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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유전자 지문 구축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유전자 지문 구축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9일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의 은행나무 등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22그루의 유전자(DNA) 지문 구축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DNA 지문은 사람의 지문처럼 생물체 고유의 유전자 정보인데, 은행잎 하나로 어떤 은행나무의 잎인지 식별할 수 있다. 이번에 완성된 은행나무의 DNA 지문은 법적 증거자료로 인정되기 때문에 복제된 유전자원의 보존·관리뿐 아니라 도난 및 훼손 방지에 활용할 수 있다. 범죄 수사 이외에 친자 확인에도 활용할 수 있어 천연기념물 나무의 과학적인 자식 관리도 가능하다. 본래 뜻대로 나이가 많고 큰 나무를 지정하는 천연기념물 노거수는 오랜 시간 마을 및 주민과 함께해 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은행나무는 불교, 유교의 영향으로 예부터 많이 심었는데 천연기념물 노거수 가운데 가장 많은 22그루가 지정돼 있다. 산림과학원은 2013년부터 문화재청,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천연기념물 노거수의 DNA를 추출해 유전자은행을 만들고 개체별 DNA 지문을 작성하는 등 유전자원 보존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소나무, 느티나무, 곰솔, 굴참나무, 이팝나무 등 천연기념물 노거수(10종 75그루)를 대상으로 복제 나무 증식 및 DNA 지문 작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부산 회화나무, 세종청사 무궁화 동산에 둥지 틀어

    “정부세종청사에 새둥지를 틀었어요.” 부산 사하구의 구목(區木)이자 하단동 하단오거리를 지키고 있던 회화나무가 세종청사 무궁화 동산에 새둥지를 틀었다. 부산사하구는 최근 도시철도 공사 때문에 이전이 요구된 회화나무 등 6그루를 세종청사에 기증했다고 3일 밝혔다. 부산사하구는 최근 도시철도 사상~하단 구간의 건설공사를 앞두고 이곳에 있든 회화나무,은행나무 등 15종 6,445그루를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때마침 세종청사는 4461㎡ 규모의 무궁화동산을 만들면서 지방자치단체와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상징 수목을 기증받고 있었다. 사하구는 도시철도 공사로 이전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이곳에 있던 수령 50년이 된 회화나무를 기증하기로 했다. 지난 5월25일 이들 가운데 가장 수형이 우수하고 크기가 적당한 회화나무 한그루와 괴정동 회화나무 샘터공원에서 키우는 회화나무 후계목 5그루 등 모두 6그루를 기증했다. 한자어로 ‘괴목’으로 표기돼 사하구 괴정동 지명의 유래가 된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 행복수로 불리며 조선시대 선비가정에서는 정원수로 심었다. 사하구는 이런 유래를 토대로 650여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서 있는 괴정동 회화나무 샘터공원을 복원하면서 장원급제자 포토존, 소망의 담장, 학자수 꼬맹이 도서관 등을 설치해 주민들의 쉼터이자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회화나무 샘터공원은 최근 도시문제를 교육적으로 접근해 해결하는 세계연합인 국제교육도시연합(IAEC)의 워크숍 우수사례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부산시 아름다운 조경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 수지 무릎 베고 그림같은 투샷 ‘설렘 폭발’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 수지 무릎 베고 그림같은 투샷 ‘설렘 폭발’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 수지의 그림같은 투샷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2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촬영컷이 올라왔다.사진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이 흩날리는 계단에서 수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김우빈의 모습이 담겼다. 다정하게만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들을 헤어지게 만드는 어린시절의 ‘가슴 아픈 악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이에 네티즌들은 “같이만 있어도 화보네”, “드라마 정말 기대된다”, “빨리 보고 싶다”등 반응을 보였다.한편 수지, 김우빈 주연의 KBS2 새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는 오는 7월 6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그리 너른 숲은 아닙니다. 작정하고 찾을 만큼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외려 볼품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경북 의성의 법계도림 이야기입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이 남긴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미로 숲입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미로가 말하려는 건 세상을 사는 이치입니다. 늘 되뇌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했던 그런 이치들 말입니다. 미로 숲 위는 고운사입니다. 시대와 반목했던 ‘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는 절집입니다. 와가들이 밀집한 사촌마을도 예서 멀지 않지요. 의성엔 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기웃댈 만한 풍경들이 꽤 많습니다. 법계도림은 의상(625~702)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 이하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숲이다. 화엄사상의 요체를 210개의 글자를 이용해 간결한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 미로로 만들었다. 쉽게 말해 국내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의상의 화엄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한 숲이 바로 법계도림이다. ●의상이 설계한 법계도… 여래의 一音 나타내 법계도는 ‘법’(法) 자에서 시작해 ‘불’(佛) 자에서 끝난다. 한데 의상은 왜 이 같은 미로 형태의 그림시를 그렸을까. 그는 자신이 남긴 몇 가지 책을 통해 자문자답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글이 하나의 길을 이룬 건 여래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굴곡진 까닭은 가르침을 받을 중생의 능력과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고,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수행에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면사각의 형태를 띤 것은 자비를 발현하고 불도(佛道)에 드는 방법을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계도림을 설계한 이는 고운사 주지인 호성 스님이다. 그는 법계도림을 활용해 살아 있는 목탑을 만들려 했다. 법계도림의 중심부에 큰 은행나무를 하나 세우고 주변에 키 작은 단풍나무들을 심어 놓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레 탑 형태의 숲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법계도림에 들어서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잦다. 단풍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찾는 이 드문 탓에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걷기에 불편하다 보니 개선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무는 죄다 뽑고 내년쯤 다른 나무를 심을 예정이란다. 향나무처럼 위로 곧추 자라 길을 쉽게 낼 수 있는 수종이 대체재로 꼽힌다. 한데 불현듯 딴생각이 든다. 이처럼 좁고 불편한 길은 절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잘 정돈된 미로는 놀이공원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길이 다소 불편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이를 하심(下心)을 종용하는 심모원려라 볼 수는 없을까. 작은 티끌 안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좁고 불편한 길을 성찰의 자세로 돌아보는 게 외려 법계도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계획대로라면 붉고 푸른 단풍나무가 노란 민들레꽃과 어우러진 소박한 길은 내년 이후엔 볼 수 없다.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 남은 ‘고운사’ 법계도림 위는 고운사다. 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를 딴 절집이다. 60여 말사를 거느린 큰 절집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주차료나 입장료 한 푼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금강송과 굴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 1㎞쯤 이어진다. 이를 ‘천년숲길’이라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족할 길은 그러나 심연으로 들어가는 소로처럼 깊다. 늙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천년간 봉인된 고운의 체취가 서린 듯하다. 천년숲길을 나와 일주문, 사천왕문 등을 거푸 지나면 가운루(駕雲樓)에 닿는다. 최치원이 건축에 힘을 보탰다는 건축물로, 고운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중 하나다. 최치원이 원래 지었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다. 멍에를 쓰듯, 평생 불성(虛)을 짊어지고(駕) 가라는 뜻이란다. 이를 현재의 현판으로 바꿔 쓴 이는 고려 공민왕이다.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진 공민왕이 전국을 유람하다 고운사에 들러 어필을 남겼다고 한다. 고운사에는 유교와 도교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우화루 뒤편의 ‘만세문’은 솟을대문 모양이다. 절집 건물치고는 독특한 형태다. 만세문 뒤는 연수전이다. 조선 왕실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던 건물이다. 안내판은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떠받들던 시대에 사찰 안에 이렇듯 왕실과 관련되는 건물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고 적고 있다. 식당 건물엔 호랑이 벽화가 보관돼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호랑이 눈과 마주하게 된다는 벽화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가르침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팔승일경’… 빙계계곡의 웅숭깊은 풍경 고운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 있다. 1390년께 기와집들이 숲을 이루던 사촌마을 주변에 조성된 비보림(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가 약한 곳에 조성한 숲)이다. 현지 주민들은 흔히 ‘가리쑤’라 부른다. 바람을 가리는 ‘쑤’(숲)란 뜻이다. 한실천 제방을 따라 800m 정도 이어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밀집돼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가로숲 안쪽의 사촌마을에선 1582년 지은 만취당(보물 1825호) 등의 고택과 만날 수 있다. 의성 남쪽의 빙계계곡은 오래전부터 의성에서 가장 빼어난 경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계곡에 들면 ‘경북팔승일경’(慶北八勝一景)이라는 표지판을 흔히 본다. 경북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 가운데 첫째가는 곳이란 뜻이다. 자신감과 도도함이 글자 곳곳에서 느껴진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이런 도저한 표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거무튀튀한 절벽이 2㎞가량 돌아가며 만든 풍경만큼은 제법 웅숭깊다. 빙계계곡의 자랑거리는 대략 세 가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온다는 얼음 구멍 빙혈(氷穴, 천연기념물 제527호)과 풍혈(風穴), 그리고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이다. 셋 모두 계곡 왼쪽 마을에 몰려 있다. 얼음동굴에 들면 서늘한 기운이 뒷목을 스친다. 실제로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열린다고 한다. 빙혈 바로 위의 풍혈에서도 에어컨 같은 바람이 나온다.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따뜻한 김이 솟는다’더니, 그리 과장 섞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는데, 빙계계곡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인근의 금성산 고분군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릉 등 고분 몇 기가 남아 있다. 조문국은 신라보다 앞선 기원전 1세기 무렵, 지금의 금성면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고대 부족국가다. 왕릉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고분군 끝자락의 조문국 박물관에서 조문국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초여름의 명물로 꼽히는 금성산 고분군 앞 작약꽃밭은 5월 말~6월께 만개한다. 글 사진 의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고운사는 안동과 경계인 의성 동북쪽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의성 방면 5번 국도로 갈아탄 뒤 망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점곡 방면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8㎞쯤 가면 된다. 사촌마을과 사촌가로숲, 의성 소계당 등 볼만한 풍경들이 지척에 널렸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길 권한다. 빙계계곡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있다. 조문국의 흔적이 남은 금성산 고분군, 조문국 박물관, 산수유 마을 등을 묶어 돌아보는 게 좋다. 여느 여행지와 달리 고운사, 조문국 박물관 등 관광지들이 죄다 무료다. 입장료 걱정 없이 다녀도 좋겠다. →맛집:의성 하면 마늘 먹인 소가 대표 먹거리다. 군청 인근 의성마늘목장(830-6283)과 안계면의 마늘목장한우타운(862-8592) 등이 이름났다. 탑산약수온천이 있는 봉양면에도 의성마늘소먹거리타운이 조성돼 있다. 의성마늘이야기(834-8843)는 마늘로 맛을 낸 백반, 묵은지찜 등을 내는 집이다. 의성읍내에 있다. →잘 곳:군청에서 운영하는 금봉산 자연휴양림(833-0123)이 깨끗하다. 금성면 산운마을의 운초당, 의성소우당, 점곡면 사촌마을의 초해고택, 후산정사, 안동김씨 종택 등에서 한옥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군청 문화관광과 830-6549.
  • 나무 마음으로 봅니다 눈으로 느낍니다

    평생 나무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이 설레는 ‘나무 인문학자’의 10개월에 걸친 나무 답사 동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길을 안내해 주지만 사람 눈높이의 나뭇가지는 살펴보지 못해 종종 가지에 찔리거나 부딪치는 경험을 했던 피아니스트는 평생 나무를 연구해 온 나무 학자와의 첫 만남에서 ‘나무는 장애물’이라고 스스럼없이 답했다. 피아니스트 김예지(36). 두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녀는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로 선발되는 등 장애를 딛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녀는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에 입학했고, 독주회와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당당히 연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56) 인하대 겸임교수. 그는 김예지를 만난 후 ‘눈으로 보는 나무’가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으로 나무를 느끼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걸친 두 사람의 남다른 동행 이야기는 ‘슈베르트와 나무’(휴머니스트)라는 제목의 신간에 오롯이 담겼다. “예지씨를 만나고 난 후 시각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온 나무와의 소통으로는 나무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죠.”(고) “나무는 여전히 제게는 장애물이에요. 하지만 나무와 음악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무의 생명의 기운이 치열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잎이나 꽃이 앙증맞게 돋았다가 시들어 버리는 나무처럼 음악도 끊임없이 변하거든요.”(김)두 사람은 풍성한 낙우송이 여름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숙명여대 캠퍼스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예지씨의 경기 여주 시골집, 충북 괴산 오가리, 천리포수목원 등을 차례로 다니며 백송, 능소화, 은행나무, 느티나무, 치자나무, 자귀나무 등을 만났다. 예지씨는 “피아노를 연주하다 여리게 쳐야 하는 순간에는 자귀나무 꽃의 부드러운 꽃술을 만졌을 때의 느낌을 떠올린다”며 “제 음악을 통해 나무의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생생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말했다.고 교수는 나무에서도 피아노와 같은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거든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신호가 있어요. 소리도 있죠.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드러나요. 이른 봄 청진기를 나무 줄기에 대보면 마치 사람의 심장에서 온몸에 맑은 피를 밀어내는 쿵쾅거림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죠. 특히 다른 나무보다 줄기 안에 물을 많이 품은 단풍나무들은 생명의 고동 소리가 더 우렁차거든요.”고 교수는 예지씨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무를 탐색하는 데 차츰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손으로 나무 껍질을 어루만지며 딱딱한 열매와 말랑말랑한 꽃봉오리 향기를 맡고, 나무와 자신과의 거리를 감지하며 이전에 몰랐던 나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고 교수는 이를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사유하는 예지씨의 방식이며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사랑’이라고 말했다. 예지씨는 고 교수와의 동행을 통해 조금씩 변했다. 나무를 알게 되면서 음악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당당하게 말하게 됐다. 연주회에 나무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 어떻겠느냐는 고 교수의 난데없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시각과 청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연을 생각하게 됐다. 두 사람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시각 장애라는 건 큰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죠. 그동안 시각으로만 봐 온 나무들을 다시 처음부터 찾아볼 생각이에요. 예지씨가 바라본 나무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거든요.”(고)“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날마다의 삶을 열심히 사니까 다음날이 오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가진 시각 장애는 평생 극복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김)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나무 마음으로 봅니다 눈으로 느낍니다

    나무 마음으로 봅니다 눈으로 느낍니다

    평생 나무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이 설레는 ‘나무 인문학자’의 10개월에 걸친 나무 답사 동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길을 안내해 주지만 사람 눈높이의 나뭇가지는 살펴보지 못해 종종 가지에 찔리거나 부딪치는 경험을 했던 피아니스트는 평생 나무를 연구해 온 나무 학자와의 첫 만남에서 ‘나무는 장애물’이라고 스스럼없이 답했다. 피아니스트 김예지(36). 두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녀는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로 선발되는 등 장애를 딛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녀는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전형으로 숙명여대에 입학했고, 독주회와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당당히 연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56) 인하대 겸임교수. 그는 김예지를 만난 후 ‘눈으로 보는 나무’가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으로 나무를 느끼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걸친 두 사람의 남다른 동행 이야기는 ‘슈베르트와 나무’(휴머니스트)라는 제목의 신간에 오롯이 담겼다. “예지씨를 만나고 난 후 시각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온 나무와의 소통으로는 나무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죠.”(고) “나무는 여전히 제게는 장애물이에요. 하지만 나무와 음악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무의 생명의 기운이 치열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잎이나 꽃이 앙증맞게 돋았다가 시들어 버리는 나무처럼 음악도 끊임없이 변하거든요.”(김) 두 사람은 풍성한 낙우송이 여름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숙명여대 캠퍼스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예지씨의 경기 여주 시골집, 충북 괴산 오가리, 천리포수목원 등을 차례로 다니며 백송, 능소화, 은행나무, 느티나무, 치자나무, 자귀나무 등을 만났다. 예지씨는 “피아노를 연주하다 여리게 쳐야 하는 순간에는 자귀나무 꽃의 부드러운 꽃술을 만졌을 때의 느낌을 떠올린다”며 “제 음악을 통해 나무의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생생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나무에서도 피아노와 같은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거든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신호가 있어요. 소리도 있죠.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드러나요. 이른 봄 청진기를 나무 줄기에 대보면 마치 사람의 심장에서 온몸에 맑은 피를 밀어내는 쿵쾅거림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죠. 특히 다른 나무보다 줄기 안에 물을 많이 품은 단풍나무들은 생명의 고동 소리가 더 우렁차거든요.” 고 교수는 예지씨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무를 탐색하는 데 차츰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손으로 나무 껍질을 어루만지며 딱딱한 열매와 말랑말랑한 꽃봉오리 향기를 맡고, 나무와 자신과의 거리를 감지하며 이전에 몰랐던 나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고 교수는 이를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사유하는 예지씨의 방식이며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사랑’이라고 말했다. 예지씨는 고 교수와의 동행을 통해 조금씩 변했다. 나무를 알게 되면서 음악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당당하게 말하게 됐다. 연주회에 나무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 어떻겠느냐는 고 교수의 난데없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시각과 청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연을 생각하게 됐다. 두 사람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시각 장애라는 건 큰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죠. 그동안 시각으로만 봐 온 나무들을 다시 처음부터 찾아볼 생각이에요. 예지씨가 바라본 나무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거든요.”(고)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날마다의 삶을 열심히 사니까 다음날이 오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가진 시각 장애는 평생 극복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인간 안에 웅크린 惡의 속살 벗겨내고 싶었다”

    “인간 안에 웅크린 惡의 속살 벗겨내고 싶었다”

    충격적인 패륜범죄가 ‘모티브’ 이번엔 악인이 객체 아닌 주체 “불편한 이야기 타협 않고 쓸 것” 다음 작품은 ‘재난 판타지’될 듯 인물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정유정(50) 작가. 그가 이번엔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났다. 3년 만에 발표한 새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 얘기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 내는 작품마다 독보적인 상상력을 부려온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란 ‘자기 갱신’일 터. 누적 판매 80만부라는 독자들의 달뜬 기대에 부응하려면 밀도는 더 치밀하게, 설정은 더 극단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태어난 주인공이 ‘유진’이다. 상위 1%의 사이코패스.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포식자)라 불리는 순수 악인이다. 전작에서도 전례 없는 악인의 얼굴을 빚어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그’라는 3인칭에서 ‘나’라는 1인칭으로 악인을 자기 안에 불러들이며 악의 객체에서 주체가 됐다. “악의 속살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안간힘을 썼어요. 이야기를 세 차례나 부쉈다 다시 쓴 것도 그래서였죠.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남에게 절대 말할 수 없는 어두운 숲이 있어요. 그게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면 내면의 악, 타인의 악, 사회의 악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죠. ” 11일 만난 작가는 이번 주인공이 전작의 악인 캐릭터를 모두 뭉친 ‘인생 최고의 적’이라 했다. “못되고 치졸한 ‘내 심장을 쏴라’의 점박이, 남성적이고 섹시한 ‘7년의 밤’의 오영제, 악동이지만 버림받아 짠한 ‘28’의 박동휘 등 이들의 성정을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복합적인 캐릭터예요. 그러다 보니 인생 최고의 적이 된 거죠.” 작가의 머릿속에 주인공 유진이 착상된 것은 1994년 박한상 사건 때문이다. 미국 유학에서 도박 빚을 지고 돌아온 스물셋 청년이 부모를 수십 차례 칼로 찔러 죽인 패륜 범죄. 그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악(惡)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됐다. 적수를 제대로 만들어내려 작가는 6개월간 취재와 공부에만 매달렸다. 유영철, 정남규, 조두순 등 국내외 대표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료 수집부터 프로파일러 인터뷰, 범죄·진화심리학 책 읽기까지 섭렵했다. 유령도시 같은 소설의 배경인 군도는 초창기 인천 송도와 최근 토막 시신이 발견된 안산 시화호를 합쳐 구축한 신도시다. 스물여섯 청년 유진은 비릿한 피냄새에 잠을 깬다. 약을 끊으면 찾아드는 발작을 기다리던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를 찾는 의형제 해진이다. 유진은 주방 앞 피웅덩이에 잠긴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어머니를 살해한 ‘누군가’를 밝히는 사흘을 치밀하게 진술한다. 과거가 거듭 교차하며 실마리를 하나씩 던진다. 정유정은 부사, 형용사, 접속사 등을 허락하지 않는 특유의 짧지만 정밀한 문장으로 극한의 결말까지 치닫는다.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잔혹한 포식자가 되었는지, ‘나’의 핍진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개연성이 부여되고 연민마저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의 감정도 귀신같이 알지만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서술이란 점에서 자기 합리화, 거짓말도 가능해요. 그런 왜곡 서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1인칭을 선택한 거고,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제가 능숙하게 거짓말을 잘 한 것이겠죠.”(웃음) 최상급의 악인을 만들어낸 작가는 “더이상의 사이코패스는 없을 것”이라 했다. 차기작은 재난 판타지라는 귀띔과 함께. 하지만 인간 본성을 꿰뚫는 특유의 불편하지만 마력 있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요. 행복하고 감동적이고 편안한 이야기죠.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예요. 그건 절대 타협이 안 돼요. 2~3년 외롭게 쓰려면 제 가슴이 먼저 뛰어야 하거든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新 국토기행] 한옥의 멋… 한식의 맛… 한번에 通

    [新 국토기행] 한옥의 멋… 한식의 맛… 한번에 通

    <볼거리> 한국관광 으뜸명소·국제슬로시티·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통문화체험도시…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한 사통팔달 전북도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는 도시다. 한옥, 한식, 한지 등 ‘한스타일 콘텐츠’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관광도시다. 2010년 ‘한국관광의 별’과 ‘국제슬로시티’, 2011년 ‘한국관광 으뜸명소’,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망도 갖췄다. 호남·서해안고속도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전주~순천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통팔달이 됐다. 전라선 KTX도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 전주는 맛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전주비빔밥과 한정식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이다. 인구 65만명, 2개 구청과 33개 동으로 이뤄진 전주시는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미래 첨단산업 발전에도 주력하고 있다. 탄소산업은 전주가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분야다. ●랜드마크 전국 유일 한옥마을… 사람온기 품은 700여채 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볼 수 있는 전주의 랜드마크다. 700여채의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선 한옥마을은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군이다. 주민들이 실제 사는 한옥으로 사람의 냄새와 숨결, 온기를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한옥마을 관광객은 900만명, 올해는 1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전주성 안으로 진출하자 이에 반발한 전주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다. 고래등 같은 기와 능선과 키 작은 담장을 끼고 도는 골목길이 살아 있어 고향집 풍경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한옥마을 안에는 고려시대 창건된 전주향교, 최명희 문학관, 전통문화관, 한옥생활체험관, 한방문화센터, 강암서예관, 교동아트센터 등 곳곳에 볼거리가 풍성하다. 호남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은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한옥마을에서 만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배경이다.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전주천 상류의 남천교,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 한벽당도 한옥마을과 연계된 볼거리다.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갈 때 야연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옥마을 남동쪽 치명자산은 신유년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유항검의 가족 7명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꽃길이 이어진다. 정상 암벽에는 모자이크 벽화로 설계된 성당이 건립돼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의 유산 품은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은 건물이다.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됐다. 입구에는 말에서 내리는 곳을 표시한 ‘하마비’가 눈길을 끈다.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도록 하고 외인들의 출입을 금한 표시다.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돼 있다.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을 모신 어진박물관도 있다. 현재 어진은 고종 9년(1872년)에 기존의 낡은 어진을 불태워 묻고 서울 영희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본떠서 그린 것이다. 어진은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차려입은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모습이다. 경기전은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가 설치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세종 21년(1439년)이다. 경기전 내 수령이 4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 그늘이 좋은 느티나무, 배롱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등도 볼거리다. ●밤에 더 아름다운 풍남문과 남부시장 전주읍성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보물 제308호다. 풍남문이란 이름은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 빗대어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른 것에 기인한다.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다. 문류의 1층에 앞뒤로 4개씩 세워진 높은 기둥이 위로 이어져 2층의 변두리 기둥이 되도록 했다. 이런 기둥 배치는 예가 많지 않아 건축학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월부터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9시에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펼쳐져 야간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풍남문을 휘감고 형성된 남부시장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조선 3대 시장이었던 남부시장은 800여개 점포가 들어선 전통시장이다. 한복, 가구, 먹거리 등 다양한 상품이 판매된다. 젊은이들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뛰어든 청년몰과 예쁜 공방이 들어선 하늘정원은 배낭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명소다. ●7월이면 10만㎡ 연못 펼쳐지는 연꽃의 향연… 덕진공원 덕진동 전북대 옆에 조성된 전주의 대표 관광지다. 10만㎡의 연못 중 절반이 연꽃 군락지다. 7월이면 매년 연꽃의 향연이 장관을 이룬다. 덕진연못은 고려 때 풍수지리 때문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동국여지승람은 전주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북쪽만 열려 있는 탓에 땅의 기운이 낮아 제방으로 이를 막아 지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다고 적고 있다. 대부분 저수지가 농사용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유래가 독특하다. 호수 주변 산책로와 잘 가꿔진 조경수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주변에 생태공원 오송제, 건지산 편백숲,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동물원, 체련공원 등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4월 마지막주 전주국제영화제 열려 관광객들은 한옥마을 일대를 많이 찾지만 전주의 젊은이들은 ‘걷고 싶은 거리’와 ‘영화의 거리’에 몰린다. 루미나리에를 따라 연결된 보행자 길로 전주의 중심 타운이다. 쇼핑, 영화, 먹거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비빔밥의 본향… 반찬만 50가지… 황홀한 막걸리 ●30가지 천연재료 듬뿍… 전주 대표음식 비빔밥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콩나물, 고추장, 참기름 등 30여 가지 천연재료가 한 그릇에 들어가지만 어느 것 하나도 고유한 색깔이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룬다. 사골육수로 밥을 짓고 식지 않도록 데운 유기나 돌솥에 담아낸다. 구수하면서 알싸하고 쩍쩍 달라붙는 맛에 눈이 절로 감기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각종 나물류와 하얀 쌀밥, 육회, 황포묵, 고추장, 참기름 등이 어우러져 풍미와 식감이 미각을 자극한다. 전주명인 1호로 지정받은 김년임씨가 운영하는 ‘가족회관’은 푸짐하면서 깔끔한 밑반찬이 특징이다. ‘성미당’은 고추장을 넣고 미리 비벼 유기그릇에 담아낸다. ‘고궁’과 ‘한벽루’는 깔끔하면서 소담스럽다.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푸짐… 육해공 산해진미 퍼레이드 전주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반찬이 특징이다. 백반 큰 상은 반찬이 50가지를 넘는다. 산, 바다, 강, 들에서 나오는 산해진미가 모두 모여 있다. 서해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된 풍성한 곡식과 채소, 산간지대에서 나오는 향긋한 나물류에 손맛이 더해져 상을 채운다. 신선로, 탕과 찌개, 나물류와 젓갈 등은 모두 전통의 맛을 자랑한다. 양념을 아끼지 않은 반찬류는 상큼하고 맛깔스럽다. 전주한정식은 풍성함에 훈훈한 인심까지 더해져 식도락가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상차림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발길을 돌리며 아쉬워 눈물짓는다는 말이 전해온다. ●호남평야 쌀로 빚은 막걸리… 골목마다 막걸릿집 성업 전주막걸리는 푸짐한 안주가 특징이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의 속살로 빚은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켜도 타지방 백반만큼 기본 안주가 제공된다. 주전자를 추가할 때마다 특별 안주가 코스별로 따라와 식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전주 막걸리는 마셔도 취하고 마시지 않아도 취한다’는 말은 보기만 해도 황홀한 안주 세례 때문이다. 서신동, 삼천동, 경원동, 효자동 등에 막걸리 골목이 유명하다. 골목마다 50~70곳의 막걸릿집이 성업 중이다. ‘가맥’(가게 맥주)은 전주에만 있는 슈퍼형 카페다. 맥주와 안주를 슈퍼마켓에서 사 가게 한쪽에 마련된 탁자와 의자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다.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가게에서 삼삼오오 모여 마시기 시작한 게 전주만의 술 풍속으로 자리를 굳혔다. 갑오징어, 황태, 계란말이 등 안주를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서목태로 키운 전주콩나물 아삭아삭한 ‘콩나물국밥’ 해장국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콩나물을 주원료로 갖은 양념을 곁들여 끓여낸다. 얼큰하면서 개운하고 자꾸만 숟가락이 가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쥐눈이콩으로 불리는 ‘서목태’로 기른 전주콩나물은 아삭아삭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질기지 않고 연하며 숙취해소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뚝배기에 뜨겁게 끓인 전통 콩나물국밥과 밥을 뜨거운 육수에 말아서 내는 남부시장식 국밥이 있다. 계란은 뜨거운 콩나물국에 풀어서 함께 먹거나 수란을 선택할 수 있다. 수란은 스테인리스 공기에 참기름을 두르고 반숙 형태로 제공된다. 수란에 뜨거운 콩나물국밥 국물을 끼얹고 휘휘 저어 훌훌 마시면 영양에도 좋고 속풀이도 그만이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끓인 ‘모주’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뚝배기에 민물고기 넣어 끓인 전주식 매운탕 ‘오모가리’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다. 민물고기를 뚝배기에 넣어 끓인 매운탕을 오모가리탕이라 부른다. 메기, 피라미, 동자개, 모래무지 등을 시래기와 함께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싱싱한 민물고기와 각종 채소, 다진 양념을 적당히 섞어 보글보글 끓인 오모가리탕은 비리지 않으면서 알싸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양념이 배어 있는 물고기 맛도 담백하고 고소하다. 한옥마을 외곽 전주천변에 오모가리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도봉 8경 돌면서 도장 꾹~

    도봉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8곳을 돌면서 도장 찍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스탬프 투어가 시작된다. 구는 참여형 관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봉 역사문화관광벨트’ 스탬프 수첩을 제작했다고 19일 밝혔다. 관광도장을 받을 수 있는 지역 8대 명소는 함석헌 기념관, 둘리뮤지엄, 김수영 문학관, 원당샘공원,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묘,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간송 전형필 가옥 등이다. 수첩에는 이들 8대 명소의 소개와 약도가 있어 쉽게 스탬프 투어에 나설 수 있다. 스탬프 수첩은 관광 코스의 양끝에 있는 함석헌 기념관과 간송 전형필 가옥에서 받을 수 있다. 그 외 곳에서는 자유롭게 도장을 찍으며 관람 가능하다. 따로 건물이 없는 원당샘공원과 방학동 은행나무는 김수영 문학관에서,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는 간송 전형필 가옥에서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총거리 약 7㎞인 도봉 역사문화관광벨트는 조선의 역사(연산군묘)부터 일제강점기(간송 전형필 가옥), 근현대사(김수영 문학관)까지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관광코스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길섶에서] 까치 마음/황수정 논설위원

    속도의 시절이다. 허름한 담벼락에라도 첫 꽃을 터뜨렸으면 주인공, 간발의 차로 쏟아지게 피어 봤자 들러리. 매정한 사정을 봄꽃들이 알고 있으니 죄다 속도전이다. 어제 피었나 싶더니 힘없는 봄바람이 시비만 걸어도 오늘은 제 풀에 항복, 무더기 낙하. 목련, 벚꽃, 안 그런 꽃이 없다. 심지 없는 봄꽃들. 봄 흥(興)과 봄 근심 사이를 헤맸다는 옛 시인들 마음을 알겠다. 팥죽 끓는 마음은 계절 탓이다. 짧아 감질나는 봄꽃의 생애 탓, 초목들 태깔에 변화무쌍하라 부추기는 봄볕 탓이다. 집 앞마당은 까치들 차지다. 뭘 기다리는지 온종일 뱅뱅거린다.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 꼭대기에 옴팍하게 들앉은 까치집의 주인장들. 요란하게 꽃 터지는 나무에는 아예 둥지 틀지 않는 뚝심의 주인공들. 엄동에도 마당을 떠난 적 없는 텃새한테 꽃나무는 일없다. 제비가 강남을 다녀왔든 말든 남의 일이다. 짙어질 잎만 기다린다. 둥지 품어 줄 무성한 잎. 제자리 지키는 침묵으로도 득의의 삶이다. 일상을 지키는 일이 버거워 온탕냉탕 조울증, 봄바람에 팔랑귀. 내 마음, 까치 마음을 몇 번이나 저울에 올려 보는 봄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아파트 옆 나무가 들여다본 가족 표정은

    [이주의 어린이 책] 아파트 옆 나무가 들여다본 가족 표정은

    나무처럼/이현주 지음·그림 책고래/40쪽/1만 2000원 고층 아파트 일색인 최근 도심 아파트의 조경은 그림으로 그린 듯 완벽하다. 하지만 자연미보다는 인공미가 두드러져 그리 정이 가지 않는다. 수십 년은 묵은 아파트는 대부분 저층, 겉은 낡고 허름하다. 그러나 세월만큼 키와 몸피를 키운 나무들이 아파트 옥상을 넘어 볼 듯 사람과 건물을 울창하게 품는다. ‘나무처럼’을 읽다 보면 후자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5층짜리 아파트 곁에 열 살 묵은 은행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나무는 고개를 슬며시 내밀어 창문 안을 빠끔 들여다본다. 한 뼘 두 뼘 키가 자라나면서 나무가 보는 풍경과 듣는 소리는 다채로워진다. 1층 피아노 교습실 아이들이 재재거리며 노는 모습, 나무를 화폭에 남기는 아저씨의 능숙한 손길, 다섯 강아지의 아빠 콩이의 알콩달콩한 일상, 혼자 가족들의 사진을 보며 어둠 속에 잠겨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 진회색 시멘트에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옥상까지…. 나무가 건너다보는 풍경은 결국 우리 생의 어느 단면들이다. 행복한 웃음이 넘치다가도 느닷없이 덤비는 슬픔에 휘청인다. 설렘에 가득 차 있다가도 발 디딜 데 없는 막막함에 엎드리고 만다. 이토록 아름답고 애잔한 우리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 갈피마다 잔잔하게 흐른다. 마지막 장면은 결국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가치를 일깨우는 듯하다. 작가는 과장하지 않은 부드러운 선과 색으로 이뤄진 그림으로 이야기를 담담히 채워 나간다. 2012년 볼로냐 라가치상(오페라프리마 부문·신인상)을 받은 이현주 작가가 4년 만에 펴낸 신작이다. 4세 이상.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강릉은 내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강릉은 내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윤후명(70) 작가에게 1978년은 ‘악전고투의 해’였다. 문학에 대한 갈증과 돌파구 없는 빈곤이 그를 그악스럽게 내몰았다. 1977년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가가 되기로 한 그는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지 않으면 제주 바다에 몸을 던질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 각오로 원고지 앞에 엎어져 소설을 써내려갔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 ‘산역’의 탄생 배경이다. 시와 소설의 경계,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윤후명 문학’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가 내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그간의 문학 여정을 모은 소설 전집(12권·은행나무)을 펴낸다. 그 첫 권인 소설집 ‘강릉’이 최근 출간됐다. 강릉은 그가 뿌리를 내린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다. 여덟 살에 강릉을 떠났다가 지난해 11월 강릉 문화작은도서관의 명예관장이 되면서 다시 고향에 자리잡았다. 작가는 62년 만에 돌아간 고향을 무대로 쓴 신작 단편 9편과 등단작 ‘신역’ 등 10편을 이번 소설집에 들여보냈다. “강릉은 소설뿐만 아니라 제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소설가란 유년을 해석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번 소설은 강릉의 자연과 역사를 말하며 그곳에 사는 삶들의 뿌리를 우리 민족의 뿌리로 연결하려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62년 만에 다시 돌아간 강릉의 옛날 골목에서 오래전 썼던 낙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정도로 발전이 더디다는 얘기죠. 강릉에서의 기억들이 토막토막으로 남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 토막 기억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었지요.” “이 소설집에 다른 제목을 단다면 ‘강릉 호랑이에 관한 소설’일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강릉 호랑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강릉 호랑이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의 주인공으로, 머리 감는 처녀를 물어가 장가를 든 호랑이가 매년 나무로 변신해 처갓집을 찾아온다는 설화가 그 배경이다. “지금까지 해온 문학을 이번 전집에 모으려고 합니다. 강원도는 옛날부터 버려진 땅으로 취급된 고립된 곳이죠. 거기에 제 문학을 심어 뭔가 추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하면 강릉 호랑이입니다. 부잣집 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옛날 외할머니께도 듣던 이야기예요. 제 문학을 통해 우리 안에 잊혀져가는 세계, 즉 호랑이가 상징하는 북방 민족의 혼, 야성의 힘을 재현해낼 수 있겠다 싶었죠.” 강릉 호랑이를 여러 각도로 비추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전작들에서처럼 늘 길 위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강릉을 찾아온 알타이족 음유 시인에게 바다를 보여주며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려 하고(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 고향 바다의 방파제에 다녀온 뒤 호랑이밥이 되고 머리만 남았다는 처녀의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방파제를 향하여). 하지만 이는 결국 ‘나’로 회귀하는 방황과 탐구, 꿈의 여정이다. 소설 전집은 내후년 완결될 예정이다. “열두 권이지만 결국은 한 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고, 작가가 여러 책을 쓴다 해도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만 얘기하거든요. 그러니 제가 쓰는 모든 소설이 하나의 소설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나무로 돌아와 고마워”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

    “푸르고 예쁜 나무로 다시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와 줘서 고맙다. 사랑해.” “항상 널 가슴에 새기며 기억할게.” 지난 9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약 4.16㎞ 떨어진 임회면 백동리 무궁화동산의 300여 그루의 은행나무 벽에 세월호 희생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노란색 리본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1주일 앞둔 이날 할리우드 여배우 오드리 헵번 가족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억의 숲’과 ‘기억의 벽’이 완공됐다. ‘기억의 숲’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천 년을 살아가며 가을마다 노란색 단풍을 물들이는 은행나무로 조성했다. 은행나무 숲 속에 자리한 ‘기억의 벽’은 ‘ㅅ’자 모형의 스테인리스 조형물로,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졌다. 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글,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러의 숲 조성 제안 배경, 기억의 숲 조성 사업 기부자 명단 등도 담겼다. 벽의 총 길이는 416㎝로 세월호 참사 발생일인 4월 16일 뜻한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제작한 벽의 세 개의 꼭짓점 높이는 476㎝, 325㎝, 151㎝로 각각 세월호의 총 탑승객 수, 단원고 학생 탑승객 수, 일반인 탑승객 수를 상징한다. 기억의 숲은 아동 인권과 빈곤 등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션 헵번 페러가 나무 심기 사회적기업인 ‘트리 플래닛’에 제안했고, 트리 플래닛이 전국민적 모금 운동으로 2억여원의 사업 자금을 마련해 조성했다. 션 헵번 가족도 5000만원을 보탰다. 이날 완공식에는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21)과 손자 아돈 헵번(20), 세월호 실종자·희생자 가족, 트리플래닛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추모 공연, 기념사, 숲 시설물 소개, 기억의 벽 제막식, 수목에 메시지 걸기, 편지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희생자 김도언양 어머니는 편지 낭독을 통해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의 꿈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그날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엠마 헵번은 “1년 전 형용하기 힘든 이 비극을 아주 서서히나마 치유해가길 바라는 마음에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다”며 “이 숲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굳세지고, 장대하게 자라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가자도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내용 등의 글을 촘촘히 심어진 은행나무에 걸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 조선통신사 외교의 징검다리였던 섬, 일제강점기의 한恨이 서린 섬, 조선 마지막 황녀의 흔적이 남은 섬. 대마도를 여행한 시간은,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이었다. 그 섬을 찾는 이유 부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닿는다. 일본에서는 쓰시마つしま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겐 대마도로 더 익숙한 섬이다.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데, 거리로는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여서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그래선지 여권을 들고 출국심사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영 얼떨떨하다. 그래도 외국은 외국이라 면세 쇼핑의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엔 양손에 바리바리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뱃삯만 내면 되니 부산 사람들은 면세 쇼핑을 위한 당일치기 대마도 여행을 자주 한단다. 멀미약을 입에 털어 넣고 꾸벅꾸벅 졸았더니 금세 도착이다. 배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이 민망할 정도로 금방이다. 거리 분위기는 영락없는 일본 시골마을인데, 가는 곳마다 온통 한국어 표지판이라 한국 같기도 하다. 식당과 호텔 직원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한국말을 구사하고, 주요 관광지마다 있는 조그마한 커피트럭에서는 한국 돈으로 값을 치를 수 있을 정도다. 알고 보니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마도를 찾는 여행객의 95%가 한국인이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한 해 대마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은 10만명 이상. 사실 오늘날 대마도가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로 개발된 것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도발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의 대마도 전공 박사이기도 한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대마도 여행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독도 앞바다에 찾아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운동을 수십 번 하다가, 그냥 놔둬도 우리 땅인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독도를 사수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1997년,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한국 땅’이란 슬로건을 들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 14명과 대마도로 갔다. 당시엔 부산-대마도 뱃길이 없었기 때문에 후쿠오카를 경유해 가야 했다. 4박 5일 일정 동안 배를 탄 시간만 왕복 42시간. 첫 순례 이후 부산의 선사들을 찾아가 부산-대마도 직항 운항을 적극 권유했고 마침내 1999년 부산-대마도 뱃길이 생겼다. 지금은 발해투어 말고도 많은 여행사들이 대마도 여행 상품을 팔고 있고, 낚시·캠핑·등산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번 여행에선 대마도 여행길을 처음 열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황백현 박사와 함께 대마도에 남겨진 우리 역사의 흔적을 훑었다. 대마도는 실제로 우리 땅이었다 솔직히 대마도를 가기 전까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말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관심했고 무지해서였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우리 조상들이 대마도에 남긴 수많은 흔적들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황백현 박사는 그의 저서 <대마도 통치사統治史>와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문화재>를 통해 대마도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기록들을 세세히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일본 천태종 승려 현진이 1197년에 집필한 <산가요약기>에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며,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듬해인 1420년 대마도 8대 도주島主가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대마도 사람들을 조선에 의탁한다”는 문서와 함께 대마도를 조선에 바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켰으니 앞으로 모든 보고와 문의는 반드시 경상도를 통해 하도록 하라”는 답서를 보냈고 그때부터 대마도는 공식적인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황 박사는 ‘대마도’와 ‘쓰시마’라는 이름도 우리말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에 말馬이 없었던 2세기에 ‘말 마馬’자가 들어가는 ‘대마도對馬島·말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섬’라는 지명이 생길 수 있었던 건, 고대부터 말을 키우던 우리나라에서 붙여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쓰시마’라는 이름 또한 ‘두 섬Tu-Sem’이라는 한국어 발음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대마도에서 1,500년 전 백제 사람이 심은 은행나무를 만났다. 나이로는 일본에서 첫 번째, 크기(높이 23m, 둘레 12.5m)로는 두 번째다. 본래는 ‘백제 은행나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몇 해 전 일본이 그중 ‘백제’라는 말을 삭제했다고 한다. 일본은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쓴 안내판도 새로 설치했다. 이 은행나무는 1789년 벼락을 맞아 나무속이 불타기도 했고, 1950년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은행나무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 역사를 잊지 말자.’ 대마도의 생명줄이었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200년 동안 겨우 12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한 번 일본을 오가는 데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렸고, 매번 300~5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였다는 걸 생각하면 적은 횟수가 아니다. 이 조선통신사의 길을 연 것이 대마도다. 평지가 없고 땅이 척박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공급 받아 먹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조선과 교역이 끊기자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됐다. 당시 대마도 도주였던 소宗 요시토시義智는 국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일본 막부와 조선 왕실의 외교 회복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렇게 성사된 조선통신사는, 말하자면 대마도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였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치는 기항지였다. 한양에서 출발한 일행은 부산을 거쳐 대마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수로와 육로를 이용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갔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조선 왕실에서는 통신사의 출발일이 결정되면 관리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궁으로 불러 어사주를 내렸고, 그날 밤에는 영의정이 남대문 밖에서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출발 전날엔 마포나루터에 통신사 일행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송별연을 가졌고, 부산에 도착하면 무사왕복 기원제를 올렸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그 숙소에는 조선의 학문과 예술을 전수받으려는 일본 문인들과 유학도들이 몰려들었다. 조선 선비들의 한시漢詩 한 수를 보물처럼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한류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 대마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다.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이즈하라에는 지금도 그 역사를 기억하는 ‘조선국통신사의 비朝鮮國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다. 그 앞의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는 길이 16.58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소장되어 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마쓰리’ 축제도 개최된다. 친일의 기록과 항일의 흔적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어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과거 이즈하라에는 한국어 학교가 두 개나 있었다. 먼저 1727년 세워진 한어사韓語司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던 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던 곳이다. 3년 동안 하루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듣고 매달 월말고사를 치렀던, 속된 말로 ‘빡센’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일본인들은 조선 선비들보다 한글을 더 잘 썼다는데, 당시 조선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하며 잘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어사 건물은 지금도 개인주택으로 대마도에 남아 있다. 한어사에서 불과 200m 거리에 1872년 세워진 한어학소韓語學所는 설립 취지가 불순했다.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한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통역비서로 일했다. 고쿠분 쇼타로는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과 한일 합병문 초안을 작성하는 일까지 맡았고, 조선총독부 인사국장을 거쳐 내부차관까지 지냈다. 그런 사람이 죽자 통탄해 하면서 묘비명을 쓴 사람이 바로 매국노 이완용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꼽혔던 이완용은 그 묘비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쓰다侯爵 李完用 書’라고 자랑스레 새겼다. 스스로가 매국노라는 증명을 길이길이 남긴 셈이다. 이 묘비를 황백현 박사가 대마도에서 2007년 발굴했고 3년 동안 다수의 서예가들과 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이완용의 필체임을 밝혀냈다. 한국에는 없는 이완용의 매국 증거물이 대마도 땅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런 친일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대마도에는 항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즈하라의 절 ‘슈젠지修善寺’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선봉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과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선생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대마도 감금 3년 형을 받고 이송당하면서도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며 양쪽 짚신 바닥에 고국의 흙을 한줌씩 담아 신고 갔다고 한다. 결국 “원수가 주는 끼니로 몸과 입을 더럽힐 수 없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대마도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슈젠지는 최익현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장례를 치른 곳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부산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전망대다. 일제강점기 대마도에 잡혀 온 우리 선조들은 명절만 되면 이곳에 올라 바다 건너 고향땅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설움을 달랬다 한다. 그 자리에 1997년 한국에서 공수한 자재를 이용해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을 본뜬 모양으로 이 전망대를 지은 것이다. 찬 바닷바람이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는 한국전망대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되겠다고. *이토 히로부미 |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죽었다. 조선 마지막 황녀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기울어 가는 국가의 왕녀로 태어나 불운한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대마도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마도에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있다. ‘결혼 봉축’이라고 하니 축복받은 결혼인 건가 싶었는데, 그 반대였다. 덕혜옹주는 19살이던 193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인 ‘소宗 다케유키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시댁이 대마도였던 셈인데, 결혼식은 도쿄에서 올렸고 덕혜옹주가 대마도를 찾은 건 결혼한 해에 단 한 번 인사차 방문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연고로 대마도에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세워지게 됐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61세 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으려 7살 때 약혼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은 덕혜옹주를 13살 때 도쿄로 강제 유학을 보내 고종황제와 떼어 놓았다. 덕혜옹주는 식민지의 공주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질환까지 얻게 됐다. 일본은 그런 덕혜옹주를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완전히 하나의 국가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조선 통치 정책’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과 결혼시켰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 역시 갖은 차별 대우와 따돌림을 당하다 어머니처럼 정신질환을 얻었다. 결국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써 놓고 실종되었다. 그 일 이후 덕혜옹주의 우울증과 몽유병은 날로 더 악화되었다. 1955년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이혼했고,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외롭게 수감되었다. 그 사실을 조선일보 기자가 폭로해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귀국시킴으로써 마침내 덕혜옹주는 고국에 돌아왔다. 7년간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宗伯爵家結婚奉祝記念碑’라고 쓰여 덩그러니 놓인 회색 비석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맺혔다. 탄생부터 결혼, 출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축복받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의 인생. 그와 너무나 상반되는 ‘결혼 봉축’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 삶을 더 기구하게 비추는 듯했다. 때마침 흩날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꼭 덕혜옹주의 눈물 같아 더 속상했다. *대마도 도주島主 | 오랜 세월 대마도를 지배했던 ‘소宗’가家는 에도시대 이전까지 도주였고, 이후에는 번주藩主가 되어 대마도의 모든 것을 통치한 지방 토착세력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조선의 교류 재개에 노력을 기울여 조선통신사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를 영접하는 등의 임무도 수행함으로써 당시 일본 막부와 조선 모두에게 공을 인정받았다. ▶travel info 대마도 FERRY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대마도 히타카츠항, 이즈하라항을 연결하는 쾌속선이 매일 운항된다. 히타카츠까지는 1시간 10분,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다수의 페리회사가 부산-대마도 노선을 하루에도 수차례 운항하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Shopping대마도 대형마트 티아라 쇼핑몰 대마도 이즈하라에는 대형마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티아라 쇼핑몰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는 큼지막한 한국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마트에는 일본 본토에서 만날 수 있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이 모두 들어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PLACE5,000엔 화폐 속 여인의 사랑 나카라이 도스이 기념관 대마도 이즈하라 태생 소설가이자 기자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기념관이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5,000엔 화폐 속 인물인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문학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한국말에 능통했고,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뒤에는 <춘향전>을 번역해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히구치 이치요는 1891년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를 찾아가 소설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히구치 이치요는 20살, 나카라이 도스이는 32살이었다. 히구치 이치요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키재기>, 창부들의 삶을 그린 <흐린 강>,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나 때문에> <매미> 등 작품들을 쏟아내고 25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도스이를 연모한 그녀의 마음은 사후 발표된 일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마도판 하롱베이 에보시다케 전망대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는 아소만의 수많은 섬이 펼쳐진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7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들쑥날쑥한 해양 지형이 특징인 아소만은 진주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전망대는 석양과 일출이 아름다워 연말연시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오키나와를 닮은 해변 미우다 해수욕장‘일본 해수욕장 100선’에 속하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마치 오키나와의 해변인 듯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낸다. 물이 맑아 물고기, 성게 등 해양 생물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하기 좋다. 근처엔 캠핑장도 있어 여름철엔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캠핑과 해수욕을 하러 찾아온다. Food대마도 도주가 좋아했던 간식 카스마키‘대마도 명물’이란 별명이 붙은 카스마키는 달콤한 팥소를 카스테라로 돌돌 만 것이다. 대마도 도주가 특히 좋아했던 간식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리로 유명한 일본답게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대마도 여행 중 간식으로 먹거나 선물용으로 사 가기에 좋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발해투어 051-253-588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해남은 ‘한반도의 땅끝’이란 브랜드 이미지로 유명하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 형태로 동서 간 44.2㎞, 남북 간 54.8㎞, 1013.3㎢ 면적의 전남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특히 면적의 34.5%인 349.5㎢의 광활한 농경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청정 땅끝 바다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명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전국 12대 고품질 브랜드쌀에 최다 선정된 대표 명품 쌀 ‘한눈에 반한 쌀’을 비롯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해남배추, 전국 최초 수산물 유기인증을 획득한 해남김, 지리적 표시제로 품질을 인정받는 전복 등 농수산물은 풍요로운 해남을 대표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땅끝마을, 신비스러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문화유산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보석 같은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합계 출산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최근에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언론까지 비결을 취재하러 오고 있다. 땅끝이란 심리적 거리감이 있지만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호남고속철(KTX)을 이용하면 넉넉잡아 3시간 안에 서울에서 닿을 수 있다. 당일로도 오감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볼거리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이자 대륙의 시작인 땅끝마을은 한 해 8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망망대해 바다에 맞서 또 다른 희망을 담아 간다. 땅끝 바다가 마주 보이는 사자봉 정상에 선 전망대를 통해 아련한 서해의 섬과 오가는 고깃배, 노을 물드는 바다 등 그림 같은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어 땅끝의 또 다른 명물이 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46만 2000㎡(약 14만평)에 이르는 매실농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1만 4000여 그루의 매실나무에서 일제히 희고 붉은 꽃을 피워 낸다.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등 각양각색의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 ‘너는 내 운명’, ‘연애소설’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땅끝 주변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유명 해수욕장이 곳곳에 있고 체험어장, 해양자연사박물관 등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다. 송호리 해수욕장 인근에는 땅끝오토캠핑리조트가 조성돼 있다. 캐러밴 10대, 오토캠핑장, 야영장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땅끝에서 북평, 북일면을 잇는 해변도로도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다. 한자리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연간 70여만명이 찾는 해남의 대표 관광 명소로 전남도가 최근 발표한 ‘전남 으뜸경관 10선’에 선정됐다.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돼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개의 옥불이 모셔진 천불전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된 표충사, 조선 차의 중흥기를 만들어 낸 초의선사의 일지암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흥사까지 오르는 십리 숲길 또한 각양각색의 난대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계곡과 물이 어우러져 구곡구유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또한 1.6㎞ 거리의 국내 최장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에 오르면 새순이 돋아나는 두륜산의 봄과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해남읍 연동리에는 국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의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종가가 있다. 고산 윤선도 고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종택이자 전통 고가로 잘 알려져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녹우당’으로 불리는 사랑채와 한때 아흔아홉 칸에 달했던 수백년 된 고택 곳곳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의 고즈넉한 멋을 풍기고 있다. 고산 윤선도 전시관에서는 국보 240호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과 고산의 어부사시사 등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녔던 윤씨가 인물들의 가보들을 둘러볼 수 있다. 고산 문학의 배경이 된 금쇄동과 수정동이 있어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살아갔던 고산의 심경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2007년 개관한 우항리 공룡박물관은 400여점의 공룡 관련 화석과 희귀전시물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이다. 아시아 최초로 전시되는 알로사우루스 진품화석, 높이 21m에 이르는 조바리아, 공중에 재현된 우항리 익룡 등 45점의 공룡 전신화석 등이 갖춰져 있다. 각종 전시물의 거대한 위용은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의 세계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들게 하기 충분하다. 박물관은 시대별 공룡실, 중생대 재현실, 해양파충류실, 익룡실, 새의 출현실, 거대 공룡실 등 전시실과 공룡 관련 영상을 상영하는 영상실, 어린이 공룡교실 등이 있다. 공룡박물관과 연결된 황산면 우항리는 천연기념물 394호로 세계 최대의 익룡 발자국 등 희귀한 공룡유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일대의 해안가를 따라 5㎞에 이르는 공룡 화석지는 공룡 발자국 등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물 교과서다. 이곳은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25~30㎝)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익룡·공룡·새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 등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화석지로 알려졌다. 야외공원에도 실물 크기 공룡들과 놀이시설이 넓게 조성돼 가족단위 관광객과 어린이 체험학습 장소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문내면의 우수영 앞바다는 거센 물살로 인해 조류의 흐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 ‘울돌목’이라고 부른다. 울돌목에서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해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대전승으로 기록되고 있는 명량대첩을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이 강조했던 ‘필사즉생 필생즉사’(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전투 장소다. 이를 기념해 조성된 우수영 기념공원에는 명량대첩비와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각종 전술 장비들을 보여 주는 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어 소중한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무사도 있다. 명량대첩 시기를 즈음해 매년 가을 명량대첩제가 개최된다. 해상전투 재현, 조선시대 문화 체험 등의 행사가 열려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우수영은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우수영 강강술래가 전해 내려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먹거리 한국 대표 하얀 명품쌀… 해풍이 키운 초록 배추… 국민 간식 노란 고구마 <명품쌀> 해남 옥천농협의 ‘한눈에 반한 쌀’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소비자가 뽑은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에 선정됐다. 13년 연속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로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 명품 쌀이다. 재배 초기부터 고품질 생산과 품종 혼입 방지를 통한 엄격한 유통관리로 2005년에는 전국 최초 러브미 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영국·독일 등 유럽에 수출을 개시했고 올해는 중국 쌀 수출 가공공장으로 선정되는 등 외국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배추> 해남은 전국 최대 배추 주산지로 겨울배추 기준으로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해남배추는 중부지역의 작기가 짧은 배추에 비해 70~90일을 충분히 키워 내 쉽게 무르지 않고 황토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유의 단맛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절임배추로 김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해남산 절임배추의 인기도 상종가를 보이고 있다. <고구마> 노오란 속살에 달짝지근한 맛으로 늦은 저녁 시간 출출할 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로 그만인 게 바로 고구마다. 고구마의 명성을 지켜 온 지역인 만큼 웰빙 자연식으로 영양도 듬뿍 담겨 있다. 해남고구마는 전국 생산량의 12%, 전남 생산량의 52%가량을 차지한다.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은 물론 전국 최초 조직배양 무병묘 육성 등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해남고구마를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해남고구마는 2008년 지리적 표시 42호로 등록됐다. <김> 청정한 땅끝바다에서 나는 김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담은 바다의 선물이다. 전국 최대 물김 생산지인 해남군은 지난해 8만 9000t의 물김을 생산해 사상 최고액인 660억원의 전체 위판액을 기록했다. 특히 전통 지주식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황산면 지주식 김은 2014년산 김이 전국 최초로 친환경 유기수산물 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15년산 김도 인증을 획득하면서 고품질 해남 수산물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토종닭> 해남읍에서 삼산면으로 넘어가는 돌고개를 중심으로 토종닭과 오리 요리 전문점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육회에서부터 불고기, 백숙, 닭죽까지 토종닭을 이용한 코스 요리로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한 음식점마다 한방전복탕, 닭날개구이, 묵은지 삼계탕, 소금구이 등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 선보이는 해남의 대표 먹거리촌이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6) 경주 남산동 남산예길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6) 경주 남산동 남산예길

    경북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 가는 길 오른편으로 나지막한 산이 길게 누워 있다. 바로 경주 남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고위봉·해발 494m)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를 대표하는 산이다. 신라시대 왕궁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남산으로 이름 지어진 이곳은 천년 전엔 부처님의 세상이었다. 산에서만 지금까지 절터 150개소, 불상 129체, 탑 99점 등이 발견됐다. 신라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멀리서 보면 줄지어 있는 탑신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처럼 보인다’고 했을 만큼 불교 문화가 꽃핀 곳이다. 산에는 이 밖에도 왕릉 13기, 산성터 4개소 등이 남아 있다. 2000년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산 전체가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천년이 지나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가득한 남산 아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건 정해진 수순일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남산의 동쪽 중앙에 오목하게 위치한 남산동 남산예길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윤만걸 명장 기계 안 쓰고 숱한 돌 문화재 복원 마을이 들어선 동남산 자락엔 신라 불교미술의 걸작들이 특히 많이 남아 있다. 초기 불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부처골 감실여래좌상, 거대한 바위 사방에 부처님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조각한 탑골의 부처바위 마애불상군, 남산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불상으로 꼽히는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등은 각각 신라 초기와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예술품이다. 남산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는 칠불암과 신선암의 불상도 남산예길의 연장선상에 있다. 칠불암의 마애불상군은 남산의 유일한 국보이기도 하다. 천년의 유혹 때문인가. 지금은 석공 명장부터 도예가, 화가, 염색, 자수공예가 등이 이 길 위에 터를 잡았다. 이들 중 일부는 작업장을 갤러리로 오픈했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시작해 2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봄이면 파스텔톤의 봄꽃이, 여름이면 야생화와 들꽃, 가을이면 코스모스들이 반긴다. 특히 황금들판으로 변신하는 가을이면 은행나무길과도 어우러져 가히 환상이다. 남산예길이 속한 통일전 앞 은행나무 길은 가을이면 사진명소로 첫손 꼽힌다. 이 길 한가운데, 석탑교 지나 윤만걸 석공 명장의 작업장이 있다. 국보 감은사지 석탑과 나원리 5층 석탑, 보물인 남산의 천룡사지 석탑과 용장사지 석탑 등 경주 유수의 문화재들이 윤 명장의 손끝에서 복원됐다. 가능한 한 기계를 배제하고 손으로 직접 작업해 신라 석공의 후예라는 칭송이 붙는다. 2대째 명장을 꿈꾸는 그의 두 아들도 이 작업장을 기반으로 함께 일을 한다. 그의 이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작업장을 방문하면 이곳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길은 윤 명장의 작업장에서 오른쪽 현각사 안쪽으로 꺾어져 실개천을 따라 이어진다. 약 10여 분 천천히 걷다 보면 두 도예작가의 작업실이 나란히 나타난다. 화려한 꽃무늬로 여심을 사로잡는 권은희 작가의 연도예와 단아하고 귀품 있는 백자가 주를 이루는 백성일, 이정은 부부 작가의 백암요다. 두 작가 모두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활발히 선보이는 터라 도자기 문외한이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마당에서도 훤히 보이는 백암요의 장작 가마에 불이 피워지는 날이면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백암요를 지나 5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야선미술관이 나온다. 낮은 대나무 담장 안에 정갈하게 꾸며진 4채의 작은 한옥이 남산 전경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선화를 주 종목으로 하는 화가 박정희의 작업실 겸 전시관으로, 물감이 아닌 자연에서 얻는 흙이나 돌 등을 재료로 작업을 하는 독특한 그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도자기와 염색 등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남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서 좋은 재료로 만든 수제 차와 케이크를 들며 잠시 쉬어가기도 좋다. 다시 길은 소나무 외피 무늬로 특허를 얻은 김외준 작가의 청광도요, 목공예가 김종대 작가의 김종대 갤러리 등으로 이어진다. 경주 시내 한옥마을에서 염색공예체험관 노을빛 갤러리를 운영하는 신귀준 작가의 공간도 이곳에 있다. ●작은 연못 서출지는 신라 소지왕 때 조성 한옥들이 올망졸망하게 어우러지는 이 마을 안쪽 돌담길은 사계절 다른 정취로 정답고 아련하다. 마을 안쪽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탑이 조화를 이루는 남산리 삼층석탑, 소리로 세상을 어루만진 스님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염불사지 등을 함께 구경하다 보면 길은 종착지인 서출지에 이른다. 이요당을 중심으로 봄이면 목련과 개나리, 여름이면 연꽃과 백일홍이 화려함을 뽐내는 작은 연못이다. 작지만 그 역사는 신라 21대 소지왕까지 올라가니 훌쩍 천년을 넘는다. 특이하게도 이곳에 자리잡은 많은 예술가의 고향은 경주가 아니다. 다른 곳을 헤매다가도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윤만걸 명장의 말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저 산 위에서 작업하다 내려다보는데 여기만한 곳이 없는 기라. 실개천 흐르고 누런 들판이 확 트여서 풍요롭고, 딱 여기다 싶데요.”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 - 지역번호 054 →가는 길:경주 시내에서 7번 국도를 따라 통일전 방면으로 향한다. 통일전 주차장 이용. 버스는 터미널이나 경주역 앞에서 11번을 이용해 통일전 또는 현각사 앞에서 하차한다. 야선미술관은 오전 11시~오후 6시 문을 연다. 화, 수요일은 휴관. 백암도예, 연도예, 청광도요 등은 사람이 있을 경우엔 언제든 문을 열어주지만 미리 전화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함께 가볼 곳:남산예길 가는 길목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주변 부지에 1만 5000여 점의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심어져 사계절 눈길을 끈다. 야생화가 피는 초여름, 단풍 드는 가을이 가장 좋다. 경주 월성 뒤쪽 월정교에서 시작하는 남산 동쪽 둘레길인 ‘동남산가는 길’에선 남산 불교미술의 걸작을 만나볼 수 있다. 신라 초기 불상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부처골의 할매부처, 탑골의 마애불상군, 석굴암 불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등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헌강왕릉, 정강왕릉, 서출지를 거쳐 남산동의 석탑까지 함께 돌아본다. 대부분의 길은 경주시에서 잘 정비했다. →맛집:여기당(743-2752)은 시래기밥과 전 등을 전문으로 하는 소박한 식당이다. 서출지 옆에 있다. 야선미술관 옆의 아라키(070-4212-6959)는 일본인이 직접 만드는 카레집으로 소문났다.
  • 도봉산부터 플랫폼 창동 61까지… 도봉 새 명소들

    서울 도봉구가 9년 만에 ‘도봉 명소’ 17곳을 주민 설문조사와 전문가 추천 등을 통해 새롭게 뽑았다. 2007년 선정한 도봉 10대 명소가 주민 의식과 환경 변화를 담아내기에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명소 재선정을 위해 구는 31개 후보지를 선정한 뒤 지난해 9월 직원, 주민 등 12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 결과 명소 후보지가 21곳으로 줄었고 이후 공무원, 구의원, 교수, 도봉문화원 추천 위원, 주민대표 등 17명으로 구성된 명소 심의회가 열렸다. 새롭게 선정된 2016년 도봉 명소 17곳은 도봉산과 둘레길, 서울 창포원, 우이천과 벚꽃길, 둘리뮤지엄과 둘리(쌍문)근린공원,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묘, 무수골, 전형필 가옥, 함석헌 기념관, 방학동 도깨비시장, 김수영 문학관, 초안산 근린공원, 원통사, 천축사, 도봉기적의 도서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플랫폼 창동 61 등이다. 새롭게 명소에 선정된 플랫폼 창동 61은 다음달 말 3일간의 밤낮 없는 문화축제로 문을 연다. 창동역 주변 서울아레나 등 신경제중심지 조성을 위한 첫 사업으로 문화도시 도봉구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이번 명소 선정에 반영됐다. 서울창포원은 1만 6000여평의 부지에 세계 4대 꽃 중 하나로 꼽히는 붓꽃이 가득하며, 방학동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은 서울시 지정 보호수 1호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이번 ‘도봉 명소’는 주민들과 함께 선정해서 더욱 뜻깊다”며 “앞으로 우리 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조지 기싱 지음, 박명숙 옮김, 은행나무 펴냄) 소설가 조지 로버트 기싱의 반자전적 에세이. 기싱의 삶과 사유, 꿈이 투영된 가상의 인물이 쓴 에세이 형식을 취하면서 사색의 길로 이끈다. 360쪽. 1만 4000원.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김재이 지음, 부키 펴냄) 평생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낯선 제주로 이주한 1세대 격인 부부가 쓴 5년간의 삶의 기록으로 자연과 이웃을 보듬으며 안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238쪽. 1만 3800원. 망설이지 마, 지금이야(박선경 지음, 이채 펴냄) 주부에서 마흔이 넘어 첫 직업을 가지고 홈쇼핑 방송인부터 병원 컨설턴트를 거쳐 교육 컨설팅 회사 대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도전해 온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다. 272쪽. 1만 3000원. 인생풍경(박경일 지음, 나무,나무 펴냄) 여행 전문 기자인 저자가 십수년간의 여행 끝에 추린 한국의 최고 미경 27곳을 모아 지치고 힘들 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320쪽. 1만 5000원. 물고기가 왜?(김준 글, 이장미 그림, 웃는돌고래 펴냄) 청소년을 위한 바다의 인문학으로 동해 명태, 서해 조기, 제주 자리돔 등 우리가 즐겨 먹어 온 바다 생물 10가지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바다 생태계 이야기를 소개한다. 240쪽. 1만 5000원. 가르쳐 주세요!(카타리나 폰 데어 가텐 지음, 앙케 쿨 그림, 전은경 옮김, 윤가현 감수, 비룡소 펴냄) 독일 학교에서 성교육을 가르치는 저자가 수업에선 부끄러워 묻지 못한 아이들의 ‘진짜’ 질문들을 비밀 쪽지함으로 받아 답했다. 216쪽. 1만 3000원.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전남 담양 향교리와 아트센터 대담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전남 담양 향교리와 아트센터 대담

    그림의 ‘ㄱ’ 자도 몰랐던 할머니들 3년 만에 아티스트 변신… 집 문간·담벼락에 그린 타일 그림들 마을에 활기 불어넣어 2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전남 담양 향교리. 대담미술관 한편에 있는 체험관이 술렁인다. 테이블 앞에 둘러앉은 7인의 할머니가 저마다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며 할 말이 많다. “나 시집와서 얼마 안 돼 미장원 가서 머리하고 찍은 거야, 옷 좋은 놈 입고.” “이건 우리 집 장독대네, 대문이고.” “우리 아저씨하고 경포대 가서 찍은 거. 해변에서 술도 한잔씩 하고. 주름살이 한나도 없네. 하하.” “19살 때여. 머리에 내가 직접 후까시 넣고 찍은 거여. 얼굴 좀 봐. 팽팽하제.” “앵두나무 아래서 우리 동갑들이랑 찍은 겨. 한 마을 동갑 세 명이서 뭘 하든 몰려다녔제.” 사회를 보는 대담미술관 정춘희 대표가 한 분 말씀 좀 들어 주자고 해도 소용없다. 사진첩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얼굴은 이미 사오십년 전 ‘꽃순이’ 때로 돌아가 있다. 그래도 흘금흘금 서로의 사진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거든다.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오늘은 향교리 7인의 아티스트가 대담미술관에 모이는 날. 긴 겨울 잠시 움츠렸던 마음을 펴고 올해의 새로운 활동을 다짐해 본다. 대담미술관 정희남 관장이 마무리를 한다. “다음엔 타일 위에 오늘 사진으로 본 추억을 한번 그려 보도록 해요. 올해도 좋은 활동 부탁합니다.” 과거를 추억하며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향교리는 죽녹원과 전남도립대가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 관방천이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죽녹원이 인기를 끌면서 공휴일에는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곳으로 꼽힌다. 대숲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대나무 공예품과 참빗을 만들던 공예마을이었다. 지금도 참빗 장인, 죽공예가 등이 모여 사는 진정한 예술인 마을이다. 거기에 2010년 대담미술관이 마을 한편에 들어서며 또 다른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광주교대 교수인 정희남 관장이 생활 속의 미술, 소통하는 미술을 모티브로 미술관을 지으며 동네 주민들과 소통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 관장은 동네 어귀에 모여 시간을 보내던 마을 할머니들이 스스로 자기 얘기를 하게 하고, 붓을 쥐여 주며 화가가 되도록 했다. 그림의 ‘ㄱ’ 자도 모르던 할머니들은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3년여 만에 아티스트가 돼 마을을 꾸미고 전시회도 연다. 현재 7명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그림이란 걸 그릴 줄 꿈이라도 꿨겠어?” 수줍은 고백에는 이제껏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 하던 어머니들이 비로소 ‘나’를 찾았다는 자부심이 묻어 있다. “동네방네 미술관을 만들고 대담은 센터 역할만 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였다”고 정 관장은 덧붙인다. 기성 작가들과 주민들이 참여해 대담 옆 골목 안쪽에 폐가를 개조해 사랑방과 전시실 역할을 하는 ‘예술가의 집’도 만들었다. 마을을 상징하는 대나무 공예와 참빗을 응용한 작품들, 그리고 향교리 할머니 아티스트들이 마을을 표현한 작품이 걸려 있다. 여름엔 작가 레지던시로도 활용된다. 정 관장은 “이제 시작이다. 담벼락까지 허물고 어우러지는 생활 속의 예술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교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할머니들이 자신의 집 문간과 담벼락에 그린 타일 그림들이다. 평생 남편 이름만 붙어 있던 문패 아래 꾹꾹 눌러쓴 자신의 이름과 그림이 들어 있는 타일 문패를 달았다. 타일에는 직접 그린 대나무 숲이 있고 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다. 색도 과감하고 표현도 거침없다.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타일이어서 보존 관리에 큰 힘이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여러 명의 작가가 마을 입구 벽면의 타일 위에 그린 마을 지도와 진시영 작가의 조명 설치미술이 옥상에 올려진 마을회관도 돌아볼 만하다. 대담미술관은 주민들과의 소통 프로젝트 외에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는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도 하지 못하는 좋은 전시를 기획해 주목받기도 했다. 전국의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됐을 만큼 현대적인 건물과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큰 창으로 큰 은행나무가 서 있는 미술관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뮤지엄 카페는 젊은이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예술 스테이와 단체 교육, 체험 등을 위한 공간도 갖춘 전천후 문화 공간이다. 향교리의 영향 덕분일까. 죽녹원 안에도 이이남 아트센터가 문을 열어 한국화와 비디오아트를 접목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웃한 객사리에도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전시장과 카페를 만든 담빛예술창고가 최근 문을 열었다. 담양 전체가 예술 바람으로 술렁이고 있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에서 15번 국도 이용. 광주송정역까지 KTX로 이동한 후 담양행 버스나 시티투어를 이용해 둘러보는 방법도 있다. 대담미술관 담양읍 언골길 5-4(향교리 352-1) 오전 9시~오후 6시 오픈. 카페는 오전 10시~오후 11시. 연중 무휴. →함께 가 볼 곳:대숲의 정취를 느끼려면 죽녹원을 빼놓을 수 없다. 메타세쿼이아길도 향교리에서 가깝다. 담양의 진짜 예술의 역사를 느끼려면 가사문학을 꽃피운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등을 함께 돌아보자. 문인들이 모여 시와 예술을 논하던 담양은 그 자체가 예술 고장의 원조다. 창평의 슬로시티는 나지막한 돌담길이 예쁘고 저렴한 가격에 숙박이 가능한 곳이 많아 들러볼 만 하다. →맛집:담양 하면 떡갈비와 돼지갈비 등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담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대통밥을 추천한다. 대나무 안에 밥을 짓고 각종 반찬이 한 상 차려진다. 떡갈비 등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한상근대통밥(382-1999)이 최초로 대통밥을 소개한 집으로 유명하다. 미술관 맞은편 관방천 넘어 국수거리는 가볍게 한 끼 해결하기에 좋다. 미술관 직원들이 추천하는 집은 미소댓잎국수(381-9789)다. 생면으로 만든 면발이 쫄깃하다.
  • 생명 나눔 앞장서는 광진구

    생명 나눔 앞장서는 광진구

    23일 광진구청 본관 앞 은행나무길에 마련된 헌혈 차량에서 광진구청 직원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 광진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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