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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훼손/반사회적 인권 침해… 어떤 처벌받나

    ◎「사실」을 퍼뜨렸어도 유죄 글이나 말로써사람의 인격을 침해하는 명예훼손에 관한 송사가 부쩍늘고있다.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자율화의 사회조류에 따라 신문·잡지·방송등 언론매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출판물이나 방송매체등에의한 명예훼손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때문이다.명예훼손시비는 그동안 정치인이나 연예인등을 중심으로 벌어졌으나 최근 들어서는 「이름없는」 개인간의 민·형사시비도 잦아지고 있다.이같은 현상은 언론매체의 급증에 따른 지나친 경쟁의식이 빚어내는 무책임한 편집자세에도 기인하는 것이나 피해를 당하는 개개인의 인권의식 이 매우높아진데도 그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명예훼손의 실태와 법적구제방법, 범죄구성요건, 처벌등에 관해알아본다. ◎신문·잡지 난입… 「폭로기사」 남발/정간물법개정뒤 극성… 에이즈복수극등 날조/중재신청 4년새 5배로 급증 ▷피해실태와 사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우리 헌법 제10조와 제17조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조문들이다. 그러나 최근 출판물이나 방송등 각종 언론매체에 의해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침해당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또 이에따른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것도 문제이다. 명예훼손은 피해당사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여론을 호도,사회질서 자체를 흔들리게까지 하는 반사회적인 폐해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명예훼손 사례는 지난 87년 11월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법의 개정으로 정기간행물의 등록요건이 크게 완화되면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각종 신문과 잡지 등이 공적 책임의식을 외면하고 판매량 증가에만 혈안이 돼 개인과 공인에 대한 뜬소문 등을 사실여부나 앞뒤 사정을 가리지 않고 흥미위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명예훼손을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이 들어온 침해사례를 보면 지난 88년까지만해도 해마다 30∼40건 안팎이던 것이 89년 87건,90년 1백36건,지난해에는 1백92건으로 4년만에 무려 5배나 늘어났으며 올들어서도 1·4분기에만 벌써 70건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를 당하고서도 관련기관에 신고나 고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실제로 직·간접적인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례는 이보다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명예훼손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웅진여성」의 「에이즈 여성 복수극」사건이라 할수있다. 10월에 창간한 신생 여성 월간지 「웅진여성」은 12월호에 자칭 르포작가라는 이상령씨(32)의 자료를 토대로 『미모의 20대 여배우인 김모양이 에이즈에 걸려 작고한 김모의원과 변호사등 각계 유명인사들과 성관계를 가진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기사와 함께 「김양의 사진」과 「일기장」까지 게재했다. 검찰 수사로 「에이즈 복수극」은 철저히 날조된 허위였던 것으로 판명돼 이씨등이 구속됐지만 사자등 개인에 대한 피해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씨와 관계자들은 「웅진여성」을 자진폐간하고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여 석방됐으나 이씨는 지난1일 성폭행을 당해 살인까지 한 「김부남씨사건」을 실명으로 외설스럽게 소설화해 또다시 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7일 검찰에 구속된 월간잡지 「인사이더 월드」발행인 손충무씨(51)사건도 비슷한 사례.손씨는 아무런 사실확인 절차도 없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교포신문에 실렸던 허위기사와 사진을 가지고 「인사이더 월드」5월호에 김모정치인에게 일본 이름을 쓰는 30살의 딸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기사를 실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문제의 교포신문 발행인은 과거 허위보도와 관련,철창신세를 진 일이 있는 문제인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주간 「매스컴신문」(발행인 이연)도 지난 1월 『여수주재기자들이 기사와 관련해 여수시로부터 사례비를 받았다』는 내용의 허위기사를 게재,고소를 당하고 일부 직원이 구속되는등 물의를 빚자 자진 폐간하기도 했다. 이밖에 모주간지는 지난해 5월 『육영수여사 저격사건의 배후 조종자는 따로 있다』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를 실으면서 사건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구체적으로 거명해 검찰에 고소돼있는 상태이다. 이같이 얄팍한 상흔에 의해 이뤄지는 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 말고도 특정 목적이나 이익등을 위해 집단간 또는 개인간에 유인물등을 통해 악의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지난 3·24총선때 일부 몰지각한 안기부 직원들이 특정후보의 여성편력을 비방하는 흑색 유인물을 뿌린것도 그 예의 하나다. 법원은 최근 의사표현의 수단인 대자보를 통해 회사간부를 비방한 노조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정신적인 손해를 배상하도록 판결을 내려 개인의 명예를 보다 광범위하게 보호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조문엔 이렇게/「허위 비방」 5년이하 징역형/출판물 이용엔 최고 7년형으로가중/피해자 불원땐 처벌불가… 사자는 유족고소 필요 우리 형법은 「명예에 관한 죄」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에 관한 6개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고대 로마법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명예에 관한 죄는 독일 형법에서 체계화됐으며 우리 형법의 관련 조항들은 독일법체계를 수용한 일본 형법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형법이 제정될 때 구법보다 형량을 높였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등 몇개 조항을 보강 해놓은 상태여서 이번 형법개정 과정에서도 벌금형을 올린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손질되지 않았다. 명예에 관한 6개 조항은 제307조의 명예훼손죄,제308조의 사자의 명예훼손죄,제309조의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제310조의 위법성의 조각,제311조의 모욕죄,제312조 반의사불법규정 등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307조 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60만원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2항에서는 그 사실이 허위일 때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0년이하의 자격정지를 내리도록 처벌을 더 무겁게 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2년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1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제308조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보호해 주기 위한 이조항은 오로지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다르다. 사실을 공표했을 때도 처벌을 한다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폐간된 월간지 「웅진여성」의 「AIDS복수극」사건도 명예훼손의 대상이 죽은 김모의원이었기 때문에 이 조항이 적용됐었다. 최근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제3·9조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형법은 명예훼손죄의 수단이 신문·잡지·라디오나 출판물인 때와 그목적이 사람을 비방하는데 있을 때는 이 조항의 규제를 받도록 따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도 비방내용이 사실일 때는 3년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1백만원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나 허위의 사실을 퍼뜨렸을 때는 7년이하의 징역이나 10년이하의 자격정지로 형이 가중된다. 명예훼손죄에 관한 특칙으로는 죽은사람의 명예훼손죄는 친고죄라는 것과 일반 명예훼손죄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거슬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법 규정이다. 다시말해 죽은 사람의 명예훼손은 유가족등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며 다른 조항들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명예훼손죄는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와 상충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범죄성립을 놓고 논란이 많다. 명예와 인격을 지나치게 보호하다 보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형법 제310조는 이같은 내용의 위법성조각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경우에도 적시된 사실은 반드시 진실이어야 하며 오로지 국가·사회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함은 물론이고 적용조항도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의 처벌규정인 제307조 1항 뿐이다. 따라서 허위의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행위는 여기서 제외된다. 한편 형법의 처벌규정과 함께 민법 제751조는 사람의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를 불법행위로 인정,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민사상의 책임규정도 함께 두고 있다. ◎범죄구성의 요건/인격의 사회적평가 해치면 “범죄”/공연성은 외부전파가능성 유무로 판별/윤용호 변호사 명예라 함은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말한다. 사람의 성격·혈통·용모·지식 등이 모두 사회적 평가의 자료가 된다. 따라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상 누구라도 어느 점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가 명예훼손죄를 구성하게 됨은 물론이다. 즉,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사실을 드러내어 사람의 명예를 침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가 명예훼손죄인 것이다. 우리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에 처한다」(제307조 제1항)고 하여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다는 것,즉 「공연성」(공연성)의 의미이다. 이에 관하여는 논의가 있으나,이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특정인」이라 함은 행위시에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의하여 한정된 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길거리의 통행인이나 공개된 광장에 있는 청중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인」이라 함은 숫자에 의하여 한정할 수는 없으나 상당한 인원수임을 요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면 족하고,현실로 그 내용이 알려졌음을 요하지는 않는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의 하나인 공연성이 위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까닭에,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아닌 특정의 개인이나 소수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공연성이 없는 것이 된다.그런데 이 경우에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문제가 된다. 대법원은 이에 관하여,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하더라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공연성을 충족한다고 할 것이나,이와 달리 전파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공연성이 있느냐,없느냐의 문제는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외부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느냐,없느냐의 문제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이와같은 명예훼손죄는 그 형태가 좀 다르기는 했어도 로마시대부터 법에 규정될 만큼 예부터 중요범죄의 하나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귀영화보다 명예를 지키려 애쓴 옛선비들의 모습을 역사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명예훼손 문제가 새삼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뿌리깊은 우리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명예훼손에 관한한 동양과 서양을 가림없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온 전통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농담하는 대통령부인(송정숙칼럼)

    냅킨으로 부군이 토한 것을 황망하게 훔쳐내는 바바라 부시의 모습이 담긴 「또하나의 필름」이 물의를 빚었다고 한다.부시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필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번째 필름은 우리의 인간적 연민을 자극한다.졸지에 쓰러지며 식탁앞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는 남편이 아내에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미국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위의 지아비라도 이럴때 반사적으로 냅킨을 집어들고 닦아줘야 할 사람은 늙은 아내이고 아내만이 이 부끄러움에서 남편을 쓸어덮으려고 안간힘을 다할 수 있다. 이 장면은 문득 한기억을 되살려 주었다.8·15경축식장에서 느닷없는 흉탄에 쓰러진 아내 육영수여사가 들쳐져 나간뒤 참담한 분위기로 단상을 떠나던 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의 발길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던 흰고무신 한짝을 발견한다.그 흰고무신 한짝을 그는 몸을 구부려 얼른 집어들었다.그것은 성한 정신으로라면 천하없어도 그런 모습을 남길리 없는 지어미 육영수의 것이었다. 비록 대통령이라도,가부장의 권위가 쩌렁쩌렁한 이땅의 정상이라도,아내의 피치못할 부끄러움을 솔선해서 수습하는 것은 지아비된 사람의 본능적 몸가짐이었을 것이다.고통과 연민이 혼합된채 뇌리에 새겨져서 오래 잊히지 않던 그 모습이 냅킨으로 남편의 토한 물건을 수습하는 부시부인에게서 되살아났다. 방일중인 부시대통령이 만찬자리에서 쓰러졌다는 뉴스는 우리로 하여금 저녁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릴만큼 놀라운 것이었다.그러나 그 「첫번째 화면」은 조금 의아스러웠다.잠깐동안 쓰러진 부시의 모습과 당황하게 추스르는 주변의 모습이 스쳐간 뒤 이내 부시대통령은 일어나 자기발로 걸어나가는 듯했고 그리고는 골격이 크고 백발이 드세보이는 미국대통령부인 바바라 부시가 당당히 일어서서 연설을 하고 「농담을 하는」장면이 비쳤다. 남편은 쓰러졌다가 황망히 응급한 처치를 받으러 퇴장했는데 그 아내인 아녀자가 남아 그 자리에서 「연설」이나 하고 「농담」이나 했다는 구도의 화면은 부자연스럽고 의아했었다.이렇게 의아스런 장면을 놓고 일본측은 「의연한 퍼스트레이디」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을 하고 있었다. 두번째 밝혀진 필름을 보고서야 이런 의아스러움은 풀릴수 있었다.위기의 순간,오래 해로해온 조강지처는 기민하고 능숙하게 남편의 곤혹을 수습했고 남편이 나간뒤 「빈자리」를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바바라 부시는 대통령부인의 의무로 해낸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 기지에 찬 농담은 고답하게 다목적 과녁을 향해 쏜 것이었다.부군의 졸도는 노령의 한계나 근원적인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테니스에서 진 오기탓정도였고 그것은 또 한조를 이루었던 「집안식구」인 주일미대사의 서툰 테니스솜씨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남편은 지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함축적인가.이겨야 할 가장 큰 승부(대통령 재선)를 눈앞에 둔 남편의 「지지않을 결의」를 당당하게 피력해버린 「농담」이다.경국의 예를 갖추어 모셔놓은 「대국손님」이 대접하던 음식상에서 구토를 일으키고 쓰러졌다는 것은 「독미」를 의심받을만큼 곤란한 일이다.송구스러워 당황한 일본을 향해 「우리집안 식구탓」을 자인해준 외교적 절묘함과 「질줄 모르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한 탁월한 솜씨가 이 「농담」에는 담겨 있다.백악관의 퍼스트레이디라면 이만은 해야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대통령부인노릇」을 우리도 수용할 수 있을까.한국대통령의 부인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응을 했다면 어땠을까.「하늘같은 지아비」가,게다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대통령남편이 졸도했다가 퇴장을 했는데 놀랍고 창황하여 따라나가 그 곁을 지켜야지 어딜 나서서 「연설」은 다 무엇이며 「농담」은 또 무슨 해괴한 짓인가라고 구설수가 낭자했을지도 모른다. 문화가 다르고 풍속이 다르므로 비교하거나 불평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그렇기는 하지만 바바라 부시가 보여준 그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는 분명히 「능력」이었다.대통령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의무」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MBC­TV는 최근 명앵커출신의 이득렬씨와 회견하는 영국의 대처 전수상모습을 보여주었다.그가 재임중에 얼마나 탁월한 재상이었는지를 소급해서실증해준 회견이었다.수입이 가능한 것이라면 이런 공직자 하나쯤 초빙하고 싶을만큼 탐이 나는 인물이었다. 역할이 주어지고 그 역할의 수행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람을 탁마하고 성장하게 한다.인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붓글씨로 「한미우호」를 쓰도록 익혀오고 위기에 직면하면 전광석화같은 순발력으로 도양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퍼스트 레이디도 그렇게 단련되어 이뤄졌을 것이다.조금만 겉으로 두드러지면 악의적 험담으로 시까스르고,한발자욱 뒤에서 숨을 죽이고 따라다니는 「미덕」을 강요받는 아내들에게서는 그런 능력은 잘 발휘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학력여성의 양산체제에 들어간지는 오래인데 능력을 발휘하고싶은 욕구는 억압된채 내숭스런 일상을 살아야 함으로 그 기운이 온통 치맛바람으로 잘못 분출되는 것 같은 우리에 비하면 「농담하는 대통령부인」은 통쾌해 보였다.
  • “최연소 당선” 광주 박정희씨(이젠 「동네일꾼」… 화제의 4인)

    ◎여성·빈민 권익신장에 젊음 바칠터 『저를 뽑아주신 지역주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진출문이 좁기만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여성의 권익신장은 물론 지역주민을 위해서 젊음을 바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광주시 북구 중흥3동에서 출마,전국 최연소로 당선된 박정희씨(25·여)의 소감이다. 지난 88년 동신전문대 세무회계학과를 졸업,평민당 박영록 부총재의 비서관을 지내기도 한 박씨는 『평민당에서 남녀고용평등법 및 가족법개정기획위원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빈민촌인 이지역의 맞벌이 부부를 위해 탁아소 설립 등 여성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당선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는 박씨는 말보다는 행동하는 주민들의 진정한 심부름꾼이 될것을 다짐했다. 어릴때부터 고 육영수여사를 존경해 평소 정치에 뜻을 두어 왔다고.
  • 박지만씨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마약사범이 되어 두번째 붙잡힌 박지만씨. 우리에게는 그를 『지만군』으로 부르던 시기가 꽤 길게 있었다. 「입시지옥」의 기초가 되었던 중학입시를 바꿔서 뺑뺑이로 추첨하게 된 것도 「지만군」 때문이고 고교를 평준화하여 전통있는 명문교를 깍아내리고 학군제도를 만들어 배치하게 한것도 「지만군」을 위해서였다고,혐의를 두고 있는 바로 그 장본인이다. 아무리 독재권력을 쥔 통치자라지만 그건 너무 심한 짓이었다고 두고두고 거론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그 「지만군」이 오늘 이런 모습으로 우리앞에 나타난 일은 가슴이 아프다. 신문이나 영상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작고 하얗고 순하고 측은해 보인다. 그런 그릇으로 그의 운명을 감당하라는 건 애당초 무리였을 것같다. 그와 견주어지는 또하나의 젊은이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자유당시절」과 함께 끝난 만송 이기봉의 아들 이강석군이다. 국립대학교 입학을 학생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사관학교엔가로 진로를 바꿨던 그는 느닷없이 번들거리는 장화차림으로 말위에높다랗게 올라앉아 서대문 로터리를 철떡철떡 거리며 돌기도 했다. 그런 그의 방자함을 누구도 말릴 수 없었으므로 한쪽에 멈춰선 시내버스에 실린채 적개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던 시민도 그때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럴무렵의 그가 스카이다이빙까지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공중에서 제몸을 솟구쳐 던져버리는 스릴까지 탐닉하도록 그의 뒷덜미를 치는 억압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기묘한 호기심이 들기도 했었다. 마침내 최후의 절망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권총을 들어 아비도 쏘고,어미도 쏘고,아우도 쏘고,저자신도 쏘아 「끝내 버리고」 말았다. 흉탄이 어머니를 쏘고,또 흉탄이 아버지를 쓰러뜨리는 것을 성년이 되기 전에 목격한,강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영특하지도 않은 평범한 젊은이 「지만군」이 마침 거기 입벌리고 있는 타락의 소굴과 만났다면 빠져 들기가 퍽 쉬웠을 것이다. 두번째 출두시켰을 때의 그는 직장에서 곧장 온듯 작업복 윗옷 그대로 나타나서 캐묻지 않는 부분까지 순순히 밝히며 수사에 협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끄럽고면목없음을 누누이 되뇌었다고 한다. 그런 대목이 순하고 착하게 자란 성장기를 엿보게 해서 더욱 안쓰럽다. 6살도 채 되기전 유아시절의 그를 청와대에서 본적이 있다. 회견중인 그의 어머니 육영수여사의 접견실 문을 빠꼽히 들여다 보던 그날의 지만군은 가죽잠바 차림이었다. 늦게 뜻을 이뤘다는 뜻으로 「지만」이라 이름붙인 이 외아들을 아버지 대통령은 몹시 익애하여 자신과 똑같은 가죽잠바를 입히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리 와서 어른들께 인사 드려라』는 어머니 말에 뽀르르 들어와 절을 꼽박꼽박하고 수줍게 뛰어나가 버렸었다. 그자리에서 육여사가 들려준 자녀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사내아이는 어차피 「그양반」(박정희대통령)이 알아서 해줄 것이므로 「하라시는 대로」 하겠지만 문제는 위로 두 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큰딸은 꽤 자랐고,비교적 현명해서 맏이다워 걱정도 안되는데 둘째딸은 영 마음이 안놓인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가정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사는 일을 어린나이에도 너무 혐오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다치지 않고 키울 일이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 깊다는 것이었다. 권력의 정상에서 오만가지 영화를 다 누리며 안되는 일이 없을 가족들에게도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해주었었다. 3선개헌안이 안팎을 들끓게 하던 무렵,그 어머니에게서 들은 지만군 이야기도 인상에 남아있다. 급사가 접견실로 차와 함께 과일을 내오자 육여사는 생색스럽게 과일부터 권하며 말했다. 『이 사과 드셔 보세요. 이게 「부사」라는 거래요.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해서 첫 수확한 거라고 맛좀 보라고 재배한 분이 보내왔더군요. 향기가 기가 막히게 진동하죠?…』 시중에는 아직 나오지 않은 귀한 것이라며 거듭 「부사 사과」를 권하던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글쎄 우리 지만이가 요새 크느라고 잘 먹어요. 어제는 앉은자리서 이 큰 사과를 한개 다먹고 더달래잖아요. 이번 국민투표서 지면 신당동에 나가 살아야 하는데 청와대서 잔뜩 입만 높아졌으니 네가 이런 사과만 먹을수는 없을텐데 어쩌면 좋으냐고 내가 걱정을 했지요. 그랬더니 어머니 그땐 그때에맞춰 살테니 걱정마세요,그러더라구요…』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일이 몹시 대견했다던 그 어머니는 오늘의 아들 모습을 보지 못한다. 양지회가 마련한 바자회에서 뚝배기만한 양념절구를 들여다보며 『요런 절구에 깨소금 콩콩 빻아가며 살림좀 한번 재미있게 해 봤으면…』 소원하던 그 어머니와 부사사과쯤 못먹어도 문제 없었을 「신당동살림」을 끝내 이뤄보지 못한 채 그들의 집안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부르봉왕조 최후의 비극의 왕후 마리 앙트와네트를 역사가들은 흔히 오만하고 허영스런 비상한 여주인공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그가 평범한 사람의 초상이었을 뿐이라고 스테판츠바이크는 서술하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고 범상한 초상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런 초상으로 격동기의 비범을 감내하는 일을 쉽지가 않다. 비극은 그로부터 얼굴을 내민다. 가장이 정상의 주인공자리에 오를지라도 나머지 가족은 자기 초상에 걸맞는 보통 시민의 체질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라면 이런 비극은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는 그렇지 못한 시대였다. 우리 모두다 딛고 온 그 불행한 시대의 징검다리 돌밑에 이강석도 깔렸고 박지만도 깔려서 아직도 신음중이다. 박지만씨가 그 돌을 밀치고 건강한 범인이 되어 우리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수 없다. 지금 같아서는 희망적이지도 못하다. 그렇다고 누구도 도와줄수도 없다. 그 어머니의 애닯아하는 영혼을 생각하며 그저 가슴이나 아파할 뿐이다.
  • 숭모회,“근혜씨 자매 편향지지 안해”

    ◎박근혜씨,“동생은 이사장직만 맡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등의 조직개편을 요구해온 「숭모회」의 이영도회장(43ㆍ자유기고가)은 9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숭모회는 박근혜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거나 동생 근영씨를 지지한 적이 없으며 다만 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최태민목사와 그 측근들의 퇴진을 요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근혜씨는 이날 하오 어린이회관 재단이사장실에서 이 사건이후 두번째로 기자들과 만나 『최목사는 이미 몇개월 전에 재단의 고문직에서 물러난 상태이며 최목사가 재단을 전횡했다는 일부의 말들은 전혀 근거없는 모략』이라고 밝히고 『왜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숭모회」가 집안을 망치려는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고 박정희대통령ㆍ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 고문인 김치열 전내무장관이 앞으로 이 사업회의 회장직을 맡을 것이며 동생 근영이는 육영재단 이사장직만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박근혜 이사장 사퇴 「숭모회」압력 때문/육영재단 직원 성명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임직원 1백20명은 7일 박근혜이사장의 사의표명과 관련,결의문을 내고 『박이사장은 본인의 뜻이 아닌 동생 근영씨를 지지하는 「숭모회」의 압력에 의해 사퇴하는 것』이라면서 박근혜씨의 퇴진을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근영씨가 고 육영수여사의 뜻과는 달리 자신의 욕망과 명예만을 앞세우고 있다』면서 「승모회」의 즉각 해체 등을 요구했다.
  • “건강나빠 동생에 이사장물려줬다”/박근혜씨,「육영재단」파문관련회견

    ◎“내가 동생에 먼저 제안… 불화설 사실무근”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의 이사장직과 「박정희 전대통령ㆍ육영수여사 추모사업회」회장직을 갑자기 사퇴,세간의 화제에 오른 박전대통령의 큰딸 근혜씨(39)는 7일 기자회견을 자청,『그동안 부모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데 많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건강도 좋지않아 동생에게 이사장직을 물려줬다』고 밝혔다. 박근혜씨는 이날 하오 양장차림에 담담한 표정으로 서울 성동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에서 기자들과 만났으며 동생 근영씨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잘라 말했다. ­언제부터 이사장직을 그만두려 했는가. 『동생 근영이와 전에도 여러차례 의논을 해오다 지난달 아버님의 11주기 추모식직후 「재단을 맡아보겠느냐」고 제안했더니 동생도 「부모님의 유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동생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결정했다』 ­지금까지 기념사업회의 성과라면. 『사업을 통해 아버님의 업적을 담은 「조국의 등불」을 제작하고 「겨레의 지도자」라는 책과 많은 인터뷰를 통해 잘못된 국민의 인식을 바로잡았다. 지난해 10주기추모식에는 15만여명의 인파가 모여 부모님의 뜻을 기리는 등 성심성의껏 일해온 것이다』 ­6일 근화봉사단원들이 이사장직의 사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절대 반대시위가 아니었다. 동생 근영이를 재단간부들에게 소개하고 부탁하는 조촐한 상견례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나를 마지막으로 보려는 봉사단원들이 찾아온 것이 일부 회원들에 의해 반대운동으로 오해된것 같다』 ­일부에서는 최태민목사(69)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내가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목사는 청와대시절 새마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지난 88년 기념사업회를 만들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개월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그동안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재단의 개편을 요구하는 「숭모회」의 모임은 어떤것이며 동생과는 무슨 관계인가. 『그 모임에 대해서는지난달 28일 이곳(어린이회관을 지칭)에서 발족대회를 가졌다는 것을 알뿐 그 이외에는 전혀 모른다. 그때 돌던 유인물을 보았지만 모두 잘못된 거짓말로 꾸며져 있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최근들어 어린이회관의 운영이 어려워 이사장직을 내놨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최근에는 많이 알려져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원래 육영사업은 손익이 목적이 아니지 않는가』 ­외부에서는 동생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데. 『전혀 사실 무근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많은사람들에게 알리며 직접 사업일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도와왔다. 동생과는 어느 자매 부럽지않게 사이가 좋다』 ­앞으로의 계획은. 『겉보기와는 달리 많이 지쳐있고 피곤해 당분간 쉬면서 동생이 하는 일을 뒤에서 도와줄 계획이다』
  • 근혜씨 「육영재단」 이사장직 사임… 운영권 다툼

    ◎박근혜ㆍ근영씨 측근 반목 심화/근화봉사단,근영씨 이사장 취임 저지/숭모회,근혜씨 퇴진 요구 유인물 배포 고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육영재단 이사장인 박근혜씨(39)가 지난 3일 갑자기 사임한데 이어 6일 상오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박씨의 동생 근영씨(35)의 새 이사장 취임식이 반대파에 의해 저지당해 무산되는 등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자매간의 재산다툼」 「측근간의 자리싸움」 「외부세력 개입」설 등 갖가지 추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사장직을 사임한 근혜씨는 『재단운영권을 둘러싸고 자매간에 갈등이 생긴 것처럼 외부에 알려지면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된다』면서 이사회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일 상오11시 어린이회관 문화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새 이사장 취임식장에는 근혜씨와 근영씨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근혜씨의 지지파인 육영수 기념사업회 소속 근화봉사단 전국지부 간부 및 단원 7백여명이 식장을 점거,「박이사장 퇴임 반대ㆍ신임 이사장 저지결의대회」를 열고 근영씨의 취임을 막았다. 단원들은 『지난 11년동안 육영재단의 주체인 어린이회관과 육여사 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박이사장(근혜)이 사퇴한 것은 외부 압력 때문이며 70만 단원들과 사전협의도 하지않고 근영씨가 새이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박이사장이 사퇴할 경우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항의했다. 이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박근영씨의 이사장 취임식을 열려던 민족중흥회(회장 전예용ㆍ82) 산하 숭모회 회원들이 어린이회관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취임식은 자동으로 무산됐다. 이에 앞서 숭모회 회원들은 지난달 28일 어린이회관 정문앞에서 박이사장과 최태민고문(69)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20여분만에 자진 해산했다. 당시 숭모회측은 유인물을 통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육영재단을 전횡하고 있는 최고문과 무능한 박이사장은 즉각 퇴진하고 근영씨를 새이사장에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날 시위장소에는 고 박대통령의 친척인 박기업씨(69ㆍ경북 선산군 선산읍 이문리 43)와 구미시 노인회 및 부녀회 회원 2백여명이 전세버스편으로 상경,합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기업씨는 『민족중흥동지회 소속 이모씨(40)로부터 근혜씨가 연금되었다는 전갈과 함께 1백여만원을 받고 상경했으나 막상 올라와보니 엉뚱하게도 박이사장 퇴진요구 집회여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기업씨는 서울에 올라온 뒤 근혜씨를 만났더니 『가족들이 끈질기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해 어쩔수 없이 동생 근영이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자신이 근혜씨에게 『지금까지 이만큼 이루어 놓은 사람이 누구인데 그러느냐』면서 극구 만류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때 근혜씨는 기업씨에게 『중재역할을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박이사장이 사표를 내자 재단이사 7명도 모두 사표를 냈으며 손미자 어린이회관장 등 간부 10여명도 사표를 제출,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주위에서는 지금까지의 양상으로 미루어 근혜씨와 근영씨를 둘러싼 측근들의 주도권쟁탈전에 자매가 휩쓸려 본의 아니게 반목을일으키게 돼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 「반민족적 폭력사」로 얼룩진 35년(흔들리는 조총련:하)

    ◎“인도주의”앞세워 교포 9만여명 북송/대한 침투 전진기지 삼아 문세광사건등 테러 자행/「세습 반대세력」늘어 노선전개에 타격 조총련의 35년 행적은 「반민족적 폭력사」바로 그것이다. 당초 정치적 색채가 없이 재일 한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결성됐던 조총련의 전신 조련도 집행부가 공산계열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일본 공산당의 외인부대로 전락했다. 조련은 그후 북한에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소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자 남로당계에서 북노당계로 기울어 더욱 전투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때의 좌익활동은 일본 공산당의 혁명노선에 의거,질서와 경제를 교란시킴으로써 일본 공산화 여건을 앞장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파괴활동으로 인한 일본내의 사회적 비난과 여론의 화살은 재일 한인사회전체와 산하 단체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한덕수에게 지령을 내려 대남침투를 위한 주일특무부대인 조총련을 결성하도록 조종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조종을 받는다 ▲대남적화정책에 추종하는 일본주둔 특무부대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재일 한국인의 포섭과 좌익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한일,한미간의 외교적ㆍ경제적ㆍ문화적 교류를 저지한다는 기본노선에 맞춰 모든 활동을 전개했다. 조총련의 제1차 사업은 재일 한인의 북송사업이었다. 북한당국이 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 조총련은 1958년 8월15일 해방 13주년 기념대회에서 북송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조총련은 「중앙귀국 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직을 총동원했으며 일본내의 언론기관에 호소,북한의 모습과 귀국의 필요성을 선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북한의 김일성은 그해 9월8일 건국10주년 기념대회에서 귀환동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북한은 전후복구사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의 귀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조국에 귀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전공세를 폈다. 북한의 당시 속셈은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발전상을 일본에 선전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던 것이었다. 재일 한인들에 대해서는 북한은 세금을 내지않는 지상낙원이라고 꾀었다. 북한에 귀환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직장을 제공하고 아동들은 즉시 취학시키며 정착금으로 성인은 1인당 2만원,14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1만원씩을 지급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이 선전과 일본인 협력자 매수 등에 들인 비용은 2조원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계략에 속아 북한에 송환된 북송자 숫자는 59년부터 82년사이 9만3천3백44명에 이른다. 북송사업은 한때 성공한듯 보였다. 59년 2천9백42명을 시발로,60년 4만9천36명,61년 2만2천8백1명으로 피크에 올랐었으나 이후 숫자가 격감했다. 68년부터 70년 사이에는 일시 중단된 적도 있었으며 그 이후는 몇백명ㆍ몇십명 단위였다. 니가타(신석)항에서 눈물을 뿌리고 떠난 북송자들은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헌것이라도 좋으니 의복이나 재봉틀,또는 라면을…』이라며 궁핍한 생활상을 편지속에 전해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북한이 이들 북송자들을 인질로 잡고 조총련계 사업가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둬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총련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테러사건은 문세광 사건이었다. 1974년 8월15일 재일 한인 문세광(23)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국립극장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부인 육영수여사가 피격,절명했다.일본경찰 조사에 따르면 문은 오사카(대판) 스미요시(주길)구에서 상고를 중퇴하고 한때 한청 이쿠노(생야)구 지부맹원으로 활약하던 자였다. 문은 민단자주수호위원회 사무국에서 일하던중 조총련 이쿠노 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에게 포섭되어 특별훈련을 받고 국내로 잠입,범행을 저질렀다.민단에서는 문의 거주지인 이쿠노 북지부에 「박대통령 저격사건 긴급대책분실」을 마련하고 「살인귀 김일성 집단타도」 「비인도적 조총련분쇄」등 입간판을 이쿠노구안에 수백개 설치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설치한지 3시간도 안돼 60여개가 조총련계 청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를 전후해 민단계와 조총련 청년들사이에는 난투극이 빈발했다. 한국정부가 민단에 대해 장기적인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조총련계 인사들에게까지 모국방문ㆍ추석성묘등 획기적인 포섭정책을 편 것은 바로 이때부터 였다. 조총련이 북한의 대남침투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그동안 저질러 온 각종 악랄한 공작은 일일이 그 예를 들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3월 문익환목사 일행의 방북사건도 전민련­범민족대회­한통련으로 이어지는 조총련과 지하수맥이 닿는 선에서 주선되었다는 사실을 도쿄의 공안관계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55년 결성된 조총련은 하부조직의 정비를 서둘러 지금은 49개 지방본부,4백19개 지부,2천7백여개의 분회,2백46개의 단을 둔 방대한 조직이 됐다. 산하단체로는 「재일본조선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15개의 단체와 「조선보사」등 18개의 주관 사업체를 갖고 있다. 조총련은 형식상 북한의 소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산하단체로 철저하게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조총련 조직을 뛰쳐나와 「김일성 독재체제타도 및 김정일 세습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하수도씨등 반김일성세력은 조총련이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노선전개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도쿄 각계에서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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