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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진 교수가 본 ‘의식의 기원’

    송영진 교수가 본 ‘의식의 기원’

    ‘의식’이란 잠에서 깨어나면서 나를 의식하게 하고 이에 대응하여 주의에 의해 사물들을 구별하며, 그럼으로써 사물들에 대한 나의 행위를 준비하게 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을 지닌 것으로, 즉 분별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향적 의식은 ‘…에 관한 의식’으로서 다른 한편은 정서나 감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이나 정서는 무의식(비의식)에 토대를 두거나 공존한다는 사실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으로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즉 의식에는 분별력과 정서는 물론 무의식의 공감력이 공존하고 있다. 더 나아가 다윈 진화론 이후 인간의 마음인 의식은 현대 과학이나 심리학에서 진화되고 발생하는 현상으로 탐구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줄리언 제인스는 이런 의식은 언어의 문체론적 기능인 은유적 기능에 의해 공간이나 신체에 유비된 ‘현대적’ 인간의 것으로서 내성 가능하나 인지와 같은 것이 아니고 더욱이 감관·지각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이나 과학이 탐구하는 의식이 경험, 학습, 추론, 판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견해는 물론, 데카르트 이후 심신관계에서 다루는 정신이나 의식에 관한 모든 이론, 인과적 영향력 없는 부수현상으로 보는 과학적·합리적 견해를 거부한다. ●언어와 무의식 연계 탐구 그는 인간의 의식이 ‘언어’ 사용에서 기원하며, 더 나아가 인류 선조의 옛 정신 체계는 두 엽(양원적:bicameral)으로 된 인간의 두뇌처럼 신의 소리를 청종하는 것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좌뇌에서만 언어적 기능이 있는 현대인의 의식은 인류 역사의 한 특정 기점이었던 양원적 구조의 소멸시기와 연계되어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20세기 최고 학문적 성과 이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영향력은 언어를 무의식과 연계하여 탐구하는 현대 인문학에서 프로이트에 비견되며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로 꼽힌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언제나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제인스는 그것은 의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옛 인류는 ‘의식’을 갖지 않은 채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2부에서는 인간정신의 양원성에 역사적, 고고학적, 문화적 증거제시를 시도하는 박학을 과시한다. 여기에서의 관심 주제는 인간 의식의 양원성과 종교적 의식 그리고 신이다. 마지막으로 제인스는 현대인에게 관찰되는 정신분열증, 최면과 같은 정신 현상이나 현대의 종교현상을 양원정신체계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충남대 철학과 교수>
  • 스필버그의 뮌헨-누굴 위한 보복인가

    스필버그를 스필버그이게 하는 영화가 9일 개봉하는 ‘뮌헨’(Munich)이다. 세계 영화시장의 뭉칫돈을 긁어가는 ‘할리우드 미다스의 손’을 넘어 그에게 ‘통큰 명장’이란 이름표를 달아줄 작품으로 기억될만하다. ●1972년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 실화가 배경 외신의 호들갑과 달리 의외로 영화는 조촐한 화면규모와 차분한 서사구도를 갖췄다.1972년 뮌헨올림픽을 피로 물들인 팔레스타인 무장테러 사건이 극의 모티프. 세계를 경악시킨 실화에서 출발한 사실주의 접근법이 영화적 상상력과 묘하게 줄타기 하는 스릴러가 됐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오프닝 자막이 걷히기 무섭게 화면에는 테러리즘의 가공할 위협이 재연된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인질로 잡았던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무차별 살해하고, 이 과정은 전세계 TV로 생중계된다. 다큐멘터리풍의 내러티브를 짧고 긴박한 호흡으로 끝낸 영화는, 잠시 스릴러 본연의 흥미장치를 장착해 관객을 포섭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피의 보복을 결심한 이스라엘 정부가 정보기관 모사드의 비밀요원 애브너(에릭 바나)를 발탁해 테러범 암살을 지시하는 것. 테러 소재의 숱한 할리우드 영화들과 명백하게 차별점을 찍는 설정은 주인공의 캐릭터다. 출산을 눈앞에 둔 아내(아옐렛 지러)를 남겨두고 정부의 비밀작전을 수행하러 떠나는 애브너의 눈빛은 할리우드 영웅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뚜렷한 신념이나 자기확신 없이 떼밀리듯 피의 보복에 던져지는 주인공의 심리와 물리적 상황은 그 자체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유도장치이다. 이영화가 수동적 감상을 즐기는 관객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테러범을 제거할수록 더해가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 갓 태어난 딸과 아내를 향한 그리움 등 애브너의 심리동요를 통해 영화는 연신 해답이 간단찮은 물음표를 던진다. ●희생 강요하는 美 대테러정책에 화살 테러리즘을 소재로 했으니 대중성을 확보하는 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 작품으로 떼돈을 벌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본능적인 가족애와 복수의 정당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단순한 주변인물 구도, 화기(火氣)가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총격전, 극도로 자제된 배경음악 등이 무엇보다 그렇다. 스릴러의 잔재미를 느낄 기본설정들을 ‘소음’ 취급해버린 영화에 입맛을 잃어버릴 관객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만 접고 보면 영화의 진심을 읽는 건 시간문제. 애브너 일행이 정체불명의 조직에게 암살 역습을 받는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를 정치적 은유장치로 삼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비로소 명확해진다. 스크린에 들이댄 것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피의 역사이지만, 비판의 화살촉을 돌린 곳은 9.11테러 이후 전지구적 희생을 강요하는 미국의 대(對)테러정책이다. 주인공과, 그에게 다시 보복테러를 권유하는 정보기관 책임자(제프리 러시)가 등을 돌리고 걷는 마지막 장면에 세계무역센터가 직설화법으로 우뚝 서 있다. ‘헐크’‘트로이’의 에릭 바나를 새롭게 보는 즐거움도 있다. 껍데기 명분을 버리고 가족의 울타리로 돌아가는 소시민적 캐릭터에 근육을 줄이고 각을 다듬은 새 이미지로 부응했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유아·아동| ●북쪽나라 여우이야기(데지마 게이자부로 글·그림, 정숙경 옮김, 보림 펴냄) 흑백의 강렬한 목판화 그림이 눈길을 붙든다. 여우 한마리의 모험을 통해 인생의 흐름, 어른이 되는 과정을 압축미 있게 은유했다. 몇 자 안되는 짧은 글이지만 메시지가 강렬하다.5세 이상.8500원. ●가시내(김장성 글, 이수진 그림, 사계절 펴냄) 어른들의 편견을 무릅쓰고 갓을 쓴 남자로 변장한 여자아이가 적군을 물리쳤다는 옛이야기.‘가시내’의 어원이 ‘갓 쓴 애’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 역할에 편견을 두는 건 옳지 않다고 귀띔한다.5세 이상.9000원. |초등·청소년|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미하일 엔데 글, 베른하르트 오버딕 그림, 유혜자 옮김, 노마드북스 펴냄) 초등학교 6학년 국어교과서에 선정된 미하일 엔데의 동화. 곰돌이 워셔블은 주변의 동물들에게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본다. 단순하되 철학적인 주제가 사색의 골을 깊이 파놓는다. 초등생.9000원. ●에디 디킨스와 황당가족의 모험(전3권)(필립 아다 지음, 궁리 펴냄) 독특한 책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딱 좋을 청소년 번역소설.11세 소년 에디 디킨스의 모험에 주목하는 소설에는 온갖 그로테스크한 인물유형들이 등장해 영화를 보는 듯한 팬터지를 던진다. 초등 고학년 이상. 각권 7500원. |실용| ●호살암의 기회경영(어우양이페이 지음, 김준봉·이지현 옮김, 지상사 펴냄) 무일푼으로 시작해 무기, 생사(生絲), 약국, 전당포 사업을 하면서 천하를 누빈 홍정상인(洪頂商人) 호설암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상인으로 꼽히는 인물. 호설암의 세 가지 경영철학인 인재중심경영, 신용제일경영, 위기이용경영을 소개한다.“사람을 기용하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는 호설암의 말은 “나는 아직도 천재에 배고프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과 일맥 상통해 눈길을 끈다.1만원. ●다우이론(로버트 레아 지음, 박정태 옮김, 굿모닝북스) 투자이론의 고전인 다우이론에 대한 해설서. 다우이론은 주가의 흐름은 일단 방향을 정하면 주식시장 그 자체가 모멘텀을 잃고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꾸준히 그 방향으로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월스트리트저널 창업자인 찰스 H 다우가 1884년 다우존스 평균주가를 고안해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다우이스트’로 이름을 날린 저자가 다우이론의 용어와 개념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9800원. ●거친산에 오를 땐 독재자가 된다(김경준 지음, 에디터 펴냄)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위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보여준 열정과 도전정신을 살폈다. 치밀한 전략가와 앞서 나가는 혁신가의 면모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조명.1만원.
  • 儒林(512)-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

    儒林(512)-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 율곡이 스승 퇴계를 뵙자마자 올린 헌시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시에 나오는 수사(洙泗)는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를 가로지르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의 두 강줄기를 말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시냇물은 수사에서 나뉜 가닥’이란 구절은 퇴계의 학문이 공자의 도를 이어 받고 있음을 은유하는 표현이었으며 또한 ‘무이산(武夷山)’은 중국 복건성과 강소성에 걸쳐 있는 산으로 송나라 때의 대성리학자였던 주자가 살았던 산이었다. 주자는 이곳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제자를 받아들여 강학을 펼쳤었다. 중국의 명차 우롱차(烏龍茶)의 원산지이기도 한 무이산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손꼽힐 만큼 중국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명산인데, 주자는 바로 이곳에서 주자학을 성립하였던 것이다. 특히 주자는 무이산을 사랑하여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란 유명한 시를 남긴다. 이 시에서 ‘구곡에 다다르니 눈앞이 확연히 트이는데/상마(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뱃사공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이곳이 바로 인간세계의 별천지라네.’라고 노래함으로써 무이산이 자신의 이상향임을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율곡이 서당 앞을 흐르는 냇물을 ‘수수와 사수’에 비유하고, 서당 뒤의 산을 무이산으로 비유하였던 것은 퇴계가 바로 공자와 주자의 유림을 이어받은 유가의 종지(宗旨)임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자신을 ‘거친 물결(狂瀾)’이라고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무렵 율곡이 자신을 미친 물결처럼 광분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데없이 찾아온 젊은 청년 율곡을 받아들인 퇴계의 마음은 어떠하였음일까. 이미 퇴계는 ‘해동공자’라고 불릴 만큼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그러한 퇴계가 23세의 청년 율곡을 알고 있기나 하였음일까. 율곡이 훗날 9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이라고 불릴 만큼 천재였지만 아직은 이름 없는 백면서생. 이미 한성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에 첫 얼굴을 내민 등장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는 이미 율곡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퇴계가 자신의 제자였던 조목(趙穆)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일전에 서울에 사는 선비 이이(李珥)가 성산으로부터 나를 찾아왔었네. 비 때문에 사흘을 머물고 떠났는데, 그 사람이 밝고, 쾌활하며, 기억하고 본 것이 많고, 자못 우리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생이 두려울 만하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참으로 나를 속이지 않았네. 일찍이 나는 그가 ‘아름답게 문장을 꾸미는 시문(詞華)’을 너무 좋아한다고 들었기에 이를 억제하고자 일부러 시를 짓게 하지는 않았었네. 떠나는 날 아침 눈이 내렸기에 시험 삼아 음영(吟詠)을 하게 하였더니 즉석에서 몇 수를 읊었다네. 시는 그 사람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볼 만하여 지금 여기에 동봉하니, 읽은 후에 다시 돌려보내주었으면 좋겠네. 학문이 날로 새로워지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네.”
  • 재경부 영화감상… 외교부 ‘개콘파티’

    재경부 영화감상… 외교부 ‘개콘파티’

    정부 각 부처의 송년회 풍속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1차,2차,3차를 전전하는 ‘술판 망년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 공직사회에서는 최근 장관의 취향이나 부처의 특성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송년회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각 부처의 송년회 풍경을 한 데 모았다. 재정경제부의 송년모임은 문화적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난 28일 출입기자들과 과천청사 지하강당에서 한국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하고 만찬을 나누었다. 박병원 제1차관은 당초 실내악 연주를 듣자고 제안했으나 영화에 관심이 많은 한 부총리가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이날 ‘왕의 남자’ 관람에는 이준익 감독이 직접 나와 영화를 만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화질과 음향이 극장의 수준에 못미쳐 이 감독은 “내 영화를 다 망쳤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참석자들은 대부분 크게 만족해 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21일 서울 한남동 장관 공관에서 간부 및 출입기자들과 이른바 ‘개콘(개그콘서트)식 망년회’를 가졌다. 지난해에 이어 기자들이 선정한 외교부 10대 뉴스, 홍보관리관실에서 준비한 앙케트 조사 결과 등이 발표되면서 폭소가 이어졌다.6자회담 수석대표로, 자타공인 ‘은유’의 달인인 송민순 차관보는 ‘사이비 교주로 가장 어울리는 인물’1위로 꼽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7일 실·국장급 이상 간부 20여명과 부부동반으로 ‘마술쇼 송년회’를 가졌다.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씨의 마술쇼를 단체 관람한 것. 정 장관 등은 이날 공연장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한 뒤 마술쇼를 관람한 데 이어 카페를 찾아 티타임을 갖는 총 ‘3부작’의 송년회를 즐겼다. 티타임에서는 부부가 차례로 일어나 관람 소감을 나누고 건배를 제의하는 등 만족도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환경부는 해마다 송년회를 간소하게 치러왔다. 과일·떡을 차려놓고 직원들이 모여 담소하면서 한해를 정리하곤했다. 그런데 올해는 ‘특별 메뉴’가 추가됐다. 이재용 장관이 “마침 제철을 맞은 과메기를 마련해 나눠먹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낸 것. 환경부는 포항 현지에 130명분 가량의 과메기를 주문했고,30일 오전 택배로 건네받는다. 오전 11시 종무식이 끝나는 대로 과천청사 1층 회의실에서 ‘과메기 파티’를 갖는다.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은 간부들과 송년회를 갖지 않지 않는 대신 하위직을 중심으로 직급별 대표들과 송년 오찬을 나누었다. 지난 15일 정부중앙청사 구내식당에서 행자부직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송년회에 참석해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행자부 정책홍보관리본부 직원 100여명은 29일 서울 시내 극장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김명식 정책홍보관리관 등 몇몇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불우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송년회를 대신했다. 문화부는 28일 저녁 정동채 장관과 국·실장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사 뒤편의 한정식집에서 ‘전통적인’ 폭탄주 송년회를 가졌다. 정 장관은 노래를 절대로 안하는 것으로 유명한데도 이날은 자진해서 ‘비 내리는 고모령´ 등 3곡이나 부르며 흥을 돋웠다. 특히 지난 10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출장가는 길에 독일 선술집에서 이날을 위해 가져왔다는 위스키잔 3배 크기의 술잔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는 ‘애정’을 과시했다. 반면 ‘황우석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과학기술부는 송년모임을 대부분 취소한 채 우울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부총리가 연례적으로 국장급 이상 간부들과 갖는 송년회조차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출입기자단과 갖기로 했던 송년회도 무기 연기됐다. 부처종합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 극 ■ 지상의 모든 밤들 31일까지 혜화동1번지. 성매매특별법으로 당국의 단속을 피해 쫓겨다니는 업소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듬는다. 김낙형 작·연출, 이영숙 손용수 최영환 출연.(02)762-0010. ■ 영영 이별 영 이별 2월19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청계천 영도교에서 단종과 이별하고 한많은 인생을 살아온 정순왕후의 일대기를 그린 윤석화의 1인극. 김별아 작·임영웅 연출.(02)334-5915. ■ 그놈, 그년을 만나다 31일까지 정보소극장. 남녀의 우연적인 만남과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로맨틱 코미디. 이도엽 연출, 이재룡 최윤석 출연.(02)745-0308. ■ 육분의 륙 1월1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러시안룰렛 게임의 행위를 빌려 인간의 기만성과 허위의식을 고발. 이해제 작·연출, 유지태 장현성 출연.(02)541-4519. 뮤 지 컬 ■ 천국과 지옥 1월8일까지 게릴라극장. 그리스 신화속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신화를 비틀어 해석했던 오펜바흐의 오페레타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부활한다. 김현영 각색, 남미정 연출, 임정도 박채연 출연.(02)763-1268. ■ 록키 호러 쇼 1월15일까지 코엑스 컨퍼런스룸 기성문화와 위선에 정면도전하는 파격적이고 유쾌한 컬트 록 뮤지컬. 홍록기 연출, 김태한 조서연 출연.(02)516-1501. ■ 매직 카펫 라이드 1월15일까지 성균관대 새천년홀. 록밴드 자우림의 음악 30여곡을 드라마와 결합시킨 판타지 뮤지컬. 이해제 작·이현규 연출, 김선미 최재웅 출연.(02)747-2050. ■ 오!당신이 잠든 사이 1월8일까지 연우소극장.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슴 따뜻한 뮤지컬. 장유정 작·연출, 김혜성 작곡, 정새결 이주원 출연.(02)762-0010. ■ 유린타운 무기한 신시뮤지컬극장. 독점체제로 운영되는 화장실 사용권을 둘러싼 가상 현실을 통해 부조리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코믹 뮤지컬. 김재성 연출, 강필석 이학민 고명석 출연.1588-7890. ■ 헤드윅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강렬한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록 뮤지컬.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미 술 ■ 세화견문록 2월 21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설날 아침 새해의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는 내용을 담은 그림 ‘세화’(歲)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 16명의 현대판 세화도가 선보인다. 전통적 세화가 회화, 설치, 영상, 사진,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변신을 꾀했다.(02)580-1300. ■ 게오르그 바젤리츠 동판화전 독일 신표현주의를 이끌어온 대표작가의 동판화 시리즈 35점. 나무연작으로 독일의 전통성을 상징하는 나무를 실제 자연과 달리 거꾸로 표현된 은유적 형상으로서의 나무를 보여준다. 내년 1월10일까지 서울 잠원동 필립강 갤러리. (02)517-9092. ■ 빌브란트 특별전 20세기 최고의 심상 사진의 대가인 영국출신 빌 브란트의 사진 40점 전시. 대부분 빌 브란트가 40대 중반 실험적인 광각 렌즈로 원근이 왜곡되고, 디테일에 집중하거나 여성의 누드사진으로 그의 사진 정수이자 누드사진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내년 2월28일까지 서울 관훈동 김영섭사진화랑. (02)733-6331. 콘 서 트 ■ 제야음악회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무대. 선율과 함께 춤추는 불꽃놀이. 축제분위기로 꾸며지는 제야음악회의 장면들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 소프라노 문혜원, 바리톤 김관동의 화려한 협연무대가 이어진다.(02)580-1476. ■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송년음악회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99-1114. ■ 서울바로크합주단 송년콘서트 29일. (02)1588-7890. ■ 퀸테센스 색소폰 퀸텟과 함께하는 Farewell 2005콘서트 30일 호암아트홀. (02)1588-7890. ■ 신년음악회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1588-7890. 어 린 이 ■ 할아버지 보물창고 1월1∼22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삭막한 도심속 보물창고에서 벌어지는 할아버지와 어린 남매의 한바탕 대소동.(02)396-5005. ■ 우리는 친구다 1월1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 초등생 민호, 유치원생 슬기 남매와 이웃 친구 뭉치의 우정. 김민기 번안·연출, 이석호 김은영 출연.(02)763-8233. ■ 호두까기 인형 1월22일까지 웅진씽크빅아트홀. 크리스마스 이브날 맘씨 착한 마리와 호두까기 인형의 모험을 그린 가족뮤지컬.(02)739-8288.
  • 시바의 여왕…/이창식 옮김

    항상 그렇듯, 정식 기록으로 언급된 한 두줄에 살이 덕지덕지 붙은 게 바로 야사(野史)다.‘시바의 여왕’도 그렇다. 값비싼 물건을 잔뜩 싣고 가 이스라엘 솔로몬왕을 만났다는 ‘이국의 여왕’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사람들 입을 오르내리면서 어느새 매혹적인 신비의 여인으로 변신했다. 이 덕분인지 영화에서 시바의 여왕 역할은 늘상 손바닥만한 의상 몇 쪼가리만 걸치거나 가슴 큰 여배우의 몫이었다. ‘시바의 여왕,3천년 잠을 깨다’(이창식 옮김, 김영사 펴냄)는 바로 이 시바의 여왕의 흔적을 20여년간 쫓아다닌 미국의 고고학자 니콜라스 클랩이 쓴 추적기다. 시바의 여왕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양하다. 솔로몬왕과 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에티오피아의 왕이 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발키스’라는 이름의 실제 여왕이었다는 설, 실제 여왕이라기보다 여신의 은유라는 설도 있다. 저자는 20여년의 추적 결과 시바의 여왕은 실존했다고 결론짓지만, 대신 해석을 달리 한다. 저자가 보기에 솔로몬왕은 거대한 왕국을 다스린 지혜의 왕이었다기보다 조그만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부족의 왕에 불과했던 반면, 시바의 여왕은 거상으로서 엄청난 부를 소유했던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왕을 만난 것도 지혜에 반해서가 아니라 통상의 자유 때문이었다고 본다. 동침 가능성에 대해서도 유목상인들의 관례나 전통을 감안한다면 그리 이색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그러나 후대 성서 제작자들은 여성에다 이교도인 시바의 여왕을 깎아내리고 대신 그들의 조상 솔로몬왕을 드높일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책 읽는 동안 제일 눈길이 가는 대목은 추적의 열정. 아무래도 저자는 성서의 진실성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약간 껄끄러운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는 고고학의 오랜 격언으로 봐서 굳이 비판만 할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상고사 논란과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니콜라스 크랩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활동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2만 29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명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처럼 율곡이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으로 보고 이 세상을 가낭선(賈浪仙)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 무렵 율곡의 마음 속에 미친 바람과 성난 파도와 같은 인생의 질곡(桎梏)이 얼마나 그를 구속하고 있었던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시습(金時習).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자 그 길로 삭발을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던 음유시인. 율곡은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이라고 노래하면서 현실과 이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한때는 중이 되어 무본(無本)으로 불리었다가 환속하여 시인이 되었던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를 견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은유하고 있음인 것이다. 어느 날 시인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천천히 장안의 거리를 지나면서 시 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절친한 친구였던 이응(李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가낭선은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여(題李凝幽居)’라는 시제를 정해 놓고 다음과 같은 오언율시를 짓기 시작한다.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도 드물고 풀숲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통한다. 새는 연못가에 나무 위에서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閑居隣竝少 草徑入荒園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그런데 시인 가낭선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가낭선은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僧推月下門)’라고 문장을 썼으나 갑자기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로 고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을 민다(推)’로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문을 두드린다(敲)’로 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고개를 숙이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민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두드린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그것 참 어려운 일이도다.” 그때였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벽제소리가 들려 왔다. “비켰거라, 어느 안전이라고 무례하게 길을 막느냐. 네 이놈, 물렀거라.”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고관의 행차 앞을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관대작이 타고 가던 행차를 마주하면 즉시 길을 비키고 타고 있던 말이나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부복하는 것이 법도였으므로 가낭선은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더욱이 길을 가던 사람은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었던 한유(韓愈). 그는 뛰어난 유학자였을 뿐 아니라 당의 도읍 장안의 경조윤(京兆尹) 벼슬에 올라 있던 최고의 권신이었던 것이다. 당황한 가낭선이 말에서 내리자 한유는 자신을 막은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 가도임을 전해 듣고 그를 불러 자신의 곁에 오도록 한 후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가도는 시를 짓는 도중 한 문장에서 가로막혀 그것에 신경 쓰고 몰두하느라 벽제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변명하였다.
  • [문화마당] 인터넷 메신저와 예절/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을 빼고는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메일로, 메신저로 문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사를 공유한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정확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것 같다. 우리 사무실도 가끔 인터넷이 불안정할 때면 업무가 잠깐씩 멈출 때가 있다. 전화나 팩스로, 때론 직접 찾아가 일을 진행하던 것은 정말 옛날 일이 되었다. 일을 하는데 점점 편리하게 되어 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혹자는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다고 하지만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감정을 교류한다. 특히 메신저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누구와도 연결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메신저로 의사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눈다. 얼마 전 어떤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들이 전화를 하기보다는 문자만큼이나 메신저로 대화하는 걸 더 즐긴다고 한다. 각종 이모티콘으로 애교있고 장난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적게는 몇 명, 많게는 몇 백 명씩 대화 상대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기업들은 이벤트나 홍보의 목적으로 메신저 대화명을 사용하기도 하니 가히 ‘전 국민 메신저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메신저는 그 대화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기분, 그리고 관심사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상대방의 컨디션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대화명에 따라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기분을 알아보기도 한다. 월드컵 때는 전 국민이 ‘대한민국∼’ 이라는 대화명을, 여중생 탱크 사고 때는 메신저 대화명 앞에 검은색 리본을 달아 조문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론 이처럼 개방되어 있는 메신저 대화명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하다. 업무를 하다가 약간의 다툼이 있었거나 의사소통이 안됐을 경우, 드러내 놓고는 아니지만 이니셜을 사용해서라든지 은유적인 표현으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심하게는 직설적으로 누군가를 욕하는 사람도 보았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 단어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거나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다. 메신저라는 것이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지만 그래도 메신저 상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메신저 대화명에 자신이 다니던 회사 사장을 비방하는 내용을 사용했다가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경우가 있었다.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이 포함된 대화명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라 할 수 있는 메신저 대화 상대방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상태에 놓아둔 행위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것이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굳이 이런 예가 아니더라도 메신저가 공개 일기장처럼 자신의 기분 상태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대화명이 때론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통화 예절, 인터넷 통신 예절이 사회예절의 한 범주로 자리잡았듯 이젠 메신저 대화명 예절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연말이다.2005년 한 해를 마감하며 메신저 대화명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짧은 한 마디가 온라인 상으로 연결된 대화 상대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준다면 그 역시 작은 기쁨이 아닐까.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
  • [이주일의 어린이책] 너는 없지만 계속 생각할래

    은유가 아주 깊어서, 초등 저학년까지도 읽으면 좋을 에릭 바튀의 새 그림책을 골랐다. ‘실베스트르’‘만약 눈이 빨간색이라면’ 등으로 열혈(?)엄마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그림 작가 에릭 바튀. 예의 그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붓터치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이끄는 그림책이 ‘마음을 움직이는 모래’(토마 스코토 글, 함정임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이다. 미리 귀띔하지만, 이 책은 한두번 읽어서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유가 깊다. 그런 만큼 거듭 읽을수록 책의 진의(眞意)가 진국으로 우러난다는 점은 대단한 미덕이기도 하다. 쓸쓸하고 고요한 사막에 혼자 서성이는 ‘나’.“네가 쌓은 돌담이 그대로인지 보러 간” ‘나’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너’가 무척 그립다.‘너’가 누구인지는 독자들도 끝까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그래서 ‘나’의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다는 것 밖에는.“눈에 모래가 들어갔을 때 말고는 울지 않는다.”며 씩씩한 척하는 ‘나’의 깊은 슬픔이 책장 밖으로 출렁출렁 넘쳐나올 것만 같다. 이별과 죽음에 관한 명상과 성찰을 느리고 조심스럽게 에둘러 권유하는 책이다.‘너’와의 이별(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독자들 마음까지도 찡하게 때린다.“엄마는 네가 돌담에서 떨어졌다고 말씀하셔. 아빠는 네가 모래 위에 쓰러졌다고 하시고. 난, 네가 햇빛에 살갗을 태우기 위해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아픔을 달래려 애쓰는 ‘나’의 몸짓이 안타깝다.‘너’가 남기고 간 돌담을 덮어버리려 하루종일 모래를 긁어모은 ‘나’는 이렇게 말한다.“사람들은 무엇이든 눈에 안 보이면, 잊게 되는 것 같아.” 잔잔하고도 애틋한 감상에 젖어있던 책은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 껑충 도약을 한다. 슬픔을 딛고, 작은 성찰을 끝내고….“좋아, 이제 그만 가야겠어!…그래도 넌 빨리 돌아와야 해. 어쩌면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 그 때는, 내가 너무 커 버렸을지도 몰라.” 독특한 검정색 책 표지, 강렬한 붉은 색과 시원시원한 여백의 그림들. 소설가 함정임이 번역했다. 짧은 글, 깊은 성찰.‘글꾼’이 글을 옮긴 이유를 알만하다.5세 이상.1만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2일개봉 무라카미류 ‘도쿄 데카당스’

    2일개봉 무라카미류 ‘도쿄 데카당스’

    수입추천 불가 판정, 다시 세번의 제한상영가 판정 끝에 2일 개봉하는 ‘도쿄 데카당스’는 보고 느끼는 일차원적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문제작이다. 국내에도 두꺼운 팬층을 거느린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류의 1992년 작품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작가 출신 감독의 노골적인 실험정신과 고발의식이다. “아무 것도 잘 할 줄 아는 게 없어” 삶을 체념한 SM클럽의 콜걸(니카이도 미호)은 낯선 남자가 기다리는 호텔방을 전전한다.SM기구들로 가득찬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의 얼굴은 희망없는 진공상태를 견뎌내는 삶에 이골이 난 듯 무표정하다. 도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방의 통유리 앞에 올라서서 여자는 남자의 원색적 요구대로 벗은 몸을 움직인다. 영화 속에서 질서와 상식은 한순간도 의미가 없다. 시간(屍姦)의 욕망에 이성을 잃고 허덕이는 남자, 피학(被虐)의 상황에서 쾌감의 절정을 맛보려는 남자 등이 엮는 장면들 앞에서 관객은 불쾌할 만큼 불편해진다. 콜걸의 소변을 마시고 개처럼 바닥을 기며 여자의 구두를 핥는 성도착자들이 사회적 명망가로 밝혀지는 대목들로써 영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감독은 이 말썽많은 영화를, 급성장한 전후 일본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판하는 장치로 삼은 듯하다.“자랑스럽지 못한 돈이 불안해서 마조히즘을 즐기는 나라”라는 콜걸의 대사로 일본의 단면을 정의한다. 세상과의 결별을 준비하는 듯 틈틈이 수화를 연습하고 점쟁이의 말대로 토파즈 반지를 끼고 실낱같은 행운을 놓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패배자를 가장 잔인하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증언한 은유이기도 하다. 수위높은 동성애, 여주인공에게 마약을 주사하는 장면 등 6분8초 분량의 7개 장면을 삭제했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동유첩 東遊帖/이충구·이성민 옮김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를 보기 전에 산수를 유람하고 견문을 넓혀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먼저 깨닫고자 했다고 한다. 권력을 향해 내달리기 전에 장대한 자연의 모습을 관조하며 세상 보는 눈을 트이게 하려는 것이었으리라. 이같은 산수유람에 금강산만한 데가 있었을까? 천하절경 금강산 기행은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열병처럼 번져 있었다. 금강산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서 선비들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여행을 떠날 때 지필묵을 준비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가는 곳마다 감흥이 떠오르면 그것을 시로 읊었으며 화공에게는 그 실경을 화폭에 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시와 그림을 곁들인 화첩을 만들어 두고 두고 산수를 즐겼다. ‘동유첩 東遊帖’(이충구·이성민 옮김, 성균관대 출판부 펴냄)은 조선후기 형조판서를 지낸 이풍익(1804∼1887)이 관직에 오르기 전 금강산을 유람하고 펴낸 화첩이다. ‘나는 산수유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온 우주를 다 유람해 보고 싶었다.’이같은 마음으로 그는 1825년(순조 25) 8월4일 스물 한 살의 나이에 금강산 기행에 나섰다. 등에 진 바랑에 든 것은 당시(唐詩) 몇 권과 지필묵뿐. 서울에서 영평·회양을 거쳐 통천까지, 그리고 고성의 삼일포, 신계사, 백운대, 표훈사, 장안사를 거쳐 다시 서울까지 돌아오는 여정에서 그는 12편의 유람기와 50여편의 시,20여편의 풍경기를 남긴다. ‘∼표훈사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더니 범패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갖가지 악기 소리가 쿵쾅거렸다. 아뿔사! 깊은 산중에 구름이 바람을 몰고 오는 소리였다. 억만그루 소나무에 스치는 성난 바람소리였다.’ 표훈사에서 잠들기 전의 밤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옥류동에선 다음과 같이 그 감흥을 적어 놓았다.‘∼시내엔 징검다리 자연이 만들었고/절벽에 걸린 폭포 옥구슬을 떨군다.∼나그네 마음 스님이 진작에 알아채고/징 메고 망치 들고 앞장서 걸어가네.∼비스듬 바위에 내 이름 새겼으니/성난 폭포 세찬 여울에 씻기고 깎이겠지/∼오늘부터 내꿈이 맑고 깨끗하기를.’ 북한 관광길이 열리면서 금강산에 갔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절경을 이룬 바위마다 새겨진 각종 한자 이름들. 이풍익 같은 선비들이 남긴 것이로구나.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곳에 갔을 때 이름을 남기는 ‘전통’은 매한가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동유첩은 단발령을 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고개에 오르면 금강산이 멀리 바라보이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금강산에 숨어 살고 싶어진다 해서 고개 이름도 ‘단발령’(斷髮嶺)이다. 이풍익은 단발령을 넘으면서 ‘명산과의 이별이라 하마 그리웁나니/저 멀리 원기(元氣)는 더욱 짙어졌구나’란 시를 남긴다. 금강산의 절경뿐만 아니라, 금강산이 머금은 천지의 기운까지도 마음속에 들어와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동유첩은 금강산의 대표적인 경관을 묘사한 실경산수 28점을 실었다. 여기에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 등이 동유첩의 의미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조선시대 선비들의 금강산 기행에 대한 해제를 붙였다. 동유첩의 그림들은 170여년이나 된 것들로 그 구도와 완벽함과 채색의 정교함이 돋보인다고 조선미 교수는 평가한다. 이 그림들은 지금까지 이풍익이 직접 그린 것으로 전해왔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기록이 없고, 그 솜씨나 그림의 구도, 그림 속의 인물 수와 모양 등이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군첩’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풍익이 전문 화공에게 이를 베껴 그리게 했을 것이라고 조 교수는 추정했다.2만 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소재 측면에서 볼 때 1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제작 싸이더스FNH 등·감독 윤태용)는 그대로 한국판 ‘빅’이다.13세 주인공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33세 어른으로 건너뛰어, 사랑과 감동이 어우러진 해프닝을 엮어간다. 키치적 냄새를 마구 풍기는 시중의 포스터 앞에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맨먼저 요약해줄 이 영화의 정보는, 시간에 최면을 걸어 순정한 사랑을 웅변하는 팬터지 멜로라는 사실이겠다. 80년대로 시계바늘이 옮겨간 화면 속 주인공은 시계수리점을 꾸려가는 미혼모 엄마(조민수)와 단둘이 사는 열세살 소년 네모.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네모는 장래희망을 “미혼모한테 장가드는 것”이라며 능청 떠는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이다. 영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서러운 젊은 엄마와 철부지 네모의 동거를 전반부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네모는 시계점에다 새로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염정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생떼를 쓴다. 나른한 동심의 팬터지에 진중한 무게중심의 추를 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모가 만화방 여자의 아들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든 이후부터 드라마의 시계는 마법에 걸린다. 저승 문턱에 간 네모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어른(박해일)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온다.‘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뇌사상태에 빠져 저승을 넘나드는 네모 아버지의 분열적 존재는 왜곡된 80년대 정치현실을 발언하려 고민한 설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감각을 무시했다는 인상이 짙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며 90대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네모의 순정이 구체적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어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다. 동화를 뛰어넘은 사려깊은 팬터지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끝내 ‘그냥 동화’로만 주저앉은 빈약한 드라마는 난감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 쪽에 놓였다. 시간을 변주한 과감한 소재적 접근(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만화방이 있는 공간적 배치까지 신경썼다.)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색감 등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은유 능력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바람만이 아는 대답/양은모 옮김

    지난 8월 영국 잡지 ‘언컷’은 대중문화 스타들의 설문을 통해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 작품’을 선정했다. 최근 100년 동안 음악, 영화, 책,TV프로그램 등이 총망라된 가운데 그가 1965년에 발표한 노래가 1위에 올랐다.‘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로버트 알렌 짐머만, 우리에게 친숙한 예명은 밥 딜런이다. 그는 흔히 노래하는 시인으로 통한다. 깊은 울림이 있는 노랫말은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 또 수년 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며 대중음악의 예술성에 대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는 “밥 딜런이 다른 유명한 시인과 다른 점은 그의 시들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저항과 자유, 평화의 음유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그가 전설로 박제되고 있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양은모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이 최근 국내에 출간된 것. 원제는 ‘크로니클스 볼륨 1’(연대기).3권으로 예정된 자서전의 서막이다. 표지 사진은 1961년 밥 딜런이 음악이 하고 싶어 뉴욕에 왔을 당시의 타임스 스퀘어 모습. 표지처럼 음악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초창기 이야기에서부터 인기를 얻고, 팬들이 밀려오자 가족을 지키려고 총까지 준비했다는 일화 등등 전설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내비친다. 흔히 대필 작가가 쓰는 경우가 많은 여타 자서전과는 달리 이 책은 밥 딜런이 3년 동안 손수 수동식 타자기를 두들겨 가며 기억의 창고를 열었다. 그의 노래에 넘쳐나는 상직적인 표현이나 은유는 없다. 아주 솔직 담백하다.92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가슴 짠한 네쌍의 이별이야기 20일 개봉 ‘새드무비’

    가슴 짠한 네쌍의 이별이야기 20일 개봉 ‘새드무비’

    그림자가 있어 빛은 더 밝을 것이다.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은 그래서 더 뜨거울 것이고.20일 개봉하는 ‘새드무비’(제작 아이필름)는 직설적인 제목처럼 관객을 울려보겠노라 작정하고 덤빈 ‘이별 영화’이다. ●관객 울리려고 작정한 이별영화 우유부단하고 성실한 소방관 진우(정우성)를 바라보는 여자친구 수정(임수정)의 마음은 늘 편치가 않다. 방송국 수화통역사인 그녀는 불길에 몸을 던져야 하는 애인이 안쓰럽지만, 비 소식을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해줄 게 없다. 놀이공원 공연단원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수정의 여동생 수은(신민아)에게도 사랑이 찾아와 있다. 놀이공원의 화가 상규(이기우)를 좋아하는데, 얼굴의 화상 자국을 보여주기 싫어 인형가면을 벗지 못하고 빙빙 맴돌 뿐이다. 결혼을 앞두고 사소하게 티격태격하는 남녀, 장애를 의식하지 않는 명랑하고 밝은 수은의 사랑이야기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멜로형 드라마의 요건을 갖췄다. 애초에 옴니버스극으로 출발한 영화는 자매의 이야기에다 두 커플의 사연을 보탰다.3년째 ‘백수’로 고시원을 전전하는 하석(차태현)과의 미래가 없는 만남에 질려가는 할인매장 계산원 숙현(손태영),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젊은 엄마(염정아)와 담담히 이별을 준비하는 여덟살짜리 아들(여진구). ●참신한 소재·아이디어는 부족 네 개의 미니 드라마로 연결된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이별의 조짐을 찾아내 보라고 권유한다.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진우, 떠나는 애인을 끝내 되돌려 세우지 못하는 가난한 하석, 수은의 마음을 알면서도 유학을 떠나야 하는 상규, 죽음 앞에서 서로의 진심을 읽는 모자(母子). 이별의 길목에 서서야 비로소 완전연소하는 사랑의 속성을 확인시키기까지 이야기를 섞바꿔 전개하는 것으로 화면이 채워진다. 그러나 나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울려야겠다는 지나친 강박이 스크린 밖으로까지 넘쳐 나온다. 눈물샘을 자극받기도 전에 관객이 먼저 부담스러워지는 ‘감정과잉’ 상태다. 스파링 파트너로 두들겨 맞는 하석을 강조한 장면, 불속에 갇힌 진우가 폐쇄회로 카메라에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 등은 이 영화가 얼마나 은유에 약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들이다. 예측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영화에는 설상가상 참신한 소재나 아이디어 장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잠시잠깐 현실 밖으로 관객을 불러내 꿈을 꾸게 해주는 ‘영화적’ 캐릭터도 없다. 돈을 벌어야 하는 하석이 이별선언을 대신 해주는 인터넷 이별대행업을 차려 쫓아다니는 설정이 인상에 남을 정도. ●임수정·신민아 등 연기도약 확인 물론 충무로 빅스타들이 줄줄이 나온 영화에는 그들 하나하나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특히 임수정 신민아 이기우 등 어린 배우들의 연기도약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 그러고 보면 톱스타들의 무더기 출연은, 이렇게 잔잔한 드라마에선 어쩌면 ‘원죄’였을 수도 있겠다.‘그만한 재료로 이 정도의 밥상밖에?’식의 높은 기대치에 흠집들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S다이어리’의 권종관 감독이 연출했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새영화] 소리없이 찾아온 ‘첫 사랑의 통증’

    관객이 등장인물에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반영을 하거나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영화장르는 멜로일 것이다. 점액질의 격정적 사랑이든, 순애보를 들깨우는 순정한 사랑이든 그것이 멜로의 틀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까탈을 꺾고 후해진다. 천번 만번은 우려먹었을 고만고만한 이야기 틀거리에 번번이 ‘그렇다치고’ 괄호를 쳐주며 감정을 맡기는 게 관객이니까.●`해피엔드´ 정지우 감독 5년만에 메가폰29일 개봉하는 ‘사랑니’(제작 시네마서비스)도 그렇다. 서른살의 학원강사가 열일곱살의 수강생과 사랑에 빠진다는 도발적 외형만 아니라면 딱히 특별할 게 없는 통속멜로다. 그런데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으면서 자기실험을 해보려 벼른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카뻘되는 소년을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감독은 애시당초 도발할 의도가 없었다. 잠깐 불온한 상상을 부추길 뿐, 정작 영화에는 ‘해피엔드’의 가파른 호흡 대신 사랑(좀더 정확히는 연애감정)에 관한 나른한 은유가 넘쳐난다.‘코미디의 여왕’ 소리를 듣는 김정은을, 정색을 한 멜로에 기용한 것도 관객쪽에서 볼 때는 감독의 실험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꼭꼭 영양제를 챙겨먹고 외제차를 몰고 다닐 만큼의 여유도 있는 서른살의 학원 수학강사 인영(김정은). 그런 여자에게 고교시절 첫사랑과 꼭 닮은 17세의 학원생 이석(이태성)이 사랑으로 다가온다.●열세살 연하의 제자와 거침없이 사랑 열세살 연하의 이석에게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인영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영화는 여념이 없다. 미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틈을 주지 않고(극중 인영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 관객을 등장인물의 감정 깊숙이 밀어넣는 감독의 기민함이 돋보인다. ‘해피엔드’의 강렬했던 도입부 시퀀스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솔직히 이 영화는 싱겁고 빈약한 느낌을 준다. 단조로운 인물구도, 인영-이석 사이에 걸쳐진 감정 말고는 딱히 잡히는 게 없는 밋밋한 서사는 ‘영화제용’이란 오해를 살 만큼 나른하다. 그러나 그것이 감독의 계산된 포석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이다. 멈칫하는 이석을 “따라올래? 너 후회할지도 몰라.”라며 모텔로 이끌고, 오랜 친구이기도 한 동거남(김영재)에게 “나, 걔랑 자고 싶어.”라고 말해 버리기도 하는 인영은 자기감정에 대단히 충실한 여주인공 캐릭터. 주인공의 선명한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사랑의 감정을 원형질 그대로 최대한 풍성하게 표현해 내는 데 신기하게도 탄력을 붙여간다.●김정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캐릭터 그 작업의 동력이 되는 장치는 화면에 끊임없이 복기되는 인영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인영-이석의 사랑이 진행되는 한편으로 영화는 인영의 옛 기억, 인영이란 이름을 가진 여고생(인영의 분신처럼 모호하게 그려졌다.)과 이석의 만남을 계속 교차시킨다. 실체가 지나치게 몽롱하고 흐릿한 사랑이야기는 지리멸렬할 수 있겠으나, 살짝 팬터지를 끌어들인 영화는 사랑이란 감정의 질감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재주를 부렸다. 하지만 대중의 감성을 두루두루 만족시킬 여지는 적어 뵈는, 다분히 여성취향의 멜로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의외로 주인공들의 파국을 한 순간도 걱정하게 만들지 않는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등급을 받았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2002년 칸영화제 개막작 ‘할리우드 엔딩’

    지난 2002년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우디 앨런의 영화 ‘할리우드 엔딩’(Hollywood Ending·30일 개봉)은 숨은 재주로 속이 꽉 들어찬 코미디이다. 백발의 노장 감독이 직접 주인공으로 뛰는데도 코미디의 선도(鮮度)는 아찔할 만큼 높고, 기대하지 않았던 달착지근한 로맨틱 정취까지 간간이 뿌려놓는다는 대목 등이 그렇다. 한때 세상이 알아주는 명감독이었으나 지금은 볼품없는 CF광고나 찍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발 왁스만(우디 앨런). 그런 그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대 영화사에서 뉴요커의 삶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찍어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 옛 명성을 되찾고픈 욕심에 수락은 했으나, 남은 문제가 간단치 않다. 투자사 대표의 애인 엘리(테아 레오니)는 다름아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전 부인! 아내를 훔쳐간 예거(트리트 윌리엄스)를 향한 적개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엘리를 향한 미련 역시 아무래도 떨쳐지지가 않는데…. 할리우드에 진 빚이 없다는 듯 스크린을 통해 거침없이 내뱉는 감독의 발언은 기대 이상으로 신선하다.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남녀의 연애담을 기술껏 꼬아놓은 코미디에서 은근슬쩍 감독은 ‘할리우드’(제작시스템 안팎의 허상 등)를 조롱하는 절묘한 엎어치기 기술을 구사했다. 신경불안 증세가 심해져 촬영 도중 갑자기 발의 눈이 멀어버리자, 엘리의 도움으로 스태프들조차 감쪽같이 속인 채 온갖 해프닝을 엮으며 영화촬영을 마무리하는 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얼렁뚱땅 6000만달러짜리 대형영화를 만드는 발의 에피소드는 그대로 할리우드를 향해 날리는 통렬한 조소의 펀치인 셈이다. 각본까지 직접 쓴 감독은 직설화법으로 비판의 어조를 높여간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상황은 갈수록 가관이다.‘쓰레기’라는 혹평으로 만신창이가 된 영화에 프랑스 평단은 극찬을 쏟아놓으니 말이다. 맥락없이 속사포처럼 웅얼웅얼 쏟아내는 발의 대사를 꼼꼼히 뜯어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보석같은 은유들을 낚을 수가 있다.15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여행일기(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프랑스의 지성 알베르 카뮈의 여행기록집.1946년 3월에서 5월까지의 미국 여행과 1949년 6∼8월 남아메리카 여행에 관한 일기 형식의 노트 두 권을 하나로 엮었다. 대표작 ‘페스트’의 구상 과정 등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기 위한 산고의 순간을 엿볼 수 있다.9500원.●모래도시를 찾아서(허수경 지음, 현대문학 펴냄) 독일 뮌스터대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중인 시인이 고대 폐허 도시들의 발굴 현장 체험을 토대로 고고학 에세이집을 펴냈다. 오리엔트의 폐허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고대 건축물들의 발굴 과정과 유물이 의미하는 역사적 의의와 함께 발굴 현장에서 느낀 인간의 숙명과 외로움 등이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으로 그려진다.9000원.●니벨룽의 반지(바그너 원작, 류가미 지음, 호미 펴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의 국내 초연을 앞두고 바그너의 오페라 극본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게르만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니벨룽의 반지’는 권력과 지혜의 상징인 황금반지를 통해 인간의 복잡다단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수작이다. 바그너 마니아인 저자는 원작의 빼어난 문장과 구성에 소설적인 재미를 덧붙였다.9800원.●유랑시인(타라스 세브첸코 지음, 한정숙 옮김, 한길사 펴냄) 우크라이나의 국민 시인 세브첸코(1814∼1861)의 대표 시선집. 비천한 농노로 태어난 시인은 차르 전제정과 농노제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시들을 발표한 혁명문학가로 추앙받고 있다. 시집에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정을 탁월하게 묘사한 장시 21편을 엄선해 실었다.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설명도 꼼꼼하게 달았다.2만 7000원.●욕조 속 개미(강나루 지음, 그림과책 펴냄) 월간 문예지 ‘시사문단’ 7월호를 통해 등단한 열여덟살 소녀 시인의 첫번째 시집.‘나는 죄인이 아니다/나를 자꾸만 포승줄로 포박하지 마라’(‘벽2’중) 등 청소년기의 자유를 붙들어매는 억압적 상황을 은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등 젊은 날의 고뇌를 담은 시들을 모았다.6000원.
  • [책꽂이]

    ●붉은 고양이(괴테 외 지음, 이관우 옮김, 우물이 있는 집 펴냄) 괴테의 고전주의 문학부터 루이제 린저의 전후문학까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10편을 묶었다. 린저의 ‘붉은 고양이’를 비롯해 보르헤르트의 ‘빵’, 카프카의 ‘변신’, 하우프트만의 ‘선로지기 틸’, 괴테의 ‘노벨레’등 수록.8500원.●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지음, 창비 펴냄) 소박한 언어로 소외된 삶을 따뜻하게 감싸온 시인의 세번째 시집.‘…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나의 길을 내기 위해 목련꽃들이/천둥소리를 잡아먹고 널브러진 채 죽어있는 것이다’(‘목련꽃’중)‘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그 나무 때문이다’(‘책이 무거운 이유’중).6000원.●실종자(한스 울리히 트라이헬 지음, 강유일 옮김, 책세상 펴냄) 2차대전 직후 독일 서부로 피란온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전후 독일 사회를 은유하는 소설. 독일 중견 작가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나’는 전쟁 때 죽은 줄 알았던 형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을 찾으려는 부모의 노력은 점차 강박적으로 변하고, 이 와중에 소년의 존재는 점점 소외된다.8000원.●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김형경 지음, 푸른숲 펴냄) 1993년 1억원 고료의 ‘국민일보문학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작품. 폭력의 시대인 1980년대를 힘겹게 거쳐온 네명의 주인공들이 흉터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희망과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탁월한 심리묘사, 절제된 문장이 돋보인다. 전 2권. 각권 9800원.●붉은 브라질(장 크리스토프 뤼팽 지음, 이원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2001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16세기 중반 브라질 과나바라만에서 펼쳐진 식민의 역사를 소재로 삼았다. 강대국들의 침략, 광신의 종교 갈등, 인간들의 탐욕과 공포 등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저자 뤼팽은 ‘국경없는 의사회’소속의 의사이자 사회활동가이다.1만 2000원.
  •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 국내에도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선보인 이탈리아의 세계적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73).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이야기 세 편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지구인 화성인 우주인’(김운찬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이라 제목 붙여진 책에서 지은이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이치들을 쉽고도 유쾌한 화법으로 귀띔해주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폭탄과 장군’편에서는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직설과 은유가 행간행간에서 절묘하게 손을 잡았다. 영문도 모른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폭탄 속에 갇힌 원자 아토미. 아토미와 친구 원자들은 슬프기만 하다. 폭탄이 터지면 많은 어린이들, 엄마, 고양이, 염소, 새, 나무도 모두모두 죽고말 것이기에. 궁리 끝에 원자들은 장군 몰래 폭탄에서 빠져나와 지하실에 숨어 있기로 한다.“당장 전쟁을 일으킵시다. 그래야 우리도 유명해질 수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전쟁을 선언하는 장군과 부자들. 어떻게 될까. 숨죽일 독자들에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든다. 아토미와 원자친구들이 미리 빠져나간 덕분에 폭탄은 세상의 평화를 깨지 못했던 것이다.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작가의 목소리 톤은 할아버지의 옛이야기처럼 부드럽고 구수하다. 우화적 화법 덕분에 덩치 큰 메시지들을 부담없이 흡수하게 된다는 점도 책의 매력이다. ‘세계평화’의 커다란 이야기 주제는 2,3편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2편은 표제작인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인종·국가간 편견을 깨트리게 하는 이야기 소재가 꽃을 피워가는 과정이 무릎을 칠만큼 기발하다.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도착한 세 명의 우주인. 미국·러시아·중국 등 국적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은 한동안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냉랭하게 지낸다. 그러다 팔이 여섯개 달린 화성인을 만나면서, 어느새 ‘다름’을 인정하고 우정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 얼개에 교훈과 서사의 즐거움이 멋지게 균형을 잡았다. ‘편견’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독자들을 다독인 작가는 ‘공존’을 향한 실천적 메시지를 덧붙여 귀띔한다.3편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건강한 지구를 위해서는 쓰레기 하나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될 것!’이라는 훈계를 흥미진진한 서사로 변주했다. 황제의 특명을 받고 지구문명을 전해주려 새로운 행성(뉴행성)을 찾아간 신하. 뉴행성의 난쟁이들에게 문명을 전해주겠노라 으스대던 신하는, 문명에 발목잡힌 지구의 현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오히려 난쟁이들의 위로를 받고 지구로 되돌아온다. 행간행간에서 넘쳐나는 은유와 풍자, 에코의 글 만큼이나 압축미가 돋보이는 해설그림들이 조화를 잘 이뤘다. 초등생 이상.1만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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