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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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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은 거대한 「신흥종교 집단」”/이재근 연구위원(남풍 북풍)

    북한 김정일 정권집단의 체제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난국임은 현재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바다.오랫동안의 은둔과 폐쇄가 쉽게 열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헐거운 틈새는 있는 법이어서 더러 새어나오는 그쪽의 실상을 전해 듣노라면 놀랍고 안쓰러워 측은한 감정마저 갖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붕괴하는가.북한이 안팎으로 어렵고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는데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그 참담한 사정에 비춘다면 벌써 무너져야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분석과 평가에 탁월한 전문가들도 이 문제에 이르러서는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나타난 「현실」은 정확히 해독할 수 있으나 미래에 관해서는 하나같이 「판단중지」다.현실진단에만 집착할뿐 본질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에 소홀하기 때문이다.이제 『북한이라는 국가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에 천착한다면 그 의문은 풀릴 것이다. 한 외국 전문가의 탁견이 있다.그에 따르면 북한이 지금 위기는 위기지만 갑자기 붕괴하는 사태는 없다.최근 북한인들의 탈출 망명사태가 위기의 한단면이기는 하나 그 전부는 아니다.그것을 몇년전 동독인들의 탈출러시에 대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지금까지 북한을 떠난 사람들은 유학생·외교관·상사원등 상류 지식층으로 서방세계에 물들고 자본주의에 눈뜬 사람들이다.이미 북한체제에 대한 신념이나 신뢰를 끊은 「한계인들」이다.김정일 전 동거녀의 서방탈출도 실은 한 정권 장악자의 개인적인 가정불화 스캔들에 불과하다는게 그의 해석이다. 북한은 한마디로 거대한 컬트(신흥종교)집단이다.교주 김일성이 가졌던 카리스마를 김정일이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수령,당간부,인민간의 관계는 신흥종교집단의 교주와 간부,광신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죽은 교주가 다져놓은 후계체제에서는 권력투쟁이 일어나기 어렵다.그 권력체제가 인격화돼 있기 때문이다.수령(교주)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체제,즉 컬트체제를 염두에 두면서 북한붕괴론의 허실을 살펴야 한다.
  • 작가 박경리(이세기의 인물탐구:88)

    ◎삶과 문학에 당당히 맞선 “대지의 어머니”/암수술·사위구속 시련속 25년만에 「토지」 완간/인기영합 두려워 80년 원주 정착,은둔생활/「일본론」 집필 구상… 체험 바탕의 문학강의 큰 인기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풀을 뽑고 씨앗뿌릴 때/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서쪽에서/빛살이 들어오는 주방/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88년 「산더미 같은 「토지」에 파묻혀」 다른 잡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작가 박경리는 자신을 추스르고 위로받기 위해 시집 「못떠나는 배」를 낸 적이 있다. 그때까지 「토지」3부가 「열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라면 4부의 무대는 「인간이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과 육체가 참살되는 가공할 전쟁의 광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나락같이 깊은 내용과 엄청난 양감」으로 인해 어디서부터 소설을 허물어나가야 할지 망연자실하던 시기였다.그만큼 「토지」는 그를 비웃는 태산이었으나 내면의 아우성과 전진과 기록의 난무속에서」 그는 스스로 황폐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천형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사마천)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매)는 무명 같은 시들을 남기게 되었다. 평소 「작품을 쓰는 일은 자기속에 있는 악과의 싸움」이며 「쓰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 써야 한다」는 그는 「진실을 위해 생명을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성서의 잠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사잊고 창작 몰두 이른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세사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몇년이고 칩거하여 창작에만 몰입하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그는 본래 투명하도록 맑고 연약한 인상이지만 「운명적으로 맡겨진 역할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똑바로 해내는 동안 「못 하나 박는 일」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 되었다.또 어떤 탁류에도 휩쓸리지 않으면서 만약 작은 상처를 입더라도 이를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섬광의 혜지를 타고났다.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외롭고 참담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견고해졌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선 끈질긴 여인의 일면이나 풍상에 시달린 마모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신기하다.오히려 작가로서 준열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여 「독자에게 영합하려는 붓을 깊이 경계하고」 약자에게가 아니라 강자를 향해 안으로 도도하고 마음속으로 굽히지 않는다.그런 그를 시인 정현종은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독한 사람에 틀림없는 것은 한 작품에 25년간이나 매달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된다.남들은 5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장편을 58년 첫장편 「애가」와 59년 현대문학에 「표류도」 연재를 필두로 「내마음은 호수」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등 어느때는 1년에 두편이상을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처럼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었고 문학지에 발표해온 중단편이 그때마다 평자들의 호평에 오른 것은 작가가 정교하게 책임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토지」1부를 쓸 때는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2부때는 사위인 김지하시인의 구속사태로 가족이 온통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던 외손자 원보(군입대중)를 등에 업고 구치소 면회를 다니던 정릉시절이 눈에 선연하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그러나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거나 도망치지 않고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삶과 문학에 그는 언제나 정면대결로 마주서 있다.그리고 구약의 욥이 가산도 자식도 다 잃고 악창에 시달려 환부에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내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악마의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의인의 발아래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어했다.이 자세는 고통과 의지의 절대세계라고 할만한 작가의 구도적 혈흔이 선명히 와닿는 육성으로 그의 문학을 논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명문이다. 그는 사람이 행불행을 수월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때론 노여움을,때론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것이 비겁」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외면해버린다. ○7백여평에 농사 지어 그의 주장은 작가의 선민의식을 시속기로 천시하여 「작가는 철저한 에고이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토지」3부를 끝내고 「인기라는 물결로부터 자기가 썩고 있는 일에 빗장을 지르기 위해」 80년 아무런 연고지도 아닌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정릉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무르고 나무를 가꾸고 온갖 새와 동물을 거두어 그의 7백여평의 드넓은 뜨락을 「억조창생」이 머무는 생명의 근원지로 만들어나갔다.그의 생명에 대한 겸손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나 배추 한포기라도 갓난아기를 안듯이 정성껏 보듬고 나무를 꺾으면 나무에 깃든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슬퍼한다는 것을아는 심심상인의 경지다.철이 되면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날씨가 궂을 듯하면 다시 방에다 군불을 때어 바짝 마른 고추를 하나하나 헝겁으로 닦아내는 그의 정성은 한시도 쉬지 않는 또 다른 창작의 일면인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겉보기엔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는 것도 같고 인고를 타고난 것이나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노동은 수확의 기쁨을 아는 농부의 그것일 뿐 그에게 있어 일이란 삶의 확인이자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다. 이제 그는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의 자신과의 언약에서 결국 「도전함으로써 비약」했다. 따라서 「토지」는 그의 대명사이자 분신 이전에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광망」을 그었으나 「진실은 내 심장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고 그는 심상한 의미를 예감시키고 있다. 「토지」 이후 그는 연세대 강의 외에 일간지에 시론을 쓰고 일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일본론을 구상중이다.특히 그의 문학강의는 어디선가 읽은 듯하거나들은 듯하거나 한번 들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생한 체험이 말마다에 살아 있어 대학생 사이에서 명강의로 소문나 있다. ○내년 봄 매지리로 이사 요즘은 단구동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그가 살던 집이 헐릴 위기에 있었으나 토지개발공사의 배려로 「박경리기념관」으로 남게 되었고 그는 이른 봄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있는 승업면 매지리로 이사할 예정이다.아마 그때도 그는 농부가 될 것이다. 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작가」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문단의 수많은 모임에서 사교적인 활동만으로 문인을 빙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허세는 작가 박경리 앞에서 무색하다.작품의 질이나 분량에서 이미 남에게 비교될 수 없는 그를 두고 「모든 찬사는 미흡하다」는 문단의 평은 옳다.그의 손은 농사 외에도 바느질과 그림과 나무를 조각하고 돌담을 쌓느라고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나 그의 미소는 작가의 웃음이며 그의 글은 단한번도독자를 배반하지 않는다.범접할 수 없는 결곡한 기상,금과 옥을 품은 거대한 푸른 산 같은 그 앞에 서면 왠지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는 최일남의 말은 한치의 과장 없이 모든 사람의 공감을 산다. □연보 ▲26년 경남 충무 출생 ▲45년 진주여고 졸업 ▲55년 단편 「계산」 「흑흑백백」 김동리 추천(현대문학)데 뷔 ▲58년부터 장편연재 「애가」(민주신보) 「표류도」(59년 현대문학) 「내마음은 호수」(60년 조선일보) 「노을진 들녘」(경향신문) 「가을에 온 여인」(62년 한국일보) 「파시」(64년 동아일보) 「타인들」(67년 주부생활) 「겨울비」(여성동아),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1부(현대문학) 연재시작,「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창」(70년 조선일보) 「단층」(74년 동아일보) ▲80년 원주시 단구동 정착 ▲84년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의 문제작」으로 「토지」 선정 ▲86년 북경 연길 백두산여행 ▲90년 프랑스어판 「토지」(파리 벨퐁출판사)출간,중국기행 ▲91년 연세대원주캠퍼스 객원교수 ▲94년 민족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전5부 16권 완간(도서출판 솔),이대 명예문학박사 「김약국의 딸들」(62년 을유문화사) 「내마음은 호수」(63년 신태양사),단편집 「불신시대」(63년 동민문화사) 「시장과 전장」(64년 현암사),수필집 「거리의 악사」(77년 민음사) 「Q씨에게」(79년 풀빛사) 「박경리문학전집」전34권(79년 지식산업사) 「토지」사전(93년 도서출판 솔),시집 「못떠나는 배」(88년 지식산업사) 「자유」(94년 도서출판 솔)등 60여권 현대문학상(57년) 내성문학상(61년) 한국여류문학상(65년) 월탄문학상(72년) 인촌문학상(90년)
  • 불교계 노 전 대통령 산사행설 논란

    ◎사법처리후 은둔처로 대구 파계사 거론/찬­관용·포용의 종교… 막을 이유 없다/반­전씨로 충분… 범법자 은신처 아니다 구속·기소·수형생활등 사법처리를 눈앞에 둔 노태우 전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불교계는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씨가 사면된 뒤 낙향해서 절에 은둔하는 경우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노전대통령이 법적인 절차를 마치고 사면되는 경우 제2의 백담사행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에 대해 불교종단의 젊은 스님들은 『절은 범죄자의 피난처가 아니다』라며 강한 반대의견을 표하고 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공동의장 지선·청화)·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회장 곽상인)·한국불교청년회(회장 김도각)등은 『원로 스님들의 연희동 위로방문은 불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노씨를 위로하지 말고 참담한 일반신도의 마음을 위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 종정 월하스님은 『노씨내외가 사찰에 은신하기를 원할 경우 세상사람이 어느때고 올 수 있는 곳이 사찰이니만큼 그분들이라고 해서 못오게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불교신자인 노씨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대구로 낙향한다면 고향부근의 사찰이 될 것이라는 추측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특히 대구 팔공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파계사는 동화사와 불과 10㎞밖에 떨어지지 않고 노씨의 가족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어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스님과 불교신자는 노씨의 사법처리 이후 산사행에 찬성하는 쪽이 반대하는 쪽보다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불교계의 주간지 법보신문이 최근 서울·경기지역 스님 1백명과 신자 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에 따르면 노씨의 산사행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48%로,반대 41%보다 조금 높았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사법처리후 노씨의 참회와 자숙을 위해서」가 가장 많은 59.3%였고,다음이 「불교는 관용과 포용의 종교이기 때문에」30.2%,「노씨가 불교신자이기 때문에」5.2% 등이 꼽혔다. 노씨의 산사행에 찬성하는 비율은 스님(45%)보다 신자(50%)가 더 높았다. 반대하는 이유는 「사찰이 범법자의 은신처가 아니기 때문에」 56.6%,「불교이미지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20.4%,「국민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에」 18% 등이었다. 산사행에 반대하는 비율은 스님(41%)과 신자(42%)가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노씨의 산사행에 대해 「잘모르겠다」고 밝힌 응답자 10.5%의 경우 그 이유로 「사태를 좀더 지켜봐야 할 것같다」,「정치에 관심이 없다」 등을 많이 들었다. 응답자들은 이밖에 「노씨가 그렇게 엄청난 도적질을 할 수 있도록 방임한 부인의 책임도 크다」,「산사행은 전씨 하나로 족하다」,「사찰이 더 이상 범법자의 은신처가 돼서는 안된다」,「죄질로 볼 때 용서할 수 는 없지만 부처님 품에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불교신자인 노씨의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받아들여야 한다」,「절에서 마당도 쓸고 참회정진도 시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 노씨의 「초라한 귀가」/김경운 사회부 기자(현장)

    ◎“아직도 반성 못했다” 이웃 주민들 분통 2일 새벽 노태우 전대통령은 지치고 초라한 몰골로 연희동 집으로 돌아왔다. 16시간에 걸친 검찰조사를 마치고 상오 2시47분 연희동 자택에 도착한 노씨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서 내려 정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던 아들 재헌씨에게 안기다시피해 집으로 들어섰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귀가한 하루가 그에게는 5년 동안의 대통령 재임 기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듯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터지는 보도진의 후레시 세례 속에 그의 얼굴은 언뜻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전날 아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보도진을 따돌리느라 진행 방향을 속이며 골목길로 도망치듯 내달리고 카메라를 향해 눈길 한번 맞추지 못하던 노씨를 바라본 연희동 주민들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입을 모았다. 2년9개월 전 노씨가 대통령직을 마치고 따뜻한 이웃으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고 환영했던 주민들이었다. 한 주민은 당시를 초봄의 아침 햇살이 따스할때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번 귀가는 은둔자의 그것이었다.초겨울의 스산함이 귓볼을 할퀴는 시간에 노씨는 누가 볼세라 황급히 들어갔다. 주민들은 노씨가 검찰에서 돌아온 뒤 영양주사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조사에서도 부인으로만 일관했다는데 부인하기도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상오 침묵 속에 휩싸인 노씨집을 지나던 한 시민은 『검찰청사를 나서며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해놓고 부인으로 일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퇴임 9개월 전부터 지금의 연희동 사저가 초라하다며 2억여원의 시예산을 들여 조경 보수공사를 하는 소란을 피우더니 초라한 것은 집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한 주부가 독백처럼 내뱉었다.
  • 우리 정치판 새로 짜야한다(서울논단)

    노태우 전 대통령이 1일 상오 검찰에 출두한다.전직 대통령이 비리로 검찰에 나오기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광복이후 온갖 얼룩으로 점철된 50년의 헌정사에도 이같은 예는 일찍이 없었다. 노전대통령 자신도 『참담했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이같은 전직 대통령을 가진 우리 국민 전체가 더 「참담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한때 『문민정치에로의 디딤돌』『북방외교의 기수』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았던 그의 이름 석자는 이제 혐오와 배신,이중성과 비리의 대명사로 우리의 가슴을 엄습해온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왜 훌륭한,그리고 존경할수 있는 전직 대통령을 가질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헌정사를 되돌아 봐도 하나같이 그들의 뒤끝은 망명,살해,귀양(백담사로 은둔)으로 귀결되었고 이제 노씨는 어쩌면 철장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특히 군사정권의 공통적 특징의 하나로 흔히들 구조적 부패를 들고 있다. 쉽게 권력을 장악한 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돈과 명예를 좌우할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노전대통령의 비리가 하나 하나 공개되면서 그동안 한 시대를 끌어온 정치권의 이면이 드러나고 있다.한마디로 정치적 돈거래의 실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20억원을 받았다』고 실토했다.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말을 하는 것은 때가 있다』며 직답을 회피하고 있으나 항간에는 「1백억원 수수설」이 파다하다. 검찰당국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경위와 내역은 물론 용처까지도 규명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정치판의 돈거래 실상이 보다 선명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노전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고 그에 대한 단죄의 목소리 또한 드높아가고 있다.이같은 분노와 단죄의 아우성뒤에는 또다른 함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이것은 현 정치판에 대한 총체적 거부의 함성이다. 최고 권력은 흡혈귀처럼 재계로부터 돈을 긁어 모으고 그 돈은 다시 이른바 「통치자금」의 이름아래 사복을 채우면서도 또 정치권에 배분되면서 「정치의 이중성」은 춤을 춘다.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급 인사들의 말이 어디까지가 본심이고 어떤 말이 과연 선명한 것인지 종잡을수 없다. 권력과 돈에 정당하게 순치되는 것은 현실정치의 필요악이라고 스스로 변명하면서 부패의 연결고리는 독버섯처럼 만연되어온 것이다. 광복 5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반도체,중화학제품을 위주로 한 수출고 1천억달러를 기록하는 우주항공 최첨단과학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정치판은 아직도 「3김,양김 등 김씨 정치구도」라는 수렵채취경제시대에 살고 있다.이제 정치판을 5년후면 맞을 21세기에 걸맞게 짜야한다.분명 새로운 시대는 문턱에 와있는데 정치판은 언제까지 원시사회에서 헤매고 있을 것인가. 노씨 비리에 대한 추상같은 응징만큼 현 정치판에 대한 거부감도 커져가고 있다.『현 정치판의 몰골들이 싫다』는 저변의 소리를 수렴하는 정치세력만이 내년 4월의 총선에서 승자가 될 것이다.이같은 물갈이를 굳이 「세대교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새 시대에 맞는 새 정치판은 사람을 바꾸어야한다.그것은 1차로 공천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다음은 시민들의 투표권행사를 통해 구현될수 있다.
  • 한·가 경협 아∼미주 번영 가교잇자/김 대통령(김 대통령 여로)

    ◎교민 1천명 환호·박수… 수차례 연설 중단/“한국인 부끄럽던 시대 갔다” 자신감 당부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1박2일동안의 토론토 방문에 이어 19일 상오(한국시간 19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세번째 방문지인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도착,로메오 르블랑 총독내외의 환영을 받으며 공식환영행사와 국빈오찬에 참석하는 등 오타와 일정을 시작했다. ▷국빈오찬◁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19일 낮 총독관저로 르블랑총독을 예방,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눴다. 르블랑총독이 『오타와를 방문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김대통령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민주와 번영의 꽃이 만발한 캐나다를 방문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화답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르블랑총독내외의 안내로 총독관저내 볼룸으로 자리를 옮겨 약 1시간20분동안 오찬을 함께 하며 우의를 다졌다. 르블랑총독은 환영사를 통해 『캐나다·한국 양국이 21세기 희망찬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양국간 실질적인 협력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과 캐나다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양국 국민간의 우정의 역사는 한세기이상 거슬러올라간다』면서 『두 나라는 6·25전쟁에서 혈맹이 되었으며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 협력이 본격화되면서 특별한 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빈오찬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을 비롯한 공식수행원과 최종현 전경련회장,조량호 한·캐나다경제협의회위원장등이 참석했다. ▷공식환영식◁ ○…이에 앞서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상오 총독관저에서 열린 국빈방문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총독관저 입구에서 캐나다측이 제공한 의전마차에 옮겨 타 기마경찰대의 안내를 받으며 본관앞 광장에 마련된 행사장에 입장했다. 김대통령내외가 의전마차에서 내리자 르블랑총독내외가 반갑게 영접했으며 김대통령과 르블랑총독내외는 나란히 사열대에 올라섰다.21발의 예포발사와 국가연주가 끝나자 김대통령은 캐나다 의장대장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한 뒤 르블랑총독과함께 연설대로 이동했다. 김대통령은 르블랑총독의 환영사에 이은 답사에서 『캐나다와 한국 두 나라는 한세기에 걸쳐 쌓아온 두터운 우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두 나라간 긴밀한 협력은 양국의 공동번영은 물론 미주대륙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타와 도착◁ ○…토론토 방문을 마친 김대통령은 19일 상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국제공항에 도착,3일간의 오타와 방문일정에 들어갔다. 신기● 주캐나다대사의 기상영접을 받고 특별기에서 내린 김대통령내외는 리더만 캐나다 의전장의 소개로 대기하고 있던 캐나다측 영접인사들과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교환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들에게 『반갑습니다』라면서 일일이 악수을 나눴다.이날 공항에는 이현식 오타와한인회장내외등 교민대표와 해링턴 한·캐나다친선협회장등이 나와 김대통령의 오타와 도착을 영접했다. ▷토론토 출발◁ ○…김대통령은 17시간의 짧은 토론토 체류도중 교민리셉션,온타리오주 총리접견,만찬 등 바쁜 일정을 마치고 19일 상오 오타와로 떠났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을 출발한 김대통령은 피어슨국제공항에 도착,미리 나와 있던 심경보토론토총영사의 영접을 받으며 서순경한인회장·양용진평통지역회장을 비롯,영사관 직원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어네스토 페 온타리오주 의전장 등 캐나다측 인사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전용기 트랩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 ▷주총리 주최 만찬◁ ○…김대통령은 18일 하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 토론토 룸에서 열린 마이클 해리스 온타리오주 총리 주최 만찬에 참석해 한국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해리스총리는 만찬사에서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부분이 토론토를 중심으로 한 온타리오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캐나다에 대한 한국투자의 80%가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며 지속적인 우호협력증진을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해리스총리가 지난번 주총리선거에서 「상식혁명」을 주장한 사실을 들어 『상식혁명철학에 기초한 해리스총리의 개혁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온타리오가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온타리오주의 번영을 기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인 제임스 게일이 바로 이곳 토론토 출신으로 그는 최초의 한·영사전과 한글판 성경,영문판 한국사를 편찬함으로써 서구세계에 「은둔의 왕국」 한국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서 1백여년에 걸친 한국과 토론토의 깊은 인연을 강조했다. ▷토론토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은 18일 하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 콘서트홀에서 열린 교민리셉션에 참석,『훌륭한 캐나다 국민이 되어달라』고 격려했다. 과거에는 반정부활동이 거센 탓에 역대대통령이 토론토를 찾지 않은 때문인지 이날 리셉션장에는 당초 예상인원보다 많은 1천명가량의 교민이 참석,계속 박수와 환호를 보내 연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으며 김대통령도 시종 상기된 모습. 김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과거 한국사람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제 세계의 누구에게도 떳떳이 한국사람임을 밝힐 수 있는 때가 됐다』고 교민들이 자신감을 가져줄 것을 강조했다. ○국교은사 부인 만나 이날 교민들 가운데는 김대통령의 거제 장목국민학교 재학시절 송차조 교장의 부인 김순애씨(80)가 딸 4명과 함께 참석,김대통령에게 인사했는데 김대통령은 설명을 듣다가 갑자기 『아이구,사모님』이라며 끌어안자 김씨는 아무말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기도. 김씨는 딸들과 함께 지난 80년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이날 김대통령에게 전할 편지를 들고 참석,『김대통령이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 양반(송교장)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회고.
  • 장백현 민간 예인(압록강 2천리:8)

    ◎민족혼 담긴 「함경도 수박춤」 사라질판/예인 김학천옹 와병… 생활고로 은둔 생활/중앙정부 지원금 적어 유·무형 문화재 관리 엄두 못내/한글판 잡지 「장백」…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 장백현에는 문화전반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문화관이 있다.문화예술은 물론 체육과 오락,성인교육활동을 담당해온 장백현문화관은 지난 194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이 문화관은 현안에 92개 촌단위 문화실과 연계되었다.문화실은 대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문화오락활동을 벌여왔다.반달이나 한달을 주기로 여는 노인무도회·장기대회·문예공연·이야기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촌 문화실마다 마치 공통과목과 같은 별도의 활동이 또 있다.어느 촌이든 농악대를 운영하는 것이다.특히 태양촌 농민악대가 유명하다.지난 1989년 길림성 혼강시(장백은 혼강시 관할에 속함) 제2차 농민문예공연에서 1등을 차지한 농악대다.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장백현문화관의 문예보도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장백현문화관은 19 92년부터 3년간 내리 길림성 전체에서 2등 자리에 올라서는 영예를 안았다.기관지로 한족어 위주의 「장백문화보」와 한글판 「장백」잡지를 내고 있다.「장백」은 제5호를 끝으로 마감했다.그 이유는 재정난 때문이었다.국가에서 해마다 주는 16만원의 사업비로는 20명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나면 전화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악대 촌 단위로 운용 장백현문화관장은 조선족 문단에서 꽤나 문명을 날리는 이성태 선생이다.중편소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발표한 이후 여러 문인을 길러냈고 많은 전설과 문화유산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그는 문화관의 어려운 살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았다. 『문화사업은 본래 돈을 들여야 되는 일이 아니겠습네까.그런데 지난달 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 창립기념 조선족예술절 경비로 문화관 수입이 벌써 거덜이 났디요.문화유산 발굴은 커녕 문화재 관리도 어려운 판이야요.그 유명한 민간예인 한분이 병환에 계신줄 알면서도 도움을 못드리고 있디요.한국 같았으면 인간문화재라 해서 생활보장은 될텐데…』 그의 민간예인이라는 말이귀에 번쩍 들어왔다.아니나 다를까 와병 중이라는 민간예인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김학천(64)노인이었다.그는 장백현문화관장을 지낸 동생 김학현(60)선생과 함께 지난 1990년 요령성 단동에서 열린 전국 소수민족문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분이다.그 때의 수상작품은 수박춤이었다.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심사위원들이 며칠 계속된 콩쿠르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수박춤을 구경하던 관객들의 박수에 놀라깨어 침을 흘리면서 춤에 도취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김학천·학현 형제는 울로초를 가지고 미니스커트 모양으로 짧게 엮은 치마만을 팬티위에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수박춤에는 이렇다 할 악기반주가 없다.다만 주연격인 형이 발가벗은 사지를 이리저리 치면서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냈다.그 소리는 바람,우레,비,짐승,새 소리 등 무궁무진했다.동생은 함지박 물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들겨 형의 손바닥 장단을 따라 맞추었다.흥이 한껏 돋아나면 형이 여러 형태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리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손바닥으로 쳤다.이들 일가는 함경북도 단천군에서 지난 1962년 77세로 작고한 아버지 김달순대에 장백현으로 들어왔다.이주지는 14도구 간구자였는데 슬하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아버지가 가보로 여긴 수박춤은 셋째 아들 김학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이미 고인이 된 맏아들은 목청이 나빠 아버지 마음에 들지 못했고 둘째는 조선(한국)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친한테서 전수 받아 그리고 넷째 아들 김학현은 어려서 집을 나와 공부를 하다가 조선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았다.그렇지만 그 핏줄이 그 핏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재질이 뛰어났다.넷째는 공부도 제대로 한터라 1959년 장백현문예공작단(문공단)이 생겨나면서 부단장과 단장을 지내고 장백현문화관장을 끝으로 사회공작(사회생활과 일)을 마무리 했다.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공단은 통화지구에서 유일한 조선족단체여서 현 밖을 자주 나갔디 않았겠수.통화,유화,임강,혼강,휘남 같은 도시에 나가면 극장이 미어졌수다.인근 농촌 조선족들은 찰떡을 해서리 기차를 타고 버스도 타고 와서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으며 관람을 했지 않슴메.도시공연이 끝나면 농촌을 돌았는데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비.그래도 인심이 좋아 동구 밖까지 와서 환대했댔수다.어떤 사람들은 타지로 떠나면 짐을 지고 따라와 같은 공연을 며칠씩 보기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디우』 김학현 선생과 함께 그의 형님 김학천 노인을 찾아나섰다.집은 장백현 14도구진에 있었으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늙은 양주가 더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들어가 과수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했다.차가 더 기어올라갈 수가 없어서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포수막을 닮은 귀틀집이 보였다.좁은 마당에 배추며 부추가 자랐다.그러나 지난해 옮겨심었다는 사과나무는 몸살에 걸려 아직 사과 한톨도 매달고 있지 않았다. ○올로초 치마입고 춤춰 그 집에서 나오던 김학천 노인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나이에 비해 너무 겉늙었으려니와 허리가 잔뜩 굽어 1m67㎝라는 키가 1m20㎝도 안되어 보였다.얼굴의 피부는 소나무껍질 같이 주름 투성이었고 러닝 밖으로 드러난 살결이 무척이나 검었다.설상가상으로 근육위축병에 걸려 손발이 쪼그라 들었다.목불인견의 몰골 그것이었다. 노인은 윗옷을 훌훌 벗었다.그리고 벽에 걸린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모처럼 찾아온 나그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동생 김학현선생도 따라서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노인은 손바닥으로 앙상한 몸골을 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고 앙천대소 하기도 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로애락을 연출했다.인간의 마지막 절규로 들려왔다.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어렸다.초점을 잃은 노인의 동공이 풀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는 허공을 바라다 보았다.
  • 화합·친화력 돋보이는 「킹메이커」/민자당 김윤환 대표의 정치역정

    ◎정치적 격변기마다 「조정능력」 발휘/5·6공 정권교체때 권력이양 담당/4선의원에 정무장관 3번·집권당 총장­총무 두차례. 「허주」(빈배­김윤환 대표위원의 아호)가 돛을 올렸다.집권 민자당을 관리하는 대표위원으로서 정국운영의 핵심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김대표는 10년 가까이 그에게 따라 다니던 「중진급」이라는 꼬리표를 뗐다.당 대표급으로 부상한 것이다. 「화합의 달인」「조정의 명수」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는 친화력 있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그래서 산적한 민자당의 현안,즉 소속 의원들의 동요를 막고 대화합의 정치를 지휘해 내년 총선에 승리해야 하는 임무가 일단 김대표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대표위원 기용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가 정치적 격변기에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5공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후보의 「6·29선언」이 나왔다.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5·6공 정권교체기 권력이양의 역할을 맡았다.또 민정당 원내총무 때는 「5공청산」과 「3당합당」의 기획에 참여했다.「대세론」으로 신민주계를 이끌며 「김영삼대통령」을 탄생시킨 주역의 한사람이기도 하다.따라서 「정치설계사」로서의 그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게도 한다. 63세인 김대표의 정치역정은 큰 굴절 없이 화려하게 이어졌다.79년 조선일보 편집국장대리로 재직하다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11·13·14대에 당선된 4선의원이다.5공시절에는 문공부 차관,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6공정부와 문민정부에서는 정무장관만도 3번 지냈고,민정당과 민자당에서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각각 2번씩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현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등 일본 정계인사들과도 깊숙한 친분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민정부 출범후 사정과 개혁바람이 몰아칠 때 한때 일본과 유럽 등지를 유랑하는 등 은둔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또 구여권 인물,반개혁 이미지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집권당 대표위원으로서 당의 화합과 개인적인 이미지 구축에 나설 것이다.아마 그의 개인적인 과제는 「TK(대구·경북)」의 맹주라는 지역적 한계,당내 계파들의 견제,대표위원이라는 직책상 권한의 한계 등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는 서초동 자택에서 부인 이절자 여사(55),둘째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맏딸은 출가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미,우편폭탄 테러범 「킬고어」 지목

    ◎76년 교도소 탈출뒤 잠적한 폭탄전문가/FBI “수범 비슷” 잠정결론… 수사 활기 지난 17년동안 투명인간같은 우편폭탄 테러 활동으로 미국의 공권력을 비웃어 온 유너바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떠올랐다. 유너바머(Unabomber)란 주로 폭탄테러대상이 된 「대학」과 「항공산업」의 머릿글자를 따서 수사팀이 붙인 이름.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있는 미연방수사국(FBI)유너바머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8년 이후 사제폭탄을 우편으로 발송,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유너바머가 지난 76년 교도소를 탈주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폭탄전문가 제임스 윌리엄 킬고어(48)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FBI에 따르면 킬고어는 70년대 중반 미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신문재벌의 상속녀 페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주도한 자유공동전선(SLA)의 일원.허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78년 감옥에서 도망친 뒤 지금껏 행적이 오리무중인 폭발물 전문가이다.탈주시기와 첫 범행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비롯,허스트 사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존사회체제에 불만이 많은 이상주의자라는 점,그리고 폭탄발송에 사용한 나무상자나 목재폭탄 등과 관련있는 오리건주의 목재중개상 아들 출신이라는 점 등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 FBI는 그동안 우편폭탄 발송지역이 주로 새크라멘토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북부지역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인근 오리건 출신인 킬고어가 미서부지역 일원에 은둔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8년 첫 폭파사건을 시작으로 올들어서는 지난 4월 새크라멘토의 목재회사 간부를 폭사시킨 것까지 16차례나 유너바머 관련 사건이 발생했지만 FBI는 정확치 않은 몽타주만을 갖고 있을 뿐 아무 단서를 찾지 못했다.지난 6월에는 LA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를 폭파하겠다는 위협으로 미전역을 긴장시킨 바있다.
  • 김 대통령 시카고 외교협 연설 요지

    이 도시와 한국과의 인연은 멀리 1백여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1893년 막 문호를 개방한 한국은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 최초의 세계박람회참가단을 파견하였습니다.시카고는 이 「은둔왕국」의 손님들에게 서구의 산업과 문물을 본격적으로 접할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오늘날 서울과 시카고간에는 직항로가 열리고 엄청난 규모의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있습니다.이러한 시카고를 방문하여 각계 지도자 여러분에게 우리 두 나라간의 우정과 협력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열한번째의 나라로 발돋움했습니다.한국은 미국의 여섯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며 네번째로 큰 곡물시장입니다.올해 양국간 교역규모는 5백억달러수준에 이를 것이며 21세기초에는 1천억달러에 달할 전망입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한국정부는 시장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농업부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시장을 개방하는 단안을 내려 세계무역기구(WTO)의 성공적 출범에 기여했습니다.지난해부터는 세계화정책을 통해 나라 전분야에 걸친 과감한 개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는 또한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조처를 취하고 있습니다.현재 2개의 외국인전용공단이 건설중에 있으며 외국인투자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되고 있습니다.한국은 대외투자도 대폭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투자도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투자분야도 전자·통신·기계·석유화학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요기업은 투자,기술협력,전략적 제휴등을 통해 미국기업과 협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이제 미국과 한국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성숙한 동반자로 도약한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은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지역」입니다.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한·미간의 동반협력은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져야 합니다.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할 수 있는 중간적 위치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반도는 동서진영의 대결장으로부터 아시아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지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두 나라가 다음의 세가지 방향에서 아·태 번영을 위한 협력을 증진시켜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째는 지속적인 「자유무역」의 발전입니다.전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역동적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이었습니다.자유무역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빈곤을 퇴치하여 공산주의의 위협을 물리치는 힘이 되었습니다.앞으로도 이 지역 국가들이 번영에 이르는 지름길은 바로 자유무역주의원칙을 견지하는 데 있습니다.모든 역내 국가는 이제 자유무역체제가 공정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우리 두 나라는 응분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번영의 확산」입니다.오늘의 심각한 세계문제의 하나는 바로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한국은 그동안 발전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후발개발도상국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아·태지역의 선진국들은 개도국들과 자본과 기술·정보와 시장을 적극적으로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상호보완협력의 증진」입니다.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서로 경제수준과 구조가 상이할 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다양합니다.한국은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중국·아세안·베트남 등 역내 국가와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생산능력이 결합된다면 더 넓은 가능성과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한국은 두 나라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공동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산업기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두 나라 산업계는 호혜적인 기술협력과 산업협력을 더욱 증진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번 미국 방문은 한·미간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아·태지역의 번영을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교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카고외교협·미 중부위원회/국제이해 증진 비영리 초당기관­시카고협/미 130개 다국적기업 경영진 참여­미 중부위 김영삼 대통령을 초청한 시카고외교협회와 미국중부위원회는 미국의 여론형성과 대외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기관이다. 포드·닉슨·카터·레이건·부시대통령 등 미국의 역대대통령은 물론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92년),바웬사 폴란드대통령(91년),대처 전영국총리(91년),옐친 러시아대통령(89년),콜 독일총리(86년) 등 세계적 정치지도자가 연사로 초청됐다. 1922년 창립된 시카고외교협회는 국제관계 이해증진을 위한 비영리 초당적 기관으로 냉전체제 붕괴 이후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또 67년 창립된 미국중부위원회는 중서부지역에 소재한 1백30여개 다국적기업의 고위경영진으로 구성된 비영리기관이다. 국제관계는 물론 무역과 투자분야에 있어 미국및 각국정부의 고위관리와 회원간 의견교환의 장을 마련해주고 회원상호간의 국제경영활동증진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 북 전부총리 김달현 “끝없는 추락”/위상 급전직하 어디까지

    ◎지방공장지배인서 “또 좌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북한의 전 정무원부총리 김달현의 요즈음 처지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말도 없을 듯하다. 지난 93년말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된 것으로 알려진 김달현 전부총리가 최근 이 자리마저 내놓았다는 소식이다.이는 최근 북한을 다녀온 조총련계 인사를 통해 정부당국이 입수한 첩보이다. 그는 지난 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6차회의를 앞두고 부총리겸 국가계획위원장직을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친손자 홍석형에게 내준 바 있다.당시 북한당국은 김의 「좌천」배경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으나 제3차 7개년계획의 실패에 따른 문책인사였다는 것이 정설이었다.김정일을 대신해 측근인 그가 「속죄양」으로 선택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시대에는 그의 화려한 재기가 예견됐었다.그러나 이같은 예측은 철저히 빗나갔다.김달현은 지난해 김일성 장례식 때 권력서열 1백39위라는 초라한 위상으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 아예 자취를 감췄다.물론 김의 이같은 장기은둔이 그가 권력무대에서 완전히 숙청됐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유력하다.북한체제에서도 한동안 「물 먹은」 뒤 슬그머니 재부상하는 사례가 없지 않은데다 그가 김일성부자의 친인척이라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이번에 또 다시 견책된 게 사실이라면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에서 군 등 강경파의 발언권이 그 만큼 강해지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김이 그동안 김정일의 신임을 바탕으로 비교적 온건 개방적 성향을 보였던 인물인 탓이다.
  • 미의 남­북한 등거리정책 위험/릴리 전주한미대사 NYT지 기고

    ◎북,경수로 한국부담 늘리기 “포커게임”/「북 회유 위한 한국모욕」 미에 도움안돼 제임스 릴리 전주한 미국대사는 26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북한은 경수로지원문제등과 관련,한국의 비용부담이 많아지도록 포커게임의 판돈을 올리고 있다고 말하고 미국정부는 남북한간 등거리행동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릴리 전대사의 「한국의 포커게임」이라는 제목의 칼럼내용이다. 북한은 군사력이라는 카드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거래에서 계속 공세를 취하는 교묘한 솜씨를 과시해오고 있다. 북한은 물론 핵개발프로그램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그러나 그 대가로 거대한 이익을 얻었다.그리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쟁위협을 통해 북한은 미국정부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포기하도록 설득시켰다.북한은 또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요구한 핵폐기물시설에 대한 이른바 특별사찰도 5년간 유예하는 성과도 얻어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욕망은더욱 커지고 있다.북한은 한국에 종속돼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수로가 한국에 의해 건설되면 핵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이 한국의 비용부담이 커지도록 계속 판돈을 높이는 포커게임에 스스로 말려들어서는 안된다.그러나 미국정부는 한반도문제에 한국도 문제가 있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러한 게임을 조장했다.미 국무부는 한국이 김일성 사망에 대해 조문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을 모욕했다는 듯한 인상을 은근히 심어주었다.그 결과 북한이 한국정부에 대해 조문거부에 따른 모욕을 사과하도록 요구하는 기괴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국정부는 남북한간의 균형을 이루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남북한은 도덕적으로 같지 않다.누가 한국전쟁을 도발했는가,어느쪽이 은둔의 왕국인가.한국의 놀라운 발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한국에는 언론의 자유와 진정한 민주선거,눈부신 경제발전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민에게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입장이 못된다.더욱이 미국은 한국에 대해 공동의 이익과 가치,안보조약을 공약하고 있다.그러므로 북한을 회유하고 한국을 모욕하는 것은 한·미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우리는 유일한 대안은 전쟁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결점 많은 클린턴 행정부의 핵합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북한은 위험하지만 우세하지는 않다.진정한 대안은 보다 나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나는 북한이 하여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평양 당국자들에게 얘기했다.첫째는 가능한 한 빨리 전면적인 핵사찰을 허용하는 일이다.두번째는 한국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부근에 있는 군사력을 상호감축하는 것이다.세번째는 핫라인을 설치하고 서로 군사훈련을 알려주는등 남북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한반도통일을 위한 대화를 재개하는 일이다.지난 1991년의 남북한 화해·협력합의는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한 바람직한 토대가 될 것이다. 북한이 만약 미국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양국간의 무역및 문화교류는 활발할 것이다.북한은 미국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그러나 한국을 계속 격하시키고 미국 협상대표들을 업신여기면 핵합의와 이행노력은 심각한 위험을 맞게 될 것이다.
  • 파리에서 본 한국의 「세계화」/피에르 리굴로(해외기고)

    ◎코리아! 세계로 문을 열다/자율적 창조적 개방적 역사를 위한 도전 솔직히 말해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에 대한 개념을 프랑스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모두 대통령선거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여론조사를 한다 해도 『세계화요,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2일 프랑스를 공식방문할 때 김영삼대통령은 프랑스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세계화에 대해 틀림없이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세계화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하자는 새로운 발전개념이면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우주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여기서 우리가 더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그리고 현실에 비추어 프랑스인은 세계화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느낄지라도 세계화가 지향하는 모든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프랑스의 혁명은 결국 인류의 평등과 박애를 선언하고 있으며 프랑스인의 정치철학은 보편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폴 발레리가 1차대전의결과에 대해 고찰했듯이 프랑스인은 자신과 이웃국가들의 독립성을 체득하고 있다. 발레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의명분체계가 지구에 널리 퍼지면서 동요가 일어날 때는 진실만이 반향을 불러일으킨다.한정된 문제점은 더이상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조로운 역사는 진동하는 교향악 같은 역사에 자리를 물려주지 않으면 안된다.발레리가 『장엄함과 허울,그리고 대중성 등이 점점더 현실과는 다른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의 통합은 프랑스가 자신들만의 영향권으로 축소되는 것도 아니고,프랑스의 일체성이 다른 나라 사람과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더욱이 지중해 남쪽에서 몰려오는 많은 이민자와 베를린장벽의 붕괴,지구 곳곳에서 생활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자각 등으로 인해 모두 세계화에 대해 들을 준비가 돼 있다. 인식은 부족하지만 프랑스인은 세계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것은 서울과 파리에서 아주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것이다.프랑스는 다른 나라 국민과 헤아릴 수 없고 때로는 격렬한 교류를 통해 이뤄진 역사적 유산과 보편주의적 정치철학을 갖고 있다.현재의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건설과 대량이민의 관리및 국제기구와 법안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도전과 망설임으로 아주 작은 폭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결국 이런 모든 사실로 볼 때 프랑스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숙고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도 프랑스는 세계화를 생각지도 않고 엄두도 내지 않고 있다.드물지만 몇몇의 선각자만이 자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이런 프랑스와는 대조적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오랫동안 국제교류에서 고립돼 「은둔의 나라」라고 불렸고 문화와 국민적인 일체성 등에 자부심을 느껴온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로 문을 열었다.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몇주 전보다 발전된 수준으로 나라를 끌어올리기 위해 경제·문화·예술·스포츠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문을 열 것을 촉구한 적이 있다.『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좁은 국경에 한정돼 사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협의로는 외국시장 공략에서 더 많은 효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고객으로부터 좋은 인정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17세기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정복하려거든 장악하려는 대상과 유사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그러나 세계화정책은 그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세계화는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모습으로 남고자 하는 것,바로 그것이다.종래의 관습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이면서 외부에는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그리고 다른 나라의 관습과 문화유산및 언어에 대한 보다 주의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더욱 자신만만하고 창조적일 수 있다.세계화 속에서 와해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것도 잘 지켜야 한다. 세계화에는 더 경쟁적이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목적도 포함돼 있다.세계화는 경제의 현대화뿐 아니라 문화와 정치생활의 혁신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지의 차원으로 한국을 새로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적·공리주의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또 민족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도 않는 만큼 유토피아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세계화를 말하면서 프랑스 최고지성인들의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프랑스의 지성인 파스칼 브뤼크네는 「개방」 또는 「폐쇄」 같은 단순대립논리를 거부하면서 「침투성」을 가질 것을 제의한 바 있다.침투성은 폐쇄와 호기심 사이에 적절한 간격을 유지해 창작자에게는 충격을 주고 불협화음도 감미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약력 ▲1944년생 ▲파리 제4대학(소르본대학) 철학박사 ▲프랑스 사회사대학교 교수 ▲91·94년 한국방문
  • 「김영삼 정부의 성취」 서울의 외국특파원 평가

    ◎사라진 시위·최루탄… 세계화 “기대”/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케이신문 지국장/「경제우위·탈정치」 사회기류 주시해야 얼마전 서울에 10년 이상 주재한 일본 기업인의 송별회가 있었다.그때 그는 한국생활을 되돌아보는 인사말에서 한국사회의 최대 변화는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 1월 오랫동안 계속돼 왔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불편했던 「야간통행금지 시대」를 떠올리지 않으며 훌륭한 역사적 정책결정이었던 「통금해제」를 평가하지 않는다.그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로부터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사라진 것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평가하여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정권 출범후 2년간을 돌이켜 볼때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은 틀림 없는 한국사회의 위대한 변화다.그러한 변화는 문민정권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확실히 김 정권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김 대통령의 그러한 문민정부 성과는 어려운 과도기에민주화를 정착시킨 노태우 정권의 노력 연장선 위에 있다.따라서 문민정부라 해도 과거를 부정만 해서는 안된다.역사에는 정직하지않으면 안된다. 학생시위와 최루탄의 소멸로 상징되는 김 대통령 정권의 2년은 한국 현대정치사상 국내 정치가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그때까지 한국의 대외 이미지는 학생시위와 정치불안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반정부운동이 없어졌다.외국인의 눈에는 가장 감명 깊은 변화다. 그러나 국민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요구 사항이 많다.정부의 훌륭한 업적을 강조·자랑하고 싶어도 국민들은 「당연한 일」 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며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면서 불만을 말한다.국민들에게는 정치안정이나 개혁이라는 업적은 이미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예상 이상의 경제성장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김 대통령은 이때문에 또 다른 업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최근 김 대통령 정권의 정치스타일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그것은 민자당의 당명 변경 중지와 대표지명이다.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당명까지 모집하다가 갑자기 당 이름의 변경을 중지했다.국민들에 대한 공식 사과·헤명도 없었다고 생각된다.새로운 대표자 임명도 당대회 때까지 비밀이었다.김종필씨가 탈당, 신당을 선언하며 지적한 「독선·독단·충격에 의한 정치스타일」 이라는 비판은 당연하다. 김 대통령은 인품이 훌륭해 득을 보고 있으나 그의 정치스타일은 「선의의 지도자 한사람 정치」라 할 수 있다.한국정치는 역시 지도자 한사람의 정치가 아니면 안되는가. 그러나 문민정부의 업적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정치의 비중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한국도 경제 규모가 커지며 근본적으로 국가를 움직이고 있는 힘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로 옮겨지고 있다. 김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은 한국사회를 탈정치화의 길로 이끈 것이 될지 모른다.학생시위의 소멸로 학생들은 이미 탈정치화 되고 있다.6월의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한국은 「정치의 계절」을 맞지만 국민들은 사실 탈정치화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드루 스틸 영 로이터통신 지국장/정치안정 바탕,통일에 과감한 도전을 서울 중심가를 조금만 걸어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변화를 곧 알수 있다.그러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앞으로 하여야 할 주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시청을 출발하면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그것은 김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기업안정의 상징적 조형물이다.김 대통령의 등장으로 실현된 30년만의 문민정권 탄생은 한국의 군사통치와 권위주의의 어두운 시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졌음을 세계에 알리는 분명한 신호였다.공정한 자유선거를 통해 권력에 오른 그의 길은 번영하는 민주국가로서의 한국의 성공적인 등장을 더욱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서울시청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사들이 있다.언론은 김 대통령의 부정부패 추방운동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자유를 누려왔다.세계의 언론감시단체들도 한국의 언론은 자유롭고 민주적이라고 선언했다.물론 한국의 언론자유가 완전히 장미빛만은 아니다.군사통치시대에 만들어진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낡은 법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김 대통령도 폐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한 법률은 김 대통령 만큼 훌륭하지 못한 미래의 지도자가 등장할 경우 언론제약으로 악용될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 김 대통령은 개방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개방화는 아직 초기단계이다.서울에는 세계 주요 수도보다 여전히 외국인이 적다.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은둔의 나라」 시대는 지났으며 한국은 새로운 자화상을 만들고 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 옐친 러시아대통령,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강택민 중국국가주석 등 세계적 지도자들과 함께 국제무대를 활보하며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 놓았다.한국의 다음 목표는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다.그러한 목표의 실현도 그리 멀지않은듯 하다.그러나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관료주의와 한국사회의 복잡함에 당혹할 때가 있다.김 대통령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혁명이 공허한 슬로건의 의미 없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지않으면 안된다. 세종로 끝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여전히 경복궁과 청와대의 시야를 막고 있다.그러나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인 국립박물관도 많은 논란 끝에 김 대통령이 철거를 결정함에 따라 멀지않아 사라질 것이다.그 결정은 일본및 「빅 브라더」 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점증하는 자신감과 함께 김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독소를 제거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 뒤에는 그러나 북한의 잠재적 침략가능성에 대비한 장벽이 있는등 무거운 남·북대결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김 대통령은 수십년간 계속돼온 북한의 불신과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그런 가운데 김 대통령은 폭발성을 갖고 있는 미지의 인물인 김정일과 조만간 거래하지 않으면 안된다.김 대통령은 한국을 안정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키고 있지만 과감한 통일에의 도전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그의 성공적인 대통령상은 심각하게 평가절하 될 것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 「월드스타」강수연/「돌아온 명배우」명계남/연극무대서 자존심 대결

    ◎강/「메디아」서 복수의 화신역 훌륭히 소화/명/10년만에 무대 컴백… 「콘트라…」 주연 맡아 「월드스타」와 「돌아온 명배우」가 동숭동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베니스영화제(87년)와 모스크바영화제(89년) 여주주연상을 수상,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화배우 강수연씨(30)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전업배우로 돌아와 의욕적인 무대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계남씨(43).「월드 스타」와 「명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들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3일 막을 올린 극단 무천의 「메디아」(김윤미 작,김아라 연출)와 극단 완자무늬가 소극장 학전에서 4일 무대에 올린 「콘트라베이스」(파트릭 쥐스킨트 작,김태수 연출)에 각각 주인공으로 출연중이다. 두 작품 모두 연극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정통극으로 상업적 색채가 강한 감각적 연극들이 득세하는 요즘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메디아」는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유리피데스의 대표작 「메디아」와 독일의 현대작가 하이네 뮐러의 삼부 단막극 「황폐한 강변,메디아 소재,아르고 선원들이 있는 풍경」을 토대로 연출가 김아라씨와 작가 김윤미씨가 재창작한 작품.콜키스의 공주 메디아는 사랑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살인과 계략을 서슴지 않지만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자 그 복수로 남편의 연인은 물론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 살해한다.유리피데스는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파헤쳐 인간의 숙명적 비극을 그렸지만 이번 연극에선 생산력과 파괴력의 대비를 통해 여성의 무한한 생명력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이 연극에서 강수연씨는 발성과 호흡에 다소 문제가 보이지만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번득이며 질투와 증오에 불타는 복수의 화신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극의 전개에 맞춰 무대에서 두드리는 현대 음악가 임동창씨의 피아노 연주,기억속의 풍경을 보는듯한 독특한 무대도 볼만한 이 연극은 오는 5월 덴마크 프렌자페스티벌에 참가한다. 한편 독일의 은둔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의 대표작인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에서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출연,세상에 대한 환멸과 절망감을 지닌채 살아가는 소시민의연약한 모습을 연기하는 명계남씨(43)는 연세대 연희극예술연구회 출신의 배우. 73년 연극활동을 시작,극단 창고극장·사조·세실·사계 등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85년 연극활동을 중단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이벤트 기획자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지난 93년 무대로 돌아왔다.연극 「북회귀선」「불좀 꺼 주세요」외에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 그가 정말 연극다운 연극으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일념으로 30년 지기인 김태수씨와 손잡고 만든 것이 이번 작품이다. 복수의 화신으로 질투와 분노로 절규하는 강수연,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나타나 인생의 의미를 묻는 명계남.이들의 열정이 신춘 연극계를 뜨겁게 달군다.
  • 대하소설 「토지」 완결 박경리씨(올해의 인물:2)

    ◎한작품 몰입 26년… “이제 뭘 또 씁니까” 「은둔의 작가」로까지 불리면서 26년간에 걸친 고독한 대장정끝에 지난 8월 대하소설 「토지」를 완결한 작가 박경리씨(68).원고지 약 4만장분량에 등장인물만도 4백여명에 이르는 「토지」는 우리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역사의 증언이다.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은 칩거속에서 「토지」를 쓴 시간은 박씨의 한풀이 세월이기도 했다. 「토지」속의 주인공들처럼 의연하게 살아왔지만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던날 『선생님의 「토지」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한 졸업생의 말엔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토지」완간 기념잔치가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서 열릴 때 「너무 시선을 받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고 겸연쩍어한 박씨.「현대문학」에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69년부터 단편소설 한편도 따로 쓰지않고 이 작품에만 치열하게 매달려왔다.『이 정도면 됐지 무얼 또 씁니까』라고 웃으면서도 『일본이 저질러온 과거사들을 객관적으로 알리기위해 「일본론」만큼은 꼭 써내야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 김승연·최원석회장도 구속 등 불운했던 한해(’94 경제핫이슈:3)

    ◎재벌총수 풍파/정주영회장 경영퇴진·김우중회장 사법처리 올해 액땜을 톡톡히 한 재벌 총수가 많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한 때는 정권과 너무 밀착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잘 나갔던 총수들이다.최회장을 제외한 3명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 해에도 「춥게」 보냈다. 정명예회장은 지난 7월 선거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사법처리가 마무리됐다.이에 앞서 5월엔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하고 공식 활동을 자제했다.은둔의 해였다. 김우중 회장도 고생이 많았다.원전공사와 관련,안병화 전한전 사장에게 뇌물을 주어 지난 6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김대중씨가 이사장인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지원설,이로 인한 계열사 세무조사설 등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다. 작년에 구속됐다가 연초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회장은 지난 10월 경영에 복귀할 때까지 해외에서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최회장 역시 한전 뇌물사건에 연루된 데다성수대교 붕괴사고까지 겹쳐 검찰을 자주 들락거렸다.
  • 오늘 김일성 사망 100일 추모제/김정일 공석등장 여부 주목

    ◎카리스마 높이려 의도적 “잠재통치” 추정/“지도력 부족 등 권력장악에 이상” 풀이도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이후 1백일이 다 되도록 공식후계자 김정일의 행적은 여전히 짙은 안개속에 파묻힌 느낌이다. 당총비서와 국가주석등 핵심요직의 승계 절차를 밟기는 커녕 지난 7월20일 김일성 추도대회이후 공식석상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탓이다.그는 추도대회 당일까지만 해도 비교적 활발한 공식활동을 한 바 있다.7월19일의 영결식과 그 다음날의 중앙추도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는등 장례서열 1위로서의 당연한 역할뿐만 아니라 외빈을 잇따라 접견하는등 최고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추도대회가 있었던 20일 일부 조문인사들에 대한 「위로연」참석을 끝으로 공개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이후 열린 ▲「조국해방전쟁 기념일」(휴전일,7·27)▲정권수립기념일(9·9)▲생모 김정숙 45주기 추도식(9·21)▲노동당 창당기념일(10·10)▲단군릉 개건준공식(10·11)등 북한의 큰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김은은둔중에도 막후에서 몇가지 대내외 활동을 수행했다.그에 대한 북한 선전매체들의 우상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군인·학생등 일부 주민들에게 친필서한 형태의 감사문을 전한다든가 외국 국가원수및 당지도자들과 전문을 교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특히 과거 북한의 「혈맹」이었던 중국이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명의로 김정일에게 9·9절 축전을 보낸 사실은 김을 명목상이든 실제적이든 최고권력자로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의 은둔이 김일성에 대한 「1백일 애도기간」설정에 따른 시한부적 성격이므로 그의 1인자 등극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나아가 이같은 막후 통치가 카리스마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즉,대중연설과 건강에 문제가 있는 김이 굳이 추도기간중에 전면에 나서기보다 막후조종을 하는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독재권력의 속성상 1인자 자리의 장기유고 상태는 김의 지도력 부족이나 치열한 물밑 권력투쟁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김일성 사후 김이 측근 인사들을 대거 「전진배치」하는 식으로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그의 권력장악력에 대한 이상신호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이다.때문에 김정일체제의 행로는 15일 예정된 김일성 1백일추모제에 그가 어떤 위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환경문제와 문학의 대응/문덕수(일요일 아침에)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동해에 갖다 버릴때 그린피스(Greenpeace)라는 국제환경운동단체가 소형 보트를 타고 거친 파도를 헤쳐 접근·감시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아마도 사생결단의 전투 같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환경공해의 방지와 자연보호는 이제 환경청이나 몇몇 민간의 환경운동단체에 맡기고 대안의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늘어나는 공단의 매연과 폐기물,자동차배기 가스의 폭발적 증가,줄어들지 않는 가정의 오물과 음식 찌꺼기,거리와 산야를 덮어가고 있는 각종 쓰레기.이러한 환경오염의 독소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따라서 환경파괴의 주범은 산업문명 그 자체라기 보다 다름 아닌 바로 「인간 자신」인 것이다.그러므로 고도산업문명의 풍요 속에 사는 우리 자신은 전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도덕적·법적 의무를 떠맡게 되었다. 이제 삶의 현실적 환경으로서의 「자연」은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바싹 다가왔다.아름다움의 대상,은둔 휴식처,요정이 노래하고 뛰노는 신성의 낙원이라는 낭만적 자연관이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인간이 자연을 파괴할 때,자연은 그 몇십배로 인간에게 보복하며,사람이 나무와 숲을 학대하고 강물을 죽일 때 그 사람도 자연으로부터 살해당한다는 무자비한 보복의 원리를 일깨워주고 있다.자연은 관용·안식·고향·영원·기쁨의 근원이라는 신의 표정을 버리고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험악한 악마의 표정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인간의 「정신 환경」에 대한 공해 문제이다.인간의 내면과 인간관계의 상황으로 표출되는 정신환경의 공해는 항상 우리가 말하듯 도덕적 니힐리즘과 인간성 상실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난다.정의·양심·인륜·관용·겸손·사랑·지성·중용등 이러한 인간의 모든 품성이 제대로 성장·보전되지 못하고 훼손·파괴되고 있는,반인간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데 그 가장 중요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인간 스스로가 주범이다.자연만 악마의 표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도 악마의 모습으로 바뀌고있는 것이다. 오늘날 환경문제의 이러한 심각성은 문학과 예술,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과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최근 미국에서 내추어 라이팅(nature writing)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 일어나고,새로운 문학 장르가 형성되고 있음은 바로 이같은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다.「자연」이 인간의 외적 환경이면서 인간의 내면성 즉,인간성의 환경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인문중심의 문학에서 자연 중심의 문학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문학과 환경의 문제는 이제 중요한 문학예술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최근 미국에서는 「미국의 문학·환경연구회」(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Literature and Environment in U·S)라는 단체가 구성되었고,금년 5월에는 「일본의 문학·환경연구회」가 발족했다.이 두 단체는 최근 새로운 문학 조류로 자리잡고 있는 「자연파 문학」을 중심으로 문학과 환경의 문제연구를 중심 테마로 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경우에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금년 7월 강원도 문막에서 개최된 한국현대시인협회의 세미나의 주제는 「현대시와 녹색시학」이었는데 이 주제 역시 문학과 환경문제를 작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다룬 것이다.이 세미나의 폐회식 때에는 「녹색시학 선언」을 세미나에 참석한 전체 시인들의 결의 형식으로 발표했다. 한국에는 민간환경운동단체들이 꽤 있다.그 중의 「환경운동연합」은 매스컴을 통해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단체인데 이 단체에서는 9월26일부터 12월12일까지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관에서 「환경과 문학」을 주제로 제4기 환경강좌를 실시한다. 이제 환경오염 방지와 자연보호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는 문단에까지 불붙기 시작했다.그것은 정치·교육·경제·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서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보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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