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육로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이의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소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분열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선사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41
  • 남북 장관급회담/ 이산상봉 제도화 ‘줄다리기’

    공동보도문 발표를 하루 앞둔 13일 남북은 제7차 장관급회담 제2차 전체회의와 다각적인 실무접촉 등을 벌여 기존 합의사항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날짜 잡기’에 머리를 맞댔다.“잘되고 있다.진전이 있다.”는 양측 회담 대표들의 말은 계속됐다.이산가족 상봉과 적십자회담 개최,제2차 경제협력추진위,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간 회담 일정 조율 작업은 일찌감치 마무리했다.그러나 서해교전 사태의 재발방지 등을 위해 남북 군사당국자간 회담을 상설화하자는 우리측 입장과,이에 소극적인 북한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 밤늦게까지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공동보도문에 뭘 담나 ◇이산가족 상봉- 가장 일찌감치 공동보도문 문안 조정에 들어간 분야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제4차 적십자회담.다음달 5일쯤 적십자회담을 연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서신교환 및 면회소 설치 등 이산상봉 제도화는 북측이 원칙적인 입장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소 소극적으로 나와 공동보도문에 넣을지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의견조율을 벌였다. ◇경의선 및 금강산 관광도로 연결- 경의선 연결은 우리측이 이번 회담에서 군사당국자회담 상설화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북측 역시 장관급회담을 제의하면서 먼저 거론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지만 막상 회담에 임해서는 공동보도문에 ‘군부에 건의한다.’는 식으로 하자는 입장을 밝히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나와 진통을 겪었다.양측은 공동보도문에 실무회담을 이달말 열고 다음달중 군사분계선에서 개성에 이르는 12㎞ 구간의 경의선 연결 공사 착공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또 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를 위한 임시도로도 다음달 착공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쌀지원과 경제협력- 남북한은 오는 25일을 전후해 제2차 경추위를 재개,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착공,임진강 수해방지 사업,금강산(임남)댐 공동조사 등의 내용을 담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쌀 30만t 지원시기와 관련해 경추위 이전을 요구하는 북측과 경추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자는 남측의 의견이 엇갈려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부산아시안게임 등 민간교류- 부산아시안게임 등 남북 사회·문화·체육 행사에 대한 정부 당국 차원의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여기에 지난 5차 장관급 회담때 제시된 9∼10월 남북 태권도 시범단의 순차 교환 등의 내용도 추가로 들어갈 전망이다. 김수정 박록삼기자 crystal@ ■군사회담 상설화 입장 우리측이 제의한 남북한 군사당국자 회담의 ‘상설화’가 합의의 실천을 강조한 이번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의제로 주목받고 있다.남북한은 14일 새벽까지도 이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군사당국자 회담 상설화는 서해교전과 같은 남북한간 무력충돌의 재발 방지를 보장하고,나아가 한반도 신뢰구축에 필수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우리측이 이번 회담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로 기대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북한은 첫날부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오히려 지난 4일 실무협상때 이미 상당부분 논의가 진행됐던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및 금강산 관광도로 건설을 위한 제6차 남북 군사실무회담 문제까지 “군부에 건의해야 한다.”며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였다.우리측이 단순히 군사 당국자회담일정을 잡자는 의제를 넘어서 ‘상설화’안까지 제의하자,사전 조율됐던 ‘군사실무회담’ 재개를 협상 카드로 돌려세운 것이다. 남측은 군사회담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고 있다.첫째는 경의선 철도 연결 등에 필요한 군사실무회담을 열어 ‘군사보장 합의서’를 발효시킨다는 것이다.이 부분은 북측의 소극적인 입장에도 불구,줄다리기 협상을 통해 이달 말 개최한다는 데는 남북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군사실무회담이 열려 경의선이 연결되고 휴전선 일부가 개방된다면,그 자체로 북한의 신뢰구축의지와 연결해 평가할 수 있다.하지만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근본적 틀을 만든다는 점에서 군사당국자간 회담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남측은2000년 9월 제주도에서 한차례 열리고 중단된 국방장관회담을 정례화할 것을 북측에 요구하고 있다.북한은 군부 동의를 재차 얻어야 하고,군사문제를 남북간 논의대상으로 기정사실화한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남측은 미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가 군사당국자 회담에 대한 북측 자세를 주시하고 있고 햇볕정책의 기반을 굳힌다는 의미에서도 이 안을 끝까지 밀어붙여보겠다는 입장이다.회담 관계자는 “의견이 많이 좁혀지고 있다.”고 말해 남북한이 14일 발표할 공동보도문에 이를 명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제하지 않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시론] 8·15 민족대회에 담는 소망

    8·15 민족통일 대회가 2001년 평양대회에 이어 2002년 서울대회로 열리게 되었다.6·15 선언 후라 해도 서해교전 직후에는 감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민족대회가 가지는 의미는 우발적이건 그렇지 않건 일단 일어난 충돌사건을 전에 없었던 유감표명으로 풀어냄으로써 성립하게 된 민족대회라는 점에 있다. 휴전조약 후 남북사이에 많은 충돌이 있었으나 솔직한 유감표명으로 문제를 풀어간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다시는 그 같은 충돌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앞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또다시 어떤 일시적 장애요인이 생긴다 해도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쉽게 풀어 가는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민족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 가는 것은 물론 정상회담·장관급회담 등 정부차원 회담이다.그러나 그것들이 가능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남북민간에 의한 통일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번에는 장관급회담과 민간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지만,앞으로는 설령 정부 차원의 접촉이나 회담이 어렵게 된경우라 해도 민간 차원통일운동이 그 실마리를 열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민족통일대회는 지난해 평양대회와 함께 남북의 많은 민간인이 접촉한다는 점에,그리고 특히 남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6·15 공동선언 후 남북 사이의 인적교류가 크게 활성화한 것은 사실이다.평양의 보통강여관에서 자고 아침 먹으려 식당에 가면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모를 정도로 남쪽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란다.그러나 6·15 공동선언 후 급증한 남북 사이의 인적교류,특히 민간교류는 주로 남쪽 사람이 북에 가는 교류에 한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민족대회가 북쪽 사람이 남쪽에 오는 인적교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100명의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오고,앞으로 남북축구대회 및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많은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오게 되었다.특히 아시아경기대회에 응원단이 온다니 북쪽 사람이 남쪽에오는 인적교류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말이 같고 풍습이 같은 동족이지만,남북 사이에는 분단 이후 오랫동안인간적인 진솔한 접촉이 거의 없었으며,그 때문에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겉치레가 앞서게 된다.그러나 몇 번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서의 인간적 신뢰가 쉽게 생기고,동년배면 술자리라도 만들고 말을 놓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체제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을 한 꺼풀만 넘어서면 그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 있고 동족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민족대회는 100명의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와서 동족으로서의 인간적 교류를 가진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짧은 기간이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 다만 인간으로서의 교류,동포로서의 교류만이 이루어지고,100명의 교류가 앞으로 1000명,1만명,나아가서 7000만의 교류로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경의선과 동해선이 이어지고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열려서 휴전선이 군사대결선이 아닌 이름뿐인 경계선이 되어,남쪽 초·중·고·대학생들이 수학여행 가서 저 웅대하고 화려한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고,북쪽 학생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신라·백제 유적을 보러 수학여행 오는 데까지 남북관계가 진전되기바란다. 남북을 막론하고 그 기성세대는 민족사의 내일을 짊어질 2세 젊은이들에게 조상들이 남겨놓은 값진 문화유산을 고루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어떤 이유로도 거역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엄숙한 민족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이번 8·15 민족대회가 그 책임을 완수하는 데까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
  • 남북장관급 회담/ 南北 기조발언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1차 전체회의에서 양측 수석대표의 기조발언을 남측대표단 이봉조(李鳳朝) 대변인의 브리핑을 토대로 재구성한다. ■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실천하는 회담,문제를 해결하는 회담을 하자.” 6·15 합의사항인 경의선철로와 도로 연결공사를 이달 내 재개할 수 있도록 하자.경의선 철로와 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를 위한 도로 건설은 빠르면 올해 안 완공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이번 회담에서 공사 재개 일정을 잡도록 하자.이달 말 제2차 경추위를 조속히 열어 개성공단 건설과 임진강 수방대책,임남(금강산)댐 공동조사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자. 군사당국자 회담을 이달 중 재개,경의선 철로·도로 연결사업을 위한 군사보장 합의서 발효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분단의 아픔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위해 민족 대명절인 추석 전 제5차 상봉이 이뤄지도록 제의하는 바이다.이와 함께 오는 9월 초 적십자 회담을 열어 면회소 설치 및 서신교환 등을 제도화하자.여기에서 면회소 장소 및 건설·운영 방법 등을 논의하자. ■북/ “경제시찰단 파견하자” “6·15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하자.” 일단 북남관계를 원상회복시키자.지난 2000년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북남 상급회담은 이같은 겨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경제협력추진위를 개최,북남간 경제 협력·발전을 도모하자. 화해·협력을 위해 지난 5차 장관급 회담 의제였던 북남간 태권도 시범단교환사업을 다시 제의한다.또 경제시찰단 파견 문제도 논의하자.서해상의 무력충돌에 대해서는 지난 4일 금강산 실무접촉 때 밝힌 입장과 같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경의선 새달 공사재개, 남북한 ‘軍보장 합의서’ 발효 의견접근

    남북한은 12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및 금강산 육로 관광 활성화를 위한 임시도로의 연내 완공을 적극 추진키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은 이를 위해 이달 하순 제2차 남북경제협력 추진위원회를 개최해 새달 중 공사에 착수키로 했으며,제6차 군사실무회담을 열어 ‘철도·도로 연결 군사보장합의서’를 발효시키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남북한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9개월 만에 열린 제7차 장관급 회담 첫날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이산가족 추석 상봉과 상설 면회소 설치에도 원칙적인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은 이날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금강산 육로관광 새달 착공 후 연내 완공 ▲군사당국 회담의 이달 내 개최 ▲이산상봉 면회소 설치 등을 이번 회담 ‘최우선 의제’로 잡고 기조발언을 통해 북측에 제의한 뒤 북측과 집중 협의를 벌였으며,북측도 적극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이날 서해교전 등 문제를 다뤄야 할 군사당국회담 개최에 대해선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측 회담 대변인인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정책실장은 회의를 마친 뒤브리핑에서 “군사실무회담 개최를 비롯,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간회담,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서신교환 논의를 위한 제4차 적십자회담 개최,개성공단 건설과 임진강 수방대책,임남(금강산)댐 공동조사 문제 등을 다룰제2차 경추위 개최를 제의했다.”고 말했다.남북한은 그러나 당초 이날 오후 4시부터 전체회의를 열기로 했으나 회담 일정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 회의 시작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서해교전과 관련,이 대변인은 “우리측은 다시 한번 우리 입장을 전달했으며,군사당국자간 회담에서 재발 방지 등 한반도 군사신뢰구축 조치에 공동노력할 것을 제의했다.”고 밝혔다.북측은 “지난 4일 금강산 실무접촉에서 이미 입장을 밝혔다.”고만 답변했다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한편 북측 최성익 대표는 1차회의에 이어 열린 정세현(丁世鉉) 남측 수석대표 주최 만찬에서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에게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예술단과 선수,응원단 규모가 600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대표단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9시55분 고려항공 P813편을 타고 서해직항로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남북한은 13일 오전 2차 전체회의에 이어 회담 마지막날인 14일 오전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남북장관급 회담/ 합의 ‘실천계획표’ 집중절충

    9개월만에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한은 합의를 도출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북측의 적극적인 태도도 예전과 달랐다.한때 일정 협의를 둘러싸고 첫 회의가 2시간이나 늦어지기도 했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서해교전으로 한반도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는 의식을 치르는 듯 기존 합의사항의 ‘실천 틀’ 짜기에 주력했다. ■첫날 뭘 논의했나 이날 남북한이 집중 논의한 것은 경의선 철도·도로 복원을 위한 비무장지대(DMZ) 내 공사와 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를 위한 도로(1.5㎞) 공사의 새달 재개 및 연내 완공이다.이 사업의 착수를 위해 필수사항인 군사당국자 회담의 이달 안 개최도 집중 논의했다.남북은 지난해 2월 제5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DMZ 내 공사 안전을 보장한 ‘군사 보장 합의서’를 만들어놓았다.남북 양측은 군사당국자간 회의에서 이 합의서를 발효시킨 뒤 바로 공사에 들어가면 경의선 철도(12㎞·군사분계선∼개성)의 경우 4개월 내에 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은 또 추석(9월21일) 전 5차 이산가족 금강산 상봉에 의견접근을 이뤘다.면회소를 금강산이나 경의선 연결역에 설치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4차 적십자회담의 개최 일자도 집중 논의했다. 남북이 이처럼 합의를 위한 가속 페달을 밟은 것은 이미 지난 4일 실무협의에서 의제를 포함,많은 현안들에 대해 잠정 합의를 해놓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또 양측 모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 임기 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시급성을 갖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과 대화 재개에 합의한 미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가 장관급회담의 성과를 예의주시한다는 점도 주요한 배경이다. 남측이 군사당국자간 회담과 경의선 도로·철도 연결,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를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함께 이번 회담의 ‘최우선 의제’로 삼은 것도 미국 등 국제사회를 겨냥한 것이다.경의선 도로·철도 건설 등은 남북 군사신뢰구축(CBM)의 상징성을 띠고 있어 제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미국의 회의적인 대북 시각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기대다. 정부 관계자는 “군사당국자 회담의 조속 개최와 경의선 연결에 대한 북측의 실천 여부는 미국이 가장 눈여겨 보고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그는“지난 5월의 2차 경제협력추진위 무산과 서해교전 등이 북한 군부의 반대와 저항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국제사회 우려를 잠재우고,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신뢰를 얻는 길은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의지보인 김령성단장/ “나는 많은걸 남겨놓고 가는 사람” “잃어버린 시간을 빨리 앞당겨야죠.” 북측 대표단 김령성 단장이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던진 첫마디다.2박3일 동안 열릴 7차 남북 장관급회담 전망을 짐작케 할 만한 대목이다. 김 단장은 남북당국간 대화가 9개월여 동안 끊겼음을 의식,이번 회담에서는 그동안 풀지 못한 문제들을 속전속결로 해결,구체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읽혀진다. 김 단장은 이밖에도 남측 윤진식(尹鎭植) 대표가 공항 귀빈실에서 만나자마자 “면회소 설치,서신교환 등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성과를 내보자.”고 ‘성급한’ 제안을 했음에도 한 술 더 떠 “쌍방이 힘과 지혜를 모아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민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는 알찬 열매를 이번 회담에서 거두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고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김 단장은 또 “선물을 많이 가져왔느냐.”는 정세현(丁世鉉) 남측 수석대표의 농담에 “나는 많은 걸 가져와서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라면서 “많은 걸 놓고 가게 해달라.”라며 분위기 정지작업에도 신경을 썼다. 김 단장은 나아가 “날씨가 회담을 축복하는 것 같다.”면서 “평양도 매일 비가 내렸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좋고 비도 안 와 하늘이 축복해주고 있다.”고 날씨와 회담 전망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김 단장의 도착 발언은 향후 장관급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태도와 의지 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 단장의 연이은 ‘화답’은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 성과와 관련,‘상서로운 조짐’으로 이해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단골 빠진 대표단 면모/ 北 ‘대화일꾼' 물갈이 장관급 회담 북측 대표단의 단골 수행원 중 일부가 새 인물로 교체돼 눈길을 끈다. 사라진 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권호웅(권민) 내각 참사.권 참사는 90년대 말 금강산 관광 등 현대의 대북사업 협상을 전담하면서 대남사업에 얼굴을 드러낸 90년대 신진 ‘대화일꾼’으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고위직급의 회담에는 빠짐없이 참여했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빠졌다. 권 참사는 그 동안 회담에서 남측 대표단의 서훈 청와대 국장과 공동보도문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 남측과의 최종 줄다리기 상대로 악역을 도맡아왔다. 이에 따라 그동안 권 참사가 해왔던 역할을 누가 맡게 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 그동안 장관급회담에 단장 수행비서 역을 하던 계봉일씨도 이번 대표단에서는 빠졌다.계씨는 북측 대표단 중에서는 비교적 수려한 외모를 가져 2000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3차 장관급회담에서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장관급회담에서 경제협력문제를 담당해왔던 회담대표허수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총사장 겸 무역성 처장 대신 이번 회담에는 김춘근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서기장이 나왔다. 그러나 수행원 중 막후 실세로 평가를 받고 있는 최승철·문창근 수행원은 이번 회담에도 얼굴을 나타냈다.이들은 작년 9월 열린 제5차 장관급회담 때 김령성 북측 단장과 함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북측 수행원의 변화가 대남일꾼의 교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보직변경 등의 조치는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첫회의 왜 지연됐나/ 서해교전 언급수위 실랑이? 남북한이 12일 오후 4시 예정됐던 장관급회담 1차 전체회의를 2시간이나 지연시킨 속사정은 뭘까.지난 2000년 7월 제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도 제2차전체회의 직전 물밑접촉을 하느라 2시간30분이나 회의를 지연시킨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모종의 ‘암초’가 돌출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북측 대표단 김령성 단장이 서울 도착 직후부터 시종 ‘과감한 실천’을 강조해 이번제7차 회담이 전례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를 던져준 상황에서 이날 회담이 지연됐기 때문에 그 배경을 둘러싼 회담장 주변의 억측은 더욱 무성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무자 사이의 일정 협의 문제였다.”고 해명했다.북측 김령성 단장도 회담 직전“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그런 것은 아니다.”며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답해 회의 지연이회담 의제와는 무관함을 간접적으로 밝혔다.이봉조(李鳳朝) 남측 대표단 대변인은 “보통 3박4일로 하던 회담을 2박3일로 하면서 일어난 일정조정의 일환”이며 “각기 필요한 곳에 보고하는 등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북 양측간에 심각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특히 우리 국민 정서가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에서 기조발언에서의 서해교전 언급 수위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체회의 결과,당초 일사천리로 성과를 도출해낼 것이란 기대에 못 미친 점도 남북 양측이 군사당국자 회담 등 민감한 의제에 대한 재조율에 나섰을 것이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각기 필요한 곳에 보고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도 의제 재조율이 난항을 겪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를 실어주는 대목이다. 김수정기자
  • 추석 이산상봉 의견접근

    정부는 12∼14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7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통해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을 이달 하순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군사당국자회담이 열리면 남북간 철도·도로연결공사에 따른 군사보장합의서의 서명·교환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이달 하순 개최도 북측에 제의할 예정이다.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일정 및 방법에 대한 논의도 진전시킬 예정이다.이와 관련,남북한은 제5차 이산가족 상봉을 오는 9월21일 추석을 전후해 금강산에서 실시하기로 의견접근을 이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1일 “남북간 군사당국자회담과 군사실무회담이 열리면 우선경의선 북측 구간 철도연결문제에 대한 군사적 보장방안을 논의,경의선공사가 이달안에 재개되도록 할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서해교전과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신뢰구축 방안 및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급회담 남측대표단 대변인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정책실장은 이날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금강산 육로 관광 등 제2차 경제협력추진위에서 다뤄야할 의제에는 이미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전제됐고 내재됐다.”면서 “경추위와 군사실무회담은 서로 맞물려 있는 만큼 구체적 일정을 동시에 확정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북측의 식량지원 요청과 관련,“북측의 태도와 회담 결과 등을 봐 가면서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에 전향적으로 나오면 30만t 안팎의 대북 쌀지원을 검토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4차 적십자회담의 개최일자를 확정지은 뒤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면회소의 금강산설치를 본격 협의하는 한편 상봉의 정례화 방안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이밖에 ▲8·15민족통일대회 ▲남북축구대회 ▲부산아시안게임 등 각종 민간차원의 행사도 확실히 추진될 수 있도록 장관급회담에서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한편 김령성 내각 참사를 단장으로 한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단 29명은 서해직항공로를 통해 12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장성급회담 의미/ 한반도 정전체제 관리 유일 대화창구 재가동

    6일 유엔사와 북한군의 장성급회담이 가시적인 결과물 없이 끝나 아쉬움을 주고 있으나 이번 회담은 개최 자체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군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의는 한반도 정전(停戰)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북한과의 유일한 대화 창구를 다시 열었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제13차 장성급회담은 서해교전 이후 처음이자 2000년 11월 이후 20개월만에 열렸다. 이는 우리 군과 유엔사가 서해교전을 기습적인 무력도발로 규정하고도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항의조차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못했던 처지를 감안한 평가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유엔사가 이번 회담에서 제시할 핵심 의제가 기습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이라는 점을 알고도 북측이 회담에 응한 것은 북·미 대화를 앞둔 전향적인 태도로 평가된다.서해교전 직후 유엔사의 두차례 장성급회담 개최 요구를 거부했던 북측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일행의 방북에 앞서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아울러 임박한 남북한 장관급회담의 부속 결과로 예상되는 남북간 군사당국자 회담의 ‘전초전’ 역할도 충분히 수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장관급회담의 의제가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금강산 육로관광,개성공단 조성,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이산가족 상봉 등인데 이중 이산가족 상봉만 제외하고 나머지 4개항은 남북한 군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다.이 때문에 북측도 협의체를 되살릴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이날 회담이 시작되자 기조발언을 통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없다.”면서 기존의 철폐 주장을 되풀이했다.유엔사측은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인 만큼 불법 침범에 대한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반박했다.북측이 NLL 문제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앞으로 열릴 북·미 회담의 의제로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등의 문제보다 NLL 문제 해결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시급한 과제라는 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태도로 보인다. 김경운 오석영기자 kkwoon@
  • 北자세 왜 변했나/ 경제개혁 ‘동력얻기’ 北 생존차원서 대화

    지난 4일 남북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고,또 북측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우호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평가다.북한의 이같은 자세 변화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남북한간 합의를 또다시 파기하는 전례를 되풀이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 또한 만만찮다.임기말에 들어간 현 정부와의 ‘뒷거래’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정치권은 물론,북한과 대화 재개에 합의해 놓고 있는 미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도 북한의 남북합의 이행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합의이행 잘될까 ◇경제개혁 성공을 위한 생존전략인가-북한의 자세 변화 배경과 관련,정부당국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꼽는 것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다. 북한은 최근 임금 인상,인센티브제 채택 등 시장경제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를 취했다.새로운 발전 전략의 성공을 위해선 외부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이봉조(李鳳朝) 정책실장도 “북한 내부의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위해 남북 당국간 대화 복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31일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의 한 명은 남측 기자들에게 ‘경제개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그는 “이 조치는 실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공장 기업소에 독립채산제를 채택한 것은 ‘철저하게 하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는 논리라며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 추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에는 지켜질까-따라서 ‘합의 뒤 파기’도식에서 이번에는 벗어날 것이란 희망적 관측이 적지 않다.경제개혁의 초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급 부족이고,이를 막지 못할 경우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내부혼란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존근거’마련 차원에서 북측이 대남관계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서방과의 대타협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 급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미국 클린턴 행정부 말기 급속히 추진하다,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뼈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고 교수의 분석이다. 외교부 심윤조(沈允肇)북미국장도 “지나친 낙관도,비관도 할 수 없다.”면서도 “북한이 과거처럼 식량지원만 받은 뒤 그만두는 식의 방법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금강산 사업 어떻게/ 육로관광·특구지정 연내실현 가능성 커 제7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관광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이번 회담에서 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한 당국자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키로 했기 때문이다. ◇연내성사 될까?= 지난해 6월10일 현대아산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육로관광은 2개월안에,관광특구지정은 빠른 시일안에 각각 마무리짓기로 합의했다.그러나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지연돼 1년을 넘겼다. 그러나 최근 남북간 분위기가 호전되고,북한의 개방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해 육로관광 등의 성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대아산은 보고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측과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 법령 등에 대한 논의를 거친 적이 있다.”면서 “남북당국이 합의만 하면 연내 육로관광과 특구지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구지정돼야 자본유치 가능= 관광특구 지정은 북한의 개방의지를 확인할수 있는 가늠자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관광특구를 지정하려면 투자보호를 위한 각종 법령 제정이 뒤따라야 한다.자본유치가 되지 않는 이유는 현대아산이 어려움에 처한 탓도 있지만 바로 이같은 투자보장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보장 장치만 마련되면 스키장과 골프장 등의 건설에 외국이나 국내기업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골프장은 KCC그룹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표명해 왔으며 스키장과 카지노,면세점 운영 등에도 관심을 가진 국내외 기업이 많다고 현대아산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육로관광이 성사되면 지금은 4시간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금강산길이 30분으로 단축된다. 지난해 양측이 동해안의 육로와 철로를 이용키로 합의 함에 따라 우리측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북한측 고성 삼일포에 이르는 13.7㎞ 구간만 이어지면 육로로 금강산을 오갈 수 있다. 김성곤기자 ■개성공단 어디까지/ 실질적 첫 남북경협 예정지 측량등 끝내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이 북측의 개방의지를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라면 개성공단 개발은 실질적인 남북경협의 첫 단추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이번 장관급 회담으로 개성공단 건설사업이 추진될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떻게 개발되나= 개성공단의 총규모는 2000만평.850만평은 공단으로,나머지 1150만평은 주거용지 등 배후단지로 개발된다.입주 기업들은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주체인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는 이미 개성공단 예정지에 대한 측량과 토질조사 등을 마친 상태다. 토지공사는 개성공단에 2000억원을 투자키로 한 상태이며 실제 개발사업에는 국내 건설회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기업은?= 지난해 8월 현대와 북한이 개성공단 개발에 합의했을 때 부산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과 한국섬유산업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기계산업진흥회,전자공업협동조합 등 5개협회가 가장 먼저 관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해 입주의사를 표명하는 의향서를 현대아산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종합상사를 통해서도 250개 개별기업이 입주의사를 밝혔다. ◇관건은?= 투자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어떻게 제정되는가에 달려 있다. 다음은 인건비와 물류비.원가가 최소한 중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현대아산 관계자는 “북한에서 인건비를 낮춘다는 데 난색을 표명했지만 물류비 등을 포함,생산단가를 중국보다 낮게 한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임차료도 양측간에 논의가 필요한 사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사설] 북한의 실질변화 이끌어야

    남북한이 금강산 실무접촉을 통해 이뤄낸 여러 합의를 환영하면서 이것이 본회담의 성과로 연결돼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발전했으면 한다.이번 접촉에서는 제7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이달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기로 하는 등 여러 합의가 나왔다.적십자회담 개최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의 구체적인 날짜를 장관급회담에서 정하기로 했다. 특히 북한은 9월에 개최되는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로 했으며,서울에서 열리는 민간차원의 8·15민족공동행사 및 9월 경평 남북축구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장관급회담 의제로 거의 모든 남북한 현안을 망라한 것도 특이할 정도다.실무접촉의 발표문만 보면 그동안의 대화단절이 이상할 정도로 남북간에 많은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연초 미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금강산 순차방문 등이 이뤄졌던 남북관계는 지난 6월29일 서해교전 사태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었다.이번 금강산 합의는 남북관계의 생산적 회복을 기대하게 한다.남한이 서해교전 사태로 심한 내부갈등에 시달리던 지난달부터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여러 의미있는 변화를 노정했다.임금과 물가를 동시에 현실화하는‘가격정책’을 실시했으며,브루나이 ARF외무장관회담에서 콜린 파월 미국국무장관과 전격 회동한 뒤 대북특사 파견에 합의했다.서해교전 이후 첫 남북 당국간 만남에서 나온 금강산 합의에 대해 서해교전 이전단계 회복보다북한의 변화기류라는 보다 큰 틀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서해교전과 관련해 북한이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유감 및 재발방지 노력 의사를 표시하는 데 그치고 공동보도문에 언급하지 않는 것은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를 문제삼아 이번 합의 및 합의 뒤에 들어있을 수 있는 북한의 대내외적 변화 움직임을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남북은 일회성합의에 머물지 말고 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개성공단 건설,금강산 육로관광 등과 같은 남북경협 현안들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 장관급회담 의제·전망/ ‘5대과제’ 이행 급진전 가능성

    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그동안 시행을 미뤄왔던 경의선 연결,금강산 육로관광 등 ‘5대 핵심과제’와 함께 북측이 다급하게 여기고 있는 쌀 및 비료,전력 지원 문제 등 다양한 현안들도 심도있게 논의될 전망이다. 최근 북한이 경제개혁정책을 취하고 있는데다 남북 모두 당국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만큼 대화의 급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북측은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쌀,전력 지원의 구체적 약속을 받아 경제적안정을 꾀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신뢰감있는 파트너로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기회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측은 8월중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 ▲금강산 육로연결 ▲개성공단 착공 ▲이산가족 문제 해결 ▲군사적 신뢰구축등 ‘5대 핵심과제’를 이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5대 핵심과제는 이미 지난해 남북이 합의를 끝내 이행 시기,방법 등에 대한 논의만이 남은 상태다.정부 당국자는 “실무대표접촉 결과에 따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며 이 자리에서 쌀 및 비료,전력 지원 등의 문제를 논의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급회담에 기대를 거는 또다른 이유중 하나는 북한의 태도 변화다. 지난 25일 북측의 유감 표명 및 회담 제안은 아주 이례적인 부분이 많았다.그동안 ‘판문점 도끼 만행’ 등 대여섯 차례 유감 표명이 있긴 했지만 모두 대외용 방송을 통해서였다.이번처럼 비교적 신속하게 대내용 방송을 통해유감을 표명한 적은 없었다. 이는 그만큼 북의 식량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북측에서 단행한 경제개혁과 함께 미국,일본 등과 대외관계를 개선해 ‘북한식 개방·개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한 의지 표명이라는 분석이 더 지배적이다. 한편 이번 장관급회담에서는 지난 6월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서해상 무력충돌의 빌미를 제공한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남북군사실무회담 재개도 논의될 수 있을 전망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정형근의원 ‘신북풍설’ 제기/ “”한화갑대표 새달중 방북 김위원장 10월 답방 추진””

    정부와 민주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추진,대선 전략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新)북풍’론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30일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8월중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방북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는 오는 10월 김정일의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초전으로‘신북풍’을 대선에 이용하려는 계획”이라고 주장했다.국회 정보위원인 정 의원은 이날 정보위 전체회의가 여야간 이견으로 공전되자 정보위 사무실에서 김덕규(金德圭) 정보위원장에게 정보위 개회를 요구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도라산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계획은 ▲한 대표의 방북 시기는 8·15 이전인 8월초로 예정돼 있고 ▲당초베이징을 경유하려던 계획을 판문점을 통한 육로로 결정됐으며 ▲민주당 의원 2∼3명과 재야단체 인사들이 동행할 예정이며 ▲한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갈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 김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간에 이미 합의됐으며 회담 장소는 ‘대한민국 내’로 결정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신북풍설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한 대표는“기회가 되면 갔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그는 이날 측근을 통해 “지난해 북한에서 열리는 자동차대회때 가려 했다.”면서 “당시에는 국회의원 신분이었으나 현재는 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방북 문제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신북풍 운운하는 정 의원의 행태에 참으로 안타까운 동정을 보낸다.”고 비난했다.하지만 한 대표의 방북과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질 경우엔 신북풍 논란이 뜨겁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실무접촉 절차.의제/ 군사신뢰 구축·이산상봉 이행 재론

    남북장관급 회담이 여섯 차례 열리는 동안 실무대표단 접촉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을 마지막으로 끊겨 9개월만에 열리는 이번 ‘서울 7차 장관급회담’에서 그 만큼 타결해야 할 의제와 쟁점이 많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7차 장관급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금강산 실무접촉에서는 장관급 회담의 시기,의제 등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라면서 깊이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을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합의한 경의·동해선 연결,군사적 신뢰 구축,이산가족 상봉,서울에서 열릴 8·15행사에 북측인사 참가,재고쌀 대북 지원 등 산적한 과제의 이행에 대해서도 탐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의선,동해선 등 철도·도로 연결- 남측은 지난해말 비무장지대 이남 철도·도로 공사를 완료했지만 북측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우리측 임동원(林東源) 특사가 지난 4월 방북했을 때 합의한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은 금강산 관광 활성화와 함께 인적·물적 교류의 통로로서의 역할이기대되지만 지난 5월 경협위 2차 회의가 무산되며 답보상태에 있다. ◇이산가족 문제- 지난 4월까지 모두 4차례 상봉이 이뤄졌다.정부는 면회소설치 등 이산가족교류 제도화를 북측에 제안하고 추석쯤 5차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방침이다.북측이 25일 전통문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8·15행사 북측 인사 참여- 민간행사이지만 북측이 고위 인사를 내려 보내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확실한 신변안전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남측 역시 8·15 행사가 무사히 치러진다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연내 답방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성의있게 대응할 방침이다. ◇남북경추위 개최와 쌀 지원- 지난 5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2차 경추위가 무산되며 끊긴 상태다.이번 실무접촉에서 재개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재고쌀 300만섬의 대북 식량지원과 차관공여계약,개성공단,금강산육로관광 협의 등을 위해 경추위 개최는 남북 모두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남북장관급 회담서 교전 재발방지 논의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은 26일 북측이 제의한 7차 남북장관급회담과 관련,“회담이 재개되면 서해교전사태 문제를 비켜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회담에서 서해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논의할뜻을 시사했다.정 장관은 “장관급회담에서 군사당국자간회담을 추진,이를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답변을 통해 “북측의 대화제의는 여론 수렴과 관계부처 협의 등 신중하게 검토해 추진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김형기(金炯基)통일부차관 주재로 청와대,외교부,농림부 등 남북관계부처 전략기획단회의를 갖고 북측 제안에 대한 국민여론의 종합·분석에 주력키로 한다는 다소신중한 입장을 정했다.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 실무접촉 날짜를 다음주초 북한에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낮 시장·군수·구청장 250여명을 청와대로초청,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제 북한이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사실상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함께 장관급회담을 열어 금강산 육로관광 등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면서 “신중히 대책을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다음주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남북 실무접촉시 대북 제안,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남북 외무장관회담 입장 등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최성홍(崔成泓) 외교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회담을 갖고 한반도 정세 전반을 논의했다. 김수정 박록삼기자 crystal@
  • 선택 6.13/ 강원지사 후보 정책 집중비교

    ‘허울 좋은 미래의 땅’ 강원도를 ‘내실있는 희망의 터전’으로 만들 적임자는누구인가? 풍부한 자원과 발전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적은 인구와 휴전선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돼 온 강원도민들이 이제는 제대로 대접(?)을 받겠다고 벼르고 있다.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도 이같은 도민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관광·환경,농·어업 육성책,폐광지역의 활성화 대책,각종도로개설,금강산관광 활성화에 대한 대책 등을 공통 메뉴로 표 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김진선“청정 최우선”남동우“선택적 개발” ●관광정책= ‘강원도가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자원은 청정 관광자원이다.현 지사인 한나라당 김진선(金振?)후보와 도전자인 민주당 남동우(南東佑)후보의 역점 공약도 관광개발이 최대의 화두다. 김 후보는 “관광객 연간 7000만명,외국인 관광객 200만명,관광수입 3조원 달성을 목표로 양양국제공항과 연계한 관광쇼핑센터,컨벤션센터를 유치하고 춘천권의 친환경 호수관광벨트 조성,동해안 문화관광벨트 조성,남북관광교류 타운 건립,환동해 크루즈관광 루트사업 추진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남 후보는 “전국 제일의 관광 강원도를 만드는 데 승부수를 걸겠다.”면서 “민박과 가족호텔의 복합개념인 민박단지를 대대적으로 조성하고 권역별로관광진흥 특구를 지정, 제주도 수준의 지원대책을 만들어 이를 전세계에 홍보해 강원도의 삶과 문화를 관광자원화하겠다.”고 주장한다. ●환경정책= 물과 산림 등 자연의 보고(寶庫)를 지키기 위한 환경정책에 대한 비전도 제 각각이다. ‘강원도 살 길=청정 자연을 살리는 일’을 전제로 한 김 후보는 “생활쓰레기를 줄이고 청정교통시스템,생태계를 우선한 주거단지 조성과 청정 토양,청정 강원 4대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백두대간 자연생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동강을 국민의 강으로 명소화하겠다는 복안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남 후보는 스스로가 환경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선택적 개발론자임을 자임하고 있다.“영월 동강의 경우 대책없는 생태계 보전지역 지정보다 주민들이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며 환경보전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주장이다.강원도의 아름다운 산림과 호수·늪,희귀 동·식물을 보호하며 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약속한다. ●농·어업 육성책= 도민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하는 만큼 농·어업인을 살리려는 정책개발도 다양하다. 김 후보는 “농촌을 묶어 복합 생활문화권으로 발전시키겠다.”며 그 대안으로 그린 투어리즘 집중 육성과 ‘친환경 농업지구 마을’조성을 제안했다.청정 산품(産品) 계약재배와 건강식품원료 가공공장 유치도 공약에 포함시켰다.“150개 이상의 농·어업 관련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고 ‘강원축산 산학공동연구소’를 설치해 해양심층수 단지 조성과 해양생물자원개발 연구센터 운영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바다 목장화 사업과 함께 농·어업 정보통합시스템 운영도 구상하고 있다. 남 후보는 지역농업 육성과 차별화 전략을 통해 지역농업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전략을 마련했다.이를 위해 “농업자금의 금리를 현실에 맞게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해 반드시 관철토록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밭농사 직접지불제 조기실시와 복합영농단지 조성,임산자원의 생산·가공,전원형 연구단지를 개발하고 어업분야에는 소규모항 개발사업에 대한 지원 확대와 치어방류,인공어초 확대,연안수자원관리,해안방재 강화 시책을 약속하고 있다. ●지역 특성화 전략=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나름대로의 경제 활성화 대책도 내놓았다. 김 후보는 “춘천은 첨단문화산업 중심도시로,원주는 경제·물류거점 도시로,강릉은 환동해 문화·관광 허브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이에 필요한 대책으로 중앙고속도로를 통한 내륙종축 산업·휴양벨트,영동고속도로 축을 중심으로 한 동서 횡축 산업,레포츠 관광벨트 등을 제시한다.지역경제 회생방안으로는 강원경제의 도약을 위한 각종 기업자금 조성과 여건 개선 등을 약속했다. “600개 중소기업을 유치,2만명 이상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며 이를 위해 10개 지방전략산업단지,중소기업 육성자금 2000억원 조성,지역신용보증자금 1000억원 확대,38개 재래시장 현대화,노동자 권익 보호와 외국인투자 유치 등에 중점을둘 방침이다. 이에 남 후보는 “강원도내 최대 산업도시로 떠오르는 원주시를 수년내에 인구 50만 도시로 육성하고 인근 지역을 묶어 대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한다.또 춘천∼원주는 수도권 1일 휴양산업벨트,원주∼강릉은 휴양산업레저벨트,고성∼삼척은동해안 광역권,철원∼고성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춘천권과 강릉·속초권,강원남부권을 관광진흥특구로 지정,육성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는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1000억원의 도세를 확보,사회복지와 지역경제 비용으로 사용하고 관광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경륜과 경정 사업을 유치하고 재래시장과 영세상가의 리모델링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금강산관광 등 대북정책= 휴전선을 가까이에 둔 강원도는 북부 강원도에 연어부화장을 만들고 솔잎혹파리 방제사업을 지원하는 등 대북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더구나 금강산관광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육로관광에 대한 정부의 청사진도 나왔다.이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도 분분하다. 김 후보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북한이 요금을 받거나 음식점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직접 참여하고,제한적 자유지역 형태로 설악과 금강을 연결하는 관광자유지대를 조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러나 방법에 있어서는 우리측의 일방적인 지원보다는 상호 보완형태가 바람직하며 필요하다면 기술이전 등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 후보는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정책에 대해 원칙은 찬성하지만 수학여행단 여비 지원에 대해서는 설악산과 연계해 추진하는 안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면서 “대북사업을 위한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남북협력기금 등 재원 전액이 국가 지원사업으로 추진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종합=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서는 최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강원도가 단일 후보지로 신청서를 제출한 만큼 반드시 국제경쟁력 면에서 앞서 유치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 북한 금강산댐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영북지역 주민들의 피해대책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에 나서줘야 하며 강원도 등 행정기관에서도 좀더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인물평 ●김진선 후보는 야당 출신 도백의 어려운 정치 여건 속에서도 ‘원칙’을 중시하며 강원도정을 무난히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치단체장으로 남북교류를 처음 성사시켰고 강원도가 중심이 돼 일본·중국·러시아 등 환동해권 국가 자치단체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남다른 추진력도 발휘했다.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동강댐 백지화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등에 대해서도슬기롭게 해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어렸을 때 학비가 없어 은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고등학교에 진학할 만큼 불우했던 김 후보는 한때 군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후 행정고시(15회)에 합격,내무부와 강원도에서 정통 행정관료의 길을 걸어왔다.이지적이고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남동우 후보는 깔끔한 엘리트 풍으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행정관료 출신이다.강원도청과 국무총리실 등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쌓은 공직경험이 강점이다.강원도정을 국정 수준에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하면서 ‘국정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5공 정권 때는 새마을본부 등을 전전하다 고향 강원도에서 군수와 국장,정무부지사를 지냈다.어머니가 보리쌀 행상을 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외교관과 학자를 꿈꿔왔다.‘온순하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했던’ 소년시절을 거쳐 행정고시(13회)에 합격,관청에 발을 디뎠다.그림과 음악에 재능과 애정을 갖고 있어 감성적이라는 평이다.
  • [기초단체장 누가 뛰나] 강원 고성

    ■무소속 現군수에 한나라·민주 도전 ‘금강산 철길·도로 개설을 기틀로 휴전선과 인접한 고성군을 확 바꿔 놓을 적임자를 찾아라.’ 강원도 고성군민들의 최대 화두는 어획 부진으로 주름진지역경제를 다시 살리고 접경지라는 불이익의 한계를 극복하는 인물을 찾는 일이다. 무소속 황종국(黃鍾國·65) 현 군수와 한나라당 함형구(咸炯仇·54) 후보,민주당 이경도(李京度·49)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황 후보는 “심층수 개발,화진포 개방,삼포 골프장 조성,신평지구 풍력단지 개발 등 임기내 추진하던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재선을 위해 발빠르게 뛰고 있다. 함 후보는 내무부와 강원도청 등에서 30여년간 공무원을지낸 풍부한 행정경험과 중앙과 지방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성의 미래를 짊어질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만이 침체된 지역경제를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후보는 군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해오며 “의정활동을통해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해온 만큼 지역의현안을 꿰뚫고 있다.”며 40대의 패기를 내세워 젊은층을 겨냥하며 표밭을 다지고 있다.고성군 탁구협회를 비롯해 태권도협회,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통한 조직도 만만찮다는평이다. 금강산 육로관광,동해북부선 철길 연결 등 지역 발전을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을 호재를 누가 더 강력하게 추진해주민소득과 연계시킬 수 있느냐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
  • 이회창 후보 관훈토론/ ‘비전·정책 갖춘 후보’ 집중 부각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가 당의 공식후보 지명을 받은 뒤 처음으로 22일 언론의 집중검증을 받았다.서울 프레스센터에서 3시간 남짓 진행된 관훈토론에서 그는 최근의 권력비리문제에서부터 대북정책,경제·노사관계,주변신상 등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의견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 대한 직접 공격은 최대한 자제했다.대신각 분야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설명함으로써 ‘안정된 대선후보’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뒀다.환경미화원의 월급을 언급하며 서민에 다가서는 모습도 강조했다.현 정권에 대한 공세는 당과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주도하고,이 후보는 바닥을 훑고 다니며 지지기반을 넓혀 나간다는 대선전략을 철저히 준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조연설에서 이 후보는 최근의 권력비리와 실정(失政)을조목조목 들어가며 “권력의 사유화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적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 아래 개인이존중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그는 특히“나는 정치적 빚도,가신도 없는 사람”이라며 “불안하고 미숙하고 위험한 민주당의 리더십보다 안정되고 성숙하고 신뢰할수 있는 한나라당의 리더십을 국민들이 선택할 것”이라고김 대통령과 노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권력비리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장황한 논리로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특히 6·15남북공동선언 2항과 관련,“북한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으로 주장한다면 이 조항은 폐기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그러나 파장을 의식한 듯 토론 후반부에 “폐기해야한다는 발언은 취소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경제일반과 재벌·노동정책 분야에서는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 향후 과제로 남았다. ‘20년간 연 6% 성장’이라는 경제비전에 대해 ‘장밋빛공약’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가가 명운을 거는 식의정책을 투입하면 가능하다.”고 다소 옹색한 답변을 내놓았다.“성장우선정책을 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데 어떻게조화할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지적에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서 완전한 답변은못한다.”며 “상식적으로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따뜻한 복지를 가능케 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진경호기자 jade@ ◆ 분야별 내용/ 경제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성장과 분배를 함께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일부에서 한나라당을 재벌을 비호하는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오히려)빈부격차가 심화된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서민을 위한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전제한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선(先)성장,후(後)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하면서 분배를 함께 끌고나가겠다는 의미다.그는 “현 정부들어 빈부격차가 심화됐다.”면서 “한나라당은 빈부격차를 줄이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예고했다.그는 “인적구성으로 보면 민주당(구성원들)이 한나라당보다 돈이 적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렇다고 해서 서민계층이나 소외계층을 대변한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보는 “대규모기업집단과 출자총액제한 제도 폐지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친 재벌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러한 정책에 대한 선호를 놓고 보수니,진보니 하면서 구분할 일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어 “기업경영이 불투명한 것은 당연히 고치고,(잘못한)경영에 대한 책임은 묻겠지만 기업이 뛰도록 해야한다.”며 “이렇게 하면 일자리가 늘어 결국 근로자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또 한나라당이 앞으로 20년간 연 6%의 경제성장률을 올리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장미빛 청사진’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그는 “잠재성장률은 4∼5%로 추정되지만,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해 돈을 쏟아부을 정도로 투자를늘리면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추곡수매가 인하 등 예민한 질문에 대해선 직접적 언급을 피하고,원론적 답변을 하는데 그쳤다. 곽태헌기자 ◆ 분야별 내용/ 권력비리 이회창 후보는 현 정권의 권력비리에 대해서 ‘대통령 책임론’을 폈으나 당 일각에서 제기한 ‘대통령 연루설’은모호한 표현으로 비켜갔다.그는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대표가 게이트의 몸통으로 대통령을 지목한 것과 관련,“대통령과 관련,직접 근거가 있다고 한 적 없다.대통령의 자제가 모두 게이트의 중심 인물로 떠오르고 있으니 아버지가해명하고 본인 의사를 밝히라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여러 상황을 봐서 대통령이 마땅히 책임이 있다는 뜻”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최규선씨의 말을 얼마나 믿나,’라는 질문에는 “녹음테이프에 폭발력이 있다.”면서도,자신의 20만달러 수수설에대해선 “앞으로 어떤 진술이 나오든 진실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등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다만,“일부 검찰이 과거와 같이 입맛에 따라 (수사내용을) 흘리곤 한다.”면서 불만을 표시했다.이때문인지 특검제에 대해서는 “실제 검찰 내부서 국민이 바라는 것만큼 엄정하고 좋은 수사가 되겠는가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에 특검을 요구했다.”면서 당론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일련의 권력비리와 한나라당과의 연계설을 극력 부인했다.‘최규선씨와의 관련 의혹이 드러나면 정치적 책임지겠느냐.’는 질문에 “그간 숱하게 많은 모략중 어느 하나 진실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그랬다면 이미 정치를 떠났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나아가 장남 정연씨와최씨와의 e메일 통신의혹 등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엄정 수사를 통해 허위 조작임을 밝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집권후 (대통령 아들들에 대한) 사면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엔 “조사단계에서 말하기 이르다.”고 답했다. 이지운기자 jj@ ◆ 분야별 내용/ 남북 이회창 후보는 “(집권할 경우) 6·15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남북대화를 계속하겠지만,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에 관해서는 분명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연방제를 계속 고집하면 남북공동선언 중이 내용이 들어있는 제2항은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토론이 끝날 무렵에는 “잘못하면 (국민들에게)오만한 자세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폐기주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쪽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김대중 정부는 말로는 남북간의 상호주의지만 실제로는 우선 비위를 건드리지 말자는 식이었다.”면서“(통일부)장관까지 갈아치웠다.”고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공짜 점심은 없다.’는등 친미적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공짜 점심 얘기는 상호주의로 북한을 끌어내 뭔가를 만들어내자는것”이라며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노근리나 매향리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에 앞서서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을 불러일으켜 사건의 본질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에게도 좋은 게 아니다.”라고 일부의 감정적인 반미(反美)정서를 비판했다. 그는 “북측도 합의한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관광이 이뤄지면 금강산 관광에 대한 정부지원을 계속해도 좋지만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혈세를 퍼부어 엉뚱한 데 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탈북 난민들이 원하면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공격한다면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나가야 한다.”면서 반대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이 후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평화 공존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한·미간에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곽태헌기자 tiger@ ◆ 분야별 내용/ 가족문제 이회창 후보의 신상과 주변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이쏟아졌다.특히 가회동 빌라와 손녀의 원정 출산 의혹이 이날 역시 주된 화제였다. 하지만 대부분 예상한 질문이었다는 듯이 이 후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우선 가회동 빌라와 관련해 빨리 ‘이사’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왜 지금까지 사돈에게 신세를 졌느냐고 하자“야당 총재가 산다고 하니까 계약했다가 깨진 적도 있었는데 다행히 융자에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해결이 됐다.”고답했다.또 빌라의 실소유자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원정출산 의혹을 받고있는 외손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얼굴을 못봤으며 무척보고 싶다.하지만 지금 들어오면 얼마나 말이 많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이 어떻게 손녀에게 미국 국적을 취득시키겠느냐며 항간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 외손녀가 만일 18살이 되어서 국적을 선택할 때 미국국적을 갖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자 “제가살아있으면 당연히 한국 국적을 갖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주위 사람들이 이 후보에 대해 인간미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집에서는 어떻냐.”고 묻자 “집에 가면 특별히 다른 거 안하고 TV를 보거나 편하게 지낸다.”면서 “나를 두고 바늘로 찔러도 피 안나온다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장내에 폭소가 일기도 했다. 이밖에 이 후보의 언론관과 관련해 한 질문자가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험악한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술자리에서 한 농담’이라고 가볍게 넘겼다.하지만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의 술자리 발언을 거론하며 ‘술자리에서라면어떠한 말도 괜찮다는 얘기냐.’고 계속 따지자 ‘그 부분은 내가 잘못했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帝政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4)새로 밝혀진 사실들

    러시아 문서보관소는 구한말 역사의 보고(寶庫)였다.발굴된 문서중에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흥미진진한 사실들이 수두룩했다.특히 고종의 해외망명기도와 헤이그밀사 파견의 좌절,아관파천의 진실 등은 근세사를 새로 고쳐 써야 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헤이그밀사사건의 전말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주권불가침을 인정하며 국제회의에서 상기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하였다.초청장은 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에게 외교문서로 전달되었다.러시아 정부는 이범진 공사를 합법적인 공사로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그곳에있는 고종황제의 밀사에게 이 뜻을 전해도 무방하다.(1905년 11월1일 외무장관이 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 파그딜로프에게 보낸 지시문) 이 지시문은 고종이 서울의 프랑스어학교교사 마르텔을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에게 극비리에 파견,헤이그회의에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토록 요청한 데 따른 러측의 공식 답신이다.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은 대한제국의 독립국가유지였으며 헤이그회의 참가지원이었음을 알수 있다.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니콜라이2세가 주창해 열렸고 러시아는 이 회의의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을사늑약체결(1905년 11월17일)이후 새로운 국제정세가 전개되면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혼선과 모순을 노출했다. 1907년 6월30일 회의가 막상 개막되자 러시아는 대한제국 대표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의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여론의힘을 빌려 국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의 마지막 시도가 무참하게 꺾이는데 러시아가 일조한 것이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이처럼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일본과의 비밀협상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양국은 1907년 7월30일 체결한 협약에서 대한제국과 만주,몽골 등 3개 지역에 대한 이해득실을 각각 정리했다.두나라는 ▲만주에서 양국간 분계선을 확정하고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간에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결속에 대해 간섭과 방해를하지 않으며 ▲일본은 외몽골에서 러시아의 특수권익을 승인한다 ▲쌍방은 협약체결을 비밀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러·일비밀조약 체결 한달전에 고종이 밀사를 파견하자당황한 러시아 외무부는 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전 파리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부랴부랴 전문을 보내 입장을 거부토록 지시했다.넬리도프도 “한국인들이 왔지만 접견을거부했다”는 보고문을 본국에 띄웠다.뿐만 아니라 러시아 외무부와 주일 러시아대사 등은 대한제국의 헤이그밀사파견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일본측에 흘렸다.밀사들의 회의장 입장이 좌절된 뒤 이토(伊藤博文)가 고종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양위를 요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고종황제의 측근인 윤택영(순종의 장인)과 권신목(영어통역원)이 총영사관으로 찾아와 헤이그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설득해보냈다.또 이종호(이용익의 손자)를 위시한 일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지사에게 헤이그에 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왔다는 주지사의 전보를 받고 저지하도록 조치했다.(1907년 7월25일 플란손 총영사가 헤이그밀사사건과관련,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국제정세에 어두워 러·일비밀협상이 진행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고종은 니콜라이2세와 러시아의 ‘변함없는우정’만 믿고 3인의 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결국 밀사들은 황제접견은커녕 외무장관도 만나보지 못했다.러시아 외무부는 밀서를 서류철속에 보관해 놓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 포츠머스조약(1905년 9월5일 러·일전쟁후 양국이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을엄격히 준수하려고 한다.이 조약으로 외무부는 대한제국이 러시아의 지원이나 협조를 얻어 일본의 압제를 벗어나려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때문에 러시아 지방당국은 전고종황제(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7월19일 순종에게 양위)정부의 지시에 의거,러시아 국경안에서 투쟁하는 한인폭도(의병)의 기도를 분쇄하고 있다.…한인들은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독립투쟁을 바란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회의에 갑작스러운 대한제국 밀사의 출현은 서울에무질서를 발생시켰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활용해 분명한 본보기(고종의 퇴위)를 보였다.일본에 구실을 주는 한인들의 항일투쟁 고무발언을 삼가야 한다.(1908년 10월6일 외무장관이 새로 취임한 소모프 총영사에게 보낸 훈령) 니콜라이2세는 이 훈령문 상단에 “공감한다.”는 친필의견을 남겼다.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밀사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밀사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관파천의 막전막후 1896년 2월2일 전문으로 보고한 바와 같이 신변의 위협을느낀 고종이 밀지를 보내 수일안에 왕세자와 함께 공사관에 피신하겠다는 희망을 밝혀왔다.전임 대리공사 베베르와 함께 고종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보호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궁중을 떠나는 날짜와 시간을 사전 통보해줄 것을 부탁하고 고종의 밀지를 전해온 이범진에게 궁중에서 러시아공사관까지 오는 도중 예상되는 위험성을 지적해 주었다.이범진은 고종이 궁중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미 모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다음날(2월3일) 고종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2월9일 저녁 공사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이날 결행하지 않고 경비병 증원을 요청해왔다.공사관은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긴급요청,2월10일 해군대령 몰라스가 100명의 수병을 인솔하고 서울에 왔다.고종은 2월11일새벽 7시30분에 공사관에 왔다.(1896년 2월11일 스페이예르 대리공사가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결심한 뒤 측근 이범진을 통해 밀지를 보내고 당초 결행키로 한 날짜를 어겨가면서 피신하기까지 10일동안의 급박했던 순간을 보고한 비밀전문 내용이다.당시 서울에는 전임 베베르 대리공사도함께 있었다.멕시코 공사로 발령을 받은 베베르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서울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주재 러시아공사 히토로보가 갑자기 사망하자 러시아는 고종과의 친분을 고려,스페이예르를 도쿄로 보내고 베베르를 유임시켰다. 문서내용에 따르면 아관파천은 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노리고 고종과 친러파들의 공사관 피신요청을 모르는 척들어준 러시아의 ‘기획외교’의 결과물처럼 보인다.물론서울에 부임해온 지 한달밖에 안된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의 입장에서는 주재국 국왕의 공사관 피신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맞아 다소 흥분,실체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당시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이던베베르는 1903년에 쓴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에서 “뜻밖의 정변이 발생했다.러시아공사관 경비해군은 160명이었으나 서울주둔 일본군 수비대는 1000명이 넘었다.러시아는 이때부터 이전 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하게되었으며 한·러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라고 외교적으로 해석했다.스페이예르는 러시아공사관에 375일동안 피신해 있던 고종이 환궁한 지 1년도 채 안된 1898년 2월21일 전문에서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권했다.라고 보고하는 등 제2,제3의 아관파천을 꾀했다.이에 대해 베베르는수기에서 “스페이예르가 대한제국 정부와 독립협회,그리고 일본과 자주 충돌하는 경솔한 행동을 해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실됐다.”고 질책하고 있다. ■고종의 러시아 망명기도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거론된다.최근 이범진 공사가 수차례에 걸쳐 고종황제가 친일파의새로운 간계 때문에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필요할경우 다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하려 한다고 하며 친일파들은 의친왕 이강을 제위에 오르도록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1902년 5월15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파블로프 대리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고종황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어떠한 증후도 현재 포착하지 못했다.(1902년 5월19일 파블로프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답신) 이처럼 러시아공사관으로의 재피신 가능성이 오가는 가운데 러시아망명에 대한 비밀보고서는 1903년에 처음 등장한다. 오늘 고종황제가 신임하는 환관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점령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서울주둔 일본군은 궁정을 포위하고 있고 그들에게 매수된 시위대가 자신을 살해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조언을 요청했다.아마 고종황제는 자신이 위기에처하면 공사관이 러시아로 망명을 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제공하겠다는 약속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903년 12월30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황제가 일신상에 위험이 있을 경우 불가피하게러시아공사관에 피신처를 구하거나 아니면 러시아로 탈출하는 문제에 대해 러시아측의 협조가능성을 은밀하게 타진해왔다.고종은 대궐을 빠져나오기 쉽고 피신을 예상할 수없도록 하기위해 대비(1904년 1월2일 서거)의 시신을 이장할때 사당에서 공사관 담장의 샛문을 통해 오겠다는 것이다.(1904년 1월21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서) 하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 본국의 답신은 없었다.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으로 퇴위하고 난 뒤인 1908년부터 합병직전인 1910년 사이에 망명설이 집중적으로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전 고종황제가 배편으로나 육로로 러시아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고종이 러시아영토에 출현하면 다시 극동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어 대한제국 문제를 둘러싼 한·러관계는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조치는 극동정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고종황제의 망명계획을 거부하는 것이 좋다.(1908년 11월20일 도쿄주재말레비치대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전 고종황제가 러시아나 청국으로 피신할 마음을 갖고 있다.이는 황제자신이나 백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권고를 했다.(1909년 1월8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당시 고종은 일본의 핍박과 잇따르는 시해기도에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 상태였던 것 같다.심지어 “차라리 해외에나가 죽어도 좋다.”는 말을 소모프 총영사에게 했을 정도였다.의병의 도움을 받아 일본 감시요원을 따돌린 뒤 러시아나 청국국경까지 탈출할 기회를 엿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역사에 ‘만약’이란 가정법은 없다지만한일합병이전에 고종의 러시아 망명이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또 어떻게,어디로 흘러갔을지 자못 궁금한 장면이다. 노주석기자 joo@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3)러 거주 한인들의 수난과 투쟁사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860년 러시아와 청국이 북경조약을 체결,광활한 우수리지역이 러시아영토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이때 비로소 조선과 러시아는두만강유역을 경계로 국경선을 맞댔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러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884년에러시아 거주 한인은 대략 1845가구 9000여명에 달했으며남우수리지방의 포시에트에 15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독신으로 넘어와 품팔이를 하던 것이 점차 가족을 동반한집단이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물론 러측 문서에 나타난 이같은 한인이주는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발해유민등 한인 원주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인이주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863년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시에트지역에 가족단위 이주민이옮겨온 이후 이주민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당시상황은 이와 같은 한인 이주민이 크게 도움이 됐다.(1908년 3월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운테르베르게르가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한인이주문제는 아무르동부지역 총독부에서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주로 등장한다.이주의 원인으로 대한제국 북부의 토질이 나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 관헌의 파렴치한 착취에 따른 탈출로 분석했다.또 대한제국 국경에서 가까운 남우수리 지방은 습기가 많고 해양성 안개가 자주 끼어 러시아 농민들은 농지로 적합치 않다며 떠나 버렸지만 한인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한반도와 유사해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러시아 행정당국에서도 한인 이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러시아군대와 도시민들에게 농산물을 재배,공급하는 한편 도로개설과 보수 및 짐마차 부역노동 등에 동원했다.한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1870년 초 조선에 흉년이 겹쳤기 때문이다.많은 국민이 빠져나가자 조선정부에서자주 항의를 해왔다.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체결이전에이주해 온 한인은 러시아국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온 조선인은 러시아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정교회를믿었지만 이들이 러시아인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추측이다.남우수리에 거주하는한 한인가족은 40년을 살았지만 조선식으로 살고 있다.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다.러시아가 청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게될경우 한인의 충성심을 믿어서는 안된다.이곳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이때문에 일본은 한인의 러시아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상기 문서와 출처동일) 러시아 중앙정부나 지방당국은 한인들의 습관이나 생활풍속이 러시아인에 동화되지 않으며 황인종이 극동지방에 많을 경우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우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정책의 시행을 차일피일 연기했을 뿐이었다.1891년 두홉스키 아무르 총독은 오히려 적극 정책을 폈다.한인의 러시아 동화를 독려하는 한편 2년간 러시아잔류허가를 받은 한인이 만기를 넘겨도 추방하지 않았고 새로 오는 이민자도 거부하지 않았다.그 결과 1904∼1905년 러·일전 기간중 한인수는 ▲남우수리 2500명▲하바로프스크와 우드스크에 7500명▲아무르에 3만 3500명에 달했다. 카자흐부대가 관리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18명의 가옥 8채를 철거하지 말고 한인이 경작하는 농토를 몰수하지 말 것.15년간 병역의무를 면제해주고 고국의 가족을 초청,러시아국적을 취득하게 해 줄 것.(1897년 8월16일 타반트 마을 촌장 이성삼외 18명이 카자흐부대 사령관에게 보낸진정서).가족을 초청,농업에 종사한다면 러시아국적취득에 동의하며 국적취득후에는 이들을 카자크관할 마을로 편입시킨다(카자흐 사령관의 회답) 카자흐란 15∼17세기 과중한 세금과 압제를 피해 러시아의 중앙부에서 남방변경지방으로 도망친 농노 및 그 자손들을 총칭하지만 주로 카자흐인들로 구성된 비정규군 둔병(屯兵)을 지칭한다.이들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는 대신 유사시에 징집될 의무를 갖고 있었다.한인 이주자들도카자흐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한인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뒤 또 다른 미개척지로 밀어내고 개척지에는 러시아인들을 이주·안착시켰다.1937년에는 이민족을 국경지역에서 소개(疏開)시킨다는 명목아래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 강제이주시켰다.러시아가 추진한 한인 이주정책의 정체를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이범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정치 이민자들이 노보 키예프스크(두만강 넘어 남우수리지방에 있던 소도시)를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 유보하고 있다.(1908년 4월5일 남우수리지방 국경행정관 스미르노프가 연해주 주지사 플루그에게 보낸 통신문).한인 의병조직에 관심도 갖지 말고 처벌도 하지 말 것.그러나 격려하지는 말 것.(같은해 4월19일 플루크가 스미르노프에게 보낸 답신전문). 러시아 극동지역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이후 러시아혁명정부가 빨치산부대를 해체하는 1922년까지는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이곳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만주와 간도,연해주 등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한·러·청 3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간도와 연해주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주민들의 풍부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내 한인들을 한인의용군으로 편성해 러시아에 공헌케 하는 방법으로는 산악지방에서 빨치산활동으로 일본군을 교란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함경남북도에서 6000명의 모병이 가능하며 소총 2300정이 확보가능하다.…부대는 3개 연대로 구성하며 소대장이상 지휘관은 러시아인으로 한다.(1904년 11월3일 코르프 남작이 제안한 러·일전쟁시 한인의용군 편성계획). 일본 외무성이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이범윤은 200명의 동지를 모아 통감부하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이들은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다량의 무기를구입하고 대한제국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보 키예프스크에집결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육로를 통해 경성(서울)으로 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선박편으로 대한제국 북부로 떠났다.(1908년 7월9일 도쿄주재 러시아대사 말레비치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만주에서는 상인들이 빨치산 대원을 도와 무기와 돈을 지원해 주었다.총대장은 이범윤이며 그는 4000명의 빨치산을 지휘하고 있다.그중 1000명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3000명은 길림과 봉천지방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획책하고 있다.빨치산의 거점지역은 러시아와 청국국경지대에 일부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간도에 있다.(1911년 11월11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군관구 참보부가 총참모부 관리본부에 보낸 비밀첩보보고서)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에서손을 떼게 된 이후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까지 러시아의비밀문서에는 이범윤과 관련된 항일투쟁활동이 유독 많이거론되고 있다.유인석·홍범도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러시아는 항일의병을 겉으로는 ‘강도단’‘폭도단’‘빨치산’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활용하거나 일본군의 두만강쪽 국경침범을 저지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이범진·이범윤·이위종 3인의 항일 역정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발굴된 극비문서에는 이범진(李範晋·1852∼1910),이범윤(李範允·1856∼1940),이위종(李瑋鍾·1887∼?) 3인의 이름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구한말 한·러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세사람의 관계와 비극적인 인생유전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세사람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였다.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과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3인중 한명이었던 이위종은 부자지간이었다.만주와 연해주땅을 오가며 평생 항일의병활동을 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은 이범진의 6촌 동생이었다.이같은 사실은 이범진의 손자 이원갑(李元甲·65)씨에 의해 확인됐다. 또 고종이 같은 전주이씨인 이범진을 ‘조카’라고 호칭한 점으로 미뤄 이들은 이씨 왕가의 먼 일족이었던 것 같다.이범윤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고종을 연해주로 망명시키려는 시도를 한 사실도 문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종의 측근이었던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친러내각이 무너진 뒤 주미공사를 거쳐 주러공사로 부임했다. 고종은 “짐은궁중에서 일본의 포로로 잡혀있지만 북쪽러시아를 바라보며 짐과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짐의 사랑하는 조카,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곳에 남아 니콜라이2세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라.짐이 운명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으라.일본이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있으니 송금할 수가 없다.”(1908년 1월31일)는 서신을 보냈다. 조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끊긴 뒤 이범진은 러시아측이 제공하는 월 100루블의 정치성 생활보조금을 지원받고 연명하면서도 조선정부와 일본의 귀국종용을 거부했다.러시아 외무부차관이 소모프 서울 총영사에게 보낸 1910년 5월의 전문에는 “이범진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를 떠나지 말라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지키느라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일합병이후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범진이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이었다.그는 1911년 1월16일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전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처지에 처했습니다.자살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종에게남기고 목을 매달았다.그의 시신은 페테르부르크 교외 우즈펜스키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범진의 둘째 아들 이위종의 일생은 더욱 기구하다.그는 7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전전하면서 3개 외국어를 익혔다.프랑스 샹생 육군사관학교를 중퇴,러시아로 들어가 주러공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의 귀족 놀켄 남작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1907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만국기자협회에서 행한 일본규탄 연설은 세계에 일본의 잔학상을 최초로 알린 쾌거였다. 그는 생활고와 울분 등으로 러시아인 부인과 이혼한 뒤여기저기를 떠돌았다.1908년에는 군자금 1만루블을 관리하던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으며 이범윤과 함께독립운동을 꾀했지만 러 당국에붙잡혀 추방당했다.1차대전때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한 사실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이름을 바꾸고 시베리아일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조선인국제공산당원의 한 보고서에 나와있다.이후의 행적은묘연하다. 이범윤은 1903년 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을부여받은 뒤 한때 5개 대대의 무장병력을 거느렸다. 대한제국으로의 진격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는 니콜라예스크에서 검거돼 이르쿠츠쿠로 추방됐지만 이곳에서도 1925년까지 항일운동을 폈다.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노년에 거의 폐인이 돼 비밀리에입국,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주석기자
  • 김위원장 발언 평가/ 반갑긴 하지만 “과연…”

    ‘광폭정치냐 립서비스냐.’ 박근혜(朴槿惠·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의원이 14일 서울로 가져온 예상 밖의‘큰 보따리’를 놓고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경색된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실행 가능한 이야기냐.’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있다. 우선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박 의원의 금강산댐 남북 공동조사 필요성 제기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은 ‘접대용 수사(修辭)’라는 지적이 일단 우세하다. 금강산댐의 붕괴가능성에 대해 북한은 ‘날조’라고 펄쩍 뛰면서 지난 7일부터 서울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를 무산시켰다. 금강산댐을 ‘혁명적 군인정신’의 상징물로 선전하고 있는 북한이 스스로 건설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남한 정부와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큰 내부반발을 불러 올 소지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상설면회소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동해선 철도 연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육로) 복원 연결 합의’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경의선이든 동해선이든 철도·도로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 군사당국 사이에 ‘군사보장합의서’가 발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장관회담 등 군사당국자 회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반도횡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을 위해 유럽 여러 나라와 공동으로 협의기구를 설치하는 데 대해 김 위원장은 찬성의사를 표시했다.이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해선 연결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임동원(林東源) 특사와 만나 먼저 제기한 사안이다.그러나 박 의원 스스로 말했듯 이것 역시 ‘정부 당국에서 추진할 문제’다. 박 의원이 이사로 있는 유럽·코리아재단이 중국 베이징에 건립을 추진중인 조선경제인트레이닝센터에 북한 관료등이 유학하는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즉답을 피했다.답방에 대해서도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는 종래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인덕정치,광폭정치’를 내세우며 상대방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다만 적십자사를 통한 6·25 실종군인의 생사확인과 남북대화 재개를 약속한 점으로 미뤄 박 의원 면담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국면전환에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김정일, 박근혜의원 면담서 “금강산댐 공동조사”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금강산댐의 안전 실태에 대한 남북공동조사와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설치에 동의했다고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인 박근혜(朴槿惠)의원이 14일 전했다.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이날 오전 유럽·코리아재단 장자크 그로와 이사장 등 일행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돌아온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13일 저녁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김 위원장과 1시간 동안 단독면담한 데 이어 김용순(金容淳) 대남담당 비서 등이 합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금강산댐 문제와 관련,“남쪽 국민들에게 대단한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만큼 남북 전문가들이 공동조사기구를 만들어 실태를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에 김 위원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꼭 약속을 지켜서 답방을 하겠다고 김 위원장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에 대해서도김 위원장은 “동해안철도를 연결해 남북이 사업을 하겠다고 한국 정부가 합의만 한다면 면회장소는 육로관광길의 적당한 장소에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유럽 국가들이함께 참여하는 한반도횡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관련 실무 협의기구 설치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국군포로 생사확인에 대해서도 “이제전쟁도 끝났고 하니 생사를 확인해 알려주는 것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적십자사를 통해 할 수 있다.”고 흔쾌히 약속했다고 박 의원은 덧붙였다. 박 의원과 김 위원장은 또 오는 9월초 북한 축구대표팀의 남한 방문과 11월말 북한 보천보경음악단의 서울 공연에대해 합의했다.이들 사업은 박 의원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럽·코리아재단이 추진중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와 그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이른 시일 안에 이러한 사안들이 실천될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자세를 취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진경호 전영우기자 jade@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