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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 막대·파란 상자/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파란 막대·파란 상자’(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사계절 펴냄)는 이래저래 편견을 깨는 어린이책이다. 그림책은 글자를 모르는 꼬마들이나 보는 것, 독서는 한 방향으로 얌전하게 책장을 넘겨야 하는 것이라는 등의 인식틀을 단박에 깬다. 아홉살짜리 남녀 아이를 주인공으로 책은 앞뒤 구분없이 동시에 이야기판을 벌인다.‘파란 막대’란 표지 쪽에서 시작되는 건 여자아이 클라라의 이야기. 아홉살 생일날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막대 하나를 선물로 받은 클라라는 함께 받은 낡은 공책 속에서 할머니, 엄마, 언니들의 사용기를 읽으며 골똘히 생각한다.“다음 사람에게 물려줄 때 나는 어떤 멋진 사연을 공책 속에 남길까?” 뒤집어 ‘파란 상자’ 표지쪽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남자아이 에릭이 주인공. 파란 상자를 선물로 받아든 에릭도 클라라처럼 여러가지 ‘생각 보따리’를 푼다. 행간의 은유가 무척 많다. 앞뒤 없이 남녀 아이의 이야기가 똑같은 비중으로 전개된다는 점, 닮은꼴 이야기들이 중간에서 정확하게 만난다는 점, 여백이 많은 공책 등은 독자들이 저마다 다른 감상을 내놓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설정들이다. 지은이는 폴란드 여성 동화작가. 그의 부드러운 원화들은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문화일보갤러리에서도 전시된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악귀 내쫓는 처용은 해양문화의 소산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말이면 악귀를 쫓는 나례 풍습이 있었다. 붉은 탈을 썼으니 처용이 그 원조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악귀를 내쫓았다. 이러한 유풍의 근원에 처용이 늘 버티고 서있다. 그 처용이 해양문화의 소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처용을 만나려면 울산으로 가야 한다. 경주가 신라의 본향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또 하나의 본향인 울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해에 찌든 땅으로만 알고 있는 울산이야말로 경주 감포와 더불어 신라가 동해로, 세계로 나아가던 출구였다. 울산에는 동해를 굽어보던 유서깊은 절터가 남아 있다. 오늘날 울산항으로 엄청난 국제적 물동량이 오고감을 생각해볼 때, 신라 천년의 출구 역할이 지금껏 이어진다고나 할까. 호젓한 문수산(옛 영취산)을 오르다보면 망해사지(望海寺址)를 만난다. 글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 솔잎 냄새 풍기는 숲속에 부도 2기가 의연하게 서 있는데, 이 절이 세워진 내력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망해사지와 처용설화가 그것이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졸지에 길을 잃어버렸다. 왕이 괴상하게 여겨 측근에게 물으니 일관이 답하되,‘동해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하여 풀어버려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왕이 명령하여 그 용을 위해 세죽나루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였더니 홀연히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수레 앞에 나타나 춤과 노래를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와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를 미인에게 장가들게 하였는데 역병 귀신이 밤마다 그 집에 가서 몰래 처용의 아내를 품고 잤다. 어느날 처용이 동경 밝은 달밤에 이슥히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었다.‘둘은 내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는 것 어쩌리!’ ●처용의 아버지 ‘용’에 대한 해석 분분 용은 누구일까. 학자들마다 해석이 구구하다. 조금이라도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학자들은 저마다 구구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용이 해상 세력과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울주에서 조금만 북상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꿈꾸었던 동해구(東海口)가 나오고, 동해 용왕이 드나들던 감은사지가 지척이다. 혹자는 용을 외국인, 보다 정확하게는 아라비아 상인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개운포가 국제무역항이었음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나 증거는 없다. 혹자는 울산 바닷가에 기반을 잡고 있던 해상 호족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산군 처용암 조에도 ‘고을 남쪽 37리 개운포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때 동해 용왕의 아들이 거기서 나왔으며, 모양이 기괴하고 가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처용옹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까지 전설처럼 처용암과 설화가 전승되었다. 고려시대에 학연대합설처용무 춤이 추어졌으니 역병을 쫓는 전통은 천년을 뛰어 넘어 이어진 셈이다. 설화 속의 역병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닐 것이다. 당대의 ‘사회적인’ 역병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헌강왕조라면 신라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던 때 아닌가. 처용은 역병을 물리치는 춤을 추고 있다. 처용의 춤은 흡사 무속의 악귀물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훗날 처용춤은 궁중정재로 편입되고, 민중 사이에서 제융의 역할을 도맡게 된다. 문헌기록상 무당으로 간주되는 신라 남해차차웅, 악귀를 쫓는 처용, 제액을 물리치는 제융 등은 한 가지를 뜻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처용은 분명히 이두식으로 표현된 한자임에 틀림없다. ●공해 찌든 처용암에도 상록수는 우거져 망해사 바로 옆에는 늠름한 청송사 3층탑이 있다. 너무도 당당하고 의연하여 감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장중한 석탑이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문수사가 있으니 울산이나 부산 사람들이 영험하다 하여 쉬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삼국유사 전편을 통하여 영험한 문수보살은 노파로 변신해 기행을 일삼는다. 처용과 문수보살, 신라인이 창조한 인물군이 영취산을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청송사지와 문수사 가는 길은 지금이야 경관이 가려져서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신라인들은 국제항 개운포 풍경을 굽어보면서 이 산을 올랐으리라. 망해사지를 보았다면, 반드시 처용암을 찾아야 할 터인데, 아서라,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차마 찾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황성동 세죽리 앞바다의 처용바위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증하고 있건만 석유화학단지의 공해로 바다는 찌들고, 보상금을 받아 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제를 지내는 당집의 나무도 시들어 처용바위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비(詩碑)도 세워 두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매립이 되어 처용바위 자체가 사라질 판인 것을.“매립이 되더라도 처용암만큼은 반드시 보존하는 방향으로 지킬 것”이라는 김광오 울산시 공보관의 말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을 얻는다. 처용암이 있는 세죽나루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횟집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90년대 초반까지 동해의 온갖 횟감이 팔리던 횟집도 이제 서서히 문을 닫는 판국이다. 더 이상 지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처용암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팽나무 사철나무가 사철 상록의 잎그림자를 바다에 드리운다. 처용암 지척에는 상록수림으로 유명한 춘도도 있어 동백나무숲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다 경관이 무너졌음에도 나무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처용암에서 울산의 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도 열린다. 처용제의를 비롯하여 처용콘서트, 처용합창제, 처용얼굴 그리기 등등 처용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서 글 모르는 아이들도 울산에서만큼은 처용을 알고 있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개운포에 포로처럼 갇혀 있는 처용암을 보노라면 근대산업화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결단낸 그늘진 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마음 아프다. ●박제상 그리다 돌이 된 치술령의 슬픈 전설 처용암에서 천년 전설의 현장이 무너졌음을 보상받고 싶거들랑 반드시 은을암(隱乙庵)으로 방향을 잡기 바란다. 왜국에 볼모로 잡힌 내물왕(柰勿王)의 미해왕자를 구출하고 대신 죽음을 당한 박제상을 그리다가 망부석이 된 전설이 전해지는 치술령 자락의 그 은을암이다. 공단의 매캐한 공해바람에 컥컥이다가 은을암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비로운 숲속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경주 남산으로 이어지는 치술령 능선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배가 떠난 율포(栗浦)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돌이 되었다. 넋은 새가 되어 은을암의 동굴로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그 동굴에 제각을 짓고 용왕당이라 이름하여 모시고 있다. 국제항 율포와 용왕당이란 이름에서 바다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신라의 대외 창구로, 중국의 명주, 양주 등으로 곧장 도항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 중국지역은 동남아에서 무역 주도권을 장악한 대식국(아라비아)상인들이 동진하여 붐비던 곳이었으니, 이들 아라비아인을 통하여 일찍이 신라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이 울산지방을 통하여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아 처용이 이슬람상인이라는 가정법이 등장한 것이다.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운위되어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등 ‘따라야 할 모범’으로 규정됐다. 당대 지방장관 정도의 높은 직위에 있었을 박제상이 왜국에까지 가서 볼모를 빼내와야 했던 기록은 끊임없이 왜구의 약탈을 받아야 했던 신라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없네” 일본의 규슈는 한반도에서 가까웠기에 그들은 뻔질나게 한반도 해안을 들이쳤다. 선진 문물에 목말라했던 왜인들은 신라에서 문화 약탈의 원정을 꿈꾸었던 것이다. 해류상으로 규슈의 북단인 하카다(博多)나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배를 들이밀면 고스란히 울산쪽에 닿았다. 울산은 신라의 왕도인 경주를 침략하는 해상 루트였으며, 임진왜란때 왜군이 울산 학성에 왜성을 쌓고 버틴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닌다. 오죽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자청했을까. 지배집단에서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시대의 사표로 선전되었으며, 치술신사에 배향되기도 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때 울주에 벼슬살이 하러 내려왔던 김종직이 한역했다는 치술령가가 나온다. 당시 울주에서 들은 노래를 다소간 윤색했을 것이다.‘치술령 머리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 없네. 낭군이 가실 때에 다만 손만 흔들더니, 살았는가 죽었는가 소식이 끊어졌네. 길이 이별함이여, 죽은들 산들 어찌 서로 만날 때 있으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다가 문득 무창의 돌로 화하니, 열녀의 기운이 천추에 푸른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지만 반드시 지배층의 의도대로만 박제상의 행적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부인은 치술신모가 되어 모권적인 무속신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민중들에게 ‘치술령의 영험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은을암에서 굽어보니 경주 남산까지 이어진 치술령 산자락 아래로 운무가 비끼고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고 있다. 무심한 저 새의 혼에도 치술신모의 넋이 깃들어 있지 않을는가.
  •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문학의 위무가 더욱 절실해진 궁핍의 시대, 두 작가가 나란히 산문으로 위무의 발언을 했다. 이성복(52)시인의 사진에세이 ‘오름 오르다’(현대문학 펴냄)와 소설가 윤대녕(42)의 연작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사람’(이룸 펴냄). 녹록한 한담을 가장했으나, 곤고한 생을 달래 주는 화법들이 두 작가 모두 독특하고도 살갑다. ■ 윤대녕 “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무릇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간다.”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신통하고도 빛바랜 그 언표를 작가 윤대녕도 문득 꺼냈다. 청춘을 장식했던 열두 번의 만남을 작가는 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속으로 일제히 소환했다. 여성성마저 환기시키는 작가의 섬세한 시적 글쓰기가 또 한번 힘을 발휘하는 글모음이다. 책은 모두 열두 편의 짧은 산문으로 묶였다. 제목 속의 ‘옆 사람’은 화자인 ‘나’인 셈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 ‘나’는 머물러 있고 그 곁으로 열두 명의 여자들이 서로 다른 빛깔의 열정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까 ‘나’와 기억에서 불려나온 연인이 매번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연작인 셈이다. 한 줄의 서문도 걸치지 않고 곧바로 소개되는 첫번째 글 ‘푸른 비단에 싸인 밤’에서부터 독자들은 몽환적 감성에 잠길 만하다. 인터넷 오디오 파일 동호회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스물여섯살의 여자와 ‘나’는 우여곡절 끝에 만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쳤던 사랑의 기억들을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산문들에는 작가의 자전적 글쓰기 흔적이 여실하다.10년 전 다니던 치과의 간호사로 늘 허름한 밥집에서 오동나무 밥상을 마주했던 그녀(‘스물세개의 계단으로 오는 가을’), 가난했던 대학시절 곧잘 술을 사주던 동창생 그녀(‘나의 하이네켄 스토리’), 독자로 만났으나 자신의 사연을 소설로 써주길 바랐던 그녀(‘쥐와 장미’)…. 줄이어 등장하는 사랑이야기 가운데 몇편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때 며칠밤을 신열로 보냈을 내밀한 사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불 같은 격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짧은 콩트 형식의 산문들을 통해 “사랑만이, 관계만이 희망이며 유효기간이 없는 삶의 동력”이라 외치는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사연들을 오버랩시켜 감상을 마무리짓게 이끈다. 작가의 연애관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덤이다.“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윤희하원’) 9700원. ■ 이성복 “가난은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이성복 시인의 새 산문집 ‘오름 오르다’는 매우 독특한 질감이다. 소재부터 낯설어 더 흥미롭다.‘오름’은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제주의 산(山). 고집스럽게 오름을 찍어온 작가 고남수씨의 흑백 오름사진들을 통해 시인은 시적 영감을 이끌어냈다. 흑백사진 속에 둥근 선의 추상으로 들어앉은 오름들. 그들에게서 생의 이치를 은유로 뽑아내는 시인의 감식안은 서늘하도록 날카롭다. 예컨대 솟아오른 잿빛 봉분 앞에서 시인은 ‘시간의 부활’을 읽어낸다.“언제나 현재의 뒤안에서, 딱딱한 사물의 주검을 덮고 있다가, 재생의 빛깔인 잿빛을 띠고, 어떤 한숨보다 나즉히 잊혀진 사물의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과거가 되기 위해, 현재는 다시 소멸하는 것일까.”(‘은유의 잿빛 봉분’)빈곤으로 점철되는 삶을 “다, 그런 것”이라며 토닥이기도 한다.“가난은 아주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그러는 사이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꿈, 깨고 나면 씁쓸하기만 한 꿈을 꾸는 그런 날들을 생각나게 한다.”(‘한심하고 어설픈 가난의 곡선’)범상한 눈으로는 그저 선일 뿐일 오름에서 시인은 번번이 미학의 이미지를 걸러낸다. 그것은 “봉긋한 배와 처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잠자는 중년 여인”이 됐다가 때로는 “부드럽고 느린 지느러미를 해묵은 슬픔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생명의 본질을 고요히 묵상케 하는 대목들은 글쓴이가 시인이었음을 어쩔 수 없이 환기시킨다. 오름을 흰 선으로 가르는 외줄기 길의 사진에서 시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보고, 인간이성의 한계를 넌지시 짚는다.“애초에 인간이 구획과 분리의 수단으로 강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피안도 차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등을 펴냈다.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儒林(236)-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36)-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염유의 말을 듣자 자공이 대답하였다. “글쎄요. 제가 스승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자공은 그러나 직접적으로 공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서 간접적인 은유로서 의사를 타진해 보려한다. 직선적인 성격의 자로와는 달리 외교술에 뛰어난 자공이었으므로 우회적인 방법으로 스승의 뜻을 살펴보았던 것이다. 자공은 들어가서 공자에게 여쭈어 보았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옛날의 현인들이시다.” “허지만” 자공은 말을 이었다. “현인들이심이 분명하였지만 결국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백이와 숙제는 세상을 원망했을까요.” “원망하다니.” 공자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그들은 인(仁)을 추구하여 인을 얻었는데 어찌 원망하였느냐.(求仁得仁又何怨)”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나와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위나라의 임금을 위해 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자공은 공자에게 ‘위나라의 임금을 위해 일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다만 주나라의 무왕이 천하를 통일하자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고 살다 죽은 백이와 숙제의 예를 들어 공자의 속마음을 타진해 본 것이었다. 이에 공자는 ‘인으로서 인을 구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아버지 괴외를 무력으로 제지한 출공밑에서 벼슬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처럼 인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 보였던 것이다. 이에 제자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특히 직선적인 성격의 자로는 스승의 이런 태도를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스승에게 물었던 자공과는 달리 정공법으로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일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하신다면 선생님은 무엇부터 먼저 하겠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나 같으면 반드시 명분 먼저 바로 잡겠다.” 이 말을 들은 자로가 대답한다. “아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느닷없는 자로의 탄식에 의아해진 공자가 다시 물었다. “그것 때문이라니”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이 세상일에 너무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상만 생각하신다는 뜻이겠지요. 도대체 이름 같은 것을 바로 잡아서 어찌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자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리타분하게 만사의 이름부터 바로 잡겠다는 스승의 대답을 듣는 순간 단순한 자로는 순간 화가 났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탄식하여 말한다. “자로 너까지 이러할 수 있단 말이냐!”
  • 역사비평 겨울호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

    역사비평 겨울호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

    성웅 이순신이냐, 인간 이순신이냐. 너무 도식적인 구분인가. 그렇다면 합리적인 CEO로서의 이순신,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한 이순신은 어떤가. 역사적 인물로서 이순신은 한명인데 해석으로 구성되는 이순신은 여러 명이다.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KBS가 상영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영향이 크다.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거나 개정판을 내기도 하고 ‘충무공전’같은 컴퓨터 게임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이순신에 대한 소비방식은 예전부터 쭉 있어왔던 현상이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노영구 연구원은 계간지 역사비평 겨울호에 실린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이란 글을 통해 그 소비방식을 추적했다. 해방이후 독재정권이 이순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승만 정권은 정권유지의 한 축이었던 극우청년단체들의 은유로써 화랑도를 선호했다. 박정희 정권 때 비로소 이순신이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는데 이 기간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국가수호의 영웅에서 선견지명을 갖춘 탁월한 전략가로, 다시 정의·충성·용기를 갖춘 훌륭한 인격자로 다르게 정의되다 마지막으로는 ‘화랑도의 중흥’정도로 격하됐다. 이런 변화는 박정희 정권 초기의 반공주의, 중기의 성장제일주의, 말기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다. 현대사의 굴곡에 따라 바뀌었던 평가가 조선·일제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순신은 자신의 시대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전쟁영웅’은 외려 왕권에 대한 위협일 수 있다. 더구나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중용해 조선수군을 괴멸시킨 사람이 바로 선조였다. 임진왜란 뒤 논공행상에서 원균과 똑같이 선무공신 1등의 녹훈을 받았던 것도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순신은 전쟁의 영웅으로 올라선다. 그러다 숙종 때는 중국과 함께 왜구를 물리친 ‘중화문명의 수호자’로 한번 더 업그레이드된다. 이는 청나라가 중국대륙을 확실히 장악하면서 이제 중화문명의 계승자는 조선이라는 조선중화주의에 따른 것이다. 청나라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정조 때는 왕권강화와 복종을 요구하기 위해 충성의 상징으로서 이순신의 쓰임새가 바뀐다. 일제시대에는 다시 이순신이 민족의 영웅으로 올라선다. 이 시기에는 영국의 넬슨제독보다 뛰어나다거나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점이 강조된다.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이런 서술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우리민족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시각도 문화통치기간을 거치면서 다소 완화된다. 민족개조론, 실력양성론이 힘을 얻으면서 이순신의 인격과 애국하는 마음이 강조됐다. 이런 평가의 변화에 대해 순천향대 손풍삼 이순신연구소장은 “정치적 상황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지만 영웅으로서의 족적은 분명하다.”고 강조한 뒤 “다만 성웅으로 ‘박제화’된 이순신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위험만큼은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양화가 차우희 작품전

    서양화가 차우희(59)는 20년 이상 ‘오디세이의 배’라는 주제에 매달려 왔다.1981년부터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과 서울을 왕래해온 작가는 자신의 삶이 고대 오디세이의 항해를 닮았다는 데 착안, 돛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고향에의 회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차우희전’(12일까지)은 작가의 이런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출품작은 대형 돛을 형상화한 유화, 종이 오브제 등 30여점. 그의 작품은 캔버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한지와 오브제, 또는 그것들을 혼합한 설치작업의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의 전시공간은 개별적인 작품들의 진열이면서 동시에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때로는 은유적이지만 때로는 직설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배의 특정한 부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배와의 상관성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작가는 독일에 체류하며 독일인들로부터 분단상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통독 과정을 지켜 보며 우리 분단의 현실을 되돌아 보는 ‘폴래리티(polarity)’ 연작을 내놓고 코소보 내란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 작가로서 비판적인 안목도 갖고 있다.(02)738-757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갯벌의 변신’ 송도신도시 조경착수

    ‘갯벌의 변신’ 송도신도시 조경착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단일 조경공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인천 송도신도시 2·4공구 공원·녹지 조성공사가 11월중 착공된다. 바다 갯벌을 매립, 조성돼 허허벌판에 불과한 송도신도시의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이 작업은 기나긴 신도시 조성 역정의 ‘화룡점정’에 해당된다. 과연 눈을 제대로 찍어 신도시라는 ‘용’이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뛰어난 녹지율 송도신도시는 경관·생태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답게 2·4공구 176만평 가운데 23%인 41만평이 공원·녹지로 꾸며진다. 인천의 기존 시가지 녹지율(7.3%)의 3배에 해당된다. 세계적으로도 뉴욕의 공원율이 20.6%, 도쿄 2.7%, 런던 10.8%, 싱가포르 3.7%인 점을 감안할 때 손색이 없는 녹지율이다. ●특이한 조경기법 송도신도시는 매립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일반 조경기법과는 다른 방법이 동원된다. 공원 등에 그냥 나무를 심을 경우 지하에 있는 갯벌 염분이 지면으로 스며들어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매립지반 위에 암거(배수관)를 설치한 뒤 그 위에 자갈로 된 쇄석층(50㎝)을 분포하고, 다시 1.5∼5m의 고운 흙을 덮는 등 이중삼중의 장치를 마련한다. 공원과 길가에 심는 나무도 염분에 강한 품목으로 선택됐다. 해송·이팝나무·팽나무·회화나무 등 39종 18만주의 교목과 산철쭉·해당화·개나리 등 33종 62만 6000주의 관목이 선보인다. 갈대 등 지피식물 역시 59종 172만 2000본이 심어지며 잔디는 32만 9600㎡에 깔린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2년간 이러한 수종에 대한 염분 적응시험을 거쳤다. 시공을 맡은 풍림산업은 연말까지 가로수 일부를 식재한 뒤 내년부터 공원 등에 수목 식재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테마를 지닌 공원 신도시에는 근린공원 5개, 어린이공원 6개, 미관광장 2개 등이 꾸며지는데 공원별로 테마를 지녔다.2공구 아파트단지(테크노빌)와 지식정보산업단지(테크노파크) 사이에 들어설 1호근린공원(6만 4649평, 길이 960m, 폭 230m)은 중앙공원답게 신도시가 지향하는 ‘정보화’‘국제화’를 상징한다. 공원 가운데는 국제교류광장이 설치되고, 그 위 좌우로 통신을 주제로 한 놀이시설인 ‘통신놀이공간’과 과학놀이 체험시설인 ‘과학놀이공간’이 각각 들어선다. 교류광장 왼쪽에는 ‘정보의 바다’를 상징하는 대형 연못이, 그 옆에는 신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이 30m의 인공동산이 조성된다. 아울러 공원 곳곳에는 통신시설의 발달사를 보여주는 봉수대, 파발마, 우편, 전화, 인터넷이 이미지화돼 전시된다. 4공구 입구에 들어설 2호근린공원(4만 8430평, 길이 960m, 폭 160m)은 반대로 인천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전통문화마당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인천8경중 바다와 관련이 있는 4경(팔미도를 도는 범선, 옥기섬 어민들의 피리소리, 장도의 단풍, 계관섬의 바위)을 은유화한 ‘미추홀바다’와 전통놀이 공연장인 ‘열린마당’이, 오른쪽에는 인천8경중 산과 연관이 있는 4경(문학산 아지랑이, 청룡산 구름, 오봉산 달, 호구포로 지는 해)을 표현한 ‘비류산’이 각각 들어선다. 조각 또는 그림으로 형상화될 8경은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의뢰해 추진되는데, 시민들이 잘 모르는 ‘인천 8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줄 전망이다. ●공원이 생태학습현장 기존 시가지와 신도시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23호근린공원(26만 915평, 길이 2800m, 폭 300m)은 공원보다는 생태학습현장에 가깝다. 공원 가운데 유수지를 두고 왼쪽에는 야생조류·식이식물 서식지와 조류관찰소 등이 있는 조류생태공원이, 오른쪽에는 양서류·나비 서식지와 습생초지 등을 갖춘 습지생태공원이 각각 조성된다. 야생화와 건생초지를 관찰할 수 있는 야생화원과 자연천이관찰원도 들어선다.5호근린공원과 6호근린공원에는 자전거도로·테니스장·롤러스케이트장·게이트볼장·배드민턴장·체력단련장 등 각종 체육·휴게시설이 집중돼 있다. ●녹지축이 하나로 연결 송도신도시 조경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녹지축이 연결된다는 점이다.11개에 이르는 공원과 2만 8815㎡의 완충녹지가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이어져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기법을 선보였다는 평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송도신도시 조경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조경의 신기원을 이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치열했던 입찰경쟁… 1000억대 풍림에 낙찰 송도신도시 조경사업은 사상 최대의 공사답게 시공자 선정 과정부터 치열했다. 공개경쟁 입찰에는 풍림산업, 쌍용건설, 화성산업, 롯데건설, 고속도로관리공단, 현대산업개발, 남해종합개발, 삼성물산, 현대건설, 삼호, 삼성에버랜드 등 11개사가 참여했다. 모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업체들이다. 이들은 인천지역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에 지역업체 ‘모시기 경쟁’이 펼쳐졌다. 공사를 발주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많은 지분을 지역업체에 할당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해줄 것을 입찰을 담당한 조달청에 공문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실적 외에 지역업체 참여 여부가 시공자 선정에 큰 변수로 작용하자 지역업체를 둘러싼 뜨거운 물밑경쟁이 펼쳐졌다. 인천에 조경면허를 가진 건설업체가 30여개에 불과한 것도 선택의 여지를 없애, 이들은 오랜만에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기에 이르렀다. 입찰참가 업체들은 지역업체를 대상으로 “우리와 함께 갈 경우 공사를 맡을 수 있다.”는 파상공세를 편 결과 11개사 가운데 삼성에버랜드를 제외한 모두가 지역업체 2∼3개를 30%의 지분으로 참여시킨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국가계약법은 국가 산하기관이 공사비 243억원 이상의 국제입찰시 지역업체를 최소 15%, 최대 30% 범위 내에서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재무상태와 시공경험 측면에서 11개사 가운데 가장 뛰어나지만 지역업체 지분율이 낮아 점수면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인천의 건설협회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가 뛰어난 경영실적만 믿고 자만한 결과”라고 말했다. 거의 다 만점을 기록한 채 본선에 해당되는 가격입찰(지난 6월25일)에 참가한 업체들은 치열한 두뇌싸움의 ‘2라운드’를 전개한 끝에 공사예정가(1115억원)의 75.82%인 741억 4700만원을 써낸 풍림산업 컨소시엄이 낙찰됐다.1000억원 이상 공사의 경우 최저 낙찰가가 공사예정가의 72.99%인데 풍림이 제시한 금액이 이에 가장 근접한 결과다. 풍림산업은 SK임업 및 지역업체인 원광건설, 송림건설, 송산ENC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지분율은 풍림 36%,SK 34%, 원광 13%, 송산 10%, 송림 7% 등이다. 이밖에 30여개의 업체가 이들로부터 하청을 받아 공사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공지영 “배반 않는 건 글 뿐”

    공지영 “배반 않는 건 글 뿐”

    소설가 공지영(41)이 돌아왔다.‘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이후 장편소설로는 꼭 5년만이다.“오랫동안 칼을 놓았다가 어쩔 수 없이 수술실로 들어선 의사처럼 두려운 마음이었다.”고 했다.“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음을 알게 됐고, 소설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는 그다. 새 장편 ‘별들의 들판’(창비 펴냄)은 소설로 풀어쓴 ‘베를린 일기’다.2년 전 안식년 삼아 1년여를 지낸 베를린의 교민사회에서 낯설고도 다양한 사연들을 만났고, 그들을 놓치지 않고 글감으로 복원해냈다. 중·단편 6편의 연작소설집은 후일담 성격이 그래서 짙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특정인의 실화와 무관하게 주변 이야기들에서 모티브만 빌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386세대 작가로서 고민의 끈을 부여잡고 애면글면했던 흔적을 들키고 만다. 작중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든 시대의 질곡에 휘둘린 결과였든, 지난 세월에 긁힌 상처를 숙명처럼 떠안고 현재를 살아낸다는 점에서다. 이념의 가치가 표백돼버린 상실의 시대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작가의 뜨거운 연민이 가닿는다. ‘네게 강 같은 평화’의 최영명이란 이름의 사내는 지독한 자기환멸을 남몰래 감당하느라 휘청댄다. 해외취재를 핑계삼아 찾아간 베를린에서 그는 임수경 방북에 연루돼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촌형 수명을 만난다. 오십줄을 바라보며 남루하게 늙어가는 형, 잘 나가는 보수 신문사의 기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하나 몰래 만나는 여자 문제로 위선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는 사내. 전혀 다른 캐릭터 같으나,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를 고뇌한다는 지점에서 번번이 닮은꼴로 포개진다. 한때 운동권이었던 가난한 독일 유학생의 아내 서영이 풀어가는 ‘섬’, 광주항쟁을 세상에 알렸던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등장하는 ‘귓가에 남은 음성’ 등을 빌려 작가는 시대적 증언을 담는 소설의 기능을 환기시킨다. 생래적 연민을 품고 등장인물들을 멀찍이 조망하는 듯한 화법은 화려한 은유 없이도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신통력이 있다.“십년 전에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했던 진실이 이제는 지루해진다. 사명은 팔자가 되어버리고 운명은 개그로 바뀌어버린다.”(‘네게 강 같은 평화’)고 주인공은 탄식한다. 힌츠페터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또 주인공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처럼 쓰라리고 서러웠다.”(‘귓가에 남은 음성’)고 통렬한 고백을 날린다. 여성작가로서 물끄러미 발 아래 좌표를 들여다본 모성적 글쓰기도 잊지 않았다. 폭력에 못이겨 이혼한 전 남편을 10년만에 만나 아이를 되찾으려는 여자(‘빈 들의 속삭임’), 아버지를 여읜 뒤 실연의 상처까지 안고 어머니와 쌍둥이 여동생 나연을 만나러 베를린을 찾은 또 다른 여자(‘별들의 들판’)가 여성 정체성을 실존적으로 발언하는 인물들이다. 행간의 체온이 갈수록 더해질 수밖에. 작가는 열일곱살짜리 딸을 둔, 두 아이의 엄마인 것을. 나른한 수사나 출렁대는 자의식 없이 ‘통속’을 가장한 직설화법에 대해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그의 소설만큼 시류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면서도 속된 변화를 거절하는 절조를 보여주는 세계도 드물다.”고 평했다. “사형수에 관한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儒林(204)-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04)-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실제로 공자가 죽었을 때 공자는 곡부 북쪽에 있는 사수(泗水)가에 묻혔는데, 모든 제자들이 3년 동안 복상(服喪)을 하고 헤어졌지만 유독 자공만은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6년 동안이나 계속 무덤을 보살폈다고 ‘공자세가’가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자공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특별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공이었던지라 생사를 모르는 스승의 안부가 몹시 걱정되었을 것이다. 공자는 다행히도 무사히 정나라에 도착하여 동문의 성곽 밑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었고, 자공은 헐레벌떡거리며 스승을 찾으러 다녔다. 이때 길을 가던 정나라 사람, 행인 하나가 자공에게 말하였다. “글쎄요, 그 분이 당신이 찾는 그 스승인지는 모르지만 동문 근처에 서 있는 괴상한 사내를 만나기는 하였습지요.” 자공은 놀라 큰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생긴 분이셨습니까.” 그러자 행인은 대답하였는데, 이 대답은 그 무렵의 공자 모습을 한마디로 상징하는 명언이었다. “동문 밖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그의 키는 9척 6촌가량이고, 눈두덩은 평평하고, 눈꼬리가 길며, 광대뼈가 튀어나왔고, 그 머리는 요임금을 닮았고, 목덜미는 순임금 때의 현인이었던 고요(皐陶)를 닮았으며, 그의 어깨는 정나라의 명재상 정자산(鄭子産)을 닮았더군요. 그러나 그 키는 우임금보다 세 치가량 모자랍니다.” 틀림없이 스승의 모습이라고 판단한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밖에 또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자공이 묻자 행인은 대답하였다. “글쎄요. 그나저나 그 처량하고 축 처진 모습은 상갓집의 개와 같은 몰골이었습니다.” ‘상갓집의 개(喪家之狗).’ 처량하고 축 처진 공자의 모습을 풍자한 말. 이러한 은유를 통해 이 무렵 공자의 신세가 얼마나 절박하였던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성인 공자를 ‘상갓집의 개’라고 표현한 것은 불경스러운 용어지만 이는 일부러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자 자신도 이 표현에 대해 웃어넘겼던 것이다. 마침내 행인의 표현에서 스승임을 직감한 자공은 동문으로 나아가 성문 밖에 서 있는 공자를 상봉한다. 자공이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리고 나서 스승에게 그 행인이 표현한 내용을 그대로 아뢰자 공자는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가 형용한 용모와 자태에 대한 표현이야 잘 들어맞지는 않지만 나를 상갓집의 개라고 표현한 내용은 참으로 절묘하구나.” 바로 그해 공자의 고향 노나라에서는 정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애공(哀公)이 왕위에 즉위하였는데, 이처럼 고향을 떠난 지 불과 1년 만에 상갓집의 개와 같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 공자의 수난은 그러나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듬해인 기원전 495년 57세의 공자는 정나라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토록 가려 했던 진나라에 도착한다. 공자는 사성(司城)인 정자(貞子)의 집에 의탁하였는데, 공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나라는 마침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 무렵의 전국시대는 뚜렷한 패자가 없이 진(晋)나라와 초(楚)나라, 오(吳)나라 이렇게 세 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공자가 입국한 진(陳)나라는 초나라 편에 가담하고 있었으므로 자연 오나라와 진(晋)나라가 자주 진(陳)나라를 정벌하고,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었고, 천하의 정세는 극도의 불확실성에 한 치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암흑의 계절이었다.
  • 꽃 지고 강물 흘러/이청준 지음

    꽃 지고 강물 흘러/이청준 지음

    소설가 이청준(65)의 새 소설집이 나왔다.‘꽃 지고 강물 흘러’(문이당 펴냄)는 삶과 세월의 결을 느린 화면으로 재현해 보이는 듯한 작가의 글세계를 대면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념으로 흐르는 세월,그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인간(혹은 작가 자신)의 진면목을 또 한번 깊이 고민했다.늘상 그랬듯 이번 소설도 휙휙 속도를 붙여 책장을 넘기기엔 맞춤하지 않을 성싶다.소소한 신변담의 틀거리를 빌렸으되 어느결에 그 속에서 생의 비의(秘意)를 짚어내게 하는 노 작가의 신통력이 빛을 낸다. 소설집은 중·단편 6편으로 묶였다.기억의 갈피를 뒤져 ‘이해’와 ‘화해’라는 이름의 숙연한 보물들을 건져올린다.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자주 만난 덕분에 독자들에게도 은연중 ‘친척’ 같아진 어머니가 여전히 등장한다.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평생을 조역으로 살았던 형수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표제작 ‘꽃 지고 강물 흘러’는 어찌보면 작가의 대표작 ‘축제’의 후일담이다.‘축제’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알려주었던 주인공의 형수 외동댁에 관한 이야기를 1인칭 관점에서 풀어낸다.작중 화자인 ‘나’는 매사에 무뚝뚝한데다 어머니의 시골집을 떡하니 차지한 형수가 못마땅하다.치매를 앓은 어머니를 여읜 뒤 혼자 사는 형수를 찾아간 ‘나’는,산밭에 일나간 형수를 기다리며 잠시 낚싯대를 드리우다 스스로 갈등의 짐을 풀어놓는다.애증의 관계였으되 서로의 의지처였던 어머니와 형수의 일화들을 회상하며 “형수의 안타까운 변모도 노인의 무상한 늙음과 종생의 과정이 부른 무고한 세월의 업보”라고 이해하기에 이른다. 30대 초반에 청상이 된 형수의 곤고한 인생은 ‘오마니!’편에서 이야기의 끈을 잇는다.환갑 지난 늙은 단역배우 문예조씨는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에게 자신의 형수 이야기를 뚱겨준다.전쟁터에서 죽은 형의 유복자를 낳은 형수,형 대신 그녀의 젖문을 열어주었던 기억을 들추며 형수에 대한 그리움을 에둘러 은유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형수는 어머니의 치환적 존재이기도 하다.초라하게 늙어가는 형수는 어느새 어머니와 동일시되고,그 존재를 빌려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향한 멈출 수 없는 회귀본능을 투영했다. 작가 자신의 삶의 궤적을 원본 삼은 글쓰기는 곳곳에서 확인된다.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처로 떠난 주인공 진성(‘들꽃 씨앗 하나’)의 이야기는 자전적 소설양식을 선명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개인사에서 소실(素實)하고 담담한 소재를 끌어내는 그의 작법에 대해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자기라는 에고이즘의 변방에서 낮고 숨겨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밀도있게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삶이나 문학이나 밤 산길 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작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 강화에서 조용히 글밭을 일구며 산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박진숙의 새 시집 ‘혜초일기’

    박진숙의 새 시집 ‘혜초일기’

    ‘어렵게 쓴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그런 시를 낳은 시인에게서는 향기가 난다.시인의 천착이 낳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향기.박진숙의 새 시집 ‘혜초일기’(문학세계사 펴냄)는 이처럼 집요하게,그러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한사코 한 곳으로 걸음을 모아가는 탁발승의 노정 같은 시집이다. 삶을 말하지만 그의 은유는 단호하다.‘나는/태어나지도 않았고/살지도 않았다/따라서 죽는 것도 없다’(금강경에 부쳐)에서 보듯 그는 시적(詩的) 적멸을 노리는 구도자로 고행 속에 홀로 서 있다.시인 정일근이 무뇌(無腦)의 적멸을 말했듯,시인은 길의 끝을 감춘 채 길게 누운 지평선의 점 하나로 소실해 가는 존재의 의미를 불교적 이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혼자일 뿐’인 그의 자리에서 드러내 보이는 시적 매조지는 종교적 지향을 일상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힘이 배어 있다.‘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의 절대성에 함몰해 가면서도 ‘나’와 함께 ‘우리’라는 끈을 놓지 않는 그의 사회성은 시편 곳곳에서 더러는 연대의식으로,더러는 고독감으로 표출된다.인간이 가진 불가피한 현실인식의 그늘이다. 지고한 불법(佛法)을 찾아 미당이 먼저 간 ‘진달래 꽃비오는 서역 삼만리’를 마치 낙타처럼 되짚어 가는 그는 순례로 지쳐가는 자신을 향해 한사코 피학의 아포리즘을 생산해 낸다.‘천상의 선인들도/때가 되면 옷이 더러워지고/몸에선 냄새가 나고/머리에 꽂은 꽃은 시들고/악기는 낡아 노래도 목이 쉰다는/한 때뿐인 목숨’(불퇴전1-혜초일기 61)이라며 세상이 절대라고 믿는 모든 것에 회의하는 그는 이윽고 ‘불어닥친 한순간의 폭풍 속에서/가야 할 길을 실날처럼 잡고/아비발치,/아비발치,/오늘 그 상사의 지옥을 독사처럼 물어뜯는/저를,/스승이여 죽비를 들어 꾸짖기만 하시겠습니까’라며 목어처럼 우짖는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세상과 삶의 이치에 대한 ‘혜초일기’의 시적 사유들은 범접할 수 없는 진정성에 닿아 있다.거기에는 칼끝과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고 읽고 있다.시 세계에서 맨발의 혜초가 되어 천축국에 다다르고자 하는 그의 여정은 멀다.너무 멀어서 ‘살아서 다다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는 그 길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적어도 자신의 사유 속에서만큼은 삶이 법륜의 황금 테두리처럼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외길이라는 진리를 깨우치기라도 한 듯.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성매매법 시행 1주일…유흥업소 신풍속도

    성매매법 시행 1주일…유흥업소 신풍속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밤 문화’에 새로운 풍속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째 경찰의 특별단속이 이어지자,관련 업소와 술집,여관 등이 다양한 생존전략에 골몰하고 있다.성매매를 둘러싼 사슬구조가 바뀌면서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집창촌 찾던 외국인 관광패턴 변해 성매매특별법 시행은 일본 등 외국 남성의 관광 패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종전에는 집창촌이 공공연한 ‘단골 코스’였지만,사정이 달라졌다.업계 관계자들은 “더욱 은밀한 서비스를 준비하거나 아예 그런 코스를 없앴다.”면서 “단속이 장기화되면 관광객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일본 관광객을 많이 태운다는 모범택시 운전사 박모(57)씨는 “종전에는 술과 2차까지 풀서비스를 제공받거나 미아리·청량리 집창촌을 삼삼오오 찾았다.”면서 “이제는 비밀이 보장되는 렌터카 회사나 호텔,여행사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인터넷에서도 몸조심 인터넷에서도 바람은 거세다.‘물 좋은 곳’으로 소문난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등을 소개해 주는 사이트들은 ‘성매매’를 의미하는 단어 사용을 금지시켰다.성매매특별법상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알선과 광고 등의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20만명의 회원을 가진 ‘나가요닷컴’은 “성매매를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을 발견하는 즉시 삭제하겠다.”고 공지했다. 자체 홈페이지를 꾸리며 홍보를 벌이던 일부 고급 술집도 ‘몸사리기’에 나섰다.청소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초기화면에 주민등록번호 인증 장치를 새로 설치하고,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회원제를 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가격경쟁과 소수단골 위주 영업 대구 달서구 본리동 유흥업소의 모텔들은 숙박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하루 3만 5000∼4만원에서 2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내렸다. 일부 유흥업소는 ‘검증된’ 단골 손님에게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성매매특별법상 ‘유사성행위’로 단속되는 변태적인 ‘쇼’나 이른바 ‘2차’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서울 북창동 A룸살롱 종업원 장모(27)씨는 “단속이나 신고를 우려해 단골이라는 확신이 드는 손님에게만 쇼나 2차를 권한다.”고 전했다. ●주변 상인,“생존권 보장”읍소 집창촌 주변 상인들은 살길이 막막해졌다고 하소연한다.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588’일대에서 약국과 슈퍼마켓,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10여명은 30일 이곳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무런 대책없이 갑자기 소나기 단속을 했다.”며 생존권 보장과 단속유예를 촉구했다.횟집과 주차장을 운영하는 이영일(60)씨는 “매출이 하루 20만원에서 10만원 미만으로 줄고,주차하는 차량도 180대에서 20대로 줄었다.”고 말했다.회견 도중 박승철 자율정화위원장이 단속의 부당함을 지적하자 일부 자영업자는 “588을 대변하지 말고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우리 입장이나 얘기하라.”고 언성을 높여 서로 다른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오픈된 술집,콘돔업계 ‘희색’ 반면 30∼40대 회사원을 겨냥한 ‘오픈된’ 술집은 인기를 끌고 있다.여종업원 없이 70∼80년대 가요나 팝 등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저렴한 술집이 최근 대구에서만 20여개나 새로 생겨 성업 중이다. 불황이 예상됐던 콘돔업계도 오히려 주식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코스닥 등록 콘돔생산업체인 유니더스의 주가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한달 전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유지하다 법이 시행된 23일 3.61% 오른 데 이어 추석연휴를 지난 30일에는 5.26%나 상승했다.상승이유에 대해 회사측은 “경찰단속으로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될 경우 성병감염을 우려해 콘돔 착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경찰의 특별단속이 끝나는 10월 중순 이후에는 콘돔의 주요 소비처인 성매매 산업이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을 달리했다. 유영규 김효섭기자·전국종합 whoami@seoul.co.kr
  •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빈 집’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빈 집’

    “처음엔 사람이 보이고 그 다음엔 미장센이 보일 것입니다.‘빈 집’은 두 번 봐야 하는 영화죠.”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15일 개봉하는 영화 ‘빈 집’(제작 김기덕 필름·해피넷 픽쳐스·씨네클릭 아시아)은 다양한 의미의 망들을 장면 장면마다 촘촘히 짜넣은 영화다.얼핏 보면 어렵지 않지만,따지기 시작하면 의미의 안개 속을 휘젓게 되는.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품고 돌아가도 좋지만,그래도 베니스를 매료시켜 감독상까지 거머쥔 감독의 의도가 궁금했다. #“빈 집은 소통하고픈 마음 속의 여백” 태석(재희)은 집집을 돌며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이고,전단지가 떼어지지 않은 집에 들어가 자신의 집인양 얼마간을 살고 나온다.왜 이렇게 빈 집을 드나드는 걸까.“빈 집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있는 여백 같은 거죠.누군가가 자물쇠를 열고 찾아들어와 그 빈 곳을 채워주길 바라는.” 태석은 그렇게 빈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다.어느날 빈 집인 줄 알고 들어간 평창동의 고급 주택에서 멍투성이인 선화(이승연)를 만난다.태석은 남편의 폭력과 소유욕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난다. 고급주택부터 철거되기 직전의 아파트까지.김 감독이 카메라에 담는 공간의 계층은 다양하다.“제 영화에는 언제나 가족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이번에도 다양한 레벨의 가족과 그 안의 균열을 들여다보고 싶었죠.” 둘이 우연히 들어간 한 사진작가의 집엔 선화의 누드사진이 걸려 있다.과거 잘 나가는 모델이었던 선화.그녀는 사진을 여러 개로 조각내 다른 형태로 이어붙인다.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파동이 떠올려지는 장면이다.김 감독은 “(이승연을 캐스팅한 뒤)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일 수도 있다.”면서 “누드의 본질은 아름다움인데 음란 코드로만 바라보는 것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태석은 골프공에 끈을 묶어 나무에 매단 채 스윙연습을 하곤 한다.그럴 때마다 선화는 그 앞에 머뭇머뭇 멈춰선다.“‘나를 이해할 수 있느냐.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라는 게 김 감독의 해석.소통이 되지 않았을 때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아무런 대답이 없는 태석의 골프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균열된 가족이 화해하는 팬터지” 태석과 선화는 한 빈 집에서 노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살인범으로 오해를 사 경찰에 연행된다.다시 집으로 돌아간 선화와,감옥으로 가게 된 태석.감옥 안은 마치 정신병원처럼 몽환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팬터지처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태석은 선화가 상상해낸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감옥에서 4년간 사람의 시선 뒤에 숨는 훈련을 한 뒤 출소한 태석은 선화의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남편의 폭력에 맞서기보단 유령 같은 환상으로 도피하는 건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김 감독은 “불신으로 균열된 가족이 화해하는 영화”라고 반박했다.“남편과 태석이 실제로는 중복된 인물일 수 있어요.선화가 남편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고요.그렇게 보면 2명이 화해하는 영화죠.” 결국 이번 영화의 귀착점도 ‘화해’다.날 선 비판의 감각이 무뎌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더니 “갈수록 부드러워져 더 이상 영화를 못 찍게 돼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폭력의 수위도 낮아졌다.영화의 영어제목은 ‘3­iron’.가장 사용하기 어려우면서도 일단 공을 날리면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 골프채다.영화는 이 채를 휘둘러 날아가는 공으로 상대방을 가격한다.“‘폭력’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감독.폭력의 강도보다는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탐구하는 그는 이제 이단아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웠다.더이상 일반관객에게도 혐오스럽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대신 은유와 이미지의 바다는 더 깊어졌다. 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김미성기자 492naya@sportsseoul.com
  • 한국의 전통문양/임영주 지음

    무늬는 언어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그 민족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를 지니며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무늬는 아름다움 이전에 하나의 상징이다.단순한 무늬라도 그 안에 우주의 섭리가 깃들어 있을 수 있고,아무리 현란하고 아름다운 무늬라도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무늬만큼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공헌해 온 것이 달리 있을까. 최근 출간된 ‘한국의 전통문양’(임영주 지음,대원사 펴냄)은 우리 전통문양의 상징과 은유의 세계를 전문가의 눈으로 살핀 인문교양서다.문화재전문위원인 저자(61)는 문화재 수리 보수의 장인이자 단청·불화 모사의 대가인 임천 선생의 아들.어려서부터 익힌 저자의 고미술에 대한 감각은 곧 문양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이 책은 지난 30년 문양연구의 결실이다.저자는 갖가지 문양이 베풀어진 유물과 유적을 직접 찾아 600여 컷의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 속엔 상서로운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일월 신상(神像) 즉 해와 달의 모습은 하체는 용,상체는 사람의 형상을 한 남녀로 묘사돼 있다.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다.삼족오는 닭이 이상화된 것으로 간주된다.중국 고전 ‘회남자’에 “일출 때 천계(天鷄)가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따라 울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여기서 천계는 저자에 따르면 ‘하늘의 사상’을 의미한다. 저자는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 그려진 커다란 두 마리의 새도 봉황이 아니라 천계라는 견해를 밝힌다.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동명설화의 계자(鷄子),알지설화의 금성백계(金城白鷄),수로설화의 자완금란(紫緩金卵) 등도 모두 이와 비슷한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대의 고분벽화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식물무늬가 적잖이 나타난다.그 중에서도 특히 초화무늬는 각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여줘 관심을 끈다.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로 서역(西域)의 문양요소가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화려한 보상화문을 비롯해 연화문,모란문,당초문 등이 다채롭게 등장한다.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청동거울 등에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 문양이 사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조선시대에는 궁중의 꽃담이 주목거리.경복궁 자경전의 담장은 아름다운 화초장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한국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한다.“사대부가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문판 거죽에 광두정(廣頭釘)이 가지런히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그것은 마치 하늘에 별을 수놓은 듯하다.” 거기엔 물론 우리 전통문양의 미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8번째시집 ‘너에게 가려고‘ 펴낸 시인 안도현

    8번째시집 ‘너에게 가려고‘ 펴낸 시인 안도현

    바람결 소슬해질 무렵 아랫목의 이미지로 찾아오는 시인 안도현(43)이 여덟번째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펴냄)를 펴냈다. 2001년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이후 3년 만이다.일상에 침잠해 굳은 살이 돼버린 삶의 비의(意)를 진한 서정으로 들추는 시쓰기는 그대로인 듯하다.자연과 사물에 인생의 이치를 대입해 어떤 직설보다도 따갑게 메시지를 내다꽂는 화법도 여전하다.애독자라면 그 점,오히려 반가울 것이다. 황동규 시인은 “세계와 자신을 가능한 한 밀착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시인”이라고 안씨의 시세계를 압축한다.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시키는 안도현 스타일이 이번에는 ‘관계’에 대한 탐색으로 운을 뗀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로 시작되는 첫번째 시 ‘간격’은 “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고 마침표를 찍는다. ‘간격’이란 시어로 은유된 ‘관계’는 곧 사람살이의 핵심인 셈이다.그리고 다음 순간 ‘관계’는 곧 사랑의 개념으로 치환된다. 시인이 말하는 순정한 사랑은 “외롭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입밖에 꺼내지 않고” 타인에게 “귀를 맡겨두는 것”(‘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물방울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토란잎의 속성에 사랑의 본질을 빗댄다.“빗소리만큼만 살고/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 게다/사랑하기 때문에 끝내/차지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토란잎’) 욕심껏 다 갖지 못해도 흐뭇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문득 일깨우기도 한다.“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나무는 사랑하면 그냥,/옆모습만 보여준다”(‘옆모습’)시인 권혁웅이 해설문에서 “그의 시에서 삶과 사랑은 유의어(類義語)”라고 짚어낸 그대로다. 시적 성찰의 행간행간에다 빼어난 서정의 풍경화를 오버랩시키는 장기는 거의 모든 시들에서 엿보인다.자연의 소리를 나꿔채는 귀,사물의 상징을 포착하는 눈이 바쁠 수밖에.4부로 엮인 시집에서 특히 1부는 시청각을 잠시도 쉬게 하지 않는다.“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는”(‘봄날은 간다’) 봄에서부터 “눈보라의 긴 꼬리가 세상 속에다 구멍을 내는”(‘곰장어 굽는 저녁’) 겨울로 시간을 옮겨가며 감수성을 자극한다.이때 동원되는 소재는 나무,새,빈 집 등 시인이 사는 농촌의 흔한 물상들이다. 시가 언어의 단순기교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고민임을 역설하는 작품이 많다.떠나고 없는 아버지,어머니를 추억하는 구체적인 시어들은 명치를 꾹 누르며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그해 여름 수박밭에다 수박을 심어놓고 첫물을 한번 따지도 못하고 돌아가신”(‘붉은 달’) 아버지는,“누군가 사랑하며 떨며 울며 해찰하며 놀다가도록 내버려둘 뿐”(‘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인 나무 그늘이었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빈둥거리며,징징거리며,히득히득 웃으며 읽어달라.”고 부탁했다.그런데,빈말인 것 같다.생의 무게가 완강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시네마 천국]장예모 감독의 ‘연인’

    10일 개봉하는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화제작 ‘연인’은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무협멜로다.동양적 스펙터클을 자랑한 전작 ‘영웅’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시 한번 그 기대치에 걸맞은 만족감을 선사할 듯하다. 극의 무대는 중국 당대.무능한 왕조와 정가의 부패로 나라 곳곳에 반란군이 득시글거리는 가운데 관리인 리우(유덕화)와 진(금성무)은 최고의 반란조직인 비도문의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두사람은 비도문 두목의 딸로 홍등가에서 춤을 추는 맹인기생 메이(장쯔이)를 의심해 체포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선굵은 액션으로 웅장한 스케일을 암시한다.장쯔이가 고혹적인 자태로 북춤을 추는 도입부의 시퀀스는 감독의 탐미주의 영상을 압축적으로 은유한다.서사액션에 어울림직한 온갖 자극적인 레시피도 다 동원했다.한 여자에게 접근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구도가 액션에 진한 멜로요소가 녹아드는 ‘서사 무협멜로’ 장르임을 귀띔한다. 옥중의 메이를 진이 구출해주면서 영화는 멜로의 분위기를 본격적으로 피워올린다.진이 메이를 비호하며 함께 비도문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메이는 진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인다. 남녀를 쫓는 관군들,대자연을 배경삼아 그들을 물리치는 남녀의 신기에 가까운 무술 시퀀스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남녀의 연애감정이 현대극 빰치게 빠르게 속도를 붙여갈 즈음,영화는 첫번째 반전을 드러냄으로써 밋밋할 뻔한 드라마에 요철장치를 마련한다.비도문 두목을 잡기 위해 진이 리우와 짜고 의도적으로 메이에게 접근했다는 설정이 노출되면서 관객들은 새로운 감상포인트를 쥐고 두 남자의 음모에 동조하게 되는 것. 주인공들의 동선에 사활을 걸었다.세 남녀가 화면에서 빠지는 장면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현란한 기교의 액션장면들이 중간중간 양념으로 끼어들지 않았다면 단조로운 인물캐릭터가 큰 단점이 됐을 법하다. ‘보고 즐기는’ 서사물로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영화다.시청각을 끊임없이 자극해 관객의 감각을 깨어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여주인공이 맹인이란 설정 덕분에 화면은 한결 더 감각적으로 다듬어졌다.북소리,바람소리,댓잎 부딪는 소리 등이 청각을 내내 곤두세워 놓는다.그러나 감각에 의존한 전개방식이 화학조미료의 얕은 뒷맛처럼 거북스러울 관객도 있겠다.내용보다는 포장에 공들인 탓에 이미지 과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죽음으로까지 내몰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그 절절함에 동조하기에는 주인공들의 내면묘사가 지나치게 허술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칵테일 슈가/고은주 지음

    누구인가 ‘미친 짓’이라고 단정했던 결혼.그 테마를 젊은 작가 고은주(37)가 능청스러운 글감으로 요리해낸 작품이 나왔다.신작 ‘칵테일 슈가’(문이당 펴냄).결혼이라는 화석화된 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욕망하는 자유의지를 경쾌한 템포로 묘사한 첫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에서 작가의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기혼이거나 결혼을 눈앞에 둔 남녀.커피에 녹여 먹는 막대사탕(칵테일 슈가)이 남편 혹은 아내 몰래 감쪽같이 외도를 즐기는 남녀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다.‘그 남자’가 불륜현장에서 받은 사탕을 아내에게,현모양처인 줄 믿었던 그 아내가 다시 남편 아닌 남자에게 건네는 일탈의 과정에서 위선적 결혼제도가 앙상한 뼈대로 물러앉는다. 오랫동안 은밀한 관계를 가져온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언하자 남자가 조롱하듯 뱉는다.“결혼은 겉으로만 견고한 제도일 뿐이야.오히려 그 외적인 견고함 속에서 내적인 자유의지는 더욱 강렬해지지.제도가 너의 의지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스카프’‘넥타이’ 등 이름을 갖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익명성,돌고 돌던 사탕이 맨처음 건넨 여자의 손에 되돌아오는 대목 등으로 작가는 풍자정신을 절묘하게 은유해냈다. 결혼을 희화화하는 작업은 ‘너의 목소리’에서도 이어진다.남편 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가 아닌 기묘한 욕망에 빠져드는 여자의 이야기다.현란한 기교없이 정교한 문장을 구사하기로 정평난 작가는 현대문명의 그림자 쪽으로도 진지한 시선을 보냈다.‘저기 내가 걸어간다’편에서는 컴퓨터통신이 “획일성의 원형감옥 안에서만 떠다니는 닫힌 자유”임을 환기시킨다.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 이력이 있는 작가는 1995년 단편 ‘떠오르는 섬’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해 등단했다.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장편 ‘아름다운 여름’ 이후 ‘여자의 계절’‘현기증’‘유리바다’ 등을 내놓았다.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시네마 천국]13일개봉 SF영화 ‘리딕’

    SF영화의 배경인 가까운 미래는 왜 대부분 암울한 풍경으로 그려지는 걸까.영화 ‘리딕’(The Chronicles of Riddick·13일 개봉)도 음침하긴 마찬가지다.아마도 인간이 거쳐온 역사를 투영하는 시선에 포함된 강한 비판의식이 어두운 미래의 모습으로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역사상 최고의 범죄자인 리딕(빈 디젤)은 현상금 사냥꾼의 표적이 돼 쫓기는 몸.하지만 몇 명의 사냥꾼만으로 그를 잡으려는 건 영화 속 대사처럼 리딕에 대한 모독이다. ‘빈 디젤표 액션’답게 영화는 초반부터 리딕의 놀라운 몸놀림을 보여준다.그는 이어 현상금을 건 자를 찾아 헬리온 행성으로 가고 그곳에서 네크로몬거의 습격을 받는다. 우주의 모든 종을 개종시켜 하나의 종족인 네크로몬거로 만들려는 이들의 모습은 파시즘을 비롯,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되풀이되어온 독재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다.인간을 기계로 세뇌시켜 획일화시키는 모습은 섬뜩하고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지만,영화적 설정으로는 진부하다. 리딕은 네크로몬거에 유일하게 맞설 퓨리언족의 마지막 생존자.네크로몬거로부터 도망친 리딕은 5년전 헤어진 잭(알렉사 다발로스)을 찾아 일부러 사냥꾼들에게 납치돼 크리메토리아 행성에 위치한 지하감옥 슬램으로 간다.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으로 여전사로 변신한 잭과 재회한 리딕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빛이 가득한 헬리온 행성,낮에는 700도가 넘고 밤에는 영하 300도까지 떨어지는 죽음의 별 크리메토리아 등 영화 속 공간은 경이롭다.하지만 ‘스타워즈’류의 SF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림의 티가 너무 나는 정교하지 못한 화면에 실망할 듯. 저예산영화인 ‘에일리언2020’(원제 Pitch Black)의 후속작이라지만 설명이 너무 없어 내러티브가 엉성한 느낌을 주는 것도 흠이다.전편을 소수만 감상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할리우드에서 1억 40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이번 작품은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지녀야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단선적인데 인물은 복잡한데다 관계도 모호하고,리딕의 탈출과정도 석연찮게 묘사돼 재미를 반감시킨다.게다가 선악을 뛰어넘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과 서서히 조여가는 공포감을 감각적인 화면으로 그려낸 전편의 독창성도 많이 고갈된 느낌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이름으로 악을 제압한 뒤 또다시 그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 순환적 구조는 현대사회와 역사에 대해 허를 찌르는 은유로 읽힌다.연출은 데이비드 토이 감독.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김태정 글

    새로운 감성의 작가를 만날 때는 언제나 설레게 된다.더구나 틀 지어지지 않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독특한 작품을 들고 세상에 나올 경우는 특히 더 하다. 김태정(41)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사 펴냄)을 읽다보면 시인의 모습이 몹시 궁금해진다.등단 후 13년 동안 들인 공이 절실하게 읽히는,고른 수준의 작품들이 우선 궁금하고 그 속에 스민 ‘무공해 삶’ 또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시집 속 여백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김태정의 의식을 따라가면 최근까지도 “286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이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의 삶이 어렴풋이 느껴진다.그 윤곽을 더듬는 과정은 자본에 오염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만가지 잡념들이 콩 튀듯 팥 튀듯”(‘별밭에서 헤매다’)하는 시인의 머리 속에는 가파른 현대사와 개인사가 공존한다.386세대인 시인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낮엔 공장을 다녔고 밤엔 야간대학을 다닌 모양이다.남들이 책에서 발견한 세상의 모순이 시인에겐 생활이었으니 한때 변혁의 꿈을 꾼 것은 당연하다. 이후 세상이 바뀌면서 남들이 앞다퉈 화해를 모색할 때 시인은 그게 힘들었나보다.“그 ‘적당히’가 적당히 안되는 불온한 시인이여”(‘샤프로 쓰는 시’)라거나 “곧을 태 곧을 정,까짓거 대나무처럼 살면 될 거 아닌가 뜻도 모르는 채 내 이름 석자에 온 생을 맡겼습니다.”(‘봄산’)라고 슬쩍 들려준다. 당연히 이런 ‘날 것의 자존심’은 변신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상처를 입는 법.시인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그려보이지는 않지만 시집 곳곳에 “삭이지 못할/시퍼런 상처”의 흔적을 보여준다.오죽하면 만만치 않은 삶의 고독과 상처를 겨울산에 나누려고 할까?(‘겨울산’) 그러나 “길들여진 걸음으로는/차마 한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는”게 체질인 시인은 “곧고 곧아라 삶도 사랑도,내 이름대로만 살면 될 거 아닌가 겁도 없이”(‘봄산’)라고 다짐한다.그래서 봉지쌀을 먹고 실밥을 따는 노동의 세월을 거치고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될 글”(‘궁핍이 나로 하여’)을 쓰는 빈곤 속에서도 마음은 더 풍요로운 삶을 이어간다. 세월에 단련된 시인의 노래는 자신에게만 엄격하지 타인에게는 너그럽다.야간대학 동창생 엄고만의 삶을 따스하게 바라보거나 “늦게 나온 별처럼 깜빡깜빡/고단한 두 눈이 졸음으로 이울고”있는 노동자가 “거친 손으로 달구어진 아이롱”에서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을 본다(‘해창물산 경자언니에게’). 이런 작품세계를 일컬어 시인 정우영은 장문의 해설과 함께 ‘민중서정시’라 이름붙인다.또 시인 노향림은 “풍자와 은유를 적절히 교접시킨 그의 시는 아무리 긴 시라도 짧은 듯 끝까지 놓지 않고 읽게 만든다.”고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시는 소설보다 몸이 작아서 아무래도 자기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는 한 평론가의 말은 김태정을 염두에 둔 듯하다.이윤 창출이란 괴물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자본주의 체체 안에 살면서 그 마저 부인하려는,이 아나키스트와도 같은 시인의 염결성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아침이슬/우득정 논설위원

    ‘전환시대의 논리’‘역사란 무엇인가’‘선구자’,그리고 ‘아침이슬’.1970년대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다.‘전환시대‘와 ‘역사란‘을 읽고 처음으로 자신이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선구자’와 ‘아침이슬’을 합창하면서 까닭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곤 했다.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훌라송’이었다.하지만 대학가에서 조금이라도 불온한 조짐이 있는 집회 움직임이 있으면 즉각 경찰이 교내 깊숙한 곳까지 진입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막상 스크럼을 짜고 ‘훌라송’을 불렀던 기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반항정신을 키운다는 이유로 곧 금지곡이 되긴 했지만 어느 술자리에서건 마지막을 장식한 합창곡은 항상 ‘아침이슬’이었다.‘태양은 묘지 위에‘라는 가사가 긴급조치로 지탱되던 유신시대를 은유한 것으로 해석한 정권 담당자들의 제발 저림으로 인해 ‘태양은 대지 위에‘로 바꿨던 것으로 기억된다.그러나 어느 누구도 ‘묘지’를 ‘대지’로 바꿔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자그마한 저항,거부였던 셈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국가 정체성 위기를 거론하며 청와대와 여권을 향해 포문을 열자 유신시절 대학을 다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돌격 선봉대를 자임하고 나섰다고 한다.스스로 이름하여 ‘아침이슬 세대’라나.유신과 대척점에 있는 상징적인 용어가 ‘아침이슬’인 점에 착안한 듯하다.또 박 대표와 똑같이 유신시절에 대학을 다녔지만 박 대표는 유신의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자신들은 칼날 앞에서 굴종과 침묵을 강요당했음을 시위한 것이리라.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까지 정체성 공방에 가세하면서 여권은 25년 전에 숨을 거둔 유신 망령을 되살리기에 안간힘이다.요즘 386에 이어 아침이슬 세대까지 개혁의 선봉장인 양 목청을 높이고 나서자 유신 항거 경력이 있는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그동안 개혁을 하고 싶어 어떻게 참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자신은 온몸으로 유신에 저항할 때 당신들은 출세를 위해 도서관에 박혀 있지 않았느냐는 비아냥이 깔려있는 말이다. 지금 정치권은 정체성 공방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으나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무더위만큼이나 짜증스럽다.정치인들에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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