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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al] 대구시교육청, 예절교실 운영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전국 최초로 초등생을 상대로 `예절교육체험센터´를 시범 운영한다.20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5개 초등교에 예절교육체험센터를 만들고 체험 중심의 전통과 글로벌 예절을 교육한다. 예절교육체험센터에서는 한복 입기와 절하는 방법, 전통차 마시기, 외국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예절을 가르치는 한편 공항 출입국심사대, 외국 호텔 등을 본 뜬 임시세트에서 각 상황에 지켜야 하는 행동수칙 등을 가르친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日교육 ‘학력+체력’ 두 토끼 잡는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향후 초·중학교의 교육방향을 ‘학력 향상’에 맞춰 수업시간과 학습내용을 확대했다. 동시에 창의성과 논리적 사고를 비롯, 체력 강화에도 적잖은 비중을 뒀다.‘학력과 체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17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40년만에 초·중학교의 국어·수학·과학 등 주요교과의 수업시간을 현행보다 10%가량 늘리는 내용을 담은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 발표했다. 지난 2002년 유도리교육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문부성은 개정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 다음달 확정, 고시할 예정이다. 지난 1947년 처음 공포된 학습지도요령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년별로 학습 내용과 시간을 규정한 한국의 교육과정과 같다. 초등학교의 개정안은 2011년,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적용된다. 교육계는 “학력 향상에 초첨을 맞춰 탈유도리교육의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살아가는 힘의 육성 등 유도리교육의 취지는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개정안은 학력저하 대책의 하나로 학습기반인 언어실력 향상을 위해 모든 과목에서 논술 능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또 학생들의 튼튼한 체력을 위해 체육시간도 확대했다. 초등학교는 5·6학년부터 주1시간씩 영어교육을 공식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대신 유도리교육체제에서 재량시간인 ‘종합시간’을 대폭 축소했다.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 때 개정된 교육기본법의 ‘애국심 조항’에 따라 공공정신의 육성과 전통·문화 존중에 대한 교육에도 상당한 배려를 했다. 중학교의 경우, 고전 및 한자, 창가, 무도와 향토애, 일본사 등의 학습 시간을 늘리거나 새로 도입했다.하지만 도덕의 정식 교과화는 “국가가 가치관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로 일단 보류했지만 도덕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교사를 보강하는 등 체제를 정비할 방침이다. 아시히신문은 “수업의 질은 교사의 수와 실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교사의 충원과 함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 정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hkpark@seoul.co.kr
  • 라오서 장편소설 ‘낙타샹즈’

    중국 대륙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작가들은 누굴까? 이에 대한 답은 ‘아큐정전’ 루쉰(魯迅·1위),‘홍루몽’ 조설근(曹雪芹·2위),‘가(家)’의 바진(巴金·3위), 무협소설가 진융(金庸·4위),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5위), 공자(孔子·7위), 여성 수필가 위추위(余秋雨·9위), 신세대 작가 한한(韓寒·10위), 라오서(老舍·11위) 등이다. 중국 최대 포털 시나닷컴이 네티즌 216만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현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100명의 작가’를 선정한 결과이다. 라오서가 사망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라오서의 대표작인 ‘낙타샹즈(駱駝詳子’(황소자리 펴냄)가 다시 나왔다.1936년 발표한 이 작품은 베이징에 사는 인력거꾼 샹즈의 처절한 인생 역정을 그렸다. 폭력적인 시대에 건실한 청년 샹즈의 꿈과 인생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통해 하층민의 삶과 사회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문제작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고아인 샹즈는 비록 배운 것과 가진 것이 없어 ‘밑바닥 인생’ 인력거꾼으로 흘러들었지만 부지런한 성품과 건장한 신체에 의지해 밝은 미래를 꿈꾼다. 자신의 인력거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샹즈는 3년 만에 꿈에 그리던 인력거를 마련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 통에 피땀 어린 소중한 인력거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군대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이에 분노한 그는 병사들 낙타 세마리를 훔쳐 가까스로 탈출, 낙타를 팔아 인력거를 장만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인력거를 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 일로 ‘낙타’라는 별명을 얻은 샹즈는 다시 인력거를 갖기 위해 애면글면 안간힘을 쓰지만 거듭되는 불운 속에 영혼과 육체가 망가져 간다. 샹즈의 운명은 인간을 위해 짐을 나르고 젖을 제공하지만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지 못하는 낙타와 흡사하다.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외적 환경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허약한 인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1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까보레 잡아라

    흔히 공격수를 ‘타고난 골잡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를 세밀히 살펴보면 인간의 혈액형 이상으로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선수(라울 곤살레스), 탄탄한 몸집으로 수비수들을 쓰러뜨리는 선수(판 니스텔로이), 동쪽에서 달려와 서쪽에서 슛을 날리는 선수(박주영), 대각선으로 질주하며 우아하게 마침표를 찍는 선수(황선홍) 등 다채롭다. 그런가 하면 빤히 보이는 움직임에도 도저히 막기 어려운 유형도 있다. 두 명의 수비수 사이로 빠져 들어가거나 골문 구석으로 차넣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도저히 막기 어려운 선수 말이다. 이런 선수를 만날 때면 수비수들은 더욱 자책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지난해 K-리그 경남FC 돌풍의 주역이었던 까보레가 그렇다. 그를 상대했던 여러 팀의 수비수들은, 까보레가 신출귀몰해서 원통한 게 아니라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망했다. 껑충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여서 어지간하면 몸싸움으로 막아낼 수 있을 듯해도, 까보레의 순간 속도와 슈팅 타이밍은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정교했다. 우격다짐으로 차넣는 게 아니라 골문 구석으로 가볍게 밀어넣었다. 경쾌한 리듬과 경이로운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는 브라질 축구의 피가 그의 몸속에 흘러넘쳤던 것이다. 까보레는 브라질 북동부 살바도르의 빈민가 출신.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이 형성한 도시로 아프리카 노예의 아픈 역사가 묻어 있다. 지금도 이 지역은 치안이 불안하고 경제 사정이 어렵다. 공 차기를 즐기는 빈민가 소년들처럼 까보레 역시 자신의 생애와 가족의 운명을 축구에 걸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패싸움에 휘말려 생채기를 입어 후유증까지 앓고 있는 까보레에게 450g의 축구공은 우주의 무게보다 더 막중한 것이었다. 까보레의 꿈은 K-리그에서 이뤄졌다. 박항서 전 감독이 현지에서 그를 발굴하고 곧장 동아시아로 불렀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냈다.25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뽑으면서 득점왕에 올랐고 경남의 돌풍을 이끌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까보레의 아름다운 비상을 더 이상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현재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경남FC는 키프로스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하지만 까보레는 일본 J리그 FC도쿄 이적을 추진 중이어서 빠졌다. 프로선수가 금전적 이익이나 팀내 위상 등을 고려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과정이 있다. 조 감독은 FC도쿄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경남 소속이 분명한 까보레에 대해 무분별하게 영입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행위는 계약상 권리관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국제축구계로부터 윤리적인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까보레의 ‘코리안 드림’은 매우 아름다운 육체적 향연의 결정판이었고 의지의 힘이 돋보인 개가였으며 무명 선수가 이룩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성취였다. 이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비단 경남 팬들만은 아닐 것이다. 경남FC의 다각적인 노력을 당부한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Metro] 국민 67% “은퇴 후 귀농 고려”

    우리 국민 10명 중 6∼7명은 은퇴 후 농촌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는 최근 서울시를 비롯 전국 7개 특별·광역시 등 도시지역과 전남 곡성 등 전국 9개 농촌 군 지역 35세 이상 남녀 주민 1005명을 대상으로 노후 농촌생활에 대한 가치인식 수준을 조사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6.9%가 은퇴 후 농촌 거주의사가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농진청이 2004년 1922명의 도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촌이주 의사에 대한 조사에서 나타난 농촌 이주의사가 있다는 답변 58.2%보다 높아진 것이다. 은퇴 후 농촌에 거주했을 때 개인적으로 얻게 될 가치에 대해서는 ‘자연과의 공존으로 몸이 좋아진다’가 5점 만점에서 4.1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으며 ‘마음이 편해진다’가 4.0점,‘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와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간단한 일로 몸이 좋아진다’가 각각 3.9점을 얻어 농촌 거주로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Metro] 국민 67% “은퇴 후 귀농 고려”

    우리 국민 10명 중 6∼7명은 은퇴 후 농촌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는 최근 서울시를 비롯 전국 7개 특별·광역시 등 도시지역과 전남 곡성 등 전국 9개 농촌 군 지역 35세 이상 남녀 주민 1005명을 대상으로 노후 농촌생활에 대한 가치인식 수준을 조사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6.9%가 은퇴 후 농촌 거주의사가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농진청이 2004년 1922명의 도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촌이주 의사에 대한 조사에서 나타난 농촌 이주의사가 있다는 답변 58.2%보다 높아진 것이다. 은퇴 후 농촌에 거주했을 때 개인적으로 얻게 될 가치에 대해서는 ‘자연과의 공존으로 몸이 좋아진다’가 5점 만점에서 4.1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으며 ‘마음이 편해진다’가 4.0점,‘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와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간단한 일로 몸이 좋아진다’가 각각 3.9점을 얻어 농촌 거주로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인의 질병] (20) 치질

    [한국인의 질병] (20) 치질

    연간 입원 환자 수가 가장 많은 질환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망자가 가장 많은 ‘암’이라고 답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치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제대로 앉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가 많다는 것. 지난해 발행된 ‘2006년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한 해에 치질로 입원한 환자는 21만 4500여명으로, 단일 질병 가운데 환자 수가 가장 많다. 치질 입원 환자 수는 2000년 12만명에 불과했지만 6년새 두 배로 증가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인 것. 미국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50세 이상 환자의 50%가 치질을 경험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50세이상 50%가 경험… 겨울에 많아 치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대장·항문 전문병원인 대항병원 이두한(51) 대표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치핵은 풍선을 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겨납니다. 풍선을 불면 커지는 것처럼 항문에 힘을 주면 치핵이 커지고 힘을 빼면 줄어듭니다. 주로 노인에게 많이 나타납니다.60년 산 사람은 30년 산 사람보다 치핵이 늘었다가 줄어든 경험이 많기 때문에 항문 주변 조직이 많이 늘어질 가능성이 높죠.” 치질은 항문 안팎의 질환을 모두 포함한다. 항문 밖으로 근육이나 혈관 덩어리가 빠져 나오는 ‘치핵’,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위가 자주 곪아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나 대변이 밖으로 새는 ‘치루’ 등이 그것이다. 치핵의 대표적인 증상은 항문 조직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탈항’(脫肛)이다. 치핵이 항문 안쪽에 생길 때 나타나는 탈항은 선홍색의 출혈과 내부 조직의 통증을 일으킨다. 항문 외부에 치핵이 생긴 경우에는 출혈이나 탈항의 위험은 적지만 피부 속으로 출혈이 일어나 피가 엉키는 혈전 증상이 나타난다. ●변기에 오래 앉는 습관이 원인 치루가 생기면 염증이 반복되다가 항문 주변 조직에 구멍이 생기는데, 대개 통증은 없지만 종양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반드시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항문이 찢어져 출혈이 생기는 치열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무리하게 변을 계속 보게 되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만성화된다. 치질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화장실 이용 습관 때문이다. 항문에 힘을 뺀 채 변기에 오래 앉아 있게 되면 중력에 의해 항문 주위에 피가 고이고 혈관이 팽창해 치핵으로 발전한다. 즉, 화장실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장기간 앉아서 진행하는 업무, 쪼그리고 앉는 음주 습관이 주요 원인이 된다. 복압이 올라가는 골프, 보디빌딩, 등산 등도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여성은 활동성이 떨어져 남성보다 발병 위험이 다소 낮지만 임신 후 골반 근육이 내려올 때 치질의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치핵은 주로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요. 오래 앉아 있거나 복압이 올라가는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죠. 여성은 임신 뒤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항문 주변 조직이 잘 붓게 되죠. 출산 시 과도하게 힘을 주면 항문 안쪽 조직이 밖으로 빠지면서 들어가지 않아 치질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피만 나고 항문 바깥 쪽으로 치핵이 빠져나오지 않은 초기 환자에게는 적외선을 이용한 ‘응고법’, 전기나 레이저를 이용해 조직을 태우는 ‘소작술’ 등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들 시술법은 일시적으로 증세를 호전시키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치핵을 뿌리째 뽑기 위해서는 의사가 눈으로 보면서 치핵 덩어리를 절제해야 한다. 치질 수술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수술에 비해 통증이 크지 않다. 특히 치루는 그냥 낫는 법이 없고 근본 원인인 ‘치루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염증이 재발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수술을 해야 한다. “치질 수술은 무통 주사로 통증을 조절하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증상이 심하다고 해도 3∼4일간 입원하면 큰 문제 없이 완치할 수 있어요.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작은 부위만 절개하면 되기 때문에 치유 기간을 더 짧게 줄일 수 있죠.” ●치루관 뿌리째 제거해야 뒤탈없어 치질을 미리 예방하려면 배변 습관이나 화장실 이용 행태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힘을 주거나 자주 화장실을 찾으면 치핵이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변이 조금 남은 느낌이 있더라도 배변감을 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변의 양이 많으면 배변 시 힘을 주지 않아도 돼 치질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채소와 같이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소화는 잘 안되지만 변의 양을 늘리기 때문에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혈관을 확장시키고 출혈을 일으키는 음주는 자제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활동력을 높이면 배변이 원활해지기 때문에 가벼운 운동도 좋다. 변비는 항문에 자주 힘을 주도록 하므로 미리 치료해야 한다. 환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검증되지 않은 무허가 시술법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치핵 조직을 썩게 만드는 ‘괴사제’는 괄약근 조직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위험하다. 괄약근이 약해지면 배변량을 제대로 조절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살이 썩는 약은 비수술적 치료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발이 되기 쉽고 합병증으로 근육 조직이 완전히 손상될 수 있어 피해야 합니다.‘획기적인 최신 비법’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경험 있는 전문의를 만나 근본적인 수술법에 대해 상담 받아 보세요.”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영국에 아직도 노예가? 매년 수백명 팔려온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영국에 아직도 노예제도가 있다?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27일 ‘영국의 새로운 노예무역’이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에서 매년 수 백명의 아프리카 아이들이 영국으로 팔려오고 있다면서 현대판 노예매매의 실태를 폭로했다. 3살, 5살짜리 남자 아이 두 명은 5천파운드(약 930만원), 10개월된 아기는 2천파운드(37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의 10대 소녀들은 아기를 1천파운드(약 180만원)도 안되는 돈에 내놓았다. 이들 소녀 중 일부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적발된 국제 인신매매 업자는 연간 500여명의 아이들을 샀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영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 팔려온 아이들은 330명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아프리카 아이들이다.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부모들은 자녀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는 인신매매 조직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전언. 하지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이다. 아이들은 하루 18시간의 중노동은 물론 육체적, 성적 학대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영국 내 아프리카 교회의 ‘귀신 쫓는 의식’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아동보호단체 ‘아동 매춘 및 인신매매 종식’의 크리스 베도는 “우리의 눈 앞에서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황정민 캐스팅 뮤지컬 ‘나인’

    황정민 캐스팅 뮤지컬 ‘나인’

    “찰리 채플린 이후 이런 위대한 감독은 없었어.”‘나인’(3월2일까지·서울 LG아트센터)의 주인공 귀도 콘티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명영화 감독 귀도는 아파트 층수마다 애인이 있는 남자. 막이 오르면 온갖 종류(?)의 여자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든다. 엄마, 정부, 배우, 제작자, 평론가, 창녀…. 여자들의 한마디는 곧 하나의 소음으로 뭉쳐진다.14명의 여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오직 한 여자만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다. 그의 부인 루이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1/2’에 뿌리를 댄 ‘나인’은 198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2003년에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으로 활약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캐스팅 공식이 적용됐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배우 황정민이 4년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것. 스크린 속 연기력은 무대에서도 흡입력 있게 표출됐다. 명예, 여자, 예술성 모든 것을 욕망하는 바람둥이 감독은 “낼 모레면 마흔이지만 영혼은 아홉살”이라 스스로 노래한다. 무대에는 넘치는 자의식에 갇힌 그의 현재와 과거, 현실과 몽상이 교차된다. 22일 개막 공연에서 황정민의 얼굴은 10분도 안 돼 땀으로 번뜩였다. 그는 상상 속에서 다큐멘터리, 서부극을 만들어내는 장면, 추기경과 상담하는 장면에서는 1인2역을 오가며 특유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애드리브 같은 대사 처리는 영화에 더 가깝게 느껴졌고 노래에는 힘이 담겼지만 능숙함이 떨어져 극 안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다. 육체파 정부 칼라역의 정선아의 농염한 연기와 가창력은 눈에 띄는 부분. 커튼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서 내려왔다 다시 퇴장하는 장면은 아슬아슬한 만큼 시선을 끌었다. 루이자역의 김선영은 남편에게 실망과 분노를 터뜨리는 마지막 ‘Be on your own’에서야 힘을 받았다. ‘나인’은 기존 대형 뮤지컬처럼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낯설다. 극은 현실과 꿈을 오간다는 점에서 매혹적이지만, 인물 사이의 미묘하고 깊은 심리와 작품이 함축한 메시지가 짜릿하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해하다. “현재를 바꾸면 미래도 바꿀 수 있다.” 황정민이 ‘나인’프로그램 책자에 남긴 멘트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그가 되뇌이는 말이다. 극의 결말, 아홉살 귀도는 총을 머리에 갖다대는 어른 귀도의 손을 내리고 지휘봉을 쥐어준다. 그리고 노래한다.“어른이 되길….”사랑도 재능도 확신도 잃은 감독. 그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현재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뀔까. 제작자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티베트 천장, 하늘로 가는 길/ 심혁주 지음

    어느 국가, 민족이든 고유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는 ‘불교문화’의 원형지 정도로 인식되기엔 티베트 문화에는 각별한 대목이 있다. 그것이 기물이나 기술 위주의 표층문화가 아니라 철저히 의식형태에 가치기반을 둔 고도의 심층문화라는 점이다. 세상이 티베트를 주목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허용하는 공식적이고 제한된 관광경로로만 표피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학문적 깊이와 고민으로 티베트를 전면 재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 ‘티베트 천장, 하늘로 가는 길’(심혁주 지음, 책세상 펴냄)이다. 지은이는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의 민족연구소에서 티베트 불교사를 정식으로 공부했다. 논문을 쓰려 작정하고 티베트로 장기답사를 다녀온 저자의 시각은 깊고 날카롭다. 책은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문화가 곧 ‘천장’(天葬)이라고 보았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의 고립되고 척박한 장소성이 독특한 장례법을 낳았다. 화장(火葬)은 일부 지배계층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민중은 시체를 산과 들에 방치하는 원시 천장의 풍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신을 ‘천국의 사자’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천장의 방식은 불교문화에 용융돼 1000여년이 넘게 이어져 왔다.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본교( 敎)의식으로 시체를 분리하는 장례풍습이 시작돼 8세기쯤 전래된 불교 세계관에 힘입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시체의 뼈를 잘게 조각내는 것은 천장사의 몫이다. 정성껏 발라낸 인육을 독수리에게 ‘보시’하고, 들판에 놓아둔 뼈는 곱게 자연풍화한다. 독수리를 통해 죽은이의 영혼이 자연스럽게 다른 육체로 인도된다는 인식이 투영됐다. 천장사의 해부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며 지은이는 “숨이 막혔다.”고 서문에 썼다. 정신문화의 원형을 잇는 의식에만 책의 시선은 머물지 않고, 중국 정부의 티베트 현대화 작업으로 인한 변화와 문제점까지 두루 담았다.1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오늘의 눈] 한국 노숙자와 인도 걸인/최종찬 국제부 차장

    며칠째 뚝 떨어진 영하의 수은주가 한강을 얼어붙게 만든 날 새벽4시 시청 앞 지하도에서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달라진 것은 뼈에 스며드는 냉기를 막기 위해 이불 외에 박스로 얼기설기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하도 한쪽엔 먹고 버린 컵라면과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입구와 출구쪽에는 지린내가 칼바람을 무디게 하고 있었다.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숙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난해 가을 취재하러 갔던 인도에서 본 거지들이 생각났다. 인도 거지도 거리에서 먹고 자니 한국판 노숙자라고 할 수 있다. 인도 거지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행인을 상대로 구걸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손을 벌렸다. 대부분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인도IT의 메카 방갈로르에서 만난 할머니 거지는 손녀를 안고 있었다. 두 번째 부류는 재주를 부리며 그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아이를 서너명 거느린 여성 거지들이 대개 이런 유형이었다. 아이 하나는 전통북을 두드리고 다른 아이는 재주를 부렸다. 행인과 눈이 마주치면 돈을 요구했다. 마지막 부류는 싸구려 물건을 팔았다. 가족단위로 교통체증이 잦은 교차로나 관광지부근에서 책, 장신구, 지도 등을 팔았다. 뭄바이의 집단빨래터인 도비가트에서 만난 거지 일가족은 이런 유형이었다. 이들은 대개 시골에 집도 가지고 있었다. 인도 거지들의 노숙 생활은 한국 노숙자에 비하면 가히 천국이다. 적어도 추위 때문에 얼어죽을 염려는 없다. 거지로 산다고 손가락질 받거나 노숙하는 자리에서 쫓겨나지도 않는다. 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비관하지 않는다. 해서 술도 먹지 않는다. 술과 추위에 취해 정신과 육체가 망가져 가는 한국 노숙자의 몽롱한 얼굴 너머로 밤에도 검은 눈을 반짝거리며 외국인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인도 거지들이 오버랩됐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 siinjc@seoul.co.kr
  • [새영화] ‘에반게리온:서(序)’

    ‘에반게리온’ 하면 ‘오타쿠’를 빼놓을 수 없다. 오타쿠는 자기만의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상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광적인 마니아를 가리킨다.12년 전 도쿄TV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타쿠를 만들어냈다.1조 5000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인 ‘산업’이기도 하다. 그 만화영화가 2000년대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돼 25분만에 5000장의 표가 매진된 ‘에반게리온:서(序)’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탈오타쿠’를 지향했다지만 이번 새 극장판의 개봉 소식에 국내 오타쿠들은 다시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전투도시인 제3신도쿄.2000년 세컨드 임팩트로 인류의 반이 사망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은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을 만든다. 인류를 습격해오는 정체불명의 적, 사도에 맞서기 위한 것.14살 소년 신지는 어느날 특무기관 네르프의 총사령관인 아버지로부터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되라는 명을 받는다. # ‘에바´는 자란다 유기 인조인간인 에바(에반게리온)는 파일럿과 정신적·육체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됐을 때 최고의 성능을 뽑아낸다.3D 컴퓨터그래픽으로 다시 그린 그림은 세련된 움직임과 색감, 입체감으로 기술과 세월의 변화를 짚어보게 한다. 형형한 야광빛을 반사하며 짐승처럼 폭주하는 에바, 푸른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제5사도 ‘라미엘’의 진화한 형태와 파괴력은 에바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위력적이다. 일본 내 전력을 모두 끌어와 싸우는 둘의 ‘야시마’전투 장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나는 건물숲이 순식간에 신도시 하나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이번 극장판의 백미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서’는 초보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여러 편의 애니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배경이나 캐릭터 설명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 ‘소년´은 자란다 에바의 캐릭터는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인류를 지키라는 부름을 받은 신지. 몸도, 정신도 미성숙한 이 소년의 ‘찌질함’은 막중한 임무와 대비되며 묘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그는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사도의 막강함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끊임없이 되뇐다.“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늘 적용된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세기만큼 자괴감이 발을 잡아채는 것. 소년은 그래서 회의와 체념 속에서도 에반게리온에 오른다. 질문에 대한 답도 못 구한 채, 철수하라는 상부의 명도 어긴 채, 전인류를 위해 내달린다. 가녀린 몸으로 “내가 널 지켜줄게”라고 말하는 또다른 파일럿 신비소녀 레이의 존재도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서울 19일전국 24일 개봉.12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언론 “중국 항공사에 한국 승무원 열풍”

    최근 한국인 스튜어디스를 고용하는 중국 항공사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한류가 예고되고 있다. 뉴스 전문사이트 중궈신원왕(chinanews.com)은 지난 17일 “중국 항공사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한국인 스튜어디스를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새로운 영역에서 다시 한번 한류가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대표 항공사인 중국남방항공 관계자는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46명의 한국 스튜어디스를 선발했다.”며 “현재 중국 현지에서 교육을 모두 마치고 수습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외모 뿐 아니라 서비스 지식과 언어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신장 169cm이상, 연령은 24세 전후로 용모가 단정하고 캐나다·싱가포르·유럽 등의 국가에서 유학 경험이 있는 자를 우선으로 뽑는다.”고 밝혔다. 중궈신원왕은 “한국인들은 예절을 매우 중시한다. 낯선 사람에게도 밝게 인사하는 등 예의방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한·중 스튜어디스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어 “자신에 대한 관리가 매우 철저해 매일 엄청난 양의 헤어스프레이를 써가며 머리스타일을 고정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중국 네티즌은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임금이 더 싼 중국인을 뽑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중국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고된 육체노동만 하고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편한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현재 남방항공 뿐 아니라 각 지방 항공사들이 한국 국적의 스튜어디스를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중국 항공사들의 한류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책을 말한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사랑이 인간을 낳았다면 신화를 낳은 신화가 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신화인 수메르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신화가 끊임없이 회자된 이유는 신화가 지닌 철학적 사유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화가 가진 세계관과 사상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몇 번을 반복하여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가 여전히 새로운 판본을 배출해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와 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화의 상상력은 기적적이라 할 만큼 경이롭다. 특히나 문명이 존재하지 않던 인류의 원시시대라고 알려진 선사시대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수메르에서 최초의 신화가 탄생하였고, 문명이 꽃피었다. 나는 이 ‘최초’를 찾아 꽤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거듭 반복했다. 예전에 길가메시를 만났고, 그리고 이번에 수메르의 여신과 조우했다.2000년을 묻혀 있던 여신은 오랜 시간의 흐름을 딛고 다시금 부활했다. 저승의 문턱을 넘어서고도 살아 났던 것처럼. 그녀의 이름은 ‘인안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多産),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잡고 있던 진정한 여신이다. 그녀와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을 나눴던 이의 이름은 ‘두무지’였다. 수많은 목자의 선조로서 왕의 자리에 올랐던 남신. 그들은 죽음과 부활을 넘나들며 사랑을 기록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사랑은 ‘아키티’라는 신년 축제로 자리 잡아 국가적 행사로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수메르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1500년의 세월 동안 신명을 바꿔 명맥을 이을 정도로 열렬한 사랑이었다. 잊혀졌던 목소리를 점토판의 행간을 더듬으며 ‘최초의 사랑’을 되살려 내는 것은 분명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신화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생생한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야기 되어야만 한다. 연인들의 사랑이 그들의 입술사이를 오가는 밀어를 통해 완성되듯이 수메르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 책을 통해 현실에 재생되기를 빌었다. 수메르의 열정적 연인들을 둘러싼 세계관을 통해 신화의 지적 토대에 대한 인식과, 인간 기원의 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인안나와 두무지의 밀월여행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수메르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로맨스의 기원을 향한 걸음을 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의 선택 영역이다.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사랑을 읽어 주고 이야기 해주기를, 그리하여 잠들어 있던 그들의 사랑이 공백을 넘어 깨어나길 희망한다. <김산해·수메르 신화 저술가 http:////blog.naver.com/gshmyth>
  • [오픈사전] “나는 어느 ‘족’에 속할까?”

    나는 도대체 몇 개의 족에 속할까?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다양하듯 그 사람이 속하는 족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속해있는 족을 헤아려 본다면 적어도 10개 이상의 족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오렌지족, 낑깡족, 미시족, 보보스족 등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족이 있었지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족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각종 족 속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생활상에 반영되어 있다니, 요즘 뜨는 족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누님, 애완남 하나 키우시죠! - 페트족 호스트바에 가면 이쁘장한 남자들이 여자들의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준다. 이들은 대표적인 페트족이다.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있게 꾸미고 몸매 관리를 하는 남성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부드러운 매너로 여자들의 모성본능을 자극시킨다. 패션계 영화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포착하고 꽃미남 모델로 기용해서 여성소비자 몰이에 나서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가 생명이죠! -웰루킹(Well-looking)족 예전에는 육체적, 정신적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자하는 웰빙(well-being)족이 유행했었다. 이제는 여기에 남들이 보기 좋게 잘 사는 것을 더하여 등장한 새로운 삶의 유형이 주목받고 있다. 월루킹족은 웰빙은 물론이거니와 미의식까지 중요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게 꾸미고, 꾸준한 자기 관리와 철저한 운동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는다. 숯을 재료로 한 비누나 팩, 멧돼지 털을 사용한 빗, 물새 깃털로 만든 베개 등 천연 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이용하며, 인공 제품을 첨가하지 않은 천연 화장품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천연비누 만들기, 필라테스(pilates), 요가, 운동복 스타일의 피트니스룩(fitness look)이 유행하기도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라면 화장은 필수죠! - 그루밍(grooming)족 미용과 패션에 자신의 수입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남자들을 그루밍족이라고 한다. 잘난 외모가 존중받는 시대에 남자들도 꾸미지 않는 것은 죄악인 시대가 됐다. 조사에 따르면 미혼남성 60%가 외모가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고 한다. 여성에게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뷰티가 있다면 남성에게는 미용용어로 그루밍이 쓰인다. 그루밍은 마부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 시켜주는데서 유래한다. 남성전용 미용정보 사이트가 개설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좋은 화장품과 패션에 관한 정보가 오가고 있다. 요즘은 피부를 위해 피부관리실을 찾는 남성들도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다. 졸업이 두려워요! - 모라토리엄(Moratorium)족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학생신분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을 모라토리엄족이라고 한다. 이 말은 외채가 많아 채무상환기간을 일시적으로 연기시킨다는 뜻의 모라토리엄에서 따온 용어로, 학생들은 휴학기간을 최대한 이용해 영어점수 향상, 각종 공모전 입상 등을 통해 취업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밖에 아예 취직을 포기하고 재학 때부터 창업을 해서 학업과 사업을 겸하는 무리들을 ‘더블라이프(double life)족’이라고 한다. 유턴(U-turn)족은 사회진출에 실패하고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대학원 등에 진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에스컬레이터(escalator)족은 편입학을 계속해 학교의 레벨을 높이고 몸값을 올리는 학생을 말한다. 내 경쟁상대는 20대 여대생이야! - 나오미(Not old image)족 미시족에서 진화한 형태인 나오미족은 ‘Not old imag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동안 열풍 속에서 나이보다 젊은 이미지로 자신을 가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로 안정적인 경제력을 확보한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며, 신세대 못지 않은 외모로 얼핏보면 20대로 보일 정도다. 이외에 여성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줌마렐라’는 가정과 사회생활 모두에 철저한 중년여성들을 칭하며 신데렐라와 아줌마의 합성어이다. ‘오메가족’은 ‘알파 걸’의 어머니들을 말한다. 공부뿐 아니라 운동과 리더십 등 모든 분야에서 남학생보다 뛰어난 여학생이라는 의미의 신조어인 ‘알파 걸’을 키워낸 주역들이다. 일생 별거 있나, 여유있게 살자!- 다운 시프트(Down Shift)족 다운시프트족에 속하는 사람들은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는 저소득일지라도 여유 있는 직장생활을 택한다. 인생의 목적은 바로 삶의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의 다운시프트는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유럽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느긋하게 즐기며 사는 것이 최고라고 여긴다. 이외에 암반수족은 직장에서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배터리처럼 충전을 한다고 해서 생겨난 배터리족은 타의에 의해 실직을 했거나 자발적으로 퇴사한 후에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사람들을 말하며 주로 30대 후반에서 나타난다. 일분일초도 나를 위해 재투자한다! - 홈풀(Home Pool)족 젊은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홈풀족은 학교나 직장 근처에 집을 얻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자동차를 함께 타고 다닌다는 카풀에서 유래된 말로, 남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직장이나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고, 함께 살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시간으로 어학원에 다니거나 자신의 취미생활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고 한다. 이밖에 눈길이 가는 족으로는… 오팔(OPAL)족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로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취미활동과 직업을 갖고 있는 노인들을 말한다. 코쿤(Cocoon)족은 나홀로족과 비슷한 사람들로 바깥세상에서 도피해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미드족은 미국 드라마 매니아를 말하며, 일드족은 일본 드라마 매니아를 뜻한다. 로하스(LOHAS)족은 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웰빙을 뛰어넘어 환경을 중요시하는 친환경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패러싱글(para single)족은 결혼하여 독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경제적 이유로 부모 집에 얹혀 사는 무리를 말한다. 글 정린 방송작가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美연구팀 “인기없다고 생각하면 몸무게 더 늘어”

    美연구팀 “인기없다고 생각하면 몸무게 더 늘어”

    학창시절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가가 훗날 자신의 몸무게를 결정한다는 이색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뉴욕시 정신건강·위생국의 애디나 레임쇼(Adina Lemeshow)는 “자신이 학교에서 인기가 없고 자아존중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10대 소녀일수록 몸무게가 더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인종의 평균 15세 소녀 4446명을 대상으로 일명 ‘사다리 게임’을 실시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이 사다리 게임은 사다리에 달린 10개의 가로장 중 1개를 고르는 방식이며 윗부분에 달린 가로장을 선택할수록 자아존중감과 인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에서 4264명의 소녀들(A그룹)은 사다리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 가로장을 잡았으며 182명의 소녀들(B그룹)은 그보다 더 낮은 부분의 가로장을 가리켰다. 연구진이 약 2년간 A·B그룹의 몸무게 변화를 조사한 결과 A그룹은 평균 6.5파운드(약 2.95kg), B그룹은 11파운드(약 4.99kg)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애디나는 “실험에 참여한 소녀들은 아직 성장 중이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 실험은 학창시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육체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고 연구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성공하려면 7가지 『ㄲ』을 갖춰야 한다

    『꿈』은 목표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꼴』『꾀』『끼』『깡』『끈』『꽉』이 필요하다. 1)『꿈』; 비전(Vision);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한다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고, 꿈을 잃어버리면 미래도 함께 잃고 만다. 꿈(야망·희망·의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이 즐겁고 생기(生氣)가 넘친다.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꿈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창의적 상상력(想像力;imagination)을 발휘하여 미지(未知)의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이는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2)『꾀』; 재치(才致)가 있어야 성공한다 남을 교묘하게 속이는 권모술수가 아니라, 해결하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헤치고 나가는 교묘한 생각이나 수단을 일컫는다. 꾀가 많은 사람은 지기(知機 ; 미리 낌새를 알아차림 ; 독실술)가 있다. 꾀를 부릴 줄 알아야 그때 그때의 어려운 형편을 좋은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풍부한 정보(情報)를 축적해야 하며, 두뇌 회전이 좋아야 한다. 3)『끼』; 기질(氣質)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끼>는 “기(氣)”가 변해서 된 말로. 특별한 기량(技倆;기술적인 재간이나 솜씨)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주로 ‘바람끼’‘화냥끼’처럼 점잖이 안정하지 못하고 나돌아다니는 기질(氣質)을 끼라고 일컬었으나, 요즘은 주로 연예인 기질이나, 직업 세계에서 일가견(一家見)를 이룰 특별한 기질을 의미한다. 4)『깡』; 심력(心力)이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 ‘깡’은 ‘깡다구’‘끈기’‘뚝심’‘성깔’ ‘강단’‘보짱’‘오기’를 뜻한다. 깡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악착스러운 강한 뚝심을 가진 사람이다. 또 깡은 성부 근성(根性 ;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끈질긴 성질)을 가진 사람으로, 강한 배짱(뱃심, 보짱)을 갖고 있다. 이는 육체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깡다구(성깔)에서 나온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굽히지 않고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강한 깡다구와 도전(挑戰) 정신이 있어야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5) 『끈』; 후원자(後援者)가 있어야 성공한다; 동반자(同伴者) 위대한 사람치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끈’은 좋은 만남(善緣)에서 생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관우와 장비(결의형제)를 만나고, 지묘가 출중한 제갈량을 만났듯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삼중고(三重苦)의 성녀(聖女) 헬렌켈러가 살리번이라는 여사를 만났듯이, 그리고 발명왕 에디슨은 유능한 숙련공인 ‘존 오트’와 훌륭한 수학자, 유능한 변호사를 자기 곁에 두고 도움을 받았기에 위대해질 수 있었다. 이렇듯 좋은 만남이 있어야 인간은 더욱 위대해질 수 있다. 6) 『꼴』; ‘꼴’이 좋아야 한다 좋은 인상, 매력있는 맵시를 갖춰야 한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기 브랜드(brand)를 심어 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모습,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 매력있는 매너(manner)를 남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인상은 두 번 줄 수 없다. 좋은 맵시. 매력적인 인상을 풍기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따르게 되는 법이다. 7) 『꽉』; 기회를 꽉 잡아야 성공한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꽉 잡을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좋은 기회가 올 때가 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버리는 사람에게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 기회를 꽉 잡지 못하면 자기에게 찾아든 행운도 지나쳐버리고 만다. 글 김진수 수필가. 의학박사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쇠꼬리가 떨어져 맞고소 붙었는데

    쇠꼬리가 떨어져 맞고소 붙었는데

    대구(大邱)지검 14호 송종의(宋宗義)검사는 19건의 방대한 관련서류와 증거물로 넘어온 6백g짜리 쇠꼬리를 책상위에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시장에서 9살짜리 소를 흥정하던 점잖은 시골양반들이 떨어진 쇠꼬리를 놓고「잡아 뗐다」「풀로 붙였다」의 삿대질인 것. 꼬리 없는 소는 말이 없고, 고소자들은 서로 결백을 주장하는 이 해괴한 사건의 자초지종-. “멀쩡한 꼬리 잡아뗐다”에 “풀로 붙였더라”고 맞서 「쇠꼬리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이 해괴한 사건은 지난 3월12일 낮12시쯤 경북성주군 성주면 경산동에 있는 쇠전(우시장)에서 시작됐다. 이날 9살박이 암소 한마리를 팔려고 끌고나온 정(丁且·50·성주군 대가면칠봉동123)는 중개인을 넣어 쉽게 소를 사려던 조인제(趙仁濟·60·칠곡군 약목면평북동462)씨를 만나 10만원 안팎에서 흥정은 무르익어갔다. 조씨는 사기전에 다시한번 무슨 흠이없나 소를 훑어 보던끝에 꼬리의 3마디부분에 유달리 지저분하게 똥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 『오른손으로 꼬리에 묻은 똥을 닦아주었을 뿐』이라고 진술에서 주장했듯이 조씨는 소의 꼬리를 힘주어 잡아당기지 않았는데도 꼬리가 힘없이 떨어지더라는 것. 조씨의 손에 쥐어진 끊긴 쇠꼬리를 보자 소를 팔려던 정씨는 『왜 남의 쇠꼬리를 잡아당겨 떼어놓느냐』고 삿대질. 너무도 순간적인 일이었다. 특히 꼬리를 잃은 소는 정씨 자신의 것도 아니고 형인 정팔광씨(64·성주군 대가면 옥성동)의 것으로 대신 팔러나왔다가 이런 변을 당하게 됐다. 꼬리가 없어져 육체적으로 불가결한 기능의 일부를 잃은 이 소를 놓고『사야된다』『못산다』로 싸움은 더욱 격화. 조씨는『환갑인 내 나이에 무슨 힘으로 쇠꼬리를 잡아뽑느냐, 떨어져있는 것을 풀로 붙여 눈속임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입증할 수 있는 소와 끊긴 꼬리는 말이 없고, 끝내는 난투극으로 까지 번졌으나 타협이 이루어지지않아 정씨는 조씨를 걸어 재물손괴로 성주경찰서에 고소를 했고 이에 맞서 조씨는 정씨를 사기미수및 상해죄를 들어 맞고소. 솟장에서 정씨는 10만원짜리 소가 꼬리를 잃어 제구실을 다못할 불구가 됐으니 끊긴 꼬리의 값은 2만원 이상의 재물이라 주장하고 있다. 흑백 가려낼 확증이 없자 쌍방은 증인 찾기에 나서 한편 조씨는 꼬리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끊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위해 성주군 성주면 경산동 종로가축병원 원장 배경호씨등 2명의 수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를 붙여 재물손괴의 무혐의를 주장하면서 꼬리 끊긴 소를 속여 팔려했다고 정씨를 사기로 고소. 특히 조씨는 쇠전에서 정씨로부터 매맞아 2주의 치료를 요한다는 상해진단서(중앙외과의원·강신완)까지붙여 상해사건도 같이 묶었다. 사건 다음날인 3월13일 수의사 배씨가 발행한 진단서에는「피하 점막이 조조하고 점막하층의 출혈점이 없고 그 부위가 건락화된것으로보아 꼬리 탈락이 5~7일쯤 경과된 것으로 진단함」이라는 사람의 진단서보다 어려운 용어가 나열된 의견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진단서의 의미는 사건의 4~6일전에 이미 그 소의 꼬리는 떨어져 있은 것을 입증하고 있지만 정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다만 정씨는『지난해 11월부터 이 소를 사서 길러왔는데 얼마전 꼬리부분에 약간의 상처만 있었을뿐 떨어진게 아니고 멀쩡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 송치된 이 사건의 관련서류들은 두사람의 고소장과 진단서, 참고인 진술서등 모두 19가지. 물적증거물로서는 떨어진 쇠꼬리 1개가 넘어와 대구지검에서 귀중하게 보관중이다. 사건의 흑백을 가려내기 위해 부심하는 담당 송검사는 기록을 검토하면 할수록『쉽고도 어려운 사건』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다. 그동안 수사를 펴온 성주경찰서 역시「쇠꼬리 사건」자체에 관련된「사기·재물손괴」피의 사실엔 확증을 잡지못해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불기소의 의견을 달아놓았고 파생적인 사건인「상해」고소에 대해서만 기소의견을 달았다. 검찰이 부를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황(黃·59)모씨등 유력한 증인을 확보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그런 사정도 아랑곳없는 꼬리잃은 소는 극성스럽게 덤벼드는 파리떼를 쫓지못해 큰 고생을 하고있다. 재판해서 집안이 망해도 꼭 끝장내겠다 서로 별러 꼬리가 없어졌기때문에 뒷덜미에 파고드는 파리를 쫓을 수가 없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실정. 『재판하면 집안이 망한다지만 이번만은 끝장을 내야겠다』고 벼르는 두사람. 조씨는『끊어진 꼬리를 풀로 붙여서 병신소를 가지고 제값을 받아내려다가 들킨 것을 부끄러워 할줄은 모르고 10살이나 위인 나에게 손찌검을 했으니 꼭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도의적인 문제까지 내세우고 있다. 한편 정씨는『멀쩡했던 소의 꼬리를 끊어 놓았으니 꼬리만이 아니고 당연히 소값을 치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에서 그는『조씨를 때린 일은 없고 멱살을 잡았을 뿐』이라고 진술, 상해사건도 혐의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 정씨는『6백g의 무게가 있는 꼬리를 무슨 재주로 풀로 붙여 매달아 몇시간씩 끌고 다닐 수 있느냐』고 자신의 결백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쇠꼬사건은 어떻게 그 꼬리가 마무리 될지 흥밋거리다. [선데이서울 71년 5월 2일호 제4권 17호 통권 제 134호]
  • [열린세상] 교육부 개편론에 앞서/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열린세상] 교육부 개편론에 앞서/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은 너무 진부할 정도다. 교육은 이미 정치 그 자체가 되어 버렸거나 혹은 정치과잉화되어 구호만 난무한다.3불(不)정책에 관한 찬반론이 그러하였고, 특목고의 해체냐 증설이냐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하다. 실체는 간 곳 없이 표피적인 판단과 정략적인 구호만 요란하다. 새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해체론 혹은 개편론도 따지고 보면 그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학교에 관한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교육부의 관료주의는 혁파대상 1순위다.‘국민교육’을 핑계로 교육 현장의 구석구석까지 규제와 간섭으로 일관해온 권위적 교육행정은 당장이라도 척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 개편론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우리 교육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오간 데 없고 교육부의 해체나 구조조정이라는 조직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교육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판단이 선행되어야 어떤 교육조직과 체제가 필요한지를 논의할 수 있음에도 지금은 공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언급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다. 개편론의 골자는 교육부의 기능과 권한을 조정하여 초·중등교육은 지역교육청에, 대학교육은 각 대학과 대학교육협의회에 이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특목고의 증설과 대학입시에서의 대학 자율권 확대로 이어진다. 형식은 자치의 확대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교육 영역에 대한 시장주의와 적자생존식의 경쟁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개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공교육’의 의미와 목적은 간과되고 있다. 교육이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국가과제인지, 아니면 인성을 계발하고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배려인지,‘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선언한 헌법의 정신이 경쟁과 도태에 입각한 교육체제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능력과 의지에 부합하는 삶의 방법을 교육하겠다는 것인지…. 아쉽게도 교육 그 자체에 관한 고민은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교육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그 자치가 누구의 자치인가는 별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주민의 무관심에 편승하여 교육관료들이 관내 학교에 군림하는 체제를 유지해온 지방교육청에 자치권을 강화한다든가, 패권적 학벌주의에 종속되어 입시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대학에 자율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자치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자치와 자율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이기적 행태들은 자율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해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목표와 성취를 향해 일직선적인 전진만 추구하는 도구합리주의의 폭력이 우려되는 것이다. 교육행정의 과제는 바로 이런 ‘시장의 실패’를 교정함에 있다. 교육의 문제를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능력에 일임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조정하고 규율하는 공적 권위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육행정의 본질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경쟁과 도태의 논법은 결코 교육개편을 위한 지고선이 되지 못한다. 이미 우리 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점령당하여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글논리에 잠식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부 개편론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교육에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공적인 것’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국가는 어떠한 역할과 책무를 떠맡아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과 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에야 교육부 개편론은 비로소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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