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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노소영씨 부부/미,예금 신고안해 기소

    【산호제이(미캘리포니아주) AP 연합】 노태우대통령의 딸 소영씨(32)와 사위 최태원씨(33)가 27일 은행 예금을 허위신고한 위법행위를 시인했다고 존 멘데스 미연방검사가 밝혔다. 이들 부부는 예금을 소액으로 분산시킴으로써 1만달러 이상의 현금 예금을 은폐했다는 혐의를 시인했다고 멘데스 검사는 밝혔는데 미은행들은 1만달러 이상의 예금은 연방정부에 보고토록돼있다. 파본 검사보는 당초 이들 부부가 돈을 미국으로 가져왔다고 말했으나 이 돈이 어떻게 미국으로 들어왔는지 알지 못하며 앞서 발언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문서들에 따르면 예금들은 북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지난 90년 2월1일부터 6일 사이에 이뤄진것으로 나타났는데 멘데스 검사는 한국인인 이들 부부가 19만2천5백76달러의 몰수와 각각 3만달러의 벌금을 지불하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 “북한 핵사찰 불구 의혹 여전히 남아”/미 CIA국장 밝혀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북한 핵시설에 대한 8개월간의 국제사찰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접근 제한과 계속적인 기만행위로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고 로버트 게이츠 미중앙정보국(CIA)국장이 13일 밝혔다. 다음주 퇴임하는 게이츠국장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측이 핵개발 계획을 근본적으로 중단했는지 알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매우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네차례의 사찰을 실시했으나 지난해 북한이 수개월에서 수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다고 말한 그의 예측이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게이츠국장은 북한측의 기만행위가 최근 수개월간 포착됐다고 말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거부했으나 다른 관리들은 영변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은폐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 신문은 전하고 핵폐기물은 IAEA의 사찰대상이 아니라고 전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7)

    ◎소년시절:8/백산소학교/“6학년때 교장과 담판,조선여반 개설” 주장/이번에는 “아버지 김형직이 설립” 옳게 바꿔/“개교행사서 연극공연·연설” 왜곡도 없애 무송소학교 시절에 관한 우상화작업은 학업문제에 있어서는 별로 언급한 것이 없다.교우문제도 한인 학생인 고재봉,고재룡,고재림,고재수 등과 가깝게 지낸 일은 정식 전기로서는 이번 회고록이 그 이름만 처음으로 밝혔다. ○학업언급은 적어 전기작가들은 무송소학교시절의 우상화작업을 백산학교문제에 한정하고 있다.그런데 그 경위를 보면 우상화는 59년의 답사단이 그 시초를 뗏다.그들은 무송소학교 선생 마청산의 말을 받아 쓰는 것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 「무송에는 독립된 한인학교가 없었다.김일성이 6학년으로 진급하였을때 그는 교장 사춘태에게 한인학교 설립을 요청하였다.그 요청에 감동한 교장은 임강의 일본영사관으로 수차 출장하여 허가를 받아서 『무송 제1소학교 부속 조선주반』을 설치했다.이 반은 곧 무송현성 함장문가로 이동하여 40여명의 학생을 받아 들였다.어느날 저녁 개교식에 초청받은 나는 연극공연을 보고 김일성의 연설을 들었다」 이러한 마청산의 말이 원인이 되어 북한에서는 한때 「백산학교는 김일성이 교장에게 요청한 결과 창립됐다」라는 신화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래와 같은 잘못이 있었다. (ㄱ)무송에는 오래전부터 백산학교가 있었다.일본기록에 의하면 1916년에 생도 23명을 성락힐이 가르쳤던 백산소학교가 있었고 20년에는 백산무사단이 이 백산학교에 병설되어 있었다. (ㄴ)김일성이 「학교 설립문제」를 가지고 6학년 진급시에 교장과 담판한 것이라면 그것은 1925년 8,9월쯤이다.그러나 일본영사관 모예산분관은 27년 1월에 분관주임이 임명되었지만 이 곳에 있었던 배일운동으로 주임은 분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28년 3월에 일본에 소환되었다. 마청산은 교장 사춘태가 소학교 6학년생의 말을 듣고 감동하여 출장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1개 중공당원에 불과한 그가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보낸 대표단의 위세에 눌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는 김형직보다 김일성을 입에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속에 있었다.그러나 가령 그런 일이 있어서 25년에 임강에 갔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일본영사관은 그림자도 없었다. ○마청산 말미 발단 다만 이상과 같은 잘못을 빼면 마청산의 말에는 부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무송소학교에 「조선족 반」이 생겼다든가,새로 함장문가에 교사가 마련되어 그것을 축하하는 개교식이 있었다든가,거기에서 연극공연이 있었다든가 하고 있는 것들이다.4년제 백산학교 개교식에서 다른 학교지만 6학년생 격인 김일성이 연설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있음직하다. 그후 북한에서는 이러한 마청산의 말을 자료로 하여 우상화작업이 본격화되었다.우상화란 사실을 왜곡·날조·은폐하여 턱없이 과장·미화·절대화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우선 백산학교 설립자의 이름이 김일성으로 부터 김형직으로 옳게 바뀌어졌다.전기작가들은 당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정으로 김일성이 6학년에 진급했다든가,교장이 임강에 갔다든가,그 후에 「조선족 반」이 생겼다든가 하는 전기 제작상 「귀찮은」무송소학교 문제들이 일체 불필요하게 되었다.그리하여 초점은 김일성이 전학한 무송소학교로부터 백산학교 개교식 쪽으로 옮겨졌다.김일성은 개교식에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란 연극을 꾸미고 대중을 향하여 연설을 한 후에 자신이 주역이 되어 공연한 것으로 된 것이다. 전기 작가들은 그 위에 큰 왜곡을 하나 더 하게 되었다.전기를 새로 쓸 때마다 그들은 개교식의 날짜를 그의 소학교 전학 시기에 접근하게 한 것이다.1983년에 발간된 김일성 연표에서는 드디어 백산학교 개교식과 무송소학교 전학이 같은 「1925년 봄」으로 되었다.이 왜곡은 김일성을 「효자」나 부친의 「혁명위업」계승자로 조작하는데 필요한 조치였다. 백산학교에 대하여 이번 회고록은 요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백산학교는 무송지방의 망명자·선각자들이 농민들과 함께 설립한 역사가 오랜 사립학교였다.초기는 지금의 농촌집 방 두개를 합친 것만 하였다.그런데 그러한 학교도 운영비의 부족으로 오랫동안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었다.우리가 무송에이사하였을 때에는 백산학교를 복구하기 위한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던 시기였다.일제의 부추김을 받고 있던 군벌당국이 학교를 인가해주지 않아서 아버지는 여간 애를 태우지 않았다. 아버지는 백산학교 명예교장으로서 교편은 잡지 않았으나 교육내용과 후원사업을 보며 학교에 나가 연설도 하고 과외활동 지도도 많이 하였다」 ○회고록 대폭 수정 마청산의 잘못된 이야기를 자료삼아 전기작가들이 더 잘못된 우상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회고록은 그것을 약간 시정하였다.필자가 백산학교는 역사 있는 학교라고 「김일성 평전」에서 지적한 것이 주효한 것인지 회고록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그리고 개교식때의 공연이나 연설에 언급하지 않아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항일무장투쟁 전적지를 찾아서」15면이하 평전 66면 상동서 67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동서 3면 「세기와 더불어1」122∼3면
  • 사업장내 산재예방/노조협력 적극 유도/노동부

    노동부는 30일 사업장내 재해예방에 노조의 감시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노조가 실질적인 재해감소에 앞장서도록 적극 유도·권장해 나가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를 위해 각 사업장 노조간부와 근로자들에 대한 산재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비롯,노조내에 안전보건업무 담당부서를 설치해 노동부와 협력으로 재해 은폐사례를 감시하며 사례적발시 지방노동관서에 신고하거나 사업주측에 시정요구토록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와함께 노조의 자율적인 재해예방활동을 위해 노조자체 안전 보건교육 실시때 홍보물 제작배포나 교재·강사지원등을 적극 협조하며 노조가 시정요구한 내용을 사업주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등 엄중대처키로 했다.
  • 노동부는 30일 사업장내 재해예방에 노조의 감시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노조가 실질적인 재해감소에 앞장서도록 적극 유도·권장해 나가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를 위해 각 사업장 노조간부와 근로자들에 대한 산재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비롯,노조내에 안전보건업무 담당부서를 설치해 노동부와 협력으로 재해 은폐사례를 감시하며 사례적발시 지방노동관서에 신고하거나 사업주측에 시정요구토록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와함께 노조의 자율적인 재해예방활동을 위해 노조자체 안전 보건교육 실시때 홍보물 제작배포나 교재·강사지원등을 적극 협조하며 노조가 시정요구한 내용을 사업주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등 엄중대처키로 했다.
  • “내돈 내가 쓴다” 하지만…(이슈조명)

    ◎정 후보,금권드러나자 잘못 은폐/“몰래 거둬서 쓰는게 비자금” 강변 국민당의 정주영후보가 10일 「비자금전면부인」발언을 함으로써 막판 대선정국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민자·민주당은 물론 여타 후보들은 검찰·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현대자금의 국민당 선거자금유용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정후보가 이같은 발언을 한것은 불법 김권선거가 드러나 곤경에 처하게되자 정후보 특유의 우격다짐과 강변으로 잘못을 은폐·호도하려는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 정후보는 10일 상오 기자회견을 자청,수사기관의 비자금발표에 대해 『비자금이 어디 있느냐』며 『내돈을 내가 직접 쓰는데 비자금이라고 할수있느냐』고 「비자금」이란 용어자체를 전면부인했다.정후보는 또 현대중공업자금 유입에 언급,『믿을만한 사장을 시켜 내주식을 팔게해 은행에 넣어 둔뒤 가져오게 했는데 왜 구속시키냐』고 한술 더 떴다.그는 김영삼후보를 겨냥,『김씨가 진짜 비자금을 쓰고있다.비밀리에 거두고 나쁘게 쓰기때문에 진짜 비자금』이라며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아가 정후보는 『민자당비자금을 내부적으로 조사,확실한 증거를 갖고있다』며 『12일 여의도집회에서 그 얘기가 나올는지 모르고 국민들이 기대할만 할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같은 정후보발언에 대해 민자당은 「거짓말의 천재」 「상황에따라 멋대로 말을 바꾸는 신뢰할수 없는 이중인격자」라며 비난했다. 이원종부대변인은 정후보가 관훈클럽기자회견에서 『단 일전도 주식을 판적이 없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키며 『그런데 지금와서는 자기주식을 남을 시켜 팔았다고 주장하니 앞뒤가 도통 안맞는 사람』이라고 힐난했다.또 회사돈을 한푼도 갖다쓰지않았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이제와서 「내돈 내가 쓴다」는 입장으로 돌변,그야말로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이와함께 지난 총선당시 당국의 정당한 세금추징에도 『돈이 없어 못내겠다』고 한사람이 지금은 『개인재산 3조원중에서 1조는 중소기업,1조는 농어촌,1조는 공무원자녀학자금으로 희사하겠다』고 이른바 중대발표설을 흘리며 선심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나아가 민자당은 『경리사원 정윤옥씨의 양심선언으로 이미 드러났듯이 현대중공업 비자금은 근로자들이 피땀흘려 받은 수출대금인데 개인돈이라니 말도 안된다』면서 『이처럼 개인돈과 회사돈을 구별못하는 것을 보니 국고도 제멋대로 요리할 위험한 인물임에 분명하다』고 맹공하고 있다. 현대수사와 관련,당초에는 국민당편을 들면서 반사 이익을 노린 민주당도 이문제에 대해서만은 국민당측을 비난하고 있다. 김대중후보는 이날 『현대는 공개법인이므로 주주동의없이 자금을 마음대로 쓸수없고 정후보가 자기지분을 갖고 쓴다해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하는 만큼 정후보 발언에 동의할수 없다』면서 『기업본분을 망각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이처럼 진실성이 결여된 정치공작적 발언은 물론 흑색선전·비방·중상모략등이 판을 칠 것으로 보인다.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과 양식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현대,비리끊고 기업본연의 길 찾으라(사설)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비자금조성과 이른바 「돈세탁」은 기업윤리와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이 재벌그룹은 비자금을 조성하여 특정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출하고 산업인력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불법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더욱 충격적이다. 현대그룹의 불도덕성과 비이가 사직당국의 수사로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그룹총수는 이를 정부의 「탄압」이라고 주장했고 지난 주말 그들의 이른바 「공명선거 촉구결의대회」에서는 『앞으로도 정부의 탄압이 계속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못할때는 부득이 현대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었다. 현대그룹 정세영회장의 그같은 주장은 마치 현대가 정상적인 기업활동만을 해왔는데도 정부가 기업활동의 와해를 위해 강압적인 수사를 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현대그룹 계열사의 선거개입은 특정정당의 대통령후보가 『현대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도와주고 있다』고 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널리 알려진 일이다. 뿐만아니라 사직당국의 수사결과 현대그룹계열사들의 조직적인 불법선거운동과 자금유용혐의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또 이 그룹 2개 계열사가 비자금을 조성했고 조성된 「검은돈」의 족적을 은폐시키기 위해 불법단체나 지하조직들이 이용하고 있는 「돈세탁」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설사 이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유용되지 않았다 해도 돈세탁에 대한 윤리적 비난과 책임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중립내각의 엄정한 국정수행과 공권력행사를 「탄압」으로 몰고 『문을 닫겠다』고 항변하는 것은 현대그룹을 담보로한 공권력에의 도전내지 위협으로 비쳐질 소지마저 있다.이렇게 볼때 정부로서도 공권력이 시험받는다는 인식아래 철저한 수사와 대응을 해야 하리라고 본다. 현대측의 이같은 행태는 그 재벌그룹을 특정개인의 전유물로 착각하고 있는데서 나온게 아닌가 생각된다.이 그룹 각계열사는 개인기업이 아닌 법인기업이고 16개 계열기업은 증시에 상장된 공개법인이다.최소한 공개법인의 경우 불특정 다수 주주의 것이지 주벌의 사유물이 아니다.비록 개인기업이라 하더라도 청산정리를하려면 주주와 채권자들과 협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하물며 국내 최정상급 기업군의 운명을 어느 특정개인이 좌지우지할수 있는가.현대그룹은 정부의 김융및 세제면에서의 지원,국민의 성원,근로자및 전문경영인의 땀이 어우러진 결정체라 할 수 있다.국민들이 현대그룹의 불도덕성및 김권고리를 분개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현대그룹은 이제라도 산하 기업이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와 불법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비이를 잘라내고 정치와 연결고리를 끊는 동시에 기업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 블랙박스 자료누락 사과/이 외무/ICAO조사참여,진상규명 노력

    이상옥외무장관은 3일 블랙박스 비행정보기록장치(FDR) 누락 파문과 관련,『블랙박스 자료를 러시아측으로부터 인도받는 과정에서 경위야 어떻든 사무적인 착오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이날 상오 외무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블랙박스 내용물 가운데 주요자료가 누락된 사실에 대한 러시아측의 해명을 들은뒤 공식발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판단에서 발표하지 않았을 뿐 결코 누락사실을 은폐할 생각을 했거나 은폐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장관은 정부대응방안에 대해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최대한의 협조를 구해가면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를 통해 진상규명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8)

    ◎유년시절:6/만경대시위 지휘자 외조부로 왜곡/실제로는 고평면장 조익준이 지도/이번엔 기독교단체 주도사실 은폐 김일성의 갖가지 「회고」는 지나치게 생동감이 있어서 만6세의 어린아이같지가 않다. 그러나 만경대의 농민들이 3·1운동에 참가한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당시의 기록을 인용해보도록 한다. 「대동군 고평면장 조익준은 예수교 신자로서 성중에 독립운동이 선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3월3일 상오에 군중을 모아 시위운동을 하였는데 당중에 있는 합병 기념비를 넘어뜨린 다음 면장이 선도자가 되어 민중을 이끌고 평양을 향하여 떠났었다. ○인근농민들 합세 상오 10시쯤 하여서 보통뜰에 당도하였는데 군중이 수만을 헤아리니 왜적은 기병대와 소방대를 동원하여 무도하게 돌격을 하여왔다.그래서 부상자가 심히 많았고 어름여울에 빠진 자도 적지 않았으며 마침내 면장이하 주모자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왜병은 자기가 임용한 면장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한 것은 체면손상이라 하여 면장에게 비밀히 달래면서 전과를 자백하면 석방할 터이니 개과장에 날인하라 하였으나 조면장은 준절한 말로써 거절하였다」 만경대가 있는 고평면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들은 면장 조익문이 2일만에 들고 일어나 독립만세투쟁을 벌였다.면장은 기독교인이기도 하였으므로 고평면의 면사무소·교회의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여기에 농민들이 합세하여 그들이 평양 대동문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행렬은 그 도중에 있는 마을의 농민들을 흡수하여 점점 크게 되었다.용산면도 통과하였으므로 김일성의 외가도 기독교인으로서 참가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만경대와 칠골 사람들도 대열을 지어 평양으로 갔다고 한 것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때 만6세 밖에 되지 않았던 김일성 자신이 이러한 시위행렬에 참가하여 대동문까지 갔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떼를 지어 가는 어른들이 어린아이가 끼어 있는 것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도 모친이나 고모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고록의 상기 문장을 보면 평양으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모친과 고모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그들이 밤늦게까지 만세를 부르는 것을 옆에서 보거나 따라 불렀을 쪽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3·1운동은 거족적인 투쟁이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 참가하였으므로 김일성이 만세를 불렀다 하여 놀랄 것은 없다.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3·1운동을 그가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이다. 이 지방의 3·1운동은 그 지휘자가 면장이면서 기독교인인 조익준이었다.그런데 1982년의 김일성 전기에는 그 지휘자가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으로 되어 있다.조익문은 은폐하고 외가를 부각시킨 것인데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교체시켰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은폐가 철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고록에서는 이 지방의 3·1운동이 기독교인에 의하여 지도되었다는 것 자체도 은폐되었다.그리하여 만6살짜리 김일성의 「투쟁업적」만을 매우 생동하게 기술하고 있다. ○투쟁성 부각 시도 조익준의 투쟁은 3·1운동의 지방적 형태의 하나였다.그런데「김일성의 투쟁」은 앞으로 「수령」으로 등장할 인물의 시련과 투쟁과 체험으로 가득차 있다. 만6살의 어린이에게 이러한 시련과 투쟁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우상화작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①한국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대한홍보사간 221면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알맹이 없는 블랙박스/문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19일 러시아측이 우리측에 인도한 KAL 007기 블랙박스에 비행정보기록장치(FDR)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서울과 모스크바가 떠들썩하다.이 문제는 러시아측이 FDR를 추가로 인도하고 전달과정에서 누락됐던 경위를 설명하기 전까지 두고두고 한·러 양국간 외교현안으로 남을 전망이다. 만약 러시아측이 고의로 FDR를 누락시킨 것으로 판명될 경우 양국 관계는 2년여에 걸친 증진노력에도 불구하고 냉각국면을 맞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는 옐친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 양국 정상간에 인수인계가 이루어진 것.따라서 블랙박스에 알맹이가 빠졌으리란 상상은 당초 불가능했다.그러나 막상 블랙박스를 해체해본 결과 사건의 진상규명에 필수적인 FDR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옐친이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하려 했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다혈질이기는 하지만 솔직하고 과거청산의지가 분명한 옐친의 성향으로 짐작컨대 내용물이 없는 껍데기를,그것도 정상간의 만남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내놓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따라서 혐의의 초점을 KAL기가 피격됐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KGB와 군부에 맞추고 있다.25일자 이즈베스티야의 지적처럼 완전한 진상규명대신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에 의해 FDR가 빼돌려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위원회를 구성,사건의 진상규명을 진두지휘해온 옐친이 블랙박스에 알맹이가 빠진 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또 「반쪽 블랙박스」는 옐친이 현재 처한 정치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가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의 산물일 수도 있다.즉 오는 12월1일 열리는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앞두고 보수파와의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옐친으로서는 그들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행동을 취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한국행 선물꾸러미에 양국간 주요현안인 KAL기 사건과 관련한 성의를 담아야 한다는 고민사이에서 이같은 희화적인 「절충」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FDR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옐친은 과연 고의로 FDR를 빠뜨린 것일까.아니면 KGB와 군부등 보수회귀세력의 음모에 놀아난 것일까.온통 의문 뿐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러시아측의 사실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러시아측이 당초 생각처럼 「실체적 진실」을 솔직히 밝혀 한국민의 한을 풀어줌으로써만이 진정한 양국 우호관계가 새로이 정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고액재산상속 세원관리 강화/국세청/편법통한 탈세행위 차단키로

    국세청은 고액의 재산을 상속·증여하면서 고의로 탈세를 하는 행위를 강력히 차단해 나가기로 했다. 국세청은 28일 최근 10여년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개인의 자산규모가 커지고 상속재산 가액도 대형화 추세를 보임에 따라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상속재산을 은폐하거나 상속재산 가액을 줄이려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세원관리를 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고액 상속·증여자들은 각 지방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억∼50억원 규모의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세금없는 부의 세습에 대해서는 재벌그룹 총수 일가를 포함,부동산투기등으로 불로소득이 많은 대재산가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시와 강력한 세무조사를 병행 실시할 계획이다.
  • 일당대학생(외언내언)

    며칠전 모당후보의 서울 신촌역앞 유세장에 동원된듯한 청년들이 리더의 선창에 따라 후보지지 구호를 외치는 사진이 신문에 나왔었다.하얀 장갑낀 손들이 그날따라 하나같이 손바닥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이들은 일당을 받고 동원된 대학생들이라 했고 그런 선입관탓인지 그 손들은 「돈을 달라」고 손벌린것처럼 보여 보기에 민망했다. 지난번 총선때의 「돈달라」「선물달라」고 아우성치듯 손벌린 사진이 하도 눈에 익어 아마도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엊그제 동작구 흑석동에서는 교수·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대학생 공명선거캠페인」을 벌였다. 「투표참여,올바른 주권행사」「관권개입근절,금품향응거부」등등의 내용을 쓴 어깨띠를 두르고 그들은 행인들에게 『온국민 투표참여』를 종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장래를 결정짓는 선택의 마당에서 대학생의 모습은 어떤것이 바람직한가.종강도 했겠다,선거철도 됐겠다,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학습현장」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장에서 일당 얼마로 매수되는 급조된 선거운동원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지난번 미국선거에서도 대학생 계층의 다양한 선거참여가 있었다.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상대방의 흑색선전·비방을 감시하고 선거에 냉담한 유권자들에게 주권의식을 일깨우는 자원봉사가 그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우리의 일당대학생들은 금품에 연루된 것이 부끄러운 나머지 그곳에 온 이유를 「놀러왔다」「집이 이 근처다」등등 궁색한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은폐하려 들었다. 대학생도 성인인 바에야 누구나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이 대학생의 자존심에 합당하냐는 것이다. 「주권의식」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엊그제의 대학생 「공정선거실천」거리캠페인은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 북한 헌법 대폭 개정/지난 4월 「마르크스·레닌주의」 삭제

    ◎외국인합작 장려규정 신설 국가안전기획부는 23일 북한이 지난 4월 마르크스·레닌주의 퇴조 등에 따른 시대적 상황변화를 반영,제3조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완전삭제하는 등 헌법내용을 대폭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날 북한은 내외정세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로 지난 4월9일 개최됐던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3차회의에서 종전 11장 1백49조이던 헌법을 대폭 개정,전문및 7장 1백71조의 신헌법을 채택했다고 밝혔다.안기부는 그러나 북한이 기본적인 공산주의혁명노선을 고수하고 있음을 은폐하기 위해 아직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헌법개정은 지난 72년의 6차 개정이후 20년만에 이뤄진 것으로 이로써 북한헌법은 48년9월2일 제정이래 7차례에 걸친 개정기록을 갖게 됐다 안기부가 입수·발표한 개정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그들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종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하여 창조적으로 현실에 적용한 것』으로 표현했으나 개정헌법에서는『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으로 수정했다. 개정헌법은 또 「외국인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보장규정」및 「외국인·외국법인과의 기업합영과 합작을 장려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대외적 경제개방정책을 채택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CD대금 96억 수차례 “세탁”/상은 명동지점 등서 가명계좌 사용

    ◎최종소비자 추적·내부공모여부도 수사/검찰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및 가짜양도성예금증서(CD)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는 21일 전날 자진출두한 사채업자 김기덕씨(43)를 상대로 이씨와의 거래내역,CD와 어음소지경위및 이씨의 자살동기등에 대해 이틀째 철야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김씨가 90년부터 이씨가 발행한 4천억원가량의 CD를 대신증권측에 중개해 주고 수수료로 1억원마다 1천만원씩을 받는등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점을 밝혀내고 김씨가 이씨의 자살동기 규명에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집중추궁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이씨가 숨지기 하루전인 14일 이씨의 부탁으로 대신증권측에 1백억원어치의 CD매각을 중개했으나 3시간만에 이씨가 거래취소를 요구해 대신측과 이씨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씨가 CD매각대금이 은행이 아닌 개인계좌로 입금된 공CD가 됐다는 이유로 CD취소의사를 밝혔으며 이에따라 14일 하오5시부터 11시30분까지 대신증권 김성진이사등 5명이 김씨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나 거래된 CD의 효력보장을 요구했다는 김씨의 말에 따라 대신증권 김이사등 3명을 불러 CD거래경위 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씨가 매각대금으로 받았던 대신증권발행 수표 96억여원이 같은날 상업은행 명동지점 등에서 「우기명」이란 이름의 가명계좌로 입금됐다가 「이신숙」등의 이름으로 수차례 분할·세탁된 사실을 확인하고 대금을 맨마지막에 소지했던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계좌이동이 토요일인 14일 하오에 집중돼 있는 점으로 봐 이씨외에 상업은행 명동지점 내부관계자의 협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 지점 박병호·김영표과장을 이날 하오 소환 이씨의 CD발행개입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CD위조조직을 파악하기 위해 사채업자 유은형씨(44)를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조사한 결과,유씨가 지난5월 채권업자 이창식씨(50·대구시 서구 평리5동 524)로부터 서울신탁은행 명의의 가짜 CD 3억원어치를 받아 해동신용금고에 담보로 맡기고 3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이씨에 대해 출국금지조치와 함께 해동상호신용금고 직원 황형수씨를 불러 가짜임을 알고도 은폐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검찰은 또 가짜 CD를 인쇄해준 황의정씨(48·구속)로부터 미국으로 달아난 황의삼씨(54)의 부탁으로 동화은행의 1억원짜리 CD 3백장을 찍어 인쇄가 잘된 1백장만을 건네주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황씨가 그뒤 40장만 일련번호를 찍어 주었다고 진술함에따라 달아난 황씨가 나머지 60장도 일련번호와 액수등을 위조해 시중에 유통시켰을 것으로 보고있다. 검찰은 이날 가짜 CD 발행및 유통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한일투자금융 황윤호씨와 동남은행직원 신승철씨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숨진 이씨의 행적과 CD자금 행방에 대해 22일까지 김씨를 조사한 뒤 단기금융업법위반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다. 대신증권은 올들어 김기덕씨로부터 모두 7천46억원의 CD를 사들였으며,이중 상업은행 명동지점에서 발행된 것은 3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은행감독원의 고위관계자는 21일 『현재 무자원 CD 매각대금 1백억원을 비롯해 이희도씨가 유용한 현금등 2백여억원에 대한 자금추적 조사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면서 내주초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 사치품 수입가조작 20개사 적발/공정거래위

    ◎최고 5.8배 판매가책정 폭리/60만원대 식탁 3백50만원 시판/캠브리지멤버스등 시정령·경고처분 외제의류를 비롯,넥타이 핸드백 골프채 컬러TV 식탁 등 호화사치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판매가격을 수입가격의 최고 5·8배까지 높이 책정,시판해오면서 이같은 폭리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려 표시했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특히 이들 수입업체중 일부는 제품의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최고 3·6배까지 부풀려 소비자들의 눈을 속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일부 수입업체들이 폭리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입가격을 과다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과 수입전문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제상품들의 수입가격을 조사한 결과 총 61개 수입업체중 33%인 20개업체가 수입가격을 10% 이상 과다하게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10% 미만으로 수입가격을 조작한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의 수입업체들이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는 이와 관련,▲캠브리지멤버스 ▲마스타즈통상 ▲필립스산업코리어 ▲지에프티코리아 ▲유로통상 등 5개업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매출규모가 10억원 미만인 태평실업 등 15개업체에 대해서는 경고처분을 내렸다. 국세청도 폭리부분에 대한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조사를 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 조사에 따르면 이들 업체중 태평실업은 마호가니 천연목으로 된 서빙테이블을 60만6천7백70원에 수입하고도 2백18만7천5백원에 수입한 것처럼 표시,소비자들에게 수입가격의 6배에 가까운 3백50만원에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캠브리지멤버스는 외제점퍼를 11만1천1백40원에 수입한뒤 3.4배인 38만원에 팔면서 폭리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3만3천원에 수입한 것으로 수입가격을 표시했다. 마스타즈통상은 던롭골프채를 69만7천9백80원에 수입하고도 1백35만원에 수입한 것처럼 허위표시했고 파워빌트골프채는 67만8천1백60원에 수입,3.2배인 2백20만원에 팔아왔다. 이밖에 수입품의 가격을 허위로 표시했다가 적발된 업체와 취급상품은 다음과같다. ▲동산인터내셔날=가디건 ▲신화코리아=재킷·스커트 ▲우디가구=엘포수입침대 ▲두레유통=진열장·TV스탠드·소파 ▲에우루한국지점=가디건 ▲킹가구=책상·식탁·화장대 ▲장미인테리어=마르코니식탁·화장대 ▲동성무역=스키 ▲우폰=구찌시계 ▲호성상사=골프채 ▲룻쏘=핸드백 ▲벤아트=니트웨어 ▲장인방=옷장 ▲(주)THS8티셔츠.
  • 미에 「북한알기」 바람/세미나 개최에 언론들 집중거론

    ◎“클린턴 대중정책과 같은 궤” 인식/기본권 침해 등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카네기위 세미나/개인우상화의 주체사상 실패로 경제 파탄/NYT지 방북기 최근들어 미국의 언론계·학계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뉴욕의 카네기 위원회는 13일 하오(현지시간) 북한의 인권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열어 북한의 인권상황을 재조명했으며 뉴욕 타임스지는 15일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데이비드 생거 도쿄지국장의 방북기사를 대대적으로 엮고 있다.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지도 10일자에서 틀래이튼 존스 기자의 방북기를 보도한바 있다. 이같은 현상은 빌 클린턴 차기 대통령이 대중국정책에 인권문제를 연계시키겠다고 공약한 사실과 관련,북한의 인권문제도 필연적으로 부각되리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민주당 정권은 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 인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오고 있으며 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때의 인권문제 제기는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인권 이전의 상황이란 일반적 인식은 있으면서도구체적인 정보부족으로 국제사회에서 잘 은폐돼 왔다.그러나 중국의 개방화에 따라 대북한접근이 용이해졌고 부분적이나마 북한도 개방이 불가피한 여건이어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점차 축적되게 되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되리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북한인권문제 세미나와 뉴욕 타임스지 방북기사의 요지이다. ▷북한인권문제세미나◁ 북한은 6·25가 끝난지 40년이 다 됐어도 아직 이산가족 재회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정치범 집단수용·일본인처 북송문제등 제네바 국제협약의 기본마저 이행치 않고 있다.북한에 적십자사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피터 쿵:국제적십자 유엔대표부 대표). 북한은 유엔에 가입하고 표면상 세계인권헌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거주이전의 자유등 인간의 기본권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더욱 문제가 되는것은 북한의 허구적인 인권개념이다.북한은 인권을 인간의 사상적·신체적 자유가 아닌 이념적 인권개념인 경제적 인권,사회적 인권개념으로 호도하고 있다(시드니 존스:아시아워치 사무국장). 참석자들은 이날 북한의 인권상황은 국제사회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단계(뉴욕타임스지 데이비드 웅거 논설위원)에 와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개선키 위해서는 북한을 우선 국제사회에 이끌어내 국제적 압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만을 단독으로 다룰게 아니라 남한의 인권,중국의 인권을 연계시켜 북한을 함께 끌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서 세미나는 남한의 인권문제는 최근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으나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지◁ 북한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옷과 먹을 것이었다.중국은 김일성의 80회 생일에 수백만t의 돼지고기를 선물 했었다. 2백만 인구를 가진 평양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의 자발성이 없다는 점이었다.평양은 또 사람이 북적대는 공개된 시장이 없는 아시아의 유일한 도시일 것이다. 주민들의 「김일성수령」에 대한 헌신은 조금도 감소되고 있는것 같지 않았으며 남한이 기업가정신 및 산업정책에 의해 건설된 나라라면 북한은 「위대한 아들」에 대한 신앙과 개인숭배의 기초위에 세워져 있다. 김정일이 실질적인 통치자라고 김영남외교부장이 지난 10월초 뉴욕의 한국특파원들에게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술과 여자,그리고 유흥을 즐기는 부정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었다.또 북한에는 약 1백50만명의 지도계층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다른 국민들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보장과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현재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실패로 끝나 북한은 경제적 곤궁에 빠져있다.
  • 메이저,「이라크게이트」로 곤경

    ◎야당·언론,“불법무기판매 관련” 맹공격 경기 침체와 유럽통합 문제로 곤경에 처해온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이번에는 이라크에 불법으로 무기를 판매하고 이 사실을 은폐한 이른바 「이라크 게이트」사건과 관련,야당과 언론들의 맹렬한 공격으로 위기에 빠져들고있다. 노동당 의원들은 11일 보수당 정부의 각료 3명이 지난 80년대말 영국 정부가 대이라크 무기금수조치를 위반,이라크에 무기를 판매토록 승인한 사실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존 메이저 총리의 관련여부의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패디 애시다운 자유민주당 당수는 영국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무기판매를 허용했을 당시 존 메이저 총리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그가 사실을 인지했다면 이는 보수당 정부의 정직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정부의 대이라크 무기판매 승인설과 관련한 이같은 파문은 지난 88∼90년사이 이라크에 무기제조 장비를 판매한 혐의로 제소된 3명의 영국인 기업인들이 지난 9일 무죄로 방면되면서 촉발됐다. 검찰은 앨런 클라크 전무역부 장관이 영국정부가 지난 88년 이같은 무기수출을 장려했음을 시인함에 따라 관세담당관리들에 의해 제소된 이 사건에 대한 기소를 포기했었다.
  • 클린턴,“미 군사력 세계최강 유지”/재향군인의 날 연설

    ◎“실종미군 은폐국관 수교안해” 【리틀록 AP AFP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당선자는 11일 『새 행정부의 군비삭감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군사력을 세계최강으로 계속 유지해 나가겠으며 실종미군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클린턴 당선자는 이날 아칸소주 의사당에서 가진 재향군인의 날 기념연설을 통해 내년 1월 취임후 탈냉전의 시대조류에 맞춰 군사력 규모의 축소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나 세계 최강의 전력을 계속 유지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후 처음으로 가진 이날의 대중 정책연설에서 『세계정세는 아직도 위험하고 불확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한다』면서 『나는 취임후 군통수권자로서의 책임을 완수하는데 진력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신도시 안전처방 완벽해야 한다(사설)

    이제 신도시아파트의 안전성문제는 사태를 호도하거나 그럭저럭 넘겨버릴 단계는 지났다.최근 한양이 산본에 건설중인 아파트 부실시공문제는 신도시아파트 안전성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안을 재촉하고 있다.정부의 단안은 신도시아파트에 대한 전면적인 부실 진단과 안전 처방이며 또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신도시건설이 추진된 이후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교통·환경등 생활주변여건은 여기서 논외로 치더라도 염분이 함유된 바다모래의 사용,건자재파동과 인력난,그로인한 크고작은 하자보수요구가 잇따라 제기되었다.일찍 발견된 부실공사는 재시공되는 경우도 있었다.그러다가 이번 한양의 산본아파트와 같은 전반적인 부실공사와 그로인한 공사중지명령이 내려지는 지경에까지 왔다.왜 이렇게 신도시 부실시공문제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가. 저질자재의 사용,신공법 적용에 따르는 기술부족,감리·감독체계의 허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그러나 부실시공에 상응하는 충분한 제재의 결여가 더 큰 요인으로 보인다.지금까지 숱한 부실공사에 명쾌한 제재가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신도시부실공사가 사실이상으로 과장되거나 의혹이 증폭되어서는 안된다.반면에 사실이 은폐되고 축소돼서는 더욱 안된다.지금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전면적인 안전도 진단의 실시뿐이다.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부실시공이 발견되지 않은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더욱이 입주예정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부실시공으로 지적되고 있는 아파트의 공사재개 움직임도 있다. 건설업자의 손익계산만을 챙겨주는 느낌마저 든다.입주예정일의 연기나 부실시공된 아파트를 다시 건설함으로써 건설업자의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치 않다.그보다는 3천여가구가 들어가 살아야 하는 아파트가 안전해야 된다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한양은 8일자 도하 신문에 대문짝만한 해명광고를 냈다.「강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임을 자랑하고 있을뿐 잘못 시공되었다는데 대한 일언반구의 반성도 없다.그런 자세로 신도시아파트를 건설해온 것이다.거듭 주장하거니와 산본 신도시 부실시공문제는 절대로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 아니다.입주시기나 행정력의 부족을 이유로 전반적인 안전도 진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신도시 부실시공은 계속될 것이며 그로 인한 더욱 불행한 사태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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