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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니칼·버진, 일금부부, 에세이 인격

    대학가의 이 알쏭달쏭한 풍속도를 아십니까? <테크니컬·버진> “마지막 교두보는 지키자” 한국적「즐기는」신안특허(新案特許) 요즘 여대생 사회에서는 TV란 은어가 은밀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 경우 TV란「텔레비전」의 TV가 아니라「테크니칼·버진」(Technical Virgin)의 TV. 직역하면「기술적인 처녀」정도의 뜻이 되겠다. 「기술적인 처녀」라면 뭘까. 여대「캠퍼스」에서는 이「테크니칼·버진」의 포괄적인 의미가 아직은「포퓰러」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으나 우리 여대생 사회에 있어서의 성개방은 이제 신화 속의 얘기만은 아닌「현실」로 부각되어 가고 있다. 새 가치관으로서의 성윤리의 몰락은「쾌락의 추구」와 직결된다.「테크니칼·버진」은 이 쾌락의 추구로서의「섹스」관. 적당한 수단과 방법으로「섹스」를 즐기되「버지니티」만은 고수한다는, 말하자면「코리어나이즈」된 성개방의 물결이다. 「퍼미시브」한 현대 사회구조에서 성에 대한「타부」의 동요 현상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 단지 바다 건너의 새「섹스」관이 여성의 처녀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데 반해「테크니칼·버진」은 최후의 교두보로서「버지니티」를 사수(?)한다는데 보다 한국적인 일면이 있다. S여대 학생회장인 김국경(金菊卿)양은『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여대생은 거의 전부가 가짜』라고 흥분한다. 학업에 몰두해야 하고 부덕(婦德)을 쌓아야 하는 여대생 사회에서 성의 개방이니 쾌락의 추구니 하는 어마어마한 죄악(?)은 있을 수도 있지도 않다는 것. 그러나 김양의 도덕적인 발언과는 달리 요즘 여대생 사회에서는 무언가 형체가 분명치 않은 새로운「섹스」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호텔」을 출입한다, 학자금이나 용돈의 마련을 위해 술집의「호스테스」가 된다, 가정부도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저명한 사학가「막스·러너」는 언젠가 현대를 고대「바빌론」에 비유해 개탄한 적이 있다.「바빌론」의「처녀성(處女城)」에도「테크니칼·버진」이란 게 있었을까. <일금일부(一金夫婦)> 중년, 여대생을「양육(養育)」한다 학자(學資)·용돈은「출장남편」이 「F·사강」의『어떤 미소』가 몇 년 전 상영된 적이 있다. 돈 있는 중년 신사와 여대생이 엮는「어떤 정사」가 줄거리. 그리고 분명 여기에서 영향받은 듯한 한 가지 중대한 현상이 명동 거리와 이름있는 어느「레스토랑」, 극장가에서 나타났다. 싱싱한 여대생과 말끔한 중년신사의「데이트」현장이 눈에 띌 만큼 자주 목격된 것이다. 요즘엔「일금부부」란 게 생겼다. 돈 있는 중년이나 사장족(族)이 일정액의 현금투자를 하곤 여대생을 양육한다. 방을 얻어주고 매달 생활비와 학자금을 대준다. 그리곤 1주일 에 한두 번씩 현지출장을 나가 어떤 형태의「부부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경우「부(婦)」쪽은 대부분 서울에 집이 없는 지방출신 아가씨. 일금 ○○○○○원정의 현금투자자로 맺어지는 이「일금부부」는 서울에만도 상당수가 있다는 얘기다. S대 J교수에 의하면 우리 여대생들에겐『시집가기 전에 멋있게 놀아보자』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엔조이」의식에 여대생 특유의「매머니즘」과 물질적 허영심이 교차될 때「일금부부」같은 편리한 변칙(?)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추론. 굳이 여대생의 경우만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여성의「출분」은 그 99%가 경제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작년 E대의 집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대생의「고민 제1위」는 경제 문제. 다음이 이성 및 성 문제, 가정 문제, 신체 문제, 사회가치 문제의 순서로 되어 있다. 힘 안들이고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일금부부」는 지극히 제한된 계층의 생활풍습(?)이긴 하지만 따라서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 미국에서는 미혼인 남녀 대학생이 공공연히 동거생활을 하고 있음이 밝혀져 얼마 전「뉴요크·타임즈」지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자유의 천국 미국에서는『처녀들이 교의(校醫)에게 피임약 처방을 요구할 자유』까지 보장되어 있다지만 우리 여대생들은 아내있는 남자와「일금」의 관계를 맺는다. 그것도 경제적 사유 때문에. 좀 슬픈 생각이 든다. <에세이 인격> 원전(原典) 외면하는 독서경향 척척 인용구로「유식」행세 『저 친구 얘기 한번 해보니까「에세이 인격」이더군』하는 소리가「캠퍼스」안에서 자주 들린다.「에세이 인격」이란 한 마디로 요새 번창 일로에 있는 유사(類似)「에세이」류만을 탐독, 교양이나 지식, 사고의 한계가 그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안모, 이모, 김모, 전모 등의「에세이」류나 읽고 대학생인 체하려는 사이비 대학생들을 꼬집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세이」류의 특징을 들자면 ①다분히「페단틱」하다는 것 ②주로 여대생들을 상대로 쓰여진다는 것 ③상식적「테마」보단 추상적「테마」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세이」류를 읽음으로써 대학생들은 원전을 읽지 않고서도 언제나 풍부한 인용구를 소유할 수 있으며「유식한」냄새를 타인에게 과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을 보지 못한 인용어구는 하나의 사상누각(沙上樓閣) - 결코「유식」할 수 없다.「깊이」는 가고「재기」만 남은 셈이랄까? 「에세이」류가 결코 상아탑의「텍스트」일 수는 없다는 논리의 동일 연장선 위에 요즈음 대학생들의 학점 중시경향을 놓을 수 있겠다. 5·16 전만 해도 출석은「사인」으로, 학점은 졸업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던 것이 이제 꼬박꼬박 교수가 출석을 부르고 평균 B를 위해 고등학교 시절 학원에 나가던 기개로「노트」를 외어야 한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애인까지「카드」정리에 동원해야 했던 어제에 비하면 취직시험을 위해 애인의 아버지를 동원하는 오늘의 대학생이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하기도 하다. 시험을「보이코트」했을 때 시험을 친 학생에겐 무조건 C를, 시험을「보이코트」한 학생들에겐 모두 B학점을 주던 교수도, 학생도 이젠 없다.『전체의 의사를 배반했기 때문에 C학점을 준』그런 일은 신화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학점만이 학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잡다한「에세이」류가 인생의 폭을 넓혀주는 건 결코 아니다. 대학의 젊음을 보다 건강히 연소시킬 수 있는, 학점도「에세이」도 아닌 곳에 오히려「로마」로 가는 길은 뚫려 있지 않을까? [ 선데이서울 68년 10/27 제1권 제6호 ]
  • [주말화제] 한동대생들 신개념 성교육영화 제작

    [주말화제] 한동대생들 신개념 성교육영화 제작

    “형도 누나 생각하면서 그거 해요?”“아니야, 인마. 나는 누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보호해 주고 싶고 그런 거야. 진짜 좋아하면 안 그래.”(석호와 광욱의 대화) “언니, 그거 해봤어요?”“무작정 하면 좋을 것 같니?살덩어리끼리 맞닿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지혜와 수연의 대화) 따분하고 형식적인 기존 성교육의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대학생들이 신개념 성교육 영화를 만들었다. 한동대 복합문화극단 ‘다리 놓는 사람들’이 찍은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이다. 의식 변화와 인터넷 보급 등 바뀐 환경에 맞춰 청소년들의 성 고민과 해결책을 솔직하고 흥미롭게 담아냈다. 제작진도 몇년 전까지 성교육을 받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다. 기존 프로그램의 문제를 잘 아는 만큼 요즘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최대한 근접시켰다고 자평한다. ●평범한 중고생들이 만드는 솔직 담백한 에피소드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에서 힌트를 얻은 1시간짜리 영화에는 중학생 광욱과 수연, 고등학생 지혜(광욱의 누나)와 석호(지혜의 남자친구) 등 4명이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잠 못 이루며 밤새 자위행위를 하는 광욱의 모습. 광욱은 여자만 보면 알몸을 상상하고, 친구들과 포르노를 돌려보며 우정을 확인한다. 수연은 성에 대한 지식이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 같아 걱정하는 조용한 여중생이다. 친구가 가져온 포르노를 보며 “이거 보고 초경하는 거 아냐.”라고 물을 정도로 순진한 수연이는 부모님이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지혜와 석호 커플은 남자와 여자의 성에 대한 인식 차를 보여준다. 석호의 친구들은 “여자가 속으로만 기다리고 있을 때 멋있게 리드해 주는 게 남자”라며 콘돔을 건네고, 지혜의 친구들은 “좋아한다고 다 받아주면 끝도 없어. 지들(남자들)은 하든 말든 티도 안 나잖아.”라고 충고한다. 영화는 난자, 정자, 낙태, 성병 등에 대한 정보 위주인 기존 성교육에 직격탄을 날린다. 지혜가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던 중 낙태 부분이 나오자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 친구가 교실을 뛰쳐 나간다. 교실 뒤에서는 “요즘엔 돈만 주면 개나 소나 다 해주는 건데 왜 자꾸 보여주고 난리야.”라는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진다. 여자친구를 뜻하는 ‘깔’ 등 청소년들이 실제 쓰는 비속어나 은어도 여과 없이 사용됐다. 제작진은 성이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초경을 한 뒤 생리대를 사러 가서 “저기, 하얀 거 그거 주세요.”라고 더듬거리는 수연이에게 슈퍼마켓 주인이 “여자면 당당해야지,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니.”라고 충고를 해준다. 수연이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어른이 됐음을 설명하는 슈퍼마켓 주인 역은 제작 취지에 공감한 청소년 성고민 상담실 ‘푸른 아우성’의 구성애 대표가 맡았다. ●파격적 표현 속 “아름다운 성” 메시지 담아 시나리오 완성에만 2개월이 넘게 걸렸다. 학생 6명이 100여편의 성교육 관련 논문과 300여개의 인권단체에 접수된 성폭력 사례를 탐독하고 장면마다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다리 놓는 사람들 최영환(25) 대표는 “올 3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남고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8%가 현재의 성교육에 대해 ‘장난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면서 “얼마 전까지 청소년이었던 회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 놓인 인식의 괴리를 좁히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위원회와 좋은교사운동본부의 추천을 받은 이 영화는 DVD 등으로 제작돼 인터넷(www.bridgist.com)에서 판매된다. 시사회는 11일 오후 2시 신촌 아트레온에서 열린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日서 성매매 여성의 ‘증언’

    “요즘 일본 그라브(클럽)의 마마(업주)들은 유독 한국 여성들에게만 성매매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여성들이 업소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방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가혹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일본 오사카 인근 클럽에서 일하다 올 2월 귀국한 정수민(25·여·가명)씨. 정씨는 국내 모집책의 소개로 지금까지 일본에만 두 차례 다녀왔다. 처음에는 관광비자로 2개월간, 두번째는 연예인비자로 6개월간 일본에 머물면서 클럽의 ‘헬퍼(술시중 종업원)’로 일했다. 그는 방 3개짜리 맨션에서 한국 여성 8명과 합숙을 했으며, 자신이 일했던 곳 주변에는 한국 여성들이 20여명씩 일하는 클럽이 여러 곳 있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성매매를 가리키는 ‘호텔 도항(동반의 일본어 발음)’이 최근 일본내 클럽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으며 한국 여성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국내 가수와 배우들의 ‘한류 열풍’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호텔 도항’이란 영업 전에 손님과 호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것을 가리키는 현지 은어로 도항 후 클럽까지 같이 가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2차’를 가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정씨는 “업주와 야쿠자의 강요로 도쿄, 오사카, 나고야, 요코하마 등 일본 도시마다 한국 여성의 성매매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여성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이들을 잡아놓기 위한 ‘반스(선불금)’ 등 수법도 점차 거칠고 가혹해지고 있다. 정씨는 “마마로부터 받은 반스가 1000만원에서 출발해 벌금과 이자 명목으로 1억원까지 늘면서 몇해째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나라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나 필리핀, 러시아 여성보다 한국 여성의 인기가 높아 업주마다 선불금을 높게 주며 잘해주는 척하지만 나중에는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등 불상사가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서울이야기] 어떤 동식물들이 사나

    [서울이야기] 어떤 동식물들이 사나

    빽빽이 들어선 건물,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 수없이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 서울을 비롯해 큰 도시에는 사람들만 가득히 모여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도시에도 수많은 동식물이 사람과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서울에 사는 동식물만 해도 3000여종이 넘는다.특히 동물의 경우 척추동물에 대한 조사 위주여서 생물종수는 휠씬 많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벽면에 귀를 귀울이면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고, 메마른 땅 위를 자세히 살피다 보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도 관찰할 수 있다. 주택가 화단은 물론이고, 아파트의 정원, 공원, 길가의 가로수, 하천변, 나대지, 매립이 완료된 폐기물매립장 등 도시의 다양한 공간에 수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 편집자주 서울을 비롯한 도시라는 공간에는 어떤 종류의 생물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오랫동안 도시라는 공간이 생물들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도시에서 생존할 수 있는 동물과 식물의 수도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도시에서의 생물종 조성은 우연의 산물로, 규칙성과 인과성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중부유럽을 중심으로 도시의 생태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도시생태에 대한 인식이 전환될 수 있었다. 도시생태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인간에 의한 토지이용이 비교적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다양한 유형의 토지 이용패턴에 따라 다양한 생물서식지가 형성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생물종 조성을 보여주고 있다. 개발지와 녹지 및 수(水)공간 등의 오픈스페이스로 구성된 도시는 생물서식지라 할 수 있는 비오톱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비오톱(Biotop)이란 그리스 어원의 생명을 뜻하는 bios와 장소를 뜻하는 topos가 합쳐진 독일어로 특정생물군집의 공간적 경계를 가지는 서식지를 의미한다. 도시의 비오톱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조밀하게 연결돼 있다. 벽면, 주택과 아파트의 정원, 공원, 길가의 가로수, 하천변, 나대지, 매립이 완료된 폐기물매립장 등 도시의 다양한 공간에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공간에서 생명체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서식지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의 생물은 척추동물 및 고등식물로, 생물종 관련 자료들은 조사된 생물분류군이나 조사의 정밀도에 따라 종수의 편차가 비교적 큰 편이다. 오래전부터 도시의 생물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방대한 도시생태자료가 축적되어 있고 이를 도시 관리에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도시가 베를린이다. 베를린에는 6000종 이상의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서식하고 있으며 이중 식물종(균류 및 지의류 포함)은 1854종, 조류가 160여종에 이른다. 일본 도쿄의 경우 7582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중 식물종은 4323종, 조류는 422종이 살고 있다. 히로시마는 총 생물종수가 7659종으로 이중 식물종은 3115종, 조류는 278종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이러한 수치를 통해 도시의 생물종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깊이 있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604㎢의 면적에 1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에는 얼마나 다양한 생물서식공간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살고 있을까.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슬퍼한다.”는 자연사가 알도 레오폴드의 말처럼 우리 주변의 동식물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지면 그들의 어려움과 그들의 사라짐에 대해 슬퍼하게 되고, 그 마음은 다시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은 한강 중류의 남북에 걸쳐 있다. 뚝섬·한남동·서소문·북아현동을 경계로 서남방은 편마암이, 동북방은 화강암이 분포한다. 도심부인 낮은 평지는 충적층이 지표를 덮고 있다. 북쪽에는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뻗친 북한산의 지맥인 북악과 이에 연(連)한 인왕산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관악산은 북한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그 중간에 남산이 있고, 그 사이에 많은 구릉과 산악이 산재해 토지의 기복이 심하다. 동서로는 한강이 관통하여 녹지와 수계가 조화된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한강의 지류인 중랑천, 청계천, 홍제천, 불광천, 탄천, 안양천, 양재천 등이 흘러 주요 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는 지금까지 여러 조사 결과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대부분 척추동물 및 고등식물에 대한 조사가 많아 실제 서울에 서식하는 생물종수는 이들 조사결과보다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존자료에 기록된 서울의 총생물종수는 식물종 1463종을 포함하여 총 3000여종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 산림지역에 대한 생태계 조사에서는 환경부지정 법적 보호식물인 고란초, 끈끈이주걱, 땅귀개, 관중, 금강제비꽃, 산개나리, 삼지구엽초 등 총 10종의 주요 서식처가 계곡 주변부와 암반틈에서 발견되었다. 관악산을 비롯한 8개 산에서 발견된 총 식물종수는 주요교목인 신갈나무·소나무를 비롯해 582종이며, 이 중 버섯류는 영지버섯·곰보버섯 등 123종이다. 산림에서 나타나는 동물종은 총 531종으로, 한국특산종인 도롱뇽, 무자치와 황조롱이가 발견됐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포유류로는 고슴도치, 너구리, 족제비 등 12종이 확인됐다. 한편 조류는 황조롱이, 큰오색딱따구리, 꾀꼬리 등 총 46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중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법적 보호종이다. 한강은 오랫동안 서울시민의 상수원 및 친수공간으로 이용돼왔다. 과거 한강유역의 인위적인 이용은 한강의 자연생태계에 큰 영향을 줬으나 하상정비·한강종합개발사업 등 다양한 한강정비사업으로 수질환경이 향상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제5차 한강생태계조사에서는 수십년간 사라졌던 은어·황복 등 57종의 물고기가 발견됐다. 물고기·새·곤충 등 한강 생태계에 대한 종합조사를 통해 생물다양성을 파악하고 생태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1986년부터 4년 주기로 한강생태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은 인구 증가를 수반하는 급격한 도시성장으로 토지이용이 고밀화되었기 때문에 도심지역에서는 생물서식 환경이 파괴되어 야생동식물이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상당부분 불투수포장이 된 도심에서도 흙이 있으면 식물이 자라고 식물이 자라면 이를 먹이로 하는 곤충이 날아든다. 불투수 토양포장이란 건물을 비롯해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와 같이 기타 불투수성(不透水性) 재료로 포장된 공간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주거단지를 비롯한 다양한 개발사업에서 가급적 많은 녹지공간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고 서울시에서도 기성시가지 내에 소규모공원을 조성하는 등 도심에 녹지공간이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도심에서도 토지이용 유형에 따라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낮은 불투수포장비율로 토지이용이 이루어진 비오톱에서는 생물 다양성이 높다. 예를 들어 주거지와 상업 및 업무지의 경우 건물의 층수와 같은 물리적 환경이 유사할 때 불투수포장면적비율이 크면 출현하는 생물종 수가 적다. 따라서 토지이용에서 불투수포장면적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서울의 도심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생물종은 개나리, 단풍나무, 사철나무, 아까시나무, 장미, 토끼풀, 서양민들레 등의 식물과 꼬마꽃등에, 푸른부전나비 등의 곤충류, 그리고 조류로는 까치, 박새, 참새 등이다 서울시자연환경보전조례는 자연환경보전법에서 위임된 사항과 서울시 자연환경을 종합적·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여 시민이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여유 있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생물종 보호와 관련해서는 관리야생동식물을 지정·보호하고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관리야생동식물은 첫째 멸종위기에 있거나 개체 수가 감소하는 종, 둘째 산림·하천·습지·고지대 등의 일정지역에 국한하여 서식하는 종으로 보호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종, 셋째 학술적·경제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종, 넷째 기타 시장이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종 중에서 지정·고시한다. 현재 서울시에는 서울오가피, 삼지구엽초 등 7종의 식물과 노루, 오소리 등 4종의 포유류, 두꺼비, 도롱뇽 등 6종의 양서·파충류를 비롯하여 총 35종이 관리 야생동식물로 지정돼 있다.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고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을 인위적인 훼손 및 오염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생태계보전지역을 지정·관리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법에 근거한 생태계보전지역은 현 상태 그대로의 보전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시 최소한의 복원을 실시하고, 주변지역 주민·단체들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관리한다.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원칙적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생태계보전지역 내에서 야생동식물을 포획, 이식하거나 고사시키는 행위, 하천·호소(호수와 늪) 등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수위 또는 수량에 증감을 가져오는 행위, 토석 채취와 수면 매립 그리고 불을 놓는 행위는 할 수 없다. 2005년 1월 현재 생태계보전지역은 8곳으로 209만 7574㎡에 달한다. 특히 한강 밤섬 생태계보전지역은 대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생태계의 보고로 여의도 북쪽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 위치한다. 1990년대 들어 철새도래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됐으며,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쇠부엉이, 원앙, 흰꼬리수리 등 4종과 밤섬 번식 조류인 흰뺨검둥오리, 개개비, 해오라기, 꼬마물떼새, 할미새 등을 비롯하여 25종의 조류가 확인되었다. 식물은 버드나무, 갯버들, 용버들, 느릅나무 등 189종이 자생하고, 어류는 붕어, 잉어, 뱀장어, 누치, 쏘가리 등이 관찰되고 있다. 현재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있다. 겨울철새 먹이주기 및 여름철 장마 이후 청소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개방된다.
  • [안동환기자의 현장+] ‘리허설없는 인간극장’ 법정에 가다

    [안동환기자의 현장+] ‘리허설없는 인간극장’ 법정에 가다

    한 인간의 죄(罪)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서는 ‘숨겨진 진실’과 ‘드러난 증거’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인다. 하지만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할 것 같은 살인범은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매달리고,30만원의 벌금은 “절반만 깎아달라.”며 흥정 아닌 흥정이 벌어지는 곳이 또한 법정이다. 지난 8∼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법정.2005년 3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사재판의 백태를 들여다 봤다. # 장면 1 “살해순간에도 사랑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422호 법정. 스크린에 비치는 법정은 하나같이 세상의 관심이 가득한 화제의 현장으로 떠들썩하지만, 실제 법정은 단순 절도이든, 살인사건이든 살풍경하기 이를 데 없다. 1심에서 살인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정모(36)씨의 항소심 재판에도 방청객은 노모와 누이로 보이는 여성, 그리고 기자 등 세 사람뿐이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 정씨의 꿈은 소박했다. 결혼해서 노모를 모시는 것.10여년 동안 억척스레 1억 7000만원을 모았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여성에게 1억원을 사기당했다. 긴 방황 끝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을 다시 만났지만 돈이 떨어지자 그 여성은 정씨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사기를 당해 방황할 때 만난 술집 종업원이었죠?”“피해자가 술집에 출근을 못하면 그 벌금도 대신 내줬죠?”“하지만 피고인의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차갑게 대했죠?”“피고인의 모친과 누나도 피해자에게 결혼을 설득했죠?”정씨는 변호인의 질문에 조그만 목소리로 “네!”라고 짧게 답변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변호인이 “살해하는 순간에도 피해자를 사랑했느냐?”고 묻자 정씨는 갑자기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었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왜 결혼에 그렇게 집착했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어릴 때부터 불우해서 나만큼은 결혼도 하고 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게 꿈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한 정씨는 최후 진술에서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며 사형을 요구했다. 아들을 지켜보던 노모는 끝내 흐느끼고 있었다. # 장면 2 “사흘 굶주리다 지갑 훔쳤습니다” 재판정에서 바라본 판사는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거의 모든 사건에서 법과 인정은 서로 맞부딪치는 듯했다. 지갑을 훔친 혐의로 구속된 박모(27)씨 사건도 그랬다. 박씨는 고향에서 상경한 뒤 가구공장 종업원으로 일했다. 불황으로 공장이 문을 닫자 거리를 떠돌던 그는 사흘 동안 굶주리다 절도범이 됐다. 국선 변호인은 “배가 고파 지갑을 훔친 전형적인 곤궁범으로 고향에 돌아가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면서 선처를 요구했지만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나라면 법의 준엄함을 선택할까, 아니면 한 인생에 다시한번 기회를 줄까. 박씨의 재판이 끝나자 법정에는 미모의 20대 여성이 떼를 지어 등장했다. 피고인은 윤락행위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강남의 한 룸살롱 마담. 여종업원 5명이 응원하러 나온 것이다. 이날 심리는 이른바 ‘2차’를 나가느냐 아니냐에 초점이 모아졌다. 증인은 ‘메이커’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룸살롱 여종업원. 마담측 증인으로 나온 그녀는 “우리 가게는 ‘텐프로’이기 때문에 2차가 없다.”고 주장했다. 텐프로란 소위 ‘수질’이 가장 좋은 강남의 룸살롱 가운데 상위 10%를 가리키는 은어라고 한다. 그녀의 증언으로 드러난 선불금의 규모는 1000만∼6000만원. 증언이 진행될수록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등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테이블에서 손님과 대화하고 술시중만 든다는 그녀가 받는 팁은 하루 30만∼40만원. 한달 수입은 600만∼700만원이라고 했다.“2차도 없이 그냥 대화만 하고 거액의 봉사료를 받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검사의 신문에 여인의 답변은 도도하기만 했다.“검사님도 한번 와보세요.” # 장면 3 “피고인이 증인 신문하세요” 4층의 또 다른 법정. 중개한 장외 주식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 변호인과 검사의 신문이 끝나자 판사는 “증인에게 질문이 있으면 하세요.”라고 피고인에게 신문 기회를 준다. 증인은 피해 회사의 직원. 오랫동안 참았다는 듯 포문을 연 피고인의 매서운 신문.“증인은 주식 매입을 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본인의 사무실은 증인의 회사와 도보로 5분거리에 있는데도 수령장을 받지 못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데 설명하세요.” 10여분 동안 계속된 피고인의 신문에 증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판사가 “피고인의 말이 거짓말이냐.”고 다그치자 증인은 우물쭈물한다. 재차 피고인이 검찰의 수사기록 쪽수까지 제시하며 증인의 진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동안 검사와 변호사는 모두 묵묵부답이다. 판사가 “피고인의 신문에 끼어들어 미안하다.”며 뜨거운 법정을 정리한다. 성폭행 재판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달라졌다. 특히 전자법정의 도입으로 가해자와 대면하지 않고도 피해자의 진술이 가능해 더 이상 주눅든 피해자를 찾을 수 없다. 한 30대 성폭행범의 재판. 스피커로 피해 여성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온다.“저 사람이 범인입니다. 처벌해 주세요.” # 장면 4 “벌금 절반으로 깎아주세요” 도로교통법 위반 등 경미한 범죄로 벌금형을 부과하는 형사단독 법정. 지갑이 얇은 서민일수록 애간장이 탄다. 대부분 약식기소된 벌금을 조금이라도 깎아보려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다 보니 변호인도 없이 스스로 변론을 한다. 변론 요지는 물론 벌금을 깎아달라는 것.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30대 트럭운전사에게 부과된 벌금은 200만원이었다. 판사에게 “단 한 차례 실수로 면허가 취소되는 바람에 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울상을 짓는다. 판사가 “벌금을 깎아달라는 말이죠?”라고 묻자 반가운 듯 고개를 연방 끄덕인다. 판사의 선고는 벌금 100만원. 절반이나 뚝 잘려나갔음에도 불만이 얼굴 가득 배어 있다. 술취해 공공기물을 파손한 50대 남성은 검사가 30만원을 구형하자 “차라리 교도소에 가겠다.”고 응석을 부렸다. 판사가 초범임을 감안, 선고를 유예하자 “두번 다시 술을 입에 대지도 않겠다.”며 지키지도 못할 공약(空約)을 남발한다. 거리에서 불법 DVD를 팔다 벌금 100만원을 구형받은 30대는 “앞으로 나쁜 짓을 안 하고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기자는 3년전 법조를 출입한 적이 있어 법정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당시에 지켜본 법정의 모습과 현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심리 시간은 두배 이상 길어졌다. 입 다문 ‘피고인’을 사이에 두고 검사와 변호사가 벌이던 ‘그들만의 공방’은 사라졌다. 판사와 피고인이 가세해 말이 많아진 법정. 피고인이 속 시원히 할 말을 다 하는 재판은 선고 결과야 어떻든 억울함은 남지 않을 듯싶었다. ■통계로 본 법원 24시 2004년 형사재판 처리건수는 모두 23만 7070건이다. 하루 650여명의 피고인이 전국 387개의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아, 매일 273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형사 항소심의 경우 고등법원은 9106건, 지방법원은 5만 2446건을 처리해 각각 134건,835건의 무죄가 나왔다. 죄목별 형사법 위반자는 2004년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2003년 통계로 볼 때 사기 및 공갈죄가 3만 2250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절도 및 강도가 1만 3971건, 상해 및 폭행이 5621건, 강간·추행·성풍속 위반도 3600건에 달했다. 살인은 823건으로 매일 2.25건의 재판이 진행됐으며,36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특별법 위반 사건은 도로교통법 위반이 2만 128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뺑소니 등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이 1만 2685건, 마약도 4568건이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2001년 12명,2002년 7명,2003년 5명,2004년 8명이다.2005년 3월 현재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피고인은 모두 60명.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60번째 사형 확정자가 될 듯하다. 법정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검찰의 신문조서보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의 신문으로 진실을 밝히는 공판중심주의가 불러온 새 바람이다. 이른바 ‘말 많아진’ 재판으로 무죄율은 2001년 1.4%에서 2003년 1.9%로 높아졌다.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도 2001년 93.6%에서 지난해 81.1%로 줄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도심서 만나는 내고향 특산물장터

    도심서 만나는 내고향 특산물장터

    서울 중구 새서울 지하상가와 을지로 지하상가에 처음 선보인 ‘내고향 특산물 장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향맛’을 그리는 중·장년층과 ‘토종 한국산’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달 3일 문을 연 내고향 특산물 장터는 경기도 양평, 강원도 화천·원주·대관령·평창, 경남 하동·함양·산청·합천, 경북 영덕, 충남 부여, 충북 수안보, 전북 정읍·고창, 전남 영광 등 15곳이다. 이곳에서는 영광 굴비, 영덕 과메기 등 산지에서 직송해 온 특산물들을 시중가보다 20∼30% 정도 싸게 팔고 있다.‘대관령 원예농업 샐러드바’의 박선영 지점장은 “하루 평균 80∼100여명이 방문하며,130명 넘게 찾아올 때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측은 “이달중 충남 천안·아산시, 제주도 특산물 장터가문을 열고, 지역 축제와 연계된 이벤트도 수시로 펼칠 계획”이라면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 새서울 지하상가에는 ‘세계 풍물 장터’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재희 고금석기자 s123@seoul.co.kr ‘도심 한가운데서 내 고향 장터를 만난다.’ 서울 중구 을지로 지하상가와 새서울 지하상가에 처음으로 선보인 ‘내고향 특산물 장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2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3일 화천·함양·수안보·부여·양평·정읍·산청·원주·영광·고창·합천·대관령·평창·영덕·하동 등 전국 15개 시·군 특산물 장터를 연 데 이어 이달중 천안·아산시, 제주도 특산물 장터도 문을 열 예정이다. 김준식 상가경영처장은 “개장한 지 1개월도 안 됐지만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여 추가로 입점하려는 지자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앞으로 을지로 지하도상가를 국산 농산물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는 매장으로 특화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곳에 ‘내고향 특산물 장터’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서울 시내 29개 지하도상가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비어 있는 도심 지하공간을 농수산물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장터로 활용키로 하고, 입점할 지방자치단체를 모집했다. 그 결과 지난달 화천과 영광, 영덕 등 15개 지자체가 장터를 개설, 각 지역의 특산물을 직송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함께 문을 연 전통문화홍보관은 명장들의 도자기·한복·자개장 등을 선보였다. ●‘향수’ 느끼는 중·장년층에 인기 도심한 가운데 ‘내고향 장터’가 생기자 가장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중·장년층이다.“기왕이면 내고향 상품을 사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합천군 농협매장에서 분말청국장(500g)을 1만 5000원에 구입한 박복순(55·여)씨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는데, 지나다가 고향 특산물을 판다기에 반가워서 들렀다.”며 “다른 매장보다 값이 싼 것 같다.”고 말했다. 을지로 지하상가 내고향 장터의 경우 위치가 사무실 밀집지역인 을지로 일대인 데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2·3호선 을지로 3가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여서 오고가는 직장인들의 발길도 잦은 편이다. 경기도 양평군청 매장에서 판매를 맡고 있는 안광원씨는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단골 손님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나 농협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 매장보다 20∼30%나 더 싸다.”고 말했다. ●‘진짜’ 국산 아니면 ‘퇴출’ 이곳에서 파는 양평군 지재면산 된장·고추장 등 장류는 6000∼1만원대, 충남 부여군의 밤(1㎏)은 5000∼6000원 정도. 한 봉지에 1만∼1만 2000원 정도인 영덕·영해산 과메기와 20마리에 1만∼7만원대인 영광 굴비는 가격도 싸고 진짜 국산이라는 신뢰를 받아 인기를 끌고 있다. 국산만 판매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시설관리공단측은 국산이 아닌 제품을 파는 것으로 적발되면 내고향 장터에서 아예 ‘퇴출’시키는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다. 김진석 상가경영팀 과장은 “단순히 판매 장터라기보다는 각 지방의 특산물과 축제를 홍보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산지 물건이 아닌 제품을 판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아직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소비자나 관련 단체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 문화 체험장, 지역 축제 이벤트도 열려 새서울 지하상가는 서울광장·덕수궁·명동 등 관광지와 백화점, 재래시장, 호텔들과 인접해 있어 관광객들이 왕래가 많다. 이런 특성을 살려 새서울 지하상가의 내고향 장터는 ‘세계 풍물 장터’로 특화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강원 화천군청과 경남 함양군청의 특산물 매장 옆에 ‘세계 풍물 장터’를 입점시킬 계획이다. 원주 치악제·효석 문화제·평창강민속축제 등 지역축제와 연계한 이벤트도 진행된다(표 참조). 고로쇠 축제가 열리는 3월에는 양평군·하동군·산청군 매장 등이 참여한 고로쇠 시음행사가 열린다.7월에는 화천군·부여군·수안보농협·원주신림농협 매장에서 삼복행사 및 은어 맛보기 행사도 마련된다. 서재희 고금석기자 s123@seoul.co.kr ■ 대관령 웰빙 샐러드 눈길 을지로 지하상가 대관령 원예농협의 ‘샐러드바’가 눈길을 끌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다른 장터들과는 달리 ‘샐러드바’라는 독특한 컨셉트로 매장을 꾸몄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된 세련된 분위기의 샐러드바지만, 이곳 역시 음식의 재료만은 ‘토종’을 고집하고 있어 젊은 층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달새 두번이나 들렀다는 이근복(56)씨는 “웰빙이 유행이라는데 이런 곳에서 젊은이들처럼 웰빙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신선하다.”고 말했다. 박선영 지점장은 “산지 물건을 수시로 직송해 들여와 샐러드로 만들어 팔고 있다.”며 “하루 130명 넘게 찾아올 때도 많아 대관령 농협 측에서 아예 체인점 형식으로 지점을 확장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뉴는 10여가지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단호박, 고구마, 감자 고로케는 2개 1000원, 군고구마는 한개 1000원, 메밀꽃 차, 녹차, 허브차도 1000원이다. 과일, 그린 샐러드 역시 한 접시에 1000원, 햄과 토마토 샐러드는 15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0)명태잡이의 본산 강원도 고성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0)명태잡이의 본산 강원도 고성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강원도 최북단 고성 거진항이 부른다.2월 말이면 늘상 열리는 명태축제가 올해로 일곱회 째다. 올해는 24일에 시작해 바로 어제인 27일에 끝이 났다. 그런데 축제랍시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 그 많던 명태들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이랄까. 올해는 축제가 열릴 무렵 명태가 기대보다 많이 잡혀 그럭저럭 외지 손님들에게 ‘우리 것’을 팔 만큼은 되었다. 명태들이 잔치 분위기를 미리 읽고 잔치판을 기웃거리다 그렇게들 잡힌 것일까. 도대체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에서 곧장 고성 거진항으로 가지 않고 먼저 속초엘 들렀다. 속초에서 1-1번 시내버스를 탔다. 이따금 버스 차창가에 자리 잡고 창문 너머의 동해 풍경을 음미하면서 떠나는 바다여행은 나름의 운치와 여유가 있다. 물론 바다쪽에 앉아야만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이 노선버스의 특징은 속초항을 출발해 천진, 아야진, 공현진, 그리고 간성읍내와 반암리를 거쳐 거진항까지 끊임없이 정차, 발차를 반복하되 반드시 옛길로만 달린다는 점이다. 동해안에서 군생활을 한 독자라면 기억날 것이다. 이 시내버스가 달리는 옛길이야말로 일제시대부터 있던 바로 그 ‘신작로’다. 왜 느닷없이 버스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30여년 전에 이곳 동해안 포구마다 가득 쌓여 있던 명태 생각이 떠올라서다. 거진항에도 당시 거짓말 보태지 않고 무슨 동산처럼 명태가 쌓여 있었다. 거진항이 한 눈에 굽어보이는 산동네 성황당에 오르면 명태를 말리느라 읍내 전체가 명태밭이었고, 그래서 낯선 이에게 생태 한두마리 건네 주는 것으로는 셈도 치르지 않았다. 30여년 전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명태가 그런 대로 잡혔다. 그러다가 최근 5년여 전부터는 급격히 어획량이 줄어 지금은 그 ‘동해명태’를 구경하기도 어렵다. 서울 등지의 값비싼 생태는 대부분 북한산 아니면 일본산이다. 온난화 때문에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떤 문제만 생기면 온난화를 앞세우는 그런 주먹구구식 견해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노가리와 명태는 다른 종자? 근자에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노가리는 명태와 다른 종자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잡아 먹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바람에 명태가 씨마를까 걱정하던 어부들도 주저없이 노가리를 잡았으며, 해마다 엄청난 양이 술안주로 사라졌다. 정부의 공식 견해도 “노가리는 명태새끼가 아니다.”는 것이었으니 민·관 합동으로 명태의 씨를 말린 꼴이다. 결론은 뻔하다. 노가리의 부모가 틀림없이 명태임이 확인되었다. 그렇게 새끼들을 잡아들이고서야 어찌 큰고기가 남아 잡히기를 기대할 수 있으야. 남획은 어김없이 인간에게 보복을 가하여 ‘국민의 생선’이었던 명태는 이제 특수 계층의 생선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원양태마저 사라진다면, 명태는 역사책에서나 만나게 되리라. 명태는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이다. 그 자리를 넘보는 생선은 없다. 서해안 조기가 여기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기는 하지만, 미안하게도 굴비는 총어획량에서 북어에 훨씬 못미친다. 조기와 명태의 공통점은 ‘절받는 물고기’란 점이다. 조기는 제사상 같이 격식이 필요한 곳에서나 대접을 받지만 명태는 시도때도 없이 상전대접이다. 전국 어딜 가나 ‘북어 대가리’ 하나 안걸린 곳이 없으며, 굿판·고사판의 단골이기도 하다. 의례의 주역으로 자리잡았음은 그만큼 품격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며, 그 사실 만으로도 역사문화적 권위를 담보한다. 고려나 조선 전기에는 명태라는 말이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상의 ‘무태어’가 명태라는 주장이 있으나 입증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300여년 전 명천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최초로 잡았다 해서 명태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전설이 최소한의 진실은 가진다. 함경북도의 명산인 칠보산에 면한 명천에서 남쪽의 원산 근역까지가 천혜의 명태잡이 어장이었다.“함경도 명천군에서는 주로 낚시로 잡다가 어장이 남북으로 넓혀진 것”이라고 일본 학자들은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북청 신포는 지금도 북한의 동해어업 전진기지이며, 그 앞에 마량도가 있다. 이 마량도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북어’란 본래 북쪽 바다에서 잡은 것 일제 때부터 명태잡이 본산으로 이름난 섬. 신포읍에서 불과 10리 거리다. 섬에는 12곳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인구는 300여호에 달했다. 동해에 섬이 없다는 통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문암리만의 마천포 등이 유명했으며 도민들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하였으니,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해 속초 청초동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이들 중에 상당수가 바로 마량도와 신포 출신들이다. 그들이 함경도식 어법도 가지고 내려와 남한땅에서 함경도식 어법으로 명태를 잡았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 마량도 근역은 산란을 위해 몰려온 명태들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말린 건태를 북어, 생태를 명태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는 북어와 명태는 동의이어(同意異語)였을 것이다. 리만영의 ‘재물보’에는 “북쪽 바다에서 잡으므로 북어”라고 했으며, 유희는 ‘물명고’에서 “대구어의 작은 것인데 동해의 북쪽 끝에서 잡으므로 북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우리나라 동북해 중에 일종의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북어라 하며 세속에서는 명태라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이 오늘날에는 말린 것을 북어라고 부르니 어찌된 일인가. 본디 남쪽에서는 생태 구경을 못하고 고작해야 말린 것만 먹었다. 이 때문에 북쪽에서 내려온 북어라면 오로지 말린 건태만을 뜻하는 것이 되어 급기야는 북쪽에서까지 건태를 모조리 북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서 “생것을 명태, 마른 것을 북어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적어도 18세기부터 그렇게 구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태는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어종이다. 일본의 중부 이북, 중국 연해, 북대서양의 동서 연해에도 분포한다. 일본 것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종이지만, 베링해의 명태는 길이와 몸집이 크고 맛도 많이 달라 일부 수산학자들은 종이 다르다고 여기기도 한다. 명태는 여름에는 200m 이상의 바다 깊은 곳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떼를 지어 몰려든다. 산란기는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보통 한마리가 낳는 알 수는 25만∼40만개 가량. 그러니 우리가 즐겨먹는 명란젓 한 젓가락이 얼마나 많은 명태의 생명인지 스스로들 가늠해 볼 일이다. ●명태는 ‘밑물고기’… 낚시·그물 늘어뜨려 잡아 명태는 ‘뜬고기’가 아니라 ‘밑물고기’이기 때문에 잡는 방식도 이에 따라 발달했다. 낚시를 밑으로 늘여 놓는 연승바리, 그물을 밑으로 드리우는 그물바리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전통적으로 명태잡이배 선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낚시나 그물을 어느 깊이로 드리우는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명태 떼가 노는 적절한 수심을 노련하게 잡아내야 속칭 ‘대박’이 터지기 때문이다. 같은 어장에서도 이 배는 만선인데, 저 배는 텅 비어 있는 수도 있다. 명태축제 현장체험에서 명태낚시 찍기대회가 열렸는데, 이는 바로 연승낚시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노동분업을 놀이화한 것이다. 연승배 선장의 노하우는 고단수의 경험적 지식체계인지라 만만찮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GPS 같은 어군탐지기가 등장하면서 어부들의 체험적 지식은 뒷전으로 밀렸으며, 잘 나가던 선장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바리’라는 말은 고기잡는 방식을 뜻하거나 아니면 ‘다금바리’처럼 어종 자체를 뜻하는 독특하고 순수한 우리 말이다. 낚시의 경우는 명태어족이 감소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낚시로 그때그때 잡아올리는 연승바리 명태가 그물에 걸린 채 밤새 뻣뻣하게 죽어 나오는 그물바리 명태보다 값이 비쌀 것은 뻔한 이치다. 비교하면서 먹어보니 신선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명태는 동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고, 그래서 산업적 가치가 가장 큰 어족자원이었다. 생태는 물론 냉동, 말림, 소금절임을 해서도 먹는다. 명태지리, 고명지짐이, 매운탕, 무왁찌개, 알탕, 생태김치, 아가미깍두기, 생태김치, 창란젓, 명란젓, 명태식해, 아가미식해, 명태전, 명태완자 등등 요리법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간장에는 비타민A가 많아서 간유를 뽑아 낸다.1911년에 308만여 관을 잡았던 것이 1919년에는 무려 2066관이나 잡았다. 짧은 사이에 어획량이 무려 7배나 증가했다. 건어물은 이동성이 좋아 북어는 전국 각처로 실려 나갔으니, 명태와 상관없는 서해안에서도 명태는 사람들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 ●다양한 이름만큼 널리 사랑받은 물고기 이 즈음의 명태축제 때 잡히는 명태는 ‘춘태바리’다.‘동태바리’는 음력 시월부터 동지·섣달에 잡히는 것,‘춘태바리’는 설날을 지나 잡히는 명태를 말한다. 크기에 따라서도 대태, 중태, 소태, 그리고 아주 작은 앵태, 혹은 노가리로 나뉜다. 본디 노가리는 부산지역 말이다. 이 밖에 산란을 마쳐 뼈만 남은 꺾태, 마지막 어기에 잡힌 막물태, 초겨울 도루묵을 쫓는 은어바지, 섣달에 잡히는 섣달바지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낚시로 잡은 조태, 그물로 잡은 망태, 여기에다 싱싱한 생태, 말린 북어(건태), 얼었다 녹은 황태, 딱딱하게 마른 깡태,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4∼5마리씩 한 코에 꿰어 반쯤 말린 코다리까지 가지각색이다. 북한의 민속학연구소 김희권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명태의 다른 이름도 들려준다.4월의 사태,5월의 오태, 아침해가 올라오기 직전과 저녁에 해 떨어질 무렵 잡은 때기물, 강원도에서 잡은 강태, 배를 가른 피태 등등이 그것이다. 이름이 다양함은 명태가 보편적 어류여서 서민 생선으로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오죽하면 이규경이 “일상 반찬에 쓰이며 여염집과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마른 고기를 제사에 쓸 정도로 흔하고도 쓸모있는 물건이다.”고 했을까. 축제에는 20여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려든다. 화려했던 옛 추억을 기려서일까. 축제의 팡파르는 우아하게 바다로 퍼지는데 정작 주인공은 그곳에 없다. 만약 거진항이 폭파된다면 온 국민이 난리일 것이나 오랫동안 먹어온 ‘국민생선 제1호 명태’가 사라졌는데 아무도 말들이 없다. 명태의 소멸은 바로 한때 흥청거리던 거진읍내를 여지없이 폭파시킨 꼴이니, 일손 빼앗긴 어민들은 시름없이 방황만 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많던 명태는 모두 어디 가고, 값비싼 금태만 남아 있을까.
  • KBS2 ‘추적60분’ 서울역 노숙자들의 25시 밀착취재

    지난달 22일 서울역에서 2명, 지난 6일과 7일에는 대구에서 3명 등 최근 두달새 6명의 노숙인이 숨졌다. 특히 서울역 사망사고의 경우 노숙인들이 그 원인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의 길거리 노숙인 60% 이상이 서울역 인근에 모여 있으며, 그 숫자는 500여명을 헤아린다. 사실상 공권력이 이들을 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일반인들은 금품갈취·폭언·폭력 등 노숙인들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KBS2TV ‘추적 60분’은 서울역 노숙인의 실상과 그 문제점을 조명한 ‘2005년 노숙인 보고서-서울역 25시’를 23일 오후 11시 5분에 방송한다. 제작진은 15일 동안 서울역 노숙인들을 밀착 취재했다. 서울역 노숙인 사망 사건의 원인에 대해 경찰은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소문은 아직도 무성하다. 제작진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살아 있던 사람을 짐수레에 실은 이유와, 동쪽 화장실에서 발견된 노숙인을 서쪽으로 옮긴 이유 등 의혹을 파고든다. 취재 결과 서울역 노숙인 집단은 철저하게 ‘계급화’돼 있었다. 그들의 직업도 30여 종류가 넘었다.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구걸하는 노숙인인 ‘남수(은어)’, 교회를 돌며 생활비를 버는 노숙인 ‘짤짤이’(은어)의 실체도 화면으로 공개된다. 특히 인신매매나 인감 도용 등 노숙인들이 범행 대상으로 이용된 충격적인 결과와 함께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노숙인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도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유신말기 “대한민국 학교 X같아”

    유신말기 “대한민국 학교 X같아”

    ●말죽거리 잔혹사(SBS 9일 오후 9시50분) 1978년 유신말기, 개발 붐에 들어선 강남 말죽거리의 한 남자 고교에 약간 소심한 성격을 가진 현수(권상우)가 전학을 온다. 이런 저런 계기로 ‘학교짱’ 우식(이정진)과 친해진다. 그러다 버스 속에서 은주(한가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우연히 상급생들에게 희롱당하는 은주를 구해준 우식의 적극적 애정 공세에 은주는 우식에게 마음이 쏠리고, 현수의 속앓이는 깊어간다.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이 없는 틈을 탄 종훈의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가는 선생들의 폭력으로 현수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기에 이른다. 생생하게 되살려낸 고교생들의 은어, 콩나물 시루 같은 통학 버스, 선도부의 복장검사, 옥상 위의 맞장뜨기, 사복 차림으로 들어간 고고장과 원스텝 춤, 감미로운 멜로디의 팝송 등 영화는 그 때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한 고교생의 아픈 성장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소룡 키드’를 억압하는 사회의 모순도 건드린다. 개발과 속도의 천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말죽거리’는 한참 상상력을 꽃피울 나이의 예민한 감성을 억누르는 ‘잔혹사’를 낳는다. 성적 제일주의를 향한 규율과 통제, 사학 재단의 권위적 행태, 부모의 위상이 학생에게도 대물림되는 모순 등 질식할 듯한 공기는 “대한민국 학교 X같아.”라는 현수의 말 속에 압축적으로 표현된다.‘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유하 감독이 연출한 2004년 작품.116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고급 어종’만 찾을까. 고급 어종만이 고급화한 스스로의 미각을 만족시킨다고 믿는 것일까. 평범 속에 진리가 있듯, 흔하디 흔한 물고기들이 외려 우리의 미각에 들어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구한 세월, 그 맛의 유전자가 혀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동해에서 겨울철 진미를 찾아 나섰다. 동해안 겨울 진미는 단연 명태다. 그러나 이곳 명태잡이는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북양태’와 ‘일본산’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만만치 않은 어획량을 유지하면서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선 ‘도루묵’과 ‘양미리’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런데 정작 도루묵과 양미리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 수준은 의외로 낮다. ●미끈한 생김새에 비린내도 없는 ‘도루묵’ ‘실컷 일을 해놨더니 망조가 들어 그르치는 상황’을 일컬어 ‘말짱 도루묵’이라고들 한다. 도루묵이 오죽 하찮게 보였으면 속담에서조차 이렇게 허투루 비교되고 비하될까. 일설에는 전쟁통에 피란가던 임금이 이걸 먹고는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 환궁해서 그 맛을 다시 보려고 이걸 청해 먹었는데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루 물리라.”고 한 데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임금이 선조라는데,‘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말짱 도루묵’은 없다. 값이 비싸져 ‘도루묵이나 먹자.’는 말도 쉽게 할 수 없다.‘도루묵을 먹다니….’정도로 바뀌어야 격에 맞게 됐다. 도루묵은 깔끔한 신사 같다. 비린내가 거의 없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외출에 나선 미끈한 멋쟁이 같은 생김새다. 맛도 외모를 닮았다. 비린내를 풍기면서 뭉기적거리는 생선이 아니라선지 일본인들은 이 도루묵을 보면 군침을 삼키며 달려든다. 더군다나 알 밴 도루묵은 금값이다.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루묵은 상당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도루묵 값이 비싼 것은 바로 일본 수출 때문이다. 정의철 동해수산연구관은 “우리 수산물 값은 일본으로의 수출 여부가 좌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 후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값도 눅어졌다.2년 전쯤의 일이다. 도루묵은 일본 시마네현 쪽에서도 많이 잡힌다. 우리 바다의 도루묵이 산란한 뒤 일본쪽으로 회유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생태 조건을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호도가 높은 만큼 일본 학자들의 도루묵에 대한 관심은 높다. 점착성 침성란을 가진 도루묵은 연안 저층성 어종으로 보통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한다.2003년 연간 생산량은 1900t이었다. 지난 7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2만 5000t까지 잡혔으나 요즘은 1500∼5000t 정도가 고작이다. ●서해안 전통어법 동해안에서도 행해져 도루묵은 산란기가 가까워지면서 딱딱해진 알을 듬북 같은 해초에 잔뜩 산란해 놓는다. 바람이라도 불 양이면 파도에 밀려온 도루묵알이 거품일 듯 해변을 뒤덮는다. 알을 주워다 파는 일은 불과 얼마전까지 흔했던 해변 풍습. 아예 유리상자로 물 속을 들여다 보며 작업하는 ‘창경바리’로 해초에 붙은 알을 채취해 내다팔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조업 반경은 고성으로부터 속초, 양양, 강릉 등 강원 북부다. 물고기마다 제 집과 고향이 있듯 강원 북부가 도루묵의 원적지쯤 된다. 그 밑에서도 잡히기야 하지만 양도 적고, 맛도 덜하다. 속초항에서 만난 어부 노만선(52)씨는 “예전에는 개도 안 물어갔다.”고 회고한다.‘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그만큼 흔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으리라. 도루묵은 유자망(흘림그물)이나 기선저인망으로 잡는다. 그런데 강릉 사천진의 김덕중 어촌계장이 재미있는 증언을 했다.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 놈들을 ‘주벅’으로 잡았단다. 고문헌에 ‘주박(柱泊)’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전통 정치망이 동해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굵은 말뚝을 박고, 그물을 걸쳐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전통적인 서해안 어법이 동해안에서도 행해졌다는 새로운 발견. 사천진에서는 ‘물밑 주벅’이라고 하여 닻을 물밑에 고정시켜 그물을 놓았다. 대략 35년 전까지 행해지다 사라진 어법이니, 잊혀지기 전에 이를 기록해 둔다. 주벅으로 잡던 시절에는 부둣가에 가마니를 깔고 잡힌 도루묵을 산처럼 쌓아 뒀다. 오늘날은 기선저인망으로 100m가 넘는 바다 밑을 샅샅이 훑고 다니니 어족고갈은 불보듯 뻔하다. 도루묵 조리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찌개와 구이, 찜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살짝 말려서 볶기, 그리고 뼈째로 토막낸 도루묵회도 별미다. 도루묵회는 도시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먹어보니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 구워 ‘톡톡’ 알터지는 소리를 음미하며 먹는 미각이야말로 겨울철에 동해를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까. 예전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획 어종인 도루묵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이른바 ‘고급 어종’이라는 무식한 선별 기준의 비객관성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서 대접 못 받는 ‘양미리’ 이곳의 또 다른 별미 양미리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속초 청초호변의 ‘삼숙이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주인장 이름이 삼숙이란다. 생선 장사 수십년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쓴 간판을 내걸었다. 그녀의 생선장사 스케줄을 보면 동해 어종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월 초에 시작한 산오징어 장사가 추석 전까지 이어진다. 추석이 지나면서는 양미리 장사를 하고, 이어 11월20일을 전후해 양미리 성어기가 되면 서서히 도루묵이 잡히기 시작한다. 도루묵 장사는 양미리보다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난다. 도루묵 장사는 11월에 시작해 12월 중순이면 대충 끝나며 그 이후에 파는 것들은 모두 냉동 도루묵이다. 양미리 장사도 12월이면 ‘종을 치며’ 그 후로는 냉동 양미리를 말려서 시장에 낸다. 양미리가 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동해안 전역에 세력을 펼친다. 그렇게 흔해선지 사람들은 양미리의 진가를 제대로 모른다. 말려서 볶거나 구워먹기도 하며, 날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양미리를 추어탕처럼 곱게 갈아서 탕으로 끓여먹는 조리법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수입 미꾸라지탕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처지에 동해에서 지천으로 잡히는 100% 국내산 양미리탕에 아무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필자가 음식 장사라면 반드시 염두에 둘 건강식 메뉴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 해산물에 관한 활용도와 이해도가 실망스러울 만큼 저급할 뿐더러 보수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식해도 만들어 먹는다. 가자미식해처럼 좁쌀을 사용해 시원하게 담가 먹는다. 해산물 요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깨끗이 버릴 일이다.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아 동해안 수산연구 전문가인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까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다. 양미리는 동해안에서 붙인 이름일 뿐이다. 양미리가 까나리라면 그 누구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우리라. 까나리답게 양미리는 여름잠을 잔다. 모래밭에 기어 들어가 시원한 여름잠을 즐기는 별난 족속이다. 이 즈음에는 먹이를 먹으려고 잠시 외출했다가 잡히곤 한다.‘발치기’라고 해서 해저의 모래바닥에 그물을 깐 뒤 잠수부가 들어가 발로 모래밭을 밟으면 양미리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데 이걸 잡아들인다. 산란 전까지는 계속 모래 속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가까워 ‘외출’이 시작되면 이 때부터는 ‘누인 그물’이 아니라 ‘세운 그물’로 잡아들인다. 물고기의 삶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교묘한 머리싸움이 이처럼 어법까지 발달시켰으리라. 그 양미리 값은 얼마나 될까.20마리 1두름에 2000∼2500원 선이다.1마리에 200원꼴이니 이보다 값이 눅은 생선이 있을까. 전국에서 양미리가 가장 많이 건조되는 주문진의 덕장을 찾아가니 줄에 엮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두름당 인건비가 고작 300원이란다. 손이 날랜 이가 200두름, 즉 하루에 4000여마리를 엮고서 6만원 정도를 받는다. 평균은 이보다 못해 고작 100여두름을 엮어 일당 3만원 정도를 번다.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봐야 100만원 벌이도 안된다. 낮은 양미리 가격이 이처럼 어촌의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미리는 명태를 비롯한 각종 낚시미끼로 팔려 나간다. 양식장에서는 광어 등을 시장에 내기 전에 보신용으로 양미리를 먹인다.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먹을거리로서도 종합적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도루묵·양미리에서 평범 속의 진리 깨달아 한가한 ‘생선타령’이나 하려고 양미리와 도루묵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고급 어종’ 운운하며 그릇된 상식으로 해산물에 관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 밥상문화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짱 도루묵’은 더 이상 없다. 마리당 불과 200원에 지나지 않는 양미리, 아니 동해까나리의 전방위적 품격과 용도에서 평범 속의 진리를 깨닫는다. 겨울 별미를 찾아 떠난 동해 여행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을 살폈으니, 그 새로운 재발견의 기쁨을 어찌 홀로만 즐길 수 있으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거늘, 관해의 즐거움 중에는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하찮은 먹을거리 하나도 제대로 알고 먹을 일이다.
  • 탕! 탕! 스트레스 해소 사냥체험

    탕! 탕! 스트레스 해소 사냥체험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헌터 인요한(46·연세대 의과대교수)씨와 ‘자연과 사냥’ 대표 이종익 회장, 안면토 토박이 헌터 박창윤(53)씨가 한조를 이뤄 사냥에 나섰다. 목적지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지루저수지 뒷산. 억새와 잡목림 사이로 잔설이 연연하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몇개째를 넘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가빴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추위가 살갗을 에는 듯했다. 냄새를 맡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던 사냥개 포인터가 갑자기 멈춰선 채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주둥이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전방에 뭔가 있다는 신호다. 총을 어깨에 붙인 인교수가 ‘캐리, 고!’라고 명령하자 사냥개 캐리가 덤불속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억새처럼 짙은 갈색의 고라니 한마리가 펄쩍 뛰었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일순, 숲속에 정적이 흘렀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한참 뒤에 조금 위쪽에서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 박씨가 휘파람으로 사냥개를 불러들이더니 2발을 쐈다. 잡목 덤불이 너무나 짙게 우거진 숲속이어서 사냥개도 쉽게 파고들지 못했다. 맞았는지, 벌써 달아났는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숲속으로 들어간 사냥개도 보이지 않았다. 고라니와 ‘꾼’의 1시간 가까운 숨바꼭질 대결. 더 이상 움직임도 없었다. 수신호와 조금씩 앞으로 헤쳐나가는 헌터들, 바다에서 불어오던 바람도 숨을 죽였다. “놓친 것 같습니다, 나갑시다.”라며 인교수가 정적을 깨자, 박씨도 “고라니가 아닌가봐….”라며 맞장구를 쳤다. 허탕쳤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땡포’(사냥을 잘 못하는 포수를 일컫는 은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걸음 떼놓는 순간 고라니가 맞은편 언덕으로 뛰쳐올랐다. 그때까지 꿈쩍하지않고 길목을 지키고 있던 이 회장이 탕탕탕, 연발 총소리를 울렸다. 언덕을 넘어서던 고라니가 퍽 쓰러졌다. 꾼 3명의 완벽한 작전이었다. 수십년 사냥터를 누빈 명포수였다. 인교수는 “40년 가까이 사냥을 해왔지만 사냥감을 발견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매번 새롭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실탄을 제거한 총을 넘겨줬다. 고라니를 어깨에 둘러멨던 그는 “고라니 사냥 모습을 직접 본 이기자는 운이 무척 좋아요, 수년간 사냥해도 고라니는 잘 못잡거든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에 앞서 이날 6시20분, 인 교수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파출소에서 총기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 총을 인수하고 나오던 인교수,“총을 ‘애인’으로 표현하잖아요, 애인을 밤마다 남의 집에 맡기는 심정 이해하겠어요?”라며 동행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묻는다. 사냥꾼 3명을 태운 갤로퍼는 주황색 가로등이 빛나는 마을을 지났다. 그는 “총을 살 때 정부가 보조한 것도 아닌데, 개인 재산을 왜 정부가 보관하는지 모르겠다.”며 “총기를 영치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흥분했다. 그러곤 꼭 써달라고 주문했다. 마을도 멀어지고 배추밭이 나타났다.“이 시각엔 고라니나 노루가 먹이를 찾아 내려오지요. 밝아지면 산으로 올라가 숲속에서 잡니다.”라며 서치라이트로 산기슭 사이의 밭을 살피던 그는 갑자기 탕하고 한 발을 쐈다. 안내하던 박씨는 “달리는 차안에서 어떻게 맞히느냐?”며 핀잔한다. 이에 개의치 않고 차문을 박차고 나가 뛰었다. 논밭과 고랑을 몇개 건넜다.30여분만에 “분명히 송아지만한 노루였는데….”라며 허탈한 표정의 인교수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차로 돌아왔다. 오전 7시쯤되자 어둠이 걷히고 나무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가 나타나자 인교수가 살금살금 기어올랐다. 오리가 많다는 신호로 한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이어 박씨와 이회장도 차에서 내렸다. 저수지를 한참이나 우회하던 인교수는 주황색 조끼를 벗었다. 오리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살금살금 발소리도 죽여 다가갔다. 하지만 오리 한마리가 꺽꺽하며 날아오르자 나머지 모두 날았다. 수백마리가 날아오르던 장관이었다. 인교수와 박씨가 방아쇠를 몇번 당겼다. 뒤늦게 날아오르던 몇마리가 저수지에 떨어졌다. 인교수는 “털이 긴 사냥개는 모두 물고 나올 텐테, 이놈은 엄살이 심해 물에 안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냥개 캐리가 비교적 가에 떨어진 것을 물고 나왔다.30여분 달려 인근 야산,“이 산에는 장씨(장끼)가 많아요.”박씨의 설명에 따라 장끼 사냥에 들어갔다. 몇개의 야산을 넘었다가 다시 차로 돌아오면서 푸드득거리는 몇마리에 총질을 했다. 총을 쏴보고 싶던 동행 기자는 박씨에게 총을 빌려달라고 했다.“안 되는데,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라며 빌려줬다. 날아가는 꿩과 산비둘기를 향해 총질을 했다.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위를 선회하면서 날아갔다. 하지만 탕 소리에 막혔던 체증이 뚫리는 듯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청량감마저 들었다. 박씨가 총을 되가져갔다. 허탈했다. 배도 고팠다. 추위가 몰려왔다. 하지만 꾼들은 오기가 돋은 듯했다. 지루저수지에서 오리 몇마리를 더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야산에서 장끼를 잡자며 들어갔다. 뜻밖의 고라니를 잡고는 하산했다. 글 사진 안면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헌터가족 유진이네 꾼들에겐 ‘한국말이 유창한 미국인 헌터’로 널리 알려진 인교수는 헌터가족이다. 외할아버지 유진벨은 오지 조선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조선의 산천을 살펴보기 위해 사냥을 취미로 삼았다. 인교수는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박사와 최초로 조선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의 후손이다.5살때 외할아버지로부터 엽총을 선물받은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냥터를 누볐다. 덕분에 한국의 지리와 산천은 그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다.4대째 한국에서 봉사하는 그의 가족 내력 외에도 한국 사랑이 유별나다. 부인 이지나(이지나 치과원장)씨도 열혈헌터. 남편을 따라 총포소지 및 수렵면허 허가까지 땄다. 아들 유진(5)군도 간간이 엽장을 찾는다. 인교수는 “지난 시즌에 아들이 ‘나도 사냥가겠다.’고 조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안고 거총연습과 사격을 했지요. 폭발음에 놀란 아들이 일단 총을 내려놓았어요.”라고 말했다.“외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총을 아들에게 물려줄 거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은 주중이라 인교수 혼자만 나섰다. “말보다 수신호가 더 많은 사냥터에선 부부가 한조가 되면 호흡이 잘 맞습니다. 인생처럼 길없는 산을 오르다 보면 정도 깊어지고요. 돈도 생각만큼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사냥 입문 20년째인 박씨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오리 사냥에 종종 나선단다.“수칙만 지키면 안전합니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생기죠.” ■ 어떤 동물 잡을수 있나 이번 시즌에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풍작으로 예상된다. 또 꿩은 평년작으로, 오리와 멧토끼는 예측 불허로 조사됐다. 이는 사냥 전문잡지 ‘자연과 사냥’이 이번 시즌에 해제된 전국 21개 시·군 수렵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수렵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잡을 수 있는 동물들은 사냥터마다 종류와 마릿수까지 엄격하게 제한된다. 길짐승으론 멧돼지·고라니·멧토끼·청설모가 있고, 날짐승으론 수꿩·멧비둘기·까마귀류·오리류·까치·어치·참새 등이다. 하지만 허가된 조수가 다르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보은군에선 흰뺨검둥오리를 잡으면 안 되지만 원주시에선 1000여마리 이상을 포획할 수 있다. 또 사냥 허가권마다 잡을 수 있는 조수도 다르다. 적색포획승인증은 허가된 모든 조수를 잡을 수 있지만 황색은 멧돼지를 제외한 것, 청색은 멧돼지와 고라니를 제외한 조수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의 허가권에 맞게 잡아야 한다. 한편 도단위로 허용되던 순환수렵제가 지난 시즌부터 시·군 단위로 실시되면서 수렵인들의 볼멘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종익 ‘자연과 사냥’ 대표는 “전국 1만여명이 넘는 수렵인들이 군단위의 좁은 땅에 몰려 위험하면서도 조수의 씨를 말릴까 걱정된다.”며 “예전처럼 엽장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도단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이래서 사냥마니아 “어떤 사람들은 왜 사냥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아오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내 대답은 간단하지요. 사진가는 단지 관찰자일 뿐이며, 헌터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인요한교수는 미국 아웃도어라이프 편집장을 지냈던 짐 점보의 말로 대신했다. 인교수는 “사람이 미쳐 빠지는 취미는 마작과 사냥”이라고 주장했다.“마작은 어머니까지 팔아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냥은 건전합니다.” 사냥은 자연친화적이며 사냥꾼은 주색잡기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냥은 똑같은 상황이 한번도 없어 스토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 산을 많이 걷기 때문에 건강에는 그만이라고 덧붙였다. 단점이라면 주말 사냥을 위해선 거짓말로 핑계를 꾸며대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란다. 산을 간다는 점에선 등산과 비슷하다. 하지만 등산은 정해진 길로만 가는 ‘기차 여행’이라면 사냥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용 여행’이라고 비유했다. 사냥은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간다. 걷고 뛰고 매복하는 등 가장 야성적인 레포츠가 사냥이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냥이 동물을 잡기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 야생동물을 적절히 구제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도태된다. 또 채식주의자를 빼곤 모두 고기를 먹는데 동물을 잡기 때문에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일축했다.“헌터는 동물을 잡기 때문에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휴머니즘적으로 바뀐다.”며 최고의 자연주의자가 사냥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냥터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고 주장했다.“미국에선 인적이 없는 외지에서 쓸쓸하게 사냥을 하지만 한국은 논밭과 산간마을 주변에서 농부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사냥할 수 있어 좋아요.”한국 사냥터를 예찬했다. 동료 의사들이 많이 하는 골프를 그는 초등학생 시절에 손을 뗀 구슬치기로 비하했다.“말끔하게 다듬어진 공원에서 공을 때려 구멍안에 집어넣고 기뻐하는 일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골프는 안 치고 8개월은 실력을 갈고닦는 사격,4개월은 사냥만 한다.”고 말했다. ■ 수렵절차 알아볼까
  • [N언어-제3의 언어인가] “日語·기호까지…잡탕” “유행어·은어일뿐”

    [N언어-제3의 언어인가] “日語·기호까지…잡탕” “유행어·은어일뿐”

    인터넷 언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인터넷이라는 파급력이 엄청난 매체와 함께 자연발생한 제3의 언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존 언어의 시각에서 인터넷 언어를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인터넷 언어는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 채 우리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일 뿐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나아가 한글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쪽의 주장을 살펴본다. ■ 이래서 한글 파괴 “인터넷 언어가 한정된 공간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일상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박용찬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은 N언어가 오프라인으로 번지면서 한글을 오염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성인들은 일상어와 구분짓지만 청소년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인터넷 사용이 확대될수록 이러한 현상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어·일어에서 기호까지 뒤섞인 N언어가 구어나 문어 대신 사용되면서 심각한 우리말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관은 “초기의 세대간 의사소통 문제는 인터넷 사용인구가 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면서 “오히려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언어 오염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초기 인터넷 언어는 단순 축약이나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정도였지만 현재는 한글 해체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는 “외계어처럼 한글 왜곡 정도가 심한 것을 보면 인터넷 언어를 제3의 언어로 인정할 만큼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일상어와 인터넷 언어를 구분하는 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연구관도 인터넷 언어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일부 인터넷 언어는 한글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에는 기껏해야 한자의 조합으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지만 인터넷에서는 ‘꽃미남’처럼 순우리말로 된 어휘가 생겨난다.”면서 “일상어와 구분할 수 있다면 인터넷 언어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래서 제3언어 “인터넷 언어는 한글의 파괴라기보다는 또 다른 언어의 출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윤태진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오프라인의 시각과 잣대로 온라인 세상을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구어와 문어의 중간형태를 띤 제3의 언어 형태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메신저나 채팅방을 이용해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의사소통의 수단은 ‘글’이지만 의사소통의 본질은 ‘말’에 가깝다는 것이다. 때문에 단어가 축약되고 맞춤법이 무시된 채 소리나는 그대로 글자를 적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지금까지 오프라인에서 사용해왔던 기록과 문서 보관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변하면 언어가 변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간에 뜻이 안 통할 정도로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에도 긍정하지 않았다. 요즘 10·20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외계어는 오프라인의 유행어·은어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표준어에서 일탈한 유행어와 은어가 존재하면 그것이 존재하는 원인이 논란이 되어야지 존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특정 세대만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겨나는 것은 그 집단간의 내적 결속력을 상징하는 것이고 집단과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집단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국내 첫 교사역할훈련프로 소개 김원석 교수

    국내 첫 교사역할훈련프로 소개 김원석 교수

    ‘담·탱·이’요즘 10대들이 담임선생님을 낮춰 부르는 은어다. 담탱이 뒤에는 ‘짜증나.’,‘재수없어.’등 부정적인 서술어가 붙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버릇이 고약한 문제아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교사의 무엇이 학생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드는 것일까?협성대 김원석 교수는 교사 역할훈련 프로그램인 TET(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에 그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오는 27일 우리나라에 처음 TET를 소개하는 김 교수를 만나 TET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누구보다 더 애를 쓰는 A교사. 그가 수학 성적이 크게 떨어진 학생 B군에게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고 가정하자.A교사는 학생들의 성적을 꼼꼼히 점검해 주는 성실한 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B군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제를 좀처럼 풀지 못하고 끙끙거린다. 이 때 A교사는 B군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협성대 경영대학 김원석(46) 교수는 보통 교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B군에게 건네는 말의 유형은 크게 1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딴청 부리지 말고 어서 문제나 풀어.(명령·지시)▲좋은 성적 받으려면 문제 열심히 푸는게 좋을거다.(경고·윽박지르기)▲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 개인적인 문제를 학교에서 고민하면 못써.(교화·설교)▲잘 생각하면서 천천히 풀어 보렴.(충고·제안)▲시계 좀 봐라. 집에 가야할 시간이 훨씬 넘었다. 어서 풀어라.(훈계·가르치기)▲마냥 게으름만 피우는 사람을 대체 어디다 써 먹겠니.(판단·비판)▲그렇게 늑장을 부리니까 성적이 떨어지지.(비난·정형화하기)▲너 문제 안 풀고 도망갈 궁리하지.(분석·진단)▲넌 잘 할 수 있어. 문제 금방 풀거라고 믿는다.(칭찬·긍정적 평가)▲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니까 못 푼다고 부담갖지는 마.(위로·지지)▲문제가 그렇게 어렵니?모르면 물어봐야할 것 아니야.(질문·심문)▲이 문제가 어려우면 좀더 쉬운 문제를 풀어볼까?(비위맞추기, 주의환기시키기) ●교사입장서 판단·답 제시 하지 말것 김원석 교수는 교사들의 이러한 대화법이 학생들의 입을 막아 버리거나 학생들의 공격 성향을 강화시키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교사들이 TET에서 권하는 세가지 대화 기술만 익혀도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TET에서 권하는 첫번째 대화법은 ‘적극적 경청’이다. 교사 입장에서 학생의 상황을 판단하고 학생들에게 답을 제시하려들지 말고 먼저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듣기가 상대방의 말에 ‘그래’,‘맞아’,‘그래서?’와 같은 말로 가볍게 응대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경청은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것이다. ●학생이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 먼저 알기 A교사는 학생 B군이 왜 끙끙거리는지 그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 혼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하는지, 집에 늦게 가면 엄마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정말 문제가 어려워 자책하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감정을 읽으려는 질문을 시도해야 한다.“혼자 남아서 공부하는 게 부끄럽니?”,“수학성적이 떨어져서 속상하니?”,“집에 늦게 가면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되니?”와 같이 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곧 터질 것 같이 공기가 가득찬 풍선처럼 학생의 감정은 고조되었다가 스스로 속내를 털어 놓으면서 풍선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빠진다. 학생의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그 후에 이성적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경우는 감정이 가라앉으면 학생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TET에서 권하는 두번째 말하기 법은 상대방을 타이르거나 나무랄 때 ‘YOU 메시지’를 자제하고 ‘I 메시지’를 사용하라는 것이다.C양이 수업 시간에 ‘딱딱’소리를 내며 껌을 씹는다고 가정하자. 보통 교사들은 이때 “너 때문에 시끄럽잖아. 껌 뱉어.”라고 말한다. 학생의 불량스러운 태도가 거슬려서 그럴 수도 있고 C양의 껌 씹는 소리가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주의를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의 이러한 대화법은 학생의 자존심만 건드릴 뿐이다. ●나무랄때 ‘you’보다 ‘I’를 사용하라. TET에서는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장의 주어를 ‘너(YOU)’로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한다.‘YOU 메시지’는 상대에게 반감을 산다. 이럴 때는 객관적인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껌 씹는 소리 때문에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좀 신경이 쓰인다.”와 같이 ‘껌 씹는 소리가 요란하다.’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한다. TET에서 권하는 또 하나의 대화 기술에는 ‘예방적 I 메세지’가 있다. 과중한 수업과 잡무에 시달리던 D교사. 그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집안의 곤혹스러운 일까지 겹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수업에 들어갔다고 가정하자. 학생 E군이 수업 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는 게 거슬린다.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주의를 주거나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워낙 D교사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자신도 모르게 만화책 읽는 학생에게 분필을 던져버렸다. 이는 학생과 교사 모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건이다. ●예방적 메시지를 사용하라. TET에서는 이럴 때 ‘예방적 I 메시지’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경고하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있으면 상대는 나의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선생님이 오늘은 몸이 좀 아프니까 조용히 해달라.”와 같이 먼저 자신의 상황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이러한 ‘예방적 I 메시지’는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도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학교마다 상담실을 마련해 두고 고민이 있는 학생들은 찾아 와서 상담받을 것을 권한다. 문제가 있는 학생이 상담실에 찾아 오지 않을 때에는 상담실이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나 학생들의 문제는 특별한 시간이나 이례적인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배우고 가르치는 일상 생활에서 발생한다.”면서 “교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학생과 대화를 시도하면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TET(교사역할훈련프로그램) TET는 교사들에게 바람직한 학생지도 방법을 알려 주고 학생과의 갈등을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훈련 프로그램이다. 부모역할 훈련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를 개발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토머스 고든 박사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인관계 모델을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적용해 1966년 처음 시작됐다. 일본에도 80년대 후반 ‘교사학’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돼 해마다 100차례 이상 TET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오는 27일 협성대 김원석 교수에 의해 처음 소개된다.27∼29일 광화문 서울시 교원연합회 3층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초·중·고교 교장·교감, 현직교사, 상담교사, 교육학 전공자, 교대·사대 재학생, 학부모 등이 참가할 수 있다. 참가문의 (02)2202-0511.
  • [사설] 인터넷 언어 순화는 모두의 몫

    교육인적자원부가 뒤늦게나마 인터넷 언어 파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일선교사들에게 교육자료를 배포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배포된 자료는 축약어와 외래어 혼용 사례와 함께, 지도교사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상세한 지도방법을 담았다. 음란, 욕설 등 언어폭력에 대한 지침까지 담고 있어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통신언어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담으려면 축약이나 은어사용 또한 불가피한 면이 있을 것이다. 기발함과 창의성이 번뜩이는 조어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순기능의 측면도 분명 있다. 새로운 문화형태로 보는 시각도 있듯이, 인터넷 언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축약어, 외래어 남발로 우리말의 어법을 무시하는 정도가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낯설고 난해한 통신언어를 해석해 주는 전문 사이트까지 등장했다니 어이가 없다. 여기다 낯뜨거운 비어, 속어, 욕설들까지 섞여들어 언어파괴를 방불케 한다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이런 언어환경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제대로 자라기를 기대하겠는가. 인터넷 언어는 컴퓨터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인터넷의 비속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교사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건전한 인터넷 언어 사용법인 네티켓이 정착되도록 아이들 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렇다고 교사들에게만 맡길 일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물론 국민 모두가 나서서 인터넷 언어순화와 우리말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 껌이냐→무시하냐 누구세요?→ㄴㄱ?

    ‘읍ㅎF를 믿つ(오빠를 믿어요.), 메흴벡容주실ブつズ(??(메일 보내주실 거지요?)’ 언뜻 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인터넷 용어나 ‘외계어’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 언어 순화를 위한 교육자료집이 발간됐다.‘외계어’는 일정한 규칙이나 형식 없이 한글과 일어 등의 소리와 형태에 특수문자를 섞어 재조합한 언어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교육부는 10일 인터넷 언어를 순화하고, 일상생활의 언어 예절을 학교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교사용 자료집인 ‘인터넷 언어순화, 생활 속의 언어예절’을 발간, 배포한다고 밝혔다. 실제 초·중·고 수업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순화방안을 학습지도안을 예로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자료집은 언어파괴 유형을 7가지로 구분했다. 점모(점심 모임), 아뒤(아이디·ID), 금(그럼), 맴(마음) 등 축약어나 줄임말은 대표 유형으로 꼽혔다. 책자는 최근 들어 ㄴㄱ?(누구세요?),ㄱㅅ(감사합니다.) 등 한글 자음만으로 줄여 표현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마자(맞아), 저놔(전화), 어이엄따(어이없다) 등 소리나는 대로 적거나 된소리로 적는 습관, 껌이냐?(무시하냐?), 담탱(담임선생님) 등 은어도 자제해야 할 언어습관으로 지적됐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친밀감의 표현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어렵당(어렵다), 시로지고(싫어지고) 등 형태변이나 헐(황당하다),ㅂ(‘그만’처럼 꾸짖는 말) 등 신종 의성어나 의태어, 爪夙女(요조숙녀), 맛있눼(맛있네요) 등 이른바 ‘외계어’,^O^(즐거움),(^_^_b)(네가 최고) 등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사례도 잘못된 사례로 제시했다. 책자는 인터넷 언어가 다양한 감정표현이 가능하고,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빠른 속도에 적응할 수 있는 등 긍정적인 기능과 함께 의사소통에 혼란을 일으키고, 국어 파괴, 국어의 국제신용도 하락 등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박삼서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생소한 단어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외계어’를 해석해 주는 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의사소통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교과수업과 재량·특별활동 시간에 수업지도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새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점술인이다. 개명한 세상에 누가 미신 따위에 솔깃하랴 싶지만, 일간지조차 새해를 맞아 국운이 어떠할지를 점친다. 옛날부터 이 땅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뿌리도 제법 깊어서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고려비기(高麗秘記)’,‘고경참(古鏡讖)’이 고대의 예언서라면,‘삼한회토기’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종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18세기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던 ‘정감록’은 국가의 탄압으로 간행되지 못한 채 다종다양한 필사본만 유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감록’은 1923년 드디어 활자화되었고 그것이 사실상 정본 취급을 받고 있다. ‘정감록’의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이 멸망하는데, 그 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로 압축된다. 아무 해에 무슨 사단이 터진다는 식의 짤막한 예언이 대부분인데, 한국의 예언서가 대개 그렇듯 60갑자로 햇수가 적혀 있어 세월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언서에 보이는 민중의 공포 ‘정감록’의 비교적 앞쪽엔 이런 오싹한 대목이 있다. 원숭이해 봄 삼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팔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오고,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한강 이남 100리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끊어지고, 인적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전쟁영화의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은 수도권 전체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작년 2004년도 원숭이해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든 한 해였고 북한의 핵문제로 전쟁 걱정도 컸었다. 북핵문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책이 화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땅에 그런 참극은 없었다.‘정감록’의 예언이 틀린 셈이다.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렇단다. 과연 ‘정감록’에는 민심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나 보다. 서울로 통하는 관문 인천 앞바다에 적을 태운 배가 1000척씩이나 들이닥친다고 했다. 그런 변고가 없다.1592년의 임진왜란, 그보다 5년 뒤의 정유재란도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참혹한 예언은 뜬금없이 나오는 예가 없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쏟아진 폭탄이 불꽃놀이 같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을 헤아렸다. 훗날 이라크에 예언서가 작성될 경우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남긴 상흔은 집단적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정감록’에 담긴 이 대목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봐야 한다. 우선 인명의 대량 살상을 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안성 등의 지명이 등장하는 것도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감록’의 예언은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1894년 7월 하순 일본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다가 아산(牙山)·풍도(豊島)로 내려가 청의 해군과 한바탕 싸웠다.‘정감록’에 나오는 인천 앞바다 운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격전지 아산과 풍도는 바로 예언서에 언급된 남양의 코앞이다. 그 뒤 일본군대는 천안 부근의 성환(成歡)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평양에서 청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정감록’에 나오는 안성, 죽산 등도 실제의 전쟁터 성환에서 멀지 않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민중은 공포에 떨었고 이것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정감록’에 아로새겨졌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다.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서양오랑캐’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위기의식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1840년 여름, 영국은 4000명의 병력으로 중국의 다구·톈진(天津)을 위협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물밀 듯 난징(南京)으로 쳐들어갔다. 아편전쟁의 놀라운 소식은 연달아 한국에 알려져 조정은 물론 민심마저 발칵 뒤집혔다. 외침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불과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함대가 쳐들어와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당황한 나머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국과 교섭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속에서 각종 소문과 예언이 유행했다. 갑자기 1000척의 배가 쳐들어와서 수도권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예언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일 것이다. 거기에 청·일전쟁의 집단기억이 덧칠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정감록’에 숨겨진 비밀을 읽는 법 10년쯤 전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이상세계를 탐구하던 내 눈길이 예언서 ‘정감록’에 닿았다. 한국역사상 대표적인 예언서라면 다들 ‘정감록’을 첫손가락에 꼽았기에 그 책을 끌어당겼던 것인데 실망이 컸다. 거기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것도 안 보였다.‘정감록’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술은 없고 대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거듭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정감록’이 지닌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정감록’에는 비밀스러운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정감록’의 한 줄 한 줄은 수천년 동안 생성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였다. 민중은 공포와 절망에 떨면서도 예언 가운데 희망의 빛을 감춰두었던 것이다. ‘정감록’의 문화적 코드는 예언서를 예언서로서 바라보는 편협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자구의 해석에 매달릴 경우 ‘정감록’은 그저 단편적이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정감록’을 읽는 옳은 방법은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의 앞뒤를 재고 정치와 문화를 하나로 뚫어서 읽을 때, 그 비밀스러운 코드는 비로소 풀릴 것이다. ‘정감록’의 밑바탕에는 풍수지리설과 선천후천 교대설(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곧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이 있다. 맥맥이 흐르는 미륵신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감록’은 한국문화의 젖줄이다. 따지고 보면 동학, 증산도, 원불교와 같은 근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정감록’으로부터 생명수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정감록’과 김지하 ‘정감록’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한국의 지식인 몇몇도 오래 전부터 ‘정감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 김지하다.‘오적’이란 시를 비롯,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맞서 싸운 그의 투쟁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김지하는 사상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생명이니 살림이니 하는 토종의 생각으로 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주의 주장을 아우르고 싶어했다. 그런 김지하가 ‘정감록’을 즐겨 인용하였다면? 김지하는 사실 ‘정감록’을 본떴으며,‘정감록’의 정수를 꿰뚫어 보았다. 이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김지하의 책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의 ‘오행’이란 시가 앞서 살핀 ‘정감록’의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그 해 여름 복중 큰 눈이 내리고, 큰물이 지고, 큰 흉(凶)이 들고 안성과 죽산(安竹)과 수성과 당성 사이(隨唐間)에 굶어죽은 송장이 산처럼 쌓이고 비석이 땀을 흘리고 우물에 피가 솟고 대꽃이 피고 운운. 여기서 김지하는 전쟁의 참혹상을 흉년의 비극으로 바꿔놓았지만 지명도 그대로 두었고 얼개도 ‘정감록’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앵적가’의 경우는 더 심하다. 안성과 죽산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며 하는 식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김지하의 패러디는 계속된다.‘이 가문 날에 비구름’에서는 아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감록’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이 작품은 동학의 역사를 한 편의 유장한 시로 풀어낸 것인데,‘정감록’을 빌려다가 최제우가 동학을 개창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왜 김지하는 ‘정감록’을 자꾸 빌려다 썼을까. 단순히 그 예언서의 몇 대목에 관심을 둔 것일까, 아니면 ‘정감록’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일까. ●‘정감록’이란 민중의 밥그릇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정경모란 이름도 생각난다. 그는 80년대 중반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 남북통일에 관한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에는 ‘삼선각 운상 경륜문답’(‘찢겨진 산하’의 저본)이 실려 있다. 정경모는 그 글에서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세 사람이 천상에서 만나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마치 ‘정감록’에서 정감, 이심 및 이연이 금강산 비로봉에 앉아서 나라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경모와 김지하가 ‘정감록’의 형식과 내용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사상가 또는 운동가였고, 그 점이 ‘정감록’을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감록’에 담긴 예언의 내용 못지않게 지난 수백년 동안 민중이 사용해온 비밀스러운 화법을 터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언서가 그렇듯 민중은 겉으로 절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감춰두고 싶어했다. 김지하 등은 그 점을 간파하였다고 할까. 그런 그들에게 ‘정감록’은 일종의 교과서였을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은 실의에 빠진 민중을 고무하고 싶었고 따라서 민중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고, 그렇게 믿어진다. 조선 후기부터 오랜 왕조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던 민중은 ‘정감록’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잊을 만하면 ‘정감록’을 매개로 한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 때마다 수십 또는 수백명의 연루자가 붙잡혀 가 매를 맞고 더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양반들의 조선이 영영 망하고 말 것이다. 천지개벽하면 시쳇말로 개똥쇠에 불과한 이 몸도 운대가 풀릴 것이다.”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으로 예언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리라. 집권층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금서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정감록’은 합법적으로 출판되지 못한, 그러나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일제시대까지도 그 인기는 여전해 ‘정감록’이 점지한 길한 땅을 찾아 수만명이 정든 고향을 버렸다. 일제시대 계룡산자락에는 불과 수년새 작은 읍 하나가 들어설 정도였다. 무수한 민중이 한 글자씩 ‘정감록’의 예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김지하가 ‘정감록’을 방불케 하는 담시를 연달아 지은 것도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울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정감록’은 예나 지금이나 기댈 곳이라곤 전혀 없는 민중의 희망을 퍼 담는 밥사발이다. ● 정감록이란 조선후기부터 유행한 대표적인 예언서이다. 정도전, 정여립 등이 저자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 민중들 입장에선 위로와 희망의 터전이었다. 곧 조선왕조가 망한다,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라,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수십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新)종교단체가 등장했다. 겉보기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인데, 풍수지리설·해도진인설·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그들의 대화엔 은어(隱語)가 많아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엇비슷한 온갖 예언서를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 백승종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現 푸른역사硏 소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 역사硏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진단학회 총무이사 ●저서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2003년)‘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년)‘아버지 난 누구에요’(궁리,2001년)등 다수.
  • [기획] 욕, 난세의 ‘문화코드’로…TV·문학 ‘점령’

    [기획] 욕, 난세의 ‘문화코드’로…TV·문학 ‘점령’

    ‘욕’. 그것은 저급한 소통수단인가, 필요악인가-. 우리사회의 정치권과 뒷골목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것 못지않게 문화예술계에서도 온갖 욕과 쌍소리가 넘쳐난다. 그 때문인지 극장 가기도,TV 보기도, 라디오 켜기도, 소설을 들추기도 겁이 난다. 말 그대로 욕의 홍수다. 아무리 문화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하지만 문화예술 각 장르에 만연한 이같은 욕들은 우리시대의 한 코드로 통용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나게’ 스크린은 욕설 경연장? “내 입술 부빈 ×은 니가 처음이야.”“×나게 좋아한다.” 10대 청소년 대상의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대사중 일부다. 인터넷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에서 욕은 분노나 위협 등의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특수한 용어가 아니라 10대들의 일상어로 등장한다. 새달 3일 개봉하는 ‘발레교습소’(15세)에서도 주인공 민재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18’이라는 말을 쓰고, 양아치들은 ‘×만한 게’‘×발년’같은 욕을 예사로 내뱉는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15세)에서는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고 외치고,‘위대한 유산’(15세)에서는 ‘미친년아’‘변태 또라이 새끼’등 거친 표현이 쉴새없이 쏟아진다. 중년층을 겨냥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15세)에서도 ‘염병할 놈’‘우라질 놈’‘뭔 지랄이여’등이, 전쟁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15세)에서도 ‘×팔’‘×나게’라는 표현이 수도 없이 나온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보리울의 여름’‘달마야, 서울가자’‘신부수업’등의 몇몇 영화는 욕설이 없는 무공해표 영화라는 점을 홍보문구로 내세웠을 정도다. 한국 영화에서 ‘이 자식’‘이 새끼’를 넘어서는 욕이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욕설 표현의 금기를 깬 선구자는 여균동 감독의 ‘세상밖으로’(94년)다.‘×만아’같은 욕설을 무려 250회에 걸쳐 쏟아놓았다. 이후 송능한 감독의 ‘넘버3’를 시작으로 ‘친구’‘피도 눈물도 없이’등 잇단 조폭영화를 거치며 욕은 코믹한 수준을 넘어섰다. 폭력, 노출과 함께 욕설이 3대 심의 기준의 하나인 미국과 달리 국내 심의에서 욕설은 18세 관람가에서는 아예 문제시되지 않을 뿐더러 15세 이상 관람가에서도 관대한 편이다. ●안방까지 침범한 욕설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에로배우 시연(김민정)은 ‘지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탓에 영화에서처럼 적나라한 욕설은 등장하지 않지만 비속어나 은어의 사용은 빈번해졌다.MBC FM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3월10일 방송)은 ‘맞장을 까고’‘쪽팔리는 얼빵함’‘지들이 구라치거나’등의 비속어를 사용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대중가요에서의 욕설도 점차 강도가 세지는 추세다.SBS 심의팀이 올 11월까지 심의한 4675곡 가운데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가요는 총 143곡. 이 가운데 욕설을 포함한 비속어 사용이 문제가 된 경우는 70곡이었다. 조pd의 ‘SHOW MUST GO ON’은 ‘띨빡한’‘까발려진 개수작’‘fucker’‘god damn’ 등의 표현 사용으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올해 나온 서태지의 노래 ‘F.M Business’에서는 ‘fucking’이 사용돼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고,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2집에 수록된 ‘뒷담화’는 무려 35초 동안 온갖 욕설이 이어진 뒤 노래가 시작된다. 저항을 사명으로 하는 힙합 가수들의 경우 욕설은 거의 필수항목이나 마찬가지다. ●문학속의 욕 한국소설 속에서의 욕설은 오랫동안 ‘갖은 양념’ 같은 것이었다. 이문구 김주영 윤흥길 조정래 등 문단을 이끈 중진작가들은 주요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거의 예외없이 질펀한 욕을 쏟아내게 해 독특한 작가적 질감을 일궈냈다. 예컨대 이문구의 대표작 ‘우리동네’같은 작품은 쉴새없이 끼어드는 욕설이 줄거리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 사정없이 내다꽂는 욕설이 주요한 문학적 장치가 되는 추세는 서사가 강한 중진작가들의 작품활동이 뜸해지면서 거의 사그라든 형편이다. 그러나 10대가 점령한 인터넷 소설쪽은 사정이 다르다. 아예 ‘욕설의 바다’ 수준이다.10대의 폭발적인 호응을 업고 문학시장 깊숙이 침투한 인터넷 소설은 거침없는 욕설과 원색적 비아냥이 이야기를 엮는 필수 소재가 돼버렸다. 최근 그 경향은 초등학생들쪽으로까지 침투해 내려갔다. 또래끼리 문화층을 갖춘 이들은 나름대로의 변형된 욕 글들을 주고받는다. 한글 자체의 글꼴을 변형하는가 하면 알 듯 모를 듯한 욕설을 일삼는다. 팍팍한 삶에 윤활유가 돼 주었던 욕이, 인터넷 소설판에서는 이제 특별히 감동적일 것도 없는 일상용어로 돌변해버린 셈이다. 연극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막을 내린 뒤 앙코르 공연예정인 ‘청춘예찬’만 보더라도 극중 불우한 환경 속에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는 22살의 청년과 친구들의 대화 속에는 “X발, 개새끼”는 양념 격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중삐리 관중 X나게 많은데서”“물레 돌리지마 이 X새끼야”“씨박 새끼 넌 술이 들어가냐?”같은 욕과 비속어가 즐비하다. 순수예술의 꽃인 연극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문화부 종합 coral@seoul.co.kr
  • 당당해진 욕…병든 사회의 ‘신음’

    당당해진 욕…병든 사회의 ‘신음’

    욕, 악장거리, 악구, 험담, 험구……. 우리말에는 욕설을 가리키는 말도 많고 욕 자체도 많다. 소설가 정태륭씨가 우리 욕을 수집해봤더니 일단 추린 것만 해도 6000개였다 한다. 욕이라 해봤자 ‘바카’(말과 사슴을 구별 못하는 바보),‘칙쇼’(畜生·짐승) 정도인 이웃 일본과 큰 차이다. 그만큼 욕은 우리의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표현양식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다. 욕설의 범람 배경에는 아무래도 권위주의의 종말이 첫째 이유로 꼽힌다. 억눌렀던 힘이 사라지자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욕을 하나의 유행으로 치부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욕설을 “권위나 위계질서, 규범·비규범의 경계가 무너진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민주화일 수도, 아노미상태일 수도 있다. 인터넷 문화와 대중매체의 상업주의가 부추기는 측면이 있지만 자율적이고 평등한 문화가 자리잡을수록 점차 사라지리라고 전망했다. ‘개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욕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해석도 있다. 사실 ‘개성’이라고 불리는 문화적인 코드치고 유행에 떠밀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충남대 황인덕 교수는 이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한 과잉의식”으로서 욕을 정의했다. 또 갱그룹(Gang Group·또래집단)을 찾게 된다. ‘범생이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평범한 학생들이 ‘문제아그룹’에 억지로라도 끼기 위해 욕을 해대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그룹 구성원들보다 더 ‘오버’할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초선의원들의 막말행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다 비합리적인 우리 사회의 병폐도 욕을 부추긴다. 꽉 막힌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욕은 단번에 뚫어주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욕은 상소리가 아니라 강조어법이나 효과적인 전달 방식으로 자리잡기도 한다.‘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이란 책을 낸 계명대 김열규 석좌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의 포기 혹은 파괴로 인해 마지막으로 나오는게 욕”이라면서 “자위권의 발동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서 ‘어쨌든 욕은 욕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는 “기층 민중들의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욕”이라면서도 “바람직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욕은 어디까지나 우회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막말 퍼레이드’ 어디까지 모 야당 의원은 일국의 대통령과 총리를 공개적으로 ‘무식한 꼴통’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야당 의원은 현 정권을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이라고 퍼부어 댔다. 막말을 하는 데는 물론 여야가 따로 없다. 헌법재판소를 ‘헌법제작소’, 헌법재판관을 ‘법복 입은 정치인’이라고 비아냥거린 여당 의원도 있다. 욕 권하는 사회 탓인가. 개인의 인격 부재인가. 새 정치에 대한 기대 속에 출범한 17대 국회의 ‘선출된 인재’들이 펼치는 험구정치에 국민은 피곤할 따름이다. 욕! 그것은 응달의 언어였다. 그런데 지금 욕은 벌건 대낮의 말이 됐다. 대한민국 한 복판에서 중인환시리에 당당히 토설하는 뻔뻔스러운 언어가 돼 버린 것이다. 어디 정치뿐이랴. 영화고 연극이고 소설이고 욕은 이미 문화까지 접수했다. 온통 막말 퍼레이드다. 어떤 이는 이 강파른 세상에 어떻게 욕 안하고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입 사나운 걸 탓하기 전에 세상 사나운 걸 탓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욕은 필요악인가.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욕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언젠가 빛고을 광주에서는 전국 욕쟁이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음습한 뒷골목에서 나뒹굴던 쌍소리가 양광에 삽상한 바람까지 쐬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대회장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도 대표들의 옹골진 욕에 사람들은 배꼽을 쥐었다. 그 때 욕은 상스럽지도 더럽지도 않았다. 거기에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민족의 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라리 ‘욕의 복권’이었다. 욕을 하지 말아야 함은 당위에 속한다. 그럼에도 욕은 어지럽게 춤춘다.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는 욕설의 하치장이다. 조폭코미디의 유행이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영화에서의 욕설 횟수는 줄었지만, 문제는 스토리 전개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욕설이 습관적으로 끼어든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12세·15세 이상 청소년 관람가 영화에서는 욕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문자 씹으면 죽구, 전화 안 받으면 더더욱 죽는다.” 청소년들의 삼각 사랑을 그린 영화 ‘늑대의 유혹’의 한 대목이다. 욕설문화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범은 단연 인터넷 공간이다. 이른바 사이버 소설은 아예 10대들의 독천장이다. 인터넷 소설카페를 통해 또래문화를 형성한 이들은 온갖 욕설과 은어에 희한한 이모티콘까지 섞어 비문·오문 투성이의 ‘창작글’을 올리기 일쑤다.“그 뭬췐뇬이 나한테 꼬뤼쳤”“이런 뛰발”“이 새퀴들”“졸라”“아가리 묵념” 등의 낯 뜨거운 비속어들이 후렴구처럼 쓰인다. 욕 잘하는 캐릭터가 ‘쿨’한 주인공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존나 머싯는 놈’‘존나 사랑해’ 등 아예 제목에 욕이 들어가는 사례도 줄줄이다. 예술이란 마당에서 ‘활용되는’ 욕은 때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한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제 욕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순연한 카타르시스의 미학,‘욕의 힘’을 되찾아 줘야 할 때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집이 맛있대] 주문진 선착장 인근 ‘어부촌’

    [이집이 맛있대] 주문진 선착장 인근 ‘어부촌’

    11월 제철음식중 별미로 추천할 만한 것 중의 하나가 도루묵이다.11,12월 두달동안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도루묵은 요즘이 산란철이다. 이때 잡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배가 불룩한데, 맛도 있고 먹을 것도 많다. 예전엔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하찮은 생선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어획량이 줄면서 값이 비싼 편. 더구나 도루묵 알이 백혈병 예방과 원폭 피해자들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돼 한동안 알배기는 맛보기 어려웠다. 도루묵이란 이름이 있게 된 이야기 하나. 조선조(고려 때란 설도 있음) 어느 임금이 외침을 피해 동해안으로 왔을 때 먹을 것이 궁하자 한 어부가 자신이 먹던 ‘묵’이란 생선을 바쳤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너무 맛있게 먹은 임금은 ‘은어’(銀魚)란 그럴듯한 이름까지 지어주고 돌아왔다. 이후 궁안에서 입맛이 없자 피란시절 맛있게 먹었던 ‘은어’를 가져오게 해 먹었는데 그 맛을 찾을 수 없어 ‘도로 묵이라 하여라’고 했고, 이후 도루묵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올해는 도루묵이 예년보다 많이 잡힌다는 소식이다. 가격도 주문진 등 동해안 어항에 가면 스무마리에 1만 5000원 정도 주면 그날 잡힌 싱싱한 도루묵을 살 수 있다. 도루묵은 대개 찌개나 조림, 구이를 해먹는다. 주문진 선착장 인근의 ‘어부촌’은 도루묵 요리 잘하기로 소문난 곳. 찌개는 시원하면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무를 썰어넣고 한차례 끓인 뒤 도루묵과 쑥갓 등 몇가지 야채와 양념을 넣고 한번 더 끓인다. 도루묵 조림은 반쯤 건조시킨 도루묵을 말려 무와 고춧가루, 간장 등을 넣고 자작하게 조려서 만든다. 입맛 없을 때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구이는 술안주로 그만이다. 갓 잡아올린 도루묵에 왕소금을 뿌려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낸다. 익으면서 살집이 터지며 알이 비져나온다. 고소한 알 맛도 일품이지만 수컷에서 터져나오는 유백색의 곤지(도루묵 정소)의 는질거리는 맛을 좋아하는 이도 많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도 도루묵을 내는 집이 있다. 교보빌딩 뒷길을 가다보면 ‘영덕대게집’(02-3210-1379)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데, 이달부터 과메기와 함께 도루묵을 낸다. 강릉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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