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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중앙지검 2·3차장에 이금로·전현준

    법무부는 20일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 이금로(사법연수원 20기) 대검 수사기획관을, 3차장에 전현준(20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각각 발령하는 등 부장검사급 중간 간부 396명과 평검사 68명의 전보인사를 오는 26일자로 내린다.”고 밝혔다. 대검 수사기획관에는 이두식(21기) 대검 형사정책단장을 발탁하고, 법무부 대변인에는 이동열(22기) 서울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는 윤석열(23기) 대검 중수1과장, 특수2부장에는 심재돈(24기) 특수3부장, 특수3부장에는 박순철(24기) 법무부 법조인력과장이 전보됐다. 이진한(21기) 대검 공안기획관과 이상호(22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은 유임됐으며, 공안2부장에는 이정회(23기) 인천지검 형사5부장이 옮겨왔다. 이번 인사는 고려대 출신들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주요 보직을 차지해 한상대 검찰총장의 친정체제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두고 선거수사를 담당할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공안1부장 등 공안 라인은 모두 고려대 출신들이 장악했다. 민주당이 야당의원 사찰 진원지로 지목한 범죄정보기획관에도 고대 출신인 김영진(21기) 안산지청 차장이 발령됐다. 한편 광우병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던 전 기획관을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 보은인사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중국통신]가정 폭력에 스와핑까지? 막장 남편 충격

    잦은 외도와 가정 폭력까지 참고 견디던 아내가 남편의 ‘변태’ 행위에 드디어 이혼을 선언하고 나섰다.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장(張)씨는 남편 류(劉)씨와 2006년 결혼을 한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가정을 외면한 채 남편은 항상 밖으로만 돌았고, 여자 문제도 늘 끊이지 않았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급한 성격에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무서워 장씨는 속으로만 화를 삭혀야 했다. 그러던 지난 해 10월 무렵, 류씨가 푸젠(福建) 출신의 여성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장씨의 인생은 더욱 꼬였다. 남편의 애인이 류씨에게 “당신의 부인이 ‘스와핑’에 동의해야만 잠자리를 갖겠다.”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때부터 장씨는 류씨로부터 “(애인의) 남편과 관계를 가지라.”는 요구를 받았다. 장씨가 수차례나 거절하자 류씨는 급기야 장씨를 감금하고 구타하며 그녀를 괴롭혔다. 남편의 폭력과 변태성향에 지칠대로 지친 장씨는 결국 집을 박차고 나왔고 올해 6월 용기를 내 법원에 이혼 소송을 했다. 재판에서 장씨는 “남편은 나를 자신의 재산으로 여겼을 뿐 한번도 존중한 적이 없다. 한번은 입에 술을 들이부어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며 “응급실에 실려가 겨우 살았는데 남편은 자기가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간의 고통을 털어놨다. 한편 류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면서 “성강박증이 있어 욕구가 충족되야만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류씨가 가장의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아내를 폭행해 장씨의 심신에 큰 상처를 입혔다.”며 장씨의 이혼 소송을 받아들였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교육감 잇단 비리… 직선제 탓인가

    교육감 잇단 비리… 직선제 탓인가

    교육감들이 갖가지 비리 의혹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오르자 교육감 직선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선출직인 교육감에 막강한 권한이 집중된 반면 견제장치가 없는 탓에 비리에 얽힐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 가운데 5명이 검찰 수사 및 법의 심판대에 올라있다.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이 지난 16일 유치원장들로부터 180만원 상당의 옷 로비를 받은 혐의로 입건된 데 이어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이 18일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대표로 있던 CN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선거비용을 부풀린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역시 장 전남도교육감과 같은 혐의로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앞서 선거 당시 후보매수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선거 과정에서 8000여만원의 불법 후원금을 모금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교육감 직선제는 2007년 도입 당시부터 ‘교육의 정치화’라는 우려와 함께 교육감의 막강한 권한 행사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라 17개의 사무를 관장하는 교육감은 예산안의 편성·제출, 인사, 학교나 교육기관의 설치·이전·폐지 등 사실상 지역교육에 대한 모든 권한을 쥐고 있다. 특히 막대한 선거비용과 치열한 당선경쟁을 거쳐야 하는 직선제의 특성이 선거 이후의 보상심리를 작동하게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지난 2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의 교사 2명을 비서실장과 교육청 대변인으로 임용, 특혜인사 시비에 휘말렸었다. 서울, 전북, 광주 등에서도 측근 인사에 대한 승진 등으로 보은 인사 시비가 일었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재의 직선제 방식이 가진 구조적인 한계를 개선하고 교육감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을 견제·감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거 후유증이 각종 비리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러닝메이트 방식도 대안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도 오는 27일 교육감 직선제 등을 포함한 교육자치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정동영·정세균 대권행보 시동… 당내 역학구도 앞날은

    정동영·정세균 대권행보 시동… 당내 역학구도 앞날은

    19대 총선 낙선 후 은인자중해 온 민주통합당 잠룡 정동영(얼굴 위) 상임고문이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문재인·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등 당내 주자들의 대선 플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그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정 고문이 오는 19일 당 정치개혁모임이 주관하는 대선주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대선 구상을 밝히기로 한 만큼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 고문 측은 13일 ‘담대한 변화, 준비된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 이후 정 고문의 정치 행보를 정리한 이른바 ‘정동영 백서’를 배포했다. 인터넷 칼럼니스트 김영국씨가 작성한 백서를 통해 정 고문은 “노선과 비전 없이는 12월 대선 승리도 없다.”며 진보 노선 강화를 대선 승리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김씨는 정동영 백서를 통해 민주당 강령에 담긴 그의 진보적 노선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정 고문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이자 국가 운영전략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 왔다.”며 “민주당의 가치와 노선, 비전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정 고문 측 인사도 “그가 대선 도전 여부를 놓고 각계 원로와 지지자들의 조언을 들으며 고민하고 있다.”며 “7월 초까지 출마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그동안 구상해 온 국가 운영의 방향 및 담론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고문은 최근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 시점을 공표한 유력 주자들과 달리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는 정세균(아래) 상임고문도 이달 안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는 방침이다. 정세균 고문 측 인사는 “오는 25일을 전후로 대선 도전을 밝히고 국가적 정책 화두를 제시할 계획”이라면서 “오래전부터 대선 프로젝트를 가동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제대로 손대야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산하 출자·출연기관에 대해 칼을 들이댈 모양이다. 방만 운영으로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권익위원회는 그제 17개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2~4월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이들의 운영실태가 엉망이라고 진단하고 ‘지자체 산하 기관 종합관리체계 방안’을 마련해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등에 권고했다. 방안에는 이들 기관이 행안부가 주관하는 경영 평가를 받도록 하고 부패가 잦거나 경영이 부실하면 법인 청산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받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출자·출연기관은 모두 492개이며 지난해 이들 기관의 총예산은 6조원에 달하고 지자체 보조가 1조 3800억원이나 된다. 권익위가 내놓은 이들 기관의 방만운영 행태를 보면 정말 놀랍다. 업무추진 지출 내용을 비공개로 못박아 아무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고, 비공개·특채 규정을 만들어 단체장이 인사 전횡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원이 20명도 안 되는 기관이 전체의 절반에 이르고, 모 기관으로 파견된 지자체 공무원은 자신의 봉급 외에 기관에서 파견근무 수당으로 매달 300만원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관리·감독이 소홀한 틈새로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단체장들이 자신의 영향력 확대와 보은인사 등을 위해 출자·출연기관 설립을 남발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출자·출연기관이 꾸준히 늘 수밖에 없다. 할 일은 별로 없어 적당히 놀고 봉급을 받는 ‘신도 모르는 직장’이 소리 소문 없이 생겨나는 이유다. 권익위에 따르면 2000년 초 180개이던 지자체 산하 출자·출연 기관이 10년 새 312개나 늘었다. 따라서 정부는 지자체의 기관 설립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방만경영이 적발되면 예산지원 삭감은 물론 사법당국에 수사 의뢰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 출자·출연기관 비리 백태

    권익위가 개선안 마련에 앞서 17개 지자체 출자·출연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2~4월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이들의 운영실태는 말 그대로 ‘비리종합세트’였다. 자치단체장의 선거 관련 보은인사는 기본. 친·인척 등 특정인을 뽑거나 헛돈을 쓴 내역을 들키지 않으려고 말도 안 되는 내부규정을 두기 일쑤였다. ●특정인 자리 위해 정관까지 고쳐 지방공기업 인사운영 기준상 신규 인력은 경쟁시험으로 뽑아야 하는데도 자체 규정에 ‘비공개 추천, 특별 채용’을 명시했다. 경북 A진흥원이 대표 사례로 신규 채용 시 임원이 추천한 직원이나 특별히 위촉된 외부 인사 등을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인사위원회를 아예 내부직원으로만 구성해 ‘짜고 치는 고스톱’ 인사는 예사였다. 부산 B기관의 경우 인사위원은 법인 직원 중에서 원장이 임명하도록 하는 규정을 끼워넣었다. 충북지역 등은 비리에 대한 징계 시효를 2년으로 짧게 정해 최대한 처벌이 어렵게 안전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현행 지방공무원법에는 금품수수 등에 대한 징계 시효는 5년이다. 측근 인사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특채를 남발하는 ‘위인설관’ 비리 사례도 무더기로 확인됐다. 경기지역 C재단은 관할 시청의 지시로 재단이 필요하지도 않은 미술감독직을 신설해 채용 절차도 없이 특정인에게 겸직을 허가했다. D도는 특정인을 모 재단 이사장에 앉히기 위해 도지사가 이사장을 겸임하게 돼 있는 재단 정관까지 고쳤고, 전남지역 E시장은 자신의 선거캠프 본부장을 산하 재단의 사무처장으로 임명해 논란을 불렀다. 업무추진비 공개 원칙을 어기고 버젓이 비공개를 내부규정에 명시하기도 했다. 경남지역의 한 기관은 내부직원은 어떤 경우에도 업무추진비 지출내역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아 입막음을 했다. 지자체가 이들 기관을 인사관리 창구로 앞장서 활용하기도 했다. 한 광역시는 퇴직을 1년여 앞둔 국장급 간부를 산하의 문화관장으로 임용했다. 진흥원의 경영기획실장을 명예퇴직한 과장급이 내려가는 자리로 고정해놓은 시도 있었다. 감사 등 감독장치가 없다 보니 방만한 기관운영으로 혈세를 물 쓰듯 했다. 전남지역 모 기관은 자치단체 관련 부서의 과장 출신이 기관장으로 파견근무하면서 월 300만원의 파견수당을 덤으로 챙겼다. 부산지역의 한 기관도 매월 4급은 122만원, 5급은 105만원 등의 규정을 만들어 파견수당을 퍼 줬다. ●경영평가 지자체 거의 없어 인천지역 F진흥원은 정원이 49명뿐이어서 기관장 전용차량 지급 대상이 아닌데도 출퇴근 업무용으로 대형 승용차를 임차해 연간 2500만원의 예산을 허비했다. 만들어만 놓았지 이후 경영 평가를 제대로 실시한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재정누수가 심각한 인천시도 지난해 경영평가를 처음 실시했고, 강원도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영평가를 한다고 해도 자치단체장이 기관장 교체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금강 기운 머금은 옥천 민물고기 요리

    금강 기운 머금은 옥천 민물고기 요리

    ‘향수’ 정지용 시인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충북 옥천군. 예로부터 옥천은 한가운데에 흐르는 금강이 있어 민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고 또한 그 강물 덕분에 토질이 비옥해 각종 농산물이 풍부한 고장이었다. 1980년 대청댐이 생기면서 물길도 변하고 옥천 사람들의 삶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금강은 그들의 삶, 그 자체다. 31일 밤 7시 30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동자개(배가사리), 모래무지(마주), 붕어, 피라미 등의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 생선국수, 도리뱅뱅이 등 비릿한 향기 물씬 풍기는 옥천의 민물고기 밥상을 소개한다. 군북면 환평리는 높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아 대청댐이 생길 당시 수몰을 면할 수 있었던 마을이다. 그 덕분에 골목 어귀마다 쌓인 돌담길이며, 슬레이트 지붕 등 옛집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6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이준설(59)씨는 어머니를 위해 여름철 보양식으로 으뜸인 어죽을 끓인다. 마을 근처 냇가에서 직접 잡은 작은 민물고기와 산중턱 지천에 널린 오가피, 덧나무(접골목) 잎을 따서 함께 끓인 약초어죽. 다른 반찬 하나 없지만, 아들이 직접 끓여준 어죽 한 그릇이 어머니에게는 최고의 성찬이다. 30년 넘게 금강에서 민물고기 조업을 해온 전장식(62)씨. 여태 부인과 함께 고기를 잡다가 2년 전부터는 손승우(42)씨와 함께 매일 아침 배를 타고 금강으로 간다. 오늘도 그물 한가득 동자개와 모래무지, 잉어, 장어 등이 들어 있다. 대청댐으로 인해 옛날보다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도, 양도 많이 줄었지만, 그에게 있어 금강은 삶 자체이자 가족을 지켜준 은인이다. 그런 남편의 몸보신을 위해 부인이 끓여낸 배가사리매운탕과 마주조림 등으로 차린 특별한 밥상을 만나본다. 굽이굽이 경사진 길을 따라 차로 10 여분 가다 보면 옥천의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높은벼루’라고 불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청성면 고당리다. 이 마을에서 60년 이상을 함께 산 진기석(84), 이소분(80) 부부는 이맘때에 참옻나무에서 새순을 따고 (참)가죽나무에서 잎을 따다 삶아서 무쳐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 이곳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알콩달콩하면서도 티격태격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미주통신] 심장박동기 덕분에 구사일생한 남성

    [미주통신] 심장박동기 덕분에 구사일생한 남성

    지인과의 시비 끝에 칼로 심장부위를 찔렸으나 몸에 내장되어 있던 심장박동기 덕분에 구사일생한 남성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미 샌디에이고 경찰에 따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성(57)은 지난 17일(현지시각) 샌디에이고 패션 벨리 쇼핑몰 부근 역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리처드(60)와 시비가 붙었다. 리처드는 시비 끝에 칼로 이 남성의 왼쪽 가슴을 찔려 중상을 입혔으나 다행히 평소 심장 질환이 있어 가슴속에 장치되어 있던 심장 제세동기(defibrillator)가 칼을 막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심장 박동기가 생명의 은인 역할을 톡톡히 한 것. 현재 리처드는 살인미수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성남시장 보은인사 논란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전 선거대책본부장 아들이 이 시장 취임 뒤 시 산하 재단에 채용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성남산업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때 이 시장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던 인사의 아들인 김모(29)씨가 지난해 4월 6급으로 신규 임용됐다. 김씨의 아버지는 이 시장이 2009년 민주당 분당갑 지역위원장을 할 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김씨의 채용이 이 시장 측근들에 대한 보은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서류전형과 논술, 인·적성검사, 면접 등 정상적인 채용절차를 거쳐 김씨를 선발했다.”고 해명했으며, 김씨의 아버지 역시 “대전의 한 공기업에 다니던 아들이 출퇴근이 힘들어 퇴직한 뒤 재단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한 것”이라며 “이 시장에게 아들의 채용을 부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씨도 “아버지가 입사를 권유하거나 추천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1637년 1월 18일 청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산성으로 쫓겨 들어온 지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매서운 추위에 병사들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지고, 얼마 남지 않은 군량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구원병이 끊겨 버린 점이었다.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확신했던 청군 지휘부는 연일 출성과 항복을 독촉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조선 조정은 결국 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이 청군 진영에 보낼 문서의 초를 잡았다. 문서는 ‘조선국왕은 절하고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께 글을 올립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었다. 조선이 처음으로 ‘오랑캐’ 청을 황제국으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은 글을 보고 통곡했다. 그는 항복 문서를 빼앗아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명길은 흩어진 종이 쪽을 주워 모아 풀로 붙인다. 처참하고도 희극적인 장면이었다. 왜 한 사람은 찢어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도로 붙인 것일까? ●원칙을 위협했던 현실 17세기 초반,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심하게 요동쳤다. 15세기 이래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명의 몰락이 뚜렷해지고, 만주에서 급속히 떠오른 후금이 명에 도전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조선의 처지는 괴로웠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대륙 패권의 변동이라는 격변 속으로 휘말렸기 때문이다. 명은 조선을 끌어들여 후금과 싸움을 붙이려 했고, 후금은 후금대로 조선에 중립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명과 후금에 치여 ‘샌드위치’가 된 처지에서 1627년 조선은 정묘호란을 겪는다. 명과의 결전을 앞두고 조선을 묶어 두려 했던 후금의 침략을 받았던 것이다. 후금군 철기(鐵騎)의 돌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조선은 후금과 형제(兄弟) 관계에 입각한 화약을 맺는다. 조선 지식인들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닌 세계관으로 보자면 만주족 후금은 분명히 ‘오랑캐’이자 ‘금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금을 형으로 섬기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엄혹해졌다. 조선이 ‘임금’이자 ‘부모’로 섬기던 명은 후금에 계속 밀리기만 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명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면서 기세가 높아졌다. 급기야 1636년 후금의 홍타이지 칸(汗)은 황제가 되기로 하고 ‘아우’ 조선에 그 사실을 통고한다. 칭제 사실을 알리려 후금 사신 용골대 일행이 입국하자 조선 조야는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다. ‘중화국 명의 천자(天子)만이 천지간에 군림하는 유일한 황제’라는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과 원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은 격앙되었다. ●주화냐? 척화냐?의 선택 대다수 신료는 “명은 부모의 나라이고 후금은 부모의 원수인 데다, 명은 왜란 때 조선을 도왔으므로 절대로 배신할 수 없다.”며 용골대 일행의 상경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용골대 일행의 목을 베어 명으로 보내고 전쟁을 불사하자.”는 초강경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김상헌은 그 같은 주장을 폈던 척화파(斥和派)의 맏형 격인 인물이었다. 천자국 명을 섬겨온 예의와 명분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후금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결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명을 위해서라면 종사가 망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소수파였던 주화파(主和派)의 의견은 달랐다. 주화파의 대표자 최명길 또한 ‘오랑캐와 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론이자 원칙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당시 현실에서 ‘원칙’을 관철하려 할 경우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최명길은 ‘임금의 의리는 필부의 그것과 다르다.’며 ‘조선의 임금이 명을 위해 종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묘년에 맺은 후금과의 형제관계를 유지하도록 끝까지 노력하되, 후금의 칭제에 대해 호오(好惡)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고 강조했다. 최명길은 ‘오랑캐가 칭제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여 기존의 관계를 무조건 파기하자고 했던 척화파들을 비판했던 것이다. 인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결국 다수파인 척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후금과 맺은 형제관계를 파기하고 절교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절교 ‘이후’에 대한 군사적 대책은 미흡했다. 청이 침략할 경우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가 맞선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었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이 얼어붙자 청군 철기는 서울을 향해 내달렸다. 12월 14일 청군 선봉은 지금의 녹번동 부근까지 도달했다. 청군은 의주에서 서울로 이르는 대로 주변의 산성에 들어가 청야작전(淸野作戰·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폈던 조선군을 무시하고 돌격을 감행했다. 허를 찔린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난할 시간적 여유를 상실했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1만 4000여 명의 병력과 그들이 45일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군량밖에는 없었다. ‘춥고 배고픈’ 산성은 청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남·북방의 구원병들은 산성으로 접근하는 족족 청군에게 궤멸하였다. 청은 처음에는 왕세자를 내보내야 항복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이어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나중에는 척화신들을 묶어 보내야 한다고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포위된 산성에서도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었다. 김상헌 등은 인조에게 “오랑캐의 신하가 되느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 깨끗이 망하자.”는 주장을 폈고 최명길 등은 “종사와 백성을 생각해야 할 임금은 은인자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성을 지키던 병사들도 동요했다. 추위와 굶주림, 공포에 지친 병사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도 나타났다.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인조는 결국 최명길 등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선택’의 역사적 의의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포(三田浦)로 내려와 항복했다. ‘오랑캐 추장’ 홍타이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인조가 겪은 치욕보다 더 처참한 것은 수십만의 백성이 청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사실이다. 조선 포로들은 심양으로 끌려가 노비로 사역되었다. 많은 포로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는가 하면 도로 붙잡힌 포로들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받았다. 포로가 된 많은 여인이 끌려가는 도중 청군의 첩으로 전락했고, 심양에 도착해서는 질투심에 눈이 먼 만주족 본처로부터 끓는 물 세례를 받은 여인도 있었다. 어렵사리 종사와 국체를 보전했지만, 전란 때문에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조선은 과연 이 처참한 국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조야를 막론하고 당시 조선 지식인들 대다수가 “명은 중화이고 청은 오랑캐”라는 것을 원칙으로 견지하는 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이 부딪칠 때 무엇을 가장 우선적이고 소중한 목표로 삼을 것인지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남한산성의 함락이 임박했을 때, 김상헌 등이 제기한 주장은 “조선의 신료는 물론 임금도 명을 위해 ‘옥쇄’(玉碎·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는다는 의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최명길 등은 “조선 임금은 명보다는 조선 백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자가 ‘무차별적 원칙론’이라면 후자는 ‘선택적 원칙론’이었다. 병자호란의 발생부터 종결까지 인조는 양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병자호란 무렵의 국제질서 변동 과정에서 조선은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과 청 사이에 낀 조선은 두 나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전화에 휘말리고 말았다. 양국과의 관계를 모두 원만히 유지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명과 청이 계속 싸우는 상황에서 ‘종속변수’ 조선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처한 이 같은 엄혹한 조건을 잘 알고 있었던 최명길은 병자호란 직전 인조에게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청과의 화친을 강조하면서도 “척화파들의 주장처럼 청과 맞서 싸우려는 것이 ‘진심’이라면 강화도를 포기하고 압록강까지 전진해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인조가 거부하여 무산되었지만, 이 주장이 갖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국경에서 결전을 벌이면 승패 또한 그곳에서 조기에 결판날 것이고, 청군이 깊숙이 남하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포로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명길의 주장이야말로 ‘종속변수’ 조선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명청 교체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을까. 17세기 초반 조선이 명청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던 사실은 미국과 중국이 맞선 오늘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패권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강국이 떠올라 그에 도전하는 사태가 빚어질 때 한반도는 예외 없이 위기를 맞았다. 명청 교체를 비롯하여 14세기 후반의 원명 교체, 16세기 후반의 일본 굴기, 19세기 후반의 청일전쟁이 한반도로 몰고 왔던 결과들이 그 생생한 실례다. 다가오는 미·중 대결의 시대, 이른바 G2시대를 맞아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는 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BBK 편지배후 이상득·최시중이라 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이른바 ‘BBK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편지’는 양모씨가 가져온 편지 원본을 보고 써 준 것이며 원본 작성 배후에는 한나라당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편지를 작성한 당사자인 신명(51·치과의사)씨가 주장했다. 신씨는 27일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경희대 치대를 다닐 때 등록금을 대준 은인인 양씨가 2007년 11월 편지 문구를 가져와 거기에 적힌 대로 쓰라고 해서 써 주었고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간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양씨로부터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사건을 배후에서 핸들링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홍 전 대표는 미국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김경준이 범죄인인도재판의 항소를 포기하고 대선 전에 입국하게 된 것은 당시의 청와대가 개입했기 때문이며 그 증거로 신씨의 편지를 증거로 공개한 바 있다고 신씨는 덧붙였다. 신씨는 “2007년 대선 당시 가짜 편지를 양씨에게 전달했지만, 이후 어떤 경로를 통해 홍 전 대표가 편지를 입수하게 됐는지 홍 전 대표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홍 전 대표의 보좌관인 나경범 보좌관이 홍 전 대표를 대신해 사과를 할 경우 받아 주겠느냐는 뜻을 한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왔으나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의 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격이지만 어머니의 은인을 찾아 주세요.” 몇년 전 미국에 사는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1980년대 초 어머니가 운수업을 하는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이웃에 사는 김희숙이라는 분한테 200만원을 빌렸으나 갚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죽기 전에 꼭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들었으나 86세가 된 요즘도 입에 올려 도움을 청한다고 했다. ‘박’자 ‘종’자 ‘희’자를 쓰는 어머니는 30대 초반의 김씨가 서울 역촌동에 함께 살다 서초동(아마 삼익아파트)으로 이사 갔고, ‘준일’(아마 5~6세)이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으나 은인 찾기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은인의 도움에 보답하는 미담기사를 볼 때마다 친구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신세를 갚아야지만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郭 “지시 줄이고 실·국장 자율 강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5일 오전 시교육청 대강당에서 가진 월례조회에서 “심사숙고 끝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새 진용으로 시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3월은 저에게 실질적인 2년차의 시작으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기”라는 전제를 깔았다. 최근 불거진 ‘제 사람 심기’라는 인사 논란에 대해 직원들에게 “새로운 진용일 뿐”이라고 직접 해명한 것이다. 곽 교육감은 조회에서 지난 1월 업무복귀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9월 구속 이후) 지난 6개월간의 혼선과 방황을 끝내고 시교육청이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혀 시교육청 업무 정상화를 선언했다. 또 “새 진용의 키워드는 ‘자율과 책임, 그리고 소통과 참여’”라면서 “실·국장의 자율과 책임을 강화하고 교육감 지시를 대폭 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년여 동안 수많은 자료 제출을 지시했다.”면서 “더 이상 교육감 특별 지시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곽 교육감에게 제기되는 ‘특혜·보은인사’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시교육청에 파견된 전교조 소속 교사 가운데 지난해 9월 곽 교육감 구속수사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교사가 5명, 자신 명의로 재판부에 공개 탄원을 제출한 교사가 1명 있다.”고 말했다. 교총 관계자는 “6일 감사원에 곽 교육감의 인사권 남용 관련 감사 청구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곽노현, 비서진 편법 승진 ‘꼼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비서 1명과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해직교사 2명을 공립고 교사로 특채한 데 이어 교육감 비서실 직원들을 법규까지 개정해 무리하게 승진시키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27일 서울시교육청과 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노동조합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지난달 20일 업무에 복귀한 직후 인사부서에 비서실에 근무하는 지방계약직 공무원 다급(7급 상당) 정책보좌관 4명과 수행비서 1명 등 5명을 나급(6급 상당)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지시했다. 곽 교육감은 현재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승진 규정이 없는 점을 감안, 계약기간이 끝나는 올 8~9월 이전에 일괄 사직시킨 뒤 6급으로 다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서실에 가급(5급 상당) 상당의 직책을 두 자리나 더 만들어 측근을 채용하려 했다. 현재 비서실 직원 중에는 비서실장 1명만 가급이다. 시교육청은 최근 시교육청 정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서울시교육감 소속 지방공무원 정원 규칙 일부개정 규칙안’을 입법예고했었다. 시교육청 안팎에서는 “도를 넘은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교육청의 기본원리를 훼손하는 데 교육감이 앞장서고 있다.”면서 “보은인사를 통한 교육청 사조직화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사설] 진보교육 먹칠한 곽 교육감의 측근 챙기기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측근 챙기기 인사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곽 교육감이 정책보좌관 등 5명을 편법 승진시키려 한 사실이 밝혀져 서울시교육청 공무원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비서와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3명을 공개 경쟁을 거치지 않고 공립교원으로 임용하기도 했다. 측근을 봐주는 ‘편법인사’가 도를 넘고 있다. 곽 교육감의 인사 행태는 진보교육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곽 교육감은 정책보좌관 4명과 수행비서 등 측근 5명을 7급에서 6급으로 승진시키려다 규정이 없자 ‘꼼수’를 썼다. 계약직 공무원인 이들이 계약기간 중 승진이 어렵자 사직 후 재채용하는 방식으로 구제하려 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공무원 노조는 “교육감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교육청의 기본원리를 훼손하고 있다.”며 보은인사를 통한 사조직화의 중단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 24일 공립교원으로 특채된 3명도 곽 교육감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자율형사립고 전환 반대, 사학재단 비리 고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연루 등으로 해직된 교사 3명은 전력에서 보듯 곽 교육감의 교육철학과 비슷해 선거 등을 통해 곽 교육감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시교육청은 이들이 모두 해임 사유 시효가 지나는 등 결격사유가 해소된 데다 공립학교 교원 임용 자격을 갖고 있어 절차상의 하자는 없다고 해명했으나 중등교원의 공립교원 특채는 2009년 이후 없었을 정도로 이례적인 데다 그나마 내부 면접만으로 채용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뒷말을 낳고 있다. 인사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편법·정실인사는 인사질서를 왜곡시켜 조직 발전을 저해한다. 후보자 매수 사건으로 사법적 단죄가 진행 중인 곽 교육감은 자중자애해야지 인사 잡음을 일으켜선 안 된다. 곽 교육감은 인사 청탁 교장·교사를 중징계한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 아파트 5층에서 떨어지는 소년, 팔로 받아낸 청년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소년을 팔로 받아내 살려낸 한 청년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헤이룽장성 솽청시의 한 아파트에서 15세 소년이 창 가장자리에 서서 놀고 있다가 중심을 잃었으나 간신히 난간을 잡고 허공에 매달린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약 12m 높이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고 음식을 만들던 엄마가 달려왔으나 구해내지 못해 소년은 약 2분 후 팔에 힘이 빠져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한 소년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한 청년이 달려와 소년을 팔로 받아낸 것. 이 청년의 이름은 셰상웨이(28)로 마침 인근을 지나가다 이 상황을 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셰상은 “아이가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돼 본능적으로 달려갔다.” 면서 “아마 누구라도 이같은 상황을 목격한다면 주저없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의 도움으로 소년은 왼팔 골절의 중상을 입었지만 무사히 목숨을 건졌으며 2~3주 후 퇴원할 예정이다. 또 소년을 팔로 받은 셰상도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셰상은 “아이를 받았을 때 명치에 큰 충격을 느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며 “손목시계가 고장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소년의 가족은 “생명의 은인에게 몇번이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례를 해주고 싶다고 밝혔지만 청년이 거절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광장] 박희태 의장, 명예를 안다면 사퇴하라/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희태 의장, 명예를 안다면 사퇴하라/김종면 논설위원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 지오기사(支吾其詞)라는 말이 나온다. 애매모호한 말로 실제의 정황을 얼버무려 회피한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중심에 서 있음에도 “현재로선 모르는 얘기”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 비서실이 압수수색당하고 주변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도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방관자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게 정치지도자로서 온당한 처신인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 일을 혼자서만 세월이 지나 기억이 희미하다고 강변하니 ‘치매의장’이란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개인의 수치를 넘어 나라 망신이다.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건 헌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얘기다. ‘공직DNA 결핍증’이라도 앓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치 초짜도 아니고 일흔이 넘은 노정객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만도 한데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리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지금 입법부 수장의 자리가 정녕 도덕적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퇴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야권은 물론 여권도 박 의장의 무모한 버티기에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엊그제에는 국민 65.9%가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위해 국회의장직 사퇴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쯤 됐으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당장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러고 나서 수사를 지켜봐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니 국회의장이라는 보호막을 거두고 일개 시민의 자격으로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응해야 한다. 검찰도 칼집만 만지작거리며 속 끓이지 말고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법이 결코 작은 파리만 걸려드는 거미줄이 아님을 진정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치적 후폭풍 같은 건 계산하지 말고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명운을 걸어야 한다. 이번 사건이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지 않는 한 정치권이 아무리 쇄신을 부르짖어도 믿어줄 국민은 없다. 박 의장은 ‘돈 봉투 관행’에 대해 왜 나만 당해야 하느냐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사 다 지은 대로 받는 거다. 끝내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 지나간 ‘고문의 시대’를 잠시 떠올리며 마음을 추슬러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언론인의 사표로 존경받는 청암 송건호는 독재정권 시절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죽은 피를 두 사발이나 빼냈다고 한다. 고문의 트라우마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온 민주인사가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스스로 밀알이 돼 썩고 모퉁이돌이 돼 한편을 지탱했기에 이 땅의 민주주의가, 정치가 이만큼이나마 발전한 것이다. 정작 억울해하여야 할 그들이 언제 대의를 그르치면서 구차하게 군 적이 있는가. 박 의장에게 그런 대인의 풍도를 기대해 본다. 다시 말하건대, 이면 체면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해 정치적 잔명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최악의 길이다.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가 의전서열 2위 인사의 무책임한 행태에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하루라도 빨리 벼슬도 정치도 버려야 산다. 물러날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보고 만다는 사실을 역사는 생생히 증명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정치가 범려는 제때 물러날 줄 알았기에 세 번이나 다른 선택을 하고도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반면 그의 친구인 대부 문종은 어땠는가.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자살검을 받아들게 되지 않았나. 선택은 박 의장 몫이다. 역사에서 배우기 바란다. 양심의 명령을 따르라. 허무하면 허무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있는 그대로 내려놓아야 한다. 요지경 같은 정치를 떠나 임천(林泉)에 집을 짓고 은인자중하는 삶을 살겠다는 귀거래사라도 한 조각 남기는 것이 그나마 명예를 아는 자가 취할 태도 아닐까. jmkim@seoul.co.kr
  • 3조2017억弗 쥔 큰손의 ‘호령’

    중국의 대외 관계가 강성으로 바뀌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성장이다. 일본을 제치고 주요 2개국(G2)에 등극하면서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의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호기 삼아 2008년 9월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8월의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중국 경제의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은인자중하며 힘을 키우는 도광양회의 전략을 접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호령하겠다는 대국굴기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등 국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미국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10%에 이른다. 이는 초기 30년 고속성장기의 한국(9.7%·1962~1991년)과 타이완(8.8%·1957~1986년), 일본(8.3%·1946~1975)의 성장률을 앞지르는 것이다. 향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이 5~6%대로 떨어진다고 해도 넉넉잡고 15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GDP)이 2만 달러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한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가 약 30개가 생긴다고 보면 된다. 그동안 쌓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10월 기준 3조 2017억 달러) 역시 차이나 파워를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 화폐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미국이 구축한 달러 체체를 허물고 세계 금융계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 위안화의 무역 결제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장악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한국의 제1교역 대상국이다. 수교 당시 64억 달러였던 교역액이 지난해 1884억 달러로 30배 이상 늘어났다. 한·미 간 교역액(902억 달러)의 두 배를 넘는다. ●15년내 국민소득 2만弗 예상 중국의 대한(對韓) 직접투자(FDI)는 지난해 4억 1000만 달러에서 올해는 10억 달러 이상으로 2.5배나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3년 안에 중국이 한국의 최대 투자국이 될 것으로 관측한다. 올 11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외국인 가운데 중국 자본이 미국(9조 2107억원)에 이어 2위(4조 8550억원)로 뛰어올랐다. 2009년 5위에서 불과 2년 사이에 2위로 상승한 것이다. 이런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사회 영역에서까지 중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은인(恩人)과 보은(報恩)/주병철 논설위원

    사자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쥐 한 마리가 사자의 머리에서 놀다 코를 건드렸다. 사자가 눈을 번쩍 뜨고 쥐에게 야단을 쳤다. 쥐는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은혜는 꼭 갚는다고 애원했다. 사자는 쥐 같은 짐승이 무슨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며 그냥 풀어줬다. 그 후 어느 날 쥐가 산에서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사자를 봤다. 자신을 놓아 준 그 사자였다. 그래서 발을 꽁꽁 묶은 밧줄을 이빨로 끊어 사자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했다. 작고 힘없는 짐승이라고 얕보았던 사자는 쥐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가 은혜를 갚은 데에 고마워했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쥐 얘기다. 채근담에도 은혜의 귀중함을 일깨우는 경구들이 있다. “입은 은혜는 비록 깊을지라도 갚지 않고, 원망은 얕을지라도 이를 갚으려 한다. 남의 나쁜 평판을 들으면 비록 명백하지 않아도 믿으려 들고, 좋은 평판은 사실이 뚜렷한데도 믿으려 하지 않고 또한 의심하나니, 이는 각박하고 경박함이 가장 심함이라. 마땅히 간절히 경계할 일이다.” 은혜를 베푼 은인이 있으면 보은도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성어가 그런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의 아들 과(顆)가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서모를 개가시켜 따라 죽는 것을 면하게 하였더니, 후에 위과가 전쟁에 나가 진(秦)의 두회(杜回)와 싸워 위태로울 때 그 서모의 아버지 혼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매 두회를 생포했다고 한다. 정부가 오늘 무역의 날을 맞아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영웅으로 한국 수출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한 외국인 4명을 특별히 발굴해 훈·포장을 준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조선산업이 태동하던 1970년대 현대중공업에서 기술자문을 담당한 고(故) 윌리엄 존 덩컨의 유족을 현지 신문 광고와 현지 대사관의 수소문으로 찾아냈고, 아들에게 대신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게 된 것이다.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사람들이 이들뿐이겠냐마는 그래도 남의 공을 알아주고, 머리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각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찾아내 보은했으면 한다. 보은만큼 값진 게 있다면 은혜를 베푸는 일일 게다. 경제대국 13위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통 큰 은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못할 것도 없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오사카 교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더니…

    오사카 교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더니…

    이명박 정부의 ‘보은인사’로 공관장을 맡아 논란을 빚었던 김석기 주오사카 총영사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부임 8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귀국,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8일 “김 총영사가 최근 사표를 낸 뒤 지난 7일 귀국했다.”면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임자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김 총영사는 지난달 오사카 지역의 일본 정부기관과 언론사·기업 관계자 등을 상대로 이임 인사장까지 돌리며 “내년 4월 총선에 경북 경주에 출마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장 출신인 김 총영사는 2009년 경찰청장에 내정된 뒤 ‘용산 참사’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가 지난 1월 주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돼 보은인사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부임 시기를 3주나 앞당긴 3월 초 서둘러 현지로 떠나면서 “경찰파견관 등으로 일본에서 6년 간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오사카 지역 교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총영사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조기 귀국하면서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이른바 ‘특임공관장’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국익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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