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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봉길함 진수 “사거리 1000km 순항미사일 탑재” 북한 전역 공격 가능

    윤봉길함 진수 “사거리 1000km 순항미사일 탑재” 북한 전역 공격 가능

    윤봉길함 진수 “사거리 1000km 순항미사일 탑재” 북한 전역 공격 가능 국산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214급(1800t급) 잠수함인 ‘윤봉길함’이 3일 진수됐다. 해군은 이날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윤봉길함 진수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1800t급인 윤봉길함은 1번 손원일함, 2번 정지함, 3번 안중근함, 4번 김좌진함에 이은 5번째 214급 잠수함이다. 진수식에는 김외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등 군 및 현대중공업 관계자와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씨 등이 참석했다. 윤봉길함은 대함전, 대잠전, 공격기뢰 부설 임무 등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국산 순항미사일을 탑재해 수중 유도탄 기지로 불린다. 해군은 이들 잠수함에는 사거리 500~1000㎞ 순항미사일인 ‘해성Ⅲ’을, 수상함에는 사거리 1000∼1500㎞ 순항미사일인 ‘해성Ⅱ’를 각각 장착하고 있다. 이 순항미사일은 고도의 은밀성을 바탕으로 적의 핵심 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윤봉길함의 최고 속력은 20노트(37㎞)로 미국 하와이까지 연료를 재충전하지 않고 왕복 항해할 수 있다. 특히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탑재해 수면에 올라오지 않고 2주간 수중에서 작전할 수 있다. 해군 관계자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국민 안보의식을 높이고자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함명으로 제정했다”고 설명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을 맞아 일본군이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상하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신문을 받은 끝에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12월19일 순국했다. 윤봉길함은 인수평가 기간을 거쳐 내년 후반기에 해군에 인도돼 9개월여간의 전력화 과정을 마친 후 2016년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닭치고, 개콘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닭치고, 개콘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닭치고, 개콘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KBS 2TV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가 29일 첫 방송에서 대박 조짐을 보였다. 특히 김준호는 한달만에 개그콘서트 코너에 복귀해 식지 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날 ‘닭치고’의 출연자들은 전부 닭벼슬 머리띠를 쓰고 닭으로 분장한 뒤 등장했다. 교사인 송준근은 학생 쌍둥이 이상호와 이상민, 임우일을 앉혀놓고 수업을 준비했다. 개그의 초점은 건망증 언어유희. 이상호와 이상민은 서로 쌍둥이라서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교실이 시끌벅적해지자 교장 김준호가 등장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송준근은 조용히 수업을 진행했고 임우일은 이상호와 이상민의 수준이 낮다며 교실을 떠났다. 송준근은 역사 수업 중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설명을 하다가 도시락을 보고는 갑자기 점심시간이라고 외쳐 폭소를 자아냈다. 또 양호선생님으로 분한 안소미는 배가 아프다는 이상민에게 후다닥 주사를 놓고 정신없이 퇴장해 웃음을 안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개콘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개콘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개콘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KBS 2TV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가 29일 첫 방송에서 대박 조짐을 보였다. 특히 김준호는 한달만에 개그콘서트 코너에 복귀해 식지 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날 ‘닭치고’의 출연자들은 전부 닭벼슬 머리띠를 쓰고 닭으로 분장한 뒤 등장했다. 교사인 송준근은 학생 쌍둥이 이상호와 이상민, 임우일을 앉혀놓고 수업을 준비했다. 개그의 초점은 건망증 언어유희. 이상호와 이상민은 서로 쌍둥이라서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교실이 시끌벅적해지자 교장 김준호가 등장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송준근은 조용히 수업을 진행했고 임우일은 이상호와 이상민의 수준이 낮다며 교실을 떠났다. 송준근은 역사 수업 중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설명을 하다가 도시락을 보고는 갑자기 점심시간이라고 외쳐 폭소를 자아냈다. 또 양호선생님으로 분한 안소미는 배가 아프다는 이상민에게 후다닥 주사를 놓고 정신없이 퇴장해 웃음을 안겼다. 네티즌들은 “개그콘서트 닭치고 너무 웃겨”, “개그콘서트 닭치고 정말 이번엔 대박이다”, “개그콘서트 닭치고 난 너무 재미없던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김준호·송중근·안소미 폭소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김준호·송중근·안소미 폭소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 건망증 언어유희 ‘대박 조짐’ 김준호·송중근·안소미 폭소 KBS 2TV ‘개그콘서트’ 새 코너 ‘닭치고’가 29일 첫 방송에서 대박 조짐을 보였다. 특히 김준호는 한달만에 개그콘서트 코너에 복귀해 식지 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날 ‘닭치고’의 출연자들은 전부 닭벼슬 머리띠를 쓰고 닭으로 분장한 뒤 등장했다. 교사인 송준근은 학생 쌍둥이 이상호와 이상민, 임우일을 앉혀놓고 수업을 준비했다. 개그의 초점은 건망증 언어유희. 이상호와 이상민은 서로 쌍둥이라서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교실이 시끌벅적해지자 교장 김준호가 등장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송준근은 조용히 수업을 진행했고 임우일은 이상호와 이상민의 수준이 낮다며 교실을 떠났다. 송준근은 역사 수업 중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설명을 하다가 도시락을 보고는 갑자기 점심시간이라고 외쳐 폭소를 자아냈다. 또 양호선생님으로 분한 안소미는 배가 아프다는 이상민에게 후다닥 주사를 놓고 정신없이 퇴장해 웃음을 안겼다. 네티즌들은 “개그콘서트 닭치고 너무 웃겨”, “개그콘서트 닭치고 정말 이번엔 대박이다”, “개그콘서트 닭치고 난 너무 재미없던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용성 스님은 시대적 과제 회피 안해… 내가 통일운동 나선 건 유업 계승 일념”

    “용성 스님은 시대적 과제 회피 안해… 내가 통일운동 나선 건 유업 계승 일념”

    “불교의 정법안장에 누구보다 헌신했고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백용성 스님의 뜻을 올곧게 계승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되고 화합된 나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용성 스님 탄신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29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 앞서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음식점에서 기자와 만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용성 스님의 유지부터 소개했다. “용성 스님은 불교인의 본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생활속에서 불교를 구현하려 몸바쳤던 실천의 선지식입니다.” 백용성 스님은 불교계 대표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1인. 일반인에게 만해 한용운 스님이 독립운동과 관련해 크게 부각됐지만 불교계에선 백용성 스님을 빼놓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말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륜 스님은 용성 스님 탄생지에 세워진 죽림정사의 주지. 세월호 참사며 염수정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대답을 피한 채 용성 스님을 줄곧 입에 올렸다. “용성 스님은 승려의 직분을 유지하면서도 당대의 시대적 과제에 결코 등을 돌리지 않았던 온 겨레의 육신보살이었습니다.” 용성 스님 당대의 민족적 과제는 당연히 일제로부터의 독립. “용성 스님은 일제에 저항하고 싸웠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극소수의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라고 법륜 스님은 강조했다. 용성 스님이 만해 스님에게 3·1운동을 지도했고, 윤봉길 의사에게 임시정부로 가서 항일운동할 것을 권유한 일화며 민족대표를 33인으로 정한 것도 도리천 33천 하느님의 보우하심에 의해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용성 조사의 뜻임을 소개했다. “일제시대 민중들의 한결같은 염원이 독립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당연히 통일이지요. 운동권 출신도 아닌 내가 통일운동에 발벗고 나선 것도 정법에 바탕해 생활불교에 치중했던 용성 스님의 유업을 계승하겠다는 일념에 다름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큰 원칙을 조화롭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래서인지 현재 5개나 되는 용성 스님 제자 문중들이 스님의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단다. 한편 29일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에선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용성 스님의 정법안장과 독립운동정신을 재조명한다. 용성 스님 탄생 150주년 기념식은 다음 달 5일 전북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열린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윤봉길의사 의거 82주년 한·중 동시 기념식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공조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양국이 25년째 윤봉길 의사를 공동으로 추모해 눈길을 끈다. 국가보훈처는 29일 매헌(梅軒) 윤봉길(1908~1932년) 의사의 상하이(上海) 의거 82주년 기념식을 중국 상하이와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이 전승경축식을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윤 의사 의거 82주년 국내 기념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열린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간(현지시간 10시)에 상하이 루쉰(迅)공원에서 상하이 훙커우구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한다. 한·중 양국은 1990년부터 윤 의사를 기리는 기념식을 함께 주관해 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2800년 전 石劍·함호용 기록… 1990여 점 수록

    2800년 전 石劍·함호용 기록… 1990여 점 수록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한인의 숫자는 102명에 불과했다. 이후 1905년 8월까지 한인 7500여명이 제물포를 떠나 하와이에 정착했다. 함호용(1868~1954)은 1905년 이곳 사탕수수농장에 안착해 40여년간 일한 한인 노동자였다. 오전 4시 30분 일어나 하루 10시간씩 주 6일 일해서 한 달에 겨우 18달러를 손에 쥐었다. 평생 마우이 섬에 거주하면서 그는 모두 11명의 자녀를 얻었다. 아내 함해나(1880~1979)는 요리와 빨래, 병원일 등을 보조하며 생계를 도왔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교육과 독립운동을 위한 특별 의연금은 빠지지 않고 냈다. 1919년 대한인국회 하와이지방총회가 연 첫 모금에선 함호용·해나 부부가 한 달치 생활비와 맞먹는 15달러와 14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이 같은 기록은 고스란히 농장일기, 영수증, 월급명세표와 함께 남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미국 미시간대학과 UCLA 리서치도서관, 그리고 네덜란드 개인 소장 한국문화재들에 대해 현지 실태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담아 ‘국외한국문화재 총서’ 3권을 발간했다. 지난해 미국·네덜란드·중국·일본 등 4개국에서 조사한 한국문화재 5400여 점 가운데 1990여 점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UCLA 리서치도서관이 소장한 ‘스페셜 컬렉션 소장 함호용 자료’(3권)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함호용이 평생에 걸쳐 작성한 일지와 1980년대까지 오간 후손들의 서간 등 1040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다. 지역 한인 목사가 보내온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 직전 선서 사진과 대한인국회 마위지방회 회의록·지출보고서, 안창호 타계 소식을 전하는 ‘신한민보’(1938년) 등이 포함됐다. 자녀들의 출생 및 졸업증, 창작시, 신문을 보고 그린 1930년대 일본군의 중국침략 노선도까지 다양하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원사에서 발간한 가곡집 ‘무궁화’(1931년). 애국가, 국기가 등 170곡이 수록된 가곡집에선 애국가의 작사자를 ‘윤치호’로 명기했다. 미 에머리대의 윤치호 애국가 원본과 일맥상통한다. 재미사학자인 안형주씨는 “구한말 한학을 수학했던 함호용은 반세기 동안 하와이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면서 “48개 상자에 달하는 각종 기록을 통해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기고 이주한 소수민족의 자의식과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간대학교 소장 한국문화재’(1권)에는 450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록이 담겼다. 송만영 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이 대학의 한국관련 유물은 토기 비율이 가장 높고 다음이 와전”이라고 전했다. 이 중 청동기 시대 중기 또는 초기인 기원전 9~8세기 제작의 완형(完形)에 가까운 간돌검(石劍)이 주목받는다. 전체 길이 39㎝에 칼날 29㎝, 폭 8㎝로 이단병식(二段柄式) 볼록렌즈 형태를 띠고 있다. 김달형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는 네덜란드인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500여 점에 대한 조사 결과물도 나왔다. 1970년대 서울 종로구 인사동과 용산구 이태원 등에서 구입한 나한상 등으로 당시 서양인의 한국유물 수집 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단은 일본·중국·미국·네덜란드의 주요 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에 대한 추가 보고서를 3~4권 정도 더 낼 예정이다. 일각에선 문화재 환수 지원보다 조사와 활용에 방점을 찍은 재단의 활동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좌표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광복군총사령부/서동철 논설위원

    대한민국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京)에서 창설됐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조직한 것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과 싸워 이김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뜻이었다. 앞서 장개석 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에 밀리자 양쯔장(揚子江)과 자링장(嘉陵江)의 삼각주에 자리한 충칭을 임시수도로 삼았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이후 중국의 지원을 받던 임시정부도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옮겨갔다. 광복군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다양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첩보 작전을 펼친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功作隊)도 중요한 군사활동의 하나였다. 공작대는 1943년 충칭에서 현지로 파견됐고 ,1945년 해방 직후 귀환하기까지 최일선에서 광복군의 존재 이유를 세계에 알렸다. 일본어에 능했던 9명의 대원은 3개월 동안 인도 델리 외곽의 가지아바드에서 영어를 비롯한 특수 공작 훈련을 받았다. 이후 영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대표적 전투로 꼽히는 1944년 임팔 대회전에도 투입돼 선무방송, 포로심문, 기밀문서 해독에 전과를 올렸다. 1945년 광복군의 한반도 진공 계획인 독수리작전(Eagle Project)도 같은 목적이었다. 3개월의 첩보 및 통신 훈련을 통과한 대원들을 5개 전략거점인 서울, 부산, 평양, 신의주, 청진에 침투시켜 육·해·공군 기지와 군사 산업 시설, 교통망에 대한 정보를 수집토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지하운동의 규모와 활동 내용, 그리고 한국인의 호응 정도를 파악해 대중봉기를 지원하는 임무도 부여되었다. 하지만 50명의 1기 훈련생 가운데 38명의 수료식이 열린 9월 4일은 이미 전쟁이 끝난 뒤였다. 충칭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엊그제 쑨정차이(孫政才) 당서기를 만나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의 ‘원형복원’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조직의 본거지이자, 한말 의병에서 비롯된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본거지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도심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있는 총사령부 건물을 이전 복원하는 방안을 충칭시와 협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문화는 있는 자리에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제자리 복원에 긍정 답변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하얼빈역의 안중근 기념관에 이은 고위 인사 방중이 거둔 역사 협력의 두 번째 중요한 성과가 된다. 하얼빈이든, 충칭이든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가 중국인들에게도 협력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면 좋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최광숙 논설위원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安重根, 1879~1910년)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 날은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만천하에 알린 날이다. 안 의사는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여러 해 소원하던 목적을 이제야 이루게 되다니, 늙은 도둑이 내 손에 끝나는구나”라고 썼다. 응칠(應七)은 태어날 때부터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 모양의 7개 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안 의사의 아명이다. 뤼순 감옥으로 송치된 안 의사는 결국 1910년 3월 26일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며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순국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들에게 어머니는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편지를 적어 보냈다고 한다. 비록 재판 등에 참여했던 일본인들은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했지만 안 의사의 꼿꼿한 기상과 인품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토 암살 당시 함께 저격을 받은 다나카 세이지로 만주 철도 이사는 훗날 “지금까지 만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안중근”이라고 말했다. 히라이시 우지토 재판장은 “안중근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감옥의 간수로 있던 지바 도오시는 안 의사가 집필할 수 있도록 붓과 종이를 넣어주기도 했다. 이 일본인 간수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쓴 책이 바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에서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평화기구를 설립하고 나아가 공동은행, 공동화폐, 공동평화군 등을 제안했다. 한국의 자주독립을 넘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경제·군사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안 의사의 선구적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5년 전에 일찌감치 지금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제시한 것 아니겠는가.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최근 개관했다.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표지석’ 설치를 요청했는데 그보다 격을 높인 것이다. 중국이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피하면서 안중근 기념관을 통해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연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효창공원에 가면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노력으로 유해를 찾아온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묘만 있다. 안 의사 묘는 유해를 찾지 못해 비어 있다.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생활고 시달린다고…월북했던 윤봉길의사 조카

    생활고를 이유로 월북했다가 지난달 25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밀입북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조카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당국의 허가 없이 밀입북해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윤봉길 의사의 조카 윤모(66)씨와 이모(64)씨, 송모(26)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몰래 들어가 북측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서울에서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언론사에서 일하다 광고업체를 10여년간 운영했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두 차례의 결혼도 모두 실패로 끝나자 2010년 중국을 거쳐 밀입북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의 조카이므로 북한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밀입북을 결심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윤씨는 결국 기대와 다른 북한 체제에 실망하고 남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해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이씨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아내를 죽이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에 그쳤다고 검찰은 전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북한에 밀입북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던 국민 6명 중 남은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에는 윤봉길 의사의 조카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정부의 허가 없이 무단 방북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윤모(66)씨와 송모(26)씨, 이모(64)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윤씨 등 3명은 북한에 밀입북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고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씨는 서울에서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언론사에서 기자와 편집부국장 등으로 일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북한에서 생활하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밀입북했다. 윤씨는 2009년 9월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자진입북을 신청했으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2010년 1월 직접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했다. 윤씨는 북한에 체류하면서 국가안전보위부 직원 등과 접촉해 한국의 정치 정세, 경제, 사회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반(反)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씨는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같은 밀입북자인 송씨와 함께 원산항 부두에 있는 분향소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송씨는 육군사관학교 등에 불합격한 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했다. 그러나 모은 돈을 모두 주식투자로 탕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대남 선전선동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조선신보’ 등에 몰래 접속해 북한 체제를 동경했고 중국어를 독학해 주중 북한대사관 위치 등 밀입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2010년 1월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한 송씨는 북한에 머물면서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을 비롯해 군부와 잇따라 접촉해 미군기지 위치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 또 북한 선전영화와 김일성 회고록 등을 시청하고 사상학습을 받으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밀입북자인 이씨는 생계 유지가 힘들고 건강마저 악화되자 2006년 가족을 데리고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밀입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2011년 5월 부인과 함께 압록강을 헤엄쳐 밀입북했다. 이씨는 북한에서 ‘김일성회고록’,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등의 책을 읽으면서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했다. 그러나 북한 측 당국자와 부인이 부적절한 관계인 것으로 의심한 이씨는 제3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되자 단식투쟁을 하는 등 북한내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이후 이씨는 밀입북 때 갖고 간 돈을 부인이 북측 당국자에게 몰래 건네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홧김에 부인을 살해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윤씨 등 6명은 지난달 25일 판문점을 거쳐 국내로 송환됐고,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뒤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지난 12일에도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무단 방북한 혐의 등으로 김모(43)씨와 장모(42)씨, 황모(55)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혜교·서경덕, 하얼빈 안중근기념관에 한글안내서 제공

    송혜교·서경덕, 하얼빈 안중근기념관에 한글안내서 제공

    상해 및 중경 임시정부청사와 윤봉길 기념관 등 해외에 있는 대한민국 유적지에 한글 안내서를 제공해 큰 화제를 모았던 배우 송혜교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번에는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 한글 안내서를 기증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안중근 의사 의거일인 10월26일을 맞아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 새롭게 디자인한 한글 안내서 1만부를 29일부터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고 전했다. 한글 안내서에는 독립기념관의 자료제공으로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및 활동연표, 중국 지도자들의 안 의사 추모사, 사형 집행전 사진 및 각종 활동사진 등이 전면 컬러로 자세하게 제작 되었다. 이번 안내서를 후원한 송혜교는 “아무리 중국 내에 있는 우리 역사 유적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한글 안내서가 없어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 이런 작은 일 하나가 국내외 관람객 유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역사 유적지 보존 상황이 좋은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유적지를 많이 방문하는 것만이 타국에 있는 우리의 유적지를 지켜 나갈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 8월 광복절을 맞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 열사 기념관에는 대형 부조작품을 기증하여 유럽 배낭여행객들의 방문을 더 유치하는데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또한 서 교수는 “송혜교 씨와 한글 안내서를 먼저 제공한 후 상해,중경 임시정부청사 등에 관한 무료앱 서비스를 개발하여 작년 10월부터 제공해 왔다. 특히 안중근 기념관도 앱 서비스에 넣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성까지 제공하는 앱을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송혜교와 서 교수는 지금까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보스턴 미술관 등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유치 했으며 영국의 테이트 모던,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럽쪽 유명 미술관에도 한국어 서비스를 유치하고자 노력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창경궁과 효창원/홍지민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창경궁과 효창원/홍지민 사회2부 기자

    어렸을 때 근처에 동물원이 있었다. 버스로 예닐곱 정거장 거리였다. 학교에서 봄, 가을로 소풍을 갔다 하면 우이동 그린파크 아니면 동물원이었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나 접하던 호랑이나 코끼리 등을 직접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풍경도 생생하다. 커다란 식물원도 곁에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몇 년 뒤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동물원과 식물원은 없어졌다. 저 멀리 경기 과천으로 이사 갔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섭섭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찬찬히 알게 되면서 섭섭함은 자연스레 사라졌던 것 같다. 창경궁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 유원지로 꾸며지며 크게 훼손되고 명칭도 창경원으로 격하됐던 창경궁은 1984~1986년 이름을 되찾았고,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제 모습도 찾았다. 문득 창경궁을 떠올린 것은 효창공원 때문이다.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있었던 곳으로 원래 명칭은 효창원이다. 창경궁과 마찬가지로 수난을 당했다. 일제는 1924년 일부를 공원화했고, 1940년 공원으로 정식 지정했다. 1945년에는 급기야 문효세자 묘를 지금의 경기 고양으로 옮겨버렸다. 그렇게 고난을 겪던 그곳은 해방 뒤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애국선열 묘역으로 거듭났다. 이봉창·윤봉길·백정기 등 삼의사와 이동녕·차리석·조성환 등 임시정부 요인을 차례로 안장하고 안중근 의사 가묘도 조성하는 한편, 1949년 자신도 이곳에 묻혔던 것. 하지만 그러한 역사성은 차츰 바래졌다. 이승만 정부 시절 효창운동장이 지척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이 솟았다. 어린이 놀이터도 들어섰다. 노인회관도 지어졌다. 육영수 여사 송덕비도 세워졌다. 요즘은 효창공원에 애국선열 묘역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02년 백범 김구 기념관이 문을 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공원 이미지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효창공원이 시끄럽다.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국립묘지로 승격시켜 정부가 관리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대표발의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사적 공원, 근린공원으로 구청이 관리해 오던 터였다. 박수 받을 일 같은 데 지역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곳저곳에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반대 서명 운동도 있었다. 김광진 의원 측은 그럴 일 없다고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거나 운동시설을 이용하는 데 제약을 받는 게 아니냐, 독립 유공자가 추가 안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잦아들지 않는다고 한다.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차제에 묘역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러한 정황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국립묘지가 혐오시설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안타깝고 황당하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용산구의회가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3년 전에는 애국선열 영정을 모신 사당인 효창공원 내 의열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6대 구의회 의정 활동을 시작했던 그들이다. 애국선열들이 살아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icarus@seoul.co.kr
  • [뉴라이트교과서 해부] 고대사부터 ‘일본식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우편향 사관이 첫 번째이고, 사료 부실과 인터넷 포털 사진의 무분별한 게재 등 부실 논란이 두 번째이다. 교육부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 등은 “역사관에 손을 댈 수 없지만, 사실관계 오류는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사실관계 오류가 사흘 만에 298건이나 적발된 가장 큰 원인이 우편향 사관에 사로잡혀 기존 학계의 기류를 무시한 서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제연구소장은 지난달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침략(식민)사관 재등장의 역사적 구조’란 주제로 연 국회 세미나에서 “해방 68년이 지났음에도 일제 식민주의 역사관이 버젓이 주류 사학으로 존재하고 있다”면서 “일제 식민사학이란 일본 극우파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식민사학의 연장선상에서 일제 때 사회가 발전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횡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학사 교과서의 사실관계 오류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끄는 부분은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걸쳐 일본식 사관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주 지역에 영역을 구축한 부여의 지배권을 ‘한반도 지역’으로 제한하거나, ‘고구려 건국 당시 5개 부족이 참여했다’는 서술로 인해 고구려가 부족국가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대목, 신라 박혁거세를 ‘족장’으로 표현한 대목은 고대 한민족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 안으로 가두려 한 식민사관의 잔재를 보여주거나 백제 몽촌토성 발굴 등 새로운 사료가 등장하기 이전인 40년 전 학설을 채택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고려 시대 서술에서 ‘몽골의 영향으로 일부다처제가 나타났다’고 써서 돌연 있지도 않았던 일부다처제가 도입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서술이나 조선 후기에 등장한 상인 조직인 ‘보부상’이 조선 전기 사료로 제시된 대목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성의가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중간중간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따다 쓴 부분이 보이는 등 ‘가위’와 ‘풀’로 만든 교과서인데, 잘못 오려서 잘못 붙인 탓에 퍼즐이 잘 안 맞는다”면서 “솔직히 집필자들의 교과서 집필 역량 자체에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부터 현대사까지 부분에서는 학계에서 검증받지 못한 일방적인 서술이 실린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교수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출판사의 기존 교과서와 달리 대한민국사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이란 측면에서 접근해 긍정적인 국가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부분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자평했다. 이 교수의 말대로 교학사 교과서 중 일제시대를 다룬 ‘단원5’에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11쪽에 걸쳐 42차례, 사진이 5장 등장해 다른 교과서와 차별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에 할애하느라 본문에서 안창호, 김구, 윤봉길 선생 등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본문에서 1~2차례 지나가듯 언급됐다. 식민지 시대 전체를 정리한 연표에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나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거 등 굵직한 사건이 빠진 대신 물산장려운동과 진단학회 조직이 들어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부고]

    ●정의화(새누리당 국회의원)철화(미국 거주)씨 모친상 남용강(산부인과 전문의)김남희(봉생병원 이사장)씨 시모상 조성권(사업)씨 장모상 정연성(사업)연학(봉생병원 행정부원장)씨 조모상 2일 부산 봉생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 30분 (051)664-4012 ●윤봉길(전 하나은행 학익동 지점장)봉학(국민일보 부산주재 부국장)봉인(하나은행 워커힐 부지점장)씨 모친상 3일 경북 문경제일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54)550-7948 ●홍성태(대우건설 나이지리아 오투마라 현장 상무 )씨 모친상 2일 대전장례식장, 발인 4일 오전 9시 (042)522-4444 ●안철현(안철현위기관리연구소 소장 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관리처 국장)씨 별세 한준(학생)한경씨 부친상 2일 신촌세브란스, 발인 5일 오전 7시 (02)2227-7587 ●이재선(전 서울시 부교육감)씨 별세 종열(만월산터널 대표)종인(사학연금공단 부장)종욱(신구대 교수)경희(전 중등교사)씨 부친상 민흥기(건화 전무)씨 빙부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2)3410-6917
  • [기고] 기념관 운영관리비 지원방식 개선을/윤주 매헌기념관 관장

    [기고] 기념관 운영관리비 지원방식 개선을/윤주 매헌기념관 관장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의 압박과 고통은 증가할 뿐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를 세웠다.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각오란 나의 철권으로 적을 즉각 부수려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남긴 글을 읽다 보면 당시 식민지 상태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큰 뜻을 세우고 대의(大義)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불사른 의사의 뜨거운 조국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민족의 영웅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기 위해 1988년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국민의 성금만으로 서울 서초구 시민의 숲에 매헌기념관을 건립했다. 현재 매헌기념관은 건립된 지 20여년이 지나 건물 벽 곳곳에 금이 가고 떨어져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 비가 온 다음에는 기와가 자주 떨어져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기와가 자주 떨어지는 기념관 뒤쪽에 임시방편으로 시민의 접근을 금지하는 표시를 했으나 우기를 맞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급히 보수공사가 필요하나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정부(국가보훈처)로부터 운영 관리비를 한 푼도 지원받지 않는다. 회원의 회비로는 보수공사는커녕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정부는 기념관의 소유권이 국가(국가보훈처)에 있는 순국선열 기념관에만 운영 관리비를 지원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국민의 성금으로 건립해 지방자치단체(서울시)에 기부채납했기 때문에 기념관의 건물이 국가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가 실질적으로 자체 예산으로 건립해 준 순국선열 기념관은 그 건물이 국가 소유라는 이유로 운영 관리비를 지원해 주고, 국민이 건립한 윤봉길기념관은 소유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하지 않는 현행 지원 방식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순국선열기념사업회는 국가 건물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보훈처는 국가 소유 건물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 부처가 아니다. 당연히 현행 운영 관리비 지원 방식은 기념관의 건립 목적 및 규모, 순국선열의 공훈 등을 고려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 그동안 순국선열 기념관 운영 관리비 지원 방식을 바꾸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처에서 관장하는 제도(편제)조차도 쉽게 바로잡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한 번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에 빠지곤 했다. 정부에 다시 한번 호소한다.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즉시 보수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는 현행 순국선열 기념관 운영 관리비 지원 방식을 합리적으로 바꾸길 바란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 비는 며칠간 이어지고 바람도 거세게 불 것으로 보인다. 떨어질 기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 ‘아베노믹스’ 지지 확인…장기집권 열쇠는 경제·개헌·외교

    ‘아베노믹스’ 지지 확인…장기집권 열쇠는 경제·개헌·외교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가 진짜 시작이다.” 일본의 한 정치 전문가가 전한 최근 자민당 내 분위기다.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예상대로 공명당과 함께 과반수(122석)를 훌쩍 넘어서는 압승을 거뒀다. 특히 전국 도도부현별로 설정된 47개 선거구 가운데 이와테현을 제외하고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내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자민당 천하’의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번 선거를 통해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확인한 자민당은 경제 정책에 당분간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직후 외국인 매수세로 일본 증시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분수령은 다음 달 12일 내각부가 발표할 예정인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치다. 전 분기 4.1%에 이어 계속 상승세가 나타나면, 아베 총리는 가을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2차 성장전략에서 과감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현지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이르면 내년 봄, 적어도 내년 가을에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노믹스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다.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로 중의원은 자민당, 참의원은 민주당이 다수였던 ‘네지레’(여소야대) 정국을 해소했기 때문에 아베 총리는 다음 선거 때까지 향후 3년간 임기가 보장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 이후 다음 달 초 임시국회를 소집해 참의원 의장 등 의회 지도부를 자민당 중심으로 구성하고 9월 말 자민당 지도부 개편을 통해 국정 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숙원 정책인 헌법 개정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극적인 개헌파로 분류되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민나노당, 신당 개혁 등을 합치면 140석을 넘어서 전체 242석의 3분의2(162석)에 육박한다. 이는 민주당 일부 의원 등 국회 내 개헌파가 힘을 합칠 경우 헌법 96조의 개헌안 발의 요건을 ‘상·하원 의원 각각 3분의2 이상 찬성’에서 ‘과반수’로 바꾸는 개헌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47년 5월 3일 시행된 뒤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헌법 개정 논의가 궤도에 오를 여지가 생긴 셈이다. 96조 개헌의 노림수는 결국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바꾸려는데 있다. 자민당은 지난해 발표한 헌법 개정 초안에 ‘자위권의 명기’, ‘국방군의 설치’ 등을 포함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날 NHK와의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국회가 발의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논의를 계속하고 싶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주변국들과의 마찰도 심해질 공산이 크다. 한국으로서는 당장 아베 총리가 일본의 패전기념일인 다음 달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지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서울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과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비에 ‘말뚝 테러’를 자행한 극우파 스즈키 노부유키는 도쿄에 출마했지만 20명의 입후보자 중 최하위권을 맴돌며 낙선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일본 참의원 선거 현장을 가다] (중) 도쿄 신주쿠 표심은

    [일본 참의원 선거 현장을 가다] (중) 도쿄 신주쿠 표심은

    참의원(상원) 선거를 이틀 앞둔 19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자민당 비례대표로 이번 선거에 출마한 외식업체 ‘와타미’의 창업자 와타나베 미키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햇볕만 내리쬐는 길거리에서 와타나베가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지만 행인들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지나치기에 바빴다. 일찌감치 자민당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어져서일까.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50%를 밑돌아 2007년(58.64%)이나 2010년(57.92%)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승리를 자신하는 와타나베는 “자민당이 주는 안정감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이유”라고 말했지만 유세장을 지나던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역시나 문제는 경제였다. 자민당을 이끄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50대 은행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쓰다 히로시는 “일본 경제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베와 자민당이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가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단 분위기는 띄웠지만 경기가 살아났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보너스는 조금 올랐지만 기본급은 그대로다. 기본급이 올라야 경기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잃어버린 20년’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졌지만 그 희망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단계에서 일본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신주쿠역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아베노믹스는 매스컴에서 띄우니까 좋아 보이는 것 같다”면서 “제발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지만 아직 나는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경제 이외의 다른 정책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들이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60대 주부인 요네야마 유리코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자세히 모르겠다”면서 “아베 총리는 온화해 보이지만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고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안부 소녀상과 윤봉길 의사 순국비 등에 ‘말뚝 테러’를 한 스즈키 노부유키가 도쿄도 선거에 출마한 것에 대해 “누군지 모르겠다”며 생뚱맞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민당 외에 대안이 없다’는 실망감 속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민당과 공명당이 이번 선거에 포함되지 않는 의석을 합해 과반수(122석)를 무난히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자민당 단독 과반은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한편 이날 아베 총리는 오전부터 미에현과 지바현을 돌며 막판 유세전에 진력했다. 민주당은 가이에다 반리 대표 등이 효고현과 후쿠오카현, 히로시마시에서 선거 운동을 이어갔다. 아베 총리는 20일 전자상가가 밀집된 아키하바라역 앞에서 마지막 연설을 할 예정이다. 최근 20~30대의 자민당 지지율이 높아진 만큼 젊은층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日 말뚝 테러범도 1000만원 배상 판결

    위안부 소녀상과 윤봉길 의사 순국비 등에 ‘말뚝 테러’를 자행한 일본 우익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47)에게 법원이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이재은 판사는 10일 윤 의사의 친조카인 윤주씨가 스즈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윤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지칭하는 등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윤씨는 스즈키가 지난해 9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 옆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라고 적힌 나무 말뚝을 박은 데 이어 자신의 블로그에 윤 의사를 비하하는 글을 올리자 소송을 냈다. 이 판사는 “스즈키가 윤 의사의 정신을 모독했고, 그럼으로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 인정된다”면서 “유족이 청구한 1000만원을 전부 인용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지난달 5일과 19일 두 차례 변론기일을 잡고 소장과 기일통지서를 보냈지만 스즈키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재판부 앞으로 나무 말뚝을 발송했다. 법원이 스즈키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스즈키가 국내에 재산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일본 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위해서는 일본 법원에 다시 소송을 내 집행판결을 받아야 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말뚝테러’ 일본인 “1000만원 배상해야”

    ‘말뚝테러’ 일본인 “1000만원 배상해야”

    위안부 소녀상과 윤봉길 의사 순국비 등에 ‘말뚝테러’를 벌였던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47)가 윤 의사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이재은 판사는 10일 윤 의사의 조카인 윤주씨가 스즈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스즈키의 불법행위로 인해 윤 의사 유족의 정신적 피해가 청구금액인 1000만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은 당초 지난달 5일과 19일 두 차례 변론기일이 잡혔고, 법원은 스즈키에게 소장과 출석통지서 등을 보냈다. 그러나 스즈키는 출석 대신 재판부에 나무 말뚝을 보냈다. 이 판사는 스즈키가 ‘말뚝테러’를 자백한 것으로 판단, 이날 판결을 선고했다. 하지만 실제 손해배상 처리가 이뤄지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한국 법원의 판결이기 때문에 스즈키의 국내 재산에 대해서만 강제력이 있는 이유에서다. 만약 국내에 스즈키의 재산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일본 법원에 다시 소송을 내 집행판결을 받아야 한다. 스즈키는 앞서 지난해 9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 옆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라고 적힌 나무 말뚝을 박았다. 이같은 사진과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윤씨는 이 블로그를 본 뒤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에는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 편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옆에 같은 말뚝을 세워놓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도 앞두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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