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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사위·농림해양수산위·보건복지위·국방위(국정감사 중계)

    ◎표밭 의식 “군복지 개선” 한목소리/국민연금 공공예탁 축소 수익제고 촉구/“뒷북치는 EEZ협상” 안일한 대응 성토 ▷법사위◁ ○…서울고검·지검에 대한 국감에서 여당의원들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조성·관리 및 가족묘 불법 조성 의혹,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 등을 거론하며 일제히 파상 공세. 신한국당 송훈석 의원은 하오 4시쯤 강삼재 총장의 긴급 기자회견 내용이 적힌 메모 쪽지를 건네받은뒤 “검찰은 김총재의 비자금 관리 의혹을 즉각 수사하라”고 촉구.같은 당 안상수 의원도 “김총재의 범죄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되는 등 수사 단서가 확보된 만큼 수사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가세. 이에 조찬형 의원 등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신한국당이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가 낮아지니까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면서 “이총재 두 아들의 병역 의혹을 먼저 수사해야 한다”고 맹비난. 안강민 서울지검장은 답변에서 “자료가 제시되면 확인절차를 거쳐(수사착수 여부를) 결정짓겠다”면서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신중한 태도. 안검사장은 김총재가 받은 20억원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돈을 준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조세포탈 혐의의 성립 여부가 드러날 것”이라고 답변. ▷농림해양수산위◁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감에서 의원들은 일본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선포와 우리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거론. 국민회의 김영진 의원은 “중국과 일본의 해양영토 확장 기도에 맞서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안일하기 짝이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이어 민주당의 권오을 의원도 “정부가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는 사이에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배제하고 지난달 3일 공동관리수역 합의를 발표했다”면서 “그러고도 정부는 중·일 합의 발표 이후 5일이 지나서야 한국이 참여하는 3국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뒷북을 쳤다”고 지적. 신한국당의 윤한도 의원은 “일본이 독도를자국의 영토로 삼기 위해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의 이같은 책동에 무대응으로 일관,그 결과 독도가 일본의 의도대로 국제분쟁지역으로 분류된다면 큰 문제”라며 정부의 논리적 대응을 촉구.윤의원은 독도의 효율적인 관리방안으로 ‘독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하고 실무자들로 ‘독도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구성,독도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홍보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 ▷보건복지위◁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연금기금 투자수익률을 높일수 있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신한국당의 김명섭 의원은 “현재 공공부문에 예탁하고 있는 기금을 금융부문으로 전환해 수익률을 10% 높이면 기금이 바닥나는 시점을 2년 연장할 수 있다”면서 공공예탁제도 개선을 촉구. 자민련의 이재선 의원도 “지난해 총 21조6천7백9억원의 연금기금 가운데 무려 16조8천9백35억원이 금융시장 이자율보다 1.7% 낮은 이자로 공공부문에 예탁되고 있다”면서 기금을 공공부문에 예탁할 때 국회의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 국민회의 김병태 의원 역시 “공단은 지난해 8월말 현재 현금화하기 어려운 한국통신의 비상장 주식 한종목에 5천5백93억원을 투자,수익률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위한 투자 재평가를 주장. ▷국방위◁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선을 앞두고 ‘군심’을 껴앉기 위한 배려인 듯 군 사기진작 등 복지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민련의 한영수의원은 “중사 이상의 육군 간부 47.8%가 격·오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 대위와 소위는 잦은 훈련,비상대기 등으로 연간 대기일수가 90∼110일이고 가족과 별거하는 간부도 육군 간부 전체의 20%에 이른다”면서 직업군인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대책을 요구. 신한국당 김종호의원과 국민회의 정동영의원은 “지난 5년동안 전역한 장성은 모두 378명이지만 이들 가운데 취업한 사람은 51.5%(195명)에 그치고 있으며 더욱이 10년 이상 장기복무한 전역자의 취업율은 13.6%에 불과하다”면서 이들에 대한 취업보장대책 마련을 촉구. 도일규 육군참모총장은 군 사기진작과 관련,“장·단기 계급간 보수 격차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등 군 보수체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부족한 군 숙소문제도 조기에 해소하겠다”고 답변.
  • 군기밀 누출사건 관련 국방부 군수국장 해임

    ◎후임에 정중민 8사단장 국방부는 30일 군기밀누출사건과 관련,이풍길 국방부 군수국장을 보직해임해 육군본부로 전보발령하고 후임에 정중민 8사단장을 임명했다.김범식 장비과장도 보직해임됐다.
  • 「12·12」 항소심 선고­전·노씨 감형 이유

    ◎6·29선언으로 내란 종료 민주 회복/“권력 내놔도 죽는일 없게” 원칙 확립 16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전두환 피고인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을 비롯,피고인 대부분의 형량이 줄었다.1심과 같은 판결이 내려진 피고인은 징역 7년의 주영복 피고인과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 두명뿐이다.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유죄가 인정된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조차 감형됐다. 전두환 피고인은 87년 6·29선언을 수용한 것이 크게 참작됐다.재판부는 『대통령 재임중 6·29선언을 수용해 민주회복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것은 늦게나마 국민의 뜻에 순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재판부가 판단하기에 내란은 6·29선언으로 비로소 종료됐으며,전피고인은 내란을 기획하고 주도한 장본인이지만 한편으로 6·29를 수용함으로써 내란을 종료시켰다는 것이다.따라서 내란종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권력을 내놓아도 죽는 일이 없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일은 쿠데타를 응징하는 것에 못지 않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태우 피고인은 전피고인의 감형에 준해 무기징역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1심의 무죄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여부로 관심을 끈 박준병피고인은 검찰의 공소사실변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죄를 선고받았다.재판부는 박피고인이 12·12 당일 20사단 참모들에게 자신의 지시 없이 부대를 출동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반란에 가담하고 육군본부의 부대장악을 저지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황영시 피고인은 지난 80년5월27일 실시된 광주재진입작전을 논의하는 4차례 회의에 참석한 것이 인정돼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됐으나 고령인 점이 인정돼 징역 10년에서 8년으로 감형됐다.정호용 피고인에게도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적용됐으나 12·12사건에는 가담하지 않은 이유 등이 참작돼 징역 10년에서 7년으로 형량이 줄었다. 장세동 피고인은 3차례나 옥고를 치른는 점이 참작돼 징역 7년에서 3년6개월로 형이 절반이나 줄었다. 나머지 피고인도 전피고인의 감형과 같은 취지이거나고령이라는 이유 등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다만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 피고인은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했으므로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이 피고인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의 뜻이 있다면 이번 항소심 재판은 피고인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한 흔적이 짙다.
  • 행정위/김덕룡 장관·의원 두 역할(국감현장)

    장관과 국회의원.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신한국당 국회의원인 김덕룡 정무1장관처럼 이 두 직함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는 사람은 아마 드물 듯하다. 김장관은 8일 세종로 종합청사에서 있은 국회 행정위의 정무1장관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기관장으로 답변대에 섰다. 바로 전날밤까지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국방정책의 난맥상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국방위위원의 일원이던 그였다. 김장관과 김의원의 차이.그것은 「동료의원이…」에서 「의원님께서…」로 바뀐 호칭에서부터 분명했다. 김장관은 이날 여느 기관장처럼 인사말에서부터 줄곧 의원에 대한 극존칭어를 썼다. 반면 질문에 나선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김장관을 단순한 기관장이상으로 대우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질의에 들어가자 유재건 의원(국민회의)은 김장관에게 『연일 국정감사에 고생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감사준비만 하면되는데,장관은 상임위에 나가 질의도 하고 이처럼 답변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지 않으냐』고 김장관의 어려움을 위로했다. 감사의 「강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정무1장관실에 특별한 현안이 없는 탓도 있지만 의원의 질의시간도 어느 때보다 짧았다. 몇몇 의원은 그가 이른바 여권의 대권주자 가운데 한사람임을 의식한 듯 「질의」라기보다는 대권에 관한 의견피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장관의 답변이 끝나자 김인곤 위원장은 『보충질의가 없지요』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산회를 선포했다.〈서동철 기자〉
  • 국방위/“군기강 해이” 여야 질타(국감초점)

    7일 육군본부를 상대로 한 국회 국방위의 국정감사에서는 군 기강해이가 집중타를 맞았다.여야 의원들은 「나사 빠진 군」이 제2,제3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의 오판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군의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먼저 무장공비 침투사건 와중에서도 잇따른 군 총기사고,무장탈영사태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김덕용(신한국당) 임복진(국민회의)의원은 『지휘통솔 체계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정석모 의원(자민련)은 『대국민 다짐만으로 군을 지휘하는 사태』라고 꼬집었다. 허술한 군 경계태세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김덕 의원(신한국당)은 『무장공비 소탕작전에서 6만명을 동원하고도 20여일동안 잔당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군 경계 태세의 전면 재점검을 촉구했다.정동영 의원(국민회의)은 『전투시 한 초병의 잘못으로 1개 군단이 궤멸될 수 있다』며 전군 차원의 군기진단실시를 요구했다. 그 원인 진단은 다양했다.정재철(신한국당) 박정훈(국민회의) 의원은 『지난해 장교의 59.2%,하사관의 73.5%가전역을 희망하고 있다』고 군이 「평생직장」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있음을 지적했다.박세환 의원(신한국당)은 ▲높은 근무재해율 ▲빈번한 이사 등 열악한 근무환경 ▲장래 불안감 ▲낮은 보수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윤용남 육참총장은 『군 보수체계를 오는 97년까지 국영기업체 수준,2000년까지는 민간 대기업체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박대출 기자〉
  • 육군 진급심사 “유리알”/선발위 4심제 만장일치로 추천

    ◎대상자 직접 참관 절차확인 가능 97년도 육군의 진급심사 현장이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공개됐다. 9일 대전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공개된 현장은 올해 예정된 대령 진급 대상자 2천7백9명의 진급심사과정.대상자 가운데 1백70명이 대령으로 진급하게 된다. 육군의 진급심사는 계급별로 3개 추천위원회와 선발위원회의 4심제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위원회는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각 위원회별로 만장일치제로 대상자를 선발한다.선발위원회에서는 추천위에서 이견이 있는 대상자를 재심,진급자를 확정한다. 심사위원들은 업무능력,신망도,도덕성 및 품성등을 중요 선발기준으로 삼아 임관기수,부대,병과,진급연차 등을 고려해 우수자를 발탁하게 되며 육군 참모총장의 확인과정을 거쳐 임명한다.진급 대상자는 원하면 심사현장을 직접 참관,심사절차의 투명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올해 진급심사는 「군과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인재발굴」에 중점을 두어 충성심,도덕심,업무능력,지휘통솔력,차기 활용가능성 등의 기준을 두루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를 뽑되 야전,정책,기술분야별 특성에 부합하는 군사전문가 여부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전·노씨 새달 5일 구형/정웅씨­“정호용씨가 공수부대 실질지휘”

    ◎「12·12」 24차 공판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의 피고인 16명에 대한 검찰 구형이 8월5일 이루어진다.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5일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24차공판에서 『8월1일까지 증인신문을 모두 끝내고 5일 두사건을 병합해 검찰·변호인의 의견과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1심 선고공판은 결심공판후 3주일 뒤인 8월26일에 열릴 전망이다.공판이 시작된뒤 8개월만이다. 검찰은 이날 5·18사건과 관련,전·노 두피고인에게 적용된 지휘관계엄지역 수소이탈죄명을 삭제했다.12·12관련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상관 살해죄명은 단순 살인죄로 변경하는 등 공소장의 죄목과 일부 혐의사실도 변경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는 정웅 전31사단장,김재명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정웅씨는 『5월20일 하오부터 공수여단장들과 전혀 교신이 안되고 공수여단장들은 보고도 없이 정호용 특전사령관을만나러 가는 등 전혀 작전통제를 할 수 없었다』며 『정피고인이 공수부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또 『5월19일 하오 광주지역 기관장회의에서 과잉진압에 대한 항의를 받은 뒤에는 공수여단장들에게 무혈진압을 강력히 지시했다』며 『하지만 공수부대가 이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특공작전으로 강경진압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명씨는 『광주사태당시 황영시계엄부사령관과 함께 전차와 헬기를 동원해 강경 진압토록 지시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며 『아마 위력시위로 시위대에게 겁을 줘 해산시키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광주시위의 초기 진압실패 책임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는 근거 ▲군의 지휘계통 등을 따지며 정씨와 공방을 벌였다.〈박홍기·박상렬 기자〉
  • 「12·12」 「5·18」 24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공수부대 지원 요청한 일 없다”·황영시씨 유혈진압 지시 어이없어 거부­정웅 증인/참모총장 승인 받아야 특전사 출동 가능­김재명 □25일 출두 증인­괄호안은 당시 직책 ·정웅(31사단장) ·김재명(육본 작전참모부장) 12·12, 5·18사건 24차 공판이 25일 상오 10시 재판부의 입정으로 시작돼정웅 당시 31사단장 등 증인 4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정웅 증인 ▲이부영 검사=5·18당시 공수부대의 지원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전혀 없습니다. ▲이검사=공수부대의 작전통제가 실제로 이뤄졌습니까. ▲정증인=5월 20일이후 작전상황에 대한 보고가 완전히 단절됐고 공수여단장들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에 직보하는 등 계엄하 작전지휘체계가 이원화된 상태였습니다.정상적인 지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이검사=초기 강경진압에 대한 육본측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정증인=지시를 받았으나 거부했습니다.특히 황영시 육본차장은 유선으로『무장헬기 등을 동원, 버스를 공격하라』는 등 강경 유혈진압을 지시했는데하도 어이가없어 『그렇게는 못한다』고 거부했습니다. ▲이검사=80년 6월 5일 강제해임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증인=표면상 초기진압에 실패했고 시민들에게 무기를 빼앗긴 책임 등을 물어 해임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론 신군부측의 작전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창렬변호사=사단장의 병력요청없이 육군본부가 공수여단을 투입할 수있지 않습니까. ▲정증인=통상은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묻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87년 7월 5일 국회본회의에서 『80년 5월 15일 육군본부 회의실에서 정호용 피고인이 김대중씨를 체포하면 광주지역에서 시위가 예상되지만 공수부대 1개 대대병력만 작전을 벌이면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발언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정증인=예. ▲전변호사=당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국회본회의에서 질의할 수 있습니까. ▲정증인=국회에서 의원들이 검증된 사실만 이야기를 합니까. ▲전변호사=5월20일 정오부터 윤흥정 전교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고 국회본회의에서 말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정증인=20일 하오부터 저의 작전통제권하에 있는 공수여단장을 아무리유.무선으로 호출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기 보다는지휘권 행사가 불가능했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80년 5월22일 박충훈 국무총리가 광주에 내려와 간담회를 열었을 때 정호용피고인이 『광주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싹쓸이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증언했습니까. ▲정증인=그렇습니다. ▲전변호사=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정호용피고인이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증인은 무슨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합니까. ▲정증인=법정에 있는 정호용피고인에게 물어보십시오. ▲전변호사=증인은 당시 공수부대들이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직보하는 등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본인이 직접 확인한 바 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당시 시중에 공공연히 나돌던 소문과 책자 등의 내용 등을 통해 파악한 사항입니다. ▲김영일 재판장=7공수여단 33.35대대를 작전배속받고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했는데 당시 학교에 배치할 만큼 학생들 시위가 심각했습니까. ▲김재판장=정호용 피고인이 여단장이나 대대장 등 예하부대 지휘관들에게 직접 작전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거나 들은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보거나 들은 바는 없습니다. ▲서익원 변호사=당시 과격한 시위진압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봤나요.또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는데 지휘권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했었나요. ▲정증인=19일 하오 사단 작전명령을 통해 무혈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지휘권 정상화를 위해서 여단장들을 계속 호출했으나 그들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진강 변호사=5월14일 하오 2시 전교사에서 열린 학생가두시위대책 합동회의에 신우식 7공수여단장도 참석했죠. ▲정증인=그렇습니다. ▲이변호사=증인과 윤흥정사령관이 5월21일 전교사를 방문한 2군사령관에게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건의했나요. ▲정증인=아닙니다. ▲정호용 피고인=전남대와 조선대등에 공수부대 배치를 직접 지시한 사람은 정웅 사단장 아닙니까. ▲정증인=맞습니다. ▲정피고인=공수여단의 시위진압 작전을 본인이 직접 지휘한 걸 확인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정피고인=강경진압을 지시한 것이 누구입니까. ▲정증인=충정훈련 교리에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정피고인=본인이 공수부대를 직접 지휘했다고 하는데 누구로부터 확인한 것입니까. ▲정증인=지휘권도 없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정피고인=공수여단장이 제대로 보고안하면 대대단위에라도 확인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정증인=정상적인 지휘체계가 아닌 상태에서 어떻게 합니까. ○김재명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1·3공수여단과 20사단 광주 증파가 광주지역의 전교 사령관이나 31사단장으로부터 건의를 받고 결정된 것은 아니죠. ▲김증인=직접 요청받은 바는 없으나 요청없이 이뤄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김부장검사=5월25일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황영시 피고인과 함께 광주를 방문,소준렬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는데 2군사령관을 거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김증인=극히 보안을 필요로 하는데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직접 가지고 내려간 것입니다. 좀 늦게 도착했는지는 모르지만 2군사려오간에게는 연락장교를 통해 보냈습니다. ▲전창렬 변호사=육군참모총장 승인없이 예하부대장이 자신의 부대를 출동시킬 수 있습니까. ▲김증인=부대에 따라 다릅니다. 특전사는 참모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기때문에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2군사령부와 전교사가 계엄업무 수행을 위해 병력을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육본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전변호사=공소장에 따르면 전두환·이희성·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이 함께 전교사의 보고를 받고 광주시위 상황이 자신의 집권계획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공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강경진압했다는데 이들 피고인이 병력 투입에 간여할 수 있습니까. ▲김증인=안됩니다. 계엄사령관의 문서명령없이 병력출동은 안됩니다.
  • 육군편제 「한국형」 개편/2천년까지

    ◎보병사단 경량화·지휘체계 축소/육군 지휘관회의 육군은 현재 보병사단에 편입돼 있는 수송 및 헌병 등 전투근무지원 기능을 상급부대에 넘기고 분대에 이르는 각급 부대의 병력규모를 줄여 대폭 경량화하기로 했다. 육군은 12일 상오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윤용남 육군참모총장 주재로 야전군사령관 등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지휘관회의를 갖고 이같은 부대편제개편안 등 육군발전방향을 논의했다. 육군이 추진중인 부대편제개편안은 사단 병력규모를 줄여 경량화하는 대신 1백55㎜ 자주포,차기전술차량,K­4 구경 40㎜ 고속유탄발사기 등 신형무기로 보강해 화력과 기동력을 대폭 향상시킬 방침이다. 이같은 방침은 보병위주의 화력만으로는 현대전에 대응하기 어려운데다 현재의 사단구조가 과거 미군의 편제를 이어받는 것으로 한국지형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육군은 새로운 사단편성안을 워게임 등을 통한 검토와 시험평가를 거쳐 국방부 및 합참과의 협의후 오는 2000년까지 점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황성기기자〉
  • 「12·12」 신촌 요정 「민마담」 찾았다

    ◎“장태완 사령관 등 격리 목적” 검찰서 진술 지난 79년 12월12일 하오 6시30분.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운명을 가른 이른바 「신촌 모임」.베일에 가려졌던 신촌의 요정 주인이 공개됐다.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9일 신군부측이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기 직전 장사령관·정사령관을 격리할 목적으로 마련했던 만찬모임의 비밀요정 주인을 찾아내 이달초 조사했다고 밝혔다. 3공때 이름을 날린 속칭 「민마담」인 김모씨(53·서울 서초구 서초동).연희동 노태우 전대통령의 집에서 5백m 떨어진 대지 1백16평의 2층 기와집이 만찬장소였다. 민마담은 검찰에서 당시 보안사로부터 『조용한 곳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생의 집에 만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또 『나중에야 장사령관 등을 격리하는 차원에서 만찬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종업원이던 문모씨(40)는 『참석자들이 한두잔 밖에 양주를 들지 않았다』고 증언,장사령관의 만취설을 일축했다. 민마담은 12·12당시 서울장충동의 고급요정인 「대화」와 성산동의 「아리랑」을 운영했던 화류계의 히로인.이곳에는 당대의 내노라하는 정·관·재계 인사와 장성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박정희 전대통령도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민마담이 「요정 정치」의 안방마담 역할을 한 셈이다.한량들사이에는 아직까지 민마담의 이야기가 구전된다. 그녀는 합의이혼후 현재 고급주택가에서 조용히 살고 있으며 며느리가 일본서 활동중인 여가수 K이다.〈박선화 기자〉
  • 「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유학성씨가 「최 대통령 곧 하야」 전해”­김종환 증인/“김재규 내란목적 살인 증거 없었다”­양병호씨/“선제공격 진술 보안사서 강요 받아”­김인선씨/전씨 합수부에 모든 보고 하도록 조치­김진기씨/노재현 장관 명령으로 출동병력 복귀­박동원씨 12·12 및 5·18사건의 제20차 공판이 8일 상오10시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개정과 함께 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30분간의 휴정을 거쳐 검찰이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양병호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1월말 보안사 장교가 증인을 찾아와 김재규 내란사건의 상고를 기각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80년 5월20일 상고심에서 증인 등 6명의 대법원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소수의견을 냈는데 그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양증인=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그후 증인은 같은해8월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당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보안사를 나온 후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을 찾아갔더니 소수의견을 냈던 나머지 5명도 사표를 냈더라는 말을 했지요. ▲양증인=맞습니다. ▲김부장검사=소수의견을 냈던 증인등이 강제사직을 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증인=그 사람들(보안사측)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했고,우리는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니까 왜 반대하느냐며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김부장검사=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양증인=80년 1월말 법원을 출입하는 육군소령이 찾아와서 상고기각을 요청했었는데 『판사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거부하자 밉게 봐서 그런 것같습니다. ○김인선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 경호 장교였던 증인은 당시 입은 총상으로 순천향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15일간 조사를 받았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제가 우경윤대령 등에게 먼저 총을 쏴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진술을 강요받았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총을 쏜 사실도 없고 총 쏠 여유도 없었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진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이었던 증인은 10.26사건으로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을 겸직하게 되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비상계엄 선포후 치안본부,중앙정보부 등지에서 계엄사 치안처로 올라오던 각종 정보보고가 11월 중순부터 갑자기 중단된 사실이 있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나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든 보고를 합수부로만 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부장검사=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대통령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명백한 반란이며 당시 상황은 내란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종환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5월14일 내무부장관이던 증인은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시위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진압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고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언을 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관계장관 회의에서는 그런 발언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김부장검사=8월10일 롯데호텔 식당에서 유학성 피고인이 증인에게『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할 것같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당시 유피고인이 정보제공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동원 증인 ▲이재순 검사=수경사령관 작전참모로 근무한 증인은 79년 11월16일부터 같은해 12월12일까지는 장태완 장군을,79년 12월13일부터 80년 8월20일까지는 노태우 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모셨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장사령관이 술에 취한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습니까. ▲박증인=그렇지 않습니다.원래 성질이 급한데다 불의를 보면 성격이 더 급해져서 그렇지 당시에 내린 지시는 모두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검사=수경사병력을 출동시켰다가 조재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듣고 병력을 복귀시켰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장관이 명령을 한 것은 새벽 2시였고 장사령관이 병력을 대기시킨 것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30분정도 병력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성환옥 증인 ▲이재순 검사=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던 증인은 12월 8일에서 10일 사이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과 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협조를 부탁받고 보안유지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요. ▲성증인=그렇습니다. ○김만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증인이 위원장으로 군무하던 중보위 사회정화위원회가 중정·검찰·경찰·보안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위급 숙정자 15명,B급 1백64명으로 분류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허삼수 피고인도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숙정대상자 결정과 사회정화분과위원장 선정에 관여했습니까. ▲김증인=북정대상자 결정에는 참여했지만 사회정화분과위원 선정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신군부 「12·12」 거사후 3박4일 합숙”

    ◎“안보사서 출동부대 지휘”/우국일 당시 보안사 참모장 밝혀 12·12직후인 12월 13일 전두환 당시보안사령관은 국방부로부터 5억원을 받아 이중 5천만원을 12·12에 동원된 부대에 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또 12·12당시 수경사 30사단에 모였던 신군부측 지휘관들은 거사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4일간 보안사에 계속 머물며 예하 부대를 지휘했다. 4일 우국일 당시 보안사 참모장이 검찰에 제출한 자신의 업무일지(79년 10월26일∼12월27일)에 따르면 전씨는 12·12이튿날인 13일 중앙청과 육군본부 등에 배치돼 있던 부대를 방문,국방부로부터 받은 5억원을 출동병력 규모에 따라 3백만∼5백만원씩 지급하고 주동장성들에게는 1백만원씩 지급했다는 것이다. 전 보안사령관은 또 12월 14일 측근참모및 지휘관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축하 샴페인을 터뜨렸고,P호텔에 케이크 50개와 스테이크등 20명분의 만찬을 준비하는 등,「거사 성공축하 파티」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박은호 기자〉
  • 우국일씨,옛 상관 전씨에 깍듯이 인사/18차공판 이모저모

    ◎우씨,“신촌모임은 장성들 유인·격리한것”/이기창 변호사 일부신문 회견내용 부인 ○…12·12사건 당일 하오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줄곧 함께 있었던 신현확 전 총리는 신군부측의 정승화 총장연행 재가요청과 관련,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생생하게 진술. 최전대통령은 재가를 거절하면서 『이 친구들이(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 인사들을 지칭)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 『앞뒤가 바뀌었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등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 ○…이양우 변호사 등은 1시간여동안 계속된 신전총리에 대한 신문에서 『연행재가 과정에 압력과 강압은 없었다』는 등 피고인측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낸 것을 상당한 성과로 평가. 신전총리는 『5·17비상계엄확대가 반드시 내란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총장의 연행재가는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끝에 결정한 것』 『대통령이 연행조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다만 일종의 보류의사를 표명했다』고 진술하는 등 변호인의 신문에 긍정적으로 답변. 그러나 검찰신문에서는 『대통령은 불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진술,신군부측의 행위가 위법임을 분명히 했다. ○…신전총리는 윤성민 전 육참차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신군부측에 대항한 육군본부측 인사들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답변. 윤 전 육참차장이 전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연행을 통보받고 총리공관에 있던 신전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신전총리는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뒤집었다.또 『육본의 지휘계통이 수경사로 옮긴 것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 『정총장의 연행뒤 육본측의 「진도개 하나」 발령도 통보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등 신군부측에 유리하게 진술.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최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가 모언론사와의 회견에서 『최전대통령이 12·12당시 정총장의 재가와 5·17계엄확대,그리고 하야때 신군부로부터 강압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군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목. 이변호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이변호사에게 진위를 파악하느라 한때 부산. 그러나 최전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언제 신군부에게 속았다고 했느냐』고 질책을 받은 이변호사는 『「개인적으로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마치 최전대통령의 진술처럼 보도됐다』며 반론권을 통해 보도내용 대부분을 부인. ○…최광수 비서실장은 『최전대통령이 노태우 수경사령관을 불러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불가방침을 전했다』는 검찰진술과 관련,변호인측의 잇단 사실확인 질문을 받고 『최대통령이 노피고인을 직접 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단언해 변호인측을 무색케 했다. 노피고인은 지난 공판에서 『비상기구설치와 관련해 최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었다. ○…우국일 전 보안사 참모장은 증인석에 앉기 전 옛 상관인 전피고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예의를갖추었으나 정작 신문이 시작되자 가장 불리한 발언을 해 눈길. 그는 12·12당시 「신촌모임」을 가진 이유는 육본측 장성들을 유인,격리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전피고인이 합수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자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강압적으로 받는 등 월권행위를 했다고 진술. ○…우참모장은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자신의 일기장 두권과 메모지 등에 나타난 기록과 검찰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변호인단의 지적을 받고 『검찰진술이 맞다』고 해 한동안 변호인단과 설전.신촌모임이 시작된 시각이 기록에서는 하오7시로 돼 있으나 검찰에서는 이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고 진술했던 것. 그는 『신촌모임의 시각기록은 분명히 틀리지만 다른 사안의 시각을 기록한 메모는 정확하다』고 주장해 『신빙성을 어떻게 믿느냐』며 변호인단으로부터 세찬 공박을 받기도.
  • “대통령 승인 없이 총장 연행/신군부 행동은 명백한 반란”

    ◎12·12 17차 공판/윤성민·이건영씨 증인신문 12·12 및 5·18사건 17차 공판이 27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30부 심리로 열렸다. 공판에는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노재현 국방장관,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 등 12·12사건 증인 5명이 출석,윤성민·이건영씨 등 2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단의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관련기사 20면〉 12·12 당시 육본측 장성들의 전화내용을 녹음한 녹음테이프의 진위를 확인하는 증거조사도 진행됐다. 윤씨는 검찰측 신문에서 ▲정총장 연행을 대통령이 사전에 승인하지 않았던 점 ▲연행 사실을 군 통수계통을 통해 전파하지 않은 점 ▲수도권 일부 장성들이 보고없이 부대를 떠나 30경비단에 모인 점 등때문에 신군부의 행동이 군사반란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12·12 당일 하오 8시30분쯤부터 최규하 대통령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하지 못하고 신현확 총리에게 전화해 보고한 뒤 「충돌없이 지혜롭게 수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지휘본부를 육군본부에서 수경사로 옮긴 것은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육본과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지휘축선이 상실됐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변호인측 신문에서는 『12·12 당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정총장을 안전하게 모시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박상렬 기자〉
  • 「12·12」「5·18」 15차공판­전두환 피고인 보충신문

    ◎핵심쟁점 추궁에 전씨 “진술착각” 번복/신촌모임 등… “너무 오래된 일이라”/“정 총장 연행하려 장태완유인” 시인/“군 최고통수권자 권한 잠시 차용”… 의외 답변도 ▷검찰◁ 20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5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증인채택 결정을 내린 뒤 전두환피고인 등에 대한 검찰의 보충신문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하오 50여분 동안 진행된 보충신문을 통해 30경비단과 신촌모임,총리공관 장악 등 핵심쟁점을 다시 한번 거론,전피고인을 궁지로 몰아넣었다.전피고인은 검찰의 날카로운 신문에 수차례에 걸쳐 『착각이었다』『당시 진술은 잘못됐던 것』이라며 검찰조사와 변호인 반대신문때 말한 진술을 번복했다. ▷30경비단 및 신촌 모임◁ 검찰은 12·12사건 직전 육군본부의 군장성들을 30경비단과 신촌의 요정으로 따로 부른 전피고인의 「의도」를 집중추궁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친하게 지냈던 유학성·황영시피고인 등 30경비단에 모였던 원로장성들과,정총장의 직계로 분류되는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함께 모으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따로 떼어놓은 것은 장수경 사령관 등의 반발을 막기 위한 유인책이 아니었냐고 조목조목 따졌다. 전피고인은 이에 대해 『신촌모임에서도 장수경사령관 등에게 정총장의 연행필요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 했었다』고 설명한 뒤 『검찰도 「큰 범인」을 잡기 위해 유인작전을 펴지 않느냐』고 반문,사실상 유인할 목적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또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의 장성진급 축하를 위해 모였다고 밝힌 신촌모임과 관련,『조 헌병단장이 일자와 장소를 통보했다』는 변호인 반대신문에서의 진술은 착각이라고 번복했다. ▷정 총장 연행재가 과정◁ 전피고인은 이 부분의 보충신문에서도 애초 진술을 뒤집는 발언을 했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의 비서실에 대기하고 있던 이학봉 수사국장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성공했다』는 쪽지를 건네 받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연행재가를 요청했다는 검찰진술을 번복한 것.전피고인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착각했다』며 『사실은 이학봉으로부터 구두로 보고받았다』고 해명했다. 전피고인은 신현확 총리의 진술을 근거로 검찰이 『최대통령에게 연행사실을 보고한 사실이 없지 않느냐』고 추궁하자 이번에는 『신총리의 착각일 것』이라고 맞받아쳤다.연행보고를 받은 최대통령이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느냐』고 질책했다는 신총리의 진술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총리공관 장악◁ 전피고인의 「착각」진술은 계속됐다.10·26직후 총리공관의 경비를 헌병에게 맡긴 것은 『정총장의 독단에 의한 불법조치』라고 말했던 변호인 반대신문때의 진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전피고인은 『최대통령이 고사함에 따라 육본측이 헌병단에게 경비를 맡긴 것 같다』고 해명,재판부의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전피고인은 30경비단에 모인 장성들에게 1·3공수부대 등의 출동을 요청한 것은 『육본측의 병력출동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며 종래 주장을 되풀이했다.그러나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군부측이 병력출동을 한 것은 위법아니냐』는 질문에는 『최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국군최고통수권자의 권한을 차용했다』고 의외의 답변을 했다. 전피고인은 검찰 보충신문에 당황한 듯 평소 달변으로 분위기를 주도해 왔던 이전까지의 공판과는 달리,말을 더듬거나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잦았다.팔짱을 끼고 대답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팔짱을 풀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전피고인이 검찰의 신문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보이자 『유도신문』『변호인 반대신문의 취지를 훼손하는 질문을 하고 있다』고 검찰을 공박하며 재판부에 제지요청을 했다.〈박은호 기자〉 ◎총장연행 재가받고 집행할 수 없었나­재판부/최 대통령도 계엄사령관의 눈치 봤다­전씨 ▷재판부◁ 재판부는 이어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는 처음으로 피고인들에 대해 12·12사건에 대한 직접신문을 했다. 김영일 재판장은 주로 12·12사건이 정당하고 어쩔 수 없는 우발적 충돌이었다는 주장의 진실 여부를 묻는데 초점을 맞췄다. 신문한 피고인은 전두환·노태우·박준병·허화평·이학봉·황영시 등 6명이었다. 특히 1시간20여분의 신문의 절반 이상을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에 할애했다.주 내용은 정승화 총장을 수사하는 데 강제연행 이외의 방법이 없었는가였다. 5·16 직후 「박임항 사건」과 73년 「윤필용 사건」 당시 수사의 주체가 보안사였는지,대통령의 서류 재가를 받았는지 등도 신문했다. 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 재가를 사후에 받게된 이유를 캐기 위해서이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정총장을 인사조치 한 뒤 수사를 할 수는 없었는가라는 재판장의 신문에 전피고인은 『계엄사령관은 최규하 대통령도 눈치를 볼 정도로 힘이 셌다』고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대통령에 대한 보고도 보안유지를 할 수 없었다』며 『노재현 국방장관은 평소 잘 아는 사이여서 정총장에 대한 수사를 건의했으나 이마저 정총장 귀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재판부는 『노태우 피고인 등을 30경비단에 모이게 한것은 대통령 재가가 나지 않을 것을 미리 예상한 것 아니냐』,『여러명의 장성들과 재가를 받으러 간 것은 군부내 지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질문으로 전피고인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전피고인은 『재가가 나지 않을 것 같았으면 모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인했다.하지만 『군 지휘관 여러명이 한꺼번에 대통령에게 「선조치 후재가」의 관례를 설명한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못했다. 박준병 피고인에게는 12·12 당일의 행적을 추궁했다.이학봉 피고인에게는 『정총장에게 의심스러운 면만 수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박상렬 기자〉
  • 독립유공자 초청 보은행사/독립기념관,보훈의 달 맞아

    ◎전국 1백93명 모여 「험난한 시절」 회고/목천·병천초등학생과 통일염원 타종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에 생존해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은행사가 12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에서 열렸다. 전국의 독립유공자 3백86명가운데 1백93명이 배우자와 함께 1박2일간 한자리에 초청돼 기념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에서 통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이강훈·안춘생·박영준·서상교·이규창·김승곤·조인제·권쾌복선생 등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원로유공자,지부영·신순호여사 등 여성독립운동가 10여명과 황창평 보훈처장,이경문 문체부차관,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은의 뜻과 함께 독립세대와 통일세대가 한 자리에서 만나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인근 목천초등학교와 병천초등학교의 어린이 1백4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오 1시부터 참석자들은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서 육군본부 의장대의 도열과 진혼곡속에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동지들과 순국선열 영령들에게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이어 겨레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식을 가진뒤 이강훈 선생(93)으로부터 독립운동당시의 회고담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험난한 시절의 얘기를 손주에게 옛날얘기 들려주듯 자상하게 일러준 이옹은 『나라가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며 『여러분이 훌륭히 자라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고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생의 발표가 끝나자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기다렸다는듯 갖가지 궁금증을 쏟아놓았다.『일본인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떤 고문을 했나요』『독립운동할때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그 당시 독립군가를 불러주세요』 정진영양(13·병천초등6)은 『우리나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우신 할아버지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더욱더 나라를 사랑할 것을 다짐했다. 열띤 대화의 시간뒤에 이들은 한마음으로 통일염원의 종을 타종하고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전시관을 함께 관람하며 제2의 광복인민족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삼성그룹과 공동으로 이 행사를 주관한 박유철 독립기념관장은 『생존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고 육성녹취를 통해 미흡했던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천안=이순여 기자〉
  • 무명용사 유해 50여구 가매장/서귀포 하천변 방치 45년

    ◎6·25때 방위군징집… 제주수용서 사망/유족들이 확인 “위령탑이라도 세웠으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천 둔치에 6·25당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다가 훈련중 숨진 50여구의 유해가 가매장된 채 45년간이나 초라하게 방치돼 현충일을 맞은 유족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가매장된 주인공들은 6·25발발 직후인 1950년 12월 전시병력동원령에 따라 편성된 만 17∼40세의 제2국민병역 해당자로 51년 1·4후퇴 무렵 최후방 제주로 퇴각,당시 서귀포시 강정국민학교에 마련된 「특수공동수용소」에서 수용생활을 하던 사람중 일부. 당시 이곳에는 최대 2천∼3천명이 수용돼 있었으나 50년 12월∼51년 3월 사이 이른바 군 착복사건인 「국민방위군사건」이 발생,제주까지 군수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바람에 굶어 죽거나 디프테리아에 감염돼 병사한 것.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50년 12월23일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사사리(현재 안산시 사사동)에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다가 이곳에서 숨진 김국진씨(당시 37)의 장남 흥순씨(61·상업·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2774의 34)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곳에 수용됐던 3∼4명의 고향사람을 통해 부친소식을 전해 듣고 20여년간 조사 끝에 수십구의 유해가 가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지난 93년 현지에 「무명용사탑」만이라도 건립해줄 것을 청와대와 서귀포시 등에 진정했지만 국방부나 육군본부 등 관계기관이 『전사자료가 없어 공식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3년째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씨는 『현충일을 맞을 때마다 아무 표석도 없이 하천변에 잠들어 있는 부친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서 『「무명용사」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가 아쉽다』고 말끝을 흐렸다.〈제주=김영주 기자〉
  • 명예 육사졸업장 받는 생도 2기

    ◎입교 24일만에 6·25 발발… 육종학교 편입/정규 11기 견제로 그동안 명예회복 못해 4년제 육사생도로 입교했으나 입교 24일만에 6·25전쟁이 발발,졸업은 커녕 육군종합학교 출신으로 바뀐 생도 2기생들이 1일 열리는 개교 기념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게 된다.육사동문으로서의 명예를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이 육사에 들어온 것은 50년 6월1일.3백34명의 2기생들은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사관생도로서 내무생활이 겨우 몸에 익을 무렵 6·25를 맞았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한으로 몰려들자 육군본부는 임관을 며칠앞둔 생도 1기생들과 함께 이들 2기생을 포천에서 퇴계원에 이르는 방어선에 투입한다.분대원이나 연락병으로 편성된 이들은 M1소총과 50여발의 실탄만을 휴대한 상태. 강력한 화기로 무장한 인민군 3사단에 맞선 이들 가운데 당일 85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됐다.북한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자 학교본부는 모든 생도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그러나 이들 생도의 불퇴전의 용기로 적의 서울 진입을 8∼10시간 늦추는 전과를 올렸다.대전으로 내려온 육군본부는 유엔군 증원에 희망을 걸고 생도 1기생은 같은해 7월 임관시킨다. 그러나 생도 2기생들은 7월8일 육사가 임시휴교된 가운데 다시 대구로 철수,육군본부 경계임무 등을 수행하다가 낙동강 방어선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초급장교의 손실이 극심하자 8월15일 단기장교 양성과정으로 창설된 육군종합학교에 편입돼 6주간의 교육을 거쳐 2백83명이 종합 1·2기로 임관된다.지난 64년 육사 기수를 재조정할 때 1년제 과정의 생도 1기는 육사 10기로 편입됐으나 생도2기는 정규 4년제 과정인 육사11기의 「견제」로 육사 기수에서 빠졌다. 생도 2기회장인 장정렬 예비역중장(64·평북도지사)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희생되고도 육사생도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한을 이제야 일부나마 풀게 됐다』고 말했다.〈황성기 기자〉
  • 북군 영해·영공 침범땐 즉각 응징/해·공참 총장

    ◎“교전규칙 따라 조치” 지시/북 박격포 육지·교통호 구축 확인 육군에 이어 해·공군도 9일 북한군이 영해나 영공을 침범할 경우 교전규칙에 따라 즉각 강력조치하라고 예하 부대에 지시했다. 안병태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해군본부 회의실에서 참모부장회의를 갖고 『북한이 해상으로 도발하면 즉각 철저히 응징하라』면서 『출동대기함정이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조업중인 어선이나 민간 여객선에대한 보호 및 통제에 만전을 기하라』고 시달했다. 이광학 공군참모총장도 이날 모든 전투비행단에 내린 지휘서신을 통해 『우리 공군은 적의 어떠한 도발도 즉각적이며 단호하게 응징해 적을 일순간에 궤멸시킬 수 있는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윤용남 육군참모총장도 이날 상오 제 1,2,3 야전군 사령관 및 육군본부 참모부장들을 소집,『특히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한발짝이라도 들여놓을 경우 교전규칙에 따라 즉각 조치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게리 럭 주한유엔군사령관이 북한의 판문점 무장시위와 관련,강력한 대북성명이나 항의서한을 북한에 보낼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유엔사측은 최근 북한의 도발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북한이 더이상 정전협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항의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그러나 『게리 럭 사령관 명의로 대북 성명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황성기 기자〉
  • “북군 침범땐 즉각 응징”/윤 육참총장

    ◎군사분계선 도발 단호히 격퇴/김 대통령­“한미 방위태세 철저 유지”/내일 공 외무·이 국방·레이니 대사·럭 사령관 회동 전군은 8일 북한군의 3차례 판문점 무력시위와 관련,북한군이 군사분계선에서의 크고 작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적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하면 즉각 전원 사살하기로 했다. 군 당국이 북한군의 예상되는 도발에 즉각 응징한다는 의지를 밝힌 적은 있어도 응징의 구체적인 내용을 천명하기는 처음이다. 윤용남 육군총장은 9일 야전군 지휘관 및 육군본부 참모회의를 긴급소집,『각급 제대 지휘관은 소신있고 단호하게 부대를 지휘하고 상황에 대처하라』면서 『적이 군사분계선 쪽으로 한발짝이라도 들여 놓을 경우 전원 사살하라』는 지시를 시달키로 했다. 군의 「교전규칙」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것으로 보이면 경고방송을 하고 이에 응하지 않고 월경하면 사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지난해 3차례 북한군이 월경을 했으나 경고방송만 하고 사격은 하지 않고 귀환을 허용했었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상오 이양호 국방장관을 비롯,김동 진합참의장 및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 등 군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조찬회의를 갖고 『우리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미 방위태세를 확고하게 유지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도 이날 이장관 주재로 국방부 국장급 이상 간부와 합참 부장급 이상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간부회의를 갖고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우리 땅을 침범하거나 국민의 생명을 위해할 때는 즉각 강력 응징하라』고 지시하고 『군 간부 및 전 장병은 그 어느 때보다 경각심을 갖고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학 공군총장도 이날 간부들을 소집,회의를 갖고 정찰기 등을 통한 대북 정보감시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유사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시달했다. 해군은 백령도 등 서해 5개도서 출·입항 및 어선보호를 위한 제반조치와 함께 해당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긴급상황별 대응 시나리오의 점검에 나서는 한편 전방 해역에 대한 초계 및 경계활동을 강화하는 동시에 해상전투 지휘체계를 보강키로 했다.〈황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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