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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욕 서린 건물도 문화재 등록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옥천 죽향초등학교,진천의 옛 덕산양조장,김제의 농장사무실…. 문화재청이 지난주 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한 15건의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일부이다. 조금 과장하면 노근리 쌍굴다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콘크리트 덩어리.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한국전쟁 당시 수백명의 민간인이 피살된 곳이다. 죽향초등학교와 덕산양조장은 건축적 가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다녔고,현재도 3대가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제의 농장사무실은 일본인에 의한 토지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건조물이 얼마나 ‘건축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가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이제는 ‘역사’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욕의 역사와 부정적인 역사도 간직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 유산으로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 등록 문화재 제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성부청사였던 서울시청청사.경복궁안에 있던 일(日)자모양의 옛 조선총독부청사는 헐렸지만,본(本)자 모양으로 짝을 이루던 옛 경성부청사는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게 된다. 일본사찰인 군산의 금강사 대웅전도 포함됐다.1913년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에도(江戶)시대 사찰건축을 보여준다.제천기관차사무소 수검고가 등록 대상으로 예고된 것도 눈길을 끈다.1937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남쪽 부분이 파괴되자 외장을 벽돌로 쌓아 복구했다.건축물로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지만,근현대사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는 더 크다는 것이다. 김정동 문화재위원(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은 “이런 것까지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좋은 역사만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도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자체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당시의 흔적이나마 남겨놓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등록 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자 지난해 3월 도입됐다.현재까지 서울 태평로 옛 국회의사당과 강경 남일리 옛 남일당한약방 등 모두 66건이 등록되거나,등록이 예고되어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열차시간표 전문가 김영근씨,명절땐 24시간 작업 ‘원활한 귀성길’ 보람

    “경부선의 경우 새마을호는 매시 정각과 30분에,무궁화호는 매시 15분과 45분에 서울역을 출발하도록 정해놓고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고향가는 기차를 타는 사람들로 전국의 기차역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요즘 명절임에도 쉬지도 못하고 묵묵히 기차시간을 짜고 조정하는 ‘외길 철도인생’이 있다. 30년 동안 국내 열차의 운행시간표를 짜온 김영근(金永根·68)씨.무심코 시각만 확인하고 열차에 오르게 마련이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전국 철도의 출발 및 도착시간표를 짜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열차시간표 작성의 원리자체가 대외비라고 몇번 고집하던 그는 내친김에 몇가지 더 귀띔해준다.매시 30분에 출발하는 새마을호는 경주∼포항∼마산 등 지선(支線)을 거치고,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새마을호는 부산까지 거의 직행으로 달리도록 정한다.또 호남선은 매시간 5분,전라선은 매시간 35분,장항선은 매시간 50분에 서울역을 출발토록 정했다.따라서 설 귀향때 열차표의 시간대만 제대로 알아도 차량구분과 목적지 등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열차운행설계전문가(다이아그래머)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베테랑이자 이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꼽힌다.과거는 물론이고 현재 운행중인 대부분의 열차가 그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아울러 그의 ‘30년 열차시간표 짜기 인생’은 곧 우리나라의 철도변천사와 궤를 같이하며 ‘인간철도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직접 운전했던 추억의 열차만 해도 한시대를 풍미하고 있다.62년에 선보인 재건호를 비롯,66년 월남 파병과 함께 유행했던 맹호호(서울∼부산),건설호(중앙선화물),증산호(호남선화물),백마호(서울∼광주),청룡호(서울∼대전) 등과 67∼71년에 등장했던 갈매기호(경부선 피서열차),비둘기호,관광호,신라호,계룡호,충무호 등을 운전하면서 전국 팔도강산을 누볐다.40대후반 이상 세대들에게는 당시 설 명절때면 이들 열차를 이용해 고향을 찾는 등 배고팠던 시절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열차로 기억되고 있다. 1955년 서울 용산 국립교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대전지방철도청 기관조사로 입청,철도기관사 등으로 일해오다 73년부터철도운행설계 일을 맡기 시작했다.당시만 해도 한시간에 2∼3회정도로 열차운행 횟수가 적었다.때문에 서울∼부산의 경우 60개역을 대상으로 콤파스와 삼각자,먹물과 펜 등을 이용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밤새 열차시간표를 짰다. “일제 때는 일본인들이 열차 운행계획을 도맡아 짰는데 대외비라며 한국인들에게는 귀띔도 해주지 않아 6·25 전후에는 애를 많이 먹었지요.” 74년 8월15일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인 서울역∼청량리간 개통을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에 의해 김씨는 서울역 근처 여인숙에서 한달동안 밤낮없이 합숙을 하며 지하철 1호선 열차시간표를 최초로 완성하기도 했다.그러나 개통식을 코앞에 두고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김씨의 운행계획표 실행이 몇시간 지연되기도 했다.이때 운행배차간격은 8분이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전국 운행횟수는 무려 3159회(정기)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고 설명한다.따라서 증회할 때마다 지방합숙은 물론이고 설 명절때면 늘어난 임시열차(올해 350개) 등으로 지금껏 철도운행사령실에서 24시간 대기를 해왔다. “30년동안 명절과 생일을 잊고 살았습니다.동서화합을 위해 광주∼경주간 주말열차 등을 개발한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오는 12월 고속철 개통에 대비,설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고속철과 일반철도가 혼합된 멀티 다이아그램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해 그의 손을 거쳐간 열차는 60년대의 시속 60여㎞에서 시속 300㎞ 고속철까지 총망라될 것으로 보인다. 5년전 정년퇴임, 현재는 5급상당 계약직으로 열차다이아그램을 작성하는 그는 틈틈이 후배 2∼3명을 양성하고 있다. 김문기자 km@
  • 홍보처 ‘정부기록 사진집’ 제6권 발간

    국정홍보처는 지난 1964년부터 66년까지 3년간 정부 및 사회·경제 등 각분야의 생활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기록 사진집’ 제6권을 24일 발간했다. 사진집에는 현재 복원사업이 추진되고있는 65년 청계천의 복개공사장 모습,66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이 주최한 ‘월남전선사진전’개막식 광경,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이 고향을 방문 친지들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64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데모 관련 사진과 65년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장례식,한·일회담 조인식,제2한강교 개통식 등 모두 398장이 담겨있다.또 육영수여사가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도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경복궁 경회루 스케이트장,남대문 수문장,용산역 쌀 하역작업,한강에서 얼음 낚시 모습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실려 있다. 사진집에 실린 내용은 국정홍보처 홈페이지(www.allim.go.kr)에서 볼 수 있다. 최광숙기자 bori@
  • “정치적 동반자로 전문성 갖춰야”여성언론인聯 ‘바람직한 대통령부인상’토론회

    한국여성언론인연합(대표 申東植)이 대선을 앞두고 바람직한 대통령 부인상을 주제로 오는 12일 한국언론재단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토론회를 갖는다. 토론회에 앞서 3일 배포된 자료집에는 김원홍 한국여성개발원 정책실장이 분석한 역대 대통령 부인들의 장단점이 포함돼 있다.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부인은 고(故)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꼽았다.자애롭고 인자했을 뿐 아니라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경직된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했다.실무에 능했던 고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비서로 맹활약했다. 5∼6%에 불과했던 유아교육의 비율을 60%까지 크게 끌어올린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李順子) 여사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지나치게 적극적인 점이 오히려 흠으로 지적됐다.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재임기간내내 ‘국민과 카메라의 시선을 피해 다닌’ 김옥숙(金玉淑)여사는 그림자내조의 전형을 보여줬다.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孫命順)여사는 극도로 활동을 제약하지도,드러내놓고 나서지도 않았다.전문직 출신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기대했던 것 만큼 인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역대 대통령 부인들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면서도 겉으로는 다소곳하고 소극적인 척 해왔다.”면서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부인의 공식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함성득(咸成得) 고려대 교수도 “대선후보 부인들도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동반자로서 새로운 부인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토론회에는 이정옥(李貞玉) 효성카톨릭대 교수,김진애(金鎭愛) 서울포럼 대표 등도 참석한다. 박지연기자 anne02@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1)노무현후보 부인 권양숙씨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한매일은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주요 대선후보 부인들의 본격 인터뷰를 포함,특집시리즈를 시작합니다.대선후보들의 인간적 면모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후보 부인들입니다.또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있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대선후보 부인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후보 평가 요소가 될 것입니다.인터뷰는 대한매일 신연숙(辛然淑) 문화에디터와 본사 명예논설위원인 김경애(金慶愛) 동덕여대 교수가 함께 주관했습니다.게재 순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인터뷰 요청에 응한 시점에 따라 결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 권양숙(權良淑·55)씨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언론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먼저 사진 촬영부터 하자고 하자 “선거운동은 하겠는데 사진 찍는 것은 정말 어렵다.”며 어색해 했다.그러나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통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뚜렷하게 생각을 털어 놓았고 안정감 있는 태도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다음은 일문일답. ■남편평가 및 자녀교육 ◆노 후보께선 평소 부인께 60∼70점짜리 남편밖에 안돼 부인이 무섭다고 하던데요. 그냥 평범한 가정이면 남편이 가정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텐데 남편은 지금까지 생활 그 자체가 힘든 선택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가정에 많은 시간을 내거나 인자하고 자상할 여건이 못됐습니다.가족들은 서운할 수밖에 없고,노후보는 항상 그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자기 점수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실제로 저는 점수를 후하게 안 주는데,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후하게 줍니다.(노 후보에게는)원군(援軍)이 두 명이 있는 셈이죠.(웃음) ◆자녀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보니 노 후보께선 좋은 아버지였나 봅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아침식사는 꼭 함께 했습니다.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식탁에서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본인 얘기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아이들은 제가 공(功)을 많이 들였는데도제 편이 안되더라고요. ◆부부간에 호칭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보”“당신”이라고 합니다.처음에는 친구처럼 이름을 그냥 불렀습니다.같이 자랐으니까요.“여보”“당신” 소리가 잘 안 나와서 약간 반말로 ‘어∼’라고 할 때도 있었죠.(웃음) ◆노 후보께선 집에서 가사를 도와주거나 쇼핑을 같이 하는지요. 노 후보가 재야활동을 하기 전에는 저 혼자 나가서 쇼핑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하지만 재야활동을 시작하면서 평범한 삶과 가정을 꾸리기가 어렵더라고요.지금은 거의 못한다고 해야 하죠. ◆노 후보께서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비치는데 집안에서 가부장적이거나 그런 여성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노 후보가 여성문제에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받는데 사실은 아닙니다.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제 탓이기도 합니다.제가 활동을 많이 안 하니까 ‘혹시 노 후보가 부인의 사회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 것이죠.하지만 제 성격이 어려서부터 나서서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실례로 지난 88년부터저희들 선거만 여섯 번을 치렀는데,저는 후보와 같이 움직이면서도 소리없이 표나지 않게 했습니다. ◆노 후보께서 부인에게 사회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한 적은 없나요. 결혼 당시 경희대 한의대가 설립 초기였습니다.그때 노 후보가 제게 “한의대를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또 다른 쪽으로도 공부를 해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이는 어리고 항상 다른 식구들이랑 같이 살다 보니까,주부가 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집념과 의지도 있어야 하는데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손자·손녀를 봐줄 의향이 있습니까. 아들하고 딸에게 “며느리 될 아이와 딸이 계속 일을 할 것 같은데 내가 다 키워주겠다.”고 했습니다.지금도 허락이 된다면 아이는 키워주고 싶습니다.제가 가장 잘하는 분야거든요. ◆자녀들이 바르게 잘 커준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아주 밝습니다.특출나게 우수하진 않지만 아이들을 밝게 잘 키웠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체벌을 한 적은 있습니까.저는 가끔씩 야단을 칩니다.용돈을 끊기도 하고,큰아이의 경우 밥을 먹지 않기에 굶기기도 하면서 버릇을 고쳤습니다.그러나 노 후보는 (아이들을)큰소리로 야단치는 것을 못 봤습니다.그런데도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더군요. ◆시댁 일은 많지 않았는지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무래도 항상 마음을 많이 쓰고,가능하면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지만,(노 후보가)정치인이 돼 서울에 오고부터는 제대로 못했습니다.노 후보도 (이 점을)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 후보께서 변호사였을 때는 고소득자였는데,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경제적 변화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점수를 못받는 것입니다.(웃음)한번 늘린 것을 줄이는 건 힘듭니다.경제소비 규모도 그렇고,키운 것을 줄이려고 하면 고통이 따릅니다.그렇게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생은 안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두 분께서는 “작은 별장을 갖고 멋있게 살아보자.”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 꿈은 안 이뤄진 셈인데요. 변호사를 계속 했더라면 그런 희망을 남편에게 많이 닦달했을 것입니다.(웃음)그러나 남편이 재야활동에 들어서면서부터 식탁에 앉으면 정치·사회 얘기를 계속했고,저도 들으면서 은연중에 물이 들었나 봐요. ■정치관 ◆노 후보께선 사실상 정치적으로 순탄한 길을 걷지는 못했습니다.좌절의 고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남편이 정치를 그만뒀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정치하는 분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좀 반대를 했습니다.그런데 낙선한 이유가 사람의 자질이 모자라서기보다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 가니까 ‘호남당’이라고 안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선거 때마다)‘만약에 이번에 낙선하면 정치를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란 각오로 선택을 따랐습니다.솔직히 선거에서 떨어지면 나는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웃음) ◆지난번 국민경선에서 노 후보가 승리했을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노 후보가 1등을 하리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경선기간 동안 민주당원들의 마음,노사모의 마음,일반 국민들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마음을 보게 되면서 벅찬 감격을 느꼈습니다.‘우리 남편이 정치 개혁에 큰 몫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노 후보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는데요. 저는 (지지율이 치솟을 때도)인기가 끝까지 최상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민주당이 보궐선거,지방선거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고 노 후보의 실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노 후보를 중심으로 한 대선 본 게임이 시작되면 노 후보를 바라보는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노 후보의 대선 출마를 만류한 적은 없었습니까. 노 후보는 제 남편이기도 하지만,그 이전에 많은 분들과 이념과 정치성향을 같이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제가 ‘하라,하지 말라’는 생각은 접었습니다.이제는 남편이 결정한 대로 따르고 협조할 것입니다. ◆노 후보의 책 가운데 제목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있던데요.남편의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요. 사실은 지금도 책 제목 때문에 “사모님 지금도 안 도와주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제가 안 도와줘서 도와달라는 뜻으로 제목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94년 당시 재정이 어려워 책 제목이라도 재밌게 하면 책이 좀 팔릴까 해서 노 후보가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역시 그 예상이 적중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웃음) ◆노 후보에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집에서 제 별명이 ‘뉴스 중독자’입니다.하루종일 방송뉴스와 신문을 보거든요.노 후보에게 필요하면 스크랩은 아니지만 그날그날 내용을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 관련 기사나 좋은 사설이 있으면 보여주기도 합니다.대중연설 때에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펴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의 제스처를 모니터해 주기도 하지요. ◆바람직한 퍼스트 레이디로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꼽았는데요.어떤 이미지가 맘에 와 닿았습니까. 우리 국민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육 여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청와대 안의 야당’이고,그 다음 봉사활동 아닙니까. ◆앞으로 퍼스트 레이디가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기본적으로는 남편이 초심을 잃지 않고 국정을 잘 다스리도록 내조를 잘해야 하지만,거기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여러 학자나 여성계에서 제게 모델을 줬으면 고맙겠지만,기본적으로 영·유아 탁아문제,방과후 어린이 프로그램,노인문제 등 약하고 소외된 쪽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노 후보께서 대통령이 된다면,자녀 관리는 어떻게 할 계획이십니까. 노 후보는 제도나 감시보다 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말합니다.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대통령 아들에게 생길 것이 없다면 (부정부패의)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다행히 아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했고,딸도 그냥 예전대로 직장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가정생활 - 가족들 모두 독서 즐겨 ◇가족끼리 평소 즐기는 문화생활은 무엇입니까. 아들이나 남편이나 저나 주로 책을 많이 봅니다.운동도 좋아합니다.등산도 좋아하고….예전에 부산에 있을 때는 제가 수영을 굉장히 잘 했습니다.◇노 후보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챙겨주는 것이 있나요. 별로 없습니다.노 후보는 식사를 안 가리고 골고루 잘 합니다.생활도 규칙적으로 참 잘 합니다.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죠.아침 5시면 일어나서 맨손체조하고 과식을 절대 안 합니다.건강의 비결인 것 같더라고요. ◇어려웠던 성장기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요. 자기가 몸소 체험한 부분하고 그냥 밖에서 사물을 봤을 때 하고는 느낌과 판단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노 후보는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신분은 상류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성장기나 자신의 관심분야는 일반대중의 삶입니다.다른 분보다 대중의 정서와 생활상,어려움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많은 자산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 후보께서 국민경선에 참여한 이후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됐는데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본인이나 가족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까지….몰랐던 사실까지 알아내 주고,그런 부분이 힘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막상본인의 일이 되니까 견디는 과정이 아주 힘들더군요. 정리 김소연 홍원상기자 purple@ ■권양숙씨는 누구 - 평범한 주부… 독실한 불교신자 권양숙씨는 ‘그림자 내조’를 해온 평범한 가정주부다. 집안은 평범하다 못해 불우한 편이었다.어린 시절 아버지 권오석(權五石)씨가 좌익 혐의로 구속돼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1971년 아버지가 옥사하면서 어머니 박덕남(朴德南·82)씨는 일찍 혼자가 됐다. 권씨는 경남 김해시 진영 대창초등학교,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 3학년 때 중퇴했다.수업료를 못 낼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었고,곧 부산서 직장생활에 들어갔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는 고향 친구사이로 직장생활 중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갔다가 군에서 막 제대한 노 후보를 다시 만나 연인사이로 발전했다.연좌제를 걱정한 노 후보 집안이 완강하게 반대했으나 두 사람은 2년간 열애 끝에 1973년 결혼식을 올렸다.이때 4년여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공부하던 노후보를 도와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슬하에 아들 건호(建昊·30·LG전자)씨와 딸 정연(靜姸·28·주한 영국대사관)씨가 있다.둘 다 미혼으로 권씨 명의로 돼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45평짜리 빌라에서 모두 함께 살고 있다. 권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다.어려서부터 절에 다니는 모친의 영향으로 불교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김해 봉화산 정토암을 자주 찾았으나 1988년 서울에 올라 온 뒤 삼성동 봉은사,능인선원 등을 가끔 찾는다. 권씨의 언니 창좌(昌左·57)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했다.남동생 기문(奇文·48)씨는 부산지역 모은행 간부이며,여동생 진애(珍愛·52)씨는 가정주부다. 이춘규기자 taein@
  • 문화광장/ 클래식

    ◆ 창작 오페라 ‘눈물많은 초인’ - 8∼11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431-3460.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오페라.작곡 백병동,대본 이인화,연출 정갑균,장윤성 지휘 프라임필하모닉.박정희역 박치원 김남두,육영수역 김희정 이지은 등.뉴서울오페라단. ◆정동극장 청소년오페라 ‘사랑내기’- 8∼18일 평일 오후4시,토·일 오후1시·4시(월 쉼)정동극장(02)7511-500.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번안.조성진 번역,박수길 각색,장윤경 연출,주성렬 지휘. ◆ 베스트 실내악 앙상블과 함께 하는 청소년을 위한 해설음악회 - 12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3665-6245.해설 김주영. ◆ 미추홀 청소년음악회-차이코프스키가 보내는 여름편지 - 13일 오후7시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391-2822.바이올린 이세영,피아노 정수연.김덕기 지휘 프라임필하모닉.
  • [씨줄날줄] 박근혜와 김정일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11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드러난 방북 목적은 지극히 사무적이다.재단법인 주한(駐韓)유럽연합상공회의소·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와 만나 남북간 상호협력 및 교류 문제를 협의한다고 했다.지난해 5월 유럽 24개국 주한 외교관과 상공인 등 600여명으로 구성된 재단법인이 북한 어린이에게 축구공 3만개를 보내는 등 민간 차원의 지원 활동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박 의원의 북한 방문은 예사롭지 않다.사흘이나 북한에 머물다 보면 십중팔구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날 것이다.두 사람의 하고픈 얘기로 말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말머리는 아버지 시대로 올라 갈 것이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북은 본격적인 대결 시대를맞는다.1917년생 박 대통령이나 1912년생의 김일성이 모두50세 전후로 나름대로 지도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박 대통령은 강인한 의지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부국강병 경쟁에서 김일성 주석을 압도했다. 세상 일이 선의의경쟁에서 지면 폭력을 쓰게 되나 보다.박 의원이 22살이던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어머니를잃는 쓰라림을 맞는다.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이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저격하는 테러를 자행했다.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육 여사였고 보면 박 의원의 슬픔은 원한으로 응어리질만도 했을 것이다.박 대통령의 장녀였던 박 의원은 많지 않은 나이에 어머니의 빈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자신을 돌볼겨를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박 의원은 독자적으로 정당을 하나 창당할 만큼 무게있는 정치인이 되었다.두 사람은 아버지들이 치열한 부국강병 경쟁을 벌이던 그 나이가 되었다.박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조금 부풀린다면 두 사람의 역할도 엇비슷한처지다.박 의원은 어머니가 끔찍한 불행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두사람이 마주할 첫 장면이 궁금해진다.그리고 두 사람의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무슨 말을 이어갔는지 나중에도 알았으면 좋겠다.꼬박꼬박 계산서를 주고 받을 수만도 없는민족 분단사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박 의원 다짐대로 두 사람의 만남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구름판이 되기를기대해 본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박근혜의원 11일 북한 방문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오는 11일 북한을 방문한다.이에따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여부가 주목된다. 김 국방위원장과 박 의원간 만남이 성사될 경우 남북한대치가 정점에 달했던 70년대 남북 양측 지도자의 자녀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될 전망이다. 박 의원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자격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며“김 위원장 면담을 따로 요청하지는 않았으나,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코리아재단은 주한 유럽 24개국 외교관과 기업인 등600여명의 참여로 지난해 5월 주한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가 설립한 단체로,각종 대북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방북 목적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3만여개 보내는 등 대북협력 활동을 한 데 대해 북한이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누구를 만나나. 일정을 협의하고 있어 확실히 말하긴 어렵다. ●김정일 위원장도 만나나. 일정이 확정되면 말하겠다. ●정부측과 협의했나. 3일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을만나 방북승인을 신청하고,방문목적을 설명했다.사전협의한 일은 없다. ●혼자서 가나. 나를 포함,재단 이사진 4명이 간다. ●육영수(陸英修) 여사 시해사건 등 불행을 겪은 만큼 방북 소회가 남다를 텐데. 남북은 그동안 어려움과 실망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고,그나마 지금은 많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나도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욱 평화공존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떻게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서 남북간 평화증진에 협력하고 노력하는 상대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진경호기자 jade@
  • 청와대 통치사료 1,302점 발굴·공개

    1968년 북한 도발에 의한 ‘1·21사태’ 및 푸에블로호납북사건 직후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강력히 주장,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미국측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음을 확인해 주는 청와대 통치사료등이 9일 공개됐다. 발견자료는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대통령 당시의 서한철과 공식 외교문서철 123점,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공식행사 녹음테이프 719점,김영삼 전대통령 관련 기록물 460점 등 모두 1,302점이다.이날 공개된 통치사료 중 중요한 대목을 사안별로 정리한다. [1·21사태 당시 박정희의 대북응징 요구] 68년 1월21일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청와대 습격사태 및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발생 직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B존슨 미 대통령간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북한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취할 것을 주장한 반면존슨 전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귀환을 위해 북한과 비밀협상을 진행시키면서 외교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인 2월5일 존슨 전 대통령에게보낸 친필서한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선 그들의 침략행동이 반드시 적절한 응징(due punitive action)을 받게된다는 교훈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2월9일자서한에서는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열어 북한으로부터 시인과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다짐받아야 하며,북한이 불응할 경우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 보복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존슨 전 미 대통령은 2월9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낸서한에서 사이런스 밴스 전 국방차관을 개인특사로 서울에 파견했다는 사실만을 밝힌 채 대북 군사응징 요구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또 2월28일자 편지에서 “밴스는 평양정권의 위협과 침략행위로 야기된 사태에 대한 각하의 우려와 견해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면서 “본인 역시이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며 대북 군사행동에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5·17 전후 최규하의국정장악력 상실] 80년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한 ‘5·17 사태’를 전후해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의전일지가 거의 공란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국정공백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당시 의전일지에 따르면 최 전 대통령은 원유가 폭등에대처하기 위해 5월10일 출국해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를 방문하고 5월16일 오후 10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그러나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7일부터5 ·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8일은 물론 21일까지 닷새 동안 행사 참석은 물론 정부 요인이나 군 관계자 등의접견 기록이 전혀 없다.다만 5월22일에 이르러서야 박충훈(朴忠勳)전 총리서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50년대 북한의 ‘핵보유설’] 미국측이 57년 당시 북한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제기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보고서’도 관심을 끈다. 미측 군사전문가가 작성해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이 보고서는 북한이 공군기지 건설,초현대식 제트기 및 기폭탄,박격포 및 대공포 도입 등으로휴전협정을 어기고 있으며 “북한 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측의 월남전 참전 요청] 존슨 전 대통령은 65년 월남전이 본격화되자 박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친서를 보내 한국군 전투병력의 월남전 파병을 줄기차게 요구했고,박 전대통령은 경제적 이득과 한반도 안보 등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존슨 전 대통령은 그해 7월25일자 서신에서 “현재 월남에 있는 병력 8만명을 배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군의 참전을우회적으로 요청했다.이에 박 전 대통령은 7월29일자 답신에서 “월남을 공산침략으로부터 수호해야겠다는 각하의정의로운 결의는 공산침략의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수억명의 자유애호 약소민족에게 큰 고무와 용기를 줬다”며파병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승만의 ‘원조 정상외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직후인 54년 당시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과 교환한 수차례의 외교서신은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살리고북한에 비해 열등한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굴욕에 가까운 정상외교’를 펼쳤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12월8일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미국에 대해 경제·군사적인 원조를 요청했다.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3월11일,11월5일,11월29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 “서울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100만명 이상의 중국 인민군과 수십만명의북한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지원을 호소했다. [육영수 여사 관련자료] 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이 쏜 총탄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사망한 후 각국 사절이나 외교관이 보낸 조전과 우리정부의 답신, 육 여사가 생전에 각국 정상 부인들에게 보낸 서한도 포함돼 있다. 육 여사는 67년 7월7일 사토(佐藤) 당시 일본 총리의 부인으로부터 장난감 선물을 받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내줘 우리 지만이(박 대통령의 외아들)가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답신을 보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사건에 약한 한국증시

    국내외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급락했던 국내 증시는 12일 미국 폭탄테러 여파로 예외없이 대폭락을 연출했다. 하락률(12.02%)은 역대 최대,하락폭(64.97포인트)은 역대 4위를 기록했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90년 8월2일 걸프전 발발당시 20일동안 무려 14.9%나 급락했다.사건 영향에 따른 하락폭이나 연속 하락일수 기준으로 최악의 기록으로 남아있다.79년 10·26사태 때는 닷새동안 10.2%나 떨어졌다. 증시 사상 하룻동안 가장 큰 하락폭은 지난해 4월17일의기록이다.당시 미국증시의 폭락에 직격탄을 맞아 무려 93.17포인트(하락률 11.63%)나 떨어졌다. 국내외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종합주가지수의 하락률(괄호안은 연속 하락일수)은 △74년 8월15일 육영수여사 피격사건 2.0%(12일)△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2.0%(6일)△80년 12·12사태 4.0%(2일)△83년 9월1일 대한항공 격추사건 1.7%(2일)△87년 6·10사태 2.3%(8일)△91년 8월16일 소련 쿠데타 4.6%(2일)△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8.1%(2일) 등이다. 육철수기자 ycs@
  • “日총리 신사 참배 반대”구국결사대 20여명 斷指

    ‘구국결사대’ 회원을 자칭하는 20∼30대 남자 20여명이13일 오전 11시20분쯤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내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며 ‘집단단지(斷指)식’을 가졌다. ‘구국결사대’라고 적힌 머리띠에 태극기를 온몸에 두른회원들은 독립문공원에 모여 새끼손가락의 끝마디 부분을절단한 뒤 사라졌다. ‘구국결사대’는 조일환씨(62)가 지난 5월 충남 천안 일대에서 무술인 등을 중심으로 결성한 단체로 지난 74년 육영수 여사 시해사건 때도 집단 단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손가락을 자른 윤호현(尹皓鉉·38)씨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물론,역사교과서 왜곡,정신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않는 일본 정부의 오만한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 집단 단지식을 가졌다”면서 “잘린 손가락 마디는 일본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씨줄날줄] 집단 히스테리

    1974년 8월 15일,재일교포 청년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사망했을 때 우리 국민은 범인이 재일교포라는 점 때문에 흥분했다.비약이지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중정서였다.그런데 한국민들의 이같은 흥분을 일본의 한 각료가 ‘집단적인 이상심리’,즉 ‘히스테리’와 유사한 표현을 써 분노를 산 일이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펴 낸 표준국어대사전은 ‘히스테리’(Hysteria)를 “정신적 원인으로 운동마비,실성,경련 따위의신체증상이나 건망 따위의 정신증상이 나타난다”고 정의하고 있다.의학적으로는 ‘기분이 자주 변하고 자존심과 허영심에 들뜨며 과장하고 자기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히스테리성격들에서 생길 수 있는 신경증’으로 분류 된다. ‘히스테리’라는 용어를 흥분을 자주 하는 개인에게는 흔히 사용하지만 집단에게는 집단 자살 소동을 일으킨 ‘인민사원’이나 독가스 살포로 유명한 ‘옴진리교’ 등 특수한경우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국내 신문이 집단에 대해 이용어를 쓴 것은 1994년 7월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사망했을 때였다.당시 북한주민의 슬퍼하는 모습을 국내 언론이 ‘집단 히스테리’로 표현한 것이다.비록 북한 주민의모습이 우리 정서와 다소 동떨어진다 할지라도 국상(國喪)을 당해 슬퍼하는 동족에 대해 ‘집단 히스테리’라는 표현을 써야 했는지는 지금도 심심찮게 도마에 오른다.그러나이 문제는 북한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논쟁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선일보사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야당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성명과 논평을 ‘집단히스테리’로 규정했다.국세청이 발표한 조선일보의 탈세규모와 수법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자.국세청의 세무조사는원칙적으로 정당들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그러나 야당이이를 ‘언론탄압’으로 몰아붙이고 여당이 ‘탈세 비호’라며 반격하는 것은 매사를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푸는 정당들이 항용 하는 일이다.이를 자기들의 이해와 상반된다고 해서 사이비 종교집단에나 쓸 수 있는 용어를 동원하는 것은제3자가 볼 때는 그것이야말로 집단 히스테리로 비치지 않을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부음/ 전 국회의원 육인수씨

    육인수(陸寅修) 전 의원이 25일 오전 3시30분 지병으로별세했다.향년 82세. 고인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陸英修) 여사의 오빠로 6∼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 문화공보위원장,공화당 중앙위의장 등을 역임했다.빈소는 서울중앙병원,발인 27일 오전 8시.(02)3010-2270,2370
  • ‘한국의 슈바이처’ 仁術 접다

    “죽는 날까지 환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슈바이처’ 문창모(文昌模·94)박사가 만 70년동안 입어온 의사 가운을 벗었다. ‘최고령 국회의원’ ‘진료활동을 펴고 있는 최고령 의사’ 등의 숱한 기록과 함께 의료계 및 교육·정치·종교·사회사업분야에서 거목으로 존경받고 있는 문 박사는 지난 24일 진료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별도의 은퇴식은 없다.다만 오는 31일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은퇴 예배’로 대신할 계획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지난 3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70년동안 의사의 길을 걸어온 문 박사는 58년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원주 연합기독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강원도 원주에 정착했다.64년 원주시 학성동에서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한 이후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37년동안 한자리에서 인술을 펴왔다. 문 박사는 특히 결핵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고 70년대 육영수여사를 설득해 원주에 나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지난해 의사들의 의약분업 관련 파업시위때는 ‘의사의 길은 환자들과함께 하는 것’이라며 병원 문을 열고 환자들을 돌봤다. 문 박사는 “걷기가 불편하고 손놀림도 둔해져 자칫 환자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며 자식들이 만류해 그만두게 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문 박사는 96년 출간한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라는 제목의 자서전 서문에서 “의사가 된지 66년,나이가 아흔이 된 지금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8∼9시까지일한다.나는 별무취미로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지만이런 진료생활을 축복이라고 여긴다”고 ‘후회없는 삶’을 담담히 표현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
  • 역대 퍼스트레이디 유형화 눈길

    대학원생이 석사 학위 논문에서 초대 대통령에서부터 현 대통령에이르기까지 퍼스트 레이디를 유형화해 눈길을 끌고 있다.주인공은 대통령학 전공자로 유명한 함성득(咸成得)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받은고려대 행정학과 대학원생 최고은씨(25·여). 최씨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의‘실질적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과잉내조’를했다.윤보선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는 퇴임 뒤 구속자 석방운동,원폭피해자 돕기운동 등 사회운동가로 빛을 발했다. 육영수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견에 반하는 민심도 가감없이 전달하는 ‘청와대내 제1야당’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최규하 대통령부인 홍기 여사는 대외 활동은 거의 없는 ‘전통적 한국여인상’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비자금 조성 등에 연루되는 등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했다.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는 ‘베갯속 내조형’이라고 했다.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남편의 건강과 심기만을 보좌하는청와대 안주인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민주화투쟁의 동지로서 퍼스트레이디 중 소외 계층의 복지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최씨는 결론에서 바람직한 대통령 부인상으로 전문성과 정치 감각을 갖춘 ‘완전한 동반자로서 참여형’을 제시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金洪信의원, 朴槿惠의원에 서한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22일 박근혜(朴槿惠)부총재에게 박정희(朴正熙)기념관의 국고 건립 중단을 호소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김 의원은 편지에서 “육영수 여사가 생존해 계신다면 208억원의 국고를 허투루 써서는 안된다는 걸 인정하고 기념관 건립을 중단해 달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박 부총재가 소유한 문화방송 주식을 풀어주는 대신 일정액을 받아 고향에 기념관을 짓되,후원자·독지가·지지자의 성금을 보태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 부총재측은 “기념사업회가 사업을 주관하는 마당에박 부총재가 개인 의견을 피력할 입장이 아니다”며 “문화방송 주식도 공익재단인 정수장학회 소유로서,개인 재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국립극장 50주년 기념공연 ‘수궁가’

    오는 29일 50주년을 맞는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이 기념공연으로 완판창극 ‘수궁가’를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장 전속 창극단의 완판창극 공연은 ‘춘향전’(98년)‘심청전’(99년)에 이어 세번째.‘춘향전’은 객석점유율 80%,‘심청전’은 전회매진의 기록을 세운 바 있어 이번 무대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수궁가’는 지난달 27일 타계한 허규 전국립극장장의 유작을 김명곤 극장장이 연출하는 작품.김극장장은 앞서 ‘춘향전’에서는 대본을,‘심청전’에서는 대본과 연출을 맡아 흥행의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작창은 안숙선 창극단 예술감독이 맡는다. ‘수궁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는 별주부 얘기를 소재로 인간세태를 풍자한 작품으로 총 11장으로 구성된다.김극장장은 “자라의 충성심과 토끼의 지혜라는 교훈 외에 자라의 출세욕,토끼의 허영심 등 양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설명했다.풍부한 합창곡과 역동적인 몸동작으로 시종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계획.안숙선 예술감독은 “완판창극의 의미와 소리의 맛을 동시에 살리려고 애썼다”고덧붙였다. 안숙선 유수정 김금미(토끼 역)조통달 왕기석 왕기철(별주부 역)윤충일 김학용(용왕 역)등 쟁쟁한 국악인들이 3일씩 번갈아가며 공연한다.공연시간은 중간휴식 1시간을 포함해 총 4시간30분.창극단외에 무용단 극단 국악관현악단등 국립극장의 4개 전속단체 150여명이 힘을 합해 만든다. 50주년 기념식 직후인 5월6일 오후4시 첫무대를 가진 뒤 14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공연한다.토끼띠와 용띠 관람객에게는 으뜸석과 버금석을 30%할인해주고,70세이상 고령자들은 무료 관람의 혜택을 준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국립극장 한국신극 중심무대로 50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국립극장은 문을 연 지 두달만에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유랑하는 등 쉰해동안 숱한 영욕의 세월을 거쳐온 우리 극장사의산증인이다.1948년 법령 제정에 따라 2년간 준비한 끝에 50년 4월29일 옛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 둥지를 틀고,극예술연구회·극예술협회·동양극장 계열을 아우른 우리나라 신극의 중심무대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부민관이 폭격 당하자 전선을 따라 대구로 내려가 피난살이를 했다.57년 서울로 돌아온 국립극장은 옛 명동예술회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전속인 국립극단을 탄생시켰다.62년에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을 창단했다.당시 명동이 한국문화의 메카 구실을 한 데는 국립극장의 공이 컸다. 문화예술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극장이 지금의 장충동 자리로 옮겨온것은 73년.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이때부터 국립극장에 침체기가 시작됐다”면서 “문공부 출신 극장장이 1∼2년씩 자리만 지키다가 지나감으로써 거대공룡 국립극장은 무대예술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회고했다.74년에는 광복절 행사를 치르다 육영수여사가 피격되는 불행한 사건도 겪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창극정립운동을 펼쳐 국악발전을 이끌고,97년이후 발레상설공연을 갖는 등 각 분야 공연예술을 균형있게 발전시킨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특히 올해부터는 책임운영기관으로 탈바꿈해 내부 구조개편과수준높은 공연 등 극장 전반에 걸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념식은 5월 6일 오후 2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 [이색부서 이색공무원] 김포공항 여권감식반

    ‘쫓고 쫓기는 긴박한 범죄와의 싸움’이 경찰공무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아니다.국내외로 통하는 관문인 김포공항의 여권감식반 감식관들의 하루하루도 이같은 긴박함 속에 새고 진다. 일반 공무원시험을 치르고 법무부 김포공항출입국관리소 조사과에 배치된 감식관들의 업무는 경찰과 흡사하다.손에 잡힌 여권을 보고 불법으로 제작했는지(위조),일부를 개조했는지(변조)를 판단하고 당사자의 범죄혐의를 조사한다. 여권감식반이 조직된 것은 지난 95년.이전에는 여권을 위조하는 수법도 단순했고,위조행위도 많지 않아 별도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최대규모국제행사인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88년에도 고작 50여건의 위·변조 행위가 적발됐을 뿐이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외국인 불법취업률이 높아지는 국내상황과 국제범죄가늘어나는 해외상황이 맞물려 여권 위·변조 행위가 급속도로 늘어났다.이같은 시대적 상황에 맞춰 지난 95년 태어난 것이 여권감식반이다. 감식관들은 여권 위·변조 여부를 3단계로 확인한다.우선 사진,글씨,종이질등 여권의 외관을 보고 위·변조됐는지 판단한다.여권 위·변조 혐의가 발견되면 재심사무실에서 인터뷰 등 2차 감식을 실시한다. 이후 적외선·현미경 등으로 미세한 부분을 감식하는 최종감식을 벌여 여권위·변조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여권감식반이 활동을 개시한 이후 여권 위·변조 적발건수는 해마다 증가했다.96년 1,189건,97년 1,946건으로 꾸준히 증가곡선을 그리던 위·변조 여권적발건수는 IMF체제 이후 1,732건(98년)으로 잠시 주춤했다. 경제가 풀린 지난해에는 전년도의 2배에 가까운 2,591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입출국인 숫자도 어마어마하지만 감식관들이 접하는 여권은 무려 180개국 250종에 달한다.게다가 여권 위·변조를 막기 위해 각국에서 자체 개발한 비밀장치까지 파악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자국 여권의 비밀장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여권의 세세한 부분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감식관들은 외국의 여권을 수십차례 분해하고 분석한다.이 때문에 10년차 이상의 베테랑은 여권을 손으로 만지기만해도 위·변조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하지만 여권 위·변조만을 연구하는 범죄자들의 날로 교묘해지는 수법을 따라잡기에 약간 버겁기도 하다. 지난해 8월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을 상대로 해외 각국의 여권을 위조해온이란 출신의 여권 위·변조 전문사기단이 감식반에 적발됐다.조사 과정에서이들이 여권 위조수법을 응용,국제기자신분증을 만들어 마이클 잭슨 등 유명한 팝가수의 콘서트에도 드나들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여권을 위조할능력이 있다면 국제기자신분증 위조 정도는 손바닥 뒤집기라는 것이다. 김포출입국관리소 조사과 박찬호(朴璨浩·44)과장은 “지난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도 위조된 일본여권을 가지고 국내로 들어왔고 87년 KAL기폭파사건의 김현희도 위조된 여권을 가지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면서 여권감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여경기자 kid@
  • MBC 다큐 ‘20세기, 한국의 인물들’ 방송

    흘러간 시대를 정리하고 결산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아보는 것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것도 드물다. MBC가 20∼22일 밤11시 밀레니엄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방송할 ‘20세기,한국의 인물들’편은 새 천년 목전에서 한국 현대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총정리하면서 20세기 마지막 장을 덮는 기획. 이 프로는 ‘지도자와 혁명가들’(20일)‘여성’(21일)‘영웅과 우상’(22일)등 3분야에서 각각 20명을 선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와 사회전반에미친 그들의 영향력과 인물 면면을 소개한다. 인물 선정위원으로는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사장,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전성철변호사,장명수 한국일보사장,여성운동가 오한숙희씨,박명진 서울대 신문학과교수,영화기획자 심재명씨 등과 MBC PD 및 일간지 기자,여기에 6,0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해 교차선정으로 공정성 높이기를 시도했다. ‘지도자와 혁명가들’로는 김구 박정희 김대중 이병철 정주영 김일성 이승만 전태일 장준하 김수환 전두환 문익환 김영삼박헌영 여운형 김우중 박노해 김종필 안창호 유일한 조봉암 등의 순서로 선정됐다. ‘여성’편에서는 박경리 이태영 정경화 장명수 최승희 나혜석 권인숙 김활란 박순천 김옥길 장영신 이효재 박완서 최은희 구성애 임수경 천경자 육영수 전혜린 윤심덕 공옥진 등이 소개된다. 또 ‘영웅과 우상’에는 손기정 서태지 박찬호 조용필 박세리 백남준 황영조 차범근 김민기 안중근 이미자 정명훈 신성일 최진실 성철스님 김지하 안성기 김지미 유관순 이문열 조치훈 등이 올랐다. 손정숙기자 jssohn@
  • [문명자 회고록]비화3共의 실세들(10.끝)육여사에 대한 회고

    68년 말 존슨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 미세스존슨의 비서실장 엘리자베스 카펜터가 나를 불렀다. “미세스 존슨이 이것을 주리(문명자씨의 미국명)에게 주라고 했어” 그것은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나전칠기 상자에 들어있는 사진첩이었다.67년 존슨 방한때 육영수 여사는 존슨 여사가 청와대에서 찍은 사진들을 ‘사진첩’으로 꾸며 선물한 모양이었다.미세스 존슨은 그것을 내게 선물하고 고향텍사스로 돌아갔는데 뒷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육 여사를 ‘가장 완벽한 퍼스트 레이디’라고 극찬했다. “나는 세계 각국을 방문해 각국 퍼스트 레이디들의 접대를 받아봤지만 한국의 미세스 박(육 여사)이 세계 최고다.그녀는 내가 폐경이 되지 않았다는것까지 알아보고 숙소인 워커힐 호텔 에메랄드룸 내 방 서랍에 경도대(생리대)까지 준비해 놓았다” 뒤에 청와대에서 육 여사를 만났을 때 내가 물었다. “미세스 존슨이 왔을 때 경도대까지 준비해 놓으셨다는데 그런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어요? 미세스 존슨은 나이도 많은데” “나이오십이 넘어도 나오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미세스 존슨이 (회고록에)그렇게 썼어요” 내가 육 여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유신헌법’에 따라 박정희가 제8대대통령으로 선출돼 72년 12월 27일 취임식을 가질 무렵이었다.당시 나는 서울에 와 있었는데 대통령 취임식장인 장충체육관으로 초대를 받아 갔다.박정희와 육 여사는 단상 위에 높이 앉아 있었다.그들은 가슴에 훈장을 줄줄이달고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로 휘황한 휘장을 걸치고 있었다.전에 못보던 모습이었다. 취임식이 끝난후 나는 육여사에게 “두분은 드디어 덴노헤이카(천황폐하),고구헤이카(황후폐하)가 되셨군요”라고 말했다.그것은 물론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게 된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빗대 한 말이었는데 육여사는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즈음 나는 육여사에게 이후락의 주선으로 박정희가 야릇한 여흥을 즐기는 안가(安家)를 제보한 일이 있다.내가 그 안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신진자동차 사장 김창원(金昌源·작고)의 부인 이필련(李畢連)씨 덕분이었다.60년대말부터 이후락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신진자동차는 그 여세를 몰아 69년 4월 경향신문 경영권까지 장악했는데 그때 나는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그래서 이필련씨는 워싱턴에 오면 우리집에 찾아와 자곤했다.한번은 그녀를 워싱턴 한국대사관 파티에 데려갔는데 그녀를 본 경제담당 이 모 공사 부인이 나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그녀는 부산출신이었다.한 구석으로 나를 데려간 이공사 부인이 나에게 물었다. “문 기자님,저 여자를 어떻게 알아요?” “왜요? 우리 회사 사장 부인인데” “이상하네….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술장사하던 여자가 틀림없는데요” 나는 그날 저녁 이필련에게 ‘자갈치시장’얘기를 꺼냈다.그런데 그녀는 전혀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맞아요,나 그때 술장사했어요” 나는 이 시원시원한 여성이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 거침없이얘기해주었다.내용인즉,전 남편이 허구헌 날 야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떨어지자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자갈치시장에서 술장사를 했는데 거기서 당시 자동차사업을 하고 있던 김창원에게 더러 돈을 빌려주고 하는 과정에서 친해졌고,그 뒤 김창원의 끈질긴 구혼으로 전 남편과 이혼하고 김창원과 재혼했다는 것이었다.듣고보니 기막힌 로맨스였다. 당시 김창원의 집은 세검정에 있었다.72년 서울에 갔을 때 이필련씨의 점심초대로 나는 그 집을 방문했는데 들어가보니 집 규모가 어마어마했다.정문쪽에 사랑채격인 영빈관같은 건물이 있고 정원 건너 안쪽에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가 있었는데 이 두 건물은 정원 밑의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었다.지하에는 심지어 실내 골프 연습장까지 있었는데 후암동 이후락의 집을 본떠서 지은 집인 듯했다.이필련씨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러가지 얘기를 털어놓았다. “이후락이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아니,이후락씨가 봐줘서 신진이 그만큼 큰 것 아닙니까? 김 사장은 나이도 아래인 이후락씨를 ‘형님,형님’하면서 깍듯이 모신다던데…” 이필련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저기 담장이 둘러쳐진 저 집이 뭐하는 집인줄 아세요?” “뭔데요?” “저 담벼락 안에 주말이면 기생·탤런트들을 불러놓고 노는 안가가 있답니다.저 집은 대문부터 안방까지 자동장치로만 돼 있답니다” “저 집을 언제 지었답디까?” “이후락씨가 비서실장때 지었답니다” “어떤 여자들이 드나드는데요?” “죽은 정인숙도 왔었고 ○○○도 드나들고 스튜어디스도 불러다 즐긴답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었다고 했다.나는 집에 돌아와 육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육 여사님,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그런데 청와대는 안되니 다른 데로 좀 나오시지요” 육 여사는 내게 어린이회관으로 나오라고 했다.나는 육 여사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주고 “저하고 세검정에 가 보십시다”하고 차를 타고 세검정으로 향했다.현지에 도착한 육 여사가 내게 물었다. “그 집이 어디예요” “저 담벼락 보이시죠? 그 안이 안가랍니다” 그때 ‘어쩌면 이럴 수가…’하는 비애에 찬 표정으로 담장을 바라보던 육여사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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