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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유학’ 김정일-김정은 세습부자의 감춰졌던 생활들

    ‘조기유학’ 김정일-김정은 세습부자의 감춰졌던 생활들

    김정일·김정은 세습 부자는 몰타, 스위스 등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에 머물던 시절을 비롯해 그들의 소년기, 청년기 사생활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이들을 접촉했던 몇몇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김정일 부자의 특성과 일화를 종합해 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북한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29세의 ‘황태자’ 김정은은 2009년 초 북한의 후계자로 부상하기 전까지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베일 속 인물이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장남 정남이 일본 밀입국 사건으로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났을 때도 북한 전문가들은 삼남 정은이 아닌 둘째 정철을 주목했었다. 2006년쯤부터 김정은 후계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자 일부에서는 북한의 연막일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김정은의 등장은 ‘장자승계’를 중요시하는 북한 사회로 볼 때 예상하기 어려운 카드였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재일동포 고경택의 딸인 고영희 사이에서 1983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올해 29세지만 북한에서는 30세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백두혈통’을 잇는 정통 후계자로 포장하기 위해 김 주석(1912년 생), 김 위원장(1942년)과 출생연도 끝자리를 맞춰 1982년생으로 선전했기 때문이다. 2009년 초 잘못 알려진 ‘김정운’(金正雲)이란 이름이 김정은의 본명이란 얘기도 있다. 3대 후계체제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두운 이미지의 ‘구름 운’(雲) 대신 ‘은’(銀)으로 바꿨고 이후 ‘은혜 은’(恩)으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어릴적 사진 외에는 알려진 게 없어 김정은이 공식 등장하기 이전에는 엉뚱한 인물이 김정은으로 둔갑돼 외신에 보도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년시절 또한 두 형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학창시절은 1998년 형 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로 유학, 2000년까지 공부했고 이후에는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했다는 정도가 전부다. 김정은은 학창시절 부지런하고 야심찬 학생이었으며 농구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격과 외모도 김 위원장을 쏙 빼닮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며,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 성격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11년간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 위원장이 김정은을 통이 크고 군인 같은 인물로 키우고자 어릴 때부터 군복을 입게 했고 7세부터 별장인 초대소에서 벤츠를 운전하게 했다고 전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좋아해 농구를 할 때는 항상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다고 한다. 정은과 정철이 각각 팀을 이뤄 농구시합을 한 뒤 정철은 “수고했다.”고 팀원들을 격려한 반면, 정은은 “왜 그 쪽으로 패스했냐, 더 열심히 하라.”고 질책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승부욕과 야심이 강한 김정은이 이복형이자 정치적 라이벌인 정남을 암살하려 했다는 정보도 있다. 베일 속의 ‘황태자’였던 김정은은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대장’칭호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얻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김정은 우상화를 위해 찬양가인 ‘발걸음’이란 노래도 작곡됐고, ‘CNC’(컴퓨터 수치제어)기술이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됐으며 세습을 상징하는 ‘수령복(福), 장군복, 대장복’이란 말도 나왔다. 할아버지 김 주석의 후광을 업고자 흡사한 얼굴로 성형수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김 주석이 즐겨 입었던 검은색 인민복 차림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미혼이나 두 살 연하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여성과 결혼했다는 소문도 있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배가 고프면 화를 잘 내는 습성이 있었다고 그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몰타 사람이 20일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은 1970년대에 몰타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때 영어 개인교사를 한 대니얼 마사는 서방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종종 우울하고 저급한 사람으로 묘사되고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명랑한 성격이었으며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마사는 “그(김정일)에게 1대1로 영어 교습을 했으며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적절한 단어 구사와 문장 표현을 익히도록 가르쳤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은 배가 고프면 성을 냈으며 특히 교습 시간이 정해진 시간을 넘겨 점심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그랬다.”면서 “그는 나에게 몇번이나 교습시간이 정해진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요구했다.”고 말했다. 마사는 처음에 이 학생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누군가 북한 경호원들이 내 사무실 창밖과 문 밖에 서있는 것을 손으로 가리켰을 때에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정일은 당시 몰타의 노동당 정부와 북한 사이에 군사 훈련 및 교관 지원 비밀 합의에 따라 마련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몰타에 갔다.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일성 주석은 돔 민토프 몰타 전 총리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鐵의신화’ 박태준 별세] 박대통령 제철소 특명 받아… YS와 악연으로 정치시련 겪어

    [‘鐵의신화’ 박태준 별세] 박대통령 제철소 특명 받아… YS와 악연으로 정치시련 겪어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철의 사나이’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병마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이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던 1960년대. 모래 바람만 자욱하던 경북 포항에 일관제철소(제선, 제강, 압연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세웠다. 당시 모두가 ‘무리수’라고 비난했지만 오로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신념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런 고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 포스코는 연산 3700만t 규모의 조강 생산을 기록하는 세계 4위권 철강사로 성장했다. 포스코가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와 국민의 성원도 있었지만 ‘박태준 명예회장’의 리더십이 보태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철강산업과 전혀 관련이 없던 박 명예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으로 철강 왕국의 꿈을 품게 된다.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6기로 졸업했다. 이때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인연을 쌓았다. 이것이 훗날 이 땅에 최초의 일관제철소 건설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경제인으로 변신,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돼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었다. 1969년 박 명예회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종합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받았다. 당시 박 명예회장의 좌우명은 ‘제철보국’과 ‘우향우(右向右)정신’. 이 땅에 일관제철소를 건설, 경쟁력 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와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 또 ‘우향우정신’은 선조의 피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며,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공기업체제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실의 여지를 막기 위해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정립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 또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1977년 3기 설비의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가 80% 진행된 상태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구조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를, 1987년에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함으로써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 3개를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정치인으로서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민정당 대표위원,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와는 달리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정권과 연을 맺은 데 이어 이듬해 11대 민정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포스코 회장을 유지하면서 11, 13, 14대 등 3선 경력을 쌓았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으며 집권여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민정당 대표 취임 후 며칠 만에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하면서 정치적 시련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악연 때문이었다. 결국 박 명예회장은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더 큰 난관에 직면했다. 같은 해 3월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은 데 이어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는 등 혹독한 정치 보복을 당해야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97년 5월 경북 포항 보선 출마를 위해 귀국할 때까지 4년여의 ‘망명생활’을 감수해야 했고, 같은 해 7월 포항 북구 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정치적 영욕의 세월을 거친 박 명예회장은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1월 ‘21세기 첫 총리’로 발탁되면서 의욕을 불태웠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낙마해야 했다.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불명예 퇴진을 감수해야 했다. 전광삼·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전·현직 ‘MB맨’ 출사표 친노진영·486도 부활가

    전·현직 ‘MB맨’ 출사표 친노진영·486도 부활가

    13일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내년 4월 19대 총선의 전초전이 막이 오른다.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정치 신인들의 발빠른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기성 정치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운천, 불모지 전주서 출마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 다수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전·현직 청와대 참모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정진석 전 정무수석은 16, 17대 국회에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충남 공주·연기로 복귀하거나 서울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박형준 전 사회특보는 부산 수영구에 출마할 예정이고 이동관 전 언론특보는 서울 강남구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무성하다. 또 함영준 전 문화체육비서관은 서울 강동구갑, 이상휘 홍보기획비서관은 경북 포항 북구, 김형준 전 춘추관장은 부산 사하구갑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김연광(인천 부평구을) 전 정무비서관, 정인철(경남 진주갑) 전 기획관리비서관도 채비에 나섰고, 박정하 전 대변인은 강원 원주로의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MB 캠프의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각각 대구 중·남구와 부산 영도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호남 몫으로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불모지인 전북 전주 완산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김해진 특임차관은 고향인 부산이나 현재 주소지인 서울 양천구갑 출마가 점쳐진다. ‘용산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전 오사카 총영사는 경북 경주에서 출마하기 위해 8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고,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도 대구 달서구을 지역에 도전한다. 야권 예비후보들도 채비에 나섰지만 무엇보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정당 출범이 관건이다. ‘완전개방 국민경선’ 공천 원칙에 따라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민통합당을 주도한 시민사회 인사들도 대거 영입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과 통합’의 남윤인순, 이용선 상임대표와 김기식 대표 등이 우선 거론된다. ●이인영·우상호·임종석 절치부심 친노(親) 진영에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 등이 거론되고 있고 한국노총에서는 이용득 위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486 인사’들이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인영 최고위원, 우상호·오영식·임종석 전 의원 등이 자신의 옛 지역구에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 당직자 출신으로 유은혜(경기 고양 일산동구) 전 수석부대변인, 허동준(서울 동작구을) 전 부대변인 등이 지역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뛰고 있고 김현 부대변인은 비례대표를 희망하고 있다. 문용식 당 유비쿼터스 위원장과 송두영 전 부대변인은 고양시 덕양구을 지역을 놓고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진보정당의 전·현직 대변인들도 국회 진출에 도전장을 냈다. 통합진보당 우위영 대변인과 국민참여당 이백만 전 대변인 등이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고, 진보신당 대변인을 지낸 강상구·김종철 부대표는 각각 서울 구로구와 동작구 출마가 예상된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씨줄날줄] 은인(恩人)과 보은(報恩)/주병철 논설위원

    사자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쥐 한 마리가 사자의 머리에서 놀다 코를 건드렸다. 사자가 눈을 번쩍 뜨고 쥐에게 야단을 쳤다. 쥐는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은혜는 꼭 갚는다고 애원했다. 사자는 쥐 같은 짐승이 무슨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며 그냥 풀어줬다. 그 후 어느 날 쥐가 산에서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사자를 봤다. 자신을 놓아 준 그 사자였다. 그래서 발을 꽁꽁 묶은 밧줄을 이빨로 끊어 사자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했다. 작고 힘없는 짐승이라고 얕보았던 사자는 쥐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가 은혜를 갚은 데에 고마워했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쥐 얘기다. 채근담에도 은혜의 귀중함을 일깨우는 경구들이 있다. “입은 은혜는 비록 깊을지라도 갚지 않고, 원망은 얕을지라도 이를 갚으려 한다. 남의 나쁜 평판을 들으면 비록 명백하지 않아도 믿으려 들고, 좋은 평판은 사실이 뚜렷한데도 믿으려 하지 않고 또한 의심하나니, 이는 각박하고 경박함이 가장 심함이라. 마땅히 간절히 경계할 일이다.” 은혜를 베푼 은인이 있으면 보은도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성어가 그런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의 아들 과(顆)가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서모를 개가시켜 따라 죽는 것을 면하게 하였더니, 후에 위과가 전쟁에 나가 진(秦)의 두회(杜回)와 싸워 위태로울 때 그 서모의 아버지 혼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매 두회를 생포했다고 한다. 정부가 오늘 무역의 날을 맞아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영웅으로 한국 수출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한 외국인 4명을 특별히 발굴해 훈·포장을 준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조선산업이 태동하던 1970년대 현대중공업에서 기술자문을 담당한 고(故) 윌리엄 존 덩컨의 유족을 현지 신문 광고와 현지 대사관의 수소문으로 찾아냈고, 아들에게 대신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게 된 것이다.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사람들이 이들뿐이겠냐마는 그래도 남의 공을 알아주고, 머리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각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찾아내 보은했으면 한다. 보은만큼 값진 게 있다면 은혜를 베푸는 일일 게다. 경제대국 13위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통 큰 은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못할 것도 없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망년회/주병철 논설위원

    연말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속이 줄을 잇는다. 스마트폰 수첩에 빈 공간이 없다. 갑자기 날아든 번개팅에 한번 꿰맞춰 보려면 꽉 찬 공간을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자주 만나는 사람은 올해 만남의 종결을 위해, 자주 보지 못했던 사람은 올해를 넘기기 전에 한번이라도 보고픈 마음에서 낮이고 밤이고 불나방처럼 모인다. 문제는 망년회 이후다.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걸 자축하고 새해를 활기차게 맞이하자는 망년회의 뜻이 어디가고 몸을 망치는 망신회(亡身會)로 둔갑되기 일쑤다. 망신회로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결국은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올해는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고 넘어가자. 어느 문인이 쓴 글귀의 일부다.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잊을 것은 잊지 않고 꼭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니, 예를 든다면 원혐(怨嫌)은 크나 작으나 당연히 잊을 것인데 꼭꼭 잊지 않고, 은혜는 크나 작으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 영락없이 잊어버리니, 그것은 결국 자기를 잊은 것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은혜를 원수로?…무 공짜로 나눠주다 망한 사연

    은혜를 원수로 값는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까. 최근 중국에서 한 농민이 무를 공짜로 나눠주려다가 쫄딱 망한 사연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일 중국 매체 차이신왕 등에 따르면 중국 허난성 정주에 사는 한 농민이 무를 무료로 나눠준다고 알렸다가 무려 3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무밭이 쑥대밭이 되고 인근 채소밭까지 모두 싹쓸이해가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37세 남성 한홍강. 그는 올해 자신의 밭 4헥타르에서 약 300톤의 무를 키웠지만 무값이 폭락해 망연자실하게 됐다. 이에 그는 무를 폐기하느니 무료로 나눠주기로 마음먹었었다고 전해졌다. 지난달 25일 현지 언론을 통해 무를 공짜로 나눠준다는 보도가 나간 뒤 한홍강의 밭에는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밭에 있던 모든 무를 뽑아 갔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항의하며 인근 밭에 있던 시금치, 고구마 등의 다른 채소를 마음대로 캐가는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고. 이룰 접한 중국 누리꾼들은 “너무 심하다”,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먹었다면 이럴 수는 없을 것”, “강도 같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피해를 본 장본인 한홍강은 ‘일이 이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가지고 돌아간 무는 적어도 모두 먹었으면 한다. 역시 썩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통해 전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신흥학우단가’ 조국서 장엄하게 울려

    ‘신흥학우단가’ 조국서 장엄하게 울려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항일음악회조직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항일음악회’가 2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조선의 노래’ ‘애국’ 등 잇따라 무대에 항일음악회는 19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전후부터 광복 때까지 의병과 독립군들이 불렀던 대표적인 항일음악들을 전문 성악가들과 합창단, 군악대의 노래와 연주로 재구성했다. 음악회는 메조 소프라노 정유진(명지대 강사)의 ‘조선의 노래’(이은상 작사·채동선 작곡)로 막이 올랐다. 이어 바리톤 유훈석(중앙대 강사)의 ‘애국’(작사 미상·헨리 케리곡), ‘혁명가’(작사·작곡자 미상) 등이 잇따라 무대에 울려 퍼졌다. 코리아남성합창단은 ‘애국가’(작사 미상·스코틀랜드 민요), ‘대한소년기개’(작사 미상·스테프 곡) 등을 불렀다. 이어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와 코리아남성합창단이 ‘대한제국 애국가’(작사 미상·프란츠 에케르트 곡)와 ‘신흥학우단가’(신흥학우단 제정·포스터 곡)를 불렀다. 특히 “조상의 세우신 옛나라 어디메뇨/ 충용한 무리야 그 은혜 끝까지 잊으랴….”로 시작하는 신흥학우단가는 국악계 원로인 노동은(중앙대 국악대) 교수에 의해 올해 처음 발굴<서울신문 11월 14일자 1면>돼 이날 고국의 무대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신흥학우단가는 1916년 12월 26일 신흥학우단 강습소에서 열린 10회 정기총회에서 정식 단가로 의결된 곡으로, ‘스와니강’으로 유명한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 ‘The Old Folk At Home’(고향사람들)의 곡을 차용했다. ●독립군 2100여명 배출… 국군의 뿌리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인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 신민회(新民會) 회원인 이회영·이동녕·이상룡 선생 등이 중국 지린성에 세운 항일 군사교육기관이다. 신흥강습소로 시작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꿨으며, 1920년 문을 닫을 때까지 2100여명의 독립군을 배출했다. 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이 학교 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이 학교 출신 독립군은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인 올해 기념 음악회를 가져 뜻깊다. 앞으로도 신흥무관학교의 의미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종서러움…조국을 되찾자” 1세기만에…조국서 해방가

     95년만에 발굴된 신흥무관학교 ‘학우단가’(學友團歌)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가사에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열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외 항일문화 국내 영향”  1절 ‘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충용한 무리아 그 은혜 끄까지 이즈랴’라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잃은 설움과 함께 조국을 기억하려는 독립투사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2절의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이천만 생령의 인생길 인도할이 뉘뇨’라는 노랫말에서는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동포들의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3절 ‘우리의 마음을 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억만년 새기초 공고케 세우세’는 해방 조국에의 희망과 의지가 담겼다.  노동은 교수는 “가사를 음미해보면 당시 어려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선각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특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뜻이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당시 항일운동이 국외에서는 항일무장투쟁, 국내에서는 계몽운동으로 구분돼 있었다는 기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 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핍박받던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키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당시 만주에서 불리던 많은 항일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민족사학을 중심으로 교육됐다.”면서 “해외 독립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국내에 영향을 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우단가의 발굴이 항일음악은 물론 우리 음악사 연구에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노래는 단순한 유흥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문맹률이 높아 주로 교육·선전의 도구로 사용됐었다. 실제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라는 미명하에 민족문화 말살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가요를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해 황국신민화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국민들 사이에서 불려지게 됐다. ●항일음악·친일음악 연구 전환점  그러나 자료가 대부분 망실돼 항일음악과 친일음악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학우단가의 곡이 실린 ‘광성중학교 최신창가집(1914년)’도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항일운동 중에서도 무장투쟁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다. 특히 신흥무관학교는 국군의 뿌리인 만큼 육·해·공군사관학교부터 이런 정신들을 발굴·계승하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신흥학우단가 가사와 해설  1절  祖上(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忠勇(충용)한 무리아 그 恩惠(은혜) 끄까지 이즈랴  四千春光(사천춘광) 빗나소든 배달 내나라  自由(자유)의 樂園(낙원)을 지을자 우리가 안인가    조상이 세우신 옛 나라는 어디냐  충성스럽고 용감한 무리야 그 은혜를 끝까지 잊으랴  4000년 역사의 빛나는 배달 내 나라  자유의 낙원을 만들 자 우리가 아닌가    2절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二千萬(이천만) 生靈(생령)의 人生(인생)길 引導(인도)할이 뉘뇨  굳은 마음 참된 精誠(정성) 힘을 다하야  썩어진 民族(민족)의 새 榮光(영광) 나타내이여라    종의 서러움을 받으며 이 목숨을 이어가는  이천만 생명의 인생길을 인도할 사람이 누군가  굳은 마음 참된 정성 힘을 다해  썩어진 민족의 새 영광이 나타나게 해라    3절  우리의 마음을 鍊鍛(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億萬年(억만년) 새基礎(기초) 鞏固(공고)케 세우세  大千世界(대천세계) 덥고 남은 긔운 다하라  普天下優勝(보천하우승)의 冕旒冠(면류관) 길히 빗나도다    우리의 마음을 단련해 큰 힘을 길러  옛 나라 억만년의 새 기초를 공고하게 세우자  큰 세상을 다 덮고 남은 기운을 다해라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면류관 길이길이 빛나라
  • 모니터 지정과제 ‘물가안정’

    10월 의정모니터 지정과제인 ‘물가안정, 가격담합 근절방안’에는 모니터요원 14명이 의견을 제시했다. 정병기씨는 “서울시 예산 중 치적사업이나 정책사업의 요소를 과감히 줄여 시민복지와 물가억제정책에 쓰고, 업소나 업체의 가격인상을 점검해 작은 물가변동에 큰 폭으로 값을 올리는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수현씨는 “현재 각 자치구나 자치센터에서 연결한 농장의 과일이나 채소, 건어물을 행정 일정에 맞추어 장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같은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혜씨는 “자치구별로 주부 모니터반을 구성해 물가상승 요인을 감시하도록 하고, 시민 체감물가 요인을 억제하는 방안을 시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기고] 바랴크호와 인천상륙작전/박상은 국회의원

    [기고] 바랴크호와 인천상륙작전/박상은 국회의원

    역사는 오늘이 있게 한 모태이고, 우리가 좋든 싫든 안고 가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최근 인천시는 연안부두에 작지 않은 광장을 조성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으로 명명식을 가진 바 있다. 이 명명의 역사적 배경은 1904년 러·일전쟁 중 발생한 전함 바랴크호 사건에서 기인한다. 러시아는 당시 항복을 거부하고 바랴크호와 함께 끝까지 싸운 570명 승조원의 정신을 기려 이들에게 영웅칭호를 부여하고 국가의 가장 상징적인 애국의 표상으로 삼았다. 이후 오늘날까지도 러시아는 최고의 예우로서 교과서는 물론 기념우표를 발행하는가 하면, 전 장병에게 바랴크의 정신을 교육하면서 인천의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인근에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기념일을 이곳에서 지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는 인천시립미술관이 보관하고 있던 바랴크 함기에 대해 우리 정부에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바랴크 함기는 지난해 인천시가 러시아에 임시로 임대해준 상태이나, 당시 이 임대에 대해 국민적인 동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상호 우호증진을 위하여 눈 감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천시는 1950년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인천시는 러시아의 애국운동에 대해서는 시민의 동의는 물론 문화재청의 승인도 없이 성 안드레이기를 “영구 임대하겠다.”는 둥 적극적인 협조의 자세를 취하면서 중앙정부와 합의한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에 대해서는 그 합의마저 폐기하고 그 자리에 경제적 타당성도 모호한 해양박물관을 짓겠다고 우기고 있다. 바랴크호 사건과 인천상륙작전이 모두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 의미 있는 사건으로서 그 역사성과 가치를 가지지만, 인천상륙작전이 우리에게 갖는 역사적 비중은 러시아인들이 바랴크호를 러시아의 정신이라며 추앙하는 것에 비교할 바가 결코 아니다.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대한민국의 존폐가 촌각에 달린 시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오늘의 모범적인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오늘날의 편리와 번영, 자유와 풍요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만큼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의 위기로부터 국운을 되돌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나라의 존폐가 촌각에 달린 시기에 전세를 일거에 반전시켜 풍전등화의 위기로부터 국운을 되돌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나라, 생면부지 한국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하고 값진 희생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그 커다란 희생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의미로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월미도에 21개 참전국의 기념관과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광장을 조성해 대한민국이 결코 그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애국운동에는 헌신적으로 협조해 바랴크호 사건의 현장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을 조성하는 인천시가 자국의 역사를 외면하는 역사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무비컬 비켜! 이젠 드라마컬이 대세

    무비컬 비켜! 이젠 드라마컬이 대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컬’(드라마+뮤지컬) 열풍이 거세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싱글즈’를 필두로 ‘미녀는 괴로워’ ‘라디오 스타’ ‘웨딩싱어’ ‘드림걸즈’ 등 영화(무비)를 옮긴 ‘무비컬’(무비+뮤지컬)이 대세였다면 올해는 단연 드라마컬이다. 한류 열풍의 원조로 ‘욘사마’(배용준), ‘지우히메’(최지우) 등을 낳은 대한민국 대표 드라마 ‘겨울연가’의 뮤지컬 버전이 우선 눈에 띈다. K팝 스타인 ‘소녀시대’ 수영의 친언니 최수진(25)이 주인공을 맡은 뮤지컬 ‘겨울연가’는 원작 드라마를 연출한 윤석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주목받고 있다. 원작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인 만큼 일본 관객의 비중이 높다.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다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도 뮤지컬로 제작됐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외모, 학력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5년째 싱글인 영애씨의 애환과 일상사를 대변하며 시즌 9를 맞이한 인기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인공 김현숙(33)이 뮤지컬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오피스 뮤지컬’을 표방하는 ‘막돼먹은 영애씨’는 상사 대하는 법, 승진, 정리해고, 이직 등 샐러리맨의 생활을 오롯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직장 동료와의 로맨스 등 애정 문제를 현실적으로 짚어낸 것도 장점이다. 지난달에는 주지훈과 윤은혜 주연의 드라마 ‘궁’을 토대로 한 뮤지컬 ‘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공연됐다. K팝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그룹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의 지난해 뮤지컬 데뷔작이었던 ‘궁’은 올해 또 다른 한류 스타인 김규종(SS501 멤버)을 캐스팅해 해외 공연에 나섰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주연 한예슬, 오지호의 통통 튀는 캐릭터가 강점이었던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도 뮤지컬로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다. 내년에도 드라마컬의 강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기야, 가자’ 등의 명대사를 쏟아낸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송승헌과 김태희가 주연으로 나선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도 내년 3월 뮤지컬로 변신해 관객과 만난다. 시청률 50%를 넘기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빵왕 김탁구’도 무언극 창작 뮤지컬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렇듯 드라마컬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컬 ‘모비딕’ 등을 연출한 조용신 대중문화평론가는 24일 “뮤지컬은 동시대성, 특히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한다.”면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예전에는 시와 소설, 영화였다면 지금은 드라마”라고 지적했다. 드라마가 ‘킬러 콘텐츠’로 부상하면서 뮤지컬계도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조 평론가는 “지난 10년 동안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이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드라마가 한류 열풍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원작 콘텐츠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미 검증된 콘텐츠라는 점도 ‘무비컬’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겨울연가’ 내년 3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 하람홀. 전석 5만원. (02)2274-2121. ●‘막돼먹은 영애씨’ 11월 18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4만~6만원. (02)3415-6789.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열린세상] 가진 자들의 사회적 겸손/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가진 자들의 사회적 겸손/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월가의 탐욕과 부패,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미국인들의 시위가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하고 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미국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극심한 불황 국면을 맞이하면서 서민 생활의 고통스러운 체험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대학을 나오고 열심히 일해도 집세도 제대로 못 낼 지경이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취업을 못했거나 실직자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장기 실직이나 만성적인 저소득 문제가 따지고 보니 가진 자들, 있는 자들이 끼리끼리 작당하여 부당하게 더 가져가기 때문이라는 시민적 자각이 대규모 시위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위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960년대 시민인권운동처럼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미국 사례에 자극을 받은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고 한다. 모방 시위가 얼마나 실익을 거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경제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더 이상 방치·지연할 경우 사회적 폭발로 이어져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물 수 있다. 특히 돈과 권력, 명예를 거머쥔 우리 사회 파워엘리트들의 이기주의 그리고 경제·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무감각과 도덕적 해이가 우려를 넘어 언제 사회적 분노를 자아낼지 모른다. 구체적인 통계치가 없어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자못 심각하다. 살던 집을 팔고 전셋집을 줄여가면서도 빚은 빚대로 남아 있는 가정이 부쩍 늘고 있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그나마 일감이 없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급속히 늘어난 가정 해체로 인한 소년소녀가장과 밥 굶는 아이들도 정부와 사회단체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받는다 해도 여전히 방치상태나 다름없다. 대학에 있어 보면 청년 실업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하고서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전전하는 졸업생을 안쓰럽고 미안해서 못 볼 지경이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비참한 생활은 가진 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도 나름대로 바쁘고 긴장 속에 산다. 대기업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정부나 공적 조직, 언론, 대학 등에서 일하는 엘리트들은 권력과 명예, 돈을 놓고 이전보다 더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또 각자 소속된 집단을 위해 다른 엘리트 집단과 이해 다툼을 벌이고 때로는 끼리끼리 부와 권력을 나눠 갖기도 한다. 특히 지금 파워 엘리트 집단이 된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도 개인 출세주의와 가족 이기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1980년대 이후 경제 성장기에 엘리트 집단에 편입되고 경쟁적인 출세 가도를 달렸던 탓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적지 않은 지도층 인사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위장 취업, 부동산 투기, 탈세, 표절 등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청렴한 공직자, 윤리적인 경영인이 인간 문화재처럼 보이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자기 이해관계에 충실한 가진 자들은 진실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를 배려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복지예산을 늘린다고 하지만 흉내내기 수준이고, 언제나 대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통한 국가 경제 살리기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환율을 올려 기업의 수출실적이 좋아지고 경제성장은 높아지지만 실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그 영역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상대적인 불평등과 소외감은 깊어만 간다. 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더 가지게 되고, 더 있게 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의 결과일 수만 없다. 일정 부분 타인의 노력, 나아가 사회가 베풀어 준 은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진 자, 있는 자는 사회에 대해 감사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집안이 잘되고 화목하려면 더 많이 교육받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이 더 어려운 가족을 챙겨야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양극화 위기는 가진 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소외된 시민들의 항거가 있기 전에 가진 자들의 나눔 운동이 선행되기를 기대한다.
  • 中CCTV, 톈궁1호 동영상에 美 찬양곡 삽입 ‘망신’

    중국인의 큰 잔치에 라이벌인 미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삽입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되고있다. 중국 관영 중앙(CC)TV는 중국 최초의 소형 우주정거장 톈궁(天宮)1호의 발사를 기념해 제작한 애니메이션 동영상에 배경음악으로 미국인들의 대표적 애창곡인 ‘아메리카 더 뷰티풀(America the Beautiful’을 삽입해 망신을 당했다. 중국 관영 중앙TV가 자체 제작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방영한 이 동영상의 배경음악에는 심지어 “미국! 미국! 신이 은혜를 가득 내리시네”라는 구절도 포함돼 있어 이를 발견한 중국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의 한 사용자는 “당시 미국 친구들과 함께 톈궁1호 발사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아메리카 더 뷰티풀 노래가 나오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중국인들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는 글을 올렸다. CCTV의 황당한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공군 훈련을 보도하면서 해당 영상으로 할리우드 영화인 ‘탑 건(Top Gun)’의 일부 장면을 내보냈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몇 년 전부터 차(茶)를 좋아하는 몇몇 차인(茶人)들이 중국의 남쪽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 꼭 가보라고 했다.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5대 명산(名山) 중의 하나이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무이암차(武夷岩茶)와 서양 홍차(紅茶)의 발원지라는 것이었다. 중국차의 근원을 알고 즐기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차의 원산지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통치철학으로, 퇴계나 율곡에 의해 크게 발전했던 성리학의 뿌리인 주자학(朱子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자 주희(朱熹) 선생이 태어나서 학문을 닦고 대성(大成)한 뒤 세상을 떠나 묻혀 있는 유적지로 그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차인들 권유에 마음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되뇌이고 있을 때, 마침 관심을 가진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적지 않아 동호인의 단체여행으로 현장에 가게 됐다. 국내 여행사들은 아직 무이산을 관광상품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가 워낙 많은데다 무이산은 주로 차(茶)와 주자학 관계의 일부 전문답사팀으로 한정되어 있는 실정에서 그런 듯싶었다. 무이산은 중국이라는 규모로 볼 때 아주 작은 시골이다. 인구는 21만 명. 서울에서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고, 대만의 바로 건너편인 복건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으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내륙 쪽으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비행기가 밤중에 도착해서 그런지 그저 그런 중국의 시골 비행장이었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도 어둡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차 관계 일로 무이산에 자주 왔다는 어떤 차인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 10주년과 이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차박람회가 전 세계 차인들의 주목을 끌면서 무이산은 구시가지·신시가지로 나뉘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밝은 날에 보는 무이산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국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대만·홍콩 등에서 온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무이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산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과 내려와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대나무 뗏목으로 흘러 내려오는 정취이다.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주저했으나 이곳에는 비오는 날이 많고, 비오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이 더 운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강행했다. 무이산은 해발 750m밖에 안 되지만 전체가 큰 바윗덩이 하나처럼 보였다. 정상인 천유봉까지는 바위를 깎아 848개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개 때문에 멀리 앞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돌 계단을 숨차게 오르며 잠시 잠시 둘러보는 풍광은 신비로운 선경(仙境)이었다. 아래는 산을 휘감고 흐르는 구곡(九曲)의 강이고, 강위에 점점이 흘러내리는 대나무 뗏목, 산능선을 오르는 돌계단 앞뒤로는 안개에 싸인 바윗덩이와 소나무들, 직벽을 타고 내리는 가느다란 폭포줄기가 멋졌다. 이래서 중국의 5대 명산에 들어간 것일까. 중국의 5대 명산은 안휘성의 황산, 산동성의 태산, 강서성의 노산, 사천성의 아미산 그리고 복건성의 무이산이다. 황산의 기이함, 태산의 웅장함, 화산의 험준함, 계림의 수려함을 찬탄하는데 무이산은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이곳에서는 자랑한다. 걸어서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마꾼들이 산 밑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400위안(한국 돈 7만 원)을 내라고 한다. 앞뒤로 두 사람이 둘러메는 가마로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편한데, 가마 타는 값이 좀 비쌌다. 한참 전이지만 안휘성의 황상에서는 100위안(한국 돈 1만8천 원) 했었고, 보통 200위안이면 될 듯싶지만 중국에도 인건비가 계속 올라간 느낌이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들을 찍고 나면 다음은 뗏목을 타는 순서다. 굵은 대나무를 통째로 엮어 만든 뗏목 위에는 두 줄로 셋씩 여섯 개의 대나무 의자가 마련됐다. 앞뒤로 사공이 둘, 긴 대나무 막대기로 방향을 잡아가며 흘러간다. 여자 사공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장엄한 바위산 밑으로 푸르게 흐르는 무이구곡을 대나무 뗏목 위 의자에 앉아 유유히 내려오며 맑은 바람이 머무는 바위 사이사이마다 차나무가 자라는 풍취에 잠겨 보라”고 차인들은 말했다. 앞과 뒤의 중국인 사공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로 쉬지 않고 주변 풍물을 설명하고 있고, 그와 상관없이 관광객들은 저마다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현재 300여 개의 대나무 뗏목이 운용된다고 하며, 하류쯤에 도착한 뗏목은 자동차에 실려 상류로 옮겨진다. 이 무이계곡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불교·유교·도교가 성행했다고 하며 송(宋)·원(元) 시대 때부터 이곳에서 나는 차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무이산은 기후와 풍토관계도 있겠지만 차나무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차나무의 품종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여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 4대 명차(名茶)로 대홍포·철라한·수금귀·백계관이 꼽히고 4대 명차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흔하게 팔리는 차로 육계가 있다. 차 전문가가 아닌 보통 관광객으로서는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고, 그곳에서 제일로 치는 대홍포(大紅袍)도 여러 층이 있는 듯했다. 무이암차의 대표 브랜드가 대홍포이고, 누구나 대홍포를 찾기 때문에 저마다 대홍포라고 내놓는 것 같았다. 가는 데마다 시음을 시키는데 그게 그것 같을 뿐, 맛을 보고 구분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차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만 자탄하며 다녔다. 대홍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문인이 과거를 보러 상경하다가 무이산 천심사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때 천심사의 승려들이 이를 발견하고 구룡(九龍) 암벽에서 찻잎을 따와 차를 달여 한 잔 주었다. 그것을 마시자마자 온몸이 가뿐해지고 아픈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렇게 해서 그 문인은 무사히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할 수 있었다. 그는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천심사에 다시 갔고, 그때 마시던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똑같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궁중의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문인은 마침 천심사에서 가지고 온 차를 황제에게 바쳤다. 그것을 달여 마시자 황제도 씻은 듯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다시 천심사를 찾은 문인은 자신이 걸쳤던 홍포를 차나무에 덮어 주었고, 그 홍포를 벗기는 순간 차나무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무이산에는 대홍포의 모수(母樹)가 여섯 그루나 있어서 모두 소중하게 가꾸고 있고, 그 모수를 보려는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이산에는 장예모 감독이 제작·연출한 <대홍포 산수실경 쇼>가 근래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야외극장으로 관객이 앉아 있는 자리가 360도 돌아가면서 200여 명 이상이 출연하는 대규모 쇼가 펼쳐진다. 레이저빔과 조명으로 무이산의 우람한 실경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강가 숲으로 말이 달리는가 하면 한쪽의 거대한 무대에서는 무이암차에 얽힌 전설과 남송(南宋)시대의 화려한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80분 동안 관객의 자리가 두 번 360도 돌아가며 자연경관과 화려한 무대를 앉아서 돌아가며 즐기게 하는 착상이 놀라웠다. 인구 21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 소도시에서 비싼 입장료(한 사람 218위안(한국 돈 4만 원))에도 불구하고 연일 객석을 꽉 채운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중국이니까 되는 중국적인 것일까. 차산업과 무이산 관광이 나날이 발전해가는 것에 비해 주자학의 주희(朱熹) 선생 유적지 관리에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주희 선생의 묘소와 그 어머니 묘소는 작은 자갈돌을 모아 쌓은 봉분으로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풀이 나지 않는 묘역이니까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외양은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주희 선생이 살았다는 주자고거(朱子故居), 무이산 자연공원 초입에 세워진 무이정사(武夷精舍)는 건물이나마 유지되고 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고, 관리도 썰렁했다. 말년에 강학을 했다는 고정서원은 거의 버려진 것과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에 수학했다는 병산서원, 홍현서원을 비롯한 유적지는 겉모양만 보일 뿐 주희 선생을 기리며 관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주자 주희 선생의 32대손인 주덕화(朱德和) 평화사 대표 내외분이 조상의 유적지를 찾은 남다른 감회와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소홀한 관리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의 신안(新安) 주(朱)씨는 주희 선생의 후손으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원(元)나라를 세우고 주자학을 배척하는 바람에 고려 때 한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주희 선생 묘소 근처에는 한국의 신안 주씨 중앙종친회에서 참배하고, 적지 않은 돈을 기증했다는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글·사진_ 김용원
  • [부고]

    ●윤영대(한국조폐공사 사장)씨 모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5시 (02)3410-6916 ●박희인(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씨 별세 수범(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문경(한양여대 교수)씨 부친상 안정호(강남대 교수)씨 장인상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2227-7556 ●문성규(연합뉴스 사회부 차장)성찬(남광토건 과장)씨 부친상 장지애(영남대 외래교수)홍성민(남대구초 교사)씨 시부상 석순채(사업)씨 장인상 14일 경북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53)200-6149 ●윤철호(전남대 생명과학기술부 교수)영선(은혜한의원 원장)선진(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씨 부친상 조성태(아카데미한의원 원장)이경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씨 장인상 서재화(극단 손수 대표)씨 시부상 1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50 ●김두춘(전 지로관리소장)씨 부인상 세영(전 우리은행 지점장)세준(성진유통 대표)세윤(강릉원주대 교수)씨 모친상 김상래(한국전자인증 부사장)씨 장모상 1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2258-5967 ●김종현(미래에셋생명보험 지점장)씨 부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3010-2263 ●김기수(내일신문 기자)씨 부친상 신상욱(교학사 전무)씨 장인상 14일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2072-201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1)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1)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여 완성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여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를 사랑하고 모두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사랑하여 모두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은 한신, 여포와 같이 용맹스러운 자도 사랑하고, 빌어먹는 거지와 같이 비겁한 자도 또한 사랑한다는 것이다.”(‘격치고’) 생명의 세계에는 시비도 선악도, 적도 친구도 없다. 차별 없는 생명에 대한 차별 없는 애정. 그것이 이제마가 평생 지키려 했던 무사의 마음이요, 의사의 마음이었다. 이제마(李濟馬, 1837~1900)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사상의학이란 인간의 체질을 사상(四象), 즉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성격, 관계방식, 병증, 치료법을 설명하는 의학을 말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이제마는 태양인이다. 태양인은 신체가 건장하고 가슴이 특히 발달했으며, 사고력이 뛰어나고, 진취적이고, 사교적이다. 실제로 이제마는 낯선 사람과도 금세 말을 섞을 정도로 친화력이 있었으며, 무사답게 일처리에도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음식을 제대로 못 넘기고 계속 토하는 열격반위증(?膈反胃證)에 시달렸는가 하면, 일찍부터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가 무사의 신분으로 의학서를 저술하게 된 데는 아마 이런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제마(濟馬)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온 말을 선물 받는 조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서자 신분인 이제마가 적자가 된 것도 이 꿈 덕분이다. 예지몽이었던 걸까? 이제마는 ‘물을 건너는 말’처럼 무사와 의사, 유학과 의학, 몸과 마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목적 삶을 살았다. ●의사의 마음을 가진 무사 이제마는 함흥 출신으로,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다. 조부와 부친을 일찍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던 이제마는 10대 후반부터 20여년간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이 시기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동무유고’(東武遺稿)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글들로 추측하건대, 서구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는 현실과 민중의 곤궁한 삶을 목도하고 여기서 느끼는 바가 있었던 듯하다. “대화포(大火砲)라는 것이 있는데 한번 발사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듯 벽력 같은 소리가 울리며, 맞으면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다. (중략) 화룡선(火龍船)은 거대하고 넓어서 그것과 비교할 만한 배가 없다. 배를 운행하는 방법은 연통을 노로 삼고 연통 밑에 석탄을 쌓은 다음 석탄에 불을 붙여 연통으로 연기가 나오게 해서 하루에 천여 리를 갈 수 있다.”(‘동무유고’) 서구 열강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 이제마가 느낀 놀라움과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는 대포·전신·화룡선 등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제국에 대항하려면 힘을 기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병술을 익혀야 한다는 주장이나, 후당총을 보유한 10만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위태로운 조선의 현실을 목격한 이제마는 마침내 긴 방황을 접고 무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호를 ‘동무’(東武-동방의 무사)로 짓고, 무관으로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무관으로서의 삶은 그를 무사가 아닌 의사로 살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잦은 전염병의 창궐로 수십만명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에 직면하여 병자에게 직접 약을 처방하는 한편, 병인과 발병 조건, 치료법 등을 알기 위해 그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길 위에서 ‘격치고’와 ‘동의수세보원’이 배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부인의 병사(病死)는 그의 의학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열병을 앓는 부인에게 의원이 관행적으로 열을 내리는 치료를 했는데, 부인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만다. 이제마는 이 사건으로, 사람의 병증은 체질에 따라 다르므로 그 치료법 역시 체질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자신의 가설을 확신하게 된다. 일찍부터 내면화된 성리학적 사유에, 무관으로서 민중의 병을 관찰한 임상경험, 그리고 자신의 병과 부인의 병사 경험이 더해져 완성된 텍스트가 13년(1880~1893)에 걸쳐 쓴 역작 ‘격치고’다.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격물치지, ‘격치고’ ‘격치고’(格致藁)에서 ‘격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약자로, 이는 세계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성리학의 근본적인 공부 방법이다. 이제마는 인간의 병을 격물치지의 대상으로 삼아 ‘격치고’에서 사상의학의 기본구도를 구상하게 된다. ‘격치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삶의 원칙을 밝히기 위한 ‘유략편’(儒略篇), 삶의 기준점을 회복하기 위한 ‘반성잠’(反誠箴), 수양을 위한 지침인 ‘독행편’(獨行篇) 등이다. 이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격치고’는 본격 의학서라기보다 성리학적 사유에 몸의 생리에 대한 사고를 접목시킨 의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사상의학의 논리는 맹자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맹자는 사단(四端)을 통해 인간 본성의 선함을 논하고, 사단을 확충하는 수양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학문의 과제로 삼았다. 이제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각각 태양, 소양, 태음, 소음에 연결시키고, 인의예지가 사욕(私慾)에 가려지듯이 타고난 체질의 장점이 사심(私心) 때문에 치우치게 된다고 보았다. 즉, 각각의 체질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인의예지를 구현하게 되지만, 사심이 개입되면 탐비라박(貪鄙懶薄)으로 변질되어 욕심과 안일과 방종과 사사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예컨대, 태양인은 기질적으로 포용력이 있고 은혜를 잘 베풀지만, 사심이 생기면 계산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이해타산적 인간이 된다. 이런 불균형 상태를 치유하고 본래 체질의 장점을 발휘하려면 태음인의 기질인 의로움을 본받아 마음을 수양해야 한다. 병이란 체질과 마음이 치우친 상태이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치료라는 것. 이것이 이제마가 인간을 격치함으로써 도달한 결론이었다. ●세상을 보존하는 의사가 되어라 이제마는 ‘격치고’를 완성한 지 1년 만에 ‘동의수세보원’을 완성함으로써 사상의학을 체계화시킨다. 이 책은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광제설(廣濟說),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는 구체적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처방과 병증 분석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비대신소(脾大腎小)한 소양인은 일을 잘 벌이고 행동과 대처가 빠르지만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간대폐소(肝大肺小)한 태음인은 일을 쉽게 벌이지는 않지만 맡은 일을 책임 있게 완수해낸다. 이처럼 모든 체질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른 체질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병을 파악하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마음수양이고, 이를 통해 모든 체질의 장점을 두루 갖춘 ‘성인’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병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기고, 따라서 관계를 통해서만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핵심이다. 모든 병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 이제마는 약을 처방할 때도 약재, 음식과 함께 마음수양법을 자세히 적어주었다. 이제마에게 치료란 사회적 관계 맺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치료’였던 셈이다. “백 집이 있는 마을에 한 사람의 의원만으로는 사람을 살리기에 부족할 것이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펴고 밝힘으로써 집집마다 의술을 알고 사람마다 병을 알게 된 뒤에야 수(壽)를 누리고 원(元)을 보전하게 될 것이다.”(‘동의수세보원’)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수세보원’이란‘세상과 삶을 위해 보존해야 할 원칙’이라는 뜻이다. 이제마에게 그 원칙은 타인을 통한 배움이었다. 이제마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자신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병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병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거든, 먼저 내 몸에 새겨진 관계의 흔적을,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보라.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라. 그것이‘나 자신의 의사’가 되기 위한 시작이다. 무사 이제마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그리고 세상을 지키는 의사가 되었다. 박장금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문화·문서선교 새 장 연 ‘한 알의 밀알’

    문화·문서선교 새 장 연 ‘한 알의 밀알’

    “설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집스럽게 마이크 앞에 섰던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2일 오전 8시 40분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65세. 고인은 전날 새벽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엄숙한 설교의 틀을 깨고 팝, 패션쇼, 심지어 댄스까지 끌어들이며 ‘열린 선교’ ‘문화 선교’ 개념을 도입한 그는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치 목사’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이 대통령 조화… 각계 조문 줄이어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본당 두란노홀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화를 보냈다. 생전의 폭넓은 인맥이 말해주듯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 종교계 인사들은 물론 배우 엄지원 등 연예인, 기업인, 스포츠 스타들의 발길도 줄을 이었다. 고인은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건국대와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0년 개신교 출판사 두란노서원을 설립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닉 부이치치의 ‘허그’ 등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던 베스트셀러가 여기서 나왔다. 고인의 이름 앞에 ‘문서 선교’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85년, 서울 한남동 한국기독교선교원에서 12 가정을 모아 놓고 기도를 올렸다. 오늘날 교인 수만 7만 5000명에 이르는 온누리교회의 시작이었다. ‘온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이름처럼 고인은 해외 선교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러브 소나타’이다. 2007년 일본에서 한류와 선교를 결합시킨 ‘문화 선교’를 시도한 것이다. ●교회 변질 질타… 대선때 MB 지지 논란 2003년에는 비전 ‘29장’(Acts29)을 발표했다. 28장으로 끝나는 사도행전의 다음 장을 온누리교회가 앞장서 실천하자는 의미였다.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개혁이란 결국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10년 이상 믿으면 변질되고 교회도 10년이 넘으면 비뚤어진다. 성경으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며 한국 교회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며 이명박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논란의 복판에 서기도 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동… 간암 투병 왕성한 행보와 달리 그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었다. 대학 때 폐결핵을 앓은 것을 시작으로 늘 병을 달고 다녔다. 1980년대 간암 판정을 받고 소천하기 전까지 암 수술만 일곱 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나빠 일을 못한 적이 없다. 다만 한계와 분수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까불지 않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 5월 17일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글도 “바쁘다는 것과 피곤하다는 것은 다르다. 의무적으로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에는 바쁘지 않더라도 피곤할 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글 화제 유족으로는 부인 이형기씨와 1남 1녀가 있다. 발인예배는 4일 오전 9시 서빙고 본당에서 열린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김지철 소망교회 담임목사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 측은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조화와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장지는 강원 원주시 문막읍 온누리동산이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TV 비평] 아이돌이 연기돌로

    [TV 비평] 아이돌이 연기돌로

    한때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안방극장의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각종 선입견에 시달렸지만, 요즘은 중요한 연기자 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안방극장을 점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20대 배우 기근 현상에 기인한다. 미니시리즈의 경우 20대 연기자의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만, 작품 수요에 비해 배우 공급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남자 스타들이 잇따라 군에 입대하면서 이들의 희소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가수 출신 연기자들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경우 국내 고정 팬은 물론 해외 한류 팬까지 겨냥할 수 있고, 해외 투자 및 판매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김영섭 SBS 책임 프로듀서(CP)는 “신인 연기자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스타성을 갖춘 가수 출신 연기자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들은 조연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유이는 오는 6일 첫 방송이 나가는 KBS 주말 연속극 ‘오작교 형제들’과 8일 첫 방송되는 tvN 드라마 ‘버디버디’에 주연으로 동시 출연한다. SBS 새 수·목극 ‘보스를 지켜라’에 출연하는 그룹 JYJ의 김재중도 첫 미니시리즈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지성·최강희와 나란히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MBC 수·목극 ‘넌 내게 반했어’에 출연 중인 그룹 씨엔블루의 정용화도 두 번째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이는 멀티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연예기획사의 전략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데뷔 전부터 이미 연기 훈련을 받고 나오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다. 게다가 연예기획사에서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면서 가수들의 출연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MBC 월·화극 ‘계백’과 영화 ‘기생령’에 동시 출연하는 걸그룹 티아라의 효민이 대표적이다. 성유리, 정려원, 윤은혜 등 가수 출신 연기자 1세대들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배우로 자리잡으면서 시청자들의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의 경우 수명이 짧기 때문에 결국은 연기자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고,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예능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에 대한 대중의 편견이나 거부감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가수를 연기자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것은 가요계에도 큰 손실”이라면서 “연기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도만 앞세워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급으로 무임승차하는 것은 한 우물만 파는 신인 연기자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25 전쟁 발발 61주년을 앞두고 미국에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회(회장 최정범)와 경기 용인의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는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연방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감사보은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행사에는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해 찰스 랭글, 에드 로이스, 에니 팔레오마베가 등 지한파로 알려진 연방 하원의원들이 참석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의원 등도 기념 메시지를 보냈다. 초청된 6·25 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명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위한 묵념과 기념식에 이어 감사 메시지 영상을 지켜본 뒤 한국 전통음악과 고전무용을 감상하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기념선물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윤순구 워싱턴총영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결코 여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행사가 한·미 간 아름다운 우정의 역사를 기념하고 밝은 미래를 여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랭글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한 뒤 “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생존자뿐 아니라 전사자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50~100명의 참전 미국인을 한국에 초청해 온 소 목사는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은혜도 갚고 미래 한·미동맹 강화에도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행사 후 인근 보훈병원을 찾아 참전용사들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버지니아주 한인회(회장 홍일송)와 한·미교류협회도 24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참전용사 700여명을 초청해 워싱턴DC 한국전 기념공원 등에서 감사 행사와 기념식을 갖는다. 또 워싱턴문화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국기원은 오는 25일 버지니아에서 6·25 전쟁 61주년을 되새기는 태권도 시범 공연을 열 예정이다. 주미대사관도 24일 한국 기념공원에서 한 대사와 유엔 13개 참전국 소속 국방무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부고]

    ●박대준(사업)영준(경기공연영상위원회 팀장)씨 부친상 손광채(코스콤 경영지원부 부장)씨 장인상 15일 일산 백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31)910-7444 ●박병오(전 창진상운 대표이사)씨 부인상 선남(전 대한항공)길남(자영업)경남(〃)창남(전 나브텍코리아 상무)씨 모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8 ●김형섭(김형섭회계사무소 대표)씨 별세 인곤(전 중앙일보 기자)의곤(인하대 사회과학대학장)씨 부친상 10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2258-5953 ●장봉순(태국교민잡지 발행인)요순(OCI상사 부장)소영(장이미지 대표)씨 모친상 안광남(한국품질재단 선임심사위원)씨 장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3010-2236 ●김주영(라비돌 전무이사)씨 부인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7 ●전권(전 은혜초 교장)씨 별세 원상(삼성서울병원 과장)후남(서울 신내초 교사)두남(서울 중평초 〃)씨 부친상 김종욱(전 삼성전자 천진법인장)문중근(서울 상봉초 교장)씨 장인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5 ●김철운(현대제철 포항공장 총무팀 차장)씨 조모상 15일 대구전문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9시 30분 (053)965-7103 ●임순택(한국세정신문사 취재부 차장)씨 장인상 15일 서울보훈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10-3912-7177 ●김수성(동국대병원 흉부외과 주임교수) 김종화(MBC 심의실 부국장)씨 장모상 15일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2227-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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