 초기에는 직접 양성한 북한 공작원을 남파했고,이후에는 재일 조선인을 보내다가,이마저도 어려워지자 일본인을 활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는 게 한·일 공안당국의 견해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된 김현희가 1991년 일본수사관의 사진대조 조사에서 실종된 일본인 다쿠치 야에코가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이은혜 선생’과 동일인물이라고 밝혀 이런 분석은 설득력을 얻었다.˝
  • [22일 TV 하이라이트]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오후 10시35분) 신지 김종민 이성진 천명훈이 벌이는 ‘맑은 머리 사수대회’ 2탄 ‘칭찬이 머리를 맑게 한다’에서는 재치 넘치는 칭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딴 생각하기의 고수 김종민.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웰빙법이 있다.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자고 나면 잊는다는 그만의 웰빙 노하우를 들어본다. ●씨네 24(낮 12시25분) 복잡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틸슨 가족이 시골 마을의 대저택 ‘콜드크릭 매너’에 거주하면서 겪게 되는 의문의 사건을 그린 스릴러 ‘콜드 크릭’.감독과 배우의 화려한 캐스팅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한 대저택 ‘콜드크릭 매너’의 비밀을 살펴본다. ●애니토피아(오후 9시10분) 안시가 주목한 작품 ‘에그 콜라’.그 에그 콜라를 만드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찾았다.세계를 향해 날개를 활짝 펴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인디펜던스’.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열정과 땀,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그들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숨은 노력과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뮤직 n 조이(오후 6시) 영화 ‘중경삼림’ 한편으로 일약 아시아 최고의 여배우가 된 스타 왕정문의 라이브 콘서트무대를 뮤직엔조이가 찾아간다.크랜베리스의 ‘Dreams’를 직접 리메이크해 아름다운 보컬로 선보였던 중경삼림의 음악 ‘몽중인’을 비롯,왕정문이 그간 남겼던 음악들을 대규모 라이브공연 실황으로 만난다. ●솔로몬의 선택(오후 6시50분) 금보라 김영철 안선영 표인봉 김장훈 윤은혜 김재덕이 출연한다.‘차별하지 맙시다’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은 얼마일까를 알아본다.이밖에 ‘퀴즈 솔로몬 따라잡기’에서는 친족상도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애정의 조건(오후 7시50분) 치료후 정신을 차린 애리에게 윤택은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은파와 윤택이 함께 떠난 것으로 아는 금파는 한걸에게 그간 사정을 말하며 은파를 믿고 기다리자고 한다.금파는 정한,수빈과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늘 주변을 배회하는 명수 때문에 불안해한다. ●찔레꽃(오전 8시5분) 유경은 이유없이 양가 상견례를 취소하라는 성희의 말에 당혹스럽기만 한데 마침 민규가 찾아오고 성희는 싸늘한 태도로 민규를 대한다.한편,절망에 빠져 있는 샤리를 보고 점례는 신자를 찾아가 테이프를 되살릴 방법을 궁리한다.득만은 샤리의 집에 쳐들어와 돈을 갚으라 협박한다.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0)草衣 선사의 꿈(上)

    풀옷을 이은 수행자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1786~1866).그는 조선 후기 조선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참 스승이었다.또한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차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침체와 변질을 겪어 온 조선의 차문화를 새롭게 정립하여 물림한 한국 차살림의 완성자다. ●초의는 우리 차문화 완성한 선승 그가 완성한 차살림은 절집 승려만을 위한 것도,조선 양반 사대부들의 한가한 멋을 위한 것도,궁중이나 왕실 혹은 부자들의 호사를 위한 것도 아니다.초의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조선의 운명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듯 위기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시대의 위기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권력층,세도가들이 만들어 냈는데,이들 대부분이 중화사대주의자들로서 스스로 중국 문화의 아류로 자처했다. 중화사대주의자들의 성리학 세계관은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관이었다.세계는 화(華)와 이(夷)로 갈라서고,‘화’만이 문화와 가치이며,‘이’는 문화도 가치도 없는 야만으로 규정했다.화는 세계의 지리적 중심이기도 한 중화(中華)로서 중국 민족의 배타적 독점물이라 단정지었다.그리하여 조선은 중국의 축소판,모조,근사치로서의 소화(小華)라고 여겼다.중화사대주의자인 조선의 성리학자,유생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열등의식을 가졌지만 서양에 대해서는 근거없이 심한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다.이같은 열등과 우월의 이중구조적 세계관 속에서 서양 세력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 지성인의 사명감으로 여기게 된 시대였다.초의는 생애 대부분을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뇌와 번민,그에 대한 극복과 희망의 제시를 위해 보냈다. 조선의 주된 이념인 성리학이 사변철학으로 타락하고,제도 문란과 권력의 부패로 국가의 근본인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초의는 엉뚱하게도 차농사 짓는 일과 차 만들기,차 마시는 이야기를 그 시대의 화두로 삼았다.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며 과연 누가 공감했을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병든시대 희망 제시하려 고뇌 초의는 차(茶)가 음식과 더불어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힘의 시원임을 깨달았다.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정신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온 방법들 중에서 음식과 차가 가장 널리 쓰여온 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기도 했다.초의는 차라는 물건으로 술에 절어버린 조선 후기의 병들고 타락한 시대를 구원하고자 한 구도자였다. 19세기의 승려는 천민으로 분류되었다.조선의 이름난 사찰은 일년 내내 경향 각지에서 유람오는 양반,사대부,세도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시대였다.그들은 조용한 여행자들이 아니었다.언제나 그 지역 현감이나 절 주지에게 그들의 행차 사실을 미리 알렸다.절 아래 마을까지 사인교나 남여(藍輿),나귀 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는 뜻이다.승려들은 이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승려들이 고관대작이나 그들 식구를 등에 업고 오르내리기도 했다.어쩌다 실수하는 날이면 능멸과 매질을 피할 수 없었으니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절에 놀러오면서 승려들이 메는 사인교를 탔던 양반 사대부들은 허랑방탕한 조선 후기 사회와 함께 비틀거리던 중화사대론자들이었다.그들은 차를 마시지 않았거니와 차를 알지도 못했다.다만 술을 알고 취해 살았을 뿐이다.차례(茶禮)라는 설,추석 명절에 조차도 차가 아닌 술로 조상제사를 모셨을 만큼 술에 빠져 살았다.국가의 원천이자 기둥인 농사꾼들은 무거운 부역과 세금,끈질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양반사대부들은 술에 취해 살면서 중국 섬기기에 나라의 뼈가 휘었다.농민이 땀 흘려 가꾼 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시면서 농민의 시름과 수난은 외면했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는 관념의 잎만 무성한 성리학의 미몽을 좆는 위선에 차고 무능한 지식인들,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산을 더럽히는 세도가들 앞에 초의가 말없이 제시한 것이 차였다.술 대신 차를,독선과 아집 대신 나눔과 양보를,핍박과 죽임 대신 함께 사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차는 은혜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며,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초의가 새롭게 꾼 꿈이 ‘동다문화(東茶文化)’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의 집이었다.그의 ‘동다송(東茶頌)’은 단순히 중국 차문화와 역사에 관한 서른 한 마디 노래로 편술된 책이 아니라,‘東茶’ 즉 우리나라의 차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술대신 차·독선대신 지혜 전파 서른 한 마디 노래 중에 우리나라 차의 빛깔,향기,맛의 우수성이 결코 중국차에 못지 않다는 매우 짧은 한 구절이 숨어 있다.초의가 전혀 새롭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중국 차문화 얘기를 늘어놓다가 슬쩍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간략하게 끼워 넣은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 놓고 보아도 조선의 것이 중국보다 우수하다고 자신있게 말한 경우는 많지 않다.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모든 것은 오로지 중국에서 근원하고,의지해왔으며,중국으로부터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고 믿어 온 중화사대주의자들은 감히 조선의 것이 중국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아무리 조선의 것이 중국 것보다 우수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위험이라고 여겼다.중국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초의라는 한 승려가 우리나라의 차가 중국 차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글로 적은 것이다.짧은 이 한 문장이 지닌 뜻은 참으로 위대하다.멀리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그 바보짓 이후 1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라,고려,조선은 한결같이 중국 우월론자들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다. 다만 조선의 세종임금이 중국 문자가 아닌 조선의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고자 했었다.그러나 한문 망령에 덮어 씌인 중화사대론자들은 한글을 암클, 즉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니 언문(諺文)이라 깎아내렸었다.모든 것을 중국에다 의지했다.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라는 역사책은 우리나라 고유의 차문화를 아예 없애버린 위에 통일신라 시대인 828년에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다 왕의 명령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차의 기원이라고 적기까지 했다. ●‘동다승’ 저술 우리차 우수성 알려 중국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고려 스스로가 무릎을 꿇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여 중국의 무릎 아래로 기어든 수치이자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렇듯 1200여년 동안 계속된 비굴한 태도를 처음으로 고쳐 잡은 것이 초의의 글귀였다.그것도 중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세계 속의 자긍심인 차에 대하여 중국차보다 우리나라 차가 우수하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고려에서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초의의 민족문화론이었다. 2004년 5월,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차인들은 조선의 중화사대론을 계승한 적자임을 긍지로 여기면서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는 전도사로서 활보하고 있다.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140여년 전 민족문화의 선각자 초의스님의 동다문화 앞에서 어찌 고개 들고 활보할 수 있는가? 부끄러워하라.또 부끄러워하라.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0)草衣 선사의 꿈(上)

    풀옷을 이은 수행자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1786~1866).그는 조선 후기 조선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참 스승이었다.또한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차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침체와 변질을 겪어 온 조선의 차문화를 새롭게 정립하여 물림한 한국 차살림의 완성자다. ●초의는 우리 차문화 완성한 선승 그가 완성한 차살림은 절집 승려만을 위한 것도,조선 양반 사대부들의 한가한 멋을 위한 것도,궁중이나 왕실 혹은 부자들의 호사를 위한 것도 아니다.초의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조선의 운명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듯 위기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시대의 위기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권력층,세도가들이 만들어 냈는데,이들 대부분이 중화사대주의자들로서 스스로 중국 문화의 아류로 자처했다. 중화사대주의자들의 성리학 세계관은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관이었다.세계는 화(華)와 이(夷)로 갈라서고,‘화’만이 문화와 가치이며,‘이’는 문화도 가치도 없는 야만으로 규정했다.화는 세계의 지리적 중심이기도 한 중화(中華)로서 중국 민족의 배타적 독점물이라 단정지었다.그리하여 조선은 중국의 축소판,모조,근사치로서의 소화(小華)라고 여겼다.중화사대주의자인 조선의 성리학자,유생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열등의식을 가졌지만 서양에 대해서는 근거없이 심한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다.이같은 열등과 우월의 이중구조적 세계관 속에서 서양 세력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 지성인의 사명감으로 여기게 된 시대였다.초의는 생애 대부분을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뇌와 번민,그에 대한 극복과 희망의 제시를 위해 보냈다. 조선의 주된 이념인 성리학이 사변철학으로 타락하고,제도 문란과 권력의 부패로 국가의 근본인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초의는 엉뚱하게도 차농사 짓는 일과 차 만들기,차 마시는 이야기를 그 시대의 화두로 삼았다.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며 과연 누가 공감했을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병든시대 희망 제시하려 고뇌 초의는 차(茶)가 음식과 더불어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힘의 시원임을 깨달았다.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정신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온 방법들 중에서 음식과 차가 가장 널리 쓰여온 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기도 했다.초의는 차라는 물건으로 술에 절어버린 조선 후기의 병들고 타락한 시대를 구원하고자 한 구도자였다. 19세기의 승려는 천민으로 분류되었다.조선의 이름난 사찰은 일년 내내 경향 각지에서 유람오는 양반,사대부,세도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시대였다.그들은 조용한 여행자들이 아니었다.언제나 그 지역 현감이나 절 주지에게 그들의 행차 사실을 미리 알렸다.절 아래 마을까지 사인교나 남여(藍輿),나귀 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는 뜻이다.승려들은 이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승려들이 고관대작이나 그들 식구를 등에 업고 오르내리기도 했다.어쩌다 실수하는 날이면 능멸과 매질을 피할 수 없었으니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절에 놀러오면서 승려들이 메는 사인교를 탔던 양반 사대부들은 허랑방탕한 조선 후기 사회와 함께 비틀거리던 중화사대론자들이었다.그들은 차를 마시지 않았거니와 차를 알지도 못했다.다만 술을 알고 취해 살았을 뿐이다.차례(茶禮)라는 설,추석 명절에 조차도 차가 아닌 술로 조상제사를 모셨을 만큼 술에 빠져 살았다.국가의 원천이자 기둥인 농사꾼들은 무거운 부역과 세금,끈질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양반사대부들은 술에 취해 살면서 중국 섬기기에 나라의 뼈가 휘었다.농민이 땀 흘려 가꾼 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시면서 농민의 시름과 수난은 외면했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는 관념의 잎만 무성한 성리학의 미몽을 좆는 위선에 차고 무능한 지식인들,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산을 더럽히는 세도가들 앞에 초의가 말없이 제시한 것이 차였다.술 대신 차를,독선과 아집 대신 나눔과 양보를,핍박과 죽임 대신 함께 사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차는 은혜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며,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초의가 새롭게 꾼 꿈이 ‘동다문화(東茶文化)’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의 집이었다.그의 ‘동다송(東茶頌)’은 단순히 중국 차문화와 역사에 관한 서른 한 마디 노래로 편술된 책이 아니라,‘東茶’ 즉 우리나라의 차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술대신 차·독선대신 지혜 전파 서른 한 마디 노래 중에 우리나라 차의 빛깔,향기,맛의 우수성이 결코 중국차에 못지 않다는 매우 짧은 한 구절이 숨어 있다.초의가 전혀 새롭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중국 차문화 얘기를 늘어놓다가 슬쩍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간략하게 끼워 넣은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 놓고 보아도 조선의 것이 중국보다 우수하다고 자신있게 말한 경우는 많지 않다.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모든 것은 오로지 중국에서 근원하고,의지해왔으며,중국으로부터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고 믿어 온 중화사대주의자들은 감히 조선의 것이 중국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아무리 조선의 것이 중국 것보다 우수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위험이라고 여겼다.중국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초의라는 한 승려가 우리나라의 차가 중국 차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글로 적은 것이다.짧은 이 한 문장이 지닌 뜻은 참으로 위대하다.멀리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그 바보짓 이후 1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라,고려,조선은 한결같이 중국 우월론자들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다. 다만 조선의 세종임금이 중국 문자가 아닌 조선의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고자 했었다.그러나 한문 망령에 덮어 씌인 중화사대론자들은 한글을 암클, 즉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니 언문(諺文)이라 깎아내렸었다.모든 것을 중국에다 의지했다.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라는 역사책은 우리나라 고유의 차문화를 아예 없애버린 위에 통일신라 시대인 828년에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다 왕의 명령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차의 기원이라고 적기까지 했다. ●‘동다승’ 저술 우리차 우수성 알려 중국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고려 스스로가 무릎을 꿇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여 중국의 무릎 아래로 기어든 수치이자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렇듯 1200여년 동안 계속된 비굴한 태도를 처음으로 고쳐 잡은 것이 초의의 글귀였다.그것도 중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세계 속의 자긍심인 차에 대하여 중국차보다 우리나라 차가 우수하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고려에서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초의의 민족문화론이었다. 2004년 5월,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차인들은 조선의 중화사대론을 계승한 적자임을 긍지로 여기면서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는 전도사로서 활보하고 있다.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140여년 전 민족문화의 선각자 초의스님의 동다문화 앞에서 어찌 고개 들고 활보할 수 있는가? 부끄러워하라.또 부끄러워하라.
  • [길섶에서] 부끄러운 아들/오승호 논설위원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어버이날 하루 전인 지난 7일 밤이었다.“내일이 어버이날인데,카네이션 꽃도 달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편찮으신 데는 없으세요.” “돈도 없을 텐데 왜 10만원씩이나 보냈니.”어머니가 반문하시는 순간,집 사람이 나도 모르게 미리 송금했음을 알아차렸다.“내려가서 뵙지도 못하는데 쇠고기라도 사서 드십시오.”마치 아내에게 돈이라도 보내드리라고 말한 것처럼 태연하게 말씀 드렸다.“애들은 자니.”“아니에요.둘 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공부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영 힘이 없어 보였다.아내 때문에 체면치레는 했지만 25년째 서울에 사는 아들의 빈 공간을 용돈 몇 푼이 메워줄 수 있으랴.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은혜에 돈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회사 일이 바쁘다는 등의 이유로 자주 찾아뵙는 것을 너무 소홀히 한 것 같다.내색은 안 하지만 자식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어머니의 더 큰 바람일 것이다.올 추석엔 꼭 어머니를 찾아 뵙고 불효를 씻어야지. 오승호 논설위원˝
  • [남규철의 DVD폐인] 2030·5060 함께 보아요

    ‘DVD로 효도하세요.’ 내일은 5월8일,어버이 날입니다.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는 날이지요.살아가다 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소홀해 지기 쉬운 요즘,이날 하루 만이라도 부모님의 고마움을 느끼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오늘 소개해 드리는 타이틀들은 이번 어버이날에 부모님과 함께 보실 만한 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이 영화들은 부모님들의 옛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전 영화들로,부모 세대는 물론 지금의 세대에게도 감동을 줄 만큼 멋진 작품들입니다.편안한 주말 저녁,부모님들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옛날 영화가 주는 아련한 향수와 걸작의 감동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셰인(Shane, 1953) “총을 쏘지 않으면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아버님들을 위해 추천해 드리는 작품입니다.낭만과 정의 같은 그 시대의 향수가 가득 담긴 서부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앨런 래드,진 아서,반 채플린 등 서부영화의 걸출한 스타들이 총 출연합니다.영화의 마지막에서 꼬마 조이가 셰인을 애타게 부르는 장면으로도 올드팬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작품입니다.영화로 제작된 지 50년이 넘게 지난 작품인 만치 DVD의 화질과 음질이 뛰어나지는 못합니다만 예상 외로 안정적 화면과 생생한 총소리를 들려줍니다. ●벤허(Ben Hur,1959) DVD로 만들어진 고전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작입니다.물론 부모님들께서도 옛 기억을 떠올리시면서 보시면 무척 즐거워하실 만한 작품입니다.아카데미에서 11개 부문을 수상한 걸작으로,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된 요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첨단 디지털 기술로 새로이 리마스터링되어 출시된 DVD는,40년이란 오랜 세월을 무색케 할 만큼 만족스러운 화질과 사운드를 자랑하며 풍부하고 귀한 자료들로 가득한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1968)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정소영 감독,문희 주연의 작품입니다.연인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멜로 영화로,처음 만들어진 이래 몇 번이고 리메이크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모은 작품입니다.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상당한 신파조의 영화로 느껴지지만 부모님 세대에선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명작 중의 하나일 겁니다.DVD로 제작된 이 작품은 아쉽게도 앞서의 할리우드 고전들이 보여주었던 만큼의 화질이나 음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그러나 옛 기억을 떠올리시면서 부모님과 함께 보시기엔 무리가 없을 만한 수준입니다. 이 외에도 ‘카사블랑카’ ‘사운드 오브 뮤직’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의 고전들도 추천할 만합니다.모두 제작된 지 수십년이 지난 영화들이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명작들이면서 동시에 DVD로서의 멋진 영상과 사운드도 제대로 갖춘 작품들입니다. DVD칼럼니스트·09DVD업무팀장˝
  • [독자의 소리]

    ●어버이날 공휴일로 제정하자 자식으로서 일년중 어버이날만이라도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그런데 이날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자식들은 직장에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 버린다.결국 형식적으로 카네이션 하나 달아드리고 마음으로 감사와 보답을 할 뿐 실질적으로 해 드리는 것은 거의 없다.물론 평소에 보살펴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현금·선물 등을 드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이 만나 식사도 하면서 평소에 나누지 못한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부모는 말씀은 하지 않아도 늘 자식들을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한다.자녀의 직장일이나 사업 때문에 차마 말은 못하지만 갈수록 자식들에게서 멀어져 고독한 마음을 갖게 된다.더구나 핵가족제도의 급속한 확산으로,요즘 세태가 자녀에게는 무한정으로 베풀면서 부모나 웃어른께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만연돼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삼동(회사원·울산 남구 무거동) ●쉬운 우리말로 법률 만들었으면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여러분께 먼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국민을 대변하는 참된 국회의원으로서 새로워진 모습 보여 주실 줄 믿고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모든 법률을 한글만으로 쓰고,쉬운 우리말로 다듬는 일을 서둘러 주십시오. 둘째,국회의원 이름패를 모두 한글로 써 주십시오. 셋째,국회 개원 공고문의 의원 이름을 앞으로는 한글로만 써 주십시오. 넷째,국회 휘장 ‘國’을 ‘국’으로 바꿔주십시오. 다섯째,한글 전용법(1948년 제정)의 내용 가운데 단서 조항(일정기간한자 병기 허용)구절을 없애고,곧 이 법을 실천해 주십시오. 국회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관이요 상징입니다.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에 솔선수범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홀길(한글학회 회원·부산 동래구 낙민동) ˝
  • [통신업계 ‘가정의 달’ 2題] 효도전화 무료제공등 이벤트 풍성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유·무선 통신업계가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달 말까지 ‘네이트 행복마을’ 행사를 열고 SK상품권과 로또구매권 등 경품을 제공한다.콘텐츠 이용 고객 28명을 뽑아 100만원 한도에서 선물도 준다.오는 8∼9일 경기 용인 삼성에버랜드에서는 카메라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문자메시지를 심사해 경품을 제공하는 ‘네이트 포토 페스티벌’을 연다. KTF는 이달 말까지 사랑과 웃음 등을 테마로 한 문자메시지 행사인 ‘희No애락3’ 이벤트를 갖는다.매주 100명을 추첨,문화상품권 1만원권을 주며(4주간 총 400명) 이벤트가 끝나면 전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추첨해 DVD플레이어(5명)와 플레이스테이션(5명)을 준다. LG텔레콤도 이달 말까지 신규 가입자 중 가족사랑 할인을 신청한 고객 10만명에게 여행서적을 나눠준다.또 이들 중 100가족에게 발리·제주도 여행권을 주며 신규 가입자가 가족 1명을 가입시켜 가족사랑 할인에 포함시키면 플라로이드 카메라를 제공한다.17일까지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서비스를 내려받거나 선물한 고객들을 추첨해 50만원 상당의 가족 여행권과 에버랜드 연간 이용권,문화상품권 등을 주는 경품 행사를 갖는다. KT는 8일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사회분위기의 확산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효도전화 무료제공 캠페인을 전개한다.이날 시내·외 전화에 관계없이 첫 통화 5분은 무료로 제공한다.또 이달 안에 통화연결음 서비스(링고)에 가입한 고객에게는 1개월 월정액 혜택과 음원 변경 2회 무료 제공 기회를 준다.이들 고객 중 추첨을 통해 드럼세탁기(10명),공기청정기(10명),에어컨(10명)을 지급하고 ‘링고 가족 얼짱 콘테스트’를 통해 동남아여행권(2가족),디지털카메라,명품 선글라스,MP3플레이어,의류교환권을 나눠준다.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은 신규 가입자에게 인터넷 쇼핑몰 7만원 상품권을 제공한다. 두루넷은 초고속인터넷 신규 가입자(2년 약정기준)에게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의 7만원 상품권을 주며,하나로통신은 CJ몰 상품권(7만원)을 제공한다. 김경두기자 golders@˝
  • ‘광해군, 탁월한‘ 저자 한명기 교수

    “이라크 파병 논란은 380여년 전 명나라에 의해 촉발된 조선조 광해군 때의 파병논란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역사적 교훈 차원에서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병 논란의 묘수가 ‘380년 전의 메시지’에서 풀어질 수 있을까.평전 ‘광해군,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의 저자 한명기(43·명지대 사학과) 교수. 그는 최근의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과 관련,찬반을 떠나 이 시점에서 광해군의 ‘외교술’을 한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6·25전쟁을 도운 ‘미국’과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보낸 ‘명’이라는 ‘슈퍼파워’가 파병요청을 해왔다는 현실과 역사적 상황이 그렇다. 또 파병에 앞서 파병지에 대한 정보수집의 노력과 파병후 여러 돌출변수의 수습과정 등도 흥미롭게 비교될 수 있다고 한 교수는 설명한다. “명나라는 후금의 기세에 눌려 위기에 처하게 되자 조선에 임진왜란때 원군을 보낸 은혜를 갚으라며 파병요청을 끈질기게 해왔지요.그러나 광해군은 ‘사나운 후금과 노회한 명의 싸움에 끼어들면 망할 수밖에 없다.’며 명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광해군은 명을 설득시키려 애를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금을 다독거리는 양면적 외교정책을 구사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정에는 ‘임진왜란때 구원해준 명의 요청을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찬성론이 거셌다.게다가 명 역시 계속 거부할 경우 조선을 먼저 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한 교수는 “광해군은 마지못해 강홍립 장군에게 1만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전토록 명령을 내리면서 압록강 국경에서 대기토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면서 “그러나 나중에 작전권과 지휘권이 명에 넘겨지면서 강홍립은 후금과의 전투에서 참패당해 결국 투항하고 말았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또 “광해군은 이후에도 계속된 명의 추가파병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사신과 첩자를 동시에 보내 명과 후금의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당시 광해군은 ▲명의 주력군이 너무 멀리 떨어진 사천성에서 동원된다는 정보를 알고 명의 패배를 예견했으며 ▲조선군 파병요청시 후금과의 전투에서 10만명을 출전시키겠다는 당초 약속과는 달리 7만명밖에 동원시키지 않는 등 국익차원의 외교를 펼쳤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보다 파병 결정에 훨씬 자유로운 일본은 파병에 앞서 민·관조사단이 이라크 현지에 12차례나 파견돼 치밀한 사전조사를 실시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작 두 차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군이 이라크 현지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하고 테러 위협이 생길 경우 국내 정치상황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인간은 부모를 선택한다/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예부터 “효는 백가지 행동의 근원이다.”고 하였다.이는 효도가 인간 삶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불효를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인연 간의 갈등이 많으며,하는 일이 잘 열리지 않고,삶에 고통과 괴로움이 계속 찾아온다.예를 들면 나무가 뿌리와 기운이 막히면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과 같다.부모는 인생이라는 나무의 중요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픔이 많다.자식의 눈에 부모의 삶이 원만하지 못할 때,화목하지 못하거나 불만 등이 있을 때에 자연히 부모와의 기운이 단절되고 원망하게 된다.부모의 삶이 나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 없다고 여긴다.이럴 때 마음속으로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하고 생각한다.“심지어는 왜 나를 낳았는가?”하고 원망하기도 한다.이렇게 하여 부모와 갈등하고 불효하게 되며,천륜을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효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찾아뵙고 용돈을 드리고,여행을 보내드리곤 한다.그러나 마음으로 깊은 은혜를 느끼며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또한 진심으로 효도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여기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한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낳는다는 것 때문에 자식의 삶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모든 것을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자녀들은 이렇게 말한다.“왜 나를 이렇게 길렀는가?” “ 왜 나에게 더 잘 해주지 않는가?” 이는 자기 존재의 책임을 부모에게 지우고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길러준 부모에게 오히려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이로 하여 몸과 마음이 아프고,인간관계에 갈등하며,부부간에 불화하고,자식이 불효하는 괴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우리가 이 생에 태어났을 때,우리는 자신의 성장에 꼭 필요한 부모를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났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나에게 가장 적합한 부모와 그 환경을 내가 원하여 인연 맺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 존재의 책임은 부모가 아니고 나 자신인 것이다.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이런 사실을 자주 말씀하시었다.소태산 대종사는 죽은 영혼을 위해 축원하는 법문에서 “영가가 평소 짓던 바에 즐겨하여 애착이 많이 있는 데로 좇아 그 육신을 받게 되나니.”라 하시어 자기 몸을 받는 주체가 바로 자신임을 말씀하셨다.또한 원불교의 경전인 대종경 천도품 36장에 보면 “인도 수생의 부모를 정할 때에도”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부모는 자신이 선택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이제 자신의 탄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우리가 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될 때 부모에 대한 일체의 원망은 한 순간에 녹게 된다. 지금까지 부모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된다.그러면 천륜이 바로 세워지고 마음에 철이 들며,함께 삶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열려갈 것이다. 부모와의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며,아픔이 많은 사람들은 이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부모는 내가 선택하여 태어난다는 사실을 수용하면 나는 내 삶을 책임지는 당당한 주인이 된다.그리고 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고,어려운 매듭들이 쉽게 풀려 가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아!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 [김영희 이혼클리닉] ‘전처 딸 결혼식 참석’ 아내가 반대해요

    재혼한 남자입니다.현재 아내와 마음이 맞아서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그러나 요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결혼 문제로 많이 다툽니다.재혼한 아내는 질투가 심한 편이라 결혼식장에서 제가 전 부인과 나란히 앉은 모습을 죽어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어쩌면 좋을까요? 최성수 최성수씨,초혼보다 몇곱절 어려운 게 재혼이라고 합니다.재혼은 초혼과 달리 상처받은 사람끼리의 결합이기 때문에 상대가 살아온 지난날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마음의 상처를 감싸안으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에 들뜬 열정만으로 맺어질 수 없는 것이 재혼이지요.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만났기에 더욱 신뢰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사랑만 갖고 시작한다면 ‘모래 위에 쌓은 성’같이 언젠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제 여고동창 중 재혼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당시 친구 나이가 39살이었는데,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했습니다.재혼한 남편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었고 남편은 국제선 조종사였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생까지 올망졸망한 의붓자식 넷을,제가 낳은 친자식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감탄했습니다. 친구들과 잠시 만날 일이 있어도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습니다.집안 일을 맡아 해주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조금 늦게 가도 아이들에게 큰 지장없겠다 싶은데도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없으면 밥도 먹지 않고 기다리니 가봐야겠다.다음 모임은 우리집에서 하자.내가 한턱 낼게.그때 실컷 놀자.정말 미안해.”하곤 자리를 떴습니다.방학 때가 되면 아이들을 생모에게 며칠씩 보내곤 했는데 갈 때마다 선물을 꼭꼭 챙겨 보냈습니다. 20여년이 넘은 지금 결혼한 두 딸이 가끔씩 저를 찾아오는데 “저희도 애 낳고 살아 보니 어머니 힘드셨던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닌 4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워주신 그 은혜는 갚아도,갚아도 모자랄 것 같아요.사춘기 때 막내가 어머니 속을 무척 많이 썩여드렸는데도 항상 감싸주시고 아버지 몰래 혼자 우시는 것을 많이 봤어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그 친구는 지금 미국 LA 산타모니카에 있는 막내아들 집에서 남편과 함께 아주 행복한 노후를 살고 있는데 남편과 의붓 자식에 대한 이해와 배려,인내와 사랑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성수씨,딸이 곧 결혼하는데 당신과 전 부인이 나란히 부모석에 앉아 식을 치르는 것을 재혼한 부인이 절대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한다니 난감한 일이네요.아버지가 딸 결혼식에 갈 수도,안 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여서 제게 ‘솔로몬의 지혜’로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 왔는데,솔로몬의 지혜는 상식 속에 있습니다. 재혼한 아내가 반대한다고 결혼식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딸에게 두 번씩이나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전 부인과 어떤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부모의 이혼으로 그동안 딸이 받았을 고통을 헤아린다면,이제 성인이 되어 인생을 새 출발하려는 딸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아버지의 도리일 것 같습니다.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 되지만 핏줄로 맺어진 자식은 남이 될 수 없지요.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헤어진 부인과 나란히 앉아 결혼식을 치를 두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남편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부인이 질투가 많은 편이라지만 딸이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지요.부인도 자식을 낳아 본 어머니라면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할 것입니다.사랑은 소유나 집착을 해서는 안 되고 진실된 마음으로 뿌리를 내려야만 오래갑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전처 딸 결혼식 참석’ 아내가 반대해요

    재혼한 남자입니다.현재 아내와 마음이 맞아서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그러나 요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결혼 문제로 많이 다툽니다.재혼한 아내는 질투가 심한 편이라 결혼식장에서 제가 전 부인과 나란히 앉은 모습을 죽어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어쩌면 좋을까요? 최성수 최성수씨,초혼보다 몇곱절 어려운 게 재혼이라고 합니다.재혼은 초혼과 달리 상처받은 사람끼리의 결합이기 때문에 상대가 살아온 지난날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마음의 상처를 감싸안으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에 들뜬 열정만으로 맺어질 수 없는 것이 재혼이지요.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만났기에 더욱 신뢰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사랑만 갖고 시작한다면 ‘모래 위에 쌓은 성’같이 언젠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제 여고동창 중 재혼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당시 친구 나이가 39살이었는데,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했습니다.재혼한 남편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었고 남편은 국제선 조종사였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생까지 올망졸망한 의붓자식 넷을,제가 낳은 친자식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감탄했습니다. 친구들과 잠시 만날 일이 있어도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습니다.집안 일을 맡아 해주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조금 늦게 가도 아이들에게 큰 지장없겠다 싶은데도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없으면 밥도 먹지 않고 기다리니 가봐야겠다.다음 모임은 우리집에서 하자.내가 한턱 낼게.그때 실컷 놀자.정말 미안해.”하곤 자리를 떴습니다.방학 때가 되면 아이들을 생모에게 며칠씩 보내곤 했는데 갈 때마다 선물을 꼭꼭 챙겨 보냈습니다. 20여년이 넘은 지금 결혼한 두 딸이 가끔씩 저를 찾아오는데 “저희도 애 낳고 살아 보니 어머니 힘드셨던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닌 4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워주신 그 은혜는 갚아도,갚아도 모자랄 것 같아요.사춘기 때 막내가 어머니 속을 무척 많이 썩여드렸는데도 항상 감싸주시고 아버지 몰래 혼자 우시는 것을 많이 봤어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그 친구는 지금 미국 LA 산타모니카에 있는 막내아들 집에서 남편과 함께 아주 행복한 노후를 살고 있는데 남편과 의붓 자식에 대한 이해와 배려,인내와 사랑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성수씨,딸이 곧 결혼하는데 당신과 전 부인이 나란히 부모석에 앉아 식을 치르는 것을 재혼한 부인이 절대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한다니 난감한 일이네요.아버지가 딸 결혼식에 갈 수도,안 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여서 제게 ‘솔로몬의 지혜’로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 왔는데,솔로몬의 지혜는 상식 속에 있습니다. 재혼한 아내가 반대한다고 결혼식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딸에게 두 번씩이나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전 부인과 어떤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부모의 이혼으로 그동안 딸이 받았을 고통을 헤아린다면,이제 성인이 되어 인생을 새 출발하려는 딸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아버지의 도리일 것 같습니다.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 되지만 핏줄로 맺어진 자식은 남이 될 수 없지요.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헤어진 부인과 나란히 앉아 결혼식을 치를 두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남편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부인이 질투가 많은 편이라지만 딸이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지요.부인도 자식을 낳아 본 어머니라면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할 것입니다.사랑은 소유나 집착을 해서는 안 되고 진실된 마음으로 뿌리를 내려야만 오래갑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SBS새 주말드라마 ‘작은아씨들’ 출연 유선

    ‘지적인 여인’ 유선(28)이 반항적인 이미지의 터프걸로 변신해 안방극장 시청자를 찾아간다. 유선은 오는 24일 첫 방영되는 SBS 새 주말드라마 ‘작은아씨들(극본 하청옥,연출 고흥식)’에서 네명의 딸 가운데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인 말썽꾸러기 둘째딸 미득역을 맡았다.아버지(임채무)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성장,가슴 속에 분노를 품고 살아간다.언니 혜득(박예진)이 사랑하는 남자(김호진)에게 연정을 갖게 되면서 언니에 대한 열등감으로 복수심을 품게 되지만,방송작가로 성공한 뒤 분노를 다스리는 성숙함을 보여준다.셋째딸 현득역은 박은혜가,넷째 인득역은 이윤미가 맡았다. “그동안 부잣집 딸,사치스러운 커리어 우먼 등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역할만 했잖아요.이번엔 내세울 수 있는 게 오로지 ‘맷집’밖에 없는 ‘무대포’로 나와 기대가 커요.사실 제가 어릴적부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명물’로 불릴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거든요.”기존 역할들과 180도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가 본래 자신의 성격과 닮은 점이 많아 마음에 딱 들었단다. 유선은 우연히 잡은 ‘행운’이 아닌,부단한 노력을 통해 연기자가 된 케이스.“초등학교 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가졌어요.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며 여러차례 연극무대에도 올랐죠.오디션을 몇번 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수없이 기획사의 문을 노크하고 또 노크했어요.” 2001년 영화 프로그램의 MC로 데뷔한 그녀는 지난해 SBS 드라마 ‘태양의 남쪽’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연기대상 조연상을 수상했다.이번 드라마에서는 실감나는 무술 유단자 연기를 위해 한달여 동안 ‘절권도’를 배우고 있단다.“‘진짜 연기 잘하는’연기자란 소리를 듣고 싶어요.올해는 저만의 대표 작품을 하나 가질 수 있도록 드라마든 영화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할 겁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4·15 한국의 선택] 관심 지역구

    ■한나라 텃밭의 ‘빛나는 1석’ -부산 하사을 조경태 부산의 한나라당 바람 속에서 힘겹게 건져올린 1석.사하을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조경태 후보의 당선은 그래서 더욱 값진 ‘1석’으로 평가된다. 당초 우리당 부산시당에서는 영도구 김정길 후보,부산진갑 조영동 후보,북·강서갑의 이철 후보 등 적어도 3석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었다.그러나 이번에도 지역구도를 깨는데 역부족이었다. 선거 초반만 하더라도 탄핵바람에 힘입어 7∼8석까지 노렸으나,보수성향이 강한 부산시민의 정서와 ‘박근혜 바람’,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등이 겹치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져나간 게 패인으로 분석된다.조 당선자는 부산지역 우리당 후보 중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었다.여·야 모두 현역인 박종웅 의원의 아성을 깨뜨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그러나 박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조 당선자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됐다.노인폄하 발언 이후 부산지역 대다수 선거구에서 우리당 후보들이 한나라당 후보에게 추월당했지만 조 당선자만은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공안검사’대 ‘사형수’의 한판 승부로 관심을 모았던 부산 북·강서갑에서는 공안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정형근 후보가 우리당 이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이곳은 선거 초반만 하더라도 탄핵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이 후보가 앞서 갔으나,우리당 정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과 박근혜 대표의 바람몰이가 시작되면서 팽팽한 승부처로 변했다. 이 후보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낙후한 이 지역의 발전을 이끌려고 했는데….유권자들이 머리로는 지지하면서도 몸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싱겁게 끝난 ‘노량해전’ -‘리틀盧’ 물리친 박희태 법무부장관과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희태 후보와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한 열린우리당의 김두관 후보가 맞붙어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노량해전’ 은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났다.이로써 김 후보는 16년을 별러온 ‘리턴매치’에서도 분루를 삼켜야 했다. 노량해협을 사이에 둔 경남 남해·하동선거구는 5선에 도전하는 박 후보와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은 선거구. 당초 예상과 같이 선거전은 피를 말릴 정도였지만 결과는 싱거웠다. 선거 초반 불어닥친 탄핵정국은 김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됐다. 탄핵반대 열기가 한창일 때 무려 10% 포인트를 앞서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박희태도 이젠 끝났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그러나 이 지역에서 4선을 기록한 박 후보의 저력은 대단했다. 형편없는 지지율에도 ‘큰 인물론’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 들었다.4선을 지낼 동안 ‘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는 깨끗한 인물을 국회의장으로 만들자는 설득이 주효했다.여기에 ‘박근혜 바람’이 탄핵역풍을 잠재우면서 처음 배 이상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를 좁혔다.이들이 처음 대결을 벌인 것은 지난 88년 13대 총선.당시 부산고검장으로 민정당의 영입 케이스로 출마한 박 후보는 대학을 갓 졸업한 무명의 김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그러나 김 후보는 지난 95년과 98년 실시된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박 후보가 내세운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군수로 당선,간접적으로 설욕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盧오른팔’ 우여곡절뒤 재기-태백·영월·평창·정선 이광재 한나라당과 박빙의 대결을 펼친 끝에 강원도 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서 당선된 열린우리당 이광재(39)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어오다 청와대까지 함께 입성했던 이 당선자는 이후 당·정간의 갈등과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얻은 승리여서 더욱 값지다.길지 않은 몇 달이었지만 온갖 루머와 소문을 뒤로하고 평창 등의 고향산천을 돌며 마음을 정리한 뒤 이번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것. 선거전은 순탄치 않았다. 선거 초반 이 지역 최대 이슈인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열린우리당 중앙당에서 동계올림픽 유치 공약을 강원도에서 빼고 전북지역에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이후 우리당 중앙당 공약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내용을 삭제하고 강원도당 공약에 포함시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당선자는 보수성향이 강한 두메산골 고향사람들이 지지해준 이유를 잘 알고 있다.피폐해져 가는 폐광지역 고향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희망이라는 것도 잘 안다.그는 “다시 찾은 고향을 돌아보며 가슴 아린 경험도 많이 했다.”며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 소리를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새로운 고향을 꿈꾸며 열심히 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앞으로 4년간 노무현 대통령의 지킴이로서,강원도 전체를 위해 땀으로 온 몸을 적시며 일하겠다.”면서 “부모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고향을 위해 애정과 책임감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 ■한솥밥 먹던 ‘거함’ 격침-서울 강동갑 김충환 피를 말리던 ‘강동대전’은 한나라당 김충환 후보의 극적 승리로 끝났다.정치적 스승이며 이번 총선 전까지 같은 당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거함’ 열린우리당 이부영 후보를 막판에 격침시킨 것이다. 김 당선자는 이 후보의 서울대 정치학과 12년 후배.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민주당에 잔류했다가 한나라당에 이 후보와 함께 입당한 뒤 강동구청장을 3연임할 동안 줄곧 한 배를 탔다.하지만 이 의원이 지난해 7월 탈당하면서 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나라당은 이 후보를 겨냥,김 당선자를 대항마로 띄우면서 정치적 결별을 하게 됐다.이후 이들은 서로 넘어야 할 산이었다. 탄핵정국 이전만 해도 ‘김충환 대 이부영’의 싸움은 강동에서 3선 구청장을 지낸 김 당선자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졌다.강남권인 강동갑은 한나라당 강세지역이고 10년 동안 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쌓아놓은 크고 작은 치적과 조직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지형을 완전히 뒤바꾼 탄핵정국이 달아오르면서 둘의 싸움은 완전히 역전되는 형국이었다.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당선자는 이 후보에게 크게는 30% 이상 뒤져 ‘싸움이 끝난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했다.이런 상황은 선거막판까지 이어져 정치적 스승이며 동지였던 이 후보의 낙승이 예견되기도 했다.서울시장을 노리는 김 당선자의 숨겨둔 야망이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최용규기자 ykchoi@ ■ ‘女多의 섬’ 제주 첫 여성의원-민노 비례대표 현애자 ‘여다(女多)의 섬’ 제주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첫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민주노동당 비례대표 6번인 현애자(42·남제주군 여성농민회장) 후보다.선거기간중 민노당 지지세가 올라가고 특히 제주지역 여성계가 그를 지원하면서 그의 원내 진출 가능성은 조용히 점쳐졌었다.경계선에 머물지 않을까 조바심났던 것도 사실이다.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당선 인사후 그는 “농업과 농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 들어가 전문성과 정체성을 살려나가겠다.해고노동자 복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철폐를 위해 당소속 의원들과 힘을 합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남편 이태권(44)씨와 2남1녀. 제주시·북제주갑 선거구에 출마한 정치초년생인 열린우리당 강창일(52) 후보는 학교와 정치 대선배인 5선의 백전노장 한나라당 현경대(65) 후보를 누르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두 사람은 오현고·서울대 선후배인데다 지난 81년 현 후보가 무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강 당선자가 1년 6개월동안 비서관으로 일했었다.당시 현 의원은 그의 3선개헌 반대,서울대제주학우회 발기,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한 구속 등 자질과 역경을 높이 샀다.이런 인연도 선거 앞에서는 철저히 무시돼 지난 방송토론 때는 “사람을 잘못 가르친 것 같다.” “비서관으로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는 막말까지 오갔을 정도였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 원불교 창건일 ‘이웃과 함께’

    ‘당신은 희망입니다.’ 오는 28일 제89주년 대각개교절을 맞는 원불교가 올해 봉축행사를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행사로 치른다고 밝혀 주목된다. 대각개교절은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우주의 진리인 일원(一圓)진리를 깨우치고 원불교를 창건한 원불교 최대 축일.원불교 신자들이 공동생일로 여기는 최고의 명절이기도 하다. 원불교는 종전 봉축행사를 교단 내부 행사에 치중해왔으나 올해부터는 원불교 교시에 충실한다는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불우이웃과 소외 계층을 배려하기로 했다.우선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전북 익산의 중앙총부를 비롯한 국내외 각 교당에서 인류의 상생과 평화를 기원하는 특별기도식을 일제히 갖는 것으로 봉축행사는 시작된다. 5월11일까지 전국에서 계속되는 행사를 보면 전국 낙도와 농어촌에서 무료진료를 시행하는 것을 비롯해 소년소녀가장 결연사업,장애인 큰잔치,경로 큰잔치,은혜의 쌀나누기,교도소·소년원 위로잔치,특별천도재,독거노인 가정 도배행사,외국인 노동자 지원 등이 대부분이다.북한 이주민(탈북자) 초청 성지순례를 포함해 군부대와 도서지역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책을 전달하는 도서보내기운동도 편다. 오는 24일에는 원불교 개교일을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뜻에서 익산 원광대와 중앙체육공원에서 처음으로 ‘아하! 데이 축제’라는 문화축제행사를 연다.시민 1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 축제는 청소년들의 장기자랑과 댄스공연 등의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희망 퍼포먼스,거리퍼레이드,생명·평화·상생의 열두 띠 축제마당으로 꾸며진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선거후 報恩”

    강력해진 선거법을 피해가려는 신종 탈·편법 금권선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17대 총선에 출마한 일부 후보는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선거후 보은’을 공공연히 약속하거나,법정선거 비용을 초과하지 않으려고 차용증을 끊어주고 선거 후 정산·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또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학교 동문과 지역기업인 등을 동원,접대비를 대신 내게 하는 오리발형 ‘스폰서십’도 활개를 치고 있다. ●“선거법 너무 인색” 공개 비난 편법으로 금권선거를 하면서도 후보들은 당당했다.기자가 직접 만난 유력 정당 후보들은 “선거법이 너무 인색하다.선거가 끝난 뒤 운동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섭섭지 않게’ 보답할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서울 강북 지역에 출마한 한 정당의 A후보는 ‘보은’을 약속하며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독려하고 있다.A후보는 “선거가 끝나면 각종 경조사 때에 ‘금일봉’을 줄 생각”이라면서 “고마운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어서 당장이라도 경제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지만 선거법상 할 수 없어 선거가 끝나면 도움을 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무료진료를 약속한 후보도 있었다.한의사 출신인 B후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며 두고두고 은혜를 갚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행태에 대해 무소속 C후보는 “유력 후보들의 ‘보은 사례’를 수집해 고발할 계획”이라며 자원봉사자들이 실제로는 선거 이후를 보고 움직이고 있어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각 지역선관위도 후보별 자원봉사자 감시에 착수했다.서울 동대문구 선관위의 이남근 지도계장은 선거후 ‘뒤풀이’관광 등도 엄중 조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 비용을 은폐하기 위한 차용증도 은밀하게 돌고 있다.일부 지역 선관위와 경찰은 후보 관계자들이 써준 차용증 등 증거물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한 정당의 서울시지부 간부는 기자에게 “선거는 해야 하고 돈도 써야 하는데 옛날처럼 직접 줄 수 없어 차용증을 끊는 경우가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경찰 수사 번번이 무위로 지능적인 ‘스폰서십’도 빈발하지만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서울의 한 경찰서는 지역 사업가인 D씨가 지난달 말 주민들을 데리고 선심성 관광을 다녀왔다는 첩보를 입수했다.조사 결과 D씨는 식대 및 관광비용 200만원을 모두 부담했다. 경찰은 D씨가 한 후보와 절친한 사이라는 점에 주목,계좌추적까지 벌였지만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강북지역에 출마한 E후보는 후보등록 후 한 초등학교의 명예교사 모임에 참석해 인사를 했다.식사비 14만원은 모임 대표인 학부모 김모씨가 냈다.김씨가 평소 E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실제로 스폰서 노릇을 한 것인지,자발적으로 식대를 냈는지를 밝히지 못해 경찰 수사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계좌추적 대상 확대해야 선관위와 경찰 관계자들은 ‘선거후 보은’ ‘차용증’ ‘스폰서십’ 등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탈·편법 행위를 잡으려면 내부고발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용산경찰서 수사2계 이천호 경사는 “후보 진영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져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적발해도 실제 처벌까지 가도록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노원구 선관위 정규섭 지도계장은 “자원봉사의 대가성을 추적하고 있지만 구두약속일 뿐 각서나 차용증 등의 증거 확보는 어렵다.”면서 “자진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계좌추적을 해야 하지만 후보와 후보자 가족인 1차 대상자 외에는 계좌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안동환 김효섭기자 sunstory@˝
  • [총선 D-3] ‘탄핵’ 헌재판결 수용 공방

    정치권은 11일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 수용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전날 각당 선대위원장을 초청한 KBS TV의 심야토론에서 “헌재 결정에 승복할 것을 합의하자.”는 야3당의 제안을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가 거부한 데 따른 공방이다. 야당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공격했고,열린우리당은 “탄핵 철회만이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맞받아쳤다. 민주당은 “손봉숙 위원장이 토론회에서 ‘헌재에서 탄핵이 수용되면 승복할 것이냐.’고 묻자,김근태 의원이 ‘헌재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국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결정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면서 “이는 김 의원이 그간 자신의 이미지와 살아온 것을 전면 부정하는 엄청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입법기관이 3분의2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는데 또 다른 국회의원인 김 원내대표가 이를 전면 부정하겠다는 것은 다수당 되면 독재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청을 높였다. 토론에 참석했던 한나라당 박세일 위원장은 “각 당 선대위원장들이 헌재판결을 모든 당이 수용하는 걸로 합의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김 원내대표가 헌재 판결에서 가결될 경우 수용하기 어렵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토론에서는 민주당 손봉숙,자민련 정우택,한나라당 박세일 위원장이 각각 ‘헌재의 결정을 도와주고,정치권은 승복하자.’는 질문을 던졌고,김 원내대표는 ‘그런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결과적으로 비켜나가게 될 위험성이 있고,부당성을 가리는 결과가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등의 답변을 했다. 김 원내대표는 “탄핵사태에 대한 일언반구 사과없이 헌재 결정을 따르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므로 합의한 게 아니라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같은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야 3당은 헌재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무조건 기다리자는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국민적 심판을 두려워한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지운기자 jj@˝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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