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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재생공 사장 박효진씨

    정부는 24일 임기가 끝난 한국자원재생공사 이충식사장 후임에 박효진전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59·사진·육사 12기)을 임명발령했다.
  • 육사고향 찾아 「청포도」 읊고…/문학예술연구회,안동권문학기행

    ◎임헌영·정소성씨등 1백여명 참여/하회마을·도산서원등 사적지 탐방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이육사의 「청포도」중) 「저항시인」이육사의 고향이자 하회마을이 자리한 고장,안동.누구나 이름만으로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안동으로 한국문학예술연구회(회장 임헌영)는 20·21일 이틀간 문학기행을 가졌다. 안동권의 역사와 문학을 찾아 이 지역을 무대로 창작된 이육사의 시들을 비롯하여 유순하씨의 장편소설 「하회사람들」,정소성씨의 장편소설 「가리마 탄 여인」의 작품배경을 더듬은 이번 문학기행에는 임헌영 이소리 이원규 김영철 김남주 공광규 김윤환 안상학 등 문인들과 일반인 그리고 안동의 참꽃문학회회원을 포함하여 총1백여명이 참여,성황을 이루었다.또한 이번 문학기행에는 소설가 정소성 유순하씨와민속학자 임재해씨가 자리를 함께 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기행팀은 또 퇴계 이황선생의 학문적 자취를 담고 있는 도산서원을 탐방했다.퇴계 이황,서애 유성용 등 지조높은 선비들의 맥을 잇고 있어 선비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안동은 또한 「저항시인」이육사를 낳았다. 일제시대에도 일인들에게 결코 굴함이 없었던 안동선비들의 맥은 최근 맑은 심성으로 꼿꼿한 기상을 노래하는 김명수시인에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행팀은 뒤이어 이 지역을 타지역과 차별화시키는 안동댐과 수몰지구 그리고 안동민속촌을 들러 안동권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도착 당일밤 초청강연에서 민속학자 임재해씨는 『하회마을 주술 속에 내재된 변혁의 전통을 보자』고 말했었다.이는 하회별신굿속에 내재된 개혁의지를 보자는 것.그러나 그는 『변혁운동이 생명을 포괄하는 녹색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로써 현단계 변혁운동의 약한 고리를 짧게 지적했다.이번 안동권 문학기행은 한국의 신분(계급)구조에 내재된 변혁의 씨앗그리고 현실적 변혁운동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를 제공한 뜻깊은 자리였다.
  • 세미나참석 지방의원들 “강의부실” 수강료 환수(조약돌)

    ○…18일 상오11시10분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민간교육사업체인 「한국산업기술원」이 주최한 「정부회계제도와 감사 세미나」에 참석했던 전국 1백98명의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이 『교육내용이 부실하다』면서 수강료의 반환을 요구,수강료 18만원 가운데 실비를 제외한 14만원을 반환받고 돌아가는 소동을 벌였다. 17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상경해 강의를 듣던 의원들은 이날 『주최측의 말과는 달리 강의내용이 지나치게 이론에만 치우쳐 실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강의도중 강단으로 올라가 수강료의 반환을 요구한 것.
  • 장성 15명 진급/교육사령관 편장원중장/육군지휘관 인사

    정부는 15일 육군 주요지휘관 정기인사를 단행,편장원중장(3군단장·육사18기)을 교육사령관으로 전보발령하는 한편 김종배소장(국방부전력기획관·육사20기)과 함덕선소장(육본군수참모부장·육사20기)을 중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또 이헌화준장(육본인사근무처장·갑종1백77기)등 9명을 소장으로 일선지휘관에,임삼준장(3군수지원사령관·육사22기)등 4명을 소장으로 직위진급시켰다.
  • 최창윤 대표 비서실장/성실한 처세·친화력 뛰어나(얼굴)

    서울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뒤 미하와이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육사(18기)출신이지만 주위로부터는 「문민정치」시대에 걸맞는 신사라는 평을 듣고있다. 5공출범당시 정계에 들어와 청와대정무비서관,문공차관,13대 전국구의원,공보처장관 등을 지내면서 철두철미하고도 조직적인 능력을 과시. 특출한 영어실력과 친화력도 돋보인다.평북 선천출신으로 취미는 테니스와 골프.의사인 부인 주인숙씨(47)와의 사이에 1남2녀.
  • 1군 사령관에 조남풍대장

    정부는 4일 신임 1군사령관에 조남풍육군교육사령관(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임명하기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조남풍신임1군사령관은 오는 8일 노태우대통령에게 대장진급신고를 하고 9일 임기만료로 전역하는 이문석대장의 뒤를 이어 군사령관에 취임한다. 정부는 또 오는 15일께 2∼3명의 군단장을 비롯,중장급지휘관과 7∼8명의 소장급 사단장의 신규임명및 이동등 군장성정기인사를 단행한다. ◇조대장약력 ▲충남 서천·54세 부산동래고졸 ▲육사18기(62년임관) ▲83년 준장 공수여단장 ▲86년 소장 수도기계화사단장 ▲육군작전참모부장 ▲89년 중장 국군보안사령관▲91년 육군교육사령관
  • 조남풍 1군사령관/선굵고 책임감 강한 작전통

    육사생도시절부터 모범생으로 대장진급시까지 선두를 지켜온 작전통. 91년 서울에서 열린 제15차 「태평양지역육군관리세미나」를 훌륭히 치러내 군사외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교육사령관 재임시에는 새로운 합참출범에 따른 국군의 교리와 작전규범을 발전시켰다. 육사시절 럭비선수로 활약했으며 선이 굵고 책임감이 강하고 부하들에게 자상한 성품.취미는 스포츠. 이대 정외과출신의 부인 이선우여사(50)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 조남풍중장,대장승진/군사령관에 곧 임명

    정부는 육군교육사령관 조남풍중장(육사18기·부산 동래고졸)을 4일자로 대장으로 승진시켜 군사령관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석군사령관은 9일자로 임기만료돼 전역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이와함께 국방부 군비통제관 박용옥준장(육사21기)과 공보관 윤창로준장(갑종출신)을 소장으로 직위진급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지청천

    ◎독립군지휘,만주태평령서 일 연대 섬멸/33년 6·10대첩 독립전쟁 최대승리로 기록/무장투쟁 한평생… 40년 광복군사령관 역임/광복후엔 대동청년단 결성,“민족단결” 호소… 제헌­2대의원도 지내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산 지청천장군이 선정됐다.6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장군은 일본이 대륙침략에 기승을 부렸던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의 이이즈카연대를 섬멸한 공을 세우고 40년부터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했다.해방후 귀국한 지장군은 제헌의원과 2대의원을 지내고 57년1월15일 69세로 별세했다.지장군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 태평령에서 한국독립군 2천5백명과 중국군 2천명의 연합작전을 지휘하던 지청천장군은 일본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짤막한 훈시를 했다. 『오늘의 공격은 2천만 대한인민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총알 한개 한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 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주는 피의 사자이니 제군은 단군의 아들로 굳세게,용감히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손 만대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라』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훈화였으나 결전을 앞둔 독립군 병사들의 뼛속까지 사무쳐 대부분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광복을 굳게 다짐했다. ○소총등 다량 노획 이날 일본의 정예부대인 이이즈카연대는 한중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동서남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4시간동안의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군은 완전히 전멸되고 말았다. 군복 3천벌,박격포 5문,군용물자 20마차,담요 3천장,평사포 3문,소총 1백50정을 노획해 한국독립사상 가장 큰 전승을 기록했다. 지청천장군의 태평령전투는 독립전쟁사중 20연대의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와 함께 2대 대첩으로 평가되고 있다. 30년대의 지장군이 지휘한 태평령전투가 규모와 노획물이 더 큰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장군은 전투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뿐만아니라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서 독립을 위한 청년장교들을 양성한 교육자로,광복후에는 제헌의원·청년운동 등으로 평생을 애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지장군은 1888년 2월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어머니(이씨)밑에서 자란 지장군은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처음 도입한 아저씨 지석영의 권고로 교동국민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 진학했다. 1904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지장군은 1907년 일본이 한국군대를 강제해산하자 관비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적의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지장군에게 『나는 너를 죽어 없는 아들로 생각하겠다.구국의 일군이 되지 못하거든 일본에서 돌아오지도 말고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엄하게 훈계했다. ○일 정규육사 출신 적도 도쿄에 도착한 지장군은 일본의 눈부신 문물을 보고 놀라면서 일본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하나라도 더 배워 조국을 되찾는 첨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일본 유년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정규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지장군은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 제14사단에 배치되어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의 전투경험이 만주에서의 독립군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군 중위로 진급한 지장군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탈출,독립운동의 요람이던 만주 봉천성 통화현에 도착,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육사출신의 김광서장군과 구한말 군관출신인 신팔균 김창환 이범석 오광선등 쟁쟁한 인재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면서 민족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 육사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지장군은 교성대장(교성대장)에 이어 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기반이 공고해질수록 일본의 독립군 탄압도 집요해져 지장군은 신흥무관학교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서로군정서군을 이끌고 백두산 부근의 밀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군,홍범도장군의 대한독립군 등과 합세,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여단장을 맡아 군세를 통합했다. 지장군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전쟁 수행을 위해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독립군부대를 고려혁명군단으로 개편하고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치,교장을 맡아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주에 의한 소련정부의 배신으로 소련군과 혈전을 벌인 끝에 장군은 체포되어 러시아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만주에 돌아온 지장군은 국민대표회의 등을 통해 독립운동세력을 규합,1924년 정의부가 조직되자 중앙위원과 산하 의용군 총사령관이 됐다. 정의부소속 군대를 지휘하게 된 지장군은 일본경찰주재소를 소각하고 일본군부대를 습격하는 등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31년 9월18일 일본은 중국침략의 마수를 뻗쳐 만주사변을 도발했다. 지장군은 만주지역의 중국군 이두·정초·고봉림장군 등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해 쌍성보,경박호,동경성,사도하자,대전자등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지장군은 1919년부터 33년까지 14년간 만주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면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강한 군대를 육성했다. 1933년 8월 일본이 만주를 석권하다시피하여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은 지장군을 하남성의 낙양군관학교로 초청,한국청년들의 군사교육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임정 군무부장에 넓고 넓은 만주땅을 베개삼아 죽으리라던 지장군은 이범석·오광선 등과 함께 낙양으로 내려가 한인청년들을 교육하고 1937년에는 임시정부의 군무부장,40년 9월17일 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명실공히 한국군을 대표하게 됐다. 광복군은 중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한편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작성·암호해득등 다방면에 걸친 눈부신 활동을 했다. 지장군은 1946년 4월2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중국에서 귀국했다. 귀국후 장군은 혼란한 국내정세를 바로잡을 원동력이 청년에게 있음을 깨닫고 전국적인 청년운동을 일으킬 것을 구상,대동청년단을 구성했다. 지청천단장은 전국청년지도후원회를 결성하고 『뭉치라,길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로 민족단결을 역설했다. 1948년 5·10총선과 50년 5·30총선에 출마하여 초대 및 2대국회의원이 된 지장군은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지장군은 57년 1월15일 69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62년 지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장군은 달수씨와 복영씨등 남매를 두었는데 남매도 모두 광복군으로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달수씨는 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고 69년에 작고했으며 복영씨는 현재 지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있다. ◎탁월한 전략·순수한 군인정신의 귀감/역사적 평가/이현희 성신여대교수 백산 지청천장군은 70평생을 조국과 겨레의 행복을 위해 보냈다. 8·15이전의 60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한 무장독립투쟁에 보냈으며 귀국후에는 제헌의원과 2대의원으로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한국무관학교 학생으로 입학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한 지장군은 평생을 통해 권모술수를 모르는 순수한 참군인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해왔다. 지장군이 일본육사에 진학한 의도는 적을 잡기 위해서는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일본육사에 유학,현대 전략과 전술을 공부한 지장군은 훗날 만주에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하면서 일본육사에서 배운 군사학을 활용했다. 열악한 무장,숫적인 열세,보잘것 없는 보급을 받으면서도 지장군은 일본정규군을 자유자재로 유린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일본의 현지 지휘관들은 『지청천이가 일본의 전술과 전략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우리의 격전이 무색하다』고 격찬 한 사실을 보아도 지장군은 탁월한 지휘관이었다고 생각된다 지장군은 1940년에는 임시정부의 직할무장부대인 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5년동안 국내외 청년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일본군 후방교란,연합군과의 연합작전,심리전 등을펴 명실공히 독립군의 최고지도자로 역을 다했다. 그는 건국후에도 광복군의 정통성을 의병독립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광복이후의 혼미한 정국에서 지장군의 크고 높은 뜻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장군이 별세한 35년이 지난 지금 그의 크고 높은 뜻이 마침내 달성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행스럽다 하겠다.
  • 학군출신 현역 대위 3명/전역거부 취소 청구소

    ◎“인력부족 신청거부는 부당” 주장 육군68사단 소속 최문규대위(29)등 학군(ROTC)25기출신 현역대위 3명은 28일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서울고법에 전역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장기복무지원자인 최대위등은 소장에서 『장기복무장교의 복무기간을 10년으로 하고 5년차에 1회에 한해 전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군인사법 제7조에 따라 임관 5년째인 92년 6월부로 학군동기 98명과 함께 전역희망서를 제출했으나 육군이 장교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했다』면서 『이는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지난해 6월 1년선배인 학군 24기들은 전역지원자 38명이 모두 제대했고 학군과 동기격인 육사 43기 43명의 전역도 허락됐는데 우리에게만 전역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국방부측은 이에 대해 『군인사법 제7조는 전역을 허가해 줄수 있다는 규정이지 반드시 제대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아니다』라고 해석을 달리 했다.
  • 민자 당3역 경질

    ◎사무총장 김영구/정책의장 황인성/원내총무 김용태씨/정무 1엔 김용채씨… 주내 소폭 개각 민자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23일 사무총장에 김영구의원,정책위의장에 황인성14대당선자,원내총무에 김용태의원,정무제1장관에 김용채의원을 각각 임명하는등 당정개편을 단행했다. 노대통령은 이와함께 다음주에는 소폭의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민자당경선의 종료에 따라 당정쇄신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주에는 보각수준의 개각이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4대국회에서 민자당 전국구의원으로 활동하는 최병렬장관의 교체여부와 관련,『최장관이 총액임금제추진등에 대한 확고한 자세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다 앞으로 예상되는 노사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교체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날 단행된 당정개편은 민자당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함에 따라 김영삼대통령후보 체제로 당을 정비,14대대통령선거및 개원국회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대통령은또 민자당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한 만큼 당내계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범계파적으로 다선위주의 인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김영삼후보로부터 당정인선에 대한 전화건의를 받고 이를 재가,이날 하오 신임 당4역을 임명했다. 민자당은 노대통령의 당4역 임명에 따라 내주중 의원총회를 열어 신임 김원내총무를 인준하고 뒤이어 사무부총장및 원내부총무 대변인등 중하위직 후속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신임 당4역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김사무총장 ▲서울·51세▲동국대▲민정당총재비서실장▲11·12·13·14대의원▲국회 재무위원장 ◇황정책위의장 ▲전북 무주·66세▲육사4기▲육본 경리감▲조달청장▲국무총리비서실장▲교통·농림수산부장관▲아시아나항공회장 ◇김원내총무 ▲대구·55세▲서울법대▲조선일보정치부장·편집국장▲11·12·13·14대의원▲국회 재무·예결위원장▲민자당 정책위의장 ◇김정무제1장관 ▲경기 포천·59세▲조선대▲대한태권도협회장▲7·9·12·13·14대의원▲국회 건설위원장
  • 황인성 정책위의장(민자 당3역·정무장관 프로필)

    ◎야당아성 전북서 「금배지」 군출신으로 매우 과묵한 편이나 한번 사귄 사람과는 인연을 끊지 않는다.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해 평가받는 노력형.이번 14대총선에서 민주당의 아성인 전북지역에서 「금배지」를 달게된 것도 그의 이런 성품탓이라는게 주위의 평. 육사4기로 일찍 군에 뛰어들어 육군경이학교장·육군경이감을지낸 치밀한 회계통이었으나 70년 경제담당 무임소장관 보좌관으로 관계에 입문. 출마전까지는 아시아나항공 회장직을 맡아왔다.전북 무주출신으로 부인 이애섭여사(64)와 3남1녀.취미는 테니스.
  • 정치감각 뒤져 화자초… 91쿠데타주역/45일 “단명”총리 수친다

    총리취임 45일만에 물러나기까지 태국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를 야기시킨 장본인으로 지난해 2월 차티차이 춘하반 총리 정권을 무너뜨린 무혈쿠데타의 주역. 태국명문 출랑롱콘대학 약학과를 1년 수료한 뒤 출라촘클라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53년 미국식 군사교육과정으로 재편된 육사 5기생중 1등으로 졸업했다.그후 ▲미포병학교 수료 ▲베트남전 참전 ▲주미대사관 무관보 ▲내무장관비서관 ▲육군사령관 ▲국군총사령관등을 역임하는등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절대적 신임을 받는 태국군의 간판인물이긴 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을 무리하게 무력진압하려던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감각은 낙제점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반정부시위대에 대한 태국군의 발포로 지난 18일 주가가 폭락하자 부랴부랴 「큰손들」을 동원,다음날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그의 저돌성과 정치적 무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 82년 대령에서 준장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소장으로 진급할 정도로 군에서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는 작년 2월 군사쿠데타를 주도,민선정부를 무너뜨린 뒤에는 자신의 뒤를 이어 손아래 동서인 이사라퐁장군이 육군사령관을 맡도록 하는 등 태국군부내에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족벌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33년 방콕 근교 나콘파톰 출생으로 부인 와니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으며 부인 역시 대중앞에서 남편에게 독설을 퍼부을 정도로 표독스런 성격의 소유자로 태국국민들의 빈축을 사고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태 정국안정의 열쇠” 수친다 퇴진/개헌협상 난항땐 혼란 재연될듯

    ◎군위상 실추,영향력쇠퇴 불가피 군의 유혈 무력진압에 대한 태국국민들의 분노는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존경을 받는 푸미폰국왕의 개입으로 대폭발의 위기를 넘겼다.그러나 이들의 분노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따라서 앞으로의 사태추이에 따라 언제든 다시 폭발할 불씨는 계속 남아 있는 실정이다. 21일 발표된 수친다총리와 잠롱 전방콕시장간의 합의는 ▲시위와 관련돼 체포된 모든 사람의 석방과 사면 ▲헌법개정 ▲정치에 대한 군의 영향력 축소로 요약된다.이중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25일 열리는 국회에서 헌법이 어떤 방향으로 개정되느냐는 것이다.헌법개정 내용이 수친다총리의 향배를 결정짓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태국의 민주화시위는 계속적인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서 비롯됐다.처음엔 평화적이었던 시위가 격화된 것은 군의 무력진압이 많은 희생자를 불렀기 때문이다.따라서 시위의 원인 제공자이며 강경진압을 명령한 사람 즉 수친다가 물러나지 않는한 시위의 명분은 그대로 살아있는 셈이며 이번 시위에서 가족과 친지를 잃은 국민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기 어려운 형편이다.따라서 헌법개정 협상이 빠른 시일내에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시일을 오래 끌 경우 국민들의 분노가 재폭발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선 6월말까지 헌법을 개정하고 새 헌법의 발효와 함께 수친다가 물러나야 한다는 야당측 요구가 쉽게 실현될 것같진 않다. 수친다의 사임은 곧 군의 위상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결국은 수친다가 사임하는 길밖에 없음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지만 언제 어떻게 사임하느냐를 놓고 유혈진압에 대한 책임 문제가 걸려 있는 수친다는 물론 그동안 누려온 각종 기득권을 잃어야만 하는 군부가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키려 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결국 수친다의 퇴진문제가 걸린 헌법개정안을 처리하되 개정헌법을 수친다 이후부터 적용하려는 군부와 바로 수친다부터 적용시키려는 야당세력간의 줄다리기는 이제 그 무대를 거리에서 국회안으로 옮겨 제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이번 민주화시위로 오랜 세월 유지돼온 태국정치에서의 군의 지배구조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게다가 지난 수년간의 고도경제성장기간중 정치적 자유를 갈구해온 태국국민들은 이번 시위를 통해 이같은 갈구를 보다 성숙된 정치의식으로 표출시키는데 한걸음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친다가 물러난다고 해도 태국정국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우선 수친다 이후 누가 총리가 될 것인지가 당장 문제가 될 것이다.이제까지 태국정계를 장악해온 군부가 또다른 인물을 내세워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사실 주요 야당인사들도 대부분 육사출신으로 구성돼 있을만큼 군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태국정계에서 갑자기 군부의 영향력을 모두 제거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따라서 앞으로도 정치에 대한 군부의 영향력은 어느정도 유지되겠지만 이번 민주화시위를 통해 시민혁명을 경험한 태국 국민들이 과거와 같은 군부의 독주를 더이상 허용치 않으려들 것이므로 그 영향력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육사 수석졸업… 청백리 표창/태 반정운동 구심점 잠롱

    유혈사태를 빚고있는 태국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연행된 잠롱 스리무앙전방콕시장은 부패로 얼룩진 이나라 정계에서 부패척결을 몸으로 실천해온 청백리의 표상으로 국민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고있는 인기 정치인. 그는 농민들이 즐겨입는 검소한 셔츠를 입고 폐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고 다녔다.『적게 먹고 적게 쓰며 열심히 일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만큼 동트기 전에 일어났으며 식사는 채식을 위주로 하루에 한끼만 먹는등 철저한 금욕생활을 지켜 「Mr Clean」이란 별칭을 얻고있다. 민선 방콕시장을 역임한 잠롱은 자신이 창당한 팔람탕당을 이끌고 지난3월총선에 나서 35석의 방콕의석중 32석을 석권하는등 수도권에서 든든한 정치기반을 가지고있다. 어머니의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수 있었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잠롱은 뛰어난 학업성적때문에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면 가기 힘든 육사에 입학할수 있었고 육사를 수석졸업했다.베트남과 라오스 등지에서 큰 무공을 세워 소장에까지 올랐다.이번시위의 원인제공자인 수친다크라프라윤총리와는 육사동창으로 잠롱(7기)이 2기후배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시위진압군에 연행되면서 『끝까지 투쟁하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상추구를 위해 타협할줄 모르는 그의 강철같은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금탑산업훈장 수상/신발명연구소 소장 신석균씨(인터뷰)

    ◎“내가 만든 발명품만 2,700개”/기네스북 올라… 「발명대학」설립이 꿈 『발명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늠짓는 척도입니다.영토와 인구가 아무리 넓고 많아도 산업과 연결된 발명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면 후진국 위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19일 스물일곱번째 「발명의 날」을 맞아 발명유공자로 이 분야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신석균씨(63·한국신발명연구소소장).2천7백여건의 발명품과 7백여건의 특허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발명품과 특허권을 갖고 있을뿐 아니라 59회에 걸친 국제발명대회에서의 입상경력으로 「세계최다 국제상 수상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발명황제다. 유리로 된 우유병이나 음료수병시대를 마감시키면서 종이팩시대를 연 것도 그였고 고성능 위조지폐감식기나 테이프없이도 태양전지를 이용해 녹음되는 카세트레코더등 외국기업가들이 침을 흘리는 발명품들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해외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디오모자나 낚시할때 가지고 다니는 접는의자도 개인발명가 신씨의 노작품.사범학교와 고등학교의전기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선 러시아어,대학원은 기계공학을 공부한 다양한 편력만큼 그의 발명품 종류 역시 끝이 없어 보인다. 그간 그의 발명품이 벌어들인 외화는 대략(한국발명특허협회추산)1천여만달러.기업가등 제3자에게 권리를 양도해 벌어들인 돈이다.대개 발명가들이 장사가 됨직한 발명품을 기업화하려고 공장짓고 사업도 일으키는데 비해 신씨는 「발명가는 발명에만 전념하고 실용화는 기업가에 맡긴다」는 신조에 충실해 왔다.그런 과정에도 최근엔 중국과 「특허권의 생산·판매등 기업화과정중 드는 비용을 중국측이 부담해 생산한다」는 20년기한부 합자회사 가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발명의 길로 들어선 직접적인 계기는 6·25동란중 부산에서 만든 도량형환산기.기존에 쓰이고 있던 재래식도량형과 막 수입된 서구식도량형이 되죽박죽돼 거래와 생활에 상당한 불편이 있었던 때였다. 그후 처음 5년간은 가정교육사라는 잡지사를 운영,생활해 나가면서 발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생활속의 불편을 조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것 같읍니다.어떻게 좀더 편리하게 고쳐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몰두하느라 40년이 지난것 같습니다』발명에 대한 그의 이런 열정은 국내 발명풍토조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아이디어와 기술밖에 살길없는 우리처지에서 발명회관등 그럴듯한 발명교육장소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발명진흥복권과 같은 방식으로 전 국민의 발명의욕을 고취시키고 발명기금도 조성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그는 또 발명교육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문교육기관의 설립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마약퇴치」 민간단체가 나섰다

    ◎약사회/“마약과의 전쟁” 선포… 운동본부 가동/시·군·구 2백43곳 일선조직/2만여 약국중심 홍보·상담/약물중독자 치료사업 착수 마약퇴치운동이 정부주도에서 민간차원의 국민운동으로 확산된다. 이는 과거 마약류 사용이 연예인·유흥업소종사자·폭력배등 일부에 국한됐으나 최근 청소년층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확산돼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4만여 회원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대한약사회(회장 권경곤)는 12일 서울 서초동 약사회관에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창립기념식을 갖고,앞으로 읍·면·이·동까지 전국 2만여개소에 개설된 개업약국을 주축으로 계몽·상담등 마약퇴치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권회장을 이사장으로 한 「운동본부」는 전국 15개 시·도에 지부를,시·군·구 2백43개소에 분회를 이미 설치했는데 앞으로 각분야 전문가들로 전문위원회와 후원조직체도 구성할 계획이다. 「운동본부」는 전국조직망을 중심으로 ▲마약류등 약물남용 방지를 위한 대국민 홍보·계몽활동 ▲조사연구및 교육사업 ▲마약류 남용관련 상담소 설치운영 ▲약물사용자의 치료·재활사업 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운동본부」는 우선 홍보·계몽활동의 기반조성을 위해 약사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포스터와 유인물 등의 홍보물을 제작,약국에 부착하는등 대국민 계몽에 주력하기로 했다. 운동본부는 이와함께 VTR와 슬라이드등 마약퇴치와 관련된 교육용 자료를 개발하고 약국을 통해 마약복용실태및 사용경험담 수집등 사회조사도 실시,홍보·계몽활동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운동본부」는 마약퇴치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승화시켜나가기 위해 보사부 산하 보건단체는 물론 각종 경제단체와 사회봉사단체에 까지 참여의 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대한약사회측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매년 7∼8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우선 약사회 예산으로 소요비용의 대부분을 충당하되 정부지원금과 협찬금도 받아 운동본부를 운영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강력한 마약사범단속을 실시한결과 지난해말까지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90년의 4천2백22명보다 줄어든 3천1백33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종전까지도 연예인·유흥업소종사자·조직폭력배등 특수직종에 한정됐던 마약류 사용이 운전사·근로자·농어민·회사원으로 확산되고,심지어 최근에는 건전계층인 가정주부·학생에까지 침투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만취 경관 연쇄 윤화/병원치료중 뺑소니

    술에 취한 경찰관이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쳤다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 다시 달아났다. 2일 상오2시30분쯤 서울 노원구 공릉1동 581 공릉쇼핑센터 앞길에서 마포경찰서 김원희경장(47)이 술에 취해 서울1후 8529호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가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대덕운수소속 서울1바 5169호 택시(운전사 박진기·30)의 뒤 범퍼를 들이받고 육군사관학교 후문쪽으로 달아났다. 김경장은 이어 육사로 들어가려고 좌회전하던 서울4토 3751호 엑셀승용차(운전자 윤병도 소령·39)의 앞범퍼를 들이받고 멈춰섰다가 뒤쫓아온 경찰에게 붙잡혔다. 김경장은 그러나 출동한 경찰관들과 함께 이웃 성북구 석관동 석계역근처 신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경찰관들이 함께 치료를 받던 택시 운전사 박씨를 살펴보려고 자리를 비운사이 달아났다.
  • 달아오르는 경선표밭… 민자 양진영 움직임

    ◎결속모임… 출마회견… 서로 “필승” 다짐/“JP도 우리편합류” 기세올리기/김후보측/“대의원민심 보여주겠다”/이후보측/공화계는 내부 혼선… JP,“내부정리” 나서 민자당의 대권후보 경선에 나선 김영삼대표·이종찬의원이 후보등록을 완료하고 25일 대규모 지지모임과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대권후보 레이스가 공식화 됐다.양측은 모두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나 장고를 거듭해온 김종필최고위원이 27일 김후보 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돼 초반 경선판세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후보 진영◁ ○…김후보 진영은 이날 상오9시 전국 15개 시·도에서 50명이상씩의 추천을 받아 대의원 1천3백81명의 서명으로 후보등록을 마친데 이어 민정계 위원장 및 전국구 당선자 등 88명의 민정계추대위 인사들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범계파추대위 구성을 위한 확대회의를 열어 김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의.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열린 김후보측 민정계 진영의 결속단합대회는 이치호의원의 사회로 김윤환 전총장의 인사말,김재순전국회의장의 격려사,김종호 전총무의 범계파추대위 구성동의,이웅희의원의 「우리의 입장」낭독 등의 순으로 약 1시간동안 진행. 김전총장은 인사말에서 『6·29정신과 3당 합당정신을 계승·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평생을 민주발전을 위해 싸워온 김대표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로 추대돼 정권 재창출이란 역사적 소명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 이날 참석자들은 『김대표만이 세대간·지역간·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지도자』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김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해 연말의 대선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을 다짐. 이날 김후보 지지를 결의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은 ▲서울 13명▲부산 6명▲대구 4명▲인천 3명▲광주 1명▲경기 8명▲강원 8명▲충북 5명▲전북 3명▲전남 4명▲경북 14명▲경남 14명▲제주 1명 등 모두 84명이었으나 나웅배의원 등 외유중인 위원장과 빙모상을 당한 이영창위원장 등 13명의 인사들은 불참. 때문에 총 1백57명의 민정계 지구당위원장중 현재 김후보 진영에 합류한인사는 54% 수준에 해당. 한편 이날 모임에서는 김대표추대위 공동위원장(민정계대표)에 권익현 전민정당대표를 선임. ◇…민정계의 지지결의에 이어 이날 낮 순수 민주계도 62명의 지구당위원장및 전국구당선자들이 모여 김후보 지지를 다짐. 최형우장관 주재로 열린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경선과 12월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는 한개인 한정파의 승리가 아니라 이나라 정치의 전진이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전제,『민주주의의 완결,국민화합을 위한 점진적 개혁및 국민통합을 위해 김대표가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결의. 김명윤고문은 격려사를 통해 『일부에서는 김대표를 대권욕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하지만 정치하는 사람이 대통령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면서 『김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3당합당정신의 순리』라고 역설. 한편 최장관은 이날 『김종필최고위원이 범계파추대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 ◇…경선정국에서 거중조정역을 자임하며 김대표·이의원 등 양후보에 대한 선택적 입장표명을 유보해온김종필최고위원이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표쪽으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 김최고위원의 측근인사들은 이같은 선택에 대해 『두 후보의 대선득표력을 저울질한 끝에 정권재창출을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YS·JP의 연대배경에는 모종의 「역할분담론」이 개재돼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 김대표와 김최고위원이 24일 시내 H호텔에서 비밀회동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와관련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YS의 대중적 기반과 JP의 경륜을 합쳐 국정을 운영할 경우 상호보완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 그러나 공화계는 그동안 김용채의원 등 대다수 중진의원들이 친금대표성향을 보여온 반면 김용환의원 등 일부 중진과 대전·충청권 소장파의원들이 반금대표입장을 표명하는 등 내부적으로 혼선을 빚은 바 있어 전체의 15·8%에 이르는 계파 대의원들이 김대표지지로 돌아설지는 미지수. 28일 출범하는 범계파추대위에는 김용채·구자춘의원과 최재구고문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이나 공화계 지구당 위원장 29명 전원이 가세할지 여부는 25·26일동안 진행될 김최고위원의 설득여부에 좌우될 듯. ▷이후보 진영◁ ○…이후보측은 24일 후보등록에 이어 이날 출마기자회견,선거대책본부 현판식을 가짐으로써 출마에 즈음한 의식을 모두 완료. 이후보측은 이제부터 대의원과의 직접 접촉과 개인연설회 등을 통해 세대교체·지역감정타파논리만 제대로 전파된다면 초반 열세가 충분히 만회되리라고 기대하는 눈치. 이후보 비서실장인 박범진당선자는 『우리는 거의 무에서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 개척여지도 무한하다』며 『대의원의 민심이 어떤지를 보여주겠다』고 장담. 이후보진영 일각에서는 김종필최고위원이 김대표를 지지할 것이 확실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으나 박당선자는 『김최고위원이 김대표 지지를 선언할 경우 함께 따라갈 대의원표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이날 상오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후보의 출마기자회견은 회견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과 당원들의 박수 및 환호속에 시종 열띤 분위기로 진행. 이의원은 이날 상오9시 박태준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과 양창식당선자등 7인 중진협멤버들과 함께 회견장에 도착해 참석자 3백여명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등단,회견문을 읽은뒤 곧바로 기자들과 일문일답. 이의원은 그동안 자신의 경력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어 왔던 탓인지 『국가안보가 중요시되던 때에 육사를 선택,안보에 기여한 것과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 이의원은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나도 부끄러운 것이 있지만 그것을 노출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피력. 이날 회견에는 이한동·박준병의원을 제외한 7인 중진협 멤버를 비롯,윤길중고문과 김현욱·이긍령·이광로·이동진·고세진·오유방·이윤자·김중위·이건식·정원조·조남조·조기상·지대섭·유경현·이상하·남재두·이덕호·장경우·이영일·홍희표·김장숙·이호종·구천서씨등 30여명의 원내외지구당위원장과 14대 당선자들이 참석.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이후보캠프는 『할말은 다했다』고 만족해하면서 오는 28일의 관훈토론회와 개인연설회등에서 보다 구체적 내용들이 나올 것임을 예고. 이후보진영은 특히 이후보가 『공정한 경선이 되지 않을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힌 사실에 대해 앞으로 여권핵심부가 김대표에게 지나치게 경사될 경우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 이후보는 당초 이번 회견에서 지구당위원장 지지서명과정에서 벌어진 회유와 협박을 조목조목 지적할 예정이었으나 최재욱대변인등이 『굳이 공개석상에서 김대표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개진,이들 내용이 빠졌다는 것. 이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뒤 박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등 20여명의 원내외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화문사무실에서 이종찬후보추대위원회와 선거대책본부현판식을 거행. 이어 이후보는 선거대책본부관계자들과 국립묘지와 백범묘소를 참배한후 상공회의소에서 박최고위원,심명보·박철언의원등과 오찬을 함께 하며 결속을 다짐.
  • 이종찬후보 일문일답/“신사고로의 「세대교체」는 시대적 소명”

    ◎TV토론 통해 정책대결 펼쳐야/「외압설」은 자유경선의 큰 흠… 철저히 규명을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선 이종찬의원은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경선분위기 보장,양금구도타파,지역감정해소 등을 거듭 주장했다. 이후보는 『본인이 경선을 통과해 대통령선거전에 나가면 압도적 지지를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대선승리를 위해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후보와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태우대통령이 이번 경선이 아름다운 정책대결의 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의 구체적 실현방안은 무엇인가. ▲자유경선의 원칙은 후보들이 대의원과 국민앞에 나서 자신의 정견을 비롯한 모든 것을 노출시킴으로써 대의원들에게 올바로 선택할 기회를 부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김영삼대표진영은 우리측에서 줄곧 제의해온 합동연설회와 TV토론회등을 기피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이번 경선이 자유경선답게 정책대결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이같은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김대표측에 재촉구한다. ­이후보측에서 주창하고 있는 세대교체가 대중이 아닌 전당대회 대의원에게 어느정도 어필할 것으로 보는가. ▲우리가 주창하는 세대교체는 연령상의 교체가 아니라 사고와 행동의 교체로 낡은 사고와 행동은 배격하고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추구하자는 뜻이다.모든 정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듯이 민주화시대는 그 때의 소명을 다해야 하며 민주화 이후 시대는 이후의 소명을 다해야할 것으로 본다.따라서 나의 이같은 뜻이 분명하게 대의원에게 전달되면 대부분의 대의원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외압설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자유경선은 자유롭고 공정한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같은 외압설이 자유경선의 대원칙에 많은 흠을 내고 있는데 대해 일단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외압설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본다. 자유경선 원칙을 지키자는 것은 나의 부동의 신념이며 특히 자유경선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한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하다고 본다.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대로 이번 경선이모양갖추기의 경선이 된다면 이에 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도록 하겠다.특히 경선의 주인인 대의원이 독립적이고 자유의사에 따라 투표할수 있는 분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항간에는 김종필최고위원이 조만간 김대표에 대한 지지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최고위원은 그동안 영·호남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중부권이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해 왔으며 또한 정치는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앞으로 김최고위원이 그동안 주창해온 대의명분을 따르느냐,아니면 세를 따르느냐를 지켜보고 후배로서의 평가를 내리도록 하겠다. ­지역감정 타파를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현재 심화되고 있는 지역감정은 정치권의 산물로 정치권이 그동안 지역감정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옴으로써 더욱 증폭된다고 본다.따라서 지역감정은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하며 특히 현재 거론되고 있는 두 김씨가 대결해서는 지역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또한 어느 특정당이 어느 특정지역을 독점하는 현행 선거제도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지난 14대총선에서 지역기반인 종로에서 38·2%의 지지를 얻었는데 대통령선거에서의 지지도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전국적인 선거는 그 나름의 선거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지역구선거결과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는 안된다.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확신하다. ­이후보가 육사출신이고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다는 경력을 지적하는데 대해. ▲나는 안보가 대단히 중시되던 시대에 육사를 선택한데 대해 당당한 긍지를 느끼며 중앙정보부 근무때도 정치개입이나 인권탄압같은 일은 한번도 한적이 없고 비록 공개는 못하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크게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이종찬후보 회견요지 본인의 출마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와 통일을 향한 국가진운에 발맞춰 새정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절대다수 국민과 당원동지들의 한결같은 여망에 따른 물러설수 없는 도전임을 선언한다. 수구적이고 지역할거적인 정치문화를 이끌어 간다면 생기발랄한 정치는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정치가 생기를 잃으면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해가고 경제가 더욱 거품경제화하여 민생은 말할수 없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번 경선을 통해 반드시 우리 정치문화의 환한 아침을 열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정치의 도덕성을 회복해 건전한 양식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정치의 방향을 예측할수 있는 상식의 정치를 펼쳐 나갈 것이다.본인의 출마는 그 자체가 동서간 지역갈등을 혁파하고 국민통합을 회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국민의 힘을 한데 모아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4천만 국민의 합치된 힘이 솟구치도록 할 것이다.정치 경제 행정등 모든 부분에 일체의 인위적 격차와 불균형을 없앨 것이다.국민으로부터 신임받는 「일 잘하는 정부」를 이끌 것이다.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하고 그 바탕위에서 민생을 안정시키는 정부를 만들 것이다. 나는 승리를 확신한다. 5월19일은 민의를 받드는 대의원들에 의해 이 나라에 정치혁명이 이뤄지는 날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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