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로스쿨에 바라는 것/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하버드 법대가 회계학과 통계학 전임 석좌교수를 임명했다는 소식이다. 요즘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각 학교마다 그 준비를 위해 부산한 와중에 신선한 뉴스이다. 미국의 법대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여기가 법대인지 경제학과인지 경영대학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미국의 법학교육과 연구, 심지어는 실무도 철저한 실증적 연구와 자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흔히 미국의 로스쿨이 우리 식의 법대에 실무교육을 가미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큰 오해이다. 오히려 철저한 이론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학위가 없으면 일급 로스쿨의 교수가 되기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교수들뿐 아니라 학생들 중에도 경제학 박사들이 수두룩하다.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면 논문작성 요령에 관한 작은 책자를 하나 받게 된다. 남의 지적재산을 활용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자료인데 이 책자의 서두에 인상적인 말이 쓰여있다. 오래 전에 학교의 교수진은 학교가 실무교육을 어느 정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길고도 깊은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학교는 이론교육에 치중해야 하고 따라서, 학술논문의 작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다.
교수들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론에 강하고 창의적인 졸업생이 실무에서도 크게 성공하더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사법연수원 교육의 일부를 로스쿨에서 한다는 개념으로는 서구의 로스쿨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로스쿨의 도입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열린 장을 만드는 데서도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버드 법대의 현 학장은 여성이며, 스탠퍼드 법대는 그보다 먼저 여학장을 배출했다. 클린턴 부부와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회장도 참석하는 동창회를 주재하는 예일 법대의 학장은 코리아에서 온 망명객의 2세인 소수민족 출신 학자이다.
세계 40개국에서 온 외국학생들, 의학박사, 컴퓨터엔지니어, 걸프전 참전 해병대 장교, 전미 태권도챔피언, 야전 지휘관으로 200명 가까운 군인들의 생명을 책임지던 예비역 여군 대위, 목사, 아프리카와 남미의 20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전직 유엔공무원…. 이런 급우들과 함께하는 수업에서는 책과 교수님으로부터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또, 톰 크루즈가 ‘어 퓨 굿맨’에서 학교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 해서 학장의 감사패를 받으러 오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장관이 경기관총을 코트 안에 감춘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모교를 방문하고 자신이 은사와 함께 설계해서 창설한 OPEC에 관해 특강을 한다. 우리에게는 언제 이런 것들이 가능해질까.
예일 법대의 고홍주 학장은 지난 7월1일의 학장 취임사에서 세계화에의 부응, 법조에의 지원과 기여, 공익활동의 강조, 교수진의 혁신 등 네 가지를 미래의 역점 사업으로 제시하였다. 하버드 법대의 로버트 클락 전 학장도 학장으로서의 가장 어려운 임무는 세계화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내외의 수요에 맞춘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그를 담당할 교수요원을 양성, 물색해서 영입하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의 로스쿨 준비에도 유념해야 할 말들이다. 우리가 미국의 로스쿨과 같은 곳을 조만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은 전임교원의 수나 시설, 실무경험을 가진 교수의 비중 같은 지표들로만 발전될 수 있는 곳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의 로스쿨 논의는 양적인 측면에 편중되어 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교수들이 영입되는 것은 좋으나 학술논문 작성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도외시한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로스쿨은 세계화를 전신으로 느끼면서, 생각하고, 다양성의 문화를 흡수해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하고 창조적인 해법을 고안해 낼 줄 아는 인재들을 배출해 내는 곳이어야 한다.
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