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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영화] 다운 바이 로

    [토요영화] 다운 바이 로

    ●다운 바이 로(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짐 자무시 감독은 두번째 작품 ‘다운 바이 로(Down by law)’에서 자신의 영원한 주제인 ‘방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주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다룬 데뷔작 ‘천국보다 낯선’의 연장선이라 보면 된다. 알파벳 첫 글자만 다를 뿐 이름도 비슷한 라디오 DJ 잭(톰 웨이츠)과 삼류건달 잭(존 루리). 이들은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건성건성 살아간다. 그러던 중 때아닌 누명까지 뒤집어써 억울하게도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 패리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서도 여전히 빈둥대는 두 사람. 이들의 방에 로베르토(로베르토 베니니)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잭들’과는 다르게 긍정적이고 반듯한 성격을 지닌 로베르토. 이렇게 해서 어울리게 된 세 사람은 탈옥을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이제 바깥세상에서 이들은 마냥 함께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마음씨 좋은 이탈리아 여인 니콜레타(니콜레타 브라치)를 만나기도 하는 등 잇따라 우연한 사건들을 마주치면서 셋은 동료애를 느껴간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과 함께 헤어질 시간도 가까워져 오는데…. 흑백 화면에 담긴 미국의 풍광은 아메리칸 드림 이면의 황폐함을 은유하듯 황량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흑백 화면 장치는 방랑자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데 주효했다. 빔 벤더스의 1970년대 영화들을 찍었던 촬영감독 로비 뮐러는 짐 자무시의 속내를 읽어낸 듯 감독의 의도대로 앵글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1984년 ‘천국보다 낯선’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1985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며 일약 미국 인디영화의 기수로 떠오른 짐 자무시는 1986년 이 영화를 만들었으나, 전작만큼의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이후 ‘지상의 밤’‘데드맨’‘브로큰 플라워’ 등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선보여왔다.‘다운 바이 로’는 오랜 친구인 존 루리와 톰 웨이츠, 새로운 친구인 로베르토 베니니와 그의 연인 니콜레타 브라치를 출연시켜 호흡을 맞추었다.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일요영화] 길

    [일요영화] 길

    ●길(KBS1 명화극장 밤 12시50분) 배창호 감독의 세 번째 독립영화로, 제작된 지 2년 만인 지난 2006년 늦가을에 우여곡절 끝에 극장개봉된 작품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남도를 떠도는 장돌뱅이의 고집스런 인생을 통해 예술가로서 감독 자신의 삶을 투영해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가에 화제가 됐던 배경은 여럿 있었다. 감독의 전작 ‘정’,‘러브 스토리’에 이어 독자적인 제작방식으로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 거기에 감독이 주연까지 맡아 열연했다는 점 등이다. 장터라는 장소 자체가 삶의 풍요를 대변했던 1970년대 중반. 태석(배창호)은 20년이 넘게 무거운 모루를 짊어지고 전국 각지의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대장장이이다. 다음 장터를 향해 길을 가던 중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여공 신영(강기화)을 만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이라면서도 빨간 코트에 큼지막한 스마일 배지를 달고 있는 신영은 첫눈에도 좀 모자라 보인다. 신영을 버스타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길에서 태석은 어느새 옛날을 떠올린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사랑했던 아내, 그 아내가 지키고 있기에 아늑한 안식처가 됐던 작은 초가집,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 득수…. 그러나 지난 20년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게 만들었던 득수의 배신을 회상하는 길 위에는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인 감정들로 얼룩진다. 나란히 함께 걷는 여자 신영이 다름아닌 원수가 돼버린 득수의 딸임을 알게 되면서 마음 한켠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개봉관에서 금방 간판을 내렸지만 개봉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이후 ‘깊고 푸른 밤’‘고래사냥’‘기쁜 우리 젊은 날’ 등 메가톤급 히트작을 줄기차게 내놓은 감독에게 ‘길’은 17번째 장편. 수묵담채처럼 질박하고 소박한 화면은 삶의 멍에를 벗어 버리지 못한 채 방황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깊은 시선으로 은유해 냈다. 흐뭇하고 넉넉한 배경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변산반도의 너른 뻘밭, 구례 산수유 마을, 함평 오일장, 강원도 산간 너와집들…. 감독이 직접 다리품을 팔며 전국을 뒤져 찾아낸 그림 같은 풍경들에 가슴 속 매듭이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2005년 필라델피아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쿠키 한입의 인생수업(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글, 김지선 옮김, 책읽는곰 펴냄) “참는다는 건 쿠키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쿠키를 소재로 인내, 당당함, 공경심 등 삶의 지혜를 은유한 그림책. 초등저학년까지.9000원.●나무를 만져 보세요(송혜승 글·그림, 창비 펴냄) 나무와 주인공을 통해 크고 작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만드는 점자 그림책. 왼쪽 면은 단순한 실루엣 그림과 점자로 처리했다. 유아, 시각장애아.1만 5000원.●내 꼬리(조수경 글·그림, 한솔수북 펴냄) 갑자기 꼬리가 생겨버린 아이는 얼마나 황당할까. 그러나 소소한 걱정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거라고 자신감을 주는 그림책. 초등저학년까지.9500원.●어린이 양성평등 이야기(권인숙 글, 민재회 그림, 청년사 펴냄)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어울려야 한다고 귀띔하는 교양서. 초등3년 이상.9800원.●삼국유사 삼국사기-우리 겨레의 신화(현무와주작 글, 기탄출판 펴냄) 고전 원문을 동화 형식으로 글맛을 살렸다. 고대사에 등장하는 유물·유적 현장의 실제 사진과 기행감상도 덧붙였다.10권까지 출간 예정. 초등생.8500원.●내 이름은 아임쏘리(장수명 글, 김품창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어린 주인공을 통해 조기 영어과외 열풍에 휘둘리는 초등생들의 고민을 들여다본 표제작 등 모두 5편이 실린 동화집. 초등저학년.7800원.
  • [토요영화] 13 자메티

    [토요영화] 13 자메티

    ●13 자메티(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13 자메티’(2005)는 흑백 영상으로 이뤄진 한편의 강렬한 아포리즘이다.86분짜리 이 영화에는 죽음과 공포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제목의 ‘자메티(Tzameti)’는 그루지야어로 ‘13’을 뜻한다. 흔히 불길한 숫자로 받아들여지는 이 숫자는 주인공이 룰렛 게임에서 부여받은 등번호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이민 온 그루지야 출신 집수리공 세바스찬(게오르기 바블루아니)은 새로 지붕 수리를 맡게 된 집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집주인에게로 온 편지 봉투를 열어보게 된다. 그 속에는 파리행 열차 티켓과 호텔예약 확인서가 들어있다. 세바스찬은 이것이 어쩌면 가난한 자신에게 ‘대박’을 안겨다줄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집주인 대신 길을 떠나는 세바스찬. 파리에 가서 지정된 호텔에 숙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행동 지시를 받는다. 지침대로 움직이던 세바스찬은 어느 숲속의 저택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곤 얼른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붙잡힌 채 저택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게임에 선수로 참가하게 된다. 모두 13명이 참여하는 이 게임은 원형으로 둘러선 선수들이 전등이 켜지는 순간 제 앞사람을 겨눈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집단 러시안 룰렛 게임이다.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되며, 생존자는 85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된다. 선수들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는 동안 이들에게 돈을 건 도박사들 간의 협상과 거래도 계속된다. 죽음의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과 이득에 혈안이 되어 번득이는 눈빛의 대조가 선명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임에도 영화사가 자금지원을 꺼리자, 당시 26세의 젊은 감독 젤라 바블루아니는 러시안 룰렛 장면을 먼저 찍어 보여준 뒤 합격점을 얻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영화로 바블루아니는 2005년 베니스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이듬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하반기 중 할리우드에서 완성될 리메이크판까지 직접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니, 이 젊은 감독의 행보가 어디까지일지 사뭇 기대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새영화] ‘스위니 토드’

    [새영화] ‘스위니 토드’

    톱니바퀴를 타고 흐르는 진득한 주홍빛 피. 국수가락처럼 갈아져 나오는 인육.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핏물과 함께 익어가는 파이.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Sweeney Todd·17일 개봉)는 이미지만 봐도 팀 버튼 영화다.‘배트맨’‘가위손’‘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기괴하고 비틀린 캐릭터와 이야기로 블랙유머에 대한 재능을 쌓아올린 감독이 또 한번 조니 뎁과 만나 뮤지컬 영화를 세공했다. 19세기 런던. 산업혁명의 기세가 드높던 이 잿빛 도시에서는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아름다운 아내, 딸과 행복해 하던 이발사 스위니 토드(조니 뎁)는 아내를 뺏으려는 터핀 판사(앨런 릭맨)의 음모로 15년 세월을 감옥에서 저당잡힌다.15년 뒤 스위니 토드로 돌아온 그는 파이가게의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과 핏빛 계약을 맺는다. 이발소를 찾아온 손님들은 이후 행적을 알 수 없고, 고기가 부족해 런던에서 최고로 맛없던 파이는 런던 최고의 파이가 된다. 아랫집 여자와 윗집 남자의 ‘독창적이고 비상한’ 거래를 알아채는 도시민들은 아무도 없다. 비정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걸신처럼 인육을 먹어대고 스위니 토드는 잃어버진 행복과 가족을 피로 앙갚음할 날만 고대하고 있다. ‘스위니 토드’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라이선스 뮤지컬로 초연돼 수작으로 박수받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이 작품으로 1979년 초연 당시 8개의 토니상을 수상했다.19세기 런던에서 일어난 160여명의 살인사건을 실화로 한 극은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당초 팀 버튼과 조니 뎁의 환상콤비가 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은 영화팬과 공연팬, 모두에게 기대를 품게 했다. 뮤지컬이 멀리서 날카롭게 찔렀다면 영화는 정면에서 대놓고 찌른다. 타고난 스타일리스트, 이야기꾼이라는 칭송을 받는 팀 버튼은 이번만큼은 이야기의 부담을 던 것 같다. 영화는 한마디로 ‘뮤지컬의 재구성’이다. 원작의 탄탄함 덕분에 영화의 스타일이 더 풍성하게 살아났다. 독창적 영상을 빚어내는 재주는 이번에도 빛났다. 감독은 색깔을 죄 덜어내고 바랜 듯한 흑백영화의 질감을 배경에 깔았다. 조니 뎁의 핏발선 눈과 얼어붙은 듯 차가운 피부는 사랑을 잃고 삶의 생기마저 말라버린 이발사의 운명을 은유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갈라진 거울로 비쳐지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이지러진 얼굴은 증오와 광기, 갈망의 간절함을 대변한다. 그러나 상상력과 재기가 기대만큼은 아닌 듯하다. 조니 뎁의 노래가, 무대를 울리는 라이브 뮤지컬의 파장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 복수에 눈이 멀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지독한 아이러니. 꿈보다 증오가 목적이 돼버린 인간의 비애를 부각시킨 결말이 쇳소리처럼 몸서리치게 한다.18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수학 100점 엄마가 만든다(송재환 등 지음, 도토리창고 펴냄) 좋다는 학원을 보내고 학습지까지 꼼꼼히 챙겨 주는데도 왜 우리 아이 수학성적은 신통찮을까? 이런 고민 중이라면 사립초등학교 베테랑 선생님들의 조언이 반가울 듯. 수학학습 주도권을 엄마가 틀어 쥐어야 한다는 명제 아래 구체적 지도법을 알려 준다.1만 2000원.●모두가 책을 사랑한 세상(스티븐 팔라토 글·그림, 신윤조 옮김, 마루벌 펴냄) 꽃이야기를 읽은 남자는 꽃이, 거북이 이야기를 읽은 토끼는 거북이가 된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재치만점의 그림으로 은유한 그림책.5세 이상.1만 600원.●시간의 세계(필립 드라 코타르디에르 글, 이희정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우리가 들여다 보는 달력과 시계가 지금의 형태를 갖춘 건 언제일까. 선사시대부터 수천년에 걸쳐 시간을 재려는 인류의 노력은 끝이 없었다. 인류가 달력과 시계를 만든 과학의 여정에 역사, 정치, 종교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두루 알 수 있다. 초등3년 이상.8500원.●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한국역사교과서모임 지음, 휴먼어린이 펴냄) 현직 역사교사 2000여명을 회원으로 둔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김종훈)이 쓴 한국사 시리즈.1권 ‘우리 역사의 시작´, 풍부한 사료에 구체적 일화를 이야기체로 곁들인 구성에서 공력이 엿보인다. 초등3년 이상. 각권 1만원.●류와 새(카트린 루이 글·그림, 김주경 옮김, 주니어랜덤 펴냄) 동화를 읽으며 한자의 뜻과 모양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서예동화. 밤 ‘夜’, 달 ‘月’, 별 ‘星’, 등 모두 30여개의 한자가 그림과 그림문자, 문자 등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7세까지.9000원.
  • 코튼 로드/에릭 오르세나 지음

    우선 일러둬야겠다. 황금가지가 펴낸 ‘코튼 로드’(에릭 오르세나 지음, 양영란 옮김)는 제목으로 내용을 넘겨짚지 말아야 할 책이다. 부지런한 독서가들이 오히려 목화의 문화사쯤으로 오해하기 좋은 표제이다. 하지만 책은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이 ‘세계화’의 진행과정과 지구촌 역학관계를 고찰한 일종의 테마 여행기이다. 책의 화두는 일상용어가 돼버린 ‘세계화’에 고정돼 있다. 전 세계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세계화를 놓고 과연 그것에 의문없이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되짚는 탐색기인 셈이다. 그 주제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무척 새롭다. 지은이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잘 알려진 프랑스학술원의 대표주자. 문학가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세계화의 허실을 따져 보는 작업에서 부표로 삼은 것은 목화밭이다. 지구촌의 대표적 목화 재배국으로 꼽히는 6개 나라를 집중조명하며 목화를 둘러싼 세계가 어떤 역학논리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프랑스의 기업 CMDT가 목화에 관한 모든 것의 실권을 쥐고 있는 아프리카 말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추수를 한 날 저녁이면 시골에서는 당나귀들이 끄는, 수도 없이 많은 짐수레들을 만나게 된다.(…)이윽고 하얀 꽃 더미 위로 밤이 내려앉는다.” 어깨힘을 빼고 여행 수필처럼 써내려간 글에, 세계화를 둘러싸고 국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잇속 경쟁 등을 포착해 넣는다. 그런 아이디어가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부드러움의 상징, 목화의 이면에 발톱을 숨긴 세계화의 그늘은 서늘하다. 가난을 벗으려 온 나라가 통째로 목화 생산에 매달리다시피 하는 말리에서는 지금 거대목화 기업인 CMDT가 민영화의 기로에 서 있다. 기업의 부패와 목화시세 폭락으로 적자가 늘자 대주주인 말리 정부의 재정적자도 급등해 세계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정을 현장고발한다. 외국(프랑스)자본 덕분에 목화 생산국으로 성장은 했으되 면직산업의 기반은 전무한 말리의 사정은 그대로 ‘세계화’의 미명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인 것이다. 반미·반자본적 시각을 견지한 저자는 또 세계 최대 목화대국 미국을 겨냥했다. 전체 인구의 고작 2%가 목화생산에 참여해 세계 목화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왜 정작 목화를 생산하는 그 나라의 농민들은 부자가 아닐까. 역시 목화대국으로 꼽히는 브라질 노동자들은 왜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다리품을 팔아 현장을 탐색한 지은이는 느낀 대로 물음표를 찍고 그곳에서 듣고 본 내용을 신랄히 지면에 옮겼다. 로비스트와 국회의원이 결탁해 유전자 변형 목화를 만들어 내는 현장의 주체가 돼버린 미국의 목화 농가도 정책의 피해자이기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식물 유전학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닐 스튜어트 교수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런 사정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뒤늦게 목화시장에 뛰어들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목화대국을 노리는 브라질, 품질은 최고로 통하면서도 오랫동안 목화생산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이집트, 사회주의를 벗어나 목화산업에 명운을 걸고도 여전히 허덕이는 우즈베키스탄, 도시(다탕) 전체가 면양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국. 노동 경쟁력 하나를 무기삼아 세계 면직산업계를 위협하는 중국의 가족중심 노동체계는 그 자체로 지은이의 눈에 경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계 6개국 목화밭에 주목한 지은이의 시선은 그러나 단정적이지 않다. 관계자 인터뷰, 통계수치 등 현장답사의 자료는 정확하고 풍성하지만 세계화의 허실에 대한 일방적 진단은 끝까지 유보했다.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의문부호를 넘긴다. 세계화라는 이름의 심판 없는 게임에서 당신은, 당신의 나라는 지금 승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리소문 없이 승기를 뺏기고 있는가.1만 3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누들(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 지음, 박계수 옮김, 시공사 펴냄)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베트남의 쌀국수, 일본의 우동과 소바, 러시아의 펠메니, 타지키스탄의 라그만…. 지구촌 식탁을 점령한 ‘국수의 문화사’가 담겼다. 책은 국수를 “4000년이 넘게 지속된 세계화의 산물”이라 규정했다. 특권계층의 음식이던 국수는 대도시의 성장으로 비로소 대중화됐다.1만 4000원.●보노보 혁명(유병선 지음, 부키 펴냄) 침팬지와 보노보는 알고 보면 너무 다르다. 침팬지가 야심만만하고 폭력적이라면, 보노보는 평등과 평화를 좋아하는 낙천적 천성을 지녔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보노보’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지구촌 곳곳의 사회적 기업들이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1만 2000원.●예술, 과학과 만나다(홍성욱 등 지음, 이학사 펴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예술을 접목시키는 운동을 펼쳐온 단체 ‘아트센터 나비’에서 미학 과학 철학 등의 연구자들을 초빙해 진행한 강연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오늘날의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접점을 찾는지 고찰했다. 홍성욱 김용석 이원곤 김동식 김진엽 송도영 하동환 등 7인의 발언이 묶였다.1만 3000원.●역사 속의 인간(C.F.v. 바이츠제커 지음, 이신철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현대 인간의 삶에서 제기되는 긴급한 실천적 과제들에 대한 해답을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사유 역사’를 배경으로 찾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서 성장해 왔지만,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인간의 역사로부터 성장해 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철학자.1만 6500원.●자원전쟁(에리히 폴라 등 지음, 김태희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자들이 새로운 냉전시대를 맞아 천연자원을 둘러싼 쟁점과 최신 동향, 전망을 제시했다. 천연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설탕과 커피도 전쟁무기로 떠올랐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구촌 자원전쟁의 현장보고서.1만 5000원.●다이고로야, 고마워(오타니 에이지 사진, 오타니 준코 글, 양윤옥 옮김, 작은씨앗 펴냄) 오타니 에이지는 일본 후지TV에 근무했던 다큐 사진작가. 뒷다리가 없는 300g짜리 기형 원숭이 다이고로가 2년 4개월에 걸쳐 씩씩하게 재기하는 모습을 담았다. 작가 가족의 진솔한 일기체 글이 감동만점인 포토에세이집.9800원.●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이레 펴냄) 지은이는 런던 케임브리지대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다 태국으로 건너가 승려가 됐다.30여년간 수행승으로 지낸 자신의 영적 경험, 고대 경전 이야기, 법문 등을 모았다. 우화 같은 은유로 ‘방하착(放下着)’을 귀띔하는 명상서.1만 1000원.
  • 이상수 노동 ‘계간문예 수필문학상’ 수상

    이상수 노동 ‘계간문예 수필문학상’ 수상

    이상수(61)노동부 장관이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 도서출판 계간문예가 제정한 ‘계간문예 수필문학상’ 제2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수필집 ‘분재의 철사를 풀며’. 계간문예는 “건강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은유적 수사학이 돋보이는 수필집”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YMCA시민권익보호 변호사,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주임변호사 등을 거쳐 13·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장관은 지금까지 ‘사람값과 사람대접’‘나는 충무경찰서 유치장 초대가수였습니다’‘충무경찰서 초대가수’ 등의 수필집을 펴낸 바 있다. 이 장관은 “돌이켜보면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순수하고 진지했던 때인 것같다.”며 “좋은 경험을 쌓아나가고 마음도 비워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의대 동창회관에서 열린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아시아 젊은 작가전 2題] 급성장의 그늘을 들여다보다

    [아시아 젊은 작가전 2題] 급성장의 그늘을 들여다보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젊은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나란히 열린다.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와 그 상처를 되짚은 ‘트랜스 팝:한국 베트남 리믹스’전과 한·중·일 작가들의 눈에 비친 오늘의 일상을 담은 ‘나의 아름다운 하루’전. 두 전시 모두 30∼40대 젊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 나의 아름다운 하루 전(내년 2월24일까지 로댕갤러리) 현대미술에서 ‘일상’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한·중·일 아시아 대표작가 12명의 눈에 비친 일상이 화폭으로 들어왔다.19점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 삶 자체의 의미를 사유해 보는 시간이 될 만한 전시이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삶의 단편들을 재구성했다. 평범한 도시인의 삶과 휴식을 재현하고 있는 건 최호철의 작품이다.‘을지로 순환선’은 현대판 풍속화라 해도 좋을 만큼 지하철에 탄 인물군상의 표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도시화와 산업화,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삶의 풍경을 포착하기도 했다. 방병상의 사진 ‘기둥’은 공간과 환경에 따라 유형화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탐구해온 작가의 대표작이다.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 비디오 작품도 있다. 박주영의 ‘삼인칭 대화’는 통역 서비스를 받아 전화통화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소통과 단절을 은유했다. 아시아 젊은 작가들이 일상이란 코드로 진단한 사회문제는 엇비슷하다. 중국 작가인 천 사오슝(44)의 ‘가정 풍경’은 공동 주거공간을 통해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획일화되는 일상을 재구성했고, 인슈천(44)의 ‘경극’은 사진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공원에 모인 노인들을 묘사함으로써 소외현상을 짚었다. 차오페이(29)의 ‘누구의 유토피아인가?’같은 동영상 작품은 공장노동자들의 싸늘한 현실과 꿈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진 구라시게(32)의 동영상 ‘빌리’ 역시 또래 세계에서 단절된 어린이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방학기간 내내 열리는 전시인 만큼 교육용 부대행사도 주목해 볼 만하다. 내년 1월12일(정연두),26일(함진)에는 작가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다.(02)2259-7781. # 트랜스 팝:한국 베트남 리믹스 전(18일∼내년 2월29일 아르코미술관) 한국과 베트남의 젊은 작가들이 두 나라의 역사를 고민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투병력을 투입한 나라, 베트남 구석구석에까지 대중문화 열풍을 불어넣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두 나라가 함께 지닌 역사적 트라우마가 오늘날 대중문화와 어떻게 결합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다. 재미교포 큐레이터인 민영순과 베트남 큐레이터 비엣 레가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양국 출신의 작가 16명이 참여했다.TV드라마를 비롯해 두 나라 대중문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작품으로 녹여냈다.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와 비디오, 디자인 북, 글 자료 등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작품 속에 두루 차용됐다. 실제로 지루할 틈없이 감상포인트가 다양하게 찍힌 전시이다. 유순미의 비디오 영상 ‘씻김:죽은자와의 대화’, 오용성의 비디오 작품 ‘드라마’, 최민화의 회화 ‘파시즘 위에 눕다’, 응웬 만 흥의 ‘시장으로 가라’, 티파니 청의 ‘사탕수수 열매 혼합 주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푸짐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두 나라의 대중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학술 출판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부대행사도 여러개가 예정돼 있다. 역사와 대중문화의 초국적 교류에 초점을 맞춘 심포지엄(내년 1월18·19일), 오용석 등 작가와 함께하는 어린이 워크숍(내년 1월4∼13일) 등이다. 향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순회전으로도 소개될 계획이다.(02)7604-72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케네스 벤디너 지음

    발상 자체가 군침이 넘어가게 만드는 책이 종종 있다. 제목이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케네스 벤디너 지음, 남경태 옮김, 예담 펴냄)라면 어떤가. 그림이 버무려진 부담 없는 일품요리를 연상했다면 그 직감은 크게 틀리지 않다. 미술에 조예 깊은 한 재담가의 입담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그림이 있는 풍성한 식탁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대학의 예술사 교수인 지은이는 눈 밝은 풍속연구가이기도 하다.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포스터모더니즘 시대까지를 범위로, 음식이 등장하는 회화작품들을 빌려 음식의 문화사를 되짚었다. 이름하여 ‘음식회화’라는 장르를 독자적으로 규정한 지은이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음식이나 술, 음식을 먹는 레스토랑과 술집, 카페 등을 그린 ‘음식회화’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작업이 곧 서양음식문화사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음식의 종교·의학적 상징을 귀띔 흥미로운 책읽기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음식과 예술의 전반적인 관계를 짧게 언급한 뒤 음식재료를 사고 팔고(1장), 요리해서(2장), 식탁에 올려 즐기는(3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추적한다. 시대를 달리한 서구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텍스트로 삼은 건 물론이다. 우선 음식이 종교·의학적으로 지니는 상징을 귀띔한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파리스가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는 그림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과일은 에로티시즘과 이교도적 매력의 상징물이다. 그런가 하면 ‘최후의 만찬’ 같은 작품으로는 음식회화의 종교적 은유를 짚어보인다. 음식을 먹는 그림 속 행위 자체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신이 일체를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회화작품들에서 음식의 문화사를 추출해내는 책의 맛깔난 작법은 2장에서부터 진면목을 보인다.19세기 말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책은 호롱불 아래에서 감자를 나눠먹는 네덜란드 농민들의 남루한 삶을 읽어낸다. 그림 속 음식으로 물질적 만족감을 드러내던 표현법은 팝아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태도가 달라진다. 앤디 워홀의 캠벨 통조림 깡통 그림 ‘200개의 수프 통조림’,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에서 착안한 ‘주방스토브’ 등이 보여주었듯 팝아트 이후로 등장한 음식회화는 전래의 위무적 기능과는 동떨어진 것들이다. ●포크는 언제부터 사용? 대가들의 음식그림을 예술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 책의 또다른 장기이다. 그림에 나오는 잔치, 죽은 짐승, 과일, 식기 등의 근저에 놓인 무의식에 초점을 맞춘 시각이 새롭다. 들라크루아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의 경우. 화폭 중앙에 사냥물이 날것 상태로 쌓인 그림에 생뚱맞게 조리된 바닷가재가 놓였다. 이를 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당대 보수파 정치인들의 이념을 풍자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인문과 예술의 두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화려하다. 미술해설서인양 갈피갈피에 펼쳐진 천연색 도판에 미감이 자극되는 ‘덤’도 기대 이상이다. 레스토랑의 시초는? 서구 식탁에서 처음 포크가 사용된 시기는? 길거리 가게 간판이, 식당 메뉴판이 등장한 때는? 음식회화가 사회상을 투사한 시대의 창이었다는 논제를 풀어가는 사이사이로 무릎을 치게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풍성하다.1만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당신 삶의 가치를 바코드에 넣는다면…

    당신 삶의 가치를 바코드에 넣는다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은 국내 대표적 설치미술 작가 전수천(60·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의 새 화두는 ‘바코드’이다. 바코드는 현대사회 만물의 가치 척도다. 그러고 보면 작가에게 그것이 어떤 메시지로 다가가 있을지 막연히 넘겨짚히기도 한다.“3년 전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돈이 모자라서 집으로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는 그는 “까만 선들의 기계적 배열일 뿐인 바코드가 모든 가치를 결정하고 그것에 세상이 휘둘린다는 생각이 그때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된 바코드 작품들이 이번엔 미국에 간다. 뉴욕 화랑가인 첼시의 ‘화이트 박스’에서 내년 1월22일부터 2월23일까지 한달동안 ‘바코드로 읽는다’(Reading Beyond Bar Codes) 초대전을 갖는다. 화이트 박스는 비영리기구가 운영하는 대안공간 성격의 전시공간. 열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한 대형 설치프로젝트(움직이는 드로잉·2005년)를 선보인지 햇수로 2년 만의 미국전시이다. “바코드 작품들을 만드는 내내 스스로에게 끝없이 자문한 게 ‘내 삶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였어요. 관람객들에게 던지고픈 메시지도 똑같습니다. 자신의 삶의 가치가 진정 어느 정도인지, 한번쯤 성찰해보자는 의미지요.”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작업실에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작가는 “(바코드의)선과 선 사이 미묘한 간극에 통제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작품의도를 덧붙여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은 9점. 어른 키높이의 대형 지구본에 장난감 냄비 카메라 바퀴 등 온갖 잡동사니들을 오브제로 붙인 ‘사물에서 상상을 읽다’, 모조 반가사유상을 바코드가 새겨진 쇳덩이 위에 앉혀놓고 인식의 차이를 은유한 ‘헤아릴 수 없는 가치’, 바코드 선으로 채워진 마룻바닥 위의 바코드 방석에 앉아 관람객 스스로의 가치를 재보게 하는 ‘나를 읽는 오브제’ 등이다. 동심을 부추기는 장난감 오브제를 많이 동원한 ‘사물에서 상상을 읽다’에는 전쟁, 환경오염 등의 강렬한 메시지를 숨겨놓기도 했다. “여지껏 작품생활을 해오면서 지구본에 붙일 오브제를 고르느라 고물상을 뒤질 때 만큼 신났던 적이 없었다.”는 작가는 “바코드 방석의 마지막 두 자릿수를 비워놓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도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길쭉한 바코드 탁자 위에 오래된 사발을 올려놓은 작품 ‘생각을 담는 샘’도 작업 과정 그 자체가 희열이었다고 말했다.“황학동을 뒤져 원하던 그릇을 찾았는데, 미술작업이 이런 기쁨을 줄 수도 있구나 새삼 느꼈다.”는 그다. 2년 전 미국 대륙횡단전은 야심차게 덤벼들었으나 곤욕도 많이 치러야 했다. 흰 천을 덮은 열차 15량이 미국 동부 뉴욕에서 서부 로스앤젤레스까지 5500㎞를 횡단한 프로젝트에서 “왜 하필이면 흰색 천이냐?”는 등 현지의 삐딱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몇번이고 “작품을 할 수 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뉴욕의 낯선 공간을 상상의 힘 하나로 밝힐 그 시간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글 사진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유럽 현대미술 거장이 몰려온다

    유럽 현대미술 거장이 몰려온다

    올겨울 미술관은 유럽이 차지한다. 여러 말이 필요없는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 온다. 세계 현대미술사에 우뚝 선 러시아 거장들의 전시는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달뜨게 할 만하다. 러시아 거장 미술전이 열리기는 1996년(일리야 레핀 전) 이후 12년 만이다. 유럽 화단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는 또 있다. 독특한 화풍의 정물화로 유럽을 중심으로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독일 작가 자비네 크리스트만이 이미 가나아트센터에서 소개되고 있다. 내친김에 이탈리아 현대예술의 대표작가 시니스카의 작품세계 55년도 들여다봄 직하다. 회화에서 패션까지 아우르는 전방위 예술가 시니스카의 국내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 (27일∼내년 2월2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바실리 칸딘스키, 일리야 레핀과 함께 우리에겐 그닥 익숙지 않은 카지미르 말레비치, 레비탄 등 러시아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54명의 유화 91점이 날아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미술관,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등 러시아의 대표적 국립미술관 2곳이 소장품들을 내놓았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들어오는 작품 목록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계열이 63점,20세기 아방가르드 분야가 28점. 관람객들이 손꼽아 기다릴 칸딘스키의 작품은 4점이 포함됐다. 그의 완숙기 걸작으로 꼽히는 ‘블루 크레스트’(1917년),‘구성 #223’(1919년)과 초기작 2점이 별도공간에 전시된다.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 세계대전 이후 인간에 대한 환멸로 고민하던 거장의 숨결이 배어 있다. 레핀의 걸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수리코프의 대형 역사화 ‘황녀의 수녀원 방문’,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절대주의’란 개념을 주창했던 추상미술가 말레비치의 유화 ‘절대주의’도 꼭 챙겨볼 작품이다. 19세기 러시아 초상화 가운데는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차이코프스키 등 대문호와 음악가들의 것이 유난히 많다.11점이나 포함됐다. 레핀의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작가 고골의 분신’, 크람스코이의 ‘달밤’, 세로프의 ‘유수포프 공의 초상’ 등 11점이 선보인다. 러시아의 자연풍광을 담은 풍경화 14점이 전시공간을 서정으로 물들이기도 한다.(02)525-3321. # 獨 자비네 크리스트만-현실의 환영 전 (12월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갤러리 미루) 쇼핑백, 유리병, 캔, 우유팩…. 자비네 크리스트만은 일상의 소재들을 대상으로 독특한 정물화풍을 구축해온 독일 작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내 갤러리 미루에서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현대 소비사회의 생활소재들에 주목하면서도 전통적 미술기법을 동원한 덕분에 그의 화폭은 일반적인 극사실화와는 또 다른 묘미를 안긴다. 한점 한점 메시지가 뚜렷하다. 예컨대 내용물이 없는 빈 용기(容器) 그림들은 외형에 치중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적 은유인 셈이다. 가나아트센터측은 “크리스트만의 대표작 30점이 소개되며, 독일 현대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02)3217-0287. # 伊 시니스카 오염-공간 속의 구조 전 (12월4∼27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국내에는 생소한 이름이겠다. 하지만 회화, 조각, 사진, 패션 등 세계무대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이탈리아의 전방위 작가이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55년 예술이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공간 묘사가 탁월하며, 국내 첫 전시여서 새달 1일 작가가 방한할 것”이라는 게 전시 관계자의 귀띔이다. 전시회에는 137점의 대표작이 소개된다.(02)3789-5602.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 ‘스카우트’ 박철민 인터뷰

    영화 ‘스카우트’ 박철민 인터뷰

    특정 시기를 풍미하는 조연들이 있다. 비중이 크건 작건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로 작품마다 딱 알맞게 ‘간’을 맞출 줄 아는 사람들. 요즘 ‘충무로의 소금’으로 각광받는 배우는 박철민(40)이다.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쉴새없이 까불어 대고 전주 비빔밥처럼 맛깔스러운 대사로 관객의 배를 부르게 만드는 타고난 능력의 소유자다. ‘화려한 휴가’의 흥행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이제 좀 고상하게 보여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역시 타고난 습성을 버릴 수 없다.”며 헐렁한 면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저, 생맥주 한 잔 시켜도 될까요?” 300㏄ 맥주 한 잔과 땅콩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고 말도 웃음도 술술 풀려 나왔다. ‘화려한 휴가’의 택시기사 인봉으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가 이번엔 전라도 깡패로 분했다. 새 영화 ‘스카우트’에서다. 짧게 잘라 내린 앞머리와 코믹하게 붙인 콧수염,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노란색 면 티셔츠. 그가 맡은 서곤태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과거 ‘한 주먹’했지만 짝사랑 하는 여주인공 세영 앞에서 한없이 수줍어하고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소심남. 느닷없이 나타난 세영의 옛 애인 호창에게 홀로 위기감을 느끼며 비장한 어조로 ‘비광詩’를 읊는다. “나는 비광/광임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그대의 오광 영광을 위해 꼭 필요한 것도 나 비광…나는 비광/없어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슬픈 광” 영화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이 직접 지은 이 시는 서곤태의 처지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영화에서 박철민이 해온 역할을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양념처럼 자신을 녹여 다른 배우와 영화를 돋보이게 해왔으니 말이다. 연극영화과를 나와 성우를 지냈던 큰형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한 집안에 두 명의 ‘딴따라’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경영학과를 택했지만 대학 문턱을 넘자마자 연극반에 투신했다.“목욕비나 벌어라.”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부활의 노래’로 데뷔했다. 대학로 연극판과 드라마·영화의 단역으로 활동해오던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영화는 2003년작 ‘목포는 항구다’이다. 연극 ‘밥’을 보고 그를 눈여겨 본 김지훈 감독은 뒤풀이까지 쫓아와 “형은 내가 키워줄 거야!” 호언장담했다.“맹랑한 놈이네.” 했지만 기분이 좋아 밤새 술잔을 기울였고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김 감독은 ‘목포는’ 이후 ‘화려한 휴가’에도 그를 기용, 그가 ‘뜨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현석 감독 또한 연극 ‘늙은 도둑 이야기’를 보고 그에게 반했고 초등학교 선후배라는 ‘학연’이 둘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꿰었다.“배우의 매력을 알고 그걸 극대화시켜 전해주는 감독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죠. 저는 인복이 많아요.” 그는 영화마다 명대사를 토해내기로 유명하다. 그것도 순전 애드리브로. 애드리브는 순간의 기지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러기까지 그가 기울이는 노력은 상당하다.“머리가 나빠서 대사를 수없이 외웁니다. 입술과 뇌, 그 다음 가슴에도 대사를 입력해야 감정이 나와요. 똑같은 대사를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형용사도 바꿔보고 직유법을 은유법으로 바꾸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물건’들이 건져진다. 그가 꼽은 최고의 대사는 ‘목포는’의 가오리가 뱉은 대사.“쉭쉭∼, 요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쉭쉭∼, 요것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여. 봐봐!입은 가만있잖여.”이 영화로 그는 ‘제2의 송강호’라는 평도 들었고 CF도 찍어 두 딸의 어깨도 으쓱하게 만들어줬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최대한 자제할 것을 주문받았고 그대로 따랐다. 과묵하게 말없이 감정을 더 실으려고 노력했다.“곤태가 세영을 바라볼 때마다 눈을 약간씩 젖게 했어요. 모르셨죠? 아∼, 그게 보여야 되는데….(웃음)” 그가 꼽는 영화 속 명장면은 경찰서 습격 장면. 세영을 구하기 위해 호창이 전경들 머리 위로 다리처럼 놓여진 방패를 밟고 가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김 감독이 천재 같아요. 드라마를 꼼짝 못하게 끌고 가는 힘에 감탄했죠.” 올해 영화만 네 편째. 시간 많기로 소문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가족과 함께 보낼 여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 슬슬 주연에 대한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질문)가끔 듣습니다. 그런데 전혀 없습니다. 정상은 좁잖아요. 바람도 세고 경쟁도 심하고 아래만 보이고. 조연들끼리는 경쟁 안 하거든요. 공간 넓고 먹을거리 많아서 너그러워집니다. 또 조연은 영화 전체를 책임지는 부담이 없으면서 다양하게 여러 인생들을 만날 수도 있잖아요. 지금 이 상태가 너무 행복합니다. 이거나 유지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다양한 인물들과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영화 ‘킬미’의 막바지 촬영 중이고 내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촬영을 앞두고 있다.TV 드라마 ‘태왕사신기’ 후속으로 방영되는 ‘뉴 하트’에서 흉부외과 의사로 나올 예정이다.“대사가 너무 어려워요. 요즘 고3처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하.”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워커멜론 슈가에서’ 재출간

    헌책방 순례객들이 찾는 보물 중 하나로 꼽혀온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워커멜론 슈가에서’가 재출간됐다.1995년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된 ‘워터멜론’은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책 ‘미국의 송어낚시’와 함께 ‘헌책방 보물’의 하나로 유명하다.‘미국의 송어낚시’도 지난해 헌책방가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같은 출판사에서 재출간됐다.68년 미국에서 나온 ‘워터멜론’은 진보주의와 생태주의를 추구하던 당시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소설의 복합적 구성과 설정, 책의 동화적 은유와 시적 표현은 독자들을 열광시켰고,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8900원.
  • “4자는 6자 선순환 의미” “北개혁 연계돼야…”

    “4자는 6자 선순환 의미” “北개혁 연계돼야…”

    2007남북정상 선언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려와 기대가 혼조된 양상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북방한계선(NLL)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경협 이행에 따른 비용문제가 논란이다. 국제적으로는 3자·4자 정상회담을 둘러싼 긴장감도 적지 않다. 특별수행원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직접 지켜본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경제전문가인 스테판 해거드 교수로부터 각각 정상회담의 의미와 과제 등을 들어본다. ■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2007 남북정상 선언에서 정전체제를 끝낼 주체로 나온 ‘3자 또는 4자 정상간 논의’가 중국의 민감한 반응을 낳는 등 외교문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7일 이에 대해 “종전선언은 남북한과 미국, 이 3자가 하는 것이 마땅하나 평화체제를 6자회담과 연동해 선순환 관계로 만들기 위해 4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며 “이 합의가 외교문제화한다는 시각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로부터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와 방북 뒷얘기를 들어봤다. ●‘3자 또는 4자´ 표현 혼선과 논란 ▶남북정상선언에 종전선언의 주체가 ‘3자 또는 4자’로 표현되면서 혼선과 논란을 빚고 있다. -비핵화를 실현하고 정전체제를 끝내자는 부시 미 대통령의 뜻을 노 대통령이 전달한데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화답으로 3자가 나온 것이다. 다만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4자간 협의’가 언급된 점을 감안, 남북정상간 논의와 6자회담의 틀을 선순환 구조로 연결하기 위해 4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정전협정의 주체는 북한과 미국, 중국 아닌가. -과거 북한이 줄곧 주장해 온 얘기다. 법적으로 휴전협정 당사자는 북한과 중국, 미국 3자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실제 국가주권을 바탕으로 서명한 나라는 북한뿐이다. 미국은 유엔 참전국 16개 나라를 대표해 서명한 것이고, 중국은 정부가 아니라 북한의 안전을 걱정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비정부적 성격의 의용군 대표로 서명에 참가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휴전협정이라는 건 북한이라는 주권국가와 중국의 의용군,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대신한 미국이 맺은 협정이다. 따라서 종전선언을 북한과 미국·중국 3자가 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구속력이 없다. ▶공식 수행원에 외교부 장관이 제외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외교부 장관이 갔으면 더 모양새가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교부 장관이 끼게 되면 자칫 북핵 정상회담으로 비쳐지면서,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남북회담의 기본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 관계부처 간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건설 합의의 의미를 꼽는다면. -예상외로 흔쾌히 합의된 사항으로, 대단히 의미가 크다. 비무장지대가 철도와 도로로 연결된데 이어 바닷길에도 직항로가 뚫리는 것이다. 사실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북한은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NLL을 피해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해주에 경제특구를 만들고 평화지대화하면 남북의 민간선박들이 서해 연안을 자유롭게 다니게 된다. 인천-개성, 개성-해주가 육로로 연결되고 인천-해주가 해로로 연결됨으로써 남북 번영을 이끌 황금의 삼각벨트가 한반도 허리에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무력화 우려에 대해서 ▶NLL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논란도 있다. -군사적 신뢰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비군사부문, 즉 경제적 협력과 인적 교류, 환경·에너지 등의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군사적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 해주평화특구의 기본 개념이다.NLL은 해양경계선으로 존속될 것이다. 단, 이와 관련된 지역을 번영을 위한 남북 공동의 평화 지대로 전환하고 양측 국방장관 회의 개최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안전만 보장한다면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또다른 퍼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북한 사람들이 정말 우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이 퍼주기 논란이 있다. 그들은 “언제 남한이 우리에게 퍼준 적이 있느냐. 개성공단이 퍼주기냐.”라고 생각한다. 이번 남북정상선언 5항에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상호 호혜적 교환 관계를 뜻한다. 사실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키로 한 합의는 북한보다 우리에게 절박했던 사안이다. 일본이 지금 저가(低價) 조선시장을 잡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배를 지을 땅이 없다. 안변, 남포 조선단지를 통해 남북이 협력하면 저가 조선시장도 우리가 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과 일본의 샌드위치를 극복하는 대안이다. 자꾸 판을 깨려는 쪽이 퍼주기니 뭐니 하고 있다. 경의선 개보수 비용만 해도 철도공사측은 2700억원 정도면 충분하다는데 다른 쪽에선 5000억,6000억원 얘기한다. 비용조달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부총리급 경제협력공동위원회에서 구체적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국제적 타당성 조사를 벌이는 게 먼저다. 이후 민간투자와 해외펀드, 정부예산을 적절히 조합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파격행보가 외교적 결례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평양에 있던 우리(수행단)는 김 위원장의 회담 연장 제의를 ‘내실 있는 회담을 통해 제대로 결실을 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실 3일 오전 1차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이 쏟아낸 의제들이 너무 많았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짧은 시간에 그걸 다 어떻게 검토하느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전날, 즉 2일 노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간의 신경전도 작용했다고 본다. 노 대통령을 방북 첫날 만난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거의 50분 넘게 통일의 3대 저해요인, 참관지 제한 문제 등 북측 고유의 입장을 경직된 자세로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일 오전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도 이러면 점심 먹고 짐 싸서 내려가야겠네요”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이 ‘점심 먹고 가겠다.’고 하는 발언을 계산하고 하루 더 있으라는 성의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담 말미에 제안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만 봐도 고도의 계산된 성의표시라고 생각한다. 아리랑 공연도 하나의 이유였다고 본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우리 일행보다 북한 인민들을 더 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대통령 개성공단 동행제안에 김정일 “통행증명서 없어…” ▶개성공단에 대한 두 정상의 시각차가 컸나. -마지막날 송별 오찬 때 노 대통령이 ‘개성공단에 한번 가시자.’고 했다. 그랬더니 김 위원장 하는 얘기가 “내가 지금 개성엘 가려면 통행증명서가 필요한데 아직 신청 못했어요. 나오면 그 때 가보겠다.”고 하더라.(통관·통행·통신의 3통 문제 등 더딘 개성공단 진척 속도에 대한 불만을 은유적으로 내보였다는 뜻)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는 논의되지 않았나.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북한 통일전선부와 우리 국정원 사이에 직통전화가 설치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상간 핫라인의 역할을 국정원과 통전부에 준 것이다. 중요한 부서간에 이미 핫라인이 있는데 정상간 별도 핫라인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스테판 해거드 北경제전문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0·4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간의 새로운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을 제시했다. 서울신문은 이같은 남북간의 경협 프로젝트들이 갖는 의미와 실현 가능성 등을 ‘제3자의 눈’으로 점검하기 위해 미국 UC샌디에이고 국제관계대학원의 북한 정치경제 전문가 스테판 해거드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해거드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경협 프로젝트들이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북한 경제의 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무엇보다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합의문은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진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특히 6자회담 ‘10·3 합의’와 연결해서 보면 의미가 크다. 그러나 10·3합의든 10·4합의든 북한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이행 의지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본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남북한의 경제는 분명히 잠재적인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 남한에는 자본과 기술이 있다. 북한은 고용을 갈망하는 노동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남북경협과 북한 경제 개발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남북경협의 성공은 근본적으로 안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이 핵 야망을 계속 갖고 있다면 통상과 투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 유럽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외국의 지원은 북한의 개혁과 연계돼야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시장경제를 확대하지 않으면 인프라(사회기반시설·제도)에 투자를 해봤자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셋째, 북한에 대한 지원과 ‘순수 상업거래’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민간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개입하는 합동 프로젝트 방식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합의한 경협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공동어로수역과 해주경제특별지역 설치를 꼽을 수 있다. 왜나하면 두 프로젝트는 개성공단 모델을 북한의 다른 지역에 확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어로수역은 남북간의 중요한 안보문제(NLL 논란)에 접근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인프라 건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효율성이 뒷받침될 때만 그렇다. 예를 들어 평양∼개성간 신고속도로 건설은 경제활동 확대에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돈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도 철저한 상업적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역시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남북경협이 북한의 경제발전과 북한 주민의 생활 개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가. -북한 주민은 절망적인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성장을 하려면 외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북한 당국은 반드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의 30%는 여전히 농촌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농민을 위한 농업 개혁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농지보유권이나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 많은 북한 기업들이 사실상 도산 상태이다.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과의 제휴, 심지어는 민영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 개혁들이 특별경제구역보다도 중요하다. ●북한 경제를 살리는 최선의 방안은 ▶개성공단 사업이 성공했다고 보는가. 또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공무역지대는 북한 경제개혁의 초기 단계로서 유용한 실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도 1960년대에 그런 지역을 만들었고, 중국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가공무역이 큰 전략의 한 요소에 불과했다. 개성공단이 성공하려면 그같은 실험이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돼야 한다. 또 투자자들도 일부 고립된 장소에서 벗어나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경제를 개방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는가. 북한경제를 살리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그것이 바로 결정적인 문제다. 북한의 경제가 개방되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중국에 국한돼 있다. 중국과의 무역이 한국과의 무역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남한에 경제를 개방하는 것은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개성공단을 방문했던 한국 기업인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기업인은 개성공단에서 북한 직원들과는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가 대화할 수 있었던 상대는 안내인뿐이었다고 한다. 한국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은 북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좀더 낫다고 들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분명히 한국과의 직접 접촉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투자 여부와 북·미 관계 전망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는가. -미국은 북한이 국제 금융기관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 그같은 정책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관들에 가입하게 되면 북한은 여러모로 배우는 것이 많게 된다. 물론 WB나 IMF가 자선기관은 아니다. 그들은 이치에 맞는 경제 프로그램과 성공여부가 확실한 개발 프로젝트에만 돈을 빌려줄 것이다. 또 투명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면 미국 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할까. -모든 글로벌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기업들도 북한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이 될 때만 투자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안보(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또 투자자가 이익을 얻도록 하려면 북한의 법률도 손질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의 당국과 사업 파트너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미국 기업들이 왜 북한에 투자를 하겠는가. 그것은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향후 북·미 관계를 어떻게 보나.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핵 문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어쨌든 현재의 6자회담 과정에는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맞을 것인가는 북한의 지도부에 달려 있다.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비록 점진적이라고 할지라도 개혁의 길로 들어서면 외부에서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또 한반도의 미래도 활짝 열리게 된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현재의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비참하고 배고픈 상황만이 기다릴 것이다. dawn@seoul.co.kr
  •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지옥이다/군부독재정권은 사탕을 개에게 던졌다/개가 빨아먹어 녹아 없어지는 사탕처럼, 군인이 빨아먹어 버마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여기가 지옥이다/단결은 어디 있고, 평화는 어디 있나/두려워 숨어 있나/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그래야 싸울 수 있다(‘따야 민 카익’의 시 ‘어디에 있나?’ 중에서).” 그의 시어는 거칠다. 에둘러 가지 않는 직설이다. 꾸밈도 은유도 없는 날것이다. 시인 고 김남주와 젊은 시절 김지하의 언어를 닮았다. 그에게 현 군부독재 버마(군사정권이 개칭한 국호 ‘미얀마’ 대신 옛 명칭 ‘버마’를 고수하는 민주인사들의 뜻을 존중해 ‘버마’로 표기)는 김남주와 김지하가 목숨 걸고 싸웠던 과거 한국의 판박이다. ●필명‘따야 민 카익’뜻은‘군정을 무너뜨리다’ 필명 ‘따야 민 카익’, 본명 쩌모르윈(37).27일 밤 서울 구로동 한 호프집에서 만난 그는 “내 조국 버마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침통해했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한 버마 국내의 참극에 마음이 상할 만큼 상해 있었다.“군사독재국가여도, 그 때문에 내가 나라 밖으로 떠돌고 있어도, 난 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이젠 왜 버마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고통스러워했다.“스님에겐 아들이라도 손을 모으고 예를 갖추는 게 버마 사람들인데, 군인들은 스님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있다.”며 버마로부터의 전언을 아프게 토해냈다. 쩌모르윈은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5명의 버마 시인 중 한 명이다. 모두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국으로 몸을 피한 경우다. 윈 포 마웅과 나잉윙 아웅은 버마에서 시집을 내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얀나이툰은 한국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에 시(‘아내를 위한 시’)를 발표했다. 쩌모르윈은 자신의 시를 버마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소식지에 실어 ‘동지들’의 마음을 위무했고, 지난해 11월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 모임(공동대표 유종순)’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대표 임동확)’이 마련한 ‘버마 혁명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했다. 지난달 27일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자들의 무사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버마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쩌모르윈의 시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무기’와도 같다. 필명 ‘따야 민 카익’마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겠다(‘따야=별’,‘민 카익=왕을 무너뜨리다’)는 다짐으로 지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 집회를 조직했고, 먹고 살기에도 벅찬 박봉의 상당 부분을 떼어 버마 내 민주화운동 지원자금으로 보내 왔다. 최근엔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CD로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태국의 미얀마난민촌에 보내고 있다.“시 쓰고, 노래하고, 노동해서 돈 벌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쩌모르윈은 설명했다.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에 정점에 이른, 버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중 총봉기) 당시 쩌모르윈은 17살이었다. 총을 쏘며 뒤쫓는 군인들이 무서워 그는 수 년 간 국경지대로 도망다녔다.NLD 멤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사와 간호사 일을 잃었고, 모든 생계활동이 봉쇄됐다. 쩌모르윈은 4500달러를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97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한국행을 택한 이유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또 극복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실제는 달랐다.2000년 난민 인정 신청을 접수한 그에게 한국 정부는 출국통보를 내렸다. 그와 동료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쩌모르윈은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서 난민 신청한 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난민 인정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정부만큼은 우릴 이해해줄 줄 알았다.”며 섭섭함을 나타냈다. 그는 태권도 도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먼저 일하던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폭행위협이 무서워 뛰쳐나온 이후 8개월 만에 얻은 일자리다. 쩌모르윈은 “한국은 버마만큼이나 공포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버마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한국에선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는 단속과 검거의 대상일 뿐이다. “버마가 민주화되지 못하면 숨 쉬고 살 수 없듯, 한국에 머물지 못하면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인권 앞에선 버마인도, 아프리카인도, 한국인도 없습니다.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쩌모르윈과 만나는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그때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버마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설명했다. 뉴스도 인터넷도 접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버마 정황을 세세히 전하고 있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경주, 그곳에 가고 싶다

    경주, 그곳에 가고 싶다

    경주세계문화행사가 50일간의 일정으로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막됐다. 올해 다섯번째이며 역대 최대 규모다.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 72개국 1만여명의 문화예술인이 참가했다. 행사는 6일 오후 7시 개막식을 가진 데 이어 7일부터 10월26일까지 50일간 경북 경주시 엑스포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는 최근까지 총 600억원을 들여 완공한 경주타워, 엑스포문화센터, 신라왕경숲 등 예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설들이 소개된다. ●82m 경주타워 멀티미디어쇼 눈길 개막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종민 문화관광부 장관 등 각계 인사와 주민 등 3200여명이 참석, 성공적인 경주 엑스포 개막을 선언했다.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 형상화한 높이 82m의 ‘경주타워’가 경주 보문단지 엑스포 공원 정문에 세워져 경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등장했다. 타워 옆 엑스포문화센터(지상 3층, 지하 1층)는 알에서 깨어난 신라문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돔형 지붕과 신라의 역사를 바코드로 새긴 정면 유리벽이 특징이다. 신라 개국설화를 담은 첨단 전시·공연시설로 지어졌다. 역시 공원내 부지 18만㎡에 조성된 ‘신라 왕경숲’은 신라의 숲이 가지는 역사·문화적 이야기를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2만 그루의 나무와 2만 송이의 야생화가 어우러져 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것은 ‘경주타워 멀티미디어쇼’. 타워에서 PIGI영상, 조명, 레이저, 불꽃, 입체 사운드가 입체적으로 어우러져 황룡사 9층탑의 탄생과 소실, 그리고 환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또 저승으로 붙잡혀 간 신라왕과 도공 소녀 유지를 구한다는 내용의 ‘도제기마인물상(국보 제91호)’을 3D 입체 영화화한 ‘토우대장 차차’가 선보인다. ●백남준 특별전 등 40여 프로그램 마련 CT(Culture Technology) 체험관에서는 신라시대의 궁궐,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 지옥세계 등을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공연은 일본, 중국, 캄보디아, 폴란드, 불가리아 등 15개 나라에서 18개 팀이 출연, 정통성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펼친다. 비보이 세계대회를 석권한 맥시멈 크루, 익스트림, 버스트 갬블러,T.I.P 등이 브레이크 댄스의 진수를 뽐낸다. 전시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인 백남준 특별전과 의상과 건축 등 우리 전통 문화를 디지털로 복원한 ‘한국디지털문화원형전’ 등이 마련됐다. 이 밖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발레단의 발레&쇼와 화장의 문화와 역사, 화장기술의 변천사 등을 전하는 뷰티엑스포가 열린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계자는 “이번 엑스포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면서 “기간 중 국내외 관광객 150여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며,31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부고]

    ●백낙환(학교법인 인제학원 인제대·백병원 이사장)낙청(서울대 명예교수·시민방송 명예이사장)낙서(인제대 교수)순영(재미 의사)미혜 미영(단국대 교수)씨 모친상 박숙란 한지현(광운대 교수)김윤희(포천중문의대 〃)씨 시모상 이호영(재미 의사)정경일(아주대 교수·전 주말레이시아 대사)최용(서울의대 교수)씨 빙모상 6일 서울 백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2270-0501●임동권(전 서울시 부교육감)흥식(솔로몬출판사 부장)우식(보령시청)한식(라일건설 현장소장)씨 모친상 성낙용 김승철씨 빙모상 6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30분 (02)590-2697●박정근(MBC 영상미술국 부장)씨 부친상 6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2650-2753●고성실(새한검증 대표)성태(한국문화관광연구소 이사)씨 모친상 고성은(한신보일러 전무)씨 빙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2●유태석(창미포장기계 대표)씨 별세 용운(창미포장기계 실장)씨 부친상 이상현(사업)씨 빙부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91●문대영(사업)진영(전 MBC 해설위원)씨 부친상 5일 영동세브란스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19-272-2416●박춘상(자영업)규상(시니어커뮤니케이션 이사)미숙(약사)은숙(〃)씨 부친상 박금천(구몬학습 지구장)이완정(시니어커뮤니케이션 대표)씨 시부상 이창순(창원대 교수)이창학(대한항공)씨 빙부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410-6915●이선주(SC제일은행 호평동지점장)씨 부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3●이규찬(전 대우자동차 상무)묘찬(양영초등학교 교사)오찬(월드건설 상무)씨 부친상 이응혁(원명학교 교사)박균진(사업)김홍완(현대자동차 차장)씨 빙부상 6일 조치원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41)868-8699●김병규(소년한국일보 편집국장)병주(농업)병택(강원영동병무청 운영지원팀장)씨 부친상 6일 경북 군위군 삼성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54)383-5411●김규엽(마이크로소프트 과장)씨 부친상 김운기(강릉인문학교 교장)씨 형님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63●문학동(전 충청북도 경찰청장)씨 별세 태영(외교통상부 대사)태원(수원대 교수)씨 부친상 강종봉(럭스성형외과 의사)씨 빙부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010-2631●이재윤(전 서울시 공무원)씨 별세 정근(삼성전기 과장)동근(건국대병원 원무팀 책임)미진(성북노인종합복지관 주간보호팀장)씨 부친상 조민수(사업)이용희(강남종합사회복지관 주임)씨 빙부상 최지희(바슈룸코리아 차장)씨 시부상 6일 건국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2030-7901●이봉희(삼안건설 부사장)장희(좋은유전자 대표)성희(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장)씨 부친상 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92-0499
  • 연극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연출 박근형

    연극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연출 박근형

    “어제 꿈에 니 동생이 나왔어. 지 소변이 너무 뜨거워 죽겠다는 거야. 온 다리에 쇳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텅빈 눈으로 집나간 막내아들을 부르는 어미. 그 뒤로 아들 이리가 울부짖는다.“엄마아, 뜨거워. 못 참겠어.”평상에 앉은 큰딸 이금은 깨진 수박을 거머쥐고 우악스럽게 먹어댄다. 연출가 박근형의 신작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26일까지)의 연습 현장인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 안. 한쪽에선 조명작업이 한창이고, 또 한쪽에는 누추한 옷가지들이 빨래줄에 널렸다. 지난 4월 LG아트센터에서 최민식 주연의 ‘필로우맨’을 지휘했던 박근형(44·극단 골목길 대표)이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작인 ‘내 동생의’(극본 지경화)를 연극으로 만든다. ‘내 동생의’는 먹거리 개를 키우는 가족 이야기다. 어미는 앓아누운 시아버지의 대변을 받아내고 큰딸 이금은 이혼해 돌아온다. 둘째딸 이손은 겁탈 당해 오줌을 지리고 쌍둥이 아들은 누이를 못 지켰다는 죄책감에 집을 나갔다. 연출자의 말을 빌리자면 ‘마지못해 사는 척박한 가족’이다. 지난해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올해의 예술상과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을 거머쥔 박근형이 이번 작품에선 ‘어머니’를 말한다. 어미와 딸, 아내, 며느리로 사는 여성들의 억압된 이야기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아직도 보이지 않는 숱한 인습과 통념을 견뎌야 합니다. 이 작품은 이 사회가 개와 같다는, 그 사나운 개들 속에서 여자로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개를 먹여야 한다는 암시가 있어요.” 상징과 은유가 많은 희곡이라, 관객과의 간극을 메우는 게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소극장으로 돌아온 마음만은 푼푼하다.“저는 편하죠, 이런 극장이. 소극장은 배우들의 연기가 가감 없으니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고…. 대극장에서는 아무리 리얼하게 해도 증폭시켜야 하니 장단이 있어요.” 이번 작품에는 그와 어깨를 겯어온 극단 골목길의 배우들뿐 아니라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여검사 장영남과 극단 백수광부의 정은영이 합류한다. 두 사람은 큰딸 이금과 어미로 살을 맞댄다. 브랜드파워가 높은 연출가로 꼽히는 박근형은 짐짓 동료들의 이름을 대며 칭찬을 밀어냈다.“최용훈, 김광보, 위성신 등 저희 또래들이 연출층이 두껍잖아요. 그래서 서로 배우고 자극을 많이 받아요. 양정웅은 섬세하고 전략을 잘 짜는 스타일이지만 저는 ‘에이, 될 대로 되라’예요. 연출미학이 있거나 이론이 없지요. 지금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많아요.” 기교나 겉치레없이 온전히 이야기의 힘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그는 “요새는 뒷심이 달린다.”며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11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할 차기작 ‘백무동에서’는 사뭇 솔깃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지리산 근처 마을 백무동에 사는 여자들이 할머니고 어린 아이고 할 것 없이 한꺼번에 아이를 밴다.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관통해온 그의 화법은 ‘내 동생은’에서도 비껴가지 않는다.“제가 세련되지가 못해서…. 거칠고 투박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죠.”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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