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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우리 가게는 현금 안 받습니다”… 돈 있어도 햄버거를 못 먹었다

    [단독] “우리 가게는 현금 안 받습니다”… 돈 있어도 햄버거를 못 먹었다

    숙소 편의점서 현금 냈더니 “잔돈 없으니 카드로 해달라” 축의금도 모바일 계좌이체… “변화하지 않는 금융사 도태” 지난달 21일 스톡홀름 중앙역 부근에서 만난 안더스 애드룬드(42)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20크로나(약 28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줬다. 스웨덴 노데아은행에서 일하는 그는 “혹시 필요할지 몰라 갖고 다니지만 몇 달간 현금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이 옷에서 저 옷으로 옮기기만 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는 스웨덴을 취재하기 위해 알란다 공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시내로 가는 버스표 자동판매기였다. 공항 안에 현금 결제가 가능한 창구가 있었지만 공항 안팎 여기저기에 놓인 자동판매기가 눈에 더 띄었다. 자동판매기에는 현금 투입구가 없었고 카드 결제만 가능했다. 숙소 인근 편의점에서 물건값을 현금으로 계산하려 했을 때는 “잔돈이 없으니 카드로 계산해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금도 받긴 하지만 현금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스웨덴은 현금이 없어도 아무 불편이 없지만 카드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사회로 변하고 있었다. 무인주차장 요금은 카드로만 계산할 수 있었고, 유료 공중화장실에도 카드결제기가 부착돼 있었다. 스톡홀름 시내의 스웨덴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스’에는 카드 결제만 가능한 셀프 주문 기계들이 가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보다 기계로 주문하면 음식이 좀더 빨리 나왔다. 버스, 전차, 지하철 등 스웨덴 대중교통 수단들은 현금을 받지 않은 지 오래다. 미리 충전된 교통카드만 사용 가능하다. 일반 상점들 역시 현금을 받지 않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현금 없는 가게’라고 출입문에 적어 놓은 상점과 마주쳤다. 1661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이 이제는 가장 빨리 현금을 퇴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스웨덴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요한 비에르크만(40)은 “한국처럼 스웨덴도 결혼식 축하 선물을 돈으로 하는 문화가 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모바일 계좌이체 등으로 한다”고 전했다. 현금 거래가 줄면 화폐 제조비 등 관리 비용이 줄어든다. 절도, 탈세, 뇌물 등 관련 범죄가 줄고 지하경제도 일정 부분 양성화시킨다. 물론 사이버 범죄 증가 등 부작용도 따른다. 현금 없는 사회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금융 서비스와 정부 규제 등에도 많은 변화를 야기한다. 레이프 트루겐 스웨덴은행연합회 재정인프라부장은 “스웨덴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보다 편리한 생활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면서 “은행이 고객에게 현금 없는 거래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먼저 원해 은행이 뒤따라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은행원들이 현금 강도를 걱정할 시간에 상품을 고민하다 보니 금융 서비스의 질도 더 나아졌다”며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금융사는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스톡홀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사설] 웃음 강요하다 구류 받은 갑질 고객

    은행원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행패를 부린 30대 남성이 구류를 선고받았다. 즉결심판에서 이런 처분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은행 창구에서 이 남성은 막무가내식 횡포를 부렸다. 여직원에게 서비스직이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며 일할 때는 웃으라고 강요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현금 5000만원을 올려놓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직접 돈을 세어 보라고 강요했다. 이런 가당찮은 갑질로 1시간 넘게 은행 직원을 못살게 굴었다. 세상의 누구도 타인에게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서비스직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감정까지 마음대로 좌지우지해도 된다는 발상은 몰지각하기 짝이 없다. 이번 판결에는 여러 모로 새겨볼 만한 의미가 있다. 서비스 종사자의 인격을 함부로 대하는 상식 밖의 갑질을 일삼다가는 법의 따끔한 회초리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서비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산업이 발달하고 서비스업이 증가하면서 감정노동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1770만여명의 국내 임금 근로자 가운데 최소 560만명이 감정노동 종사자로 파악된다. 전체 근로자 열 명 중 세 명꼴이다. 많게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쯤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데도 이들의 스트레스 강도는 극심하다. 서비스 종사자라는 이유로 감정적 학대를 견뎌야 한다는 호소가 심각한 수준이다. 2013년 노동환경연구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히 여성 감정노동자의 약 절반이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약 30%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감정노동 피해는 건성으로 넘어갈 수 없는 사회문제다. 지난달 감정노동자의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다. 이런 법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고통받는 감정노동자가 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언어폭력이나 일방적인 갑질을 거절하거나 법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덮어놓고 고객이 최고라는 인식은 후진사회에서나 통한다. 사업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고객이 왕일 수는 없다. 기업 스스로 직원들의 감정을 소중한 노동자원으로 인식하고 몰지각한 고객의 횡포에는 선을 긋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도적 보상보다 예방 노력이 몇 배 절실한 문제다.
  • [오늘의 눈] ‘시한부 상품 3총사’의 운명은…/이유미 금융부 기자

    [오늘의 눈] ‘시한부 상품 3총사’의 운명은…/이유미 금융부 기자

    A은행 지점장은 최근 영업점 주변 동사무소를 방문해 신탁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10좌를 신규로 유치해 왔다. 가입 금액은 모두 3000원짜리 ‘깡통 계좌’다. 이달 11일부터 시중은행에서 처음으로 판매를 시작한 일임형 ISA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 가입 금액 기준’만 간신히 채운 1만원(정기예금)짜리 계좌가 수두룩하다. 실적 압박에 일단 ISA 계좌 수부터 늘리고 보자는 ‘좌수 경쟁’에 매몰해서다. ‘서민의 재산 불리기를 돕겠다’던 당초 취지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한 시중은행원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는 상품은 은행들이 ‘성적표’(실적)를 잘 받아야 ‘밉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줄 세우기식 실적 압박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늘 그래 왔듯이) 3개월 정도만 반짝하고 곧 사그라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올해 2월 말부터 도입된 계좌이동제(3단계)도 이미 한발 앞서 비슷한 수순을 밟아 가고 있다. 이 제도는 온·오프라인에서 ‘클릭’ 한 번만으로 간편하게 주거래 계좌를 갈아탈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은행 선택권을 강화하면 은행들은 ‘집토끼(기존 고객) 사수’를 위해 서비스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 이는 곧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당초 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의 취지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행원 1인당 계좌이동제 신규 100~120좌 할당이 떨어졌다는 소문과 함께 ‘행원 쥐어짜기’ 논란이 불거졌다. 제도 시행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계좌이동제를 문의하거나 신청하는 고객 발길도 뚝 끊겼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ISA와 계좌이동제, 기술금융을 ‘시한부 상품 3총사’라고 부른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개혁의 ‘마중물’이라 치켜세우던 이들 상품도 현 정권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다. 정부나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퍽 섭섭할 수도 있는 얘기다. 하지만 그만큼 설득력도 있다. ISA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영국과 선진국에서 벤치마킹한 이 상품은 출범 당시부터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우리의 법과 규제에 끼워 맞추다 보니 세제 혜택(5년간 총 이자 소득의 200만원까지 비과세)이나 가입 연령 등 ‘문턱’이 높아져서다. 고객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품은 아무리 은행원을 쥐어짜도 생명력이 짧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 프레임’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ISA, 계좌이동제, 기술금융 등 3총사가 용도 폐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들 상품이 박근혜 정부의 대표 치적 상품이어서다. 실제 앞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 금융’이 현 정부 들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던 전례가 있다. 일종의 학습효과인 셈이다. 금융상품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인 당리당략을 덧씌우려 하는 정치금융의 폐해다. 물론 ‘시한부 상품 3총사’의 운명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 색깔 지우기’로 금융권이 그동안 치러야 했던 유무형의 비용은 산업계 전체로 볼 땐 분명 뼈아픈 대목이다. 20대 국회 출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번번이 금융의 발목을 잡아 오던 정치금융의 악습이 부디 새 국회에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의 수준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yium@seoul.co.kr
  • [데스크 시각] 20대 의원님들, 만능통장 가입하셨습니까/안미현 금융부장

    [데스크 시각] 20대 의원님들, 만능통장 가입하셨습니까/안미현 금융부장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열기가 시들하다. ‘가입 절벽’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ISA는 ‘꼭’ 성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100세 시대는 현실이고 노후 안전판은 부실하기 때문이다. ISA는 당장 목돈을 불려 주는 수단은 아니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묻어 놨다가 은퇴 세대는 노후 생활자금으로, 청장년 세대는 은퇴자금 마련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라는 성격이 짙다. 일정 기간 동안 돈을 찾아 쓰지 못하게 강제로 잠금 장치를 둔 것도, 나라에서 이 계좌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그래서다. ISA 하나로 빈약한 노후 인프라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가 이런 상품에 관심을 돌렸다는 것은 박수쳐 줄 일이다. ISA는 1년에 2000만원씩 5년 동안 최대 1억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예금이 됐든 펀드가 됐든 어떤 상품에 돈을 넣어 굴릴지는 가입자의 자유다. A은행장은 전액 저축은행 예·적금으로만 ISA를 구성했다. B증권사 사장은 전액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꾸렸다. 은행원과 증권맨의 특성이 묻어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마침 만기가 된 적금을 찾아 증권사의 ‘중위험’ ISA에 넣었다. 금융 논리대로라면 자신의 마이너스통장부터 막아야 했지만 흥행을 위해 기꺼이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녹록치 않은 형편임에도 목돈을 ISA에 넣었다. 두 금융당국 수장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C증권사 사장은 아직 ISA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딱히 마음 가는 상품이 없는 데다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서”라고 했다. ISA 현주소를 투영하는 대답이다. ‘안 들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 은행원이나 증권맨들이 강권하지 않아도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너도나도 하나씩은 가입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도 유인 동력이 약하다 보니 “그거 들어야 돼?”라고 묻는 사람들이 주위에 더 많다. ISA 탄생 과정을 생각하면 첫술에 욕심일 수도 있다. 금융위가 ISA를 처음 들고나왔을 때 기획재정부는 냉랭했다. 펑크 날 세수 걱정에 한사코 “가입 자격에 소득 제한을 두자”는 둥 어깃장을 놨다. 국회도 “부자 감세”라며 뜨악해했다. 재정을 전공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등의 ‘지원 사격’이 없었으면 더 초라하게 변형됐을 것이라는 게 임 위원장의 전언이다. 그렇더라도 ‘5년 200만원 수익’ 비과세는 너무했다. 소득세율이 15.4%이니 30만원 남짓이다. 이 돈을 아끼자고 5년간 돈이 묶이는 고통을 누가 선뜻 감내하겠는가. 국가에는 국민 노후를 일정 정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나랏돈으로 다 책임질 수 없으니 국민 개개인에게 혜택을 줘 가며 노후를 대비하라고 독려하는 것이다. 그러니 ISA 혜택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전 국민의 40%가 가입했다는 영국은 비과세 기한과 금액 제한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주부, 학생, 은퇴자는 가입 못하게 한 문턱도 없애야 한다. 우리보다 2년 먼저 ISA를 도입한 일본은 아예 주니어용 ISA까지 만들었다.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ISA 정비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기대를 걸어 볼 일이다. 그렇더라도 1차적으로는 세제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가 결단해야 한다. 유일호 장관은 재정을 전공한 경제학자다. 최상목 차관은 직전까지 청와대에서 ISA를 챙겼다. 전임 ‘최경환-주형환’ 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최종적으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ISA 취지를 이해한다면 국회가 오히려 앞장서 정부에 보완을 주문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판 ISA는 너무 짜다. hyun@seoul.co.kr
  • [경제 블로그] 은행원도 가입 꺼리는 일임형 ISA

    [경제 블로그] 은행원도 가입 꺼리는 일임형 ISA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11일부터 KB·신한·우리·기업 등 4개 은행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출시 직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은행과 증권사 간에 경쟁 구도가 형성돼 고객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은행권의 일임형 ISA를 두고는 우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불안요인이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입니다. 이들 은행의 일임형 ISA 전담 운용역은 각각 두 명에 불과합니다. 법에서 정한 최소 기준만 충족한 겁니다. A은행은 “차츰 전문 인력을 채용해 늘릴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상품 먼저 출시하고 인력은 추후 보강하겠다는 얘깁니다. 증권사의 경우 전문 인력이 많게는 수십명입니다. 일임형 ISA의 경쟁력은 모델 포트폴리오(MP)에서 결정됩니다. 고객의 투자 성향과 상품 위험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잘 꾸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지요. 이 MP는 전문 운용역의 역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판매 인력도 초라합니다. 일임형 ISA는 ‘펀드 투자권유 자문인력’,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문인력’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만 팔 수 있습니다.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은행마다 이 자격증을 보유한 행원 숫자가 전체의 30% 안팎입니다. 영업점 한 곳당 평균 1~3명 수준입니다. 은행들은 부랴부랴 행원들에게 자격증을 따라며 독려 중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도 일임형 ISA 판매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출시한 신탁형 ISA는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한 것과 대조됩니다. B은행은 “성적표가 신경 쓰여서”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다음달부터는 금융사별 ISA 수익률이 비교 공시될 예정입니다. 다른 금융사보다 수익률이 저조하게 나오면 고객들의 집단 민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습니다. “은행원들조차 일임형 ISA는 (가입을) 꺼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습니다. 증권사와 달리 은행들은 이제 막 일임업에 진출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뛰어든 이상 ‘구색 갖추기’에 만족하지 말고 증권사와 ‘진검승부’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과야 어떻든 도전하는 만큼 성장하게 마련이니깐요.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전교 1등’ 여고생, 서울대 대신 은행원 택한 이유는?

    ‘전교 1등’ 여고생, 서울대 대신 은행원 택한 이유는?

    서울대 진학 대신 은행 취업을 택한 여고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5일 T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대구 경덕여자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한 이지민 씨는 서울대 입학도 충분히 가능한 성적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 대신 은행 입사를 택했다.“백 원짜리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신입 행원’배지를 단 앳된 얼굴의 이씨는 “대학을 갔더라도 4년 후 은행원이 됐을 것”이라며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서 가야하나란 생각을 했다”고 당찬 소신을 밝혔다.학교 측은 “(이지민 씨가) 은행 고졸 입사를 결정할 당시 전교 1등 학생이 대학 진학을 않겠다는데 당황했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세운 이씨를 믿고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고객의 기억에 남는 은행원’을 최대 목표로 세웠다는 이씨는 “제 생각과 행동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정답이란 보장도 없다”며 “자기 주관이 확고하고 생각이 뚜렷하다면 그 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실제 이씨처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나서는 학생, 이른바 ‘대포생(대학 진학 포기 학생)’이 늘고 있다. 교육통계연구센터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전국 고교 졸업생 63만3539명 중 진학생은 47만7384명(75.4%)로 15만6155명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이를 2015년(61만5462명 중 43만5650명 진학, 70.8%)과 비교하면 ‘대포생’ 비율이 24.6%(2010년)에서 29.2%(2015년)로 약 4.6%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반면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고교 졸업 직후 취업한 학생은 3만4182명(2010년)에서 6만1370명(2015년)으로 약 4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태양의 후예 유아인, 송혜교와 상상 그 이상의 친분 ‘시청률 선물한 우정’

    태양의 후예 유아인, 송혜교와 상상 그 이상의 친분 ‘시청률 선물한 우정’

    배우 유아인이 카메오로 출연한 ‘태양의 후예’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경신했다. 6일 오후 방송한 KBS2 월화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배우 유아인이 원칙주의자 은행원 엄홍식으로 깜짝 등장했다. 이날 유아인은 대출 관련 은행원으로 등장해 대출 받으러 온 송혜교에게 “대출이 안 된다”고 칼같이 잘랐다. 이어 “그동안 해성병원 교수라 됐는데 지금은 창업군일 뿐이다. 사실상 무직인 거다”고 꼬집었다. 송혜교는 “내가 병원을 그만두면 대출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럼 난 어떡하냐”고 되물었고, 유아인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나. 다음 손님”이라며 무시했다. 유아인이 ‘태양의 후예’에 등장한 시간은 1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유아인은 같은 소속사 식구이기도 한 배우 송혜교와의 친분으로 지난해 12월 ‘태양의 후예’ 촬영에 임한 바 있다. ‘태양의 후예’ 유아인 출연으로 송혜교와의 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송혜교와 유아인의 소속사 UAA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 배우들 사랑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송혜교는 유아인의 품에 쏙 안겨 있다.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송혜교는 지난 9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 배우님 고마워. 밥 잘 먹었어요, 커피도”라는 글과 함게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흑백 사진 속에는 배우 유아인이 송혜교를 응원하기 위해 우정선물이 담겨있다. 유아인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장에 밥과 커피를 대접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유아인이 보낸 커피차 위에는 “태양의 후예 스태프분들, 모연~ 화이팅! 유아인 드림”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다. 이어 유아인은 지난 1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포토제닉. 드라마틱”이라는 글과 함께 흑백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차 안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송혜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처럼 친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온 유아인과 송혜교의 우정은 유아인의 ‘태양의 후예’ 카메오 출연으로 더욱 빛나게 됐다. 유아인의 깜짝 출연이 예고됐던 이날 ‘태양의 후예’ 13회 시청률은 전국 기준 33.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2회 방송분보다 0.5%포인트 상승한 수치이자,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유아인은 “송혜교의 생일 파티 때 선물을 못 줬다. 그래서 깜짝 생일선물로 ‘태양의 후예’ 카메오 출연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유아인은 ‘태양의 후예’ 최고 시청률을 송혜교의 생일선물로 안긴 셈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北核도 파나마 유령회사 통했다

    전 세계 유명 인사와 국가 지도자들의 조세 회피를 도운 의혹을 받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가 북한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페이퍼컴퍼니 설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현지시간) 전날 공개된 조세 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분석한 결과, 북한 평양 대동신용은행(DCB) 계열사인 DCB파이낸스가 모색 폰세카의 고객 명단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DCB와 DCB파이낸스는 북한의 무기 수출과 핵실험을 위해 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2013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모색 폰세카는 2006년 6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평양 측 인사들이 DCB파이낸스를 설립하도록 도왔다. 그해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모색 폰세카는 DCB파이낸스를 고객사로 관리하다가 2010년 버진아일랜드 금융조사국이 조사에 들어가자 관계를 단절했다. 모색 폰세카는 법정대리인을 통해 “2010년까지 DCB파이낸스가 북한 회사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2006년 10월 핵실험 이후 미 재무부는 북한 주요 무기상인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단천산업은행과 금융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DCB파이낸스와 모회사인 DCB를 2013년 특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 정권이 조세 회피처에 금융회사를 세우는 데는 북한에서 20년간 거주한 영국인 은행원 나이절 코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홍콩의 HSBC에서 일했던 코위는 1995년 북한으로 건너가 최초의 외자 은행인 DCB의 초대 행장에 취임했다. 2006년에는 DCB 중국 다롄지점 대표인 김철삼과 함께 공동으로 DCB파이낸스를 설립했다. 코위는 한국어와 중국어에 유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5년 7월에는 모색 폰세카를 통해 북한 정부와 관련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피닉스커머셜벤처스를 버진아일랜드에 세우기도 했다. 이 회사의 주주 명부에는 지도층의 가명으로 추정되는 ‘태영남’이라는 북한 국적의 인물이 올라와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유아인, ‘태양의 후예’ 피도 눈물도 없는 은행원 “송혜교 대출 안됩니다”

    유아인, ‘태양의 후예’ 피도 눈물도 없는 은행원 “송혜교 대출 안됩니다”

    배우 유아인이 ‘태양의 후예’에 특급 카메오로 출연했다. 6일 오후 방송한 KBS2 월화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배우 유아인이 원칙주의자 은행원 엄홍식으로 깜짝 등장했다. 이날 유아인은 대출 관련 은행원으로 등장해 대출 받으러 온 송혜교에게 “대출이 안 된다”고 칼같이 잘랐다. 이어 “그동안 해성병원 교수라 됐는데 지금은 창업군일 뿐이다. 사실상 무직인 거다”고 꼬집었다. 송혜교는 “내가 병원을 그만두면 대출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럼 난 어떡하냐”고 되물었고, 유아인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나. 다음 손님”이라며 무시했다. 유아인은 ‘태양의 후예’ 배우 송혜교 송중기와의 친분으로 특별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진=SBS ‘태양의 후예’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태양의 후예 12회 기록 또 깰까 ‘13회 유아인 등장’ 예고에 ‘기대 폭발’

    태양의 후예 12회 기록 또 깰까 ‘13회 유아인 등장’ 예고에 ‘기대 폭발’

    ▲ 태양의 후예 12회 송혜교 송중기‘태양의 후예’가 또 자체 시청률을 경신한 가운데 13회에 배우 유아인의 카메오 출연이 예고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1일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측은 “유아인이 13회에 카메오로 출연한다. 유아인은 극중 강모연(송혜교 분)과 호흡하는 은행원 역할로 출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칙주의자에 반듯하고 스마트한 은행원으로 드라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유아인은 ‘태양의 후예’ 주연배우 송중기, 송혜교와의 친분으로 카메오 촬영을 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지난 31일 방송된 ‘태양의 후예’ 12회는 시청률 33%(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며 또다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인스타그램, 태양의 후예 12회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美·유럽 은행원 170만명 칼바람 ‘핀테크 공포’

    실적 악화로 고전하는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인력 3명 중 1명 이상을 감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정보기술(IT)을 금융 업무에 접목한 ‘핀테크’의 발전으로 이들 시장이 잠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30일(현지시간) 108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핀테크에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향후 10년간 30%가 넘는 170만명 이상을 감원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3만명을 감원한 데 이어, 앞으로 10년간 30% 이상을 더 줄이면 실제로 인력은 정점 대비 40~45%가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대량 감원은 인터넷 거래의 활성화로 은행 지점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는 기술 발전의 영향도 있지만 은행들이 핀테크라는 경쟁자의 ‘공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더해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곰 같은 조직 문화 바꾸자”… 3대 승부수 띄운 이경섭 농협은행장

    “곰 같은 조직 문화 바꾸자”… 3대 승부수 띄운 이경섭 농협은행장

    농협은행은 흔히 ‘곰’에 비유된다. 우직하지만 둔하다는 의미가 혼재돼 있는 별칭이다.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후자의 부정적 이미지에 방점이 더 찍혀 있다. 농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339조 8000억원이다. 업계 수위다. 하지만 연간 순이익은 4023억원으로 다른 시중은행의 석 달치 순익에 불과하다. 석 달 전 취임한 이경섭 농협은행장은 3가지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부장급 이하 발탁인사 대상자를 3배 이상 늘리는 파격을 단행했다. 지난해 46명을 조기 승진시켰는데 올해 이 숫자를 140명까지 늘린 것이다. “우수한 직원은 빨리 키워 연공서열에 익숙해진 조직 문화에 자극을 던지겠다”는 게 이 행장의 포석이다. 대졸 신입으로 입행한 주임급(6급) 직원이 과장급(4급)이 되려면 통상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이 행장 체제에서는 ‘5년’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더 큰 파격은 ‘성적표’에서 나왔다. 은행원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ex) 산출 방식을 대폭 바꾼 것이다. KPI는 임직원 및 영업점 성적을 매기는 기준으로 인사 고과 및 성과급 등을 결정하는 핵심 잣대다. 이 행장은 건수 중심의 ‘정량평가’를 수익성 중심의 ‘정성평가’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예컨대 대출 창구 직원은 대출 상품만 잘 팔아도, 수신 창구 직원은 예·적금만 잘 팔아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종전에는 대출 담당도 예·적금 실적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별 할당을 맞추려고 건수만 올리거나, 자신이 팔지도 않은 예·적금과 대출, 펀드 등을 서로 교환하는 ‘거래’가 비일비재했다. 이 행장은 “수학 잘하는 사람한테 영어는 물론 미술, 음악까지 잘하라고 하는 게 과거 평가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대출 잘하는 사람은 대출만, 예금 잘 받는 사람은 예금만 잘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잘하면 좋은 평가(KPI)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행장은 “평가를 위한 평가와는 이제 결별할 때”라고 잘라 말했다. 업계에서는 처음 이뤄지는 시도로, 상당한 파격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수익성 강화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수익성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이 행장은 자신했다.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해외시장 진출도 농협만의 장점을 앞세워 차별화할 계획이다. 이 행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 최대 농업협동조합인 ‘중화전국공소합작총사’와 지난해 말 업무협약도 맺었다. 총자산 187조원, 한 해 영업이익만 약 25조원(2014년 기준)에 이르는 국영기업이지만 아직 농업금융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금융기술 이전, 경영 자문, 재무적 지분투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협상 중이다. 이 행장은 “농협은행은 1960~70년대 아무것도 없던 우리 땅에 농촌 현대화를 일군 경험이 있는 유일한 금융사”라면서 “농업인 대출부터 농기계 사업, 유통까지 농협만이 잘할 수 있는 사업으로 승부수를 건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경제 블로그] 구조조정 1호 中企까지… ISA 강권하는 하나은행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이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은행권엔 폭풍 같은 한 주였습니다. ‘초반에 밀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며 은행 간 ISA 고객 모셔 오기 경쟁이 뜨거웠죠. 여기에 증권업권과의 자존심 싸움까지 더해져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은행원들의 그 절박한 심정이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도(道)를 넘어선 영업행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은행도 있었습니다. 하나은행이 장본인입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중소기업인 A사에 “모든 직원(65명)을 ISA에 가입시키라”고 요구해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물론 은행원들이 평소 거래하는 중소기업에 10좌, 20좌씩 ISA 가입을 부탁하는 일은 흔한 풍경입니다. 중소기업도 그런 요청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거래 은행과의 관계를 고려해 ‘불가피한 비용’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힘들 때 서로 돕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다릅니다. A사는 올해 초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1호 구조조정’ 대상으로 정한 기업입니다. A사는 2009년 6월부터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를 받아 오고 있습니다. 기업 정상화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국 금융 당국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살려 보겠다며 구조조정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A사는 한때 2000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던 알짜 수출기업이었습니다. 그런 A사의 발목을 잡은 건 ‘키코’(환헤지 파생상품)였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수많은 중소기업이 키코 사태로 쓰러졌습니다. 은행원들조차 상품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중소기업에 ‘묻지마 가입’을 권유했더랬죠. A사 역시 거래 은행 4곳(약 3000억원)에서 판매하는 키코에 가입했다가 2007년 대규모 환손실을 입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나은행입니다. 그런데 전 직원에 ISA 가입까지 ‘강권’하니 A사가 펄쩍 뛸 만도 합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혀를 끌끌 찹니다. “아무리 실적 쌓기가 급하기로서니 구조조정 기업까지 동원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것이죠. 서민의 재산 형성을 돕는 만능통장이라던 ISA는 벌써부터 ‘불완전 판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상품 차별화 대신 은행원들만 쥐어짜는 후진적인 영업 행태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무엇보다 은행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거래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먹고살기 팍팍한 것이 우리 중소기업들의 현실이니깐요.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외국서 산 집 미신고… 5년 전까진 봐주고 20년 전 위반은 거래정지?

    외국서 산 집 미신고… 5년 전까진 봐주고 20년 전 위반은 거래정지?

    사실상 공소시효 없이 ‘족쇄’로… “위반 잘못이지만 구제책 필요” #사례 1. 주부 A씨는 1996년 유학 간 딸에게 5만 달러씩 세 차례에 걸쳐 보냈다. A씨의 딸은 유학 경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작은 집을 샀다. 해외에서 집을 살 경우 국내 은행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A씨 딸은 올해 금융 당국으로부터 “1년간 부동산 취득을 할 수 없다”는 ‘거래정지’ 통보를 받았다. A씨가 지난해 딸에게 송금하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위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다. A씨는 “일반인에게는 법이 너무 어려운 데다 20년이나 지난 일로 처벌받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례 2. B씨는 2001년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현지 은행에서 예금계좌를 만들어 건설사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10만 달러를 입금했다. B씨 역시 깜박 잊고 신고하지 않았다가 최근 적발돼 ‘거래정지’ 처분을 받았다. 올 초 사업차 미국에 간 B씨는 1년간 예금계좌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당황했다. ‘공소시효’(제척기간) 없는 외국환거래법 처벌 규정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 위반 자체는 잘못이지만 강력 범죄도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 시효를 두는 마당에 경미한 사안조차도 ‘영구 족쇄’를 채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 당국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안 마련에 착수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해외에서 예금계좌를 만들거나 부동산 취득 등의 거래를 할 때 본인이 사전에 지정한 국내의 ‘지정거래 외국환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위반하면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2009년 법이 개정되면서 ‘제척기간’(당국이 제재 처분을 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으로 정해졌다. 문제는 2009년 이전 위반자는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2010년 법을 어긴 사실이 올해 드러났다면 제척기간 5년이 지나 용서받지만 2008년 위반자는 8년이 지났음에도 제척기간 자체가 없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A씨가 20년이나 지난 일로 제재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2009년 이전에는 제재 수위가 ‘거래정지’로 지금의 ‘과태료’보다 훨씬 셌다. B씨는 “사업상 불이익 등 부작용이 커서 2009년 관련 법을 과태료로 수정한 것인데 소급 불가 원칙을 들어 여전히 (2009년 이전 위반자에 대해) 과거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 변경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0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부동산을 미국인인 조카에게 증여했다가 은행에 알리지 않아 처벌을 받은 사업가 C씨는 “외국환 관련은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일반인이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원조차도 외국환 업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1위 신한은행과 외국환 전문 KEB하나은행만 해도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의 외국환 업무 실태 점검 때 ‘확인의무 소홀’로 개선 조치를 받았다. 은행 직원도 복잡한 외국환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고객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 것이다. 김정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외국환거래법은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것만 법에 규정하고 자세한 사항은 대부분 주무부처나 기관에 위임하고 있어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고 모호한 규정들이 많다”면서 “개인이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으로 구제 신청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부처와 은행이 관련 규정을 명확하게 정하고 이를 더 자세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ISA, 예·적금 위주 은행·신탁형 쏠림… 국민 재산 불려질까

    ISA, 예·적금 위주 은행·신탁형 쏠림… 국민 재산 불려질까

    재형저축·소장펀드보다 낫지만 1인당 34만원… 효과 크지 않아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첫날인 지난 14일 32만여명의 고객이 1100억원을 금융권에 맡겼다. 재형저축(27만 9180계좌)과 소장펀드(1만 5334계좌) 출시 때와 비교해 보면 ‘흥행’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은행권·신탁형 쏠림 현상부터 금융사 직원 할당제, 여전한 불완전 판매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SA가 등장부터 금융 당국과 시장에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하루 고객 32만 2990명이 ISA에 들었다. 은행이 31만 2464명(96.7%)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증권사와 보험사가 각각 1만 470명(3.2%), 56명(0.01%)이었다. ‘은행 VS 증권’의 싸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은행의 ‘압승’이었다. 금융 소비자들이 예·적금 위주의 안전지향적 성향을 띠다 보니 은행에 더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국민 재산 불리기’라는 정부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금융위 집계 결과 1인당 평균 가입 금액도 34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윤석헌 전 금융학회장은 “정부는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ISA를 ‘부 창출’의 수단으로 봤지만 아직 국민이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크지 않은 만큼 금융 자산 운용기법으로 재산을 불리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고 운용하는 신탁형 쏠림도 고심이다. 증권사 가입 현황을 봤더니 가입자 1만 470명 중 9593명(91.6%)이 신탁형을 선택했다. 투자상품 결정부터 운용까지 모두 금융사에 위임하는 일임형은 수익률에 대한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의 거부감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상당수다. 또 최대 연 1.0%에 달하는 일임형 수수료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사가 사전 예약 당시 혜택으로 제시한 고금리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이 주로 신탁형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RP 만기 후에는 일임형 가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ISA 시장이 신탁형 위주로 형성되면 금융사도 곤란하다. 수수료 수익을 거의 기대할 수 없어서다. 주요 증권사의 신탁형 수수료는 연 0.1~0.3% 수준으로 일임형보다 월등히 낮다. 현대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아예 신탁형 수수료를 받지 않는 파격적 결정을 했다. 은경완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예·적금만 이용하던 고객이 금융사만 믿고 일임형 금융 투자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다”면서 “일임형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과거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오랜 기간 입소문과 평판이 쌓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 우려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금융사가 고객에게 ISA 편입 운용 자산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신탁형은 투자자가 직접 상품 설명을 구체적으로 듣고 비교하고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금융사는 가입 전 상품 공개마저 꺼리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사실 우리도 급히 교육을 받아서 ISA 운용 보수나 상품 내용 특성을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한다”고 털어놨다. ‘도’를 넘은 과당 경쟁도 문제다. 1인당 10계좌, 지점 직원은 1인당 50계좌 이상을 할당받은 은행도 있다. 성과평가기준(KPI)에 가입 실적이 반영되는 만큼 ‘벼랑’에 내몰린 일부 은행원들은 자비까지 들여 영업전에 뛰어들었다. 실제 몇몇 은행원은 ISA를 개설하는 고객에게 1만원을 넣어 준다는 광고성 글까지 회원용 카페에 올렸다. 이런 배경에서인지 이날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점 객장을 찾아 일임형 ISA에 직접 가입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사별 상품 구성과 수수료를 꼼꼼히 비교한 뒤 가입해 달라”면서 “금융사의 판매 과정을 수시로 모니터링해 불완전 판매를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작가로 인생 2막… 노벨문학상 탈지도 몰라요”

    “작가로 인생 2막… 노벨문학상 탈지도 몰라요”

    “죽도록 노력한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노력한 만큼 실력은 늘죠. 기술은커녕 특정 분야에 소질이 없다고 해서 제2의 인생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마세요.” 송양의(64)씨는 33년간 우리은행 배지를 달고 다니던 은행원이었다. 2011년 정년을 마치고 그가 선택한 진로는 ‘작가’다. 최근 10년 동안 출판한 책만 28권이나 된다. 시집, 여행에세이, 평론집, 장편소설 등 분야도 다양하다. 책 쓰는 것이 좋아 1인 출판사도 설립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이 꿈”이었다던 송씨는 집안 형편 때문에 미뤄 뒀던 꿈을 예순이 다 돼서야 이뤘다. 그는 “50대 중반부터 은퇴 후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며 “더 늦기 전에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무작정 하루 4시간씩 글을 썼다. 그렇게 10년 동안 해마다 2~4권의 책을 출판하면서 작품집 목록은 어느덧 ‘중견 작가’ 수준으로 늘어났다. 물론 글쓰기로 큰돈을 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송씨는 “28권 중에 3권을 빼면 모두 적자”라고 말했다. “제2의 인생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우선은 큰 욕심부터 내려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목표는 송씨 스스로를 위한 ‘채찍질’이다. 그는 5년 안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열정이 있어도 열악한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란다. 이어 수줍게 꺼내놓은 또 한 가지 목표는 ‘노벨문학상’이다. 송씨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불가능처럼 들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언저리 어딘가에 닿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경제 블로그] ISA·계좌이동제·성과연봉제 압박에… 잠 못 이루는 은행맨

    [경제 블로그] ISA·계좌이동제·성과연봉제 압박에… 잠 못 이루는 은행맨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요즘 은행원들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는 하소연입니다. ●“1인당 100~120계좌 할당” 소문 은행원들은 계좌이동제(3단계)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은행 창구에서도 주거래 계좌 갈아타기가 가능한 계좌이동제 3단계는 지난달 26일 시작됐습니다. 이달 말까지 은행원 1인당 100~120계좌씩 할당이 내려왔다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계좌이동제 실적은 지점 평가(KPI)에도 반영됩니다. KPI는 지점 성과급과 승진을 좌우하는, 은행원들에게는 ‘목숨’ 같은 존재입니다. 은행원들 사이에 “남북통일을 KPI 점수에 반영했다면 진작에 통일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만연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모든 은행이 계좌이동제 유치에 사활을 걸다 보니 실적은 목표치의 20% 선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는 14일 출시 예정인 ISA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보다 앞서 ISA를 도입한 일본에선 전체 가입 고객의 절반가량이 ISA 출시 첫날 계약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고객 선(先)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은행원 1인당 100계좌씩 할당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은행들도 ‘일임형’(금융사들이 알아서 운용) ISA를 팔 수 있게 되면서 짬짬이 관련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신의 직장’ 떠나 ‘정글의 법칙’ 새겨야 이런 마당에 월급봉투가 ‘위험’합니다. 금융 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은행마다 저성과자 해고, 대졸 초임 삭감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원은 “일은 산더미이고 사기는 바닥”이라고 자조했습니다. 은행원은 고액 연봉에 철밥통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의미와도 맞닿아 있죠. ‘금융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두둑한 맷집도 필요한 법입니다. 누군가 등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원들의 자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글의 법칙’을 되새겨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급변하는 나라 안팎의 금융시장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정호승 시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정호승 시인

    “시인은 평생을 바쳐야 시 한 편이 살아남는다. 시는 당대의 고통을 반영할 뿐 아니라 초월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시로서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초월성은 서정을 통해 나타난다. 1970~80년대라는 겨울을 지나면서도 서정이라는 함박눈조차 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싶었다.” 겨울의 스산함은 사라졌지만, 새봄의 훈풍은 아직 깃들지 않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 정호승(66) 시인이 성당 앞 계단을 부지런히 내려왔다. 환갑보다는 고희에 더 가까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맑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신자들에게 강연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요즘 ‘주’(시)와 ‘객’(강연)이 바뀐 것 같아 강연을 자제하려고 하는데 워낙 와달라는 요청이 많아 생각처럼 줄지는 않는군요.” 이날도 평생 그의 시를 관통해온 ‘사랑’에 대해 강연을 했다는 그는 성당 앞 카페에서 3시간 동안 시와 인생, 세월과 나눈 사랑 얘기를 들려주었다. -1963년의 어느 봄날. 까까머리 중2 교실에 짝짝짝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에 서 있던 나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친구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호승이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시(詩)라는 걸 난생처음 써봤던 그때, 국어 선생님은 내가 지은 시 ‘자갈밭에서’를 반에서 가장 잘된 작품으로 골라 낭독을 시키셨다. 그게 내가 시와 맺은 인연의 출발점이었다. -내가 다닌 대구 계성중학교는 박목월, 김동리 등 문단의 거목들을 많이 배출한 영남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당시 교사들 중에도 현역 문인들이 꽤 있었는데 국어를 가르쳤던 김진태 선생님도 등단한 수필가셨다. 시 낭송이 있고 얼마 후 담임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교내 백일장에 누가 나가면 좋겠느냐”고 물으셨다. 국어 수업의 기억이 또렷한 반 아이들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나를 지목했다. 솔직히 난 그때 백일장의 뜻도 몰랐다. ‘백일 동안 어딜 좀 다녀오는 건가?’ -학교 운동장 너머 솔숲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불’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쓰라고 했다. 나는 ‘등불’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다. ‘스스로 발광체인 나’로 시작했는데, 발광체는 바로 며칠 전 물상 수업에서 배웠던 단어였다. 덜컥 장원이 됐다. 상으로 학교 매점에서 쓸 수 있는 1000원짜리 종이표를 주었다. 그 맛있던 30원짜리 삼립 단팥빵을 30개나 사고도 돈이 남았다. 친구들에게 크게 한턱을 내고 나니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이런 식으로 하면 공짜 빵을 계속 먹을 수가 있겠구나’ 매월 교내 문예원고 모집 때마다 시를 써 보냈고, 그때마다 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공책도 사고 체육복도 사면서 든 생각. “이걸 평생의 일로 삼을 수도 있겠구나.” -당시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백일장 장원의 여세를 몰아 ‘석의 심정’이라는 제목의 산문을 보냈더니 우수작으로 뽑혔다. 이후 고교 시절까지 계속 글을 보냈고, 그때마다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박남수, 박목월, 박두진 등 쟁쟁한 시인들이 직접 나의 시에 대해 평을 해 주셨다. 그분들의 평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그런 식으로 시를 스스로 공부했다. -우리 집안의 뿌리는 대구다. 아버지는 대구농림전문학교를 나와 은행원이 되셨는데, 이 지방 저 지방 전근이 잦으셨다. 내가 6·25 전쟁이 터지기 몇 달 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것도 아버지께서 상업은행 하동지점에 근무하셨기 때문이다. 경기 평택 등지에서 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에 완전히 정착을 했다. 그때 명동 상업은행 본점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서울이 싫다며 고향으로 오셨다. 한참 후에 집안이 쫄딱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오게 됐는데, 만약에 그때 일찌감치 서울에 정착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계성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리고 내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해준 ‘가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내가 중3 때 사업을 하겠다며 은행을 나오셨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경영에 대한 감이나 수완은 없으셨다. 이를테면 당신이 운전도 못하면서 주변 사람 말을 듣고 택시회사를 차린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1년 만에 퇴직금을 전부 날리고 커다란 빚을 졌다. 난생처음 가난을 맛봤다.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기마다 학비를 내는 게 벅찰 정도였다. -1967년 고3이 됐다. 대학엔 가고 싶은데, 앞이 안 보였다. 공부라도 잘해야 빚을 내서 대학 등록금 마련할 생각도 해볼 텐데, 내 성적은 딱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경희대 문예장학생 제도였다. 경희대가 주최하는 백일장이나 전국고교생문예현상모집에 장원으로 당선되면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해 9월 경희대 백일장에 나갔다. 하지만 나는 장원은커녕, 차상도 차하도 아닌 참방(參榜)에 머물고 말았다. 장려상쯤 되는 건데 그걸로는 문예장학생이 될 수 없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후일에 내 스승이 되신 조병화 선생은 “상위권에 올리자니 문제가 있고, 떨어뜨리자니 아깝다”고 평하셨다. 대구로 내려오는데 기차 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직 고교생문예현상모집이 남아 있었다. 시 부문을 포기하고 평론 부문으로 종목을 바꿨다. 원고지를 100장 이상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팔자에 없는 거짓말을 담임 선생님에게 해야 했다. “우리 호승이가 몸이 너무 아파서 1주일간 학교를 쉬어야겠네요.”(나중에 꾀병임을 알게 된 선생님에게 출석부로 머리를 맞아야 했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나의 첫 평론 ‘고교 문예의 성찰: 고교시를 중심으로’를 완성했다. 그게 최우수작이 됐고, 1968년 3월 나는 당당히 경희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입학 장학금의 유효기간은 단 1년이었다. 장학금 규정상 2학년 이후에도 계속 받으려면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이 신나게 놀 때 나는 학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취방에서 도서관에서 시를 썼다. 그러나 당선의 문턱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한 해 휴학까지 했는데도 등단이 안 됐다. 친구들보다 군 입대를 일찍 했던 것도 등록금이란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군에서도 신춘문예에 계속 투고를 했다. 제대하기 직전인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로 당선이 됐다. “이제는 학비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사람들에겐 막연한 선입견 같은 게 있다. ‘시인은 가난과 가깝고, 일상을 방기하곤 한다’는 인식이다. 난 그게 싫었다. “시인이라도 열심히 일하면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40대 초반까지 잡지사 기자 생활을 열심히 했다. 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야 시 창작을 위한 시간도 더 내고 공부도 더 많이 하면서 결과적으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인’은 생계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안 된다. 아주 잘 팔리는 시집을 1년에 한 권씩 내더라도 생활이 안 된다. 나만 해도 시집 판매량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 텐데도, 그것만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수준까지 벌지 못했다. 그래서 잡지사 생활 때 열심히 저축을 했고 그걸 위해 많은 걸 포기했다. 술도 자제했고, 밥은 회사 식당에서 먹었다. 운전도 못하고, 골프는 채도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해서 아내와 두 아들을 굶기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76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해 서울에서 50명을 뽑는데 8등을 했다. 뒤늦게나마 내가 공부에 잠재력이 없진 않았구나 생각해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교사는 내 적성이 아니었다. 3년 정도 가르치다 잡지사 기자로 전환했다. ‘주부생활’, ‘샘터’, ‘여성동아’, ‘월간조선’ 등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에 치여 1987년까지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가 1982년에 나오긴 했지만 이전에 써 놨던 작품들을 책으로 엮어내기만 한 것이었다. -1991년 월간조선에 사표를 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기자로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소설가에 대한 욕망이 한층 커져 갔다. 이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위령제’라는 단편소설로 당선된 적도 있었다. 시인으로 등단한 상태여서 우리 아들 이름으로 냈지만. 그때 가진 생각이 “10년 뒤에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에 전념하자”는 것이었다. -서울대 근처의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스스로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문장에 물기가 없었다.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니 생계도 어려워졌다. ‘내 문학적 기질은 소설이 아닌 시’라는 걸 깨닫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잘못하면 시도 못 쓰겠다” 싶은 두려움에 1996년 나는 소설을 떠나보냈다. 소설에 파묻힌 5년 동안 틈틈이 적어놨던 메모를 바탕으로 5개월 동안 시를 썼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6개월 만에 10만부 이상이 팔렸다. 마음에 편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나는 스스로 미당 서정주 선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미당을 통해 한국 시의 전통적인 문학성과 가락성 등을 배웠다. 군 복무 시절 친구로부터 서정주 시선을 빌렸다. 춘천 시내에 가서 좋은 노트를 산 뒤 시집의 맨 앞표지부터 맨 뒤 판권 기록까지 그대로 베꼈다. 그리고 필사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 필사본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평생을 바쳐야 시 한 편이 살아남는다. 시는 당대의 고통을 반영할 뿐 아니라 초월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시로서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초월성은 서정(抒情)을 통해 나타난다. 1970~80년대라는 겨울을 지나면서도 서정이라는 함박눈조차 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싶었다. 시대상황의 반영과 서정성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내놓은 작품들이 ‘슬픔이 기쁨에게’, ‘맹인부부가수’,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이다. 이 시들은 지금도 대중 속에서 살아있다. 20대에 목표로 삼았던 미당과 김수영의 결합이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어 다행이라 여긴다. -내 시는 노래 가사로도 많이 쓰였다. 대중가요와 가곡 등 합쳐 60여곡 정도가 노래로 만들어졌다. 가수 안치환씨와는 몇 해 전부터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콘서트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열고 있다. 가장 처음 노래로 나온 건 이동원씨가 부른 ‘이별노래’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그 곡에 가장 애착이 간다. 안치환씨가 불렀던 ‘풍경 달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도 좋아한다. 김광석씨가 불렀던 ‘부치지 않은 편지’, ‘수선화에게’ 등도 기억에 남는다. -‘시는 노력이 아닌 선천적인 감각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에게 시는 철저히 노력의 산물이다. 내가 시를 쓰면서 100번이고 200번이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건 그래서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 인간의 삶 등을 접하고 그 이면을 보려면 자신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라는 산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야 한다. 내가 시라는 산을 찾아야 산에 있는 나무를 껴안을 수 있고, 산길도 걸을 수 있다. 칠레의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가 나에게 찾아왔다”고 말했지만 난 단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 -신의 도움이 있다면 10년 뒤에도 열심히 시를 쓰고 싶다. 지금 가슴 속에 시상(詩想)이 많다. 생의 마지막에 ‘이걸 다 쓰지 못하고 죽어서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하고 싶다. ‘전(前) 시장’이나 ‘전 국회의원’은 있어도 ‘전 시인’은 없다. 시인은 언제나 현직이다. 항상 시를 써야 시인이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정호승 시인은 김소월, 서정주 등을 잇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초·중·고 교과서에 그의 시가 20여편 실려 있고,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에도 지금까지 세 편의 시가 걸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대와 현실의 목마른 척박함에 발을 대고 서 있지만 위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김승희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자세를 꿋꿋이 유지하면서 김수영의 참여 정신을 서정의 틀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별들은 따뜻하다’ 등의 따뜻한 시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손길을 건넸다. 대표 시선(詩選)으로는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이 있다. ▲대구 계성중·대륜고 ▲경희대 국문학 학사·석사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1973년) ▲소월시 문학상(1989년) ▲정지용 문학상(2000년) ▲한국가톨릭문학상(2001) ▲상화시인상(2006) ▲공초문학상(2008년)
  • 플랜트 기계 수출 ‘영업맨’ 뚝심, 한화생명 자산 100조로 키웠다

    플랜트 기계 수출 ‘영업맨’ 뚝심, 한화생명 자산 100조로 키웠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누적 손실금액만 2조 3000억원인, 공적자금까지 들어간 ‘상처투성이’ 대한생명을 2002년 끌어안았을 때만 해도 인수 업무를 맡은 차남규 당시 한화그룹 ‘대한생명 지원 총괄전무’는 주변의 위로를 더 많이 받아야 했다. 금융업을 접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1979년 한화기계로 입사해 외국에 플랜트 기계를 팔던 그가 훗날 그룹 내 대표적인 금융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로부터 13년. 그 사이 간판이 한화생명으로 바뀌었고 29조원이던 총자산은 100조원을 돌파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차 사장은 “100조원 달성의 가장 큰 원동력은 고객과 현장에서 땀 흘린 임직원”이라며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세계 초일류 보험사로 나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1년 대표이사로 승진한 그는 자산 100조원을 돌파한 이날 자사주 1만 2000주(약 7700만원)를 사들였다. 책임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다. 지난해 한화생명은 5742억원의 세전(稅前) 이익을 올렸다. 올해 목표는 6000억원이다. 2020년에는 1조원을 달성한다는 것이 차 사장의 목표다. 그의 뚝심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허투루 듣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할 당시 수입보험료(9조 4600억원)는 10조원이 안 됐다. 지금은 15조원에 육박(지난해 말 기준 14조 9600억원)한다.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RBC 비율)은 95.6%에서 277.0%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화기계 평직원 때 거래 은행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건네기 위해 늘 주머니에 동전을 채워 다닌 일화로도 유명하다. 사장 취임 후에도 해마다 7개 지역본부와 지역단을 돌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신성장 사업 준비도 발 빠르다. 지난 24일엔 보험업계 처음으로 중금리대출인 ‘한화스마트 신용대출’을 내놨다. 일반 법인 직원이나 개인사업자도 인터넷과 모바일로 신청 가능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용등급을 세분화시켜 중위 등급의 우량 고객을 발굴해 낸 덕이다. 한화생명은 인터넷전문은행에도 보험사 중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2009년에는 국내 생명보험사로는 최초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오는 2020년까지 베트남 보험시장 ‘톱 5’ 진입이 목표다. 차 사장은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을 고집한다. 법인장과 스태프 2명을 제외하고 최고영업관리자, 재무관리자, 영업관리자 등 240여명을 모두 현지인으로 채웠다. 부산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차 사장은 “누가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물으면 대답은 늘 한화생명”이라면서 “인수 때부터 함께한 만큼 후배들이 출근하고 싶어 아침이 기다려지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내 마지막 임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경제 블로그] 어느 틈에 요직 꿰찬 ‘캠프 인맥’

    [경제 블로그] 어느 틈에 요직 꿰찬 ‘캠프 인맥’

    지난달 중순이었습니다. 모처에서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의 평판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가 예약돼 있던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의 후임 선출 작업이었죠. 당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금융권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설마 이제 와…” 하며 반신반의하는 부류와 “언젠가는 챙겨 줄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부류였지요. ●집권 말 슬그머니 부활한 ‘보은인사’ 전자의 근거는 “챙겨 줄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한자리 차지했을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이 전 부회장은 2014년 신한금융과 KB금융 회장 자리에 도전했다가 줄줄이 쓴잔을 마셨습니다. 후자 진영은 최근 슬그머니 부활한 ‘보은 인사’에 주목했습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권이 반환점을 돌면서 일각에선 “캠프 출신 인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는데 ‘지분’을 챙겨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었지요. 이 때문인지 캠프 출신들이 다시 잇따라 중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취임한 이동걸 산은 회장을 비롯해 신성환 금융연구원장, 김선덕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국책은행이나 주요 공기업의 감사, 이사 자리는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죠. 산은 부실경영 논란을 뒤로한 채 AIIB로 자리를 옮기는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중용된 캠프 출신입니다. 최근 물러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재출격설’도 돕니다. 다소 주춤하는 듯했던 ‘낙하산’들이 다시 펴지기 시작하자 금융권은 한숨이 깊습니다. 한 은행원은 “제2 리먼 사태(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 안팎 금융시장이 심상찮은데 정권과의 인연 등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능력 위주의 중용이 금융개혁 첫걸음 올 들어 정부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입니다. 능력과 실적에 따라 월급을 가져가고 승진 기회에도 차별을 두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과주의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 바로 낙하산 인사입니다. 정부의 이 ‘이율배반’을 지켜보면서 선뜻 월급봉투 수술(성과연봉제)에 동의할 은행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정부가 구태를 먼저 포기하는 것이 금융개혁의 첫걸음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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