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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보트피플 대비해야(사설)

    조그만 목선에 목숨을 맡긴채 폭풍우를 헤치는 70여시간의 사투끝에 북한 동포 두가족 14명이 자유를 찾아 귀순해왔다. 제3국을 거쳐 귀순한 경우와 달리 직접 북한 신의주를 떠나 탈북한 첫 「보트 피플」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모은다.더욱이 아사자가 속출하고 6·7월이면 식량이 완전 바닥 날것이라는 북의 처참한 식량난 실상이 전해지고 있는 참이어서 북한내부사정과 관련,우리를 긴장시킨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해안선 통제에 헛점이 생길 정도로 북한의 주민 통제가 허술해진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정부도 바다를 통한 대규모 탈북사태에 대비,보호시설을 늘려나가기로 하는 등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이번 안선국·김원형씨의 경우 외화벌이 요원으로 중국을 왕래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운 계층에 속했고 미국 거주 친지의 도움으로 조그만 목선이나마 중국 배를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어서 가족을 대동한 집단탈출이 가능했다.적잖은 예비식량도 확보할 능력도 있었기에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다.따라서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일반 북한 주민들이 대거 바다를 통해 자유로의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씨 등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에도 황장엽 비서의 귀순 등 한국과 외부 사정에 대해 알고있는 주민이 늘어나는 등 불만이 고조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더욱이 황비서 탈북후 국경경비가 강화되고 중국측의 철저한 탈북자 검거·송환으로 육로 탈출의 길은 거의 차단된 상태다.따라서 어민을 비롯,소형 어선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출은 어짜피 늘어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탈북자 수용대책과 함께 북한 전반적 상황에 대한 종합대책,그리고 작게는 북이 탈북을 가장한 요원들을 대거 침투시키거나 실제 대규모 보트피플이 발생했을때의 안보차원 대책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동해항로 추가 개설 절충/오늘 남북적회담 재개

    ◎지원식량 육로수송은 북서 반대 북한에 대한 민간차원의 식량지원 논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 대표단회의가 3일에 이어 5일 상오 북경 샹그릴라호텔에서 속개된다.〈관련기사 5면〉 양측은 5일 민간차원의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인천∼남포간 항로이외에 동해안의 동해항로 등을 추가로 개설하고 서울∼평양간 양측 적십자사간의 직통전화 가동,국제적십자사 연맹 관계자를 통한 분배의 투명성 확인,지원물품에 대한적십자의 마크사용 등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중대사관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대한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도 『양측이 3일 회담에서 충분한 논의를 나눴다』면서 『5일 회담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은 판문점을 통한 육로수송과 대한적십자사 요원의 북한입국을 통한 분배과정 관찰 등에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92년8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결렬이후 4년9개월만에 재개된 이번 남북적십자회담에는 남측에선 이병웅 사무총장과 조명균,김장균 대한적십자 긴급대책본부 운영위원이 참가했으며 북한측에선 백용호 북한적십자회 중앙위 위원장을 비롯 정영춘,김성림 큰물피해복구위 위원이 참석했다.
  • 직통전화 재가동 등 합의 낙관/남북적십자 대표 북경접촉 전망

    ◎“4년9개월만의 첫접촉” 자체로 의미/「이산가족 상봉」 재론 물꼬틀지 관심 북경 남북적십자 대표단 회담은 북한에 대한 민간차원의 식량지원 확대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이를 위한 방안 및 절차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조기 타결이 예상된다. 3일 샹그릴라호텔서 열린 4년9개월만의 양측 적십자대표단 접촉도 조기타결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남측 수석대표인 이병웅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절차논의이기 때문에 양보하지 못할 것이 없다』며 좋은 결과를 점친 것도 이같은 맥락의 하나다. 이대표는 『민간차원의 지원확대를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실행하기 위한 남북접촉』이 회담의 성격이라고 밝혔다.「더 주겠다」는 남쪽과 빨리 받아가려는 북쪽 입장이 같다는 것도 낙관의 이유다. 구체적인 절차에 있어 상충부분은 있다.대한적십자사 표기 등 제공자를 알아볼 수 있는 상태로 식량이 북한주민에게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에 북측은 난색이다.군사용 등 전용방지를 위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북에 들어가 분배관정을 관찰하겠다는 것에도 반대다. 백용호 북측 수석대표는 회담직후 분배과정 관찰에 대해 『(국제적십자사)연맹에서 (모니터)하고 있는데 남쪽 참여가 왜 필요하냐』며 반대의사를 밝혔다.백대표는 『남쪽이 얼마나 주려고 하는 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지원물량 공표도 요구했다. 5일 회담에서 이런 문제만 해결되면 합의는 가능하다.남측이 3일 회담에서 제기한 『수송경비를 줄이고 효율적인 지원 및 수송을 위해 인천­남포항 기존 통로 외에 판문점 등 육로 및 동해안 몇몇 항구 등 제공 통로를 확대하자』는 의견에 북측은 명분상 반대하지 않고 있다.『제네바의 국제적십자사 연맹을 거치지 않고 대한적십자사측이 직접 식량을 전달하겠다』는 것도 수용 가능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접촉이 타결되면 북에 대한 민간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가능하다.이사무총장도 『이미 4백만달러 상당의 식량이 지원됐지만 기탁량이 기존 지원량보다 많다』면서 합의만 되면 보다 신속한 지원이 가능할 것임을 지적했다.그러나 지원방법은 양을 미리 밝히지 않고 『기탁이 들어오는대로 할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회담은 4년8개월 만의 첫 남북적십자 관계자 접촉이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한적측은 식량지원 접촉을 계기로 이산가족의 서신교환 및 상봉문제를 재추진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다.한국정부도 이번 계기를 정부간 접촉으로 격상시키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로 삼으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같은 의사가 실현될 지는 불투명하지만 이번 회담은 이같은 배경때문에 더욱 주목되고 있다.
  • 곡물 1만6천t 새달 북송/민간성금으로 구입 외국산 대상/통일원

    지난 95년 11월 민간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가 성금으로 구입한 외국산 곡물이 5월초 북한으로 보내진다. 통일원 이종렬 인도지원국장은 25일 『조계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각각 성금으로 구입한 중국산 옥수수 1천350t(1억8천7백만원 상당)과 1만5천t(19억원 상당)이 다음달초 육로로 중국 단동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국장은 『중국산 옥수수는 민간단체가 대북 식량지원차원에서 지원하는 첫번째 외국산 곡물』이라면서 『이는 대한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을 거쳐 북한적십자회측에 전달되므로 정부의 창구단일화 방침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 중국군 오늘 홍콩 첫 진주/선발대 40명

    ◎비무장으로… 주권회복 본격 착수 【홍콩 AFP 연합】 홍콩 주권의 중국 반환을 상징하는 첫번째 구체적인 조치로 중국 인민해방군 선발대가 21일 홍콩에 첫발을 내딛는다고 홍콩정청 대변인이 19일 발표했다. 정청 대변인은 소장급 장성이 지휘하는 40명의 해방군 선발대가 21일 하오 육로를 통해 군복을 입은채 홍콩에 들어오게 되며 무기를 휴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방군 선발대는 7월1일 정식으로 진주할 본진 선발대 2백명중 1진으로 홍콩주둔 영국군사령관 브라이언 더튼 소장의 영접을 받을 예정이다. 해방군은 지난 89년 천안문사태를 유혈진압해 홍콩주민들에게는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돼 왔으며 중국측도 이같은 홍콩주민들의 반감을 의식,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황 비서 육사영내 있는듯/비 바기오 이모저모

    ◎해발 1,500m 산위 깎아 만든곳… 천혜의 요새/“지난 17일부터 중무장 병력 병력 증원” 주민 증언/비 언론 “북 테러 우려… 체류기간 단축 바람직” ○…필리핀의 휴양도시 바기오에 머무르고 있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74)의 정확한 숙소를 알아내기 위해 매스컴의 끈질긴 추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가장 유력시되던 대통령 전용별장 보다는 사관학교 영내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바기오시 남동쪽 끝에 자리잡은 사관학교 지역은 필리핀 육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경찰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해발 1천500m 높이의 험준한 산위에 평지를 깎아 만든 곳이어서 왕복2차선의 꾸불꾸불한 육로와 인근 자오칸 공항외에는 진입로가 없는 천혜의 요새.이곳에 근무하는 한 장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곳에는 여러 채의 게스트 하우스가 숲속에 있으며 황비서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중 한 곳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장교는 또 오는 27일까지 황비서가 이곳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필리핀 외무부역시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서울로 갈 것』이라고 밝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부활절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7일 이전에 황의 서울 송환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 또 지난 19일 상오 사관학교 정문앞을 지나던 바기오시 출신 택시운전사 에르네스트(46)씨는 『좁은 길에 검정색 밴 4∼5대가 갑자기 길을 막고 지나가 마침 눈에 띈 군인친구에게 물으니 미스터 황이라고 말해줬다』고 주장. ○…이곳 사관학교에는 평소 외부관광객들과 생도면회자들이 하루 400∼500명씩 오가지만 일반인들이 갈 수 없는 제한 구역이 많고 평소에도 이 구역을 경비하는 군인들이 있어 황비서 체류에도 불구,눈에 띄지 않게 경비를 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그러나 지난 17일부터 사관학교 외곽구역에는 중무장한 테러대비 경찰병력이 증원돼 눈에 띄고있다고 인근 주민들은 밝히고 있다. ○…필리핀 주요 신문들은 20일 황비서의 체류를 허용한 필리핀 정부의 결정을 일제히 환영했지만 북한의 테러 가능성 등을 감안,황비서의 체류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 스타지의 칼럼니스트 막스 솔리븐은 『북한은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침투와 첩보활동 등에 숙련된 기술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면서 필리핀 정부는 황비서의 체류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고 강조.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국경마을 「삼차구」의 새바람(송화강 5천리:18)

    ◎통행증 없이 왕래… 변경무역 도시로/중·러 장사꾼 몰려 여관 식당 “우후죽순”/아낙은 옷장사 남편은 집안살림 신풍속도/조선족이 일군 옥토… 30년대 강제추방 시련도 중국에는 변방검사소가 모두 234군데에 있다.검문소 기능을 가진 변방검사소 가운데는 공항소 50군데,항구소 119군데,육지소 62군데,검사본소 3군데가 포함되었다.그런데 흑룡강성에는 15군데나 되는 변방검소가 들어섰다.중국의 대외개방정책에 따라 흑룡강성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중국에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로 나가는 길목일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곧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역이 흑룡강성이다. 흑룡강성은 특히 러시아와 3천45㎞나 되는 긴 국경선을 이루었다.그래서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러시아의 도시 20여개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또 중국에서는 국경지대 24군데에 통상구를 설치했다.그런데 조선족진인 동녕현에도 통상구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조선족 유일의 이 통상구는 동녕현 삼차구에 들어앉은 동녕통상구이다.수로와 육로를 통해 곧바로 러시아와 연결되었다. 그 동녕통상구가 있는 삼차구로 가기위해 목단강시에서 버스를 탔다.수분하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달리다 수분하 10㎞를 앞두고 마록구쪽으로 굽어들었다.험준한 산악도로를 넘어 벌판에 들어서자 동녕현성이 나타났다.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7㎞를 더 달려 삼차구에 닿았다.수분하와 후부투하가 합수하는 삼각지대라고 해서 삼차구라는 이름이 붙었다.흑룡강성의 강남으로 불리는 삼차구는 기후가 좋아 목화와 고구마농사가 잘 되었다. ○“흑룡강성의 강남”으로 불려 삼차구는 얼마전 만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변경지대였다.90년대 들어서야 개방되었다.변경통행증이 없으면 차에도 못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지금은 자유자재로 오갈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머리털이 나고 처음 밟아보는 땅이라 그런지 감개가 무량했다.더구나 우리민족이 일찍 개척한 땅이 아닌가.선조들의 개척정신이 새삼스럽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경북도 경원군 송하면 사람 이창호일가가 맨 먼저 삼차구에 들어와 첫 괭이를 박았다.지금으로부터 100년을 훨씬 더거슬러올라가는 1882년의 일이다. 1923년 기록을 보면 삼차구 조선족은 324가구에 2천125명으로 되어있다.동녕현 조선족은 1930년 1천40호 5천200명에서 1935년에는 1천433호 7천703명으로 늘어났다.현재는 9천여명으로 현 전체인구(2만1천명)의 48%를 차지했다.삼차구는 만주국 시절 얼마동안은 현 소재지이기도 했다.그러나 1937년 장고봉전투에서 진 일제가 구 소련의 요구를 들어주는 바람에 현 소재지를 동녕으로 옮겼다.일제는 국경선으로부터 10㎞이내에 마을을 두지않기로 한 요구를 받아들여 삼차구의 주민들을 강제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목단강,영안,해림 등지로 뿔뿔이 떠나버렸다.광복이 되어 다시 모여들었는데 바로 오늘을 사는 삼차구 조선족들이다.삼차구진 소재지 마을은 동녕현 소재지 못지않게 흥청댔다.길 양쪽에 음식점과 여관들이 촘촘하고 소학교 뒤 공터에는 장이 섰다.장마당에는 팔고사는 사람들로 늘 북새통을 이루었다.그리고 큰길로는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컨테이너 트럭과 택시들로 해서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마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다. ○1991년 조선족자치진 지정 국경은 마을 끝자락을 지나갔다.개울이나 다름없는 강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고,양쪽 다리끝에는 두나라 변경검사소가 자리잡았다.국경에 다리를 놓은 지도 10여년 밖에 안되었다.처음에는 중국쪽 주민들과 러시아쪽 주민들 사이에 물물교환으로 시작한 거래가 지금은 덩치가 커졌다.사사로운 민간무역이 통크게 발전하더니,80년대 두나라 친선관계가 강화되면서 개방이 급속도로 가속화했다. 삼차구는 1991년에 조선족자치진이 되었다.지난해는 주민 1인당 연간평균 2천476원을 올렸고,올해는 3천원을 내다보고 있다.농사수입보다 변경무역이 더 큰 수입원이다.동녕통상구가 열리면서 천지개벽과 같은 현실을 맞는 것이다.삼차구가 자치진이 되었던 해는 밀수가 판을 치던 때라 돈을 긁어모았다.밀수꾼들이 몰려와 헛간에도 손님이 들 정도여서 여관과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지금은 밀수길이 막혔지만,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국경의장사꾼은 대개 두 부류이다.밑천이 든든하면 옷장사고,작은 밑천으로는 채소나 과일장사를 한다는 것이다.옷장사는 여자들 몫으로 삼차구 부녀주임 박정금은 지난해 몇만원이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러시아 우스리스크까지도 멀지않다.드나드는 옷장사가 여자들 몫이라,부부역할이 뒤바뀌었다.그래서 남자들이 집안살림에 매달리는 가정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삼차구는 개혁개방 덕분에 살기좋은 고장이 되었으나 새 풍속도가 생겨난 셈이다.돈도 돈이지만 옛날 분위기에 비하면 삼차구는 별천지가 되었다.을씨년스러웠던 시절을 삼차구에서 보낸 백원만씨(63)의 말을 들어보면 삼차구는 무시무시한 국경지대였다.처음에는 교편을 잡다가 형이 사는 삼차구로 와서 경찰에 들어간 그는 오랫동안 파출소장을 지낸 인물이다. 『내 여기서 11년간 경찰질 할 때는 중·소관계가 팽팽했던 시절이었수다.구 소련땅에 친척이 살아도 간첩으로 몰렸지비.별별일이 다 있었수다.중·소관계가 악화한 1969년에는 밤낮 비행기가 뜨고 하루에도 몇번씩 공습경보가 내리지 않았겠슴등.국경넘어서 달리는 소련군 탱크 소리에 모두가 겁에 질렸지비.기리고 1979년 중국이 월남을 쳤을 때도 삼차구 코앞에까지 소련군이 집결했었수다』 그러고 보면 삼차구는 많이 달라졌다.문화대혁명 시기 러시아어를 하면 간첩이었는데,지금은 러시아어가 대접을 받고있다.백원만씨 딸도 노어전문학교를 나와 무역회사에 입사,시집밑천을 벌써 모아놓았다고 했다.
  • 현대상선 「함부르크 신화」(G7으로 가는 길:57)

    ◎물류관리 컴퓨터화로 유럽기지 구축/92년 독일법인 설립 운임·정책 독자 수행/현지인 대거채용… 컨테이너 서비스 질개선 『전속력으로 항진하라(Full Ahead)』 21세기 바다를 제패하기 위한 현대상선의 중장기비전(FA-2000)에 담긴 속뜻이다.바다는 넓고 경쟁은 치열하다.특히 집중화가 심한 컨테이너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으면 해운업계에서 도태되고 만다. ○컨테이너 분야 11위 도약 독일 북부 함부르크항은 유럽 제일의 무역항이자 서유럽 중심부와 북유럽,동유럽으로 통하는 물류중심지.항구에 도착한 연간 3백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규모의 컨테이너들은 전용 화물열차 등으로 서유럽 각국으로 배송된다.또 독일내 상업 중심지로 수송되고 북유럽은 이곳에서 다시 바다와 육로를 통해 운송된다. 화물열차들은 정해진 시각에 출발,목적지에 정확히 내려준다.이 때문에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미주의 내로라 하는 컨테이너사들은 수송수단 및 운송물량 확보를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일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은 바로 이곳을 전략적 요충지의 하나로 삼았다.컨테이너 분야 세계 11위인 현대상선은 이를 발판으로 2000년대에는 5위로 뛰어 올라 선진국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를 키우고 있다. 현대상선이 함부르크에 뛰어든 것은 지난 92년 4월 독일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제3자에 의한 영업대리점이 아닌 직접 경영하는 자영대리점 형식으로 출범했다.운임과 정책에서도 다른 선사와 손을 잡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비동맹선사로 진출했다.(해운업계는 투자가 심해 예외적으로 회사간 연합,즉 카르텔에 의한 동맹선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동맹선사들끼리는 운임 및 정책 등에서 협조하고 있다) 비동맹선사로서의 진출은 여러면에서 불리함이 따랐다.그러나 미국에서 쌓은 경험과 컴퓨터화된 물류정보시스템의 운영 노하우로 자신이 있었다. 이같은 경험과 노하우를 시행한 결과 서비스는 대성공이었다.연간 물동량이 초기의 1만TEU에서 불과 4년만에 2만TEU로 올라 기존의 선사들을 따라잡았다. 현대상선은 95년 연말에는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함부르크에 대규모 컨테이너 물류기지도 확보했다.이 물류기지를 운영해 오던 독일의 시디알사를 인수,본격적으로 영업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물동량 4년만에 2배로 함부르크항의 유로카이 컨테이너 터미널과 자동차로 불과 5분거리에 있는 이 물류기지의 확보는 현대상선의 또 다른 비약을 예견하는 대목이다.3천900평 규모로 20피트짜리 컨테이너 연간 2만8천개를 취급할 수 있다.이곳에서는 컨테이너의 배분과 수리기능도 맡고 있어 비용절감은 물론 컨테이너 서비스의 획기적인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물류기지 확보,비용절감 현대상선 독일법인은 현지인의 대거 고용으로 현지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을 시도하고 있다.이곳의 현대상선 주재원은 불과 2명뿐.지사장과 과장 1명이 독일인 72명을 지휘하고 있다.현지인은 함부르크사무소에 50명,브레멘에 15명,뒤셀도르프에 3명,프랑크푸르트에 4명이 일하고 있다.지난해 4월까지 한국인 50여명이 근무했으나 런던으로 본부를 옮겨 유럽의 전 항구를 통괄지휘하고 나머지 항구는 현지인을 고용,인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현대상선이 마지막으로 노리는 유럽석권 전략은 육상운송체계의 자체운영이다.유럽에서의 육상물류 경험은 아직은 미미하다.그러나 이미 확보한 함부르크 물류기지를 중심으로 경험을 축적한 뒤 투자비 문제를 종합검토,진출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독 지사장 문주일씨/“과감한 투자·현지화가 성공비결” 『함부르크에 지사설치와 물류기지를 확보한 것은 대담한 결정이었습니다.덕분에 이곳을 100년간 무대로 삼아온 일본의 대선사 NYK를 앞지르는 등 유럽에서 선진 해운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현대상선의 문주일 독일지사장(46)은 불과 진출 4년만에 세계적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된 비결은 과감한 투자와 현지화에 있다고 밝혔다.그는 10년간 미국에서 일한 경험과 영업 노하우로 지사 설립이후 줄곧 현대상선의 유럽 공략에 중추역할을 맡고 있다. ­함부르크항을 전략적 물류기지로 삼은 배경은. ▲함부르크항은 동구권 등 유럽 20개국과 독일 전역의 컨테이너를 집산하는 곳이다.미주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요충지이다.아시아와 유럽간 교역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제일의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경쟁력 강화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자체 육상물류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물류요충지인만큼 각국 해운업계간 경쟁도 치열할텐데. ▲해운분야는 일찍이 개방돼 글로벌화됐다.함부르크는 그동안 선진 해운사들이 주름잡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일본·대만·싱가포르 등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중국은 자국의 물동량만으로 단숨에 세계 5위에 오르기도 했다.앞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짧은 시간에 선진 해운업체와 경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여기에 오기 전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미국과는 달리 화폐단위와 각종 운송법규·세율 등이 나라마다 달라 힘들었다. ­독일에서의 급성장의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일본 NYK와는 달리 지점을 대리점이 아닌 자영대리점 형태로 설립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본국 직원들이 직접 현지인을 관리함으로써 서비스를 높이고 투자비도 크게 줄일수 있었다.이곳은 물류부문에서 미국보다 10년 정도 뒤져 미국처럼 이미 컴퓨터화한 물류관리체계도 큰 몫을 했다. ◎중장기 비전/“수송화물 다각화 등 100억$ 투입/2천년대 세계5위 해운사 도약” 현대상선은 컨테이너,벌크화물 등 일반화물 수송중심의 사업구조를 다각화,LNG선·유조선 등 탱커사업을 강화하고 LPG선 등 특수선 수송분야에도 신규로 참여할 계획이다.이같은 항만·물류부문사업 확충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적극 진출함으로써 2000년까지 현재보다 3배 이상 증가한 72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세계 5대 종합물류기업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2000년까지 5년간 이를 위한 총 투자금액은 약 1백억달러.165척의 신조선 건조에 89억원,전용부두 확보 등 항만·물류부문에 6억달러,컨테이너 박스 등 관련기기 구입에 10억달러 등이 각각 투자된다. 신조선은 1천500∼5천551TEU급 컨테이너선 30척,6천대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선 26척,LNG선 3척,유조선 8척,크루즈 1척,광탄석 30척,벌크선 35척,특수화학물질 수송선 24척을 건조한다. 특히 컨테이너선은 5천551TEU급18척을 새로 건조,북미와 구주,대서양항로에 집중 투입함으로써 글로벌 네트워크체제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항만·물류부문은 지난해 5월 대만 카오슝(고웅)에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개장한데 이어 2000년까지 미국 롱비치,타코마항 등 전 세계 10곳에 전용부두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 홍콩·함부르크에 이어 중국의 대련·천진·청도·상해 등에 컨테이너 물류기지를 설치하는 등 전 세계 주요 지역의 물류기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같은 사업확장 및 투자를 통해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37% 증가한 37억달러,내년에는 55억달러(97년 대비 42% 증가),99년에는 성장세가 다소 둔화된 59억달러(16% 증가)를 목표로 잡고 있다.
  • 정부 「핵폐기물」 무력저지 검토 안팎

    ◎“국익에 명백한 위배” 심각성 반영/국제기구 통한 외교적 해결에 초점/강행땐 폐기물선박 차단 다각 모색 정부가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이전을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사용까지 검토하는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반증하고 있다. ○해외반출 부당성 부각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만 핵폐기물 처리문제는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를 통해 핵폐기물 해외반출의 부당성을 부각시키면서 대만과 북한간의 밀약을 철회하도록 촉구하는 결의가 채택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정부는 특히 IAEA가 추진중인 「핵폐기물 관리의 안전에 관한 협약」이 조속히 제정돼 대만의 핵폐기물 반출이 국제협약에 따라 제재를 받을수 있도록 IAEA에 대한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정부는 이와함께 국내와 대만내의 환경단체와 그린피스등 국제적인 환경기구와도 연대해 대만과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며 압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그러나 국내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핵폐기물의 북한반출을 강행할 경우 자위권 보호차원에서 무력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공해상에서 핵폐기물 선박의 항행을 차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제법적인 문제를 검토중이다.영해가 아닌 공해상에서 노예선이나 해적선등 불법선박이 아니면 항행의 자유를 막을수 있는 국제법상의 명문규정은 없다.일부에서는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그같이 극단적인 조치가 초래할 파장을 우려해 신중한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핵폐기물을 실은 선박은 우리 국익에 명백히 위배가 되기 때문에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차단을 배제할 수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가고 있다. 대만에서 북한으로 핵폐기물을 실어나를수 있는 해상통로는 세가지 뿐이다.우선 대만에서 동중국해를 거쳐 서해를 통해 남포·해주항 등에 닿을 수 있다.북한이 반입한 핵 폐기물을 황해북도 평산의 폐광에 매립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통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이 경우 정부는 서해 공해상에서 핵폐기물을 실은 선박을차단하고 폐기물을 대만으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선박의 차단에는 해군보다는 해경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다만 핵폐기물을 실어나르는 선박의 국적이 대만이 아니라 북한이 될 경우에는 문제가 좀더 복잡해질수 있다. ○국제법적인 문제도 검토 두번째는 대만에서 동중국해를 거쳐 대한해협을 통해 원산항 등으로 들어간뒤 육로로 평산에 닿는 방법이다.이 경우에는 대만해협의 공해상에서 핵폐기물 운반선을 차단할 수 있다.핵폐기물 운반선의 세번째 통로는 대만에서 동진,태평양으로 나가 일본을 크게 우회한뒤 쿠릴열도와 라 페루스 해협을 통하는 등 복잡한 항로를 택하는 방법이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허락없이는 가능성이 낮다. 정부는 명백한 국익 침해에 대한 자위권 차원에서의 조치를 취한다하더라도 국제기구와의 협력,국제법적인 검토와 함께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양해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핵폐기물 제3국 이전의 부도덕성과 대만의 핵폐기물 이전을 묵인할 경우 국제적인 고립속에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또다시 어떠한 비상식적인 행동을 강행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등이 설득의 논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국경경비대 군관 “승진도 싫다”/밀거래 묵인대가 뇌물수입 짭짤

    ◎일선서 멀어지면 챙길 기회 줄어 최근 북한은 탈북자가 중국을 통한 탈출을 시도하면서 국경경비대의 인원을 늘리는 등 국경경비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 경비대내 기강확립 없이 경비병 숫자 늘리기로만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국경경비대내에서 뇌물수수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경비대의 뇌물수수는 주로 국경 밀무역자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으며 초급군관의 경우 밀거래를 묵인해주고 받은 뇌물로 TV등 가전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뇌물수수는 육로인 국경경비대뿐 아니라 해안경비대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해상을 이용한 밀거래를 묵인해주고 뒷거래를 하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이 만연함에 따라 해안·국경경비대의 군관은 승진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계급이 높아질수록 뇌물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사병은 외출승인시 군관에게 바칠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보따리장수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뇌물수수뿐 아니라 절취도 경비대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대원이 비번인 날을택해 근무자와 사전에 공모한 후 국경을 넘어 닭·오리·거위 등을 훔쳐와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중국측의 항의도 거세지고 있는데 항의가 접수되면 경비대에서는 사건당일 근무자등을 파악해 절도자를 색출하고 있으나 군관이 눈감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내외〉
  • 탈북 일가족 서울 도착­회령서 서울까지

    ◎“폭 20m 두만강 20리도 넘는듯”/북경 천안문서 사진 찍으며 관광객 위장/심천서 모터보트로 10분만에 홍콩 도착 『10분이 열흘보다도 길었다』­김경호씨 일가 등 17명이 북한을 탈출,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인 「북한판 엑서더스」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중국대륙을 가로지른뒤 마침내 심에서 홍콩으로가는 모터보트에 몸을 실었으나 사실상 최후의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트에서의 짧은 10분이 이렇게 더디게 만 느껴졌다. 함북 회령시의 김경호씨(61)·최현실씨(57)부부와 이들의 자녀등 일가족 16명과 이들과 함께 망명하기로 결정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김씨의 미국거주 장인 최영도씨의 조카) 등 모두 17명의 북한인은 10월26일 새벽4시 두만강을 안전하게 건넜다.마침 겨울이라 강물이 크게 줄어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강폭이 20∼30m에 불과한데다 수심이 어른의 허리밖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에 앞서 이들 17명의 일행은 새벽2시 회령을 떠나 2시간만에 두만강에 도착했다.일행은 두만강에서탈북자를 막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인 10군단으로 통칭되는 국경경비대에게 포착됐다.그러나 안전원 최영호씨가 『식량을 구하러 간다』면서 성의표시를 하자 경비병은 그냥 통과시켰다. 두만강을 건넌 이들 일행은 용정에 도착했다.김씨 부부,이들 부부의 다섯 자녀와 며느리·사위,5명의 손자·손녀,안전원 최씨등 17명은 남들의 이목과 북한의 체포조를 피하기 위해 2∼4명씩 나누어 심양으로 이동,친지가 살고 있는 집에서 김씨의 장모 최정순씨와 상봉했다.이들 일행은 이곳에서 장모 최씨가 준비한 중국옷으로 갈아입고 홍콩으로 떠날 기회를 노렸다.때맞춰 미국 뉴욕에 사는 최씨의 며느리 이정희씨가 현지인 가이드 2명과 함께 11월12일 심양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튿날인 14일 심양에서 북경행 열차를 탔다. 북경에 도착한 이들은 당일 북경서 광주로 내려가는 경광철도의 연결시차로 인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천안문 광장과 군사박물관등지를 돌며 사진을 찍는등 관광객 행세를 했다. 이들은 이날 밤10시19분 경광철도에 몸을 싣고 32시간의 긴 열차여행끝에 16일 새벽6시쯤 광주역에 도착,미리 대기시켰던 봉고버스편으로 심천으로 이동했다.그러나 마지막 관문인 심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수단을 선택하는데에 일주일이란 긴 기간이 소요됐다.결국 철조망을 뚫어야 하는데다 감시망까지 삼엄한 육로보다는 해로를 이용키로 결정한뒤 모터보트 2척을 확보해 11월23일 승선,해상국경선을 통과해 마침내 홍콩땅을 밟게 됐다. 홍콩의 해상수비대에 체포된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망명을 희망하는 북한주민임을 밝히고 상수감호소로 이송됐다.이들은 9일 하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서울행 대한항공 618편에 탑승했다.
  • 인도네시아 우중쿨론 국립공원(세계 문화유산 순례:17)

    ◎신의 손길이 머무는 위대한 태초의 땅/푸창 등 4개의 섬과 주변보다 12만551㏊/동·식물 1천여종 어우러진 “자연의 보고”/세계적 희귀종 「자바코뿔소」 유일 서식지 신이 태초에 만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인간도 여느 동물과 다름없이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땅.유네스코가 1992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인도네시아의 우중쿨론국립공원은 자바섬 서남단에 위치했다.공원은 우중쿨론반도와 푸창·파나이탄·한두룸 등 네 섬,주변 바다로 이루어졌다.면적은 육지가 7만6천214㏊,해역이 4만4천337㏊로 모두 12만551㏊나 된다. 푸창섬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7시쯤이었다.지난밤 11시쯤 출항한 통통배가 속도를 줄인다 싶어 선실에서 나오니 멀리 작은 섬이 보였다.상오7시라지만 남인도양의 아침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섬은 동화책 속의 무인도같았다.바닷가를 빙둘러 빽빽히 들어찬 열대수 때문에 섬 안이 들여다 보이질 않았다. TV에서나 보던 희귀한 열대 동식물을 야생 상태 그대로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우중쿨론국립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그 대신 1천종이 넘는 동식물,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곤충과 바다생물이 사는 자연의 보고이다.그 중에서도 뿔이 하나인 자바코뿔소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을 비롯해 세계적인 희귀종 수십가지가 서식한다. 아침을 먹는둥마는둥 하고 곧바로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밀림탐사에 나섰다.먼저 나루에서 섬 맞은편 초퐁까지 숲 한복판을 직선으로 통과했다.거리는 3㎞쯤.숲속은 꽉 들어찬 나무가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했다.주종인 헤아스 나무는 보통 밑둥이 어른 두세아름쯤 되게 굵었고,뿌리를 땅위로 마구 내뻗어 땅바닥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또 부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발밑이 늘 조심스러웠다. 숲속에 동물은 흔했다.한가족인가,사슴 여섯마리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슬금슬금 달아났다.힐끔 돌아보는 모습이 그리 놀란 것같지는 않았다.원숭이가 이나무 저나무로 옮겨다니며 숲속의 침입자를 구경했다.독수리가 「까각」,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남기고 후두둑 날아갔다.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다음날은 우중쿨론반도로 건너갔다.자바코뿔소가 가끔 눈에 띈다는 「코뿔소 식당」까지가 첫 코스였다.숲길은 푸창섬보다 훨씬 험했다.가이드 자이칸(50)은 칼로 나무를 찍으며 길을 터갔다.그러다 나무줄기 한토막을 잘라 입으로 가져가니 묽은 우유빛 액체가 흘러나왔다.가이드가 하는대로 그 수액을 마셔보니 찝찌름하면서도 먹을 만했다.자이칸은 『숲에서 나무 속살이나 수액만 먹고도 평생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 숲에서 잠깐 벗어났다 싶자 갑자기 200∼300평쯤 되는 풀밭이 나왔다.「물소광장」이라 이름붙은 이곳에서 물소의 일종인 「반텡」수십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반텡도 자바섬에만 사는 희귀종이다.그 곁에는 공작새들이 한가롭게 오갔다. 드디어 코뿔소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밀집 서생하는 「코뿔소 식당」에 도착했다.예전에는 이곳에서 코뿔소를 가끔 볼 수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주위를 둘러본 가이드는 최근 한달새 코뿔소가 다녀간 흔적이 없다고 말했다.강줄기를 따라 우중쿨론 깊숙히 들어가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추중쿨론강 하구에서 카누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강가로는 이름모를 열대수들이 물속에 잠긴 채 무성히 자랐고,주변은 괴괴했다.신음소리처럼 들리는 원숭이 울음이 왠지 두려움을 자아냈다.1.5㎞쯤 나아가니 강은 두줄기로 갈리는데 통나무를 쌓아 막아놓았다. 배에서 내려 발디딜 공간도 마땅찮은 밀림을 30분쯤 헤맸을까,그제서야 가이드가 볼멘소리로 실토했다.자신도 최근 반년동안 코뿔소를 본 적이 없으며 현재 자바코뿔소는 50마리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인도네시아정부에서 최근 간행한 안내서도 그쯤 추정했다).결국 자바코뿔소를 꼭 봐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중쿨론에서 나흘 머물면서 그 너른 자연을 깊이 체험한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럼에도 밀림 통과,코뿔소 찾아나서기,카누탐사등에서 보고느낀 자연의 위대함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바다 위 상공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다 해질녘이면 파나이탄섬으로 돌아가는 검붉은 박쥐떼도 보았다.1m쯤 되는 도마뱀과 원숭이·사슴은 곁에 있는 인간에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어울렸다.우중쿨론의 자연은 실로 아름다운 태초의 풍경이었다.인적이 드문드문하고 신의 손길이 그대로 남은 우중쿨론에서 인간은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그것은 자연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밀림탐사 현지가이드 꼭 필요… 낚시 등 레저시설 다양 우중쿨론국립공원을 보려면 웬만큼 고생할 각오는 해야 한다.교통편이 불편한데다 현지에서 밀림을 헤치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우중쿨론에 들어가려면 먼저 라부안이나 타만자야에 있는 공원 사무소에서 허가를 받는다.또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를 필히 받아야 한다.우중쿨론에는 탐사코스가 다양하게 있지만 일단 푸창섬을 중심으로 한 코스를 권할 만하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라부안까지는 육로로 3시간30분∼4시간쯤 걸린다.버스편은 수시로 있다.라부안에서 푸창섬은 75㎞,배로 5∼6시간 거리이다.푸창행은 월·금요일,돌아오는 배는 목·일요일등 주에 두차례씩 있다. 타만자야는 라부안에서 우중쿨론반도쪽으로 92㎞ 들어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이곳에서 푸창까지의 배편은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것뿐이다.따라서 출항시각이 일정치 않고 승선시간도 7∼8시간 걸리는 것이 큰 흠. 푸창섬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어 숙식은 해결된다.밀림 탐사말고도 해수욕·보트놀이·바다낚시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
  • 태국 아유타야(세계 문화유산 순례:8)

    ◎불탄 왕시·목잘린 불상… 「장엄한 폐허」/무자비한 버마군 약탈·파괴 흔적 그대로/14세기 동서무역 중심 아유타야왕국 수도/“참행에 신체변화” 불상은 하나같이 여체닮아 수코타이가 태국문화의 뿌리를 상징한다면 아유타야는 굵은 줄기라 할 만하다.수코타이왕국에서 싹튼 태국문화는 아유타야왕국(1350∼1767)때 번성했다.그 나라 수도가 방콕 북쪽 72㎞쯤에 있는 아유타야였다.강 세줄기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이 소도시에는 지금도 옛날 영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수코타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유타야의 중심부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왕궁단지가 자리잡았다.그곳에 들어서면 바로 왕사 「프라 시 산펫」이 있다.산펫은 그야말로 「장엄한 폐허」였다.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체디(불탑)들,바닥에 뒹구는 붉은 벽돌들.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못 없는 불상들이었다.경내를 다 둘러보아도 얼굴 있는 부처님은 두엇에 불과했다.미소짓지 않는 불상,팔다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상을 보노라니 가슴이 저렸다.이처럼 철저한 파괴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크메르제국이 샴족에게 쫓겨 앙코르를 버리고 달아났듯이 아유타야왕국은 이웃 버마군에게 멸망당했다.아유타야를 점령한 버마군은 산펫을 무자비하게 깨부수고 보물을 약탈했다.당시 이곳에는 1백70㎏의 금을 입힌 불상이 있었는데 이 금을 녹이고자 불을 질러 사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더라도 같은 불교도인 버마군이 불상의 목을 자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나마 우뚝 솟은 거대한 체디 3기가 마음을 위로한다.왕들의 유해를 모셨다는 이 체디에는 사방에 계단이 있다.올라가보았더니 널길(선도)입구는 붉은 벽돌로 막아놓았다.사방을 내려다보고 유네스코가 「아유타야의 폐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한 이유를 터득할 만했다.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이 저지른 파기와 약탈이었다. 왕궁단지를 나와 정문앞 「비하라 프라 몽콘보핏」에 들렀다.1956년 복원했다는 몽콘보핏은 사원이라기보다는 예불당에 속한다.그 안팎은 신도로 붐볐다.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사람들은 향과 초를 불상앞에피워놓고 연신 절을 하거나 또는 산통을 흔들며 갖가지 형태로 소원을 빈다.본당에는 태국에서 가장 크다는 청동좌불상이 자리잡았다.왕국 멸망때 버마군에게 약탈당했다가 절을 복원하면서 돌려받은 이 청동상은 마치 은진미륵이 앉아 있는 듯 거대하다. 화교의 절 「왓 프라차오 파난초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온통 한자로 뒤덮인(태국인은 한자를 상용하지 않는다) 이 절에는 크고 작은 불상이 워낙 많아 사람이 꽉 차도 불상의 수효에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주불은 앉은 키 19m인 좌상으로 온몸에 금을 입혀 휘황찬란하다.아유타야시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 불상이 1325년쯤 조성됐으니 파난초엥은 아유타야왕국보다 역사가 오랜 셈이다. 특이한 것은 불상이 하나같이 여체를 닮아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가늘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불상의 성을 따질 필요는 물론 없다.『수행을 많이 하면 그같은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이 절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의문이 풀릴 것이다. 아유타야에는 이밖에도 ▲프레스코벽화와 정교한 조각기둥들이 볼만한 「왓 수완다람」 ▲2.5㎏의 황금염주를 꼭대기에 얹은 80m 높이의 「체디 푸카오통」 ▲작은 앙코르 와트인 「왓 차이왓타나람」등 명소가 많았다.아유타야유적은 폐허가 된 곳이건 온전히 남거나 복원된 곳이건 모두 장엄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당시 아유타야는 세계무역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동서무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곳에는 영국·네덜란드·포르투갈등 서양배를 비롯해 중국·인도·아랍·일본배가 들락거렸다.무역선은 샴만(타이만)으로 들어와 차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아유타야에 진입했다.역사가들은 그때 아유타야가 런던·파리보다 더 큰 도시였으리라고 추정한다. 아유타야시 남쪽을 흐르는 차오프라야강가로 나갔다.아유타야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은 오늘도 흐른다.1시간남짓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많은 배가 물길을 따라 오갔다.쇳덩어리를 가득 실은 바지선이 지나간 뒤를 「통통통」소리를 내며 유람선이 따라간다.언제부터인가 고개를 내밀고 이방인을 쳐다보던 새끼악어는 눈길이 마주치자 냉큼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여행가이드/방콕서 버스·열차 수시로/체증심해 자전거관광 편리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육로로 1시간 거리이므로 방콕에 있으면서 하루쯤 시간을 내 관광할 만하다.에어컨버스와 열차편이 시간마다 있다.다만 교통체증이 심해 여유 있게 계획을 짜야 한다.아유타야시내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유적지간 거리가 걷기에는 멀고,그렇다고 꼭 차를 타야 할 만큼 멀지도 않기 때문.자전거대여점이 많이 있다.수코타이관광도 마찬가지. 특색 있는 관광으로는 선상유람이 있다.방콕에서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줄기를 따라 아유타야로 가 그곳에서도 뱃길로 유적지를 돈다.식사·음료를 제공한다.흠이라면 값이 비싸고(3만5천원쯤),유적지를 몇군데밖에 못본다는 점.유명호텔에서 매일 상오8시 출발한다.
  • 「코린도」와 승은호 회장:5(테마가 있는 경제기행)

    ◎칼리만탄의 전사들/“원목개발 역사는 현지인과의 투쟁사”/초기엔 한국인 지시 불만… 흉기 휘두르기 일쑤/작업여건 최악… 보급 안될땐 간장만으로 식사 코린도그룹의 칼리만탄(보르네오섬) 원목개발 현장. 이곳은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시속40㎞의 쾌속보트로 1시간,다시 열대림속으로 뚫려있는 임도를 따라 3시간(1백30㎞) 달려야 하는 오지다.아름드리 거목들이 굉음과 함께 골짜기 아래로 곤두박질하고,중장비들이 제 몸집보다 큰 원목들을 와이어로 감아올리는 작업이 요즘도 한창이다. 코린도의 원목개발 지역은 이리안자야(뉴기니섬)에 제주도의 3.8배인 70만㏊(21억평),칼리만탄에 40만㏊.원목개발은 40년 이상 자란,직경 50㎝ 이상된 나무들을 골라 베어내는 일종의 간벌이며 벌목과 임도개설로 손상된 곳은 새로 조림해 나간다.10만㏊정도 벌목권을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은 1천만∼2천만달러 정도. 베어진 원목들은 30∼40t씩 트레일러로 운송돼 뗏목형태로 강물에 띄워지거나 바지선에 실려(가라앉는 나무) 합판공장으로 옮겨진다.코린도가이들 원목으로 생산하는 합판은 연 70만㎥로 단일공장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큰 바지선에 보통 6천㎥의 합판이 실린다. 원목개발 초기에는 벌목작업에 한국인들이 투입됐다.때문에 현지인과의 마찰도 많았다.합판재벌의 역사는 현지인과의 투쟁사라해도 지나침이 없다. 본사 통관부 최윤영부장은 평소 뒷머리를 기른다.목뒤에 있는 깊은 칼자국때문이다.칼자국은 그가 바릭파판 현장에서 총무로 일할때 퇴사조치에 불만을 품은 현지인이 결재서류를 보던 그를 뒤에서 칼로 내리쳐 생겼다.초기에 현지인들은 작업지시에 불만을 품고 팬츠속에 칼을 숨겼다가 한국인들을 기습하기 일쑤였다.언어·문화·종교적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었고 특히 임상조사때 더 심했다. 『밀림 가운데에 원두막을 지어놓고 현지인과 한달씩 임상조사를 합니다.한국인 1명에 현지인 10명이 한팀이 돼 나침반 하나로 나무종류와 크기·등고선·임도개설 예상지역을 조사합니다.정글도로 헤쳐나가지만 워낙 밀림지역이어서 5백m를 나가는데 4∼5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스콜이라도 만나면 급류에 휩쓸려 길을 잃기도 합니다.그러면서 현지인과 많이 부딪쳤습니다』(이글신발공장 이순형 내수영업부장) 그는 자신의 입산일수(3백45일)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말라리아·밀림의 거머리나 야생동물들은 이들에게 위협요소가 아니었다.사소한 불만때문에 앞뒤 가리지않고 뒤에서 후려치는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85년에는 칼리만탄섬의 팡칼란분 원목현장에서 현지인이 한국인 현장관리자를 난도질한 사건이 있었다.당시 김모씨는 육로와 해상,헬기수송끝에 자카르타로 후송돼 대수술을 받았다. 마지막 원시림으로 불리는 이리안자야는 지금도 작업여건이 최악이다.파푸아뉴기니아와 붙어있는 이곳은 64년 인도네시아가 점령한 지역으로 지금도 보급이 안좋을 땐 간장과 마늘로만 밥을 먹는다.애사심 없이 버키기 어려운 곳이다.
  • 태국 수코타이(세계 문화유산 순례:7)

    ◎「타이의 새벽」을 지키는 거대한 불상들/가는 신세·뚜렷한 곡선의 이목구비/불교미술사 큰획 「수코타이 양식」 본향/“태국의 세종대왕” 람캄헹왕 신격화/학업성취 소원비는 학생들 줄이어 어느 민족이든 뿌리를 처음 내린 땅에는 민족문화의 원형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태국 중북부지방의 역사유적지 수코타이가 그랬다.「타이(자유)의 새벽」이라는 수코타이의 뜻에서 알수 있듯이 태국민족의 주류인 샴족의 역사는 이곳에서 시작됐다.아울러 불교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수코타이 양식」을 낳은 땅이기도 하다. 은 획을 그은 「수코타이 양식」을 낳은 땅이기도 하다. 수코타이유적은 역사공원으로 조성돼 있었다.그 중심부에는 옛날 수코타이왕국(1238∼1365년)의 왕성터가 자리잡았다.동서로 1.8㎞,남북 1.6㎞인 성벽 안에는 당시 건물 35채가 남아 있다. 먼저 「왓 마하탓」을 찾았다.앙코르 와트의 「와트」가 사원을 뜻하듯이 태국에서도 「왓」은 절이다.이 절을 본따 방콕의 왕궁사원을 세웠다고 하니,마하탓은 불교국인 이 나라에서 신앙의 고향인 셈이다.하지만 마하탓의 정경은 폐허나 다름없었다.곳곳에 남은 불상들은 좌상이건 입상이건 지붕도 벽도 없이,비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그밖에 보이는 체디(불탑)와 스투파(탑파)는 대부분 시커멓게 이끼를 뒤집어쓴 채 스러져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마하탓의 불상들은 아름다웠다.양옆으로 늘어선 기둥사이 높은 벽돌토대 위에 앉은 거대한 부처상은 더욱 그러했다.머리에는 첨탑형 보관을 쓰고 귓불이 유난히 늘어진 부처님은 슬쩍 미소를 머금고 나그네를 내려다 본다. 이 불상을 비롯해 마하탓의 불상들은 「수코타이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수코타이왕국에서 발달한 이 형태는 석가모니 생전 모습대로 불상을 제작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전체적으로 얼굴과 신체는 가늘고 길게,이목구비는 강한 윤곽의 곡선으로 표현했다.자세는 두가지로 구분된다.좌상은 오른손을 땅쪽으로 내민 촉지인을 하고 반연화좌로 앉았다.입상은 한쪽발을 내닫고 오른손을 가슴 가까이 든 「걷는 부처」형상이다. 마하탓을 나서자 서쪽으로 연못이 보였다.은지란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연못 복판에는 작은 섬이 있고,거기에 사원터가 남았다.「왓 트라팡응엔」이 있던 곳이라지만 지금은 토대와 기둥만이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오히려 수면을 뒤덮은 연꽃들,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크고 붉은 그 연꽃들은 차라리 요염해 보였다.이 연못은 람캄헹박물관 동쪽에 있는 금지와 한쌍을 이뤄 유적공원의 경관을 돋보이게 했다. 태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발길을 람캄헹왕 기념비쪽으로 돌렸다.삼족은 10세기 무렵 중국 운남성 일대에서 이주해 왔다.당시는 앙코르를 세운 위대한 크메르제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던 시대.그러나 크메르 세력이 약해지면서 13세기 초 태국 최초의 국가가 수코타이에 들어섰다. 람캄헹왕(1279∼98년 재위)은 수코타이왕국 제3대 왕으로,「태국의 세종대왕」이다.그는 크메르문자를 변용해 타이문자를 만드는 등 태국문화의 틀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왕은 또 성문 밖에 종을 매달아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에게 치게 했고,그 사연은 직접 처리했다.우리식으로 말하면 신문고이다.백성을 사랑하는 명군의 마음씀씀이는 우리나라나 태국에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람캄헹왕의 청동상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그 앞에는 양산을 쓴 모녀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다.15살쯤 됐을까,앳된 소녀는 뙤약볕 아래에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소녀는 아마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으리라.태국문화를 상징하는 위대한 왕은 신격화해 지금도 부처에 버금가는 신으로서 존경받는다.그는 특히 학업이나 문필의 성취를 이뤄준다고 소문나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왕의 기념비에는 『그가 다스릴 때 강에는 물고기가 그득했고,들에는 벼가 무르익었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그만큼 태평성대였던 모양이다.동상의 발치 20여m쯤에는 옛 모습을 재현한 종루)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다는 「왓 시춤」의 불상을 찾았다.폭 32m,높이 15m의 본당에 꽉 들어찬 이 불상은 「악마를 잡는 부처」로 알려져 있다.그래서인지 그 형상도 사뭇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얼굴은 마치 분장을 한 듯 명암 대비가 뚜렷하다.구미 관광객을 한떼 몰고 온 태국인 가이드는 『이 불상은 말하는 부처이며,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설명한다.관광객들은 무릎 위에 길게 놓인 오른손 손가락들을 쓰다듬으며,각자 소원을 빌고 있다. 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불교사상,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쓴 람캄헹왕의 땅 수코타이는 이름 그대로 「타이의 새벽」을 연 곳이었다. ◎여행가이드/방콕서 국내선 격일체 운항/외진 곳 많아 단체관광 안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북쪽으로 4백27㎞쯤 떨어진 수코타이시까지는 자동차로 8시간쯤 걸린다.따라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절약을 위해 좋다.양쪽을 오가는 항공편은 매주 월·수·금·일요일에 한편씩 있다. 여행일정에 맞지 않는다면 수코타이시에서 60㎞쯤 되는 피사눌록시까지 비행기로 가고,거기서 육로로 수코타이시로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방콕∼피사눌록간 항공편은 매일 네차례 있다.피사눌록도 고도로 유적이 많기 때문에 두곳을 모두 관광하는 계획을 짜봄직하다.항공료는 수코타이행 왕복이 2천3백40바트(7만6천원쯤),피사눌록행이 1천8백40바트(6만원쯤).태국의 화폐단위는 바트(Baht)로 1바트는 32.5원쯤 된다.방콕에서 피사눌록까지 가는 버스나 열차는 수시로 있다. 수코타이유적지는 수코타이시에서 서쪽으로 12㎞쯤 떨어져 있다.유적지에는 숙박시설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시내에 자리잡는 게 낫다. 수코타이유적지는 외진 곳이 많고 강도사건이 가끔 발생하므로,한둘이 다니기보다는 호텔측이 제공하는 단체관광에 끼는 것이 바람직하다.
  • 새벽 또 사이렌…거리엔 “알라”찬양/미 이라크 2차공격 이모저모

    ◎「비행금지구역」 확대,육군 추가배치 감시/이라크지 “적 무인조정기 1대 격추” 보도 ○…미국은 3일 1차공격 때 발사된 27발의 미사일이 당초 겨냥했던 이라크의 군사목표물들을 명중시켰다고 발표했으나 4일에는 목표물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아 2차공격을 가했다며 첫날 공격이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는데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등 약간의 혼선을 보였다.그러나 한 아랍 군사전문가는 『미국은 이라크남부의 군사시설들 위치에 대해 아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발사된 대부분의 미사일이 목표를 명중시켰음을 시사. ○…이라크 목표물에 대한 미국의 2차공격은 성공적이었다고 백악관과 미 국방부 양측이 4일 밝혔다. 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담당 부보좌관은 이날 NBC­TV의 「투데이쇼」에 출연,『국방부가 지금 종합적인 평가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초기평가는 긍정적』이라면서 2차공격이 성공적이었음을 밝혔다. ○돌 “클린턴 조치 지지” ○…클린턴 대통령의 이라크공격이 두달 남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에도 불구,야당인 공화당의 보브 돌 대통령 후보는 4일 「초당적 지지」입장을 발표.또한 뉴트 깅리치 미 하원의장(공화)도 『이번 조치가 후세인에게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면 처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면서 지지의사를 표명. ○중·아랍국 “우려” 표명 ○…미국의 2차공격과 관련,영국 외무부는 『우리는 처음부터 계속 정보를 받고있으며 미국 조치를 지지한다』고 성명을 발표.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 총리도 『같은 입장』이라며 지지를 표시.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우리는 이라크의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우려를 표명.특히 이집트 시리아등 아랍권 국가들은 『국제법 위반이다』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면서 반감과 불만을 표시. ○…서방의 한 군사소식통은 미국은 이번 2차 미사일공격을 통해 4일 하오 5시(한국시간)부터 발효되는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앞두고 이라크남부의 군사시설들을 「싹쓸이」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미국은 이라크군의 방공 능력이 미국 및 영국,프랑스의 전투기들을 위협할 지경이라고 우려해왔다. 한편 서방이 확대적용하려는 비행금지구역은 단순히 이라크기의 비행만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군이 육로를 통해 이들 지역에 이라크 지상군을 추가배치하는 것까지도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이라크가 이웃국가들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소지를 뿌리뽑으려 하고 있다고 또다른 소식통은 전했다. ○…4백만명의 시민들 대부분이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4일 새벽 바그다드시 곳곳에서는 공습을 알리는 경보 사이렌이 세차게 울렸다.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자동차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텅비어 있었고 이따금씩 회교 사원의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주문만이 새벽의 정적을 깨트릴 뿐이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긴 했으나 대공포를 발사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미국이 발사한 크루즈 미사일이 바그다드시 부근에 있는 목표물에 명중했다는 어떤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라크 관영 알 줌호우리야지는 4일 이라크의 대공포대가 남부지방 미산상공을 나는 「적 무인조정기」 1대를 격추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무인기 격추에 관해서 이라크 관영 INA통신과 미국의 이라크공격에 관해 지금까지 두차례 발표문을 낸 바 있는 이라크총사령부가 보도하거나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 파키스탄/모헨조다로:하(세계 문화유산 순례:6)

    ◎“살아 숨쉬는 마을”… 골목 양편 2층집 즐비/족장집은 대저택… 화려한 주거문명 흔적이/노동자구역 첫골목에 장명증 밝힌 자리도 태양의 도시 모헨조다로는 여러 사람들의 입을 빌려 예찬되었다.유적발굴 개척자인 영국인 고고학자 존 미셜경은 『이 도시에 오면 현대 산업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고 했다.역시 영국의 고고학자 멀티머 휠러경은 『이 도시의 설계자체는 뉴욕 브로드웨이를 연상시킨다』는 말로 모헨조다로가 계획도시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인구 3천∼4천명이 살았을 것이라는 모헨조다로는 스펙터클한 도시였다.파키스탄과 이탈리아 화가가 모헨조다로 전성시대를 복원한 그림이 아니더라도 실제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다.시민들이 계층에 따라 주거구역을 달리한 가운데 삶을 살아간 흔적이 역력했다.사제를 중심으로 한 지배계층,도시설계전문가·건축가와 같은 엔지니어그룹,상공인과 노동자 계층의 일상이 맞물려 돌아갔던 것이다. 요새유적(SD구역)에서 내려오면 좀 낮은 구릉에 지배계급주거지(DK구역)가 자리잡았다.이지배계층의 주거지역을 누비노라면 마치 지금도 사람이 살고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뜨거운 볕을 피하러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갔을 뿐,살아 숨쉬는 마을이라는 환상.그 환상이 사실인 것처럼 골목 양쪽으로 높은 벽돌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그리고 골목길 끝이 멀어서 입구가 바늘귀 마냥 작게만 보였다. 벽돌집들은 키가 컸다.높이가 6∼9m나 되는 이들 벽돌집은 처음부터 2층으로 설계되었다.벽 두께는 40㎝를 헤아렸다.바깥 불볕더위를 차단시키는 방서효과를 위해 두껍게 시공했을 것이다.이들 주택의 욕조나 부엌에서 내려오는 물은 반드시 하수도로 흘러 들어갔다.심지어는 2층에서 버리는 물까지도 벽속에 마련한 낙수시설을 따라 하수도로 배수되었다.골목길을 따라간 하수도는 꼭 뚜껑을 덮어 청소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모헨조다로 도시계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 하나가 바로 모든 길을 연결한 하수도시설과 쓰레기처리장인 것이다. 지배계급 주거지에는 「족장의 집」과 다른 큰 저택이 있다.모헨조다로 출토품가운데 유명한 우두머리격의 두상은 족장의 집에서 발견되었다.이 집에서 사제로 여겨도 좋을 사람의 두상이 나왔다고 해서 족장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족장의 집은 큰 저택과 함께 대단한 주거문명 흔적을 남겼다.안뜰을 지나 주택입구로 들어서면 집안으로 통하는 복도가 나왔다.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직 남아 2층건물이었음을 입증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이 지배계급 주거지 동쪽으로 돌아가면 현재까지 발굴한 유적의 경계선이었는데,너비 9m의 한길이 나있다.DK구역 1번가로 부르는 한길은 노동자계층 주거지 HR구역으로 이어졌다.초소처럼 보이는 높다란 건물로부터 시작한 HR구역 노동자계층의 집들은 비교적 작았다.오늘날 서남아시아에서 사용중인 구식화장실 모양의 공동화장실도 갖추었다.서남아시아인들의 오랜 관습인 물로 뒤를 닦는데 필요한 세정시설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자지역 첫 골목 입구 담벼락에는 장명등을 밝혔던 자리가 남아있다.장명등이라니,혹시 노동자들을 달래줄 유곽의 등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것은 상상에불과했지만,춤을 추어 사람들을 즐겁게 한 무희는 분명히 있었다.모헨조다로 출토품인 「춤추는 소녀상」은 존재를 뒷받침했다.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독립하기 전에 출토되어 현재 델리박물관이 소장한 이 청동제 조각의 소녀는 몸에 장신구를 걸쳤을 뿐 옷은 입지 않았다. 상공인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는 VS구역은 노동자지구 북쪽에 자리잡았다.노동자지구와 상공인지역(VS구역)사이의 십자로가 넓었다.모헨조다로에서 가장 길고 넓은 11m 너비의 도로가 교차했다.십자로를 건너 왼쪽 초입에 상공인지역 대표유적 염색공의 가게가 있다.가게 안에는 다섯 개의 원뿔형 구덩이가 설치되었다.쐐기형 벽돌로 만든 구덩이가 바로 염색시설이었다는 것이다.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각양각색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돌인장이나 토기,우두머리의 두상,소달구지,춤추는 소녀상 말고도 각종 장신구와 일상생활용품들이 출토되었다.청동기문명인들인 모헨조다로 사람들은 청동으로 각종 무기도 만들었다. 그러나 모헨조다로 문명은 계승되지 않은 채 단절되었다.이유는다른 문화에 지극히 배타적인 아리안족의 침입에서 비롯한 무차별 파괴와,인더스강 범람에 따른 도시의 수장등이 꼽혔다.그 모헨조다로의 비극은 노동자지역(HR구역) 한쪽 「죽음의 골목」에서 발굴한 많은 인골에서도 어렴풋이 나타났다. 모헨조다로 문명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다만 오늘날 인도 남쪽에 살고있는 드라비드족을 그 후예로 추정하지만,모헨조다로 사람들은 일단 역사무대 뒤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여행 가이드/카라치서 국내선 하루 2회/현지 숙박료 1인실 20불/KAL직항로선 11월 개설 모헨조다로로 가는 길은 멀다.카라치로부터 북쪽으로 5백40㎞.유적지로 가는 비행기와 열차,자동차 등의 교통편이 있다. 그러나 안전문제나 시간을 고려하면 육로보다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최상급의 열차도 자그마치 11시간이 걸린다.요금은 비행기와 별 차이가 없는 미화 23달러.항공편의 경우 카라치∼모헨조다로까지 1시간이 걸리고,요금은 편도 23달러다.쌍발 플로펠러기가 뜨지만,하루 관광이 가능하도록 파키스탄항공(PIA)이 매일 아침 저녁 두차례를 왕복운항하고 있다. 모헨조다로 유적과 박물관을 체계적으로 보기위해 묵기를 원하면 숙박도 가능하다.기본시설을 갖춘 레스트하우스가 모헨조다로에 있는데,요금은 하루 싱글 룸 1실 기준 20달러.유적관광 안내를 받고 싶으면 카라치에서 미리 여행사에 부탁해 두어야 편하다.카라치에서 믿을만한 외국인 상대 여행사로는 트래블 왈지스(TravelWaalji’s·51­6698)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카라치까지 가는 직항로선은 없기 때문에 도쿄나 방콕으로 나가 이용할 수 밖에 없다.PIA의 경우 방콕에서 주 4회,도쿄에서 주 2회씩 카라치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그러나 카라치는 서남아시아의 교통요충지이기 때문에 PIA말고도 다른 국적기들이 수시로 뜬다.오는 11월부터는 대한항공(KAL)과 PIA가 직항로를 개설할 계획.PIA서울지국(756­3883)은 이미 오래전에 개설되었다.
  • 한강∼낙동강 운하 건설/당정 의견조율 필요

    ◎“물흐름 막아 수질 악화”/일부 의원 반대론 제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가 건설될 수 있을까. 정부측의 타당성 조사와는 별도로 일부 여야 의원들이 운하건설 추진을 위한 모임을 결성키로 한 반면 신한국당의 일부 정책관계자들은 『꿈같은 얘기』라며 「불가론」을 펴고 있다. 당정은 내년초 정부측의 타당성 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최종 방침을 확정키로 했다. 그러나 모임을 결성한 여야의원들은 공청회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긍정여론을 확산시킬 방침이어서 마찰이 예상된다. 신한국당 이명박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경부운하건설추진위」는 8월 말이나 9월 초 발족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이규택·장영철·한이헌·최연희(신한국당),조홍규·김상우·김병태(국민회의),이병희·정상구·구천서·안택수(자민련),권기술·하경근 의원(민주당)등 여야 의원 47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추진위는 수시로 운하건설과 관련한 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등 연구작업을 벌인뒤 경부운하건설 입법개정안을 공동 발의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육로수송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어 물류비용을 줄이는 등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내륙운하 건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한국당 일각에서는 사업의 타당성과 현실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규모 운하를 건설한다면 30억t 이상의 막대한 용수가 필요하며 운하건설에 따른 갑문설치로 인해 물의 흐름이 지체돼 수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대 견해를 밝혔다.
  • 전인미답 처녀봉… 총모강리·릉보강리봉

    ◎한·중 합동원정대 정복 나섰다/해발 7천m… 히말라야 북쪽 중국쪽에 위치/28일 첫 발… 10월30일까지 두달간 정상도전 범접하기 힘든 산의 위용이 태고이래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다가 끝내 의지의 산사나이들에게 정복당할 운명이다. 이땅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연봉 가운데 7천m이상의 고봉으로서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처녀봉 충모강리(궁모강일·7,048m)와 능보강리(냉포강일·7,095m) 두 험산이 올 가을 한국·중국 합동원정대에 의해 정복된다. 히말라야산맥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특유의 장삿속으로 그동안 이 처녀봉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개방하지 않다가 최근 몇년 한국의 끈질긴 설득에 따라 합동원정을 수락,이달 28일부터 10월30일까지 두달동안 양국 동반등정을 하게 됐다. 이번 등정에 나설 산사나이들은 한국 16명,중국 13명이다. 남·북극과 함께 지구의 3대 극점을 이루고 있는 히말라야는 지난 50년 프랑스원정대에 의해 안나푸르나봉이 등정된 이래 64년 시샤팡마봉이 완등되기까지 14개의 8천m이상 거봉이 모두 정복되었으나 7천m이상 거봉 가운데는 3개만이 미답봉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최고 알피니스트 고상돈씨(알래스카 매킨리봉 원정중 작고)가 77년 에베레스트봉을 등정한 이래 19년만에 한국 등반대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이번 원정대는 중국 북경에서 발대식을 가진 뒤 한국 갤로퍼 승용차 8대를 나눠타고 정주∼서안∼난주∼격이목∼을 거쳐 티베트 사곡까지 5천㎞ 육로 대장정을 한 뒤 티베트 수도 라사 서쪽 1백50㎞에 있는 충모강리봉부터 2개봉 연속 등정을 하게 된다. 깎아지른 암벽과 설벽이 조화를 이루면서 금방 쏟아져 내릴 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충모강리봉에서는 4,600m 고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또 라사에서 서쪽 9백30㎞에 있는 능보강리봉에서는 고도 5,200m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3개의 전진캠프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한국 원정대 △명예단장 김영수 문화체육부장관 △단장 임철순 대한산악연맹회장 △총대장 고용철(64·대한산악연맹부회장) △원정대장 임문현(56·산악연맹이사) △등정대장 장봉완(44·산악연맹이사) △대원 이충식(31·서울연맹) 문용성(32·제주연맹) 방정일(27·서울연맹) 정인균(32·울산지부) 차진철(29·대구경북연맹) 황석연(26·충북연맹) 김영수(29·울산지부) 차예호(29·대전연맹) 유석재(27·서울연맹) 차요한(28·경기연맹) 이문길(26·전북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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