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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보검, 기상캐스터 깜짝 ‘데뷔’…시청자들 “날씨 안 보이고 얼굴만 보여…”

    박보검, 기상캐스터 깜짝 ‘데뷔’…시청자들 “날씨 안 보이고 얼굴만 보여…”

    배우 박보검이 일일 기상 캐스터를 맡았다. 지난 26일 박보검은 JTBC ‘뉴스룸’ 일일 기상캐스터로 출연해 내일 날씨 소식을 전했다. 박보검은 태극기 문양이 달린 슈트 차림으로 등장해 “초여름, 새로운 시작이 떠오르는 계절이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저는 이번 주 토요일부터 방영되는 JTBC 드라마 ‘굿보이’에서 복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특수팀 경찰 ‘윤동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라며 “오늘은 특별히 제가 날씨를 전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보검은 6월을 앞두고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식과 함께 일부 지역에 소나기가 내릴 예정이라는 등의 예보를 전했다. 그는 약 1분 30초가량의 예보를 이어갔고 정확한 발음, 안정적인 말투를 선보이며 수준급의 뉴스 진행 실력을 보여줬다. 시청자들은 이를 두고 “너무 잘 생겨서 날씨 예보가 안 들린다”, “내일 날씨는 그냥 다 좋을 것 같다”, “박보검은 기상캐스터도 잘한다”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앞서 배우 김민주도 지난해 11월 ‘뉴스룸’에 기상캐스터로 등장해 자신을 수화로 소개하며 날씨 예보를 전했다. 김민주의 출연은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청설’의 홍보 일환이었다. 그룹 NCT 마크, 트와이스 다현 등도 신곡 홍보를 위해 일일 기상캐스터로 출연한 바 있다. 박보검은 오는 31일 처음 방송되는 JTBC 드라마 ‘굿보이’에 출연한다. ‘굿보이’는 특채로 경찰이 된 메달리스트들이 비양심과 반칙이 판치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 코믹 액션 청춘 수사극이다.
  • 윤동주 숨결 느끼며 문학산책…종로구 ‘동주와 마실’

    윤동주 숨결 느끼며 문학산책…종로구 ‘동주와 마실’

    서울 종로구는 광복 80주년과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를 맞아 다음 달부터 윤동주문학관 일대에서 ‘동주와 마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23일 밝혔다. 곳곳을 탐방하며 해설사로부터 윤동주와 동 시대 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2022년 ‘동주와 새로운 길’로 첫선을 보인 이후 작년부터는 문학을 중심으로 한 ‘동주와 마실’로 발전시켰다. 올해 프로그램은 전문적인 해설로 문학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동네 책방과 연계해 지역 상생과 문화 향유에 초점을 뒀다. 프로그램은 ▲긴 마실(윤동주문학관~시인의 언덕~초소책방~수성동계곡 등) ▲짧은 마실(윤동주문학관~무계원) ▲동무 마실(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등 세 가지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인 올해, 문학사에 의미 있는 종로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안중근 의사 유묵 ‘녹죽’ 경매서 9억 4000만원에 낙찰

    안중근 의사 유묵 ‘녹죽’ 경매서 9억 4000만원에 낙찰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이 9억 40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은 22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된 ‘제183회 미술품 경매’를 통해 안 의사의 유묵, 조일수호조규 관련 외교문서 일괄,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초판본이 새 주인을 만났다고 밝혔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옥션은 일제의 조선 침탈과 패망,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빛났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작품을 포함해 선보였다. 안 의사의 녹죽은 ‘푸른 대나무’를 뜻하는 말로 1910년 2월 사형 집행을 앞둔 그의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추정가 3억~6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금액에 낙찰됐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윤동주의 유고시집 초판본은 1150만원에, ‘강화도조약’이라고 알려진 조일수호조규의 부록과 무역규칙 체결 과정에서 양국 관리들이 필담을 통해 주고받은 실무적 대화와 조율의 과정 등을 담은 외교문서 일괄은 5000만원에 낙찰됐다. 화제가 됐던 만해 한용운의 노년 서풍이 깃든 ‘심우송’ 병풍은 출품이 취소됐다.
  • 책으로 영화·연극으로 기억하다

    책으로 영화·연극으로 기억하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나. 304명이 희생된 2014년 4월 16일로부터 11년이 지났건만,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상처의 딱지도 고스란히 남았다.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아픈 자리를 영화와 연극, 책은 꾸준하게 메우려 노력한다. ●세월호 참사 다룬 다큐멘터리 두 편 2일 개봉한 ‘침몰 10년, 제로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식 기록에 의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검찰은 참사 직후 진행된 수사를 통해 세월호 침몰에 조타장치 고장, 과적, 수밀문 개방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배 자체의 결함’(내인설)과 ‘외력 등 다른 가능성’(외력설) 등 두 가지 내용을 함께 담은 종합 보고서를 내놨다. 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거치면서도 기술적 입증 한계로 정확한 침몰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다. ‘침몰 10년, 제로썸’에서는 모호한 결론에 반박하고, 외력설을 더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솔지 감독은 선박 노후, 결박 불량, 조타수 미숙, 불법 증축 등 여러 가능성을 따진 뒤 외력설로 향한다. 사건 기록을 원본부터 재검토하고 희생자 부모들, 손석희 전 JTBC 앵커,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 당일 키를 잡았던 조타수 등과의 인터뷰도 곁들인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배급사를 찾지 못하다 시민 1500여명이 배급위원으로 나서며 어렵사리 개봉했다. 30일 개봉하는 ‘리셋’은 참사 이후 여정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한국이 어떻게 변하고, 기억해 왔는지 되돌아본다. 배민 캐나다 윈저대 영화과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사건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철저한 조사와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되짚는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애도하는 노란 리본과 유가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세월호가 인양돼 지상에 올라왔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런던 프레임 국제 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부분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관객 함께한 연극… 모두 8편 무대에 세월호 참사를 무대에 올린 연극제 ‘바라, 봄’이 오는 27일까지 이어진다. 4·16 재단 주최로 모두 8편의 작품이 주말마다 관객을 기다린다. 올해는 경기 안산 단원구 경기도미술관과 협업해 미술관 전시실과 로비, 야외 공간을 무대로 활용한다. 12, 13일에는 배우들이 관객과 함께 어울리면서 펼치는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를 만날 수 있다.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실연하는 형식이다.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즐겁게 놀다가, 어느 순간 이곳이 세월호의 현장임을 깨닫고 천천히 세월호의 현재를 마주한다. 2017년 초연 후 여러 차례 앙코르가 이어졌다. 앞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이 직접 무대에서 자식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4·16 가족극단의 ‘별망엄마’와 마당극 형식으로 미술관 야외 공간에서 진행한 공연 ‘쌈 구경 가자’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외에도 5·18 당시 여성들의 서사를 다룬 ‘환생굿’, 마임과 무용, 인형극을 결합한 ‘3인 3색 몸짓’, 이어도를 배경으로 상실과 치유를 다룬 ‘이어도 사나’,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와 국가를 이야기하는 ‘늙은 소년들의 왕국’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무대를 채울 예정이다. 4·16 재단 홈페이지에서 예매 및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교훈 삼아 다른 참사까지 다룬 책 세월호를 비롯해 다른 참사에도 눈을 돌린 도서 2권이 눈에 띈다. ‘시가 세상에 맞설 때’(마디북)는 김남주, 신경림, 최승호, 황지우, 윤동주, 도종환 등 시인들의 저항시 50선을 뽑아 엮었다. 김주대의 ‘유류품’과 허은실의 ‘설움이 나를 먹인다’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문재의 ‘이제야 꽃을 든다’는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는’ 이태원 참사의 실상을 고발한다.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넘어 제주 4·3, 5·18민주화운동, 전태일 분신 항거, 용산 참사 등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하는 시인들의 마음을 음미할 수 있다. 예소연 작가의 ‘영원에 빚을 져서’(현대문학)는 혜란과 동, 석이가 캄보디아 프놈펜 바울학교에서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도중 세월호 참사를 TV로 본 뒤 겪는 변화를 따라가는 소설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이들이 접한 세월호 참사는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혜란, 동과 달리 슬픔의 길이가 유독 길었던 석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취를 감춘다. 동과 혜란은 사라진 석이를 찾아 무작정 캄보디아로 떠난다. 반복되는 참사가 남긴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그려 낸 작품이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날마다 부활하는 시인

    [나태주의 풀꽃 편지] 날마다 부활하는 시인

    그날은 수원 쪽에 일정이 잡힌 날이었다. 재바르게 서둘면 두 군데 일정을 소화할 것 같아서 천안 쪽에도 그러마 말을 전하고 천안 쪽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 장소는 독립기념관. 다만 윤동주 선생에 대한 행사가 있어서 가는 길이거니 했다. 지지난해 윤동주 문학상을 받은 일이 있고 평소 윤동주 선생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냥 그런 행사장이거니 하고 갔던 길이다. 그러나 행사장에 도착해 나는 적이 놀랐다. 내가 찾아간 행사는 다름 아닌 ‘윤동주 순국 80주년 추모제’였던 것이다. 왜 천안, 그것도 독립기념관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모제가 열릴까. 까닭이 없을 수 없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침략기 만주의 연변 명동촌(현 중화민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 즈신진 밍둥촌)이란 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2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요절 시인이다. 그동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윤동주 시인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 잃은 식민지 시절, 순수한 우리 한국말과 한글로 샘물과 같이 맑은 시를 쓴 시인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윤동주 시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은 채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한국에 호적이 없었던 분이다. 정부에서 뒤늦게 깨닫고 광복 이전에 후손 없이 사망한 독립유공자 156분을 기려 독립기념관 주소로 국적을 삼아 드리는 사업을 벌였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윤동주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2022년 7월 1일.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매우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모제가 열렸던 것이다. 아, 그런데 저 ‘80주년’이란 숫자는 또 무언가? 그렇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것이 광복되던 해인 1945년이었으니 그로부터 8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2월 16일, 딱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버린 바로 그날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행사는 윤동주 시인의 제삿날 같은 행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짧다. 그냥 거기까지다. 생각해 보니 내 나이도 80. 태어난 해가 1945년이어서 그렇다. 또 나의 생일은 3월 16일. 그래서 나는 윤동주 시인이 돌아간 뒤 한 달 만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걸 까마득 잊어버리고 오늘이 무슨 날이고 왜 이런 행사가 천안의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지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졌다. 사람은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거나 부러워하는 대상과 아주 미세하게라도 연결이 되고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 점을 내세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긍심의 원천으로 삼으려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래저래 윤동주 시인은 대단한 시인이다.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윤동주 시인은 해마다 다시 태어나고 날마다 다시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는 시인이다. 실상 시인이 정말로 시인이 되려면 그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독자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활을 거듭하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활하지 않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우리나라 작고 시인 가운데 그렇게 부활하는 첫 번째 시인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김소월 시인. 그런 걸 나는 전국의 중고등학교로 강연 다니면서 학생들로부터 들어서 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행사의 차례가 되어 내가 쓴 추모시를 읽으면서도 여러 차례 울먹거려야만 했다. 가슴속으로부터는 아, 윤동주 선생! 하는 말이 솟아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같은 그 어떤 감정이 가슴에 차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일본 학교인 도시샤대학에서 윤동주 시인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드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학 설립(1875년) 이후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한 결정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그 또한 늦은 대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태주 시인
  •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일본을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학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일본을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학

    삼일절 폭설이 내 발을 묶어 이용덕의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를 읽게 되었다. 이용덕은 재일교포 3세대며 나는 한국어 번역본을 읽었다. 책은 자이니치(재일교포)의 다양한 삶을, 가까운 미래를 상상해 쓴 소설이다. 일본 자이니치들의 삶, 그들의 들쑥날쑥 이야기. 나는 이용덕의 소설을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구분하지 않으련다. 엄연한 일본 문학이다. 제목이 너무 강력해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머뭇했으나, 작가 이용덕의 넉넉한 세계관은 나의 기우를 가볍게 넘어 버렸다. 글을 시작하며 작가는 “아아 일본, 일본인은, 정말로 구제 불능의 차별 국가, 차별적 민족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제 붓이 패배했다는 뜻이겠지요. 그게 아니라, 이건 한국에서도 혹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체계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제 붓이 얼마간의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라고 썼다. 저자가 밝혔듯 소설 제목은 1923년 관동 대지진 혼란 속에 일본인 자경단이 이웃 조선인을 학살할 때 ‘죽창’을 사용한 역사적 사실을 의미한다. 작가는 시대의 모습 앞에서 한국인·일본인 혹은 피해자·가해자로 구별하지 않는다. 작가는 “비극적인 체계”로 비극을 해부한다. 인간의 굴레,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무사유(생각 없음)의 범죄를 묘사하는 데 그쳤으나, 소설가 이용덕은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 본질의 구조를 사고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형의 방에 꽂혀 있던 일본 문학 선집. 시마자키 도손,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 등의 소설은, 중학교를 입학하며 만난 이광수, 심훈, 김동리의 장단편 작품들과 어떤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마자키 도손의 ‘초연’에 나오는 “앞머리에 꽂은 꽃빗을 꽃다운 그대라 생각했네”의 감흥은 아직도 나에게 김소월의 진달래꽃, 박목월의 나그네와 다르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 곧잘 한시를 지어서 내게 보내는 친구가 있다. 나도 한자 4자 혹은 7자 절구로 뜻 화답은 하지만 주고받는 한시의 라임에는 통 자신이 없다. 문자로 이해는 하나 중국어 음과 운율에 익숙하지 않으니 이백과 두보도 ‘뜻’으로만 읽는다. 아쉽게도 바이런, 보들레르의 시에서도 나는 아무런 흥취를 느끼지 못한다. 번역된 ‘말테의 수기’를 읽고 또 읽어도 릴케의 서정은 어쩔꼬, 터럭 하나 내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어는 다르다. 바쇼의 하이쿠, 시마자키 도손의 시는 한국어 번역을 읽어도 리듬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몸이 일본시의 리듬에 편안히 반응하듯 거개 일본인들에게도 한국 시의 운율이 다르지 않게 전달되리라. 교토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윤동주의 ‘서시’와 정지용의 ‘압천’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윤동주의 ‘서시’ 첫 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한국어로 또 일본어(死ぬ日まで空を仰ぎ一点の恥辱なきことを·시누히마데 소라오 아오기 잇텐노 하지나키 고토오)로 읽어도 시의 가락에 별반 차이가 없어 묘하다. 오늘날 한국인과 일본인이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우리 민요와 일본 시 운율의 흡사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시에서 한일 두 나라 운율의 흡사함을 보며 까마득한 날 아마 우리는 실제 동족이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한다. 동북아시아나 세계 지도를 펼쳐 보자.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안보, 경제, 외교, 문화를 의제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러함에도 대중 정치인, 방송 언론 심지어는 직업 외교관마저 상대국에 관해 혐오 발언을 태연히 내뱉는다. 가장 도타워야 할 이웃 간에 주고받는 선동과 혐오의 언어에 망연자실하다가 자이니치 이용덕의 글을 만났다. 문학이 이런 힘을 가졌으리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용덕의 세계관은 탈민족적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문제에 천착했던 오에 겐자부로의 세례를 받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승리한 작가의 붓. 이용덕을 배출한 일본 문학의 활연함에 나의 경의를 보낸다. 오겡키 데스카? 김민식 내촌목공소 고문
  • [특파원 칼럼] 분열의 시대, 윤동주를 보라

    [특파원 칼럼] 분열의 시대, 윤동주를 보라

    하늘과 바람과 별을 사랑한 시인 윤동주 추모 열풍이 일본 곳곳에서 이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다닌 교토 도시샤대는 시인의 서거 80주년을 기념해 명예박사를 추서했고, 그가 짧게 몸담았던 릿쿄대에서는 교정에 고인의 시비를 세우기로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말했던 청년 윤동주를 통해 많은 일본인이 침략 전쟁의 가해자였던 당시 국가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의 양심을 점검하고 있는 데서 큰 위로를 받았다. 두 대학은 기독교를 토대로 세워진 미션 스쿨이다. 윤동주는 기독교인으로 종교적 색채가 짙은 시들을 다수 남겼다. 그런 그가 신앙을 등진 때가 있었다. 릿교대에서 윤동주 추모회를 이끌어 온 유시경 신부는 “믿음의 본질보다 안위를 택한 분열된 교단을 바라보며 윤동주도 회의감을 품었을 것”이라고 했다. 1940년대는 한국 교회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꼽힌다. 일제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 낭독을 강요하며 민족의 정신을 약탈하려 했다. 교회조차 무릎을 꿇었다. 1938년 조선감리교회를 포함해 대다수 교단이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다. 한국 교회는 이 사건을 두고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윤동주가 실망한 분열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듯하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혐오를 전면에 내세우며 각자의 이득을 꾀하는 시대.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서 나타난 폭력성, 극우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등 한국 사회의 병폐에 종교가 앞장서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들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유 신부는 “심층 종교는 자신의 복을 추구하는 표층 종교와 달리 종교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좋은 세상에 살도록 하는데 나도 그 일원이 되도록 세상을 같이 보게 된다”고 했다. 비록 믿는 신이 다르더라도 종교를 통해 인간의 구원을 좇는 ‘목표’가 같은 종교인과는 대화가 통한다고 했다. 그러나 속내가 다를 때, 목표가 다를 때 대화는 겉돌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몸만 겨우 뉠 수 있는 다다미 6장의 육첩방(약 3평)에서 남의 나라에 의해 억압된 시대, 금지된 한글로 몰래 시를 쓰면서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청춘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이토록 폭력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비판할 수 없지 않을까. 청년 윤동주를 지킬 ‘어른’은 어디에 있는가. 둘로 찢어진 진영은 각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길래 이토록 상대를 증오하고 배척할 수 있는가. 우리의 목표는 국가의 번영과 이웃의 행복에 있는가, 자기 진영의 이득에 있는가. 극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극단의 정치에 신물이 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끊임없는 자기 성찰,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명희진 도쿄 특파원
  • 청년동주 못 지킨 시대책임, 시인동주 한일이 찾은 정신[월요인터뷰]

    청년동주 못 지킨 시대책임, 시인동주 한일이 찾은 정신[월요인터뷰]

    일본 릿쿄대에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추모 모임을 만든 유시경(62)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이하 모임) 공동대표는 “‘청년 동주’는 한일이 함께 찾아낸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불운한 시대를 살았던 청춘 그리고 그 청춘의 꿈을 지켜 내지 못한 책임을 지금 우리 시대의 책임으로 통감하는 일본인들이 있다”며 “시인이 남긴 자기 성찰적 시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늘과 별을 사랑했던 일제 저항 시인이자 한 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견뎌 낸 청춘. 올해는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 지 80년을 맞은 해다. 시인의 기일(2월 16일)을 기념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 공동대표를 지난 1일 오사카 가와구치 기독교회에서 만났다. 성공회 신부인 유 공동대표는 2000년 릿쿄대 교목으로 부임해 2008년부터 추도 모임을 이끌고 있다. 2010년엔 윤동주 국제장학금 설립을 주도했다. -윤동주 시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윤동주는 비록 릿쿄대에서 한 학기를 다녔지만 그의 발자취가 내가 일하던 교목실과 닿아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영문과 교수이자 교목이었던 다카마쓰 다카하루 신부가 윤동주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첫 한국인 교목이자 이방인으로 살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창밖의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쉽게 씌어진 시). 시인의 심경이 공감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로나 알던 윤동주를 일본에 와서 다시 접하게 됐다.” -모임을 발족한 배경은. “김소월과 이육사는 유명한 데 반해 윤동주를 아는 일본인들이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릿쿄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한 교수도 윤동주를 모를 정도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와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 붐으로 한류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기였지만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만 주목받는 현상의 목마름을 느꼈다. 릿쿄대 문학부 창립 100주년의 일환으로 윤동주 추도회를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윤동주의 고향 방문 모임을 추진하는 일본인들의 모임과 연결됐고, 릿쿄대 졸업생인 야나기하라 야스코(모임 공동대표)와 의기투합하게 됐다.” 윤동주는 1939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해 4월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하지만, 학도병 징집 등 제국주의의 광풍을 피해 10월 교토 도시샤대에 편입한다. 릿쿄대에서 그는 일제강점기 금지된 한글로 시를 썼다. ‘쉽게 씌어진 시’, ‘흰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봄’ 등이 릿쿄대 재학 중에 쓴 시다. 윤동주 시인과의 만남릿쿄대 첫 한국인 교목으로 부임문학부 창립 100주년 추도회 제안추모 예배·일본어 시 낭독회 시작유학생 독립운동 참여 흔적 찾아-윤동주는 기독교인이었다. “한때 신앙을 등진 적도 있지만 윤동주는 끝까지 크리스천으로 시를 썼다. 릿쿄대에는 1919년 세워진 채플이 있다. 윤동주가 입학한 1942년에도 분명 학교 안에 교회가 존재했다. 혹시 어딘가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의 기도하는 마음을 추모하면서 예배를 드리자, 또 그가 남긴 시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낭독하자 그런 형태로 (추모회가) 시작됐다. 윤동주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그가 예배를 드린 흔적이 남아 있나. “아직 찾지 못했다. 1942년 말 학교 예배당이 폐쇄됐다. 일본 제국주의가 교회를 쌀 창고로 바꿔 버렸다. 이 시기가 윤동주가 학교에 다니던 시기와 겹친다. 당시 대학 길 건너편에 있었던 신학교 예배당을 다녔을 가능성도 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곳은 지금 불에 타 사라졌다.” -윤동주는 일본 사회에 어떻게 알려졌나. “추모식 준비를 하면서 윤동주 연구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많은 일본인을 만났다. 고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 명예교수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 전인 1985년 중국 옌볜대 재직 당시 발품을 팔아 시인의 묘를 찾아냈다. 윤동주의 재판 기록을 찾아낸 것도 일본인(우치고 쓰요시)이다. 이런 일본인에 의해 윤동주가 단순한 서정 시인이 아닌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한 저항 시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국내에서는 당시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때다.” 윤동주 연구에 몰두한 일본인일본 사람들이 작품과 저항 발굴시인 서거 80년 맞아 CD 2집 발매자연의 언어로 인간의 고민 푼 詩日, 그의 자기성찰적 면모 좋아해1943년 7월 윤동주는 사촌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1917~ 1945)와 함께 경찰에 체포된다.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윤동주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복역 중 사망했다. ‘급성 후두염’이었다는 형무소의 기록이 남아 있지만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됐다는 설도 있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윤동주 연구에 몰두했던 일본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야나기하라도 윤동주의 필적이 담긴 책을 들고 20년 넘게 고서점가를 돌고 있다. 릿쿄대 출신인 아마누마 부부는 자비를 들여 한일 양국어로 낭독한 CD ‘윤동주 시집’을 만들었다. 윤동주는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찾아내고 지켜낸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윤동주의 작품과 저항, 그의 인생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유 공동대표는 시 낭송 CD의 한국어 낭송을 맡았다. 그에게 제작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묻자 “제작비 절감 차원이었다”며 웃었다. 일본어 낭송은 일본 극단 ‘피플시어터’ 소속의 연극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서 윤동주 시인 역을 맡았던 배우 니노미야 사토시가 했다. 2010년 25편의 시가 담긴 1집이 첫선을 보였고, 올해 시인의 서거 80년을 맞아 2집이 새로 발매됐다. -일본인들은 왜 윤동주의 시를 읽는가. “윤동주의 시는 하늘, 바람, 별 등 보편적인 자연의 언어로 쓰여 있다. 한국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아닌 이런 언어를 가지고 인간의 고민을 풀어낸다는 감상이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은 윤동주의 자기성찰적인 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윤동주의 시가 60개 국가에 번역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미안한 마음도 있다.” 과거가 아닌 지금의 윤동주현재 ‘또 다른 윤동주’ 생기지 않게유학생 대상 국제교류장학금 조성학생 군사동원 동조했던 학교 ‘반성’내년 낭독회에 한강 작가 와줬으면-역사에 대한 반성인가. “공부를 위해 일본까지 건너왔지만 윤동주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그 불운한 시대,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청춘 그리고 그 청춘의 꿈을 지켜내지 못한 시대의 책임. 이게 지금도 우리의 책임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윤동주를 통해 지금 우리 시대가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자고 한다.” 유 공동대표는 시에 녹아 있는 시인의 ‘자기성찰적’ 요소가 지금까지 윤동주의 시가 읽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동주의 시는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을 깨우치는 각성제가 된다”며 “윤동주를 기념하고 추모하고 있지만 사실은 윤동주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추모의 마음을 뛰어넘는다. “과거의 윤동주가 아닌 지금의 윤동주가 중요하다. (추모회는) 윤동주를 결코 영웅시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절 윤동주와 같은 불행한 청춘이 있었듯이 지금 또 한 명의 윤동주를 만들지 않는 것이 우리 시대의 책임이라고 본다. 그래서 릿쿄대에 윤동주 국제장학금을 만들었다. 월 60만원씩 10명, 연 6000만원의 기금을 학교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지난해부터 문호를 개방해 모든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이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유 공동대표는 “학생을 보호해야 할 대학이 보호는커녕 군사 동원에 동조하니 윤동주가 릿쿄대를 포기한 것 아니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점을 깊이 반성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학교의 의지를 드러내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한국 유학생들의 공부를 지원하자고 학교에 제안하게 됐다”고 했다. 릿쿄대는 2년이란 긴 시간 논의를 거듭해 2010년 4월 윤동주 국제교류 장학금을 신설했다. “내년 추모 낭독회에는 작가 한강을 초청하고 싶은 소박하고 큰 욕심이 있다. 윤동주의 삶은 ‘과거가 우리의 현재를 살린다’는 한강 작가의 표현과 꼭 맞닿아 있다. 그런 그가 청년 윤동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의 시를 낭독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올해 80주기 저항시인 윤동주…생성형 AI로 다시 깨어나다

    올해 80주기 저항시인 윤동주…생성형 AI로 다시 깨어나다

    올해 80주기를 맞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를 국내외에 소개하는 다국어 영상이 제작됐다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28일 밝혔다. 이 영상은 3·1절을 앞두고 만들어졌으며 배우 김남길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서 교수는 한국어(https://youtu.be/1gnaBE5wcrQ)와 영어(https://youtu.be/hWTsf0DMFKQ) 버전의 5분짜리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서 교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따르면 이 영상은 KB국민은행 ‘대한이 살았다’ 캠페인의 하나다.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영상은 조망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윤동주를 재현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점차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영상으로 이들의 삶을 널리 알리는 것은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영상은 유튜브 등 각종 SNS로 전파 중이며, 세계 주요 한인·유학생 커뮤니티에도 공유했다”고 밝혔다.
  • 김종삼 시문학상에 전동균 시인

    김종삼 시문학상에 전동균 시인

    제8회 김종삼 시문학상 수상자로 전동균(63)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이다. 전 시인은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등을 발표했다. 2014년 백석문학상, 2018년 윤동주서시문학상, 2019년 노작문학상을 받았다. 김종삼 시문학상은 한국 순수시의 지평을 넓힌 김종삼(1921∼1984) 시인을 기리고자 2017년 제정됐다. 등단 10년이 넘은 시인의 전년도(심사일 기준) 출간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시상식은 오는 4월 4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다.
  • ‘틱톡 난민’ 몰려간 샤오훙수에 “한국은 도둑 국가” 억지 주장 난무

    ‘틱톡 난민’ 몰려간 샤오훙수에 “한국은 도둑 국가” 억지 주장 난무

    최근 ‘틱톡 난민’ 대거 유입서경덕 “美누리꾼 세뇌 우려” ‘틱톡 난민’을 자처한 미국 누리꾼이 대거 유입된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영문명 레드노트)에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를 훔쳐 가고 있다”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샤오훙슈는 중국에서 많이 쓰는 SNS 중 하나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억 명에 달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최근 중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누리꾼의 제보를 받고 샤오훙수를 살펴본 결과 이런 게시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일부는 ‘한국은 도둑 국가’라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며 “‘한국을 믿지 말라’, ‘김치의 원조는 중국’ 같은 내용의 글과 영상이 퍼지고 있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샤오훙수는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주로 이용됐고 사용자도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지만, 미국 누리꾼이 대거 갈아타면서 자칫 이런 억측에 세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보니 중국 누리꾼의 심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행위라 볼 수 있다”며 “이처럼 삐뚤어진 중화사상은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중국의 문화공정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교수는 지난 16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윤동주마저 중국인이라 우기는 중국 측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여전히 윤동주에 관한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표기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이 지난 5년간 꾸준히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석이 그대로 남아있다. 2023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윤동주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 투쟁에 참여한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해 논란이 됐다. 한편 서 교수는 중국 등의 역사 왜곡에 맞서 SNS에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력 매체와 관광지 전광판, 구글·유튜브 등에 다국어 광고·영상을 올리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 美누리꾼 몰려간 ‘중국판 인스타’에 “한국이 중국 문화 훔쳐” 궤변 난무 [핫이슈]

    美누리꾼 몰려간 ‘중국판 인스타’에 “한국이 중국 문화 훔쳐” 궤변 난무 [핫이슈]

    최근 ‘틱톡 난민’ 대거 유입서경덕 “美누리꾼 세뇌 우려” ‘틱톡 난민’을 자처한 미국 누리꾼이 대거 유입된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영문명 레드노트)에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를 훔쳐 가고 있다”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샤오훙슈는 중국에서 많이 쓰는 SNS 중 하나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억 명에 달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최근 중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누리꾼의 제보를 받고 샤오훙수를 살펴본 결과 이런 게시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일부는 ‘한국은 도둑 국가’라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며 “‘한국을 믿지 말라’, ‘김치의 원조는 중국’ 같은 내용의 글과 영상이 퍼지고 있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샤오훙수는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주로 이용됐고 사용자도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지만, 미국 누리꾼이 대거 갈아타면서 자칫 이런 억측에 세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보니 중국 누리꾼의 심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행위라 볼 수 있다”며 “이처럼 삐뚤어진 중화사상은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중국의 문화공정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교수는 지난 16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윤동주마저 중국인이라 우기는 중국 측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여전히 윤동주에 관한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표기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이 지난 5년간 꾸준히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석이 그대로 남아있다. 2023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윤동주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 투쟁에 참여한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해 논란이 됐다. 한편 서 교수는 중국 등의 역사 왜곡에 맞서 SNS에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력 매체와 관광지 전광판, 구글·유튜브 등에 다국어 광고·영상을 올리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 시인 80주기 국내외 행사에 찬물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 시인 80주기 국내외 행사에 찬물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저항 시인 윤동주(1917~1945)의 80주기를 맞아 그를 조명하는 책이 거푸 출간되고 관련 행사가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김응교 시인 겸 문학평론가는 최근 윤동주가 살아가고 사랑한 공간뿐 아니라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적 공간을 통해 작품을 들여다보는 평전 ‘윤동주-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를 펴냈다. 앞서 김 시인은 윤동주 시를 해설한 평전과 산문 비평집, 백석과 윤동주를 비교한 책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신간은 윤동주의 작품 가운데 주목받지 못했던 ‘바다’, ‘둘 다’, ‘비로봉’ 같은 시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윤동주의 시 100편을 현대어 정본으로 수록하고 감상과 이해를 돕기 위한 어휘 풀이 및 해설을 함께 담은 ‘동주 시, 백 편’도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윤동주의 창작 순서에 따라 시를 실음으로써 ‘윤동주라는 예민한 자아’의 흐름을 쫓아간다. 조향사 서지운이 만든 향기 시집 ‘우물 속 달, 파아란 바람’도 눈에 띈다. ‘자화상’, ‘소년’ 등 윤동주의 대표작을 담은 책에는 윤동주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 ‘하늘’, ‘바람’, ‘별’ 등에 어울리는 향기를 입혔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윤동주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16일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박해환 선양회 대표가 나태주의 추모시 ‘윤동주’를 낭송했으며 박상돈 천안시장이 추모사를, 유창기 윤동주문학산촌 교장이 추모시 낭송과 함께 추모곡을 불렀다. 윤동주의 모교인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는 이날 윤동주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도시샤대가 고인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는 건 1875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윤동주가 한일 관계에서 갖는 의미, 그를 지키지 못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아픔 등이 고려돼 학장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한다. 학위는 이날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대신 받았다. 윤동주가 6개월간 다녔던 도쿄 릿쿄대에서도 오는 23일 추모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윤동주 시를 한일 양국어로 낭독한 CD ‘윤동주 시집 2’도 발매됐다. 릿쿄대 졸업생 아마누마 리쓰코가 자비를 들여 제작했다.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 백과사전이 윤동주의 국적을 ‘중국’으로 표기한 것과 관련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 5년간 항의 메일을 꾸준히 보냈지만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순국 80주기, 윤동주 추모제 앞으로 독립기념관서 열린다

    순국 80주기, 윤동주 추모제 앞으로 독립기념관서 열린다

    윤동주 시인 순국 80주기를 맞아 추모제가 오는 16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에서 열린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추모제가 그동안 천안 윤동주문학산촌에서 열렸지만, 이번 추모제부터 독립기념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추모제에서는 박해환 선양회 대표가 나태주의 추모 시 ‘윤동주’를 낭송한다. 이어 박상돈 천안시장이 추모사를, 유창기 윤동주문학산촌 교장이 추모 시 낭송과 추모곡을 부를 예정이다. 선양회는 매년 8월 15일에 맞춰 한일 윤동주 추모문화제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양회는 또 독립기념관과 함께 매년 전국 윤동주 청소년백일장을 개최하고 천안 윤동주문학산촌에 윤동주 생가를 재현할 예정이다. 또 윤동주문학대학 개교와 문학둘레길을 조성, 윤동주문학기행과 윤동주문학캠프장 운영 등의 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 2월 16일은 윤동주 순국 80주기···친필 유고 보존한 광양 ‘정병욱 가옥’

    2월 16일은 윤동주 순국 80주기···친필 유고 보존한 광양 ‘정병욱 가옥’

    2월 16일은 윤동주가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절명한 순국 80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해 광복절 보훈부가 공개한 일본 국립공문서관의 ‘치안보고록’에 따르면 윤동주는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돼 같은 해 12월 6일 미결수로 교토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후 1944년 3월 31일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이듬해인 1945년 2월 16일 순국했다. 이같은 상황에 윤동주 순국 80주기를 앞두고 윤동주의 친필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켜내 시인으로 소환한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병욱 가옥는 우리 말과 글이 금지된 일제강점기, 시대 상황으로 시집 출간이 좌절된 윤동주가 손수 묶은 친필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한 장소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전 세계가 전쟁의 늪에 빠져든 1941년 겨울,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지금까지 쓴 시 노트를 꺼내 졸업 기념 시집에 넣을 시들을 정리했다. 그중 열여덟 편의 시를 고르고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3부를 엮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이양하 지도교수에게 전달했다. 나머지 한 부는 연희전문 2년 후배로 나이는 다섯 살 어리지만 진중하고 성미도 비슷해 함께 하숙을 지내는 등 각별하게 의지 삼은 정병욱에게 줬다. 이후 학도병으로 징집된 정병욱은 윤동주에게 받은 시집을 광양의 어머니께 맡기며 잘 보관할 것을 당부했고, 시고는 명주보자기에 곱게 싸여 망덕포구에서 살아 숨 쉬었다.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의 시고는 행방을 잃었지만 정병욱 가옥 마룻바닥 아래서 보존된 시고는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돼 윤동주를 시인으로 부활시켰다. 지난 1925년 양조장과 주택을 겸해 지어진 정병욱 가옥은 유고를 보존한 가치를 크게 인정받아 2007년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윤동주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기까지 했다. 광양 망덕포구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에는 명주보자기에 곱게 싼 유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간직한 당시 상황이 재현돼 있다. 정병욱 가옥에서 500여m 떨어진 ‘윤동주 시 정원’에는 서시를 비롯해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등불 같은 시들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 정원을 잇는 해상보도교 ‘별헤는다리’와 동주카페, 별헤는 강 등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모티브로 한 공간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미란 광양시 관광과장은 “윤동주의 유고를 지켜낸 정병욱 가옥이 있는 망덕포구는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희망과 부활의 공간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얼음이 녹고 꽃망울 터뜨리는 봄의 길목이자 부활의 공간인 섬진강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을 찾아 윤동주의 시 정신과 정병욱의 신실한 우정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양시는 국내외 윤동주의 발자취를 잇는 윤동주 테마관광상품 운영 여행사와 개별관광객 등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는 등 광양과 윤동주의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 문해력 실종 시대… 다시 몸으로 읽다

    문해력 실종 시대… 다시 몸으로 읽다

    필사책 판매량 전년 대비 7배 급증 소설·수필 넘어 법률·철학 등 다양MZ세대 ‘책 읽기=멋짐’ 인식 영향 뇌과학 측면서 두뇌 활성화에 유리 인류에게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먼저 생긴 사무직은 말과 글을 베껴 쓰는 ‘필경사’였다. 금속활자가 발명돼 책을 만드는 것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책은 손으로 쓰여 전해졌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하면서 경전 배포를 위한 ‘사경’(寫經)이 시작됐다. 이는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중요한 축이었으며 수행의 방편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사경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과거에는 읽을 것이 귀해 책 한 권을 닳을 때까지 여러 번 읽는 일이 흔했지만, 요즘은 책이 넘쳐나고 소셜미디어(SNS)와 짧은 동영상(쇼츠)에 너나 할 것 없이 빠져들면서 ‘텍스트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활자가 외면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텍스트의 위기는 너무 많은 글자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읽는 사람의 감소와 함께 쓰는 것에 관한 관심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메신저로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필사는 ‘몸’으로 읽는, 가장 느린 독서 방법이다. 그동안 ‘필사’는 많은 경우 초등학생의 글씨 교정이나 중고등학생의 글쓰기 훈련, 맞춤법 연습을 위해 행해졌다. 작가 지망생들도 글쓰기의 간접 체험을 위해 필사를 선택하곤 했다. 시인 윤동주도 백석의 시집 ‘사슴’ 전체를 필사해 읽으면서 시상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문해력과 글 쓰는 능력이 강조되면서 몇 년 전부터 ‘필사’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최근에는 이들을 겨냥한 필사 관련 책 출간이 출판계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필사책 판매는 전년 대비 692.8% 증가했고, 출간 종수도 57권에서 81권으로 42.1% 늘었다. 이전에는 텍스트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원고지나 노트에 베껴 쓰는 방식으로 종류도 주로 시나 소설, 수필이 많았다. 그렇지만 요즘은 법률, 자기 계발, 철학, 경제·경영 등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또 왼쪽에는 텍스트, 오른쪽엔 필사용 공간을 둔 필사 전용 책들이 나와 언제 어디서든지 필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필사 열풍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텍스트힙’ 유행 때문으로 분석된다. 글자를 의미하는 ‘텍스트’와 개성 있다는 ‘힙’의 합성어인 텍스트힙은 종이책을 읽는 것을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며 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행위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직장인 최현서씨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종이책을 읽고 필사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며 “좋은 글들을 읽고 필사하고 있노라면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도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요즘 필사책들은 한쪽은 문장, 다른 쪽은 빈 곳으로 돼 있는데, 문장을 읽고 든 단상이나 그때그때 느낌을 적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글쓰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문장을 베껴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의미 없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쓴다’는 행위는 뇌과학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필사하더라도 타이핑을 하는 것보다 종이와 펜을 이용해 손으로 하는 것이 기억을 저장하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뇌 부위를 더 많이 자극하고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미국 기호학회 회장을 지낸 나오미 배런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는 저서 ‘쓰기의 미래’에서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이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지루한 일”이라면서 “손의 움직임과 생각 사이에서 형성되는 강한 유대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페이지 전체가 손 글씨로 채워졌을 때의 만족감은 산을 올랐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배런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쓰기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필사의 유행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윤동주 80주기… 순결한 영혼을 담은 시, 더 깊게 읽어 보세요

    윤동주 80주기… 순결한 영혼을 담은 시, 더 깊게 읽어 보세요

    한국인이라면 윤동주(1917~1945)의 ‘서시’(1941년 11월 20일 작)를 한 번쯤은 접했을 터다. 시를 읽으며 왜 스물넷 파릇한 청년이 서두부터 “죽는 날”이란 시어를 떠올렸는지, 대체 어떤 상황에 처했길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는지 궁금한 사람도 많았을 터다. ‘동주 시, 백 편’은 그런 갈증을 가졌을 이들에게 딱 맞는 해설서다. 오는 16일 윤동주 80주기를 앞두고 간행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쓴 ‘초 한 대’부터 일본 유학 시절에 마지막으로 남긴 ‘쉽게 씌어진 시’까지 그의 시 100편과 각각의 시에 대한 어휘 풀이, 해석 등을 함께 담았다. 윤동주의 시를 가슴에 갈무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터이지만 시어 풀이와 당시 상황 등에 관한 해설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윤동주는 흔히 ‘저항 시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일본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내 문단의 문예지 등에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다. ‘항거’를 표방하는 공식적인 대외활동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가 ‘저항 시인’인 건 “행동으로 저항한 것이 아니라 고뇌하는 순결한 영혼으로 불의한 시대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내성적 지식인의 고뇌”라고 해석한다. “정신을 행동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그 부끄러움의 심정을 정직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책은 성장기(1934~1937), 연희전문학교 입학기(1938~1939), 번민과 갈등의 시기(1940~1942) 등 세 갈래로 나눠 그의 시를 분석한다. 창작의 순서대로 책을 구성한 거다. 여기에도 까닭이 있다. 윤동주는 거의 모든 시에 창작 시점을 밝혔다. 해당 시기에 관한 자기 생각을 알리려고 의도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일기와 같다. 예컨대 ‘새로운 길’은 1938년 봄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가장 먼저 쓴 시다. 새봄을 맞은 스물한 살 젊은이의 순정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다. 4학년 2학기 때 쓴 ‘길’에선 다른 뉘앙스가 풍긴다. 같은 길을 걷지만 이제 그 길은 뭔가를 잃어버린 길, 출구 없는 길이다. 자신 역시 ‘새로운 길’의 “저쪽에 남아 있는” 존재가 돼 버렸다. 저자는 “이처럼 그의 시를 창작 순서대로 읽어야 윤동주라는 한 예민한 자아의 사색 과정과 변화의 내력이 자연스레 파악된다”고 전했다.
  • 근현대 최고 국학자 ‘가람 이병기 전집’ 30권, 11년만에 완간

    근현대 최고 국학자 ‘가람 이병기 전집’ 30권, 11년만에 완간

    근현대 최고 국학자 겸 시조 시인이자 전북대 교수를 지낸 이병기(1891∼1968) 선생의 업적을 정리한 ‘가람 이병기 전집’이 11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전북대학교는 2014년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한 ‘가람 이병기 전집’ 총 30권의 간행 사업이 최근 마무리됐다고 12일 밝혔다. 전북대는 이날 오전 11시 전북대 인터내셔널센터 동행홀에서 양오봉 총장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와 간행위원회 관계자, 주요 내빈 및 언론 등이 참석한 가운데 완간 기념식 및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윤동주와 함께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항일 문학가로, 단 한 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인물이다. 가람 이병기 전집 사업은 2014년 전북대가 주최하고, 가람전집간행위원회(위원장 김익두)가 주관하여, 가람문학을 전공한 이경애 박사와 호원대 유화수 교수, 강원대 이민희 교수, 서울대 황재문 교수 등이 함께 했다. 최근에는 김익두 교수의 퇴임에 따라 전북대에서는 한창훈 교수(사범대학)가 공동으로 간행위원장을 맡아 사업이 진행됐다. 사업비는 전북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익산시 등이 뜻을 모아 함께 마련했다. 이 전집은 가람 선생의 문학(시/시조·수필·일기 등) 분야 10권과 국문학 저서들을 중심으로, 국어학, 구비문학·민속학, 서지학, 교육학, 역사학 등 학술논문·평론, 친필·사진 및 기타 자료, 색인 등이 포함되는 20권으로 구성됐다. 양오봉 총장은 “이번 전집 완간은 전북대와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한국 문학과 국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라며 “이를 통해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적‑학술적 유산이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연세대, 14일 시인 윤동주·송몽규 80주기 추모식

    연세대, 14일 시인 윤동주·송몽규 80주기 추모식

    연세대가 윤동주(1917~1945) 시인의 80주기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연세대는 오는 14일 오전 11시 신촌캠퍼스 루스채플에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1917~ 1945) 선생의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추모식에서는 양준모 성악과 교수가 ‘별 헤는 밤’을 부르는 등 교수와 동문들이 음악과 시 낭송으로 윤동주의 문학적 감성을 나눈다. 연극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광복 80주년 특별전 ‘연희전문과 독립운동’, 윤동주 포럼, 윤동주기념관 야간 개관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되돌아보는 행사도 열린다. 윤동주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다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유학했다.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 연세대, 14일 윤동주 시인 80주기 추모식 개최

    연세대, 14일 윤동주 시인 80주기 추모식 개최

    연세대가 윤동주 시인(1917~1945)의 80주기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연세대는 14일 오전 11시 신촌캠퍼스 루스채플에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1917~1945) 선생의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추모식에서는 양준모 성악과 교수가 ‘별 헤는 밤’을 부르는 등 교수와 동문들이 음악과 시 낭송으로 윤동주의 문학적 감성을 나눈다. 연극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광복 80주년 특별전 ‘연희전문과 독립운동’, 윤동주 포럼, 윤동주기념관 야간 개관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되돌아보는 행사도 열린다. 윤동주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다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유학했다. 1943년 7월 일본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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