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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조폭 꼬리표 떼고 투혼의 파이터로 불렸으면”

    “이젠 조폭 꼬리표 떼고 투혼의 파이터로 불렸으면”

    “‘조폭 파이터’란 별명은 창피하니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생계형 파이터’란 얘기도 듣는데 이제는 많은 나이를 열정으로 뛰어넘은 ‘투혼의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외모부터 남다르다. 짧게 자른 꽁지 머리, 1㎝ 정도 흉터가 15㎝ 길이로 가로 새겨진 이마,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 영락 없는 ‘형님’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국내에 하나 뿐인 프로 종합격투기(MMA) 대회인 ‘로드FC 003 익스플로전’에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불려온 김종대(30·팀포스)를 크로스 카운터로 링에 벌렁 드러누이면서 프로 파이터의 가능성을 과시한 이한근(42·영등포 정심관)은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과거를 지녔다. “먹고 살려고” 조직에 몸 담았다가 4년반 전쯤부터 파이터로 변신하며 허물을 벗고 있는 것.  이한근은 19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김종대와의 경기에서 이긴 것을 운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며 “다음 대회에선 한 체급 올려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는 만큼 빈틈없이 준비해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기획사 사무실과 13일 경기 고양시 화정의 ‘익스트림 피트니스’에서 각각 진행된 일문일답.    성공적인 프로 데뷔 이후 얼굴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을텐데.  -교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릴 적부터의 꿈인 체육관을 함께 운영해보자는 사람도 생겼는데 1년은 (선수로) 뛴 뒤 체육관 차릴 계획이니 당장 응하진 않을 겁니다. 파이트 머니가 적어 실망하긴 했지만 내가 대회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김종대를 꺾은 것은 운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지요. 이긴 비결은 그 뭐, (경기 사나흘 전부터 복싱) 세계챔피언(조인주 관장)에게 물어봤어요. (김종대가) 훅은 치면은 뭘 쳐야 하느냐 물어봤더니 어퍼컷 말고 같이 훅을 걸으라고 해서, 그게 맞아떨어져서 운좋게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한참 전에는 ‘타격은 강한데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이광희에게 기본적인 수비 동작 등 레슬링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김종대의 펀치를 맞고 한 번 휘청했지 않았나.  -경기 뒤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며 꼼꼼이 분석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더라. 맷집만 믿고 가드를 내리는 내 약점도 여전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대와는 가끔 만나 통닭을 먹습니다. 지난 경기를 앞두고도 이틀 전인가 함께 밥을 먹었는데요. 종대가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링사이드 사회자가 미들급으로 올려 데니스 강과 토너먼트를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좋다고 했다.  -약간 얼떨결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왕 얘기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 시합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다음 대회, 이 앞전 시합 때 토너먼트, 한 체급 위이고 하니까, 저번 시합 때 제가 운 좋게 이겼잖아요. 대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요.  시합 끝나고 일주일 쉬었다가요, 옛날은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나름대로 몸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쬐끔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중학교 이래 늘 하던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했지요. 지금도 새벽에 배드민턴하고 오후에 아는 관장들 운영하는 체육관 여러 곳을 돌면서 2~3시간씩 운동합니다. 배드민턴은 몸의 민첩성을 키우는, 나만의 훈련 비결이기도 하지라.    데니스 강. 엄청 센 상대 아닌가.  -링에 올라가면 별로 겁을 내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어차피 대결은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약점을 보완하고 내 장점을 가다듬으면 한 번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파이터로서의 자격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이 있는데.  -격투기 좋아하는 분들 모두 소중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운동해보지 않고 글로만 아는 척하는 분들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노는 거고.  이번 경기 뒤 인터넷 댓글들 보면서 많이 웃기도 안 했습니까. 등업(글쓰는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할줄 몰라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얘기가 궁금하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 근처 섬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고졸로 학력이 가장 높아요.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님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을 돌봤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두 형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십니다. 큰 형은 관광버스 운전을, 둘째 형은 간판 일을 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막내도 고교를 중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면 ‘두뇌는 명석하나 노력을 안함’이라 써 있곤 했습니다. 고흥 도화면에서 중고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태권도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흥은 원래 장사가 많은 곳 아닌가.  -그라지라. 보통 고흥 남자들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셨고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쪽이 그런 편이셨어요. 전남체전 같은 데서 우승한 경력도 있으니 꽤 잘했지요.    조직에 몸 담게 된 것은.  -군대 다녀온 뒤 뭘해 먹고 사나 싶었어요. 고교 시절 태권도를 가르친 분이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몇 개를 적어주었어요. ‘서울 가 도장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사나흘 정도 노숙하다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아는 건 운동뿐인데 어쩌다 잘못 풀린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의 이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먹을 썼지, 선량한 시민들 괴롭히고 그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 조직을 떠날 생각을 했나.  -스물셋에 조직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결심을 전한 뒤 7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화’ 받으러 ‘학교’ 갔다 나와서 보니까 제가 조금 늦게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4년에서 4년반 정도. 솔직히 어렸을 때 하다보니까 (조직 활동)하게 된 것인데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쪽에서,  제가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했는데 전 마침 운동이라도 쪼끔씩 해오고 있었고, 변화하려고 하는, 변화되는.  안 그랬으믄 전 지금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냥 발만 담그고 있었을 겁니다.    조직 떠나는데 교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둘째 형이 발에 난 동티를 기도로 치유하겠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함께 했습니다. 기도가 정말 통하는 걸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느날 기도를 하다 방언을 하면서 눈물 범벅으로 살아온 인생을 고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하느님 말씀에 따르게 됐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중고교 시절부터 폭행죄로 입건된 건만 17번이었습니다. 조직 문제로 ‘학교’에 갔을 때 자꾸 쓸데없이 건드리는 잡범들이 있어서 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징벌방을 7~8번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년반 형기를 살면서 성경을 7번 통독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대보라.  -편치 드렁크, 오랜 동안 주먹으로 뇌에 충격이 전해지면 깜빡깜빡 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저도 있는지 얘기한 뒤 5분만 지나면 까먹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로드 FC 대회에서 승리한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편하고 좋은 면도 있습디다.    체육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기술도, 배운 것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니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1년쯤 프로 생활 더 하다 은퇴한 뒤 체육관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생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집 근처 아는 형의 카센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니다. 격투기하는 친구들은 오랜 시간 직장에 붙들어 매어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도 쪼끔씩 도와주시지요.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때문에 새벽 기도 가고 새벽 배드민턴 운동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내게 격투기는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이고요. 솔직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    ‘조폭 파이터’란 별칭에 불편해 하던데.  -처음에 전직 조폭, 그래서 제가 뜬 건 사실이니까 불편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딴 사람들 댓글 보면 전직 조폭 자랑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더라. 지금 교회에서도 집사도 하고 있고 장가도 가야 하고 그런데 그걸 좋아서 내세운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폭 파이터는 창피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투혼의 파이터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이 마흔에 여러 모로 힘들지 않나.  -젊은 친구들 힘을 못 따라갑니다. 맷집도 약해지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턱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동영상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데도 취약할 수밖에요. 먹고 사는 걱정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용기를 얻은 40대가 체육관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 보면 ‘여유 있을 때 하지 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이나 여건 때문에 못 하시는 분들을 대신해 뛰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서 그분들 스트레스 날려드리고 격투기 중흥하게 하고 발전에 도움 됐으면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조폭 파이터’란 별명은 창피하니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생계형 파이터’란 얘기도 듣는데 이제는 많은 나이를 열정으로 뛰어넘은 ‘투혼의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외모부터 남다르다. 짧게 자른 꽁지 머리, 1㎝ 정도 흉터가 15㎝ 길이로 가로 새겨진 이마,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 영락 없는 ‘형님’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국내에 하나 뿐인 프로 종합격투기(MMA) 대회인 ‘로드FC 003 익스플로전’에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불려온 김종대(30·팀포스)를 크로스 카운터로 링에 벌렁 드러누이면서 프로 파이터의 가능성을 과시한 이한근(42·영등포 정심관)은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과거를 지녔다. “먹고 살려고” 조직에 몸 담았다가 4년반 전쯤부터 파이터로 변신하며 허물을 벗고 있는 것.  이한근은 19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김종대와의 경기에서 이긴 것을 운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며 “다음 대회에선 한 체급 올려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는 만큼 빈틈없이 준비해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기획사 사무실과 13일 경기 고양시 화정의 ‘익스트림 피트니스’에서 각각 진행된 일문일답.    ▶ 성공적인 프로 데뷔 이후 얼굴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을텐데.  -교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릴 적부터의 꿈인 체육관을 함께 운영해보자는 사람도 생겼는데 1년은 (선수로) 뛴 뒤 체육관 차릴 계획이니 당장 응하진 않을 겁니다. 파이트 머니가 적어 실망하긴 했지만 내가 대회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 김종대를 꺾은 것은 운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지요. 이긴 비결은 그 뭐, (경기 사나흘 전부터 복싱) 세계챔피언(조인주 관장)에게 물어봤어요. (김종대가) 훅은 치면은 뭘 쳐야 하느냐 물어봤더니 어퍼컷 말고 같이 훅을 걸으라고 해서, 그게 맞아떨어져서 운좋게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한참 전에는 ‘타격은 강한데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이광희에게 기본적인 수비 동작 등 레슬링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 그래도 김종대의 펀치를 맞고 한 번 휘청했지 않았나.  -경기 뒤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며 꼼꼼이 분석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더라. 맷집만 믿고 가드를 내리는 내 약점도 여전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대와는 가끔 만나 통닭을 먹습니다. 지난 경기를 앞두고도 이틀 전인가 함께 밥을 먹었는데요. 종대가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 링사이드 사회자가 미들급으로 올려 데니스 강과 토너먼트를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좋다고 했다.  -약간 얼떨결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왕 얘기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 시합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다음 대회, 이 앞전 시합 때 토너먼트, 한 체급 위이고 하니까, 저번 시합 때 제가 운 좋게 이겼잖아요. 대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요.  시합 끝나고 일주일 쉬었다가요, 옛날은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나름대로 몸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쬐끔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중학교 이래 늘 하던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했지요. 지금도 새벽에 배드민턴하고 오후에 아는 관장들 운영하는 체육관 여러 곳을 돌면서 2~3시간씩 운동합니다. 배드민턴은 몸의 민첩성을 키우는, 나만의 훈련 비결이기도 하지라.    ▶ 데니스 강. 엄청 센 상대 아닌가.  -링에 올라가면 별로 겁을 내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어차피 대결은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약점을 보완하고 내 장점을 가다듬으면 한 번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 그래도 파이터로서의 자격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이 있는데.  -격투기 좋아하는 분들 모두 소중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운동해보지 않고 글로만 아는 척하는 분들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노는 거고….  이번 경기 뒤 인터넷 댓글들 보면서 많이 웃기도 안 했습니까. 등업(글쓰는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할줄 몰라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살아온 얘기가 궁금하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 근처 섬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고졸로 학력이 가장 높아요.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님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을 돌봤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두 형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십니다. 큰 형은 관광버스 운전을, 둘째 형은 간판 일을 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막내도 고교를 중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면 ‘두뇌는 명석하나 노력을 안함’이라 써 있곤 했습니다. 고흥 도화면에서 중고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태권도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 고흥은 원래 장사가 많은 곳 아닌가.  -그라지라. 보통 고흥 남자들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셨고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쪽이 그런 편이셨어요. 전남체전 같은 데서 우승한 경력도 있으니 꽤 잘했지요.    ▶ 조직에 몸 담게 된 것은.  -군대 다녀온 뒤 뭘해 먹고 사나 싶었어요. 고교 시절 태권도를 가르친 분이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몇 개를 적어주었어요. ‘서울 가 도장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사나흘 정도 노숙하다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아는 건 운동뿐인데 어쩌다 잘못 풀린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의 이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먹을 썼지, 선량한 시민들 괴롭히고 그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언제 조직을 떠날 생각을 했나.  -스물셋에 조직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결심을 전한 뒤 7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화’ 받으러 ‘학교’ 갔다 나와서 보니까 제가 조금 늦게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4년에서 4년반 정도. 솔직히 어렸을 때 하다보니까 (조직 활동)하게 된 것인데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쪽에서,  제가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했는데 전 마침 운동이라도 쪼끔씩 해오고 있었고, 변화하려고 하는, 변화되는….  안 그랬으믄 전 지금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냥 발만 담그고 있었을 겁니다.    ▶ 조직 떠나는데 교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둘째 형이 발에 난 동티를 기도로 치유하겠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함께 했습니다. 기도가 정말 통하는 걸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느날 기도를 하다 방언을 하면서 눈물 범벅으로 살아온 인생을 고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하느님 말씀에 따르게 됐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중고교 시절부터 폭행죄로 입건된 건만 17번이었습니다. 조직 문제로 ‘학교’에 갔을 때 자꾸 쓸데없이 건드리는 잡범들이 있어서 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징벌방을 7~8번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년반 형기를 살면서 성경을 7번 통독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대보라.  -편치 드렁크, 오랜 동안 주먹으로 뇌에 충격이 전해지면 깜빡깜빡 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저도 있는지 얘기한 뒤 5분만 지나면 까먹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로드 FC 대회에서 승리한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편하고 좋은 면도 있습디다.    ▶ 체육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기술도, 배운 것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니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1년쯤 프로 생활 더 하다 은퇴한 뒤 체육관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 생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집 근처 아는 형의 카센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니다. 격투기하는 친구들은 오랜 시간 직장에 붙들어 매어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도 쪼끔씩 도와주시지요.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때문에 새벽 기도 가고 새벽 배드민턴 운동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내게 격투기는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이고요. 솔직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    ▶ ‘조폭 파이터’란 별칭에 불편해 하던데.  -처음에 전직 조폭, 그래서 제가 뜬 건 사실이니까 불편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딴 사람들 댓글 보면 전직 조폭 자랑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더라. 지금 교회에서도 집사도 하고 있고 장가도 가야 하고 그런데 그걸 좋아서 내세운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폭 파이터는 창피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투혼의 파이터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나이 마흔에 여러 모로 힘들지 않나.  -젊은 친구들 힘을 못 따라갑니다. 맷집도 약해지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턱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동영상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데도 취약할 수밖에요. 먹고 사는 걱정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용기를 얻은 40대가 체육관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 보면 ‘여유 있을 때 하지 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이나 여건 때문에 못 하시는 분들을 대신해 뛰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서 그분들 스트레스 날려드리고 격투기 중흥하게 하고 발전에 도움 됐으면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노벨상을 받기 위한 연구·과학은 없다”

    “노벨상을 받기 위한 연구·과학은 없다”

    “노벨상을 받기 위한 연구,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과학. 내 평생 그런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시바 마사토시) “노벨상을 받기 이전과 이후,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그건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나 생각할 일이다.”(리위안저) 지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고시바 마사토시(85) 일본 도쿄대 특별영예교수와 1986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리위안저(李遠哲·75) 타이완 중앙연구원 특빙연구원, 두 노학자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했다. 인터뷰가 20여분을 넘기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는 철학과 힘이 배어났다. 두 학자의 메시지는 “과학으로 얻은 영광을 과학으로 인류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8일 ‘아시아 학생들과 전세계 과학 석학의 만남’을 기치로 2007년부터 각국을 돌며 열리는 아시안사이언스캠프(ASC)의 창안자인 두 학자를 행사가 치러지는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KI센터에서 만났다. 노벨과학상이 가진 힘과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콤플렉스’에 대해 묻자 “노벨상을 타기 위한 왕도는 없다.”고 한목소리로 답했다. →지금까지 900명 가까운 인물과 단체가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 원인은 찾는다면. 고시바 과거엔 첨단기기가 서양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적인 면에서 차이는 없다. 다만 창의성의 기반이 좀 다르다. 한국을 예로 들면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 왜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점수로 경쟁하는 대회다. 과학은 능동적인 학문이다. 리 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들처럼 좋은 사람이 돼라.’는 사상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틀린 말이다. 남보다 더 많은 점수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내가 남들과 다른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깨달아야 성취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 이전과 이후의 삶은. 고시바 은퇴를 준비했는데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 남들이 내 말에 더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중성미자처럼 과거엔 사람들의 흥미가 없었던 내 연구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리 노벨상 수상자는 힘이 세다. 수상 이전에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이후에 난 타이완의 과학적 상징이 됐다. 영향력 때문에 많은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노벨 과학상은 아직까지 한국이 정복하지 못한 분야다. 국가적인 과제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고시바 한국의 노벨상 콤플렉스는 지인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나 자신을 포함, 수많은 수상자를 봤지만 처음부터 노벨상이 목표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다 보니 받게 되는 거다. 특히 한국은 정부의 지원은 많은데 분야를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몰아주면서 간섭하는 경향이 있다. 결코 창의성이 나오지 않는 구조다. 리 아시아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노벨상에 집착한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아라.’라고 얘기하는 것은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1등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대신 학생들 모두가 각자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그 중에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는 거다. →적지 않은 나이인 데도 불구, 후학 양성에 정력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고시바 기초과학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난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받아서 노벨상을 탔다. 그럼 다른 형태로 갚아야 한다. 노벨상 상금을 밑천으로 헤이세이기초과학재단을 세운 것도 그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해서 일본의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회에 갚아 가는 방식이다. 리 노벨상을 받은 이후 정치인이 되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과학자는 진실을 규명해 사회에 보답하는 자리이고, 정치인의 개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거절했다. 대신 과학교육에 매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공인이라고 생각하고, 걸맞은 책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의 정상에 있는 학자로서, 후학들에게 연구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고시바 선생 또는 부모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라. 그러다 보면 최소한 하나는 얻는 것이 있다. 리 인생의 주인이 돼라. 독립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져라. 무엇보다 자신감을 키워야 큰 일을 할 수 있다. 학교는 학생을 억압해 이 같은 자신감을 누르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1~2명의 뛰어난 선생이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대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986년 노벨화학상 받은 리위안저 국립타이완대와 국립칭화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5년 미국 UC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 미국 국적을 취득,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기초반응을 추적해 화학반응을 이해하는 ‘교차 분자빔 기술’을 발견한 공로로 198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1994년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며 타이완 국적을 회복, 중앙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천수이볜 총통이 행정원장과 부통령직을 권유했지만 “과학자의 길은 따로 있다.”며 사양했다. 세계 최대 과학단체인 국제과학연맹위원회(ICSU) 차기 위원장이다. ■ 2002년 노벨 물리학상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한 뒤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 도쿄대 교수로 부임했다. 1996년 우주선연구소장 시절 ‘신비의 미립자’로 불리던 ‘중성미자’를 실제로 검출하기 위해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에 방사선 검출 장치 ‘슈퍼카미오칸데’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12개의 중성미자를 발견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05년 독일에서 열린 노벨상 캠프에 참석한 뒤 리위안저 박사와 뜻을 모아 ‘아시안사이언스캠프’(ASC)를 창설했다. 2007년 타이완에서 첫 ASC가 열렸다.
  • [프로배구] 첫 지명권 트레이드 결국 법정 다툼 비화

    프로배구 현대캐피탈과 우리캐피탈의 사상 첫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우리캐피탈로 트레이드한 세터 송병일(28)이 11일부터 열리는 수원·IBK기업은행컵 프로배구대회에 나갈 수 없도록 최근 법원에 출전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4일 “양 구단의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해 가처분신청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가 나왔다.”고 밝혔다. 현대캐피탈은 2010~11 V리그 개막 전인 지난해 7월 송병일을 우리캐피탈에 넘기면서 레프트 이철규를 시즌 후 함께 트레이드하고 그 대신 2011~12시즌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받는 비밀 협약을 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맺었다. 문제는 이철규가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하면서 불거졌다. 두 구단이 합의한 1대2 트레이드(송병일 대 신인 1순위 지명권·이철규)가 불가능해지면서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성적에 따라 우리캐피탈이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갖게 된 것도 변수 중 하나로 작용했다. 올해 월드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최홍석(23·경기대)이 1순위로 지명될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양 구단은 ▲우리캐피탈이 이철규 대신 다른 선수를 넘겨받는 방안 ▲송병일을 다시 현대캐피탈로 돌려보내고 협약 자체를 무효로 하는 방안 ▲신인 지명권을 우리캐피탈이 그대로 갖는 대신 1대1 트레이드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놓고 협의를 계속해 왔다. 최근에는 우리캐피탈이 지명권을 갖는 대신 풍부한 레프트 자원 중 한명을 현대캐피탈로 넘기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캐피탈은 안준찬(25), 최귀엽(25), 강영준(24) 등 유망한 레프트를 원한 반면 우리캐피탈은 주축 선수를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지난달 말 한국배구연맹(KOVO)에 조정 신청을 내기도 했다. KOVO 정관상 구단 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연맹이 중재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정관에 트레이드와 관련된 부분이 없어 연맹이 중재할 소지가 없을뿐더러 강제권이 없어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현대캐피탈이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처분신청이라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송병일은 최근 연습경기에서 발목 인대를 다쳐 컵대회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협상 과정의 일부분으로 가처분신청을 준비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제출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청년층 줄었는데 취업준비생 늘어

    청년층(15~29세) 인구는 줄어드는데 실업자와 취업준비생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퇴 후에도 노후를 즐기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업 경기 좋아져 구직자 되레 증가”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청년층(15~29세) 및 고령층(55~79세)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청년층 인구는 961만 4000명(15세 이상인구 4100만 3000명의 23.4%)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만 5000명(-1.1%) 감소했다.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도 537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만 4000명 줄었다. 그러나 청년층 실업자는 31만 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만 7000명(13.5%) 늘었고 취업시험 준비생은 58만 8000명(10.9%)으로 4만 8000명(8.9%) 증가했다. 취업시험 준비 분야 중 ‘기능분야 및 기타’는 27.8%, 일반기업체는 20.6%로 각각 전년 동월 대비 2.3% 포인트, 3.8% 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일반직 공무원은 29.8%, ‘고시 및 전문직’은 11.4%로 각각 전년 동월 대비 2.5% 포인트, 4.5% 포인트 감소했다. ●졸업 후 ‘첫 취업’까지 11개월 걸려 통계청 관계자는 “청년층은 감소하고 있지만 제조업 등 기업들의 경기사정이 좋아지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취업시험 준비 분야를 성별로 보면, 남자는 일반직공무원(31.7%), ‘기능분야 및 기타’(25.9%), 일반기업체(24.6%) 순이며 여자는 ‘기능분야 및 기타’(30.0%), 일반직공무원(27.6%), 일반기업체(16.1%) 순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층 대졸자(3년제 이하 포함)의 평균 졸업소요 기간은 4년 1개월로 전년 동월보다 1개월 증가했다. 졸업·중퇴자 중 88.7%가 취업경험이 있으며,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11개월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개월 늘었다. ●실버취업 증가… 2명 중 1명 재취업 고령자들은 대개 50대 초반에 그동안 다녔던 직장을 떠났지만 생계비 마련 등을 위해 재취업해 2명 중 1명은 현재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현재 55~79세 이상인 고령층의 취업자 수는 505만 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만 2000명 증가했다. 고령층의 고용률은 50.8%로 지난해 동월 대비 0.4% 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일자리에서 은퇴할 나이인 65~79세의 고용률도 35.7%에 달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따로 또 같이’ 베이비부머·에코부머 소통하라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따로 또 같이’ 베이비부머·에코부머 소통하라

    7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교정, 지루한 장마 가운데 끼인 맑은 날이었다. 등록금 투쟁, 청년실업,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둔 정년연장 논쟁 같은 세대 갈등이 그칠 것 같지 않던 날,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echo·메아리)붐 세대는 소통했다. ‘58년 개띠’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와 ‘28세 젊은 논객’ 한윤형씨는 ‘우리와 너희 그리고 함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세대는 모두 공동체를 중시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민족주의로, 에코붐 세대는 공부나 취직 등 필요에 의해서다. 장래 선택은 부모의 결정이 중요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에코붐 세대는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기대야 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가 고민이고 에코붐 세대는 취업과 은퇴하는 어른들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힘들다. 인구학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이 에코붐 세대다. 그래서 두 세대는 같고도 달랐다. ●서로의 세대에게 -(정과리 교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응원에서 나타났던 역동성은 굉장하다. 난 에코붐 세대를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와 유명해짐), 즉 현재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즐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현재와 과거·미래를 연결하기 싫거나 두려운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가 부족하다고 느껴야 미래가 있는데 현재를 부족하다고 느끼기 싫은 것 같다. 힘은 좋지만 비전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노동과 고통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윤형) 잘 짚어 주셨다. 뭔가 없어도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우울한 현실보다 낫긴 한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리가 없어진다는 느낌이다. 대중문화에서도 매일 여러 작품이 나오니 3~4년전 걸작조차 관심이 떨어진다. 반면 기성세대는 전반적으로 자기 자식에 대해 말하는 것과 사회 젊은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반대다. 청년 실업이 70만명이라는 데 대해 좌·우파가 공히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만 가려 한다고 지적한다. 공무원 시험에 매몰된 학생들을 비판하지만 집에서는 자식에게 반대로 얘기한다. -(정 교수) 사실 우리 세대가 자기모순이 심하긴 하다. 젊은 시절 트로츠키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자기 자식은 미국에 유학보내면서도 갈등이 없다. 사회적 요구도 강하고 개인적 욕망도 강해 고민하기 힘드니 이 둘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공동체의 향수 -(정 교수) 베이비붐 세대에는 민족주의가 지배했다. 1987년 이전까지 개인은 곧 민족이었다. 지배권력이든 저항세력이든 마찬가지였다. 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민족의 에이전트(대리인)였다. 그래서 유학을 가는 것도 꺼림칙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자유로운 개인이 생겨났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동체의 요구를 떼어내고 자기를 생각하는 세대가 됐다. 2000년대에 절정이었고, 에코붐 세대는 오히려 자신의 요구에 의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세대로 보인다. -(한윤형) 학교에 밥터디가 있다. 한때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취업 공부나 학교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반면 동아리는 황폐화됐고, 취업스터디모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필요에 의해 다시 공동체를 원하는 것이 맞다. ●젊음의 편린 -(정 교수) 장래에 대해 부모님의 요구가 강했고 거부하기 힘들었다. 대학 때는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반면 1970년부터 국민총생산(GNP)이 북한을 넘어서고 중동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대림건설, 외환은행 등 좋은 직장도 대학만 나오면 취업했다. 석사학위로 충남대학교 교수직에 취업했다. 제5공화국 시절, 독일 유학파인 이규호 교육부 장관이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수와 입학생이 대거 늘었다. 서강대 공대에서는 졸업이 안 될까 불만을 품은 학생이 교수를 칼로 찌른 사건도 일어났다. 1987년 민주항쟁에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이유도 이때 입학생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모순이 있다. -(한윤형) 2001학번인데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다. 한때 부모에게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이 널리 퍼졌다면 요즘은 다시 부모님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은 한 팀이다. 부모가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먼저 요구를 하고 서로 발맞추어 나간다. 어떤 기성세대는 자식들이 ‘엄마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엄마도 해방된다는데 에코붐 세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부모가 경제적으로 다소 넉넉하고 자식도 공부를 잘하는 경우지만, 그 밖의 대학생은 부모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등록금도 비싸고 취직해 독립하기도 힘들고, 부모가 최후의 도피처 아닌가. ●취업, 은퇴 그리고 재취업 -(정 교수) 최근에 프랑스에서 정년을 연장하려다 고등학생까지 데모하는 것을 봤다. 우리나라도 일각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있는데 후속 세대의 사회 진입을 위해 정년은 지켜야 한다. 단, 퇴직한 이들이 포스트 사회를 이룰 정도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주인공이 된 기존 사회와 협력과 갈등을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생물학적으로도 같은 종을 모아놓으면 퇴화하지만 다른 종을 붙여놓으면 환경이 진화한다. -(한윤형) 정년 연장 문제가 민감하지만 이로 인해 청년을 덜 뽑을 수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 한정된 문제는 아닐까 싶다. 청년 인구가 줄고 있으니 노년층을 부양하는 의무가 많아질수록 청년들도 정년 연장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가 좋은 자리에 있다면 내 취업 준비 기간은 늘어난다. 아직 에코붐 세대에게 정년 연장은 이슈화되지 않은 것 같다. ●등록금이라는 업보 -(정 교수) 학교가 현상유지만 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시스템에 들어갔다. 발전 강박에 휩싸인 채 진화를 해야 하니 재원이 필요하고 등록금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등 유럽식으로 국가에서 등록금을 해결해 주든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한다. 물론 힘든 문제다. 기여입학제 역시 형평성 논란에 하위권 대학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으니. -(한윤형) 유럽처럼 대학생 수를 줄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공공주택으로 집값을 다소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국립대에서 싼 등록금으로 학생을 빨아들이면 등록금 경쟁의 평형을 깨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리 이경주기자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kdlrudwn@seoul.co.kr 정과리 1958년생, 서울대 불문학과 졸업. 2008년 한국 사회의 변화에서 ‘청년’이 가진 의미를 분석한 평론집 ‘들어라 청년들아’를 출간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정치 세력이 ‘청년 문화’를 많이 이용했지만 ‘청년’은 한국인이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투사해 온 중요한 상징체라고 지적했다. 또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으며 젊은 세대는 신인류가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강조해 왔다. 한윤형 1983년생, 서울대 철학과 재학중. 고 3때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논술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유명해졌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뉴 라이트 사용 후기’, ‘안티 조선 운동사’,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등 사회 서적을 꾸준히 출간해 오고 있다.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듯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전례가 없다. 전쟁이 끝난 뒤 매년 60만~70만을 헤아리던 신생아 울음이 갑자기 80만의 합창으로 증폭됐다. 이렇게 1958년에 태어난 이 땅의 ‘개띠’들은 초등학교 내내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에 시달려야 했고 중학교와 고교 입시제도가 바뀌는 행운(?)을 누렸다. 권력자의 아들 덕을 봤다는 얘기가 평생 따라붙었다. 1977년을 전후해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간 이들은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야 했고, 산업화 진군에 부응해 울산과 포항·마산 등으로 몰려간 이들은 막강한 숫자와 특유의 응집력으로 다른 연령집단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았다. 몇몇의 비아냥에서 시작된 별칭은 스스로 몸을 굴려 영향력을 키웠고 이제 그것이 ‘집단 운명’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군대에선 운동권으로 ‘찍혀 박박 기어야’ 했고, 1987년 6·10 항쟁에 넥타이 매고 머리띠 두르고 나서 민주화와 민주노조 운동에 함께 나섰던 이들. 이제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나 싶을 즈음, IMF 구제금융 사태로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했다. 어느새 53년, 이제 어쩔 수 없이 제2 또는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기준 712만명으로 추산된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허리’인 이들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감히 질문을 던져 본다. 4인의 속내도 들어봤다. 앞선 베이비 부머와도 차별되는 ‘신노년’의 도래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정부나 사회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도 짚어본다. ■ ‘우리가 맏형’ 임영빈 바른몸 상무 서울 청량리에서 버스를 운전하던 이북 출신 아버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미군이 나눠준 빵을 뜯어먹고 자란 우리에겐 가난과 인내가 ‘DNA’처럼 새겨져 있다. 중학교 진학할 실력이 안 됐는데 박지만 덕분에 추첨제(서울지역 첫 시행은 1969년)로 바뀌어 어렵지 않게 진학했다. 집안이 어려운 데다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할 것 같아 고교 때부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생각하고 컸다. 고교 졸업 뒤 대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취직, 당시 삼성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다. 술 사 먹고, 동생들 학비 보태라고 집에 돈을 보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병역을 해결하면서 지방 대학에 다녔다. 전두환 정권 들어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그만두고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컴퓨터 설계 장비 등을 주로 취급했는데, 남들은 전에 일하던 회사 제품과 경쟁하는 제품을 거래해 재미를 보곤 했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세대의 특징이기도 한데 남한테 폐 끼치지 않겠다는 의식이 유달랐다. 그렇게 여러 무역업체를 운영해봤다. 후배를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의료 관련 비즈니스를 새로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큰 수익은 못 내도 힘들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난 괜찮은 편이다. 항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와 도전을 하면서 살아왔다. 남은 24년 정도를 ‘작게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한 우물만을 파온 동년배들이 걱정된다. 이들을 위해서 정부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임금피크제 등 정부 정책이 피부에 와 닿는 뭔가를 전해주지 못하더라. 고교 동창들 모두 부모 봉양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아이들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낀 세대’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는 자녀가 노후를 돌보지 않겠느냐는 미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런 태도에 대해 구박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유난 떤다고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변화를 선도했다. 우리가 뭉쳐 일자리와 제2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그 열매는 우리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동생들, 나아가 우리 아이들까지 혜택을 본다. ■ ‘개띠 공돌이’ 김형만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경남 마산 바닷가 마을에서 5남3녀의 일곱째로 태어나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강냉이죽, 이듬해 빵을 학교에서 나눠줬다. 우리만 이런 추억이 유달리 강렬한 건 이전 세대는 아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골인데도 한 반에 65~70명이나 됐는데 절반만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겨울엔 난로에 들어갈 솔방울 주우러 다녔으니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었나. 1974년에 고입 시험이 추첨제로 바뀌었지만 마산은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2차로 공고에 진학했는데 학생들이 가방에 끌, 대패, 망치 등을 넣어다녔다. 흉악했는데도 의리가 있었다. 공부 잘하던 애들은 시험 보면 정답을 알려주곤 했다. 전국의 공고 학생들이 졸업하면 취업할 데는 널려 있었다. 울산, 포항에 전국의 ‘공돌이’들이 모여들었다. 58년 개띠는 그때 나온 얘기 아닌가 한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엔 여성 근로자가 엄청 몰리면서 연애 문화도 급변했다. 공고를 졸업한 뒤 포철에 입사해 쇳물 만드는 일을 8년 정도 했다. 장학금 준다고 해 창원대학에 진학한 뒤 1989년부터 서강대 대학원에서 또래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땄다. 1994년에야 사회로 나와 올해로 사회생활 17년째다. 그러니 뭔들 준비가 돼 있겠나. 첫아이가 이제 고2다. 역사와 세월에 맡기고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직장에도 또래가 4명 있는데 잘 뭉친다. (1957년생) 닭띠들도 꼼짝 못한다. 베이비 부머 중에서도 늘 변화의 중심이었다. 숫자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제도가 바뀌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때 우연히 첫 주자(중학 추첨제가 전국으로 확대된 건 1971년)였을 뿐이다. 우리 뒷세대만 해도 자기 생각에 빠지곤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다. 내일 어떻게 될지라도 오늘 끝장을 본다, 뭐 이런 거. 조국이나 집단에 대한 애착에서도 그렇다. 사회 구조가 몇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바뀌지 않을 때 방향성을 찾아가는 힘이 뭔지 궁금하다. 그때 개띠란 게 한몫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미래가 확실해서 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좌절하지도 않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냥 생각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런 게 있다. 분명히 다른 띠에 견줘 또래끼리 얘기가 잘 통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58년 개띠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할 것도 없다. 과거의 표상일 뿐이지,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띠를 제쳐두고 개띠만 중심에 놓고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다. ■ ‘해외에서 본 개띠’ 한주호 GE 헬스케어 전무 일본과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초등학교 마친 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에 갔다. 미군이 배급하던 빵의 추억은 공유하고 있다. 박지만 때문에 중학 입시가 바뀌었다는 소식에 ‘그 친구가 뭔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일본에서 고교 2년까지 다녔는데 어느 날, 세살 위 형을 제치고 소집 영장이 나와 귀국했다. 병무청은 사무 착오라 했다. 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 고교를 다시 들어가 두 살 아래 동생들과 다녔다. 1979년 입대해 전북 정읍에서 근무하면서 광주항쟁을 지켜 봤다. 이런 비극은 우리 세대에 끝내고 50~100년 뒤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면 제대로 민주주의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버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인터넷이 없어 대학 주소 알아내는 데만 석달 걸려 5년 동안 도전해 입학 허가를 얻었다. 들것에 실려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우등생 졸업했다. 환경미화원 일도 했고 미국 명문가 자제들이 얼마나 겸손하고 겉멋 부리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지 보고 감명받았다. 코넬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94년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강단에 서겠다는 꿈은 집안 사정 탓에 포기했다. 한국에 돌아와 법무법인 광장에 들어가 일하다 2005년 10월에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힘든 시절을 견뎌내며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리고 이전 세대보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컴퓨터와 영어를 할 수 있어 정치와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앞으로 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양극화, 부패, ‘SKY’란 표현으로 상징되는 1등주의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특정한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정부나 사회에 요구해 기회를 갖자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로 인해 과도한 ‘파워’를 갖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직장 그만두는 게 은퇴가 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미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의 면접을 본 뒤 따로 시간을 내 그 친구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 주고 있다.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재취업 등이 목적이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그런 고민과 기대를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가정을 꾸리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이 사회, 자녀, 후손에게 뭘 넘겨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탤런트를 사회에 환원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여자 58개띠’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초등학교 3학년까지 수원에서 다니다 서울로 와 부모와 따로 떨어져 학교를 다녔다.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구로동에 인구가 엄청 유입되면서 학교가 둘로 나뉘기도 했다. 고교 진학할 때 재단이 새로 생기면서 담임 교사들이 몇 등부터 몇 등까지는 어느 학교로, 그 아래 점수는 다른 학교로 이런 식으로 배정했고 장학금 몇푼으로 유혹했다. 좋은 학교 간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가는데, 다른 쪽에선 돌멩이 주워 학교 건물 지었다. 그게 싫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았다.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우연히 시작한 영화 칼럼과 책 쓰는 일이 평생 일이 됐다. 하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애국하는 길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내가 단순하다.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니 누가 결혼하겠는가. 지금 아이들 취업도 못해 낑낑대는데 정부 등에선 많이 낳아야 한단다.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성실하게만 일하면 직장 구해 먹고살 수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은가. 중학교가 남녀 공학이라 동창들이 많이 모였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해 고꾸라진 친구들이 많았다. 동창회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 신경 쓰지 말고 부부가 시골 가서 살자.’고 다짐했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IMF 이후 요식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모두 힘들어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 여자친구들에게 이제 한숨 돌렸으니 시민단체라도 가입해 활동하자고 권하면 젊은 시절, 젖먹이 떼놓고 직장 다녔던 죄의식으로 “손자들이라도 봐야지.” 하더라. 그런 친구들 은근히 많다. 사회에 봉사할 때가 됐는데 손자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소모되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장학금 주는 성공회대 NGO 여성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중년의 우울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일하는 것과 공부밖에 없다고 하더라. 폴란드에서 공공기관 근무자들이 대부분 머리 희끗한 분들이어서 놀랐다. 왜 우리는 어르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젊은이가 하는 등 거꾸로 돼 있는가 많이 생각했다. 거리 청소 같은 건 젊은이들이 하고 체력이 덜 소모되는 일은 어르신들이 하는 게 맞지 않나. 또 경제가 이만큼 됐으니 정부나 사회도 문화를 가꾸는 쪽으로 우리 ‘58년 개띠’들을 유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리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712만 베이비 부머, 부동산 시장 좌우한다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712만 베이비 부머, 부동산 시장 좌우한다

    고령화사회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향후 국내 부동산 시장을 예측하는 핵심변수로 꼽힌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시장의 방향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핫이슈’로 꼽히는 이유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 추이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은퇴와 맞물리면서 부동산 시장의 수요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처분소득 감소·전원주택 선호 전망 우선 인구의 노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처분소득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가장 두꺼운 수요층인 베이비 부머들의 경제력 약화가 장기적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에 불을 지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베이비 부머는 전체 인구의 14%가량인 712만 5000여명으로 지난해부터 5년 이내에 311만명이 직장에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상이 엇나갈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에 애착이 강한 베이비 부머는 여전히 주택 처분에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고 변수가 많아 대세 하락이라 단정 짓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권순형J&K부동산투자연구소장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은퇴 세대의 증가와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향후 주택 시장에서 전원주택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 이런 예상은 부동산 시장 변화와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은퇴세대가 전원주택으로 돌아가기보다 병원,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지 주택을 더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은퇴 이후 여전히 자녀교육과 재테크 등으로 인해 아파트를 거주공간으로 고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작용한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국내 베이비 부머 1200여명에 대해 실시한 설문에선 ‘거주지역은 가급적 바꾸지 않겠으나’(43%), ‘은퇴 후 거주지 규모를 줄여 이사하겠다’(53%)는 의견이 많았다. 또 은퇴 후 가장 전망이 밝은 투자상품으로 상가(26.3%)를 꼽았고, 토지(17.7%), 아파트(13.9%), 오피스텔(12.4%) 등이 뒤를 이었다. 전통적인 투자상품인 아파트보다 상가를 많이 택한 것은 은퇴 후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퇴자 재테크… 오피스텔 수요 급증 은퇴 후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비중을 다소 낮추되 주택을 처분해 수익형 부동산으로 갈아탈 이들이 많아 전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강남 지역에선 집 한 채 가진 은퇴자들이 집을 처분해 원룸이나 상가주택 등으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급증했다.”면서 “12억~15억원의 주택을 팔아 강북의 상가주택이나 인근 오피스텔을 구입하려는 베이비 부머들”이라고 전했다. 조민이 부동산1번지 팀장도 “지난해부터 오피스텔 수요가 한꺼번에 늘었는데 단정 짓긴 힘들지만 상당수가 은퇴를 준비하는 베이비 부머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217실에 불과했던 오피스텔 공급물량은 지난해 4227실, 올해 6256실(추정치)로 늘었다. 우리나라에선 주식, 연금이 아닌 부동산이 재테크의 축이라는 점도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 후 부동산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 가운데 부동산의 비중은 80%를 훌쩍 넘어 미국(33.2%), 일본(39.0%), 영국(54.0%)보다 월등히 높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국내 베이비 부머들의 수익형 부동산 투자치에 관한 공식 통계자료는 없으나 일부 자산가들은 아예 100억원 안팎 가는 서울 청담·신사동의 중소형 빌딩 구매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실버 시장 맞춤 상품·마케팅 개발해야”

    일본의 식품 기업인 마루하니치로는 씹는 힘이 약한 고령층이 쉽게 식사할 수 있도록 고기를 잘게 썰어 만든 ‘포크무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고령자를 위해 마련한 쇼핑대행 서비스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가 고령자를 타깃으로 내놓은 안티에이징 화장품도 불황 속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2006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 실버산업의 모습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층(65세 이상)이 전체의 7%를 넘었고, 2018년 14.3%, 2020년부터 고령 인구는 아동 인구(0~14세)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 인구층이 향후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친화산업(실버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뜨고 있고 실버시장 규모가 급성장하는 만큼 우리 기업으로서는 해외시장을 선점할 비즈니스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김정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고령화의 특징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8%인 시점을 기준으로 미국, 일본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1071달러로 더 높은 수준으로 향후 국민연금 및 개인연금 수급으로 우리나라 고령층의 경제력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한국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가 소비활동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지난해 44조원에서 2020년 148조원으로 성장하고 2026년 한국 사회는 노인소비자가 5명 중 1명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김 수석연구원은 “실버산업은 고령층뿐 아니라 노후를 준비하는 중·장년층과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 구성원까지 모두 대상자가 된다.”며 “복지 측면이 아닌 산업으로서의 제품 개발과 비즈니스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대 베이비붐 세대(뉴시니어)에 주목하는 안신현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시니어의 경우 더 이상 틈새 소비층이 아닌 주력 소비층으로 인식해 이들에 대한 상품 및 마케팅 개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경쟁력 및 생산성 저하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기업 인력의 고령화 현상과 함께 일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에 태어난 세대)의 은퇴로 인한 숙련 노동력 부족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이 필요한 고령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확대되고 업무공간 재설계 등 고령친화적 작업 환경을 구축하고 고령화 추세에 맞는 복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큰 집보다 작은 집, 아파트보다 단독으로

    우리나라 주택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다운사이징(규모 축소)과 단독주택의 선호도 상승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용면적 85㎡(25.7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가 대세였다. 건설사들도 앞다퉈 대형 평형 분양에 나섰고 소비자들도 더 넓은 집에 사는 것을 꿈처럼 여겼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침체, 1~2인 가구와 노인 가구 증가 등 인구 구조의 변화로 작은 평형의 아파트 선호도가 뚜렷해졌다. 유석원(62·서울 중구 신당동)씨는 지금 사는 142㎡ 아파트를 팔고 수도권 79㎡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 집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유씨는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는데 관리비 많이 나오는 넓은 아파트에 살 이유가 없다.”면서 “중대형 아파트 인기도 떨어지고 노후자금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택 다운사이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인구 구조 변화를 꼽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의 소득이나 소비도 크게 줄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주택 수요 변화라고 분석한다. 국내 인구 구조는 ▲인구 증가 둔화 ▲고령화 가속화 ▲베이비붐 세대 은퇴 ▲1~2인 세대 증가 등 과거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주된 가구 유형은 1990년 이후 4인 가구였으나 2010년에는 2인 가구가 가장 많아졌다. 부부 2인 가구는 2010년 267만 2000가구로 5년 전보다 18.3% 증가했다. 또 1인 가구의 비율도 폭발적으로 늘어 21.9%로 4인 가구에 육박했다. 이는 우리 사회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2인 가구가 가장 많은 가구 형태로 떠오른 것은 자녀를 출가시키고 나서 부부만 사는 가구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수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세대원 감소와 노인 가구의 증가, 보유세 부담 등으로 중·대형 아파트 선호가 계속 떨어질 것”이라며 “실속형 소형 주택이나 전원주택 등 다양한 취향을 겨냥한 주택으로 수요가 분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베이비붐 세대가 속속 은퇴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인구의 15.2%인 714만명으로 추산되는 베이비붐 세대 중 300여만명은 올해부터 9년에 걸쳐 직장에서 은퇴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연구소장은 “노후 준비도 못 하고 경제력을 상실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아파트를 줄여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처지”라면서 “그 때문에 수도권 아파트의 신규 분양시장은 썰렁하지만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에 아파트보다 단독 주택을 선호한다. 따라서 최근 신도시 내 단독주택 필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또 정부의 단독주택개발조건도 인기의 한 원인이다. 정부는 5·1 부동산대책으로 단독주택 층수 제한과 가구수 제한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건설경기 연착륙 및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 5월 31일부터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 가구수 제한이 폐지됐다. 이로써 블록형 단독주택용지에 있는 주택의 층수는 2층에서 3층으로, 1층에 점포를 지어야 하는 점포 겸용 단독용지에 자리한 주택은 3층에서 4층으로 층높이를 높일 수 있게 됐다. 1필지당 1가구 규정이 있는 블록형이나 3~5가구로 제한된 점포형의 가구수 제한 역시 사라지게 됐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자문팀장은 “아파트 다운사이징과 더불어 단독주택 선호도가 높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단독주택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런 주택 문화는 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려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사설] 베이비부머 노후안전망 서둘러 짜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민연금연구원 등과 조사해 정부에 제출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실태조사 내용은 베이비부머 위기론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택 마련과 자녀 사교육비에 짓눌리다 보니 노후 준비는 사실상 무방비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들 중 31.4%는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마저 얻지 못해 극빈층으로 곧장 추락할 것으로 조사됐다. 마지막 안전장치로 일컬어지는 국민연금에조차 가입하지 못한 비율이 13.7%나 되고, 퇴직금이 없는 이들도 63.8%다. 이에 앞서 올 초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 조사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의 월평균 저축액은 17만원으로, 평균 은퇴생활비 월 211만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안전망 확보 문제는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 제1 직장의 평균 퇴직연령이 54세 내외임에도 노동시장 은퇴연령은 세계에서 가장 긴 71.2세라는 사실이 증명한다. 노후 생계를 위해 각자 알아서 노동시장을 전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자의 소득빈곤율은 45.1%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인 13.5%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국민연금 역시 소득대체율이 42.1%로 OECD 평균인 59%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미국 은퇴연구센터의 앤서니 웹 박사는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상황을 ‘슬로 버닝 크라이시스’(Slow Burning Crisis)로 규정했다. 서서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의식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위기에 직면한다는 뜻이다. 베이비부머의 집단적 위기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우선 각 개인이 공적부조-공적연금-개인연금 및 저축 등으로 3중, 4중의 노후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사전 경보음을 울려야 한다. 정부는 고령자 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고령자 특성에 맞는 사회적 일자리를 적극 창출해야 한다. 고령자의 고용 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령자 빈곤은 결국 국가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강력히 촉구한다.
  • 베이비부머 31% ‘비참한 노후’

    베이비부머 31% ‘비참한 노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50대 초반의 K씨. 정년을 4~5년 남겨둔 그는 퇴직 이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특별히 배운 기술도 없어 사실상 노후를 국민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지금 수준으로 60세까지 연금을 부어도 탈 수 있는 돈은 월 110만원 안팎이다. 물론 정년 후 몇 년간 국민연금을 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럴 경우 받는 연금은 월 100만원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줄일 수밖에 없지만 늦둥이가 마음에 걸린다.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이른바 ‘베이비부머’ 위기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명 가운데 3명은 필요한 비용보다 수입이 적어 ‘비참한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김용하)이 지난 3월 국민연금연구원, 보험연구원 등과 함께 조사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베이비붐 세대 실태조사 및 정책 현황 분석’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31.4%가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을 얻지 못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노후생활을 보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전화조사는 전국 48~56세(1955~1963년생) 남녀 22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2015~2020년에 대부분 직장을 떠나 현직에서 은퇴하게 된다. 베이비부머들은 주로 노후에 필요한 수입을 월평균 200만원 내외로 예상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26.1%는 확보 가능한 수입액이 1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해 극빈층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만~200만원이 44.2%였고, 200만~300만원이 20.7%, 300만원 이상이 9.0%였다. 게다가 노후의 ‘마지막 안전장치’로 분류되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베이비부머 비율도 13.7%나 됐다. 개인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비율은 48.1%로 절반에 육박했다. 교육 수준과 현재 소득이 높은 관리자와 전문직, 사무·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비교적 노후 준비에 적극적인 반면 단순노무직·농림어업·기능원 및 조립종사자 등은 노후 준비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베이비부머 대다수가 달랑 집 한 채 갖고 있는 미래의 ‘하우스 푸어’라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베이비부머의 82.1%가 주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41.0%는 노후에 집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통계청의 지난해 ‘가계금융조사’ 결과 베이비부머의 평균 순자산 규모는 2억 8000만원이었으나 이 중 금융자산은 6000만원(21.4%)에 불과해 이들이 일정한 수입을 얻지 못하면 지출에 큰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노후 거주지로는 도시·농촌 등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고령자 전용 거주지를 희망하는 베이비부머도 36.0%나 됐다. 정경희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연금 상태인 베이비부머는 노후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부터라도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에 가입시키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더불어 중·고령자의 취업 활성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좋은 세상 만드는 이야기 할머니

    [김병일 사람과 향기] 좋은 세상 만드는 이야기 할머니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2018년에는 노인인구가 14%가 넘는 고령사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평균 수명도 현재의 80세를 넘어 머지않아 90세, 100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은퇴 후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 이 시기를 얼마만큼 충실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축복받은 삶이 될 수도 있고, 후회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는 데 금전적인 요소와 건강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나의 인생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끄는 데 돈,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까? 최근 모처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청춘합창단원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어르신들에게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또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멋있는 노후라고 칭송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노후의 삶이 개인도 즐겁고 지켜보는 주위도 흥겹게 하면 좋다. 다만 여기에 우리 이웃, 사회, 국가와 같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역할이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몸담고 있는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를 자주 만난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전통시대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던 무릎교육을 현 시대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곱고 반듯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선현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2009년 30명의 할머니로 시작된 이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할머니들이 유치원을 방문해 유아들에게 선현들의 미담이나 우리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시선들이 이제는 유아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나이 어린 유아들이 유치원에 할머니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 이야기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꼼짝도 하지 않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효도하고 절약하겠다며 유치원을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부모들은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야기 할머니들이 봉사하는 유치원의 학부모들은 예의까지 갖춘 아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주길 바라고 있다. 그 역할을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가 계속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학부모와 유치원 관계자들의 이러한 요구로 지난해 100명, 올해는 전국적으로 300명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양성과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번 양성과정에 참가하신 할머니들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야기 할머니’로부터 권유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정을 나누는 향기로운 선배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듣고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는 젊은 세대, 미래세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대는 똑똑하고 영리하다. 이제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바른 아이로 키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에게 요구되는 절실한 시대적 과제이다. 이 과제는 한강의 기적, 경이로운 국가발전을 이루어낸 어제의 산업전사요 오늘의 은퇴 어르신들이 잘하실 수 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하실 수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무릎교육을 받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회만 준다면 잘할 수 있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단순한 공경의 대상이 아니다. 이 시대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은퇴 후까지 하고 계신다는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해드리자. 할아버지, 할머니도 개인적 즐거움, 소일, 취미생활에서 벗어나 우리사회가 밝고 건전하게 나아가는 데 아름다운 황혼의 빛을 보탰으면 한다. 그럴 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세상, 향기롭고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리지 않을까.
  •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10)퇴직자 사회참여 지원사업 실태와 과제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10)퇴직자 사회참여 지원사업 실태와 과제

    수명은 길어졌으나 공무원 퇴직시기가 앞당겨지면서 퇴직 이후 삶에 대한 관리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해마다 3만명 정도가 퇴직하는데 2~3년 뒤면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 공무원들의 은퇴가 줄을 잇게 된다. 퇴직자의 사회참여는 늘어난 수명만큼 퇴직자 본인은 물론 이들을 길러 낸 정부로서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자와 미래 퇴직자의 인생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공무원연금공단이 최근 시작한 퇴직자 사회참여 지원사업 실태와 보완할 점을 짚어 본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자는 지난해 말 기준 27만여명이다. 70세 이하 월소득 300만원 이하 퇴직자 17만 5000명 중 실제로 사회봉사 등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2만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공단의 퇴직공무원 사회참여 지원사업은 지난해에야 시작됐다. 행정안전부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다. 공단 관계자는 “수급자 지원사업은 최근에야 눈 돌린 분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인원 1만 3000여명이 참가했고 올해는 1만 9300여명이 4억 4600여만원을 지원받게 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제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인식개선과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2014년 이후 베이비 붐 세대 공무원들의 은퇴가 대거 시작되면 공무원 고용주인 국가가 전관예우 제한은 물론 퇴직자들의 사회참여 지원에 나설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분석이다. ●법무·세무 퇴직자 전문상담 인기 공무원연금공단이 지원 중인 사회참여 사업은 크게 공익형·복지형·교육형·일자리 지원형 등 4개 유형으로 나뉜다. 공익형은 공단이 전국 7개 지부별로 상록자원봉사단을 구성해 스쿨존 교통정리, 학교주변 안전지킴이 활동을 지원한다. 올해 4272명이 활동 중이다. 복지형은 소외계층 가정에 안전 점검, 수리·보수,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도 위주로 620명이 참여할 계획이다. 모두 1인당 1회 2만~3만원 이내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교육형은 퇴직공무원들을 전문상담원, 정보화교육·문화강좌 강사, 공단의 연금상담서비스 도우미로 활용한다. 눈에 띄는 부분은 법무, 세무 분야 퇴직자들을 내세운 전문상담이다. 이들이 월 1~2회 공단 지부에서 같은 퇴직공무원을 상대로 부동산 등기, 소송 절차, 세금 상담을 해 주는데 매번 예정시간을 넘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전화상담도 해 준다. 종류에 따라 회당 2만~20만원의 강사료가 나온다. 올해 1799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자리형은 공무원 임대주택 관리, 공무원 채용시험 감독원, 급여채권 환수, 워킹스쿨버스 보조요원 등을 공공기관과 연계해 알선한다. 주택관리 매니저, 급여채권 환수는 1주일에 2~3일씩 시간제로 일하고 월 50만원을 지급한다. 문제는 퇴직 공무원 인적 풀 구축 등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방안 마련이다. 세무·법무·건설 분야 등은 지금도 전관예우 관행이 만연할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일반직 공무원의 약 24%를 차지하는 행정직 공무원의 경력관리 문제는 이제부터 풀어야 하는 과제다. 공무원연금공단은 퇴직 공무원들의 경력·인적사항을 7개 지부끼리 연계하는 시스템을 하반기에 구축할 계획이다. ‘G-시니어’로 불리는 퇴직공무원 종합포털시스템이 확충되는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1~2년 단위로 순환보직하는 인사체계 역시 인사·조직·지방행정 등 전문 보직 위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5급까지 실무자 시절엔 한 직무에서 전문성을 쌓고 4급 이상 간부는 통합관리형으로 육성하는 2단계형 인사시스템을 고민 중이다. ●日 교원 퇴직 전부터 재취업 알선 퇴직 후 공무원 연금 수급까지 대기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은 각 지방 교육위원회(교육청)별로 퇴직 교원들을 풀로 관리하는데 1년 전부터 미리 퇴직 이후 어떤 분야에 재취업, 봉사할 의사가 있는지 상담 후 연계해 준다. 65세 이전엔 연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제활동이 필수적이다.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부처별로 교육원, 연수원에 현직 강사 대신 퇴직 공무원을 일정 부분 활용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공무원 전문 분야별로 각 지역개발·연구원의 계약직 전문요원으로 활용하면서 취업제한의 퇴로를 열어 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퇴직 공무원 3인의 인생2막 “난, 이렇게 휴먼캐피털 됐어요”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퇴직 공무원 3인의 인생2막 “난, 이렇게 휴먼캐피털 됐어요”

    “5~6살짜리 어린아이들도 1년만 열심히 가르치면 한자능력검정시험 8급에 거뜬히 붙습니다. 얼마나 쏠쏠한 재미인지 몰라요.” 전직 국어 교사였던 정광조(67)씨는 동네인 경기 고양시 삼송동 노인정에서 1주일에 1시간씩 유치원생들에게 한문과 생활예절을 가르친다. 2006년 은퇴한 후 벌써 3년째다. 매주 수요일엔 초등학교 1~2학년이 대상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퇴직교원단체가 병행 지원하는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원 프로그램이다. 이와 별도로 1주일에 2번씩 서울 청운양로원에서 한글과 한문, 교양강의를 나간다. 이렇게 교사 경험을 활용해 봉사 겸 소일거리를 하면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활동비조로 매달 10만원씩 받는다. 정씨는 “일을 그만두고 마냥 노는 게 아니라 맹자의 삼락(三)처럼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법원 공무원 출신인 류인형(64)씨는 2007년 퇴직한 뒤 개인 법무사 사무실을 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대전지부에서 ‘퇴직 공무원들을 위해 법무 상담 좀 해 달라.’는 추천을 받고선 흔쾌히 승낙했다. 한 달에 1~2번 대전지부 사무실로 직접 발걸음을 하거나 전화상담도 받는다. 부동산 등기부터 상속, 경매 등 물어오는 분야도 다양하다. 류씨는 “내가 아는 한도껏 도와주면 다음 상담 때 또 오는 사람들도 많다. 무료 법률상담을 해 주는 기관은 꽤 있지만 퇴직 공무원이 상담자로 나서는 곳은 별로 없다.”면서 “내 전문경험을 활용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사회적인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전했다. 2005년 춘천 우체국에서 3급으로 퇴임한 박상운(63)씨는 5년째 춘천 호스피스 시설인 기쁨의 집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이 모인 이곳에서 그는 우편 업무와 전혀 관련없는 봉사를 제2의 인생으로 택했다. 20대 때 십이지장궤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을 계기로 긴 시간 찬찬히 ‘퇴직 이후’를 준비했다. 박씨는 “공무원 생활 38년이 나와 가족, 나라를 위해 일한 시간이라면 은퇴 후는 내 곁의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시간은 정규직과 비슷하지만 차량운행비 같은 실비만 받는다. 38년간 공직에서 봉사한 덕분에 받는 200만원대 후반의 연금이 든든한 후원자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사회참여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었일까. 3명 모두 “공무원 때와는 어떻게 다르게 가치 있게 살지 미리부터 모색해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적어도 퇴직 5년 전부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연금 이외 경제적인 부족분은 어떻게 메울지 꼼꼼히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반면 퇴직을 2~3년 앞둔 50대 초반 실장급 공무원은 “우리 세대는 은퇴 이후를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전관예우에 기대 쉽게 재취업할 수 있었던 측면도 크다.”고 전한다. 그러나 호시절은 가고 앞으로 전관예우 관행이 엄격히 다뤄질 만큼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될 시점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노인들 적극 참여해야 정부 지원 예산 더 는다”

    “노인들 적극 참여해야 정부 지원 예산 더 는다”

    노인 복지 전문가인 김미혜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장은 노인 여가 활동 활성화에 대해 “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65세 이상 노인들은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여가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면서 “하지만 노인들이 움츠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앞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예산과 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들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노인 여가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 다음 세대도 건강하고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선택의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장년층 가운데 직장에서 은퇴하면 활력을 잃고 의욕을 상실하는 사례가 많다. 퇴직 전 노년기 여가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늦게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김 원장은 현재 ‘베이비붐 세대’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비 노인’으로 불리는 55세 이하 중·장년층은 장년기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지만 일에 치여 살다 보니 65세 이상 노인과 마찬가지로 여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분들이 많다.”면서 “전 세대보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가를 단순히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많다. 하지만 김 원장은 ‘같이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활동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노인을 이끌어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독거 노인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복지관·경로당의 여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신체 건강은 물론 우울증 해소 등의 정신건강 회복 효과도 노릴 수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모임을 통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정보도 얻게 되고 건강도 되찾게 된다.”면서 “부수적인 효과가 다양하기 때문에 여가 프로그램은 건강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거 노인이 혼자 처음부터 프로그램에 적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들이 도움을 많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KT “인생2막은 사장님으로 시작하세요”

    KT “인생2막은 사장님으로 시작하세요”

    조직 활성화 교육기업인 ‘잔디와 소풍’의 김인식(49) 대표는 올 1월 1일 창업한 ‘새내기 사장님’이다. 상반기 매출만 3억원을 기록한 김 대표는 현재 직장이 두 개다. 기업 대표이자 KT에서 25년째 근무하고 있는 차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특별한 휴직’을 신청했다. 재직 중 창업을 준비할 수 있는 KT의 ‘창업지원 휴직제’를 이용한 것이다. 이 제도는 KT가 지난해부터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사내 제도로 정착시켰다.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최소 1년 6개월부터 최대 3년 6개월까지 회사를 떠나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식적으로 창업을 한다고 휴직을 신청하는 직원이 있다면 어느 회사가 좋아할까. 당장 사표 쓰라는 호통부터 쏟아질 법한 일이다. 하지만 KT에서는 거꾸로다. 휴직만 허용하는 게 아니라 첫 1년 동안 월급도 준다. 기본급 100%가 지급되고 재직 때와 동일한 복지 혜택이 제공된다. 더 놀라운 건 휴직 중 복귀를 원하면 불이익 없이 원래 소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처음엔 “구조조정 신호탄” 오해 KT에서는 회사를 위해 고생한 직원들이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도록 돕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이다. 아예 재직 때 여유 있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정규 프로그램인 ‘KT 라이프플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KT 경영진이 지난해 창업지원 휴직제를 발표할 때만 해도 사내에서는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는 수근거림도 적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09년 말 KT는 6000여명의 명예퇴직을 받아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걱정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경영진은 창업 준비로 휴직을 하다 복귀를 원하면 모두 받아주겠다고 선언했다. 휴직 기간도 근속 기간에 산입시켰다. 김 차장은 KT 경영진의 약속을 믿었다. 동료들은 휴직하기로 한 그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김 차장은 사내 인재개발 강사로 일했던 주특기를 살려 기업 고객들에게 교육 설계 및 컨설팅 서비스를 하는 회사의 대표가 됐다. 그는 마음속으로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내 기업을 키우고 싶다는 열정이 컸다. 김 대표는 “회사가 창업 휴직제를 발표했을 때 평소 고민했던 창업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면서 “샐러리맨이 아닌 내 사업의 대표로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인 기업으로 출발한 그의 회사는 매출이 늘면서 직원도 3명으로 늘었다. 김 대표는 “철저히 준비하는 창업은 실패 확률이 낮다.”며 “동료들에게 창업 휴직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 제공·가맹점 입점 우선권 부여 창업 휴직제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지원자도 몰리고 있다. 지난해 23명이 휴직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13명이 지원했다. 그 중 5명이 계획한 분야에서 창업을 완료했다. KT의 라이프플랜 프로그램도 알차다. 재직자와 퇴직 예정자로 이원화해 체계적으로 경력과 생애설계를 지원한다. 100여개의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직원들에게 신뢰성 있는 창업 정보를 제공하고 가맹점 모집시 우선 입점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KT에 따르면 자체 조사한 퇴직자의 창업 실패율은 19%다. KT에서 은퇴한 100명의 창업자 중 81명이 창업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창업 실패율이 절반 안팎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꽤 성공적이다. 김현수 인재경영실 팀장은 “삼성그룹과 포스코 등이 KT의 창업 휴직제 등 현재 운영 중인 ‘라이프플랜 프로그램’ 자료를 요청했고 정부 기관에서도 고령자 일자리 창출의 연구사례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2011 상반기 히트상품] NH생명·화재 ‘베스트파워자유연금보험’

    [2011 상반기 히트상품] NH생명·화재 ‘베스트파워자유연금보험’

    ‘베스트파워자유연금보험’의 가장 큰 특징은 유배당 상품으로, 정해진 연금액뿐만 아니라 배당액까지 챙길 수 있는 확실한 노()테크 상품이다. 또한 ‘파워자유자금’ 선택으로 은퇴 이후 자금 흐름을 자유롭게 직접 설계할 수 있다. 수시 입출금 기능으로 긴급자금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며, 7종의 보장성 특약 부가로 최대 80세까지 건강한 노후를 한번에 준비할 수 있다. 자녀(사위, 며느리 포함)가 부모를 위해 가입하면 주계약 공제료를 할인해 주며, 월납공제료가 50만원 이상이면 주계약 공제료의 0.5%를 할인해 준다. 10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면 비과세 혜택은 물론 부부연금형 가입 시 주피공제자가 사망해도 배우자가 생존할 때까지 계속 연금을 지급해 준다.
  • “학비 부담돼 일했다” 80%

    “학비 부담돼 일했다” 80%

    ‘반값 등록금’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학 시절 일자리를 경험한 대졸자 10명 중 8명이 학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비·생활비·용돈 등을 벌려고 일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휴학을 경험한 대졸자 10명 중 2명이 학비 마련 등 경제적 이유로 휴학을 했다. 하지만 10명 중 6명이 졸업 후 자신이 목표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직장의 근로조건은 전공 계열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학비의 덫을 벗어나기에는 안정적인 직장의 문이 너무 좁았다. 16일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정보원이 2008년에 2~4년제 및 교육대학을 졸업한 1만 8066명을 20개월 후 추적조사한 결과 대학시절에 일자리(아르바이트 포함)를 경험한 비율은 71.6%로 2005년 졸업자의 63.1%보다 8.5% 포인트 증가했다. 일자리 경험자들은 대학 시절 평균 2.6개의 일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등록금 부담이 급증하면서 학비나 생활비를 벌거나 용돈이라도 스스로 조달해 부모의 학비 부담을 줄이려 노력했다.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가진 경우가 10명 중 3명꼴(30.8%)이었고, 용돈을 벌기 위한 경우가 절반(52.4%)을 넘었다. ●대학 학비 지출액 5년 새 1.8배↑ 통계청에 따르면 50~59세 가구주의 월평균 대학·대학원 학비 지출액은 2005년 8만 4001원에서 2010년 14만 8522원으로 5년 새 1.8배로 불어났다. 반면, 취업 경험을 위해 일자리를 가진 이들은 11.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재학 시절 일자리가 취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들은 34.1%로 도움이 안 됐다는 이들(45.6%)에 훨씬 못 미쳤다. 이들 중 62.1%가 재학 시절 휴학을 경험했다. 입대로 인한 휴학을 제외하고 10명 중 2명(18.6%)은 학비 마련 등 경제상 이유 때문에 휴학을 해야 했다. 또 10명 중 2명(20%)은 취업준비를 위해 휴학을 했다. 이들의 입학 당시 11.5%는 아버지가 은퇴 또는 사망 상태였고, 어머니의 50.9%가 주부·은퇴·사망 상태로 부모의 특별한 수입이 없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11%가 졸업후 취업 1년이상 걸려 취업 후 졸업식을 맞은 이들은 46.7%로 절반에 못 미쳤다. 졸업 후 취업까지 1년 이상 걸린 경우도 11.7%였다. 의약계열은 취업까지 1년 이상 걸린 경우가 7.6%에 불과했지만, 교육계열은 18.9%에 달했다. 본인이 목표로 한 직장에 취업한 이들도 소수였다. 10명 중 6명(60.6%)이 원하는 직장에 가지 못했다. 그 이유로 본인의 준비 부족 때문(24.6%)이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지만 일자리 부족(12.8%) 및 경제적 여유 부족(5.9%) 등 사회·가정 여건을 이유로 든 이들도 상당수였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184만 5000원, 평균 고용률은 78.7%,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7.1시간이었다. 하지만 전공계열별로 차이가 컸다. ●인문·예체능계 고용 률 저조 의약계열 졸업자는 고용률이 88.8%에 달했고 202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공학계열이 80.2%의 고용률과 199만원의 평균 월급으로 뒤를 이었다. 의약·공학계열은 임금이 많은 만큼 주당 근로시간도 각각 50.7시간, 49.7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반면 자연계열은 74.0%로 고용률이 가장 낮고, 평균임금은 174만원으로 하위였지만 근로시간은 47.7시간으로 길었다. 의·약대로 진로를 많이 변경하는 이유인 셈이다. 이외 예체능계열(145만원)과 교육계열(165만원)의 월급이 낮은 편이었고, 인문계열(76.4%)과 예체능 계열(77.4%)의 고용률이 저조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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