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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張淸洙칼럼] 광복 54주년과 민족통일과제

    올해도 우리 민족이 그토록 갈망하는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채 광복 54주년을 맞게 됐다.2차대전 이후 분단국가들이 모두 통일을 이뤘는데 우리 민족만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가슴아픈 일이다.광복 이후 지난 반세기의 민족사는 회한과 질곡의 역사였으며 우리는 아직도 분단에 의한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다.통일을 하루속히 이룩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다. 광복 54주년을 맞는 우리는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나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특히 우리가 통일을 성취해야 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분단으로 인해 민족 전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비극,희생과 속박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온전하게 창조해 나가려는 데 있다.분단 때문에 치러야 했던 우리 민족의 희생과 고통은,6·25 동족상잔의 참화는 제쳐놓더라도 자유와 인권의 제약,민족자존의 손상,민족사의 굴절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그리고 북녘땅에 두고 온 혈육과 친지,고향산천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으로 한맺힌 삶을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또한 극단적 독재주의 폐쇄사회에서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한 채,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조차도 해결하기 어려운 북한 동포들의 생활은인도적 차원에서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휴전선의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서도 대규모 군사적 분쟁이 재연될 수 있는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체제에서 보면 통일은 더더욱 시급한 민족적 과제다. 뿐만 아니라 통일이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절실한 까닭은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항구적인 생존과 번영을 보장해 주는 첩경이기 때문이다.통일이 이렇듯 민족의 절실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연되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북한의 한반도 공산화라는 일관된 통일전략이 변하지 않았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오늘날 국제상황은 민족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며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에 따른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과거 불신과 단절시대에 추구해왔던 이중적 통일전략과 악의에 찬 대남전략을 그대로 추구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통일사업 이행에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민족의 재통일을실현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는 분단에서 오는 유형무형의 고통과 불행을 제거하고 제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게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이다.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단절된 생활을 영위함에 따라 나타난 민족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문제이다. 남북분단은 사실상 외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긴 하지만 민족화합과 조국통일만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과 주체적 노력에 의해 반드시 성취하여야 한다.하기야 갈라진 채 50년 이상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무방하지 않으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분단상태가 보다 오래계속되면 남북이 다함께 더 심한 고통을 받게됨은 물론,상호간의 대립과 갈등에서 오는 민족적 자존심과 존엄의 손상은 영원히 치유·회복할 길이 없게 된다.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분단이 아무리 숙명적으로 만들어진 슬픈 유산이라고 해도 우리시대에 깨끗이 해결해서 다시는 우리 후손들이 이같은 민족적 비극의 전철을 밟게 해선 안된다는 각오로 제2의 광복을 위해 매진해야하겠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광복절이지만 올해의 54주년 광복절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위대한 역사를 열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간절하다.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우리 정부의 전향적 포용정책을 수용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보다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논설위원csj@
  • 인터넷과 전자미디어 젊은이 세계관 크게 바꿨다

    워싱턴 DPA 연합 인터넷과 기타 전자 미디어가 젊은이들의 세계관을 크게 바꾸어놓았다는 새로운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브리티시-아메리칸 타바코’(BAT) 여가(餘暇) 연구소의 호르스트 오파쇼프스키가 최근 함부르크에서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과거 어느 세대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14세부터 29세까지)의 세계관이 전자 미디어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고있다는 것. 그는 정보시대가 앞으로 일상생활을 대폭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카를 마르크스와 코카 콜라의 어린이들이 이제는 월트 디즈니와 빌 게이츠의 어린이들이 됐다”고 강조했다. 약 3,000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생활양식,소비습관,미디어 선호도 등을조사한 결과,14세∼29세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여가활동들은 TV시청(89%),라디오청취(70%),전화 통화(64%),음악감상(63%),비디오 시청(44%),독서(35%),컴퓨터사용(27%),비디오 게임(2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젊은이는 “무엇인가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속에,항상 늦은 것처럼 느끼면서 성급한 행동인으로 변하고있다”고 그는 분석했다.미키 마우스와 마이크로 소프트,그리고 Viva와 MTV사이의 문화속에서 자란 이들은 5명중 2명꼴(41%)로 “인간은 오늘날 TV채널을 순식간에 바꾸듯이 곧 자기 삶을 휙 질주해 버릴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오파쇼프스키는 설명했다. 다가오는 정보시대에서 젊은이들은 어느 곳에서도 진정으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채 세계를 떠돌게될 것으로 이 연구원은 믿고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에 들어선 젊은이들은 세계를 그야말로 지구촌으로 바꿔놓고 있다.가정은 (여행중 식사나 휴식,급유를 위한) 도중(途中) 정류장이며 젊은인터넷 사용자들간에 앞으로 대화의 결여 증대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그는내다봤다.
  • 파괴된 생태계 복원 가능성 확인…KBS1 환경스페셜

    ‘인간은 환경파괴자’라고 환경프로그램은 언제나 고발해왔다.그러나 2일방송되는 KBS1TV ‘환경스페셜­황조롱이가 여의도에 둥지를 튼 까닭은’은인간이 환경을 되살린 일을 보여준다. 환경스페셜팀은 황조롱이가 여의도에 ‘왜 나타났는가’‘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을까’를 2개월간 추적했다.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는 매과에 속하는 육식성 조류.스페셜팀은 두달동안 황조롱이 일가족이 둥지를 튼 여의도 광장아파트 정숙영씨집 목욕탕 환기구와 생태공원 등 두 곳에 카메라 두대를 설치하고 황조롱이의 생태를 밀착취재했다.이 팀은 황조롱이의 ‘복귀’가 여의도 샛강의 생태공원이 살아나면서 먹이사슬이 형성된 데 따른 것임을 알아냈다.즉 인공적으로 2년전 조성된 생태공원이 황조롱이 가족의 보금자리가 됐다는 것이다.‘자연파괴자’인 인간이 ‘복원자’로서 역할을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스페셜팀은 이어 작은 섬에서 족제비를 발견했다.족제비는 황조롱이와 천적.아울러 황조롱이의 먹이인 들쥐와 새,새의 먹이인 곤충도 숱하게쫓아냈다. 특히 환경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실잠자리가 떼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를 화면에 담았다.이는 샛강의 환경이 완전히 살아났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밖에 흰뺨 검둥오리,물총새,박새가 둥지를 틀고 환경지표인 염낭거미나참개구리가 알을 낳는다.참붕어,각시붕어,버들치 등 고유어종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스페셜팀은 이 모든 것을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샛강은 버려졌던 땅이었다.사람들이 녹지공간으로 가꾸면서 다시 생명의 땅으로 숨쉬게 된 것이다.이 프로는 샛강 이야기를 통해 서울에도 생태계가 복구되는 기적이 일어날수 있음을 알려준다.
  • “의보수가 불합리” 비정상 의료초래

    전국 중소 병·의원의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일선 병·의원의 과잉진료 등 왜곡된 의료행위가 확산되고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료보험 저수가 정책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라며 책임을 정부측에 떠넘기고 있다. 환자 진료대가로 병·의원에 지급되는 의료보험 수가가 실제 원가의 65% 수준으로 너무 낮게 책정된데다 산정기준이 잘못돼 있어 적자경영을 면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과잉진료 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인들은 의보수가가 적용되는 의료행위를 외면하고 돈벌이가 되는 비보험 진료에 치중하거나 과잉진료를 할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진료과목별로 천차만별인 의보수가 구조도 전문의 공급체계의 불균형을 초래해 국민 건강 관리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실제로 의대 졸업생 중에서 소아과,내과,외과 등 환자 직접부담에 비해 보험급여 비율이 높은 과를지원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고,상대적으로 보험급여 비율이 낮은 성형외과,이비인후과,안과 등은인기과로 전공희망자들이 폭주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병·의원들이 의보수가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투명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채 왜곡된 경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의료계의 의보수가 인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또 병·의원들이 보험약가 마진으로 상당한 폭의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단기대책으로 올해는 보험약가를 30.7% 내리는 것을 전제로의보수가를 15.82%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약가 마진폭을 내리는 만큼 의보수가를 인상해 원가를 보전해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도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행 의료보험 체계가 ‘저부담 저급여’ 원칙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선진국처럼 ‘적정부담 적정급여’로 방향을 전환하는 장기대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오세영시인…인간실존의 문제 서정적 詩語로 형상화

    “공초(空超) 오상순은 허무의 끝까지 나아감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의지의 시인입니다.운명에 맞서 절대허무의 경지를 개척한 공초의 시세계와내 시의 공분모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탈속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지요” 올해 제7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세영 시인(58)은 “공초선생과특별한 인연도 없는 나를 작품성만을 보고 편견없이 수상자로 뽑아준 데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65∼68년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이래 지금까지 10권의 시집과 11권의 학술저서를 낸 부지런한 시인이요 학자다.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오세영은 자신의 표현대로 ‘왕따’로 통한다.이른바 ‘문지’니 ‘창비’니 하는 거대 ‘문단권력집단’과는 애초부터 인연이없기 때문이다. “이들 두 그룹이 우리 문학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인정할 만합니다.그러나 이들이 끼친 폐해는 그 공(功)을 상쇄하고도 남아요.30년 가까이 배타적인 블록을 형성,문단정치의 본산노릇을 해왔으니까요”이런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 문학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그는 특히 ‘문지’의 경우 그 폐쇄성과 엘리티즘은 4세대에 걸쳐 이어져오고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오 시인은 이같은 문단의 진구렁 속에서도 자신만의 연꽃같은 시심을 피워내기 위해 분투해왔다.그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은 사랑.오세영 시에 있어서 사랑이란 진리를 향한 에로스적인 충동 혹은 미혹한 상태로부터 진리를찾아가는 구법(求法)의 과정이다. 그는 ‘찻잔’이란 시에서 사랑을 “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그 자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의시에서는 뭔가 그윽한 선미(禪味)가 느껴진다. 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작 ‘집만이 집이 아니고’가 실린 ‘벼랑의 꿈’(시와시학사)은 시인의 동양적 사유의 정점에 놓이는 시집이다. “멀리 헤르만 헤세나 T.S.엘리엇에서부터 가까이는 옥타비오 파스나 파블로 네루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이 동양사상으로부터 문학적 영감을 얻었습니다.맑은 바람이나 밝은 달을 읊조리는 정도라면 모를까,인간존재의 근원을 다루는데 어떻게 동양사상에 기대지 않을 수있어요” 오시인은 불교와 노장(老莊)철학은 물론,우리의 무속세계까지도 자신의 시적 영토로 아우른다.문제는 심오한 인생론과 우주론적인 성찰을 어떻게 서정의 그릇에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를 위해 그는 “모더니즘적인 언어감각과 시어를 꾸준히 가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돼 있는 그는 사실 모더니즘 시인으로 출발했다.70년대 초까지는 과격한 실험시를 쓰기도 했다.처녀시집 ‘반란하는 빛’이 대표적인 예.그가 서정성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70년대 후반들어서다.“전통적인 정서에 충실하다보니 이따금 고답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하지만 시의 본령은 서정성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서정주·박목월·유치환을 그가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꼽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 시인 오세영은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5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추천작 ‘잠깨는 추상(抽象)’ ▲1970년 처녀시집 ‘반란하는 빛’출간 ▲1983년 시집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로 제15회 시인협회상 수상.시론집 ‘서정적 진실’,평론집 ‘현대시와 실천비평’ 출간 ▲1985년 서울대 국문과 교수 부임.선시집 ‘모순의 흙’ 출간 ▲1986년 ‘그릇’ 연작시로 제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2년 ‘구룡사시편 겨울노래’로 제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한국현대문학 강의 ▲1999년 제10시집 ‘벼랑의 꿈’ 출간 ▲현 서울대 국문과 교수김종면기자 jmkim@
  • 외교안보팀-對北 포용정책 힘 실렸다

    ‘5·24개각’으로 외교안보팀이 사실상 ‘신장개업’했다.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멤버 대부분이 교체되거나 자리를 바꾼 것이다.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만 자리를 지켰다. 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의 국가정보원장으로의 이동도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이에 따라 ‘국민의 정부’ 2기 통일안보팀의 색채가 상당히 달라질전망이다.관심의 초점은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통일부장관으로의 ‘전진배치’.그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창한 ‘햇볕론’의 ‘전도사’역을 맡아왔다는 점에서다.그가 막후 조정역에서 전면으로 나섬으로써 대북 포용정책은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남북경협과 교류가 보다 활성화될 여지가 생겼다는 얘기다. 임 신임 장관도 도쿄에서 열리는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 참석 도중 임명발표 소식을 듣고 “남북관계를 개선,남과 북이 오가고,돕고,나누는 상황을 앞당겨 실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보수적 현실론자인 강인덕(康仁德)전통일부장관은 외교안보팀내에서 일종의 완충역을 수행했다.때문에 그의 하차는 포용정책의 대(對)국민 설득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 해석된다. 임장관은 새정부 대북정책의 대표적 이론가.김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방안 입안을 지시받고,실천에 옮겨온 인물이었다.그동안 안보수석으로서 막후 조정역에 그치지 않고 대북 외교무대의 전면에 나서곤 했다. 그의 통일부 입성으로 외교안보팀내 역학관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내용상으로는 대통령 친정체제 강화,외형상으로는 비서실보다는 내각 중심으로운용되는 양상을 띨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페리 미 대북 정책조정관의 25일 방북에 앞서 입각이 이뤄진 점도 음미할 만하다.그가 북측에 전달할 ‘포괄적 접근’의 실무적 입안자인 까닭이다.북한의 화답 여하에 따라 북-미 관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돌파구가 열릴 전망이다. 실세장관의 부임으로 외교안보팀내에서 통일부의 총괄조정 기능도 강화될것으로 보인다.그 동안 대북 정책 수행과정에서 외교부가 앞장서고 통일부가 소외된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다.그의 입각으로 외교부의 ‘역소외’를 우려하는 관측도 없지 않다.하지만 외교·안보정책팀내 인간관계에 밝은인사들은 이를 부인한다.홍외교와 임통일장관은 이른바 ‘나이지리아 인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임수석이 나이지리아 대사였을 때 홍장관이 공사로,권종락(權鍾洛) 현 북미국장이 1등 서기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구본영기자 kby7@
  • 金하나은행장 사의 표명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이 1일 오후 귀국해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는 김 행장은 당초 4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로 귀국 일정을 사흘 앞당겼다. 금융감독위 고위관계자는 30일 “김 행장이 윤병철(尹炳哲) 회장을 통해 금감위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며 “본인이 직접 사의를 표하지 않아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귀국하는 즉시 자신의 거취문제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하나은행 윤 회장은 직원들에게 “김 행장이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관계자는 “김 행장 개인의 능력은인정하지만 병역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김 행장이 하나은행을계속 이끌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한광장-성형수술과 이미지

    콜라겐주사인 줄 알고 무허가 성형 야바위꾼에게 실리콘주사를 맞은 아줌마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한다.수술비로 수백만원씩 뜯어낸 야바위꾼 아줌마들은 이미 수억원을 챙겨 달아난 뒤이고,수술을 받은 아줌마들은 변형된 얼굴과 몸을 가지고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가정파탄에다 심지어는 자살한 경우마저 있다고 하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TV 카메라 앞에서 얼굴도 내밀지 못한 채 울고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분노가 치민다.피해 아줌마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이유는 ‘이뻐지고 싶었다’는 것이다.그리고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뻐지고 싶었던 이유가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자신은 없어지고 사방에서 등장하는 인형 같은 예쁜 젊은 여성들의 이미지에 주눅이 들 대로 들었을 것이다.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야 얼마든지 바깥에서 젊고 아름다운 다른 여성들을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은가.그래서 무슨 수를 쓰든 멀어져가는 남편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가족몰래 계까지 들어가며 시술비를 마련해 갖다 바쳤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물론 그녀들 자신에게 있다.그렇게 반평생을 넘겨 살아놓고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기 안에서 찾지 않고,여전히 남성에게 바라보이는 대상적 위치에서 찾았을까.왜 좀더 보람 있는 일에 돈과 시간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외적인 아름다움에만 매달리다 보면 내면은 오히려 황폐해지고,그것이 결국엔 추한 외모로 바뀐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지킬 줄 모른단 말인가.얼굴이 원하는 대로 붙였다 떼었다 할 수있는 것인가.또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확인되지도 않은 미지의 물질을 얼굴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회가 그녀들을 방치했던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우선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목을 매달 수밖에 없도록 각종 매체가 조장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TV 등 영상매체에서 심하게 나타나는데,특히 여성들의 경우 외적인 아름다움 외의 어떤 매력을 가진 인물이 아이콘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있다하더라도 희화화되어 있다.남성들의 경우에는그래도 지성,연륜,재치 등 외적인 아름다움 외의 어떤 자질을 가진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역할이 주어진다.그러나 남성의 경우도 노년의 인물이 중요한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미지의 가짜 실존에 저항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모든 이미지들이 너무나 생생한 현실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현대인은 이미지를 먹고 마시고 입는다.게다가 너무 가깝게 다가와 있는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준다.여배우들이 스토킹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현대인은 이미지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들어주는,순수 추상과 현실 사이에 놓인 임시 가교라는 것을 까맣게 모른다.그래서 신기루를 향해 손을 뻗다가 번번이 추락하는것이다. 애초에 이미지의 역할은 종교적인 것이었다.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방식이었다.종교적 우상이 이미지의 출발이었던 것이다.그것은인류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인지능력과 관계된 것이었다.그러나 이미지 복제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미지는 점점 더 타락하고 있다.이제 이미지 뒤에는아무 것도 없다.거짓이라는,추악한 환상이라는 허구렁이 있을 뿐이다. 매체 종사자들이 이미지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그래야 어쩔 수 없이 이미지를 유통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가짜 이미지들이 주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적어도 대중에게 제대로 늙는 방법은 가르쳐야 할 것 아니겠는가.지금은 젊어서 젊은 이미지에 행복하게 동일화되어 있는 신세대도 결국 언젠가 아줌마들처럼 늙지 않겠는가.
  • 자민련 “우리도 젊은피로 물갈이”

    ‘우리도 젊은 피를 끌어들인다’자민련이 젊은층 수혈에 나선다.‘노인당’이미지 탈피를 위해서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정당화가 목표다.8월까지 내각제 논의중단으로 추진력에 여유가 생겼다.명예총재인 김종필(金鍾泌)총리가 내각제 토양조성을 지시한 뒤 가속화되고 있다. 변신 시도는 과감하다.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재야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적극 영입하겠다”고 말했다.“정치감각이 있고 조직력도 뛰어나 정치신인으로 뛰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장점을 들었다.“일부 운동권 출신인사를 만나본 적도 있다”고 소개도 했다. 김총장은 ‘신보수’라고 규정했다.젊은 운동권 및 전문가그룹을 기존 보수노선에 접목시키는 개념이다.당쇄신과 당세 확장의 기조로 삼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정체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강창희(姜昌熙)원내총무는 “자민련은 보수정당”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혔다.일부 당내 보수론자들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자민련 색깔을 흐리게할 것”이라며 못마땅한 반응이다.향후 추진과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물갈이는 대폭으로 추진하고 있다.전체 253개 지구당 가운데 미창당 57개지역에 대한 창당작업과 더불어 본격화할 방침이다.지난 13일 경기도 파주지구당에 김윤수(金允秀)인천백화점대표를 영입하는 등 조직책 6명을 새로 뽑았다.김씨 등 4명이 30∼40대 인사들이다. 박태준(朴泰俊)총재는 이날 “전 지구당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이를 기준으로 부실지구당을 정비할 계획이다.그 빈 자리는 젊은인사의 몫이다.한 관계자는 “현 지구당위원장중 40%정도는 물갈이 대상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한매일을 읽고]개성있는 인재채용 신제품개발 밑거름

    개성파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일본 소니사의 사훈은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라’라고 한다.그 결과 평면TV,워크맨,노트북 바이오(VAIO)등 최근 몇 년간 세계를 석권한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대한매일 4일자8면).이런 소니사의 입사원서에는 출신학교를 적는 란이 없다고 한다.2차례면접에서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지와 독특한 창의성과 개성에 큰 점수를 준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웬만한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 광고에는 학력 등 엄청난 제한요소를 열거하고 있다.제한된 범주내의 사람에게만 입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톡톡튀는 창의성과 각별한 경험이 있는 인재를 채용,글로벌시대에 대응하는 제품등의 개발이 절실한 시기이다.각별한 경험과 독특한 아이디어나 사고를 가진 인재의 채용과 그같은인재를 신제품 개발에 참여 시키는 벤처기업이 많이 생겨났으면 바람이다. 정경내 [모니터·지방공무원]
  • [김삼웅칼럼]생명공학, 덫인가 돛인가

    21세기 인류의 미래는 희망인가 절망인가. 인류역사상 가장 극심한 변화가예상되는 신세기를 불안의 시각으로 예측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분야의 하나는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이다. 무정자증 남성의 생식세포를 쥐의 정소(고환)에서 키운뒤 체외수정을 통해 ‘쥐아기’가 태어났다. 2년전 복제양 ‘돌리’의 출현으로 인류를 놀라게한 생명공학은 마침내 쥐아기를 출생시켰다.한국에서도 복제젖소 ‘영롱’이에 이어 복제한우‘진이’가 태어났고 ‘인간복제’도 시도되고 있다. 미국의 생명복제 기업인 베일리언트 벤초는 20만달러에 인간복제를 해주고5만달러에 인간세포를 추출·보관해주겠다면서 국내에 상륙했다.일본에서는쥐의 세포를 사람의 뇌에 이식하는 임상실험이 곧 실시된다.인간 이외의 동물세포를 뇌속에 이식하는 이종이식(異種移植)의 실험결과가 주목된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예언대로 21세기에는 “인간에 의해 개량된 전혀다른 인간형”이 출현할지 모른다.창조주에 의해 출생한 인간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조작된유사인간이 태어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생명공학 또는 유전공학의 ‘발전’이 이윤추구에 눈이 먼 기업과 합작으로 인류가 엉뚱한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다.‘과학’의 이름으로 일대 재앙이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과학(의학)자들의 ‘과학정신’이 요구된다. 인류는 과학(자)에 의해 오늘의 문명사회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재주와 기술을 전쟁과 범죄와 인류파멸에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잠수함이 무기로 쓰일것을 예견하고 설계도의 발표를 거부했다.17세기에 보일은 다빈치와 같은 이유로 자기가 개발한 독약의 비밀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제조에 참가했던 미국 과학자 존 힐튼은 “최초의 원폭제조에 참가한 것을 반성한다.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끔찍한 폭탄제조에 참가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내가 이런 끔찍한 일을 맡게된것은‘과학을 위한 과학’이란 잘못된 철학을 믿고 있었기때문이다.”라고참회한 바 있다. 힐튼의 ‘참회’를 더들어보자. “과학을 사회생활이나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원폭제조에 참가했던 것이다.우리 과학자는 ‘순수과학’에 헌신해야만 한다.그 나머지는 기술자나 정치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과학은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미국인 시벨리는 소의 난자에 인간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배반포기(착상가능한 세포단계)까지 발육시키는데 성공했다.서울대학 교수들은인간심장을 가진 돼지를 복제하는 연구로 곧 괄목할 성과가 나올 것이라 한다. 미국 토머슨 제퍼슨대학 연구팀은 유전자 변이로 흰쥐를 검은쥐로 바꾸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얼마뒤에는 미녀 상반신에 물고기 하반신의 ‘인어공주’도 나타날 것이며 파충류 난자에 DNA를 이식하여 ‘공룡’의 부활도가능할 것이라 한다.공상과학 소설의 캐릭터가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인간이 복제되고 ‘쥐아기’가 태어나는 이 전율할 사태앞에 인간의 생명질서는 어찌되는가.이런 식으로생명공학이 진행되어도 괜찮을까. 생명(유전)공학이 사람에게 유용한 단백질이나 면역성을 가진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나,제초제에 강한 옥수수와 감자,서울대학팀이 연구중인 돼지를 통한 위 콩팥 등 장기의 대량생산은 장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복제와 DNA 이식을 통한 생명조작은 중단돼야 한다.창조주의 생명질서를 어지럽힐 때 무슨 가공할 재앙이 닥치게될지 모른다.인간을 위한 과학(자)과 악마를 위한 과학(자)은 분리돼야 한다. 과학(의학)자들의 ‘과학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인간의 모습이 똑같아지는’그런 끔찍한 미래를 막아야 한다.계류중인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보완하여 이 분야의 안전성과 윤리문제를 다루는 안전장치가 되도록하고,세계적 연대를 통한‘인류보존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아니면 파멸에 이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30)

    ◆前한성은행장 韓相龍2,3년전 평소 알고 지내는 고서점에서 일제말기에 출간된‘창남수장(暢楠壽章)’이라는 문집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문집 이름에 ‘수(壽)’자가 들어간 것은 흔히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 보통이다. 일제 당시 환갑잔치에 문집까지 낼 정도라면 고관대작이나 후학이 많은 거유(巨儒) 정도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문집 역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첫 장을 넘겨 보니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의 축하 휘호가 나타나더니 뒤 이어 일본인 육군대장의 글씨와 궁내부대신을 지낸 민병석(閔丙奭)의 서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시 축하시 모음란에는 당대의 명사들이자 유명한 친일파들이 대거 운집해있었다.황족 친일파인 윤덕영(尹德榮)·좌옹 윤치호(尹致昊)·후작 이항구(李恒九·李完用 아들)·중추원 참의 김사연(金思演)·은행가 민규식(閔奎植)등등. 이런 수준의 인물들이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위해 시를 보낼 정도였다면 그의 수준·성향도 짐작이 간다.알고 보니 문집의 주인공은 일제당시 경제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한상룡(韓相龍·1880∼?)이었다. 한때 ‘조선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한상룡은 1880년 규장각 부제학 출신 한관수(韓觀洙)의 3남으로 태어났다.17세때 관립외국어학교 입학을 계기로 신학문에 눈뜬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으나 외숙 이윤용(李允用)의 주선으로 대신 사립 성성(成城)학교에 입학(1899년)하면서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이듬해 그는 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장티프스로 학업을중단하고 1901년 귀국하였다.귀국후 그는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이 해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고종의 종형인 이재완(李載完)의영어통역을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공직(평식원 총무과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공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둘러싼 ‘좋은 여건’을 배경으로 야심을 키워가고 있었다.당시로선 근대문물에 대한 견문과 영어·일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였던데다 그의 뒤에는 당대 제일의 권력자인두 외숙(이윤용·이완용 형제)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903년 12월 그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총무 취임을 계기로 금융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9월 이 은행의 전무취체역으로 취임한 그는 일제당국에 로비를 하여 당시 조선인 합방공로자에게 지급한 은사공채(恩賜公債)를 흡수,자본금을 300만원으로 10배나 증자하면서 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성은행이 조선 귀족들의 은행이라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3·1의거 당시 민중들의 표적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이 무렵 그는 40여년 동안 일본 제일은행의 최고책임자로서 일본 재계의 거두로 군림해온 시부자와(澁澤榮一)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이토(伊藤博文),경제에서는 시부자와,건설에서는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目賀田種太郞)를 ‘조선에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3대 은인’이라고 하면서,특히 시부자와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동양에서 공전 절후의 위인’이라고 극찬하였다.그는 시부자와의 좌우명 ‘일생일업(一生一業)’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그가 대부분의 친일파들 처럼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실업계로 진출한 것은 시부자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매국에 가담한 친일파들에게 준 공채를 토대로 발전을 도모한 한성은행은 1923년 그가 두취(頭取,현 은행장)로 취임한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관동대지진의 여파에 이어 영업부진·경영악화가 계속됐다.이듬해 총독부는 이 은행을 정리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28년 마침내 조선식산은행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의 한성은행인가,한성은행의 나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한성은행에서 나고,자라고 그로써 거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한성은행을 잃게 되자 그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식민지 예속자본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한성은행 재직시절 금융계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조선내 각종 기업·회사 설립에 중개자로 참여하였는데 실권은 전혀 가지지 못한채 명목상의 감투만 여럿 쓰고 있었다.이런 그를 두고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는 “‘한상룡의 경력은 반도 재계사의 축도(縮圖)’라는 표현처럼그는 제국주의 권력과 식민지 예속경제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정상배”였다고 평가했다.금융계에 평생을 바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한성은행의 경영권 양도와 뒤이어 신탁회사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한편 그의 친일이 겉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성은행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본격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우선 그는 조선에 업적(?)을 남긴 주요 일본인들의 동상·기념비 건립을 시작으로 친일대열에 본격 합류하였다. 첫 사업은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의 동상을 제작,1929년 10월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졌으며,이 해 12월에는 이토(伊藤博文)기념회의 조선측 발기인 총대를 맡기도 했다.33년 2월에는 평소 자신이 숭배해온 시부자와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12월 장충단에서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한상룡의 발의와 주동에 의한 것이었다. 또 35년 5월에는 ‘조선개화의 은인이자 일한합병의 공로자’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동상건설회 발기인 및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총독부 청사내홀 우측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이듬해 2월 소위 ‘2·26사건’으로 사이토(齋藤實) 전조선총독이 사망하자 부민관에서 추도회를 개최하고 39년 4월 그의 동상을 총독부 청사내 홀 좌측에 건립하였다.이밖에도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국주재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정무총감 출신의 시모오카(下岡忠治) 등의 동상건립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자들의 업적 찬양에 열을 올렸다. 한편 한상룡이 군국주의 일제통치하에서 40여년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군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한성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군부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조선내 각지를 돌면서 강연·담화 등을 통해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였다. 또 33년 4월 경성국방의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설립준비위원 및 감사(34.4),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 고문(34.12),해군협회 조선본부 창립위원(35.4)등을 맡아 활동하였다.37년7월 중일전쟁 발발 직전에는 관동군사령부 사무촉탁(칙임관 대우,근무기간 37.7.1∼40.7.1)으로 임명돼 군사령부를 방문,조선실업구락부 및 자신의 명의로 국방헌금을 하였다. 당시 그는 후방 전쟁지원단체인 경기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이자 경성군사후원연맹 고문으로 있으면서 ‘애국금차회’ 창립을 주도,조선여성들에게 전쟁물자로 노리개 금붙이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하였다.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일제의 인력·물자동원이 거세지자 그는 이 역시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였다. 특히 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훌륭한 군인이 되자’라는 글에서 “반도에 불타는 애국심과 적성(赤誠)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약진 반도의 통치사상에 획기적인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며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7년 중추원 참의(칙임관 대우)에 첫 임명된 이래 해방 때까지 그는 만18년 4개월동안 줄곧 중추원의 참의·고문을 지냈다.해방 1년전인 44년 4월 그는 윤치호·박중양(朴重陽·중추원 참의)·이진호(李軫鎬·총독부학무국장)·이기용(李琦鎔·황족·백작) 등과 함께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됐는데 마지막까지 일제에 협력한 결과이자 끝까지 일제에 끌려다닌 형상이라고도 할 수있겠다. 그는 한성은행 경영권 양도를 비롯해 일제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의도적 배제를 당했지만 그 때마다 변신과 일관된 친일노선으로 버텨냈다.한마디로 일제하 그의 생존논리는 철저한 예속과 굴종이었다.그를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해방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鄭雲鉉 jwh59@
  • 국민회의에 개혁성향 인물 얼굴 내밀기 분주

    ‘젊은 일꾼 수혈’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개혁마인드로 무장하려는 국민회의와 주변 인사들의 움직임이 활기를 띄고 있다.아울러 조만가 가시화될 ‘젊은인사 수혈’작업에 걸맞는 인사들을 찾는데 당내 인사들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여권의 전방위(全方位) 수혈인사 찾기가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25일 金大中 대통령의 명쾌한 설명으로 ‘개혁성향의 젊은 일꾼’의 개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대통령이 처음 화두를 던졌을때만 하더라도 당내 일부 중진 또는 원로급 인사들은 ‘구체적으로 겨냥하는 층이나 세대’를 몰라 당혹해했다. 그러나 이후 연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정리되자 자신들도 나름대로 개혁 마인드를 갖춘인물이라며 여기저기 얼굴내밀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부쩍 주목을 받고 있는 당내 개혁모임 등에도 당안팎의 인사들이 문전성시를이루고 있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이와관련,“대통령의 25일 말씀으로 개념은 명확해진 만큼 단계적인 방법으로 당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젊은 개혁인사를 보강할 것”이라고밝혀 당을 중심으로 젊은 일꾼 수혈작업을 본격화 할 것임을 시사했다. 영입 대상에 대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그리고 어느 누구 어느 계층을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는 대통령의 설명을 상기시켰다.이는 특정 집단에 초점이 맞춰진 단선적 시각을 경계하고,다양한 집단과 계층에서 개혁마인드를 가진 능력있는 일꾼을 영입,전국정당화의 기초를 닦는다는 설명이다. 국민회의는 이에 따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영입대상 인사들에 대한 리스트작성에 착수하는 한편 수혈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사고지구당 위원장 충원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이다.당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리스트가 작성되면 당 내부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최적의 인물을 선택해 적재적소에 배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인재 수혈 작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수혈 대상 인사의 대부분의 기대치가 커 욕구를충족시키기가 어려운 반면,자리는 한정돼 있다”는 설명이다.내부의 반발도장애 요인이다.최근 젊은 일꾼 수혈론이 세를 얻으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의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당 지도부가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피격도시 이모저모

    ┑베오그라드 모스크바 외신종합┑●공습이 시작된 24일밤 베오그라드 밤하늘은 나토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내는 섬광들로 수를 놓았으나 도시는 의외로 평온한 모습. 계속된 전기공급으로 가로등과 집안의 전깃불은 평시처럼 밝았다.그러나 외형상의 평온함과 달리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지금 우리는 밀로셰비치보다미국인을 더 미워한다”고 공습에 분노를 표시. ●2차 공격에서는 아드리아해에 배치된 미국축함 곤잘레스호와 순양함 시호,제6함대 소속 구축함들이 토마호크 미사일 4발을 수분간격을 발사. ●코소보 주도 프리슈티나에서는 폭발음과 총성이 연거푸 들렸으며 정전으로 도시 전체가 일순 암흑 천지로 변했다.세르비아 당국은 공습 직후 곧바로전시상태와 총동원령을 선포,항전의지를 다졌다. ●공습에 앞서 세르비아 방송들은 시민들에게 미사일 발사시 지하실 대피등공습시 긴급대처 요령을 집중 홍보했으며 프리슈티나 시내 주유소와 슈퍼마켓은 기름과 비상식량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유고당국은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철저히 통제.특히 텔레비전 기자들의 화면송신을 막아 미 CNN방송등은 이라크 공습때같이 생생한 화면을 중계하지 못하고 자사 기자들의 전화통화내용만 보도. 미 CNN방송은 자사 기자 4명 등 30여명의 외국기자들이 공습이 진행중인 베오그라드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억류됐다고 보도.CNN은 그러나 이들 기자들이 조만간 석방될 것이라고 전했다. ●세르비아계와 전투를 계속해온 코소보해방군(KLA)대변인은 “국제사회가유고땅을 도살장으로 변모시킨 범죄자 응징에 나섰다”고 공습을 환영. ●나토의 유고연방공습으로 이날 오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가 강세를보여 공습 개시 45분만에 달러화는 엔화에 비해 전날의 118.10엔보다 오른 118.09엔에 거래됐다.달러화는 전날 1.4589에 거래된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도 오름세를 보여 1.4666에 거래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4일 오후 긴급소집된 유엔안보리회의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대사는 “안보리의 결정을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군사행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피터 벌리 미국 대리대사는 “나토공습은인도주의적 참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국제평화와 안보 유지에 있어헌장상 1차적인 책임은 안보리에 있다”고 공습에 불만을 표시.아난은 그러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무력사용이 정당화되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여무력사용의 불가피성은 인정했다.
  • [대한광장]한국인의 ‘로마인 이야기’

    최근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서양의 자유주의 전통이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정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왔던 필자의 얕은 역사 지식이 여지없이 무너졌다.기원전 200년경 로마에서는 완벽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가 배워온 아테네민주주의는 기원전 500년경에 이미 활짝 꽃피워 있었다.필자는 프랑스 파리의 루블 박물관에서 그리스조각을 보고 감탄한 일이있다.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잘 빚어놓다니! 그리스·로마사람들은인간을 긍정적 존재로 파악했다.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 법치제도를 확립해 그것을 성공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경제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인간을 부정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인간은 죄악을 범하게 되어있으며 종교적 구원을 통해서만 악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것이다.개인의 자유는 부정되었고 국가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르네상스는 중세의부정적 인간관에 대한 반란이라고 할 수있다.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그들이 참조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존 로크와 같은 17세기 계몽사상가가 가지고 있었을 숨은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사회·경제가 혼란과 파탄으로 치닫지 않고 잘 굴러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들이 자유주의를 주창했을 때 이들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면 그것은 실증적으로 우월성이 입증된 그리스·로마의 민주주의체제였을 것이다.개인의자유,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계몽사상가들의 믿음이 옳았다는 것은 그후에 전개된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의 찬란한 물질문명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역사를 논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17세기 계몽사상가들이 가졌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믿음,즉 개인의 자유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체제가 다른 어느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는 긍정적인 답을 자신있게 할 수 없음을 가슴아프게 생각한다.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와서도 우리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체제의 운영 질서에 대한 신뢰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과학기술이 진흥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부가 필요하고 수출과 산업생산이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산업자원부가 확대되어야 하며 문화와 체육이 진흥하기 위해서는 문화관광부가 커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먹혀든다.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주체도 민간이며,수출과 산업생산을 주도하는 것도 민간경제주체이고,문화와 체육도 개인,또는 그들로 이루어진 자발적 민간단체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이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유주의 질서를 보장하는 규범체계를 만들고 이러한 규범이 철저히 시행되도록 하는 활동이어야 하고 그 일에 정부역할이 국한되어야 한다.그렇게 될 때 과학기술도,산업생산과 수출도 그리고 문화체육도 더 잘 발전한다고 하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는 곧잘 국회의원을 비웃고 국회를 희화화한다.그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에 빠진다.그러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참여와 비판의식이다.정치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며,당 총재의 비민주적 정당운영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21세기를 눈 앞에 둔 이 시점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계몽사상의 가르침이다. 이성섭 숭실대 교수·경제학
  • ‘야후 코리아’ 돌풍…1월 한달만에 작년 매출액 달성

    인터넷 검색사이트 운영업체인 ‘야후 코리아’가 올 1월 한달에만 지난해전체 광고매출액과 맞먹는 15억원어치의 광고물량을 수주했다. 廉振燮사장은 “인터넷 인구의 증가와 함께 광고주인 기업들이 인터넷 광고의 효과를 점차 높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 추세라면 올해 광고매출 목표인 50억원을 큰 폭으로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야후 코리아는 인터넷 검색사이트의 대명사인 미국 ‘야후(Yahoo!)’의 국내법인.하루 600만건의 페이지 접속건수를 기록하는 등 국내 검색사이트 중방문객이 가장 많다.18개국에 있는 전 세계 야후 사이트 가운데서도 미국 본사와 일본 다음으로 세번째다. 이 때문에 최근들어 국내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야후 코리아에 광고를 신청하고 있다.200위 안에 드는 기업들이 모두 광고계약을 하는 바람에 중소기업들은 아예 신청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그러나 廉사장은 “방문기록은 전세계 야후 사이트 가운데 3위이지만 아직광고매출은 야후 사이트 중 하위권”이라며 인터넷 광고에 대한 국내의 낮은인지도를 아쉬워했다.
  • 평생직장 상실시대…民-官 자리바꿈 붐

    정부와 기업의 구조조정과 이로 인한 실업자증가 등으로 올해 노동시장에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국장급이상을 최고 30%까지 민간분야에서 충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내년부터는 국장급이상 공무원의 연봉제를 실시할 계획이다.기업들은인턴제,파견근로제,시간 근무제와 계약제로 근로자들을 채용,새로운 근로형태를 적극 선호하고 있다. 정부는 조직개편과 관련,올해 일반직 공무원 1만여명을 퇴출시키면서 각 부처의 일부 국장급 이상을 아웃소싱으로 외부에서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에 따라 정부와 민간 부문간의 인력 이동이 크게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 다시 관가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일부 중앙부처 관리들이 민간 분야 진출을 적극화하고 있다.재정경제부의 경우 행정고시 출신인 李炯昇 전 서기관(경제정책국)이 지난달 삼성증권 기획팀장(이사대우)으로 간데 이어 朱尤湜 지역경제과장이 대기업 임원으로 가기 위해 지난 8일사표를 제출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5일 5개분야 팀·과장급 7명을 변호사경제·경영학박사 회계사 보험계리인 등 외부전문가로 임명했다.충원된 인력은 吳容錫(44·경제학박사)조사연구국 정책연구팀장,金容載(34·법학박사)기획조정국 법무실 조사역,尹光均(40·변호사)심의제재국 수석조사역,玄明錦(여·44·외국은행 근무경력자)감독1국 위험관리과장,金松玉(여·41.보험계리인)감독4국 계리팀장,吳大錫(41·보험계리인)감독7국 연금감독과 조사역,玉基律(36·경영학박사)감독6국 선물업자감독과장 등이다. 근로형태에도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계약직은 정부,공공기관들과 대기업들이 앞장서 도입하고 있다.현행 법상 최장 1년으로 되어있으나 대법원 판례는 그 이상 기간도 인정,실제로는 3,5년짜리 계약직도 나타나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인턴직원 채용규모는 4,000명선이다.9,000명 안팎으로 예상되는 올 전체 채용규모의 절반에 육박한다. 李商一 金煥龍 bruce@
  • ‘경제원론’ 교과서 틀 바꿀 경제학 등장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97년 한 서평에서 “세계 ‘경제원론 교과서’의 틀을 바꿀 획기적인 경제학 책이 나왔다”고 보도했다.이코노미스트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책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교수(40)의 ‘Principles of Economics’다.그 책이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교보문고에서 발간됐다.(김경환·김종석 옮김 2만9,000원)경제학 원론은 그동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MIT 교수의 ‘경제학’(Economics)이 중요 모델이었다.이 책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1948년 초판이 나온 후 400만권 이상 팔렸다. 이 책을 기본 틀로 한 경제학 원론 교과서들은 경제를 단순히 분야별로 구분해 설명하고 기술적 이론을 중시한다. 그러나 맨큐는 경제이론보다 응용과 정책분석을 강조한다.경제현상에 대한이해와 실생활 응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맨큐의 경제학’은 새뮤얼슨의 ‘경제학’이 나온 후 반세기만에 그의 책을 대체,미국을 비롯한 많은나라에서 경제학 교과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맨큐는 140만달러의 선금을받고 이 책을 썼다.그의 역작인 ‘거시 경제학’이 높은 인기를 끌자 출판사가 미리 돈을 주고 책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맨큐의 경제학’은 교과서는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고정 관념을 깼다.즐기며 배울 수 있는 책이다.그러나 단순히 교과서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세상 일을 합리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삶의 지혜를 주는 교양서이기도 하다”고 역자인 김경환 서강대교수는 말한다. 이 책에는 많은 여백이 있어 질리게 하지 않는다.다양한 컬러 그림·도표·사진 등이 이해를 돕고 있다.간결하고 깔끔하여 친근감을 준다.그러나 이 책이 돋보이는 근원적 이유는 겉치장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맨큐는 케인즈 경제학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를통해 경제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뉴스 속의 경제학’이라는 난을 만들어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발췌,경제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비교우위 원리를 미국의 위대한 운동선수인 마이클 조던을 활용해 설명한다.“미국 프로농구 NBA 최고 스타 조던이 자기집 잔디를 깎는데 2시간걸린다고 하자.또 그 2시간에 광고에 출연해 1만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하자.옆집의 제니퍼양은 조던 집 잔디를 4시간에 깎을 수 있다고 하자.그녀는 그시간에 맥도널드에서 일하고 20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하자.조던은 제니퍼에비해 잔디 깎는 일에 절대우위에 있다.그러나 비교우위는 제니퍼가 가지고있다.잔디 깎는 일의 기회비용은 제니퍼가 더 낮기 때문이다.조던은 잔디 깎는 일을 제니퍼에게 부탁하고 광고에 출연해야 한다.조던이 제니퍼에게 20달러 이상 1만달러 이하의 돈을 지불하면 두사람 모두 이익이다”. 맨큐는 ‘암표상의 존재 논리’ ‘경제원리를 활용한 환경오염방지’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경제원리를 찾아가고 있다.그는 말한다 “‘경제학은인간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는 19세기 경제학자 마샬의 정의는 오늘도 유효하다”.李昌淳 cslee@
  • 도약99 정치권 빅뱅-정계개편 예상주역들

    올해의 정치무대를 주름잡을 인물은 누가 될 것인가.정치권 빅뱅을 앞두고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정계개편의 주역을 놓고 설왕설래중이다. 물론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정계개편의 윤곽이 드러날 국민회의 5 월 전당대회를 주목하고 있다.요즘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터져나오는 ‘비호 남 대표설’이 단서다.동서화합과 전국정당화에 걸맞는 인물이 당의 얼굴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도 적지않다. 우선 TK(대구·경북) 출신의 李壽成전총리와 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이 거론 되고 있다.李전총리는 ‘각계의 마당발’로서 金실장은 ‘신주류의 대표주자 ’로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중부권 대표론’으로 기치를 올렸던 李漢東의 원(한나라당)의 여권 합류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DJ와의 전격 제휴가 성사될 경우 중부권에서의 그의 위상을 감안,상당한 ‘파괴력’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 좌장격인 權魯甲전의원의 향배도 관심거리다.최근 ‘金重權-李鍾贊 라인’으로 이어지는 신주류 ‘강세’를 겨냥해 동교동계의 구심점이 될 것 으로 보인다.하지만 그동안 DJ 그늘에서 악역을 맡았던 權전의원으로서 전면 부상보다는 ‘막후실세’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정계개편의 ‘막후 해결사’로 뛰었던 趙世衡총재권한대행,韓和甲총 무와 金令培부총재의 부상도 점칠 수 있다.비호남대표설이 현실화될 경우 韓 和甲총무의 사무총장 기용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金부총재의 경우 權전의 원 대신 동교동계의 ‘방풍역’으로 수석부총재 또는 공동대표에 전격 기용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DJ의 총애를 받고 있는 李康來정무수석도 정계 개편의 막후에서 조정역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대연합 구상’이 가시화될 경우 국민회의 徐錫宰의원이나 한나라당 徐淸源의원 등도 막후 창구로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반 면 李仁濟전지사의 경우 차기 대선주자를 꿈꾸며 ‘은인자중’의 모습을 보 일 것이란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정계개편 과정에서의 비주류 향배가 주목된다.李會昌총재 와 결별을 선언한 金潤煥의원은 ‘TK 신당 창당’ 등 다양한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이나 자금 등물리적 한계로 아직은 미지수다. 吳一萬 oilman@ [吳一萬 oilman@]
  • 친일의 군상:19/을사5적 李根澤 일가(정직한 역사 되찾기)

    ◎代이어 日帝에 충성한 을사 5적 집안/한때 친러파… 大勢 기울자 日에 영합/을사조약 체결 앞장 공로로 요직 역임/충주로 피신한 명성왕후에 생선 잡아바치며 환심 사/왕후 死後 고종에 접근 경찰·군부 실력자 부상/을사조약 체결 과정 자랑 곁들여 설명/부엌서 듣고있던 하녀 식칼내던지며 “흉적” 호통 반민특위가 해산을 1개월 정도 앞둔 49년 7월 하순 어느날.당시 공주중학교 현직교사 한명이 반민특위로 붙잡혀 왔다.이름은 李元九,나이는 37세,죄명은 반민법 제4조 2항 위반.그는 부친 李昌薰이 일제로부터 받은 자작(子爵)작위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그러나 조사결과 그의 부친 이창훈은 해방후인 1947년 4월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따라서 그가 일제때 부친의 작위를 습작하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결국 그는 불기소로 풀려났다. 벌써 50년도 넘은 이야기다. 지난 가을 ‘공주갑부 金甲淳’ 취재차 공주를 방문한 기자는 우연히 공주에서 이들 부자(父子)를 만나게 되었다.두 사람 뿐만 아니라 이창훈의 부친을 비롯해 이 집안 4대를 한꺼번에 만났다.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손이 제법 잘 단장한 자리에 차례대로 모두 누워 있었다. 그러면 이 집안의 ‘자작 벼슬’은 원래 주인공이 누구인가? 이창훈인가? 그의 부친인가? 그의 부친이다.‘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이근택이 바로 이창훈의 부친이자 자작의 주인공이다.부자가 자작을 지낸 이 집안의 친일내력을 더듬어 보자. 李根澤(1865∼1919)은 원래 충북 충주사람으로 집안은 대대로 무인가문이었다.본관은 전주(全州).이근택이 출세 줄을 잡은 계기는 좀 특이하다.그가 아직 서울로 올라오기 전인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터지자 민비(명성왕후)는 고향인 충주로 피난을 갔다.마침 이근택은 민비의 친정 이웃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매일 민비에게 생선을 잡아다 바쳤다.당시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민비로서는 이 일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환궁후 민비는 이듬해 그를 파격적으로 발탁,‘남행선전관’에 임명하였다.1884년 무과에 합격한 이후 그는 10년간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중앙무대 진출을 모색하였다. ○명성왕후 유품 우연히 얻어 이근택이 대한제국기에 중앙무대에서 요직을 역임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고종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한번은 그가 우연히 일본상점에 들렀다가 비단으로 만든 띠(帶) 하나를 발견하였다.화려한 수를 놓아 만든 것이 첫 눈에 보아도 기품이 있어 보였는데 군데군데 검붉은 흔적은 핏자국이 완연했다.순간 그는 이 허리띠가 민비의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거금 6만냥을 주고 사서 고종에게 바쳤다.고종과 태자는 비명에 간 민비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듯이 반가워 했다.이 일로 그는 고종의 총애와 신임을 독차지하였고 날로 벼슬은 높아졌다.대한제국기에 그는 경무사·경위원 총관·헌병사령관·원수부 검사국장 등을 지내면서 경찰·군사부분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행세했다. 한편 대한제국 초창기 이근택은 친러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우선 출세의 은인인 민비를 일본사람들이 시해했기 때문에 일본과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또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본 까닭도 있었다.조선내에 친일세력부식에 혈안이 돼 있던 일본측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급기야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내 친러파 대신들을 매수·회유키로 방침을 세웠다.여기에 제일 먼저 걸려든 사람이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외무대신 서리였던 李址鎔이었다.그는 단돈 1만원에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에게 매수돼 궁중의 비밀을 낱낱이 하야시에게 보고하는 첩자노릇을 했다.일제는 회유와 협박이 통하지 않은 李容翊을 일본으로 납치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산이 보이자 한국내에서 그들의 기세는 갈수록 당당해졌다.정부대신들 가운데서도 일본쪽으로 기우는 자가 하나 둘씩 늘어갔다.이근택 역시 친러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일본세력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그는 대세가 기울고 있다는 감을 잡고 이를 틈타 또다른 출세를 계획하였다.당초 친러파였던 그는 친일파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하였다. 그는 일본공사관으로부터 기밀비로 30만원을 받고 그 댓가로 궁중의 기밀사항을 정탐하여 이를 일본측에 제공하였다.1905년 9월 ‘을사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는 군부대신직에 올랐다.이무렵 그는 완전한 친일파가 되어있었다. 마침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그 공로로 이듬해 일본정부로부터 훈1등(勳一等)과 태극장을 받았다. ○잠자다 자객에 피습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퇴궐한 이근택은 집안식구들을 불러모아놓고 조약체결 광경을 설명하면서 “내가 오늘 을사5조약에 찬성을 했으니 이제 권위와 봉록이 종신(終身)토록 혁혁(赫赫)할거요”라고 자랑하였다.순간 부엌에서 식칼(饌刀)로 도마를 후려치는 소리가 나더니 한 계집종이 마당으로 뛰쳐나오며 호통을 쳤다.“이 집 주인놈이 저렇게 흉악한 역적인 줄도 모르고 몇 년간 이 집 밥을 먹었으니 이 치욕을 어떻게 씻으리오”하고는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계집종이 집을 나가자 이어 오랫동안 같이 지내오던 침모(針母)도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대한매일신보’,광무 9년 11월 25일자·제86호). 일개 계집종이 이러했을 진대 민중들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었다.조약체결 이듬해 2월 그는 취침중 자객들의 습격을 받고 13군데나 자상(刺傷)을 입었으나 겨우 목숨은 건졌다.거의 회를 쳐놓다시피 한 그를 한성병원에서 한 달만에 살려낸 것이다.그를 치료한 주치의는 나중에 2등 태극장을 받았다. 한번 친일로 들어선 그의 친일행각은 1910년 ‘한일병합’때까지 지속됐다. 병합후 일본정부는 공로자들에게 공적에 따라 작위와 ‘합방은사금’을 공채(公債)로 주었다.이근택은 같은 을사오적인 權重顯·朴齊純 등과 함께 훈1등 자작(子爵,4등급)과 매국공채 5만을 받았다.병합후 그해 10월 중추원 고문으로 취임한 그는 1919년 12월 17일 사망하였다.그의 작위는 장남 李昌薰이 이듬해 2월 20일 습작(襲爵),해방때까지 유지하였다.그 역시 일제하 몇몇 친일단체에서 활동했는데 말하자면 대(代)를 이어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된 셈이다. ◎’3형제 매국노’/李根澔­李根澤·李根湘/日帝시대 통틀어 최초/죽은뒤 자식이 작위 습작 이근택은 형 李根澔와 동생 李根湘 등 3형제가 ‘한일합병’후작위를 받았다.이근택은 자작,형과 아우는 각각 남작을 받았다.일제시대를 통털어 3형제가 작위를 받은 경우는 이 집안이 유일하다.또 이들의 사후 작위는 모두 자식들이 습작하였다. 이 집안의 ‘스타’는 단연 이근택이다.이근택이 출세길에 들어서자 형제들이 뒤이어 벼슬길에 올랐다.1892년 진사에 급제한 동생 이근상은 군부 주사를 거쳐 1906년 궁내부 대신이 되었다.다시 시종원경과 구한국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그는 ‘한일병합’때 훈2등 남작 작위를 받았다.일제하에서는 중추원 고문과 식산은행 감사를 지냈다.1920년 1월 사망하자 그의 작위는 장남 李長薰이 그해 5월 10일자로 습작하였다. 이근택의 형 이근호는 1878년 무과에 급제하여 경무사,충청·전라·경기 감사,교육참모장,법부대신을 역임하고는 1906년 시종무관장을 지냈다.병합때 훈1등 남작을 받았다.그의 작위는 아들 李東薰이 습작하였다.습작자까지 포함하면 한 집안에 귀족이 6명이나 나온 셈이다. ‘조선귀족열전’을 편찬한 오무라(大村友之丞)는 이들을 두고 “3형제가 모두 왜목림(倭木林) 가운데 3회(會)로서 대신에 올라 일문의 성망을 현양하고 권세를 장악했으니 영광이 이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그러나 당시 세인들은 나머지 두 형제를 포함해 이 집안 5형제를 ‘5귀(鬼)’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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