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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 희생자 추가 신고 4000여명 접수

    제주 4·3 희생자 추가 신고 4000여명 접수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희생자 신고접수가 5년 만에 재개되자 유족들의 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제주도는 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1월부터 3개월 동안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추가 신고를 접수한 결과 희생자 72명과 유족 4066명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다고 9일 밝혔다.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신고는 사망자 37명, 행방불명자 19명, 후유장애인 5명, 수형인 11명 등으로 분류된다. 신고접수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도는 신고 접수 건에 대한 면담조사와 사실조사를 한 뒤 6월부터 4·3 실무위원회 심사와 4·3 중앙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안에 희생자와 유족 인정 여부가 결정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4·3 희생자와 유족 신고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5차례 진행됐고 1만 4233명이 희생자로, 5만 9427명이 유족으로 인정됐다.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사업도 다음달부터 10년 만에 재개된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2018년도 국비 15억 6000만원(유전자 감식비 12억 1300만원, 유해발굴비 3억 4700만원)이 반영됐다. 유해발굴은 4·3 당시 최대 암매장 지역인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쪽 뫼동산 인근과 남북활주로 북단 서쪽, 화물청사 동쪽 구역 등에서 실시된다. 앞서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북단 2개 지점에서 유해발굴을 벌여 4·3 당시 암매장된 38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규정 “평화는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명예회복·유해발굴·배상 등 약속 보수·진보에 낡은 이념 탈피 촉구 “이젠 정의·공정으로 평가받아야”“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제70주년 추념사는 ‘제주도의 봄’이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 의지’를 공식 천명하고 살아남고자 70년간 상처와 아픔을 묻고 살아온 제주 도민들에게 진정한 봄을 약속했다. 추념사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는 ‘진실’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4·3 사건을 단지 불행한 과거사로만 치부하지도 않았다.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4·3 사건의 명예회복 없인 미래도 없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 진실 규명과 피해 보상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도민들에게 4·3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 사과의 진정성은 후퇴했다. 문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4·3 사건을 바로 세우고,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3 흔들기’를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4·3 사건의 성격을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규정했다. 추념사에 나타난 제주 4·3은 이렇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과 유혈 진압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인 3만여명의 양민들이 희생당했다. 좌우 양쪽에 의해 무차별한 학살이 이뤄져 가해자가 어느 쪽인지도 명확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4·3은 아직 이름이 없다. 정부는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 유해발굴 사업,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 치유, 배상과 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약속했다. 보수 진영 일부는 4·3 사건을 ‘친북·좌파 세력의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70년 전 제주 도민의 삶과 죽음 갈랐던, 지금도 대한민국을 가르는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 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고(故)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故)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이념이 있던 곳에 자리할 새로운 시대적 가치로 ‘정의’와 ‘공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목에 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脫)이념으로 적대적 그늘을 걷어 내고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려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직후 제주도 한 호텔에서 유족·희생자들과 오찬하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4·3을 부정하거나 폄훼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4·3의 진실이 똑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규명을 강조했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똑바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희망을 유족들과 희생자들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 있게 해 나가겠다, 만약 우리 정부가 다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홍성수 제주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6·25 때 전사 중국군 유해 20구 28일 인도

    6·25 때 전사 중국군 유해 20구 28일 인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26일 인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6·25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입관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입관

    6.25 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 입관식이 2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열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중국 송환 준비

    [서울포토] 6·25전쟁 중국군 유해 중국 송환 준비

    6.25 전쟁 중 전사한 중국군 유해 입관식이 2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17사단에 마련된 ‘중국군 유해 임시 안치소’에서 열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팀원들이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를 입관하고 있다. 이날 입관된 유해 20구는 오는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참전용사 증언 듣는 유해발굴감식단

    참전용사 증언 듣는 유해발굴감식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2일 경남 창원 리베라 컨벤션에서 개최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설명회 및 참전용사 증언 청취회’에서 6·25 참전용사에게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국방부 제공
  • 6·25 유해발굴 재개… 500위 목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6일 재개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전남 광양에서 육군 31사단의 개토식을 시작으로 올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개토식은 ‘땅의 문을 연다’는 뜻으로 유해발굴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올해 발굴 사업은 6·25전쟁 주요 격전지였던 전국 82개 지역에서 진행된다. 참가 병력은 사단과 여단급 33개 부대 10만여명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전사자 유해 500위(位)를 발굴해 신원확인 작업을 거쳐 10위 이상의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준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목표는 3000여명이다. 국방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국군 9800여위를 비롯해 1만1000위 이상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도 포함돼 있다. 중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중국 측에 송환됐다. 지금까지 국군 전사자 유해 9800여위를 발굴했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28위에 불과하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탄두 박힌 척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서울서 첫 발견

    “탄두 박힌 척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서울서 첫 발견

    서울에서 1950년대 벌어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추정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위치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신설 도시철도 청사 옆이다. 유해에는 여자, 아이 등이 포함됐으며 일부 유해에는 척추에 전쟁 당시 쓰였던 M1 소총 탄두가 박혀 있고 양손은 철사에 묶여 있는 채로 발견됐다.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한국전쟁유족회)는 3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보고서를 인용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 319번지에서 수습 유해 최소 6개체와 미수습 유해 최소 2개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견된 유해들은 6∼60세 이상 등 다양한 연령대 유해로 대부분 남성이지만 일부 여성들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유해의 척추에는 M1 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탄두가 박혀있고, 손목 부위를 철사로 결박한 상태의 유해도 있었다. 유해의 사지 뼈와 두개골에는 사망 무렵 생긴 것으로 보이는 골절이 있었다. 아군이 쓰던 탄약류와 비녀, 십자가, 동전, 틀니, 고무줄, 버클, 단추 등도 유해와 함께 발견됐다. 감식단은 “유해의 손목이 결박되고 고무줄과 고무신을 착용하고 있으며 엎드린 자세로 매장돼 있는 등 매장 특징이 민간인 희생자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이 유해는 우이신설선 도시철도 청사 2차 성토 작업을 위한 옹벽 공사를 하던 중에 작업하던 근로자가 발견했다. 이 근로자는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강북경찰서에 신고했으며, 경찰은 국방부 감식단에 유해 조사를 의뢰했다. 유족회는 이들 유해 모습이 민간인 학살 장면을 목격한 우이동 토박이 주민 원용봉(83)씨의 증언과 일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원씨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51년 10월 경찰이 6·25 전쟁 이전 북에서 내려와 살고 있던 음악선생님 부부와 장모, 아들 2명 등 일가족 5명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원씨가 목격했다는 학살 장소는 이번에 발견된 유해 매장지와 약 25m 떨어진 장소다. 유족회는 강북경찰서와 국방부,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단에 수습된 유해 6구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 봉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족회는 이번 민간인 학살 추정지 발견에 대해 “9·28 서울 수복 이후 불법적으로 자행된, 이른바 ‘부역자’들에 대한 자의적 처형·학살의 물적 증거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진실화해위원회법 개정을 통해 당시 과거사에 대한 추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 참전용사 68년 만에 귀가

    6·25 참전용사 68년 만에 귀가

    6·25전쟁 당시 북진을 위한 공병작전을 하다가 전사한 국군 병사의 유해와 유품이 이제야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전사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들은 68년 만에 귀가한 아버지를 소중히 받아 안았다.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30일 건설공병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 김재권 일병의 아들 김성택씨의 강원 강릉 집을 방문해 김 일병의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품 등을 전달했다. 올해 첫 번째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이다. 1924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결혼 2년째 신혼이었다. 당시 그의 아내 전옥순씨는 임신 중이었다. 부친이 운영하던 목재소에서 일하던 김 일병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진 입대했다. 같은 해 10월 15일 경기 가평 일대에서 북한군 공격을 받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군은 김 일병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고 가족에게 전사통지서만 전달했다. 유해는 반세기도 더 지난 2008년 5월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서 발굴됐다. 신원을 추정할 만한 유품이 없어 신원 미확인 유해로 분류됐으나 아들 김씨가 2016년 국립서울현충원에 부모님의 합동 위패 봉안을 신청하면서 비로소 신원 확인의 계기가 마련됐다. 1988년 작고한 모친을 국가유공자인 부친과 함께 현충원에 모시기로 한 김씨는 지난해 3월 합동 위패 봉안식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했는데 여러 차례의 검사 끝에 마침내 지난해 12월 김 일병과 유전자 정보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설 명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지금 제주는 4·3에 빠졌수다

    지금 제주는 4·3에 빠졌수다

    제주4·3 70주년을 앞두고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이 다음달부터 재개된다.제주도는 제주4·3평화재단과 ‘4·3희생자 유해 발굴 및 발굴유해 사업 대행 협약’을 맺고 이같이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사업 기간은 올해 말까지이며 기초 작업을 거쳐 발굴은 오는 4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국비 15억 6000만원이 투입된다. 대상 지역은 제주국제공항 1곳(뫼동산 인근, 동서활주로 서단 북쪽, 화물청사 동쪽 구역)과 공항 남쪽 경계 외부 1곳(제주시 도두2동 1102 인근), 선흘 1곳(은지난못 인근), 북촌 1곳(북촌리 1240 인근), 구억 1곳(구억리 835 인근) 등 5곳이다. 도는 지하 10m까지 탐사가 가능한 지반탐사장비(GRP)를 도입, 유해 매장 위치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도는 제주공항의 경우 7m 정도 복개돼 유해 발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 GRP를 도입하게 돼 추가 유해 발굴 성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도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공항과 화북동, 태흥리 등 8곳에서 발굴 작업을 벌여 유해 400구와 유품 2357점을 찾아냈다. 제주 4·3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도 속속 추진된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최근 ‘4370신문’을 발간했다. 4370신문 창간호에는 노순택 사진가의 ‘4·3 기행’ 사진, 박재동 화백의 ‘박재동의 펜으로 본 제주4·3’, 강정효 제주 민예총 이사장의 ‘제주4·3과 예술’ 등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해 제주4·3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이번 창간호를 시작으로 4·3 70주년 추념식과 서울 4·3 문화제 등이 담길 5월까지 월간지 형태로 10만부를 제작한다. 제주4·3 평화 기행 행사도 다음달부터 8월까지 1박 2일씩 6회 연다. 매회 선착순 30명이며 방학이 있는 2, 8월에는 20대 청년만 받는다. 온라인(bit.ly/jejupeace)으로 신청하면 된다. 정부 심의 등을 거친 4·3 희생자와 유족은 현재 사망 1만 244명, 행방불명 3576명, 후유장애 164명, 수형자 248명, 유족 5만 9426명이다.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6·25 전투 지원’ 민간인,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전투 지원’ 민간인,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당시 전장에서 전투 지원 임무를 수행한 민간인 노무자 유해의 신원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3일 “6·25전쟁 당시 민간인 노무자 유해의 신원이 김아귀씨로 확인됐다”며 “최초로 비군인 참전 노무자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후 126번째이며, 올해만 여덟 번째 성과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경북 상주에 있는 김씨의 아들 김학모(78)씨 자택에서 전사자 신원 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그는 6·25전쟁 당시인 1951년 10월 노무단 제5009부대(103사단 109연대) 소속으로 강원 양구군 일대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가해 전사했다. 김씨는 1951년 5월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구 노무단 양성소를 거쳐 노무단 제5009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유엔군은 긴급히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인 운반단을 포함한 ‘한국노무단’(KSC)을 창설했다. 노무단은 전선부대에 탄약, 연료, 식량 등 보급품을 운반하고 부상자 후송, 진지 공사, 도로·교량 보수 등 전투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김씨의 유해는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일대에서 2010년 10월과 2012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플라스틱 숟가락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전문]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 은폐 조사결과 발표문

    [전문]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 은폐 조사결과 발표문

    류재형 해양수산부 감사관이 23일 오후4시 발표한 ‘세월호 유골 은폐’ 1차 조사 결과 발표 전문 세월호 유해 발굴 사실 지원조치와 관련하여 금일 08시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1차 조사 결과를 말씀드리겠다. 우선 현재까지 김현태 부단장 등 총 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먼저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최초 발견된 시점은 11월 17일 오전 11시 20분경이며 최초 발견자는 상하이셀비지 소속 작업자다. 같은 시각 현장을 순찰하던 국방부 유해발굴단 소속 백상기 중사가 사람 뼈인 것으로 확인하고 현장수습반 팀장 해양수산부 김인철 사무관에게 유선으로 통보하였다. 11시 30분경 현장수습반 팀장이 최초로 실물을 확인했다.김현태 부단장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11월 17일 13시30분경 현장수습반장 해수부 김철호 과장으로부터 유해 발굴 사실을 보고받고 미수습자 가족들의 추모식과 장례식 일정의 차질을 우려하여 발인 및 삼우제 이후에 유해발굴 사실을 전파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현태 부단장이 현장수습반에 유해 발굴 사실을 비공개하도록 지시했다. 유해 발굴 사실 지원 전파에 관한 사항을 세월호 후속대책추진단장 이철조와 사전 협의한 정황도 확인하였다. 유해발굴 사실을 고 조은화 양 및 선체조사위원장 김창준에게 알린 시점은 언론보도와 같이 11월 21일 14시에서 15시경이다. 11월 20일 월요일 17시경 이철조 단장이 유해발굴 사실을 장관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조치 지시 받고 이루어진 사항이다. 이상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를 말씀드렸다. 다만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위법, 부당행위 여부와 고의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며 최종 조사가 마무리되는 즉시 그 결과를 별도로 다시 한 번 발표하도록 하겠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유족들 “유골 은폐 상상도 못할 일…책임자 엄중 문책”

    세월호 유족들 “유골 은폐 상상도 못할 일…책임자 엄중 문책”

    세월호 미수습자 고인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의 장례 절차가 엄수되기 직전 세월호 선체에서 유골을 발견하고도 이를 은폐한 해양수산부 관계자에 대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해수부 장관은 이번 사태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미수습자 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과 국민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행정적·법적 수단을 동원해서 진상을 밝히고 (유골 발견 사실을 은폐한 책임자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해수부 장관이 직접 사건의 전말을 규명하고 은폐 사태에 연관된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하라”고 강조했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자행됐다”면서 “한 사람의 징계로 끝날 게 아니라 해수부 내 인적 청산·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 현장에서 사람의 손목뼈 1점이 발견됐다. 뼈는 세월호에서 수거된 진흙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의 뼈임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골 수습을 보고받은 해수부 현장수습본부의 김현태 부본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통보하지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다른 유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김 부본부장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유골 수습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수습자 수습은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염원인데 이렇게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질책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김 부본부장을 보직 해임하고 내부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골 은폐 사건과 관련해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 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이날 국회에 거듭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법안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수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면서 △충분한 조사 기간과 인원 확보 △여야 추천위원 비율의 수정 △조사관들의 사법경찰권 보장 등을 반영한 수정안 처리를 요구했다. 현재 여야는 사회적 참사 특별법 내용 중 특조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을 9명으로 구성하되 여·야 추천 규모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특별법 초안에는 여당이 3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하도록 했으나 제19대 대선 이후 여당이 4명, 야당이 4명, 국회의장이 1명 추천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세월호 유족들은 “법의 본래 취지를 온전히 살리려면 초안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특조위원 3인을 초과해 추천할 수 없도록 하는 수정안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유족 30여명은 이날 오전부터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농성을 시작한 상태다. 이들은 “제대로 일할 새로운, 독립적인 특조위를 기다리며 노숙농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미수습자 장례식 전날 찾고도… 김현태 “유골 수습 알리지 말라”

    미수습자 장례식 전날 찾고도… 김현태 “유골 수습 알리지 말라”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세월호에서 유골을 추가 발견하고도 이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은폐 시점이 미수습자 5명의 가족들이 치른 ‘유해 없는 장례식’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악의적 의도가 숨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책임 규명을 촉구하고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직접 사과하는 등 일제히 입장표명하는 모습에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22일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세월호 객실 구역에서 빼낸 지장물(쌓인 물건더미)을 세척하던 도중 뼈 1점이 발견됐다. 당시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현장에서 사람의 뼈라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를 보고받은 현장수습본부 김현태 부본부장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와 미수습자 가족 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김 부본부장은 오히려 현장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유골 수습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일 오후 10시와 오후 5시 기준으로 현장 수색 상황을 정리해 언론에 배포해 왔지만 지난 17~21일 보도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없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뼈 발견 하루 전인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며 목포신항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지난 18∼20일에는 유해 없이 장례도 치렀다. 김 부본부장 등 해수부 간부들은 장례식에도 참석했지만 유골 수습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후 김 부본부장은 지난 21일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을 찾아가 유골 수습 사실을 통보했고, 가족들에게는 이날이 돼서야 뒤늦게 알렸다. 김 부본부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6년 2월에 인양추진단 부단장에 임명된 뒤로,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에 비협조적이었던 탓에 지난 10월 17일 세월호 가족들이 작성한 1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자 34명의 명단 안에 포함되기도 했다. 세월호 특조위 1기 위원으로도 활동했던 권영빈 선체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해수부의 적폐 청산이 일찍 진행되었다면 이번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해수부의 유골 발견 은폐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 위반 소지도 있다. 특별법 38조와 45조는 ‘누구든지 위계로써 선체조사위의 직무 수행을 방해해선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수습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3월 종료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의료지원금을 2024년 4월 15일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다음달 중순쯤 국무회의에 상정될 계획이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서울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낙연 총리 “세월호 유골발견 은폐, 용납할 수 없는 일”

    이낙연 총리 “세월호 유골발견 은폐, 용납할 수 없는 일”

    이낙연 총리는 22일 세월호에서 유골을 발견하고도 해양수산부 내부에서 5일 동안 은폐한 것과 관련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이 총리는 22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미수습자의 손목뼈로 추정되는 뼈가 장례 전날 발견됐으나, 장례가 끝날 때까지 5일 동안 해양수산부 내부에서 이를 은폐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오늘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부터 전말을 보고받았다”고 적었다. 이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수습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는 또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응분의 조처를 하겠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세월호 객실 구역에서 빼낸 지장물을 세척하던 중 뼈 1점이 발견됐고,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현장에서 사람의 뼈임을 확인했다. 5명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지난 18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 해수부 간부는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골발견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다가 이날 은폐 의혹이 제기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뒤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대통령, 세월호 유골 발견 은폐에 “철저한 진상규명…책임 묻겠다”

    文대통령, 세월호 유골 발견 은폐에 “철저한 진상규명…책임 묻겠다”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 현장에서 지난 17일 유골 1점이 추가로 발견됐지만 해양수산부가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22일 제기됐다.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수습자 수습은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염원인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고 유가족과 국민께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 현장에서 사람의 손목뼈 1점이 발견됐다. 뼈는 세월호에서 수거된 진흙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의 뼈임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골 수습을 보고받은 해수부 현장수습본부 김현태 부본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통보하지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다른 유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심지어 김 부본부장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유골 수습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16일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면서 가족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픔을 뒤로한 채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난 5월 이영숙씨의 유골 발견 이후 소득없는 수색 작업에 계속되면서 더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수부는 미수습자 유족들의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 유골을 발견하고도 숨긴 것이다. 결국 미수습자 유족들은 지난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을 열고 이어 오후엔 각각 서울과 안산에서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 김현태 부본부장 등 해수부 고위 관료들은 영결식과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가족들에게 유골 발견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언론 취재가 들어가자 해수부는 이날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7일 세월호 객실구역에서 나온 지장물 세척작업 중 뼈 1점이 발견됐고 오늘 오전 국과수에 정밀분석을 의뢰했다”고 늑장 발표를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전 유골 추가 발견하고도 ‘은폐’한 해수부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전 유골 추가 발견하고도 ‘은폐’한 해수부

    끝내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고인들의 합동 추모식이 지난 18일 엄수됐다. 이날 입관식은 유해조차 거두지 못한 고인 5명이 생전에 사용했거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유품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추모식이 열리기 전날 세월호 선체에서 수거된 진흙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양수산부가 의도적으로 은폐한 정황도 드러나면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2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 현장에서 사람의 손목뼈 1점이 발견됐다. 뼈는 세월호에서 수거된 진흙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의 뼈임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골 수습을 보고받은 해수부 현장수습본부 김현태 부본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통보하지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다른 유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심지어 김 부본부장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유골 수습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16일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면서 가족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픔을 뒤로한 채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난 5월 이영숙씨의 유골 발견 이후 소득없는 수색 작업에 계속되면서 더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수부는 미수습자 유족들의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 유골을 발견하고도 숨긴 것이다. 결국 미수습자 유족들은 지난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을 열고 이어 오후엔 각각 서울과 안산에서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 김현태 부본부장 등 해수부 고위 관료들은 영결식과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가족들에게 유골 발견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언론 취재가 들어가자 해수부는 이날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7일 세월호 객실구역에서 나온 지장물 세척작업 중 뼈 1점이 발견됐고 오늘 오전 국과수에 정밀분석을 의뢰했다”고 늑장 발표를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전사자 추정 유해 서울 우이천 현장서 발굴

    6·25전사자 추정 유해 서울 우이천 현장서 발굴

    서울에서 6·25 전쟁 아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돼 정부가 확인에 나섰다. 서울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16일 오전 강북구 우이신설 경전철 차량기지 옆 우이천 정비공사 현장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이 발견됐다. 하천 옆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보강공사를 하던 작업 인부가 지하 4~5m 깊이에서 심하게 부식된 전투화 조각과 유골 일부를 발견했다. 공사 현장 관계자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는 오른쪽 정강이뼈 4점을 비롯해 M1 소총 탄클립과 버클 등 군용품이 추가로 발견됐다.현장 인수인계를 받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발굴된 군용품을 봤을 때 아군 전사자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면 추가 수습자 수와 국군인지 미군인지 여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식팀은 발굴 후 DNA(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신원 확인에 나선다. 서울 지역에서 6·25 전사자 유해가 다수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유해발굴감식단은 2014년 은평구에서 아군 유해 1구를 발견하는 등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모두 22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옛 광주교도소에 5·18 행불자 암매장?…관련 증언 또 나와

    옛 광주교도소에 5·18 행불자 암매장?…관련 증언 또 나와

    옛 광주교도소 재소자 농장 터가 1980년 5월 항쟁 이후 지형이 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교도소는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지목된 장소다. 지형이 바뀌었다는 암매장지 정보가 관련 증언, 계엄군 약도와도 일치해 이 자리에서 37년 만에 5·18 행불자 유해가 발굴될지 관심이 집중된다.5·18기념재단은 20일 옛 광주교도소 외곽 농장 터에서 행불자 발굴 준비 작업을 마쳤다. 지형·지물 변화상 확인과 제초 등으로 이어진 작업은 지난 18일 현장조사에 대한 후속 조처이자 이달 안으로 착수 예정인 발굴의 준비단계 차원에서 이뤄졌다. 재단은 5·18 항쟁 이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교도관으로 근무했던 퇴직자와 암매장 추정지인 옛 교도소 농장 터를 둘러보며 테니스장, 주차장, 울타리 등이 1980년 이후에 건립한 시설임을 확인했다. 이 시설물은 18일 현장조사 때 암매장지를 구체적으로 가리킨 제보자가 ‘당시에는 없었다’고 증언해 건립 이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재단은 제보자 증언과 암매장지 위치가 일치한 3공수여단 소속 계엄군 작성 약도에도 시설물 관련 정보가 없어 교도소 측이 언제 테니스장 등을 조성했는지 파악에 나섰다. 5·18재단은 여러 정황을 통해 옛 교도소 농장 터에 행불자들이 암매장당했을 것으로 보고 토지 소유주인 법무부와 발굴 착수 시기와 방법을 논의 중이다. 법무부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쓰는 탐지장비를 투입하는 방안 등을 재단 측에 제안했다. 재단은 고고학 분야 전문가인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과 구체적인 발굴 계획을 마련해 오는 23일쯤 언론에 발표할 예정이다. 3공수 부대원이 작성한 약도에 따르면 17명 안팎이 옛 교도소 농장 터에 암매장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5·18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는데 항쟁 후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굴된 시신은 11구에 불과해 농장 터가 유력한 암매장지로 주목받는다. 발굴 대상 지역은 교도소 담장 밖 외곽이나 민간인 출입을 막는 울타리 안쪽 보안구역에 속해 2015년 광주교도소 이전 후 용도를 잃고 방치된 상태다. 면적은 테니스장 2개면 정도에 긴 사각형 형태의 지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는 “여러 여건을 고려해야겠지만 이달 안으로 반드시 발굴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5·18 행불자들이 그곳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빨치산 토벌작전 영웅, 66년 만의 귀환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북한 빨치산을 토벌하다가 전사한 한진홍(당시 21세) 일병의 유해가 전사 66년여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9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 내동 마을회관에서 이 마을에 사는 한 일병의 아들 한윤식(68)씨에게 아버지의 유해 등을 전달하는 ‘호국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했다. 유해와 함께 가족에게 전달된 물품들은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 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발굴 유품 등이다. 한 일병은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살다가 1951년 1월 육군 직할부대인 결사유격대에 입대했다. 한 달여 만에 북한군 후방지역 침투 작전에 참가한 한 일병은 대원들과 함께 강원도 어은산을 향해 침투하던 중 2월 15일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빨치산을 공격하다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유해는 지난해 11월 8일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저항령에서 수습됐다. 한 등산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저항령 등반 중 유해 목격담이 단서가 됐다. 이 글이 유해발굴단 소속 서일권(38) 탐사관의 눈에 띄었고 곧바로 현장탐사와 발굴이 이어졌다. 한 일병의 신원은 아들 한씨가 이미 2014년 11월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둬 가능했다. 한 일병은 지난 2000년 국군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122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로 기록됐다. 한씨는 “너무나 감격스럽고 국방부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국군 전사자는 12만 3000여명에 이른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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