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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홍 때문에…” 김국진, SM 영입 제안 줄곧 거절한 이유

    “박수홍 때문에…” 김국진, SM 영입 제안 줄곧 거절한 이유

    방송인 김국진이 SM엔터테인먼트 영입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밝혔다. 15일 첫 공개되는 박수홍의 유튜브 채널 ‘야홍식당’에 김국진이 첫 번째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날 박수홍은 “김국진은 저에게 은인 같은 고마운 분이다. 그분에게 새해 떡국을 끓여드리고 싶었다”고 초대 이유를 밝혔다. 김국진은 그동안 40번이 넘게 주례 제안을 거절했지만, 박수홍 결혼식에서 주례석에 섰다. 이에 대해 김국진은 “수홍이는 다르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니까”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김국진은 과거 SM 영입 제안을 받았던 사실도 털어놓았다. 다만 김국진은 수차례 제안이 왔음에도 감자골 4인방(김국진, 박수홍, 김용만, 김수용)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거절했다고 한다. 박수홍은 “국진이 형이 안 가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왜 안 갔는지 몰랐다”며 “(알고 보니) 동생들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에 김국진은 “어마어마한 이득이 있어도 너희를 두고 갈 수 없으니까 포기한 것”이라며 “너희가 간다고 했으면 보냈을 거다”라고 전했다.
  • “뒤집힌 차에서 절 꺼내준 남성 세분”…아찔한 사고, 은인 찾아나선 차주

    “뒤집힌 차에서 절 꺼내준 남성 세분”…아찔한 사고, 은인 찾아나선 차주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전도된 차량에서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찾아 나섰다. 지난 2일 고속도로순찰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8시 30분경 남해고속도로 산인IC부근에서 차량 추돌 사고가 발생해 앞서가던 차량 한대가 전도됐다. 이후 다른 차들이 전도된 차량을 잇달아 들이받아 3중 추돌로 이어졌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당시 전도된 차량에 있던 운전자 A씨는 3중 추돌 발생 전 다른 운전자들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달 31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고속도로사고 은인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1월 30일 저녁 8시 30분쯤 함안휴게소를 지나 산인IC 방향으로 가던 중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해 전도됐던 케스퍼 안에서 저를 구출해주신 은인분들을 찾는다”면서 “시속 100㎞ 주행 중에 뒤차가 갑자기 뒤에서 돌진해서 들이받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나가떨어져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전도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뭔 상황인가 싶고, 차는 옆으로 누워 있고 차 안은 불이 날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라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A씨를 도운 건 다른 차량에 있던 남성들이었다. 그는 “밖에서 괜찮냐고 소리 질러주시고 조수석 위로 탈출을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 더 큰 화를 면했다”면서 “제 기억으로 남자 세분이었다”고 떠올렸다. A씨는 “도와주다 자칫 같이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정신도 경황도 없어서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탈출해서 신고하고 몇 분 후 경찰이 도착하기 전이었다. 전도돼있던 제 차량으로 또 다른 차량이 돌진하고 2차, 3차 사고가 일어나 고속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며 “만약 차에서 빨리 못 빠져 나갔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A씨는 “도움 준 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연락이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100년 전 ‘망명녀’ 다시 잇다

    100년 전 ‘망명녀’ 다시 잇다

    신랄하고 리듬감 넘치는 근대 여성 작가 김말봉의 이야기를 한 세기 뒤의 여성 작가인 박솔뫼가 이어서 썼다.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말씨도 어휘도, 심지어 그들이 서 있는 마음의 풍경조차도 크게 다르다.‘기도를 위하여’(작가정신)는 출판사의 프로젝트인 ‘소설, 잇다’의 네 번째 책이다. 근대와 현대의 여성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한 뒤 이들의 소설을 한 권의 책에 담아서 읽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선배가 쓴 소설의 뒷이야기를 후배가 상상력을 발휘해 이어 나가는 방식이다. “나를 흉악한 구렁에서 건져낸 은인에게 머리를 베어 신이라도 삼아 바쳐야 할 윤숙이에게 이렇게 쓴잔으로 갚아야 되는가 어디 남자가 없어서 하필 윤숙이의 애인을 빼앗게 되는고……”(‘망명녀’, 44쪽)김말봉의 데뷔작 ‘망명녀’는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로 이어진다. 담배와 모르핀에 중독된 명월관 기생 최순애는 친구 허윤숙의 도움으로 구렁텅이 같은 삶에서 빠져나올 계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미 흐트러진 생활의 기강을 혼자서 다잡는 건 어려운 일. 그러던 순애는 별안간 윤숙의 애인 윤정섭이 설파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고, 자연스레 그에게도 이끌린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떠오르는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 순애는 정섭과 결혼을 맹세하고 그와 함께 나라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둘의 결혼식 날 정섭은 순애에게 소포를 보내는데, 어떤 위험한 물건을 전해 달라는 내용이다. 박솔뫼는 감옥에 갇힌 순애와 정섭이 ‘옥중 혼례’를 치른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도 윤숙의 도움으로 순애는 감옥을 빠져나오지만, 목숨을 오래 부지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하지만 죽은 순애는 이내 산 사람의 세계로 넘어오고 순애의 혼과 윤숙, 정섭은 한자리에 눕는다. 셋은 각자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활약한 김말봉은 개성이 뚜렷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서 좀처럼 제대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는 당대 어느 문학평론가가 소설을 왜 쓰느냐고 묻자 대뜸 “돈 벌려고 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가 뭐래도 소설은 재밌어야 하고 널리 읽혀 독자들에게 선의의 감동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철저히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지켰던 그는 현실에서도 대중 안에 있었다. 3·1운동 때 시위대 맨 앞에 있다가 구금됐으며, 해방 후에는 공창 폐지 입법화에도 앞장섰던 대가 센 여성 운동가다. ‘망명녀’ 외에도 김말봉의 걸작 단편 ‘고행’과 ‘편지’도 실려 있다. 특히 ‘고행’은 읽고 있으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좀체 참을 수 없을 정도다.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아내를 속이고 내연녀 ‘미자’의 집으로 간 주인공 남성. 그러나 미자와 절친한 사이인 그의 아내도 때마침 미자네 집으로 찾아온다. 결국 알몸으로 벽장에 숨어서는 아내가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기만을 기다린다. 하필 수박을 한 접시 먹고 거기다가 맥주까지 마신 그는 밀려오는 요의에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힘껏 오줌을 참으면서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그의 모습은 애잔하기 짝이 없다. “그래 남자가 오입 좀 하였기로서니 어떻단 말이야. 세계를 정복한 나폴레옹의 궁중 생활은 어떠하였으며 더구나 진시황은 삼천 궁녀를 그리고 솔로몬 왕은 일천 왕비를 두지 않았는가. 남자가 이렇게 담이 없고 기분이 없어 어디다 써?”(‘고행’, 82쪽)
  • 양세형, 직원母 암 투병에 300만원 건넸다 ‘훈훈’

    양세형, 직원母 암 투병에 300만원 건넸다 ‘훈훈’

    방송인 양세형이 스타일리스트 어머니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300만원을 건넨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 280회에서는 양세형의 미담이 공개됐다. 이날 양세형의 스타일리스트 변진수는 “최근 세형이 형 스케줄로 숍에 갔는데 저희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세형이 형을 만났는데 제 표정 관리가 안돼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며 “얘기를 드리니까 형이 수술비를 보태라고 300만원을 주셨다”고 전했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양세형은 고마워하는 변진수에게 “도움이 아니고 그냥 응원이라고 하자”고 답했다. 변진수는 “형 덕분에 수술이 잘 끝났고 엄마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해서 통화를 한 번 했다. 그걸 한참 뒤에 들었는데 그게 너무 슬퍼서 하루 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세형은 “돈 이런 걸 떠나서 어머니 빨리 나으세요”라고 완쾌를 빌었고, 변진수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고 저한테는 세형 형이 은인이고 귀인같은 존재”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 참혹했던 이리역 폭발사고…하춘화 “故이주일, 두개골 함몰”

    참혹했던 이리역 폭발사고…하춘화 “故이주일, 두개골 함몰”

    가수 하춘화가 이리역 폭발 사고를 언급했다. 17일 방송된 KBS 1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는 하춘화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박원숙은 “전북 익산에 가면서 하춘화씨 얘기를 했다”며 이리역 폭발 사고를 떠올렸다. 1977년 11월 11일 발생한 이리역(현재의 전북 익산) 폭발 사고는 1400여명의 사상자와 7800여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하춘화는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며 당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하춘화는 “나중에 알았는데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는 과정이었더라”며 “우리는 그걸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저는 당시에 이리역 인근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속 사회자는 고(故) 이주일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보통 오후 9시쯤에 공연을 시작하는데 폭발 사고가 9시 15분쯤에 났다. 평소처럼 오프닝 공연을 마치고 난로를 쬐고 있는데 사고가 벌어졌다. 난로가 엎어졌으면 다 어떻게 됐을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서 깜깜해졌다. 폭파되면서 흙 속에 나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이 잠잠해지고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왔다고 떠올린 하춘화는 “그게 더 공포였다. 이제는 내가 죽거나 살아나가도 누구도 날 안 도와줄 거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세상이 온통 암흑이었을 때 그를 향해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이주일이다. 하춘화는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 어둠 속에서 이주일이 날 찾아냈다”며 “담을 넘어야 했는데 제가 드레스를 입었고, 내려가질 못하겠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이주일이 먼저 담을 올라가 뛰어내렸다. 내가 못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이주일이 자기 머리를 밟고 내려오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주일이 사고 당시에 머리를 다쳤다. 폭파 사고로 내려앉은 극장 지붕에 두개골이 함몰됐었다. 나는 이주일이 다친 줄도 모르고 그 머리를 딛고 내려갔다. 이주일이 나를 업고 뛰는데 머리를 다쳐서 그랬는지 가다가 계속 넘어지기를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하춘화는 “이주일은 긴급 수술 대상이었다. 환경이 열악해서 마취 없이 뇌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이주일이 막 울더라. 마취도 안 시켜서 망치로 땅, 땅 때리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나와서 우는데, 정말 비참해서 못 보겠더라. 나는 어깨뼈 골절로 상반신 깁스를 했다. 긴급 처치만 받고 서울 병원으로 갔다”고 털어놨다. 이주일과 하춘화는 긴급 처치 후 서울로 이송돼 재치료를 받았다. 하춘화는 이주일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전해 뭉클함을 안겼다.
  • ‘아내가 불륜’ 강남길, 재혼 문제 입 열었다

    ‘아내가 불륜’ 강남길, 재혼 문제 입 열었다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했던 배우 강남길이 재혼에 관한 생각을 털어놨다. 강남길은 18일 방송한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이혼한 뒤 (23년 간) 재혼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며 “아이들이 다 장성하고, 둘째도 결혼 시켜야 한다. 자식들이 결혼할 때까지 매사 조심히 생활 중”이라고 털어놨다. “재혼에 관한 마음의 문이 닫혔다”며 “나도 나를 위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1986년 비연예인 A씨와 결혼한 강남길은 14년 만인 2000년 이혼 도장을 찍었다. 당시 A씨는 남성 2명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간통죄(2015년 폐지)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강남길과 절친한 배우 임예진은 “강남길은 지금도 방송계에서 인기 스타다. 함께 하자는 역할도 많고 예능도 많다”면서도 “자기 스스로 울타리를 쳐 놓고 생활하더라. 대사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으면 그 말을 자기 입으로 올리기 싫어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지금은 잘 웃고 유쾌해졌다”며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강남길은 “가정사 때문에 2000년 아이 둘을 데리고 영국으로 갔다”면서 “생활비도 비싸고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못 보내겠더라. 4년 공백 후 임예진과 드라마 ‘물꽃마을 사람들’에서 부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4년간의 공백이 의외로 길고 힘들었다. 막상 다시 하려니 감도 안 오고, 현장에서 잘 모르겠더라. 그럴 때마다 임예진이 현장에서 대사를 맞춰줬다. ‘오빠, 옛날에 잘했잖아’라고 해 서서히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정신적으로 약간 공황장애도 있었다. 그때 임예진이 유명한 병원을 소개해서 손 붙잡고 데려갔다”며 고마워했다. 24년 만의 토크쇼 출연에 강남길은 “이런 데 나오면 무섭다. 웃지 못하겠다. 다 웃는데 웃음이 안 나온다”면서 “오늘은 임예진 덕분에 웃음이 나온다. 생명의 은인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누나같이 항상 챙겨준다. 임예진이 부르면 언제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케이’다. 존경한다. 죽을 때까지 부르면 가겠다”라고 말했다.
  • 이종석 “위장전입 사과, 사퇴 없다”… 여야 ‘尹 친분·보은인사’ 싸고 공방

    이종석 “위장전입 사과, 사퇴 없다”… 여야 ‘尹 친분·보은인사’ 싸고 공방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를 기각시킨 데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보은 인사라고 비난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장관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이 기각한 만큼 이 후보자에게 ‘핀셋 보은’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이날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라는 개인적 인연이 있는 데다 이 장관 탄핵소추 사건의 주심을 맡아 기각을 결정한 것에 대한 보은 인사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헌법재판관 8명 중 서울대 법대는 6명”이라며 “대통령과 법대 동문이어서 공정성이 의심된다고 하면 지금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또 여당은 이 장관의 탄핵소추 기각이 당시 헌법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이었음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2021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에 반발해 낸 헌법소원에 대해 회피한 이력도 문제 삼았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민은 대통령 탄핵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로 오면 그때도 회피할 것이냐”고 압박했고, 이에 이 후보자는 “헌법소원 회피하고는 사안이 다를 것 같다. 직책 때문에 그렇다. 그때 상황에 가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이 외 민주당은 이 후보자와 배우자 등이 6차례의 위장전입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고위공직자, 또 후보로서 과거에 위장전입이 있었던 것,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사과드린다”고 하면서도 사퇴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의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위장전입 의혹이 있었지만 사퇴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웅 의원은 “(전임 정부에서는)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팬클럽 카페지기가 코레일유통 이사가 됐다. 이른바 내로남불이 너무 심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등 양대 사법 수장이 모두 공백 상태에 있어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 후보자의 자질 검증은 이미 5년 전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자가) 2018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는 통과하지 않았느냐. 제가 확인한바 238표 중 201표가 찬성이었다”고 말했다.
  • [서울광장] 리커창 사망과 중국 개혁정치의 종언/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서울광장] 리커창 사망과 중국 개혁정치의 종언/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본다. 푸른 하늘에도 눈이 있다.”(人在干 天在看 蒼天有眼) 최근 사망한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공식 송별회에서 인용한 말이다. 제갈량이 북벌에 앞서 촉나라 관료들에게 남긴 말로 ‘삼국지연의’에 담겨 있다. ‘하늘이 보고 있으니 의인은 정진하고, 악인은 악행을 멈추라’는 뜻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리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68세 나이에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중국인들은 ‘인민의 좋은 총리,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등등의 추모글을 쏟아냈다. 중국 인민들에게 그는 ‘비운의 2인자’로 남아 있다. 리커창의 정치 여정은 화려하다. 한때 황태자 등극을 앞둔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시진핑에게 밀리면서 영원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리에 올랐으나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의 희생자로 전락했다. ‘머리 내민 새가 먼저 총을 맞는다’(槍打出頭鳥)는 속담처럼 너무 빨리 재능을 부각해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맹렬한 견제를 받은 것이다. 재위 10년간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의 그늘에 가려 ‘실권 없는 총리’로 지내야 했다. 물론 리 전 총리는 임기 중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는 등 이따금 소신 발언을 하며 ‘쓴소리’의 역할을 했지만 시 주석에게 집중된 권력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리 전 총리 서거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다. 이는 공산당 내부 개혁을 촉구했던 전 후야오방 당 총서기 이래 이어 오던, 보다 자유롭고 투명한 개혁적 사회주의 계파의 종언을 의미한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고수하는 중국 현대사에서 정치 담론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6·29 톈안먼 학살을 주도했던 덩샤오핑 사후(1997년) 20년 남짓에 불과하다. 당시는 상하이를 토대로 경제성장론을 주창했던 상하이방과 신중국 건국 자제들로 구성된 금수저 태자당, 똑똑한 머리 하나로 자수성가한 공청단 등 3개 계파가 경쟁하던 시기였다. 마오쩌둥 사후 처음으로 균형과 견제의 정치가 살아 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리 전 총리가 속했던 공청단은 한때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과 후진타오 전 주석을 배출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퇀파이’(团派)로 불리는 이 세력은 시진핑 집권 초기까지 견제 세력으로 건재했다. 공청단 출신들은 말단 관직에서 천천히 중앙 정계로 진출하면서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훈구파에 밀려 지방에서 은인자중하던 사림파들이 힘을 키워 권력을 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공청단 출신 정치인들은 사회주의 이상 실현에 충실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태자당 등을 견제하는 세력으로서의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 시 주석이 지난해 집권 3기 들어 일인독재 체제를 굳힌 가운데 그 뒤를 이을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후야오방·후진타오·리커창 등 공청단 수장 출신을 중심으로 이어진 중국 최고지도부의 계보도 사실상 끊어졌다. 현재 중국 정계는 상하이방과 공청단파가 모두 무너져 오로지 시진핑 독재를 추종하는 시자쥔(習家軍) 천하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리커창의 죽음은 더이상 시진핑 절대권력을 견제할 세력이 중국 땅에서 사라졌다는 의미가 크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더욱 과격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균형과 견제가 사라진 절대권력은 늘 치명적 오판 가능성에 열려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대비가 더 절실해졌다.
  • 인류 구한 집념…휴일 반납한 채 하루 16시간 연구 매달려 7년 [지구촌 소사]

    인류 구한 집념…휴일 반납한 채 하루 16시간 연구 매달려 7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❺2012.10.24 세계 소아마비의 날 지정 주역 조너선 소크미국에서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DR·1882~1945·재임 1933~1945) 전 대통령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경제 공황인 대공황과 인류사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두 차례의 국난을 모두 극복해 미국을 현재의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FDR은 1921년 8월 캐나다 캄포벨로 별장에서 휴양 중 찬물에서 수영하다가 다치면서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지만 꾸준한 재활 훈련 끝에 어느 정도 걸을 정도로 좋아졌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에 의한 신경계 감염으로 발생하며 척수성 소아마비의 형태로 발병한다. 5세 이하의 아이가 걸리는 경향으로 병명에 소아(infantile)가 들어가지만 FDR처럼 성인일 때 걸리는 경우도 있다. 1950년대만 해도 소아마비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원자폭탄을 제외하고도, 미국은 소아마비에 떨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52년의 경우 5만 8000여건이 발생했고 3145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이 매우 절실했다. 피츠버그의과대학 연구실에 근무하던 의사이자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의학자인 조너선 소크(1914~1995)는 국립재단 지원에 힘입어 1948년 시작했던 백신 개발을 마쳤다. 하루 16시간씩 휴일도 없이 개발에 몰입했던 터였다. 1953년 11월 최초 임상시험 대상자도 바로 소크 본인이었다. 1995년 4월 12일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강력하다는 것이 세상에 공표됐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사망 10주기인 이날 라디오로 송출된 소아마비 백신 발표를 접한 미국인들은 환호를 보냈다. 당시 “미국의 모든 사람들이 소크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 정도였다. 소크는 TV 인터뷰에서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된다. “백신 특허권을 누가 갖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냥 평법한 사람들이겠죠. 특허권 그런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텐가요”라고 되물었다. 결국 제약회사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백신을 무료로 풀었다. 그 결과 백신은 씬값에 전 세계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소크 덕분에 인류는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발표 직후부터 그는 전국적인 존경을 받으며 백악관에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에게 ‘인류의 은인’으로 기리는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을, 의회로부터는 명예 황금훈장을 받았다. 모두 미국 최고의 영예다. 미국의 경우, 백신 배포 2년 만인 1957년 소아마비 발병이 이전 대비 90% 감소했다. 1979년엔 공식적으로 퇴치 판정이 내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오늘날 소아마비 발병건수는 99%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선 탈레반이 소아마비 백신을 기독교에서 퍼뜨리는 화학무기라고 선전하며 한때 이용을 금지해 ‘유이하게’ 토착성 바이러스로 인한 발병이 지속됐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의료인을 가장시켜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한다면서 주닌들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하며 오사마 빈 라덴(1957~2011)의 DNA와 대조해 포위망을 좁히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테러범은 물론 주민들도 백신을 불신하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소크 박사의 생일인 10월 24일을 세계 소아마비의 날로 정했다.
  • 아무도 몰랐던 이경규 ‘본명’…데뷔 42년 만에 공개된 이름은

    아무도 몰랐던 이경규 ‘본명’…데뷔 42년 만에 공개된 이름은

    개그맨 이경규가 개명 전 이름을 공개했다. 지난 4일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는 ‘이경규·홍진경·김영철, 웃다가 눈물콧물 쏟은 대환장 토크 현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모델 출신 방송인 홍진경, 개그맨 김영철이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 개설을 축하하는 모습이 담겼다. 13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홍진경은 “유튜브가 방송이랑 제일 다른 점이 방송국은 제작비를 방송국이 내지만 유튜브는 자급자족해야 한다. 광고를 잘해야 광고가 또 들어오고 제작비로 쓸 수 있다”고 초보 유튜버 이경규에게 조언을 건넸다. 그러면서 홍진경은 “이경규 선배님은 제 데뷔 은인”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에 대해 이경규는 “예전에 MBC ‘특종TV연예’라는 굉장히 오래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모델들이 나와 한마디씩 하고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진경이가 가장 특이하고 잘하더라. 그래서 내가 담당 PD에게 ‘진경이를 고정출연자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홍진경은 “그때부터 마음의 은인으로 모시고 있다. 선배님을 축하하러 오는 자리라 선배님 약력을 조사해봤다. 선배님 본명이 뭔지 아느냐?”고 옆에 있던 김영철에게 물었다. 이에 김영철은 “본명이 이경규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경규는 “내 원래 이름은 이명규다. 어릴 때 별명이 맹꽁이였다. 경상도 사람들은 ‘명’ 자 발음이 잘 안돼서 맹규라고 불렸다. 근데 사촌 중에 이명규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더했다.
  • [씨줄날줄] 수술실 촬영/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술실 촬영/박현갑 논설위원

    10여년 전 부친 수술에 앞서 일체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병원에 낸 적이 있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지만 섬뜩한 일이었다. 의료진 과실로 환자가 목숨을 잃어도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는 ‘신체 포기 강요’였다. 환자에게 의사는 어떤 존재일까? 위독한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 주는 의사는 환자에게 생명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좋은 의사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술 환자들은 수술 과정과 수술 이후 후유증 등에 대해 친절한 안내를 기대한다. 하지만 캐묻지 않는 이상 자세한 설명을 듣기란 쉽지 않다. 오늘부터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 병원은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개정 의료법에 따른 조치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촬영을 거부하면 병원에 벌금 500만원이 부과된다. 이번 의료법 개정은 7년 전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원장의 불법행위가 CCTV 영상을 통해 드러난 게 계기가 됐다.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환자가 과다출혈로 숨졌는데 원장의 무과실 주장과 달리 수술실 내 CCTV 영상에서 의사 과실이 드러났다. 대리 수술 의혹이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진의 성폭력 등도 CCTV 설치 의무화에 영향을 미쳤다.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시행이나 의사나 환자 모두 불만이다. 의사협회는 CCTV 촬영으로 인해 의료진의 개인정보 유출 등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도 냈다. 환자들은 응급수술, 전공의 수련을 저해할 우려 등 병원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예외 조항이 많다고 불만이다. 의료분쟁 등을 감안해 ‘30일 이상’인 영상 보관 기간도 90일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사고 분쟁은 환자와 의료진 간 정보 비대칭 문제로 끊이지 않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을 감시감독하려는 게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의료진의 불법행위 예방을 위한 조치다. 의사들이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환자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자정 능력을 키우는 게 더 시급한 일 아닌가.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24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24일

    쥐 36년생 : 자기 것을 철저히 지켜라. 48년생 : 갈등 해소되면 의외의 재물 따른다. 60년생 : 바깥에서 활동하면 운수대통. 72년생 : 오늘 당장에 승부를 걸지 마라. 84년생 : 맡은 일에 충실할 때 이득이 있다. 소 37년생 : 건강에 신경 써라. 49년생 : 속단하지 마라. 61년생 : 일이 성사되면 재물 들어온다. 73년생 : 여러 사람 도움받겠다. 85년생 : 사방에서 도움 주니 행운이 넘친다. 호랑이 38년생 : 실수가 많은 날이다. 50년생 : 시비에 유의하라. 62년생 : 은인이 가까운 곳에 있다. 74년생 : 서두르지 마라. 일이 풀린다. 86년생 : 가까운 사람의 도움 받겠다. 토끼 39년생 : 좋은 기운이 있다. 51년생 : 땅, 부동산은 유리하다. 63년생 : 마음의 안정을 찾아라. 75년생 : 소신껏 추진하면 큰 성과 있다. 87년생 : 좋은 일이 생겨 칭찬받는다. 용 40년생 : 다투는 것은 피해야 한다. 52년생 : 운이 차츰 향상된다. 64년생 : 좋은 친구를 만날 운이다. 76년생 : 실패할까 불안한 날. 88년생 : 장기적인 목적의 투자가 좋다. 뱀 41년생 : 따뜻한 마음으로 대인관계를 가져라. 53년생 : 소망하는 일은 곧 이루어진다. 65년생 : 운이 조금씩 다가온다. 77년생 : 한발 물러서면 열 가지가 유리. 89년생 : 마음이 심란한 하루. 말 42년생 :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54년생 : 매사 매듭을 잘 지어야 하겠다. 66년생 : 노력만큼 성과 있다. 78년생 : 경제 사정 맞추어서 움직여라. 90년생 :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 양 43년생 : 이득 있는 하루가 되겠다. 55년생 :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여라. 67년생 : 자기 과시를 하지 마라. 79년생 : 자존심이 화를 부른다. 91년생 : 모든 일은 다음으로 미루어라. 원숭이 44년생 : 처음이 좋으면 끝도 좋다. 56년생 : 남을 모함하지 마라. 68년생 : 좋은 기회가 오니 잡아라. 80년생 : 계획했던 일을 추진하라. 92년생 : 오늘은 무리 말고 쉬는 게 낫겠다. 닭 45년생 :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너무 믿지 마라. 57년생 : 차츰 복이 찾아 든다. 69년생 : 신뢰 얻어 이득도 있겠다. 81년생 : 노력의 대가 반드시 얻겠다. 93년생 : 말조심을 해야겠다. 개 46년생 : 모든 일이 성사되겠다. 58년생 : 안정만 취하면 큰 행운이 기다리겠다. 70년생 : 애쓴 만큼 소득도 생기겠다. 82년생 : 주변 사람의 도움 크겠다. 94년생 : 문서로 인한 이득이 있다. 돼지 47년생 : 먼 곳에서 기쁜 소식 있겠다. 59년생 : 순리대로 차근히 일을 추진하라. 71년생 : 집안에 경사 있겠다. 83년생 : 성급한 행동은 역효과가. 95년생 : 당장은 어려우나 곧 풀린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19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19일

    쥐 36년생 : 몸가짐에 주의해야 화가 없다. 48년생 : 불우한 사람에게 베풀어라. 60년생 : 주변의 충고를 들어라. 72년생 : 포기하지 말고 밀고 나가라. 84년생 : 행운은 천천히 찾아드는구나. 소 37년생 : 남의 문제에 관여하지 마라. 49년생 : 뜻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61년생 : 사업은 활발하게 진행된다. 73년생 :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 85년생 : 무모한 짓은 하지 마라. 호랑이 38년생 : 정도를 지키고 마음을 비워라. 50년생 : 믿음으로 가정을 이끌어라. 62년생 : 안정감이 돌 때 주의하라. 74년생 : 능력을 인정받겠다. 86년생 : 분별력만 잃지 마라. 토끼 39년생 : 너무 뜸 들이면 불리하다. 51년생 : 답답하더라도 참고 견뎌라. 63년생 : 집안에 경사가 생긴다. 75년생 : 하는 일이 더욱더 번창하겠다. 87년생 :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라. 용 40년생 :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라. 52년생 :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64년생 : 시비수 있으니 언행을 조심하라. 76년생 : 사람을 신중히 사귀어라. 88년생 : 피로하지만 일은 잘 진행되는 중이다. 뱀 41년생 : 차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53년생 : 기대하던 일에 좋은 성과 있다. 65년생 : 행운과 이득이 많은 날이다. 77년생 :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여라. 89년생 :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 말 42년생 : 마음이 답답한 하루. 54년생 : 재복이 굴러 들어오는구나. 66년생 : 혼자 추진하다가 실패 있다. 78년생 : 만족한 하루가 되겠다. 90년생 : 걱정스러운 일 생기니 주의. 양 43년생 : 실없는 말과 행동은 금물. 55년생 : 일의 결과가 나타날 조짐. 67년생 : 모든 운이 상승하니 좋은 징조이다. 79년생 : 하늘이 도와주는 운세이다. 91년생 : 은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원숭이 44년생 : 분수 지키고 허욕은 없애라. 56년생 : 시비를 조심하라. 68년생 : 주변 도움으로 쉽게 해결된다. 80년생 : 크게 발전하는 운세이다. 92년생 : 안정이 되고 화기애애하다. 닭 45년생 : 이동운은 별로다. 57년생 : 북서쪽에 재물. 계약에 행운. 69년생 : 동쪽에서 귀인 만나 행운이 온다. 81년생 : 재물이 생기니 주변을 도와라. 93년생 : 무리한 행동은 삼가라. 개 46년생 : 뜻한 바대로 이루어진다. 58년생 : 분수를 지켜라. 70년생 : 애쓴 만큼 소득도 생기겠다. 82년생 : 친구와의 갈등 주의하라. 94년생 : 시비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하라. 돼지 47년생 : 경과가 좋지 않겠구나. 59년생 : 기다리면 손해니 움직여라. 71년생 : 이득이 없으면 포기하라. 83년생 : 수익도 크고 풍족한 하루. 95년생 : 일의 성과가 없으니 실망스럽구나.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17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17일

    쥐 36년생 : 모든 일에 걱정 없다. 48년생 : 집안에 웃음이 가득. 60년생 : 부와 명예가 함께한다. 72년생 : 운이 상승하는 하루이다. 84년생 :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소 37년생 : 주변에서 인기 얻겠다. 49년생 : 약속이 미루어지거나 재물 나간다. 61년생 : 많은 이득이 생기겠다. 73년생 : 하늘이 도우니 기쁜 일 생긴다. 85년생 : 이동, 변동에 행운 따른다. 호랑이 38년생 : 주위 사람의 귀감이 되겠다. 50년생 : 무리하지만 아니하면 횡재수 있다. 62년생 : 느긋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준비하라. 74년생 : 동쪽에서 은인이 기다린다. 86년생 :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라. 토끼 39년생 :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 51년생 : 컨디션 조절에 힘써라. 63년생 : 주변 사람과 의논하여 처리하라. 75년생 : 생기가 가득하니 행운 따른다. 87년생 : 참고 견디면 웃는 날이 다가온다. 용 40년생 : 지나친 과욕이 망신수를 부른다. 52년생 : 가정에 충실하는 것이 좋겠다. 64년생 : 일에는 순서가 있다. 76년생 : 신용을 철저히 지켜라. 88년생 : 지금 저축해두면 곧 웃을 일이 생긴다. 뱀 41년생 : 복잡하지만 실속은 없구나. 53년생 : 때를 기다려라. 65년생 : 믿는 사람에게 의논하라. 77년생 : 새로운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89년생 : 작은 일도 세심하게 살펴라. 말 42년생 : 가족과 대화가 필요한 때. 54년생 : 아랫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66년생 : 한발 물러서면 행운이 있다. 78년생 : 욕심을 버릴 때 즐거움이 생긴다. 90년생 : 만사가 귀찮고 힘들구나. 양 43년생 :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55년생 : 오늘따라 실수투성이다. 67년생 : 즐거운 일 생긴다. 79년생 : 성취는 하겠으나 구설수 조심. 91년생 :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얻는다. 원숭이 44년생 : 기쁜 일이 생긴다. 56년생 :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것이다. 68년생 : 가족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80년생 : 솔직한 고백이 유리하다. 92년생 : 집안에 경사 생기겠구나. 닭 45년생 : 즐거운 일 생긴다. 57년생 : 주관대로 행동하라 69년생 : 분위기 파악을 잘하라. 81년생 : 성공의 지름길은 노력뿐이다. 93년생 :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구나. 개 46년생 : 활력이 넘치는 하루. 58년생 : 가정에서 기쁜 일 생긴다. 70년생 : 계획한 대로 운이 상승한다. 82년생 : 때를 기다려라. 94년생 : 자기주장을 펼치는 게 유리하다. 돼지 47년생 : 작지만 소득 있으니 기쁘다. 59년생 : 생활이 안정되어간다. 71년생 : 주변에서 인정받겠다. 83년생 : 새로운 일 시작하면 수익 많다. 95년생 : 신수가 태평하구나.
  •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풀꽃 시인’ 나태주의 ‘위로와 응원’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풀꽃 시인’ 나태주의 ‘위로와 응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독하고, 외롭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내 시가 조그만 위로와 축복, 기도와 응원, 동행이 된 것 같습니다.” ‘풀꽃시인’이라는 애칭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받는 나태주(78) 시인은 지난 8일 충북 제천시 포레스트 리솜에서 ‘나태주 시인과 함께 하는 시/詩/적인 순간’을 주제로 열린 문학 콘서트에 앞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포레스트 리솜 투숙객과 지역주민 등 50여명이 참가한 문학콘서트에서 일상에 스며든 시적인 순간을 함께 공유했다. 참가자들에게는 나태주 시인의 친필 사인과 친필 시가 들어간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와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현장에서 나눠주고 함께 사진 촬영도 진행했다.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나태주 시인은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시작으로 ‘막동리 소묘’,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눈물난다’, ‘산촌엽서’,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눈부신 속살’ 등 시집과 ‘대숲에 어리는 별빛’ 등 산문집 등 150여권을 출간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30년 넘게 문화계 인사들을 인터뷰한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지난 7~8월에 젊은 친구들이 말하는 ‘번아웃’(burnout·과도한 활동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이 와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목소리가 쉬고, 다리가 풀리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독자들이 두렵고 그래서 두 달 정도 쉬었어요. 그동안에는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거리와 주제, 대상, 강연료도 안 묻고 시간만 나면 어디든 갔어요. 1년에 200번 정도 강연을 하다 보니 너무 힘이 들었어요. ➜ 10여년 전에도 많이 아프셨는데요. - 16~17년 전인데 벌써 그렇게 됐어요. 당시에 아프고 난 뒤에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옛날에 들은 얘기인데 ‘젊어서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죽을 병에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실감납니다. ➜ 요즘 시집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 아프기 전에는 제가 시집이 안 팔리는 사람이었어요. 아픈 뒤로 시집이 많이 팔리 것 같아요. 하늘이 나를 안 죽고 살게 한 ‘천명’(天命)이 있었어요. 운이 좀 따른 거예요. 운이라는 것이 ‘세상의 부름’, ‘세상의 필요성’이예요. 본래는 졸렬하고, 그냥 시골 시고, 쉽고, 간결하고. 뭐 그냥 별로 특징이 없는 그런 시인데 이제 이 시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필요한 시가 됐어요. 운때가 맞았죠.  ➜ 아프시고 난 뒤에 시에는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 시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지만 아프고 난 뒤에 조금 변화가 있었죠. 아프기 전에는 ‘내 얘기’를 주로 썼고요. 그리고 내 입장에서 썼습니다. 아프고 난 뒤에는 ‘내 얘기’가 ‘네 얘기’ 되도록 썼고, 그리고 ‘네 입장’에서 썼어요. 제가 글 쓰는 사람들한테 얘기를 해요. 자기 푸념만 하지 마라. 다른 사람 얘기도 들어줘라. 지금 이 세상 우리 삶이 지금 각박하고 힘들고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나만 생각하고 내 입장에서만 모든 걸 그냥 결단하니까 이렇지 않나. 그러지 말고 네 입장도 내가 생각을 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요. 공자님 말씀하신 것 중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 있어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너가 하기 싫은 일 시키지 말고 너도 하기 좋은 일을 하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나’하고 그 다음에 ‘너’거든요. 그래서 나와 너의 관계인데 아프고 나서 ‘너’를 더 많이 참작하고 생각하는 그런 시를 썼더니 여지 없이 독자들이 선택해 주셨어요. 바로 그겁니다. ➜ 몇 년 전에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인사드렸는데. 운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그게 공주시 재산인데 우리가 빌려 쓰는 겁니다. 3~4년마다 한 번씩 계약을 해서 응모를 해서 빌렸어요. 운영위원회에서 그걸 빌려 쓰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지속 가능합니다. 모든 문화, 경제, 사회 현상 이런 것들이 지속 가능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너무 많이 키우지 말고, 너무 빨리 가지 말고, 혼자 가지 말고 그래서 속도를 맞추고 범위 규모를 맞추고 그리고 파트너를 잘 해서 서로 ‘이인삼각’(二人三脚·두 사람이 발목을 묶고 함께 뛰는 경기)처럼 발을 맞추면서 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 풀꽃문학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보기 좋았어요. - 지금은 사람들의 삶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돈 많고, 잘 살고, 그리고 배부르고 그리고 춥지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뒤에는 질을 따져서 ‘웰빙’(well-being), 그러다가 ‘케어’(care)를 이야기하다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나와서 오랫동안 지속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 강연 때문에 포레스트 리솜도 처음왔는데 와서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리조트가 자체가 사람들에게 안식과 휴양, 어떤 에너지를 주잖아요. 이게 이 시대에 맞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제 시도 보잘것없고, 풀꽃문학관도 작고 구석진 곳에 있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이 얻는 것이 있다면 옵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 그리고 빨리 가는 시대에 천천히 가는 시대. 어떤 그런 발걸음, 그래서 10분이든 5분이든 머물다 가더라도 옛스러운 것, 오래된 것, 천천히 가는 것 등 아날로그 이런 걸 좀 맛보고 가라 그런 것이 우리 문학관의 콘셉트입니다. ➜ 서울에 일이 많으신데 혹시 서울에 거주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 없어요. 하늘을 바꿀 수 없잖아요. 땅도 안 바꾸고, 늙은 아내도 안 바꾸고, 자식도 안 바꾸고, 시 쓰는 것도 안 바꾸고, 사는 공주도 안 바꾸고,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바꾸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으면 중요한 것은 ‘유지’예요. 유지한다. 허물어 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공주에서 몇 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 제자들이 많으시겠네요. - 교사 생활은 얼마 안 했어요. 43년 중에서 20여년, 그리고 남은 20여년을 교장과 교감을 오래 했습니다. (제자가 많은 것은) 큰 의미 없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은 많죠. 요즘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데 공주 사람들은 아니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에요. 공주 사람들은 맨날 보는 사람들인데요. ➜ 풀꽃문학관 인근 제민천 일대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됐는데요. - 문화의 거리가 됐어요. 원래는 제민천이 냄새나고 쓰레기만 있던 건천이었거든요. 그런데 폐수를 막고, 청계천처럼 물을 흐르게 했어요. 물이 흘러가니까 물고기가 오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빨리 좋아지고 많이 변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되실 때 쓴 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 본래가 신춘문예에서는 (당시 당선작들의 분위기를 봤을 때) 제가 쓴 ‘대숲 아래서’와 같은 시는 뽑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박목월(1916~1978) 선생님이 당시 시인협회 회장이셨어요. 제 시를 같이 뽑으신 박남수(1918~1994) 선생님이 부회장이셨어요. 그런데 두 분이 이번에는 좀 약간 별종의 시를 뽑자고 생각하셨나봐요. 그냥 전통적으로 쓴 시고, 그냥 낡은 시지만 뭔가 반성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맑고 깨끗하고 간결한 시를 뽑자. 그래서 제 시가 뽑힌 걸로 기억합니다. 박목월 선생님이 저한테는 은인이죠. 제가 그때 뽑히지 않았으면 시인이 안 됐고, 그러면 저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근데 제가 사람이 된 거는 신춘문예에서 제 시가 뽑힌 거예요. 그 시 중에 지금도 이제 글 제목으로 해서 하나 쓰고 싶은 게 뭐냐면 ‘쓰러져 울었다’는 문장입니다.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이게 ‘대숲 아래서’(대숲 아래서 3번째 연) ➜ ‘대숲 아래서’가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어요. - 아니요. 그냥 했어요. 마음속으로는 만약에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면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때 죽을 뻔했거든요. 그때도 죽을 고비가 두세 번 있었는데 여자한테 버림을 받아 완전히 폐인이 됐었거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은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라는 대목은 지금까지도 좀 조금 부끄러운 게 뭐냐 하면 ‘쓰러져 울었다가’ 도대체 내가 감당이 안 되는 것이예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 대목을 고치고 싶었어요. 근데 1971년 이래 지금까지도 못 고치고 있어요. ➜ ‘어젯밤 꿈속에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의미는 무엇인지요. - 그 문장의 의미를 80세 가까운 이제서야 알았어요. 박목월 선생이 그 시를 뽑은 이유는 ‘쓰러져 울었다’ 때문인 듯 합니다. 내 짐작이에요. 왜냐하면 제게는 도대체가 창피해서 말을 못 할 만한 구절이에요. ‘어젯밤 꿈에 너를 만나’ 거기까지는 좋은데 뭐 ‘쓰러져 울었다.’ 맨 정신에서 쓰러져 우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서도 쓰러져 울었으니까요. (신춘문예용 시구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는 고쳐야지 고쳐야지 마음먹었는데 끝까지 못 고쳤고 지금까지도 못 고치고 있습니다. 박목월 선생님께서는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말하셨어요. “지가 어쩔 수 없는 문장이다.” 자기가 이 글을 쓴 이 화자가 어쩔 수 없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지배할 수 없는 그렇게 어떻게 움직일 수 없는 문장이다. 그래서 박목월 선생님이 보시고 ‘손가락’이 갔던 것 같아요. 그 이유를 깨달은 것을 보니 제가 나이 먹기를 잘했다 싶어요.   ➜ ‘어젯밤 꿈에 너를 만나고’에 등장하는 그 분은 누구신가요.  - 이게 비밀인데 ‘너’는 나를 버려준 여자도 아니에요. 처음 이야기하는데 그동안은 ‘나를 버려준 여자’라고 얘기했는데 나를 버려준 여자를 만나서 울을 턱이 없어요. ‘너’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같은 학교에 있던 다른 여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여선생님이 (여자에게 버림받은) 나를 좀 안쓰럽게 봐서 버림받은 남자지만 내가 좀 품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이미 그 때는 나를 버린 여자가 마음속에 가득해서 그 여자한테 어떻게 응답할 수가 없었어요.그래도 그 선생님이 감사해요. 그 꿈에 만난 그 여자는 나를 버린 그 결정적인 그 여자가 아니고 나를 그 안쓰럽게 봐줬던 전혀 인연이 없었던 여선생님입니다. 그냥 알았던 그 여자가 아닐까요. 나를 버린 여자는 홍씨인데 여선생님은 이씨예요. 근데 미안하지만 이씨가 죽었어요. 내가 그걸 받아들여서 같이 살았으면 안 죽었을지 모르겠는데 죽었어요. 이렇게 세월이 오래 갔습니다. 이걸 내가 글을 하나 쓸려고 그래요. ‘쓰러져 울었다’ 제목이. ➜그 대목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있습니다. - 저처럼 박목월 선생님도 아마 공감을 하셨나봐요. 저도 그걸 이제 늙어서 알았어요. 지금도 그 부분을 외우면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부분을 내놨는데, 박목월 선생님이 그 부분을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20년 전만해도 민주화 운동 이후 참여 문학이 주도하면서상대적으로 서정시를 쓰시는 분들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아요. - 그럼요. 나는 뭐 변방의 시인이었죠. 변두리의 시인이었고 그런데 이제 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끝까지 내가 지킨 것은 ‘사람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내 마음을 꼭 내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내 마음을 ‘깡통 쭈그러 뜨린 것처럼’ 다른 걸로 바꾸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완전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이게 제 마음, 제 생각인데 그걸 위해서 이제 제가 50년 이상 시를 썼어요. 그것을 독자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1971년부터 줄기차게 비슷한 얘기를 썼는데 물론 후기에는 ‘나보다도 너에 대한 배려’를 가지고 시를 쓰고 그랬지만은 하여튼 그 근본적인 것은 줄기차게 똑같습니다. 1970년대 독자들은 어떤 이념, 부, 대결 등 이런 것 때문에 ‘마음’에 대해 눈여겨 볼 수 있는 그런 독자들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00년대 전후로 많은 게 무너졌어요. 특히 이념적인 거대 담론이 무너졌거든요. 거대담론이 ‘생활 담론’으로 내려왔어요. 그래서 우리 주변의 문제, 나의 문제, 오늘 하루의 행복과 오늘 하루의 안녕, 오늘 하루의 사랑 이렇게 담론이 바뀌었거든요. 그럴때 거기에 다만 나태주의 시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독자들이 거기에 주목하고 책도 구입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됩니다.  ➜ 다시 문학에서 정서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보시나요. - 그런 변화가 이제 어떻게 보면 문학의 정서 이런 거라고 봐야 되겠죠. 제 생각에는 그때(민주화 운동시기)는 그런 시가 정상이었죠. 지금은 시대를 아우르는 ‘면’이 깨져서 ‘점’이 된 상황입니다. 제가 볼 때는 사회학적으로 철학이나 사회학 이것들이 하나의 어떤 덩어리를 형성했는데 이게 다 깨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외롭고, 흔들리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뭐 이러지 않나 싶습니다. 고독하고, 외롭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고 한 독자들이나 우리 대중들에게 뭐가 필요한 가. 위로와 축복. 기도와 응원, 동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럴때는 ‘먼 길’이라는 시처럼 ‘점’으로 깨진 사람들한테 다가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가자/ 먼 길/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 나도 그 길 위에서/ 나무가 되고/ 너를 위해 착한/ 바람이 되고 싶다’ 지금은 정치인, 예술가, 의사 등 힘 있는 사람이 나서서 나만의 문제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에 나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져서 내가 더 좋아질 것을 꿈꿔야 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언제 쓰시나요. - 아무 때나 쓰죠. 그런데 저는 주로 움직일 때 시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요즘 제 시를 ‘노마드’ 시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저기 KTX를 타고 갈 때나 이런 리조트 공간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보는 대상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시를 써요. 그래서 저는 요즘의 시를 ‘노마드 시’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 저는 뭐 할 만큼 다 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된 적이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을 잘 모르고 왔고, 여기도 잘 모르고 왔고, 그렇지만은 좋았고, 여기서도 좋았고 그래서 가장 최선한 답을 그때마다 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냥 천천히 가다가 끝나면 제 인생이 끝나는 겁니다. ➜ 내년이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입니다.  - 제가 서울신문 출신입니다. 당연히 기념시 하나 써야지요. 예전에도 서울신문에 이왈종(1945~)화백의 그림과 함께 기념시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왈종 화백의 그림과 함께 시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마디해 주신다면. - 여러분들도 오늘 좋은 곳에 가 계신가요.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좋은 곳에 가 있다.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게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반갑게 다시 뵙겠습니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9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9일

    쥐 36년생 : 행운이 손짓하는 기쁨 있다. 48년생 : 주관대로 밀고 나가면 대길. 60년생 : 지나친 기대는 삼가라. 72년생 : 재물이 들어온다. 84년생 : 웃어른의 의견에 따르라. 소 37년생 : 문서 때문에 이익 생길 듯. 49년생 : 복이 충만하고 신수 좋다. 61년생 : 은인의 도움이 있겠다. 73년생 : 성공을 향해 힘껏 달려라. 85년생 :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호랑이 38년생 : 먼 곳의 여행은 되도록 삼가라. 50년생 : 신수 왕성하고 운수대통이라. 62년생 :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74년생 : 성공운이 있으니 이름이 사방에 떨친다. 86년생 : 욕심이 화를 자초하는구나. 토끼 39년생 : 조바심을 버려라. 51년생 : 먼 곳의 여행은 되도록 삼가라. 63년생 : 조급하게 서두르면 망신수 있다. 75년생 :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라. 87년생 : 분수 지켜야 희망 있다. 용 40년생 : 변동운은 내일로 미루어라. 52년생 : 차분히 일을 처리하라. 64년생 : 부당한 이익만 취하지 말라. 76년생 : 새로운 일을 도모해도 좋다. 88년생 : 앞길이 순탄하게 풀려나간다. 뱀 41년생 : 일이 순조롭다. 53년생 : 노력한 만큼 소득 기대 어렵다. 65년생 : 운수가 아주 좋은 날. 77년생 : 자신감을 가져라. 89년생 : 가족 중에 기쁜 일 생긴다. 말 42년생 : 좋은 일만 넘쳐나겠다. 54년생 : 경사 있겠으니 즐거운 하루. 66년생 : 기쁜 일 넘쳐난다. 78년생 : 일을 남에게 맡기다가 실패수 있다. 90년생 :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양 43년생 : 전화위복의 기회. 55년생 : 허풍은 나중에 큰 곤란을 겪는다. 67년생 : 소리 내어 일하면 소득 없다. 79년생 : 오늘은 모든 운이 좋다. 91년생 : 웃음이 끊이지 않는구나. 원숭이 44년생 : 대길하니 만사형통. 56년생 : 매매는 지연되겠다. 68년생 : 여행이나 이동에 좋은 날. 80년생 : 느긋한 마음은 행운을 가져다준다. 92년생 : 근심거리가 해결된다. 닭 45년생 : 운기가 순조로운 날. 57년생 : 손실은 곧 보충하게 된다. 69년생 : 주변에서 인기가 올라간다. 81년생 : 중심을 잃지 않으면 운수대통. 93년생 : 친절을 베풀면 운이 상승한다. 개 46년생 :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58년생 : 갈팡질팡 어지러운 하루. 70년생 : 진솔한 마음으로 임하라. 82년생 : 자존심 버리고 도움받아라. 94년생 : 믿는 사람에게 의논하라. 돼지 47년생 :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59년생 : 차츰 운이 상승세를 타는구나. 71년생 : 많은 이득이 생기겠다. 83년생 : 도전하면 성공이 보인다. 95년생 : 부와 명예가 함께 한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6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6일

    쥐 36년생 : 집안에 기쁨이 가득하다. 48년생 : 움직임에 행운 있다. 60년생 : 분수 지켜야 희망 있다. 72년생 : 기쁜 일이 연달아 생기겠다. 84년생 : 이동에 행운 따른다. 소 37년생 : 놀랄 일 있으나 안심하라. 49년생 : 좋은 기운이 있다. 61년생 : 재물운이 풍성하다. 73년생 : 노력해온 일에 성과 보인다. 85년생 : 작은 투자로 큰 소득 있겠다. 호랑이 38년생 : 질병에 각별히 주의하라. 50년생 : 행운이 넘친다. 62년생 : 우쭐대다 망신수가 있다. 74년생 : 심신이 피곤하겠구나. 86년생 : 기다리면 원하는 일 이루어진다. 토끼 39년생 : 상황에 만족하면 즐거운 하루. 51년생 : 뜻밖의 반가운 손님을 만난다. 63년생 : 만사가 형통한다. 75년생 : 은인의 도움 있겠다. 87년생 :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 용 40년생 : 귀인의 만남을 소중히 하라. 52년생 : 소득이 좋아져 주머니가 두둑하다. 64년생 : 성실한 일에 보답 있겠다. 76년생 :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하라. 88년생 :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뱀 41년생 : 충돌은 되도록 피하라. 53년생 : 기다리던 때가 왔다. 65년생 : 인간관계에 신중하라. 77년생 : 힘을 내고 추진하라. 89년생 : 친구 간에 말조심하라. 말 42년생 : 좋은 뜻을 가지고 베풀어라. 54년생 : 시작이 반이다. 66년생 : 경사스러운 일 생기겠다. 78년생 :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라. 90년생 : 마음을 굳세게 먹어라. 양 43년생 : 인기와 신뢰가 넘치겠구나. 55년생 : 행운이 들어온다. 67년생 : 많은 일로 힘든 하루. 79년생 : 매사 일이 잘 풀린다. 91년생 : 만사형통하니 재물 넘친다. 원숭이 44년생 : 아랫사람으로부터 기쁜 일 듣는다. 56년생 : 분수 지켜야 희망 있다. 68년생 : 가는 곳마다 이익이 있겠구나. 80년생 : 계획대로 얻겠다. 92년생 : 여유를 가지고 건강을 유지하라. 닭 45년생 : 심신이 불안하구나. 57년생 : 문서와 금전 관계를 조심하라. 69년생 : 고생 끝에 낙이 오겠다. 81년생 : 경쟁자가 나타나니 신중히 처신하라. 93년생 : 허전한 마음을 느끼는 날이다. 개 46년생 :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58년생 : 일을 방해하는 것이 생긴다. 70년생 : 마음과 몸이 안정된다. 82년생 : 커다란 책임이 주어진다. 94년생 : 모든 일이 순조롭다. 돼지 47년생 : 부지런하게 움직여라. 59년생 : 너무 큰일은 꾸미지 마라. 71년생 : 대외 활동에 유리한 날. 83년생 : 성공이 눈앞에 보인다. 95년생 : 운이 좋으니 기대해도 좋다.
  • 머나먼 땅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의술을 펼친 ‘신의’(神醫) 이태준 [한ZOOM]

    머나먼 땅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의술을 펼친 ‘신의’(神醫) 이태준 [한ZOOM]

     “여기 이태준 기념공원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방문하는 모든 한국인들이 꼭 가봐야 하는 곳입니다. 이태준 선생은 한국인들에게는 독립투사이지만, 몽골인들에게는 수많은 생명을 살린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으로부터 2300㎞ 떨어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한국인을 기념하는 공원이 세워져 있다. 그는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1883~1921) 선생이다.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안창호(安昌浩·1878~1938), 김규식(金奎植·1882~1931) 등과 함께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간 독립투사이다. 이태준 선생은 몽골에서 근대 의술을 펼치며 각지에 퍼져 있는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해 항일 독립자금 조달 등 외곽에서 폭넓은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펼쳤다.안창호 선생을 치료한 의사(醫師) 이태준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위해 서울로 가서 우연한 기회에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해 의사가 되었다. 1909년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일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안중근 의사의 배후로 지목하고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한 의사가 이태준 선생이었다. 일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이태준 선생을 체포하려 했다. 1912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난징으로 망명한 이태준 선생은 의사로 활동하던 중 처사촌인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간다. 이태준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몽골에 군관학교를 세우려했지만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때 이태준 선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창궐하던 ‘화류병’(성병)으로 고생하는 몽골인들이었다. 이태준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에서 배운 근대의술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세워 7년간 몽골인들을 치료했다. 이태준 선생은 몽골인들로부터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았고, 몽골의 국왕 보그드 칸(Bogd Khan)도 이태준 선생에게 ‘에르덴닌 오치리’라는 국가 최고 훈장을 수여하고 국왕 주치의로 임명했다. 의사 수입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 이태준 선생은 의사 수입의 전부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한 김규식 선생에게 자금을 대기도 했다. 김규식 선생은 군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이태준 선생과 함께 몽골에 왔던 동지이자, 이태준 선생의 아내 김은식의 사촌 오빠였다. 이태준 선생은 러시아 레닌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1920년 레닌 정부가 준 금괴를 가지고 상해를 방문한 이태준 선생은 북경에서 약산 김원봉(金元鳳·1898~1958)을 만났다. 당시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외 일제 수탈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무력투쟁에 사용할 폭탄의 성능 때문에 고민하던 김원봉은 이태준 선생에게 폭탄전문가 소개를 부탁했다. 후에 이태준 선생이 소개하려고 했던 헝가리인 ‘마자르’가 이태준 선생이 죽은 후 홀로 김원봉을 만나 고성능 폭탄제조법을 알려줬다. 일제와 손잡은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된 이태준 선생  20세기 초까지 몽골은 외몽골(현재 몽골)과 내몽골(현재 내몽골 자치구)로 분리되어 중국 청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외몽골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내몽골은 여전히 혼란한 상황이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 11월 볼셰비키 혁명으로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외몽골에 공산주의가 퍼질 것을 염려한 중화민국은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하고 다시 점령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미친 남작’이라 불렸던 웅게른(로만 폰 웅게른슈테른베르크)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는 혁명세력(적군·Red Army)과 반대세력(백군·White Army) 간에 적백내전이 일어났다. 1920년 적군에 쫓기던 웅게른의 백군은 몽골로 들어왔다. 웅게른은 ‘몽골을 중화민국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 몽골에 자치정부를 만들고 보그드 칸을 다시 국왕으로 복위 시키겠다. 몽골의 내정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중화민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한 몽골인들은 웅게른을 환영했다. 몽골의 지지를 받은 웅게른은 중화민국 군대와 싸웠지만 패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에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참전한 몽골 병사들의 노력으로 중화민국 군대를 몽골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몽골을 접수한 미친 남작 웅게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점령한 후 외국인 주거지역에 사는 외국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했다. 그리고 몽골 전역에서 대대적인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이때 이태준 선생과 가족은 외국인 주거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날은 이태준 선생과 헝가리인 마자르는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떠난 날이었다. 웅게른 부대 병사들이 이태준 선생의 집에 쳐들어와 이태준 선생의 아내와 갓 태어난 어린 딸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태준 선생과 헝가리인 마자르도 국경을 넘지 못하고 백군에게 붙잡혔다. 웅게른 부대에 있던 일본인이 이태준 선생을 볼셰비키의 스파이라고 지목하면서 이태준 선생을 1921년 일본과 손잡은 러시아 백군에 의해 38세의 나이에 피살된다. 가까스로 풀려난 헝가리인 ‘마자르’는 무작정 북경으로 가서 의열단 김원봉을 만나 폭탄제조법을 전달했다.이태준 기념공원에서 차를 타고 약 15분쯤 가면 울란바토르 시청 옆에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이 곳의 이름은 ‘수흐바타르 광장’이다. 이 광장의 한 쪽에는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그가 바로 몽골의 독립을 이룩한 ‘담딩 수흐바타르’(1893~1923)다. 그는 레닌의 도움을 받아 몽골에서 백군을 축출하고 독립을 이룬 인물이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혁명의 아버지로 불린다. 수흐바타르 동상을 보면서 그가 조금만 일찍 웅게른의 백군을 몰아 냈다면 이태준 선생은 살아 남아 독립된 대한민국의 땅을 다시 밟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보았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8월 3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8월 3일

    쥐 36년생 : 아랫사람으로 인한 행복 있다. 48년생 : 친구와 만나 즐거운 하루 60년생 : 기쁨이 들어올 운이다. 72년생 : 인간관계를 주의하라. 84년생 : 생각했던 일 실천하라. 소 37년생 : 놀랄 일이 생기겠으니 신중하라. 49년생 : 여행계획은 미리 세워라. 61년생 : 절약에 습관을 들여라. 73년생 : 행복한 날이 된다. 85년생 : 모든 일에 안정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호랑이 38년생 : 공연한 일에 휘말리지 마라 50년생 : 약간의 갈등 생기겠다. 62년생 : 소문에 연연하지 마라 74년생 : 동업은 문제가 생겨난다. 86년생 : 현재 일에 충실할 때 어려움도 풀린다. 토끼 39년생 : 자신의 이익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베풀어라. 51년생 : 분실이나 사고에 주의하라. 63년생 : 최선을 다하라. 성공한다. 75년생 :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 마라. 87년생 : 꼼꼼하게 검토한 후 처리하라. 용 40년생 :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52년생 :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하기 쉽다 64년생 : 가정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76년생 :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즐거움이 배가 된다. 88년생 : 희망적인 삶이 필요하다. 뱀 41년생 : 방법을 바꾸어 보는 것이 좋겠다. 53년생 : 노력하는 자에게 이길 자 없다. 65년생 : 재물은 남쪽에 있구나. 77년생 : 모든 일이 오늘은 쉽게 이루어지니 기쁘구나. 89년생 : 은인의 도움이 있겠다. 말 42년생 :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 54년생 : 가까운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세심하게 신경 써라. 66년생 : 신수 왕성하고 운수 대통이라 78년생 : 재성이 붙으니 이득이 높다. 90년생 : 남쪽에서 기쁜 일 있다. 양 43년생 :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행운을 가져다준다. 55년생 : 기회가 돌아오니 놓치지 마라 67년생 :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79년생 : 다툼이 있으면 먼저 사과하라. 91년생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원숭이 44년생 : 매사 뜻한 대로 되겠다. 56년생 : 엎친 데 덮친 격이다. 68년생 : 일 처리를 보다 꼼꼼하게 하라. 80년생 : 이동해도 큰 문제 없다. 92년생 : 원망 들을 일 없도록 하라. 닭 45년생 : 앞길이 순탄하게 풀려나간다. 57년생 : 일이 꼬이니 조심해라. 69년생 : 일이 지연되면 타인과 상의하라. 81년생 : 모임을 통해 일이 잘 해결된다. 93년생 : 과음, 과식을 삼가라 개 46년생 : 운이 좋으니 마음껏 행동하라. 58년생 : 고통 사라지며 일이 해결된다. 70년생 :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하라. 82년생 : 일이 성사되니 걱정마라. 94년생 : 중요한 일 곧 해결된다. 돼지 47년생 : 너무 자신만만해하다 큰코다친다. 59년생 : 옛사랑의 추억을 만날 수 있다. 71년생 : 말일까지 결정하라. 83년생 : 구설수가 따르니 신중히 행동하라 95년생 : 오후부터 서서히 좋아지겠다.
  • 103년 만의 해후… 최재형 선생 부부 함께 잠든다

    103년 만의 해후… 최재형 선생 부부 함께 잠든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최 선생 순국 103년 만에 넋이나마 고국에서 함께 잠들 수 있게 됐다. 국가보훈부는 최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구해 온 흙과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최 여사의 유해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한다고 1일 밝혔다. 최 여사 유해는 오는 7일, 최 선생 생가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은 오는 11일 각각 국내로 돌아온다. 보훈부는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에는 ‘백년 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부부 합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최 선생은 연해주에서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과 연해주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아 연해주 동포들의 은인으로 존경받았지만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최 선생과 1897년 결혼했던 최 여사는 최 선생이 순국한 뒤 자녀들과 힘겹게 생활하다가 1952년 사망해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가묘를 조성했다. 하지만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뒤 유족들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사실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음이 드러났으며 108번 묘역은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 있다. 최 선생은 일본군에 살해당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길이 없었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가 지난 6월 30일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최 선생 부부를 합장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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