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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아이들이 들려주는 서양역사 천년이야기 (엘렌 잭슨 글,잰 다베이 엘리스 그림,임웅 옮김,미래M&B펴냄) 각각 다른 세기에 살고 있는 11명의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삶과 역사이야기.초등 고학년용.1만원.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권영상 동시·김은주 그림,국민서관 펴냄) 일상 소재들을 아이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노래한 동시집.표제작과 ‘들풀’은 교과서에도 실렸다.초등생용.7000원. ●울퉁하고 불퉁한 우주이야기 (케네스 데이비스 글,최달수 그림,노태영 옮김,푸른숲 펴냄) ‘옛날과 지금의 하늘은 똑같을까’’시간 여행은 가능할까’등 우주 관련 과학정보를 재미있게 설명한 책.중학생용.8800원. ●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어야 할 텐데 (고성주 글,정인현 그림,은행나무아이들 펴냄) 1등만 강요하는 어른들을 꼬집는 표제작을 비롯해 ‘봄이 오는 소리’등 현직 초등학교 교장인 지은이의 창작동화 11편이 실려 있다.8500원.˝
  • [책꽂이]

    ●젊은 대지를 위하여(현기영 지음,화남 펴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재직 중인 작가의 에세이집.80년대부터 자신의 소시민성과 맞서 고민한 의식의 흐름을 38편의 글에 담았다.뜨겁던 시대정신을 돌아보고 오늘의 지혜를 얻자고 역설한다.9000원.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조영복 지음,소명출판 펴냄) ‘창조’‘폐허’‘백조’등 동인지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단순히 서구 문예사조의 모방이 아니라 초기 아나키즘의 영향 아래 혁명적 이념과 근대 문예의 미학적 이념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1만 7000원. ●프로페셔널(이원호 지음,은행나무 펴냄) 스포츠서울에 연재된 소설.조직세계에 몸담았다가 죽은 형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파헤치는 특전사 중사의 이야기.인간들의 권력·야망욕과 암흑가의 냉혹한 생존 경쟁 등을 그린다.모두 3권,각권 8500원. ●사이키 멘탈(홍재규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베스트셀러 ‘야인’의 작가가 낸 장편. 한 여학생이 지키지 못한 약속을 모티프로 다양한 인간이 물고 물리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다. 모두 3권,각권 8500원. ●체호프와 그의 시대(A P 추다코프 지음,강명수 옮김,소명출판 펴냄) 체호프의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예술세계를 본격 분석한 연구서.푸슈킨,톨스토이·고골·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황금기 문학’이라 불리는 19세기 작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체호프 문학의 독창성을 드러낸다.2만원. ●궁지(위스망스 지음,손경애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 세기말의 우울함을 탁월하게 그린 프랑스 소설가의 중단편집.부르주아 계급의 추악함과 탐욕을 드러낸 표제작과 자전적 소설 ‘등짐’ 등에서 당대의 시대 정신을 민감하게 포착한다.6000원. ●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루디야드 키플링 지음,김정우 옮김,함께읽는책 펴냄) ‘정글북’을 지은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 첫 번역1800년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왕이 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두 떠돌이 젊은이의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냉소적으로 형상화.7500원.˝
  • ‘1000만’ 태극기 꽂은 강제규감독

    강제규(42) 영화감독은 하마터면 ‘태극기를 휘날리지 못할 뻔’했다.지난 2001년 6월 강 감독은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선다.영화 ‘쉬리’ 이후 새로운 아이템으로 SF장르를 선택한 그는 몽골을 다녀오는 등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KBS-TV에서 제작한 6·25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우연히 접했다.그의 시선에 찰나처럼 스쳐간 장면은 이러했다.육군본부가 주도한 유해발굴사업단의 연락을 받고 50년 만에 남편의 유해와 마주하는 아내(75)와 딸(33)의 모습이었다.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어떤 예술가적 고통이 그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곧,‘그래,한국전쟁이야!’라는 직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박에 ‘칭기즈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로 방향을 확 틀었다.이때부터 1000만 관객에게 다가서는 긴 여정이 시작됐던 것이다. ● 태극기는 휘날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구 포이동 ‘강제규 필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머리는 80년대의 대학생처럼 길었고,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대작 영화의 역량이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우선 최근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가진 영화 ‘태극기∼’ 시사회의 현지 반응을 먼저 물었다. “아메리칸 필름마켓(AFM) 전용극장에서 미국과 유럽 각국의 영화관계자 200여명이 관람했지요.그런데 이례적일 만큼 한 사람도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다들 눈물이 글썽한 채 나오면서 ‘쇼킹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특히 그는 “시사회때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을 소개하는 것이 관례지만 ‘태극기∼’는 시사회 기준인 1시간40분 러닝타임보다 더 길어 그냥 진행했다.”면서 “그럼에도 다들 감동적으로 영화를 감상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 “영화는 철학적 메시지 담아야” 관객 1000만돌파의 비결에 대해 그는 “영화 ‘태극기∼’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시대적으로,정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서,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면서 “영화는 보고,즐겁고,기뻐하고,철학적 감동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자신의 영화철학을 피력했다. 제목을 ‘태극기∼’로 정한 특별한 까닭이 있는지 물었다.그는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제목을 ‘W프로젝트’로 명명했으나 막상 보도자료를 내려고 하다 보니 마땅한 제목이 없어 고민했다.”고 토로했다.또한 한국전쟁을 떠올리면 강렬한 이미지가 한가지 연상된다는 그는 “그건 군인들이 총신 끝에 태극기를 묶고 휘날리며 고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태극기∼’가 커보이고 역설적으로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제목을 그렇게 확정지었다.“모든 게 당초보다 커졌지요.영화를 찍고 나니 필름길이만 해도 33만자(1자가 약 30㎝)였습니다.서울∼부산을 왕복해도 남을 거리이지요.또 전국 67군데 흩어진 촬영장소를 돌아다닌 거리도 15만㎞에 이릅니다.” 영화관련 인터뷰 기사는 많이 보도돼 그의 과거시절로 얘기방향을 돌렸다. 그는 마산에서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부친이 마산 시내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했는데 마침 집 근처 강남극장(지금은 없어졌지만)의 주인과 친하게 지냈다.덕분에 어릴 적부터 극장을 공짜로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이때 즐겨 본 영화가 ‘아톰시리즈’‘로봇태권V’‘독수리요새’ 등이었다.흑백 영사기 돌리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영화 ‘시네마천국’의 꼬마 주인공 ‘토토’처럼. 중학교때 학교 성적은 3년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했다.특히 수학·과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해 주변에서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때마침 형이 비행기 조립을 무척 좋아하는 바람에 집안을 온통 비행기 조종석처럼 꾸며놓았다.그의 과학적 재능을 더욱 개발하는 바탕이 됐다(형은 나중에 공군사관학교로 진학한다.지금은 대한항공 조종사로 근무중이다). 이같은 주위의 칭찬과 배려속에 중학을 마친 그는 고교에 진학하면서 사춘기를 맞아 비뚤어지기 시작했다.철학자들이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 뭐꼬?’라는 물음표를 하루종일 떠올리며 거리를 마냥 쏘다니기 일쑤였다.하루는 ‘불선천지 팔양신주경’을 우연히 접하면서 불경에 푹 빠지기도 했다. 또 ‘어린왕자’와 ‘갈매기의 꿈’을 읽고 생텍쥐페리와 리처드 바크의 철학사상에 탐닉하기도 했다.학교성적은 거의 꼴찌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진촬영’에 취미를 가졌다.카메라 하나를 둘러메고 바다로,시내로,산으로 가서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러댔다.필름현상은 집 근처의 사진관 아저씨한테 직접 배웠다.이때 배운 촬영기술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선배들과 곧바로 단편영화에 제작에 나서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 영화감독 꿈을 펼치기 시작한 고2 이뿐만 아니었다.사진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문학서클에도 가입했다.주로 표현주의 기법의 시를 창작하면서 문학적 자질을 키워 나갔다.이때 쓴 습작시만 수백편에 이른다고 했다.그가 ‘태극기∼’ 촬영을 끝마치고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담은 책을 쓰게 된 것도 그의 문학적 재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며 “참,괴기하게 보냈다.”고 표현했다.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영화감독을 할 수밖에 없는 ‘동물적 토양’이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영화감독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은 고2때.어느 겨울날 마산 시민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를 관람했다.극장문을 나서면서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하는 찡한 감동을 느꼈다.이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중단했다.오로지 영화공부였다.마산에는 개봉극장이 거의 없어 주말이면 부산으로 달려가 개봉영화를 감상하고 막차로 돌아오곤 했다.이때 본 영화가 ‘사학비권’‘철수무정’‘하노버스트리트’‘새벽의 7인’등이었다. “고교때는 술도 마시고 좀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요.고3때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더니 ‘딴따라’라고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또 당시만 해도 마산고에서 예체능계를 진학하는 예가 거의 없었지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그는 선배들과 어울려 단편영화를 미친 듯이 찍어대기 시작했다.흔하던 미팅은 딱 한번.그것도 미팅 선약을 펑크낸 선배 대신이었다. ● ‘태극기~’는 다시 시작합니다 이때 만든 단편영화들은 ‘침묵’‘땅밑 하늘공간’‘깰수 없는 겨울잠’ 등이었다.제목에서 풍기듯 실험적인 작품에다 이미지 표현 중심의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다.16㎜영화는 10여편.특히 대학 2년때 같은 학과 동료인 탤런트 박성미씨와 함께 단편 ‘가을오후’를 제작하면서 친해져 결혼에 골인했다. “89년에 결혼했지만 한동안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 돼 아이를 5년만에 낳았습니다.‘은행나무 침대’를 만든 후 첫째 아들 윤원이,그리고 ‘쉬리’ 이후에 둘째 지완이를 낳았지요.” ‘태극기∼가 대박을 터뜨렸으니 부인한테 보너스를 두둑히 주었느냐는 질문에 올 여름에 가서야 결산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그후에는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물었다. “‘태극기∼’는 겨우 끝났고 다시 시작합니다.세계인들이 한국영화를 보고 울고 웃고 해야 합니다.끊임없이 그 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김문기자 km@ 강제규 감독 프로필▶1962년 11월 마산 출생 ▶81년 마산고졸 ▶8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졸 ▶90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시나리오 데뷔 ▶96년 ‘은행나무 침대로’로 영화감독 데뷔▶99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아시아 개혁을 주도할 개혁 50인에 선정.강제규필름 대표 ?99년 영화 ‘쉬리’제작▶2004년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제작 ▶수상기록=백상예술대상 각본상,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백상예술대상 각본상,아시아스타 50인 등˝
  • 儒林(3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그러나 좋은 씨앗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고,악의 씨앗을 뿌리면 뿌리는 대로 악의 열매를 맺는 법.나뭇잎에 꿀을 발라 ‘주초의 술수’를 조작해낸 심정도 그로부터 10여년 뒤 똑같은 조작사건으로 사약을 받고 죽게 되니,무릇 정치적 생명이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허망하고 헛된 것인가. 1527년 2월,뒤에 인종이 되는 세자의 생일날.동궁 안의 은행나무에 사지와 꼬리를 가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진 쥐 한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된다.이는 중종의 계비인 윤씨가 세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경빈 박씨가 자기소생인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서 저주를 내린 사건이라 하여서 ‘작서(灼鼠)의 변’이라고 부른다.이로 인해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사사되고,특히 심정은 경빈 박씨와 통정까지 하였다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 채 사사됨으로써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심정은 신무문을 나오자마자 표신(標信)을 보내어 훈구파의 모든 대신을 영추문 앞으로 모이게 하였다.원래 표신이란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 발부되는 야간통행 허가증인데,그의 발부도 승정원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그러나 심정은 임의대로 이를 발부하여 대신들을 소집한 것이었다. 영추문 앞에 모인 대신들의 이름은 공조판서 김전(金銓),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호조판서 고형산(高荊山),병조참지 성운(成雲)과 홍숙(洪淑),손주(孫澍),방유녕(方有寧),윤희인(尹希仁) 등이었다.이들 중 이장곤은 조광조의 사림파와도 가깝고 훈구파의 세력들과도 가까운 중도파였으나 심정이 그를 부른 것은 이장곤이 군사들을 지휘하는 수장이었으므로 그의 세력을 빌리지 않으면 성공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하오 9시와 11시 사이인 이고(二鼓). 영추문은 연추문이라고도 불리는 경복궁의 서문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정식 통용문이었다.대문 옆에는 홍예문이라는 작은 문을 하나 내어 출입하고 있었는데,마침내 홍예문이 열렸다. 이날 밤 당직이었던 윤자임·공서린 등은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경회루 북쪽에 있었던 간의대(間儀臺)를 순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간의대는 왕립중앙천문기상대인 서운관(書雲觀)에 두었던 기상관측시설이었는데,승지일행이 이곳을 순찰하는 동안 왕명전달의 책임을 맡은 환관인 승전색(承傳色)이 열쇠를 들고 홍예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었다. 이들 훈구파 대신들은 곧 중종이 있는 편전 앞으로 나아가 진언하였다.맨 앞에서 진언하는 심정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이 주상이 원하는 것이다. 주상은 조광조의 제거를 자신의 뜻이 아니라 모든 문무백관의 뜻으로 받아들여 명분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심정은 미리 준비했던 무기를 편전에 진열하고 군사로 하여금 왕을 시위하는 한편 홍경주와 남곤을 시켜서 왕에게 독촉하게 하였다. “상감마마.” 홍경주가 말하였다. “사태가 급하오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나이다.조광조의 무리들을 국문하고 급히 승정원과 홍문 관리들을 가두셔야 하나이다.” 군사들은 횃불을 들고 섰고,대신들 역시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었으므로 궁정 앞 뜰은 대낮처럼 밝아졌다.타오르는 불빛이 멀리까지 번져 나가 화광이 충천하였다.멀리서 이 불빛을 본 입직승지들은 놀라서 허둥지둥 달려왔다.합문밖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궁 안에 심상치 않은 돌발 사태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본 승지 윤자임이 소리쳐 말하였다. “승정원에서도 모르게 대궐 안에 이처럼 함부로 들어옴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
  • 儒林(3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3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그러나 좋은 씨앗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고,악의 씨앗을 뿌리면 뿌리는 대로 악의 열매를 맺는 법.나뭇잎에 꿀을 발라 ‘주초의 술수’를 조작해낸 심정도 그로부터 10여년 뒤 똑같은 조작사건으로 사약을 받고 죽게 되니,무릇 정치적 생명이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허망하고 헛된 것인가. 1527년 2월,뒤에 인종이 되는 세자의 생일날.동궁 안의 은행나무에 사지와 꼬리를 가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진 쥐 한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된다.이는 중종의 계비인 윤씨가 세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경빈 박씨가 자기소생인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서 저주를 내린 사건이라 하여서 ‘작서(灼鼠)의 변’이라고 부른다.이로 인해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사사되고,특히 심정은 경빈 박씨와 통정까지 하였다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 채 사사됨으로써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심정은 신무문을 나오자마자 표신(標信)을 보내어 훈구파의 모든 대신을 영추문 앞으로 모이게 하였다.원래 표신이란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 발부되는 야간통행 허가증인데,그의 발부도 승정원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그러나 심정은 임의대로 이를 발부하여 대신들을 소집한 것이었다. 영추문 앞에 모인 대신들의 이름은 공조판서 김전(金銓),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호조판서 고형산(高荊山),병조참지 성운(成雲)과 홍숙(洪淑),손주(孫澍),방유녕(方有寧),윤희인(尹希仁) 등이었다.이들 중 이장곤은 조광조의 사림파와도 가깝고 훈구파의 세력들과도 가까운 중도파였으나 심정이 그를 부른 것은 이장곤이 군사들을 지휘하는 수장이었으므로 그의 세력을 빌리지 않으면 성공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하오 9시와 11시 사이인 이고(二鼓). 영추문은 연추문이라고도 불리는 경복궁의 서문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정식 통용문이었다.대문 옆에는 홍예문이라는 작은 문을 하나 내어 출입하고 있었는데,마침내 홍예문이 열렸다. 이날 밤 당직이었던 윤자임·공서린 등은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경회루 북쪽에 있었던 간의대(間儀臺)를 순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간의대는 왕립중앙천문기상대인 서운관(書雲觀)에 두었던 기상관측시설이었는데,승지일행이 이곳을 순찰하는 동안 왕명전달의 책임을 맡은 환관인 승전색(承傳色)이 열쇠를 들고 홍예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었다. 이들 훈구파 대신들은 곧 중종이 있는 편전 앞으로 나아가 진언하였다.맨 앞에서 진언하는 심정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이 주상이 원하는 것이다. 주상은 조광조의 제거를 자신의 뜻이 아니라 모든 문무백관의 뜻으로 받아들여 명분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심정은 미리 준비했던 무기를 편전에 진열하고 군사로 하여금 왕을 시위하는 한편 홍경주와 남곤을 시켜서 왕에게 독촉하게 하였다. “상감마마.” 홍경주가 말하였다. “사태가 급하오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나이다.조광조의 무리들을 국문하고 급히 승정원과 홍문 관리들을 가두셔야 하나이다.” 군사들은 횃불을 들고 섰고,대신들 역시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었으므로 궁정 앞 뜰은 대낮처럼 밝아졌다.타오르는 불빛이 멀리까지 번져 나가 화광이 충천하였다.멀리서 이 불빛을 본 입직승지들은 놀라서 허둥지둥 달려왔다.합문밖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궁 안에 심상치 않은 돌발 사태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본 승지 윤자임이 소리쳐 말하였다. “승정원에서도 모르게 대궐 안에 이처럼 함부로 들어옴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
  • 마산 산호공원 새단장 시작

    경남 마산시는 오는 2007년까지 53억원을 들여 산호동 산호공원 일원 13만 7000여㎡를 도심의 대표공원으로 조성키로 하고 공사에 착수했다고 18일 밝혔다.산호공원에는 명상할 수 있는 허브와 야생화원,지역 예술가와 청소년들이 음악과 무용을 선보이는 야외공연장,잔디광장,배드민턴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만들어진다.숲속 2.2㎞에 걸쳐 은행나무·배롱나무·벚꽃·소나무·동백 등 나무들로 이뤄진 테마산책로가 조성되고,마산 도심과 마산만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쉼터 등이 설치된다. 이 공원에 있는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 등 마산출신 문인 10여명의 시를 새긴 시비와 충혼기념관도 단장된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장동건 원빈 친형제 같아 그거면 게임 끝입니다

    강제규(42) 감독을 한국영화판을 움직이는 ‘큰 손’으로 꼽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연출작품 편수를 따져보면 놀랍다. 그의 연출작은 단 2편.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감독데뷔했고 99년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게 한 흥행대작 ‘쉬리’를 내놓은 게 전부다.전국관객 597만명이라는 ‘쉬리’의 당시 전례없는 성취 덕분에 본의아니게 ‘값진 오해’를 사온 셈이다. 그가 세번째 연출작품을 내놓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한국전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애증을 그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제작 강제규필름)가 2년여의 산고 끝에 새달 6일 개봉한다.순수제작비로 든 돈만 무려 147억 5000만원.한국영화사상 최고다.그와 충무로 캐스팅 0순위의 주인공 장동건·원빈의 시너지효과가 얼마만큼 풍속(風速)을 높일지,충무로가 숨죽일 만하다.후반작업을 하느라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갇혀 “숨쉴 시간도 없다.”는 감독을 만났다. 왜 이렇게 공백이 길어야 했나. - 무슨 이유가 있겠나.게을러서 그렇다.(웃음) 근년들어 블록버스터들이 하나 같이 실패했다.투자심리가 위축된 터라 기대만큼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태극기…’가 무너지면 향후 몇년 동안 한국영화는 가사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 물론 그런 시선을 감지한다.하지만 내수시장만 보고 그 큰 돈을 끌어들일 만큼 무모하진 않다.해외배급 등 ‘쉬리’의 노하우를 십분 살려 미국이나 유럽처럼 우리에게 취약한 시장을 새롭게 공략해 보고 싶었다.대규모 프로모션을 통해 영화의 본류시장쪽으로 덩치 큰 배급을 할 작정이다.모험의 원동력은 바로 그것이다. 해외시장을 겨냥한 블록버스터의 소재가 왜 하필이면 6·25전쟁인가. - ‘쉬리’는 해외에서도 성공했다.그러나 그저 ‘재미있다.’는 반응말고는 돌아온 게 없었다.미국·유럽시장에서 영화외적 파장,즉 사회적 흔들림을 얻어낼 소재는 한국전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보편적 정서를 건드릴 소재로 전쟁 이상이 있을까.6·25전쟁을 잊어가는 건 우리뿐,그들은 여전히 ‘한국전’을 기억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자금을 모으느라 어려움이 무척 컸다는데. - 소재주의에 빠진 영화판의 편견 때문에 더 힘들었다.이제 와서 무슨 전쟁영화,그것도 낡고 닳은 6·25이야기로 승산이 있겠느냐는 식이었다.강제규가 오랜만에 사고치는가 싶었던 모양인데,일면 이해도 한다.담보잡히고 융자내서 일단은 자비로 찍어 ‘물건’을 보여주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 20% 촬영분을 들고나가 승부수를 띄웠다.일본쪽 사전판매도 그때 이뤄졌고,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했다. 위험부담을 떠안고 꼭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야 했는지. - 관객은 유기적인 생명체다.끊임없이 다양성과 변화를 갈구하는 생명체라고 할까.블록버스터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영화의 특성상 제작전에 국방부의 협조를 얻으려고 많이 노력했다.국방부에서 협조했더라면 제작비 절감효과를 봤을 것 같다. - 대단히 아쉬웠던 부분이다.당시에 쓰인 무기 등에 대한 지원을 국방부에서 받았다면 20억원은 족히 절감했을 것이다.극중 주인공들이 강제징집령을 받고 군에 들어가는 설정이 있는데,육군측이 군수물량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했다.강제징집이 일반적 사실처럼 비쳐지면 군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이유에서였다.잠시도 고민하지 않았다.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제작비 때문에 얼버무릴 순 없었다.결국 탱크나 장갑차 등을 견본제작한 뒤 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제해서 화면을 채워야 했다. ‘태극기…’는 외형적 규모도 규모려니와 한국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듯하다.이를테면 디지털 캐릭터(모션캡쳐 카메라로 사람의 동작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제인물처럼 활용하는 기법)를 도입한 것도 국내 첫 시도다. - 처음엔 외국스태프 동원을 놓고 고민했다.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우리 힘으로 이런 실험과 탐색을 해볼 기회도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필름 전체를 디지털 작업했다.찍은 필름을 디지털로 바꿔 다시 필름으로 출력하는,까다로운 기술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유대인 학살을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화제작 ‘피아니스트’에 순제작비 3500만 달러가 들어갔다.그 영화의 어디에 그 돈이 들어가 보이는가.(뜸을 들이다 확신에 찬 듯) ‘태극기…’를 보고나면 오히려 147억원이 모자랐겠다 싶을 것이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한국전에 대한 가장 선연한 이미지의 하나가 평양시가전 전의 B-29 공중폭격이다.5억원쯤 들어가는 평양시내 미니어처를 못 만든 게 두고두고 아쉽다.그 미니어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전쟁의 사실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 처음에 장동건과 원빈을 나란히 카메라에 잡을 때는 조화가 안될까 내심 걱정했다.그런데 30%쯤 찍었을 즈음엔 둘이 진짜 친형제처럼 뭉쳐졌다.시쳇말로 ‘게임 끝’이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브레이크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자신이 형님 뻘이라는 강우석 감독은 ‘태극기…’보다는 ‘실미도’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들어야 한다고 농담하던데. - 바빠서 ‘실미도’를 아직 못 봤다.그러나 여자 한 명 안 나오는 영화를 누가 보겠느냐는 소재주의의 편견을 보란 듯이 깬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흥행에서야 나도 양보 못한다(웃음).‘태극기…’의 제작비가 그쪽보다 근 2배나 많이 들었으니 관객도 그에 비례해야 하지 않겠나. 황수정기자 sjh@
  • 정호승씨 동화·산문집 동시 출간

    웬지 슬픔이 떠오르는 시인,그러나 그 빛깔은 우울하지 않고 내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연노랑빛의 시인.대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비롯,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에서 따스한 ‘슬픔의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정호승이 최근 ‘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해냄)와 산문집 ‘정호승의 위안’(열림원)을 동시에 내놓았다. ‘스무살…’은 시인이 막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보내는 문학적 메시지다.시인이 보는 20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오직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기쁨만으로 충만한 때”다.시인은 이 ‘빛나는 시절’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1권에 실린 29편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주제로한 작품들이다.고슴도치와 다람쥐의 애틋한 사랑,참문어와 풀문어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 등을 징검다리 삼아 시인은 사랑의 애환을 빚어낸다.2편은 사랑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31편의 동화를 실었다.시인은 플라스틱 장미와 생화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거나(‘조화와 생화의 대화’),장미의 이름은 바꾸어도 향기는 지울 수 없다는 이야기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장미의 향기’)을 넌지시 알게 해준다. 이처럼 ‘…동화’는 벌,개구리,검은툭눈금붕어 등 다양한 소재를 등장시키면서 막 어른이 되는 이들에게 쉽고 부드러운 형식으로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달콤한 사탕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시인은 자주 매콤하고 아린 ‘고통의 힘’을 이야기한다.예컨대 바람의 시련을 견뎌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을 전하는 ‘은행나무’나 어린 매화나무에게 추위의 의미를 들려주는 엄마 매화나무 이야기를 인용한 ‘겨울의 의미’ 등에는 아픔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사랑이나 삶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는 따끔함도 전해준다. 이런 생각의 씨앗은 산문집 ‘…위안’에도 묻혀 있다.이미 발표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에다 25편의 새 글을 보탠 이 산문집에서도 시인은 “고통이 없다면 그게 어디 인간이겠는가.”“사랑은 고통이다.”(135,136쪽)라고 ‘고통의 미덕’을 노래한다. 아울러 산문집은 시인의 내면 세계를 자상하게 보여준다.그 여정에서 자신의 시를 낳은 다양한 공간을 찾아다닌다.또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가서는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135쪽)는 사실을 깨달았고,이육사의 삶 앞에서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떠한 작품을 썼느냐보다도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138쪽)고 고백한다.그의 독백을 따라다니며 따스한 시인의 육성을 듣노라면 어느새 메마른 가슴이 촉촉히 젖어온다.“사람마다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지니고 있다면 이 글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작은 위안의 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길섶에서] 겨울 가로수

    도시의 열병대오(閱兵隊伍)인 가로수에 겨울이면 채워주던 허리띠(잠복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서울 시내의 가로수는 모두 27만 4459그루 있다고 한다.은행나무가 11만 6283그루이고,플라타너스가 11만 3999그루,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등이 뒤를 잇는다.서울시 조경과 관계자는 잠복소가 미관상 썩 보기가 좋지 않은데다가 흰불나방 피해가 수그러들면서 해충 제거에 큰 효과가 없어졌다고 말한다.그 때문에 1980년대말 90년대 초쯤부터 잠복소 두르기를 중단했단다.인건비나 짚 구하기의 어려움도 중단의 이유가 됐음직하다.다만 공원 등에 심어진 추위에 약한 나무에는 동해 방지용으로 짚을 둘러준다고 말한다. ‘너나없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도 나무에 겨우살이를 준비해 주었는데…’라는 생각 때문인지,보호막이 없이도 아리고 매운 겨울을 지나 여린 잎으로 도시의 새 봄을 열 가로수의 강골이 새삼 대견해 보인다. 강석진 논설위원
  • [길섶에서] 절규

    서울 도심에서 뜻밖의 호젓함 속에 자연과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소공동의 원구단이 있다.고층빌딩 숲에 둘러 싸여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덕에 찾는 이들도 적은 데다,고건축물과 은행나무 고목,잘 가꿔진 정원이 어우러져 번잡한 일상을 잠시 잊고 생활의 숨을 고르기에 마침맞은 곳이다. 그러나 며칠전 이곳을 산책하다 부딪힌 한 남자의 모습은 그 숨고르기가 얼마나 큰 사치인가를 뼛속깊이 느끼게 했다.30대쯤으로 보인 그는 3층8각건물 황궁우가 마주보이는 돌난간에 기대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두 번쯤 그를 스쳐 경내를 돌다가 더이상 걷기를 멈춰야 했다.그가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왔다.‘제발 인간답게 좀 살 수 있게 해 주세요.조상님,살려 주세요.” 절규였다. 원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까.그 절규가 하늘에 가 닿았을까.청계천에서,부안에서,상도동에서 나라가 온통 절규로 들끓고 있다.온전히 살아 있음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얼른 왔으면좋겠다. 신연숙 논설위원
  • ‘현진건 고택’ 흔적도 없이…문화재 지정 안돼 결국 철거

    문화재 지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사진·1900∼1943) 선생의 고택이 결국 철거됐다. 27일 서울 종로구 등에 따르면 부암동 325의2에 방치돼 있던 현진건 고택(대지 267평,건평 70평)의 소유주가 지난 14일 굴착기를 동원, 건물을 헐어 은행나무 두 그루만 남고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 선생이 1937년부터 살며 ‘무영탑’,‘흑치상지’ 등을 집필했던 고택은 지난 94년과 99년 서울시에서 문화재 지정을 검토했지만 ‘보존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 설치하는 데 그쳤다.종로구는 지난해 9월에도 서울시에서 현진건 고택을 매입,‘현진건 기념관’으로 지정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결론을 짓지 못했다.고택의 공시지가는 6억 2600만원이었다.서울시 관계자는 “현진건 고택은 원형이 심하게 변형돼 ‘시대를 표방하는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지지 70% 이하 사업에 돈 못대/강남구, 예산편성 않기로

    자치단체마다 예산편성에 주민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강남구(구청장 권문용)가 주민찬성률 70% 이하 사업의 경우 내년도 예산편성에서 아예 제외키로 했다. 강남구는 내년도 예산편성에 앞서 218개 사업에 대해 인터넷 설문조사로 주민 3만 4000명의 의견을 들었다.그 결과 70% 이하 찬성을 얻은 ▲구 상징물 건립(찬성 52.77%) ▲걷고싶은 거리 조성(60.98%) ▲지방세 현황조사 등의 용역(64.77%) ▲아파트단지 담장 녹화공사(68.10%) ▲옥외광고물 디자인 용역(69%) ▲방음림 조성공사(69.07%) 등 6개 사업비를 내년 예산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들 사업은 당장 급하지 않거나 특정 아파트단지에만 혜택이 돌아가고,걷고싶은 거리의 경우 보도블록 교체 등에 예산만 쏟아부었지 노점상 등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외면했다. 반면 ▲뇌손상 장애인 재활치료실 위탁운영(찬성 95.26%) ▲수서동 은행나무공원 경로당 신축(95.24%) ▲불법사설 안내 표지판 정비(94.63%) ▲장애인 치과 무료 진료사업(94.50%) ▲상습정체지점 교통흐름 완화(94.34%) 등 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정책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최우선으로 추진하게 됐다. 구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부터 인터넷 설문조사를 통해 주민이 직접 사업우선순위를 결정해 왔다.올해부터는 계속사업,신규사업을 불문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주민의견을 반영하고,주민 찬성률이 70% 이상인 사업만 예산에 반영한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길섶에서] 가을밤

    어둠 속 어머니의 호된 가르침을 받아 천하명필이 된 석봉 한호.시중에서 흔히 보는 반듯한 서체의 천자문이 바로 석봉의 것이다.그런 석봉이 가을 밤 친구들과 어울리며 흐트러지는 자신을 호방하게 노래한 건 뜻밖이다.석봉이 뜻맞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조렸을 이 시조는 빈틈없는 그의 글씨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예술적인 감동과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요즘은 술친구 찾아 당을 옮기는 정치인도 있다고 한다.각박한 세태에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술 마시며,위로하고 격려 받겠다는데 무슨 시비냐고 혜량해보지만 아무래도 석봉의 파격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만추의 계절이다.흐드러진 벚꽃 거리와 노란색 은행나무 거리 가운데 어느 게 더 운치가 있을까.세상사 어지럽지만 저녁 무렵 거리로 나가 답을 찾아보자.그리고 둥둥 떠오르는 달빛 아래 가까운 이에게 술 한잔 권하며 잠시마나 세상 시름을잊어보자. 김인철 논설위원
  • 메트로 플러스 / 도봉세무서뒤편서 낙엽축제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미아8동사무소는 다음 달 1∼2일 도봉세무서 뒤 ‘큰마을길’에서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걸으며 은행나무를 장식한 청사초롱과 불꽃축포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낙엽축제’를 연다.주민노래자랑과 먹을거리장터,낙엽거리 사진촬영대회 등도 마련됐다.980-1217.
  • 11월에 가볼만한 3곳 / 여기는 늦단풍이 한창이네

    겨울의 문턱인 11월은 나들이하기엔 어정쩡한 시기.온 국토를 수놓았던 단풍이 지고,추운 겨울에 온기를 불어넣을 눈은 아직 덮이기 전이라 마땅히 갈 곳을 찾기 어렵다.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1월의 가볼 만한 곳 3선을 소개한다.늦단풍이 아름다운 남녘의 영암 월출산과 부산 금정산,전원속의 예술고장인 양평의 바탕골예술관 및 용문사는 움츠러들기 쉬운 11월에 따뜻함과 넉넉함을 줄 만한 곳들이다. ●월출산(전남 영암)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의 영암(靈岩)이 말해주듯 영암 월출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이같은 기암괴석이 빨갛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져 연출하는 가을 경관은 사계절 중에서도 으뜸이다.여기에 산 중턱의 미왕재에 펼쳐져 있는 억새밭이 산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을 월출산의 정취를 흠뻑 느껴보려면 천황사지에서 올라가 도갑사로 내려오거나,그 반대로 가는 코스가 좋다.출발부터 정상인 천황봉(809m)에 올랐다가 다시 도갑사 도착까지 6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서울에선 호남고속도로 광산IC∼13번 국도∼나주∼영암,또는 서해안고속도로 종점(목포)∼2번 국도∼월출산 코스로 갈 수 있다.등산로 입구에 월출산파크관광호텔(061-473-6311),신라모텔(061-473-7595) 등 숙박업소가 많다.문의 영암군청 문화관광과(061-470-2241),월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61-473-5210). ●범어사와 금정산(부산 금정구) 범어사는 금정산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부산 도심속 ‘자연의 보고’로 불리는 금정산과 함께 빚어내는 단풍길과 국내 최대 규모의 금정산성(17㎞),청정마을인 산성마을 등은 정갈하고 고즈넉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당봉(801m),상계봉(638m),장군봉(727m)을 중심으로, 갖가지 전설이 담겨져 내려오는 원효봉,의상봉 등 준봉들과 나비바위,부채바위 등 기암괴석이 볼만하다.산역이 넓어 등산로가 많은데,범어사∼산성마을∼고당봉∼동래온천 코스에 가장 사람이 많다.5시간 정도 소요.해발 400m에 자리잡은 산성마을에선 도자기 만들기나,농작물 체험 교실(051-517-6848)에 참여할 수있다. 경부고속도로 구서IC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산방향으로 범어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산성마을에 산성막걸리와 흑염소 숯불구이를 맛볼 수 있는 ‘물레방아식당’(051-517-6553) 등 식당이 몰려 있는 먹거리촌이 있다.문의 부산 금정구청 문화공보과(051-519-4071). ●양평 바탕골예술관,용문사 경기 양평은 남한강,북한강 등 수려한 경관과 함께 예술적 욕구까지 충족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나들이 명소.강상,강하면,용문면 일대엔 수백명의 작가들이 작업과 전시를 하는 화실과 공방,갤러리가 즐비하다. 이중 강하면 운심리 바탕골예술관(031-774-0745)은 공연관람 및 미술작품 감상과 함께 도자기 만들기,금속공예 등 다양한 예술체험도 할 수 있는 복합예술공간.북한강변에 자리잡은 갤러리들은 대부분 카페를 겸하고 있어 중견 작가들의 미술작품 감상 및 구입은 물론 차나 식사를 즐길 수 있다.6번 국도에서 꺾어져 용문사로 들어가는 331번 도로에 들어서면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맞으며 늦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용문사 대웅전 앞엔 높이 60m,둘레 14m,수령 1100년의 은행나무가 운치를 더한다.용문산(1157m)은 경기도에선 화악산,명지산,국망봉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산.정상에서 백운봉과 진등 능선은 바윗길이 빼어나고,용각골·조계골·상원골·함왕골 등은 암반계곡으로 담과 어울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정상은 입산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우회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용문사∼안부 갈림길∼920봉∼계곡∼용문사 코스가 가족 단위로 산행하기에 적당하다.3시간 소요.문의 양평군청 지역경제과(031-770-2068). 임창용기자 sdargon@
  • 가족·연인과 단풍드라이브 3선/ 가을잎 고운 추파 사랑도 빼앗길라

    만산홍엽.보일 듯 말 듯,산 중턱을 점점이 수놓던 단풍이 계곡까지 내려왔다.들판의 은행나무,공원의 느티나무도 어느덧 노랗게,빨갛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가족 또는 연인과 어디 호젓하게 단풍의 운치를 맛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만한 곳이 없을까. 가을이면 길 양편 산자락이 온통 붉은 물이 든다는 구룡령,소문나지 않은 단풍골인 금당계곡,조림한 곳이지만 단풍의 운치만은 빠지지 않는다는 에버랜드 단풍 드라이브코스를 소개한다. ●구룡령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중에 가장 풍경이 아름답다는 구룡령.이맘때 구룡령을 넘으려면 절대 서행해야 한다.길 양편의 불타는 듯한 단풍에 눈길을 빼앗겨 자칫 사고나기 십상이기 때문.워낙 한적해 기어가듯 천천히 가도 뒤에서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차도 없다. 구룡령에 닿는 길은 크게 두 가지.먼저 영동고속도로 속사IC에서 빠져 31번 국도를 타고 운두령을 넘으면 바로 구룡령이 시작되는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 닿는다. 또 하나 새로난 아름다운 길이 있다.홍천을 지나 철정검문소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451번 지방도로.이 길을 타고 상남면까지 간 후 면 시가지 초입에서 상남초등학교 쪽으로 우회전하면 446번 지방도로다.지난 봄 완전히 포장된 이 길을 따라 가면 절경인 미산계곡을 지나 내면에 닿는다.구룡령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고개 너머 양양까지 계속 이어진다.고개를 내려오면서부터는 미천골이 이어진다.불바라기 약수와 선림원터가 있는 이곳은 활엽수가 많아 가을이면 계곡 전체가 불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문의 홍천군청 관광계(033-430-2544). ●금당계곡 오대산이나 설악산처럼 소문나지 않았지만 절벽을 휘감아 흐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인 계곡이다. 계곡 초입엔 활엽수가 다양해 단풍 색깔도 파스텔톤을 띠고 있다.계곡은 봉평면 갈림길에서 시작해 용평면·대화면을 거쳐 15㎞ 정도 이어지다가 평창강으로 빠진다.계곡 초입길은 포장이 돼 있지만,이내 비포장길로 바뀐다.하지만 길이 비교적 넓고 평탄해 승용차로도 무리가 없다. 비포장길에 들어서면서 풍광은 더 수려해진다.병풍을 두른 듯 암벽이 버티고 있는 계곡 곳곳엔 단풍이울긋불긋 수를 놓고 있다.벼랑이 높고 깊은 하류로 갈수록 단풍 빛깔은 더 곱고 진하다. 금당계곡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빠져 봉평 쪽으로 가야 한다.장평읍내를 지나 대화와 봉평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봉평 쪽으로 가다 보면 막다른 삼거리에서 금당계곡 표지판이 서 있다.삼거리에서 직진해 고개를 넘으면 바로 금당계곡이 시작된다.문의 평창군 문화관광과(033-330-2399). ●에버랜드 단풍 드라이브코스 에버랜드 외곽도로는 대부분 산등성이를 따라 만들어져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다.특히 길따라 촘촘히 심어진 가로수에 단풍이 드는 요즘이 가장 운치가 좋다. 대략 4개의 코스에서 단풍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먼저 영동고속도로 마성 톨게이트에서 에버랜드 정문까지 이어지는 5㎞ 코스.도로 좌우변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벚나무들이 2m 간격으로 심어져 있어 노랑과 빨강이 어우러진 단풍이 군데군데 심어놓은 노송과 어우러져 완연한 가을 분위기를 낸다. 다음은 에버랜드 서문에서 호암미술관에 이르는 구간으로,거리는 짧지만호수와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이 수려하다.빼곡히 들어선 은행나무·단풍나무의 화려한 색깔이 호수에 비쳐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한다.이밖에 계곡과 산자락을 끼고 있어 마치 산길을 걷는 느낌을 주는 에버랜드 숙박시설인 ‘홈브리지 힐사이드 호스텔’ 진입로,온로드 자동차 경기장인 스피드웨이 트랙 옆으로 난 스피드웨이 순환도로에서도 단풍의 제맛을 느껴볼 수 있다.문의 에버랜드(031-320-5000). 임창용기자 sdragon@
  • [녹색공간] 산감스님의 불끄기

    불교를 이야기할 때 놀라운 사실 하나는 붓다의 성스러운 일생이 항상 숲과 함께였다는 점이다.그는 숲속에서 태어나고,깨달음을 얻고,숲속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마침내 숲속에서 열반에 들었다. 1600년 한국불교도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신라 말 구산선문도 깊은 산 숲속에 자리했고,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산에 기대어 생사를 걸고 있다.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이 지은 숲속의 절집들은 숲을 지키는 산막(山幕)으로서의 오랜 역할을 다했다.절숲이 건강하게 남아 있음은 절집이 숲을 지켜온 내셔널 트러스트의 산막이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숲속 수행자들은 각 지방의 기후풍토에 맞는 숲을 유지해 국토를 푸르게 하는 데 공헌했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 나무와 꽃을 들여와 우리 숲의 다양성을 이룬 숲의 전령사들이었다.은행나무며,배롱나무며,파초며…. 수행자들의 숲을 위한 노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지금도 큰 절집에는 ‘산감(山監)’제도를 두고 숲을 지키고 있다.산감은 ‘산감독(山監督)’의 준말로,총림과 같은 큰 사찰에서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맡긴 소임이다.산감 소임은 대중스님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데,주로 사람들의 도벌을 막고,숲을 돌보고,산불을 감시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그러나 에너지 다변화로 사람들이 나무를 때지 않게 되고,숲 또한 솎아 주어야 할 만큼 울창해지면서 산감 소임도 한동안 유명무실해졌다.그래서 산감은 일없이 사하촌이나 드나들며 마을 개구쟁이들과 노는 게 소임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산감스님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개발지상주의에 의해 사찰의 자연환경이 날로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작대기 하나 들고 마을사람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그만이었지만,지금은 그게 아니다.거대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중차대한 소임으로 바뀌었다. 낙동정맥 천성산은 내원사라는 비구니 사찰이 신라 원효 때부터 지켜온 산이다.거기 가녀린 비구니 스님들이 천성산 자연을 지키기 위해 좌충우돌 설쳐대는 거대한 공룡 정부와 몸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추운 겨울 도보를 시작으로,천성산 지키기 삼보일배,정부 과천청사에서의 일인 시위,성명서 발표,일일 삼천배 등을 이끌고 있는 산감 지율스님의 뒤를 이어 종교를 초월한 많은 이들이 스스로 산감이 되고자 줄을 잇고 있다. 천성산과 사패산이 몇 해째 산불에 타고 있다.예전에 산불이 나면 몰래 나무하다가 들켜서 산감에게 곱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너나없이 열일 제쳐두고 발 벗고 나서 불을 끄러 산으로 올라갔다.그 숲이 거기 있어야 자신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개인적 이해타산에 따라 찬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자연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정치적 입장에도 우선하는 가치다.숭유배불의 살벌했던 조선왕조도 사찰의 자연환경만은 함부로 훼손하지 않았다.오히려 곳곳에 금표(禁標)를 박아 지켜주었음을 우리 시대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노 정권은 ‘재신임’ 운운하는 정치적 도박판에 환경문제를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내놓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 재 일 두레 생태기행 대표
  • 높다란 흙돌담 사이로 이방인 하멜의 숨소리…/‘하멜 유배지’ 강진 병영 역사기행

    높은 담은 예나 지금이나 부와 권위의 상징.가진 것을 지키고,위세를 부려보고 싶은 마음에서 담장을 높이 높이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남 강진군 병영에 가면 이같은 상식을 깨는 마을이 있다.자그마한 초가와 무늬만 기와집인 누추한 주택들이 2m 정도의 높은 담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병영은 또 조선 중기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이 7년간이나 머물렀던 마을로,곳곳에 이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묻어 있어 애잔함을 더한다. 지금 병영은 가을이 무르익었다.높은 흙돌담 위로 펼쳐진 새파란 가을,그림을 그리듯 하늘을 수놓은 담 위의 홍시가 나들이객을 반긴다.높다란 흙돌담 사이로 마을을 가르는 ‘한골목’엔 이따금씩 촌로 혹은 아낙네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함을 던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부릴 위세도 없으면서 담은 왜 이렇게 높이 쌓았을까?.궁금증은 마을의 역사를 들으면서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병영(兵營)이란 지명은 1417년 왜구 침입에 대비해 마천목 장군이 지은 병영성에서 따왔다.병영면 성동리 일원은 전라도 53주6진을 관할한 호남 육군 최고 지휘부가 자리했던 군사지역이었다. 높은 담은 말 탄 군사들로부터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군관이나 병사들이 수시로 말을 타고 마을 골목을 지나 인근의 수인산성으로 순시를 나갔기 때문에 아낙네가 있던 집집마다 이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담을 높게 쌓았던 것이다. 높은 담장 사이로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골목’은 마을의 중심길로,크고 긴 골목이라는 뜻.이맘때면 집집마다 담장 안에서 자란 감나무에 매달린 선홍색 홍시들이 골목길의 운치를 돋운다.예전의 흙길에서 아스팔트로 포장돼 옛모습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집들이 흙과 짚을 이겨 쌓아올린 아름다운 돌담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엔 한골목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골목을 사이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이방인 하멜 일행의 한이 서린 병영 성동리 중심엔 높이 30m,둘레 7m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800년 동안 마을의 풍상을 고스란히 품고 보아온 나무.하멜은 지금도 남아 있는 이 나무 밑의 돌에 앉아 하염없이 향수를 달래곤 했다고 그가 쓴 ‘하멜표류기’에 전해진다. 하멜 표류기를 써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상세히 알렸던 하멜 일행 32명은 타이완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배가 난파돼 1653년 제주도 모슬포에 피신했다가 13년간 조선에서 모진 고초를 겪게 된다.그중 7년간 이곳 병영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남씨 성을 받은 이들은 스님들의 도움으로 돌담 쌓기,나막신 만들기 등으로 생활했고,흉년이 들면 거리에서 춤판을 벌여 걸식으로 연명했다고 하니 그 고초가 가히 짐작이 간다. 이들중 일부는 이곳에 뼈를 묻었고,하멜을 비롯한 8명은 1966년 여수에서 탈출에 성공,나가사키를 통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멜의 자취는 병영의 흙돌담에도 남아 있다.진흙을 이겨 돌을 빗살무늬 형태로 쌓아올린 것은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독특한 방식으로,병영 주민들은 당시 하멜 일행의 담쌓기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끝인 목포나들목으로 나와 2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거쳐 814번 지방도를 타면 작전을 지나 병영면으로 갈 수 있다.광주에서 병영행 직행버스가 하루 10여차례 있다.광주에선 나주를 거쳐 영암에서 835번 지방도를 타면 갈 수 있다. 병영엔 묵을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강진이나 영암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게 좋다.영암 월출산관광호텔(061-473-6311)이 온천욕도 즐기면서 가을 풍광이 아름다운 월출산 산행도 할 수 있다.병영면사무소 인근 설성식당(061-433-1282)의 고추장 삼겹살구이(1인분 5000원)가 먹을 만하다.문의 병영면사무소(061-430-3610). 강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화제의 사이트] www.happyin.com

    날마다 쏟아지는 짜증나고 우울한 뉴스에 질렸다면 ‘해피인(www. happyin.com)’에 들어가 보자.따끈따끈한 사람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해피뉴스’에는 소박한 우리 이웃의 일상이 녹아 있다.학생과 함께 농장을 일구는 중학교 교사 이야기,졸업여행 대신 수해현장을 찾은 대학생 등.묵묵히 사랑을 베푸는 이런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인간미에 흠뻑 취하게 된다. 네티즌이 직접 올리는 ‘행복마당’의 ‘해피포토’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재치있고 신선한 사진들이 많다.예를 들어 ‘충격 은행 터는 장면’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클릭하면 대학가 게시판 지붕에 쌓인 은행나무잎을 빗자루로 털어내는 모습이 나오는 식이다.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은행강도를 재치있게 비틀었다. 해피인의 기자와 네티즌이 번갈아 띄우는 ‘행복칼럼’에는 배를 곯던 소년 시절 풋감을 맛나게 먹었던 추억,어머니에 대한 기억 등도 있다.대전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서울 중심의 뉴스에서 탈피,특색있는 지역소식에 밝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해피인’ 운영자는 “초등학생이 목숨을 버리고,1000만원 카드빚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 싫다.”면서 “행복한 기억을 되살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사이트를 꾸려가겠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 자치구, 은행 줍기행사

    “은행터실 분은 오세요.” 서울 자치구들이 은행열매 수확철을 맞아 도로변 가로수의 은행열매 줍기 행사를 마련한다.무분별한 열매채취를 막고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광진구(구청장 정영섭)는 30일 중곡사거리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향하는 왕복 2차로 긴고랑길에서 2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은행열매 줍기행사를 가졌다. 주민들은 가로변 50여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평균 1㎏ 정도의 은행열매를 주웠다. 용산구(구청장 박장규)는 2일 삼각지 용산초등학교 앞에서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까지 한강로 구간에서 오전 10시부터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털 예정이다.영등포구(구청장 김용일)도 4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행사를 마련한다.참가 주민들은 KBS본관과 동아문화센터 중간 왕복2차로 샛길에서 구청직원들이 털어놓은 은행열매를 갖고 갈 수 있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도 9일 오후 2시부터 월곡동길에서 은행줍기행사를 연다.행사에는 2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할 예정이다.지난달 29일부터 정릉길 등 5개 도로 가로수 은행나무의 열매를 채취하고 있으며,500여 그루에서 530㎏ 정도를 모아 사회복지시설 28곳에 나눠줄 예정이다. 조덕현기자 h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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