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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국극 「별헤는 밤」 무대 오른다

    ◎윤동주시인 일대기… 서라벌국악예술단 새달 막올려/야사서 탈피… 근대인물까지 소재 확대/국악가요 도입… 젊은층에 맞게 새단장 7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온 여성국극이 젊은 층의 취향에 맞게 새로운 소재와 감각으로 단장돼 무대에 오른다.서라벌국악예술단(단장 홍성덕)가 광복 50주년과 창단 10주년을 맞아 오는 6월11∼12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별헤는 밤」(최성수 극본·이종훈 연출)이 그것. 특히 이번 공연은 그동안 여성 국극계가 주로 다뤄온 야사 중심의 옛 이야기에서 탈피,소재를 근대인물로까지 넓혔으며 국악가요를 도입하는등 여성국극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여성국극은 전통국악인 창(판소리)과 춤,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우리 특유의 창무극으로 모든 배역이 여성으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지난 50년대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진부한 사랑타령 중심의 소재에 안주,점차 일반의 관심권 밖에 놓이게 됐으며 TV의 출현과 함께 더욱 위축돼 이제는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형편이다. 「저항시인 윤동주 일대기」란 부제가 붙은 이번 공연작품은 민족시인 윤동주와 그의 이종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그리고 윤동주의 애인 순이를 삼각축으로 당시 젊은 지식인들의 사랑과 고뇌를 그린다.일제시대 인물인 윤동주(1917∼1945)가 주인공인 만큼 안평대군이나 춘향등을 중심인물로 내세웠던 기존 여성국극에 비해 한층 사실감을 느끼게 한다.또 판소리 작창에 주로 의존했던 음악도 국악가요를 적절히 삽입하는등 다양화해 여성국극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새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젊은 국악실내악단 「슬기둥」과 함께 국악가요·국악동요 창작작업에 몰두해온 조광재씨가 작곡을 맡아 그동안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한문투의 판소리 사설과는 또다른 맛의 창과 소리를 선사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여성국극이 사극은 물론,현대물·뮤지컬등 모든 장르의 공연을 소화해낼 수 있는 종합무대예술이란 점을 젊은 관객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다』는 것이 제작 총책임자인 홍성덕 단장(54)의 소망. 「별헤는 밤」은 5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으로 주인공 윤동주역은 국악인 이옥천,송몽규역은 지난해 제1회 서울판소리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김금미,순이 역은 국립창극단의 라태옥씨가 각각 맡았다.하오3시·7시30분 공연.문의 743­2920
  • 백석 과소평가/이상 과대평가/권영민 교수,국문과교수 대상조사

    ◎현대문학사 기념비적 작품은 「토지」 우리나라 국문학자들은 현대문학사에서 백석을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로,이상을 가장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현대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각각 「외국인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 1,2위로 뽑혔다.이같은 사실은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가 전국 대학 국문과에 재직중인 현대문학전공자 1백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밝혀진 것. 「문예중앙」 여름호에 발표될 권교수의 「한국문학 50년 지표조사」결과에 따르면 과소평가되고 있는 문인은 백석(11)에 이어 이기영·이태준(10),강경애(8),정지용·채만식(7),이용악(6),홍명희(5),박태원·최명익(4),심훈·임화·한설야(3) 순이며 과대평가된 문인으로는 이상(19)에 이어 이광수(18),김동인(15),이효석(13),최남선(11),김동리(10),이인직(9),윤동주(8),김영랑·박종화(5),서정주·주요한(4) 순으로 드러났다.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소설」로서는 해방전 작품으론 이광수의 「무정」(49),염상섭의 「삼대」(41),이상의 「날개」(26),이기영의 「고향」(23),채만식의 「탁류」(21),홍명희의 「임꺽정」(14),채만식의 「태평천하」(13) 등이 꼽혔다.해방이후 작품으로는 최인훈의 「광장」(48),조정래의 「태백산맥」(34),박경리의 「토지」(32),김승옥의 「무진기행」(17),황순원의 「카인의 후예」(12),황석영의 「장길산」(11),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9) 등이 거론됐다.「좋아하는 시인」은 한용운(19),정지용(18),김소월(15),윤동주(14),서정주(11),김수영·고은(6),황동규·이육사·박두진(5) 순이었다.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문예지/창간·변신 잇따른다

    ◎지난해 「문학동네」·「리뷰」 창간 이어 「문학아카데미」「앞선문학」 곧 선보여/「문학정신」은 계간,「현대시」 종합지로 탈바꿈/발표지면 확대·문학위상 변화에 적극 대처 문예지 창간 붐이 지난해부터 올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첫선을 보인 종합문예지 계간「문학동네」(문학동네 펴냄)와 계간「리뷰」(문예마당)가 순조로운 출발을 한데 이어 계간「문학아카데미」,월간「앞선문학」등 몇몇 잡지가 올봄 창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또 월간「문학정신」이 계간으로 바뀌며 시전문지인 「현대시」가 종합문예지로의 변신을 모색하는 등 문단에 변화가 일고 있다. 문학아카데미사는 문학종합지로 「문학아카데미」를 올 봄호부터 창간,문인들의 발표의 장을 늘리기로 했다.발행인겸 편집인인 박제천시인은 『대부분의 문예지가 범문단적이라기보다는 동인지화 했으며 젊은 문인쪽으로 치우쳐 있다』면서 『문단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현상을 바로잡는데 새 잡지가 일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는 지상강좌를 실어 문예아카데미사가 그동안 벌여온 시인 재훈련 등 문학교육사업을 이어받고 우리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싣는 등 세계화 추세에도 부응하겠다고 덧붙였다.이번 창간특집으로는 광복50년과 윤동주 사후 50년을 맞아 「윤동주 특집」을 마련했다.편집위원은 강우식·이탄·민용태·김여정·윤후명·정채봉·홍신선씨 등이다. 앞선문학사에서 3월호로 창간하는 「앞선문학(문학)」(발행인 주영준)은 참된 문학의 추구를 내세우는 월간 종합문학지.안도섭주간은 『정치지향적인 문인을 배제해 문단정치를 배격하고 우수한 필진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창간특집으로 「한국문학 반세기를 말한다」를 좌담으로 마련하고 중진·중견시인 33인의 특선시를 수록했다. 이밖에 대교출판사의 자회사인 프레스빌에서는 단편소설만으로 꾸미는 획기적인 계간지 「단편소설」창간을 준비하고 있다.최근 상업성을 노골화한 장편소설에 밀려 단편소설이 홀대받는 경향에 대한 반발로 단편소설로서 본질적인 문학을 시도해보겠다는 것이 창간동기.그러나 내부사정으로 당초 올봄창간에서 내년 봄으로 창간을 늦췄다. 한편 지난해 12월까지 월간으로 나오던 「문학정신」이 올 봄호를 시작으로 계간지로 변신한다.이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쁜 제작일정에 쫓겨 심층적인 글을 싣기 힘들었다는 자체 반성에 따른것.윤성근편집장은 계간지로 바꾸면서 『멀티미디어로 인해 문학의 위상이 바뀌는 시점에서 미술 영화 등 인접예술의 수용에도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특집으로 「예술과 매체」를 실었다. 시전문지인 월간「현대시」도 차세대잡지를 꿈꾸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원구식주간은 『기존 종합문예지의 편집은 너무 낡고 영상매체 시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시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운문 위주의 종합문예지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올 10월 시험호를 제작할 예정이다. 이처럼 문예지 창간과 변신이 잇따르는 것은 기존 문학계 판도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서거나,변화하는 문학의 위상에 적극 대처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되고 있다.그러나 이 문예지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성을 갖추고 질도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아동문학/최인학(연변조선족 1백년:8)

    ◎“어린이가 희망” 일제때 창작 활발/탄압 피해 최서해·윤동주·윤극영 등 간도서 활약/해방후 「어린이신문」 발간… 80년대 중편 소년소설 등장 창작활동이 한반도보다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1930년대의 간도는 작가들의 활동무대였고 은신처였다.아동문학도 예외는 아니다.암흑기를 방불케 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아동문학가들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동화 동시를 써 왔다.30년대 초창기 문학가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들이 간도에서 아동문학으로 활동해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사짓다 문학생활 최서해는 1915년에 북간도 백하지구에 건너와서 농사를 짓다가 쪼들린 생활을 이기지 못해 7년간이나 유랑생활을 했다.그러다 1924년에 서울로 향했다.윤극영은 1926년 용정에 와서 동흥중학교 음악교사로 있었다.그 후 일본,하얼빈 등지로 다니며 음악을 전공하며 가무단을 이끌기도 하다가 용정에서 광복을 맞이했다.김예삼은 1935년 흑룡강성 목릉현 흥원에 이주하여 교편을 잡았으며,채택룡은 1938년연길현 명륜학교로 와서 교편을 잡다가 광복을 맞았다.그리고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에서 출생하여 평양숭실학교를 다니다가 36년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에 편입했다. 이 밖에도 간도에서 이 무렵 활동하던 아동문학가로서 윤해영 안수길 함형수 이호남 천청송 염호열 김연호 박화목 한해수 등을 꼽을 수 있다.중국 조선족의 아동문학은 이들 작가군에 의해 형성되었고 1936년 창간된 「가톨릭 소년」은 작품의 발표원이 되었다.당시의 상황은 조국을 빼앗긴 설움은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했다.그리고 항일운동과 독립전쟁을 몸소 경험하는 현장이었기에 아동문학의 저변도 이러한 경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의 생활상 표현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이곳까지 물밀듯 엄습했다.작가들은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이 무렵 윤동주는 참혹한 당시의 생활상을 동시로 표현했다.그의 초기 작품중 한편을 감상해보자.「굴뚝」이라는 동시다.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게지 총각애들이/깜박깜박 검은눈이 모여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옛이야기 한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1940년대에 와서는 윤동주에 이어 이호남 천청송 함형수 등이 계속 동요와 동시를 썼다.그러나 검열제도가 심해지자 전처럼 노골적인 항일의지 표현의 길은 막혀버렸다.다만 상징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새경지를 개척해 갈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와중에서도 항일유격대 안에서는 전투성이 강하고 선동성이 짙은 아동문학이 생성되었다.항일가요로는 「혁명군이 왔고나」「아동단가」「어디까지 왔나」등이 있으며 아동극으로는 「유언을 받들고」「아버지는 이겼다」등이 있다.이들 선동성이 강한 작품을 통해서 미래의 혁명투사를 만들고자 했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이 끈질겼으나 작가들이 붓을 꺾지 아니한 보람이 있어서 중국조선족 아동문학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1945년 광복을 맞아 아동문학은 활기를 찾게 된다.연변에서는 주로 채택룡 염호열 이호남 김순기 최형동 등이 활동을 했으며 「연변일보」「길동일보」「동북조선족인민보」「불꽃」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를 했다.목단강 일대에서는 주로 김예산이 발표를 많이 했는데 1949년에는 「건설」이라는 잡지를 편집하여 작품을 게재도 했다.하얼빈일대에서는 김태희 임효원 등이 「인민신보」를 내면서 작품을 게재했다.특히 임효원은 1947년 「어린이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70년대 30여명 활동 그 후 문화대혁명의 혼란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목표아래 중국조선족도 새로운 문단조직으로 가다듬었다.그 결과 아동 문학작가는 거의 30여명에 달했다.발표지도 늘어나 「소년아동」「중국조선족소년보」「별나라」「꽃동산」등이 속속 발행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이처럼 많은 작가와 발표지를 가지면서도 아동문학의 문학성 부진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자아확립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까닭이다.그러므로 1980년대는 모두가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 깊이 반성하기에 이른다.즉 과거처럼 틀에 박힌 작품활동,교시적이고 피상적인 주제보다는현실적이고 자아개발이라는 나를 발견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하여 재고해 가는 과정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의 계급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인위적인 갈등을 설정하여 정치적 교훈을 주는 목적으로 하던 창작정신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이러한 반성문학운동을 업고 궤도수정을 한 것이 다름아닌 중편 소년소설의 등장이다.과거 동시나 동요 위주였던 아동문학이 중편소설의 등장으로 새국면을 맞는다.이처럼 중편소년소설이 등장하자 최소한 아이들의 성격 묘사가 가능해졌다.진정한 의미의 문학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시·음악·무용의 이색만남/「가을저녁 시축제」 오늘 국립극장분수대서

    시와 춤 음악이 함께하는 「가을저녁의 시축제」가 24일 하오 6시 분수대광장에서 펼쳐진다. 국립극장이 마련한 「가을저녁…」은 한국시단의 대표시인들과 무용인 배우 음악인들이 출연하는 보기드문 대형 문화축제.이날은 지난 4월23일부터 매주 토요일 열린 국립극장 문화광장의 올해 마지막 행사이기도 하다. 「가을저녁…」은 국립합창단의 「시인만세」「추억」으로 막을 열어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대거 나서 자작시를 낭송할 예정.서정주가 「국화 옆에서」,조병화가 「내일」,김남조가 「풍경」,신달자가 「가을편지」,구상이 「강가에서」,이근배가 「풀꽃」,허영자가 「9월」,이경희가 「가장 가고싶은 곳」을 소개한다. 시와 음악 무용과의 결합도 다채롭다.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를 국립창극단의 차세대 유망주 정미정이 창으로 부르면 최영미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박해준·육미영 부부의 현대무용과 국립극단 배우 이경성의 낭송으로,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이명진무용단의 「사이섬」과 국립극단의 중견 배우 김재건의낭송으로 선보인다. 소프라노 김인혜의 「내마음」「달밤」,바리톤 최상규의 「이별의 노래」「그리운 금강산」은 가을 정취를 더욱 무르익게하는 대목. 「가을저녁…」은 국립발레단의 화제작 「카르미나 브라나」에 나오는 여성군무 「목장에서」로 2시간 축제의 막을 내린다.274­1151.
  • 견공의 해(외언내언)

    인간이 가장 먼저 사육한 가축은 개다.그 역사는 1만8천년전 구석기후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개가 인간에 의해 사육되었다는 가장 오랜 기록은 기원전 9500년 페르시아의 베르트동굴 벽화에 나타나고 있다. 고대 이집트왕궁에서는 규방의 번견으로 사육되었고 로마시대엔 투견으로,군용견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개가 인간과 친숙하게 된 것은 주인에 대한 특유의 충직성과 의리 때문이리라. 전북 임실군 오수리에는 의견총이란 무덤이 있다.술취한 주인이 논둑에서 그만 잠이 들었는데 불이 나서 잔디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위기의 순간에 주인을 따라간 개가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의 주변에서 뒹굴기를 수십번,주인은 살려냈으나 충견은 타죽었다.개 때문에 목숨을 건진 주인은 개무덤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충직성과 함께 개는 영악하고 지혜롭다.미국에서 한 맹인이 기르는 개가 주인 대신 은행의 현금인출기에서 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얼마전 TV에 방영된 일이 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개를 비천함과 비속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니 아이로니컬하다.「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꼬리 3년 두어도 황모(족제비털) 안된다」는 속담들이 그것을 말해준다.「개떡」 「개살구」 「개쑥」같이 「개」가 붙은 낱말도 천격을 나타낸다. 우리 민속에서는 개가 잡귀와 재앙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왔다. 또 집안에 상서로운 일을 있게 해주는 「행운의 인도자」로도 여겨왔다. 올해는 갑술년 견공의 해다.영특하기로 이름난 진도개며,지난해 연변에서 들여온 북한의 풍산개,그리고 멸종위기의 순토종인 삽사리등이 우리나라 명견들이다. 『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고 했다(윤동주의 시 「또다른 고향」) 어둠을 물리치고 상서로움과 충직이 가득찬 새해가 되기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원해본다.
  • 이어령 전장관 회갑잔치 “전통예술 한마당”

    ◎가야금·판소리·사물놀이 등 어우러져 축하/이대제자 41명이 쓴 회고담 등 책 4권 봉정도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이 화갑을 맞았다.이전장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나이가 이제야 육십인가』하고 되물을 것이다.대학교수로,문학평론가로,신문사 논설위원으로,출판인으로,소설가로,장관을 지낸 행정가로,문명비판가로 그의 이름을 너무 오래전부터 자주 들어온 탓이다.그러나 육신의 나이에 반해 그는 아직도 창창하기만 하다. 「계유년생 바람닭」 이전장관의 화갑연이 3일 하오3시부터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그가 23년동안 몸담은 이화여대제자와 정·관계인사,문화계인사,문인등 그를 흠모하는 각계사람 4백50여명이 모인 가운데 큰잔치로 치러졌다. 이날 화갑연은 지난89년12월 갑작스런 초대 문화부장관직 수락에 따라 교수직을 떠난지 4년만의 「마지막수업」이 치러진다는 언론보도때문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주인공은 『환갑날은 하루 쉬어야지 무슨 강연인가.망년회에 온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그답지 않은 짧은 답사로 끝내 아쉬움을 안겨줬다.그러나 이전장관은 미리 준비한 「별의 관측자가 아니라 별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윤동주의 서시 구조분석과 글을 쓰는 의미」란 제목의 강의록유인물을 통해 『진정한 시인에겐 환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마지막수업」에 갈음하는 여운을 남겼다. 이날 잔치는 황병기의 가야금연주,이매방의 승무,안숙선의 판소리,김덕수패의 사물놀이등 정상급 국악인이 출연해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사위를 선사,식장을 발디딜 틈없이 꽉채운 참석자들의 흥을 돋웠다.이어 이화여대 국문과 제자 41명이 쓴 스승 이어령에 대한 회고담 「영원한 기억속의 작은 이야기」와 제자 학자 31명이 쓴 논문 「구조와 분석」 시편과 소설편 각1권씩,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에 이르기까지 64명의 각계인사들이 쓴 「64가지 만남의 방식」등 무려 1백30명의 필자가 총동원된 책 4권이 봉정됐다. 『사적인 회갑연은 싫다』면서 화갑연을 극구 사양했지만 부인 강인숙교수(건국대 국문과)와 함께 인간문화재 황혜성씨가 정성들여 마련한 전통회갑상에 앉아 두 아들이 올리는 술잔을 받는 그의 모습에서 참석자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끊임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하나를 느꼈을 것이다.
  • 난파 봉선화(외언내언)

    난파 홍영후의 「봉선화」3절이다.『북풍한설 찬바람에/네 형체가 없어져도/평화로운 꿈을꾸는/너의 혼이 예있으니/화창스런 봄바람에/환생키를 바라노라』모진 비바람속에서 조국의 화창한 광복을 비는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져있다. 1920년 그의 나이 23세때 작곡된 이 노래는 삽시에 전국에 퍼져나갔고 일제가 이를 금지곡으로 정하자 입속에서 남몰래 부르는 노래가 되어 부르다가 들키면 간혹 투옥되거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애창되는 「고향의 봄」「옛동산에 올라」「성불사」「그리움」「봄처녀」등 주옥같은 명편들과 어릴때 부른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도 그가 지은 노래다. 뿐만아니라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락계」를 창간했고 조선음락가협회를 창립,실내악의 효시인 「난파 트리오」등 문화불모였던 이 땅에 신문화를 정착시키는 기틀을 마련하면서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독립유공자의 친일행위에 대한 재조사에서 난파의 친일행위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 전시했던 유품을 철거하고 그에대한 내용을 삭제했다.장애자인 운보(김기창)가 일제징용을 담은 삽화 3장을 그렸다고 해서 친일구설에 휘말린 예와 비슷하다. 물론 이런 오점은 육사나 윤동주 한용운과 이상화처럼 한점 부끄럼없이 훼절치 않은 인물에 비유될수는 없다.그당시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위해」국민가요 한두편을 작곡한것이 친일이라면 불절히 살아 숨쉬는 민족혼을 노래로 달래준것은 어떤 공적인지 착잡한 감이다. 그는 1936년 도산 안창호가 이끌던 흥사단 단가를 작곡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었고 심한 고문끝에 죽기전까지 병상에서 시달렸다. 1941년 여름 그는 평소 아끼던 연미복을 꺼내입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마치 먼 연주여행길에 오르듯이.예술가의 애국과 친일과 예술활동의 한계,그 분량속에 묘한 아이러니가 숨겨져있음을 부인할수가 없다.
  • 「한마음 매듭」처럼 다짐한 화합/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

    ◎약속 지키는 지도자·동참하는 국민으로 꽃샘추위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2월의 싸늘한 아침.여의도 광장 국회의사당 앞에는 3만명의 축하객들이 모여 앉았다. 두꺼운 외투의 중무장을 한 축하객들은 가슴에 「한마음매듭」이라는 기념품을 달고 그 매듭이 상징하는 민족의 화합과 단결을 다시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9시50분 궁중아악이 장엄하고도 우아하게 흐르는 가운데 전임 노태우대통령부부가 탄 차에 뒤따라 김영삼 14대대통령부부가 탄 차가 입장하자 축하객은 일제히 일어나 힘찬 박수로 축하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자리에 다시 앉은 다음,나는 단상과 단하를 잠시 둘러보았다. 단상에는 우리돈을 들여 초청해온 외국정치인들의 이색적인 풍경도 별로 없고 이제는 다정한 우리 이웃이 된 전임 대통령 내외와 몇몇 귀빈들이 앉았을 뿐이다. 3만명이 가득 앉아있는 단하의 초청객들 또한 고루고루다.각도와 지방을 대표하는 손님들,장애자로부터 노동자 농민대표,그리고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대학생들,관공서의 직원들,그중에서 꽤 많이 참석한 우리문화예술분야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듯했다.한눈에 권위주의 분위기가 싹 가셔버린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문민시대의 개막을 느낄 수 있었다.그 자리에 앉아 있는 3만여명의 가슴에 맺힌 소원 또한 가지가지이다. 전임대통령들인들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랴만은 새로운 출발에 거는 사람들의 기대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는 문민시대를 맞아 공평하게 좀더 잘 살아보자는 기대와 남북민족통일의 역사적인 시기가 열리고 있다는 열망에서 일 것이다. 식순에 따라 순국선열및 전몰호국용사에 대한 묵념이 있을 때였다.기립해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올려다보고 난후 잠시 묵념에 잠겼을 때,보통때와는 다른 뜨거운 감회가 가슴에 복받치는 것을 느꼈다.남산기슭에서 본 안중근의사의 생명을 바친 나라사랑과 그 비참한 죽음을,윤동주시인의 죽음을 생각하자.저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3·1운동의 피 흘림과 또 어리석었던 6·25의 싸움,월남전에서 판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를.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민족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어 있는 내귀에 신임대통령의 취임사가 뚜렷이 들려왔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 ­ ­ 국민여러분! 오늘부터 정부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청와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일터가 될 것입니다. 청와대는 바로 국민여러분의 친근한 이웃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국민이 일하는 현장,기쁨과 고통이 있는 현장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국민과 함께 기뻐하고,함께 아파할 것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웃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애라고 생각한다.그 고통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려는 대통령이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경제부흥을 했다는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도시락을 못싸가지고 다니는 학교 어린이들이 너무나 많은데 나도 놀랐다. 아직도방한칸이 없어 지하실단칸방에서 몇식구가 겨울이면 연탄가스중독에 몰살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배움에 목마른 소년소녀들이 배우지 못해 죽거나 타락하고 범죄하는 사건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 가진자는 나누어 가지고 나누어 먹고 아는자는 가르치고 바로잡고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 이웃을 위로하고 함께하는 우리사회가 될때,비로소 우리는 공평하게 잘사는 나라,행복한 국민이 될 것이다. 신임대통령의 민족과의 굳은 맹서와 같은 훌륭한 취임사를 듣고 나오며 우리들 마음마음에는 새로운 빛이,새로운 희망이 열려오는듯 기쁨이 넘쳤다. 부디 약속을 실천하는 대통령이 되어주시기 바라며 우리들 국민 또한 함께 뜻을 같이하여 새출발을 할 것을 약속드린다. 하늘의 축복이 나라와 민족과 신임 대통령에게 단비처럼 흠뻑 내리시고 건강과 권투를 빌면서 그자리를 떠나왔다.
  • 이달의 문화인물 윤동주선생

    ◎일제암흑기에 활동,대표적 민족시인/민족슬픔 상징적 표현… 많은 작품 남겨 「12월의 문화인물」에 일제 암흑기의 대표적 민족시인 윤동주선생이 선정됐다. 문화부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고뇌로 가득찬 그의 생애와 이를 승화시킨 주옥같은 시를 널리 알려 민족정신을 되살리기위해 선생이 태어난 12월을 맞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1917년 12월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나 소학교때부터 「새명명」이라는 등사판 잡지를 만드는등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19 38년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한 선생은 교우들과 함께 민족정신과 조국의 독립에 대해 많은 토론과 고민을 했으며 방학때면 용정으로 돌아가 동포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기도 했다.이시절 발표된 선생의 「유언」「아우의 인상화」「서시」「별헤는 밤」등 시들은 교우인 정병욱에 의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집으로 묶여져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선생은 일본 교토의 동지사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하던 19 43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일경에 체포된뒤 징역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부역하다 원인모를 병으로 19 45년2월 옥사했다. 선생은 민족의 슬픔을 지성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남겼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서시」「쉽게 쓰여진 시」「슬픈 족속」「자화상」등이 있다. 문화부가 선생의 달을 맞아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문인협회 연세문학회등과 함께 펼칠 주요기념사업은 다음과 같다. ▲윤동주의 밤:15일 하오4시 문예진흥원강당 ▲윤동주 시낭송대회및 문학축제:11일 하오6시 인켈아트홀 ▲기념강연회 및 시낭송회:11일 하오2시 연세대인문관세미나실 ▲기념도서전:1∼31일 국립중앙도서관 ▲기념특별국악공연:15일 하오7시 국악당소극장
  • 「…싱아…」「문학액범」/박완서 문학인생 담은 책 출간

    ◎「…싱아…」/본인 체험담 다룬 자전적 성장소설/「문학앨범」/맏딸이 본 작가의 삶과 문학 등 실려/형식 특이… 평론계에 큰 반향일으킬 전망 중견작가 박완서(61)씨의 작품론·문학론을 다룬 책 두권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작가 박완서가 3년만에 완성한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출판사 펴냄)와 「박완서 문학앨범」이 바로 화제의 책들. 신작 장편소설「…싱아…」는 70년 발표된 처녀작 「나목」이후 22년만의 두번째 전작소설로 박완서 소설의 원형과 그가 소설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보여주고 있다.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서부터 작가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겪게되는 6·25와 1951년 1·4후퇴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소설은 작가가 당시 체험했던 시대에 대한 증언으로서 글을 쓰게 될 것이란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끝난다. 「나」라는 일인칭 화자의 정신적·육체적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소설은 그러나 기존의 성장소설과는 구별해 「자전적 성장소설」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높다.이는 출생지를 비롯해 가족관계,화자가 살던 서울 동네이름,학교이름등이 작가 자신의 그것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기 때문.또 책 여기저기에 이 책이 자전적인 생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예를들어 「경제정의」지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내 소설중 가장 긴 장편 「미망」을 쓰는데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어 이 소설의 자서전적 형식을 뒷받침하고 있다.이와같은 형식상의 특이점은 「소설=허구」라는 일반 공식에 배치되는 것으로 문단은 물론 평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작가 자신도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밝히고 있듯이 소설「…싱아…」는 기억이나 경험에 소설적인 윤색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로 윤동주및 서정주의 시 「자화상」이나 화가들의 자화상처럼 「소설에서의 자화상」에 해당한다. 문학평론가 홍정선씨도 이를 「자전적 소설이거나 소설의 형태를 빌린 자서전」으로 분류하고 작가의 6·25에 대한 남다른 관심,강인하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상,가족사 소설에 대한 집착등 이소설에서 이미 발표된 소설들의 원형이 발견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설「…싱아…」는 형식적인 면이외에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특히 눈길을 끈다.개성사람 특유의 강한 생활력과 자존심의 화신인 어머니,이에 못지않는 화자의 독특한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또 들풀냄새 풍기는 정감어린 30∼40년대 시골생활과 때묻지 않은 풍부한 정서는 근래 다른 소설들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소설의 특징.한마디로 한편의 서정시나 수채화를 대하는 듯한 편안함과 포근함을 안겨준다. 이밖에 이미 발표된 작가의 여러 소설들처럼 40∼50년대 개성지방의 사회상과 풍속,인심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토속어와 고유어도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제목에 쓰인 「싱아」 역시 개성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마디풀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작가의 고향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어 작가와 고향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함께 출간된 「박완서 문학앨범」은 박완서씨의 맏딸인 호원숙씨가 가까이서 본어머니 박완서의 삶과 문학을 적은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글이 실려 「…싱아…」와 함께 박완서의 인생궤적을 상호보완적으로 고찰할수 있게한다. 웅진출판사는 「…싱아…」와 「문학앨럼」출간을 계기로 오는8일 하오5시30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그의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90년대 한국문학의 방향을 모색하는 문학심포지엄을 연다.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문학평론가 김철교수(교원대)가 「분단시대의 삶과 소설」를,권영민교수(서울대)가 「중산층의 삶과 소설」을,박혜란씨(상명여대 강사)가 「여성의 삶과 소설」을 각각 발표한다.
  • 외언내언

    『씻을 것은 다 씻어버려라/이번 여름 유난히 무더웠던 그 기억도/오는 가을의 맑은 하늘에 씻어라』고 끝맺는 윤석성시인의 「처서우중」.어느 비오는 처서날에 읊었던 듯하다.오늘이 그 처서이다.◆아직도 더위가 가신 것은 아니다.그래도 아침 저녁은 선들선들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섰음을 알린다.처량히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잔명을 아는 울음인 것이리라.이 무렵보다는 좀 지나서인가.귀뚜라미와 대화하는 윤동주시인.『귀뜰귀뜰/귀뜰귀뜰/귀뚜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귀뚜라미와 나와).그는 코스모스와도 친했다.『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옛소녀가 못견디게 그리워/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코스모스).◆방정을 떨어서 좋을 일은 없다.하지만 「조심스럽게」「벼 12년 연속 풍년」설이 나온다.그럴만도 하다.초여름에 좀 가물기는 했으나 그 대신 병충해와 장마 피해가 적다.일조시간이 많다는건 물이 있는한 벼한테는 좋은 것.지금부터도 그렇다.아침저녁은 산들거려도 한낮의 볕은 따가워야 한다.벼 살찌는 소리는 그때 들린다.다른 과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올가을도 정녕 풍성할 것인가.◆남은 걱정은 역시 태풍이다.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비켜 지나간 9호·10호·11호 태풍.엄습해 올 기세를 보이다가 슬쩍 방향을 돌리곤 해온다.태풍은 8월에 불어오는 것이 40%를 넘는다.지난해 큰 피해를 주고 지나간 글래디스도 8월20일부터 24일까지에 걸쳤던 C급 태풍이었다.7월을 넘기고 그 8월까지를 거의 넘어가고 있다.하지만 9월에도 불어닥치는 게 태풍.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제발 무사히 지나갔으면.◆전력이 달리리라 싶어 걱정했던 올여름이었다.그러나 당국의 절전호소에 국민들이 협심하여 위기를 넘겼다.우리는 그럴줄 아는 겨레이다.이제로부터 불어올 시원한 바람.모든 소식이 그 바람 같기를.
  • 외언내언

    『나보기가 역겨워/가실□에는/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진달내□/아름□다 가실길에 □리우리다/가시는 거름거름/노힌 그□츨/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에는/죽어도 아니눈물 흘니우리다』◆1925년에 상재한 「진달내□」에 실려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전문이다.1922년 7월의 「개벽」(25호)에 실린 「원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가령 2련만 해도 그렇다.원전은 『영변엔약산/그 진달내□을/한아름 □다 가실길에 □리우리다』로 되어 있다.3련 또한 차이를 보이는데 책으로 묶으면서 추교를 거쳤음은 당연한 일.지금은 맞춤법을 고친 것이 입입에 애송되고 있다.◆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노래한 시인이라고 말하여지는 소월 김정식.그의 시에는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향수가 어린다.한국혼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사람인 그는 어느 나라에서 빌어온 입상에도 기대어서기를 수긍치 못하고 입상없는 조국의 중압으로 후퇴한 것입니다…』.미당서정주시인은 그의 「소월론」에서그를 가리켜 한국적 시상과 시심과 시정을 지니고 살다간 시인이라고 평하고 있다.◆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인 것으로 나타난다.이는 KBS와 미디어 리서치가 공동조사한 결과로서 나온 것.사실,교육받은 한국사람으로서 이 시를 읽어보지 않고 소년소녀기를 넘긴 사람은 없다 할 것이다.이별이란 소재에다가 한국의 산야에 널려있는 꽃 진달래와 그것도 평안도 사람답게 약산의 것을 짜넣어 발그족족 물들인 시심.한국사람이면 그 향기에 취한다.◆그 다음을 잇는 것이 「서시」(윤동주),「님의 침묵(한용운),「사슴」(노천명)의 순.그 또한 심금을 울리는 시들이다.그런데…,어찧다 「영변의 핵」이 시심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인고.
  • 김소월 「진달래꽃」 “애창시 1위”

    ◎KBS·미디어리서치 공동조사/2위 윤동주 「서시」·3위 「님의 침묵」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와 시인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6일 KBS와 미디어리서치가 공동으로 전국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 결과 드러났다.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우리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성과 연령에 관계없이 김소월의 「진달래꽃」(12.4%)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그 다음으로는 윤동주의 「서시」(7.4%),한용운의 「님의 침묵」(4.6,%),노천명의 「사슴」(2.0%),박인환의 「목마와 숙녀」(1.8%),서정주의 「국화옆에서」,김소월의 「산유화」,이육사의 「청포도」,서정윤의 「홀로서기」가 각각 1.4%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역시 성과 연령에 관계없이 김소월(20.2%)이 가장 높게 응답했으며,그 다음으로는 윤동주(7.6%),한용운(6.6%),박목월(4.8%),서정주(3.8%)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가장 좋아하는 시나 시인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여자(42.25%)가 남자(38.3%)보다 높아 여자가 남자보다 시를 더 좋아할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 춘천 여성문학회(지역문화를 가꾼다)

    ◎“「호반의 도시」에 심은 여인의 시심”/91년 40∼50대 중진10여명 모여 창립/“춘천시단 밀알되자” 활발한 작품활동 『순수한 문학적 열정을 품은 여성들만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기대돼 왔었고 당연히 생겨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의 모임두 백안시하는 일부 사람들도 머지않아 이해하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7월 고경희·김금분·기정순·이영춘씨 등 춘천의 내로라는 시인들이 주축이 돼 발족한 「춘천여성문학회」(회장 이영춘)회원들은 이 모임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한결같이 대단하다. 그도 그럴 것이 「좀더 성숙하고 순수한 문학분위기를 조성해 보자」는 뜻을 처음 모았던 고경희씨등 4명의 시인과 이후 가세한 송순자·원점희·박종숙·한미경씨(수필·동화)와 시인(동시)박영희·이화주씨등 10명의 회원 모두가 각종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 지방의 핵심 여성문인들인 때문이다. 회장인 이영춘씨의 경우 강원일보 기자를 거쳐 76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제3회 윤동주문학상(87)과 강원도문화상(87)을 수상했고 현재한국시협에 중앙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춘천문학의 대모격. 이와 함께 춘천여성문학회 탄생의 주역이었던 고경희씨는 83년 「현대시학」,기정순씨는 90년 계간지 「우리문학」,김금분씨는 91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해 이영춘씨와 함께 이 지역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 박영희(87년 예술계)이화주(아동문학평론)송순자(91년 수필문학)박종숙(90년 수필문학)원점희(89년 시와의식)한미경(91년 수필문학)씨도 수필·동시·동화부문 등단자로 이 지역 각종 문학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들이다. 이 가운데 김금분씨(36)를 제외하곤 대부분 40대후반∼50대초의 연령층인 춘천여성문학회 회원들이 창립이후 보여준 활동은 놀랄 정도다. 지난해 8월 창립후 채 3개월도 안돼 10월1일부터 3일까지 회원 작품 33점을 선보인 첫 시화전을 요선동 선갤러리에서 열었고 그로부터 2개월후인 12월26일 마침내 창간 동인집 「변진 열개의 손가락」을 세상에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동인회에서 장르별로 차별이 이루어지지만 우리모임은 모든장르를 한데묶어 조화해 나간다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물론 다양한 장르의 융화가 쉽지 않겠지만 회원들의 역량을 볼 때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동인들의 모임인 만큼 아직까진 문학을 사랑하는 친목단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다양하고 활발한 춘천문학인들을 엮어나가는 것이 과제』라는 이영춘회장의 희망이다. 강원도 7개시중 유일하게 여성문학동인회를 일구어낸 춘천엔 「삼악시동인회」「수향 시낭송회」「풀잎」「풀무」「강원수필」「산까치」등 크고 작은 문학모임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74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시집 가집을 내놓은 「삼악시동인회」와 86년 발족해 매월 셋째주 토요일 시낭송회를 열어오며 89년엔 전국 최초로 낭송시집을 발표한 「수향시 낭송회」등은 춘천뿐 아니라 타지방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모임들로 꼽히고 있다. 춘천여성문학회는 이같은 춘천의 대표적인 문학모임을 이끌어 오거나 관여해온 여류문인들의 집합체라는데서 더욱 시선을 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장인 이영춘씨의 경우 지난해까지 「삼악시동인회」와 「수향시낭송회」회장을 맡았었고 송순자씨는 YWCA소속 동인회 「풀무」의 회장을 맡고 있다. 강원도내 등단 여류시인회인 「산까치」에는 이영춘·고경희씨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른 모임에도 춘천여성문학회 회원들이 모두 리더 혹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적지 않은 문인들이 모여 살고 있으면서도 불협화음없이 어우러지는 춘천.호반도시 춘천을 무대로 태어난 춘천여성문학회 회원들은 『그래서 자신들의 모임에 대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 「문화인물」 선정방식 바뀐다

    ◎문화부,3월부터 연간단위로 선정/올해 모두 10명 발표… 생존인물 제외 문화부가 벌이고 있는 「이달의 문화인물」사업이 3월부터는 연간단위로 선정되어 더욱 짜임새 있게 기획된다. 이에따라 「3월의 문화인물」부터 12월까지 모두 10명의 문화인물이 선정,발표됐다. 문화부는 그동안 「이달의 문화인물」이 바로 전달에 선정됨에 따라 준비기간이 짧았던 단점을 시정하기 위해 문화예술계와 교육계,언론계인사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정부각부처 및 시도교육청 등 3백군데로부터 취합된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문화인물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달의 문화인물」은 민족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탄생 또는 서거한 날,혹은 주요업적을 남긴 달을 참고했으며 생존인물은 제외됐다. 문화부는 내년도 「이달의 문화인물」로 올해 상반기안에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이달의 문화인물」은 1월에는 퇴계 이황,2월에는 겸재 정정이며 3월이후는 다음과 같다. ▲3월 연암 박지원 ▲4월 우장춘 ▲5월 신사임당 ▲6월 서애 유성용 ▲7월 일연 ▲8월 난파 홍영후 ▲9월 우현 고유섭 ▲10월 한뫼 이윤재 ▲11월 도산 안창호 ▲12월 윤동주.
  • “7순 등단” 시심 활짝(이사람)

    ◎“황혼에 반추하는 인생·문학” 구창본할머니/“나 알지못한 어느 길… 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6·25상처” 3남매 홀로 키운 역정/한의 삶 진솔한 시구로 엮어 승화 칠순의 할머니가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월간 「문학공간」 7월호에 추천신인상을 받고 뒤늦게 시심을 불태우고 있는 구창본할머니(70·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405의 11). 『늘그막에 큰 기쁨입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건 아니었어요.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지요』 지난 4월 문학공간사에 시 10편을 투고했던 것이 이같은 행운을 불러올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구씨는 아직도 문단등단 사실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몇십년 전부터 대학노트 가득 시작메모를 써온 그가 본격적인 시 창작에 뜻을 두기는 올해초부터. 실제 나이보다 호적 나이가 적은 탓에 지난해 8월 37년간의 국민학교 교사직을 정년퇴임하고 올해 1월 동아문화센터 「시 창작교실」에 수강생으로 등록하면서였다. 그러나 구씨를 정작 시인이 되게 만든것은 알량한 시 창작기법의 교습보단 어렵고 힘들었던 그의 삶 자체였다. 6·25때 남편을 잃은 그는 홀로 3남매를 키우며 한 많은 한국 여인의 삶을 살아왔다. 국민학교 교사의 박봉으로 간신히 삶을 꾸려왔던 그는 정말 삶이 어려울땐 시를 외웠다고 회고한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말라/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멀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것은 삽시간에 지나간다/그리고 지나간것은 모두 그리워진다』 그는 실제로 푸슈킨의 시 「삶」을 기도문처럼 막힘없이 암송해 보였다. 구씨의 삶은 푸슈킨의 시를 외우며 스스로 달래야 할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스물두살때 농사를 짓는 건실한 부여 청년과 결혼,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그는 셋째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가 있던 사이 6·25를 맞았다. 처가에 머물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남편을 전쟁의 아비규환속에서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면서부터 그의 어려운 삶은 시작됐다. 가난속에서도두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지만 6·25때 영양실조에 걸린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아 25차례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을 갖게 된 딸은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의 맺힌 한은 어느해 음력 섣달 그믐에 썼다는 「설눈­당신에게」란 제목의 시에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나타나 있다. 『나 알지 못한 어느 길/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돌아온다 기약없는/당신 미워 미워 미워』 구씨가 지난해 정년퇴직한 곳은 서울 강서구 양화국민학교이지만 40년 가까운 국민학교 교사생활중 서울학교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2년 뿐이었다.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되면 일찍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에』 평교사를 고집하며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학교들을 전전했으며 때론 출퇴근 시간이 7시간씩 되는 학교에 부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직이 단순한 생계수단만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교실문을 들어서면/마음 누르는/근심 걱정 사라지고//초롱한 눈망울/나를 지켜 보고/어찌하다가 눈과 눈이/마주치지 못하면 아뿔싸/섭섭함 금치 못해/금방 시무룩한꼬마천사//…』(「교사의 노래­교실은 나의 천국」에서) 「문학공간」의 신인상 심사를 맡았던 김규동·신동집시인은 그의 시가 기교보다는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그 자신은 『내 생활,나의 역사를 담아 본것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거짓없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타인의 공감을 얻을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경이다. 그것은 고통스런 삶을 자살로 끝내고 싶었던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른 그 정신의 치열함과 진솔함에서 우러 나오는듯 싶다. 철도공무원인 큰 아들 김대경씨(45),개인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 의경씨(41)와 3명의 손자들,그리고 정신이 맑을때는 레이스를 뜨는 딸 효경씨(43)와 함께 이제는 단란한 가정의 할머니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수도 있지만 구씨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다. 『윤동주의 「서시」나 푸슈킨의 「삶」처럼 영원토록 남을 시를 쓰고 싶다』는 구할머니는 최근 「화염병」「마약」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쓰고 있다.
  • 녹용 억대 밀수선원 18명 수사

    【부산】 부산본부세관은 20일 시가 1억2천여만원어치의 중국산 녹용 등 밀수품을 숨겨 들어온 부산시 중구 중앙동4가 흥아해운소속 동남아정기여객선 화평동남호(1천tㆍ선장 윤동주ㆍ52)를 급습,배밑창에 숨겨둔 중국산 녹용 50㎏,참깨 3천5백㎏,밍크목도리 50개 등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이 배 선장 윤씨 등 선원 18명을 연행 조사중이다. 윤씨 등은 홍콩에서 잡화 1천4백t을 수입하면서 이들 밀수품을 미리 한국에서 갖고 나간 국산화공약품 부대속에 넣어 내국화물인 것처럼 위장,이날 새벽3시쯤 부산항에 들어왔다가 적발됐다.
  • 45돌 광복절 기념식

    제45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15일 상오 충남 목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박준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민자당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 및 국무위원,이강훈광복회회장 및 광복회원,이산가족,주한외교사절 등 각계인사 3천8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정부는 이날 기념식에서 독립운동에 공이 많은 고 최동오선생(상해 임정 국무위원)과 고 윤동주시인등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는등 독립유공자 6백13명을 포상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겨레의 집 뒤뜰에서 각계 초청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기념연회가 베풀어졌으며 제7전시관 앞에서는 북한개방을 촉구하는 1천만명의 서명부를 진열하는 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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