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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족 4형제가 대위/鄭賢洙씨 형제들 육·공군 복무

    ◎아버지가 권유… 건군이래 처음 한 가족 4형제가 현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어 건군 50주년을 맞아 화제가 되고 있다. 육군 鄭賢洙 대위(32)를 비롯,賢植씨(29),賢基·賢吉씨(28) 등 4형제 모두 현재 대위로서 현재 육군 및 공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鄭英趙씨(60·부동산 중개업·경기도 남양주시)의 6남1녀중 차남인 賢洙씨는 지난 88년 육사 47기로 임관,소·중대장을 마치고 현재 육군 제 17보병사단에서 참모장교로 근무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보병 고등군사반 시험에 합격,내년에 출국할 예정이다. 3남 賢植씨는 강원대 전기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학군 31기로 임관해 현재 육군 병기학교에서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고 있다. 4남 賢基씨와 5남 賢吉씨는 쌍둥이 형제로서 각각 공군 팬텀기 조종사와 전방사단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賢基씨는 지난 90년 일찍이 공군사관학교(42기)를 선택,어려서부터의 품어온 조종사의 꿈을 이루었고,한국교원대에 진학한 賢吉씨는 졸업후 학군 32기로 임관,형들이 먼저 시작한 군인의 길에 합류했다. 4형제가같은 계급으로 근무한 것은 건군 50년 역사에 처음으로 이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은 군인이 최고”라고 말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차남 賢洙씨가 귀띔했다. 한편 장남 賢哲씨(35)는 현재 남양주 경찰서 교통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며 6남 賢根씨(23)는 강원대 대학원 약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 親日의 군상:7­1/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저항 포기… 親日로 명맥 이은 세도가 집안/고관대작 다수 배출… 화려한 가문 자랑/중시조 雄烈 ‘한일병합’후 男爵 받아/尹 전 대통령 숙부·사촌중 변절자 많아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세도가 집안의 하나로 尹致暎 전 공화당의장서리(96년 작고) 가문을 들 수 있다.尹潽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집권당 의장서리,장관,서울대 총장 등 장·차관급 이상만 13명에 학자·의사가 60여명이나 나왔다. 尹씨 가문은 한말 尹雄烈에 의해 중흥된 후 자손도 번성하여 400여명에 이른다.尹雄烈의 아버지 取東은 늘그막에 웅달산에서 기도를 하고 첫 아들을 얻었대서 이름을 雄烈이라 지었다.15년 뒤 태어난 동생은 ‘영웅(英雄)’이라는 말에 맞추기 위해 英烈이라 지었다. 雄烈은 致昊·致旺·致昌 3형제를,동생 英烈은 致旿·致昭·치성·致昞·致明·致暎 등 6형제를 두었다. 열(烈),치(致)에 이어 다음 항렬은 선(善),구(求),영(榮) 순이다.선(善)자 항렬의 유명인사는 致昊의 아들 永善·璋善,致旿의 아들 日善·明善·昇善,致昭의 아들 潽善·源善,致明의 아들裕善 등이다.구(求)자 항렬에서는 日善의 아들 錫求·鐸求,潽善의 아들 商求·同求 등이 있다.번성한 자손과 함께 이 집안에서 배출한 유명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훑어보자. 중시조격인 雄烈은 1856년 무과에 급제,한말 군부대신을 지냈다.동생 英烈은 연안부사·삼남토포사·육군참장(參將,현 준장에 해당)을 지냈다.雄烈의 장남 致昊는 학부(學部)·외부협판(協辦,현 차관)을,2남 致旺은 초대 육군의무감(육군소장 예편)·대한의학협회장을,3남 致昌은 초대 주영공사와 주터키대사를 지냈다. 英烈의 아들 중 장남 致旿와 차남 致昭는 대한제국 시절 각각 학무국장과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3남 致성은 일본육사(11기)졸업 후 군부 군무국 교육과장을,4남 致昞은 육군 보병 정위(正尉,현 대위에 해당)로 예편하였다.막내 致暎은 해방 후 초대 내무장관과 서울시장, 3공에서 공화당 의장서리를 지냈다. ○부귀영화에 장수까지 致旿의 장남 日善은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致昭의 장남 潽善은 서울시장·대통령을,3남 源善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致明의 아들裕善은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보사부 의정국장·국립의료원장을 지냈다.3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永善과 재미 원로 피아니스트 琦善은 모두 致昊의 아들들이다. 또 日善의 차남 鐸求는 원자력병원장을 역임한 후 동생 鍾求와 함께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보통 집안에서는 한명 나오기도 힘든 큰 벼슬아치가 이 집안에서는 3대에 걸쳐 속출하였다.그리고 장수(長壽)집안으로도 유명하다.중시조(中始祖)격인 雄烈(72세),英烈(86세)형제와 致昊(81세),致旺(88세)이 70,80세를 넘겼고 永善(92세),日善(91세),潽善(93세) 등은 망백(望百·91세) 이상 장수했다.부귀영화에 장수까지 겸했으니 한 가문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집안의 역사가 이렇게 화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친일’은 이 집안 중흥의 1등공신 雄烈(1840∼1911)로부터 시작된다.1856년(철종 7년) 무과에 급제,1861년 충청 감영의 중군(中軍)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선 그는 1880년 별군관으로 朴永孝·金玉均 등과 함께 수신사 金弘集을 따라 일본을 다녀온 후 이듬해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1882년 별기군과의 차별대우를 참다못한 구식군대가 반란(소위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그는 시위대에 쫓겨 원산을 거쳐 나가사키(長崎)로 줄행랑을 쳤다.도중에 원산에서 주민들에게 발각됐으나 한 일본인 승려의 도움으로 피신했다고 한다.도쿄 체류중 그는 ‘조야신문(朝野新聞)’(1882년 9월2일)과의 인터뷰에서 구식군대의 반란은 조선 내 수구파들이 세력을 잡기 위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갑신정변 무렵 귀국한 그는 개화당 정권에서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1886년 능주(綾州)로 귀양갔다.그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하자 경무사·군부대신을 지내다가 1896년 소위 ‘춘생문(春生門)사건’에 가담했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일제말기에 지조 꺾어 대한제국 성립 후 다시 벼슬길에 나서 궁내부 특진관·군부대신을 지낸 그는 1910년 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은사금 2만5,000원과 남작(男爵)작위를 받았다.그의 작위는 장남 致昊가 습작(襲爵)하였다.致昊는 1913년 ‘105인사건’의 확정판결로 실작(失爵)되었으나 이는 ‘충순(忠順)치 않은 행위’(‘조선귀족령’ 제7조),즉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박탈당한 다른 사람(남작을 거절하고 순국한 金奭鎭 등)들과는 구분된다. 雄烈·英烈 두 형제 중 친일 경력자는 동생인 英烈의 집안에 많다.英烈의 장남 致旿는 한말 중추원 참서관(9품)·학부(學部,현 교육부)학무국장을 역임했는데 한일병합 후 중추원 부찬의·찬의(1910∼15년)를 지냈다.차남 致昭 역시 한말 중추원 의관을 거쳐 일제하에서 중추원 참의(1924∼27년,주임관 대우)를 지냈다.특히 致昭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14일 당시 쌀 120가마 값에 해당하는 2,000원을 국방헌금으로 내고 같은해 9월9일 결성된 ‘애국경기도호(號)’ 군용기 헌납기성회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3남 致성은 일본육사를 마치고 구한말 정부에서 육군기병 부령(副領,현중령에 해당)으로 예편한 후 한일병합 후에는 실업계로 진출,분원자기 취체역(중역)·경성조선인상업회의소 특별위원을 역임했다.막내 致暎은 미국 유학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歐美)위원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그러나 그 역시 일제 말기에 가서는 지조를 꺾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 잡지에 그의 이름으로 된 글이 실려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임전대책협의회 채권가두유격대에 참가(1941년 9월7일)했다.또 그해 12월20일에는 친일 잡지사 동양지광사(東洋之光社) 주최 ‘미영(美英)타도 대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그는 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에서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 실린 자신 명의의 글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이라며 “일제 전시하여서 명예훼손 소송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그의 건국포장 서훈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밖에 致旿의 아들 중에도 친일 경력자가 더러 있다.교토제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 지낸 장남 日善은 일제가 주최한 ‘미영타도 대강연회’에 연사로 참가한 적이 있다.또 도쿄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차남 明善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정부에서 총무청 통계과장·국무성 사무관·간도성(間島省) 차장을 지냈다.4남 昇善은 관동군사령부에서 대위로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독립운동가 가문과 사돈 맺은 아이러니/尹致昌 결혼 당시 심한 반발로 한때 감금되기도 자손이 많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안은 친일 가문은 물론 독립운동가 가문과도 더러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雄烈의 3남 致昌은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孫貞道 목사의 장녀 孫眞實과 결혼했다.초대 해군참모총장·국방장관을 지낸 孫元一 제독, 재미 원로의사 孫元泰(84세) 박사,YMCA 회장을 지낸 여성계의 원로 孫仁實(81) 등은 모두 眞實의 동생들이다.독립운동가 진영은 이들의 결혼을 거세게 반대하며 한때 致昌을 감금하기도 했었다. 致昊의 차남 光善(6·25때 납북)은 독립협회의 창건자이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사장을 지낸 南宮檍의 딸 南宮慈卿과 결혼,4남3녀를 두었다.致昊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집안 딸 중에는 독립운동가 당사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다.致旺의 장녀 善姬는 2차대전 때 OSS 대원으로 활동한 張錫潤(95) 전 내무장관과 결혼하였다.이밖에 致昭의 차남 浣善의 부인 李順貞은 한말 탁지부 대신 李容稙의 딸이자 ‘을사조약’후 자결,순국한 충정공 趙秉世 선생의 외손녀다.
  • 자원재생공사 사장 吳亨根씨

    정부는 15일 한국자원재생공사 사장에 吳亨根 자민련 정책자문위원(56)을 임명했다. 吳사장은 평북 박천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와 육사를 졸업한 뒤 육군본부 기획편제처장,사단장,육군3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소장으로 예편했다.
  • 산자부 대규모 인사 단행/사무관 이상 승진 36명·전보 64명

    ◎1급 전원·국장급 64% 대거 교체 산업자원부는 15일 사무관급 이상 승진 36명,전보 64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3일 본부 1급 5명 전원을 교체한 데 이은 이번 인사에서 2급 3명과 3급 과장 5명,4급 과장 12명,5급 11명이 각각 1급씩 승진했다. 또 본부 국장급 14명 가운데 9명이,과장급 62명중 20명이 전보됐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朴泰榮 장관 취임 6개월을 맞아 1급 전원과 국장급의 64%가 교체됐다. 朴장관은 “침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개혁 추진체제를 갖추는 차원에서 대폭적인 승진인사를 단행했다”면서 “능력,연공서열,고시기수를 적절히 고려하고 그동안 비고시 출신 등 빛을 보지 못했던 직원들을 적극 배려했다”고 인사기준을 밝혔다. ◎인사 뒷얘기/非고시출신 발탁… 朴 장관 친정체제 구축 15일 단행된 산업자원부 사무관급 이상 인사는 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대규모다. 지난 3일의 1급 인사에서 3명이 동시에 옷을 벗은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결국 고위직의 대거 퇴진이 그만큼 인사의 폭을 넓힌 셈이다. 朴泰榮 장관 취임 6개월여 만에 이뤄진 이번 인사는 朴장관의 친정체제 구축과 대거 승진에 따른 부내 분위기 활성화로 특징지워진다. 정치권 출신의 朴장관은 취임 후 업무파악과 조직 안정을 위해 그동안 본격 인사를 미뤄왔다. 이번 인사는 지난 6개월간 산자부 조직과 인물에 대해 朴장관이 관찰하고 파악한 중간평가서인 셈이다. “당면 현안인 수출과 외자유치,산업구조조정 관련 부문에 인사의 초점을 맞췄다”는 게 朴장관의 설명이다. 이번 인사는 지난 7월 본격심사에 들어간 뒤로 두 달의 산고 끝에 이뤄졌다. 인사가 지연되다 보니 온갖 청탁이 朴장관에게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朴장관이 인사발령에 앞서 이미 보름전쯤 인사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이런 청탁에서 벗어나려는 궁여지책이었다고 한다. 또 본부의 1급 인사 5명은 장관의 대규모 인사방침이 전해지자 가족들에게 퇴직 가능성을 미리 알리는 등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지역과 임용구분에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것이 朴장관의 설명이다. 즉 비고시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金永俊 전력국장(9급 출신)과 馬三烈 비상계획담당관(7급 출신),吳海貞 산업기술정책과장(육사 출신) 등 6명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출신지역별로는 다소 영·호남 편중인사의 색채가 짙다는 지적이다. 인사 결과 4급 이상 간부중 영남 출신은 32.1%에서 33.3%로,호남 출신은 17.3%에서 24.7%로 대거 약진했다. 영·호남 출신이 전체 81명 가운데 58%인 47명을 차지했다. 반면 서울·경기는 29.6%에서 23.4%로,충청은 14.8%에서 11.1%로 낮아졌다. 이번 인사에 대해 산자부 안에서는 인사적체가 크게 해소됐다며 고무된 모습이다. 한 국장급 인사는 “인사 대상자의 90%가 만족하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 취업·학비 ‘무풍지대’ 사관학교/海士 여생도 56대 1 최고

    ◎99학년도 원서접수 결과 IMF시대 학비도 없고 취업 걱정도 없는 사관학교로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14일 육·해·공사 및 국군간호사관학교에 따르면 지난 12일 99학년도 신입 사관생도 원서를 접수한 결과 최저 13.7대 1에서 최고 56.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75명(남자 250명,여자 25명)을 모집하는 육사의 경우 3,915명이 지원,평균 14.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남자는 13.7대 1,여자는 19.6대 1이다. 지난해는 모두 3,310명이 지원,평균 12대 1이었다. 200명(남 180명,여자 20명)을 모집하는 해사는 지난해 3,104명에 비해 2,748명이나 많은 5,852명이 원서를 내 평균 29.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육·공사에 이어 올해 처음으로 20명의 여자생도 지원자를 모집한 결과 모두 1,128명이 지원,56.4대 1의 기록적인 경쟁률을 나타냈다. 공사도 230명 모집(남자 210명,여자 20명)에 3,270명이 응시해 평균 경쟁률은 14.2대 1이었다.
  • 정책직 신설에 일부선 부작용 우려(대전환 공직사회:6)

    ◎공무원의 정치권 줄대기 해소가 관건/원칙적 지지­행정생산성 높이고 능력위주 발탁 가능/우려의 여론­정치권과 유착 강화.사기 저하·조직 약화 요즘 정부청사 주변 고위직 공무원들 사이의 화두는 단연 ‘정책직’ 신설 여부다.지난달 말 중앙부처 3급 이상 고위직을 계약직으로 바꿀 방침이라는 정부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3급 이상 간부직은 물론 3급 승진을 기대하고 있는 서기관이나 사무관들도 예외일 수 없다.공·사석을 가릴 것 없다.직업공무원 제도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인 만큼 관심은 클 수 밖에 없다. 공직사회에 경쟁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유능한 민간기업의 인물도 공직에 채용할 수 있다는 취지에 반대하는 공무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고 목소리도 적지않다. 공무원들이 소신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자리를 지키려고 정치권에 줄을 대는 현상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다시말해 공무원들을 ‘반(半)정치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국무총리실의 육사출신 40대 초반의 한 과장은 “소신행정이 사라지고 기관장에게 잘보이려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인기위주의 정책개발에 치우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무엇보다 정치권 줄서기 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공직 10년째를 맞는 전남도청의 한 4급 공무원도 “생산성을 높이고 능력위주로 공직사회가 자리잡을 수 있으나 줄서기 가능성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행정고시 출신의 대구지역 서기관은 “공무원들의 사기저하가 우려되며 조직의 안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무원들의 우려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파행인사 현상이 심했던 까닭이다.6·4 선거에서 극심했던 편 가르기와 줄서기가 단체장 취임 이후 파행인사로 나타난 것이다. 정책직의 도입은 지방 공무원의 정치권 줄대기 현상을 중앙으로 파급시키는 역기능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다.이런 역기능은 신설될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중앙부처 한 간부는 “인사위원회에서 3급 이상 간부들의 인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이 간부는 “국과 과 단위의 이기주의가 생겨나 횡적인 업무 협조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1년짜리 국장의 명령과 지시를 과장과 계장이 수행하려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여권 일부에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정책직 제도는 준정치인 공무원을 만드는 것으로 직업공무원 제도를 뒤흔드는 제도”라며 “전면도입은 상당한 위험요인을 안고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책직’이란 무엇인가/3급 이상 고위공무원 계약직으로 전환/1978년 미 카터 대통령 시절 처음 도입 3급 이상 공무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정책직’은 미국의 고급공무원제(SES)에서 따 온 것이다.미국이 SES를 도입한 것은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극심한 부처간 할거주의의 폐단을 없애고 민간전문가를 공직에 초빙,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다.민간전문가를 고위직에 채용하려면 기존의 봉급체계로는불가능한 까닭에 별도의 봉급체계를 갖춘 SES제가 필요했던 것이다.게다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행정부 고위직에 앉힐 수 있는 제도가 절실히 요구됐다. 현재 미국의 SES대상자는 모두 8,200명.중앙부처에서는 국방부가 1,488명으로 가장 많고 보건부(653명),재무부(601명),NASA(577명) 등이다. 영국과 호주 등의 영연방 국가들도 미국의 SES제도를 뒤따랐다.미국은 공무원이 3회 연속 불만족 평가를 받으면 자동면직되도록 준계약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영국은 한발 더 나아가 완전 계약제를 채택한 점이 특징이다. SES제도의 가장 큰 단점으로는 공무원의 정치성향이 꼽힌다.미국에서도 SES제도가 ‘공직사회의 경마싸움’이라는 비아냥 소리가 있다.베팅에 따라 배당받는 자리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 親日의 군상:2/국립묘지에 묻힌 日帝경력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성지’에 일제고관·황군장교까지/‘과거’ 검증 안된채 안장… 끝없는 논란/백강 선생 “나는 국립묘지 싫다” 유언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에 묻지말고 생사를 같이한 임정요인들이 누워있는 효창원 묘역에 묻어달라.” 지난 93년 1월 타계한 마지막 임정요인 백강 趙擎韓 선생의 유언이다. 백강 선생은 왜 남들이 다 묻히기를 원하는 국립묘지 안장을 굳이 거부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국립묘지에 누워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립묘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모신 민족의 성지다. 그러나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사 중에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력한 인사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논란이 있어왔다. 국립묘지 내에서 친일단체나 일제 통치기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묻혀 있는 묘역은 국가유공자묘역,애국지사묘역,장군묘역 등 세 곳.국가유공자묘역에는 제1묘역의 白樂濬·陳懿鍾·白斗鎭·嚴敏永·黃鍾律·李殷相·李瑄根 등 7명,제2묘역의 趙鎭滿 등 모두 8명이 묻혀 있다. 문교장관과 참의원 의장을 지낸 白樂濬은 1942년 4월 창간된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陳懿鍾은 경성제대를 나와 일본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도청에서 농무과장을 지냈다. 白斗鎭 전 국무총리는 도쿄제대 상대 출신으로 조선은행에 근무했다. 3공때 장관을 지낸 嚴敏永과 黃鍾律은 모두 일본 규슈(九州)제대 출신으로 嚴씨는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하여 군수를,黃씨는 만주 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재정국에서 관리를 지냈다. ‘민족시인’으로 일컬어지는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신문 ‘만선(滿鮮)일보’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문교장관,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李瑄根은 만주국의 국회격인 협화회(協和會) 간부를 지낸 기록이 있다. 3·4대 대법원장을 지낸 趙鎭滿은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에 합격,해주지법 판사와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들이 해방후 국가에 공로가 있다고 하지만 일제 당시의 행적을 무시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데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애국지사묘역은 일제하 항일투쟁 공로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수여(추서포함)받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모신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친일의 ‘흠’이 있는 인물은 근처에도 가서는 안되는 ‘성역(聖域)’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친일단체 등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 묻혀 있다. 金鴻亮(77년 독립장),崔昌植(83년 독립장),李鍾郁(77년 독립장),尹益善(62년 독립장),李甲成(62년 대통령장) 등이 그들이다. 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 林鍾國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金鴻亮은 황해도 도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냈고,崔昌植은 그의 아내 金元慶(63년 대통령표창)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친일 교민단체인 계림회에 소속돼 친일활동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승려로서 3·1운동에 가담했던 李鍾郁은 국민총력연맹 위원으로 불교계 친일에 가담한 일이 있으며 尹益善은 경성부(현 서울시) 원서정(苑西町) 총대(總代·지금의 동장에 해당)와 경성부 북부정회 총대회 간사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해방 후 초대 광복회장을 지낸 李甲成은 상하이에서 이와모토(岩本正一)라는 창씨명으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임정 서무국장 林義鐸,유관순 열사의 오빠 柳愚錫씨 등의 증언)이 그의 생전에도 끊이지 않았었다. 장군묘역에는 1,2,3묘역 모두에 구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누워 있다. 제2묘역의 육군중장 李應俊,제3묘역의 육군중장 李鍾贊과 육군대장 출신으로 국무총리·국회의장을 지낸 丁一權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군 ‘창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李應俊은 일본육사 26기 출신으로 해방당시 일본군 대좌(대령)였다.한국군 재임시 군의 정치개입을 반대,‘참장군’으로 불리는 李鍾贊 역시 일본 육사출신(49기)으로 일본군 공병소좌(소령)로 남방전선에서 해방을 맞았다.3공 당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丁一權은 만주 봉천군관학교 5기 출신으로 朴正熙 전 대통령(신경군관학교 2기 출신·국가원수묘역 안장)과 같이 만주군에서 장교를 지냈다.지난 2월 대전국립묘지(장군묘역)로 이장한金昌龍(사후 중장 추서) 전 특무부대장은 만주 관동군 헌병대에서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장군묘역에 있는 사람들은 건국후 창군과 6·25및 그 이후의 공로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일제 당시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입대하여 ‘황군(皇軍)’의 장교를 지낸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애국지사 묘역에 묻힌 선열들/일제 항거 애국열사 등 1,341위 모셔/임정묘역엔 박단식·양기탁 선생도 국립묘지내에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모신 곳은 애국지사묘역(대전분소 포함)과 임정묘역 두 곳이다.이곳에는 한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의분을 참지 못해 자결한 순국선열을 비롯해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열사들이 안장돼 있다. 98년 8월 현재 현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총 1,341위(대전분소 1,136위 포함),임정묘역에는 최근에 유해를 봉환한 양기탁(梁起鐸) 선생 등 16위의 애국선열이 안장돼 있다.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애국지사들을 활동분야별로 보면,申乭石·李仁榮 등 의병장,李鍾一·洪秉箕 등 3·1운동 관련자,의거 당시 64세의 나이로 사이토(齋藤)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姜宇奎 의사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金相玉 열사등 의열투쟁가,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순국한 朱基徹 목사,외국인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암리학살사건의 진상을 전세계에 공개한 스코필드(한국명 石虎弼) 박사,여류독립운동가 南慈賢 여사,‘독립신문’을 창간한 徐載弼 박사 등 항일 독립운동계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총망라돼 있다. 93년에 조성된 임정요인묘역은 임정관계자중 국무위원급 이상의 요인들을 별도로 모신 묘역. 이곳에는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朴殷植 선생을 비롯해 국무령을 지낸 李相龍·洪震·梁起鐸 선생과 임시정부 의정원(국회에 해당) 의장을 지낸 金仁全 선생·孫貞道 목사,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盧伯麟 선생,국무총리 대리겸 외무총장을 지낸 申圭植 선생,국무원 통위부 총장 金東三 선생,그리고 임정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趙擎韓(94년 3월 애국지사묘역에서 이장함) 등이 안장돼있다. 임정의 주석을 지낸 백범 金九 선생과 尹奉吉·李奉昌 의사 등은 효창원묘역에,임정 내무총장을 지낸 申翼熙 선생 등은 수유리 묘소에 안장돼 있다. 현재 동작동 국립묘지가 만원이어서 최근에 작고한 애국지사는 대전 분소에 안장되고 있다. 柳寬順 열사와 같이 후손이 없는 무후(無後)선열들은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를 봉안해 놓고 있다. ◎‘친일의 군상’ 자문위원 12명 위촉/객관·공정성 검증… 반론권 보장합니다 서울신문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기획한 ‘친일의 군상’시리즈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12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자문위원은 역사학자·변호사·종교가·언론인 등 관계분야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 모든 글은 자문위원들의 검증과 명예훼손 등 법적인 검토를 거쳐 게재됩니다. 자문위원은 인물 선정에도 참여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시리즈의 내용을 종합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할 것입니다. 서울신문사는 특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자문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金祐銓 전 광복회 부회장 ▲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韓相範 동국대 교수(법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 교총연합회 공동회장) ▲李泰鎭 서울대 교수(한국사) ▲姜昌一 배재대 교수(한일관계사) ▲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은경 광운대 강사(정치학) ▲林大植 외국어대 강사(한국사) ▲金三雄 서울신문 주필(친일문제연구 가) ▲崔光一 서울신문 제작이사
  • 전북/全大 이끄는 5大 파워엘리트(지방정부 싱크탱크:14)

    ◎고시파·비고시파·육사파·해외파·영입파/특정학맥·출신지 우대 배제… 능력이 최우선/조직개편 등 아이디어 짜기 골몰/외국투자·기업 유치에 전력 투구 전북 도정을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 군(群)을 단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특정 학맥이나 출신지 등 어느 한 곳으로 무게중심이 쏠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柳鍾根 지사를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는 엘리트 관료들을 들여다 보면 ‘고시파’와 ‘비고시파’,군(軍)에서 넘어온 ‘육사파’가 고루 섞여 있다. 여기에 외국에서 공부한 ‘해외유학파’와 선거를 계기로 공직에 들어온 ‘영입파’가 적당히 섞여 있는 형국이다. 고시 출신으로는 지방자치 국제화 재단에 파견나갔다가 이달초 복귀한 韓桂洙 기획관리실장(51·17회)이 지사의 핵심 브레인이다. 그는 요즘 퇴출대상으로 떠오른 지방공사 군산의료원 문제의 해법을 찾느라 머리를 짜내고 있다. 여기에 韓실장과 같은 시기에 행자부에서 복귀한 朴聖一 기획관(43·23회)이 좋은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또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全熙宰경제통상국장(48·22회)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柳지사의 외국 기업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조직개편 소용돌이 속에서도 최근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이밖에 柳成葉 문화관광국장(38·27회)과 李愚喆 회계과장(44·25회),柳基赫 세정과장(45·27회) 등도 지사로부터 신임이 두텁다. ‘비고시파’ 중에서는 요즘 도의 조직 개편 작업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는 朱尤哲 내무국장(57)이 핵심 참모다. 한동안 한직을 떠돌기도 한 그는 최근 지사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면서 徐亨樂 행정부지사(명퇴신청)의 후임으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다. 또 임명직 순창군수·도청 공보관 등을 역임한 姜仁馨 민방위재난관리국장(52)과 조용한 성격에 원만하게 일처리를 하는 李基棟 보건과장(52),최근 승진한 全甲哲 감사실장(57) 등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조직 장악 능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육사파’들도 상당수 지사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이들 가운데 선두 주자는 朴鍾煥 보건환경국장(52·25기). 蔡奎晶 익산부시장(52·부이사관)도 朴국장과 육사 동기다. 柳지사의 남성고 후배이기도 한 蔡부시장은 朱국장과 함께 행정부지사 후보로 꼽힌다.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張秉淳 총무과장(46·31기)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곧잘 내놓는 張宰植 예산담당관(44·33기) 등도 역시 육사 출신이다. 오랜 외국생활을 해온 柳지사가 ‘해외파’에 거는 기대치는 매우 높다. 지난 94년 설립된 국제정책실의 책임자인 鄭會相 실장(47)은 미국 콜롬비아퍼시픽 대학원에서 수학한 재원이다. 또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劉哲洙 과학기술정책위원(43·물리학)과 全平九 국제정책자문위원(43·경제학) 역시 미국에서 오래 공부해 온 학자그룹. 탄탄한 이론에 외국어에 능통한 이들은 도의 최대 현안인 외국자본 유치와 해외통상과 관련된 도정의 자문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선거로 인연을 맺은 뒤 비서로 공직에 들어온 영입파는 대부분 30대의 소장파. 적극적인 성격의 朴榮錫 비서실장(36)은 비서로 들어왔다가 3년여만에 실장으로 발탁됐다. 羅世鍊(36·국제행사지원 2팀장)·廉基錫(37·생활지도계장)·李榮浩씨(37·정책지원팀) 등도 지사의 막중한 신임을 바탕으로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사에게 조언하는 인물들이다.
  • 경남(지방정부 싱크탱크:11)

    ◎고시출신 끌고 육사출신 밀고/‘1등 경남’ 이끄는 양대산맥/고시출신­이덕영 정무부지사 중심 기획 예산·인사권 장악.업무 아이디어·열성이 강점/육사출신­權炅錫 행정부지사 핵심.도정 실무 수행능력 탁월.추진력 갖춘 일처리 돋보여 경남도는 인구 300만명에 예산규모가 1조8,000억원에 달하며,재정자립도는 45%를 넘는 낙도(樂道)다. 서울·경기에 이어 전국 3번째 도세(道勢)를 자랑하는 경남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金爀珪 지사가 민선 2기를 출범하면서 지난달 10일 단행한 인사에서 중용된 고시출신과 육사출신이 그들이다. 金 지사는 이들을 양쪽 수레바퀴로 삼아 도정을 이끈다. 고시출신이 주요 정책을 입안하면 육사출신은 이를 시행하는 형태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고시출신은 李德英 정무부지사(52·행시 17회)를 필두로 權郁 기획관리실장(47·행시 21회)과 金雄悅 내무국장(50·행시 16회),朴完洙 경제통상국장(43·행시 23회),田壽式 비서실장(42·행시 24회) 등이 포진하고 있다. 도의 기획·예산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셈이다. 李 정무부지사에 대한 金 지사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다. 일을 시작하면 지칠줄 모르고,사무실에서 밤샘하는 것은 다반사다. 경영행정의 상징인 (주)경남무역 설립과 장목관광단지 조성사업은 물론 도가 추진하는 굵직한 사업들은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다. 다만 본인이 직접 방향을 잡고,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크로스 체크’가 안되는 것이 흠이다. 權 기획실장은 지사와 같은 고향,같은 대학출신으로 최측근이다.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일에 관한 한 공사를 확실히 구분한다. 탄탄한 행정이론으로 무장한 金 내무국장의 깐깐한 결재는 부하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워낙 꼼꼼하게 따지니까 뒷탈은 없다. 田 비서실장은 지난 93년 金 지사 부임 직후 구성된 ‘태스크 포스’를 이끌며 경영행정의 좌표를 설정했다. 기획관 시절 지사가 듣기 싫은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한때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다. 吳東浩 기획관(36·행시 28회)과 韓俓浩 농업정책과장(35·기술고시 20회),朴在賢 기획계장(40·행시 32회),鄭九彰 법무계장(33·행시 36회) 등은 실무적으로 이들을 보좌한다. 權炅錫 행정부지사(52·육사 25기)는 육사 출신 그룹의 중심이다. 權 부지사의 깔끔한 업무처리는 철저한 분석에서 나온다. 아무리 어려운 민원도 양자의 의견을 직접 들어 해법을 도출해 낸다. 직원들 사이에 “너무 따진다”는 불평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성품탓이다. 金泰雄 농정국장(52·육사 26기)은 덕을 갖춘 용장(勇將). 두둑한 배짱은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물러설줄 모르게 하고,어떤 경우에도 불평하지 않아 지사의 신임이 매우 두텁다. 嚴正仁 문화관광국장(47·육사 31기)은 고위 공직생활을 주로 보좌업무만 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참모자리에 올랐다. 활달하고 합리적인 일처리로 중용돼 최대 현안인 경마장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이들 외에 玄吉元 도시계획과장(48·육사 29기)과 朴宗欽 지역계획과장(48·육사 29기),李相均 행정과장(48·육사 31기),具道權 문화체육과장(44·공사 25기) 등도 전방에서 제몫을 하고 있다. 특히 朴甲道 공보관(47·육사 30기)은 金 지사의 ‘이미지 메이커’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 대구(지방정부 싱크탱크:10)

    ◎경북고 출신 우대 옛말/능력 전성시대 열리다/맏형격 고시 8∼9회가 주축/조직안정·화합·팀워크 중시/40대 초반 고시파 “대구 미래 책임진다” 대구시에는 향토 명문 경북고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이때문에 인사 때마다 경북고가 다해 먹는다라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제 경북고 학맥이니 하는 소리는 어느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개인능력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文熹甲 시장의 합리적인 인사스타일 때문이다. 특히 민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경쟁 원리가 도입되면서 학맥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우선하는 풍토가 새롭게 정착되고 있다. 경북고 출신으로는 朴炳鍊 행정부시장(행시 9회)을 비롯해 李鎭茂 정무부시장(행시 8회),曺璂鉉 상수도본부장(해사 25기),蘇一琫 의회사무처장,文永秀 경제국장(고시 21회)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행정고시라는 검증과 개개인의 업무능력으로 특정학맥 시비에서 모두 자유롭다. 朴부시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민선시대 흔들리는 내부조직의 안정과 화합에 한몫을 했다. 역대 부시장 중 가장 롱런(3년8개월)하고 있고 조직장악력 또한 뛰어나 군기반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李부시장은 대통령 경제비서관 대한투자신탁 사장 등을 거친 경제통으로 文시장의 경제정책 브레인. 특히 금융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외국어 실력 등으로 해외자본 유치와 지역기업의 해외수출시장 개척 등을 맡아 깔끔한 일솜씨를 자랑했다. 시정 핵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趙본부장과 蘇처장은 대구시의 터줏대감으로 이사관 승진후보 영순위로 꼽힌다. 文국장은 대구시의 경제정책을 발로뛰며 지역경제계에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과 함께 뛰어난 기획력으로 文시장이 가장 많이 호출하는 싱크탱크 중 한 사람이다. 李熙台 기획관리실장의 활약도 눈부시다. 원만한 성격과 부지런함으로 상·하로부터 모두 신임을 얻고 있는 李실장은 이번 조직개편 등 대구시 구조조정을 지휘,文시장의 개혁의지를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특히 중앙정부 예산 확보시에는 국회예결위 현장을 파고드는 등 열성파로 소문나 있다. 金基浩 교통국장(육사 28기)은 대구시의 난제중의 하나인 교통문제 해결사. 李薰 환경보건국장은 대구시에서 잔뼈가 굵은 마당발로 범시민적인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운동에 불을 당겼고 전국 최하위권에 맴돌던 대구지역의 대기 수질개선에도 한몫을 했다. 이들을 잇는 대구시의 차세대 그룹은 행정고시 출신의 40대 소장파 엘리트를 들 수 있다. 柳漢國 공보관(24회) 李眞根 기획관(21) 金淵水 특수사업기획단장(23) 姜聲徹 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24) 郭大勳 의회 전문위원(22) 權赫道 자치행정과장(25) 呂熙光 복지정책과장(26) 裵珖植 경제정책과장(26)등이 그들이다. 또 해외유학파인 李晋勳 국제협력과장(22) 李勝縞 중소기업과장(29)은 앞으로 21세기 대구시의 국제화를 이끌 재목으로 꼽힌다.
  • 대전(지방정부 싱크탱크:7)

    ◎비대전고·비고시출신 중용/대전의 힘은 ‘능력’서 나온다/김용관 상수도본부장­조직장악력 뛰어나/김현규 내무국장­합리적 일처리 돋보여/박성효 경제국장­경제정책 전반 지휘자/김정욱 도시계획국장­꿈의 도시 건설의 주역/이진옥 교통국장­몸에 밴 연구습관 장점 대전시를 움직이는 힘은 학맥도 지연도 아니다. 능력이다. 洪善基 대전시장을 둘러싼 파워 엘리트군(群)을 들여다 보면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洪시장은 대전고 출신이다. 지근거리에 동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핵심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인사 중 대전고 출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전고를 나온 朴城孝 경제국장(43)은 洪시장 경제정책의 핵심 브레인이다. 고시출신으로 능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대전시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첨단산업 단지 내 현대전자 유치,벤처산업 육성,대덕연구단지 기능과 시정의 접목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한양대 토목과 출신인 金正旭 도시계획국장(59)은 대전시 도시계획의 대부다. 정부 대전청사가 위치한 둔산 신도시 개발 등 대전 도시계획의 밑그림을 그가 그렸다. 청렴한 성격에 공정한 일처리로 신임이 두텁다. 한성신학대를 나온 劉相赫 도시계획과장(48)은 金국장을 이을 재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월 도시계획계장이던 그를 洪시장이 과장으로 발탁했다. 李鎭玉 교통국장(48)도 洪시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 인사다. 고졸 검정고시·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나와 석사학위까지 받은 ‘독학형’이다. 하지만 고시출신에 버금가는 행정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업무가 주어지면 몸으로 체험,연구하는 스타일이다. 金容官 상수도사업본부장(48)도 洪시장이 아끼는 핵심참모다. 충남고·육사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인다. 洪시장의 민선2기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고시출신인 金賢圭 내무국장(54)은 합리적인 일처리로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李昭榮 비서실장(54)도 빼놓을 수 없다. 민선1기 중반인 지난해 3월부터 비서실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시장 스케줄은 물론 각종 자료정리까지 도맡아 한다.실력파 계장(사무관)들도 정책 브레인역을 맡고 있다. 尹台熙 정책2계장(40)은 정책개발,李壽基 예산1계장(51)은 외자유치,鄭夏允 새마을계장(44)은 시민운동 및 자원봉사활동 파트를 전담하고 있다. ‘비고시·비대전고’ 출신인 이들은 수시로 시장과 ‘독대’하고 있다. 학계 인맥도 洪시장을 보좌하는 중추 그룹의 한 축이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책진단 역할까지 맡고 있다. 지역 학계의 대부격인 朴康壽 배재대 총장(60)은 문화·체육파트의 정책조언자다.洪시장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문화시민운동 추진협의회와 대전의제 21추진협의회 위원장직 등을 맡고 있다. 吳德成 충남대 교수(43·건축공학과)도 브렌인 중 한 사람이다. 洪시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WTA(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 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대전시 도시계획 문제에 대한 정책조언도 맡고 있다. 사회복지단체 대표인 金永大 대전개발위원회 위원장(67)과 韓万愚 대전상공회의소 회장(62)도 정책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시민대표격인 이들은 洪시장과 자주 만나 특허법원 유치 등 시단위 숙원사업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재전(在田) 부여향우회 회장인 尹正雄 대전 도시개발공사사장(62)도 洪시장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택지개발·물류단지·동물원조성 등의 업무를 대행,처리하고 있다.
  • 부실대학 퇴출/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광주예술대와 한려대에 대한 교육부의 폐쇄 계고조치는 이제 대학도 문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단국대 부도사태에 이은 두 대학의 강제퇴출은 교육사업도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 앞에서 예외일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99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지되고 1년간의 계고기간을 거쳐 최종 폐쇄결정이 내려질 두 대학의 운영상태는 사실 일반기업보다 더욱 심각하다.지난 95년 개교한 한려대는 6월말 현재 교사(校舍) 확보율 25%,교원 확보율 26%, 재정잔고 4만3000여원으로 대학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97년 개교한 광주예술대 역시 학생확보율 35%로 교육여건이 열악하다. 설립자가 같은 두 대학은 족벌체제로 운영돼 재단이사장과 이사가 설립자의 부인,친동생,동서 등 친인척이다.설립자 자신은 학생등록금과 국고보조금등 426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2심에 계류중인 상태다.이런 대학이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문제는 이번에 사실상 폐교명령을 받은 두 대학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부실대학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교육계 비리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일부 사립대학은 물론 국·공립대학까지 교수채용 비리등 온갖 파행을 보이고 있다.대학의 구조조정은 입시제도나 학사행정 개편 뿐 아니라 뿌리깊은 병폐를 치유하는 대수술을 통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진정한 교육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대학 부실은 학교법인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관계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에도 원인이 있다.한려대와 광주예술대의 경우 설립 당시 재원조달계획을 위조해 교육부에 제출한 것으로 이제야 밝혀졌다.설립자는 전남지역에서 3개 고교를 운영하다가 90년 이후 재벌이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듯 4개 대학을 잇달아 설립했는데 당국은 모두 인가해주는 잘못을 저질렀다.그 4개 대학중 이번에 퇴출되지 않은 두 대학도 재정잔고가 20만원 미만으로 정원감축 조치를 당했다.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하고 앞으로 대학 신설허가를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 폐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해당 학교의 학생과 교수들이다.그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강구돼야 한다.특히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가능한 한 최선의 교육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은 배려해야 할 것이다.대학 퇴출은 이제 시작이다.고등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앞으로 대학 선택에 신중을 기해 다니던 대학이 문을 닫는 불상사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 오사카총영사 尹逈奎씨/뭄바이총영사 都在承씨/니가타총영사 洪性和씨

    정부는 3일 주 오사카(大阪)총영사에 尹逈奎 국민회의 총재특보를 임명했다. 또 주 뭄바이(옛 봄베이)총영사에는 都在承 주 젯다 총영사를,주 니가타(新潟)총영사에는 洪性和 여권관리관을 각각 임명했다. ◇尹총영사=▲54세·서울 ▲고려대 정치학과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해외공보관 외보분석관 ▲주 일본 공사 ◇都총영사=▲56세·경북 달성 ▲서울대 행정학과 ▲주 애틀랜타 영사 ▲주함부르크 영사 ▲주 튀니지 참사관 ◇洪총영사=▲52세·서울 ▲육사 ▲주 삿포로 영사 ▲주 오사카 영사 ▲주 대만 참사관
  • 충남/대전·충남고·육사출신 11인(지방정부 싱크탱크:4)

    ◎道政 세계화 ‘3대 축’/대전고 출신→기획­金壽鎭 부지사 등 ‘道政프로그램’ 개발/충남고 출신→입안­白南勳 행정과장 정책흐름 꿰뚫어/육사 출신→추진­朴聲鎬 협력관 등 조직에 활력 공급 충남도를 움직이는 큰 축은 학맥(學脈)이다. 조직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전고와 충남고,육사 출신이 주류다. 沈大平 지사와 대전고교 동기인 金壽鎭 행정부지사와 고교 14년 후배 李明洙 기획관리실장 직무대리 겸 정책실장이 핵이다. 이들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 툭하면 쏟아지는 ‘독식’ 구설수에서 벗어나 있다.沈 지사의 민선 2기 개혁은 이들의 머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金부지사는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추진력도 있다. ‘방패막이’임을 자처하듯 沈지사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진압하는 전위대 역할을 맡고 있다. 육사출신인 兪德濬 내무국장도 조직을 안정시키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원만하고 무리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직원들이 잘 따른다. 고시 22회인 李실장은 탁월한 기획력이 장기. 갖가지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그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온다. 예컨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불우 이웃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도록 특별생계지원조례를 만들어 시행하자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를 곧바로 모방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인삼세계화팀’‘꽃박람회팀’ 등 프로젝트팀을 운영,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 한편 ‘도정 1,000일 프로그램’을 개발해 도정의 지침으로 삼게 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沈지사의 고교 8년 후배로 육사출신인 朴商敦 의회 사무처장은 앞으로의 역할이 더 기대된다. 집행부에서 보면 ‘아웃사이드’이지만 2년여간 매끄러운 일처리 솜씨로 의회와 집행부간의 가교역을 해냈다. ‘엘리트 의식’도 남달라 집행부에 복귀하면 행정의 질을 한차원 높일 적임자로 꼽힌다. 유일한 경기고 출신인 朴炅培 보건환경국장도 기획력이 뛰어나 李실장과 함께 도정 개혁의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朴漢圭 국장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수학한 유학파로 영어를 잘해 충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맡고 있다. 역시 육사출신인 朴聲鎬 국제협력관과 李相頊 전산정보담당관은 특유의 패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묵묵히 일하는 행정 전문가로는 白南勳 자치행정과장도 뺄 수 없다. 행정계와 기획계 등 충남도 요직을 두루 거쳐 도정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그는 지역 명문인 충남고 출신으로는 도내에서 가장 고위직이다. 농업 전문가는 37세의 南宮英 농정유통과장도 기술고시를 패스한 충남도 농정의 실력자다. 역시 대전고 출신이다. 빛나는 업무를 맡지 않고 있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온 韓永熙 감사실장(대전고·고려대)도 기획팀 못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충남도가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홍보가 잘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6·4 지방선거 전 산림공무원의 비리 등이 터졌을 때 언론의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조직개편에서 대변인 제도를 전격 도입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 하나회 장성 7명 퇴역/한직 밀려 계급정년 맞아

    한직을 맴돌던 하나회 출신 장성(소장)들이 계급정년을 맞아 무더기로 군복을 벗었다. 30일 전역식을 마치고 군문을 떠난 하나회 출신 장성은 육사 23기 동기생인 孫秀泰(전 종합행정학교 자문위원)·鄭井澤(전 연합사 군수참모부장)·朴永一 소장(전 BCTP선임관찰자) 등 3명과 25기인 崔鎭世(전 학생중앙군사학교 부교장)·陳炳國(전 특전사 부사령관)·李相善(전 군수사 정비처장)·劉秀在 준장(전 육본 대기) 등 모두 7명. 이들은 92년 소장과 준장으로 각각 진급했으나 계급정년인 6년동안 승진하지 못해 군을 떠났다.
  • 서울(2期 지자체 인사태풍:16·끝)

    ◎高 시장의 ‘날씬한 首都 만들기’/“단호하게”“원만하게”/깎고 줄이고 뺀다/지원부서 축소 결재라인 간소화 사업소 민영화/새달초 최대 인사 2,000여명 퇴출 외부 수혈 관심사 서울시는 1차 조직개편안이 마련되는 다음달초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현재 검토중인 조직개편의 방향은 기획 총무 등 지원 부서의 축소와 결재라인의 간소화 등 두 갈래로 정리된다.팀제와 인사풀제의 도입,산하 사업소 등의 민영화 내지 민간위탁 방안 등도 포함된다. 조직개편을 이끌고 있는 시정개혁위원회의 워크숍이 25∼26일 예정돼 있어 개편작업은 여기서 토론을 거친 뒤 결정돼 시의회에 넘겨진다.시정개발연구원의 보고서와 개혁위의 시안,국·실장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조율된다. 조직개편이 끝나면 절로 대대적인 인사가 뒤따르게 된다.특히 현재 공석인 국장급(부이사관 이상) 자리가 14개에 이르는 가운데 39년생의 퇴출이 확정될 경우 인사폭이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高建 시장은 취임 직후 李弼坤 행정1,金學載 행정2,申溪輪 정무부시장을임명하는 등 이미 개혁인사의 기본 틀을 짜놓았다. 조직개편안은 3실 13국 79과를 2실 9국 71과로 줄이는 것이 유력하게 거론된다.이에따른 잉여인력 2,000여명도 퇴출된다.또 1급인 관리관도 7명에서 2∼3명으로 줄이고 업무가 중복되는 7개의 기획관 자리도 없어지는 것이 확실시된다. 기획관리실은 기획조정실로 문패를 바꿔 행정1부시장 아래에 둔다.삼성 출신으로 조직관리의 전문가인 李부시장은 이 기구를 운용해 시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행정2부시장 아래 도시관리실을 신설,주택 도로 환경 등 도시계획 업무를 총괄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또 1급인 여성정책보좌관을 없애고 같은 급으로 정책보좌관을 두어 외부전문가를 앉히려 하고 있다. 내무국과 재무국은 행정관리국으로,보건사회국과 가정복지국은 보건복지국으로 합치고 주택국은 도시계획국의 일부를 흡수해 도시주택국으로 하는 안이 유력하다. 특히 교통 환경부문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교통관리실은 도로국과 통합해 도로교통국으로,환경관리실은 하수국과 합해 환경보전국으로 바꿀계획이다. 이번 인사에서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는 기획실장과 행정관리국장(현 내무국)에 누가 앉느냐 하는 것이다.인물난 속에 金太壽 재무국장과 金禹奭 보건사회국장이 거론된다.金재무국장은 인사과장 감사실장 등을,金보사국장은 산업경제국장 교통·재정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高시장이 7년 전 관선시장으로 있을 때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崔在範 하수국장,李相鎭 문화국장,金光市 정책기획관,崔昌植 지하철건설본부 기술차장,秦哲薰 신청사기획단장,林載五 성동부구청장도 주요 보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국장급 이상으로 영입되는 외부인사의 폭도 관심사다.李부시장과 申부시장이 영입작업을 한다.공보관의 경우 외부 영입보다 내부 발탁 가능성이 높다. 林載五 성동부구청장과 南相宇 용산 부구청장이 거론된다. 중·하위직의 승진 인사도 생각보다 폭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구청장들이 젊고 유능한 부구청장을 기용할 뜻을 내비치고 있고 그동안 적체된 인사의 숨통을 터 조직의 사기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청 간부와 부구청장간의 교류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고시 및 육사 출신의 약진도 예상된다.고시 출신은 金 정책기획관(14회)을 정점으로 崔永福 공보관(15회)과 金淳直 교통기획관,朴龍來 LA 서울관장(이상 18회),金興權 동경사무소장(19회),元世勳 공무원 연수원장(20회) 등 10여명이 거론된다. 육사 출신 중에서는 鄭圭台 강동 부구청장,金承珪 강서 부구청장,文秉權 중랑 부구청장 등이 선두그룹이다. 시 산하 공사 등 사업소는 민간 위탁과 민영화,공사화 등의 방식으로 개편된다.현직 공사 사장은 거의 교체되고 3급 이상 간부 5∼6명이 본청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 오늘 日 자민당 총재선거… 3후보 프로필

    ◎오부치­26세 정계입문 12선의원… 87년 입각/가지야마­舊육사 출신 9선의원… 비주류 선봉장/고이즈미­정치인 명문가 3세의원… 이단아 별명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가 24일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인간적인 면면에 관심이 쏠린다.개인적인 갖가지 비젼들이 대내외 정책 결정에 알게 모르게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은 올해 61세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와 동갑내기.와세다대 대학원 재학중인 26세때 아버지 고헤이(光平)의 뒤를 정계 입문한 이래 선거 때마다 당선된 12선 의원.87년에 관방장관으로 입각한 이후 오키나와 개발청장관,외상 등을 역임했다.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의 별명은 무투파(武鬪派) 혹은 강완(剛腕).72세로 구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43세 때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던 9선 의원.87년 다케시타 내각에서는 자치상을 비롯해 통산상,법무상,관방장관 등을 거쳤다.관방장관 이후에는 오부치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비주류의 선봉장이됐다.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은 조부와 부친이 의원 및 각료직을 역임한 정치인 명문가의 3세 의원.올해 56세로 게이오대를 졸업했고 72년 의원에 첫 당선됐다.후생상을 3번째 맡고 있으며 우정상도 거쳤다. 돌출성 주장과 발언으로 이단아라는 별명을 얻고 있지만 개혁에는 적합한 인물처럼 비추어지고 있다.
  • 해군 1함대 사령관 해임/간첩침투 문책

    ◎육군 68사단장·102여단장도 국방부는 16일 북한 무장간첩 침투사건과 관련,동해안 지역의 경계실패 책임을 물어 해군 1함대사령관과 육군 68사단장,102여단장 등 현지 부대장 3명을 보직해임했다. 이들의 상급 부대장인 해군작전사령관과 육군 8군단장에게는 지휘책임을 물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신임 해군 1함대사령관에는 해군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인 尹淵 소장(해사 25기),68사단장에는 육본관리참모부 관리처장인 李모 준장(육사 27기),102여단장에는 1군사령부 정보처장인 鄭모 준장(3사 2기)이 각각 임명됐다.
  • 경남(2期 지자체 인사태풍:2)

    ◎규모 크지만 ‘잔치’는 없다/기구 대폭 축소… 과·계장 승진 좁은문/시·군도 기구 축소/김 지사 행마에 어려움/명단 발표 10일께/정무부지사 이덕영씨 행시출신 초강세/도 핵심라인 장악할듯 金爀珪 경남지사는 최근 사석에서 “인사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벌이고 있는 대형 사업들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능력위주의 인사가 돼야 하지만 조직의 사기를 생각하면 연공서열도 무시할 수 없어 고민인 것이다. 도는 이번 기구개편에서 3국 5과를 축소한다.부이사관 3개와 서기관자리 5개가 줄어드는 것이다.여기에 시·군의 국장자리도 1∼2개씩 줄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외자유치를 위해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金지사가 귀국하면 7일 취임식을 마치고,2∼3일간 손질을 거쳐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유럽 방문에 앞서 확정한 것으로 알려진 부지사와 기획실장 인사에 나타난 지사의 의지와 기구개편 내용,그리고 공로연수 등으로 공석이 되는 자리를 눈여겨 보면 인사의 밑그림은 대강 그릴 수 있다. 우선 인사의 규모는 대폭이지만 승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로연수 대상이 당초 38년생 6명에서 39년생 4명이 추가됐지만,3국 5과가 축소돼 과·계장급의 승진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번 인사의 첫 단추인 부지사 인사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으나 權炅錫 행정부지사는 유임된다.부산고 출신으로 육사를 나온 權부지사는 꼼꼼하게 챙기는 타입이다.지사가 외자유치를 위해 해외에 나가 있어도 차질없이 안살림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金지사와 함께 해외시장을 누볐던 金勳 정무부지사는 물러 난다.金정무부지사는 공석인 경남무역 사장자리가 배려됐으나 본인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에는 李德英 문화관광국장(행시 17회)이 기용된다.고시출신으로 정년을 7년이나 남긴 李국장의 정무부지사 기용은 파격적이다. 李국장은 그동안 도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각종 사업을 직접 기획,저돌적으로 밀어부쳐 金지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처음 정무부지사 제안을 받고 완강히 거부하다 지사의 설득으로 최근 이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정무부지사 이 취임식은 도지사 취임식 하루전인 오는 6일 예정돼 있다. 기획실장에는 權郁 내무국장(행시 21회)의 승진으로 굳어졌다.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대를 나온 權국장은 金지사와 같은 고향,같은 대학 출신으로 2년여를 지근거리에서 모신 최측근이다.기획실장 자리를 놓고 경쟁관계였던 고시 선배인 李국장의 정무부지사 기용으로 쉽게 자리를 차지했다. 국장급은 부이사관 자리 3개가 비게 된다.우선 내무국장에는 金雄悅 환경보건국장(행시 16회)이 옮겨 앉는 것이 확실하다.이 경우 대형사업추진 전담기구 팀장인 정무부지사,예산을 쥐게된 기획실장,인사를 관장하는 내무국장,여기에 유임되는 朴完洙 경제통상국장(행시 23회)과 尹英 행정과장(행시 26회)등 고시출신들이 가세,‘인너서클’을 형성,도정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관광국장에는 행자부소속 부이사관과 서기관 2∼3명이 거명되고 있으나 하마평은 없다. 교육원장에는 부이사관급 부시장이 입성할 가능성이 크고 나머지 국장들은유임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鄭昌植 수산국장과 具龍好 민방위국장은 기구폐지로 용퇴해야 될 처지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는 건설도시국장.5년이상 장기집권(?)하고 있는 李在燮 국장이 과연 자리를 비킬지 여부. 후진을 위해 옮겨야 한다는 말들이 많지만 본인은 지사의 뜻에 일임하겠다는 의사다.자리가 비게 되면 후임에는 梁光雄 개발공사사장이 0순위다. 嚴正仁 비서실장이 그동안 고생한 보상으로 승진,창원 부시장으로 나가는 것이 확실시 된다.과묵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嚴실장은 시장들이 서로 요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기구개편에 따라 자리가 없어지는 吳敬三 감사실장도 부이사관으로 승진,부시장으로 나갈 것이 확실시 된다. 鄭永錫 의회사무처장도 이번 기회에 자리를 옮기고,孔昌錫 김해부시장,韓昌一 거제부시장,河三錫 양산부시장 등은 도청으로 전입돼 능력과 격에 맞는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점쳐진다.金泰塋 기획관과 吳元碩 공보관,愼熙範 총무과장 등도 고생한 댓가로 부단체장에 기용될 것이 유력하고,자리에여유가 생기면 고참과장 1∼2명 정도가 합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기관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지난 88년 사무관으로 승진된 고참중에서 올라오지만 朴在賢 기획계장(행시 32회)는 0순위고 나머지 1∼2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국이 폐지된 수산직의 사기진작을 위해 서기관자리 1개를 늘린다.崔辰洙 통영수산국장을 본청 과장으로 부르고,고참계장 2명을 승진시켜 불만을 달랠 것으로 보인다.
  • 공군사관 후보생 임관식/국방장관상 李太煥 소위

    제100기 공군 사관후보생 임관식이 2일 상오 朴春澤 공군참모총장을 비롯, 군 관계자와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열렸다. 지난 48년 5월 항공 1기가 임관한 이래 100기까지 50년동안 장교 2만여명이 배출됐다. 국방장관상은 李太煥 소위(23·서울대 경제학과졸),공군참모총장상은 閔晟喚 소위(23·서울대 건축학과졸),공군교육사령관상은 朴秉文 소위(26·경희대 약학대학원졸)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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