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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해 임정요인 5인 유해/내일 화장·10일 고국안장

    ◎유족대표 오늘 현지로 5일 상오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봉환에 앞서 유족대표 5명이 유해화장을 위해 3일 상오 대한항공기편으로 현지로 출발한다. 유족대표는 박은식선생의 손자 박유철씨(55·건설공무원연수원장),노백린선생의 손자 노영훈씨(55),김인전선생의 외손자 최순성씨(64),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72·전대만 공사),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 이의석씨(72·해운회사중역)등 5명이며 국가보훈처에서는 하태석사무관등 2명이 함께 출국한다. 유족대표들은 3일 상오9시 대한항공편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4일 상오 상해 만국공묘안에 안치된 선열 5위의 유해발굴과 유해화장행사를 지켜볼 예정이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5일 상오9시30분 만국공묘에서 이충길보훈차장등 유해봉환단과 유족등이 참석한 가운데 천묘식을 가진뒤 하오2시 김포공항에 도착,제2청사 귀빈주차장에서 봉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봉영식을 마친 유해는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되며 10일 상오 국민제전으로 영결식을 갖고 임정요인묘역에 안장된다.
  • 임정요인 5위 해방 48년만에 고국에…

    ◎5일 환국… 준비상황·봉환성사 경위/국립묘지 성토·마무리작업 한창/영결식 10일 국민제전으로 거행/문민정부의 상해임시정부 법통계승 노력 결실 오는 5일 하오 광복 4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상해 임시정부 순국서열 5위 유해봉환을 위한 마무리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뒤편에는 오는 10월말 완공예정으로 임정요인묘역이 조성중이다.규모는 조성묘역 8백20평,예비묘역 3백30평,녹지및 조경지역 8백10평등 모두 1천9백60평으로 잔디심기 작업등이 진행되고 있다. 임정묘역 상단에는 수반급 7위의 묘역이 자리잡게 되며 그아래 3개계단에는 국무위원급 26위가 모셔진다.이번에 봉환되는 박은식선생은 맨 위 수반급 묘역 중앙에,국무위원급인 노백린·신규식·김인전선생은 바로 아래 중앙에 각각 유택이 마련됐다.국무위원급이 아닌 안태국선생은 묘역 아래쪽 애국지사 묘역에 따로 안장된다.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요인 유해봉환을 임시정부의 법통계승및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인에 있다고 보고 두달여동안 「대한민국 선열5위 봉환국민제전위원회」를 위시해 국민제전추진위원회·국민제전집행위원회등을 구성,봉환을 준비해왔다. 유해봉환에 앞서 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는 봉환단·유족·현지동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묘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이를 위해 이충길보훈처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봉환단 60여명이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5일 상오 현지로 출발한다. 천묘식은 한·중양측이 이미 합의한대로 한국식의 제단과 현판,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의 화환이 놓여진채 우리측 의식으로 30여분간 진행된다. 선열 5위의 유해는 화장된 뒤 국내에서 특수제작한 직경 30㎝ 높이 30㎝크기의 백자도자기 항아리인 「옥함」에 넣어져 오동나무곽에 봉안된다. 유해는 4일 하오 지난4월13일 복원된 임시정부 청사터앞 마당로에서 노제를 지내고 청사안을 한바퀴 돌아 만국공묘관리처에 임시 안치된다. ○한국의식으로 봉환 천묘식이 끝난 직후 옥함에 모셔진 유해는 당일 상오11시30분 상해공항을 출발,하오1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하며 하오2시부터 공항 귀빈주차장에서박은식선생의 손자인 박유철씨등 유족 대표와 제전위원,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이 열린다.봉환행사를 마친 유해는 김포공항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20여대의 긴 차량행렬로 운구돼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져 제전위원장인 황인성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각계 대표등의 헌화와 분향을 받게된다.봉환된 유해는 오는 10일 상오7시30분까지 공무원·시민·학생등 일반조객의 참배를 받으며 영결식은 같은날 상오10시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인사·외교사절·시민등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 수준인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이어 유해는 낮12시쯤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묻힌다. 이번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하게 된데는 군사통치 30년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의 상해 임시정부 법통승계 노력이 컸다. ○화장뒤 옥함에 모셔 김대통령은 지난 5월27일 방한한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만국공묘안에 있는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 5위의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헌법전문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고 또 본인의 취임사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으나 양국관계가 성숙되지 못해 지금까지 이분들의 유해를 봉환하지 못했다』면서 중국정부의 협조를 촉구했다.중국정부는 지난 6월3일 공식으로 임정선열 5위의 유해봉환을 수락해왔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선열 5위 봉환 국민제전계획을 최종확정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임정요인들의 유해봉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지난해 8월 한·중수교로 봉환의 길이 열렸다. ▷유해봉환 추진일지◁ ▲5.27=김영삼대통령,방한중인 전기침중국외교부장에게 유해봉환을 제의 ▲6.3=중국정부,유해봉환수락 ▲6.23=국무회의에서 임정 선열5위봉환 국민제전계획 확정 ▲6.29∼7.3=유해봉환 실무협의반 파견,이장절차와 의식관계등 합의 ▲8.5=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 한국식으로 천묘행사 거행.김포공항서 유해봉영행사,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 ▲8.5∼9=일반인 참배및 분향 ▲8.10=영결식및 유해안장 ▷임정 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때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한 3·1운동의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 상해에서 탄생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에따라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4월23일에는 서울에서 한성정부가 각각 탄생했다가 9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된다.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원칙으로한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정부로 출범했다. 임정은 미·영·중·소·프랑스등 여러나라와 외교교섭을 벌이면서 정부로 승인받기위해 노력했고 상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치하고 무관생을 양성,청산리전투등에 병력을 파견했다.또 박달학원·인성학교등을 설치해 근대교육제도 마련에도 노력했다.기관지로 독립신문을 1925년까지 격일제로 발행했다. 지도체제는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25년),국무위원중심의 집단지도체제(27년),주석지도제(40년),주석·부주석지도제등으로 바뀌었다. 역대 수반은 1∼5대 이승만,6대 박은식,7대 이상용,8대 홍진,9대 김구,10대 이동령,11대 안병조,12대 양기탁,13∼14대 이동령,15∼18대 김구등이다.
  • 유해봉환 선열 유족/황 총리,초청 환담

    황인성국무총리는 30일 박은식 상해임시정부대통령등 다음달 중국으로부터 유해가 봉환될 예정인 상해임정 순국선열 5위의 유족들을 공관으로 초청,만찬을 함께하며 환담했다. 이날 만찬에는 박임정대통령의 손자 박유철씨와 신규식임정국무총리 외손자 민영수씨,노백린임정국무총리 손자 노영훈씨,김인전임정 의정원의장 외손자 최순성씨,안태국선생의 손녀 안효실씨등이 참석했다.
  • 친일미국인 스티븐슨 저격/전명운의사 유해 봉환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지난 1908년 발생한 친일파 미국 정치인 스티븐슨 저격사건의 주인공으로 애국지사 1호인 전명운의사(1884∼1947)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만에 LA의 묘소를 떠나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12일 LA총영사관에 따르면 정부가 95년 광복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해외독립유공자 유해봉환사업에 따라 총영사관이 유족들과 협의,전의사의 유해송환계획을 이미 통보했으며 정부의 이장시기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의사는 『일본의 한국통치는 한국국민들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한 당시의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1908년3월23일 샌프란시스코의 페리정거장에서 저격했으나 불발로 그치고 뒤이어 장인환의사가 스티븐슨을 저격했다. 전의사는 97일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뒤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살다 1929년 LA로 이주,1947년 63세를 일기로 숨졌으며 이스트LA 갈보리 천주교묘원에 안장돼왔다.
  • 임정선열 유해5위 봉환/국민장수준 거행

    ◎중과 협의 마쳐… 새달5일 운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봉환을 위한 한·중간의 실무협의가 끝나 봉환에 따른 국민적 행사가 예정대로 치러지게 됐다. 보훈처의 유해봉환실무협의반(반장 장귀호보상지원국장)은 3일 하오 중국측과의 협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한·중 양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상해에서 유해봉환협의를 벌여 유해는 화장후 봉환하며 천묘행사는 유해가 있던 만국공원내에서 한국측 의식으로 거행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이와 함께 ▲제단및 현판은 한국측 요구대로 제작,설치 ▲천묘행사시 태극기게양 ▲김영삼대통령등 3부요인 화환근정 ▲전세기 출입국절차및 교통편의 제공등에도 합의했다. 이에따라 박은식(임정 국무총리·2대 대통령)선생등 임정 유해 5위는 계획대로 다음달 5일 전세기편으로 운구, 봉환된 뒤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모셔져 5일동안 일반인들의 분향을 받게 되며 영결식은 10일 상오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수준의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
  • “임정역사 재조명”/김 대통령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백범 김구선생 서거 44주 기일인 26일 상오 서울효창공원에 있는 백범묘소를 참배하고 장충식 백범기념사업회회장과 유족대표 김신씨(백범 차남)등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 전수석비서관들과 함께 백범묘소를 참배한 김대통령은 『일제의 암울했던 시절에 독립정부를 세우고 이끄신 선생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산지도자이며 우리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나아갈 길을 밝혀주신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김대통령은 수행한 이병대보훈처장에게 『상해 만국공묘에 있는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봉환을 계기로 상해 임정이 문민정부의 뿌리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임정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재조명 작업도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 “정부·언론 오보 최소화 공동 노력 절실”/국무회의:23일

    ◎전시 양곡 강제수매안 “현실성 없다” 이 부총리 이의 93을지연습과 맞물려 예정보다 하루 빠른 23일 소집된 제30회 국무회의는 전시비상계획에 대한 각 국무위원들의 심도있는 논의로 3시간동안 진행됐다. 특히 의안심의에 앞서 열린 제2차 비상국무회의에는 진지한 분위기속에 2시간남짓 진행돼 을지연습비상국무회의사상 최장시간을 기록했다. 공보처와 법제처등 4개부처의 개혁과제 진행상황및 자체사정에 대한 보고는 이에따라 다음 회기로 순연됐다. 이날 국무회의는 대통령령안 3건과 일반안건 5건을 처리했다. ○전시대책 신중 토론 ○…지난 21일에 이어 2차로 열린 비상국무회의는 형식에 그쳐왔던 과거와 달리 전시에 대비한 각종 대책의 시행상 문제점등을 검토하고 수정안을 마련하는등 심도있게 진행. 특히 전시에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양곡을 정부가 강제수매토록 돼있는 전시양곡관리대책에 대해 이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이의를 제기. 이부총리는 『정부보유물량이나 국민의식수준으로 볼때 양곡강제수매는 비현실적』이라며 『자유시장원리는 유지하되 사재기등을 방지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내무·재무·공보처장관등의 호응을 받았다. 각 국무위원들의 지적과 의견제시가 잇따르자 회의를 주재한 황인성총리도 『깊은 통찰력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각 국무위원들의 자세에 감사한다』고 격려하고 『각 부처는 보다 심도있는 전시대책을 마련하라』고 당부. ○…중앙일보 오보사건과 관련해 오린환공보처장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언론에서도 오보의 심각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언론뿐 아니라 정부도 오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 이에대해 황총리도 『국무위원이 언론인을 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각 부처는 국민에게 알릴 사항은 적극적으로 공개해 이같은 오보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개혁상황 성실 보고” ○…다음달 2일 열리는 임시국회와 관련해 김덕용정무1장관은 『이번 회기에 처리할 법안은 국회가 충분히심의할 수 있도록 미리 제출해 달라』고 당부. 이에대해 황총리도 『각 국무위원은 소관부처의 개혁정책및 추진상황을 성실히 국회에 보고,언론을 통해 국민이 소상히 알도록 노력하라』고 지시. 한편 국무회의 심의안건이 아닌 상해 임시정부유해봉환계획은 영결식이 열리는 8월10일 전국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등 국민장에 준하는 행사로 치르기로 함에따라 의안으로 상정해 처리. ▷의결안건◁ ◇대통령령안 ▲경찰공무원 승진임용규정 개정안 ▲대외무역법시행령 개정안 ▲국가기술자격법시행령 개정안
  • 임정요인 유해 5위/봉환추진위 첫 회의

    정부는 17일 중국 상해에 묻혀있는 박은식 노백린 김인전 신규식 안태국등 순국선열 5인의 유해를 광복절인 오는 8월15일까지 봉환,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황인성국무총리 주재로 상해임시정부 선열5위 유해봉환추진위원회 첫회의를 열어 이같이 정하고 이를 위해 이달말 외무부·보훈처등 관계부처 실무자와 광복회및 유족대표로 구성된 실무협의단을 중국에 파견키로 했다.
  • 임정요인 5위의 환국을 반기며/최창규 독립기념관장(일요일 아침에)

    ○마음속의 참조국 호국은 나라가 어려울때 던지는 생명이요 순국은 나라가 무너졌을때 바치는 희생이다.바로 이 희생을 통하여 어려운 나라도 지켜지고 무너진 나라도 다시 살아나게되니 이같은 희생은 희생이 아니라 그대로 오늘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참 조국이다.살아있는 조국은 소중하기에 겨레는 가슴마다에 그것을 담고 받드니 여기서 조국은 다시 나의 마음속에 직접 살아있는 나의 조국으로 피어오른다.바로 보훈의 정성으로 되살아나는 혼으로서의 나의 조국이다. 이같이 소중한 살아있는 이 조국은 지금 우리들앞에 무엇이 있어 다리 놓아줄까? 그 실체가 바로 저 순국선렬·호국영령이라는 별빛같은 님들이시다.따라서 그 님들이 안계셨다면 오늘의 이 조국은 지금 여기 있을수 없다. 본래 님과 만나지 못하는 주인은 허전하기에 호국의 영령들과 만날수 없는 민주은 그래서 무력할수 밖에 없고,다시 님과 영원히 헤어진 생명은 살아갈수 없기에 순국하신 님의 혼과 만나지 못하는 주체의 생명은 끝내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점은 민족의 분단으로 주체의 생명이 반신불수가 되었고 겨레의 삶에 또한 이산의 고통으로 한없이 흐트러진 오늘의 이 민족사의 현실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민족정기로 살아 님들이 역사의 등단앞에 붉은 피를 뿌렸을때 그 붉은 피는 민족정기로 치솟으면서 반드시 푸른빛으로 변한다.바로 민충정공의 혈죽과 같이 푸른피(벽혈)로 상징되는 이 민족의 정기이다.민족의 정기가 이처럼 푸른피로 치솟을때 거기에는 이미 목숨을 던지며 님들께서 불러일으킨 붉은 마음(단심)이 뜨겁게 함께 살아있다.그렇기에 이 호국·보훈의 달,님들의 그 붉은 마음과 푸른피가 만나 민족사의 하늘을 홍청조화로 아름답게 수놓으니 그대로 님들의 민족정기로하여 떠오르고 있는 우리들의 살아있는 태극기 바로 그것이다. 조국앞에 던져진 생명은 죽은뒤에서 혼과 백으로 갈라진다.이때 혼은 조국의 하늘위로 날고 백은 조국의 땅속으로 묻힌다.이를 박은식선생은 혈사속에서 국혼과 국백으로 강조하였다.즉 국백으로서의 역사의 힘이 일시 약하여 지금 망국의 패배를 당하였지만 국혼으로서의 정기는 우리들이 훨씬 우월하기에 민주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실 광복론 그것이었다. 이같은 확실광복론을 따라 이 보훈의 달 우리들에게는 분명하게 들려온 뜻깊은 소식이 하나 있다.바로 저 상해땅 만국공묘에 이제껏 외롭게 잠들어 있던 우리 애국지사 오위의 유해가 금년 광복절을 전후하여 고국으로 돌아오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정확히 광복48년만의 일이니 그 영명은 박은식·노백린·신규식·김인전·안태국님들….실로 눈물겹도록 반갑고도 흐뭇하다. ○완전광복의 길로 이제 오위 애국지사의 유해가 이땅에 봉환될때 그님들은 분명 이 민족사 완전광복의 소식을 함께 안고 여기 돌아오신다. 즉 분단이란 불완전한 광복때문에 이제껏 돌아오시지 못한 님들이라면 이제 그님들이 돌아오실때 그것은 가장 확실한 이 민족사 완전광복의 소식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박은식선생은 님의 혈사속에서 강조한 국혼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이나라 국혼이 되어 우리의 완전광복을 증언할 것이고 신규식선생도 저서로서의 「한국의 혼」이 아니라 이제 님이 직접 그 한국의혼이 되어 완전광복이 기뻐서 이제껏 흘겨오던 그 예관(님의 호)의 눈을 번쩍 바르게 뜨실 것이다. 이제 본국으로 봉환되는 님들의 유해는 곧 국립묘지로 안장된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해,즉 국백에 대한 보훈일뿐이다.여기서 님들의 국혼(영령)에 대한 보훈은 마땅히 겨레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에서 잘 받들어야만 한다.그래서 님들의 국혼과 국백이 조국의 품안에서 하나로 만나 완전광복의 새 생명으로 피어오르도록 하여야만 한다. 여기서 이 조국 대한에 독립기념관이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완전광복으로 가고 있는 이 민족사를 웅변한다.그동안 오위유해의 환국이 늦어진데에는 솔직히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었던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오늘에 성사된 이 오위의 유해봉환이 끝내 저 북한을 패자로 만들며 우리들 대한만의 승리이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길은 한마디로 통일이라는 완전광복의 승리하나 뿐이다.한마디로 통일의 승리를 거두는 그날 여기 모셔진 오위의 영령들은 단순히 남쪽 대한땅에만 모셔진 님들이 아니라 그대로 하나로 통일된 이 조국속에 분명히 함께 계시게되기 때문이다.
  • 이병태처장에 듣는 국가보훈대책/대담=김종일사회부장(국정탐방)

    ◎“범국민적 보훈의식 고취에 최선”/숭고한 애국정신 예우받는 풍토 조성/명예·긍지 갖도록 연중 각종행사 추진/정부수립후 최초로 17만명에 대통령명의 「유공자 증서」 수여 문민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은 이병대국가보훈처장은 요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17만 국가유공자들에게는 명예를 갖고 여생을 보내도록 하고 국민들에게는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심어주기 위해 각종행사에 참석하느라 공휴일도 없다. ○민족 정기 되살아나 이처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나라사랑에 대한 참뜻을 깨닫고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면서 『보훈의식의 범국민적 확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처장은 모든 국민들이 참다운 보훈의식을 가질때 민족의 정기는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부 출범후 첫번째 맞는 올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의미가 새롭고 각별하다고 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국민들에게 보훈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범국민적 행사를 추진코자 합니다.오늘날 우리가 번영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그 바탕이 된 것입니다.문민정부 출범이후 처음 맞는 호국보훈의 달에 정부수립후 최초로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 17만4천8백86명에게 대통령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해 긍지를 고취시키고 국민들로부터 진실로 예우받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한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이 혼돈돼 가는 상황입니다.이럴 때일수록 국가유공자에 대한 이미지제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이에대한 방안은 있으신지요. ▲먼저 국가유공자들을 예우하는 국민적 풍토가 조성돼야 할줄 압니다.정부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추앙의 뜻으로 국경일·기념일등 중요 행사시에 「의전상의 예우」를 하고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공훈과 희생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사망시에는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하고 비석및 묘지단장을 지원하며 공헌과 희생의 정도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등의 예우를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무엇보다 보훈이념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국민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이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해나갈 방침입니다° ­최근 각 기업에서 국가유공자 법정의무고용기준을 잘 지키지 않는등 대우가 소홀한듯한 인상인데 현황은 어떤지요. ○독립운동가들 포상 ▲그동안 기업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매년 1만여명의 보훈대상자들을 고용,올 4월말 현재 모두 7만7천9백60명이 취업하고 있습니다.취업자의 80%정도가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사무직등 우수직종에 취업을 알선하려는 보훈처와 생산·기능직종 취업을 요망하는 기업체측과 직종협의시 다소 마찰을 일으키는 사례는 있으나 기업채용의무고용인원이 18만여명이 남아있고 매년 취업을 희망하는 보훈대상자가 1만2천명 수준이어서 보훈가족 취업알선에는 문제가 없습니다.지난 5월1일부터는 기업의 고용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제조업체에 대한 의무고용기준을 대폭 완화시켰습니다.의무고용 제조업체를 종업원 16인이상업체에서 50인이상업체로 상향조정하고 제조업체의 고용비율을 5∼8%에서 4∼7%로 1%포인트 줄였습니다. 앞으로 전문대졸이상 고학력자에 대해서는 우수한 업체에 자력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채용시험가점(10%)취업을 적극 권장해 나가겠습니다. ­국가유공자들의 명예와 긍지를 높여주기 위한 행사가 연중 기획·추진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호국보훈의 달에만 하는 형식적인 행사에서 탈피,실질적인 행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만. ▲국가유공자들의 긍지를 높여준다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나 긍지를 높이기위한 행사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범국민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사회단체등에서도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올 8·15 광복절에 상해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돌아오는데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중국 상해 송경령능원에는 임시정부에서 활약하셨던 박은식 노백린선생등 5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이분들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계승한 정부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헌법전문에 명시된 헌법정신을 더욱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중국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시 유해봉환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실무차원의 협의가 남아있습니다.유족·광복회등 관계기관과 협의,세부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해외순국선열들의 유해봉환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의 전망은. ○유해 봉환사업 추진 ▲해외에 안장된 순국선열의 유해봉환사업은 46년부터 계속돼 온 사업으로서 그동안 13회에 걸쳐 23위의 유해를 봉환해 왔습니다.이번에 임시정부 5인의 요인 유해 봉환계획을 계기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해봉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가고 있습니다.앞으로도 러시아와 동남아시아등 해외에 안장된 유해가 확인되는대로 관계국과협의,봉환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오는 95년 2만여명의 국내외 독립유공자를 발굴,포상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유공자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심사했던 방법을 개선,정부에서 직접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독립운동가를 발굴 포상할 계획입니다.특히 중국·러시아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를 중점 발굴할 계획입니다.전체 포상심사대상 인원은 약2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올 광복절에는 3백명을 포상할 방침으로 심사중에 있습니다. ­친일 행적이 있는 유공자와 공적내용이 허위라는 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독립유공자의 공적내용 재심사에 착수,서훈취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4·19정신을 재조명 ▲현재 친일형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고 있습니다.친일기록에 대한 각종 원전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있으며 수집된 자료에 친일행위가 확인될 경우 이해관계자들에게 소명기회를 줄 예정입니다.그 결과를 별도 구성된 재심사위원회에 넘겨 신중하게 심의,오류가 없도록 철저를 기하겠습니다.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 4·19에는 김영삼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4·19묘역을 참배하고 4·19의 역사적 재평가를 지시한 바 있는데 어떻게 진전되고 있습니까. ▲4·19정신을 재조명하고 그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해 오는 7월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 근세사 전공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4·19 설명회와 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재정립된 4·19정신을 중·고교 교과서 등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습니다.
  • 임정법통 계승 추진/요인 유해봉환 계기로/정부

    정부는 4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도록 한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뜻에 따라 앞으로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법통을 확립하기 위한 각종 시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이에따라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계기로 상해 만국공원 묘지에 안치된 신규식 박은식 노백린 김인전 안태국씨등 임시정부 총리급인사 5인의 유해를 봉환받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등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한편 교육적 차원에서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가기 위한 시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김대통령은 이와관련,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피를 흘리신 선열들의 유해를 모시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살리는 뜻깊은 일일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선열들의 뜻을 기리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큰 만큼 이들 선열들의 유해 봉환및 안장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이에앞서 중국정부는 지난 27일 방한한 전기침외교부장이 김대통령에게 약속한대로 5인의 유해를 7월말까지 봉환해줄 수있다는 입장을 3일 우리측에 공식통보해 왔다고 이대변인이 전했다.
  • 「사회주의인사」도 독립유공 포상/95년까지 광복공헌 2만명 발굴

    ◎보훈처 업무보고 이병대국가보훈처장은 2일 광복 50주년이 되는 오는 95년 사회주의계열인사를 포함한 2만여명의 국내외 독립유공자를 정부주도로 새로 발굴,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보훈처장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93년도 국가보훈처주요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앞으로 중국,러시아 등지에 있는 독립운동사료를 바탕으로 숨은 독립유공자를 적극 발굴하고 해외순국선열들의 유해봉환작업을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처장은 이어 국가유공자의 긍지를 높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증서를 제작,호국보훈의 달인 오는 6월에 수여하는 한편 국가유공자가운데 보훈기준에 미달돼 있는 건국포장및 대통령표창자를 별도로 예우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처장은 이와함께 제조업체의 경쟁력제고와 부담경감을 위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법정의무 고용기준을 크게 완화, 법정고용 대상업체를 16인이상에서 50인이상업체로 상향 조정하고 의무고용비율도 현재의 5∼9%에서 1%가량 낮추기로 했으며 지난 3월10일 공포된 「고엽제 후유증환자 진료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조속히 마련,늦어도 5월부터는 고엽제피해자들이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보고 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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