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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호 내년 초 현역 입대

    유승호 내년 초 현역 입대

    배우 유승호(19)가 내년 초 입대한다. 유승호의 소속사 산 엔터테인먼트는 21일 “유승호가 현재 출연 중인 MBC 수목 미니시리즈 ‘보고싶다’를 마친 뒤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내년 초 현역 입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유승호가 또래 평범한 청년들처럼 제 나이에 국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며 “연예 사병이 아닌 일반 육군 부대 또는 최전방 부대 배치를 원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00년 7세의 나이에 MBC 드라마 ‘가시고기’로 데뷔한 유승호는 영화 ‘집으로’ ‘마음이’ ‘블라인드’ 드라마 ‘공부의 신’ ‘무사 백동수’ 등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로 사랑받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NLL은 실질적 해상경계선” 첫 공식화…“독도, 명백한 한국 영토” 수호의지 강화

    “NLL은 실질적 해상경계선” 첫 공식화…“독도, 명백한 한국 영토” 수호의지 강화

    군 당국이 21일 발간한 ‘2012 국방백서’에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함에 따라 북한의 HEU 생산과 군 전력 증강에 관심이 쏠린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약 2600만t의 매장량을 갖춘 우라늄 부국으로 평가된다. 군이 정보위성 등 한·미 정보자산으로 파악한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채광 등 일련의 과정을 차량 움직임 등을 통해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위성으로 채광, 정련 등 관련 시설 등을 볼 수 있고 북한이 이 활동을 지속하는 일련의 움직임으로 볼 때 우라늄 농축이 목적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핵무기 1개를 제조하려면 15~25㎏의 HEU가 필요하다. 북한은 2000대의 원심분리기를 설치, 가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연간 약 40㎏의 HEU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기갑 전력 등 재래식 전력도 증가하고 기습 도발 능력도 강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군 당국은 백서에서 2010년 ‘북한 정권과 북한 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한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위협과 관련, 해안지역에 배치된 해안포와 방사포 전력뿐만 아니라 상륙 및 공중전력을 전진 배치하는 등 서해 5도와 주변지역에 대한 상시 도발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정규군 규모는 육군 102만명, 해군 6만여명, 공군 11만여명 등 119만명으로 파악됐다. 우리 군은 육군 50만 6000명, 해군 6만 8000명, 공군 6만 5000명 등 63만 9000명으로 북한군의 54% 수준이다. 특히 북한의 육군 전력이 전차 4200여대, 장갑차 2200여대, 야포 8600여문으로 2010년에 비해 각각 100여대(문)씩 늘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방사포(다연장 로켓)는 같은 기간 4800여문으로 300여문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감소한 방사포는 107㎜ 이하 소구경이기 때문에 전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서는 NLL에 대해서는 “1953년 8월 30일 설정된 이래 지켜져 온 남북 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NLL 이남 수역은 대한민국의 관할수역”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이 격년제로 발행하는 국방백서에서 NLL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백서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군은 강력한 수호 의지와 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다.”고 기술해 독도 수호의지도 이전보다 강조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축제로 불야성… “박통 이어 경제기적 재현을…”

    축제로 불야성… “박통 이어 경제기적 재현을…”

    “박근혜 대통령 만세” 19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3가 경로당.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자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삼덕3가는 박 당선자의 생가(生家)가 있었던 곳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6·25전쟁 중 대구 계산성당에서 결혼한 뒤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하면서 1952년 박 당선자를 낳았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차장으로 근무했으며 이듬해 서울로 올라가 박 당선자는 1년쯤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박 당선자의 생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복합쇼핑몰이 자리잡고 있다. 이날 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삼덕3가 경로당에 모인 주민 30여명은 밤늦게까지 TV 앞에서 “박근혜”를 응원하다 마침내 박 후보의 당선이 최종 결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경로당에 비치되어 있는 장구와 꽹과리, 징을 치며 자축했다. 엄일태(81) 삼덕3가 노인회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박근혜”를 외쳤고 주민들도 일제히 한목소리로 따라했다. 엄씨는 “박 당선자가 이곳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주민 모두는 생가가 있었다는 자체 만으로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모두가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로당 최고령자인 안종숙(90) 할머니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 노인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주민들은 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상모동은 19일 밤새도록 장구, 꽹과리 소리가 울려퍼지며 불야성을 이뤘다. 주민 500여명은 오후 6시부터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앞 주차장에 설치된 120인치 스크린을 통해 개표 결과를 지켜봤다. 또 마을 경로당에도 주민 20여명이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6시 방송3사의 출구조사 발표에서 박 후보가 근소한 차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자 주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주민들은 “드디어 해냈다. 장하다, 박근혜”라며 고함을 질렀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상모동 이봉원(55) 주민회장은 “박 대통령에 이은 또 한번의 큰 경사다. 박 후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제 기적을 재현해 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TV에서 ‘박 후보 당선 확실’을 보도한 오후 9시 무렵부터는 북, 장구, 꽹과리 등을 치고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제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 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박 후보는 매년 11월 14일 상모동에서 열리는 박 전 대통령 탄신제에 참석했으나 올해는 선거를 의식해 참석하지 않았다. 마을 뒷산에는 박 대통령의 조부모 및 부모 산소가 있다. 상모동에는 200여 가구 주민 6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청장년층이 함께 어우러져 소통이 잘되고 효심이 깊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대구 한찬규·구미 김상화기자 cghan@seoul.co.kr
  •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박근혜 당선자의 당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록도 만들었다. 청와대에서 영애(令愛)로 유년기를 보낸 퍼스트레이디 대리는 34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다. 박 당선자의 삶과 정치 여정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박 당선자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부모님을 꼽는다. 그는 1990년 일기에서 “비범하셨던 부모님을 모셨던 것부터가 험난한 내 인생 길을 예고해 주었던 것”이라고 기록했다. 20대에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잃은 비운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전차 타고 등교한 대통령의 딸 박 당선자는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이었고 육 여사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보통학교, 대구 사범학교(현 경북대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해 재직 중이었다. 육 여사는 충북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 옥천여중)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일했다. 박 당선자의 외조부인 육종관은 육 여사가 과거 혼인 경력이 있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 전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육 여사는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했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딱딱한 군인 이미지와 달리 가족에게 더할 수 없이 다정한 분”, “젊은 시절 아버지는 로맨티스트”라고 회상했다. 육 여사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내 안에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어머니가 자리 잡았다.”고 할 만큼 신뢰와 애정을 가졌다. 특히 육 여사에 대해서는 단아한 외모와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을 떠올린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의 어린시절 의장 또는 대통령의 자녀라고 해서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평범한 생활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대통령의 자식이기 때문에 혜택을 누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내게 청와대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와대 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 빼곡한 날이었다.”고 적었다. 박 당선자는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해 1964년 졸업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어 성심여자중학교와 성심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학점은 4.0 만점에 3.82였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가 사학을 전공하길 바랐으나 박 당선자는 산업 역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전자공학을 택했다. 졸업 직후에는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친 뒤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지만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었다. ●육 여사 장례 6일 만에 퍼스트레이디역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박 당선자는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영문도 모른 채 귀국길에 올랐다가 가판대에 놓여진 신문 1면에 육 여사의 사진과 ‘암살’이라는 글자를 보고 “온 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 왔다.”고 회상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의 장례식을 치른 지 엿새 만에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참석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온 민원을 점검하고 영세 기업, 소외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수행했고 아침마다 신문을 읽어 주며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주고받기도 했다. 1974년부터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퍼스트레이디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박 당선자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은 누에고치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어 가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외국 귀빈들을 접대하며 외교적 식견도 넓어졌다. 1979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당시 주한 미군 철수 문제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박 당선자가 로절린 여사와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원활하게 풀어가 ‘근혜·카터 회담’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육 여사를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맏딸인 박 당선자에게 많은 의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려고 너를 두었는가 봐.”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당선자는 1974년 11월 일기에서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는 아버지로 하여금,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마저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27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접한 박 당선자는 가장 먼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날 밤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기록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박 당선자는 장례를 치른 뒤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공개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매진했다. 박 당선자는 이 기간을 “외롭고 긴 항해”라고 표현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가 청와대 시절 자신들에게 겸손을 강조한 이유도 신당동에 돌아와서야 절실하게 느꼈다고 회고했다.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라는 공간에서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당시 박 당선자가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들이다. 신뢰를 가장 중시하고 배신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반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당시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1989년 1월 17일) 등 박 당선자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느끼게 된 기간도 오래 지속됐다. 박 당선자는 1980년대 후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바로잡는 등 기념사업회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1989년 박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맞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추도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청와대를 떠난 18년의 세월이 은둔, 칩거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박 당선자는 “쓴웃음이 나온다.”면서 “그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평범함’을 갈구했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1980~1990년 사이 일기를 묶어서 책으로 냈다. 박 당선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결국 평범함 속에 있다고 느껴진다.”면서 “마음의 평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로 여기는 것이며 가장 누리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계기로 박 당선자는 1997년 정치에 입문한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뿌리 깊은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한 박 전 대통령을 따라 경제 안정에 주력했고 가까스로 일으켰는데 무너져 내렸다는 허탈함과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야당 대표를 지내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 당선자의 정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조카 사랑 각별… 여동생과는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후 소원

    조카 사랑 각별… 여동생과는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후 소원

    박근혜 당선자는 독신이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이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박 당선자는 어머니를 1974년 8월 15일 저격범 문세광의 손에, 아버지를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잃는 비운을 겪었다. 여동생 근령(58)씨와 남동생 지만(54)씨, 이들과 결혼한 신동욱(44) 전 백석문화대 교수, 서향희(38) 변호사가 당선자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 및 배우자다. 지만씨 부부 외아들로 초등학교 1학년인 세현(7)군은 당선자의 유일한 친조카다. 박 당선자는 각종 인터뷰에서 “단란한 가족을 보면 저 가족의 행복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말해 왔다. 비운의 가족사를 겪으면서 평범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내외는 당선자 남매를 엄격하게 훈육했다. 어린 시절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특권의식이 몸에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박 당선자는 1999년 쓴 ‘나의 어머니 육영수’에서 어머니에 대해 “부드러운 성품이셨지만 훈육방식은 엄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당선자가 성심여중 때 우연히 관용차량을 타고 등교했던 날 따로 불러 꾸짖을 정도였다고 한다. ●친·외가 대식구… 정·관·재계 ‘화려’ 지만씨는 16살 때 어머니를, 육군사관학교 3학년인 21살 때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방황을 거듭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이후 31살 때인 19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후 2002년까지 다섯 차례나 구속됐다. 그러나 고 박태준 전 총리의 도움으로 삼양산업(현 (주)EG) 부사장으로 취직한 이후 안정을 찾게 된다. 2004년 16살 연하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했다. 서씨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부산 중앙여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박 당선자는 지만씨 부부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생이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지나온 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서향희는)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그의 조카 사랑은 유별나다. 2005년 9월 서향희씨가 세현군을 낳자 “우리 가문의 귀한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문에 귀한 선물을 안겨준 올케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고….”라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당선자는 조카 소식을 듣고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던 도중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가 최고회의 중간에 나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7년 잃고 싶지 않은 세가지로 ‘조카 세현이’를 꼽았다. 최근 한 여성지 인터뷰에선 조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태어나서 저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케이크가 없어도 허공에 대고 후후 하면서 촛불을 끄는 척하기도 한다.”고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케에 대한 박 당선자의 애정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동생인 근령씨와는 몇 차례 갈등을 겪은 뒤 소원한 사이다. 경기여고,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근령씨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90년 귀국한 근령씨는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3남매 간에 운영권을 놓고 18년여간 지리한 다툼이 이어진 끝에 자매 사이는 틀어졌다. 근령씨는 현재 한국재난구호 총재,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 등의 직함을 갖고 있다. 올해 4·11 총선 때 무소속으로 어머니 고향인 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출마했지만 곧 사퇴했다. 지만씨 부부는 몇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수감 중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의 개인 친분, 서 변호사가 이 회사 법률고문을 맡았던 전력 등이 그것이다. 서 변호사는 결혼 이후 활동 반경을 크게 넓혀 왔다. 씨엔에이치(CNH) 감사, 케이엠에이씨(KMAC) 사외이사,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공제조합 운영위원, 코오롱 법률고문 등 각종 사외이사, 법률고문 경력이 화려하다. 2009년 4월엔 대전고검장을 지낸 이건개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주원을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지난해 주원에서 탈퇴해 법무법인 새빛을 설립, 공동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 이후 별다른 경력이 없던 서 변호사의 약진은 박 당선자의 후광 효과라는 말도 나왔다. 서 변호사는 2007년 뉴욕과 바하마를 다녀온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고 2009년엔 하루 81홀을 도는 철인골프대회에 출전해 화제를 뿌렸다. 이런 그에 대한 언론 관심도 지대하다. 서 변호사가 지난 7월 세현군 영어연수 차 홍콩으로 출국한 것을 두고 박 당선자의 사전 가족관리라는 세간의 평도 나왔다. 근령씨와 2008년 10월 결혼한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는 14살 연하이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다. 근령씨는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 신 교수는 부산 성도고,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입문했다. 2008년 총선 때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떨어졌다. 신 교수는 지난해 8월 박 당선자와 지만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박 당선자는 직계가족은 단출하나 친인척들은 친·외가 양쪽으로 화려하다. 정·관계는 물론 사돈관계를 통해 연결된 기업인과 재벌가 인물들이 많다. 정치권에선 박 당선자의 사촌오빠이자 4선을 지낸 박재홍 전 의원, 외삼촌인 5선 육인수 전 의원,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한승수 전 총재가 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2인자로 김대중 정부 때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씨 남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조카사위다. 한 전 총리는 육영수 여사 언니인 인순씨 딸 홍소자씨와 결혼했다. 박 당선자에게도 한 전 총리는 사촌형부가 된다. 한 전 총리의 사위가 고 김진재 전 국회의원 아들인 김세연 국회의원이다. 박 당선자의 이모인 육인순씨는 전 혜원학교 이사장을 지냈고 남편 홍순일씨 사이에 3남 5녀를 뒀다. 딸 소자씨는 대한적십자사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딸 은표씨와 재희씨는 정치인과 결혼했다. 은표씨는 재무부국장, 농수산부 장관 등을 지낸 장덕진 전 의원과, 막내 재희씨는 기업인이자 11대 국회의원이었던 윤석민 전 의원과 결혼했다. 윤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이 운영하던 기업(서주산업) 명의로 불법 융통어음을 발행해 32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김희철·허동수 회장 등 ‘사돈 인연’ 박 당선자의 막내이모 육예수씨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조태호씨와 결혼했다. 선거운동 때 박 당선자 지원유세에도 나섰던 가수 은지원씨는 5촌 조카로 박 전 대통령 누나인 귀희씨 손자다. 재계 쪽으로는 친가 사돈관계를 통해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이 연결되어 있다. 박 후보 친사촌인 박설자씨가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 둘째 아들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과 결혼했다. 김 회장 형인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은 허동수 GS 칼텍스 회장 누나 허영자씨와 결혼해 먼 관계이기는 하나 허 회장과 박 당선자는 사돈지간이다. 친인척이 많다 보니 이에 얽힌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다. 박 당선자 사촌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친박연합’을 만든 뒤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9월엔 박 후보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또 다른 5촌인 박용철씨를 채무 등의 이유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軍 ‘생일빵’ 피해…지휘관 조치”

    군대에서 속칭 ‘생일빵’(생일을 기념한다며 집단으로 구타하는 행위) 명목으로 폭행당한 병사를 적절히 보호하지 않은 것은 인권 침해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했다. 인권위는 육군 A부대 사단장에게 폭행 피해자의 의료조치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고 지휘관들에겐 적절한 처분을 내릴 것을 권고했다고 13일 밝혔다. 피해자 김모(21) 일병의 누나(25)는 “동생이 지난 5월 소속 부대에서 동료 병사 4명으로부터 생일빵 명목으로 100여대를 맞았지만 부대 지휘관들은 45일이 지나도록 피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적절한 의료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김 일병은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뒤늦게 사실을 인지한 군 검찰은 폭행에 가담한 4명을 공동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부대 지휘관들은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에게는 피해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지휘관들이 군대 내 악습을 예방하지 못하는 등 부대관리를 소홀히 하고 A급 관심병사였던 김 일병의 신상관리에 미흡했던 점,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文 “당선땐 전국서 타운홀미팅”

    文 “당선땐 전국서 타운홀미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 후보는 11일 투트랙으로 수도권을 돌며 표심 모으기에 힘을 쏟았다. 문 후보는 경기 지역 7곳을, 안 전 후보는 서울 소재 대학을 각각 1시간 단위로 돌며 강행군을 펼쳤다. 유권자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대선의 전체 판세를 좌우하기 때문에 이날 유세는 여느 때보다 강도가 높았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 유세는 곧 전쟁”이라며 “표가 많다 보니 가장 집중도를 높여야 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경기 고양시를 시작으로 의정부, 성남, 안양, 광명 등 경기 지역 주요 거점을 1시간 단위로 순회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문 후보는 격의 없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그는 “당선이 되면 전국을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과 타운홀 미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호프도 한잔 하겠다.”면서 “대통령이 된 후에는 청와대에만 고립돼 있지 않고 일을 마치면 남대문 시장, 인사동, 노량진 고시촌에 나가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표율 77%가 되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새 정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또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제가 말춤 추는 것을 보실 수 있다.”며 주로 젊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유세를 이었다. 안 전 후보는 고려대, 건국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대학가를 1시간 간격으로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후보는 “청년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가 청년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청년 실업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서 “투표만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저도 청년 문제 해결, 새 정치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면서 “부재자 투표가 14일까지다. 꼭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녁에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을 찾았다. 이날 한 대학 유세 현장에서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민주당 대선 유니폼인 노란색 점퍼를 입고 안 전 후보를 지원하러 나왔다가 접근을 거부당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안 전 후보 측은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점퍼가 조직 동원의 이미지를 줘 오히려 지원 유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 후보는 이날 오전 ‘강군복지 비전약속’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군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사병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대신 육군의 경우 12% 정도 되는 부사관 비율을 20%까지 늘리고 4%에 불과한 여군도 확충해 처우를 개선하겠다.”면서 “의무병의 할 일이 줄고 직업군인을 늘린다면 좋은 군 일자리 대책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군인 급식을 유기농 급식으로 개선 ▲예비군 훈련 기간 단축 ▲병사 학점이수제 도입 ▲계급별 생활관 설치 ▲침대형 병영생활관 확대 등도 약속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co.kr
  • “美·英·佛, 시리아 반군에 군사 지원 검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과 일부 중동국이 시리아 반군에 공군 및 해군력을 지원하고 군사 훈련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2개월간 지속된 시리아 사태가 ‘티핑 포인트’(극적 전환기)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따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군 세력의 마지막 공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데이비드 리처즈 영국 육군 참모총장은 최근 런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요청으로 프랑스, 터키, 요르단, 카타르 군 수장들과 미국의 3성 장군을 초청해 비밀 회동을 하고 이 같은 전략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겨울철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 커 서방국들의 반군 군사력 지원 논의는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진 데다 지금 반군 세력에 개입해야 알아사드 대통령 축출 이후 시리아의 정치 재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등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일부 무장 세력이 시리아 반군 내부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계속 부인해 왔다. 따라서 터키에 반군을 위한 훈련 캠프를 설치하거나 공군·해군력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공군·해군력 지원 방안은 리비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서방국이 무력으로 해당 국가의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는 비난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될 전망이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밤늦게 회의 개최 사실을 시인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여전히 시리아 사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면서도 “정치적, 외교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시리아의 무고한 인명을 구하는 차원에서 국제법 절차에 따라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혀 군사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美재무부, 親알아사드 무장단체 제재 한편 미 재무부는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는 무장단체 2곳과 알카에다와 연계된 반군 단체 알누스라 전선의 지도자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한다고 11일 밝혔다. 데이비드 코언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합법적인 야권의 깃발로 가장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과 친알아사드 성향의 무장 세력이 제재 대상”이라고 말했다. 알누스라 전선은 최근 잇단 자살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단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6·25 전사자 유해 993위 서울현충원 봉안

    6·25 전사자 유해 993위 서울현충원 봉안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수습된 국군 전사자에 대한 합동봉안식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관으로 열렸다. 봉안식은 김 총리를 비롯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 박승춘 보훈처장, 각 군 참모총장, 7개 보훈단체 대표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발굴 사업 추진 경과 보고,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봉안된 전사자 유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해병대의 35개 사단급 부대가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경북 칠곡, 강원 철원, 양구 등 전국 62개 지역에서 발굴한 1045구의 유해 가운데 국군전사자로 확인된 993위다. 합동봉안식 후 올해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는 유해발굴단 중앙감식소(유해보관실)에 일정 기간 보관된다. 이 기간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유전자(DNA)와의 비교 과정을 거쳐 신원을 확인하게 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北미사일’ 긴박한 한반도] 美 정찰기 ‘코브라볼’ 등 110여대 배치… 한반도 유사시 후방전력

    [‘北미사일’ 긴박한 한반도] 美 정찰기 ‘코브라볼’ 등 110여대 배치… 한반도 유사시 후방전력

    북한이 예고한 대로 ‘은하 3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군은 탄도미사일 궤적 추적 기능을 갖춘 정찰기 ‘코브라볼’(RC135s)을 투입할 예정이다. 때문에 이 정찰기가 배치된 일본의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가 주목받고 있다. ●“오키나와는 동북아 지역의 중심지” 해·공군·해병대가 주축인 주일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신속대응전력을 보내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주일미군 병력은 미 태평양함대사령부 예하의 7함대 병력 1만 1541명을 포함한 5만 1810명이다. 이 중 절반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 일본 본토에 있는 요코스카(해군), 요코다(공군), 캠프 자마(육군), 사세보(해군)를 비롯해 오키나와의 가데나(공군), 화이트비치(해군), 후텐마(해병대) 등 7개 기지가 한반도 유사시 지원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지난달 29일 국방부 공동취재단이 현지에서 만난 알프레드 마글비 오키나와 주재 미국 총영사는 “오키나와는 미국에 있어서 동북아 지역의 중심(Key Stone)”이라고 미군 주둔 이유를 설명했다. 동아시아 역내 분쟁에 신속히 대응하려면 1~2시간내 동북아 거점도시에 공군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일미군 5만여명 중 절반이 주둔 미 제5공군 사령부 예하 18전투비행단과 특수작전단이 배치된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는 군산 공군기지의 5배인 445㎢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이 기지는 3.7㎞의 활주로 2개와 54대의 F15 전투기를 비롯해 E3 지휘기, KC135 공중급유기, ‘코브라볼’(RC135s) 전략정찰기 등 110여대의 항공기가 배치돼 있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히는 F22(랩터)도 지난 7월 임시배치됐다 지금은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다. 가데나 기지 관계자는 “F22기는 순항기준으로 2시간 이내에 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본토의 요코다 공군기지에서는 C130 대형 수송기가 병력과 물자를 한반도에 보내고 미국인을 일본으로 철수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오키나와의 화이트비치 해군기지에서는 유사시 미 해병대 병력이 30시간내 한반도에 도착한다. 주일 미 해병대는 한반도에 가장 빨리 투입되는 대규모 증원병력 중 하나로 3해병사단, 32해병기동부대, 3해병 기동여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美해병대 30시간내 한반도 도착 가능 이 밖에 일본 본토에 있는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 7함대 사령부의 거점으로 유사시 한반도로 출동할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의 모항이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조지워싱턴함은 전투기인 슈퍼호넷(F/A18E/F)과 호넷(F/A18A/C) 등 항공기 89대를 보유해 웬만한 국가의 공군 전력과 맞먹는 규모다. 미 7함대 관계자는 “조지워싱턴함은 길이 360m의 비행갑판을 지닌 세계에서 17번째로 바쁜 공항인 셈”이라면서 “7함대는 10여개국과 연간 100번 이상의 연습을 한다.”고 밝혔다. 오키나와·요코스카 국방부 공동취재단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려다가 1910년 이후 ‘덕수궁 이태왕’(고종황제)의 거처로 전락했던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석조전(동관) 복원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3년 말 개관을 목표로 진행하는 덕수궁 석조전 복원공사의 75%가 진행된 3일 현재 복원상황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두 130억원이 투여될 복원공사는 1~3층, 옥상까지 훼손된 곳을 복원해 최대한 원형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옛날 기념사진과 신문 등의 보도사진, 일본 하마마쓰 시립도서관에서 찾은 평면도를 참고했다. 현재까지의 진척 상황을 보면 구조체는 모두 복원했고, 내부 실내장식만 남겨놓은 상태다. 흰 석고로 마감한 벽 상단을 쭉 돌아가며 금박을 물린 황금빛 배꽃으로 장식했고, 노란색 벽지를 바른 것처럼 보이는 벽은 손바닥으로 살짝 훑으면 보드라운 융기를 느낄 수 있는 모직천이 발라져 있었다. 이런 사치스러움은 황제의 품격을 드러내는 방식인 모양이다. 존재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던 3층 목욕탕과 화장실은 평면도에서 찾아 복원했다. 공사를 맡은 선혜종합건축 강석목 이사는 “천장이나 장식용 기둥의 소재가 나무인지, 돌인지 사진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일본 아카사카궁이나 영친왕 도쿄 저택 등을 참고해 보니 이미 20세기 초에는 나무나 돌 대신 석고를 많이 사용해 이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거실과 접견실의 벽난로는 고스란히 복원했지만, 건물 속을 관통해야 하는 연통 복원은 건물의 안전을 위해 포기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처소와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같은 해에 영국 출신 총세무사 존 맥리비 브라운에게 석조전 영건(營建)을 발의했다. 1899년 영국인 존 레지널드 하딩의 설계로 1900년 공사에 들어가 1910년 완공됐다. 당시 구조체 공사는 일본이 담당하고 내부장식은 영국인 로벨이 했다. 석조전은 로코코 양식과 네오클래식 양식이 뒤섞인 것으로 화려하면서 우아하다. 석조전의 변형은 한국의 역사와 괘를 같이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석조전은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1933년 왕궁미술관으로 전용되면서 주요 내부장식과 구획, 창호가 변경됐고, 이때 굴뚝이 철거됐다. 1938년에 이왕가미술관으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금박 장식이 훼손됐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장소와 유엔한국위원단 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방화로 내부가 소실되고 구조체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1954년 육군공병단이 복구한 석조전은 1955년 국립박물관으로,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각각 사용됐다. 2005년 덕수궁관리소 등으로 활용되면서 더 많이 훼손됐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힘입어 2008년 복원이 확정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훼손된 대한제국 황궁의 모습을 건립 당시의 모습대로 되살리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석조전을 가칭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복원되는 석조전은 1층에는 수장고, 전시실, 사무실이, 2층에는 홀, 알현실, 대식장, 소식당, 귀빈대기실, 전시실이, 3층에는 황제와 황후의 거실과 침실, 홀, 전시실이 자리 잡는다. 옥상에는 굴뚝과 장식물을 복원한다. 복원이 완료되면 현재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종황제의 침대 등 유물이 석조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직 파워우먼] (9) 국방부·軍

    [공직 파워우먼] (9) 국방부·軍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전체 장교 가운데 여성은 5.7%인 3593명이다. 양승숙(62) 예비역 준장이 2001년 첫 여성장군이 된 이래 8명의 여성 장성이 나왔으며 3명이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다. 행정부처로서의 국방부 또한 일반직 공무원 가운데 여성이 250명으로 36%에 이른다. 1996년 첫 행정고시 출신 여성 사무관이 입성한 이래 4급 이상은 63명 가운데 10명, 5급 사무관은 219명 가운데 60명으로 집계된다. 특히 세종시 이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방근무도 적은 편이라 여성 공무원에게는 선호 부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준장에 머무른 역대 여성 장군도 간호 등 특정 병과가 대부분이며 무엇보다 영관급 장교가 부족해 허리층이 얇다. 1997년부터 각군 사관학교가 여생도의 입학을 허용한 지 이제 15년이 지난 만큼 앞으로 10여년 후에는 본격적인 ‘우먼 파워’를 기대해 봄 직하다. 올 연말 전역을 앞두고 있는 송명순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준장)은 첫 전투병과 출신 여성 장군으로 여군의 대표명사로 통한다. 31년간 군생활을 해온 그는 1990년 여군병과가 해체되면서 보병으로 병과를 바꿨고 특전사 여군대장, 육군훈련소 교육연대장, 한·미 연합사령부 민군작전처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여군으로서는 많지 않은 작전통으로 꼽혀왔으며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남성 장교를 통솔한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해 연말 국군간호사관학교장으로 취임한 박명화 준장은 간호병과 출신 여섯 번째 장군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계급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부하와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덕장’으로 통한다. 국군 강릉·대전병원 간호부장, 육군본부 건강증진과장 등을 역임하며 풍부한 전문의료지식을 바탕으로 군 의료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받는다. 여성 군법무관 1호 출신인 이은수 육군 법무실장(준장)은 역대 여성 장군 가운데 최연소다. 군 사법 조직의 특성상 변호사, 검사, 판사 역할을 모두 해봤다. 초임장교 시절 군사법원에서 맡은 국선 변호 업무가 보람찬 기억으로 남는다는 그는 육군법무실 고등검찰부장, 육군군사법원 군사법원장 등을 두루 거쳐 연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영전을 앞두고 있다. 일반직 여성 공무원도 군 안팎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1996년 국방부 최초의 행시 출신 여성 사무관으로 화제가 됐던 유균혜 재정계획담당관은 올해 9월 최초의 여성 부이사관(3급)이 돼 일반직 여성 관료 가운데 최고위직이다. 정책홍보과장 시절 SNS를 통한 국방부 홍보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을 들었다. 2005년 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의 전신)에서 옮겨온 김신숙 행정관리담당관은 국방부 여성 공무원의 기대주로 꼽힌다. 2000년 행정고시 일반행정직 수석합격자이기도 한 그는 안보정책과 영어에 능통해 한·미 동맹 현안과 대미 협상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33년간 국방부를 지켜온 7급 공채 출신 여성 과장 3명도 빼놓을 수 없다. 김송애 전직지원정책과장과 백경희 군비통제과장, 그리고 유향미 자원동원과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국방부에 여성인력이 생소하던 1979년부터 근무해 ‘살아 있는 역사’로 통한다. 김송애 과장은 2005년 국방부의 첫 여성 과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육군대령이 해군장성 고소

    국방부 직할부대에 근무하는 육군 대령이 직속상관인 해군 장성을 군 검찰에 고소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27일 군 당국에 따르면 국군복지단에 근무하는 민 모 대령(육군)은 직속상관인 김 모 소장(해군)을 복지사업과 관련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지난 16일 군 검찰에 고소했다. 군 검찰은 고소장이 접수되자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민 대령은 ‘김 소장이 군인가족 복지차원에서 추진해온 영외 유통업체(마트) 입찰 방식을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정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업무 방식을 놓고 발생한 마찰”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번 고소 사건이 군 안팎에서 ‘하극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부하가 상관을 고소한 이번 사건의 내용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법률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군 내부에서는 2010년 1월 육·해·공군 관련 조직을 통합해 출범한 해당 부대의 조직 특성상 이런 사건이 예견된 것이라는 반응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슈퍼히어로 영화 ‘엑스맨’(2000)을 통해서다. 미 육군의 극비 실험 결과 탄생한 까칠한 돌연변이로 수컷의 매력을 물씬 풍긴 ‘울버린’이 그다.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엑스맨’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스핀오프-‘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만들어졌다. 슈퍼히어로 영화 주인공은 대개 여성 관객의 외면을 받기 쉽지만 그는 예외였다.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캐릭터인 동시에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란 점에서 끌렸을 것이다. 물론 189㎝의 훤칠한 키와 섬세한 근육질 몸매, 깊고 슬픈 눈,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춘 우월한 하드웨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피플지(誌)가 그를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올려놓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눈치를 챘겠다. 호주 배우 휴 잭맨(44)이다. 그가 6100만 달러짜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갸우뚱한 이들도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짐승남의 이미지가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잭맨의 이름을 처음 호주 밖에 알린 건 고전 뮤지컬 ‘오클라호마’였다. 1998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로열내셔널극장 무대에 오른 ‘오클라호마’로 잭맨은 올리비에상 후보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당시 잭맨을 캐스팅한 인물은 영화 ‘레 미제라블’의 공동제작자인 캐머런 매킨토시였다. 2004년에는 1970년대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 피터 앨런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85년 10월 바비컨센터 초연 이후 런던에서 27년 동안 1만회를 훌쩍 넘는 최장기 공연 기록을 이어가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과정에서 잭맨이 가장 먼저 거론된 건 당연했다. ●“난, 준비된 뮤지컬 배우” 잭맨이 다음 달 북미와 한국 등에서 개봉을 앞둔 ‘레 미제라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제왕’ 매킨토시와 함께 왔다. 잭맨은 26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뮤지컬 영화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시점이 딱 맞았다. 내가 먼저 톰 후퍼 감독에게 연락해 장발장 역을 맡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엑스맨’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많지만 장발장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고결한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킨토시는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20년 전에는 잭맨이 너무 어렸다. (그가)나이를 먹어야 이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렸다.”며 웃었다. 이어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도 마찬가지다. 해서웨이의 어머니가 ‘레 미제라블’의 미국 투어 때 판틴 역을 했는데 그때 해서웨이는 꼬마였다. 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러셀 크로도 내가 시드니에서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열었을 때 응시했다고 하더라. 20여년 전 앨런 파커 감독이 영화화하려다가 무산됐는데 운명인 것 같다. 덕분에 지금 배우들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셀 크로·앤 해서웨이·어맨다 사이프리드… 호화 캐스팅 ‘레 미제라블’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킹스스피치’로 지난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톰 후퍼가 메가폰을 잡았다. 잭맨은 물론, 러셀 크로(자베르 경감), 앤 해서웨이, 어맨다 사이프리드(코제트), 에디 레드메인(마리우스) 등 호화 캐스팅을 했다. 제작방식도 독특했다. 지금껏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은 출연배우들이 미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한 뒤 상대배우와 연기를 펼치며 립싱크를 하는 식이었다. 반면 ‘레 미제라블’은 촬영 현장에 아예 피아노를 갖다 놓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배우들은 무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대 배우의 리액션으로 고조된 감정을 실어 노래했다. 뮤지컬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브 녹음을 했다는 얘기다. 잭맨은 “라이브로 노래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배우를 직접 보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박자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론 배우의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잠기기도, 갈라지기도, 속삭이기도 했지만 후퍼 감독은 이를 고스란히 살렸다. 이와 관련, 잭맨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기를 하는 건 레이싱과 같다. 드라이버가 본능에 따라 기어를 바꾸듯이 나도 현장의 감정에 의지해 노래를 했다. 음정이나 박자가 맞는지를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다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손꼽히는 배우들의 틈에서 가장 돋보인 건 잭맨이다. 굶어 죽어 가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의 옥살이를 했던 장발장이 가석방된 시점부터 판틴과 코제트를 만나 새 인생을 찾고, 숨질 때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분장이 아닌 목소리 높낮이와 성량, 눈빛으로 표현했다. ‘엑스맨’ 시리즈와 ‘반 헬싱’ ‘리얼스틸’ 등 액션영화가 주를 이룬 그의 커리어에 오랫동안 남을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액션을 고대한 팬들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새해에는 공동 제작 겸 주연을 맡은 두번째 스핀오프 영화 ‘울버린’을 통해 짐승남으로 돌아온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자식같은 부하의 어려움, 지나칠 수 없어”

    “자식같은 부하의 어려움, 지나칠 수 없어”

    초겨울 날씨가 시작된 가운데 예비군 지휘관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하와 그 가정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육군 52사단 서울 송파구 마천2동 예비군 동대장 심우정(53)씨. 심씨는 지난 7월 마천2동대로 전입한 상근예비역 장성훈(21)이병의 가정 환경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단독주택에 무상으로 입주하도록 돕고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게 해줬다. 장 이병은 송파구 거여1동의 좁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버지 장종만(51)씨와 여동생과 함께 가장노릇을 하면서 생활해왔다. 그는 3년 전 목재공장에서 일해왔던 아버지 장씨가 허리디스크로 일손을 놓게되면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식점 서빙,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심씨는 “비좁고 쾨쾨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 단칸방부터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회상했다. 심씨가 부하의 가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는 이야기가 초등학교 동창생들 사이에 전해지자 지난 9월 그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오토바이 수입상을 하는 한 동창생이 마천동 뉴타운 개발 예정지에 소유하고 있던 방 2개 딸린 단독주택을 이들 가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무상으로 임대해주겠다고 한것. 지난달 20일 이들 가족이 새 보금자리로 이사하는 날, 심씨는 자비를 들여 에어컨과 싱크대도 설치해 주고 장 이병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각종 참고서를 구해주기도 했다. 심씨는 “군에서 부하는 자식과 같고 어려운 환경에서 복무하는 병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조금만 돕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장 이병은 “동대장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돼 너무 감사할 따름”이라며 “병역을 마친 후에는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거창 양민학살’ 유족에 국가배상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법 민사6부(부장 신광렬)는 25일 거창사건 희생자의 유족 박모(79·여)씨와 아들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2008년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를 이유로 다른 유족 300여명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원심을 확정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거창사건은 6·25전쟁 때인 1951년 2월 9일부터 사흘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무장공비 소탕에 나선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14세 이하 어린이 385명을 포함한 양민 719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거창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라며 “피고가 적극적으로 피해회복 조처를 하기는커녕 시효소멸 주장 등을 통해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격에도 걸맞지 않다.”고 밝혔다. 또 2005년 제정된 과거사정리기본법은 국가가 거창사건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거나 적어도 그런 태도를 보여 원고들이 그렇게 믿게 했다고 지적했다. 6·25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유사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문경사건’과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피해자들은 이미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았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받게 되는데 거창사건 유족에게만 달리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거창사건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을 본인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와 자녀 5000만원, 형제·자매 1000만원으로 각각 정했다. 이번 소송의 배상규모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원고가 배상액 일부만 청구했기 때문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아버지와 하늘 지키는 늠름한 딸이 될게요”

    “아버지와 하늘 지키는 늠름한 딸이 될게요”

    “어렸을 때 조종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어요. 이제 저도 아버지와 함께 조국의 하늘을 지킬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29년간 육군 항공의 헬기 조종사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아버지를 동경하며 그 뒤를 이어 조종사가 된 여군 중위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지난 16일 육군항공학교 12-2기 항공장교 양성반을 마친 이아름(27) 중위. 이날 수료식에는 헬기 조종사인 아버지 이원춘(50) 중령이 참석해 40주간의 교육훈련 과정을 무사히 마친 딸에게 육군항공 조종사 자격 휘장을 직접 달아 줬다. 육군은 18일 아버지와 딸이 현역 헬기 조종사로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중위는 목원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나 어릴 때부터 꿈꾸던 군인의 길을 잊지 못해 2010년 7월 여군사관 55기로 임관했다. 지난해 정보통신 소대장 보직을 마친 이 중위는 육군항공 조종사 과정에 지원해 엄격한 선발절차를 통과했고, 올 3월부터 육군항공학교에서 조종사가 되기 위한 양성 교육을 받았다. 이 중령은 현재 육군항공학교에서 항공군수학교육대장으로 재직 중인 베테랑 조종사다. 1981년 3사관학교 18기로 임관했고 1984년 육군항공 조종사가 된 이래 2000여 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령은 “헬기 조종사의 길은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등 순탄치 않기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딸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 중위가 조종할 헬기는 UH60(블랙호크)기. 이 중위는 이 헬기로 병력과 물자 수송 임무를 맡을 예정이다. 현재 육군에는 여군 조종사가 30명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책꽂이]

    ●권력을 향한 허상들의 말춤(이철용 지음, 통비결 펴냄) 장애인이자 빈민운동가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저자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불고 있는 안철수 열풍에 대한 반감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1만 2000원. ●덕불고(정두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저자는 육군 3사관학교 7기생으로 중장으로 예편한 예비역 장성. 32사단장 시절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을 도입해 군 문화 개혁 운동을 벌인 주인공으로 이 운동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졌는지 설명했다. 또 전역 이후에도 이 운동을 이어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를 꾸려 총재직을 맡고 있다. 1만 4000원. ●세상은 나의 멘토(UNGO아카데미 강사진 지음, 책마루 펴냄) UNGO란 UN과 NGO의 합성어다. 월드비전,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참여연대 등 세계기구와 시민단체 쪽에서 활동하는 젊은이 13명이 모여 만든 아카데미다. 국제 활동이나 기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각 단체의 실무들을 다뤘다. 1만 5000원. ●하이테크 시대의 로테크(허원순 지음, W미디어) 현대의 속도 경쟁사회에서 행복의 키워드는 하이테크가 아닌 로테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직 언론인인 저자는 책에서 하이테크와 로테크, 하이콘셉트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4개의 키워드로 현대 사회를 설명하고 문화의 안목을 키우라고 권한다. 1만 3000원. ●치바이스가 누구냐(치바이스 지음, 김남희 옮김, 학고재 펴냄)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국 미술의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가운데, 가장 중국적인 화풍을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목공 출신 치바이스의 자서전. 피카소가 “치바이스가 있는데 왜 중국 사람들이 미술을 하러 프랑스에 오느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는 물론 최근 작품이 피카소의 작품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화가의 얼굴, 자화상(로라 커밍 지음, 김진실 옮김, 아트북스 펴냄) 미술 평론가로 신문에 관련 글을 기고하는 저자가 초상화 가운데 자화상에만 집중해서 써낸 책으로 뒤러,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뭉크, 반 고흐, 워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자화상에 대한 얘기들을 담았다. 화려한 도판과 함께 진행되는 평이한 수준의 설명이 흥미롭다. 3만 5000원.
  • 꽃미남 황손 어찌 그리 슬픈 얼굴이오? 빼앗긴 나라 강제뿐인 삶 서글퍼 그런다오!

    꽃미남 황손 어찌 그리 슬픈 얼굴이오? 빼앗긴 나라 강제뿐인 삶 서글퍼 그런다오!

    워낙 충격이 커서일까. 구한말, 그러니까 흥선대원군, 고종, 명성황후 등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 제 특권 지키기에만 열중하다 결국 나라를 들어먹었다는 혹평이 있는가 하면 알고 보면 그래도 뭔가 노력을 하려 들었으나 이미 성패가 결정된 일에 휘말리면서 희생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역사학적 논란과는 별개로 대중적 정서는 아무래도 후자 쪽인 듯싶다. 그래서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는 대중매체 쪽에서는 명성황후를 이상화하는 데 이어 고종을 개명군주로 조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떨까. 황족으로 태어났으나 태어났을 때는 이미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간 뒤다. 내선일체에 따라 일본 육사에 진학했지만 한국말을 거침없이 썼고 일본 왕실과의 결혼을 강요당하지만 끝끝내 거부해 그나마 친일파의 딸과 결혼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당시 황족치고 일본인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이 유일했다. 그 뒤 중국으로 발령 나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발각된 적이 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돌자 일본으로 다시 발령받는다. 일본 근무를 거부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일본으로 가는데 그곳이 히로시마다. 첫 출근 날, 원폭 투하로 사망했다.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1912~1945) 얘기다. 비운의 왕자인 셈인데 사진으로 본 이우는 둥글둥글하기보다는 늘씬하니 꽃미남에 가깝다. 복장도 꽤 멋스럽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은 내년 1월 13일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1880~1989’전을 연다. 고종 황제와 그의 후손들에 대한 각종 자료 사진을 국내 기관뿐 아니라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보스턴미술관 등 국외 기관에서까지 대여해 와 꾸민 전시다. 원본 사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대의 풍경을 보는 데 꼭 참고할 만한 전시다. 고종은 근대 문명에 비교적 많은 호기심을 드러낸 황제답게 사진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시찰단인 보빙사 일행의 자문 역이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이 1884년 처음 고종을 촬영한 뒤 고종 본인은 물론 왕족들도 많은 사진을 찍게 됐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사진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묘하게 명성황후 사진만은 찾기 어렵다. 그간 명성황후 사진을 발견했다는 소동은 몇 차례 벌어졌지만 모두 가짜로 판명났다. 이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살해 대상에 올랐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차례 살해 대상으로 오른 뒤부터는 신변의 안전을 위해 얼굴을 노출하는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여기에다 ‘시아버지에게 맞선 며느리’라는 세간의 관심 때문에 명성황후 사진 찾기가 과열된 측면도 있다. 흥미로운 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앨리스 루스벨트가 집에다 순종의 사진을 걸어둔 장면을 찍은 1966년 사진도 있다. 앨리스 루스벨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이다. 1905년 일본,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미국 아시아순회사절단의 일원이었다. 앨리스는 극진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미국의 공주님이라는 세속적 관심도 있었지만 미국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고종이 앨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준 것이 순종의 사진이다. 그런데 당시 아시아순회사절단장은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차지한다는 밀약,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일본에서 성사시킨 직후였다. 이처럼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사진이 모두 200여점에 이른다. 4000원. (02)2188-607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방사청, K2 파워팩 ‘엉터리 선정’

    방위사업청이 육군의 차기 전차인 K2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선정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청은 독일산 제품을 선정하기로 미리 결론을 내린 뒤 심의를 진행했으며 실제 성능시험평가 과정에서도 국산 제품을 차별한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육군본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K2전차 파워팩 적용 실태’에 대한 공익감사 결과를 15일 공개했다. 감사 결과 방사청은 지난 4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 ‘K2 전차 초도양산 파워팩 적용 안건’을 상정하면서 K2에 처음 적용되는 해외 파워팩의 엔진에 대해 이전에 양산 실적이 있었던 것처럼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 감사원은 “2007~2008년 시험평가에서 100㎞ 및 8시간 연속 주행 등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고 시험평가에서 전차기동 및 시동 불가, 매연 과다 발생, 제동장치 고장, 오일 누유 등의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해외 파워팩은 연료 소모량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채 도입됐고 규격을 벗어난 과출력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과출력 현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방사청은 독일산 파워팩을 적용하기로 자체 결정한 뒤 국방과학연구소에 이를 뒷받침할 내용의 공문을 보내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감사원은 방사청장에게 공정한 과정을 거쳐 파워팩을 다시 결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이와 함께 K2 개발 사업을 총괄해 온 사업본부장과 현역 준장인 사업부장에게는 강등을, 일반 공무원인 사업팀장에게는 정직을 각각 권고했다. 노대래 방사청장에 대해서는 주의 조치했다. 감사원이 현역 장성에 강등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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