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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무상’ 육영수 생가 다시 살아날까

    ‘권력무상’ 육영수 생가 다시 살아날까

    충북 옥천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육영수 생가(옥천군 옥천읍 교동리)가 박근혜 정부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방문객들이 몰려 생가가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다는 얘기다. 권력의 정점은 달콤하지만 권력의 끝은 그 무엇보다 쓰다는 권력무상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자 군이 생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옥천군에 따르면 2012년 연간방문객 22만2301명을 기록한 육영수 생가는 박 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방문객이 급증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을 한달여 앞둔 2013년 1월부터 사람들이 몰리더니 그해 연간방문객이 전년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38만1202명을 기록했다. 당시 방문객들이 넘치다보니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줄이 20여m를 넘는 진풍경이 펼쳐졌고, 주차장 부족으로 마을 진입로까지 차량들이 차를 세워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또한 생가를 오고싶어하는 노인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 판매업자들이 차량을 동원해 노인들에게 생가 구경을 시켜준 뒤 약을 팔아 사법기관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급증했던 방문객은 2014년과 2015년을 거치면서 조금씩 감소하더니 촛불시위가 전국을 뒤덮은 2016년 12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추운겨울에도 해마다 1만명정도를 기록하던 12월 한달 방문객이 3921명으로 급격히 줄었던 것. 2017년 1월은 더 감소해 2491명에 그쳤다. 9월 현재 올해 방문객은 5만8000여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2월까지 7만여명을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옥천군 관광과 조도형 생가 담당은 “경제도 어렵지만 방문객 급감의 가장 큰 원인은 탄핵”이라며 “한때는 놀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이제는 찾아오는 이가 적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에 군은 생가에 변화를 준다는 계획이다. 영화세트장처럼 건축물만 덩그러니 있는 다른 생가들과 달리 방안에 가구 들을 배치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한 육영수 여사를 잘 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취합해 생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씌우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군은 벤치마킹을 위해 타 지역 생가들도 둘러보기로 했다. 군 김세진 관광지원팀장은 “생가를 살리기위한 사업이 추진되고, 생가 주변에 이미 착공한 전통체험관이 건립되면 옛 명성을 찾을 것”이라며 “또한 정치적인 문제로 방문객이 급감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방문객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생가는 육 여사가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조선후기 지어진 99칸 전통 한옥인데, 낡아 허물어진 것을 군이 2011년 37억50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주변에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향교 등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역대 대통령, 추석 연휴 어떻게 보냈나?

    역대 대통령, 추석 연휴 어떻게 보냈나?

    ‘일일 교통통신원’ 역할에 재래시장과 전통 마을 방문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추석 연휴 일정은 빼곡하다. 최장 열흘간의 ‘역대급’ 연휴인 만큼 가족과의 휴식 일정 외에 민생 현장을 찾는 일정을 많이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들은 주로 가족과 함께 추석을 조촐하게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주로 청와대 관저에서 보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국립현충원을 찾아 성묘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추석 때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추석특집 아침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대화하며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했고, 서민정책 현장에서 만났던 인사동 풀빵장사 부부, 구리 시장 할머니 등과도 만났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의 선영을 찾아 성묘하고 마을 주민들과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독서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나 대통령 공식 별장 청남대에 머물며 독서에 열중했다. 김 전 대통령이 명절 때 읽은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거제나 청남대에서 휴식을 취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도 별다른 일정 없이 조용히 추석을 보냈다. 추석 연휴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정국 구상의 시간이었다. 물론 모든 대통령들이 평온하게 추석 연휴를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선언하는 바람에 추석연휴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청와대로 돌아왔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1년 9·11 테러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을 맞아 맘 편히 연휴를 보내지 못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 “댓글 보면 살벌하다”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 “댓글 보면 살벌하다”

    “포스터만 보고도 평점 0점을 주었다.” 김재환 감독이 도발적인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들고 돌아왔다. 이 작품은 2016년 여름부터 박근혜 탄핵 직후까지 박정희와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박정희 세대’의 모습을 담았다. 때문에 보수와 진보는 물론 보수 단체들 내부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김 감독은 “양쪽에서 화끈하게 욕먹고 있다. 댓글 보면 살벌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한쪽은 폐기처분해야 할 박정희 세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고 욕하고 다른 한쪽은 좌파 감독이 만든 보수 영화라고 또 욕을 한다”면서도 “영화가 개봉하고 내용을 확인하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며 작품에 대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재환 감독은 TV에 등장하는 맛집들의 ‘미디어 조작’을 낱낱이 까발린 ‘트루맛 쇼’(2011년)와 이명박 정부 5년을 다룬 ‘MB의 추억’(2012)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을 뒤집는 도발적인 의제를 설정해왔다. 이에 ‘공범자들’ 최승호 감독은 “’MB의 추억’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매일 아침 박정희 사진에 절을 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염불하듯 외우는 어르신을 어떻게 이토록 애정 깊게 찍을 수 있었을까”라며 “박정희와 박근혜를 우상처럼 여긴 사람들에 대한 경멸 어린 시선을 거두고 이제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대화해보자고 이끄는 영화”라고 평했다. 김재환 감독은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의 영화가 아니다. ‘박정희는 잘했고 육영수는 그립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박정희 세대’에 관한 영화다. 이분들과 어떻게 대화할까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박사모 집회에서 무대에 선 사람들과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 ‘대화’와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특별한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10월 26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85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박정희 기념사업에 이어 육영수 추모사업도 논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이어 육영수 여사 추모사업도 번번히 논란이 일고 있다. 민간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지만 옥천군의 예산이 지원되서다. 8일 군에 따르면 오는 15일 오전 11시 옥천여성회관 광장에서 옥천군 애향회가 진행하는 육 여사 43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옥천이 고향인 육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의 광복절 기념식에서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추모식은 지역 기관·단체장과 종친 등 500여명이 참석해 헌화·분향 등을 하고, 생전의 육 여사 육성녹음을 듣는 순서로 진행된다. 애향회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따른 국민정서 등을 고려해 친박단체 회원은 초청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러나 이 행사에 군 예산 253만원이 지원되면서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옥천국민행동’ 공동대표를 역임한 오대성 옥천군 노동조합협의회장은 “독재자의 부인을 미화하고 우상화하는 행사에 군 예산을 주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번 행사는 그냥 지켜볼 계획이지만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예산삭감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창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회문화국장은 “육 여사는 추모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찬반논란이 일고 있는 행사에 군이 나서는 것은 또다른 논란을 초래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금유신 애향회 회장은 “고향출신인 국모를 추모하는 순수한 행사”라며 “긴급이사회를 열어 예산을 반납하고 자비로만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육 여사 때문에 옥천이 시끄러웠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육 여사 생일인 11월29일 열리는 숭모제 반대시위가 열려 군이 올해부터 숭모제를 지원하지 않는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청주 수해 현장 찾아 구슬땀 흘린 김정숙 여사

    청주 수해 현장 찾아 구슬땀 흘린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21일 문 대통령을 대신해 폭우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충북 청주 지역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김 여사는 하천지역이라 피해가 컸던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2리 청석골 마을을 찾아 4시간 동안 주민들과 함께 복구 작업을 함께했다. 청석골 마을은 가구 20호 가운데 12호가 침수되고 농경지 일부가 유실되는 등 집중호우로 피해가 컸다. 김 여사는 폭우로 젖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세탁물 건조 작업을 도왔다. 김 여사는 복구 작업을 다른 집에 양보하느라 침수 피해가 특히 컸던 집을 방문해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하는 마음에 감동받았다”며 피해 주민을 위로했다. 대통령 부인이 수해 현장을 찾아 복구 작업을 직접 도운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구호물품을 전달한 적은 있었지만, 수해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복구 작업을 한 적은 없었다. 정치인들도 충북 수해 현장을 찾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이보다 앞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19일 문 대통령이 준비한 여야 대표 오찬 자리를 거부하고 수해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1시간밖에 안 되는 봉사활동 시간에 한 남성이 홍 대표에게 장화를 신겨 주는 사진이 퍼지면서 ‘장화 의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존경의 선물’인가 ‘권력의 산물’인가...기념우표 논란 ‘팩트체크’

    ‘존경의 선물’인가 ‘권력의 산물’인가...기념우표 논란 ‘팩트체크’

    ‘정부에서 발행하는 우편요금 선납의 증표. 최근에는 취미나 기념으로 모으는 수집용으로서의 부가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우표포털 서비스에 나오는 우표에 대한 소개다. 정보통신 발달로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이 우표가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지난해 6월 발행이 결정됐으나 문재인 대통령 시대로 바뀐 지난 12일 발행이 취소됐다. 그러자 국민통합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행 취소 비판론과 독재자를 미화 찬양하는 행위야 말로 적폐청산에 맞지 않다는 옹호론이 엇갈리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는 지난해 4월 구미시가 우정사업본부의 ‘2017 기념우표 발행 공모 사업’에 신청해 그해 6월 선정됐다. 오는 9월 15일 발행 예정이었으나 거센 논란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2일 우표 발행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기념우표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국내외 기념우표를 둘러싼 궁금증을 짚어본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가장 많았다?” 한국우표 포털서비스에 등록된 역대 대통령 기념우표를 살펴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46가지(외국 대표 방한 기념 포함)로 가장 많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가 23가지(육영수 여사 기념, 새마을운동 기념 포함)로 두 번째로 많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가 6가지(국토통일 기념 포함)로 뒤를 이었다. 다른 대통령의 경우 취임 기념우표가 각 1회 발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우표가 추가돼 모두 2회의 기념우표가 제작됐다. 가장 많은 우표를 발행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주로 해외 순방 우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도, 호주, 스리랑카, 뉴질랜드 방문’ 기념우표 4종을 순방에 앞서 발행했지만 그해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나 순방이 취소되며 ‘기념할 것 없는’ 기념우표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군사정권으로서 부족한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해 우표발행을 많이 했다는 지적이 있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에 정치인이 들어간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 발행된 100주년 기념우표 중에 정치인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됐더라면 최초로 대통령 탄생 100주년 우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역대 기념우표를 살펴보면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는 한 번도 없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우표는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과 이중섭 탄생 100주년, 슈바이처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가 있었다. 이 외 생일 관련 우표로는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 이승만 탄신 80주년, 이승만 탄신 81주년,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 괴테 탄생 250주년 등이 있다.● “외국에선 대통령이라고 100주년 기념우표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케네디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으로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과는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 루즈벨트 전 대통령, 레이건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됐다. 2009년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승인했고 2년 뒤 레이건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나왔다. 영국에서도 1974년 전 총리인 윈스턴 처칠의 100주년 기념우표가 만들어졌다. 이땐 영국뿐 아니라 처칠을 존경하는 다른 국가들도 처질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중국에선 초대 총리인 저우언라이, 두 번째 국가주석인 류샤오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등이 발행됐다.● “중국에선 논란의 인물 마오쩌둥 탄생 100주년 우표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는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되자 13일 기자들에게 “중국에서는 모 주석 시기에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명이 희생당했다”며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모 주석 탄신 100주년에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박근령씨가 언급한 중국 모 주석은 ‘마오쩌둥’ 주석이다. 중국에서는 1993년 마오쩌둥의 100주년 탄생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왔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정치가로 장제스와의 내전에 승리해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당시 각종 사상 탄압이 이뤄져 상반된 평이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박근령씨의 말대로 마오쩌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둘 다 재임 기간의 공로와 과오가 뚜렷하나, 이를 받아들이는 국내 정서는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에 대한 국민정서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 이미 길거리에서 모택동 티셔츠나 열쇠고리 등 기념 물품을 파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화폐인 인민폐에도 마오쩌둥의 초상이 들어 있다. 한편 1993년 북한에서도 마오쩌둥의 100주년 탄생 기념우표를 발행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이 우표를 만들려고 법을 바꿨다?”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 발행을 위해 내부 규정을 바꿨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의혹의 대상이 된 규정 개정을 살펴보면 ‘특수우표’라는 용어를 ‘기념우표’로 바꾸고 우표발행 ‘신청제한기간’ 규정을 삭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용어를 제외한 ‘우표 발행대상 세부내역’은 변경된 바 없고, 우표발행 신청 접수는 관례적으로 신청기간이 지나도 반영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이 사문화 됐다는 판단 하에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존에 발행된 이중섭 탄생 100주년, 2016국제로터리 서울대회 등의 우표도 접수 기간이 지나서 신청됐지만 결국 발행됐다. 따라서 이번 규정 개정이 기념우표 발행과 관련한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이하영 수습기자 hiyoung@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임을 위한 행진곡’, 신중현, 그리고 르상티망

    [유진모의 테마토크] ‘임을 위한 행진곡’, 신중현, 그리고 르상티망

    지난 18일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얼마 전 미국 버클리음대로부터 한국인 최초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은 신중현은 1970년대 초반 청와대의 박정희 찬양 노래 작곡 지시와 협박을 계속 거절했고, 이후 그가 만든 ‘미인’, ‘거짓말이야’(김추자) 등 숱한 곡들이 금지곡이 됐다.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2집(1974)에 수록된 곡. 육영수가 TV에서 접한 이 곡과 엽전들에 심한 불쾌감을 드러내자마자 금지곡이 됐다. 박근혜 정권은 그들의 입맛에 안 맞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감시하고 불이익을 줬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에서 제창곡이 아닌, 합창곡으로 격하된 배경과 연계된다. 300~400년 전의 편협했던 유럽의 고전주의 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문화와 예술을 권력의 입맛 맞춤형 규칙으로 통제하는 건 언로에 재갈을 물리고 창작력과 상상력에 수갑을 채우는 독재적 폭정이다. 동물도 언어 비슷한 걸로 소통을 한다. 사자의 리더는 무리에겐 종교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 중 문화와 예술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미국보다 역사가 훨씬 길고, 가깝게 이씨 왕조시대만 하더라도 성군들이 넘쳤던 우리 민족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에선 불행하게도 훌륭한 대통령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승만은 종신 집권을 노렸으나 4대 대통령 취임사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4·19혁명에 의해 쫓겨났다. 바로 전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의 ‘몸통’이란 혐의로 탄핵당한 뒤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대다수 언론은 전통적 여당 출신 대통령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연일 ‘파격적’, ‘이례적’이란 수식어로 포장한다. 오랫동안 권위적 도그마와 군림의 비정상적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정상이 생소한 걸까. 최소한 다수의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판도라’(박정우 감독·2016)는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고가 소재. 실세 국무총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젊은 강석호 대통령의 귀와 눈을 막고 언론과 국민을 거짓말로 통제하려 함으로써 자리보전에 연연한다. 대통령은 뒤늦게 총리의 전횡과 농단을 알아챈 뒤 모든 진실을 낱낱이 국민에게 보고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현장의 팀장에게 전화한 그의 첫마디는 “저, 강석호입니다”다. “나, 대통령이오”가 아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롤란트 에머리히 감독?2013)의 무대는 백악관. 경호팀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존 케일은 제임스 소이어 대통령의 열렬한 팬인 딸이 크게 실망하자 함께 백악관 투어에 나선다. 공교롭게도 그날 괴한들에 의해 백악관이 점령되자 케일은 고립무원의 대통령을 구한다. 케일과 고마움의 악수를 나누는 대통령의 첫마디는 “나 제임스 소이어요”다. 괴한들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케일의 딸을 붙잡고 케일에게 나타날 것을 촉구한다. 그러자 대통령은 케일에게 나라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괴한들에게 걸어간다. 국민이 박근혜 정부 때 가장 절실했던 게 경제 살리기라면 답답했던 건 불통일 것이다. 탄핵과 정권 교체의 촉매제는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분노한 민심이었다. 일방통행이 불 지핀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은 르상티망이다. 니체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 욕구에 대한 약자의 격정을 르상티망이라고 규정했다. 5·18 정신과 촛불 민심의 근간도 르상티망이었다.
  • [부고] 장덕진 前농수산장관 별세

    [부고] 장덕진 前농수산장관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국회의원과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을 지낸 장덕진씨가 20일 별세했다. 82세. 장 전 장관은 강원 춘천 출신으로 1960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사법·행정·외교과에 잇따라 합격해 이른바 ‘고시 3관왕’에 올랐다. 1968년 재무부 이재국장 겸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장(1970년), 제8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 갑·민주공화당), 경제기획원 차관(1975년)을 거쳐 1977년 농수산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장 전 장관은 고 육영수 여사의 언니 육인순씨의 사위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처조카 사위가 된다. 장남 원준씨가 현재 TV조선 국제부장이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 발인 22일 오전 10시.(02)2258-5940.
  • [문화마당] 여러분의 뉴스는 안녕할까요?/김민정 시인

    [문화마당] 여러분의 뉴스는 안녕할까요?/김민정 시인

    딸 넷 가운데 유독 아빠가 나를 예뻐한 이유를 자매들은 첫정이니 그로 인한 편애니 말들 많이 해 왔지만 거두절미하고 나는 이 때문이라고 보는 바이다. 그러니까 아침에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며 신문 보는 일곱 살짜리 유치원생이 나였고, 저녁에는 밥상 물리고 과일 먹어 가며 9시 뉴스 보는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이 나였던 것. 우리 큰딸은 글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신문 활자를 한 자도 안 빼고 다 읽는다니까. 우리 큰딸은 있지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부터 시청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까지 텔레비전 뉴스 한마디도 안 놓친다니까.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아빠는 물텀벙이집에서 두꺼비 소주병을 젓가락으로 뻥뻥 따가며 친구들에게 허세를 떨어 대곤 했다. 간혹 그 자리에 껴 있던 나는 부끄러움에 아빠의 손등을 꼬집고는 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내게 귓속말로 이랬었다. 다 이 맛에 자식 키우는 거지 뭐. 근데 어디 취해서 기억들이나 하겠냐? 그래, 가게방 안쪽 농문이 화장실 문인 양 그거 열고 오줌을 싸려는 아저씨도 말린 적이 있었으니 무슨 기억들을 하겠어 그랬건만 후에 만난 아저씨들은 내게 덕담이랍시고 이런 말들을 건네고는 했다. 세상사 관심이 그리 많담서. 그래도 데모는 절대 안 된다. 네 아부지 피 토하고 죽는다. 이담에 육영수 여사 같은 영부인 되어 갖고 인천을 크게 빛내야 한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이런 말들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으니 어른들이여, 부디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최소 다섯 번은 곱씹고 내뱉길 바라노니 그때부터 조숙한 짐승의 털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던 나는 아빠와 매일 저녁 뉴스 보기를 자기 전 양치하기처럼 습관화해 나갔다. 책 좀 읽으라면 졸기 바쁜 아빠가 뉴스만 보면 일인극을 하는 배우처럼 온몸을 던져 상황에 몰입하는 연유가 궁금도 하고 신기도 했으나,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아는 까닭에 더는 알려하지도 않았다. 해방둥이라니까, 한국전쟁을 겪었다니까, 월남을 갔다 왔다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에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던 거라니까, 데모하는 대학생들 돈 대주는 게 간첩이라니까, 북한에 돈 퍼갖다 줘서 핵 만든 거라니까. 아아 힘들게 살아온 건 아는데 아빠, 우리 가족이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살 수 있었던 건 아빠가 뼛골 빠지게 일해서야, 박정희가 아빠 등골 뽑아 먹어서라고. 제 인생사를 뉴스 속에 대입시켜 한국사를 연기하는 아빠와 달리 나는 퍽이나 객관적인 위치에서 온갖 뉴스 채널을 돌려 가며 한국사를 정리하는 편인데, 그 대부분의 거리들이 실은 사건사로 점철돼 있다. 좀 많은가, 이 나라의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답답하고 억울한가, 끝끝내 그들이 왜 돌아올 수 없는지 밝혀 주지 못하는 상황들이.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이 나라의 뉴스라 하면 내가 무사하여 듣게 되는 누군가의 참담한 상황으로 정의돼 버렸다. 그런데 연일 이 뉴스들 중 가짜들이 있어 속속들이 밝혀지는 중이란다. 진짜 가짜를 가려 내는 육감 적중 쇼도 아니고 설마하니 뉴스를 의심한 적 없이 살아온 아빠는 물론이고 매일같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읽기 바쁜 나도 멘붕이긴 마찬가지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강도가 센 얘깃거리들에 현혹돼 가는 우리들, 게다가 대선이라는 크나큰 현안 앞에 일명 아무말대잔치가 벌어지기도 한 이 마당에 아빠의 휴대폰에서 삐삐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오늘도 아빠는 오늘의 뉴스를 초등학교 동창회 밴드에서 전해 듣는 모양이다.
  • 전격 체포 고영태, 검찰에 최순실 비밀 사무실 제보

    전격 체포 고영태, 검찰에 최순실 비밀 사무실 제보

    12일 검찰에 전격 체포된 고영태(41)씨가 최순실(61·수감 중)씨의 비밀창고 격인 사무실이 서울 강남에 한 곳 더 있다고 검찰에 제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민일보가 보도했다. 각종 서류가 쌓여 있던 이 창고 사무실은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가 입주해 있던 곳과 주소가 일치했다. 고영태씨는 여기에서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주변에 말했다. 이 매체는 고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 5층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이 연관된 서류들이 보관돼 있던 사무실이 기억난다는 취지로 지난달 검찰에 유선 제보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사무실에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의 문건 등 각종 서류가 많았다고 고씨는 검찰에 설명했다. 최씨와 함께 일하던 시절 최씨가 해당 사무실 주소를 일러주며 “사무실 공간으로 활용해 보라”고 해서 처음 방문하게 됐다는 게 고씨 측의 설명이다.고씨는 이곳에서 안 전 비서관을 목격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가 검찰에 해당 사무실의 존재를 제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씨가 검찰에 이 사무실의 존재를 제보했던 지난달에는 5층 사무실 방문 2개에 보안장치가 돼 있고 굳게 잠겨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주소는 재단법인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의 현재 등기상 주소와 일치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재단법인은 2013년 3월 이 건물 5층에 1억원의 전세금으로 전세권을 설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재단 대표이사였으나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3년 2월 사임했다. 이러한 비밀 사무실 이야기는 고씨가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술한 것이 아니라 유선으로 검사실 관계자를 찾아 제보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서로 기록되지 않았고, 검찰도 강제수사 등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신사동 비밀창고와 관련한 제보를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고 국민일보가 전했다. ▶ 검찰, ‘세관장 인사 개입 의혹’ 고영태 전격 체포 ▶고영태 측, 체포에 반발…법원에 체포적부심사 청구 ▶고영태 체포에 주진우 “우병우에 이런 열정 좀 보이시지”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 D-1…지지자들, 자택 앞서 바이올린 연주까지

    박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 D-1…지지자들, 자택 앞서 바이올린 연주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하루 앞둔 28일 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근처에 지지자 30여명이 찾아왔다. 이날 오전 11시쯤 지지자들은 담요를 두르거나 핫팩을 손에 쥐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왔다는 정수지(51)씨는 박 전 대통령의 집 근처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한 중년 여성은 박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며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숭모하는 목련회’ 소속 스님이라는 정모(71)씨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러 왔다며 집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정씨는 “대통령이 얼마나 불안하시겠느냐”며 “마음이라도 편하시라고 조용히 기도만 하고 가겠다”고 말했으나 경호관들은 출입을 불허했다. 또 다른 중년 여성은 “두려워 말고 감손된 자세, 죄인의 자세로 수사에 임해달라”며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초소에 맡겼다. 이날 오전에는 언제나처럼 미용과 화장을 담당하는 토니앤가이 정송주 원장과 가사도우미, 경호인력 외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외부인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55·연수원 24기) 변호사는 오후 1시 10분쯤 박 전 대통령의 집을 찾았다. 유 변호사는 ‘영장 실질심사가 어떻게 될 것 같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한다. 박 전 대통령이 강부영 판사에게 직접 소명할 것으로 보인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진태, 대구 서문시장 방문…“승부 지금부터, 살아 돌아오겠다”

    김진태, 대구 서문시장 방문…“승부 지금부터, 살아 돌아오겠다”

    자유한국당 대선주자인 김진태 의원이 20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김 의원은 이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관계자 등 2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태극기는 눈물이 아니고 희망이다”라면서 “진실은 시간이 흘러가면 역사가 정확히 밝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얘기를 그만하라고들 하는데 그게 되겠냐”며 “대통령님이 청와대를 나와 차디찬 집에 계시는데 구속까지 되면 되겠느냐”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승부는 지금부터다. 저는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외쳤고 애국가 제창을 유도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에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김 의원은 추모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영정에 참배한 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군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뵙고자 왔다”고 말했다. 방명록에 ‘위대한 한국인. 조국 근대화에서 선진 조국으로’라고 적어 박 전 대통령 업적을 칭송했다. 김 의원은 이에 앞서 경북 성주군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삼촌과 사촌 형제들을 만났다. 김 의원의 아버지 묘소는 대전 현충원에 있다. 캠프 관계자는 “김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 뜻을 기리고 민심을 듣기 위해 경북·대구 정치 1번지 격인 박 전 대통령 생가와 서문시장을 잇달아 방문했다”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까지 올랐던 화려한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쓸쓸하게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박 전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경북 대구 삼덕동의 한 셋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35세였던 아버지 박정희는 육군본부 정보국 제1정보과장이었고, 27세의 어머니 육영수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그녀의 평범한 삶은 10세가 되던 1961년 5월 16일 완전히 달라졌다. 아버지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 제5대 대통령이 됐고,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가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1974년 또 한 번 뒤바뀌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극의 첫 시작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영문도 모른 채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등을 통해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당시 심정을 회상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최태민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최태민은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에 주력하던 박 전 대통령에게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편지를 쓰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그녀는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피 묻은 아버지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재임 당시 측근들이 하루아침에 자신과 동생들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에 대해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자신의 곁에 두고 의지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님이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굉장히 강한 분이었기 때문에 제게 많이 의지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순식간에 ‘야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은 18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이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박 전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또 대표 시절 치른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직전 서울 신촌에서 유세를 하던 중 습격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 의식을 회복한 직후 꺼낸 “대전은요?”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우뚝 선 박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에서 두 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매번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며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7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최태민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25일 야심 차게 임기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임기 내내 끊임없는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며 국정운영에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취임 첫해에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사퇴하거나 낙마하면서 ‘인사 난맥’을 겪었다. 같은 해 5월 미국 순방 도중 벌어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탄핵 사유에도 포함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비롯해 정부의 무능한 대처는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11월에는 최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의 비선 실세 의혹이 터진 데 이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논란이 불거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찌라시’ 수준으로 규정했지만 파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5년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위기대응능력 부재로 질타를 받았다. 또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형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도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를 방문해 ‘개헌 카드’까지 꺼내며 국면 전환을 노렸지만, 비선 실세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총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 왔다”면서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최씨의 태블릿PC 등으로 드러나는 등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야 3당은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국회 본회의에서 234표로 가결됐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탄핵 소추 의결 이후 92일 만에 열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파면’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총 5년의 임기 중 1년에 조금 못 미치는 351일을 남겨두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정의·민주주의 승리… 새 미래 위해 힘 합쳐야” 합창

    박 前대통령 외가가 있는 충북에서도 “안타깝지만 중대 위법…탄핵 수용해야” “촛불이 이뤘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승리다.”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인용하자 전국에서 이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시민들은 소모적 국론분열을 수습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북핵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입을 모았다. 부산·경남 시민들은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대학생 이모(24·울산)씨는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쳤으면 한다”고 했다. 회사원 최모(35·경남 창원)씨는 “잘못은 누구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줬다”고 했다. 박인호 부산시민단체 공동대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외가가 있는 충북은 안타깝지만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김광홍(79) 충북노인회 회장은 “가슴은 아프지만 중대한 위법 행위를 한 만큼 탄핵 인용을 수용해야 한다”며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산적한 국가 현안을 해결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고 육영수 여사 생가가 위치한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한봉수(73) 이장은 “속이 무척 상하지만 뿌린 대로 거둬야지 어떡하겠느냐”고 했다. 광주시민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 모인 300여명의 시민들은 숨죽이며 트럭에 설치된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 전광판을 지켜봤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 서로 얼싸안으며 “국민이 승리했다. 촛불이 이뤄냈다”며 만세삼창을 외쳤다. 전남북도민들도 “당연한 결정으로 한국이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고 환영했다. 이성민(56·전남 목포)씨는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의 힘으로 단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며 “외국인들도 우리나라를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수도권에서도 탄핵 인용을 환영했다. 김모(27·인천)씨는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처럼 혼란에 빠뜨렸으면 책임져야 하는데 그동안 별의별 술수와 꼼수로 국민들을 기만했다”고 지적했다. 김형식(73·경기 안양)씨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법을 무시했고 민심을 저버렸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연루됐다는 보도로 곤욕을 치른 강원도는 이제 기회를 달라고 했다. 최종민(55·강릉)씨는 “상식이 비상식을 몰아냈다”며 “혼란스러운 정국이 수습됐으니 1년이 채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이 성공하도록 국민이 힘을 모아 달라”고 했다. 한편 부산과 제주 등에서는 탄핵 인용 기념 이벤트도 등장했다. 부산 금정구의 한 인문학 카페(마을기업)는 떡과 음료를 무료로 나눠줬고 해운대구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은 한정 수량으로 최신 휴대전화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했다. 제주 이도1동 소재 갤러리카페 ‘다리’는 이날 하루 모든 음료가 무료였다. 역시 제주 구좌읍 한동리 카페 ‘요요무문’도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에 참석한 인증 사진을 보여 주면 이날 모든 메뉴 중 하나가 무료였다. 제주 조천읍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겸 셰어하우스인 ‘하얀 선흘집’은 이날 무료 숙박 행사를 열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어떤 처우받나

    연금 등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최대 10년 경호·경비는 유지국가장 가능·현충원 안장 불가불소추특권 상실 檢수사 가능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서 경호·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하게 됐다. 헌법상 대통령 권한인 불소추 특권도 상실했기 때문에 체포·구속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한 검찰 수사도 가능해진다. 박 전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더라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간 대통령 보수의 95%에 상당하는 약 1200만원 수준의 연금이 매달 지급된다. 또 경호·경비,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기념사업, 비서·운전 인력(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 교통·통신 및 사무실 유지비, 공무 여행 시 국외여비, 본인 및 가족의 치료비 지원이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런 예우를 적용받지 못하는 예외 사유에 포함된다. 재직 중 탄핵으로 퇴임한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형사처분 회피를 위한 목적으로 외국 정부로 도피하거나 보호를 요청하거나 국적을 상실하면 전직 대통령 예우 대상 자격이 박탈된다. 다만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라도 재임 당시 최고 수준의 국가기밀을 다뤘던 점을 감안해 ‘필요한 기간의 경호·경비’는 유지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 기간은 최대 15년까지이지만 중도 퇴임 시엔 최대 10년으로 기간이 짧아진다. 경호 인력은 전직 대통령 내외를 기준으로 통상 25명 안팎이다. 미혼인 박 전 대통령은 20명 수준의 인력이 경호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경호실이 맡는 경호 기간이 끝나더라도, 필요에 따라 경찰이 적절한 경비 인력을 투입할 수는 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국립현충원에 묻히는 예우도 받지 못한다. 국립묘지 설치·운영법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나, 탄핵이나 징계 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탄핵으로 파면된 대통령이라도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가능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됐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영애’ 시절부터 청와대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 최순실(61) 게이트에 발목이 잡히며 19년 정치인생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18년…은둔생활 18년 1952년 2월 2일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 육영수 여사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은 이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에 의해 1963년 2월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18년간을 박 전 대통령은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에 지내게 된다.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암살당하며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어 1979년 10월 26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이후 1개월 만에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18년간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재 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긴 했으나 언론에 일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 ‘정치인’ 박근혜의 19년이지만 한동안 칩거를 이어가던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 이후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박 전 대통령은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2004년부터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완승을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유력 대 주자로 발돋움한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이때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를 토대로 2012년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제18대 대통령이 됐다.그러나 집권 4년 차인 2016년에 최순실 파문이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도 뿌리째 흔들렸다.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이 지난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으로 끝났다.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19년 관직 생활이 끝났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지난해 끝난 셈이다. 그러나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으며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받아들이면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법적 투쟁’의 길을 가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 대통령, 탄핵 인용되면 23년 산 삼성동 집 판다…이후 어디로?

    박 대통령, 탄핵 인용되면 23년 산 삼성동 집 판다…이후 어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 선고일이 10일 오전 11시로 정해졌다. 아직 탄핵심판 결과는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변론기일이 진행되면서 이달 초 선고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많이 나왔던 터라 청와대는 물밑으로 박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거주지를 물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만약 탄핵을 인용할 경우 박 대통령은 즉시 ‘현직’에서 ‘전직’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거처하는 것에 대한 법적인 근거 규정은 없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 청와대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언제까지 짐을 빼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탄핵시 청와대에서 바로 나와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삿짐 정리 등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재직 중 헌재의 탄핵결정을 받아 퇴임할 경우를 대비해 청와대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박 대통령의 사저를 매각하고 경기도 모처의 새 사저를 물색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박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 1990년부터 2013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23년 동안 거주했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태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서울 신당동 집으로 이사갔다. 이후 1982년 성북동, 1984년 장충동에서 1990년 현재의 삼성동으로 이사했다.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측근인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이 최씨 소유의 강원도 평창 땅을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할 사저 부지라고 언급하면서 “부지 가봤어? 거기가 사실 아방궁이 될텐데…. 맨 끝이 VIP가 살 곳이야”라고 말하는 녹음 파일이 지난달 21일 법정에서 공개된 바 있다. 과연 박 대통령의 퇴임 후 청와대의 이삿짐 차량이 과연 어디로 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9일 동아일보는 삼성동 사저 인근 주민들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지난달 말 청와대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저와 주변 건물의 매물 시세를 파악하고 갔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30, 40대 남성 3명이 사저 등 인근 건물 5곳의 가격을 묻고 갔다”면서 “그중 매물로 나와 있는 한 곳은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경호동으로 쓰였던 건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사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3층 이상 건물을 찾았다. 중개업소 사장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로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군 등 TK지역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있는 충청 지역 등에 새 사저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에서 주로 생활해 온 박 대통령이 서울에서 먼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경기도 모처에 새 사저를 마련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대통령법)엔 대통령이 재직 중 탄핵심판으로 퇴임(파면)될 경우 비서관 채용이나 연금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있지만 경호·경비는 예외다. 따라서 사저 옆엔 경호동이 있어야 하고 사저 자체도 주변 민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삼성동 사저의 경우 지금 상황으로는 재건축 수준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경호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청와대는 삼성동 사저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로 한 기존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방침이다. 청와대는 1983년에 지어져 노후화된 삼성동 사저를 허문 뒤 박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머물 방과 사무실이 있고 전직 대통령 경호·경비에 적합한 새 사저와 경호동을 신축할 계획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동흡 前헌법재판관, 朴대통령 대리인 합류

    이동흡 前헌법재판관, 朴대통령 대리인 합류

    이명박 정부 시절 헌법재판소장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동흡(66·사법연수원 5기) 전 헌법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합류했다.박 대통령 측은 13일 “이 전 재판관이 정식으로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했다”며 “탄핵심판이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전 재판관이 직접 변론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총 15명으로 불어났다. 이 전 재판관은 서울가정법원장과 수원지법원장을 지낸 뒤 2006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2012년 퇴임 이후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3년 1월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위장전입, 장남 증여세 탈루 등이 드러나는 등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이 전 재판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지방 출신 서울대 학생 전용 기숙사인 정영사(正英舍) 출신이어서 박 대통령과 연결 고리가 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법률자문을 하는 등 박 대통령을 측면 지원해 왔고 이번에 공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대리인단 합류를 위해 자신이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을 떠나 대통령 측 전병관 변호사의 법무법인으로 소속까지 바꿨다. 2012년 9월 헌법재판관에서 퇴임한 이 전 재판관은 2011년 3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과 헌재에서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이다. 박 대통령 측은 이 권한대행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이 전 재판관이 변론 절차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때도 권성 전 헌법재판관이 정부 측 대리인으로 선임된 적이 있다”며 “재판관 8명이 법리를 다루기 때문에 (인연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변론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朴대통령 국립현충원 찾아 성묘

    朴대통령 국립현충원 찾아 성묘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설 연휴를 앞두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성묘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을 정지당한 이후 첫 외출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날 낮 1시 45분 현충원에 도착해 10여분 동안 머물렀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행원 없이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대동하고 대통령 혼자서 다녀왔다”면서 “명절을 앞두고 원래 부모님 묘소에 갔다 오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해마다 설과 추석 직전에 최소한의 경호인력만 대동하고 현충원에서 ‘나 홀로 성묘’를 해 왔다. 이번 방문은 직무정지 후 관저에서 칩거 중인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청와대 경내를 처음으로 벗어난 일정이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후 첫 외출…현충원 찾아 성묘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후 첫 외출…현충원 찾아 성묘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청와대 관저에서 칩거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45일만에 첫 외출에 나섰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23일 오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성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현충원에 오후 1시 45분부터 약 10여분 머물렀다. 청와대 관계자는 “명절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원래 부모님 묘소에 갔다 오신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매년 설과 추석 직전에 최소한의 경호인력만 대동해 현충원에서 ‘나홀로 성묘’를 해왔다. 올해 성묘에도 최소 인력만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큰 결심을 하기 위해 선영에 다녀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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