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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40년 전 박정희의 ‘對美 전쟁’, 그 후…/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40년 전 박정희의 ‘對美 전쟁’, 그 후…/진경호 논설위원

    영부인 육영수가 문세광의 흉탄에 살해되고, 스물두 살 박근혜는 여섯 달 만에 프랑스 유학을 접고 돌아와 어머니 자리를 메워야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격동의 1974년이다. 그러나 기억 너머로 사변(事變)은 또 있었다. 박정희 정부와 미국 행정부가 핵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 해가 바로 그해였다.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 금지를 담은 한·미 원자력 협정이 발효된 1974년 10월 박정희 정부는 프랑스와 따로 원자력 협정을 맺었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양국이 협력한다는 내용이었으나 대통령 박정희의 머릿속엔 1년 전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비밀리에 넘겨받은 ‘특수사업’, 즉 핵무기 개발 구상이 들어 있었다. 미국의 눈을 피해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들여와 10년 안, 1980년대 초까지 핵무기를 독자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언제 미국이 우리를 버릴지 모른다는 우려, 언제까지나 미국에 우리 안전을 맡겨둘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핵과 더불어 장거리 미사일 개발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미 국무부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주한 미국 대사 리처드 스나이더와 국무장관 키신저 간에 숱한 전문이 오갔고, 박정희의 핵 개발 저지를 위한 대대적 압박에 나섰다. 동북아에서의 군비 경쟁을 저지한다는 명분 속에 한국을 계속 자신들의 영향권에 묶어 두려는 전략 목표가 담겨 있었다. 파상적 공세가 이듬해인 1975년 말까지 펼쳐졌다. 미국과 프랑스가 설전을 벌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갖은 압박에도 박정희 정부가 굴하지 않자 급기야 미 행정부는 전략 핵무기 철수를 넘어 주한미군 철수, 경제지원 중단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렇게 1년, ‘안보 독립’을 꾀했던 박정희의 꿈은 완강한 저항 끝에 결국 좌절됐다. 1976년 1월 프랑스와의 핵 재처리 계약은 파기됐고, 박정희는 약소국의 현실을 절감하며 옳았든 아니든 비핵 체제의 막을 올렸다. 40년이 흐르고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이끄는 2014년, 우린 다시 미국과 마주섰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전시작전권 전환, 미사일 방어(MD) 체제 편입이라는, ‘따로 또 같이’처럼 얽힌 선택 앞에 섰다. 가파른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원자력 협정 개정을 놓고 양국은 지난밤 워싱턴에서 10차 실무협상을 벌였다. 그제와 어제는 서울에서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와 관련한 국방 당국 간 고위급 협의가 이뤄졌다. MD 체제 편입 논란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세 현안 모두 그의 임기 중 매듭져야 할 사안이다. 전작권 전환 연기는 오는 10월, 원자력 협정 개정은 2016년 3월이 시한이다. MD체제 편입을 뜻하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 구축 문제도 내년까지는 가부를 정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주고받을 것인가. 1974년 2400달러였던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액은 지난해 2만 4000달러로 늘었다. 10배 성장했다. 4년 뒤인 2018년이면 우리의 1인당 GDP가 일본과 프랑스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일주일 전 무디스가 내놓은 전망이다. 외교력도 그런가. 40년 전보다 10배 성장했는가. 4년 뒤면 일본의 외교력을 넘어설 수준에 다다랐는가. 그 답의 일단을 박 대통령은 40년 전 자신의 아버지를 무릎 꿇린 미국을 상대로 써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홀로 떠받쳐준 외교안보팀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어깨가 특히 무겁다. 끌려가는 대응이 아니라 끌고 가는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을 MD체제로 끌어들여 대중(對中) 억지력을 완성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맞서 1979년 주한미군 철수를 중단시킨 박정희·카터 담판에서의 결기가 필요하다. MD체제를 넘어 제3의 길을 찾는 지혜 또한 갖춰야 한다.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 핵 재처리는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을 권리라는 인식과 논리로 미 강경파들을 뚫고 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룩한 한·미 전략동맹은 그저 정상회담 테이블용 외교 수사가 아니다. 대등한 관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돼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40년 뒤에도 부끄럽지 않을 외교사를 쓰기 바란다. jade@seoul.co.kr
  • 예인정 침몰 사고로 전군 비상상황서 문창극 총리 후보 버젓이 대학원…무보직 해명도 거짓?

    예인정 침몰 사고로 전군 비상상황서 문창극 총리 후보 버젓이 대학원…무보직 해명도 거짓?

    ‘예인정 침몰’ ‘문창극 총리 후보’ 예인정 침몰 사건 등 전군 비상 상황 속에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가 대학원을 다니는 등 군 복무기간 중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군 기록상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복무기간 절반에 해당하는 1974년 1학기부터 1975년 1학기까지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복무 기간 3년 가운데 절반을 대학원에서 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 측은 16일 “당시 사실상의 무보직 상태로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대학원에 다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가 대학원을 다닌 1974년은 당시 해군 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예인정 침몰(해군장병 159명 사망)’ 사건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등으로 전군 비상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겨레에 따르면 무보직 상태였다는 문창극 총리 후보 측의 해명과 달리 오히려 해군본부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거짓해명 의혹을 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문창극 후보자가 서울대 대학원을 다녔던 1974년 당시 중위였던 그는 해군1차장(중장·현 해군참모차장) 비서실 부관과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관리제도담당으로 재직했다. 예인정 침몰 사고(통영 YTL 침몰 사고)는 지난 1974년 2월 22일에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로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 실무요원 6명 등 모두 159명이 순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인정 침몰 사고로 전군 비상상황인데 문창극 총리 후보는 버젓이 대학원 다녀 특혜 의혹

    예인정 침몰 사고로 전군 비상상황인데 문창극 총리 후보는 버젓이 대학원 다녀 특혜 의혹

    ‘예인정 침몰’ ‘문창극 총리 후보’ 예인정 침몰 사건 등 전군 비상 상황 속에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가 대학원을 다니는 등 군 복무기간 중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군 기록상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복무기간 절반에 해당하는 1974년 1학기부터 1975년 1학기까지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복무 기간 3년 가운데 절반을 대학원에서 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 측은 16일 “당시 사실상의 무보직 상태로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대학원에 다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가 대학원을 다닌 1974년은 당시 해군 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예인정 침몰(해군장병 159명 사망)’ 사건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등으로 전군 비상 상황이었다. 예인정 침몰 사고(통영 YTL 침몰 사고)는 지난 1974년 2월 22일에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로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 실무요원 6명 등 모두 159명이 순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인정 침몰, 문창극 병역특혜 논란 ‘어떤 사건? 정원초과+급커브 대참사’

    예인정 침몰, 문창극 병역특혜 논란 ‘어떤 사건? 정원초과+급커브 대참사’

    ‘예인정 침몰, 문창극 병역특혜 논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예인정 침몰 사건 당시 병역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군 기록상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복무기간 절반에 해당하는 1974년 1학기부터 1975년 1학기까지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대학원을 다닌 1974년은 예인정 침몰 사건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등으로 전군이 비상 상황에 놓였을 때여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병역 특례 의혹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어제 (총리실) 공보실을 통해 다 해결을 했다”며 일축했다. 전날 이석우 총리실 공보실장은 “문 후보는 당시에 사실상 무보직 상태가 돼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대학원을 다녔고, (백령도 근무 이후) 대방동 해군본부에 근무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예인정 침몰 사고(통영 YTL 침몰 사고)는 지난 1974년 2월22일에 발생한 선박 사고로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 실무요원 6명 등 모두 159명이 순직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예인정 침몰 사고 때 전군 비상상황 걸렸는데 문창극 버젓이 대학원…무보직 해명도 거짓?

    예인정 침몰 사고 때 전군 비상상황 걸렸는데 문창극 버젓이 대학원…무보직 해명도 거짓?

    ‘예인정 침몰’ ‘문창극 총리 후보’ 예인정 침몰 사건 등 전군 비상 상황 속에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가 대학원을 다니는 등 군 복무기간 중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군 기록상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복무기간 절반에 해당하는 1974년 1학기부터 1975년 1학기까지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복무 기간 3년 가운데 절반을 대학원에서 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 측은 16일 “당시 사실상의 무보직 상태로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대학원에 다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가 대학원을 다닌 1974년은 당시 해군 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예인정 침몰(해군장병 159명 사망)’ 사건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등으로 전군 비상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겨레에 따르면 무보직 상태였다는 문창극 총리 후보 측의 해명과 달리 오히려 해군본부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거짓해명 의혹을 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문창극 후보자가 서울대 대학원을 다녔던 1974년 당시 중위였던 그는 해군1차장(중장·현 해군참모차장) 비서실 부관과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관리제도담당으로 재직했다. 문 후보자는 1973년 7월부터 해군1차장 비서실 부관으로 근무했으며, 1974년 4월부터 전역할 때까지는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관리제도담당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이 기간 중 문 후보자는 1974년 3월부터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주간)을 다녔다. 문 후보자는 비서실 부관으로 1개월 정도, 이후 관리제도담당으로 1년4개월간 군 복무 중에 대학원을 다닌 것이다. 예인정 침몰 사고(통영 YTL 침몰 사고)는 지난 1974년 2월 22일에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로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 실무요원 6명 등 모두 159명이 순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카드’ 꺼내든 與… 2030 표심에 사활 건 野

    [與] 믿을 수 있는 건 朴心뿐…충북·강원서 “대통령 도와달라” 6·4 지방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새누리당은 어김없이 ‘박근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새누리당 후보들의 외침이 전국 유세 현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 대통령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만큼 판세가 여권에 어렵게 돌아간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29일 충북에서 현장 회의를 열고 윤진식 충북지사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서청원 공동선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외가댁은 충청도로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은 더구나 충북 옥천”이라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어려움에 처한 박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드려야 한다”고 표심을 자극했다.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도 “박 대통령이 요즘 대단히 힘든데 충북의 딸로서 지난 대선 때 압도적인 표로 박 대통령을 당선시켜 주셨듯이 박 대통령을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새누리당 후보들도 지역 현장을 뛰면서 ‘박심팔이’를 하고 있다. 최흥집 강원지사 후보는 지난 26일 원주 중앙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박 대통령 도우려면 1번을 찍어 달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새누리당이 믿을 수 있는 단 한 장의 카드”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경합지인 경기·인천·강원·충북을 최대 승부처로 보고 있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박근혜 정부가 국가개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를 선거운동 현장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野] 사전투표 독려 이벤트…3040 앵그리맘 공략 병행도 새정치민주연합은 6·4 지방선거 운동 종반 전략으로 주요 지지층인 20~30대 젊은 층을 투표장에 끌어오기 위한 방안에 집중하고 있다.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29일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정체 상태이고 추가 지지를 끌어낼 여력이 많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우리 당 지지층 가운데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적을까 우려되는 만큼 계속 투표 참여를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젊은 층이 ‘징검다리 황금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사전투표율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은 ‘6월 4일 투표를 못 한다면 당황하지 않고 사전투표를 딱, 끝!’ 등 유행어를 활용한 이모티콘을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1인당 최소 10명에게 전달하는 ‘사전투표 파도 타기’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도 이날 최대 승부처인 서울·경기 일대를 돌며 “사전투표에 꼭 참여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당은 안 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를 포함한 전 당원과 광역단체장 후보가 30일 사전투표를 함으로써 바람을 일으킨다는 복안이다. 또 세월호 심판론 기조를 계속 이어 가는 한편 30대 중반~40대 앵그리맘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최 본부장은 두 공동대표의 유세 동선에 대해 “유세 일정이 짜였다가도 국민이 불안해하는 사건사고가 터지면 일정을 바로 바꾼다”면서 “어디든 맨 먼저 달려가 국민을 지키겠다는 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50년 전에도 야당은 대통령과 동행 꺼렸다

    50년 시차를 둔 부녀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구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 데는 당시 한 청와대 비서관의 ‘일기’가 큰 도움이 됐다. ‘박정희대통령의 방독기’라는 부제가 붙은 ‘붕정(鵬程) 7만리’는 박상길 당시 공보비서관이 김포공항 출국 장면부터 귀국 보고까지를 기록한 책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 소감과 이동원 외무장관의 평가, 육영수 여사의 수필, 수행기자들의 기사, 자신의 관찰기와 현장 사진 등을 망라하고 있다. 10명의 수행 기자단 가운데 유일하게 실린 선우련 서울신문 기자의 수기도 눈에 띈다. 선우 기자는 당시 방독을 수행했던 조윤형 의원이 소속당인 민한당의 윤보선 대표최고위원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윤 위원이 “자네는 당을 대표하는 것도, 내가 보내서 가는 것도 아니라 순전히 개인 자격으로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는 사례를 실어, 50년 시차를 두고도 야당 의원이 대통령과의 동행을 꺼리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박 대통령은 “몸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고 선우 기자는 적었다. TV가 흔치 않던 시절, 우리 광부 및 간호사들과의 만남에서 터져 나온 ‘눈물바다’ 장면은 박상길 비서관의 일기에도 잘 묘사돼 있다. 짙은 오렌지색 두루마기를 입은 채 눈물을 참던 육영수 여사가 마침내 눈물을 터뜨린 것이나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연설 등이 담겨 있다. “장내의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돼 있다. 두 정상 간의 사적인 대화나 만남의 분위기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말 없기로 소문난 에르하르트 총리는 만찬회장에서 모든 일행에게 독일 가곡 ‘보리수’의 합창을 제안해 독일 관리들이 먼저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뤼브케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독일 국민의 근면성을 칭찬했더니 “이제 좀 살기가 좋아지니 배가 불러서 20년 전의 고생하던 일을 잊어 가는 것이 걱정”이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교포들에게 국산 ‘파고다 담배’를 선물했다. 베를린(독일)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朴대통령 26일 訪獨…감회 젖은 남해 독일마을

    朴대통령 26일 訪獨…감회 젖은 남해 독일마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 50년 전 외화를 벌기 위해 나섰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 눈물을 훔쳤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방문한 이래 대통령이 된 딸은 그곳에서 28일 백발이 된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난다. 이 소식을 접한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 주민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25일 독일마을에서 기자가 만난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주민들은 한결같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1966년 25세의 나이로 독일에 가 25년 동안 간호사로 일했던 이문자(70)씨는 “50년 전 아버지 대통령이 일반 여객기를 타고 차관을 얻기 위해 방문했던 나라를 이제 딸이 대통령이 돼 당당하게 국빈으로 방문한다는 사실이 뿌듯하다”면서 “가난한 시절에 외화를 벌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회상했다. 독일마을을 방문한 관광객 박모(54·여)씨는 “가난하고 일할 곳 없었던 어려운 시절에 젊은이들이 광부나 간호사로 머나먼 독일까지 날아가 외화를 벌었고 그 돈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들의 노고에 가슴이 뭉클해진다”면서 “노후에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교포들에 대해 정부가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호사 출신 주민 이원자(65)씨는 “독일에서 은퇴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면서 “은퇴한 뒤 독일에 살고 있는 광부나 간호사 출신 교포들은 한국에 들어와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광부 출신 남편과 함께 40년간 독일에서 살다 2006년 한국에 돌아와 남해 독일마을에 정착한 이문자씨는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독일은 제2의 고향”이라며 “이번 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한국과 독일이 돈독한 관계를 계속 이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용어클릭] ■독일마을 2001년 경남 남해군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돼 살다가 은퇴한 한국 교포들을 위해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독일풍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1960~197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갔던 광부와 간호사 출신 60~80대 주민 18가구 2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 [6·4 지방선거 누가 뛰나] 충남 기초자치단체장

    [6·4 지방선거 누가 뛰나] 충남 기초자치단체장

    충남은 15명의 현직 시장·군수 가운데 3분의1인 5명이 이번 6·4 지방선거에 나오지 않는다. 성무용 천안시장, 나소열 서천군수, 진태구 태안군수는 3선을 모두 채웠다. 이준원 공주시장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석화 청양군수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청양군수는 옥중 출마할 수도 있지만 망신만 당하고 질 가능성이 높아 그럴 전망은 없어 보인다. 이른바 ‘무주공산’인 곳이 적잖아 많은 후보가 당 공천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공천 경쟁은 새누리당이 뜨겁다. 15개 시·군에서 공천을 노리는 후보가 70여명에 이른다. 반면 민주당적으로 나설 후보들은 민주당이 최근 새정치연합과 통합 신당 창당에 합의하면서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기존 민주당 단체장들도 무소속으로 나와야 할 판이어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전망이다. 게다가 무공천으로 정리되지 않은 당원들이 너도나도 출마해 난립할 경우 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후보가 대거 당선될 우려도 있다고 민주당 충남도당 관계자들이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충남 지역은 당 인기에서도 전국 상황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이 강세다. 지역당이었던 자유선진당과 합당한 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청도라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합쳐지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도가 높아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충남은 그동안 자유민주연합 등 뚜렷한 지역 정당이 없으면 특정 정당에 표를 잘 몰아주지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군수 중 7명이 지역을 토대로 한 자유선진당 소속이었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과 민주당 후보는 각각 4명과 3명으로 엇비슷했다. 그래서 야권의 무공천 합의가 이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천안시장 후보는 현직이 나오지 못해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1차관이 새누리당 공천을 놓고 최민기 시의회 의장과 경쟁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이 경력은 화려하나 조직 등은 최 의장이 탄탄하다. 민주당의 지지를 받기 위해 공을 들이던 이규희 멋진천안만들기 대표 등 4~5명은 당의 무공천 방침에 따라 자율적으로 단일화를 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공주시장 후보의 난립은 더 심하다. 15명 안팎이 거론된다. 예비 후보 중 7명이 새누리당으로 등록해 절대적이다. 고광철 시의회 의장, 오시덕 전 국회의원 등이다. 김정섭 전 청와대 부대변인 등이 민주당 성향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군 본부가 있는 군사 도시 계룡시는 이기원 현 시장과 최홍묵 전 시장이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새누리당, 최 전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다. 보령시는 이시우 시장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뚜렷하게 우세를 보이는 정당 후보는 없다. 이준우 충남도의회 의장과 김동일 전 충남도의원 등이 새누리당 공천을 노린다. 지난 총선에서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에게 진 엄승용 전 문화재청 정책국장도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산시는 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의 고향으로 같은 당 황명선 시장이 아성을 구축한 가운데 송덕빈, 송영철 두 전현직 충남도의회 부의장과 백성현 새누리당 중앙당 수석부대변인 등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신흥 철강 도시로 부상한 당진시는 이철환 시장에 맞서 이종현 충남도의원 등이 새누리당 공천 싸움에 나선다. 금산군은 새누리당 박동철 군수와 박범인 전 충남도 농정국장의 대결이 기대된다. 박 전 국장의 출마에는 안 지사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김종민 전 충남도 정무부지사가 지난 총선에서 이인제 의원에게 패한 것은 금산 지역 열세 탓으로 다음 총선 승리를 겨냥한 포석이란 설이 나돈다. 부여군도 민주당 후보로 박정현 전 충남도 정무부지사가 나설 예정이었고, 황 논산시장과 3선 제한에 걸린 나 서천군수 모두 민주당이어서 이번에 두 곳과 함께 금산·부여군까지 이기면서 충남 남부의 ‘민주당 벨트’를 노렸지만 ‘무공천’ 여파로 무산됐다. 예산군은 충남 자치단체장 중 최고령인 최승우 군수가 3선 도전에 나선다. 육사를 나와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지냈다. 예산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선산이 있어 장기간 여당이 절대 강세를 보여 왔다. 현직 군수가 못 나오는 태안군은 가세로 전 서산경찰서장, 강철민 충남도의원, 한상기 전 충남도 자치행정국장 등이 새누리당 공천을 놓고 한창 물밑 작업 중이다. 최근까지 태안부군수로 있다가 사퇴한 이수연 후보는 아직 정당을 못 정하고 있다. 청양군은 민주당 소속의 김명숙 군의원이 앞서 나가는 가운데 김의환 전 청양군 기획감사실장 등이 새누리당 공천을 노린다. 보수적인 곳이지만 전임에 이어 후임 군수까지 구속되자 “이번에는 한번 바꿔 보자”는 분위기도 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 최고의 서울 지하철/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은 철도의 나라 영국에서 등장했다. 찰스 피어슨이라는 사람이 두더지 구멍에서 힌트를 얻어 착안했다고 한다. 도로가 좁았던 런던의 교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지하철 아이디어를 갖고 런던시청을 찾아갔던 피어슨은 처음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10년 만에 런던 시의회는 피어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1863년 1월 10일 팔링턴 스트리트와 비숍스 로드의 패딩턴을 잇는 6.6㎞ 구간에 지하철이 개통됐다. 런던의 지하철은 둥근 관 형태로 생겨서 지금도 튜브(tube)로 불린다. 터널도 둥글고 객차도 둥글다. 당시 지하철의 동력은 전기가 아니라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이었다. 당연히 시커먼 매연이 나왔는데 연기를 빼내는 통풍구를 두었지만, 승객들의 몸과 옷에 그을음이 묻을 수밖에 없었다. 전기로 움직이는 지하철로 바뀐 것은 1890년이었다.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건설안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1966년이다. 4개 노선이었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그 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임 말기인 1970년 2월 초 지하전철 계획안이 수립되고 서울시 지하철 건설본부가 발족해 3년 4개월의 공사 끝에 1974년 8월 15일 역사적인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열렸다. 수도권 전철 98.4㎞도 동시 개통됐다. 그러나 기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막상 개통식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고 식장은 도리어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 행사 바로 직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했기 때문이었다. 축하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그러나 지하철 건설 공사는 착착 진행돼 1984년 5월 2호선 순환선 개통, 1985년 10월 3, 4호선 완전 개통으로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서울은 출발이 늦었지만 짧은 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지하철을 건설해 왔다. 한때 서울의 지하철 총 길이는 세계 3~4위권이었지만 중국 도시들이 더 빠른 속도로 지하철을 건설해 2012년 기준으로 7위권이라고 한다. 베이징, 상하이, 런던이 1~3위다. 그러나 미국의 한 전문잡지가 세계 도시의 지하철 시스템 순위를 발표했는데 서울이 1위를 차지했다. ‘깨끗하고 평온한데다 이용하기도 놀라울 만큼 쉽다. 선로 가장자리에 유리벽이 설치돼 있어 미래의 시설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서울 지하철 1~4호선의 누적 이용 승객이 26일 400억명을 돌파한다. 서울 지하철 9개 노선의 총 이용객은 534억명에 이른다. 개통 40년 만의 대기록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靑, 엿새 만에 민심수습 ‘결단’… 李 내정자 전문성 논란 일 듯

    박근혜 정부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 엿새 만인 12일 4선의 이주영(63) 새누리당 의원을 신임 장관에 내정하며 이례적으로 ‘빠른 결단’을 내렸다. 우선 전남 여수 기름 유출 사고와 이와 관련한 윤 전 장관의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는 발언 등으로 상처를 입은 민심을 조속히 다독여야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 현직 중진 의원을 신임 장관에 내정한 것은 “윤 전 장관이 해임된 이유가 정무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 장관이 사태를 수습하고 외부의 비판을 막아내기에 제격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는 관측이다. 그의 고향인 경남 마산(현 창원)이 항구도시라는 점도 그가 해수부 장관으로 발탁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의원도 자신의 향후 정치 행보에 있어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대체로 공직자, 교수 출신의 ‘전문가’로 조각(組閣)하는 것을 선호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그런가 하면 판사 출신인 이 의원이 해양수산 분야와 관련한 국회 상임위 경력이 전혀 없어 향후 해수부 장관으로서 ‘자질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의원은 이날 “여수 앞바다 유류 유출 사고 수습이 우선 과제이고 해수부의 흔들린 위상을 다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빨리 업무 파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허영(61)씨는 박 대통령의 모친 고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의 총탄에 맞은 뒤 급히 옮겨졌던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인연이 있다. 허씨는 “당시 육 여사가 직접 손바느질로 듬성듬성 기운 한복 속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을 보고 감동받은 이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경남 마산(현 창원)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부산지법 부장판사 ▲경남 정무부지사 ▲한나라당 및 새누리당 16∼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대선캠프 대선기획단장·특보단장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장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3500곡 작사… 전설의 작사가 정두수

    [김문이 만난사람] 3500곡 작사… 전설의 작사가 정두수

    1961년 어느 봄날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서울 서대문에 살던 그는 걸어서 남대문 직장까지 출퇴근했다. 하여 덕수궁 돌담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어다녔다. 당시 돌담길은 우마차도 안 다니던 한적한 산책로였다. 그러나 주말이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를 걸었던 연인들은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다’는 속설도 생겨났다. 대학을 나오면 대체로 남자는 군대를 가고 여자는 시집을 가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다. ‘덕수궁 돌담길을 가지 마라, 징크스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약간 취기에 젖은 채 늦은 밤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제대복을 입은 한 청년이 돌담길에 기대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무슨 사연일까. 그는 집에 와서 펜을 들고 써내려 갔다.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이 있기에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밤에~’ 그로부터 2년 후였다. 부산문화방송 전속 가수로 있던 고등학교 동창생이 시 한 편 달라기에 ‘덕수궁 돌담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건네줬다. 어느 날 정두수 작사, 한산도 작곡, 진송남 노래로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게다가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서정가요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제1회 국제신보사 제정 작사상을 비롯해 문화공보부와 전국예술인총연합회 제정 작사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마포종점’,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마음 약해서’ 등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한국 가요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배호, 문주란, 최희준, 하춘화, 주현미, 조용필, 태진아, 설운도, 조항조 등 명가수들과 함께하며 우리나라 대중가요사를 썼다. 그가 작사한 노래만 해도 무려 3500곡이 넘는다. 시대를 초월해 항상 가요 현장에서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이라는 명콤비는 말 그대로 ‘가요산맥’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노래 시(詩)들은 대중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을 받았고 각종 시상식에서 390여 차례 넘는 수상 기록을 남겼다. 고향 하동 등 전국 13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6일 우리나라 가요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작사가 정두수(77)씨를 경기 광주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시인 정공채의 동생이다. 오는 4월 말 고향에 정 시인과 나란히 시문학관이 생긴다. 감개가 무량할 터. 환하게 웃으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동안 작사도 작사지만 시를 쓴 것도 많아요. 서사집이자 장시집인 ‘백두대간’도 있고 ‘사랑으로 꽃핀 노래’ 1, 2권도 있어요. 형님은 ‘정공채 문학관’, 저는 ‘정두수 시문학관’이 생기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정두수 노래비도 그 옆에 있지요.” 정씨는 ‘알기 쉬운 작사법’, ‘한국가요 걸작선집 해설’, ‘노래 따라 삼천리’ 등 책을 여러 권 썼다. 시집은 4권이다. 다 함께 전시된다. 잠시 회상을 한다. 담배 한 대를 더 입에 문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대표곡을 굳이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요.”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등 많지요.” 시곗바늘을 돌린다. 1965년 봄이다. 작곡가 박춘석씨와 충무로에서 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만났다. 석간신문을 펼치다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름 아닌 ‘흑산도 어린이들과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흑산도 어린이들의 꿈, 이뤄지다! 영부인 도움으로 해군함정에 실려와 서울 구경도 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학용품을 받다’이다.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거센 풍랑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육 여사가 나서서 소원을 들어줬다는 미담 기사였다. 정씨는 박씨에게 “이번 이미자 노래는 흑산도로 합시다. 어린이 대신 아가씨로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이 조선 정조 때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었다는 내용과 당시 전남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도 바다를 바라보며 흑산도의 형을 간절하게 그리워했다는 내용 등을 귀띔했다. 박씨도 ‘좋다’고 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때부터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라는 셋을 하나로 묶는 고정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그리운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이 연이어 탄생한 것이다. 이번에는 ‘가슴 아프게’를 뒤적인다. 1966년 어느 봄날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비를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젊은 여주인이 혼자 라디오 앞에 앉아 열심히 연속극을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술집에서 뛰쳐나왔다. 소년 시절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보낸 시절이 떠올랐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저절로 ‘무엇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바다와 나 사이를 짓누르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써내려 갔다. 19세의 신예 남진이 혜성같이 등장했고 국내는 물론 일본 열도까지 뜨겁게 달군 한류 1호 ‘망향의 노래’로 빅히트했다. “노래마다 대부분 사연이 조금씩 있어요. ‘마포종점’은 마지막 전차에서 이별하는 것이고 나훈아가 불러 크게 히트시킨 ‘물레방아 도는데’는 어린 시절 헤어진 삼촌과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것이지요. 1972년에 써서 문주란이 부른 ‘공항의 이별’은 서독으로 가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김포공항에서 가족들과 이별하는 내용을 다룬 것입니다. 이미자와 남진한테 약 500곡씩 써준 것 같네요.”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물레방아 도는데’로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느냐고 물었더니 “고향 하동을 노래했고 ‘소식도 없는 주인공’은 바로 일제강점기에 전쟁터로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온 삼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한학자인 조부, 시인인 형, 그리고 하동포구라는 지리적 배경이 한몫한다. 특히 어릴 때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해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동래고 2학년 때 진주 개천예술제 시부문에 참가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 무렵 고향이 진주인 가수 남인수씨를 만나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를 써 주기도 했다. 또한 ‘남인수 모창’을 그럴듯하게 했다.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란 제목으로 당선했다. 이듬해 KBS의 건전가요 가사 공모에 ‘즐거운 여름’으로 최우수상에 뽑혔다. 작사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즐거운 여름’은 원래 현인씨가 불렀으나 나중에 서수남·하청일씨가 불러 히트시켰다. “시인이 되려면 신춘문예나 현대문학 등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야 하는데 당시 국내에는 공식적인 작사가 등용문이 없었어요. KBS 공모전에 당선하니 모두 작사가로 인정해 주더군요. 상금도 많아서 전세금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러다가 1963년 MBC 전속 가수였던 양병철씨가 대중가요 전문 작사가의 길을 가라고 권유했어요. 그래서 미리 써둔 ‘덕수궁 돌담길’을 주었지요. 한산도씨가 작곡을 하고 진송남이 불러 히트시키면서 지구레코드사 소속 전속 작사가가 된 것입니다.” 작사가, 작곡가, 가수 중에 누가 영향력이 클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노래 내용이 있어야 작곡을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냐고 지체 없이 반문한다. 역사성과 아픔이 적힌 시를 보고 곡을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사는 아버지이고 작곡은 어머니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와 작사의 한계에 대해 물었더니 “둘 다 어렵다. 요즘도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최근에 작사한 것을 잠시 보여 준다. ‘비 오는 날은 가수 배호가 어떨는지요/ 그의 노래는 비 오는 날 더 흐느끼기 때문이다/ 결박당한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일반인들은 (작사가를) 그저 유행가 가사나 적는 사람으로 여길지 몰라도 시대의 정서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시인은 작사가를 한 수 아래로 보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유행가 노래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면 아마 도망갈걸요. 가수의 성향과 음색, 작곡자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거든요. 조용필, 이미자가 생명력이 긴 것도 바로 옛 가요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노래하기 때문이지요.”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1만여명 되는 것으로 전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저작권료는 얼마나 되느냐고 하자 “좀 받고 있지만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왜냐하면 집사람 주머니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웃는다. 부인은 경희대 성악과 출신이고 슬하의 딸 셋 중 둘째는 성악을 하고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작사가 정두수는… 1937년 경남 하동 출생이다. 부산 동래고와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나왔다.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가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선했다. 1962년 KBS 건전가요 공모에서는 ‘즐거운 여름’이 당선됐다. 1963년 가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흑산도 아가씨’의 이미자, ‘가슴 아프게’의 남진, ‘물레방아 도는데’의 나훈아, ‘공항의 이별’의 문주란, ‘그 사람 바보야’의 정훈희를 비롯해 조용필, 하춘화, 진송남, 은방울 자매, 패티김, 들고양이, 최희준, 김부자, 설운도 등 인기가수 100여명이 그의 노래를 불렀으며 지금까지 작사한 곡은 3500여곡에 이른다. 1995년 장시 ‘지리산’ ‘섬진강’ ‘백두대간’ ‘하동포구 이야기’ 등을 발표했다. 그의 노래비가 전국 13곳에 세워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알기 쉬운 작사법’ ‘시로 쓴 사랑의 노래’ 등이 있다.
  • 시진핑 “연내 한국 방문 희망”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연내 한국 방문을 희망했다고 청와대가 2일 밝혔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보낸 친필 서명 생일 축하 서한이 지난달 29일 전달됐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시 주석은 서한에서 “박 대통령의 훌륭한 지도 아래 한국 국민이 점차 ‘국민행복시대’로 들어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올해 양측이 모두 편한 시간에 귀국을 방문하기를 기대한다”고 연내 방한 의사를 밝혔다. 시 주석은 “아울러 올해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박 대통령 참석을 환영하며 항상 건강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설 연휴 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성묘를 다녀온 것 외에는 특별한 일정 없이 ‘조용하게’ 설 연휴를 보냈으며, 62번째 생일을 맞은 이날엔 별다른 자축행사 없이 관저로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9명을 불러 오찬을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설 연휴 기간 둘째 조카를 얻었다. 이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설인 지난달 31일 둘째 아들을 출산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대통령께서 전화통화를 하고 축하 난을 보냈다. 연휴 기간 병원이 복잡할 것 같아 직접 가지는 않았고, (산모의) 몸이 풀리고 나서 찾아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에게는 2005년 박 회장과 서 변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첫 조카 세현(9)군에 이어 9년 만의 둘째 조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조카를 위한 자장가를 연습하기도 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때는 자신의 신상 명세에 건강과 함께 세현군을 ‘보물 1호’로 꼽기도 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6·4 지방선거 내일 스타트] 여야 취약지역 공략 포인트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취약 지역에서 승부수를 준비 중이다. 새누리당은 충청·강원 등 중원(中原)에서의 열세 만회에 공을 들이고 있고, 민주당은 ‘동부권 벨트’의 중심지인 영남권에서 바람을 일으켜 안철수 신당의 ‘새정치’ 바람에 맞선다는 복안이다. 안풍(安風)의 진원지로 유력한 부산 민심 잡기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새누리당이 중원 싸움을 걱정하는 이유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원의 최문순, 충남의 안희정, 충북의 이시종 지사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보’ 이슈에 민감한 강원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비한 지역개발 예산의 지원 폭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이라는 장점을 살리면 지지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12년 19대 총선에서 강원지역 9개 의석을 모두 새누리당이 싹쓸이했기 때문에 당 지역 조직을 가동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도 내렸다. 충남과 충북에서는 전통적으로 ‘보수표’가 많은 지역임을 감안해 지역민들의 ‘보수 본색’을 자극하는 전략을 내세울 계획이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 대한 향수와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라는 점도 새누리당에는 유리한 요소다. 민주당은 ‘안철수 바람’에 맞서기 위해 대구시장 선거에 총력전을 펼칠 기세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대 득표율을 기록한 김부겸 전 의원의 돌풍에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대구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판단이다. 다만 민주당은 안 의원 측과의 연대를 필수 조건으로 보고 있다. 부산에서는 김영춘 전 의원과 이해성 중·동구 지역위원장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10%대 미만의 낮은 지지율이 고민거리지만 문재인 의원 등 당내 유력 인사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안철수 바람’에 맞선다는 복안이다. 안철수 신당 역시 부산 민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안 의원의 고향인 부산에서의 ‘새정치’ 바람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여론조사 선두권에 있는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거취에 따라 부산 민심이 달라진다는 판단 아래 막판까지 영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부고] ‘5·16 주도’ 김재춘 前 중앙정보부장

    [부고] ‘5·16 주도’ 김재춘 前 중앙정보부장

    5·16 군사 쿠데타 주도 세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2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경기 김포시에서 출생한 김 전 중앙정보부장은 1948년 육사 5기로 임관해 1961년 5·16 당시 6관구 사령부 참모장을 지내며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와 쿠데타를 주도했다. 고인은 현 국군기무사의 전신인 육군방첩부대장 겸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을 지냈고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고인은 육사 5기의 핵심인물로 1963년 2월 3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됐지만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육사 8기인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정국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무임소장관으로 옮겼다. 이후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쳐 8·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말년에는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한·중예술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최근까지 5·16 관련 인사들의 모임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았고 보국훈장 통일장, 을지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고인은 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을 성사시킨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희방 여사와 아들 태호(충북대 교수), 정호(영국 거주), 용호(연세대 교수)씨, 딸 혜숙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은 5일 오전 7시. (02)2227-7550.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倒行逆施’

    교수들이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 6∼15일 전국의 교수 62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2.8%(204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를 선택했다고 22일 밝혔다. 도행역시는 중국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인 ‘사기’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의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가 초평왕에게 살해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됐다. 이후 세력을 키워 초나라를 공격해 승리한 뒤, 원수를 갚고자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채찍으로 300차례나 내리쳤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질책하는 편지를 보내자 오자서가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어서(吾日暮道遠)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故倒行而逆施之)”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를 고집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며 추천 이유를 말했다. 도행역시에 이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란 뜻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 22.5%(140명)의 지지를 얻어 2위에 올랐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전공과 세대·지역을 안배해 선정된 추천위원단이 사자성어 43개를 우선 추천한 뒤, 교수신문의 필진과 명예교수가 5개를 추려내 전국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해 선정했다. 앞서 교수신문은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한 바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 무슨 뜻?…2·3위인 ‘와각지쟁’·‘이가난진’도 화제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 무슨 뜻?…2·3위인 ‘와각지쟁’·‘이가난진’도 화제

    교수들이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 6~15일 전국의 교수 62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2.8%(204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를 선택했다고 22일 밝혔다. ‘도행역시’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의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가 초평왕에 살해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됐다. 이후 세력을 키워 초나라를 공격해 승리한 뒤 원수를 갚고자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채찍으로 300차례 내리쳤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편지를 보내 오자서를 질책했다. 이에 오자서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어서(吾日暮道遠)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故倒行而逆施之)”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도행역시’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를 고집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육영수 교수는 23일에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동료 교수에게 추천받았다”면서 “올해가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권 하에서 한 시대의 역사를 거스른 일들이 억지로 고집되고 구겨졌던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위로 추천된 사자성어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었다. ‘와각지쟁’은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라는 뜻으로 사소한 일이나 불필요한 일을 가지고 아무 실익 없이 다툰다는 의미다. ‘와각지쟁’은 140명(22.5%)의 지지를 얻었다. 3위에는 19.4%(121명)의 지지를 얻은 ‘이가난진’(以假亂眞)이 올랐다. ‘이가난진’은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육영수 교수는 2, 3위에 각각 오른 ‘와각지쟁’과 ‘이가난진’에 대해 “양비론에 해당하는 사자성어라고 생각한다”면서 “양비론은 정치적 무관심을 낳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대사 길목마다 인간방패 役… 날마다 두렵다, 그러나 ‘나는 없다’

    현대사 길목마다 인간방패 役… 날마다 두렵다, 그러나 ‘나는 없다’

    19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태동한 대통령 경호실이 17일로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의 조직 개편에 따라 경호실은 5년 만에 장관급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복귀했다. 경호실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비롯해 박정희 대통령 서거, 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길목에서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때로는 국가 원수의 살아 있는 ‘인간 방패’로 존재해 왔다. ‘VIP’(대통령)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다는 대통령 경호관,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최근 군 특수부대 훈련장에서 진행된 ‘모형동체 수중 탈출’ 훈련. 헬기 모형을 본뜬 소형 컨테이너가 공중에서 수십 미터 아래의 풀장으로 곤두박질친다. 컨테이너가 수중에서 몇 바퀴를 뱅글뱅글 돌 정도로 충격파가 셌다. 잠시 후 컨테이너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비만 찬 사람들이 나온다. 헬기 추락 사고를 재현한 이 훈련은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 의례 중 하나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훈련에 임하는 경호관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다. “사실 매일 두렵죠. 그러니까 날마다 훈련합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팀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능을 억누르는 노력을 하죠.” 19년 경력의 김민수(44·가명) 경호관은 “매일 하는 훈련이 죽는 연습”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을 위해 몸을 먼저 움직이고, 때로는 죽을 수도 있는 게 숙명이라는 뜻이다. 훈련은 신임 경호관뿐 아니라 10년 차, 15년 차, 20년 차 베테랑 경호관에게도 필수다. 연차가 쌓이면서 얻는 경륜도 있지만, 체력은 경호의 기본으로 꼽힌다. 김 경호관은 “아직도 경호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많은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니 경호가 이것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다만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청와대 연무관에서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 20년 경력의 강성일(47·가명) 경호관은 무도 20단의 실력자다. 태권도 7단에 특공무술 7단, 합기도 4단, 유도 2단인 그도 체력 관리만큼은 철저하다. 매일 체력단련장인 연무관에서 땀을 흘린다. 강 경호관은 “현장에서 항상 총을 차는 경호관인 데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어서 주 1~2회 사격 훈련도 빼먹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 원수를 경호하는 일이다 보니 신임 경호관을 뽑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1차부터 3차 시험까지 이어지는 선발 과정에서 필기시험과 인성검사, 체력검정, 무도검정, 면접과 논술 등 다양한 평가를 거친다. 선발 이후에도 혹독한 훈련 과정이 남아 있다. 신임 경호관들은 36주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경호실의 정예 요원으로 거듭난다. 이들은 1박2일 동안 100㎏에 육박하는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밤샘 행군을 하는가 하면, 장비 없이 바다 수영을 하기도 한다. 군 특수부대와 경찰, 국가정보원, 소방방재청 등에서 외부 교육도 받는다. 이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사격과 무도, 체력 증진, 수영 등으로 이뤄진 내부 교육이다. 지난해 6월 들어와 거친 훈련을 받았던 15기 막내 경호관들은 “공포감 때문에 쉽지 않다는 공수 훈련이 가장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엔 해외 순방과 외빈 경호를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교육도 필수 항목이 됐다. 대테러 훈련이나 진압, 전술 등의 경호 전략을 공부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또 유기적인 팀워크로 경호가 이뤄지다 보니 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주요 훈련 가운데 하나다. 한 신임 경호관은 “국민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호관에게 익숙하겠지만, 사실 극도의 긴장감과 자기 관리가 필요한 직업”이라며 “(우리가) 자기와의 혹독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투철한 애국심과 소명 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20·끝) 강남(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20·끝) 강남(하)

    강 남은 탄생 비화보다 조성 과정이 더 드라마틱하다. 택지 마련과 경부고속도로 편입부지의 무상취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닻을 올렸던 강남개발은 정치자금 조성과 상공부 단지 제공이라는 ‘검은 거래’에 의해 변질됐다. 강북 억제라는 명분도 결과적으로 남북긴장 조성이라는 안보논리로 위장한 측면이 강하다. 강남은 현대 한국이 가진 모든 병리현상의 총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특혜와 듣도 보도 못한 정책 지원이 탄생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개발촉진지구 지정으로 강남에 건물을 지으면 각종 세금이 면제됐다. 지하철 2호선이 강남 연결을 위해 직선노선에서 순환선으로 탈바꿈했고, 아파트 이외에는 지을 수 없도록 멀쩡한 땅을 규제하는 정책도 등장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강제로 옮겨졌고, 명문 고교의 강남 이전으로 말미암은 8학군의 형성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서울의 확장이라는 시대적 산물이었지만 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김으로써 강남개발의 선의는 빛을 잃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청와대와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돈을 내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하수인으로 토지를 매점하고, 서울시장이 땅값 빨리 올리라며 깃발을 흔들고, 많은 시민이 동참했으니 생각해 보면 온 국민의 분통터지는 웃지 못할 만화요, 연극이었다. 연극이라면 그것을 희극으로 볼 것인가 비극으로 볼 것인가”라고 말했다. 군사정권은 정치자금 조성과 상공부 단지 조성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윤진우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 1월 초 김현옥 시장의 지시로 박종규 경호실장을 만났다. 박종규가 누구인가. 김종필 국무총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3인방이었다. “강남지역에서 가장 장래성이 있고 투자가치가 있는 곳이 어딘가”라는 박종규의 질문에 “탄천을 경계로 그 서부지역 일대(오늘의 강남구)”라고 답했다. “그러면 그쪽 땅을 사 모으지”라는 한마디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5억 5000만원을 받아서 땅을 사 모으고 땅값이 어느 정도 오르면 되팔았다. 박종규·김현옥이 이듬해 4월에 치러질 제7대 대통령선거(박정희 대 김대중)에 대비해 강남 땅을 투기대상으로 삼아 정치자금 마련 노름판을 벌인 것이다. 윤진우 도시계획과장은 그 뒤 1년 동안 25만평을 확보, 매각해 1971년 5월쯤 20억원을 상납했다고 한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5000억원이 넘는 거액이다. 1963년 평당 300원 하던 땅값이 1970년대 초반 3만원으로 껑충 뛰는 과정에 정권 실세가 개입한 것이다. 이것이 강남 부동산 신화의 출발점이며 이후 강남은 평당 3000만원 시대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김현옥은 또 비슷한 시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시절 비서관을 지낸 이낙선 상공부장관의 민원을 해결하라고 윤진우에게 지시했다. 강남에 상공부청사와 산하기관이 들어갈 부지 10만평을 물색하라는 것이었다. 오늘의 삼성동 코엑스부지가 이때 등장한다. 이 부지는 봉은사 땅이었으며 처분권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쥐고 있었다. 마침 정부가 팔려고 내놓은 남산 중앙공무원교육원을 사들여 동국대 교육원으로 쓰려던 조계종 측과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금싸라기 땅 10만평은 평당 5300원씩 모두 5억 3000만원에 상공부 수중에 넘어갔다. 상공부 단지는 조성되지 못했다. 정부의 1976년 수도권 인구 재배치 계획에 따라 정부과천청사에 입주했다. 대신 무역센터와 아셈타워, 공항터미널, 한국전력 등이 들어서게 됐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으로 김현옥이 물러나면서 설거지는 후임 양택식 시장이 맡았다. 윤진우는 도시계획국장으로 승진해 잠깐 좋은 시절을 누렸으나 1974년 공무원 숙정자 명단에 포함돼 희생양이 됐다. 강남 부동산가에 파다했던 “서울시장 도둑놈, 도시계획국장 도둑놈”이라는 소문을 피해갈 수 없었던 탓이다. 윤진우가 맡았던 악역은 이 정도에 그쳤지만 하수인은 과연 그뿐이었을까. 부동산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1968년 처음 등장한 이래 몇 년에 한 번꼴로 투기억제책이 발표됐지만 우성, 한신공영, 한양, 삼호 같은 강남 부동산재벌의 등장과 복부인의 횡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남에 부동산이라는 DNA가 깃든 것이다. 박 정희 대통령은 1975년 3월 4일 서울시를 연두 순시하면서 “영동·잠실지구를 개발하여 도시시설을 완비하고 주택을 많이 들어서게 하는 것은 서울시의 인구를 증가시키는 정책밖에 안 된다. 강북에 있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갈 때는 주택분양이나 토지불하 때 우선권을 준다든지 해서 서울시의 인구증가 없이 강북의 조밀 인구를 강남에 소산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적인 방안이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북 인구의 강남 분산정책의 신호탄이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물러난 양택식으로부터 강남 신시가지 조성 임무를 물려받은 구자춘 시장은 고속버스터미널의 강남 이전,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 건설, 강남구의 신설을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받았다. 서울을 사대문 도심과 강남·잠실, 여의도·영등포 중심의 다핵(多核)도시로 개발한다는 이른바 ‘3핵도시론’이었다. 김현옥(1966~1970)이 여의도 및 한강개발과 한남대교 건설로 강남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면, 양택식(~1974)은 택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들이는 초석을 놓았다. 방점은 구자춘(~1978)이 찍었다. 신천지 강남을 아파트공화국, 유흥가공화국, 부동산공화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2년 9개월 동안 서울과 강남의 얼개가 완성됐다. 군인 출신 김현옥·구자춘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일을 벌이고, 마무리했다면 관료 출신이던 양택식은 중간계투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뒤에는 독재자 박정희가 버티고 있었다. 서울 상공을 헬기를 타고 다니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지시했다. 싫건, 좋건 간에 강남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7년부터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 21년 동안 질풍노도처럼 불어닥친 변화의 한 중심에 있다. 개발의 합법성과 절차의 민주성을 따졌다면 지금의 강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은 한국적인 특성, 쉽게 끓고 쉽게 식는 ‘냄비 근성’과 ‘빨리빨리 문화’의 합작품이다. 이들 문화의 긍정적 요인을 활용해 벤처와 인터넷, 제2금융권의 요람이 되었다. 온갖 특혜와 정책적 지원이 뒤따랐다. 구시가지 대부분을 도심재개발지구로 지정해 건물의 신·증축과 개축을 금지했다.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의 신규시설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동·무교동 일대 술집과 다방, 카바레 등 유흥업소는 된서리를 맞았다. 규제가 없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강남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불야성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1974년 서울지역에 고교평준화가 시행되면서 경기고 등 명문학교들도 낡고 협소한 강북 교사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의 등장이 강남폭발의 비등점이었다. 사평리라고 불리던 침수지역 반포로 구자춘의 시선이 쏠렸다. 1977년 강북 여러 곳에 산재했던 터미널을 폐쇄했다. 잠수교와 남산3호터널을 뚫었지만 1981년 터미널이 완공될 때까지 강북 가는 길은 고생길이었다. 1976년 반포·청담·이수·압구정·도곡·잠실을 ‘아파트지구’로 지정했다. 지정된 지역에는 아파트 이외에는 짓지 못하게 했다. “터미널 주변을 아파트단지로 조성하라”라는 구자춘의 지시 한마디에 5만 가구의 아파트가 10년 만에 들어섰다. 터미널 주변이 순식간에 아파트 숲으로 덮였다. 지하철 2호선은 본래 1970년 지하철 1호선 노선결정 때 교통량 조사와 투자비 회수계획에 따라 왕십리~을지로~마포~여의도~영등포노선을 뚫기로 정해져 있었다. 3, 4, 5호선 노선도 대체로 정해진 터였다. 구자춘의 즉흥적인 을지로순환선 계획은 강남에 바치는 찬가였다. 포병 장교 출신답게 계획에도 없던 종합운동장~삼성~선릉~역삼~강남~교대역 노선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 성수~을지로, 사당~서울대입구~문래~을지로로 각각 연결하는 순환선이었다. 총연장 60㎞의 지하철 2호선은 1978년 착공해 6명의 서울시장이 3번의 기공식을 했고 5번의 개통식을 가진 끝에 1984년 완전 개통됐다. 2호선이 개통됐을 때 강북과 강남의 인구비는 54대46으로 균형을 맞추게 됐었다. 우 리에게 강남이란 무엇일까. 새서울도, 제2서울도, 남서울도, 영동도 아니다. 강남이 서울이다. 강북이 조선왕조의 도읍 한양이라면 강남은 우리 손으로 건설한 ‘진짜 서울’일는지 모른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강북에서 조선을 느끼고, 강남에서 현대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지 않는가. 불과 50년 전에 시작된 한강의 기적이 곧 강남신화이며, 코리안드림이었다. 18세기를 살았던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21세기 강남의 낮과 밤을 필설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국도 식민지도, 독재국가도 아닌 대한민국의 진정한 서울은 바로 강남이 아닐까. joo@seoul.co.kr ■지난 6개월 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서울을 지리 중심으로 살펴본 ‘서울 택리지’는 이번 20회로 맺습니다. 서울을 테마별로 집중조명하는 ‘서울택리지-테마기행’으로 2014년 신년에 찾아뵐 예정입니다.
  • 영어단어 더 쏙쏙 외워지는 소음이 있다고?

    영어단어 더 쏙쏙 외워지는 소음이 있다고?

    소리로 읽는 세상/배명진·김명숙 지음/김영사/320쪽/1만 3000원 삼라만상이 온통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하여 어떤 소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어떤 소리는 짜증 나게, 또 어떤 소리는 편안하거나 슬프거나 걱정스럽게 만든다. 사람이 태어날 때 가장 먼저 감응하는 것이 청각이다. 소리로 태어나 소리 속에 매 순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리를 공기처럼, 혹은 바람처럼 그 존재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 보내기 일쑤다. 소리박사로 유명한 배명진 교수는 신간 ‘소리로 읽는 세상’을 통해 소리가 단순히 들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고 소리의 가치를 경제, 범죄, 음악, 건강, 과학 분야에 적용해 유익한 정보까지 제공한다. 소리로 뇌에 환각을 일으키는 사이버 마약에서부터 건물 붕괴 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강아지 이야기, 소리로 증명해낸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의 진범, 기억력과 학습효과를 높이는 소음까지 소리의 특별하고도 놀라운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소리공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에서 출발하는 책은 실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예컨대 집중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대표적으로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갈대밭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뭇가지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즉 ‘백색소음’을 활용하면 된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와 그러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영어단어 암기 테스트를 실험했다. 그 결과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기억력이 35%나 향상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 양쪽 눈을 볼 수 없는 미국의 한 시각장애 소년이 입으로 소리를 발사해 사물을 인지하는 이야기, 다양한 과일이나 채소도 악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 등도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울러 소리가 삶에 미치는 영향, 소리를 정복한 사람들과 동물들의 특별한 소리,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소리, 온몸을 자극하는 소음의 세계, 그리고 앞으로 소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소리를 활용할 수 있는지 등 발전 방향과 대안을 두루 제시하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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