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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홍준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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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온라인서점

    미술사학자인 유홍준(兪弘濬)은 오래 전 편지 한장을 받았다.“우리 회화사 연구에 도움이 될 듯한 자료를 한부 복사하여 동봉하오니 잘 엮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심이 어떠하실지--”보낸 사람은 고서점인‘통문관’주인 이겸노(李謙魯·91)옹.지난 8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북한 국어학자에게 55년 전 출간한 책 두 권과 원고료를 건네줘화제가 됐던 사람이다.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며 서점주인은 바로 문화인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서점은 이제 변혁의 한 가운데 있다.정보통신혁명이 주 요인이다.지난해 독일의 인터넷 구매자 가운데 53.9%가 책을 샀을 정도로 전자상거래 최대 품목은 책이다.인터넷 서점이 등장,컴퓨터에서 클릭하면외국에서 늦어도 한달 안에 책을 배달받을 수 있다.이런 온라인 책구매로 소형 동네서점이 타격받고 있다.세계 최고(最古)서점인 영국 글래스고의‘존 스미스 앤드 선’이 개점 249년 만인 지난 4월 문을 닫은 것도 온라인 서점 탓이다. 뉴욕타임스는 “연내 도서구입방식에 대변혁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한권 통째가 아니라 요리책 가운데 원하는 요리나 단편소설집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을 살 수 있다.출판사는 전자책을 소비자에게 직판매한다.서점이 중간에 낄 여지도 없어지고 있다.판매방식의 변화는 책의 개념도 바꾸고 있다.지난 3월 미국 스릴러 작가인 스테펀 킹은 자신의 소설을 전자책으로 발간,첫날 40만명에게 팔았다.보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도 나왔다.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은 컴퓨터나 다른 휴대기기 등에 다운로드 받아서 들을 수 있는책을 팔고 있다. 물론 온라인 서점에 한계는 있다.아마존은 책판매 수익으로는 생존이 어려워 자동차판매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최근 영국 경제주간지이코노미스트는 킹의 소설을 전자책으로 산 사람들이 거의 읽지 않았다고 전했다.단순한 호기심에서 샀다는 것이다.실제 전자책을 컴퓨터 화면에서 읽기에는 눈이 아프고 수백쪽을 프린트해 갖고 다니기도힘들다. 그래도 인터넷 서적판매는 기존의 대규모 오프라인 서점들에게 판매력 강화 등의 큰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최근독일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이 내년에 한국에 온라인서점을 개설할 계획을 밝혔다.국내독자들은 지금까지 컴퓨터로 외국에 주문을 냈지만 앞으로 외국업체가 아예 국내에 온라인서점을 차린다는 구상이다.어떤 돌풍이 불지 관심사다.현재 일부 온라인 서점이 주도하고 있으나 대형서적센터는 짐짓 외면해온 책의 가격할인경쟁이 외국업체의 등장으로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김용옥 EBS특강 대단원 ‘도올 신드롬’ 탄생

    시장 아줌마,동네 꼬마들까지 노장철학을 운운하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현학적인 퍼포먼스’라는 폄하 사이를 줄타기하던 도올 김용옥의 ‘알기쉬운동양고전’ EBS강의가 2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도올은 이날 그동안의 강의내용을 총정리하는 뜻으로 강의 제목을 ‘승당(升堂·학문의 단계가 높아졌다는 뜻)과 도올 눌(訥)함’으로 붙였다.첫 강의때부터 마지막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청한 원로 정신과의사 노동두씨를비롯한 방청객들에게 졸업장을 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단군이래 역사를 꿰뚫으며 한국 사회의 철학적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본 그는미리 준비한 ‘우리 국민과 사회에 고하는 글’을 17분동안 낭독했다.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언론·관료집단에 대한 질타가 쏟아질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돌출발언은 없었다.강의중 떠오른 생각을 말로 옮긴 것이 아니라 미리 고심끝에 작성한 글을 읽어내려 갔기 때문.방송시작 전까지극비에 부쳐졌다. 도올의 강의는 실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21일 방송에선 언론이 자신의 강의를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뒤 “대한민국의 기자를 모두 박사출신으로 바꿔야한다”고 칼을 세웠다.그나마 EBS측에서 수정 편집해 내보낸 것이였다.김교수는 새벽 12시30분 전화를 걸어 30분동안 항의했는데 EBS관계자는 진땀을 뺐다고 털어놓았다.이는 ‘재미없는 강좌는 죄악’이라고 갈파했던방송 초기 자신의 발언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자신의 저서의 밀도가 떨어진다고 비판한 기자를 겨냥해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러브호텔을 한강변에 신축케하는 행정을 질타하면서 “공무원들을 모두 한강에 빠뜨려야 한다”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강의가 “대한민국 문화사에 일대 사건”이라고 자화자찬한 것도 일부로부터 ‘지적 거품’이라는 지적을 받게 했다. 도올의 강의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강의내용에 대해 도올과 논의하고 함께자막을 넣고 편집했던 조윤상PD는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철학강의가 시청자를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데 있다”고 정리했다. EBS는 채널 인지도를 높였다는 점에 무척 고무돼있다.시청률을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5%로 끌어올린 것은 EBS로선 일대 사건이다.광고 주문이 소화할 수 있는 5편을 크게 웃돌았고 28편까지를 묶은 비디오가 날개돋친 듯 팔렸다. 한 지상파TV에선 강의를 재방송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교재인 ‘노자와 21세기’(통나무)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으로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이어 20만부가 팔려 짧은 기간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것도 기록할만 하다.도올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1만부의 인세를 EBS에 기부했다. 도올 신드롬에 취해서인지 “나도 도올만큼은 할 수 있다”며 강의시간을 내달라는 학자들도 많아졌고 아예 “도올이 엉터리로 만든 동양철학을 내가 바로잡겠다”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에 대해 도올은 “나같은,혹은 나를 뛰어넘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며 당분간 TV강의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조PD는 전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그의 방대한 지적 편력에 동행한다는 자부심이나 착각(?)을 안겼고 삭막한 방송문화에 이런 프로그램 하나쯤 있었다는 사실은 위안으로 남는다. 임병선기자 bsnim@
  • “동아시아 전체 틀속에서 朝鮮 접근”

    “역사와 삶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사료를 함부로 뛰어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것에 얽매여서도 안되지요.역사 저술에는 언제나 생활현장이 중시돼야 합니다”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씨(62)의 학문 세계에는 언제나 ‘도전과 집념’이란단어가 따라 다닌다.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이론과 접목시켜 나가는 것도 그의 이같은 독특한 역사의식에서 나온다. 그는 최근 지난 95년부터 집필하고 있는 ‘한국사 이야기’의 세번째 산물인 ‘조선 전기편’(전 4권)을 출간했다.2003년까지 한길사가 계속 펴낼 시리즈는 총 24권 분량.우리 역사를 모두 되짚어 보는 방대한 작업이다.개인이 사건사와 정치사,문화사,경제사를 현장 답사를 통해 통사형식으로 쓰는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다. 이씨는 지난 98년 6월 ‘고대편’ 4권을 첫 출간한 뒤 지난해 1월 ‘고려시대편’(전 4권)을 써내 한국 중세사 연구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에 대해 “해방이후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생활사와 문화사적측면에서 풀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작업에 나선 95년 7월부터 전북 장수와 김제,경기도 구리 등으로 집필실을 옮기면서 매년 200자 원고지 5,000여장을 쓰고 있다.이같은 강행군으로 무리가 따랐는지 요즘 손의 마비증상과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자주 찾는다. 조선시대편은 조선의 건국부터 청일전쟁(병자호란)까지를 아우른다.우선 조선시대사를 명·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따라서 그는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으로,병자호란은 조청전쟁으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조선의 유교적 통치이념이 민중과 생활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심층해부한다.음식 주거 의복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조선 여성들의 억압적삶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예를 들어 담배의 유입 과정을 다루면서 광해군이 담배 냄새를 싫어해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예절이 생겼다고 유래를 밝힌다. 이씨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많은 연구 결과물을 갖고 있어 고대와 고려시대보다 집필하기에 편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역사 관점은 주역사상의 대가이면서 야인 기질을 가졌던 부친 이달선생의 생활방식과 사상,학문의 방향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대구에서 태어나 16세때 가출,고아원 생활 등을 거치면서 광주고와 서라벌 예대를 중퇴하기도 했다.어린시절과 청년기는 방황과 새로운 세계의 경험,그리고 빈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60년대 중반이후에는 민족문화추진위원회와 규장각에서 고전과 민족사를 연구했고,86년부터는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답사기행을 주도해 학계에 새로운 기풍을 조성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저서로는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이야기 인물한국사,역사와 민중,한국의 파벌,허균 등 30여종이 있다.그는 요즘 ‘역사의 현장성과 생활화’란 일념으로 한달에 한번 꼴로 답사길에 오른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는 “주위의 학문적 편의와 혜택을 터럭만큼도 받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뜻으로 40여년을 역사 탐구에 몰두해 온 것이그의 삶”이라면서 “‘한국사 이야기’도 이같은 의지의 결산물”이라고 말한다. 정기홍기자 hong@
  • [대한광장] 스님살이

    옛 스님의 말씀이 “한 번 산 속으로 들어온 후 잎이 푸르고 잎이 노랗게 변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출가하여 도(道)를 이루기 위해 산에 들어온 이후 산을 내려가 본적이 없다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스님이 되려고 해인사 백련암으로 입산, 출가한 후 10여년 동안은 거의 산문출입 없이 보냈습니다.생활이 단촐하고 말 상대가 없어 하루종일 말 몇마디하지않고 살게 되니 자연히 말이 어눌해지고 표현이 잘 되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큰스님의 심부름으로 큰절로 가려고 바삐 계단을 내려가는데 젊은 남녀가 올라오면서 ”스님,말씀 좀 물어봅시다”고 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그러면서 ”스님,백련암 경치가 참 아름다운데 동양철학 하는 스님이 계실 것 같습니다.스님 우리 둘 행복하게 살겠는지 한번 봐주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나는 대뜸 ”동양철학이 뭐요?”하고 물으니 ”아이고 스님,동양철학이 뭐라니요.사주 관상 아닙니까? 우리 둘 사주 한번 봐주이소.행복하게 살겠는지요?”. 어이없어 ”여기는 부처님 도를 배우는 곳이지 사주관상 보는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고 대답하니 두 사람 얼굴색이 변하며 처녀가 하는 말이 ”동양철학 공부하는 스님같은데 우리 사주관상이 안 좋으니 스님이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시는가 보다”며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하였습니다. 저는 화도 나고 또 큰스님의 심부름이 급한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절로내달렸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백련암으로 올라오는데 아까 일이 떠올랐습니다.”그렇다.동양철학 봐 달라는 말에 화가 나 쏴붙였는데 내가 잘못했구나. 보아하니 두 사람이 행복하게 오순도순 평생 잘 살겠다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을까!”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산에 살면서 흔히 받는 질문이 ”스님 왜 스님됐어요? 실연했습니까? 아니면 실패를 했습니까?…”입니다.처음에는 정직하게 ”큰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하면 다들 시큰둥하게 생각하며 ”스님,출가의 비밀은 따로 있지?!”하는 눈치입니다.그래서 대답 하나 개발해 ”내 사주팔자가 스님팔자라 스님 됐습니다”라고 하면 다들 머리를 끄덕거리며 ”그래,스님팔자가 있으니 스님됐겠지…”하며 수긍하고 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철스님께 출가한 후로 스님께선 항상 ”중은 행각(行脚)하기가 논두렁베고 죽을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스님은 도만 닦다가 가진것없이 훌훌히 떠날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안지도 얼마 되지않은 세월인 것 같습니다. 그런 각오로 평생을 수행만하는 스님들이 있기 때문에 불교는 적막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불교계에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감은 의외로 높은 것 같습니다.신부나 목사가 운전을 하면 당연시하는데,스님이 운전을 하면 뭔가 아닌 것 같고,신부나 목사가 스키를 타면 근사해 보이는데 스님이 스키를 타면뭔가 영 이상해 보이고, 신부나 목사가 골프를 치면 당연한데 스님이 골프치면 난리나는 세상입니다.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세상일은 모두 잊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스님이다”는 생각을 자기들도 모르게 마음에 갖고 있기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성철스님이 떠나신 후 중국이나 일본의 사찰들을 둘러보면서 ”아! 스님이란 산사에서 수행하는 것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수호자이자 계승자”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절안에 있는 모든 것,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구나하는 생각입니다.유홍준교수는 문화재를 잘 가꾸지 못한다고 스님들을질타합니다.그러나 산사에 스님이 없었던들 이만한 문화재인들 누가 가꾸고지켜왔겠습니까? 가야산에 불이 나면 삽이나 갈고리를 들고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것이 스님들입니다.불을 끄고 꺼멓게 그을린 얼굴과 먼지투성이 된 몰골을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는 몇시간이나 불끄느라 고생한 이후입니다. 이렇게 수행하며 산과 산사를 지켜가는 스님들의 노력을 일반인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흔히 세상사가 각박해지면 ”나도 산에 가서 중이나 될까”하는 넋두리를 곧잘 합니다.그런 사람치고 한달이,아니 일주일도 못돼 하산하고 맙니다.정말로 스님팔자가 있어야만 산사에서 살 수 있나 봅니다. [圓澤 조계종 총무
  • [새 정당 새 인물](3)정치권 영입추진 학계인사

    정치권의 ‘아이디어 뱅크’는 역시 학자그룹이다.‘국민의 정부’ 탄생과정에 준(準)공개적으로 간여,정권교체에 일익을 담당한 학자들이 있는가하면 드러내지 않고 여야 정치권의 논리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학자들이 있다. ‘조언’ 방식도 다양하다.칼럼니스트로 나서 여야의 정책논리를 명쾌하게설명하는 이들이 있다.‘정책기획위원’이나 ‘자문위원’식으로 특정모임에 참여,시중의 여론을 정권 핵심부에 전달하기도 한다.포럼·세미나를 통해정권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그룹도 있다. 여권이 신당 창당 과정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사람으로는 김찬국 상지대 총장,리영희 한양대 객원교수,이만열 숙대·오두환 인하대·유홍준 영남대·이장희 외대·오세철 조혜정 연세대·정운찬 서울대·장하성 고려대·유병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이다.영남권에서는 김재훈 금오공대 총장,장혁표 전 부산대 총장,이종오 계명대 교수 등이,강원지역 출신으로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교수와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을 지낸 같은 대학의 김일수 교수가 있다.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은 국민정치연구회를 이끌며 신당 창당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소속 상당수의 교수들도 현 정부의 ‘개혁이론’을 개발·전파하거나 시중의 비판여론을 여과없이 정권 핵심부에 전달하는 사람들이다.이들 가운데 동국대의 백경남 사회과학대학장과 황태연 교수,국민대의 유승남,연세대의 김한중,서울대의 박찬욱 임강원,대전대의 유재일 교수 등은 글재주를 인정받는 칼럼니스트들이다.기획위원은 아니지만 민족통일연구원 소속의 황병덕 박사의 통일칼럼과 수원대 이주향 교수의 사회칼럼도재치있다. 30대 학자로 ‘대통령론’ 저자인 함성득 고려대 교수도 정가에서 자주 들먹여지는 이름이다.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치권을 예리하게 분석,비판하는 소장학자군으로 서울대 최정운,중앙대 장훈,국민대 문태훈 교수를 꼽는다. 여권의 ‘개혁론’을 전파하고 있는 황태연 백경남 교수는 독일에서 공부한 ‘독일군단’들이다.정치권 주변인사는 아니지만 ‘독일군단’으로는 인하대의 서규환,한양대의 안석교,명지대의 신율,홍익대의 이국영 교수 등이 있는데 이들은 활발한 세미나를 통해 정치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개진한다.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원로학자군도 정책이나 개혁논리를 정밀하게 진단하거나 현안과 관련해 각계의 여론을 수집하는 ‘창구’다.송자명지대 총장,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현 교총 회장),변형균 김점곤 박사 등이 그들이다. 고려대의 김호진,연세대의 김황조,성균관대의 임종률 교수 등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노동계의 여론을 정부측에 수렴시킨다.‘일본통’인 최상룡 고려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물밑에서 총기획하는등 ‘뜨는 학자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 ‘이론가’는 현실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신당이나 정치권 참여의사를물으면 대다수가 부정적이다.이들 중 참신한 인사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는앞으로 여권이 풀어야 할 숙제다. 유민기자 rm0609@ *학계인사들의 기대 정치학자들은 21세기형 신당의 정치주역들이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밝혔다.일부는 인물 됨됨이에 초점을 맞췄고,다른 일부는 인물을 뽑는 방식에 무게를 실었다.시각은 달랐지만 ‘새 정치’‘새 인물’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이뤘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인 동국대 정치학과 황태연(黃台淵)교수는 개혁성을 ‘제1덕목’으로 꼽았다.“21세기 비전과 전망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개혁적인 인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韓完相) 전 서울대 교수는 “우선 사람이 참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실패한 것은 개혁이라는 새 술을 새 인물이라는 새 부대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신당창당이 총선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야만 참신한 인사들이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황수익(黃秀益)교수는 인물선정 방식에 비중을 두었다.황교수는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고 유권자들이나 지구당 일반 당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상향식 공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황교수는 “상향식 공천이적잖은 문제가 있지만 대통령이나 당총재 1인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역시 서울대 정치학과 박효종(朴孝鍾)교수는 “개혁성,전문성,참신성 등은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라면서 “당선 후에도 유권자들에게 떳떳하게얘기할 수 있도록 도덕적,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행정학과 유승남(柳勝男)교수는 “현재 인물에게 21세기 정치를 맡길 수 없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서 “참신함과 개혁성,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물로 구성원들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 20년만의 귀국 인터뷰

    홍세화(52)씨에게 서울은 인간의 정겨운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낯선 도시로 다가왔다.파리에서 20년간 이방인 생활을 하다 14일 잠시 서울에 온 홍씨는 인간적인 정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동숭동의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항에서 들어오며 서울이 너무 많이 변해 얼떨떨했다.거리도 잘 정돈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파트숲과 한강을 보며 시멘트문화의 삭막한 도시로 변한 서울 풍경이 안타까웠다.아파트숲은 자연과 인간과의 융화를 가로막는 장벽처럼 느껴졌다.한강은 파리의 센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큰 소중한 강으로 멋있게 꾸밀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서울의 이러한 모습은 철학의 빈곤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홍씨는 지난 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그동안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해왔다.지난 95년 자전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내우리나라에 그 존재를 알렸다.최근에는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신문사)를 냈다. 그는공항에서 아버지 홍승관(80)씨등 가족과 유홍준 교수등 지인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서울에 온 그는 가장 먼저 대학로를 찾았다. 홍씨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많은 실업자나 거지들을 보며 사회보장의 미흡함을 느꼈다.프랑스에서는 1930년대 자전거 타고 바캉스를 가던 시절부터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는 오늘에도 사회보장이 제대로 안돼 있는 것이 안타깝다.분단이후 사회정의도 안보에 눌리고 경제제일주의에 밀려났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에서의 택시운전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내몸을 움직여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그 당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는데 택시운전은 나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게 했다.그는 88년 4월부터 2년4개월간 택시운전을 했다.후배의 권유로 택시운전을 그만둔 그는 지난해까지 한국의상실 프랑스 지사장으로 일했다.지금은 글쓰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그는 “한국의 산과 들 등 자연을 가장 보고 싶었다.보고 싶은 사람도 굉장히 많았으며한 사람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원망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 잊었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이 강조해온 관용의 자세가 엿보였다. “영구귀국할 것이다.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겠는가.파리의 생활은 ‘나 있는 곳에 우리가 없는 쓸쓸한 이방인의 삶’이다.”그의 부인도 파리생활은 적막한 절간 생활과 같다고 말했다.홍씨는 그러나 “당장 돌아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파리에서 글도 쓰고 한반도를 바라보며 공부도 더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정권과 과거 정권과의 근원적인 차이는 극우집단이정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고 말했다.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평가에는 부정적이다.“박정희를 재평가하려는 것은 철학의 빈곤때문이다.땀흘려 일한 사람이 누군데 경제발전을 박정희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론은 이미 그 전정권에서 계획이 다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을 강하게 비판했다.“한국의 정치 지도층이나공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무 의식이 너무 부족하다.”중도좌파의 감성적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는 가장 힘겨운 때는 80년대 초 전두환정권이 등장했을 때였다고 말했다.“한국사회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홍씨는 “한국에 돌아오면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그리고 사회진보와 자아실현을 위해 고민하는 젊은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그들에게 사회적 책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출판기념회,강연 등바쁜 일정을 마치고 7월7일 프랑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창순기자 cslee@
  • 책속으로 떠나는 겨울여행/간행물윤리위 권장도서 40종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겨울방학을 맞아 청소년에게 권하는 좋은 책 40종을 최근 발표했다. 간윤은 추천도서를 초·중·고·대학생 등으로 독서능력에 따라 분류했다.(책이름,지은이·엮은이,출판사 순) ●초등학생 ○하늘 끝 마을(조성자,대원사) ○흰머리산 하늘연못(김향이·김혜숙,두산동아) ○개미 꼬비(권영상,문원) ○EQ동시(권영세 등,문공사) ○새 먼나라 이웃나라(6권,이원복,김영사) ○말하는 백과사전 시루스 박사(12권,크리스티안 뒤셴 등,비룡소) ○별을 찾아 떠난 여행(엔리케 바리오스,시인과촌장) ○아이벡스가 되고 싶은 샤무아(리아 카리니 알리만디,서광사) ●중학생 ○산천을 닮은 사람들(고은 등,효형출판) ○조선 대장부 이순신(박선식,규장각)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정재성 등,혜안) ○세계사 신문 1(편찬위,사계절)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삼성문화재단,학고재)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과학이야기(로버트 월크,해냄) ●중·고생 ○강의실 밖 고전여행(이강엽,평민사) ○오이디푸스의 결혼(미셸 코스타 마냐,끌리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채우는 불경이야기(감장호,문화사랑) ○인간과 기술(O 슈펭글러,서광사) ○쾌락(에피쿠로스,문학과지성사) ○CD­ROM과 함께 가는 별자리여행(곽영직 등,사이언스북스) ○프로야구 왜? 나무방망이 쓰나(진정일,동아일보사)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로버트 리드,김영사) ○금강산(유홍준,학고재) ○한권으로 보는 한국미술사 101 장면(임두빈,가람기획) ○지리산골에서 세계의 바다에서(박춘호,문학사상사) ○더불어숲(2권,신영복,중앙M&B) ●고고생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최하림,문학과지성사) ○세계를 움직인 열두명의 여성(조기숙,여성신문사) ○대한민국건국사(양동안,이승만 박사기념사업회) ○IMF 고통인가 축복인가(정창영,문이당) ○꿈의 신기술을 찾아서(허창욱,양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노트(A 리히터,서해문집)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돌베개) ●대학생 ○한국에 제2의 위기가 오고 있다(스티브 마틴,사회평론) ○혁신유통의 벤치마킹(조연상 등,동인)
  • 얼굴없는 노동자시인 박노해:하(금지문화금지인생이제야말한다:13)

    ◎암울한 ‘불의 시대’ 지나 이제는 감싸고 흐르는 ‘물의 시대’ 같은 느낌/약한자들 고통과 슬픔 외면못해 뛰어든 노동운동/이념에 갇혔던 ‘사노맹’ 합리적 진보운동 밑거름 기대/정직한 성찰과 반성만이 희망의 미래 열어갈것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핵심간부로 활동하다 91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지난 8·15특사로 석방된 박노해씨(40·본명 朴基平).시골출신의 노동자로 시작해 급진 이데올로기의 핵으로 활약하다 사형구형까지 받아 7년간 격리된 뒤 준법서약서를 쓰고 다시 햇빛을 보게 된 인물이다.출감직후부터 줄곧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강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노해씨를 만나 보았다. ­91년 구속될 때와 요즘 분위기의 차이는. ▲당시가 어두운 시절 불덩어리처럼 자기 몸을 던지는 ‘불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열정을 내면화시켜 물처럼 흘러가는 ‘물의 시대’같은 느낌이 든다. ­처녀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글들은 언제 쓴 것인가. ▲선린상고 야간 시절 체험한 공장의 불쌍한 삶과 군제대 후 함께 부대끼던 공장과 버스회사 동료들의 짓눌린 모습들을 가식없이 담은 것들이다.작업장과 기숙사 구석에서 작업장 일지 등에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을 자평한다면. ▲시대적 서정과 비전이 문학적 형태로 충분히 제시됐다고 본다.사회의 모순들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현장 분위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어린시절 작가가 꿈이었다는데 노동운동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는.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그러나 서울에 온 후 공장에 다니면서 계속되는 특근·철야잔업에서 동료들이 손을 잘리는 급박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이때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기로 했다.노동운동 아닌 노동운동부터 시작한 셈이다. -얼굴없는 시인으로 집필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나만의 책상,나만의 펜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단 한순간도 편안히 앉아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원고 전달때도 항상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85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에 가입한뒤엔 급진 노동운동가로 바뀌고 노동해방문학에선 정치적인 색채까지 보이는데… ▲주는대로 받고 시키는대로 일하는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날 때였다.모순은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분신과 구속 시위 등 항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사람이 불에타 죽는 상황에서 시만 쓴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명을 부인하다 신동아 90년 12월호에 자전수기를 보내 신원을 밝힌 이유는. ▲86년 5·3인천사태로 구속된 金모씨가 조사과정에서 내 본명을 실토했다.수사기관에서 전담반까지 구성해 추적하는 상황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박노해로 몰려 희생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수사기관에서 이미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데다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판단,이름을 밝혔다. ­사노맹의 핵심사상은 무엇이었나. ▲사노맹은 80년 당시 군사독재하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그리고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노동해방을 온몸을 다바쳐서 밀고 나갔던 80년대 시대 정신의 절정이었고 시대의 최전선에서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사노맹의 실패 원인은. ▲시대변화에 너무 늦었고 실천과정에서 너무 조급한 게 한계였다.급진 사회주의에 갖혀 당시 정권을 여전히 군사독재로 규정한 채 변화를 보지 못했다. ­지금 사노맹에 대한 생각은. ▲사노맹 사건은 500명이 구속되고 형량도 2,000년이 넘는 가혹한 희생을 치렀다.그동안 침묵 절필 삭발정진을 통해 책임을 지려했다.사노맹 관련자들 이 삶의 모범을 통해 극좌이념에 치우친 후배들을 진정하고 합리적인 진보운동으로 이끌어 가는 훌륭한 일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93년 옥중시집 ‘참된 시작’은 어떻게 나왔나. ▲91년도 대법원 상고 이유서를 쓸때 이미 창비(창작과비평사)에 원고가 넘어가 있었다.진보운동 쪽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늦춘 것이다. 극우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모두 돌멩이를 맞았다.합리적 진보쪽에선 올바른 변화라는 평을 얻었다. ­‘참된 시작’에서 사상 갈등과 자기반성이 두드러지는데 그 배경은. ▲분단과 군사독재라는 절대폭압의 조건 속에선 작은 권리 하나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붙든 게 사회주의였다.70∼80년대 짐승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살려내기 위해 야수처럼 싸웠다.그러나 사회주의 붕괴를 정직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93년 6월호 ‘사회평론’지에 낸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평에선 진보진영의 반성을 주장했는데… ▲철저하고 정직한 자기성찰과 책임 없이는 미래의 민주개혁과 진보적 운동이 불가능하다.새로운 진보이념과 비전,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목숨걸고 참구(參究)해 나가자고 한 것이다. ­계획된 작품은. ▲내년 여름쯤 이 시대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산문집을 낼 계획이다.올 겨울엔 6년만에 세번째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동양사상과 서구사상,사회적 실천과 내적 영성(靈性) 등 양극대립을 모두 담을 생각이다. ◎격별의 글들/“그래 결국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처절한 노동현장 ‘시다의 꿈’/강렬한 저항·분노 ‘노동의 새벽’/격랑뒤의 깨달음 ‘사람만이…’ ‘시다의 꿈’(83년 시동인지 ‘시와경제’에 발표)에서 ‘사람만이 살길이다’(97년 해냄刊)까지­.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활동하다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박노해씨의 글들은 험난했던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언들이다. 박노해란 이름을 처음 알린 ‘시다의 꿈’은 노동현장의 비극성을 그나마 우회적으로 들이민 처녀시였다.“…/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아직은 시다/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하나로 연결하고 싶은/시다의 꿈으로/…”. 박노해를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80년대 최고의 문제작가’로 자리매김한 시집 ‘노동의 새벽’은 훨씬 거칠어진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칠은 땀방울 피눈물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쓰린 가슴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노동의 새벽)“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잡고/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모두 열악한 작업조건과 억눌린 사람들의 직설적인 고발이다. 그러나 옥중시 ‘참된 시작’과 지난해 발표한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살길이다’에선 사상의 갈등과 반성,그리고 새 생활에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감마저 갖게 된다.“뜻과 주장은 좋으나 나타나는건 앙상하고/노동해방 계급투쟁 당파성 혁명적 관점…/거 제껴두자니 아깝고 먹자니 뼈만 걸리는/꼭 닭갈비와 같은 존재/지금 우리 마치 닭갈비 같은 처지는 아닌가/…”(참된시작중 닭갈비)“희망찬 사람은 그자신이 희망이다/길찾는 사람은 그자신이 새길이다/참좋은 사람은 그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사람만이 희망이다중 다시) 감옥에서 500여편의 작품을 구상했다는 박씨.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에서 이젠 만날수 있는 시인으로 바뀌어 새 작품을 구상중이다.80년대 노동계와 시단을 뒤흔들었던 박씨의 새 작품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문화재 수난/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사방 어디를 쳐다보아도 고층아파트와 상가건물만이 즐비한 지역에 저렇게 곱고 연한 자연의 곡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서울 사람들의 천복이다’이것은 미술평론가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방이동 몽촌토성을 보고 쓴 글이다.몽촌토성은 백제의 토성으로 전해져왔으나 토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채 망실된 백제의 역사만큼이나 무관심속에 팽개쳐 왔었다. 그러다가 지난 84년,이 지역이 88올림픽을 위한 체육시설 건립지역으로 확정되자 서울시와 문화제관리국이 유적공원을 조성하게 되었고 이 토성으로 인해 그 일대에 푸르른 녹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부지방을 강타한 기습폭우로 서울 덕수궁 함녕전 서까래와 창덕궁의 담장 일부가 훼손되고 몽촌토성·풍납토성 등 각종 지방 유적이 파손되거나 유실되는 등 수해의 상처가 이어지고 있다.이번 폭우에 파손된 문화유적만 46건에 피해액만도 15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긴급 보수반이 출동하여 능이나 토성을 비닐로 덮고 물길을 트는 등 응급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평소의 엉성한 관리체제를 졸지에 드러낸 셈이다. 비 한번에 수백년을 견딘 서까래나 담장이 무너진다면 그 나라의 문화보존 수준이 얼마나 허술한 가를 짐작케하는 일이다.사고가 난후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은 무의미하다.비가 오기 전에 철저한 방수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한 나라가 지닌 문화재에서 민족정신과 슬기와 문화의 차원을 점칠 수 있다.문화재란 이미 사라진 역사를 되찾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증거물이다.멸망한 비운의 나라라는 생각만 앞세웠던 백제가 토성하나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만 봐도 문화재의 위대성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살펴보면 어느 곳에서나 쉽사리 선조들의 삶의 자취를 찾아낼 수 있다. 역사의 무게는 깊고 값진 것이기에 한순간의 재해로 보물들을 마모시키거나 훼손시킨다면 커다란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라는 생각으로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관심을 일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수백년 풍상을 의연하게 버틴 선조들의 얼과 멋을 투철하게지켜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 ‘조선시대 화론 연구’ 펴내

    ◎조선후기는 畵論 부흥기/한국 그림이론에 대한 연구不在 지적 “조선 후기의 화론(畵論)은 단순한 외형적 사진(寫眞)뿐만 아니라 내면적 진실성을 요구하는 전신론(傳神論)까지 동시에 아우르면서 전개됐습니다. 이것을 동양미학의 용어로 말하면 형상에 근거해 정신까지 나타낸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조선 후기 화론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영남대 박물관장)가 우리 선조들의 화론을 다룬 책 ‘조선시대 화론연구’(학고재)를 펴냈다. “조선시대 화론은 화론다운 화론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는 유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누구누구의 화론이라는 말대신 회화관이라는 궁색한 표현을 종종 써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은 따지고보면 한국화론 그 자체가 빈약했다기 보다는 그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 이 책은 한국의 전통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 화론을 빌려 쓸 정도로 박약한 우리 미술계의 지적 두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선시대의화론은 문인·학자들의 논(論),서(序),기(記),발(跋),제(題),시(詩) 등에 주로 드러나 있다. 조선후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문예부흥기였다. 우리 화론이 활발하게 꽃을 피운 것도 이 때였다. 유교수는 이전 시대와 대별되는 조선 후기의 문예사조로 사실(寫實)정신을 꼽는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비로소 성리학적 중화(中華)이념에 기초한 예술양식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산천과 사람들을 그리려는 정신이 싹트게 된 것이다. 그런 정신이 회화적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 ‘조선적 형식의 완성’이라 불리는 진경산수와 풍속화다. 이 책에는 조선 후기에 전신론적 입장에서 화론을 펼친 남태응 윤두서 조귀명 권헌 이규상 심재 박지원 등과 사실론적 입장에 서 있는 이하곤 조영석 이익 강세황 정약용 등의 글이 실렸다. 이 조선시대의 화론들에는 예술작품과 이론의 치열한 밀고 당김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관련,유교수는 “물성(物性)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똑같이 그리기’를 넘어서되 일호일발(一毫一髮)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조선 후기전신론적 사실론의 치열함은 서양의 리얼리즘 예술논쟁에 못지않다”고 평한다.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창립 10돌 기념/그림·글씨 등 탁본 한자리에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회원들이 그동안 수집·제작한 결과물들을 일반에게 소개하는 탁본전이 지난 4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화랑(739­4937)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답사회 회원중 유홍준 대표와 이재호 전 총무·김효형 총무·흥선 스님·이보란씨·윤용이 원광대 박물관장·이태호 지도위원 등이 소장하고 있는 탁본 50여점을 내놓은 자리.선사시대부터 최근에 걸쳐 아름다운 그림과 귀중한 금석문 탁본이 다양하게 나와 있는게 특징이다.그야말로 청동기시대부터 3국시대·고려·조선·대한민국 등 모든 역사기간에 걸쳐 있는데 그림과 글씨 조각 문양 등이 고르게 전시되고 있다.이 가운데 광개토대왕비·김생 글씨의 낭공대사비·지리산 실상사 ‘범종 비천상’·지광국사 현묘탑비·상주 남산 석각비천상·묘향산 사적비 등은 보기드문 금석유물.순수 탁본과 함께 조선시대 능화판과 목판화 탁본도 함께 나와 있는데 선운사 소장 ‘석씨원류’ 목판은 글씨·그림이 모두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고 ‘멋쟁이’ 능화판은 문양의 추상적 변용과 구성에서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22일까지.
  • 고전 읽히기(외언내언)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단 한권의 책밖에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은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단 한권의 ‘편견’은 상대방의 다양한 ‘감성’을 다치기 때문이다.그대신 독일의 알프레드 베버는 ‘두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어느 책이 양서이고 어느 책이 악서인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단지 비문이나 성서처럼 오래된 것이 고전임에 틀림없다.‘고전’이란 누구라도 읽지 않으면 후회하면서도 누구라도 읽기 싫어하는 책이기도 하다.사람들은 책장을 열기도 전에 그 내용이 난해할 것에 지레 겁을 먹지만 좋은 책이란 먼저 읽어두지 않으면 두번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한 출판사가 중고교 독서담당 교사들을 상대로 ‘도서 추천 실태’ 조사결과 그들이 추천한 권장도서는 무려 1천100여권.필독서인 생텍쥐베리에서 헤세 리처드바크 바스콘셀로스 다윈찰스 스티븐호킹에서 심훈 나도향 이효석 박경리 유홍준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명편과 과학과 자연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돕는 책들이 고루 들어 있다.이보다 앞서 한국 갤럽이 전국의 청소년 1천500여명을 상대로 한 ‘한국인의 독서실태’조사에 보면 56%가 한달에 ‘단 한권도 책을 읽지 않았다’고 응답한다.그러나 ‘어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서는 무려 83.2%가 TV시청을 밝히고 있다. TV시청은 휴식이지만 독서는 마음을 살찌우는 양식이다.습관적으로 체질적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당연하게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책 한권 읽었다’는 자랑은 결국 ‘지성’을 해치는 ‘우매’일 것이다.1천여권을 다 읽을 수 없다면 10권을 먼저 읽고 다시 10권에 도전할 수 있다.우리민족의 삶을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대하소설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빼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 고전에는 우리의 미래와 새로운 인생이 들어있다.책을 멀리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이런 경기불황일수록 두 눈에 불을 켜고 책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의 빛을 찾아내보자.
  • 동양화가 홍석창(이세기의 인물탐구:155)

    ◎수묵화 현대화에 앞장선 문인화가/서예로 잘 닦아진 필선… 사군자 등 작품 탁월/화목에 얽매이지 않는 운필… ‘여백의 미’ 일품 수묵화의 현대적인 계승에 앞장서온 홍석창의 화가로서의 위치는 먼저 서예와의 관계에서 접근된다.먹물이 뚝뚝 떨어지는듯한 원숙한 필치와 능란한 묵법은 산수와 화훼를 시원스럽고도 깊이있게 조명할 뿐만 아니라 미리 계산되지 않은 먹의 농담과 번짐속에서 연초록의 봄이 영롱한 얼굴을 내밀고 춤추는 난(무란)과 빗줄기(우일),송혁의 시가 언뜻언뜻 비껴 나오기도 한다.그것은 그가 단순한 화가나 서가가 아닌,서화일치의 문인화가로 대별되는 중요한 미점의 하나다. ○탁월한 미적격조 갖춰 문인화란 ‘부단히 속세를 멀리하고 숨은 뜻을 견고히 하는 포의의 풍류객’이며 ‘그는 문인화의 조건에 상응되는 방식의 삶과 문인화의 정신을 고스란히 구현해온 화가’로 유명하다.예를들어 직업화가가 치밀한 묘사와 정교한 설채의 공필을 생명으로 한다면 문인화가는 학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탁월한 미적격조를 갖추는 것이 다르다.미술평론가 오광수에 의하면 그의 작품이 문자향과 서권기를 드러내기 위해 ‘잘 그리려는 태’를 부리지 않고 푸근히 몸에 밴 필묵법만으로 ‘자신의 화격’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며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만권의 책을 읽어 학덕을 쌓고 천리를 여행하여 자연을 가까이 해왔다’고 설명한다.따라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군자는 일정한 형식의 틀이나 어떤 화목에도 얽매이지 않는다.오히려 적극적인 문인화적 해석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일격의 초탈성을 잃지않는 힘찬 운필’이 일품이다.수선화나 나팔꽃 목련화가 등장할때도 대각선이나 수평구도 등의 전형적인 공간설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구성으로 현대성을 실현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더구나 서예로 닦여진 견실하고 중후한 필선은 묵의 진하고 흐린 농담,마르고 축축한 고습한 변화가 화면의 허실처리에서 절묘한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것도 그만의 장점으로 꼽힐수 있다. 지난 94년 중국 미술관주최로 열린 초대전에서 중국의 대평론가 소대잠은 ‘깊은 사고와 빛나는 재주를 지닌 한국의 수묵화가’란 제목으로 ‘홍석창의 회화는 선명한 동방의 색채와 심미적 흥취,내재적 격정까지도 시로써 승화된다’고 호평하고 있다.그의 수묵화 언어는 마음 가는대로 붓이 가는대로 사물을 꿰뚫는 방법으로 자신감에 찬 용묵과 용필을 휘둘러 ‘작가의 인격’과 ‘따뜻한 인간미’를 화면에다 결구하는 형식을 취한다.그리고 이 역시 오랜 서예의 길에서 얻어진 묵고적 체험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학 1년때 화단 데뷔 홍석창문인화는 어릴 때부터 한문학자인 외조부 김병욱으로부터 ‘동몽선습’ ‘고문진보’ ‘통감’을 배우고 집안의 어른이던 영운 김용진을 직접 사사하는가 하면 이후 일중과 여초로부터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워 홍대 1학년때 국전 서예부문 특선으로 화단에 데뷔했다.공무원이던 홍기원씨의 5남1녀중 장남.시골에서 배운 사군자실력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과 월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가들을 두루 섭렵했고 동양화의 진수인 수묵화에 추상적 형태를 띠기시작한 것은 대학졸업후서양화의 앵포르멜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부터다.‘운필에 역점을 두고 먹을 주로 하는 작업’에 눈을 돌리게되자 비정형적인 것과 구상의 혼합,강열한 채색화를 시도하게 되었고 각체의 필력을 다룰줄 아는 웅장하게 용솟음치는 개혁적 설채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대학을 졸업하던 해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첫번째 개인전에서 ‘완전 전통에서 변화된조형적 해석과 실험성이 가미된 작품세계’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동양화의 진수를 심도있게 공부하기 위해 30세이던 지난 70년,한국인으로는 처음 중국 문화대학 예술대학원에 유학하는가 하면 중국에서활동하던 미술애호가이자 대수장가인 안기와 추사에 대한 연구를 끝내고 돌아오자 ‘용필’쪽에 비중을 실은 일련의 실험적 묵흔작업으로 먹의 깊이와 여운을 살린 추상적 수묵화작업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청대말의 문인화에서 엿볼수 있는 이때의 작품을 관심있게 지켜본 평론가 유홍준은 ‘담백한 무기교의 기교’가 우리 동양화의 특징이라면 ‘기교없이 담담한 그의 성품은 우리 자연과 가장많이 닮아있는 화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실제로 그에게 사군자를 배운적이 있는 공평아트센터 김상철 관장도 ‘사군자라는 것이 그러하듯 선생님의 조용하고 낮은 음성은 이러한 수업내용과 썩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작품에 대한 정열은 무한한 반면 성품은 소박하고 소탈하여 어떤 그림을 그려도 재기를 부리지않고 습필 갈필을 혼용하지 않으며 ‘변하지않는듯 변할뿐’ 일신을 꾀하지 않는 것도 홍석창 문인화의 특장이다.가족은 서예가인 정순희씨(수원대 출강)와의 사이에 선아(홍대 대학원) 미림(홍대재학중)자매. 이 시대 드물게 시서화를 겸하면서 그만의 기인기서 기인기화를 지키는 그는 언제부턴가 ‘철학과 인생이 농축된 평담천진의 경지’에 와 있다.화조와 산수에서는 비록 인물의 형상은 보이지 않지만 입의와 조형미가 함축된 조경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하고 노장철학과 미학의 논리로서 서방예술을 앞지르기도 한다.더이상 미의 극치에 탐닉하지 않는 천의무봉의 자세,학문의 연찬에서 오는 격조높은 정신세계만이 임리한 묵을 이룰수 있듯이 그의 ‘묵십지십채색’은 붓길이 닿는 것마다 점이자 선이며 향기로운 여백의 창만이다. 현대적 수묵과 전통적 문인화를 종합한 최상의 명작을 향하여 지금 이 화가는 유창탁발로서 내면의 심서를 무르익게 탄생시키는 가장 눈부신 묵흔의 황금기에 고고하게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연보 ▲1940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61-84년 한국미협회원전 ▲1964년 홍대 미대 동양학과 졸업 ▲1965년 제1회 개인전(국립중앙공보관) ▲1967-71년 신수회전 ▲1971-74년 시공회전 ▲1972년 중국문화대학예술대학원 졸업 ▲1974년 한중합동서화전(중국) ▲1975년 한국미협전 최고상 ▲1975-85년 창조회전출품 ▲1976년 신세계미술관초대 개인전 ▲1976-77년 아세아현대미술전초대 및 한국대표로 참가(일본) ▲1978년 제6회 개인전(동산방화랑 ▲1982·83년 국제현대수묵화연맹전 ▲1985년 제7회 개인전(선화랑초대),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1년 중앙미술대전·전국휘호대회·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2·93년 한국화대전 심사위원 ▲1994년 북경 중국미술관 주최 ‘한국화가 홍석창화전(9번째 개인전)’외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한국화단면전·동양화실경산수전·한국화 오늘과 내일의 전망전·수묵의 형상전·한국화 오늘의 상황전·한국화동향전,한·중 현대수묵화전 등 국내외회원전 1백30여회 출품 홍대 미대 교수·홍대 박물관장·한국미협이사·동방연서회이사·동방현대수묵화회회장·국제현대수묵화연맹 한국지회장·한중미술협회 수석부회장
  • 김익녕씨 독특한 도예세계

    화공과(서울공대)를 나와 엉뚱하게 예술의 길로 들어섰지만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실히 이룩한 작가 김익녕씨(국민대 조형대학 교수)가서울 인사동 통인화랑(735-9094)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23일까지. 뉴욕에서 요업을 전공한 후 왕성한 작품발표와 함께 일본 교토시립 미술대에서 강의도 맡은 이색경력의 작가는 ‘그 형태와 색감내지 쓰임새에 있어 어느 것하나 전통을 벗어난 것이 없으면서 어느 것하나 전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미술평론가 유홍준)는 작품평을 듣는다. 김씨의 도예세계는 단순한 멋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마치 감을 깎아놓은듯한 터치와 질감을 즐겨 사용한다.이 자리에는 예리한 각선과 대담한 면 처리를 강조하면서 단순함의 멋과 힘을 살려내는 고유의 개성이 담긴 근작들이 나와 있다.
  • ‘주제가 있는 답사기’출간 바람

    ◎일본을 걷는다­일이 뺏어간 우리문화재/나의 문화유산3­4개 문화권에 서린 미학/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쓰여지지 않는 문화’ 조명 ‘주제’가 있는 답사기가 여름 독서계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최근 출간된 중국 선불교 답사기 ‘밥그릇이나 씻어라’‘한국의 묘지기행’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세권의 역사·문화답사기가 새로 나왔다.‘일본을 걷는다’(한양출판)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창작과비평사),‘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해냄). ‘일본을 걷는다’는 건축학자인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일본의 도도부현을 직접 돌아다니며 쓴 역사체험기다.모두 3부로 1부는 일본이 탈취해간 우리 문화재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조선시대 왕세자의 거처였던 자선당을 비롯,평양팔경 가운데 하나인 애련당,지금도 남아있는 관월당,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 총독이 탈취해간 박물관을 만들 정도로 많은 문화재들,조선을 사랑한 인사로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가 수집해간 문화재로 가득한 일본 민예관 등을 소개한다.2·3부에서는 조선침략의 자취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현장들과 강제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한이 서린 장소들을 찾아간다.게이오 의숙,도쿄대학,오이소(대기)의 통감도,백제인이 지은 오사카의 진자(신사),조선총독부 청사를 설계한 독일인 기사 게오르그 데 라란데,일본의 기차역들,히비야(일비곡)공원,미츠비시 재벌의 상징 마루노 우치 빌딩,일본 국회의사당 등 일제침략의 현장을 낱낱이 살핀다. 영남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는 서산 마애삼존불로부터 출발해 능산리 고분군이 있는 부여에서 끝난다.지난 93년 발간돼 인문학 책으로는 드물게 1백만부이상 팔려나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강조했던 지은이는 2권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줬다.이번의 3권에서는 우리 문화유산의 미학을 이야기한다.이 책은 답사장소를 네개의 문화권으로 나눠 접근한다.부여 공주 익산 서울 등지에 남아있는 백제 문화유산의 미학,경주 불국사가 보여주는 통일신라의 ‘조화적 이상미’,안동문화권에 서려있는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미학,그리고 섬진강·지리산변의 옛 절집들에 녹아있는 산사의 미학 등을 다룬다.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은 그의 또다른 저서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와 맥을 같이 하는 인문기행서.‘어디를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식의 답사기를 지양했다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고려청자처럼 보란듯이 번듯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쓰여지지 않은 문화’‘이름표 없는 문화유산’이다.외면도의 당숲에서부터 수원 화성에 이르기까지의 여로가 담겼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국제교류재단 해외문화재 도록 5번째/호놀룰루 박물관등 5곳 탐방

    ◎회화 등 1,400여점 「미국2편」 발간/3백여점의 도판도 해설과 함께 실어/삼국시대 등 전시대의 우리 도자기 수록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정원)이 지난 8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해외소장 한국문화재 조사 및 도록 발간사업의 5번째 결실인 「한국문화재도록 미국2편」이 나왔다. 재단의 해외소장 한국문화재 조사및 도록 발간사업은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해외 각 박물관별 전시현황과 소장실태 파악,전시촉진,전시상의 오류시정,자료의 미비점 보완,미확인 물품의 감정작업 등을 벌이는 작업.지금까지 13회에 걸쳐 14개국 1백4개 박물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수집한 한국 유물관련 슬라이드 사진및 목록자료등을 토대로 모두 5권의 도록을 발간했다.86∼87년 미국 12개 박물관 조사를 토대로 89년 발간한 미국 1편을 비롯해 88∼90년 유럽 45개 박물관을 조사해 91년 펴낸 유럽편,91년 일본 10개 박물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92년 발간한 일본 1편,그리고 93년 일본 3개 박물관을 조사해 95년 내놓은 일본 2편이 앞서나온 것들. 이번 미국 2편은 인하대 김광언 교수(민속학)와 원광대 윤용이 교수(도자사),영남대 유홍준 교수(회화사)가 지난 95년 미국 5개 박물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로 호놀룰루미술관·시애틀박물관·시카고미술관·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한국의 회화·도자기·민속공예품 1천4백여점의 목록과 3백여점의 도판을 해설기사와 함께 실었다. 이 가운데 1927년 현재의 모습으로 문을 연 호놀룰루미술관은 기원전 3백년전 이집트 유물에서부터 1980년대 미국과 유럽 예술품까지 2만4천여점의 다양한 물품이 소장돼 있는 아시아 예술품의 보고.아시아 관계 예술품만도 1만2천점이 넘으며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의 유물은 미국내 어느 박물관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이곳의 한국 관계 도자기는 신라 백제 고려를 포함,전 시대에 걸쳐 수장돼 있고 특히 고려청자는 주목할만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이번 도록에는 이중 세폭의 「지장십왕도」를 비롯,18세기 화원풍과 민화풍이 섞인 「화조도」 등 회화와 중요학술자료로 인정받고 있는 「청자상감연당초문주자」,세계적으로 드문 상감청자인 「청자철화국화당초문매병」,조선시대 분청자 「분청자인화문 합천장흥고 명사이호」 등 1백53점을 실었다. 서양 중세시대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유물의 컬렉션으로 유명한 클리블랜드박물관은 약5만점의 유물을 고유 주제별로 각국간 연계성을 고려해 진열한 특성을 갖고 있다.한국유물은 아시아미술의 도자기·회화·불교미술실등에 중국·일본 유물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이 박물관이 구입한 유물의 80%를 한국유물이 차지할 정도로 우리 유물을 중시하고 있다.이번 도록에는 「석가여래도」 등 고려불화 명품 7점과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시대 화가 김제(김시)의 「한림제설도」,그리고 상감청자 「청자철채상감초문매병」 등 회화·도자기·민속공예품 1백8점이 실려있다. 전세계적으로 1백점 정도가 남아있는 고려불화가 일본에 80점,국내에 불과 10점정도가 보존돼 있음을 감안할때 클리블랜드가 소장한 7점은 큰 의미를 갖고있다고 볼 수 있다.또 김제의 「한림제설도」도 조선시대 회화중 임진왜란 이전 작품이 극히 드물고 작은 크기인데 비해 대작인데다 작품제작 내력이 확연히 새겨져있어 큰 가치를 지닌다. 이밖에 시카고미술관에서는 고려불화의 여풍이 있는 16세기 작품 「아미타여래도」와 18세기 작품인 「지장보살도」 등 회화·도자기 24점을 조사해 실었고 시애틀박물관에선 구한말 궁중 유품인 「매학도자수병풍」 등 22점을 수록했다.
  • 유홍준 교수 미술평론·산문집 동시 출간

    ◎「다시 현실과…」 「정직한 관객」 2편/“이론­실천 합일” 특유의 철학 담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2권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술평론가 유홍준씨(47·영남대교수)가 미술평론집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창작과 비평사)와 미술관련 산문집 「정직한 관객」(학고재)을 한꺼번에 펴냈다. 지난 3년여동안 문화유산답사회를 이끌며 「외도」를 해온 그가 미술평론서를 내기는 86년 평론집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열화당)을 출간한 지 꼭 10년만이다. 「다시 현실과…」가 미술전공자를 겨냥한 본격 미술평론집이라면 「정직한 관객」은 일반독자를 염두에 두고 씌어진 부담 없는 미술산문 모음집이다. 「다시 현실…」엔 『과거와 현재,이론과 실천이 합일을 이루는 총체적인 미술평론을 추구한다』는 저자의 비평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민중미술의 전개과정과 80∼90년대 미술계의 판도변화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며,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창조적 예술혼을 구현해온 이응로·박생광·변관식·오용길·김호득·김호석·장일순 등작가 7명의 작품세계를 고찰한다.또 중국의 민족해방운동과정에서 목판화운동이 문화운동으로 전개된 자취를 살피는 한편 북한미술의 전개양상을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다뤄 북한예술연구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관객」은 그가 10여년동안 일간지 등에 발표한 시평과 전시회 리뷰,작가론 등을 한데 모은 것.『하나의 미술작품 또는 미술현상은 단순히 미학적 감상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와 실존적 물음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저자의 독특한 미술론이 소상히 드러나 있다. 「분단의식 없는 통일그림」,「김환기 회고전­서정적 모더니즘의 진수」,「현대미술에서 휴머니즘의 문제」등 50편의 글이 실렸다. 『다양한 주제와 접근방식을 추구하는 젊은 평론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비평가는 제1의 정직한 관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김종면 기자〉
  • 주요 출판사가 스스로 뽑은 명품 138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사람의 아들」 등 추천/소설 32종에 시 4종… 문화작품이 주류 지난해에만 새로 나온 책이 2만7천여종에 이를 만큼 출판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막상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책은 많지 않다.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스스로 꼽는 「뛰어난 책」은 어떤 것들일까. 독서전문 주간지 「도서신문」은 최근 출판사 69곳으로부터 「우리 출판사의 명품」을 두가지씩 추천받아 모두 1백38종을 공개 했다.이 가운데는 소설이 32종(국내 19,외국 13)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비소설로 19종,시는 4종으로 문학작품이 단연 주류였다. 각 출판사가 추천한 도서를 보면 그 출판사가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먼저 창작과 비평사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2와 신경림 시집 「농무」를,문학과지성사는 최인훈의 「광장」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민음사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꼽았다.또 김영사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우주와 생명」을,고려원은 「먼 나라 이웃나라」(전6권),솔은 「토지」(16권)와 「김지하전집」(3권)을 각각 추천했다. 80년대 사회과학서 출판 붐을 주도한 출판사 중에서는 한길사가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3권)와 「한국사」(27권)를,지식산업사는 이면우의 「W이론을 만들자」와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6권),동녘은 「철학 에세이」와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내세웠다. 이밖에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까치) ▲피천득의 「수필」과 법정의 「무소유」(범우사) ▲요스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3권과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현암사) ▲「빛깔있는 책들」시리즈와 「명찰순례」3권(대원사)들이 각사가 자랑하는 명품이다.〈이용원 기자〉
  • 97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 구성

    오는 97년9월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될 제2회 광주비엔날레를 조직하고 이끌어 갈 전시자문위원과 조직위원회가 구성됐다. 광주광역시는 13일 광주비엔날레 제7차 재단이사회를 열고 제2회 대회 조직위원회 30명과 25명의 전시자문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조직위원과 전시자문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조직위원 유준상(위원장·미술평론가)김영순(””)김영재(””)김윤수(””)김홍희(””)유재길(””)유홍준(””)윤범모(””)이영철(””)이일(””)최민(””)강연균(서양화가)김종일(””)박상섭(””)오승윤(””)윤명로(””)이두식(””)황영성(””)이종상(한국화가)임병성(””)김행신(조각가)정윤태(””)김용태(문화기획가)김우창(영문학자)박영택(큐레이터)박정기(””)송재구(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이태호(미술사학자)한만섭(예총광주지회장)시의원 1명은 미정. 전시자문위원 강봉규(전 예총광주시지회장)국중효(목포대교수)김재형(호남대미술대학장)김정헌(서양화가)김종수(””)박석규(””)배동환(””)양영남(””)양인옥(””)임병규(””)정승주(””)조규일(””)최재창(””)김형수(한국화가)문장호(””)박행보(””)윤애근(””)이창주(””)김지하(시인)성완경(미술평론가)이규일(””)원동석(””)조태일(광주대예술대학장)최영훈(조선대미대학장)윤장현(광주YMCA 시정기지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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