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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구, 무계원 개관 10주년 기념전시 ‘오진암’

    종로구, 무계원 개관 10주년 기념전시 ‘오진암’

    서울 종로구가 다음달 8일까지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서 무계원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시 ‘오진암’을 연다고 6일 밝혔다. 오진암은 마당에 큰 오동나무가 우뚝 서 있어 붙인 이름으로 70~80년대를 대표하는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과거 정치인, 기업인 등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고 날마다 국악 공연이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전시가 열리는 무계원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오진암을 재탄생시킨 곳이다. 2014년 3월 문을 열었으며, 과거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 오진암을 이축해 지었다. 오진암의 건물 자재는 무계원 대문뿐 아니라 기와, 서까래, 기둥 등에 쓰였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무계원의 역사와 지난 10여 년의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로 기획했다. 무계원의 뿌리인 오진암의 변천사와 그간 이곳을 거쳐 간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통해 공간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무계원 안채에서는 오진암이라는 상호가 붙기 전, 집의 주인이자 조선시대 서화가였던 송은 이병직의 삶을 조명하고 그의 작품 7점을 소개한다. 2018년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가 종로구에 기증한 서화 작품 역시 감상 가능하다. 별채에서는 오진암의 변천사,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오진암을 기반으로 활동한 대표적 인물로는 명창 안비취를 들 수 있다. 그는 오진암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후학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 안비취뿐 아니라 김옥심, 김뻑국 등 여러 국악인에 대한 기록을 전시한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무계원이 걸어온 지난날을 들여다보며 오진암, 무계원의 변천사를 알아보고 한옥의 정취도 느껴보길 추천한다”라고 말했다.
  • [책꽂이]

    [책꽂이]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디플롯) ‘카오스 이론’이라고 하면 ‘베이징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카오스 이론의 핵심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이론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로, 현재 많은 나라 기상청에서 쓰고 있는 앙상블 예측 기법의 기틀을 마련한 저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확률적 예측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비선형 확률 예측 기법은 날씨는 물론 바이러스 확산, 경제 변동, 국가 간 충돌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보게 해 준다. 436쪽, 2만 7800원.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유홍준 지음, 창비)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까지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것은 500만부 판매 신화를 쓴 인문학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산문이나 에세이, 수필도 아니고 ‘잡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답사기를 쓰면서 겪었던 일들, 예술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말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부록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이 실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문 비법도 훔쳐볼 수 있다. 364쪽, 2만 2000원. 언니네 미술관(이진민 지음, 한겨레출판사) 미술관에 가는 것은 좋지만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철학자인 저자는 슬픔, 사소함, 서투름, 근육, 거울, 마녀,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라는 9개 키워드로 그림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그림 속 요소들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자기 몸에 있는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사물의 뒷모습과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332쪽, 1만 8500원. 레볼루션 코리아(구윤철 지음, 바다위의정원) 33년 동안 국가 정책과 예산을 다루는 일을 맡았던 저자가 현재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국가 시스템 곳곳에 여전히 추격형 경제 시절의 비효율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쌍끌이하기 위해 경제, 사회, 정치, 행정 분야에서 필요한 11가지 실행 전략을 제시한다. 320쪽, 2만 5000원.
  • 느려도 늦지 않은 금천 ‘평생학습의 장’

    느려도 늦지 않은 금천 ‘평생학습의 장’

    강의실·프로그램실·책카페 등 갖춰느린학습자 성장 지원 센터도 운영구청장 “평생교육 플랫폼 진화를” “금천 구민들의 꿈과 희망이 꽃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은 지난달 29일 독산동 금천평생학습관 개관식에서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평생학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이같이 말했다. 구민들의 평생학습을 상담해 주는 평생학습 매니저 18명의 수료식도 이날 진행됐다. 기존 독산2동 주민센터 자리에 마련된 금천평생학습관은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다양한 프로그램실과 책카페, 강의실 등을 갖춰 배움에 목마른 누구나 찾아갈 수 있다. 그간 금천구 평생학습 강의는 구청 지하에 있는 강의실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금천평생학습관이 문을 열면서 독립된 공간이 조성된 것이다. 유 구청장은 “주민을 비롯해 금천구를 형성하는 여러 기관, 공공단체 등이 모두 어우러져 평생교육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관식에 참석한 주민과 관계자들도 평생학습관의 역할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디지털 문해력 수업을 듣는 한 노인은 “카카오톡 사용법 등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 강사는 “배움에 차별이 없는 누구에게나 열린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금천평생학습관은 느린학습자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느린학습자지원센터도 운영한다. 이날 유 구청장은 현장구청장실 행사를 열고 느린학습자들의 어려움을 경청했다. 개관 기념행사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 초청 특강도 진행됐다.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엔 학습 동아리의 날이 운영된다. 느린학습자 자조 모임, 민주시민교육, 금천마을선생님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도 진행될 예정이다. 유 구청장은 “금천평생학습관 개관을 계기로 새로운 평생학습의 장이 구축됐다”며 “금천 구민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하고 알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구민 행복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 노원구, 최재천 교수에게 듣는 ‘생태적 전환’

    노원구, 최재천 교수에게 듣는 ‘생태적 전환’

    서울 노원구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초청해 올해 세 번째 ‘불후의 명강’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불후의 명강은은 인문, 건강, 과학,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를 초청해 시대적 문제와 개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구의 대표적인 평생교육 사업이다. 2019년 시작한 이래 물리학자 김상욱, 미술평론가 유홍준 등이 강단에 올라 구민들에게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내며 소통해 왔다.다음달 13일 오후 4시 노원구민의전당 대강당에서 개최되는 이번 3회차 명강에는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이자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를 초청해 ‘생태적 전환-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다. 최재천 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물학자인 동시에 과학 저술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다. ‘통섭’으로 대표되는 지식융합 시대의 개념을 소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최 교수가 최근 가장 힘써 이야기하는 분야는 이번 명강의 주제이기도 한 ‘생태적 전환’이다. 최 교수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로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위기의 실상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삶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생태적 전환을 제시할 예정이다. 참여를 원하는 구민은 오는 19일부터 노원구청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온라인 사전 신청 또는 강연 당일 현장에서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온라인은 500명, 현장은 10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하며, 좌석은 지정석 없는 자유좌석제다. 구는 언어 또는 청각 장애를 가진 구민들을 위해 수어 통역사를 배치할 예정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에 직면한 현재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하는 노원에 가장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 최재천 교수를 모셨다”며 “많은 구민들이 생태적 전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붓글씨로 새긴 독립운동가 김가진 재조명

    붓글씨로 새긴 독립운동가 김가진 재조명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예가 김가진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자리입니다.” 동농 김가진(1846~1922) 서예전 추진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리는 ‘백운서경’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고 어른인 ‘국노’(國老)로 모셨던 인물이자 조선의 대신 중에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인물이다.이번 전시에는 동농의 시와 서, 그가 전국에 남긴 현판의 탁본, 인장과 위창 오세창, 백범 김구 등 그와 교류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등 200여점이 나왔다. 전시명인 ‘백운서경’은 그의 서예 경지를 의미한다.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자신을 ‘백운동 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렸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그가 쓴 거대한 백운동천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한 글자당 크기가 가로 1.2m, 세로 1m 정도에 달한다. 동농의 글씨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의 자세를 견지했다. 유 전 청장은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었겠느냐”며 “동농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이 동농의 것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동농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예전 추진위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동농과 이완용의 대자 편액 글씨 조형 비교연구, 추가 물증 발굴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예가 김가진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자리입니다.” 동농 김가진(1846~1922) 서예전 추진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리는 ‘백운서경’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고 어른인 ‘국노’(國老)로 모셨던 인물이자 조선의 대신 중에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동농의 시와 서, 그가 전국에 남긴 현판의 탁본, 인장과 위창 오세창, 백범 김구 등 그와 교류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등 200여점이 나왔다. 전시명인 ‘백운서경’은 그의 서예 경지를 의미한다.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자신을 ‘백운동 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렸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그가 쓴 거대한 백운동천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한 글자당 크기가 가로 1.2m, 세로 1m 정도에 달한다. 전시에서는 탁본 형태로 만날 수 있다.동농의 글씨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의 자세를 견지했다. 근대기 유행과 시시각각 변하는 취향을 따라가기보다는 오랜 기간 고법의 정수를 체득하는 데 천착했다. 50대 후반에야 비로소 새롭게 해석한 자신만의 행서·초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유 전 청장은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었겠느냐”며 “동농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동농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특히 그가 가족, 지인을 위해 남긴 글씨, 편지 등이 전시된 2섹션 지단정장(종이는 짧고 정은 길어)에서는 따뜻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해당 섹션에서는 아들 김의한의 한글 교육을 위해 직접 쓴 한글 교재와 첫돌을 기념해 쓴 천자문 등을 만날 수 있다.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이 동농의 것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동농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예전 추진위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동농과 이완용의 대자 편액 글씨 조형 비교연구, 추가 물증 발굴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성추행’ 임옥상 그림 새긴 ‘한성준 기념비’ 철거하라…무용계 반발

    ‘성추행’ 임옥상 그림 새긴 ‘한성준 기념비’ 철거하라…무용계 반발

    성추행죄로 처벌받고 있는 민중미술가 임옥상(74) 화백이 전통춤의 거장 한성준(1875∼1941) 선생의 기념비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드러나자 무용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충남 홍성군은 25일 성명을 내고 “한성준 기념비 건립과 관련해 어떤 행·재정적 지원은 없었다. 사전 협의도 없었고, 군에서 참석도 하지 않았다”며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군유지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무용계 전현직 국공립 예술 단체장, 무용협회장, 대학교수, 무형유산위원회 위원 등 40여명이 전날 성명을 내고 “비석에 성추행 비위자 임옥상의 그림을 새겨 무용인과 순수 전통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며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 무형유산을 지킨 한성준의 예술 정신과 명예를 훼손하고, 그의 예맥을 잇는 예술인을 농락했다”고 홍성군 등에 철거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이애주문화재단은 지난 15일 홍성군 갈산면 한성준 선생 묘소에서 탄생 150주년 기념비를 건립했다. 한성준은 홍성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무용가이자 명 고수로 승무, 살풀이 등 100여 종의 전통춤을 집대성해 현대 한국 전통춤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비문은 이 재단 이사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임진택 상임이사(판소리 명창)가 쓰고 그림은 임씨가 새겨 넣었다. 한성준 선생이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그림이다.1970~80년대 ‘1세대 민중미술가’로 활동한 임씨는 2013년 8월 자신이 운영하는 미술 연구소 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지난 5월 기각됐다. 임씨는 18·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때는 그림 ‘광장에, 서’를 내걸었다. 이 그림은 청와대 본관에 걸렸다가 1심 판결 이후 철거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는 임씨의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자 남산에 설치된 ‘기억의 터’ 등 공공장소에 있던 그의 작품 6개를 모두 철거한 바 있다. 홍성군은 “한성준 선생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이애주문화재단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재단 측이 기념비 철거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학전 들러 작별 인사… ‘아침이슬’ 듣고 떠났다

    학전 들러 작별 인사… ‘아침이슬’ 듣고 떠났다

    33년 이끌며 예술 인재 배출한 곳 설경구·황정민·이적 등 지인 모여추모객들 ‘아침이슬’ 부르며 배웅이수만 5000만원 부의… 유족은 사양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저항 정신의 상징이자 문화예술계의 거목이었던 고 김민기가 24일 33년간 이끌어 온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노래 ‘아침이슬’ 가사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옛 학전 건물로 향했다. 학전 출신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 등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한영애·이적,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동료·지인과 일반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한 뒤 영정을 들고 건물 지하로 들어가 극장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등이 빼곡했다. 유족들이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고, 추모객 모두 목 놓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운구차가 대학로를 빠져나갈 때 많은 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봉안됐다.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 온 고인은 최근 급격히 건강이 악화해 지난 21일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 시대 정신이 담긴 명곡들과 ‘배움의 밭’인 소극장 학전을 통해 배출한 수많은 문화예술 인재, 그리고 고인이 각별한 애정으로 심은 어린이·청소년극의 씨앗이 귀중한 유산으로 남았다. 장례 기간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가수 조영남, 소리꾼 장사익, 정운찬 전 국무총리, 언론인 손석희 등이 조문했다. 1971년 ‘아침이슬’로 데뷔한 양희은은 이날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서 “고인은 내 어린 날의 우상이었다”며 명복을 빌었다.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는 조문객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지만 유족이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고인의 뜻을 반영해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았다.
  • 이수만, 故김민기 빈소에 거액 조의금…유족, 고인 뜻따라 돌려줘

    이수만, 故김민기 빈소에 거액 조의금…유족, 고인 뜻따라 돌려줘

    이수만(72)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서울대 선배이자 가수 겸 ‘학전’ 대표였던 고(故) 김민기의 빈소를 찾아 거액의 식사비를 전달했다. 다만 유가족 측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를 다시 돌려줬다. 24일 가요계에 따르면 이수만은 지난 23일 고 김민기의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로 써달라며 조의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앞서 유족이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식사비 명목으로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족은 이수만이 전달한 식사비 명목 조의금을 모두 돌려줬다. 생전 돈을 우선하지 않았던 고인의 유지를 따른다는 취지다. 지난 22일 고인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연 간담회에서 조의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히며 “학전이 폐관하면서 저희 선생님 응원하시느라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십시일반 도와주셨다”며 “충분히 가시는 노잣돈을 마련하지 않으셨을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만 역시 3월 학전 폐관 당시 마무리 작업을 위해 1억원이 넘는 금액을 쾌척했다.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저항의 가수’ 김민기는 반평생을 바쳐 일궈낸 예술인들의 못자리 학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유족은 24일 오전 8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옛 ‘학전’ 건물이 자리한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향했다. 고 김민기의 유해를 모신 운구차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영정을 안고 소극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유족이 다시 운구차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가 고인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힘겹게 1절을 마친 추모객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아르코꿈밭극장 앞에는 평소 고인을 ‘은인’이라 일컬은 배우 설경구와 황정민, 장현성 등을 비롯해 배우 최덕문, 배성우, 가수 박학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동료와 친구 수십 명이 일찌감치 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으로부터 학전 건물을 이어받아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을 맡은 정병국 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일반 시민들도 자리를 지켰다. 극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은 건물 지하로 들어가 고인이 생전 관객과 같이 울고 웃었던 소극장을 훑었다. 유족이 바깥으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로 바뀌었다. 추모객들은 비를 맞으며 운구차가 대학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때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색소포니스트 이인권씨가 길 한복판에서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 연주를 시작했다. 대학로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연주 소리에 마음을 잠시 가라앉혔던 추모객들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장현성은 힘겹게 말을 이으며 “가족장으로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자”고 했다. 그제야 추모객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훔쳤다.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고인은 최근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해 지난 21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유해를 봉안된다. 1951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동창과 함께 포크 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후, 1971년 정규 1집 ‘김민기’를 발매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대표곡 ‘아침이슬’의 편곡 버전이 수록되기도 한 이 음반은 고인의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고인은 특히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등의 곡을 발표하며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노래하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았다. 더불어 1990년대에는 극단 학전을 창단해 학전블루(2024년 폐관)와 학전그린(2013년 폐관) 소극장을 운영해 왔으며, 이곳들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소극장 문화를 일궈왔다.
  •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그저 고맙지. 할 만큼 다 했어. 가족이 걱정이지.” 20세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이자 가수이며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여 년간 이끈 연출가 김민기는 21일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24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향했다. 아르코꿈밭극장은 고인이 생전 33년간 작품을 올리고 신인 배우들을 발굴한 소극장 학전이 있던 곳이다. 생전 그에게 ‘빚졌다’고 했던 수많은 추모객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배우 장현성과 설경구, 황정민, 배성우, 최덕문, 방은진, 가수 박학기, 박승화, 이적,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을 비롯한 약 70여 명의 추모객들이 함께 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들은 학전 담벼락에 고인의 영정 사진을 세워두고 묵념을 한 뒤 지하에 있는 학전블루소극장으로 내려가 비공개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고, 유족들이 극장에서 나오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운구차에 탑승했다. 누군가 떠나는 차를 향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학전에서 오랫동안 라이브 밴드를 했던 이인권씨가 고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을 색소폰으로 연주하자 잦아들던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그는 “선생님(김민기)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주가 끝나고도 추모객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장현성은 울먹거리며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은 가족장으로 하기로 했으니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겠다”며 “마지막까지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설경구 역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고인은 1951년 3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다. ‘아침이슬’이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들어가 노래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에 공연장 학전을 연 뒤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일궈냈다. 2004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 극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학전은 만성적 적자와 고인의 건강 악화로 지난 3월 폐관했다. 고인은 통원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양희은 “故김민기, 어린 날 저의 우상” ‘아침 이슬’이 수록된 음반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를 통해 김민기를 추모했다. 양희은은 24일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선곡한 뒤 “가수이자 작사·작곡가, 공연 연출가, 그런 수식어로도 부족한 김민기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아침 이슬’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대목을 좋아했다는 그는 “‘아침 이슬’은 당시 정부에서 선정한 건전가요 상도 받았는데 1년 후 금지곡이 됐고 80년대 중반에서야 해금됐다. 선생은 요주의인물이 되어 힘든 일을 많이 당했을 텐데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어 이 정도밖에 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으로 칭한 양희은은 자신이 부른 김민기의 곡들을 읊어 내려가며 고인을 기렸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보기의 책보기] 황혼이 지면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최보기의 책보기] 황혼이 지면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나이 오십을 넘겼다면 이제 ‘걸어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전하는 ‘장일순 평전’을 읽고 가자.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무조건 한 번만 읽고 살자. 지천명(知天命) 오십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물었던 톨스토이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한 번은 진지한 성찰에 빠져야 할 나이다. 오십,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나 기억도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 일이 힘에 겹다. 세월이 저지르는 일이라 노력해도 말짱 도루묵, 방구석에서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지식(知識)을 얻으려 하기보다 미처 이르지 못했던 지혜(智慧)를 얻으려 하는 것이 맞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 서거 30주년, 그런 위인(偉人)이 있었음을 아는 독자마저 드물 것이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 딱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박사가 어디를 가던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아침이슬’의 뒷것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꼽았던 사람’이란 게 출판사의 첫 광고문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장일순 평전’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선생은 일제 강점기 원주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우국지사 박기정에게 서화를 배웠다.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줄곧 고향 원주에서 살았다. 원주가 한때 민주화 운동, 한살림 운동, 생명사상 운동의 아지트이자 성지였던 배경에 무위당 선생이 있었다. 동시대 원주에는 ‘토지’의 박경리 작가, 작가의 사위이자 ‘타는 목마름으로’ 시인 김지하도 함께 있었다. 멀리 김수환 추기경이, 가까이 지학순 주교도 있었다. 몰인간, 몰염치 사회는 유세가들이 지식만 쌓았지 경륜과 지혜를 쌓지 않은 탓이다. 칸트는 독일 변두리 쾨니히스베르크(칼라닌그라드)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세계와 우주를 관통했다. 기대승은 전라도 광산 변두리 동네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꿰뚫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미네르바(지혜)의 부엉이는 황혼이 지면 날아오른다. (The Owl of Minerva spreads its wings only with the falling of the dusk)’고 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 황혼에 접어든 오십 세라면 앉아 삼천리 서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지혜를 탐할 나이다. 책, 책, 책을 읽자. ‘장일순 평전’을 읽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책꽂이]

    [책꽂이]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대담집(김석범·서경식·최덕효·정영환 지음, 소명출판) 재일조선인 지식인들과 대담하며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물었다. ‘화산도’로 알려진 김석범 작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재일조선인을 보편적 시각으로 풀어낸 고 서경식 작가,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로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살핀 역사학자 정영환, 해방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을 돌아본 최덕효와 만났다. 국권을 상실하고 분단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억압과 차별을 감내하고 이겨 낸 이들이 민족을 어떻게 보는지 탐구했다. 328쪽. 1만 9000원.태양을 만드는 사람들(나용수 지음, 계단) 미래 에너지 생산 방식인 핵융합에 대한 설명서. 태양 중심보다 뜨거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석으로 만든 용기 안에 가둬 핵융합을 일으키는 토카막 방식을 설명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핵융합 연구소의 현주소를 살핀다. 토카막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핵융합 상용화까지 남은 난제도 소개한다. 2007년 한국이 독자 개발한 핵융합 연구로 ‘케이스타’(KSTAR)를 통해 우리 핵융합 연구의 역사도 짚는다. 432쪽. 2만 8000원.사어사전(마크 포사이스 지음, 김태권 옮김, 비아북)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을 찾아보고 분석했다. 빅토리아 시대 농부들, 제2차 세계대전 영국 해병들, 앤 여왕 시대 노상강도들, 옛 잉글랜드 수도사들이 쓰던 단어들의 역사를 펼친다. 너무 아름답거나 재밌어서, 지나치게 적확하거나 저속해서, 때론 아주 시적이어서 당시를 버티지 못한 단어들의 사연을 따라간다. 낯선 시대, 낯선 나라 사람들이 쓰던 낯선 낱말들의 이야기를 킬킬대며 읽다 보면 단어란 시대를 반영하는 세계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터다. 312쪽. 1만 7800원.세상의 모든 미술 수업(유홍준 외 9명 지음, 창비교육)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와 목수현·우정아 미술사학자, 교사 이성원·노길상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미술을 매개로 여러 유형의 학생들을 만나 겪고 느낀 바를 엮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창작하도록 한 수업 그리고 학교 밖 문해교실이나 소년원 등 미술과의 접점이 희박했던 이들과 함께한 수업도 소개한다. 미술을 매개로 하는 교육 활동은 우리 삶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며 우리 삶을 한껏 풍요롭게 해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증명한다. 204쪽. 1만 8000원.
  • [최보기의 책보기] 지식과 시각이 아니라 영감과 영각(靈覺)이 충만한 책

    [최보기의 책보기] 지식과 시각이 아니라 영감과 영각(靈覺)이 충만한 책

    지방자치가 실현되고 자치단체장이 주민 선거로 뽑히니 주민을 위한 행정 서비스가 날로 발전한다. 그중 투자와 효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민의 관심이 작은 시설이 박물관이다. 운 좋게 여행 전문 월간지 <여행 스케치>에 박물관 기행문을 쓸 기회를 얻어 매달 박물관 한 곳을 선택해 관람 중이다. 놀라운 점은 나라 도처에 박물관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 국공립 박물관은 물론 많은 사립 박물관까지 전문 운영 능력과 시설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이 곳에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있었다니!’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 인천 송도 세계문자박물관, 강원 평창 조선왕조실록박물관, 경기도 부천 시립박물관/ 활박물관/ 만화박물관,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 실학박물관, 서울 관악구 호림박물관 등이 모두 그랬다. 진주박물관의 특별전시전 ‘화력조선’이나 실학박물관의 기획전시전 ‘조선비쥬얼’은 그 명성이 자자했으니 지방에 있다고, 외진 곳에 있다고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서성이다』 저자 박현택 선생은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30년 넘게 디자이너로 일했고, 현재는 연필뮤지엄 관장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물관 졸업 작품집’ 같은 책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단순히 역사지식의 모음이라든가 예술적 식견을 밝힌 저술이 아니다.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시각의 비밀을 노출시킨 책이다. 지식이 아니라 영감, 시각이 아니라 영각(靈覺)이다’고 썼다. 마치 유홍준 박사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손철주 선생의 『꽃 피는 삶에 홀리다』와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를 포개어 놓은 듯한 이 책, 설명은 쉽고 문장은 간결하며 우아하게 동서양 박물관을 활보한다. 필자의 짧은 박물관 관람 중 압권은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이었다. 방안에 입장해 반가사유상 앞에 서는 순간의 황홀지경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올 가족여행은 강진에서···‘반값 강진 관광의 해’ 선포식

    올 가족여행은 강진에서···‘반값 강진 관광의 해’ 선포식

    전남 강진군이 반값 소비 촉진으로 위기의 경제 살리기에 적극 나선다. 강진군은 26일 서울 중구 소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4 강진 관광의 해’ 성공을 기원하는 선포식을 가졌다. 소비한 여행경비의 50%를 최대 20만원까지 돌려주는 반값 관광 정책이다. 기업과 전통시장이 반값 할인이벤트를 벌여왔지만 지자체에서 역점 시책으로 선포하고 연중 운영하는 경우는 강진군이 전국 처음이다. 이날 선포식에는 재경강진군향우회, 관광협회, 여행협회, 한국관광공사, 여행사, 여행작가, SNS 관계자, 서울·경기 맘카페 회원 등 300여명이 함께 했다. 군은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동시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1석 2조의 포석으로 크게는 국가경제 위기 돌파에도 힘을 보탠다는 전략이다. 참석자들은 강진원 강진군수가 ‘강진 관광의 해 비전’과 관련해 직접 프리젠터로 나서 설명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군수의 의지와 각오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남도답사 1번지’를 처음으로 제시한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가 20분에 걸쳐 ‘강진 관광’과 관련해 자세한 해설을 더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어 강진군 홍보대사인 가수 문희옥과 강진출신 국악가수 김준수, 강진 오감통 뮤지션인 코지재즈오피스의 축하 공연이 펼쳐지며 행사장 분위기는 달아올랐다.강진군은 그랜드볼룸 밖 로비에서 2024 반값 가족여행 강진 오프라인 사전신청·접수를 진행했다. 또 황칠차, 동백발효식초, 하멜맥주 시음회, 강진 농·특산품 전시, 강진 리빙룸 포토존 등을 설치해 강진 농특산물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반값 강진 관광은 2인 이상의 가족이 강진으로 여행을 오면 소비 금액의 50%, 최대 20만원까지 모바일 강진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드시 사전 접수·신청을 통해야만 혜택이 가능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문화유산도 일상에서 즐길 때 의미가 있다”며 “강진 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 함께 남도답사 1번지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반값 강진 관광의 흥행 성공을 기원했다. 강진원 군수는 “서울에서 반값 관광의 해 선포식을 하는 절박함을 이해하고 관심과 성원을 보내준 수도권 향우회, 여행, 관광업계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강 군수는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 피해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서민층이다”며 “국가경제 소비 시책의 연장선상에서 반값 관광 정책을 통해 지역경제도 살리고 소비 촉진으로 국가 경제도 살릴 수 있도록 많은 가족들의 강진 방문을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 ‘12사도의 행진’을 위한 카운트다운을 외쳐라, 프라하 천문시계 [한ZOOM]

    ‘12사도의 행진’을 위한 카운트다운을 외쳐라, 프라하 천문시계 [한ZOOM]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초저녁부터 안개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낮에는 한 걸음에 닿을 것 같은 ‘얀 후스’(Jan Hus, 1372~1415)의 동상조차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를 뚫고 구시청사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 고개를 들고 벽에 걸려 있는 거대한 시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치기 시작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제로(0)’ 외침소리와 동시에 시계가 7시를 알리는 종을 울렸고, 위쪽 두 개의 창이 열리고 예수의 12사도 행렬이 시작됐다. 프라하에서 만난 ‘전설의 고향’ 1410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구시청사 벽에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천문시계’(Pražský orloj)가 설치됐다. 전 세계에서는 세 번째지만,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천문시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시계라고 한다. 이 시계는 시계제작자 미쿨라스(Mikulas)와 하누쉬(Hanus) 그리고 수학자 얀 신델(Jan Sindel)의 합작품이다.  이 시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프라하 천문시계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주변국으로 퍼져 나가자, 천문시계를 갖고 싶은 왕과 영주들의 제작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프라하 시청은 곤란했다. 천문시계의 인기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천문시계가 많아지면 ‘프라하 천문시계’의 희소성은 사라질 것이다.어느 날 새벽, 프라하 시청에서 보낸 사람들이 시계제작자 ‘하누쉬’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하누쉬’를 붙잡은 다음 불에 달군 인두로 ‘하누쉬’의 눈을 지졌다. 억울한 일을 당한 ‘하누쉬’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기 전 마지막으로 천문시계를 한 번만 만져보고 싶었다. ‘하누쉬’는 시계탑으로 올라갔다. ‘하누쉬’가 천문시계를 만지자 순간 천문시계가 멈추었다. 이후 수많은 시계전문가들이 천문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천문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약 400년이 지난 1860년경 어느 날 갑자기 천문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천문시계에 얽힌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전설은 그냥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꽃보다 남자, 기능보다 퍼포먼스 천문시계는 천동설의 원리에 따라 해와 달의 움직임 그리고 시간을 정교하게 나타낸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양자시계로 시간의 오차를 극복하고, 인공위성을 통해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천문시계가 주는 기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매시간 정각 보여주는 12사도 행렬과 같은 이벤트에 더 관심이 있다. 아쉬운 것은 천문시계의 이벤트가 약 20초로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이벤트가 끝나자 요즘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이 짧은 이벤트를 보려고 어렵게 군중 사이를 파고들어 자리잡았나 하는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벤트 시간이 너무 짧다는 여론을 의식해서 나팔부는 기사를 추가하여 전체 이벤트 시간을 약 60초로 늘렸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천문시계는 위 아래 두 개의 시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쪽 시계판에는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 인생을 낭비하는 ‘악기 연주자’, 허영으로 가득 찬 ‘거울을 들고 있는 청년’,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 ‘고리대금업자’가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시계가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이 ‘혐오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쪽 시계판 주변에도 칼과 방패를 든 ‘정의의 여신’, 책과 펜을 들고 있는 ‘철학자’, 망원경을 들고 있는 ‘과학자’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위쪽 시계판 조각들과는 반대로 당시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천문시계 제작자들은 나쁜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시간 등장하는 해골로 죽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12사도의 행렬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지혜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합해보면, 천문시계는 계절과 시간 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철학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천문시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유홍준 교수가 인용한, 조선시대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글이 떠올랐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며, 보게 되면 모으게 된다. 이때 모으는 것은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니다.’
  • 유홍준 “열두 권 쓰고도 소개할 곳이 남았더라”

    유홍준 “열두 권 쓰고도 소개할 곳이 남았더라”

    “국내 편만 꼬박 열두 권을 냈지만 여전히 소개하지 못한 곳이 많더라고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다시 한번 전국 팔도를 유랑한다. 한국 인문서 최초로 500만부 고지를 넘어선 ‘답사기’는 기행문학의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새 유랑기의 제목은 ‘국토박물관 순례’(창비)다. 1993년 출간 이후 올해로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된 1권 ‘남도답사 일번지’ 서문에 쓰인 유명한 문장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에서 착안했다. 유 교수는 이날 1·2권을 시작으로 총 다섯 권 정도로 시리즈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권은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 ‘부산 영도 패총 유적’ 등 선사시대부터 만주 선양에 있는 ‘봉황산성’, 환인 지역의 ‘오녀산성’ 등 고구려의 현장까지 탐방한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의 일부였던 ‘비화가야’의 이야기를 다룬 2권에서는 부여·경주·창녕을 아울러 소개한다. 금관가야 등 이른바 ‘6가야’ 연맹에 포함되지 않았던 비화가야 소재지인 경남 창녕에서는 가야와 관련한 최신 연구·발굴 성과도 전한다. “문화재청장을 맡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전곡리 유적 관리가 부실하다고 신문 칼럼에다가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그러다 문화재청장이 됐고, 진행했던 것이 그레그 보언 하사 부부를 초청하는 일이었죠. 고고학을 전공하다 입대해 한국에 온 뒤 전곡리 강변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인물이요.” 유 교수는 간담회에서 보언과 관련한 재밌는 일화도 곁들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빅터밸리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보언은 영내 PX 가수인 한국인 애인과 한탄강 유원지로 데이트를 떠났다. 커피를 끓이려고 화톳불을 만들기 위해 강변의 돌을 주워 모으다가 발견한 것이 주먹도끼였다. 보언은 고고학 교과서에서 배운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처럼 생긴 돌을 보고 당시 애인에게 “이것 좀 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당시 그의 애인이었던 PX 가수의 이름은 이상미씨. 지금은 상미 보언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아내가 됐다. “지난달에도 한국미술사 강의 두 권을 냈는데 한 달 만에 두 권을 또 냈죠. 이건 코로나가 준 선물이에요. 어디 오라고 해도 갈 수 없으니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이 생겼어요. 이참에 밀린 것을 끝낼 생각입니다.”
  • 황금빛의 화가 클림트의 ‘키스’를 만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한ZOOM]

    황금빛의 화가 클림트의 ‘키스’를 만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한ZOOM]

    1857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체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1830~1916)가 수도 빈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도로를 건설했다. 이 성벽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황제는 새로 만든 순환도로를 따라 공공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링(Ring)처럼 생긴 순환도로는 ‘링슈트라세’(Ringstraße)라고 불리며, 이 도로 주변에는 국회의사당, 빈 대학, 자연사 박물관, 시청, 부르크 극장, 오페라 극장 등 빈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간직한 벨베데레 궁전 링슈트라세 남쪽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오이겐 폰 사보이 대공’(Prinz von Savoyen Eugen, 1663~1736)이 여름별장으로 지은 바로크 양식 궁전이다. 오이겐 대공은 17세기 대 튀르크 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에게 포위된 빈을 구한 영웅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후사가 없어 오이겐 대공의 사망 이후 한동안 방치되었다. 나중에 오스트리아 황실이 인수해서 황실에서 수집해온 예술작품을 공개하는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누어진다. 상궁인 벨베데레 미술관은 단일 미술관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키스’(The Kiss)가 바로 여기 벨베데레 미술관에 있다. 황금빛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실험주의 대표작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빵 한 조각 없었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클림트는 가난 때문에 학교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클림트는 담벼락에 현실을 비난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찰에 붙잡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고, 친척의 도움으로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클림트는 그 곳에서 모든 미술분야를 배워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79년 클림트는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 1864~1892), 친구 ‘프란츠 마치’(Franz Matsch, 1861~1942)와 함께 ‘아티스트 컴퍼니’를 결성하고 그림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빈은 성벽을 허물고 만든 링슈트라세 주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예술가들에게 벽화나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던 시기였다. 한편 당대 최고 작가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1840~1884)가 사망하면서 다른 화가들에게도 그림 요청이 많던 시기기도 했다.  마침내 클림트에게도 부르크 극장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클림트는 아티스트 컴퍼니 동료들과 함께 극장 천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렸다. 이 작품 덕분에 클림트는 황실로부터 황금공로십자 훈장을 받았고,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황금 모자이크 작품의 시작 1903년 클림트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아르누보와 새로운 실험을 추구해왔지만 보수주의 예술과들과 평론가들의 비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클림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새로운 영감과 자극도 필요했다.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를 우연히 방문한 클림트는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에서 6세기 비잔틴 모자이크 양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부인 ‘테오도라 황후’를 그린 모자이크 작품을 보며 평면을 통해서도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과, 황금빛을 통해 영원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클림트는 모자이크와 황금빛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907년 그의 대표작 ‘키스’가 탄생했다. 벨베데레 궁전을 떠나며 벨베데레 미술관이 있는 상궁에서 나와 바로크 특별전시가 있는 하궁으로 향했다. 상궁과 하궁을 이어주는 중앙공원은 ‘쇤부른 궁전’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중앙공원을 걸으며 상궁에서 만난 클림트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미술이나 미학을 전공하지도,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유명작품을 만나도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유명한 작품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도 그랬고,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을 갔을 때도 그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님께서 인용하신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처럼 미술을 통한 감동의 기회를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알아야겠다. 미술이 감정의 영역은 맞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면 보인 후에는 작품을 통한 감정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벨베데레 궁전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 한림대 ‘시민지성 한림연단’ 2기 개강

    한림대 ‘시민지성 한림연단’ 2기 개강

    한림대 도헌학술원은 ‘시민지성 한림연단’ 제2기 강좌를 총 6회에 걸쳐 연다고 6일 밝혔다. 회차별 개최일과 강연자는 ▲1회 9월 6일 한수산 작가 ▲2회 10월 4일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3회 10월 18일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4회 11월 1일 전상국 작가 ▲5회 11월 15일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6회 11월 29일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다. 수료식은 12월 6일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의 특강과 함께 열린다. ‘시민지성 한림연단’은 청중이 연사에게 자유롭게 질의하고 토의하는 공개토의형 강연이다. 한림대 재학생, 시민 누구나 수강할 수 있고, 수강신청은 QR코드를 통해 가능하다. 모든 강연을 수강하면 수료증이 주어진다. 송호근 한림대 도헌학술원장은 “시민지성 한림연단은 지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글로컬 시민 지성의 장으로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마약 청정도시 천안’ 지자체·경찰·교육청 등 손잡아

    ‘마약 청정도시 천안’ 지자체·경찰·교육청 등 손잡아

    마약청정도시 만들기 ‘범시민 대책회의’예방교육, 합동점검 강화 등 충남 천안시가 ‘마약 청정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역 내 범시민 기관·단체 힘을 모았다. 천안시는 18일 시청사에서 ‘마약 청정도시 천안 조성을 위한 범시민 대책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범시민 대책 회의에는 박상돈 천안시장과 정도희 천안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유홍준 대한노인회 천안시지회장 신효섭 천안서북경찰서장, 김보상 천안동남경찰서장, 박종덕 천안교육장, 박정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충남본부장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범시민 대책회의는 최근 청소년과 지역사회에 급속도로 확산하는 마약류의 오남용을 예방하고 ‘마약 청정도시 천안’ 범사회적 참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천안시와 천안교육지원청의 청소년 대상 마약류 예방 교육에 나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천안시 누리소통망(SNS)을 활용한 유해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고,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시민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천안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홍보할 예정이다. 천안시와 경찰은 마약류 불법유통 근절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유흥시설·병의원·약국 등을 대상으로 합동점검을 강화하고, 천안시의사협회는 과잉 처방 방지를 홍보하기로 했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마약 청정도시 천안’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동원하고 대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 23일 봉하마을...문 전 대통령, 김기현·이재명·이정미 대표 등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 23일 봉하마을...문 전 대통령, 김기현·이재명·이정미 대표 등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공식 추도식이 오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엄수된다.노무현재단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 인근 생태문화공원 특설무대에서 노 전 대통령 유족과 국회, 정부, 정당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노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을 진행한다고 18일 밝혔다.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 씨 등 유족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정당에서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참석한다. 정부에서 이진복 정무수석이 참석하고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김동연 경기지사, 강기정 광주시장, 박완수 경남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김관영 전북지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민주당에서 박광온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와 다수 국회의원이 참석한다. 노무현재단 정세균 이사장과 한명숙·이해찬·이병완·유시민 전 이사장, 도종환·이재정·전해철·정영애 등 재단 임원진도 참석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장하진 전 장관 등 참여정부 인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유족 대표로 김홍걸 국회의원이 참석한다.올해 추도식 주제는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 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뒤 집필한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인간이 소망하는 희망의 등불은 쉽게 꺼지지 않으며, 이상은 더디지만 그것이 역사에 실현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 강조했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꾸준히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해 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추도식은 김여진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다.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공식 추도사를 한다. 시민추도사로 18명의 시민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한다. 팝페라 가수 한가영씨가 추모공연을 한다. 추도식이 끝난 뒤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가 진행된다. 유족과 문 전 대통령, 정세균 이사장, 국회의장, 국무총리가 먼저 참배한 뒤 시민들이 참배한다. 추도식 현장은 노무현재단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된다. 추도식 당일 봉하마을을 방문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에서 1층 로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추도식 현장을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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