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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고양 원더스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하던 일 그만두게 하고 다시 야구에 끌어들였느냐’면서요. 한 가지를 간과한 게 있습니다. 그들이 원더스에서 야구를 못 했다면 평생 후회를 했을 거란 사실을요.”(영화 ‘파울볼’ 대사 중) 김성근 감독과 국내 첫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 ‘파울볼’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개봉 첫날인 지난 2일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다인 20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9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만 4905명이 관람해 이달 개봉한 영화 중 5위에 올랐다. ●해체된 고양원더스 출신 선수 33명 프로 진출 지난해 9월 11일 하송 단장이 “더는 야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흐느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해체된 원더스는 3년간 계속한 뜨거운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원더스의 후예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음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2011년 창단한 원더스는 이듬해부터 꾸준히 프로에 선수를 보냈다. 2012년 7월 LG에 입단한 이희성을 시작으로 총 33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현재 29명이 1군 벤치나 퓨처스(2군)리그, 육성군에서 뛰고 있다. 주전급으로 발돋움한 선수는 없지만, 끊어질 뻔한 야구 선수의 삶을 살며 하루하루 그라운드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희성은 안타깝게도 방출의 아픔을 겪었으나 프로 진출 ‘2호’ 내야수 김영관(LG)은 지난해까지 1군에서 총 21경기를 뛰었고, 올 시즌도 2군에서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9일까지 7경기에 나와 타율 .300(20타수 6안타)에 홈런 1개를 기록했고, 출루율은 .440에 달한다. 원더스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넥센 내야수 안태영을 꼽을 수 있다. 2012년 프로행에 성공한 안태영은 2013년 7월 27일 대구 삼성전에서 7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1군 데뷔전을 치렀는데, 7회 선두타자로 나와 우측 담장을 훌쩍 넘는 장외 홈런을 터뜨렸다. 원더스 출신 선수 첫 홈런.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를 바라보던 안태영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무명으로 얼룩진 그간 설움을 씻었다. 지난해에도 홈런 한 개를 친 안태영은 2년간 1군 53경기에 출전, 타율 .299(97타수 29안타)의 녹록지 않은 방망이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는 2군에 머무르고 있으나 염경엽 감독으로부터 다시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넥센 내야수 안태영, 2년간 1군 53경기 출전 2013년 5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NC에 입단한 투수 김용성은 현재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김건국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세울 건(建)’과 ‘판 국(局)’을 새 이름으로 골라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13년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조범현 감독의 지명을 받아 kt로 둥지를 옮긴 김건국은 아직 1군에 서지 못했다. 원더스에 가기 전인 2007년 두산에서 딱 한 경기 등판한 게 그의 유일한 1군 경험이다. 김건국이 8년간 오르지 못한 1군 마운드에 다시 서는 날이 올지 주목된다. ‘파울볼’에서 김 감독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이는 외야수 설재훈이다. 광주 진흥고 3학년 때 “야구는 내 길이 아니다”며 유니폼을 벗었지만 군 입대 후 다시 야구와 짝사랑을 했다. 제대 후 일본 독립구단 해치에 입단했고, 원더스 창단 멤버가 됐다. 원더스 소속일 때도 한 차례 야구를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갔으나, 아버지한테 혼이 난 뒤 김 감독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며 재입단했다. 함께한 동료들이 하나둘 프로팀의 부름을 받았지만 설재훈은 원더스가 해체될 때까지 둥지를 찾지 못했다. 김 감독이 “넌 어떻게 할 거야?”라며 진로를 묻자 “일본 독립구단을 알아보겠다”며 선수 생활 계속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SK가 육성선수로 영입하면서 설재훈도 꿈에 그리던 프로의 꿈을 이뤘다. 2~3월 대만에서 열린 2군 스프링캠프에서는 야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직 그가 가야 할 길은 더 남았다. 올 시즌 2군에서는 7경기에 나와 타율 .296(27타수 8안타)을 기록 중이다. ●한화 송주호, 김성근 감독 시즌 첫 승에 한 몫 송주호(한화)는 올 시즌 1군에서 뛰는 유일한 원더스 출신이다. 2013년 한화에 입단해 1군에서 45경기를 뛰었으나 1할대 타율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화 사령탑으로 새로 부임한 옛 스승 김 감독은 송주호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타석에 내세운 적은 많지 않았지만 대주자 등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인연이란 것은 있나 보다. 지난달 29일 넥센전에서 김 감독이 시즌 첫 승이자 1323일 만의 승장이 됐을 때 결승 득점을 올린 이가 송주호였다. 3-3으로 맞선 8회 2사 1·2루에서 2루 주자 김태균과 교체돼 들어간 송주호는 정범모의 안타 때 홈까지 파고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원더스 최고령 최향남(44)은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다. 1990년 연습생으로 해태에 입단해 10승 투수가 됐으나 메이저리그 꿈을 꾸며 두 차례 미국으로 건너갔다. 끝내 빅리그에 입성하지 못하자 일본 독립구단 도쿠시마에서 잠시 뛰었고, 지난해 김 감독의 부름으로 원더스에 갔다. 지난 3월에는 18살 어린 원더스 출신 황건주와 함께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다이빙 덕스’에 입단했다. ●‘최고령’ 최향남,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입단 다이빙 덕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연습 경기 중인 선수들의 사진을 여럿 올렸는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최향남도 있다. 등번호 3번을 단 그는 경기 종료 후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최향남이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글러브를 벗지 않는 것은 이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더스 후예들은 다시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렇게 구슬땀을 흘렸지만, 날마다 TV로 중계되는 KBO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2군에서 눈물겨운 빵을 먹고 마음 한편에는 언제 방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야구를 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원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도 후예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KBO, ‘경기력 저하’ 막기 위해 1군 엔트리 1명 증원

    인종차별 발언 등도 올해부터 제재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시즌 경기 수 증가로 인한 경기력 저하를 막기 위해 1군 엔트리를 1명 늘렸다. KBO는 13일 서울 시내 모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1군 선수 등록 규정을 현행 '26명 등록, 25명 출장'에서 '27명 등록, 25명 출장'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제10구단 KT 위즈가 합류하는 올시즌 프로야구는 팀당 경기수가 지난해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대폭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경기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이에 KBO는 1군 등록선수를 1명 늘려 경기력 저하를 예방할 방침이다 이날 이사회는 2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2군으로 떨어질 경우 연봉을 삭감하는 규정도 손질하기로 했다. 현재 규정은 고액 연봉 선수가 1군에서 제외되면 일수를 계산해 무조건 연봉의 50%를 삭감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훈련 또는 경기 중 다친 경우와 실력 저하 등 개인적인 귀책사유로 구분해 삭감하도록 시행 세칙을 만들 예정이다. 또 현재 '신고선수'로 명시하는 연습생들을 '육성선수'로 표기하기로 했으며 '육성선수'의 1군 등록 가능 일자를 현행 6월1일에서 5월1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상벌규정도 추가했다. KBO는 감독, 코치, 선수 및 구단 임직원과 심판들이 리그 또는 구단을 공개적으로 비방하거나 인종차별 발언 등에 대해서도 제재 규정을 만들기로 했다. 한편 올해 KBO 예산은 207억1천492만원으로 확정했다. 연합뉴스
  • 북쪽 샛별도 쏟아진다

    북한이 공들여 육성한 궁사들이 메이저 국제종합대회에 첫선을 보인다. 북한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양궁 한도인 남녀 각 4명의 선수를 파견하는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남자부에서는 리효성(21), 박용원(19), 전철(26), 김철(28)이, 여자부에서는 최성희(26), 강은주(19), 리은옥(26), 류은향(25)이 나선다. 지난 광저우 대회와 견줘 여자부 에이스 권은실(31)이 빠지고 강은주가 들어온 것이 눈에 띈다. 권은실은 광저우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북한 양궁 선수로는 2000년 이후 유일한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강은주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양궁연맹(WA) 1차 월드컵에서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른 신예다. 그는 같은 해 터키 안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각 39위와 77위에 머물러 예선 탈락했다. 하지만 올해 상하이 월드컵에서는 예선 6위로 16강에 오르는 등 권은실이 물러난 에이스 자리를 메웠다. 북한은 강은주의 활약을 앞세워 상하이 월드컵에서 여자 단체전 4위로 도약했다. 북한 남자부에도 지난해 국제무대에 등장한 리효성, 박용원 등 젊은 선수들이 포함됐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일본통신] ‘일본판 김선빈’ 우치무라의 무한도전

    [일본통신] ‘일본판 김선빈’ 우치무라의 무한도전

    김선빈(23. KIA 타이거즈)은 국내프로야구 최단신 선수다. 프로필에는 165cm로 등록됐고 실제로 봐도 야구 선수치곤 꽤 외소한 체격이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로 부터 2차 6순위로 지명을 받고 입단한 김선빈은 초반엔 김종국(은퇴)의 백업 2루수로 출전하며 경험을 쌓다 지금은 주전 유격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우 작은 신장으로 인해 프로행이 확실치 않았던 김선빈은 그러나, 주위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쌕쌕이 같은 주루 플레이와 수비, 그리고 밀어치기에 도가 텄다는 인상마저 들 정도로 공수주 3박자를 완벽하게 갖췄다. 야구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키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라고 불릴만 하다. 한국에 김선빈이 있다면 일본 프로야구엔 우치무라 켄스케(26.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있다. 우치무라는 김선빈보다 더 작은 163cm의 신장, 그리고 같은 내야수(주로 2루수)로 상당히 빠른 발을 보유한 선수다. 하지만 우치무라는 김선빈과 다르게 프로에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험난했다. 고교 졸업후 프로에 지명되지 못하고 사회인 야구팀인 JFE 서일본 팀에 입단했지만 그곳에서도 주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위치 타자로의 전향도 꿈꿨지만 이것마저 여의치 않았던 우치무라는 사회인 야구 3년차때 눈물을 흘리며 야구를 그만 두게 된다.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한 것이다. 이후 2년간 허송세월을 한 우치무라는 2007년 새로 출범한 독립리그인 BC리그(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이시카와 밀리온스타스에 테스트를 받고 입단, 유격수로 뛰며 주전 선수가 된다. 일본의 독립리그 가운데 하나인 BC리그는 2005년 생긴 시코쿠-큐슈 아일랜드 리그에 이어 두번째 리그로 처음엔 4팀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6개팀(나카타 알바렉스 베이스볼 클럽, 도야마 선더버스, 이시카와 밀리온스타스, 시나노 그랜드세로우스 로 시작, 이후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후쿠이 미라클 엘레펀츠가 합류)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은 이시카와 팀이다. 우치무라는 BC리그 첫해 팀의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타율 .291 도루 31개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오른다. 방망이는 모르겠지만 군계일학의 스피드를 지닌 발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던 것이다. BC리그 첫해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우치무라는 그해 말(2007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육성선수(한국의 신고선수 개념)로 뽑히게 된다. BC리그 출신 첫 프로야구 선수가 된것이다. 2008년 전반기때는 주로 2군에 머물렀던 우치무라는 그러나 후반기 들어 팀의 2루수 주전으로 나서는 경기들이 많아지면서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당시 감독이었던 노무라 카츠야에 의해 스위치 히터로의 변화를 다시 시도한 우치무라는 무엇보다 좌타석에서 번트를 대고 1루까지 살아 남는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입단 첫해 비록 47경기에 출전하는게 그쳤지만 타율 .289 도루 9개를 기록하며 눈 도장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9년 개막 경기부터 1군 엔트리에 들었던 우치무라의 목표는 50도루였다. 전년도 프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타율과 출루율만 어느정도 보장된다면 50도루는 너무나 쉬운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침체된 타격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고 결국 그해 타율 .162(출루율 .269)에 그쳤다. 도루는 불과 2개 뿐이었다. 절치부심한 우치무라는 2010년 비록 규정타석엔 미달됐지만 첫 3할 타율(.304)과 함께 10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내야수와 발 빠른 선수가 부족했던 라쿠텐 입장에선 우치무라의 성장세가 반가웠던 건 당연했다. 이듬해인 지난해 타율 .271와 함께 31도루를 기록했던 우치무라는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늘지 않은 선구안 때문에 반쪽짜리 선수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타율도 타율이지만 특히 엄청나게 낮은 그의 출루율은 루상에서 상대 투수를 흔들어 놓을거란 기대에 훨씬 못미쳤기 때문이다. 결국 우치무라는 올 시즌 도중 요코하마 DaNA 베이스타스의 후지타 카지야와 트레이드 돼 요코하마 유니폼을 입었다. 50m를 5초대 중반에 돌파하는 환상적인 스피드와 천부적인 주루 센스가 방망이 때문에 묻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선수였기에 라쿠텐 입장에선 그의 트레이드가 시원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BC리그에 입단하기 전 그의 모친에게 울면서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할만큼 방황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엿한 프로 선수가 됐다는 건 키 작은 선수에겐 희망이 되고 있다. 26살 밖에 되지 않는 그의 나이 역시 큰 자산이자 무기다. 물론 지금 한국의 김선빈 처럼 완전한 1군 주전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작은 키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프로 선수의 꿈을 실현한 우치무라의 도전 정신은 높이 평가 받을만 하다. 올 시즌 현재 우치무라는 타율 .168(출루율 .219) 8도루를 기록 중이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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