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교포학생 총기난사 파문] 섬뜩한 동작…적개감으로 가득
“너희들은 내 피를 보겠다고 결정한 거야.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어. 내겐 한 가지 선택밖에 없어. 너희가 이렇게 만든 거야. 당신들은 절대 씻겨지지 않을 피를 손에 묻히게 된 거야.” 미국 NBC방송이 18일 공개한 조승희(23)씨의 동영상 비디오와 43장의 사진,1800자 분량의 ‘성명서(manifesto)’는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사전에 계획된 범행임을 드러낸다. 조씨가 우편물을 발송한 시간은 사건 당일인 16일 오전 9시1분. 최초 총격(오전 7시15분)으로 2명을 살해하고, 재차 범행(오전 9시45분)에 나서기 직전이다. 조씨는 동영상과 사진에서 ‘스킨헤드(극우주의자)’처럼 짧은 머리에다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권총과 흉기, 망치 등 살인 도구를 든 채 의식을 치르듯 다양한 동작을 취했다. 입으로는 적대감과 분노에 찬 증오심을 뿜어냈다.
조씨는 직접 찍은 10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성명서를 낭독했다. 조씨는 “내가 그들을 위해 저질렀다. 이제 시간이 됐다. 내가 했어야 했다.”고 기숙사에서의 총격을 시인했다.
그는 “얼굴에 침을 뱉으면 어떤 기분인지, 목구멍에 쓰레기를 밀어 넣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너희가 아느냐.”며 뿌리깊은 원망도 드러냈다. 중간 중간에 사회적 약자, 십자가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또 “벤츠도 보드카와 코냑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냐.”고 부유층의 쾌락적인 삶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그의 기숙사 방에서 발견된 ‘부잣집 아이들’,‘방탕’이라는 메모에서 드러낸 적개심이다.NBC뉴스는 조씨가 특히 ‘쾌락주의(Hedonism)’ 혐오와 ‘기독교 신앙(Christianity)’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오사마, 부시’ 언급
조씨는 자신이 ‘PDF파일’로 보낸 43장의 사진 곳곳에 메시지를 넣었다. 그는 김정일,9·11테러의 오사마 빈 라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언급하며 “너희들이 나를 이런 사람들로 만들었다.”며 “행복하냐.”고 비아냥거렸다. 그가 보낸 사진 중 여느 평범한 청년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은 2장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진들은 마치 살육을 앞둔 전사처럼 권총을 겨누고 칼과 망치로 위협하는 섬뜩한 동작들이 연속됐다.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겨눈 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들은 조씨가 오래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차량 안과 실내외가 모두 사진 배경이 됐고 옷차림도 조금씩 달랐다. 그가 시차를 두고 미리 사진들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조씨 ‘유나보머’ 모방했나?
미국내에서는 조씨가 우편물을 통해 범행 동기를 밝히고 합리화하는 것이 마치 ‘유나보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씨의 성명서와 우편물 발송 수법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나보머(Unabomber) 사건은 1970∼80년대 현대 문명과 기술을 경고한 버클리대 교수 출신의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를 가리킨다. 카진스키는 직접 만든 소포폭탄을 발송하는 수법으로 사망자 3명 등 26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그 역시 ‘유나보머 선언문’이라고 불리는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편지를 언론에 보내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조승회 성명서 요약
너희(You)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많은 방법과 기회가 있었다. 너희는 내 피를 쏟기로 결정했다. 너희는 나를 구석으로 몰고 내게는 어떤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 그 결정은 당신들의 것이다. 너희는 절대로 씻겨지지 않을 피를 손에 묻혔다. 너희는 내 마음을 파괴했고, 나의 영혼을 강탈했으며, 나의 양심에 불을 질렀다. 너희는 소멸시킨 것이 한 애처로운 소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당신들 덕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한 사람들과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 너희는 평생 동안 단 한 방울의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다. 너희는 원했던 모든 것을 가졌다. 메르세데스 벤츠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너희는 금목걸이로도, 신탁예금, 보드카와 코냑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속물들아. 유흥과 환락으로도 부족했느냐. 그 모든 것들도 너의 쾌락주의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순 없다. 이제 시간이 됐다. 나는 행동했다.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