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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홍준청장 고궁박물관 가이드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지난 15일 경복궁에서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 ‘갤러리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섰다. 유 청장은 이에 따라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실을 돌며 전시 유물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해설을 곁들이게 된다. 주말인 20일에도 오후 2시부터 관람객들을 상대로 왕실 유물의 정수(精髓)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 北대표단 8·15때 현충원참배

    北대표단 8·15때 현충원참배

    8·15 서울 민족대축전 기간에 김기남·임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당국 대표단과 민간 대표단 30여명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서 현충탑을 참배할 계획이라고 통일부가 12일 밝혔다. 북한 사람이 6·25전쟁의 국군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현충탑에는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지난 5일 8·15 민족대축전 행사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연락관 접촉에서 북측이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방문 의향을 전달하면서 의례 절차를 문의해 왔다.”면서 “정부는 민족의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해 9일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수용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북한의 현충원 방문 의향은 참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면서 “북측은 이와 관련한 어떤 사전 논의나 전제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참배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방문 날짜는 일정 조정 문제 때문에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현재로선 광복 60주년인 오는 14∼15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북측 대표단은 14∼17일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등지에서 치러지는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 민족 대축전’에 김기남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17명의 당국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우리 당국 대표단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단장)과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 유홍준 문화재청장외에 5개 부처 차관 등 22명으로 구성된다. 북측 민간과 당국 대표단은 14일 오전 10시와 10시15분쯤 각각 고려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데스크시각] 경천사 10층석탑과 8·15 유감/김성호 문화부장

    우리나라 최초의 대리석탑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이 10년간의 이전·복원 작업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개년 계획을 세워 의욕적으로 복원을 추진해와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정밀실측과 보존처리, 레이저를 사용한 오염물 제거,3차원 정밀 스캔작업을 통해 제모습을 찾은 것으로 과학적인 문화재 복원처리의 중요사례로 높이 살 만하다. 경천사 10측석탑이 복원됨에 따라 오는 10월28일 용산에 개관할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사업중 하나가 마무리됐다. 박물관측이 이 석탑을 8·15 광복절을 앞두고 공개한 데는 나름대로 숨은 뜻이 있어 보인다. 일제에 의해 밀반출됐다가 환수된 대표적인 ‘수난 문화재’의 원형복원이란 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석탑의 밀반출 사실을 폭로한 것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배설이었다.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에 의해 석탑이 해체되어 일본으로 밀반출된 사실을 ‘Korea Daily News’등에 폭로함으로써 국내 반환운동의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석탑은 1918년 반환돼 경복궁 회랑에 다시 들어섰지만 밀반출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돼 시멘트로 복원된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경천사 10층석탑이 외국 언론인의 관심과 민간 단체의 노력으로 반환됐다면 지난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의 남북한 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요청해 반환될 것으로 보이는 북관대첩비 역시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되돌려받는 일제 약탈 문화재의 전형이랄 수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때 함경도 경성·길주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왜군을 대파한 사실을 기념해 숙종35년에 세워진 전승기념비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가져간 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다. 북관대첩비의 성격상 국내 반환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은 미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우리 정부가 이 기념비의 반환을 놓고 보여준 방관적인 자세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경천사 10층석탑과 북관대첩비 말고도 일제에 의해 약탈된 우리 문화재는 부지기수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빼앗겨 일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줄잡아 3만∼4만 점에 달한다. 학계에서는 국보·보물급을 포함, 전세계에 유출된 문화재가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정부 소유로 돼있는 1321점을 반환했으나 이후 좀처럼 추가 반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는 단순히 물질적인 결정체에 머물지 않고 한 민족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제는 민족 말살과 탄압 차원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정책적으로 대거 훼손, 강탈해간 측면이 짙다. 그래서 민간 주도로 반환된 경천사 10층석탑의 제모습이 살아난 것과, 북관대첩비 송환에 쏠리는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8·15를 전후해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이런저런 행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광복절 당일인 15일에는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 서울시가 경복궁∼숭례문 구간에서 기념행사를 제각각 마련한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광복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자고 하는 취지야 탓할 바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또 문화재청은 통영시 해저터널의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존칭에서 유래한 ‘태합굴’(太閤堀)이란 가명칭을 붙여 빈축을 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서둘러 사과문을 내 새 명칭을 붙이겠다며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그 ‘잔인하다고 할 만큼의 무신경’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문화재의 수난은 민족의 수난이다. 일회성의 생색내기 행사보다는 수난받은 문화재, 아니 수난받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본질적인 노력에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8·15 광복절에는 경천사 10층석탑 복원과 북관대첩비 반환의 의미만이라도 곱씹어 볼 수 있었으면….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통영 태합굴’ 명칭예고 사과 문화재청, 새 명칭 붙이기로

    문화재청은 최근 근대문화유산 등록이 예고된 경남 통영시 ‘통영태합굴’과 관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존칭어에서 유래된 ‘태합’을 삭제하고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0일 ‘통영태합굴이란 가명칭으로 등록예고한 점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통해 “지난 7월11일 근대문화재유산 등록 예고를 하면서, 경남 통영시 ‘통영해저터널’을 ‘통영태합굴’이란 가(假)명칭을 사용한 데 대해 국민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통영해저터널 가명칭을 재검토하기 위해 11일 오후 5시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소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새 명칭을 제시할 예정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과학적 복원 새 모델

    과학적 복원 새 모델

    지난 10년간 자취를 감췄던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 석탑이 복원돼 오는 10월28일 개관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둥지를 틀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9일 박물관 으뜸홀 ‘역사의 길’에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천사 10층 석탑 복원 완공 기념행사’를 갖고, 최근 10년에 걸친 해체·복원작업을 마친 이 석탑을 일반에 공개했다. 1348년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에 처음 세워진 이 석탑은 대리석을 사용한 최초의 탑이다. 화려하고 섬세한 목조건축 조각들로 장식돼 미술·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그러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탑인 만큼 3차례나 이전하는 아픔을 겪는 등 역사적으로 수난을 당했다.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에 의해 일본에 밀반출되자 국내에서 반환운동이 전개됐고, 결국 1918년 되찾아 경복궁에 보관됐다.1959년 훼손된 부위를 시멘트로 복원한 뒤 1962년 국보로 지정됐지만 풍화작용과 산성비 등에 의해 훼손이 심해져 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0개년 계획으로 해체·보존처리가 시작됐다. 복원작업에 들어간 예산만 20억원. 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0년간 석탑에 대한 정밀실측과 복원도를 작성하고, 암질조사·약품 임상실험 등 보존처리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연구를 실시했다. 특히 레이저로 오염물을 제거하고 각 부재를 복원한 뒤 정밀실측과 3차원 레이저 정밀스캔, 명문각자 탁본 등도 실시하는 등 과학적인 문화재 복원처리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복원에 쓰인 석재는 탑의 기존 암석과 가장 비슷한 정선대리석이 사용됐다. 이와 함께 뒤바뀐 불화 도상들의 위치 수정, 상륜부의 원형복원 등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심부인 으뜸홀에 자리를 잡은 만큼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라면 천장까지 닿을 듯한 웅장한 10층 석탑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지난 한세기동안 풍파를 겪은 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경천사 10층 석탑이 영원히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李玖)씨의 영결식이 24일 서울 창덕궁 희정당에서 오전 10시에 열렸다. 고인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영친왕(英親王)의 왕세자로서 조선왕가의 마지막 적통이었다. 이날 영결식은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이환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세손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상주는 지난 22일 고인의 양자로 입적된 이원(李源)씨가 맡았다. 영결식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유홍준 청장, 주한일본대사, 박진·이낙연 등 현직 국회의원과 문중인사, 취재진 등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마침 창덕궁을 둘러보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번 행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해찬 총리등 1000여명 인파 몰려 또 조선왕조의 마지막 행사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인지 일부러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나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방학 숙제 주제로 잡고 이번 행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무더위 때문에 일부 관람객들은 쓰러지기도 해 119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영결식은 운구 운반→개식 선언→묵념→조악(弔樂) 연주→고인의 약력보고(이용규 장례부위원장)→인사(이환의 이사장)→식사(유홍준 청장)→조사 낭독(이해찬 총리)→유족과 조문객 분향→조악(弔樂) 연주→퇴회식 순서로 진행됐다. 이해찬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 저하의 훙서(薨逝)를 진심으로 애도하오며, 영령께서 사랑하시는 부왕(영친왕)과 모후(이방자)를 만나 현세에서 다하지 못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돈화문~종로3가~종묘 노제 영결식 뒤 운구 행렬은 창덕궁 돈화문과 종로 3가를 거쳐 종묘에 도착해 노제(路祭)를 지냈고, 노제 뒤에는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영친왕 묘역인 영원(英園)으로 옮겨 고인을 안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동안 종로3가는 교통이 통제됐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황세손의 마지막 길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왕손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휴일을 맞아 극장가에 나온 젊은이들은 행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무심코 지켜보기도 했다. 행사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반영하듯,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편에서는 군악대와 국군의장대, 캐딜락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취타대와 만장 행렬 등이 함께 했다. ●3년상위해 낙선재에 상청 설치 논의 9일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식은 고궁 내에서 치른 마지막 장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에라도 양자가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고인의 사망으로 조선왕실의 적통은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고인과 결혼했으나 ‘외국여자인 데다 후손도 없다.’는 이유로 강제 이혼당한 줄리아는 노제가 열린 종묘공원 맞은 편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장례는 고인의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1989년 장례절차를 기록해둔 ‘의민황태자비 장의록’에 따라 치러졌으며,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우제’는 낙선재에서 25일 열린다. 종약원측은 3년상을 위해 낙선재에 상청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계속 협의키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빈소 조문객 줄이어

    창덕궁 낙선재에 마련된 황세손 고 이구씨 빈소에는 21일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최규하 전 대통령, 이해찬 국무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 등이 보낸 조의화환이 놓였으며,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직접 빈소를 찾아 고인의 쓸쓸한 죽음을 애도했다. 이날 오후 2시쯤에는 본관이 전주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마친 이 전 총재는 장례위원들과 환담하며 “고인은 역사의 비극을 대표하는 분이었다. 외로운 말년이었음에도 돌아가신 뒤 장례위원들이 이렇게 애써 주셔서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이어 정동채 문화부 장관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정 장관 일행을 맞은 이환의 공동장례위원장은 “이번 일이 조선왕실의 마지막 행사인 만큼 낙선재에 상청을 설치해 아침·저녁으로 상식(喪食)을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에 대해 유 청장은 “상청 설치 등의 문제는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 이와는 별도로 24일 영결식에 이은 반차행사, 노제 등의 장례행사를 위해 8000여만원의 예산을 집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반인 조문 첫날인 이날 오전 빈소에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온 일본인 주부관광객 5명이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이들 중 시오자와라(30)는 “어제 관광안내원을 통해 대한제국 황세손의 별세 소식을 듣고 일부러 조문을 왔다.”며 “한·일 간의 슬픈 역사 때문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황세손 영결식은 24일 오전 10시 창덕궁 희정당에서 치러지며, 반차행렬과 노제 등 장례 절차를 마친 유해는 남양주시 금곡면 영친왕 묘역에 안장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조달청 “人事혁신 말로만” 볼멘소리

    ●`상급기관 외압´에 속수무책 인사혁신 선도 기관인 조달청도 힘센 상급 기관의 밀어내기(?)식 인사에는 속수무책. 조달청은 강원순 정책홍보본부장이 재경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발생한 빈 자리를 내부 인사가 채울 것으로 확신했으나 재경부 출신이 내정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자 허탈해 하는 분위기. 게다가 청내에 수년째 국장 보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부이사관 과장이 8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국제물자본부장 내정자가 재경부 부이사관 승진자로 파악되자 ‘인사폭력’이라며 강하게 반발. 조달청의 한 직원은 “혁신인사니, 발탁인사니 구호만 요란했지 상급 부서의 외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 섞인 목소리.●철도공사 임직원 “우리 열 받았어요.” 유전사업 의혹으로 호되게 당한 한국철도공사가 이철 사장 취임 이후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후끈. 우선 간부 600여명으로 변화그룹이 조직된데 이어 지난 15일에는 이 사장과 최연혜 부사장 등 임원급 25명이 참여한 혁신 워크숍을 통해 변화의지를 공표하자 크게 고무된 모습. 참석 인사들은 PT체조, 달걀세우기, 숯불 위 걷기 등 정신집중교육에 이어 9월로 예정된 조직개편을 놓고 새벽까지 난상토론을 벌이는 등 침체 벗기에 한마음. 이 과정에서 최 부사장이 발바닥을 데는 등 변신의 후유증(?)도 속출했다는 후문.●시인과 미술평론가의 아름다운 약속 시인인 조연환 산림청장과 미술평론가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산림보호와 문화재 보수를 위해 ‘철석 공조’를 다짐. 조·유 청장은 최근 문화재 보수 목재를 국산으로 공급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대전청사 최초로 기관간 업무협약을 체결. 앞서 이들은 지난해 가을 경북 울진군 소광리에 문화재 보수·복원용 금송 1111그루를 심고 150년간 벌목을 금하는 금송비도 건립.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skpark@seoul.co.kr
  • 비운의 황세손 日서 화장될 뻔…

    20일 오후 서울 창덕궁 낙선재. 멸망한 황실의 아픔을 온 몸으로 지켜본 한 사내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쓸쓸하게 숨진 고종 황제의 황세손 이구(李玖·1931∼2005)씨. 그는 영친왕(1897∼1970)과 일본 왕족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아들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적통이다. 뒤틀린 대한제국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은 이씨는 빈청(殯廳·빈소)이 마련된 낙선재에서는 외롭지 않았다.300여명의 전주 이씨 종친들이 그를 맞았다. 이날 낙선재 돌계단에서 그를 대신한 귀국 보고가 낭송되자 “저하, 드디어 오셨구려….”라는 울음섞인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월세 6개월 못내 호텔 전전…비운의 죽음 그의 일본 생활은 대한제국의 마지막처럼 찌들리고 초라했다. 이씨는 일본에서 거주했던 아파트의 월세를 6개월치나 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그는 외가의 도움으로 일본 왕궁이 보이는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 투숙해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목격한 호텔 종업원에 따르면 “유카다(일본 전통 홑옷)를 입은 채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 우측 45도 각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숨진 그의 품에서는 미국 여권이 나왔다. 이씨는 미국 MIT 유학 시절 미국 시민권을 딴 이중국적자였다. 이 때문에 이씨의 유해를 국내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에 사망 사실을 알리고 주민등록 증명서를 팩스로 받아 다시 주일 한국대사관에 제출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는 생전에 “나 같은 인생이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정부는 4∼5년전부터 생활비와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다달이 100만엔 정도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생활 형편이 썩 좋지 않았다.”는 전언이다.●일본 천왕 사절 조문 예정 이씨의 유해를 둘러싼 뒷얘기도 일부 공개됐다. 이환의 대동종약원 이사장은 “외가 친지인 나시모토가 밀장(密葬·비밀장례)을 한 뒤 화장을 하자고 제안해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영친왕을 끌고 간 것도 부족해 황세손마저 화장하고 숨기겠다는 것이냐.’고 항의했다.”면서 “일본측에 황세손으로서 예우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종약원은 조문하는 종친들에게 유해를 공개할 뜻을 내비쳤다. 이 이사장은 “일본 천왕 사절이 조문할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왕실에서 누가 올지는 모르지만 조선 황세손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국왕의 붕어(사망의 높임말) 수준에 맞게 예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사손(후계자)은 이미 내정, 의친왕 손자 유력 자녀없이 숨진 이씨의 대를 이을 사손(후사를 이을 양자)도 내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58년 미국 여성인 줄리아 여사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자 1982년 결국 헤어졌다. 이 때문에 종약원은 3∼4년전부터 이씨에게 수차례 사손 책정을 건의했고 이씨는 이에 따라 사손 후보자를 두세차례 만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황세손이 숨지기 1주일 전 문서로 후계자를 내정했고 사인을 했다.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 만큼 이사회를 통해 검토한 뒤 장례식인 24일 책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황제의 손자로 뉴욕대를 졸업한 뒤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친왕의 손자 이원(43)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9일장… 종묘서 노제 장례식은 9일장으로 24일 오전 10시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린다. 이환의 대동종약원 이사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종로4가 종묘 앞에서 노제를 거행하며 운구에는 600여명의 반차행렬이 뒤따를 전망이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고종황제릉) 뒤편의 영친왕 묘역이다. 김문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국왕이 사망했을 때 치러지는 국장(國葬) 절차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경주시 ‘역사·문화도시’로

    천년고도 경북 경주시가 새로운 ‘역사 문화도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경주시는 올해부터 오는 2034년까지 30년간 총사업비 3조 2798억원을 투입해 경주의 역사·문화·환경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보존·복원하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모두 4단계로 추진될 사업안에 따르면 ▲1단계(2005∼2009년)는 사업추진을 위한 기반 조성 및 착수 ▲2단계(2010∼2014년)는 역사문화 관광을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 ▲3단계(2015∼2024년)는 역사문화도시로서 정체성 확보 ▲4단계(2025∼2034년)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사업 추진 등으로 돼 있다. 경주시는 이에 따라 20일 보문단지에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 정부 고위 관계자와 이의근 경북도지사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의 예산 지원 방침 등을 포함한 사업 발표회를 가질 계획이다. 정 장관은 이날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에 대한 예산지원을 직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시는 이 사업 추진을 위해 우선 올해부터 2009년까지 ▲황룡사 및 월정교 복원 ▲역사도시 문화관 건립 ▲교촌 한옥마을 조성 등 신규 및 추진 중인 사업에 대한 기본계획을 확정,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日서 별세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씨가 지난 16일 별세했다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19일 밝혔다.74세. 대동종약원측은 이씨가 일본 나가사키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환의 이사장 등은 정확한 사인 규명과 시신 운구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씨는 고종황제의 왕자인 영친왕과 이방자(나미코토 마사코) 여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나 맏아들 진(晉)이 생후 8개월만에 사망해 사실상 이씨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이었다. 여기다 이씨 역시 자식이 없어 이씨의 사망으로 대한제국의 적통은 끊기고 말았다.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의 왕공귀족학교(王公貴族學校) 학습원 중등과 재학 때 해방을 맞았다. 고등과를 마저 마친 고인은 맥아더 장군의 도움으로 56년 미국 MIT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그 때 만난 미국 여인 줄리아나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갖지 못했다.이승만 대통령의 반감 때문에 63년에야 귀국,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지만 사업이 부도나면서 79년에 다시 일본으로 갔다.82년에는 대를 잇지 못했다는 종친들의 종용으로 아내와 이혼해야 했다.그 뒤 96년 영구 귀국했으나 다시 사업에 실패한 뒤 지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서 요양해 왔다. 장례는 이환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세손 장례위원회’가 주관해 9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빈청은 고인이 한국에서 있었을 때 머물렀던 창덕궁 낙선재에 마련했으며,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 뒤편 영친왕 묘역(영원 구역)에 마련할 계획이다.(02)765-212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인사 비로자나佛의 ‘미스터리’

    해인사 비로자나佛의 ‘미스터리’

    ‘각간 위홍과 진성여왕의 염문과 관련이 있다?’‘쌍둥이 목불은 아닐까?’‘1200여년간 여러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근 금칠을 새로하는 개금과정에서 현존 한국 최고의 목조불상으로 판명된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을 둘러싸고 갖가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이 불상이 목불의 역사를 고려시대에서 통일신라로 400년 이상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1200여년이 지났음에도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전문가들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현재 경남도 지방문화재 41호인 이 비로자나불상을 청장 직권으로 국보 지정을 요청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12일 밝혔다. 가장 큰 궁금증은 불상의 복장 내면에 씌어 있는 묵서명 내용이다. 명문은 왼쪽 14자, 오른쪽 17자가 두 줄로 씌어져 있다. 왼쪽 글자는 ‘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成’(중화삼년계묘차상하절칠금착성)으로, 중화3년(883년) 계묘년 여름 이 불상에 금칠을 해 완성했다.’는 뜻에 이견이 없다. 문제는 오른쪽 글자, 즉 ‘誓願大角干主燈身○彌右座妃主燈身○’(서원대각간주등신○미우좌비주등신○)이다. 신라의 고위 관직인 대각간과 좌비가 불상 조성에 기여했다고 추측할 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이와 관련 해인사박물관 전 학예실장 성공 스님은 “두 사람이 해인사 이전부터 있었던 원당암에 얽힌 설화에 관련된 각간 위홍과 진성여왕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한다. 숙질간인 두 사람은 당시 이성간 염문을 뿌린 것으로 전해내려온다. 또다른 궁금증은 법보전 비로자나불상이 해인사 대적광전의 목조불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점이다. 각종 크기는 물론 문양 등이 거의 같아 당시 한꺼번에 똑같은 불상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적광전 불상은 몇년 전 개금 과정에서 법보전 불상에서 발견된 명문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두 불상을 실사한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규모뿐만 아니라 옷주름, 비로자나불 특유의 지권인 등 모든 면에서 같아 두 불상이 세트로 제작된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적광전 불상의 경우 후대에 법보전 비로자나불상을 본떠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목조불상이 어떻게 1200여년 동안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공개 당시 불상 내부의 자귀 자국이나 묵서명의 상태가 매우 깨끗해 ‘혹시 조작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강우방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밀봉상태가 좋아 원형이 깨끗이 유지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차례의 화재를 어떻게 피했는지, 혹시 특수한 방화처리를 했는지 등도 궁금한 대목이다. 이같은 궁금증들은 면밀한 학술조사가 끝나봐야 어느 정도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는 오는 10월 관련 전문가들을 초빙, 학술 발표회를 가질 예정. 문화재청도 국보 지정 이전에 불상 재질이나, 묵서명 미판독 글자에 대한 적외선 촬영 등의 철저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우리 문화 배운 만큼 알려야죠”

    “우리 문화 배운 만큼 알려야죠”

    “우리 문화, 이제 아는 만큼 더 많이 알리겠습니다.” 주말인 지난 9일 충남 예산 수덕사에는 외교통상부 직원 35명이 찾았다. 이들은 해외에 나가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취지로 이틀 일정으로 충청남도에 있는 문화유산을 살펴봤다. 문화재청과 충남도청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특별 강사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부처님 미소가 우리 딸내미처럼 귀엽네” 감탄 연발 정부 부처를 통틀어 처음으로 열린 이번 탐사는 외교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우리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세계에 알려야 할 외교부 직원들이 다른 업무에 바빠 문화재를 제대로 본 적도 없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행사는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열린 유 청장의 강연으로 시작됐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로 유명한 유 청장은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문화에도 굴곡의 역사가 있는 법인데 항상 정치·외교사만 전면에 드러나고 문화사는 분리해서 다뤄지는 바람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좋은 문화와 예술은 공급자가 아니라 이를 보고 즐기는 소비자가 만드는 것이니만큼 고려 문신 김부식의 말처럼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우리 문화를 마음껏 느껴달라.”고 주문했다. 서울을 출발한 직원들은 가장 먼저 충남의 가야산 끝자락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찾았다. 커다란 화강암 재질의 암벽을 파내 부드러운 선을 부조(浮彫)로 표현한 불상을 본 직원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마애불이라는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일출과 일몰의 자연광을 대신 표현한 조명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본존불의 오묘한 미소를 보고서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귀엽다.”“이런 자애로운 표정은 처음 본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염라대왕 등 저승의 신들을 모셔 놓은 명부전으로 유명한 개심사와 천주교 순교성지인 해미읍성을 둘러본 직원들은 수덕사에서 선체조와 예불 등 산사체험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부처 요청 봇물 “탐사 규모 확대할 것” 이번 탐사는 충남 서북부 서산·예산·홍성·태안·당진·아산·보령 등을 아우르는 ‘내포(內浦)문화권’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높은 수준의 민중문화가 발달했는데도 양반문화 중심의 문화사에 가려 있었다. 외국 손님을 안내하거나 우리 문화를 해외에 소개할 때 기존 명소들보다 더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참신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답사지로 선택됐다. 외교부 김재범 본부대사는 “그동안 외국에 나가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은 욕심이 나도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많은 것을 공부하고 익혀서, 외국에서 우리 문화를 홍보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교류과 엄승용 과장은 “부처를 상대로 문화유산 탐사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현재 국무조정실 등 7개 부처에서 탐사 신청이 들어와 있다.”면서 “앞으로 좀더 규모를 확대해 더 알찬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창덕궁등 궁궐내 미지정문화재 조사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비롯한 조선궁궐과 왕릉 안에 소재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내년 12월까지 관계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 최근 일제조사를 통해 지정 검토대상으로 선정한 창덕궁 소재 뽕나무 등 33건에 대한 현지조사를 벌여 가치가 인정될 경우 심의 절차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우선 23일에는 창덕궁 소재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의 벽면에 그려진 대형 그림 6점에 대해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교수와 김윤수 문화재위원 등 회화 분야 전문가 5명이 나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이어 순차적으로 조선왕릉 내의 문·무인석과 혼유석 등 석조물과 정자각, 재실 등 목조건축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게 된다. 실제로 창덕궁 등 조선시대 궁궐과 능원에는 궁궐 등에 포함돼 포괄적으로 문화재로 인식되면서도 문화재 지정은 물론 일반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그림, 석조물 등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네티즌 또 ‘맹폭’ 문화재청 홈피 몸살

    ●창경궁 만찬사태 이어 북한노래 파문 문화재청 홈페이지가 또다시 네티즌들의 ‘맹폭’에 몸살. 6·15 통일대축전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식 행사장에서 북한영화 주제곡 ‘이름없는 영웅들’을 부른 사실이 알려진 지난 15일부터 분노와 항의 글이 쇄도. 지난 1일 세계신문협회의 창경궁 명정전 만찬사태와 관련, 부적절한 대응을 질타받은 지 10여일 만에 재연. 이번 파문은 유 청장이 지난 17일 사과문을 발표했음에도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의 글이 연일 도배되자 문화재청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흡연자들 “비라도 피할 수 있었으면…” 대전청사에 흡연 공무원들이 남모를 설움(?)을 호소. 대전청사에는 지하 1층과 건물 밖, 그리고 일부 짝수층에 흡연실이 있으나 10층 이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4층 옥외공간을 끽연장소로 애용. 그러나 흡연 공무원들은 날이 뜨거워지고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태산. 뙤약볕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늘이 전무한데다 재떨이마저 구석에 처박혀 있기 때문.A사무관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처지가 처량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죄인도 아닌데 약간의 배려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관세청, 대박의 꿈 35년 만에 첫 내부 청장을 배출한 관세청이 여세를 몰아 내심 대전청사 최초로 차장까지 내부 임명을 기대하는 분위기. 재경부의 인사적체 등 주변 여건상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김용덕 청장의 건교부 차관 발탁에 이은 성윤갑 차장의 승진으로 열기와 분위기 조성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 또한 차장 임명 후 이뤄질 인사 구도에도 직원들의 관심이 집중. 내부적으로는 행시 17회인 성 청장보다 고시 기수가 앞서는 국장들의 용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사설] 유홍준 문화재청장 너무 튄다

    평양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지난 14일 북측이 마련한 만찬회 석상에서 북한영화 주제가를 부른 사실이 공개됐다.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기려 남북간 화합을 다지자고 만난 자리에서 북한 인기가요를 불러 흥을 돋우겠다는 데 시비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노래가 과연 우리쪽 인사가 부르기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유 청장이 부른 노래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주제가로, 이 영화는 6·25전쟁 중 북한 첩보원들의 활약상을 강조한 시리즈물이라고 한다. 전쟁에는 적이 있기 마련이고 6·25에서 북한 인민군의 적은 국군 및 미군을 비롯한 유엔참전국 군대이다. 따라서 국군 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하는 북한영화의 주제가를 ‘적국’ 출신 정부대표단의 한 사람이 부른 것이다. 이 얼마나 해괴한 짓인가. 그렇다고 우리는 유 청장의 노래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민족의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그는 북한 방문이 거의 불가능하던 1990년대 말 한달동안 북한을 돌며 문화유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이날도 만찬 테이블에 동석한 북측 인사들과 당시 체험을 이야기하던 끝에 영화 주제가를 떠올렸고, 그들의 권유에 못 이겨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지 유 청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북이 화합·공조해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은 남·북 모두에 주어진 민족의 과제이다. 그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번번이 북쪽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크게 나무랄 것은 없다. 다만 모든 일에는 금도가 있는 법이다. 많은 이들에게 6·25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일부 인사들의 분별력 없는 행동이 남북관계를 저해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 유청장, 北영웅찬양가 뒤탈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등은 16일 평양 6·15 통일대축전 참석차 방북 중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날 남북 대표단 만찬에서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주제곡을 부른 것과 관련,“납득할 수 없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유 청장이 부른 노래는 6·25 때 남파간첩을 영웅으로 예찬하는 노래”라며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로서 북한 간첩 찬양가를 북한 고위층 앞에서 불러댄 저의가 도대체 뭐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자리에 따라 부를 노래가 있고 못 부를 노래가 있다.”면서 “남북 화해를 위한 자리에서 북측의 영웅은 물론 남측의 ‘구월산 호랑이’와 같은 영웅을 찬양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는데 남북 어느 일방의 영웅 찬양가를 부른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주제에 어긋한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채명신)도 성명을 내고 “유 청장이 북한 내각 총리 주최 만찬장에서 북한군의 전쟁 승리를 찬양하는 ‘이름없는 영웅들’을 부른 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주장했다. 조승진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유홍준 청장 만찬서 ‘北 전쟁영화 주제가’ 불러

    유홍준 청장 만찬서 ‘北 전쟁영화 주제가’ 불러

    지난 14일 북측 박봉주 내각 총리가 주최한 당국대표단 환영만찬 석상에서 남측 정부 대표로 참석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북측 영화 주제가를 불러 화제가 됐던 것으로 15일 뒤늦게 알려졌다. “남 모르는 들가에/남 모르게 피는 꽃/그대는 아시는가/이름없는 꽃∼”으로 시작되는 ‘이름없는 영웅들’이란 노래다. 이 노래는 한국전쟁 말기를 시대배경으로 29부의 대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주제가로 알려져 있다. 유 청장은 함께 만찬 테이블에 앉아있던 북측 관계자들과 영화·시 등 문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지난 1990년대 말 북한지역 문화유산 답사를 위해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이 노래가 북측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며 지난 추억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북측 김수학 보건상이 유 청장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유 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슬픈 멜로디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 박 총리가 “내각에서 일하기 전 이 영화제작에 간여했다.”며 인사를 전하자 유 청장은 “문화로 접근하면 남북이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화답했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 면담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북측 노동신문이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도 지방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이날 보도한 것과 관련,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지자 북측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에 머무르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하루만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남·북·해외 대표단은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민족통일대회를 갖고 ▲핵 전쟁 위험 제거 ▲6·15선언 발표 기념일 제정 등 5개항의 ‘민족통일선언’을 발표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6·15선언 이후 양측 당국이 갖는 첫 기념식으로, 이날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 당국대표단 공동행사’에서 “두달 후 서울에서 열리는 광복 60주년 기념행사에 남북 민간과 당국대표들이 대거 참석하기를 바란다.”며 북측 인사들의 서울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평양 6·15 행사에서의 남북대화를 적극 활용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 북핵문제와 남북관계가 조화롭게 진전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대표단은 남북 교류 활성화 차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부문별 교류행사를 실시했다. 특히 교육분야는 효순·미선양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 평양 모란봉제1중학교를 들렀다. 평양 공동취재단 서울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北대표단 예상밖 중량급 포진 6·15축전 ‘예우’

    北대표단 예상밖 중량급 포진 6·15축전 ‘예우’

    14∼17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6·15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남북 당국대표단에는 중량급 인사들로 포진돼 있다. 특히 남측 대표단장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에 김기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단장을 맡은 것으로 확인돼 북측이 행사의 격을 최대한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 비서와 당 중앙위원을 맡고 있는 김 부위원장은 1985년부터 당 선전선동부장과 1992년 당 중앙위 선전담당 비서를 거쳐 2001년 9월 교육 담당으로 옮기면서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가의 ‘혁명사적’ 관리를 담당하는 당 역사연구소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79세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모스크바 국제대학을 나왔다. ●“김기남 단장, 권호웅 참사보다 실세” 정부 당국자는 “상당히 지적인 인물”이라면서 “애초 단장에 예상됐던 권호웅 내각참사보다 훨씬 실세인 점으로 비춰 북측이 남측 대표단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이 북측 단장을 맡게 된 것은 북·미관계의 종속변수였던 남북관계를 무게 있게 풀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으로 여겨진다. 남측 대표단은 단장을 비롯해 외교안보부처 관계자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 9명이, 북측 대표단은 당국간회담 대표자급 17명으로 구성됐다. 남측에서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측 위원장인 점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남북 역사분야의 교류문제가 감안됐다는 후문이다. 북측에서는 권호웅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을 비롯해 최영건 경제협력추진위 북측 위원장, 김만길ㆍ신병철ㆍ전종수 장관급회담 대표 등이 나설 예정이다. 남측 6명과 북측 8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에는 남측에서 임동원ㆍ박재규ㆍ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등이, 북측에서 림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 김완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서기국장 등 거물급들이 총출동한다. ●김정일 면담여부 최대 관심 특히 남측 정부대표단은 오는 16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예방키로 했으며 연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남측 정부대표단의 숙소인 주암초대소는 고(故) 김일성 주석이 애용했던 곳이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정부 대표단은 14일 오후 3시 전세기 편으로 인천∼순안을 연결하는 서해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다.14일 개막식과 15일 민족통일대회,16일 폐막식 등 민간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백제 ‘금동신발·주인 발’ 영상 복원

    백제 ‘금동신발·주인 발’ 영상 복원

    2003년 12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고분군(사적 제460호)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동신발과 금동관모가 첨단의료장비인 3차원 CT(X선 컴퓨터 단층촬영)에 의해 영상으로 원형 복원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수촌리 출토 유물 중 금동신발 1켤레와 금동관모 1점을 서울대병원에서 CT촬영,3차원 영상편집을 실시한 결과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유물의 전체 형태뿐 아니라 문양과 제원, 사람 발뼈 모양 등을 컴퓨터 화면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정빈 교수와 영상의학과 홍성환 교수 등이 참석해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발표회에서는 부식 등으로 심각하게 훼손된 금동관모의 후면부와 내부 문양 구조 등이 또렷하게 복원됐다. 또 흙더미에 묻혀 전모를 확인할 수 없었던 금동신발도 복원 결과 문양은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처럼 T자형 투조무늬가 주종을 이뤘으며, 바닥은 용과 같은 동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발의 길이는 315.75㎜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금동신발 350㎜보다는 짧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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