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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부인 역할 따라 국정운영 바뀔 수 있어”

    “대통령 부인 역할 따라 국정운영 바뀔 수 있어”

    “대통령 부인의 사회적 역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시대정신입니다.” 최근 ‘한국의 퍼스트 레이디(황금가지)’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조은희(한양대 겸임교수) 양성평등실현연합 여성정책연구소 대표는 9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따라 국정 운영과 내용이 바뀔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책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까지 대통령 부인 8명의 삶을 담고 있다.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며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했던 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희호 여사를 비롯,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영부인의 인간적인 면모와 공적인 역할 등을 조명해왔다. 그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를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꼽았다.“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신학자로 남편 퇴임 이후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신분을 이용,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보호하는 대모역할을 했어요.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정작 영부인 시절에는 시대상황 때문에 ‘조롱 안의 새’처럼 살았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지혜로 보완했는데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영부인”으로 평가했다. 이희호 여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동반자’로 평가했다.“이 여사는 학창시절 자신을 소개할 때 ‘히히호호’하며 크게 웃으며 자기 이름을 ‘희호’라고 말하는 등 재치 있고, 노래도 잘하고, 끼가 많았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단독으로 외국 순방에 나선 첫 영부인이다. 짙은 화장과 차이나 칼라를 고집하는 패션의 이면에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백반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림자 내조형’인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데 남편에게 ‘물태우’로 불린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전해줬다.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지만 아쉽게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해 요란한 영부인으로 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최태민목사 육영재단 개입 박근혜후보 몰랐을리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운영에 고 최태민 목사가 전횡을 했다는 주장이 31일 또 제기됐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한나라당 검증청문회 이후 세 차례 만나 취재한 박정희·육영수 숭모회장 이순희(78·여)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989년 2월 최 목사 전횡으로 육영수 기념사업회 이사진이 일괄 사퇴하고 최씨 측근들이 대거 이사를 맡았다는 주장도 했다. 이는 최 목사가 고령이라 예우만 해줬을 뿐 재단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박 후보의 지난 19일 검증청문회 증언과 대비된다. 이씨는 “1989년 4∼5월쯤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을 만났더니 ‘기념사업회 직원들이 박근혜 당시 이사 부탁이라고 얘기해서 결재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최태민씨가 박 이사 핑계를 대고 결재를 받아간 것이더라. 이호 이사장 등 기념사업회의 나머지 이사진들도 이를 알고 화가 나 지난 2월 박 이사를 제외하고 모두 사퇴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박 후보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 청문회에서는 딱 잡아떼더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측은 이에 대해 “당시 유족으로서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직접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이사진이 사임했던 것”이라면서 “최씨가 어떤 경위로든 결재하거나 또는 서류를 보내어 이사장과 이사진으로 하여금 결재하게 한 사실은 전혀 없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업무에 개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특별취재팀
  • 이순희씨는 누구

    이순희씨는 193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 진상보통학교 교사로 있을 때의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80년대 초 고향 문경을 찾았다가 박 전 대통령이 교사 시절 머물던 집인 청운각도 수리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 무렵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과 이사로 각각 있던 육영재단, 육영수 기념사업회 등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육영수 기념사업회가 청운각 운영비 전액을 지원하고 운영권을 갖고 자신은 관리권을 갖는 것으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 부분적인 지원만 해오다 박 후보 동생인 박근영 육영재단 후임 이사장 때는 아예 관리권을 내놓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15년 동안 박근영 이사장에게 육영재단을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하라고 지적해 왔다고 그는 말했다. 관할 성동교육청에도 민원을 제기해왔다고 했다. 성동교육청은 이 민원에 따라 육영재단의 실태를 파악하고 공익법인 운영과 걸맞지 않은 행적을 발견해 2001년 이사진 취임 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이사진이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특별취재팀
  • 진실화해위 ‘KAL858기 폭파’ 조사 착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고 11일 밝혔다.2005년 KAL기 사건을 조사했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안기부가 특정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무지개 공작’이란 이름으로 사건을 활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KAL 858기 사건’은 1987년 김정일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가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바그다드발 서울행 비행기를 폭파시킨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그동안 유족과 시민단체, 언론 등을 통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 진실화해위는 “폭파범 김현희와 당시 안기부 핵심 간부들을 조사하지 않아 의혹을 풀지 못했다.”면서 “안기부의 사전인지와 개입여부,KAL 858기의 폭파·추락·실종 여부, 김현희의 북한 공작원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또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인 ‘8·15 저격사건’과 유신 반대발언을 했다며 중앙정보부가 가혹행위를 한 ‘오종상 긴급조치 위반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직권조사와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육영수여사의 내조론(內助論) 사윗감론(論)

    육영수여사의 내조론(內助論) 사윗감론(論)

    가을이 익는 쾌청한 하오. 「퍼스트·레이디」 육영수여사가 대학가 나들이를 했다. 10월15일 하오 2시 중앙대학교 여학생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반가움과 친근감으로 충만한 1시간30분 동안 서로 주고받은 화제는 『여성과 내조』 그리고 사윗감… “딸이 미남을 좋아하는지 미처 알아보지 못했군요” 『딸이 미남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왔군요. 사상이 건전하고 신체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면 누구든지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남이 많은 중앙대학교 학생들 중에서 사윗감을 고를 생각이 없느냐는 남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 - 계신 곳이 너무 고고해서 때로는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으시는지? 학생대표들이 따로 마련한 다과회의 자리에서는 즉흥적인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누가 함께 있지 않대서가 아니라 때때로 문득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스스로를 객관할 때 같은 때…』 묻는 얼굴의 당돌함이 이내 풀려 버리는 여린 미소를 담고 있었다. 청와대란 유일한 집의 주인이 언젠가는 한번 되고 싶다는 총학생회장 이인영군(법4)의 말에는, 『좋은 생각이어요. 택하고 있는 전공과목과도 맞는군요』 여학생회장 조범제양이 대행한 여학생의 질문이 좌담회에서는 우선권을 가졌다. - 집무에 바쁜 아버지대통령과 자녀간의 간격, 그리고 특히 따님 교육에 대해서… 『보통의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와 하듯이 저녁식탁은 자녀와 대화하는 자리로 힘쓰고 있어요. 그분이 워낙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시니까 짧지만 충실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죠. 딸들에게는 언니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죠. 아직도 고삐는 엄머가 쥐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자율적으로 잘들 해줘요』 -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서… 『여성들이 남성보다 몇갑절 어렵다고 하지만 현재로는 만족할만한 상태라고 할 수 없겠어요. 좀더 여성능력이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니신 인품과 명성을 존경합니다. 그런 인격을 갖추게 된 평소의 신조와 명언 같은 것은? 『…분에 안맞는 생활은 염두에 두지 않아 왔을 뿐이고…. 성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신념은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예요』 “유행에 민감한건 좋지만 대학생 지성으로 분별을” - 외국에 나가셨을 때의 내조방법은? 『나가서는 그분이나 나나 서로 바빠서 시간과 마음이 여유가 없어요. 여성은 또 시간이 더 걸리죠. 준비를 먼저 끝내고 대통령께서 오히려 도와 주시기까지 해요. 이런 일은 있어요. 저녁의 공식만찬은 늦기도 하고 기호에도 안 맞으셔서 못드시는 때가 많아 미리 마련해간 라면을 삶아 드려 본 적이 있어요. 냄새도 안나고 그분 든든해 하시고 괜찮은 방법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밖에 소분내지는 말아요』 - 여대생이 유행에 민감한 것 어떻게 보시는지? 『민감한 것은 젊음을 말하는 것 아녜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도를 지나친 것은 참았으면 싶죠. 대학생의 지성으로 분별한 정도를 권하고 싶어요. 지난번의 「미니」단속 때는 좀 유감스러웠어요. 스스로 재고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의견을 나도 피력했었죠』 “내조라 자각해본적 없고 대화의 슬기찾으면 될듯” - 그토록 현명하신 내조자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떤것인지? 『내 행동에서 이것이 내조라고 자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다만 생각만으로 해본 현대의 내조란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내의 본분에 더해서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하고 민주방식의 교육을 알고 남편과 더불어 나눌 대화의 슬기를 찾는 여성이어야 할것 같아요. 대답이 이정도로 되겠어요?』 -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주시는 말은? 『이 학교 교훈이 꼭 좋겠어요. 의롭고 참되면 안될 것이 없거든요. 특별한 연구는 못했지만 민주주의의 바탕도 그런 것 아녜요?』 -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신 이후 가장 흐뭇하고 가장 괴로왔던 일을- 『괴로왔던 일 너무너무 많아요. 흐뭇했던 일은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셨을 때였을 거라고 여러분은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고사리 손으로 전달해 온 낙도어린이들의 책을 고마와하는 편지, 스스로의 손으로 그려주는 아이들의 엄마 생일 「카드」, 그런 일들이 늘 흐뭇해요. 국가일이 잘되어서 대통령께서 기뻐하시는 것 물론 같이 기쁘고…. 어저께 같은 참사(14일 경서중학생 소풍사고),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또 가장 안타까운 일의 하나는 학생들이 민주방식이 아닌 방법으로 거리로 뛰어나오는 일이죠. 내게 이야기해 주면 그 뜻을 충실하게 전해줄 약속은 지금도 할수 있어요』 - 대통령의 괴로움을 위로할 때는? 『모든 해결은 그분이 하시니까 마음을 상해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죠.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나쁜말 피하고 좋은 이야기 골라서 열심히 해보죠』 “견해차 생기면 양보해도 옳다고 믿으면 지구력을” - 사적인 생활에서 견해의 차이가 생기면 어느분이 먼저 양보하시는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체로 여성이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정도의 지구력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뜻은 관철하는 것도 아내의 지혜예요. 남성은 보통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성이 맞서는 것을 꺾기 위해 고집을 피우기도 하니까요』 하오 3시30분 좌담회를 끝내고 총장실에 마련한 다과회로 들어갔다. 관상을 할 줄 아노라고 자처하는 한 남학생이 『가까이서 뵈니까 무척 복스린 얼굴이십니다』하자 『그건 틀렸어요. 내가 어디가 그래요?』 『임영신 개인과 임영신 산하에 있는 2천2백만(교련 7백만, 한국부인회 1천5백만)을 다 기울여 찬양하는 대통령이지만 특혜는 한번도 받은 적 없다』면서 맞아준 노총장의 영접을 받으며 개교 축하의 「케이크」를 잘랐다. 여학생들이 마련한 선물은 24인용 「테이블·커버」. 청와대 살림에 꼭 필요하다는 정보를 알아내어 여학생들이 직접 수놓아 만든 것. <송정숙(宋貞淑)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0월 25일호 제3권 43호 통권 제 108호]
  •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드디어 루비콘강을 건넜다. 오는 12월19일 대선으로 가는 샛길은 없다. 사활을 건 승부만 있을 뿐이다.’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11일 대선 경선 후보로 등록,70일간의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제 현행 선거법에 따라 후보로 등록하면 다른 정당의 후보로 나서거나 독자 출마가 불가능하다.8월19일 경선에서 명운을 건 외길 승부를 펼쳐야 한다. 원희룡·고진화 의원은 12일, 홍준표 의원은 마감일인 13일 후보 등록을 하고 경선레이스에 공식 가세한다. ■이명박 “지도자 못될만큼 살지 않아” 이 전 시장의 출마 선언문은 박 전 대표와 달랐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딸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자 부담인 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려고 접근한 반면 이 전 시장의 선언문에는 이렇다 할 인간적인 풍모나 체취를 담지 않았다. 이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도덕적 시비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박하는 데 오히려 초점을 맞췄다.“저는 살면서 실수와 잘못도 있었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못할 만큼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거의 포기할 뻔했지만 야간인 포항 동지상고에 수석 합격, 돈 한푼 내지 않고 고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대학 진학의 꿈을 잃지 않아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건설에 입사해 29세에 이사, 35세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고 이후 최장수 CEO의 역사를 쓰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정치인 이명박’은 만만치 않았다.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해 이종찬씨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8년에 다시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 최병렬씨와 경쟁했지만 선거법 재판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삼수만에 서울시장으로 재기해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체제 개편으로 강력한, 추진력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굳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박근혜 “내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얘기로 출마 선언문을 풀어갔다. 먼저 “철들기 시작할 무렵, 밥상에서 가난한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시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삶을 대신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1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터졌을 때,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제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면서 “이제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 드렸던 그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소신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일평생 저의 삶을 견인해 온 것은 바로 ‘정직과 신뢰’였다.”면서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에게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1952년 군인이던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11살.1974년 피습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79년 10·26 때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이때부터 가슴에는 조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들이 깊이 각인됐다고 한다. 지난해 피습을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내공’을 쌓은 시절이다.“저에겐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다. 저에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李 국정운영 방향 “청계천 살렸듯이 경제 살릴것” “청계천을 살려냈듯이 대한민국 경제도 살려내겠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향후 5년간 국정운영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경제 성장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이 나서 국정을 바로 세우고 헌정 질서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는 모든 세력의 지지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선진화세력, 미래지향적 실용주의 세력이 모두 모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나라당뿐 아니라 뉴라이트와 중도·보수 시민세력,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대한민국 선진화 추진회의’(가칭)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계천을 살려냈듯 대한민국 경제도 살리겠다.”며 “‘대한민국747 비전’(7%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이 후보는 “중도하차 가능성은 완벽하게 없다.”며 “수질을 좋게 하고 수량을 보존하는 운하를 계속 국내외 전문가와 협의,3만∼4만달러 경제적 효과의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朴 국정운영 방향 “나라 근본 세워서 선진국으로” “나라의 근본부터 바로 세워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을 만들겠습니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을 통한 선진한국’을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목표로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께서 못다한 두가지를 꼭 하려 한다.”며 “하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이며, 또 하나는 그 시절 고통을 받았던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만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외교강국으로 만들어 치열한 경제경쟁, 국가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처리즘 공약’에 따른 복지예산 감축지적에 대해선 “대처리즘이 경제를 살리고 번영을 구가하는데 지금도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한 바와 같지만 제가 복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李 검증 역공 논리 “朴·범여권서 ‘李죽이기’ 대연정” 이 전 시장 측은 검증 공세에 대해 “박 전 대표와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대연정”이라고 역공을 펴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이 ‘여권발(發)’이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이 전 시장은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나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하면서 ‘없는 땅’ ‘없는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같은 식구가 할 수 있는 짓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박 전 대표 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진수희 캠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려는 일련의 작업들을 여권에서 제조, 유통시키는 역할은 박근혜 캠프 핵심 의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며 “이적 행위를 해서라도 경선에 승리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식 원칙’인가.”라며 거들었다. 이 전 시장 측이 검증 공방에 대해 전에 없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각종 의혹 제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한때 5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다, 지난달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부터 지지율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과 20% 이상 격차를 벌렸던 박 전 대표와의 격차가 10%대까지 좁혀졌고 일부 조사에서는 한 자릿수대로 바짝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박영선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대표해서 지지율 1위 후보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최근 상황을 보면 범여권과 박 전 대표 진영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朴 검증 역공 논리 “국민 알권리 李측서 본질 호도” 박 전 대표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검증 공방과 관련,“자꾸 공방 정국으로 몰고가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시장 측에서 검증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실체 없는 얘기를 하면 네거티브가 되겠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국민이 확실히 알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검증 문제는)캠프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의구심에 대해 국민에게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측이 ‘여권과의 연계 의혹설’을 제기하며 역공을 가한 데 대해 이혜훈 공동대변인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추가적인 의혹 제기는 하지 않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슈화에 성공했고, 이날 경선 후보 등록을 신호로 여권에서도 파상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일단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분위기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책토론회와 검증을 통해 역전을 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론조사에서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고,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면 이 전 시장의 ‘거품’도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측은 ‘6·7월 검증 총공세’를 통해 반전의 발판을 마련, 내달 열리는 후보 검증 청문회까지 승부를 걸겠다는 계획이다.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외부에서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증위가 새롭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李·朴, 경선 등록부터 ‘신경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접수를 둘러싼 이­박 진영의 장외 신경전도 뜨거웠다. 누가 먼저 경선 후보로 등록하느냐에 적잖은 관심이 쏠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한발 앞서 후보로 등록했다. 박 전 대표는 선거대책위 구성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이날 후보 등록 1호를 기록한 뒤 공식 출마 선언을 하는 등 세몰이를 가속화했다. 그러자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명박 전 시장도 후보 등록 후 기자회견을 갖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전 대표측 유정복 비서실장은 오전 9시에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후보 등록을 했다. 박 전 대표는 30여명의 국회의원과 캠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사 주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박사모 회원과 박 전 대표 지지자 등 2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표를 응원했다. 이 전 시장은 오전 11시에 백성운 캠프 종합행정실장을 통해 후보 등록을 하고 오후 2시에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홍문표·이윤성 의원 등 30여명의 국회의원과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이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을 읽으며 결의를 다졌다.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은 12∼13일 각각 후보 등록을 한 뒤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朴 “아버지 시대 희생자에 죄송”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국민 선언문’에서 ‘과거와의 화해’ 의지를 천명했다. 먼저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 시절에 불행을 당한 분들께 사과를 드리는 것은 진심과 충정을 담은 말이다. 진실하게 다가갈 때 마음을 열고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사과했다.“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아야 경제도 살리고 선진한국 건설도 이룰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합해서 하나가 되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도 댔다.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에도 사과의 뜻을 내비쳐 왔지만 공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시한 것은 선친의 부채를 짊어진 국민 대화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각에는 “정치하면서 단 한 번도 표를 의식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면서 “국민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일축했다. 열린우리당 유은혜 대변인은 “진심이라면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위선과 이율배반의 전형”이라고 깎아내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 그러니까 1982년 봄 어느날이다. 한 전직 장관(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인이 지인 소개로 용하다는 무당을 서울에서 만났다. 부인의 남편은 다름아닌 외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무당은 부인에게 “염려말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요즘 들어 국상(國喪)이 자주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뱉었다. 며칠 후 무당의 말대로 전직 장관 부인 등을 포함, 몇몇 지인들이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고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원혼을 달래는 굿을 조용히 치렀다.(이때 지난해 작고한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무당옷을 빌려 입고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참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무당은 전직 장관 부인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관 지명에서 자신의 남편은 탈락되고 대신 이범석씨가 신임 외무장관이 됐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변명 같지만 전화위복이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어 1983년 9월. 무당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날(음력 8월18일)에 주위 친한 사람들을 일부 초청, 점을 봤다. 그런데 이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무당은 “버마(미얀마) 가면 안 되는데, 버마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한달 뒤인 10월7일 밤, 무당은 대통령이 죽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건 개꿈이야, 개꿈!”하면서 남쪽을 향해 침을 퉤퉤 내뱉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아침 아웅산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위기일발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범석 외무장관을 포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운명을 ‘재천’이라고 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상황이 떠올려진다. 첫째, 당초 전직 장관 부인의 뜻대로 남편이 외무장관에 발탁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무당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둘째, 무당이 ‘버마’를 운운한 점, 또 ‘대통령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 미얀마가 있는 남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 운명의 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신(神)의 전주곡 같은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이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건일수록 그 뒷얘기는 더욱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살아온 60년 이 시대의 큰무당,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金錦花·77)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뿌린다. 작두 타며 신을 만나는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17세 때에 처음 신과 만났으니 올해가 꼭 60년째가 된다. 한때는 혹세무민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갈 때마다 단연 ‘인기캡’으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내에서 서해안풍어제(무형문화재82-2호) 굿판을 벌일 때도 많은 외국팬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는 2년 전 강화도 북쪽 해안가에 30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무속체험장인 ‘금화당’ 간판(글씨는 ‘도올’이 썼다.)을 내걸었다. 서해안풍어제 굿판을 벌이기에도 좋고 고향인 황해도 연백땅을 바라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이문동의 서해안풍어제연구소와 금화당을 오가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과 가까이에서 ‘경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주 이문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한복차림에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금화당’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워싱턴·LA 공연을 비롯, 유럽 각지의 해외공연을 수십차례 다니면서 무속 체험장 같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여러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으로도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세계 연극평론가 70여명, 외국 신문사 기자, 천주교 수녀들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무속박물관이 내 꿈 아울러 여력이 되면 무속박물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200여년된 탱화 등 우리 무속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다수 소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의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동생을 본다는 뜻에서 처음에는 ‘넘새’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다섯에 남동생이 태어나자 이름을 ‘금화’라 했다. 그의 신기는 어릴 적부터 신통방통했다. 열살 무렵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시퍼런 낫을 맨발로 타고 올라가 춤을 췄다. 또 어느 집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고, 임신한 사람을 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혔다. 열일곱살되던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시름시름 무병을 앓던 그가 달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울을 건너려 하자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져내렸다.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부터 ‘신의 딸’이 됐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신 어머니가 돼 금화의 허주굿(온갖 잡신을 몰아주는 굿)을 해주었다. 금화는 이어 내림굿을 하면서 작두를 탔다. 열아홉살되던, 즉 6·25직전 어느날었다. 금화는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뚝뚝 떨어지고 달구지가 피묻은 옷가지를 싣고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물론 신의 계시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무당을 반동분자로 취급했던 터였다. 나라에 큰 난리가 날 것을 안 금화는 숨어다녔으나 자주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인들이 찾아와 피란간 사람들의 명단을 대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반동으로 몰리자 마을 원두막에 앉아 혼자 인공기를 만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28수복 직후에는 남한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노릇한 사람의 명단을 대라고 하더군요.‘너는 무당이니 다 알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에 총을 들이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요.” ●올해 일어날 일은 비밀 결국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리 중에 인천으로 피란오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에는 굿을 할 수가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석, 우수상·공로상·개인상·단체상 등을 싹쓸이하면서 당당한 민속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의 초청공연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작두 타는 모습 등을 비롯, 한국의 토속 샤머니즘을 선보여 많은 관중을 불러모았고 이후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해 큰 사건은 없느냐고 하자 “그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너무 빠르다. 순리대로 가야 하며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금화당에서 무녀인생 60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큰 굿판을 벌일 예정이니 그때 구경 오라고 당부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황해도 연백 출생. ▲46년 외할머니에게 허침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받음. 방수덕·권만신에게 대덕굿, 철물이굿, 배연신굿, 대동굿 등 전수. ▲82년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으로 방미. ▲84년 미국 하와이주 인간학연구위원회 및 하와이대재단 초청공연,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대동굿 기능보유자 지정. ▲95년 김금화대동굿(연강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
  • 진실화해위 “부일장학회 中情서 강탈”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재산 등 강제헌납 의혹사건’에 대해 강압에 의한 재산 헌납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강탈한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중앙정보부의 수사권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와 상관없는 김지태씨를 구속 수사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된다.”면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여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MBC),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침해 행위”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헌납 토지에 대해서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울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라.”면서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헌납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언론사 주식을 정수재단의 경비 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공익성에 반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는 “강탈 당한 언론 3사는 단순한 재산권 침해에 머물지 않고 언론기관의 존립 근거에 속하는 공공성 또는 중립성 등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정수장학회는 현재 MBC 주식 30%, 부산일보사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차남 영우(65)씨는 지난해 1월27일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국내재산 도피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한 뒤 처벌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부일장학회와 아버지 소유의 땅 10만평, 부산일보 등 언론 3사를 강제로 헌납시켰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용어클릭 ●부일장학회 1958년 11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던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가 토지 10만 147평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한 장학회다.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몰수돼 5·16장학회로 바뀌었다.8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이사장으로 있었으며 최필립씨가 현재 이사장이다.
  • 朴, 소록도서 ‘한센가족 보듬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7일 소록도에서 열린 ‘소록도병원 개원 91주년 전국 한센가족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이날 소록도 방문은 ‘장애인 낙태’ 발언 논란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소록도로 가는 배 위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회가 깊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곳 복지관에 2000만원을 기증하셨는데 이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업이 돼버렸다.”면서 “복지관 완공식을 1974년 12월18일 했는데 어머니는 안타깝게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셨다.”며 소감을 밝혔다. 박 전 대표는 고 육영수 여사 공적비와 육 여사가 세운 양지회관을 둘러본 뒤 축사를 통해 “한센병은 병 자체보다는 잘못된 편견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한센인은 국민기초생활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도 안 된다. 한센인 2세의 교육문제와 정착촌 주민 보건의료문제 등 한센인 여러분이 필요로 하고 아파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소록도 방문에 이어 순천으로 이동, 지역 여론주도층 모임인 ‘섬진강 포럼’에서 특강을 갖고 ‘화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영호남을 아우르며 바다로 흘러가는 섬진강처럼 진정한 국민화합이 필요하다.”며 “이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모두 가슴을 열고 손을 잡아 선진화와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 우리는 호남도 아니고, 영남도 아니고,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딸자랑] 홍병식씨 막내딸 미숙양

    『이 애는 걱정을 안 끼쳐주는 아입니다』-유실물(遺失物)찾기봉사「센터」대표 홍병식(洪秉寔)씨(65)가 막내따님 미숙(美淑)양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하는 첫마디. 건강한데다가 공부도 잘 하고 무엇이든 시키면 척척 해내는 솜씨이니 단연 최고가 아니냐는 것. 피아노 잘치는 미술학도 만능 스포츠 선수이기도 집안일 잘 돌보아 걱정 끼친일 없어 서울大 미대(美大) 서양화과 4학년에 재학중인 미술학도 홍양은 1남6녀중 막내. 오빠 언니들이 모두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재롱동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해방전에 낳았는데 얘만 해방 후에 얻었읍니다. 막 낳아서 이름을 지으려고 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뭐라 말 할 수 없이 예쁘잖아요? 그래서 언니들이 이름자 돌림인「숙」위에「아름다울 미」자를 얹어 주었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쁜 따님은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정숙하게 자라 귀엽고 마음이 착한 미대생(美大生)이 되었다고. 아무래도「미」와 인연이 많은 모양이라고 아버지는 싱글벙글이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란 건강과 공부가 아니겠어요? 그런 뜻에서 이 애는 부모의 속을 안 썩이는 아이죠. 별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고, 또 공부도 잘 해서 소위 1류학교라는 데만 척척 합격했으니 말이에요』 67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집안 식구들은 모두 좀 쉬운 데를 골라서 가라고 했지만 한사코 본인이 고집, 서울대 미대를 지망했다는 이야기. 『발표 하루 전 날이었어요. 아는 분을 통해서 알아보았더니 아, 글쎄 떨어졌다는 거예요.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 같더군요. 어떻게 얘한테「쇼크」를 주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넌지시 물어 보았죠. 너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절대로 자기는 떨어질리가 없다고 자신만만이에요』 본인의 자신대로 발표를 보니 당당히 홍양의 이름이 들어있더라고. 미리 알아본 것이 잘못된 정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합격한 홍양이 서울대학교 여학생회 주최 신입생 환영「페스티벌」에서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준 시계를 타오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고. 행운권 추첨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1등 상을 차지한 것.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보통 집안 일은 통 모르고 그저 예술입네 하고 체하기가 십상인데 얘는 집안 일도 잘 할줄 알아요. 시키면 무엇이든 할 줄 알죠. 그리고 다방면에 취미가 많은데다가 모두 극성일만큼 열심이에요』 운동이라면 무엇이든 할 줄 안다는 만능 운동선수이기도 한 홍양이 요즈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테니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우표도 상당히 모은적이 있고 또「피아노」솜씨도「아마추어」의 경지를 넘어선 실력이라고. 사위감에 대해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생각을 않고 있지만 본인만 좋다면 아버지로서 무조건 OK하겠다고. 지금까지 자식들 결혼을 시킬 때 모두 그런 식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겨 왔다는데 똑똑한 따님이 골라 잡는 신랑감일 테니 부모로서 무슨 반대할 말이 있겠느냐는 것. 이번 여름에는 학교의 교수님들과 함께 홍도와 경주 문무왕릉을 답사하고 왔다는 홍양은 졸업하면 둘째 언니가 있는 미국에 건너가서 그림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란다.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에서 엄마 朴南順(63)여사와 함께 세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23일호 제3권 34호 통권 제 99호]
  • 미식가 사로잡은 곰탕집 하동관 ‘68년 을지로시대’ 접는다

    미식가 사로잡은 곰탕집 하동관 ‘68년 을지로시대’ 접는다

    구수한 국물로 지난 68년간 미식가들의 혀끝을 중독시켜온 서울 중구 을지로의 곰탕 전문점 ‘하동관’ 건물이 철거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던 이 허름한 건물은 중구 수하동 일대 재개발로 오는 6월 초 철거될 예정이다. 하동관은 인기 만화가 허영만씨의 ‘식객’에 소개되면서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맏며느리·둘째아들이 가업 이어 철거를 앞두고 12일 찾은 하동관은 여전히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일대가 대부분 철거되고 곳곳이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스산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하동관의 맛은 여전했다. “내포 둘, 맛보기, 깍국요.” 암호와 같은 구호가 오가자 넉넉한 놋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곰탕과 다소 야박해 보이는 깍두기 한 접시가 ‘식객’들을 맞이했다. ‘내포’는 내장을 많이 넣어 달라는 말이고,‘맛보기’는 밥의 양을 줄여달라는 뜻이며,‘깍국’은 깍두기 국물을 곰탕에 부어달라는 의미다. 날계란을 놋그릇에 톡톡 쳐서 풀어먹는 맛은 하동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별 옵션이다. 하동관은 창업자인 고 김용택씨가 1939년 이 자리에 문을 연 뒤 김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고 장낙항씨가 1964년 인수해 줄곧 수하동 26번지인 이 자리를 지켜왔다. 고 장낙항씨의 맏며느리인 김희영(70)씨는 가게를 우선 명동 외환은행 뒤편으로 옮길 계획이다. 철거 이전에 재개업 준비를 마쳐 단 하루도 손님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이와 별도로 장낙항씨의 둘째 아들인 석철(68)씨는 강남구 대치동에 분점을 낼 계획이어서 강남·북에서 모두 하동관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장낙항씨의 부인이자 하동관의 명성을 이끌어낸 고 홍창록씨로부터 맛의 비밀을 전수받은 맏며느리 김씨는 “수십년 동안 지켜온 이 자리를 떠나는 마음을 서운하다는 정도로 표현할 순 없다.”면서 “등받이가 없는 나무의자를 쓰다가 뒤로 넘어지는 손님들이 많아져 등받이가 있는 걸로 바꾼 것 말고는 탁자 하나까지 예전 그대로”라며 아쉬워했다. ●단골들 “이 맛에 중독… 쫓아가야지 별 수 있나” 그는 “수십년 단골들은 눈 감고도 찾아올 정도인데 옛날 분위기와 맛을 지키기 때문에 하동관을 좋아하는 것”이라면서 “새 가게로 갔다가 재개발이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장소가 바뀌면 손님들이 ‘하동관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는 “주방장이 아닌 내가 40년 동안 주방을 지켰어. 사람과 재료, 식기까지 그대로 옮기니 걱정 안 해도 돼요. 기자 양반”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동관의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손님들의 면면도 굵직굵직하다. 역대 대통령 중 하동관 곰탕 맛을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초도 순시를 나갈 때마다 점심으로 배달시켜 먹었고, 육영수 여사도 여러 차례 찾았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뒤 온 적은 없지만 이전에 몇 차례 찾았다고 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손자들까지 3대에 걸친 단골이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하동관 마니아다.‘장군의 아들’ 김두한씨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60여년 동안 쌓아온 신뢰 덕분에 광우병 파동에도 끄떡 없었다는 하동관의 수하동 시대는 이제 역사 뒤로 사라진다. 하지만 장소는 옮겨도 하동관의 깊은 맛은 이어질 것 같다. 20여년째 단골인 한 할아버지는 “(하동관을) 옮긴다면 정말 서운하지.”라면서도 “이미 이 맛에 중독돼서 쫓아가야지. 별 수 있나.”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글 사진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선후보 취약점 보완 분주] 이명박 ‘불심 껴안기’ 박차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명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올들어 부쩍 ‘불심잡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 전 시장은 그동안 시장 재직 시절 ‘서울 봉헌’ 발언으로 냉담해진 불심을 끌어안는데 주력해왔 다. 최근 당내 ‘불교계의 대리인’격인 주호영 의원을 캠프 비서실장으로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 전 시장은 1일 경북 김천의 직지사를 방문, 불교계의 큰 스님인 녹원 스님과 배석자 없이 1시간 가량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녹원 스님은 이 전 시장에게 “여름에 청계천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봤는데 세계에서 이렇게 좋은 곳을 보지 못했다.”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청계천을 보고 나는 믿는다. 깔끔하게 잘 해달라.”라며 덕담을 건넸다. 직지사 주지인 성옹 스님도 ”앞으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고자 하는데 그 뜻을 꼭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직지사는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모신 사찰이라는 점에서 이 전 시장의 이날 방문은 정치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당내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47.8%로 박 전 대표(22.4%)에 크게 앞선 것도 이같은 자신감을 뒷받침한 것같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박근혜 ‘더 짧아진 헤어스타일’ 전투모드 강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헤어스타일이 한층 더 짧아졌다. 박 전 대표는 지난 5일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를 연상시키는 올림머리를 어깨위까지 풀어 내린 긴 단발로 과감한 변화를 준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웨이브 단발’로 정돈했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표가 헤어스타일 변화를 계기로 “워밍업은 끝났다.”고 선언한 데 이어 딱 일주일 만에 또 변신을 준 것이어서 ‘전투모드’가 강화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변신’ 이후 다소 어색하다는 주변의 여론동향을 전해 듣고, 귀가 살짝 보일 정도의 더 짧은 단발로 한층 과감하게 스타일을 바꾼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캠프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육 여사 같은 영부인의 이미지는 마이너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한층 더 강하고 더 대중적인 이미지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에바役 열정좇던 내삶과 닮은꼴”

    “에바役 열정좇던 내삶과 닮은꼴”

    33살에 요절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배우 김선영도 33살이다. 오는 2월1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에비타’는 객석점유율 97%를 자랑하는 화제의 공연. 김선영은 스스로 “청주에서 22살에 서울로 올라와 부대끼며 살아온 것이 에비타와 닮았다.”고 말했다. 에바 페론은 14살 때 탱고 가수를 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에비타’는 요즘 젊은 관객들이 열광하는 즐겁고 웃기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뮤지컬 속 화자인 체 게바라와 에바가 서로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 장면은 노래로 전달하기엔 무거울 수도 있다. 관객층도 다양하지만 중년 관객들이 유독 눈에 띈다. 노동자·농민 등으로부터 ‘성녀’로 추앙받았던 에바의 극적인 삶은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1981년,1988년 두 차례나 국내 공연이 시도됐지만 정치 검열과 라이선스 불법수입 등의 문제로 제대로 장기공연되지 못했다. 김선영은 젊은 관객들이 몰리는 뮤지컬처럼 기립 박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점처럼 일어나 보내는 진심 어린 박수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조용한 편인데 어느날 중후한 신사분이 혼자 우뚝 서서 박수를 보내시더라고요. 단체 기립박수는 군중심리가 작용하는 측면도 있는데, 그 분의 박수는 정말 의미가 컸어요.”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음역의 노래를 두 시간 동안 불러야 하는 ‘에비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김선영은 이제 한국 뮤지컬계를 이끌어갈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육영수 여사의 순수한 불심 세계 그려 정치적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육영수 여사의 순수한 불심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또 살아 생전 한 여인으로, 또 한 어머니로서의 인생 역정을 있는 그대로 담았지요.” 소설 ‘우담바라’로 유명한 작가 남지심(62)씨가 최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삶을 조명한 장편소설 ‘자비의 향기 육영수’(447쪽·랜덤하우스코리아)를 펴내 눈길을 끈다. 육 여사의 어린 시절부터 1974년 8월 총탄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일대기를 그렸다. 그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서적은 여러권 출간됐으나 육 여사의 경우는 처음이다. 남씨는 출간 소감과 관련,“그분이 여성으로서 정말 존경받을 부분, 또 늘 베풀려고 하는 자비정신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료수집에만 2년여 걸렸다고 했다. 또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정치적 시선을 우려해서인지 “글을 쓰기 전이나 쓰는 과정에서나 그런(정치적)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면서 그저 작가적 고심을 거쳐 탈고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창시절,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결혼, 어머니로서의 삶, 대통령의 아내로서의 활동 등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소설화했다고 부연했다. “육 여사는 한·일협정을 반대한 대학생 시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수립 등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을 보면서 식사와 차를 마실 때 남편에게 있는 그대로 민심을 전달해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남씨는 또 “육 여사는 생전에 다들 잘 살게 해야 한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펴 지금도 그리움이 면면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어머니에 대해 근접하게 잘 그렸다.”는 평을 남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대선주자 24시] (4)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

    [대선주자 24시] (4)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도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보여줬던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을 다시 한번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자신감은 ‘살인 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하루 일정에서 감지된다. 이같은 ‘철인 일정’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등을 통해 박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박 전 대표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우선 지치지 않는 그의 체력에 놀란다.20·21일 이틀 동안 무려 춘천 속초 원주 옥천 등지의 14곳을 돌아다녔다. 이동하는 박 전 대표의 체어맨 차량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간이 램프였다. 달리는 차안에서도 끊임없이 강연 자료를 소화해내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 돼 버렸다고 한다. 빡빡한 일정 탓에 “좋아하는 테니스를 요즘에는 잘 치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아직 조카 세현이의 선물조차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21일 아침 10시55분 충북 옥천읍 교동리 고(故)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 현장을 살피기 위해 나선 박 전 대표는 분홍색 터틀넥 스웨터와 재킷차림으로 환영나온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피곤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아요.”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전날 6시간 정도 잠을 잔 박 전 대표에게는 피로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생가를 찾은 까닭인지 박 전 대표의 모습은 생기있어 보였다. 그는 “부모님과 여름 휴가 뒤 자주 외가에 왔었다.”며 “어머니가 사실 때보다 연못이 반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공사진척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외가에서 박 전 대표는 사실상의 대선출정식을 가졌다. 박 전 대표는 어머니 생가를 찾은 정치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충북을 오게 되면 당연히 방문하게 되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당대표 선거를 위한 출정식 전에도 찾았던 이곳에서 그는 “부모님이 (박 전 대표가) 젊었을 때 흉탄에 숨지시고 임종도 못해 죽을 때까지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하고 국민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부모님께 대한 효심이다.”며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열린우리당측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해 제기한 ‘박정희 흉내내기’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아버지의 이미지를 닮는다는 이야기가 보도됐는데 아버지의 겉을 닮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닮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갖고 계셨던 국가관 역사관 안보관 사심없이 나라에 봉사했던 마음을 닮는 것이 진정으로 닮는 것이고 중요하다. 얼마나 닮았는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여론조사상의 지지율에는 애써 초연한 모습이었다. 각종 조사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에 관한 질문에는 “또 물어보세요.”라고 반문한 뒤 “내일 또 물어보세요.”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 측근은 1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했던 용기와 함께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어우러져 나오는 여유라고 전한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지난 6개월 동안 ‘국정운영’을 위한 많은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지지율보다는 국정운영의 바른 틀을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해서다. 이틀간의 동행 취재에 나서는 동안 박 전 대표가 가는 곳마다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함께 찍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목격됐다.‘예쁘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20일 속초 활어시장에서 서민들이 건네주는 소주도 거침없이 마셨다. 초고추장을 찍은 골뱅이를 마다하지 않고 먹고 난 뒤 목장갑으로 손을 닦고 다시 인사에 나서기도 했다. 스킨십을 강화해 ‘얼음 공주’이기보다는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은 ‘국민 누나’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는 듯한 행보였다. 전날 찾아간 강원도의 한 부대에서는 떠나기 전 장병들에게 일일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들을 격려하며 “제대 후에는 인기짱이 될 것”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친밀하게 다가서려 했다. 옥천·속초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한나라 빅3 이미지도 3色

    ‘이성파’ 박근혜,‘행동파’ 이명박,‘정중한 신사’ 손학규. 대권 경쟁에 나선 한나라당 ‘빅3’의 이미지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유권자층을 대상으로 공략해야 해 ‘카멜레온형’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차별화된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차분한 이미지가 강하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에다 사용하는 어휘도 많지 않다고 느낄 정도다. 얼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았지만 말투나 머리모양 등은 육영수 여사 쪽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들어 대통령의 딸, 야당 대표란 기존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유머를 사용하고 대학강연에서는 ‘싸이질’,‘얼짱’ 등 네티즌들의 용어로 젊은층에 다가가려고 변신 중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매사에 활력과 자신감이 넘친다. 손만 갖다대는 악수보다는 상대방이 아플 정도로 손을 꽉 쥐고 흔들어댄다. 최근 들어서는 검은 색이 감도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며 강력한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려 한다. 강연 때는 “내가 유인촌보다 잘 생겼다.”,“아나운서보다 목소리가 좋다.”며 자신감과 능숙한 애드리브로 시종 폭소를 자아낸다. 연설 후에는 일일이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정중한 신사 이미지가 강하다. 대학교수,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등의 경력이 보여주듯 차분하고 신사적인 스타일이 돋보인다. 악수를 할 때면 항상 두 손을 사용해 “안녕하십니까.”라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강연 때도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신변잡기나 농담보다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편이다. 화려한 넥타이에 날렵한 정장을 좋아하지만 주말에는 스카프와 캐주얼한 콤비도 즐겨입는다.‘100일 민심대장정’에서는 머리와 수염을 길러 ‘터프가이’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씨줄날줄] 외모와 선거/육철수 논설위원

    영상매체 시대라서 그런지 정치인에게 외모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정치인들이 성형수술을 마다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이미지를 보이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유권자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 처지에선 포장은 그럴 듯한데 내용물이 형편없는 정치인을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기 일쑤인 게 문제다. 1971년 대선 당시 40대의 김대중 후보는 외모가 하도 수려해서 일부 열성 지지층 여성들이 그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잘난 체하다가 낭패본 경우도 있다. 큰 키에 호남형인 전 의원 H씨는 선거홍보물에 몸 치수를 곁들인 전신사진을 넣었다가 유권자에게 미운털이 박혀 낙선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초 민자당의 L대표는 저승사자 같은 고약한 인상 때문에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도 TV출연을 자제했다고 한다. 대선이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오면서 항간에선 예비주자들의 외모에 대한 자평·타평이 난무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우스갯말로 “탤런트 유인촌씨보다 잘 생겼다.”고 자랑한다. 단추구멍만 한 눈과 코맹맹이 소리는, 누가 봐도 유인촌씨와 비교도 안 되는데 본인이 애교를 부리니 속는 셈 쳐줘야 할 것 같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얼짱으로 손색이 없단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을 때는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자애로움이, 심각한 표정일 때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엄함이 배어 있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도 훤칠한 키에 외모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생겼다는 평판이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대표는 언변과 외모로는 단연 으뜸이란다.‘봉황의 눈’을 가졌다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만만찮은 외모라는 게 민초들의 촌평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경제학자들이 최근 예쁘고 잘 생기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외모 프리미엄이 더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외모·경력·능력이 대개 검증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표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후보들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제발 뽑아 놓고 후회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여의도in] ‘陸여사 유품 2점’ 1541만원 낙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9일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유품을 팔아 불우이웃돕기에 나섰다. 서울 뚝섬유원지에서 열린 ‘아름다운 가게’ 주최의 나눔장터에 참여해서다. 육 여사가 생전에 사용하던 찻잔은 경매를 통해 1020만원, 접시는 521만원에 각각 팔렸다. 수익금은 서울 용산구의 쪽방촌을 찾아 전달하기로 했다. 박 전 대표는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은방울꽃 무늬가 새겨진 접시와 찻잔으로 청와대에서 외국 귀빈을 맞을 때 쓰시던 것”이라며 “좋은 일에 내놓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자신의 홈피 400만번째 방문자 김종성(42·회사원)씨와 500만번째 방문자 심해중(24·대학생)씨가 함께 참여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日 누르고 2위 지킬것”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인터뷰

    “日 누르고 2위 지킬것”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인터뷰

    ‘종합 2위를 사수하라.’ 오는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제15회 하계아시아경기대회(1∼15일)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에 떨어진 지상명령은 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3회 연속 종합 2위를 사수하는 것. 폭염 속에서도 370여명의 대표선수들이 하루 14시간 이상 담금질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아시안게임을 100일 남기고 선수들의 훈련을 총괄하는 이에리사(52) 태릉선수촌장의 마음도 부쩍 급해졌다. 이 촌장은 22일 “열악한 여건이지만 선수들의 분위기는 최고다. 양궁, 육상 등 15개 종목은 입촌해 있고, 승마 등 11개 종목은 촌외에서, 유도와 핸드볼, 레슬링 등은 해외전훈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위 탈환을 벼르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종합 2위를 지키기 위해 70∼75개의 금메달이 필요하다. 일본이 육상과 수영, 유도의 초강세를 앞세워 68개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수영(금51)과 육상(금45)에서 일본이 얼마나 많은 금메달을 긁어들일 수 있느냐다. 중국이 견제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 촌장은 32년전인 74년 테헤란대회에 출전했었다.‘사라예보의 기적’ 이듬해였지만 이에리사가 버틴 한국은 탁구 여자단체 결승에서 중국에 패했다. 이 촌장은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직후여서 출국 때부터 경황이 없었다. 또 날씨에 적응이 안돼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후배들은 착실히 준비했고 스태프들도 노력한 만큼 시행착오가 적지 않겠느냐.”며 어머니 같은 심정을 내비쳤다. 자유분방한 20대 선수들은 선수촌 생활을 잘 견뎌내고 있을까. 이 촌장은 “운동이 좋아 열심히 하는 것은 예전과 같다.”면서도 “우리는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끈기가 있었지만 요즘 친구들은 ‘오늘 안 되면 내일 하지.’식의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번 대회가 중요한 건 베이징올림픽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위축된 한국스포츠의 부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심을 가져주시되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도 살펴 달라. 메달 딸 땐 박수치다가도 대회 끝나면 밥 먹고 사는지 죽었는지 신경조차 안 쓰는 게 현실 아닌가.”라며 꾸준한 관심을 호소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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