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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 경축사] 이 대통령 “이념·진영 탈피해 연대·상생 정치 만들어가자”

    [8·15 경축사] 이 대통령 “이념·진영 탈피해 연대·상생 정치 만들어가자”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분단 체제는 국토를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장벽이 되어 우리 국민들을 갈라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은 분단을 빌미 삼아 끝없이 국민을 편 가르며 국론을 분열시켰다”며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민주권을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의 참화 속으로 우리 국민을 몰아넣으려는 무도한 시도마저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우리 안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그래야 선조들이 바라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80년간 우리가 얻은 뼈저린 교훈”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작은 차이를 넘어 더 큰 하나로 뭉쳐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목숨 바쳐 독립을 쟁취해 낸 것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산업화를 이뤄낸 것도, 금 모으기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것도, 그리고 무장병력을 동원한 내란에서 헌정질서를 지켜낸 것도 바로 우리 국민이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우리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정치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치가 사익이 아닌 공익 추구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끝낼 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갈등과 혐오의 장벽도 비로소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애국지사,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도 강조했다. 그는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리고, 독립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며 “모두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외면한다면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과연 누가 공동체를 위해 나서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독립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국민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생존 애국지사분들께 각별한 예우를 다하고, 독립유공자 유족의 보상 범위도 더 넓히겠다”며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을 더욱 적극 추진하고, 서훈을 받지 못한 미서훈 독립유공자들을 찾아내어 모두가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안중근 의사 조카’ 안원생 지사 묘소 美서 발견

    ‘안중근 의사 조카’ 안원생 지사 묘소 美서 발견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원생 지사의 묘소가 미국 애리조나주 선랜드 메모리얼 파크에서 발견됐다고 국가보훈부가 3일 밝혔다. 사망 43년 만으로 국가보훈부는 유족 확인 및 협의를 거쳐 유해의 국내 봉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안 지사는 안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의 장남으로 태어나 임시정부에서 외무부 선전위원, 선전부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안 지사의 공훈을 기리고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안 지사의 묘소는 국가보훈부가 지난해 말 미국 서남부 지역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처음 확인했다. 외교문서 등을 분석해 1940년대 안 지사의 영문명이 ‘David An’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내용 등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선랜드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David W. S. Ahn’의 묘소가 안 지사의 것임을 최종 확인했다. 안 지사는 1952년 미국으로 이민해 뉴욕 및 워싱턴DC 등에서 거주한 후 1982년 4월 애리조나주 선 시티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던 안원생 지사님의 묘소를 찾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또한 강영승 지사 등 그간 소재가 불분명한 독립유공자 묘소 29기도 신규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후손 확인과 협의 등을 통해 유해봉환 또는 현지 관리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대한민국은 아버지의 일부였고, 유산이 되었다”...한국전 참전용사 캐나다인 크라이슬러씨 유엔기념공원에 영면

    “대한민국은 아버지의 일부였고, 유산이 되었다”...한국전 참전용사 캐나다인 크라이슬러씨 유엔기념공원에 영면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숨진 14개 나라 영웅들이 영면하고 있는 곳, 세계에서 유일한 연합군 공동묘지인 유엔기념공원 참전용사 묘역에서 22일 오전 11시 또한명이 참전용사가 영면에 들었다. 안장식의 주인공은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William John CHRYSLER) 씨. 1930년 5월 4일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12월 16일부터 1951년 11월 15일까지 한국에서 복무했고, 지난해 11월 24일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이날 안장식에는유가족과 타마라 모휘니 주한캐나다대사,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 등 50여명이 참석해 영면에 든 고인을 기렸다. 20살의 나이에 참전한 그는 가평전투 등에서 활약했고, 특히 가평전투 직후 다친 동료를 부축하면서 이동하는 생전 고인의 빛바랜 사진은 6·25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진이 찍혀 언론에 보도되자 “고향의 어머니가 놀랄까 걱정이 되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해봉환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고인의 배우자 경자 크라이슬러(70)씨는 “남편에게 대한민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50년대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70년대에는 한국으로 파견근무를 와 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하나 뿐인 아들과 손자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편이 원하던 대로 대한민국 땅에 안장되어 기쁜 마음”이라고 전했다. 한국에 살고있는 고인의 아들 그레고리씨는 “아버지는 직업의식이 투철해 맡은 일은 항상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수행했다”면서 “고집이 세고 자존심도 강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또 이렇게 표현했다. “대한민국은 아버지의 일부였고, 그의 유산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고인은 생전 전쟁영화를 보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일하며 맺은 인연들과 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마주하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들이 보내준 존경과 감사는 그가 치른 희생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의미 있는 보답이 되었다. 유가족들은 고인이 생전 원했던 대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 수 있는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눈시울을 적셨다.했다. 다. 고인의 안장으로 유엔기념공원에는 총 14개국 2,331명의 유엔군이 잠들게 되었다.
  • ‘압록강은 흐른다’ 저자 ‘이미륵’…이의경 지사 유해 105년 만에 고국 돌아온다

    ‘압록강은 흐른다’ 저자 ‘이미륵’…이의경 지사 유해 105년 만에 고국 돌아온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이자 ‘이미륵’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독립유공자 이의경(애족장) 지사의 유해가 1919년 조국을 떠난 지 10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이 지사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그해 5월 독립외교 활동을 위해 꾸려진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서 편집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어 8월 만세시위 때 사용된 ‘경술국치 경고문’ 등의 선전물 인쇄를 담당해 일제의 수배 대상에 오르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일을 도왔다. 1920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간 이 지사는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의학을, 뮌헨대학에서 철학과 동물학을 공부했다. 1927년 독일 뮌헨대학 재학 중 벨기에에서 개최된 ‘세계피압박민족결의대회’에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해 ‘한국의 문제’라는 소책자의 초안을 작성하고 결의문을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 조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1928년 이 지사가 유년 시절부터 독일 유학 과정을 회상하며 조선 후기부터 식민지 시대에 이르는 역사적 변혁기를 배경으로 집필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되고 독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 지사는 뮌헨대학 동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50년 3월 위암으로 별세했고, 독일 바이에른주 그래펠핑 신묘지에 안장됐다. 국가보훈부는 오는 16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이 지사가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생전에 남긴 유필인 ‘평생 일편심’을 주제로 봉환식을 갖는다. 다음날 이 지사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보훈부는 이 지사의 유해 봉환을 위해 12일 독일 현지로 오진영 보훈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을 보냈고, 이 지사의 파묘와 유해 봉환에 협조해 준 페터 쾨슬러 그래펠핑 시장과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유해봉환 절차에 들어간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압록강을 건너 조국을 떠나신 지 105년 만에 돌아오시는 이 지사께서 국민의 추모와 예우 속에 영면하실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분들의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고국으로 모셔 국가를 위한 헌신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해외 안장 독립유공자의 유해 봉환은 1946년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을 모셔온 것이 처음이었고 이 지사는 149번째다.
  • [르포] “어디 갔당 이제 옵데강”… 번호 대신 이름 찾아 74년 만에 귀향했다

    [르포] “어디 갔당 이제 옵데강”… 번호 대신 이름 찾아 74년 만에 귀향했다

    #영정사진 대신 남편사진 든 며느리 부자 상봉시켜… ‘제2본 0023번’ 대신 ‘김한홍’ 이름 석자 찾아 5일 오전 10시 20분 제주국제공항 1층 도착장. 검정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일렬로 줄 서 있고 그 앞에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도착장 출구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무슨 영문인지 의아해하며 덩달아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검정 상복을 입은 남자와 고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손엔 하얀 천에 감싸인 유해함이 들려 있었다. 이는 74년간 생사를 알수 없었던, 행방불명된 4·3희생자 고(故) 김한홍씨의 유해였다. 도외지역 대전 골령골에서 4·3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돼 74년 만에 고향 품으로 귀향하는 순간이었다. 유해함을 들고 있던 남자는 김씨의 손자 김준수씨였고 그 옆 고령의 여인은 고인 김한홍씨의 며느리 백여옥(친정아버지도 함께 행방불명)씨였다. 대전 골령골에 매년 찾아가 제를 지내며 신원이 확인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남편은 끝내 고인의 귀향을 보지 못한 채 2020년 세상을 떴다. 지금까지 발굴된 4·3희생자 유해들은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남아 봉안돼 있었다. 고인 김씨도 신원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제2본 0023번’으로 남아 있었다. 74년 만에 비로소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이름 석자도 되찾게 됐다. ‘김·한·홍’. 백씨는 살아생전 남편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유해확인과 운구를 위해 전날인 4일 세종추모의집에 갈 때 영정사진(고인은 사진 한장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남편의 사진을 대신 들고 갔다. 고인의 아들인 남편이 너무나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를 사진으로나마 상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오영훈 지사 유해 들자마자 “어디갔당 이제 옵데강”이라며 눈물 흘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손자 김씨의 품에 안긴 유해함을 함께 들며 “어디갔당 이제 옵데강(어디에 계시다가 이제야 오셨어요)”이라고 말하자 며느리 백씨는 울음을 터뜨렸고 오 지사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유족과 유해봉환을 위해 나온 관계자들은 운구차로 향했다. 그리고 고향 북촌포구로 서둘러 공항을 빠져 나갔다. 고인의 고향은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4·3 당시 26세였던 고인은 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말 군에 와서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소문에 속아 자수했다. 유족들은 자수한 김씨가 주정공장 수용소에 수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수형인 명부에는 희생자가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사실이 등재돼 있었다. 운구차가 50분여 달렸을까. 이미 포구 근처에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고인을 맞이하기 위해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해가 봉환식장으로 들어서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대전 골령골 발굴유해 신원확인 4.3 희생자 봉환식을 거행했다. 이날 봉환식에는 오 지사와 고인의 유족들, 김창범 4·3유족회장,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송재호 국회의원, 현길호 도의회 의원, 지역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인에게 머리숙여 깊은 위로를 전한다. 부디 하늘에서 부자가 웃으며 만나셨기를 기대한다”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평범한 북촌청년은 1949년 4·3당시 무장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해 총과 칼을 겨누자 산으로 도망쳤을 뿐이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만 믿고 마을로 내려왔으나 주정공장으로 끌려갔고 74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실종된 지 13년이 지난 후에야 어쩔수 없이 사망신고를 했고 돌아가신 날을 몰라 생신날을 제삿날로 모셔야 했다”면서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는 사실도 2002년 4·3행방불명인 신고때 돼서야 알게 됐으며 그 원통함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위로했다. 또한 “아들인 고(故) 김문추 님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온평생을 바쳤다. 4·3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군사재판 재심을 신청했고, 유해라도 찾으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2018년에는 DNA도 채취했다”면서 “비록 아버지의 유해를 보지 못했지만, 그 뜻을 손자가 이어받아 통한의 한을 풀어냈다. 대를 이은 노력 끝에 지난 8월 군사재판 직권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늦었지만 고향에 모시는 것으로 그 먹먹했던 세월에 위로가 되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들아, 바람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칠 때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이날 김수열 시인은 고인에게 ‘물에서 온 편지’란 시를 바쳤다. 이 헌시에 참석자들은 모두 숨을 죽여 귀를 쫑긋 세웠다.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가슴을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7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3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그러니 아들아. 바람불 때 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따라 바람결따라 몇자 적어 보내거라./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물결따라 바람결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봉환식이 거행된 뒤 인근 50m거리 골목 고인의 생가에서 노제를 지냈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돌집 흔적만 남아 그를 반겼다. 봉환식 이후에는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신원확인 보고회가 개최됐다. 신원확인 보고회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4.3평화공원 봉안관 유해함에 봉안됐다. 오 지사는 이날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 희생자 유해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강조한 뒤 “복역중 희생됐지만 행방을 알수 없는 수형인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4·3 수형인 명부를 통해 확인된 행방불명 수형인은 1700여 명 중 이제 한 분의 신원을 확인했다”며 “제주도정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 김천 등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4·3은 살아있는 세계인의 역사이다.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현재진행형인 과제”라며 “앞으로 4·3완전한 해결과 더불어 평화의 4·3정신이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후손된 자로서 소명을 다하겠다. 다시한번 4·3영령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끝을 맺었다.
  • ‘홍범도 흉상 철거’ 충격에 카자흐 고려인…“우리도 적인가?”

    ‘홍범도 흉상 철거’ 충격에 카자흐 고려인…“우리도 적인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동포들이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리 류보피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예술감독과 박 드미트리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카자흐스탄 지회장 등 고려인 동포들은 1일(현지시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흉상 이전 계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현장에 있었다는 박 지회장은 “당시 홍범도 장군이 아름다운 해방된 조국의 품에 안겨 영면하시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 뿌듯해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느꼈다”며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섯 분의 독립전쟁 영웅 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한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렇다면 공산당원이었던 돌아가신 나의 부친도, 옛 소련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소련 체제 속에서 살았던 나도 제거 대상인가. 21세기에 공산당도 소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리 예술감독은 “체제와 정권이 바뀔지라도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 영웅”이라며 “그가 8천만 겨레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극장은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며 간도와 극동 러시아에서 독립군을 이끌었고, 특히 최진동 장군과 함께 이끈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는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후 홍 장군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뒤 1943년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고,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꼽힌다. 크즐오르다에 안장돼 있던 홍 장군의 유해는 2021년 8월 광복절을 계기로 한국에 봉환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 순국 100년 만에… 황기환 지사 10일 고국으로

    순국 100년 만에… 황기환 지사 10일 고국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역만리에서 외롭게 숨을 거뒀던 황기환 지사 유해가 오는 10일 순국 10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유진 초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황 지사의 유해를 10일 국내로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안장한다고 4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유해를 직접 영접해 영정을 봉송하며 운구에 나선다. 보훈처는 5일 유해봉환반을 미국 뉴욕에 파견해 황 지사가 생전에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출석했던 뉴욕한인교회에서 7일(현지시간) 현지 추모식을 연 뒤 9일 유해를 모시고 뉴욕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2008년 황 지사 묘소를 처음 발견해 알린 장철우 뉴욕한인교회 전 담임목사가 정부 초청을 받아 동행한다. 황 지사는 1886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 하와이 호놀룰루로 건너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미군에 자원입대해 유럽전선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에 남아 임시정부 파리위원회 서기장을 맡는 등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황기환 지사 유해 10일 국내로 돌아온다...보훈처 영접 봉환 안장식

    황기환 지사 유해 10일 국내로 돌아온다...보훈처 영접 봉환 안장식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역만리에서 외롭게 숨을 거뒀던 황기환 지사 유해가 오는 10일 순국 10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유진 초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황 지사의 유해를 10일 국내로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안장한다고 4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유해를 직접 영접해 영정을 봉송하며 운구에 나선다. 보훈처는 5일 유해봉환반을 미국 뉴욕에 파견해 황 지사가 생전에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출석했던 뉴욕한인교회에서 7일(현지시간) 현지 추모식을 연 뒤 9일 유해를 모시고 뉴욕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2008년 황 지사 묘소를 처음 발견해 알린 장철우 뉴욕한인교회 전 담임목사가 정부 초청을 받아 동행한다. 황 지사는 1886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 하와이 호놀룰루로 건너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미군에 자원입대해 유럽전선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에 남아 임시정부 파리위원회 서기장을 맡는 등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황 지사 유해 봉환은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보훈처는 2019년과 2022년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후손을 확인할 공적자료가 없어 파묘를 승인받지 못했다. 이에 보훈처와 뉴욕총영사관은 끈질긴 설득 끝에 그가 묻힌 뉴욕 마운트올리벳묘지 관계자들과 파묘 합의를 이끌어냈다.
  • 독립유공자 이한호 홍재하 지사 유해 돌아온다...보훈처 15일 봉환식

    독립유공자 이한호 홍재하 지사 유해 돌아온다...보훈처 15일 봉환식

    해외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스위스와 프랑스에 묻혔던 이한호(1895∼1960)·홍재하(1892∼1960) 지사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두 독립운동가의 유해 봉환을 위해 스위스와 프랑스로 유해봉환반을 파견했으며, 두 지사의 유해는 오는 15일 유족 대표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다고 10일 밝혔다. 보훈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박민식 보훈처장 주관으로 최고 예우를 갖춰 봉환식을 거행한 뒤 16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스위스 샤프하우젠 삼림묘지에 안장됐던 이 지사 유해는 현재 묘소 개장과 화장을 마쳤으며 12일(현지시간) 현지 공관과 교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린다.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있는 콜롱브 시립묘지에 있던 홍 지사 유해는 11일 추모식을 연 뒤 12일 주프랑스대사관에 조문소를 설치해 교민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지사는 함경북도 성진 출생으로 1919년 중국 간도 지역에서 학생 중심 항일운동단체 맹호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선수단장 및 1954년 초대 서독총영사를 지냈다.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홍 지사는 프랑스한인회 전신인 재법한국민회 2대 회장으로 독립자금을 모금했고 국제연맹에서 독립운동을 알렸다. 두 지사에게는 2019년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 보훈처 제복홍보운동 ‘제복의 영웅들’ 정부 PR 부분 최우수상 수상

    보훈처 제복홍보운동 ‘제복의 영웅들’ 정부 PR 부분 최우수상 수상

    국가보훈처는 6·25 참전용사를 위한 새 제복 홍보 캠페인 ‘제복의 영웅들’이 한국PR대상에서 정부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고 9일 밝혔다. 시상식은 22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린다. ‘제복의 영웅들’은 6·25 참전용사의 기존 여름 단체복(안전조끼)을 대체하는 새 제복을 제작하면서 ‘제복 공무원이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하고자 보훈처가 기획한 대국민 참여 홍보 캠페인이다. 정부의 일방 주도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협업하는 방식의 공공 PR 사례로 의미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복 구상부터 제작에 유명 디자이너 김석원이, 사진촬영에 사진작가 홍우림이 각각 참여했다. 소품, 홍보사업 제목 글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재능기부가 이어졌다. 보훈처는 이번 최우수상으로 한국PR대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2020년에는 유엔참전용사 마스크 지원사업으로 해외홍보 부문 최우수상을, 작년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을 국민과 소통하는 ‘장군의 귀환’이 전체 대상을 받았다. 한국 PR대상은 한국PR협회가 수여하고 올해 30회를 맞으며, 홍보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 윤봉길 의사 친필 유서 등 155점…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 전시

    대한민국 보물로 등록된 윤봉길 의사의 자필 이력서와 유서, ‘백범일지’ 초판 서명본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공개하는 특별전시회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6일부터 오는 12월 25일까지 ‘금란지교(金蘭之交), 위대한 동행’이라는 주제로 임시정부 유물 155점을 공개하는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중수교 이후 진행된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독립운동가의 유해봉환 사업’, ‘공동학술조사와 연구’ 등 3부로 나뉜다. 주목할 전시물은 24세에 사형당한 윤 의사가 생전에 지녔던 자필 이력서와 유서가 적힌 공책이다. 윤 의사는 유언에서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며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고 당부했다. ‘백범일지’ 초판 서명본은 김구 선생이 1929년 중국 상하이 보경리 청사에서 집필한 ‘백범일지’ 상편을 1947년 백범일지출판사업소에서 발행한 것으로, 김구 선생의 서명이 수록돼 있다.
  • 국가보훈처, ‘장군의 귀환’으로 한국PR협회 대상 수상

    국가보훈처, ‘장군의 귀환’으로 한국PR협회 대상 수상

    국가보훈처가 지난 24일 한국PR협회 주관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예우와 국민들의 추모의 열기속에 진행된 ‘장군의 귀환-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대국민 홍보 캠페인’으로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또 호국보훈의 달에 6·25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일상에서 감사하는 내용인 ‘이웃에 영웅이 산다’ 가 ‘디지털부분PR’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보훈처는 앞서 지난 8월 광복절 계기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묘역에 묻혀 있던 홍 장군의 유해를 순국 78년 만에 국내로 봉환하는 과정을 ‘장군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홍보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된 추모사이트 및 캠페인에도 사이트 방문이 6만3800여 회에 달하는 등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이날 수상 직후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희생·헌신하신 국가유공자를 위한 예우를 강화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라고 밝혔다.
  • 文, 배우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고귀한 뜻 적극 알려 달라”

    文, 배우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고귀한 뜻 적극 알려 달라”

    文, 홍 장군 유해 송환에 “매우 의미있는 귀환”“간혹 홍범도 장군 모르는 분 있다” 홍보 당부조진웅,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 활동영화 ‘암살’ 등서 무장 독립투사로 열연많은 고려인들 유해수습, 추모식 지켜봐문재인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에 저항해 무장 투쟁을 벌였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것과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귀환”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영화 ‘암살’ 등에서 독립투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조진웅에게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홍 장군의 고귀한 생애와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날 78년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오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한다. 문 대통령은 전날 저녁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 직후 특사단과 환담한 자리에서 조진웅에게 “국민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환담에는 특사단인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진웅이 함께 했다. 조진웅은 영화 ‘암살’과 ‘대장 김창수’에서 독립투사의 역할을 맡았으며,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해 국민대표 자격으로 특사단에 포함돼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보훈처장 “장군의 키 육척 넘어 보여” 문 대통령은 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떠나보내 섭섭해 않느냐”고 물었고, 우 의원은 “섭섭해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유해 수습과 추모식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고려인들로부터 워낙 존경을 받으셨기 때문에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지속적으로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묘역 공원화 방안 등 후속 작업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홍 장군의 유해 수습 과정을 묻자 황 처장은 “전 과정이 순조로웠다”면서 “유해를 수습해보니 장군의 키가 육척장신이 넘어 보였다”고 답했다.홍범도 장군 78년 만에 유해 귀환 지난 15일 오전 고려인 동포 배웅 속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을 출발한 홍 장군 유해는 서울공항으로 돌아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맞이한 홍 장군의 유해는 태극기를 두른채로 오후 11시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져 현충관에 임시 안치됐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사망 연도 기준 78년 만이다. 보훈처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16~17일 이틀간 온·오프라인 추모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온라인 헌화와 분향을 원하면 보훈처 누리집(www.mpva.go.kr)에서 할 수 있다. 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 설치된 국민분향소에서 직접 참배 및 승차 참배(드라이브 스루)는 선착순으로 가능하다. 정부는 국민 추모행사 후 18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장군의 유해를 안장할 계획이다.
  • 文대통령,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생애 적극 알려달라”

    文대통령,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생애 적극 알려달라”

    문재인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운동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것과 관련, “매우 의미있는 귀환”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날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 직후 특사단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장군의 유해를 수습해온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 조진웅 씨와의 환담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6일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 예정인 조진웅 씨에게 “국민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니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그분의 생애와 고귀한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씨는 영화 ‘암살’과 ‘대장 김창수’에서 독립군 역할을 맡았으며,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해 국민대표 자격으로 특사단에 포함돼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떠나보내 섭섭해 않느냐”고 묻자, 우 의원은 “섭섭해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유해 수습과 추모식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고 소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고려인들로부터 워낙 존경을 받으셨기 때문에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래고 지속적으로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묘역 공원화 방안 등 후속 작업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 유해 수습 과정을 물었고, 황 처장은 “전 과정이 순조로웠다”며 “유해를 수습해보니 장군의 키가 육척(약 180㎝) 장신이 넘어 보였다”고 답했다.
  • ‘집단감염’ 현실화에 청해부대 조기귀환...‘오아시스’ 작전 성공할까

    ‘집단감염’ 현실화에 청해부대 조기귀환...‘오아시스’ 작전 성공할까

    아프리카에 파병된 청해부대서 68명 확진나머지 200여명 검사 결과 아직 안 나와수송기 2대 급파..특수임무단 200명 탑승해군 파견부대원들, 함정 인수 작전 수행함정 귀환 한 달 이상 걸릴 듯...“안심 못해”아프리카에 파병된 해군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에서 61명이 추가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확진자는 총 68명으로 늘었다. 대규모 집단감염 우려가 현실이 된 가운데, 군은 18일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KC330) 2대를 현지에 급파했다. 군·방역 당국의 안일함이 해외 파병 장병들의 ‘조기 귀환’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101명 중 68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합참이 지난 15일 문무대왕함에서 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밝힌 뒤로 사흘 만에 60명대로 치솟은 것이다. 주말이 겹치면서 나머지 200여명에 대한 검사 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만, 승조원 모두 백신 미접종 상태여서 확진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승조원 3명이 추가로 폐렴 의심증세를 보여 입원 환자도 15명으로 늘었다. 군 당국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전에 승조원 모두 국내로 복귀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이날 수송기 두 대를 띄웠다.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한 수송기에는 함정 교체병력(148명), 방역·의료인력(13명), 공군 비행 지원팀(39명) 등으로 구성된 200명 규모의 ‘특수임무단’(단장 이경구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이 탑승했다. 선발된 인원들은 모두 백신 접종을 마친 상태다. 작전명은 ‘오아시스 작전’으로 정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안전하게 복귀시키겠다는 의지 등이 담겼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정부가 수송기 긴급 투입을 결정하고 발 빠르게 실행에 옮긴 것처럼, 사전에 해외 파병부대에 대한 현지 백신 접종 계획을 세워 어떻게든 가능한 방법을 찾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시간, 노력, 비용 등을 크게 아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앞서 군 당국은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이 발생했을 때 응급 대처가 어렵고, 백신 보관을 위한 초저온 냉동고(화이자 백신)가 비치돼 있지 않는 등 제한 사항들이 있어 현지 접종이 곤란했다고 해명했다.특수임무단은 현지에 도착하는 대로 미리 준비된 계획에 따라 ‘투트랙’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우선 확진자, 유증상자, 음성 판정을 받은 승조원들을 분류해 수송기 2대에 나눠 태울 예정이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공군 지원팀에는 지난해 이라크 근로자 귀국 지원, 6·25 전쟁 유해봉환, 미국에서 지원한 얀센 백신 수송 지원 등 다양한 해외 비행 임무를 수행했던 인원들이 포함돼 있다. 무박으로 장시간 비행을 할 수 있는 ‘베테랑’들이 귀국 비행을 담당하지만, ‘기내 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항공기에는 격벽을 설치한 상태다. 이송 중 긴급환자가 발생할 우려에 대비해 산소통을 비치하는 등 의료 장비도 갖춰 놓았다. 이송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일쯤 한국에 도착한 뒤 진단검사를 별도로 받고 격리 및 치료 시설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함정 인수 작전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 작전은 양민수 해군 7기동전단장(준장)이 지휘를 맡는다. 양 준장은 2006년 환태평양훈련(림팩) 작전 참모를 맡았을 당시 문무대왕함을 탄 경험이 있다. 또 파견 부대는 동급 함정인 강감찬함 병력 위주로 편성됐다. 강감찬함은 2019년 30진 등 그간 청해부대 4번의 파병 경험이 있는 한국형 구축함이다. 파견 부대원 상당수도 청해부대 파견 경험이 있으며, 3회 파견자도 2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함정 곳곳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2단계 방역을 실시한다. 기존 승조원들이 개인 생활 공간과 공용 구역에 대한 1차 방역을 실시하고 함정을 빠져나오면, 파견부대원들이 들어가 2차 방역을 하는 식이다. 함정 환기시스템 필터 소독, 함정 내외부 잔존 바이러스 소멸 작업, 모든 격실 방역 순서로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함내 격실문을 모두 개방한 채 6시간 이상 환기할 예정이다. 이후 기존 승조원들과 비대면 인수 절차를 밟은 뒤 함정 시동, 장비 점검 등을 한다. 그러나 함정 귀환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릴 수 있고, 또 다른 돌발 변수에 직면할 수도 있어 안심하기엔 이른 상황이다. 다른 부대 소속 인원들도 있다 보니 팀워크를 맞춰야 하는 숙제도 있다. 다만 지난달 출항한 청해부대 35진 충무공이순신함은 이미 작전 해역에 도착해 임무 수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귀환에 따른 ‘공백’ 우려는 사라진 셈이다.
  •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모셔올 중장기 로드맵 짭시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모셔올 중장기 로드맵 짭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이 중단됐지만, 유해 봉환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점검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격전지와 중국 등지로 강제동원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유해 봉송환 운동을 벌이는 황동준 전 행정안전부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장은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외에서 어렵사리 신원이 확인된 유해마저 코로나19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강제징용과 위안부 관련 판결이 사회적 이슈가 된 관심만큼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 과장은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어렵게 찾은 최병연씨의 경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족을 찾아 지난해 국내로 유해를 봉환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출입국이 금지돼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동원된 연인원 125만여명 중 20만여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위패라도 돌아온 희생자는 1만 2000여명뿐이다. 그는 “2019년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에 있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을 찾았을 때 1000여구의 유골이 묻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 봉환은 저의 운명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당시 천인갱에서 ‘제가 반드시 모시고 가겠습니다’라고 눈물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황 전 과장은 “그동안 중국 하이난성, 태평양 격전지, 일본 조세이 탄광 등지에서 유해 조사 및 발굴 시도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며 “국외 사업 추진이 어려워도 국내에서 유해 발굴 및 봉환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까지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올 1월 시행된 사할린동포특별법과 관련, 그는 “사할린 동포 피해구제 및 유해 발굴·봉환 등 국가의 책무를 명시했지만 현지 500여명의 1세대와 3만여명 동포들의 간절한 염원에는 못 미치고 있다”며 “사할린뿐 아니라 태평양 등지로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천인갱 유골은 지역 개발을 핑계로 언제 파헤쳐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 사찰 등지에 흩어져 있는 수천 위의 유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의 원활한 유해 봉환을 위해 진행 중이던 한러 정부 간 협정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황 전 과장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유해는 훼손되지 않고 봉환돼야 한다”며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유해 봉환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기본 의무”라고 강조했다.
  • 포스트코로나·정조·홍범도… 文대통령 사로잡은 4권의 책은?

    포스트코로나·정조·홍범도… 文대통령 사로잡은 4권의 책은?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국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여름에 읽은 ‘독서리스트’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9월은 독서의 달이다. 해마다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하곤 했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출판시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보람도 있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금, 방역 협조를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모처럼 독서를 즐겨 보는 것도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인류의 미래인 것으로 보인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최재천·장하준·최재붕·홍기빈·김누리·김경일 등 6명의 석학과 진행한 대담집 ‘코로나 사피엔스’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溫鐵軍),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등과 인터뷰한 ‘오늘부터의 세계’를 우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 다양한 분야의 대한민국 석학들과 세계 석학들에게 묻고 답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면서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개인이나 정부가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고교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을 만큼 역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문 대통령은 정조 전문가인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리더라면 정조처럼’과 서울신문 주필을 지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홍범도 편전’도 일독을 권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정조대왕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고, 당대 역사를 보는 재미도 있다”면서 “저는 정조대왕이 금난전권을 혁파하여 경제를 개혁한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가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카자흐스탄에 묻혀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면서 “그의 생애와 함께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군들의 초창기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해왔다. 그때마다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이른바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 셀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7년에는 ‘명견만리(明見萬里)’, 2018년에는 김성동의 소설 ‘국수(國手)’, 진천규 전 한겨레 기자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文, 서울공항서 유해 직접 맞아 최고 예우 트럼프 “여러분 승리 축하” 영상 메시지“민자야, 오빠 간다. 엄마 아버지 잘 모셔라.”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정용 일병은 1950년 8월 부대로 향하기 전 여동생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인은 “흥남부두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편지를 쓴다. 부디 답장을 길게 보내다오”라고 쓴 편지를 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열아홉 나이로 참전했던 김 일병이 25일 70년 만에 전우 146명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영웅에게’라는 주제로 경기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는 오후 8시 40분 고 하진호·김정용·김동성·최재익·박진실·정재술(이상 일병)·오대영 이등중사 등 국군 전사자 7명의 유해 봉환으로 시작됐다. 이날 행사는 고령층 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해 처음으로 일몰 이후 개최했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가족 6명과 함께 입장해 공군 항공기에서 내리는 유해를 예를 갖춰 맞이했다. 가수 윤도현이 이들을 추모하며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6·25 당시 미 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예비역 이등중사 류영봉씨가 70년 만에 돌아온 전우들을 대신해 복귀신고를 했다. 류 중사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을 외치며 거수 경례했다. 참석자 300여명의 가슴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기억하는 ‘122609 태극기’ 배지가 빛났다. 조포 21발 발사와 함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조포 21발 발사는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예우로, 이 역시 6·25 행사 처음으로 이뤄졌다. 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 등 22개 유엔 참전국 정상들도 영상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면서 “우리가 합심해 이룬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번 유해 봉환은 한미 공동 감식작업으로 이뤄진 것으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유해봉환은 남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라며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면서 북한 지역 내 전사자 유해인계 관련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In&Out] 코로나19로 77년 만의 부자 상봉 미뤄질까 걱정/황동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운영관리국장

    [In&Out] 코로나19로 77년 만의 부자 상봉 미뤄질까 걱정/황동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운영관리국장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코로나19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가히 세계대전급 전시태세에 돌입한 양상이다. 실제 전쟁은 더욱 끔찍하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의 나라 전쟁터로 강제로 끌려가 고통 속에 죽어 간 국민의 고통은 어떠했겠는가. 더구나 유해마저도 온전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들의 원혼을 어떻게 달래 줄까. 정부는 2018년 11월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를 신설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됐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외로 강제동원된 인원은 징용을 포함해 125만명으로 추산된다. 1950년 11월까지 약 104만명이 귀환했지만 현지 체류 또는 귀환 과정에서 희생된 조선인은 약 20만명이나 된다. 1946년 이후 지난해까지 국내로 봉환된 유해(위패 포함)는 약 1만 1000위.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의 원혼을 풀어 드리는 일은 국가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책무다. 지난해 정부는 이들 희생자의 유해 봉환을 위해 분주히 현장을 누볐다.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해 태평양전쟁터였던 관련국과 유해 봉환 문제를 협의했다. 한국인 추정 유해를 발굴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유족과 신원 확인 절차를 밟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식별정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태평양 적도 남쪽에 인구가 10만명가량 되는 키리바시공화국이란 작은 나라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곳 타라와 베티오섬을 두고 미국과 일본은 1943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교전 인원은 미국이 약 3만 5000명, 일본은 약 4800명이었다. 72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ㆍ일본군 전사자는 6400명가량 발생했다. 일본군은 대부분 전멸했다. 일본군 사망자 가운데 1200여명은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 징용자들이었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협력으로 한 분의 희생자 유해를 기적적으로 확인했다. ‘타라와 46번’이라는 이름 없이 번호로 매겨졌던 유해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최병연’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고인의 유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족은 현재 전남 영광군에서 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1971년 제공한 ‘피징용사망자명부’ 자료도 부실하고 유족의 유전자검사 신청도 적어 희생자의 유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부단히 애쓴 결과다. 정부는 당초 5월 중순 최병연 어른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급작스레 닥친 코로라19 사태로 언제 봉환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최병연 어른이 전쟁터로 끌려갈 때 100일이 채 안 되던 아들은 70대 노인이 돼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하루속히 소멸돼 두 부자가 상봉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찾고도 유해 방치한 행안부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찾고도 유해 방치한 행안부

    재단에 통보했지만 열 달간 연락 안 해 행안부 “소통 부족… 빠른 시일 내 접촉”1년 전 일본 오사카에서 봉환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조선인 74명의 유해 가운데 4명의 유가족을 찾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하지만 봉환 사업을 진행한 정부와 산하기관은 손을 놓은 채 열 달 넘게 유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임시안치 상태로 방치 중이다. 1일 행정안전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민간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재단을 통해 행안부로부터 약 1억 6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해 2월 28일 일본 오사카 통국사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과 위패 등 유해 74위를 국내로 봉환했다. 유해는 이후 제주 애월에 있는 선운정사에 임시 안치됐다. 이후 피해자 유가족을 찾는 작업이 이뤄졌고 2개월여 만에 성과가 나왔다. 행안부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사업을 총괄하는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민화협에서 제출받은 74명의 명부와 과거 정부에 신고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명단을 대조해 지난해 5월 피해자 4명의 유가족을 찾아냈다. 행안부는 유가족들이 유해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접촉하라고 봉환을 주도한 재단 측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단은 이후 약 열 달 동안 유족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4명 가운데 3명의 유족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데도 유해 인수를 위한 작업은 답보상태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단에 통보는 했다. (재단이) 유가족에게 단순히 유해만 전달할 수 없어 조사를 함께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민화협은 민간단체라 유가족 개인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 행안부는 정부가 직접 추진하기도 힘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한일 양국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기에는 민감한 문제라는 설명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단과 잘 협의해서 진행했어야 하는데 소통이 부족했다. 빠른 시일 내에 유가족과 접촉하겠다”고 답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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