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밴드 ‘워커스밴드’ 색다른 추석맞이
17일 밤 10시 안산역 근처의 한 컨테이너 박스.2평짜리 허름한 공간에서 윤도현 밴드의 ‘사랑2’가 흘러나왔다. 이 컨테이너 박스는 새달 7일 원월드뮤직페스티벌 출연을 앞둔 ‘워커스 밴드’의 연습실이다. 베이스를 맡은 다니(26)와 아구스(24), 드럼을 치는 에코(26), 보컬 은종(32)·아르손(32), 기타리스트 부디(34)·군도르(25), 보컬과 통역,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에코(32). 이렇게 8명으로 이뤄진 ‘워커스 밴드’는 안산의 전자부품회사와 도금 공장 등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들이다.
한국에 온지 1∼3년 된 이들은 자기 돈을 들여 베이스, 기타, 드럼을 샀다. 부디의 유서 깊은 ‘잭슨’ 기타는 200만원짜리. 두 달치 월급이다.“두 달간 밥도 안 먹고 담배도 조금 피웠어요.”사뭇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부디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안산에는 안 좋은 일이 많아요. 술 먹고 다른 외국인과 싸우고 다치고…. 그래서 인정을 못 받아요. 우리는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도 좋은 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밴드를 만든 거예요.”(다니) 그것이 하루하루 거두기도 바쁜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이유다.
‘노동자 밴드’. 그룹 이름이 너무도 정직하다. 왜 굳이 벗고 싶은 멍에인 노동자를 팀 이름으로 내세웠을까.“한국에 와서 일이 고되어도 우리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다른 이름은 스스로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그게 우리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죠.”(에코)
‘워커스 밴드’의 이번 추석은 예년 추석과는 다르다. 친구들과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던 추석연휴가 연습 일정으로 빡빡해진 것. 쿠바, 브라질, 베트남, 미얀마 등 그간 주변부로 치부됐던 월드뮤직 음악인들의 축제, 원월드 페스티벌에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측은 지난 2일 안산 국경 없는 거리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1000여명의 관객이 밴드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걸 보고 이들을 축제에 초대했다.10월7일 마지막 순서의 손님으로 나가게 된 이 밴드는 40분 동안 8곡의 노래를 선보일 계획이다.
“사람도 많고 준비하는 시간도 부족하니 연휴기간 어디도 못가고 연습해야죠. 애인도 없는데 어떻게 해….”라며 부디가 우는 소리를 냈다. 사실 큰 무대에 선다는 설렘보다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더 크다. “우리 같은 근로자들을 위해 이번에 공연하는 거예요. 그들이 우리가 공연하는 동안만큼은 걱정 말고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다니) “우리는 어디에서든 누구와든 평화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 노래로 한국인들도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도 한국인들을 인정하고 싶고요.”(부디)
평소 들국화의 ‘행진’, 윤도현 밴드의 ‘잊을게’ 등 한국 노래도 곧잘 하는 이들이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인도네시아 음악을 소개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음악은 어떤 음악이냐는 물음에 아구스가 대답 대신 기타줄을 튕겨보였다. 친근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연습실 공기를 데웠다.
‘워커스 밴드’는 여느 밴드처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하지 못했다.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온 터라 언제까지고 한국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 밴드 결성 2년째지만 돈이 없어 앨범도 못 냈다. 고국에 8살 난 아들과 5살 난 딸을 두고 온 은종은 “돈 많이 벌어서 빨리 가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앞일을 기약할 수 없는 ‘워커스 밴드’지만 이번 공연 계획만큼은 한마음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 가사는 몰라도 좋은 멜로디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것. 자정이 다 된 무렵, 연습실을 나서는데 활기찬 드럼 소리가 두둥 밤공기를 갈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