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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돌아온 최형우의원…거취에 촉각/「13일간 방중」마치고 조용한 귀국

    ◎“개인자격” 불구 「실력자」 예우/의회차원 한·중협력방안 모색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형우 민자당전사무총장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최전총장의 방중은 57일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재개한 첫 외부활동으로 앞으로의 거취와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개혁의 일선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성급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그의 방중 일정에 대해 일단 주목하고 있다.중국에서 보여준 활동상이 곧바로 현재의 위상으로 직결됨은 물론 앞으로의 역할을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최전총장 본인은 이번 방중에 대해 애써 단순한 개인차원의 외유로 치부하고 있다.그는 국회의원의 입장내지는 개인차원에서 안중근의사가 처형 당한 여순감옥소,상해임시정부 청사,북경대학 등을 다녀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밖의 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외유에는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려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그는 중국에 13일동안 머물면서 중국정부로부터 「상당한」 예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의 일개 국회의원으로서는 다소 과분할 정도로 「귀한 손님」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상해·청도·대연·북경 등 4개 도시를 순방하는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한인교포와 중국인 통역관 2명을 줄곧 수행토록 해 「편안한 여행」을 배려했다.주용기부총리를 비롯,전기운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상임부위원장,등소평의 사위인 장굉중국과학기술총공사 부총재 등 실력자와도 만났다. 중국측은 앞으로 구성될 한중의원친선협의회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그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세심함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일의원친선협의회 부회장의 경우 외무·국방위의 부위원장인데 비해 우리측과의 협의회는 주양외무·국방위 위원장이 회장직을 맡아 격이 한층 높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중국정부가 자국민은 물론 웬만한 국가원수급에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 명소에도 초청받았다는 후문이다.한국의 「특사」내지는 「실력자」에 걸맞는 예우를 했다는 반증이다. 그는 귀국하기에 앞서 중국측에서 보여준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그곳의 거물급 실력자에게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전총장은 귀국후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은 자숙하며 의회차원의 한중협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장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지않겠느냐는 기대의 표시라는 분석도 가능하다.따라서 그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 꽃 한송이(외언내언)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창과 꿈결처럼 나부끼는 레이스 커튼,독일거리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길가로 향한 아파트 창문의 꽃장식이다. 흰색과 보라색의 피튜니아,핑크와 빨강의 제라늄,남쪽 슈바르츠발트의 바덴바덴거리는 도시가 온통 줄제라늄을 창가에 매달고 있다.그래서 거리전체가 활짝 웃고 있는 인상이다. 구릉이 많은 샌프란시스코는 아파트창가의 꽃들이 굽이굽이 물결치는듯 율동적이며 뉴욕의 그레이트존이나 소호뒷골목은 회색빛이 감도는 우중충한 분위기지만 창가에 놓인 몇개의 화분이 낡고 어두운 것을 화사하고 밝게 카무플라주해준다. 꽃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주무숙은 그의 애연설에서 「국화는 은둔자 모란은 부귀자 연꽃은 군자」라 했고 김수장의 「해동가요」도 「이화는 시객,홍도 벽도 삼색도는 풍류낭」등 꽃마다의 의미를 읊고 있다. 지난주 끝난 TV외화시리즈 「다이너스티」에선 석유회사 캘링턴회장이 여주인공에게 수천송이의 장미를 선물,남성의 정열과 사랑을 장미꽃으로 대신하여 뭇여성들을 압도시키기도 했다. 말없는 꽃이 지닌 꽃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요롭고 향기롭고 정직하다.기쁜 일은 더욱 기쁘게 슬픈 일은 애도의 염과 위로를 준다.그러나 마음의 표시가 지나치다보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전시효과의 과시에 그치기 십상일 수도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놓인 꽃한송이는 콧노래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한다.집에 돌아오면 거실이나 식탁에 놓인 꽃 한송이만으로 가정의 안락과 휴식을 맛볼수 있다.반드시 한아름의 꽃다발만이 기쁨의 분량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애경사 화환금지로 전국 1만1천2백여 화훼농민이 몸살을 앓게 되자 농림수산부는 가정·사무실에 「꽃한송이 놓기」운동을 전개하는 모양이다.받아서 기쁘고 주어서 흐뭇하고 보기만해도 행복해지는 꽃.꽃한송이로 농민들에겐 웃음을 주고 꽃한송이로 우리의 생활주변을 좀더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꿔 볼때다.
  • 전낙원씨 어디서 뭘하나/지난달 1일 출국… 행방묘연

    ◎국제전화·팩스 통해 인사 등 원격조정/동업자 많은 라스베가스체유 유력 카지노업계의 대부 전낙원씨(66·서울 서초구 방배동 801의2)는 지금 어디있을까. 국세청의 카지노업소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면서 전씨소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포착된 전씨의 행적은 지난달 1일 아시아·태평양지역 관광협회(PATA)총회 참석차 하와이로 출국한 사실만 확인되고 있을뿐 출국 40일째가 되도록 그후의 소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있는 상태다. 전씨의 해외소재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 추측들만 꼬리를 문다. 미국의 도박도시인 라스베이가스,파라다이스계열의 사파리파크호텔·카지노가있는 케냐 나이로비,그리고 스페인 카를로스국왕과 친하다는 이유에서의 스페인 체류설과 심지어는 스위스에 머물고 있을,것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각종 정보입수가 용이한 라스베이가스체류설이 가장 유력하다. 라스베이가스의 경우 전씨의 소개로 진출한 1급딜러가 상당수에 이르는데다 일부호텔들은 전씨가 투숙할 경우 태극기까지 게양하는 호의를 베푸는등 정보입수와 편하게 은둔하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기 때문이다. 전씨는 비록 국외에 나가있기는 해도가족과 체인내 이사급이상 측근들,그리고 그와 상부상조해오던 국내 정·재계실력자들과는 국제전화나 팩시밀리등을 통해 접촉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접촉결과를 토대로 필요한 지시나 조치를 취하는등 자신의 왕국을 원격조종하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예로 국세청세무조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6월1일자로 파라다이스제주개발 대표인 심경모씨(54)를 서울 워커힐카지노 대표로 보내고 부산파라다이스비치호텔 임경보전무(50)를 제주지역 책임자로 전격 발령한 것은 그가 비록 멀리있기는 하되 국내상황을 요모조모로 파악,필요하다고 판단해 내린 조치라고 볼수있다.
  • 총선결과 불구 내전해결 요원/캄보디아 내일 투표… 향후 전망

    ◎크메르루주 방해공작 최대변수/누가 승리해도 혼란막기 역부족 캄보디아 총선정국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유엔의 감독아래 23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되는 총선거를 무산시키려고 크메르 루주가 막바지 방해공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프놈펜정부는 크메르 루주의 무력준동에 무력으로 맞서는 한편 선거후 크메르 루주를 완전 분쇄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하고 있다.이미 70여명의 희생자를 낸 유엔측도 크메르 루주의 선거방해에 반격을 다짐하고 있다.총선을 이틀 앞둔 21일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무력충돌이 있었으며 정치인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행위도 계속됐다. 이에따라 캄보디아 국민들은 유엔이 공명선거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데 대해 불안을 느끼고 내전 발발에 대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이미 수도 프놈펜 상점에서는 쌀과 육류,통조림 식품 등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이며 고액권인 5백리엘짜리 지폐의 유통도 중단되고 있다.부유층이나 심지어 이번 총선에 입후보한 정치인들까지도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기에정신이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5일간의 총선일정은 혼란 속에서도 강행될게 틀림없다.유엔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가 비록 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는 있지만 거듭 총선강행을 주장하는데다 크메르 루주를 제외한 3개 정파들이 일단 총선은 치르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13년 내전종식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세력은 역시 크메르 루주다.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가 불가능해지자 베트남 지배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깊은 반감을 교묘히 부채질하고 있다. 크메르 루주는 7백20㎞에 이르는 태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캄보디아산 보석과 최고급 목재를 팔아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이들의 대부인 폴 포트가 최근 북경에서의 은둔생활을 끝내고 자파의 요새가 있는 밀림으로 복귀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밀림복귀와 동시에 그가 이름을 「라무트」로 바꾸고 게릴라전의 본격적인 재개에 나섰다는 루머도 유포되고 있다. 캄보디아 사태는 현재 낙관론과 비관적인 전망이 교차하고 있다.낙관적인 견해는 20개 정당들의 각축속에 1백20명의 제헌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 유권자 4백70여만명중 70∼80%가 참가,공정한 분위기속에 새로운 민주합법정부를 창설하는데 성공할 것이라는데 모아지고 있다. 그와 반대되는 전망은 폭력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선거가 사실상 무산되는 사태진전이다. 현지 서방외교관들은 크메르 루주측이 아무리 방해공작을 펴더라도 선거판을 깨기는 역부족이어서 총선이 어떤 형태로든 치러져 새 정권이 출범하는 구도속에서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선거판세는 훈센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 인민당(CPP),시아누크공의 아들인 라나리드의 민족연합전선,그리고 손산 전총리의 불교자유민주당 등 3개정파가 각축하고 있으나 훈센 또는 라나리드에게 승산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집권하든 「내전의 악순환」이란 망령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다음은 누구…” 정치권 좌불안석/「로비핵심」정덕일 출두 일파만파

    ◎“「배후」 줄줄이 노출될지도” 추측 무성/민자,다른의원 2∼3명 연루의혹에 어수선/중진급거론 민주측 위기의식속 추이 주시 임시국회가 20일 폐회되자 정치권에 또 다시 사정비상이 걸리고 있다.슬롯머신및 동화은행사건 연루 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돼 정가가 온통 뒤숭숭하다.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동화은행사건으로 비리혐의가 있는 의원은 이원조·김종인의원 뿐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슬롯 머신건은 박철언의원 이외에도 수명이 더 있다고 말해 『다음에는 누구냐』고 여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특히 불법로비활동의 열쇠를 쥔 것으로 알려진 정덕일씨가 검찰에 출두함으로써 정·관계의 비리유착세력이 「고구마줄기 엮이듯」드러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민자당은 소속의원 3∼4명이 슬롯 머신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집중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예전처럼 검찰수사에 「압력」을 행사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는 기본인식에다 『수사가 어떻게 진척되고 있느냐』조차 물어볼 엄두도 나지않는 듯한 분위기이다.「개혁」을 위해서는 「비리」가 드러날 경우 「성역」없이 조치해야 한다는 당위를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물론 민자당 소속의원의 연루정도가 최소한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황명수총장은 『K·L의원등이 슬롯 머신사건에 관련있으며 자택수색까지 당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아 알아봤더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원조의원의 경우도 아직 공식통보는 없었으며 징계조치도 사실관계가 확실히 밝혀진뒤 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다른 당직자도 『슬롯 머신사건을 너무 벌이면 어느 선까지 갈지 모른다.적당한 선에서 종결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슬롯 머신사건과 관련해 민자당의원 몇몇이 내사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정덕일씨를 조사하면 추가 연루의원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검찰수사에 당뿐만 아니라 청와대도 관여할 수 없다.의외의 인사가 비리연루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해 「축소수사」「선택수사」의 가능성을 부인하며 내사대상 의원수가 더 많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나 정가주변에서 슬롯 머신사건 연루 의혹으로 거론되는 민자의원은 중진인 K·L의원과 5공실력자 K의원,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K의원등.이들은 한결같이 『절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중진 K의원측은 『H호텔 슬롯 머신 사업관련자 N씨와 알고지내는 것은 사실이나 도리어 N씨에게 용돈을 주어왔던 사이』라면서 『특히 N씨가 슬롯 머신 업계와 관련있는지도 모르고 정덕진씨는 더욱 모른다』고 해명했다.L의원측도 「동생이 슬롯머신 지분을 가졌다」「L호텔 슬롯머신 허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에 『동생 두명은 미국에 살고 한명은 농협지점장』이라며 『평소 공직생활중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생활을 했다』며 「음해차원」같다고 주장했다. 5공 실력자 K의원측도 『사건이 본격화된 90년에는 지방에서 은둔했었는데 무슨 비호의혹이냐』고 반문했다.또 다른 K의원도 『청와대 재직시절 오히려 정덕진씨를 조사한 장본인』이라고 결백을 강조했다.교통부차관을 지낸 Y의원은 『슬롯머신 허가권이 교통부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일각에서 의혹을 거론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K의원등 2∼3명이 새롭게 슬롯 머신사건 연관의혹을 받기 시작해 수사종결때까지 어수선함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민주당은 신길용경정의 정씨 비호세력 폭로후에도 외형상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 그렇지만 물밑의 기류는 상당히 긴박하게 돌아가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위기의식이 팽배하고 있는 상태이다.특히 당내 중진급 인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면서 서서히 수사가 좁혀 들어오는 듯한 양상을 보이자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기택대표는 『아직 드러난 게 없어 특별한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어쨌든 우리당엔 슬롯머신 관련인사가 한사람도 없다』고 말했다.이와관련,한 율사출신 의원은 『최근 검찰에 확인결과 우리당 의원은 한사람도 없다는 보증을 받았다』며 『이 사실을 이대표에게 이미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의혹대상인 한 중진의원도 『당 지도체제의 취약점을 노출시키려는 음해』라고 주장,이 사건으로 인한 당내 계파간 알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의식,박지원대변인은 『검찰이 수사를 끝내려 하고있다』며 철저수사를 촉구. 민주당의 이같은 태도는 『설사 1∼2명의 연루의원이 나와봤자 민자당보다는 그 규모나 피해면에서 충격이 훨씬 덜할것이라는 판단때문』이라고 당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거론되고 있는 의원들은 각자 채널을 총가동,검찰의 수사진척상황·당반응을 점검하느라 분주하다고 이들은 전했다. 한 의원은 『만일 거론되고 있는 중진의원중 한명만이라도 사실로 판명날 경우 당은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정신대문제 실상을 고발한다/놀이패 한두레 「소리없는 만가」 공연

    정신대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극「소리없는 만가」가 오는 25일까지 서울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76 3­ 96 33)에서 공연된다.지난 90년부터 정신대 문제의 진상규명과 배상운동을 전개해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하고 놀이패 한두레가 마련한 뜻깊은 무대이다. 연극「소리없는 만가」는 2부로 나눠 모두 13개의 장면들로 구성돼있다.제1부는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춤으로 시작해 가난한 조선의 농촌생활,정신대모집,위안소생활,종전등으로 이뤄져있다.10대들의 일본에 대한 이중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제2부는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정신대 할머니가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서로 붙들려가는 모습을 비롯,광복회 노인들의 편협한 시각,할머니의 은둔생활과 장례등으로 꾸며져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신대문제의 실상과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각이 함축적으로 표현된 이번 작품은 남기성 연출로 마승락 서지현 김옥희등 젊은 연기자들이 출연한다.공연시간 하오4시30분 7시30분(토·일 하오3시 6시).
  • 김윤환의원 한일의원연회장 내정의 함축

    ◎동면 넉달의 「허주」 봄기지개 켜는가/대선뒤 3차외유끝 “첫자리” 관심/신경제 일 협조 겨냥한 선택 평가/“회장 내정과 은둔청산은 별거” 시각도 허주가 긴 동면에서 깨어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가. 김윤환의원(민자)은 항상 자신을 아호인 허주(빈배)로 불러주길 원한다.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고 어떤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는 넉넉함을 은연중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한 하주가 한일의원연맹회장직을 맡게 됐다.세인의 관심사는 한일의원연맹회장에 누가 됐느냐가 아니다.하주가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 관심거리다. 70년대말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래 하주는 결코 「빈배」가 아니었다.항상 전면에 나서 정치를 리드했다. 하주에게 정치적 시련기가 있었다면 5공중반기와 지금 두번정도이다. 공천이나 공직탈락으로 방황하던 5공때 모습은 개인적 차원이었다.이제는 다르다.하주는 새정부출범 이후 계속 소외되고 있는 민정계,특히 「김영삼대통령 만들기」에 진력했던 구민정계내 신민주계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새정부가하주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운영,나아가 차기 대권구도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하주가 「겨울잠」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2월18일 대선이후.불과 4개월여동안 정치행동을 자제한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3차례 외유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치면서 『하주는 이제 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가 한일의원연맹회장으로 돌아왔다.화려한 컴백은 아니지만 일단 재기의 발판은 마련한 셈이다. 하주의 연맹회장직 임명에 대한 청와대측의 설명은 「한일관계의 중요성때문」이라는 것이다.근래 한일관계는 정신대문제등 최악의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일본통인 전회장 박태준씨를 「홀대」함으로써 일본정치인들의 대한의식도 나빠졌다. 신경제정책수행을 위해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며 그것을 이루어낼 역량을 가진 인사로 하주가 꼽혔다고 볼수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민정계 불만 해소의 목적도 있다고 비쳐진다.재산공개 파문으로 민정계 상당수가 「다친」상황에서 하주를 외국으로 돌게만 하긴 힘들었을 것이다.이제까지 한일의원연맹회장을 역임했던 인사들은 김종필·정일권·박태준·이재형·권익현·김재순씨 등이다.모두 당대를 풍미했던 거물들이다.민정계 중간보스정도로 인식되던 하주가 원로급 반열에 오를 기회를 맞이 했다고 생각된다. 하주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식지않았음이 확인된 점이다.청와대측은 지난달 18일 출국,영국을 거쳐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하주를 급히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김대통령이 직접 하주에게 연맹회장직을 맡아주도록 당부했다는 것이다. 박준규·김재순전국회의장에게 적용된 「토사구팽」이 하주에게는 예외일수 있다는 관측도 낳게 한다. 그러나 연맹회장 내정과 「정치은둔」청산과는 별개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최형우총장·김덕용정무1장관·박관용 청와대비서실장등 민주계 실세트로이카가 쌓고 있는 성벽은 「철옹성」에 가깝다. 하주 스스로도 아직 「주체」가 될수 없음을 아는 눈치다.이들 개혁 실세들,궁극적으로 김대통령의 결심 한번이면 어찌되리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민정·공화계의 지원이란 것은 「동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연맹회장에 내정됐음에도 하주는 귀국을 앞당기지 않고 있다.이달 중순쯤 돌아올 예정이다.국내정치에 직접 간여하기 보다는 외곽으로 도는 연맹회장직이 「객체」로서 때를 기다리는 하주에게 걸맞는 자리일수도 있다.
  • 소설가 최인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0)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지적성직자”/현실묘사보다 관념성 짙은 작품활동 주력/화제작 「광역」발표로 “전후최고작가” 명성도/다방면에 해박한 지식·분석정신… 주관 강한 성품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 다른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 「광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추악한 밤의 광장인 남쪽이나 밀실은 없고 광장만 허용되는 북의 기계적 체제등 모든 것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어딘가 먼곳,아득한 이상의 나라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실종되자 독자는 그의 실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은둔인가,영원한 죽음인가,그렇다면 희망과 기대없는 암담한 절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소설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곧 이 소설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됐다는 이유외에도 불꽃튀기는 눈부신 지적 문체와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극명한 체제분석등은 60년당시 정치상황의 독자들에겐 싱그러운 통쾌한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문단데뷔 1년만에 일약 유명작가로 부상되었고 많은 평자들은 다각도로 그를 조명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문단과 젊은 문학도들은 당연히 이 당돌한 신인작가가 누구인가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인훈은 그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거나 물러서지 않은,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범주속에서 언제나 담담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다. ○견고한 자기세계 구축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이 자신을 감추거나 도사린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실체를 공략할 수 없게끔 이미 탄탄하고 견고한 지식의 성속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라기보다 그를 가까이 하려고 접근했던 이들은 그의 문학과 철학 역사와 생태학 진화론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지적직관,철저하게 파고드는 분석정신에 삼투된 나머지 오히려 그를 난삽한 존재로 규정짓고는 일찌감치 그에대한 현혹을 포기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그는 아무나를 만나서 선뜻선뜻 대화에 응하거나 문학지등이 내건 잡다한 기획에 뛰어들어 그때마다 지면을 장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자는 아니다. 그가 나설 자리 나서지않을 자리를 또박또박 구두점을 찍어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타당성 여부를 명료하게 따지고 타진한다.그래서 편집자측도 그에게 맞는 마땅한 기획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되었고 그역시 『부덕한 사람이 실수를 피할수 있는 길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전제,상대방이 빠져나갈수 있는 탈출구를 터주고 있다. 만사에 긍·부정을 분명히 하면서 이렇게 적당한 변명을 달아주는 것만봐도 지금까지의 주변의 평가대로 그의 행동과 말에는 막무가내의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라는 작위」가 갖는 위치가 「막대한 부채를 인수한 상속자」라 현지라도 체면상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거나 체면상 글 한줄 써야 하는 허례와 허식,의례적 형식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그러니까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맞는 이유를 장치하고 있었는지도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라하지도 않고 갈만한 일도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따라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장소에서는 객관적으로 건너다보아도 그의 존재는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네 귀가 딱딱 들어맞아 빈틈이나 허술함을 찾아볼수 없듯이 그의 평상시의 모습,작가로서의 모습도 여전히 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의 걸음걸이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그는 손끝까지 똑바로 편채 걷는다.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는다.침착하게 아주 천천히 반응하기 때문에 그와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아무리 떠들어도,그래서 의도적으로 작가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고 그 대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일 때는 그 질문이 명료해질 때까지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린다.그리고 산만함중에도 상대방의 의중이 진지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면 비로소 한마디의 압축된 대답으로 노냐 예스냐로 반응한다. 그는 말을 절제하되될수 있는한 명증한 말만을 고르고 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소설」또는 「환상소설」,작가로서의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이라고도 말한다. 혹자들은 그의 소설에는 「생동하는 인물」보다 「지적괴뢰」들이 넘쳐있으며 「쉽게 쓸것도 어렵게 쓰고」그래서 그는 「관념보다는 현실을 그리는게 목적인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른바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로맹롤랑이나 레마르크처럼 삶의 향훈이 물씬 풍기는 눈물과 한숨과 인생역정과 사랑의 애증을 그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은 관념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념」은 예술적으로 소설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도 「현실에 우선할 수 있는 소설적 기법」임을 그의 여러소설에서 단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고귀한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극적 상황」만이 독자의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정답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는 유클리드의 공식만큼이나 자명하고 단순할뿐 「고귀한 자」는 「한사람의 남자」이거나 「귀족」이거나 「영웅」이전에 그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철학적·도덕적 차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방황하는 지식인」일수도 있음을 그는 대표작 「광장」과 「가면고」「회색인」「웃음소리」등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평소의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24시간 책읽기에 빠져있고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남들과의 케상공론보다 아들 윤F(20)에게 「영산회상곡」이나 베토벤을 신청해 듣는 것이 행복하다. 바둑을 둘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른다.다른 취미나 오락이 있을리 없다.요즘은 긴 방학을 맞아 갈현동 2층서재에서 오랜만에 신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실은 소설에 손댈 경황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34세에 뒤늦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 윤F가 중2때 간염백신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보균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일념과 기원으로 좋은 의사,좋은 병원을 찾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한채 누워서 책과 음악으로 소일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으리라. 문학이 예술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예술일 것이다.아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를 체험으로 끄집어내고 휘두를만큼 그는 잔혹하지 못하다. 그것이 작가로서 위대한 것이라면 그는 「사양하고 싶은 위대함」이라고 외면해 버린다.2년전 윤구는 회복하여 검정고시합격으로 지난해 대학에 갔다.딸아이 윤경이도 올해 이대 영문과에 입학,모처럼 가정에 안락이 찾아들어 그는 작품구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무슨일에든 까탈을 부리거나 까다롭게 군 적은 없다.남들이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그로서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그는 다만 글을 쓰는 일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않아 쓰지않을때도 언제나 내면에서 쓰고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광장」이후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작품을 쓰느니 못쓰느니 끝없는 소요로 들끓었다. 그가 「광장」을 쓴것은 24세때다.이후 이 소설은 대학생과 문학도들의 필독서에다 지난 32년간 해마다 1만부이상,지난해엔 2만부,지난해초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단일작품으로는 평자들의 가장 많은 논란을 받았고 「전후 최대의 작가」로 찬사되기도 했다. ○24세때 「광장」 발표 그는 함남 회령출신으로 6·25때 가족이 모두 월남,피란지 부산에서 16세때 장편소설 「두만강」을 쓰기 시작해서 이 소설은 7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아무런 목적없이 법과를 택한 자책감에 학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출석미달로 4학년에서 1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웃음은 순백하다.그의 심성은 천진무구한 소년과도 같고 그의 행동은 순리를 좇아 자연스럽기만 하다.그는 집에서는 두남매와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원영희씨)와의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고 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향기높은 지적 탐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롤랑 바르트와 줄리앙 방데의 말을 빌려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그는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에 성실하게 맞부딪치려고 글을 쓰고 있다.그의 정신의 질서는 혼란된 세계를 조리있게 파악하려는 의지이며 논리에 따라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천칭,그는 바로 지적 성직자」라고. 그리고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이든 성직자에겐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연보 ▲1936년4월 함북 회령서 목재상인 부친 최국성씨와 김경숙여사의 4남2녀중 장남 ▲47년 함남 원산으로 이사,회령국민교에 이어 원산중­원산고2까지 ▲50년 6·25로 가족 전원 월남,부산 정착 ▲57년 서울대 법대 4년때 출석미달로 중퇴 ▲58년 군입대,통역장교로 근무 ▲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이 안수길씨 추천으로 「자유문학」지 통해 문단 데뷔 ▲60년 문제의 작품 「광장」을 「새벽」(10월호)에 발표 ▲61년 단행본 「광장」(정향사)출간 ▲67년 「총독의 소리 1·2」연작 발표에 이어 단편집 「총독의 소리」(홍익출판사)출간 ▲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현암사)출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극단 자유극장공연),11월17일 신문회관에서 이헌구씨 주례로 원영희씨와 결혼 ▲71년 창작집 「서유기」(을유문화사)출간 ▲72년 창작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삼성출판사)출간 ▲73년 장편 「태풍」(중앙일보)연재 ▲73년8월∼76년5월 미국체류,미아이오와대 세계작가 프로그램(IWP)초청,「광장」(일어판),수필가 김소운씨 역으로 일본 동수사출간 ▲76년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극단 산하 초연) ▲77년 「봄이오면 산에들에」(극단 동랑레파토리 공연) ▲78년 「둥둥 낙랑둥」(국립극단 97회 정기공연) ▲79년 미뉴욕주 브록포드대 초청,「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참가,「최인훈전집」(문학과 지성사)완간(전 12권) ▲80년 소설집 「왕자와 탈」(문장사),「하늘의 다리」(고려원)출간 ▲81년 소설집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민음사)출간 ▲82년 희곡집 「한스와 그레텔」(문학예술사)출간 ▲87년 미 뉴욕 「범아시아 레파토리」극단 10주년기념공연,「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 참관 ▲89년 창작선집 「달과 소년병」(세계사),산문집 「길에 관한명상」(청하),창작선집 「웃음소리」(책세상)출간 ▲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소설 「광장」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77∼현재 서울예전 교수 그외 대표작 「구운몽」「회색인」「가면고」「크리스마스캐럴」「두만강」「우상의 집」과 수필집 「유토피아의 꿈」외 동인 문학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서울극평가 그룹상(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체코 「프라하의 봄」 주역/두브체크 사망

    【프라하 AFP AP 로이터 연합】 지난 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을 주도했던 알렉산드르 두브체크 전 체코공산당 제1서기가 7일 저녁 프라하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향년 70세. 두브체크는 지난 9월1일 교통사고이후 세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2주동안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지난 68년8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자유화운동을 이끌었으나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의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후 약 20년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후 두브체크는 「벨벳혁명」이 한창이던 지난 89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비츨라프 하벨에게 패했으며 그후 국회의장에 임명됐었다.
  • 동구민주화의 “정신적 지주”/고 두브체크 생애

    ◎68년 47세 나이로 체코공산당 장악/「사회주의 인간화」 표방 개혁 실패로 7일 타계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는 지난 68년 체코 공산당 제1서기로 있으면서 스스로 공산당 체제의 변혁을 위해 자유화운동을 주도했던 동구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슬로바키아 유로베치에서 태어난 두브체크는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한뒤 2차대전중에는 반나치 유격전에 참가했으며 58년엔 공산당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68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됐다.당내 최고실력자가 된 두브체크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체제에다 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원리를 대폭 도입하는 일대 개혁을 시도했다. 두브체크의 이러한 개혁의지는 당시 체코전역에서 일고 있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부채질해 마침내 「프라하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대대적인 자유화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두브체크가 주도한 이 개혁운동은 68년 8월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의 전격적인 무력침공에 의해 실패로 끝나게 됐고 결국 두브체크는권좌에서 밀려나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리바에서 20년동안 은둔생활을 해왔다. 지난 89년 동구 공산당의 몰락과 함께 체코에 일어난 「벨벳혁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동안의 정치적 공백에서 벗어난 두브체크는 그해말 체코연방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바츨라프 하벨에게 패했으며 그뒤 연방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다 지난6월 슬로바키아의 사회민주당을 이끌고 총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시도한 인간적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순수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한 그의 개혁의지는 뒷날 동구 자유화를 이루게 된 정신적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떠오르는 신당… 정국 난기류/정계개편 발빠른 행보의 향방

    ◎양김공조 회복 노력… “충격 줄이기”/민자/범여권세력 결집,내각제 공약할듯/신당 박태준최고위원의 민자당탈당으로 반양금 세력의 신당창당작업이 가속화되면서 정계개편의 폭과 윤곽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자당도 부분적인 정계개편은 필연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탈의원수를 최대한 줄여 파장을 극소화하겠다는 생각이다. 현 시점에서 정계개편의 폭을 좌우하는 요인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박최고위원의 신당합류여부이고,둘째는 신당추진인사들이 내세우는 정치목표(내각제)에 동참하는 인사가 얼마나 될 것이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당과 국민당이 반양금 연합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을 들수 있다. 우선 박최고위원의 신당합류는 확실한 것으로 전망된다. 민자당의 김영삼총재측은 박최고위원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정계에서 은퇴하리라고 보고있다. 그러나 박최고위원측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박최고위원이 민자당을 탈당한뒤 곧바로 신당에 합류하는 것이 모양상 안좋아 잠시 모색기를 가질 것이라는 것이다.박최고위원은 이에따라 앞으로 일주일여 동안 은둔하면서 신당추진인사들의 활동을 지켜본뒤 반양금 세력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은 신당추진인사들이 내세우는 정치슬로건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에 동조할 정치세력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신당추진세력들이 추구하는 바는 한마디로 내각제 개헌이다. 이들이 대선후보를 선정하는 기준도 내각제개헌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선대표주자의 지명도도 중요하지만 내각제에 대한 정치권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나아가 부산·경남과 호남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양금에 대체하는 새 인물을 바라는 욕구가 강하다는게 보다 주목할 점이라고 신당추진론자들은 주장한다. 일정 세력을 가지고 큰 흠이 없는 인사가 대선에 새 후보로 등장할 경우 중부권을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국민후보」 첫 대상으로는 강영훈전국무총리가 꼽히고 있다. 강전총리도 신당추진에는 일단 호의적이나 대선주자로는 박최고위원이 보다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결국 박최고위원이나 강전총리중에서 「국민후보」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제4신당의 「국민후보」는 그러나 한시적인「과도기대통령」이될 확률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신당추진세력들은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가 양금타파가 아니고 권력분할체제,즉 내각제개헌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당은 내각제를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차기 대통령임기를 2년정도로 단축,그 기간에 내각제개헌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신당추진론자들과 국민당과의 제휴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내각제와 관련이 있다. 신당추진세력들은 정주영국민당대표가 후보를 사퇴,반양금후보가 단일화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대표가 임기단축,내각제개헌추진에 동조한다면 「국민후보」로 정대표를 옹립할수도 있으며 박최고위원등이 이미 정대표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당추진세력들은 아무리 늦어도 내달초까지는 반양금 범보수세력이 총결집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민자당에서는 이자헌·박철언·김용환·장경우·유수호·남재두의원이 1차 탈당을 하고 최재욱·강우혁·박범진·박명환·강재섭·김인구의원들이 추가로 신당에 합류,무난히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송천영·박령식·김원웅의원 등이 신당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무소속의 한영수·강창희·임춘원의원 등도 동참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김우중·신현확씨 등 재계 인사,장세동·허문도씨등 5공세력까지 결집한다면 범보수세력의 총집합이 실현된다는 구상이다. 신당추진세력들의 이러한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지에는 아직 변수가 많다. 우선 노태우대통령의 심경이다.다음은 양금의 대응이며 셋째로 이질적 요소가 많은 신당추진론자들이 과연 단기간내에 세력을 결집할지 여부이다. 「노심」의 향배는 판을 유지할 수도,근저에서 흔들 수도 있는 최대의 변수이다. 외견상 계속 중립을 유지하겠지만 이춘구·이한동·노재봉·김종인·안무혁의원 등 「노심」과 밀접한 인사들이 민자당을 떠난다면 민자당은 상당한 혼란에 빠지리라 예상된다. 이중 안무혁의원은 신당합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들 직계부대가 움직인다면 「노심」이 내각제개헌으로 흐른다고 비쳐질 수 있다. 온갖 고난을 헤치고 제1당 대선후보에 오른 김영삼총재는 사태를 수수방관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1차적으로 이탈가능성이 높은 의원들을 A·B·C등급으로 분류,5∼6명의 A급 의원들의 탈당은 용인하겠지만 나머지 의원들에 대해서는 벌써 집중설득에 나섰다. 이탈의원 자리를 메우기 위해 국민당의원 영입노력이 적극 전개될 수도 있다.김총재는 또 이춘구의원등 「노심」과 밀접한 민정계 인사를 선대위위원장에 임명하는 방법으로 민정계동요를 막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신당이 보다 세력을 갖출 경우 김대중 민주당대표와 힘을 합쳐 「수구세력의 장기집권 음모」라고 역으로 몰아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김영삼총재의 당선이 확실시될 경우 김대중대표가 「대선전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는 충격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어쨌든 12월 대선까지의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미가 거듭되리란 전망이다.
  • 정신장애자 가족의 헌신 예시

    ◎태화기독복지관,문답식 번역서 「마음의…」 편역/환자의 불면증·식사거부는 불안의 표시/심신상태에 보조맞춰 행동… 편안함줘야 6년전부터 정신장애자들의 사회복귀 사업으로 「샘솟는 집」을 운영해 오고있는 태화 기독교사회복지관은 최근 「마음의병 상담실」(김선심 편역)을 편역했다. 일본의 전국정신장애자 가족연합회가 정신질환자 가족들을 위해 펴낸 문답 안내서를 사회사업가 김순심씨(전 태화기독교사회관관장)가 번역한것.(도서출판 예전사발행·값3천원) 이책에는 정신장애자들의 사랑과 결혼,가족들의 경험과 태도,약물에 대한 적응문제등 정신의학이 주지 못하는 해답이 들어 있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데 가족들이 함께 용기를 줄수있는 부분들을 예시하고 있다.이책을 통해 가족들이 갖춰야 할 태도를 알아본다. ▷정신분열증의 초기증세◁ 초기증상으로 가족들이 감지하는 사항은 은둔 불면 혼잣말 뜻없는 웃음 성격의 변화등이다. 정신분열증환자들은 불면증 초조환청·환시·망상·식사거부·약거부·요량없는 언어행동 등으로그들의 불안과 고민을 표시한다.따라서 구조요청신호로 알고 대응해 줘야한다. ▷정신분열증환자◁ 어렸을때 조용하고 기르기 쉬웠던 아이들이 많다.기르기 쉬웠다는 것은 부모와의 유대가 적었던 것이라 보아야한다.아이들은 2세 전후와 중학생시절에 제1·2차 반항기를 겪는다.자아가 급속히 성장하며 부모에게 반항도,어리광도 하며,부모가 있음을 확인한다.이 반항기에 부모와 충분히 접촉한후 필요성이 없어지면 부모에게서 자립한다.정신분열증인 사람은 본래 자아의 힘이 약해서 또는 주위에 민감해서 반항기도 없이 지나간 사람이 많다.부모나 그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과의 충분한 응석의 관계가 그후의 인생을 지지해준다. ▷가족의 마음가짐◁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다.반대로는 가족이 얼마나 불안함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되기도 한다. ▷환자와 같은 입장에 선다◁ 환자는 정신분열증의 급성적인 증상이 가라앉은후 얼마간 피곤해져 누워 지내려는 시기가 있다.이런때 청소를 한다며 일어나라고 하면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는 초조해한다.함께 누워서 청소도 뒤로 미루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부인의 남편이 발병했다.환자는 병세가 악화되면 잠을 못자고 집안의 가구를 움직인다.어느날 병이 악화되어 잠못이루고 가구를 움직이기 시작할때 부인은 병원에 연락하지 않고 함께 일을 도왔더니 이틀후 피곤하니까 그만두자며 병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지날수 있었다.부인이 또 재발하지 않을까 볼때는 불안이 더해져서 재발 했던 것이다.
  • “프놈펜에 개혁물결 넘실”/내전상처 아무는 현장르포(캄보디아통신)

    ◎훈센 현정부 개방정책에 “기지개”/“국제사회 적응”… 젊은이 사이에 영어붐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도이면서 오랫동안 은둔의 도시로 알려진 프놈펜 시내에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13년간 지속돼오던 내전의 종식과 현훈센정부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어학습붐.토착언어인 크메르어를 사용하는 캄보디아인들은 오랜 프랑스식민지 전통을 갖고 있어 식자층이나 노년층은 불어를 다소 이해하지만 영어는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금기시돼왔다. 따라서 영어붐은 지난 90년 훈센정부가 헌법개정을 통해 기존의 공산주의 노선을 대폭 수정,다당제와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함에 따라 외국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된 현상이다.현재 캄보디아에서 영어의 구사는 바로 취업의 보장과 생활안정을 뜻하는 것이므로 영어학습의 열기가 높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수요에 따라 프놈펜 시가지에는 영어학원이 급증하고 있다.프놈펜 번화가인 크메르왕궁 일대의 토사무스가에는10여개의 영어학원들이 성업중이다.그러나 이들 학원들은 시설이래야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지붕과 그 안에 작은 칠판 하나와 10여개의 책·걸상뿐으로 우리의 학원들과는 비교가 되지않는다. 이들 학원 입구에는 제각기 수강생들을 더많이 유치하기 위해 영어와 크메르어로 그날의 강의계획을 자세히 써놓고 「수동태 완성!」「조동사 완성!」등 각종 선전문귀들과 함께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이렇듯 빈약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프놈펜 젊은이들의 영어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매우 높아 각 학원 주변 뿐만 아니라 시내곳곳에서 영어단어를 외우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 노천학원의 수업광경 또한 흥미롭다.영문법의 시제를 강의하고 있는 학원강사 솜 온씨(30)는 칠판에 문법공식을 가득 적어놓고 열강하고 있었으며 열심히 필기하며 강의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수강생들의 태도 또한 진지했다.늦게와서 책상을 차지하지 못한 학생들은 바닥에 앉거나 서서 듣고 있었다.한가지 특이한 점은 모든 강의가 영어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학원의 하루 수업시간은 2시간정도이며 수강료는 월별로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단위로 책정이 돼있어 한시간이 끝나면 수강생중 한명이 수강료를 걷어 강사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캄보디아의 영어붐을 타고 미국 영국 호주등의 영어교육기관들이 프놈펜에 학원설립을 다각도로 검토하는등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빠른 진출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호주.프놈펜시내에 호주영어교육센터(ACE)라는 학원을 세우고 수강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훈센정부는 캄보디아인들이 국제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을 막고 국가발전에 필요한 기술습득을 위해 국민학교 6학년부터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10학년까지 주당 2∼3시간씩 필수과목으로 정해놓고 영어교육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나 교사의 부족으로 제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훈센정부 교육부의 엑 솜 올차관(52)은 『현재 학생수는 총1백60만명에 달하는데 영어수업능력을 갖춘 교사는 2백명도 채못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대학교육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고 있어 당분간 사설학원의 성행은 어쩔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강사들의 자질향상과 교육내용이 충실하도록 지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 “북한 핵보유는 시간문제”/칼럼니스트 앤더슨 WP지 기고

    ◎영변 핵시설 은닉·위장작업으로 부산/“김정일 제2의 후세인 될까” 큰 우려 북한은 핵무기제조에 총력을 기울여 불과 몇달내에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 시킬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미국의 정보계가 믿고 있다고 미정부의 극비정보에 정통한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씨가 29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 다음은 앤더슨씨의 기고문 요지. 「북한의 핵무기 계획을 총관장하는 김정일은 또다른 사담 후세인이 될지도 모른다. 편집광적 은둔자인 그는 핵무기의 축적은 물론 그의 진척정도를 숨기는데 열심이며 비극적인 오산의 명수이기도 하다. 북한의 김일성이 오는 4월15일 80세 생일을 기해 정식으로 권력을 인계할 것이라는 추측이 정보계를 풍미하고 있으나 김정일에 대한 뉴스는 좋은게 없다.그는 격리돼 살아와 세상사에 무지하며 외국외교관을 만나지 않고 기자회견조차 해본적이 없다.북한 밖을 나가 본 것은 두번에 걸친 잠깐동안의 중국방문이 고작이다. 미정보사회에서는 김정일 지시하에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하기 직전에 와있다는 경고가 점증하고 있다.그는 국제사찰을 지연시키는데 성공한다면 핵무기보유를 몇달내에 기정사실화 시킬수 있으며 최소한 핵심부품들을 깊숙이 숨기는 시간을 벌수있을 만큼 목표달성에 근접해 있다. 북한은 금년들어 중동에 대한 미사일판매를 증가시키면서 휴전선에 스커드를 증강배치하는 불길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백악관과 국방 국무부가 묘안을 강구해도 별수가 없다. 지난 6개월동안에 걸쳐 영변주변의 대공포대가 5에서 40으로 늘었고 정찰위성으로부터 작업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망이 여기저기 설치됐으며 지하터널이 굴착되고 대형트럭들이 부산하게 들락거리고 있다.이들은 모두 핵무기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한,또는 중요한 물질이 사찰팀 도착전에 이동중이라는 시사로 보여진다.」
  • 개혁·개방으로 노선 돌린 중공당/개혁파 승리로 끝난 보·혁 다툼

    ◎등,경제특구 돌며 북경보수파 공격대장정/“소는 경제실패로 붕괴… 개혁·개방만이 살길” 역공/언론도 침묵깨고 지지보도… 보수파 무력화 중국대륙에 개혁·개방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얼마전까지 대륙을 휩쓸던 보수파의 「반화평연변」목소리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개혁파의 「사상해방」이나 「개혁만이 살길」이란 구호들이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다. 홍콩신문들은 지난해 8월 소련의 쿠데타실패이후 야기된 중공당내 노선싸움에서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개혁·개방노선이 마침내 승리,국가기본정책으로 채택된게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이에따라 연말에 개최될 14차당대회에서도 등노선은 확고부동한 지도사상으로 자리를 잡아 아마도 금세기말까지 중국을 이끌어 갈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까지 했다. 개혁파의 보수파에 대한 공세는 지난 1월하순 등소평이 중국 남부지방을 순회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등은 1년여의 은둔끝에 자신의 개혁·개방정책 성공의 전시장이라 할수있는 심수·주해경제특구와 광주·상해등지를 돌며 개혁만이 중국이나아갈 길임을 역설했다.그는『개혁을 따르지 않는 관리들은 사임하라』고 촉구하고 『개혁이 없이는 죽음으로 이르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보수파의 화평연변 주장에 대해서는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는것만이 서방의 화평연변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등의 남방행차에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관영보도매체들이 뒤늦게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한듯 대대적인 보도를 시작하고 이어 지난 12일 소집된 당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강총서기가 등의 발언과 지시사항을 정식으로 보고,당문서로 채택함에따라 보수파의 입지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지난해 8월 소쿠데타 실패직후 한때는 보수파 목소리가 정국을 완전 장악한듯 보였다.진운을 비롯 왕진 등력군 이붕등으로 이어지는 보수세력은 구소련사태가 서방의 화평연변때문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통사회주의를 굳게 다져가는수밖에 없다고 역설했고 이에대한 반론도 거의 들을수 없었다. 이같은 보수파의 주장을 압도할수 있는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해 12월말 소연방의 해체로 마련된것 같다.소연방해체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경제정책의 실패때문이란 사실을 개혁파에서 간파한것이다. 등을 비롯한 개혁파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 승패는 생산성향상에따라 좌우된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구소·동구와는 달리 중국이 아직 무사한것은 일찍이 경제개혁을 서둘러 인민경제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면서 화평연변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갔다. 등소평은 이같은 사태진전을 그대로 방관한다면 자신의 생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4차 당대회에서 개혁·개방노선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게됐으며,이 때문에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방행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홍콩의 한 중국관측통은 풀이했다. 홍콩의 명보는 중공당정치국확대회의의경우 35년 장정중 모택동노선 채택과 87년 호요방총서기 축출등 주요 노선결정에 활용해온 사실에 비추어 이번에도 등노선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등노선에대한 대대적인 캠페인과 전국적인 학습열풍을 들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실권을 장악해온 보수파간부들에게는 벌써부터 숙청설이 나돌고 있어 이들의 올한해는 그 어느해보다 길고 지루할것 같다.
  • 20여년 은둔속 90회 생일 맞아

    구랍 27일로 90회생일을 맞은 세계적인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여사(사진은 62세때의 모습)가 모국인 독일언론들로부터 대대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독언론들은 일제히 그녀가 독일이 배출한 세계 영화계의 유일한 스타라고 지적하고 비록 30세때 미국에 건너가 그곳 시민권을 얻고 2차대전중에는 미군들을 위한 영화에 출연,독일인들이 그녀에 대해 달갑지않은 기억을 갖고 있지만 이제는 이러한 과거를 이해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현재 파리 몽테뉴가에서 20년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끝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 북한 전역에 식량 구하기 “전쟁”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참상 폭로/“3년째 흉작”… 양권있어도 배급 못받아/분노한 주민 정부 양곡창고 약탈 사태 북한은 극도의 식량난을 겪고 있어 굶주리다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정부양곡창고를 약탈하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도시로 탈출하고 있다고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27일 보도했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은둔 왕국으로부터의 이야기」라는 제목아래 폴란드통신(PAP)의 크지 슈토프 다레비치 북경·평양주재 특파원이 쓴 장문의 박스기사를통해 평양시를 포함한 북한전역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어 외교관을 비롯한 외국인들 조차도 식량을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수년간 중국과 북한에 머물면서 여러달동안 평양에서 생활한 다레비치 특파원은 북한에는 낙후된 영농방식과 악천후로 인해 연3년간 흉작이 계속되어 15일분의 양권(식량배급표)을 가지고도 하루 내지 3일분의 식량밖에 받을 수 없을 정도의 식량배급을 주민들에게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레비치 특파원은 평양의 식품상점들은재고가 바닥나 육류 생선 달걀등은 아예 진열장에도 나타나 있지 않아 외교관들과 외국인들도 식량구입에 애를 먹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북한의 일부지역에는 심한 기근으로 굶주린 주민들이 정부의 양곡창고를 약탈하거나 비교적 먹을것이 풍부한 중국 국경도시로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는 소문들이 평양시내에 갈수록 많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레비치 특파원은 이어 북한당국은 이러한 북한의 참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외국인들의 지방여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 주민들은 전국의 경작지에 새로운 흙을 1.5㎝이상 덮으라는 김일성주석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인 복토작업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 소 핵기술자 60여명 해외 유출/WT지

    ◎제3세계 국가들서 거액에 고용 【워싱턴 연합】 소련연방 해체과정에서 핵무기와 핵기술자의 해외유출이 심각한 위험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몇명의 소련 핵과학자들이 핵무기개발 야심에 불타는 제3세계 국가의 좋은 고용조건을 수락했다고 워싱턴 타임스지가 10일 보도했다. 프랑스등 최소한 2개의 유럽 정보기관을 인용한 이 신문에 의하면 인도와 파키스탄·이라크·이란·브라질등의 관련기관들은 형편없는 임금과 불확실한 장래에 불안해하는 이들 핵전문가에게 소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연 3만6천달러에서 7만5천달러의 호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소련의 70여만 군수산업 종사자중 4천여명에 이르는 전문가들은 현재 KGB에 의해 행적이 엄격히 통제되고는 있으나 이 신문은 최소한 60명이 거주지를 떠나 5개이상의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미 고위 정보관리는 핵무기에 접근할수 있는 어느 러시아장군이 수송기를 징발,몇개의 핵무기를 싣고 리비아로 날아가 수백만달러를 받은 후 은둔생활을위해 브라질 등으로 떠나는 상황도 이제 더이상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소련 핵무기가 리비아의 수중에 들어 갔다고 해서 카다피가 그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리비아의 핵보유는 인근 이집트의 핵무기 개발을 부추길 것으로 서방측은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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