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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곡사업 감사 26일부터 시작/감사원

    감사원은 오는 26일부터 육군본부와 군수사령부등을 대상으로 「군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다. 감사원은 다음달 12일까지 1단계 감사를 벌인 뒤 곧이어 2단계 감사에 착수,11월 중순까지 해군과 공군에 대한 율곡감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 이번 율곡감사에서 감사원은 지난해 감사대상에서 제외됐던 사업들 가운데 규모가 크고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들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감사원은 또 국방부가 지난 1월부터 두달동안 기무사·특명검열단·합동조사단·법무관리관실등의 합동특별감사단을 통해 실시한 30㎜대공자주포사업인 「비호사업」과 팬텀기 성능개량사업,초등훈련기사업,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해상초계기사업,함정용 부품구매,한국형 구축함사업,상무사업등 8개 사업에 대한 특별감사결과도 함께 점검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지난해 지적된 시정사항이 제대로 고쳐졌는지와 각종 사업의 기종선정과 조달계약이행,무기획득운용및 방산업체관리등을 중점 감사한다.
  • 전 전대통령 「국민께 드리는 말씀」 요약

    ◎“「12·12」는 사회 평온… 쿠데타 아니다” 주장/전 총장측이 먼저 자의적 부대 출동/보안사,내전 막으려 대응병력 동원 90년대도 반이 지나고 몇년 안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에 제가 70년대의 「12·12사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2·12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 관련해서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장악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정권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털어놓고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의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되었고 10·26 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50m의 지척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울렸는 데도 평생 총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 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됐으면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맡고 있는 정씨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를 의심하면서도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그가 하자는대로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났습니다. 육군본부로 이동한 뒤에도 군과 휴전선의 이상동향을 알아보고 일단 긴급상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정상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대로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과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도 수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된 뒤에는 『박대통령의 서거는 애석하지만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고 김재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겠다』고 정치적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내란사건에 대한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했으니 「하극상」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범인이 권부의 한 축인 중앙정보부장이었다는 사실,관련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바로 용의자 수사를 위한 영장발부권자(계엄사령관)였다는 사실등 통상적 방법과 순리적 절차에 따라 용의자를 연행·수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밟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 않나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고 사전재가가 나기 전에 정총장을 연행한 것도 시비가 될 수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미리 연행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처음에는 재가가 난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습니다.재가에는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했으나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 시간 만큼 재가가 늦어진 것입니다. 합수부측이 처음부터 쿠데타 목적으로 전투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총장을 연행할 때에는 수사관과 수사관을 돕기 위해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 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체계를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정총장측 지휘관들은 합수부와 대통령 경호부대인 30경비단을 향해 포격을 명령했는데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총리공관등이 있는 특정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시키는 위험천만한 만행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미사일 발포까지 명령한 저들의 난동에 대해 보안사령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태가 내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응병력을 출동,난동지휘관들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입니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께서는 건재하셨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행정부·국회·사법부나 국민생활에 아무런 변화나 영향이 없었습니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러한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당시 우리의 생각은 순수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필연적 인과에 따라 굴러가며 10·26이라는 반인륜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12·12의 결단에 힘입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승화·장태완씨,전씨측 「석명서」 반박/“계염사령관 불법 체포… 분명한 반란행위”/대통령 경호병력 사전결제없이 교체/정/무단 서울진입 무장병력 진압은 당연/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하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아파트 자택에서 전전대통령측이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정 말고는 어디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 말문을 털어놓는다』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전대통령측은 우선 정전총장의 내란방조의혹에 대해 김재규가 육본벙커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날 하오7시20분쯤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다급한 김에 김부장에게 「외부소행이냐 내부소행이냐」를 물었으나 김부장이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측은 정전총장이 차안에서 김재규와 앞으로 계엄이 내려질 경우 어떤 부대를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안에서 김부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 내용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고 계엄령을 내려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일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비상상황에서 사후수습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참모총장으로서 동원가능한 부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시간을 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흉계다.김재규와 육본벙커로 돌아오자마자 전군에 비상을 걸어 북한의 남침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또 자체방위력이 없는 육본을 방어하기 위해 9공수에 출동을 명령했다.전방부대는 북한병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양평에 있던 20사단에 대해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장태완수경사령관을 불렀는데 1시간후쯤 육본벙커로 왔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날밤 11,12시무렵 김비서실장으로부터 범인이 김정보부장이란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해 듣고 김진기헌병감에게 체포토록 명령했다.수사관들을 차출하는등 준비에 1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체포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다면 왜 나와 사이가 좋지도 않던 보안사령관에게 수사토록 했겠는가. ­전두환전대통령등 12·12관련자들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당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수습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계엄사령관이다.전두환의 합수부도 따지고 보면 법에 명시된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시해범 색출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참모총장의 권한중 일부를 위임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전두환일파에게 참모총장의 공관을 무력으로 점령해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권한을 줬느냐. 그것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헌병대병력을 자기들 수하의 부대로 교체하고 사전결재를 9시간이나 미루고 감금상태에서 사후결재를 한 것이 어떻게 합법이냐. 또 12·12사태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재향군인회장(63·종합11기)도 전전대통령의 석명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면서 『지휘계통 없이 불법적으로 서울시내에 들어온 무장병력은 당연히 진압해야 하며 이 진압행위를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개분대이상 규모의 무장병력이 서울시내에서 돌아다니려면 24시간이전에 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반드시 헌병과 함께 다녀야 한다』면서 『수경사령관은 통보가 없는 병력에 대해서는 즉시 연행하거나 포획·사살하도록 임무가 부여돼 있다』고 당시 임무를 설명했다.
  • 42년만에 치른 소대장 영결식/연천 DMZ서 심창섭소위 유골 발견

    ◎6·25 백마고지전투서 산화… 현장에 묻혀/신분증 등 찾아내 신원확인… 훈장 추서 「군번 120728.이름 심창섭.소속 보병 제9사단 28연대 2대대 5중대.계급 소위」 6·25당시 임관 6개월도 못돼 격전의 백마고지전투에서 전사,전우들에 의해 포연이 자욱한 그 자리에 묻힌 심소위의 유골과 유품이 42년만에 발굴돼 17일 현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심소위의 유골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방 열쇠부대 수색대대 소대장 권오윤소위(25)등 수색대원 10명은 지난 6월15일 연천북부 비무장지대에서 진지보수작업을 위해 땅을 파내려가던중 흩어진 유골을 찾아냈다. 초여름의 더위속에서 땀을 흘리며 삽을 놀리던 대원 이상현상병(22)이 땅에 묻힌 유골과 가죽지갑,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빛바랜 신분증 1개등을 발견한 것. 수색대원들은 이 유골이 전투끝에 산화한 선배장병의 것으로 직감,헌병대에 보고하고 정밀조사에 들어가 유골일체와 「심창섭」이라고 새겨진 플라스틱도장,실탄 10발이 들어 있는 카빈소총을 추가로 찾아냈다. 열쇠부대는 이 유품들을 즉시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지문감식등을 의뢰하는 한편 육군본부 병적과의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자명부등을 통한 신원확인작업에 나섰다. 지문감식에는 실패했지만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에서 전사·위패봉안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한달여만인 지난달 중순 신원이 최종확인됐다. 국군문서보관소는 심소위에 대해 「52년5월24일 소위임관,52년10월9일 강원 철원지구에서 두부파편창으로 전사,본가에 봉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마고지는 52년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동안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이 펼쳐진 격전지.양측 합해 1만3천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 바뀐 것으로 전사에 기록돼 있다. 육군은 당시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한 심소위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17일 상오 부대안에서 참전동지·유가족등이 참가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르고 심소위에게 1계급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독자로 대가 끊긴 심소위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심재홍씨(47)는『항상 위패만 국립묘지에 봉안돼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고인도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 「바둑 국보」 이창호에 병역특례를/안성문 바둑관전기고가(기고)

    『방위병으로 복무했다.몰래 빠져나와서 시합을 하긴 했지만 부대에 돌아와서는 고참들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응창기배를 제패,순국산 고추장바둑의 위력을 만방에 떨친 바 있는 서봉수9단은 그의 참담하던 군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바둑을 조금 잘 두면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라 하더라도 남들보다 편하게 군대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바둑 좋아하는 상관을 만나면 이른바 「바둑사역」으로 고된 훈련을 대체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서9단의 경우는 어찌된 일인가.군에 간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서 유독 서9단만 윗사람들에게 밉보였다는 말인가.그건 아니었다.조금 편하게 지냈다는 기사회장 정수현8단의 얘길 들어보자. 『나는 현역이었는데 비교적 운이 좋았다.큰시합 한두개 정도는 참가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당시는 기전이 적어서 시합에 다 참가해도 연간 20국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그랬다.다른 시합에도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단장에게 틈나면 요청했으나 사단장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제대한 다음에 해도 되잖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9단이나 정8단이나 시합참가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두사람의 군생활은 80년대 중반 방위병으로 복무한 유창혁6단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래도 행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유창혁6단은 아예 시합에 나올 수조차 없었다. 유창혁6단도 배려를 받긴 받았다.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육군본부였다.그러나 유창혁6단은 그 안의 체력단련장이라는 곳에서 속된말로 뺑뺑이를 쳤다.육군본부에서는 「스타」가 너무 흔해 누가 누구를 봐주고 할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유창혁은 「바둑사역」으로 편한 생활을 하기는커녕 일요일외에는 시간이 없어서 대부분의 시합을 기권패로 장식해야만 했다.이 무렵 유창혁이 그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패를 기록하고 승단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이창호7단의 군입대가 코앞에 닥쳤다.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방부에서는 「최대한 편의」를 보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그런데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7단의 신변을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국방부장관이 이창호7단 옆애서 매일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상부의 지시와 「막사의 논리」는 결코 같을 수가 없는 법이다.경험자들의 예길 들어보면 국방부의 편의보장은 빛좋은 개살구가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이창호7단은 11관왕으로 연간 대국수만 해도 1백국이 넘는다.공휴일·주말을 빼면 평균2∼3일에 한판꼴이다.그런데 푸르등등한 제복을 입고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어찌 걸핏하면 사제물을 먹으러 나올 수 있단 말인가.그것이 불가하다면 갖고 있는 타이틀을 모두 반납해야 할 판인데 그렇게 되면 모처럼 세계정상에 선 한국바둑계는 대공황사태를 맞게 된다. 기사의 병역특례에 관한 한 우리는 조치훈이라는 행복한 케이스를 알고 있다.조치훈은 당시 관계요로에서 앞다투어 주선해준 덕분에 무학으로 병역면제를 받고 돌아가 얼마후 일본바둑계를 석권했다.조치훈은 국적은 한국이나 바둑은 일본바둑이다.그러나 이창호는 그야말로 순국산 신토불이,그런데 그 새 어찌 이리도 인심이 야박해졌단 말인가. 올초 한참 물이 오르던 윤현석3단,이상훈3단,김승준3단 등 이7단의 또래들이 줄지어 입대했다.또 최명훈3단,김영삼초단,양건2단,이상훈2단 등 준재들이 속속 입영할 판이다.이들 다를 면제해주자는 얘기가 아니다.바둑 5천년사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천재,자동차 1백50만대 수출보다도 더 가치있는 국보 하나를 아끼고 키우자는 것뿐이다.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의무다.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이런 걸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단지 60만 군대속에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끼워넣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묻고 싶을 뿐이다.복지불동과 행정의 편의만을 일삼는 우리네의 구태가 이번만큼은 결코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채명신장군이 말하는 「우리를 지키는 길」

    ◎“국민 깨어있어야 불행 막는다”/“유사시 나부터 희생” 각오로 뭉쳐야/군에 따뜻한 애정과 격려 절실한 때/탄광속 학살 등 공산군의 잔학행위 지금도 생생… 북 평화손짓 늘 경계를 최근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히 미묘해 지면서 올해 6·25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의 산 역사」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69·예비역중장)역시 이번 6·25를 맞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채장군은 황해 곡산 출신으로 46년「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치하에서 1년반만에 남하,47년 소위로 임관(육사5기)한뒤 야전을 누빈 맹장.6·25 44돌을 앞두고 자그마한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 용산구 후암동55 자택에서 채장군을 만났다. ­6·25 개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시 북한병력은 20만여명으로 한국의 2배에 이르렀습니다.공산군은 일요일 새벽 4시 주공격 방면을 의정부·개성일대로 삼고 최신형 T34전차 1백50여대를 집중시켜 남침에 나섰습니다.한국은 이 지역을 7사단이 맡고 있었으나 예하 1개연대는 온양에 위치해 2개연대만이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더욱이 5월이후 비상경계상태에 있던 군은 전쟁발발 며칠전 경계령을 해제,농촌병사들은 농번기일손돕기를 위한 휴가중이어서 전후방 병력은 평소 절반수준이었습니다.또 연대장 이상급 장교들은 24일 저녁 서울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식 축하 댄스파티에 참석,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댄스파티에 만취 특히 전방에서 새벽 6시쯤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비상을 알리려 했으나 보좌관이 『장관님은 일요일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으며 육군총장집에서도 『주무시고 있어 깨울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등 의식은 어땠는지요. ▲전쟁초기 북한군의 사기가 남한에 비해 훨씬 높았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이 좋아 미국이 전쟁발발 한달여만에 조속히 참전하게 됐으며 북한이 3일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한뒤 이상하게 7월3일까지 더이상 남하하지않고 시간을 허송세월해 아직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미군의 참전이후 국군도 사기가 충천해 북한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6·25당시 소대장과 중대장·대대장으로 직접 전투를 벌였는데 공산군에 대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공산군은 참으로 잔혹했습니다.국군이나 민간인은 물론 동료전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북한군에 밀리다 반격에 나설 당시 대대장으로 죽령점령을 위해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치열한 격전끝에 죽령을 확보했는데 죽령터널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으며 악귀형상을 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처참한 전쟁에 단련된 부대원들도 이들을 진짜 귀신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이들은 북한군 부상병들이었습니다.터널을 야전병원 겸 유류저장창고로 사용하던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부상병이 잔뜩 있는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터널 입구에 있던 부상병들이 살겠다는 의지로 화상을 입고 피범벅이 된채 간신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전장병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동포들이 흘리는 피가 많아진다고 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탄광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 동포들도 엄청났습니다. ○역사교훈 배워야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스위스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전쟁이 나면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행동으로 히틀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스위스 국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장병정신무장의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장병들이 의식은 몇시간의 정훈교육이나 높은 계급자의 훈시로 절대 전환되지 않습니다.경험을 얘기하면 4·3폭동때 처음 일선 소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하자 모든 소대원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중대장은 이미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새벽녘에 『좋다.그들사이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고 숙소를 소대막사로 옮겼습니다.아픈 병사를 보면 죽을 끓여다 주며 간호하고 잠자다 모포를 걷어차는 사람은 모포를 덮어주고 해서 친동생처럼 병사들을 대했습니다. ○「골육지정」 필요 그 결과 일주일만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당시 중대장이 저격병을 보냈으나 몰래 신변보호를 해주던 소대원들이 그들을 먼저 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그때 부대통솔은 골육지정임을 깨달았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고 병사들은 소대장·중대장을 위해 싸웁니다.그 것이 전력입니다.여순사건을 일으킨 반란군 3천명도 모두 빨갱이는 아니었습니다.주동자들이 그렇게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줘야 합니다.월남전 고엽제후유증환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냉대하면 누가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습니까.다치면 나만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북한의 핵이 걱정이 아니라 위기때 전방 소·중대장과 병사들이 얼마나 싸워줄 것인가를 염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며칠전만해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붓던 김일성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만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해온 김일성이 회담을 갑자기 제의해온 것은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평화제스처로서 미국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내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진전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경계를 흩뜨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채장군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하게 된다』며 국민이 단결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또한 요즘 군을 나쁜 존재로 보는 시각에 대해 0.01%만이 잘못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바른 역사인식이 전쟁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몇차례씩 강조했다.노장군이 제시한 전쟁방지의길은 로마의 격언이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 북 도발 즉각 대응/육군 지휘관회의

    김동진육군참모총장은 22일 대전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군단장급이상참석한 가운데 주요 지위관회의를 갖고 북한의 도발에 즉각 대응키 위한 우리측 군사대비태셀을 점검했다.
  • 박희도씨 오늘 소환/12·12관련 수사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오는 14일 박희도 전육참총장,16일 최세창 전국방장관,17일 박준병의원(민자)을 차례로 소환,피고발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13일 밝혔다. 검찰은 박전총장을 상대로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던 박씨가 소속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군본부청사를 점령,군수뇌부를 체포하게 된 경위를,제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전국방장관에 대해서는 소속병력을 동원,정병주특전사령관을 연행한 과정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 예비군훈련사망 세종대생 위로금/육군,강제모금 물의

    육군이 최근 예비군동원훈련중 실탄에 맞아 숨진 세종대생의 유족에게 전달할 위로금 마련을 위해 수도방위사령부등의 장성급 이하 모든 장교와 하사관으로부터 2천∼5만원씩 성금을 강제 모금해 말썽을 빚고 있다. 1일 육군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세종대생 장덕수군(23·경영3)이 숨지자 유족들과 위로금 1억원을 주기로 합의한뒤 18일 동원부대 관계관회의에서 수방사 예하부대의 하사관 이상 전체 직업군인과 전후방 예비군동원관련 부대 장교들에게 성금모금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원관련 부대는 장성 5만원·대령 3만원·중령 2만원·소령 1만원씩 돈을 거뒀으며 수방사 예하부대도 하사관 2천∼5천원·위관장교 5천원∼1만원·영관장교 1만∼2만원씩을 모금해 육군본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장군이 수도권 57사단에서 동원예비군 훈련중 실탄을 맞고 숨진 것과 관련,사망보상금으로 중사1호봉월급 12개월분 6백96만원과 유족연금을 매월 31만6천원씩 지급하고 위로금으로 1억원을 추가지급키로 하고 유족들과 합의했었다.
  • 전쟁기념관/6·25전장 재현…산 교육장으로/10일개관…미리 가보면

    ◎「한국전쟁실」 등 6개 전시실 볼만/전쟁영웅 초상·전투모형도 전시 『나가자.나를 따르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옛 육군본부 터 3만5천여평에 자리잡은 전쟁기념관 4층 전쟁체험실. 20여평 남짓한 이 체험실에는 조명이 꺼진 어둠속에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적군인 북한군,중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4분30초동안 재연된다. 6·25당시 평양부근의 전선을 본떠 만든 이 체험관 속에 들어온 관중들은 귀청을 울리는 총성과 포성,코를 찌르는 화약냄새,부상병의 비명소리등으로 실전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지상 4층·지하 2층규모의 기념관 내부의 각 전시실마다 모두 7천8백35졈의 전쟁기념물과 전쟁기록화,조형물,드라마등을 갖춘 전쟁기념관이 6·25발발 44주년을 앞두고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이 기념관은 88년 특별입법된 전쟁기념사업회법에 따라 1천10억원을 투입,90년9월 착공된지 만 2년9개월만에 공사를 완료,선열들의 호국혼을 국민들에게 보여준다. 이 전쟁기념관은 한반도의 전쟁역사를 한눈에 조감하고 순국선열의애국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모든 전시실마다 전쟁관련 자료와 전시물들이 입체적,역동적으로 전시한 것이 특징. 이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군사유물을 비롯,세계각국의 무기·장비·복식·기치·문서·그림등을 주제별로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대형장비실등 6개 전시실에 나눠 전시해놓고 있다. 전쟁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민족이 외침에 대항해 싸운 대외항쟁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살수대첩과 한산대첩 전투상황을 모형인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안시성전투 행주대첩 청산리전투를 담은 기록화도 곁들여놓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는 6·25전쟁을 재현한 한국전쟁실은 이 기념관의 핵심. 전시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 전시실은 전쟁발발의 배경·남침과정·반격·중공군 개입·전선교착·휴전의 순으로 관련자료등을 배열해놓고 있다. 특히 6·25초기의 남북한 무기를 실물로 비교전시,전투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민간인들의 고통스런 생활상까지 담고 있다.전선의 아들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나 전장에 나서는 남편에게 준 부적,피난살이에 사용한 생활용품등도 전시하고 있다. 실전을 느끼도록 하는 전쟁체험실도 이 전시실의 일부이다. 기념관 안에 있는 대형장비실과 외부에 있는 옥외전시장에는 북한이 6·25당시 앞세운 T­34전차등 남북한 무기와 B­52미전략폭격기를 포함한 각종 항공기·전차·포·차량등 1백10여점이 전시돼있다. 또 삼국시대부터 월남전에 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 1백32명을 선정,이들의 초상화,사진등을 기념관 양쪽 회랑과 전시실에 전시했다. 이 기념관은 개관이후 시민들에게 독립기념관이나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의 입장료를 받는다. 전쟁기념 사업회(회장 이병형)측은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기념관이 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산교육장이자 시민들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정동호씨 오늘 소환/검찰 「12·12」수사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2일 사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의원(무소속)을 3일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정의원을 상대로 당시 최규하대통령이 거주하던 삼청동 총리공관경비병력을 무장해제시키고 경호실 병력을 배치한 경위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육군본부측 병력의 이동상황을 파악해 합수부측에 알린 전보안사 보안처장 정도영씨와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있던 장태완수경사령관 등 군수뇌부를 체포한 전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씨를 오는 6일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 서수렬씨 소환조사/12·12수사 관련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22일 사태당시 1공수여단 2대대장 서수렬씨를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서씨를 상대로 박희도 당시 1공수여단장의 명령에 따라 병력을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출동시킨 과정및 육군본부청사를 무력점거한 경위등을 캐물었다.
  • 장성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전략기획 능력 뛰어난 군사정책통(얼굴)

    육사 18기로 임관한뒤 사단장·육군본부 정책실장·군단장·국방부 정책실장등을 역임한 정책통. 영관장교 시절부터 전략기획과 군사정책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합리적인 업무수행과 추진력으로 신망을 받아왔다. 올해초 국방제도개선위원장에 임명돼 2개월동안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획기적인 제도개선책을 마련하는 공을 세웠다. 특히 영어에 능통,연합사 부사령관직에 최적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부인 조성옥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약력 ▲55·충북 영동 ▲합참군사전략과장 ▲국방부 투자사업조정관 ▲육본정책기획실장 ▲군단장 ▲국방부 정책실장 ▲육사교장
  • 「하나회」 청산 매듭… 전문성 제고/육군장성 인사 배경과 특색

    ◎갈등요인 완전 제거… 안정과 화합 도모/방위전력 효율화 위한 조직개편 예고 16일 단행된 군장성 정기인사는 크게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첫번째로는 말썽 많던 하나회에 대해 일관성있는 처리기준을 제시,하나회 문제가 마침내 마무리지어지게 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군최고 계급인 대장을 포함,하나회로 알려진 중장급 이상 장성 전원을 지휘관에서 물러나게 하고 이들을 조만간 전역조치함으로써 군내 갈등요인을 완전제거,군의 안정과 화합을 도모하려는 고심이 엿보이고 있다. 지난해 주요보직에서 해임돼 육군본부 정책위원이나 대기상태에 있는 이택형·김상순중장(육사21기)등은 이미 전역지원서를 제출,올해중 순차적으로 예편조치된다. 하나회 배제 원칙이 이같이 재확인됨에 따라 하나회로 알려진 소장과 준장급 20∼30여명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보직 부여를 하되 추후 인사과정에서 같은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은 결국 「사조직」으로 전락,군내에 주요보직을 독점하는 특수층은 더이상자리잡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영관급들은 하나회가 12·12사태등으로 활약할 당시 갓 임관한 초급장교로 군특성상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가입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돼 이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하나회 장성들과는 다른 처리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번 하나회 장성의 일괄처리에서 가장 핵심은 김재창대장(육사18기)을 전역시키기로 한 결정이다. 김대장은 하나회이면서도 별다른 색깔을 나타내지 않았고 능력도 탁월,군내에서 두터운 신망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병대국방장관의 지론대로 「군다운 군」,「국방에 전념하는 군」 건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리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는 이같은 군안정과 화합차원의 조치와 함께 군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효율적인 업무추진을 위한 조직개편의 전주곡으로서의 면모도 드러내고 있다. 정보본부장에 보임되면서 중장으로 진급한 유정갑소장의 경우 오랫동안 전략정보를 다뤄온 육사20기의 대표적인 정보통이며 군단장에서 교육사령관으로 전보된 오영우중장(육사20기)은 군교육에 깊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또 육사교장에 임명된 김정남소장(육사21기)도 학자풍의 군인으로 적임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법무감으로 보임된 이민재대령(육사27기)은 육사출신으로서는 드물게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률전문가다. 특히 이번에 군단장으로 진출하는 Y소장(육사21기)은 군내에서 보기드문 군수통으로 앞으로 군수본부장등 중책을 맡기기 위해 일단 일선 지휘관을 거치도록 군고위층이 안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의세소장(육사22기)은 종전 중장보직인 9125부대장에 보임,국방정보본부장의 지휘를 받게돼 일관성있는 업무추진이 가능케 됐다. 앞으로 국군정보사령부도 현재 사령관인 C중장이 올해말 임기를 마치면 사령관계급을 한단계 낮춰 소장으로 보임,국방정보본부에 속하도록 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이번 인사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8일 전격적으로 김진영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기무사령관을 예편조치함으로써 시작된 하나회청산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앞으로 군의 개혁이 안정과 화합,제도개선과 전문성 고양의 방향으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 저가낙찰 정부공사 감사/감사원/육본이전 등 38개기관 사업 대상

    ◎불법하도급·부실시공 집중조사 감사원은 31일 건설부·서울지방국토관리청·육군본부 교외이전사업단등 38개 기관이 지난해와 올해 발주한 공사 가운데 저가입찰공사에 대한 실태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기술국 소속 감사요원 48명을 대거 투입,19일동안 불법 하도급과 부실공사실태를 조사한다.특히 공사계약관리업무와 관련한 금품수수등 비리를 집중적으로 감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규모 감사에는 육군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군시설의 교외이전사업과 경기도의 양평대교,충남의 만년교·보령댐,퇴계원∼의정부간 도로확장등 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한 도로·교량공사,지방자치단체의 상·하수도 건설사업등 대형공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저가입찰공사는 1백억원이상의 대형공사로 낙찰가격이 예정가의 85% 이하인 것을 일컫는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 비파괴검사기기와 정밀측정기기등을 활용하는 한편 공인검사기관과 연계,과학적인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해 4월에도 저가입찰공사 집행실태에 대한 감사를 실시,모두 35건의 위법부당사항을 적발해 29명을 징계하고 19개 건설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제재하도록 요구했었다.
  • 전쟁기념관 6월에 문연다/서울 용산에…개관 앞두고 마무리단장 한창

    ◎디오라마·영상시설 갖춰 입체적 전시/군사유물,6·25 무기 등 7만여점 확보 서울 용산의 옛 육군본부 자리에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전쟁기념관이 오는 6월 개관을 앞두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88년 특별입법된 전쟁기념사업회법에 따라 90년 9월 착공한 이 기념관은 지난해 12월까지 건축공사를 완공하고 현재 6개 전시실 가운데 4개실의 전시품 비치등 내부단장을 마무리했다.나머지 2개 전시실도 오는 4월까지 전시품을 모두 제자리에 진열한뒤 전 전시관의 시험가동을 시작한다. 기념관은 대지 3만5천평 위에 연건평 2만5천평의 지하 2층,지상 4층의 현대식 건물로 전시실과 전우회관·간이식당·지하주차장·수장고·사무실 등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졌다.6천1백59평에 이르는 전시실은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대형 장비실과 아직 완공되지않은 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 등 6개실과 비행기·탱크 등을 전시한 옥외 전시실로 되어있다. 전시실에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조상들의 군사유물과 한국전쟁 참전 16개국등 각국의무기와 장비·복식·군기·문서 등 7만8천35점이 전시되며 현재 83%를 확보했다. 이 기념관의 특징은 정적이고 폐쇄적인 지금까지의 전시방식에서 탈피,생생한 체험적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디오라마와 영상시설을 많이 설치,입체적인 전시가 되도록 한 점이다. 우선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설치된 호국추모실은 호국의 의지를 담은 서울대 미대 한운성교수의 천장화와 동양화가 박정규씨의 「단장의 산하」,통일을 상징하는 윤동구씨 등의 작품 「빛과 물」이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이어 전쟁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민족이 외침에 맞서 싸웠던 주요 대외항쟁과 각종 무기·장비·복식·기치·군사제도 등을 문헌자료와 조각·그림·사진 등으로 전시했다.특히 살수대첩과 한산대첩·귀주대첩·처인성전투·매소성전투·진주대첩·행주대첩 등의 전투상황은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했으며 안시성전투와 청산리전투 등은 기록화에 담아 선보이고 있다.이와함께 성곽과 봉수대·거북선·조선시대의 범선과 병선,대한제국의 신식군대 훈련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했으며 서구열강의 당시 군사력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안겨준 6·25전쟁의 발발배경과 남침·반격·중공군 개입·전선교착·휴전 등으로 구분해 6·25를 객관적인 사실로 보여준다.전선에서의 장병들의 전투상황은 물론 후방 국민들의 전시생활 모습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보여준다.특히 전후세대들을 위해 「전쟁체험실」을 설치,전쟁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해외파병실은 우리 국군의 파병배경과 의의 그리고 월남에서의 활동상을,국군발전실은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창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의 발전과정을 각각 실물·사진·그래픽·모형 등으로 소개한다. 강의용전시본부장은 『우리 민족은 전쟁의 영향을 그 어느 민족 보다 많이 받았으면서도 아직 전쟁박물관 하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 번듯한 기념관을 갖게돼 다행』이라면서 『국민에게 전쟁의 교훈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산교육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하나회」 두장성 전격 해임/합참작전·전략본부장

    ◎「율곡」등 문책 대폭인사 예고 국방부는 30일부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김상순중장(육사 19기)과 전략본부장 이택형중장(육사 19기)을 보직해임하고 육군본부로 원대복귀시켰다. 국방부는 이번 인사가 군인사 개혁추진의 일환으로 취해졌다고 밝혔는데 김·이중장은 모두 사조직인 「하나회」출신이다. 군소식통들은 김·이 두 중장의 보직해임이 정부의 정치군인 제거방침과 합참기구 조직축소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인사는 이병대국방부장관이 취임후 처음 단행한 인사로 「하나회」출신인 이장관이 「하나회」출신 장성을 보직해임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군인사방향과 폭이 주목된다. 특히 이번 보직해임은 율곡특별 전면재감사와 포탄수입 사기사건 등과 관련한 군고위층에 대한 「문책성」인사를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의 하나로 향후 인사폭이 대폭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후임자를 내년 4월 정기인사때 임명키로 하고 그때까지는 작전본부와 전략본부의 소장급중에서 선임자가 직무를 대리하도록 했다.
  • 주광용씨,후앙에 30만불 받아/무기사기 수사

    ◎10여차례 송금… 환은명세서 등 발견/군수사·군수본부 7명 추가조사 무기도입사기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정홍원부장검사)는 21일 해외로 달아난 광진교역 대표 주광용씨(52)가 지난 89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프랑스 무기중개상 에피코사 등으로부터 10차례에 걸쳐 미화 31만달러를 국내로 송금받은 사실을 확인,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주씨와 광진교역 명의로 거래했던 외환은행본점과 개포동지점 등 6개 지점에 대한 압수수색을 22일 상오 실시키로 했다. 검찰은 이 돈이 모두 에피코사 대표 장 르네 후앙씨로부터 받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후앙씨가 주씨와 짜고 가짜선하증권을 이용,포탄수입대금 6백66만5천달러(한화 53억원)를 군수본부로부터 가로챈뒤 이 돈의 일부를 건네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주씨 계좌에 입금된 돈의 출처 및 성격을 정밀 추적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 주씨가 운영해온 서울 서초구 양재동 광진교역 사무실을 압수수색,수거한 서류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외국환환전내역」명세서를 발견했다. 검찰은 이 환전내역서에서 후앙씨가 주씨를 내세워 문제가 된 포탄구입계약을 체결한뒤 대금을 찾아간 지난 5월이후 5차례에 걸쳐 18만달러가 송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지난 89년6월부터 91년3월까지 5차례에 걸쳐 12만달러가 주씨 계좌로 입금된 사실도 확인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외환은행본점 영업부장 신억현씨 등 은행관계자 5명을 소환,무기대금 지급경위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은행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지난 91년5월 90㎜포탄도입건과 관련,파리지점 실무자가 선하증권의 부속서류에서 3가지 하자를 발견하고 본점 박제용 영업부과장(현재 마이애미지점 근무)에게 알려왔으며 박과장은 이를 다시 군수본부 양영화씨(41·군무원 6급)에게 전화로 통보,「지체상금 5%를 떼고 지급하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조치했다』고 진술했다. 이같은 진술은 선하증권 자체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지금까지의 은행측 주장과는 달리 선하증권에 딸린 부속서류에 이상이 있음을 통보했다는 것으로 당시 군수본부 실무자가 대금지급을 하지 말도록 할만큼 강도높은 통보는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22일 전문가 2∼3명을 불러 문제가 된 선화증권의 하자여부를 감정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주씨를 사기 등 혐의로 기소중지할 방침이다. ◎뇌물수수 집중조사 무기도입사기사건을 수사중인 국방부 검찰부는 21일 당시 실무자 윤삼성외자처장(49·대령)과 실무자인 외자2과 포탄구매담당 이명구군무원(45·4급)의 가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임의제출형식으로 가족들의 예금통장등을 제출받아 이들의 뇌물수수 여부를 집중조사했다. 군검찰부는 또 포탄소요제기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육군본부에 수사관을 파견,군수사령부 직원(중령급) 3명에 대해 참고인조사를 벌였으며 군수본부과장 4명도 추가로 조사했다. 군검찰부는 90㎜무반동총 탄약 4천발과 1백5㎜ 및 1백55㎜ ICM교육탄 8천1백10발에 대한 군의 소요제기가 이번이 처음이었던 점을 중시,소요제기가 적절했는지의 여부에 초점을 맞춰 수사했다. 군검찰부는 또 22일중 서울지검으로부터 관련 은행직원과 내외양행 민경언씨 등 무기중개상에 대한 조사내용을 넘겨받아 군관계자들의 진술과 다른 점이 있는지 정밀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이 민간인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이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홍순기검찰부장은 군고위층의 수사중단지시등의 의혹과 관련,『지난 7월28일 첩보입수직후 내사에 나서 8월5일 이명구씨를 처음 소환조사했으며 다음날인 6일 현리수익군수본부장이 권령해전장관과 이수휴차관에게 교육탄미도착을 지휘보고했다』며 권전국방장관이 수사중단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 육본인사참모부장 경질/군아파트 뇌물사건/임종섭소장 수뢰 확인

    ◎후임에 곽동도소장 육군7사단 군인아파트신축공사와 관련한 뇌물수수사건을 재수사해온 육군은 8일 업자로부터 찬조금명목으로 4천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전7사단장 임종섭육군본부인사참모부장(소장·육사22기)을 이날짜로 보직해임하고 후임에 곽동도육본동원참모부장(소장·육사21기)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이날 최종수사결과 임소장이 7사단장 재임시절인 지난 91년 12월16일부터 지난 4월19일까지 강원도 춘천소재 대덕건설등 8개 건설업체로부터 부대창설기념일등 각종 부대행사때 장병위문금 형식으로 매회 1백만∼2백만원씩 40여차례에 걸쳐 모두 4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군은 임소장의 17개 예금계좌와 1백만원이상의 수표추적등을 통해 수수금품의 사용처를 파악한 결과 임소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보직해임으로 종결… 「봐주기」 의혹/군인아파트공사 수뢰사건 재수사

    ◎임소장 혐의 명백하지만 기소유예처분 8일 육군이 발표한 육군7사단 군인아파트신축공사와 관련한 수뢰사건축소 재수사결과는 당시 사단장이었던 임종섭육군본부인사참모부장(소장·육사24기)에 대해 별다른 혐의를 찾아내지 못한채 직위보직해임과 기소유예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처리해 축소수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육군은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임소장이 위로금형식으로 받은 4천만원은 의례적인 기부행위로 볼 수 없어 형법상 뇌물수수죄가 명백하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데다 그동안 군기여도등을 감안,불기소처분의 일종인 기소유예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임소장의 보직해임사유와 관련,『임소장의 행위는 과거 사회여건상 관례적 현상이었으나 새정부 출범으로 개혁대상이 돼 시정해 나가고 있는 사안』이라고 전제,『임소장이 계속 군개혁의 실무를 총괄하는 현직에 있는 것은 군내외 정서에 맞지않아 보직을 해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군주변에서는 임소장에 대한 이같은 수사결과내용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으며이는 임소장의 주변환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있다.육사출신의 비하나회로 준장 2차진급자인 임소장은 권령해국방부장관이 6사단장시절 연대장을 지내면서부터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4월 통상 사단장과 부군단장을 거쳐야 갈 수 있는 육본내 「노른 자위」인 인사참모부장에 발탁됐었다. 한편 최근 군에서는 군장성들이 연루된 비리사건이 꼬리를 물자 군개혁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군개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군장성들이 군개혁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은 원천적으로 군개혁의 출발점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지난 9월 육군통신학교 이전공사및 장비납품과정에서 민간업체로부터 1억2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합참지휘통제부장 김낙용소장(육사21기)등 4명이 구속됐을 때도 이 점이 지적되기도 했는데 군비리가 아직도 군개혁의 성역으로 남아있음을 단적으로 반증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개혁의 선봉장이어야 할 군장성들에 대한 잇단 비리혐의 적발및 혐의수사는 자칫 군개혁의 도덕성 흠집내기 차원을 넘어 군지휘체계의 혼란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임종섭소장 소환/군 뇌물사건 수사

    육군 7사단 군인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뇌물수수사건 축소의혹을 재수사하고 있는 육군범죄수사단은 28일 당시 사단장인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임종섭소장(육사22기)을 소환,뇌물수수여부등을 집중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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