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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7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1940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던 중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 광복군에 참가했다.  그는 해방 후 중국과 대만에서 중국사를 연구했고 1958∼82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중국 근대사를 가르쳤다. 미국 하버드대(1958년)와 프린스턴대(1968년) 교환교수를 지냈다.  한·중 수교 이듬 해인 1993년 중국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산둥, 난징, 옌볜대 등 중국내 9개 대학의 객원 교수직을 맡았다. 1960∼70년대에는 3차례 한국 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중국공산당사’ ‘중국 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연구사’ ‘나와 중국’ ‘회고록 장정(長征)’ 등의 저서를 남겼고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독립운동유공표창, 건국포장, 건국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영주씨와 아들 홍규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마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메디컬 팁]

    유학생 검진프로그램 운영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달부터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건강검진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유학생 검진프로그램’은 수면내시경과 정밀 혈액검사 등 기본검사 외에 오랜 유학생활과 학업 부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로 발생하기 쉬운 우울증 등을 조기에 판별할 수 있는 정신건강 검사와 치과검사 등을 선택적으로 제공한다. 또 각종 예방접종 확인서를 포함한 건강검진 결과를 영문증명서로 발급, 번역의 번거로움을 없앴한다. 검진 비용은 69만원. 문의 및 예약:(02)2019-2800·2900. 화이자의학상 후보 공모 대한민국의학한림원(회장 조승열)은 7월 29일까지 ‘제9회 화이자의학상’ 후보자를 공모한다. 의학학림원이 주관하고 한국화이자제약이 후원하는 ‘화이자의학상’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 2명의 의학자를 선정, 각각 30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한다. 응모서류는 의학한림원이나 한국화이자제약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작성한 뒤 한림원에 우편 또는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시상식은 11월에 열릴 예정이다. 중증외상센터 문 열어 서울대병원(원장 정희원)은 교통사고·추락사고·총상 등으로 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중증외상센터(센터장 서길준)를 최근 개소했다. 센터에는 센터장 외에 외과 2명과 흉부·신경·정형외과 각 1명 등 6명으로 꾸려졌다. 소아를 포함한 모든 다발성 중증 외상환자를 관리할 이 센터는 내원 2시간 이내에 응급수술이 필요하거나 해당과 전문의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 직접 수술을 할 방침이다.
  • [내 정치를 말하다] (5)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하다] (5)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나에게 정치는 50여년 인생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10년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지는 않았다.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고시 3관왕’에서 변호사, 방송인, 주식전문가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다. 열심히 노력하면 항상 10년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정치도 열심히 할 것이고, 10년 후에 나에게 어떤 정치적 미래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요즘 강연 때마다 ‘A, B, C, D 공부법’을 강조한다. 핵심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의원도 ‘A, B, C, D’급으로 나눌 수 있다. D급은 득실을 따진 뒤 사람을 가려 만나고 조직 관리도 마지못해 한다. C급은 사람·조직 관리의 초점을 현상 유지에 맞춘다. B급은 주민 요구에 성의있게 반응하고,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A급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주민을 찾고, 없던 조직도 새롭게 만든다. 나는 A급 의원이 되자고 매일 아침 다짐한다. 나의 경력만 본 사람들은 내가 부족함 없이 성장한 ‘엄친아’라고 오해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던 광주의 변두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왔을 때 처음 ‘전라도 하와이’라는 말을 들었다. 변방의 2류 국민이라는 뜻이다. 대학 시절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하와이라고 퇴짜도 맞았다. 아버지는 “나도 제주에서 광주로 유학가 ‘섬 놈’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면서 “너는 절대 지역으로 차별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우리 집안은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서 몇십년을 살았다. 사교육은 엄두도 못냈다. 고2 때 낙제 점수를 받아 대학에 못 간다는 말도 들었다. 혼자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갔다. 지금껏 출신 지역이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이루지 못한 일은 없었다. ‘법조계 팔방미인’이라는 표현을 들으며 다방면에서 정신없이 활동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았다. 2007년 나이 50이 되자 ‘나만을 위해 살다 죽으면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시간의 10%를 남을 위해 쓰는 ‘시간의 십일조’를 결심한 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 즈음 정치할 기회도 주어졌다. 나에게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부터 읽어야 한다.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얘기를 들어야 한다. 나는 꿈이 있다. 더 많은 국민이 출신이나 배경과 상관 없이 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능력도 많은데 왜 굳이 정치할 생각을 하게 됐나. -정치권의 변화를 느꼈다. ‘금권 정치’와 ‘보스 정치’가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나 같은 모범생도 정치판에서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1999년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 때(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장인인 박태준 자민련 총재 때문에 3일 만에 공천권 반납)도 같은 마음이었나. -경솔했다. 여야 모두로부터 콜을 받았던 탓이다. 오명이랄까, 굴욕이랄까.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아내의 한표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금권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은 80억원대 자산가다. -경제적인 여유는 정치 활동에 도움이 된다. 정치를 하면서 세비 이상 쓰지만 남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된다. 윈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고, ‘후원자의 입김’에서도 자유롭다. 솔직히 후원금 한도를 다 채워도 늘 빠듯하다. 다른 의원들은 어떻게 정치하는지 궁금할 때도 많다. →패거리 정치를 지적하지만 친이계로 분류된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공천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줄서지 않았다. 나에게 정치적 보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계파 모임에 소속감을 갖고 나간 적도 없다. →정치인으로서 행복한가.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정치를 하기 전에는 동시에 8가지 일을 했다. 정치를 하면서 모두 다 내려 놓았다. 심신이 건강해졌고, 고질적인 디스크 증세도 사라졌다. 정치인으로서 행복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부탁받는 걸 피하면 안 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즐긴다. →한나라당과는 잘 맞나. -이념을 들먹이는 것은 진부하다. 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공감한다. 내가 첫손에 꼽는 가치는 자유이다. →장관이나 광역단체장은 관심 없나. -현행 시스템에서는 장관이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경력 쌓기용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서울시장 같은 자리는 해 보고 싶다. →정치는 언제까지. -10년 이상 안 한다. 10년 이상 하면 직업이 된다. 타성에 젖어 정치에 예속될 수 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마음껏 할 수 있다. 다만 시대 흐름이나 국민 정서에 맞으면 10년 이상도 할 수 있고, 반대라면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나겠다.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 리더십은. -‘당신은 스펙이 너무 좋아 문제’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를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게 두렵다. 우리나라 국민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위화감을 싫어한다.’이다. 서민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원조 공신(공부의 신)’으로 통한다. 서민보다는 엘리트나 천재 아닌가. -아이큐(IQ) 126짜리 천재를 보았는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천재’와 ‘충성’이다. 평범한 머리를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충성도 19세기에나 어울리는 단어다. 표현이 아닌 행동으로 확인하면 된다.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치는 레코드(기록)이다. 정책이든 언행이든 일관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복지 확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정부 재정이 버텨줄지 몰라도 5~10년 뒤 재정 파탄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5~10년 뒤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내 정치를 말한다’ 페이스북 facebook.com/mypolitics ●고승덕 의원은 ▲1957년 광주 출생 ▲서울 경기고·서울대 법대(수석 졸업) ▲사법시험(최연소)·외무고시(차석)·행정고시(수석) 합격 ▲미국 예일·하버드·컬럼비아대 로스쿨 석·박사 ▲사단법인 ‘드림파머스’ 대표 ▲부부 애칭:팬더(느긋하게 살자는 의미) ▲취미:아내와 장보기(부부 소통 및 세상 엿보기) ▲좋아하는 운동:개헤엄(건강관리에 효과 만점) 좋아하는 가수·노래:김장훈 사노라면(탁 트인 목소리가 매력. 콘서트 갈 정도) ▲애장품:앉은뱅이 책상(1964년 아버지의 초교 입학선물) ▲가장 자랑스러운 스펙:로스쿨 3관왕(정치인 예비코스) ▲롤모델 정치인:오바마 미국 대통령(핸디캡 극복 및 이익단체 영향 차단), 김성태(발로 뛰는 정치인) ▲좌우명: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⑦ 여성 고위 공무원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⑦ 여성 고위 공무원

    지난해 말 현재 중앙부처의 5급(사무관)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12.3%, 2694명에 이른다. 10년 전인 2001년에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었다. 본격적인 관리자로 간주하는 4급(서기관)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은 7.4%(593명)다. 5급 공채(행정고시)를 비롯해 각종 국가·지방직 시험에 불어닥친 여풍(女風)은 과장급 중간 관리자층에도 이미 불고 있다. 정부가 2002년부터 여성 관리자 임용 확대 계획을 꾸준히 펼쳐 온 덕도 있다. 그러나 고위 공무원 여성 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고위 공무원 1510명 중 여성은 56명으로 단 3.7%에 그쳤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3명 중 8명으로 가장 많고 대통령실(7), 교육과학기술부(5), 보건복지부(5), 여성가족부(4) 순이다. 아직 여성 고위 공무원이 1명도 없는 부처도 18곳이나 있는 실정이다. 정부 인력 관리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공직에 여성 진출이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현재 과장, 팀장급인 이들이 고위 공무원단에 진출하기까지는 10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연공서열로 승진하는 공무원 특성상 이른바 ‘시간차 현상’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용 확대 후 승진 기간 男보다 짧아져 정부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5급 이상 여성 관리자 임용 확대 계획’을 추진했다. 2001년 말 기준 4.8%에 불과했던 여성 중간 관리자 임용 비율을 10%까지 높이자는 게 골자였다. 실적만 따져보면 일단은 성공이다. 2002년 5.5%, 2003년 6.4%, 2004년 7.4%, 2005년 8.4%로 매년 목표치에 근접했다. 마지막 해인 2006년은 9.6%로 목표치인 10%에 미달했지만 이듬해 10%를 달성했다. 이어 정부는 고위급 여성 인력 양성 정책에 나섰다. 2007년 시작된 ‘4급 이상 여성 관리자 임용 확대 5개년 계획’이 올해 말까지 추진된다. 2006년 5.4%였던 비율을 역시 1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최근 여성 중간 간부들이 조기 승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6급에서 5급으로의 승진 기간이 남성은 9년 7개월이지만 여성은 9년 6개월로 1개월가량 빨랐다. 5급에서 4급 승진 때도 남성은 8년 10개월, 여성은 이보다 2개월 빠른 8년 8개월이 소요됐다. 그러나 아직 빛이 안 나는 부처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40개 중앙행정기관 중 방위사업청과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3곳은 4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이 0%다. 방재청 관계자는 “소방직 등 특수 직렬이 많은 부처의 특성을 감안해도 서기관급 여성이 전무하다는 건 반성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이재천 행안부 균형인사정보과장은 “균형 인사 지침을 통해 승진 후보자 명부에 포함된 여성 비율만큼 최종 승진자 성비를 가급적 맞춰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여성 수가 적은 부처에선 아직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역차별 항의를 불러올 수도 있어 강제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역차별 논란은 ‘넘어야 할 산’ 한편에선 능력과 실적, 경력에 기반한 인사 원칙상 여성에 대한 지나친 승진 우대는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지식경제부의 한 남성 과장은 “능력으로 똑같이 평가받긴 하지만 최근엔 여성이 조금만 잘하면 금방 발탁되거나 인사 배려를 해 줘 남성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한 중앙부처 여성 과장이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올해 해외 고용 휴직에 다시 선발된 것을 놓고 설전이 오간 사례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4급 팀장 역시 “여성이 일단 능력이 되면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높지만 좋은 보직인 이른바 ‘마른 자리’만 골라서 일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서 “리더 역량과 네트워킹 능력을 좀 더 키워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영국 런던의 풍경서 한국을 다시 기억하다

    영국 런던의 풍경서 한국을 다시 기억하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더군요. 딱 ‘연금술사’(파울루 코엘류의 소설)예요. 가장 소중한 보물은 멀리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집에 있었던 거죠.” 오는 14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그린(Green) & 블루(Blue)’전에 나온 박성실(47) 작가의 작품은 주로 자연의 풍경을 그린 것들이다. 사진처럼 그려 놨다는 점을 빼면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17년간 살았던 영국 런던의 풍경이라는 설명을 빼놓고 보면 그림의 배경이 어디인가도 알기 어렵다. 작가의 원래 작업은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회벽 칠하고 붉은 흙을 올려 생긴 갈라진 틈을 이용한 추상화 작업을 했다. 1987년 ‘젊은 작가 100인전’에서 비록 97번으로 가까스로 턱걸이했지만 100인 안에 들자 “시집 갈 돈으로 유학 가라.”는 아버지 허락을 얻어 영국으로 건너갔다. 출발할 때는 현대미술의 끝을 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오히려 동양적 정서에 푹 빠졌다. “귀족 친구 한 명을 사귀게 됐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한국과 일본처럼 대비되는 게 영국과 프랑스라고. 정원을 좋아하지만 영국은 자연 그대로의 정원을, 프랑스는 인공적으로 꾸민 정원을 선호해요. 물론 완전히 자연스러운 건 아니에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뭇가지가 똑같은 높이에서 시작하거든요. 사람 손이 들어가되 안 들어간 것처럼 하는 거죠. 그런 영국의 풍경에서 한국을 다시 기억해 낸 겁니다.” 작가의 고향은 전북 무주 구천동.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한동안 잊고 지내야만 했던, 숲과 물을 보며 선머슴처럼 자랐던 어릴 적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럼에도 해외 포교로 유명한 숭산 스님을 찾아가 불교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노장사상 책들도 뒤져 보기 시작했다. 생태 공동체운동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공동체도 직접 찾아가 봤다. “정말 신기하게 그쪽 사람들이 오히려 동양사상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해요. 어떤 분은 ‘되돌아갈 수 있을 때 되돌아가는 것이 진짜 진보’라는 말씀도 해주시대요. 정작 우리는 남 따라잡느라 다 버린 것들을 그들이 소중하게 잡고 있더라고요.” 전시는 사진작가 박소연의 작품과 함께 이뤄진다. (02)734-755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한국판 ‘사이버 독트린’이라도 마련하라

    북한이 최근 정보전사(해커)들이 속한 사이버부대 규모를 기존의 6배인 3000명 수준으로 늘리는 등 사이버전에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탈북 지식인 모임인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그제 북한은 “전국의 영재를 평양의 금성 1·2중학교 컴퓨터 영재반에 모아 해커로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유학 등 특전을 부여받는 이들은 대부분 해킹전문부대에 배치돼 사이버전사로 나선다. 북한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능력과 맞먹는 3만명의 사이버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에 이어 나온 이 같은 증언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그야말로 ‘사이버안보 비상사태’라도 선언해야 할 판이다. 사이버전력은 육·해·공군력에 비해 전력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크게 덜 든다. 그런 만큼 북한은 앞으로 사이버전력 강화에 더욱 목을 맬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공격은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국지적인 무력도발보다도 훨씬 참혹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사이버 특수부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새달까지 구축하기로 한 정부의 ‘사이버안보 마스터플랜’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 사이버보안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일원화된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 사이버공격은 국경이 따로 없는 글로벌 전쟁이다. 미국 국방부는 국가 기간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는 적성국가의 사이버공격을 전쟁 행위로 간주, 미사일 등 무력으로 응징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사이버테러가 각일각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이상의 ‘옵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남북 간 비밀접촉 사실을 전격 폭로하는 등 막가파식 벼랑끝 전술을 서슴지 않고 있다. 연탄가스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이버공격에 기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2008년에 발의된 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조차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국회에서 묵히는 등 안보불감증 속에 불안을 키우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공격 위험은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턱밑에 차 있는 위험이다. 사이버공격에 대한 정신·시스템 무장이 절실하다. 확실한 한국판 사이버 독트린이라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 ‘망명 티베트인’에서 ‘명동 철거민’ 기구한 운명

    ‘망명 티베트인’에서 ‘명동 철거민’ 기구한 운명

    국내 유일의 티베트 레스토랑인 서울 명동 ‘포탈라 레스토랑’이 재개발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 사장인 텐진 델렉(34)은 망명 티베트인 2세로, 박범신의 소설 ‘나마스테’의 주인공 ‘카밀’의 실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국에서 쫓겨난 델렉은 재개발 시행사에서 보내온 통보문 한 장에 이국에서 일군 삶의 터전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의 실제 인물 델렉은 티베트에서 네팔로 망명한 아버지를 둔 네팔 국적의 티베트인. 1998년 한국에 들어와 청바지 공장과 공사판 등을 전전했다. 2008년부터는 국내에서 티베트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해 3월 중국이 티베트 민중 봉기를 유혈 진압하자 그는 국내에서 ‘프리 티베트’ 시위의 선봉에 섰다.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행사가 열린 광화문에서는 티베트 국기를 펼쳐 들었다가 중국 유학생들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델렉은 그해 6월 명동성당 앞에 ‘포탈라 레스토랑’을 열었다. 티베트의 현실을 한국인들에게 더 잘 알릴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동기였다.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TV와 잡지 등에 ‘이색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런 포탈라도 재개발의 굉음을 비켜가지 못했다. 2008년 8월 포탈라가 세들어 있는 건물이 재개발 시행사에 매각되고 말았다. 그는 “그냥 건물주가 바뀌는 줄만 알았지 그 회사가 재개발 시행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4월 초 명동 제3구역이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되던 날, 상인들이 철거에 반대해 자해 소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6일 그에게 한 장의 통고서가 전달됐다. 재개발 시행사가 보내온 통보문은 ‘5월 31일까지 명도를 하지 않으면 강제 명도를 단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주비나 보상비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없었다. 수차례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답변조차 없었다. 구청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는 답변만 들었다. ●조국 현실 알리려 티베트 레스토랑 오픈 포탈라가 위치한 저동1가 일대 명동 제4구역의 가게 19곳은 같은 날 똑같은 통보를 받았다. 급기야 상인들은 비상대책위를 구성, 구청에 생존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철거 기한인 5월 31일을 넘겼지만 델렉 부부는 어떻게든 포탈라를 지킬 생각이다. 델렉은 “국회의원들은 선거철이면 가장 먼저 서민을 찾지만, 금배지를 달고 나면 서민들을 잊어버린다.”면서 철거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정자들을 비판했다. 그의 얼굴에 얼핏 티베트의 수난이 어리는 듯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災後 일본’ 건설 세계가 지켜본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災後 일본’ 건설 세계가 지켜본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지난 5월 중순에 일본을 방문했다. 3·11 대지진 이후의 첫 방문이어서 그런지 일본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이 쏠렸다.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고 한·일 관계 개선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불야성을 이루던 도쿄의 번화가는 종전보다 어두웠다. 전철역 내 에스컬레이터가 부분 운행되고 있었다. 전차 속 가득했던 광고 포스터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내가 눈으로 확인한 변화는 이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도쿄시민들에게 센다이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더 이상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었다. 의도적인 침묵 그리고 무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뉴스를 통해 접했던 것보다 훨씬 안정을 찾고 있다. 의연한 도쿄시민들을 보면서 불현듯 하나의 잔영이 스쳐 지나갔다. 일본 유학시절 가미코치(일본 북알프스의 일부 지역)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계곡 상류지역 다리(갓파바시) 앞에 있는 관광 상품가게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갓파(물 속에 사는 상상 속의 동물)의 눈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무엇인지 궁금했다. 뜻밖이었다. 작은 비닐 봉지 안에 병 조각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왜 저것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지 의아했다. 판매 수익금은 이곳의 환경보호사업에 쓰인다는 판매원의 설명을 듣고 새삼 일본인의 ‘국민성’에 감탄했다. 위기에서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더욱 빛났다. 리히터규모 9.0 지진과 20m의 제방을 뛰어넘은 쓰나미 앞에서 그들이 보여준 희생정신과 공동체의식은 ‘인류의 진화’라는 찬사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2년 뒤에 센다이와 후쿠시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일본은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진전을 이룰 것”이라는, 한국에서 만난 한 일본기업인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극복과정에서 ‘파괴적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엄존해 있다. 유동성이 취약한 재정에서 비롯된 복구 재원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관료제적 한계가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정부가 쓰나미와 원전 사태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관료주의로 대변되는 국가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가령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알펜루트의 주차료도 일본 관료주의 문제점의 방증일지 모른다. 2009년 일본의 알펜루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3000m 가까운 고지대까지 자동차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뛰어난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알펜루트의 다테야마를 다녀오는 동안 자가용 승용차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 까닭을 물었다. 하루 주차비가 5만 6000엔이라고 했다. 한국 돈으로 거의 70만원이다. 턱없이 비싼 주차료는 훌륭한 관광 인프라의 기능을 제한하는 듯했다. 자연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행정 편의주의가 일본의 관료주의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관료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한 게 이번 방문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일본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도 점차 대두하고 있다. 그 중심에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등 뉴리더들이 자리잡고 있다. 패전 이후 ‘전후일본’을 건설한 것처럼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재후(災後)일본’을 새로이 건설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내가 본 페레스트로이카’에서 “체르노빌 사고가 고르바초프 정치의 ‘결정적인 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체르노빌은 그 자체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센다이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처럼 일본의 국가주의 체제의 모순을 압축하고 있을지 모른다. 고르바초프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미래지향적 국민성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이 재난을 새로운 체제로 승화시키려는 각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본에 못지않게 관료주의적 병폐를 안고 있는 한국 역시 일본의 모순 극복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제19회 공초문학상] 공초 & 공초문학상은

    [제19회 공초문학상] 공초 & 공초문학상은

    19년 역사의 공초문학상 역대 수상자 면면은 공초(空超) 오상순(1894~19 63)의 삶과 시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1993년 이형기(1933~2005) 시인부터 신경림(1998년), 오세영(1999년), 김지하(2003년), 천양희(2005년), 신달자(2009년), 이성부(2010년) 시인 등에 이르기까지 예술 세계의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시인들의 몫이었다. 공초가 소박하며 고졸한 시어와 폭풍처럼 몰아치는 광대한 격정의 시어가 자연스레 어울리는 시를 선보였듯 역대 수상자들 또한 시에 대한 열정을 삶에 대한 관조와 인간에 대한 탐구로 끌어올려온 이들이다. 1992년 제정돼 이듬해 첫 회 수상자를 낸 공초문학상은 등단 20년 차 이상의 중견 시인들이 최근 1년 이내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고른다. 공초는 1920년대 ‘폐허’ 동인을 결성하며 서구의 폐허 의식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는 공초의 시편 곳곳에 드러나는 허무와 동양적 운명주의의 든든한 뿌리가 됐다. 하루 스무 갑씩 담배를 피워 댄 일화로도 유명하다. 호에서도 ‘꽁초’가 연상된다. 일본에 유학해 루쉰 등과 교류하며 에스페란토어를 배우고 바하이교(세계 보편 종교를 지향하는 이슬람계열 종교)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등 세계 평등사상과 인간 해방의 꿈을 품은 피 뜨거운 지식인이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경제브리핑]

    대우로지스틱스 새달 법정관리 졸업 대우로지스틱스가 이르면 6월 말쯤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서 졸업할 전망이다. 정책금융공사는 30일 대우로지스틱스에 120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기업재무안정 사모투자펀드(PEF)인 ‘블루오션 기업재무안정 제1호’를 출자했다. 국민銀 인턴 새달 300명 모집 국민은행이 6월 현재 3학년 이상 대학생을 대상으로 300명 내외의 인턴사원을 채용한다고 30일 밝혔다. 국내 대학생 200명, 해외 유학생 50명, 국내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대학생 50명을 채용한다. 다음 달 1~9일 은행 홈페이지(kbstar.com)에서 접수한다.
  • [열린세상] 조약문의 반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 조약문의 반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오늘 우리 사회에서 국제화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국제화에 대한 열망은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가 살 길은 모든 국민이 영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는 듯 교육정책도 영어교육의 강화에 집중되었고, 영어 몰입교육이 논의되었다.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특별 과외를 받게 하는 부모들마저 등장했다. 중·고등학교는 영어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학의 경우에도 수업에서 차지하는 영어강의 비율에 따라 그 수준을 평가했다. 물론 영어교육의 강화론은 비단 어제오늘 제시된 것만은 아니다. 사실 해방 직후 미 군정이 영어를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선언한 이후부터 줄곧 영어교육이 강조되어 왔다. 해방공간에서 출세를 지향하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영어를 배워야 했고, 미국 유학이 입신의 지름길로 작용했다. 미국 유학생 출신 교육관리들은 유학 초기에 겪었던 언어 불통의 한을 국내에 돌아와서 풀고자 한 듯했다. 그래서 그들은 영어 교육을 그렇게 강조했음이 틀림없지만, 국민의 대부분은 일상생활과 생업에서 영어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도 영어는 학교교육에서 계속 강조되다가 국제화의 붐을 타고 더욱 치성하게 되었다. 영어 교육의 강조는 당연한 결과로서 다른 과목의 희생을 뒤따르게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국어 교육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한국사를 비롯한 역사 교육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축소되어 갔다. 그리하여 한국사가 이번 정권 초기에 급조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급기야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는 길을 걸었다. 국어나 국사 과목은 영어 수업이라는 성역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대신에 수업 시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웃 학과와 다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어 교육의 강화 덕분에 영어를 기차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분들이 앞장서서 외국과의 조약을 추진했고, 영어로 된 조약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국민에게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단이 발생했다. 지난번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조약문의 번역과정에서 207건의 오류가 생겼다 하여 외교통상부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아마도 외교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조약에 관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자신의 모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외국어의 번역이 언어만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까지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함을 잊은 듯하다. 그들은 제도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올바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예 국내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빼어난’ 사람들일는지도 모른다. 길지 않은 하나의 조약문에서 200여 군데나 틀린 곳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온 잘못된 우리 교육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제 나라의 말과 역사를 무시한 그 잘못된 정책에 대해 조약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조약문은 자신의 몸을 던진 반란을 통해서 국어와 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아직도 이 반란을 단순한 실수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국제화시대에 영어교육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모든 국민에게 다같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일상적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갈 과목들에 더욱 많은 수업 시수가 배정되어야 한다. 인도나 필리핀이 가난한 까닭은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 일어난 조약문의 반란은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의사를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사 교육의 필수화는 당연한 일이었다.
  • 친노 6인 비공개 회동 ‘부활가’

    친노(親) 세력 대표자들이 비공개 회동을 갖고 향후 진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4·27 재·보선 이후 정치적 구심체로 검토됐던 ‘7인 협의체’가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김두관 경남지사·안희정 충남지사·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지난 28일 대전 시내 모처에서 만찬 모임을 가졌다. 당초 ‘7인 협의체’에 포함되지 않은 이병완 국민참여당 상임고문도 참석했다. 다만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개인 일정과 겹쳐 오지 못했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사전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회동은 조만간 중국 유학을 떠나는 이 전 지사를 위해 안 지사가 주선한 송별회 형식이었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를 전후로 친노의 활로 모색이 분주한 가운데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함의가 적지 않다. ‘7인 협의체’가 지도부 성격을 분명히 할 경우, 명실상부한 친노 세력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회동에서 오간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한 참석자는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오후 6시부터 시작된 회동은 3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진지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 관계자는 “야권통합, 친노 모임의 재편 등을 놓고 폭넓게 의견을 나누지 않았겠느냐.”라고 전했다. 야권 지형 재편과 관련, 연대보다 통합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정치세력 간 ‘동맹’은 경쟁적 연대라 한계가 분명한 만큼 ‘시민친화적·탈정당적’ 통합을 위해 촉매제가 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친노를 넘어서’라는 화두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내부도 조금씩 시끄러워지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18대 총선 출마자들의 모임인 ‘청정회’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청와대 김종민 전 대변인과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소문상 전 정무기획비서관 등 친노 ‘본류급’ 인사들이 결합했다. 학자 그룹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은 학술토론회를 열며 일종의 ‘정치아카데미’ 역할에 나섰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부고] 국내 첫 화랑초대 김종하 화백

    국내 처음으로 화랑에서 전시회를 연 김종하 화백이 30일 오후 4시 10분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1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4세 때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최연소 입선한 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재학 당시 교내 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꽃과 나무, 산, 바다, 숲, 여인 등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고인은 프랑스 유학 직전인 1956년 반도호텔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상설화랑인 반도화랑 개관전에서 박수근과 함께 2인전을 열었다. 현대화랑(현 갤러리 현대)이 1970년 문을 연 이후 초창기에 초대해 전시회를 연 화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고인은 2003년 이후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특히 최근 4~5년 동안은 건강 악화로 투병 생활을 했다. 지난 3월 롯데호텔 갤러리 개관기념으로 백영수, 권옥연 등과 함께 연 ‘한국 근현대미술의 재발견’ 전이 고인의 마지막 전시가 됐다. 2001년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상과 2002년 은관문화훈장, 2010년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딸 명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8시 30분. (02)2072-201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1) 근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1) 근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근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불과 10년 전까지도 일본인들은 매일같이 1000엔권 속에 그려진 그의 얼굴과 만났다. 하지만 그가 소설을 발표한 기간은 1905년 그의 나이 38세부터 49세가 되던 1916년까지 불과 12년 동안이다. 그는 천부적 재능으로 글을 썼던 사람은 아니었다. 아래의 강연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 위해 소설을 썼을 뿐이다. 작가에게는 소세키다움을, 독자들에게는 바로 그들 자신을 발견하기를 촉구하는 문학! 무엇이 소세키를 이런 자기 발견의 세계, 굴착(掘鑿)의 글쓰기로 이끌었을까. “여러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곡괭이로 광맥을 파낼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맞닥뜨릴 때까지 나아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사람, 교육을 받은 사람의 평생의 임무로서 혹은 10~20년의 주요한 작업으로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아아, 여기에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간신히 파낼 수 있는 광맥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감탄사를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토해낼 때,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자신감이 그 외침 소리와 함께 문득문득 머리를 쳐들고 오는 것은 아니겠습니까?”(학습원 강연 ‘나의 개인주의’, 1914년 11월 25일) ●‘런던의 원숭이’ 두 개의 유령을 만나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에 태어났다. 이 해는 일본이 천황제에 바탕을 둔 근대 국민국가 일본으로 거듭나던 해다. 소세키는 어려서부터 한문학을 좋아해서 두루 한서를 읽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 서양의 과학 지식과 사상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 고등교육을 시스템을 재편해 갔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소세키는 평소 문학을 좋아했던 장기를 살려 영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소세키는 처음부터 자신의 유학이 탐탁지 않았고 불안했다. 그가 받게 될 국비 유학은 청일전쟁(1895) 승리에 따른 배상금을 바탕으로 기획되었고, 일본 문부성은 유학생들이 최신의 제국주의 이론과 내셔널리즘을 습득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자신의 영국 런던 유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불안은 적중했다. 소세키는 1900년 9월 런던에 도착해서 두 가지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 첫 번째는 영문학이란 유령이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대학의 영문학과 수업을 들으며 최신의 영문학을 연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소세키는 영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을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지식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학의 수업에서는 영문법과 문학가의 약력을 겨우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영문학이란 읽으면 알 수 있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세키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문학이란 한문학의 ‘좌국사한’, 즉 ‘춘추좌씨전’, ‘국어’, ‘사기’, ‘한서’처럼 국가의 성쇠와 역사, 그안에서 활약했던 인간을 둘러싼 담론이었다. 소세키는 런던에서 한문학과 영문학 사이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것을, 어느 곳에도 영문학이 한문학보다 낫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과 유럽의 영국은 각자 다른 필요에 의해 다른 식의 문학을 발전시켜왔을 따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문학을 신봉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영국의 변두리, 영국의 식민지, 영국을 동경하는 비서구 지역 출신들뿐이었다. 영문학은 실체도 없으면서 이들 불쌍한 열등 민족들에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퇴화론’이라는 유령이다. 당시 런던의 학계와 신문기사들은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의 논리로 무장한 사회진화론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특히 영국인들은 퇴화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가 떠나 온 일본에서는 오직 서양을 닮기만 하면 진화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미 제국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영국에서는 몰락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다. 막스 노르다우가 쓴 ‘퇴화론’이 1894년 영역되어 1895년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책은 라파엘 전파나 상징주의 등의 세기말 예술이나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인간종의 퇴화가 진행되는 징조라고 경고했다. 소세키는 강의실과 런던 거리 곳곳에서 자신을 흘겨보는 무수한 멸시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들의 차가운 시선은 자신의 키 작고 노란 얼굴, 얽은 곰보자국을 퇴화의 증거로 보고 있었다. 소세키는 자신을 원숭이 취급하는 백인들 앞에서 서양의 최신 학문이란 특별한 지위에 있는 특정한 인종만을 위해 작동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연구와 글쓰기 - 유령들과 싸우는 방법 소세키는 사회진화론이 낳은 이 두 유령을 물리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소외와 열등감을 떨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런던의 하숙방 안에서 최신의 철학서와 과학서를 읽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다움을 찾는 것에 출구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설사 그것이 세상에서는 인간사에서 퇴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질지라도! 소세키는 곧바로 두 개의 유령에 대적할 두 개의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첫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당대 최첨단의 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이 달성한 성과에 비추어 근대 문학이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발달했고 그리고 퇴화할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은 1년 여의 유학 생활을 오로지 하숙방 안에서 각종 과학, 철학 등의 서적을 읽는 데에 몰두했다. 덕분에 런던에 유학하던 다른 일본인들 사이에는 ‘나쓰메가 미쳤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소세키는 일본인들에게마저 퇴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소세키는 이처럼 퇴화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자기본위’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이 태도를 강조했다. 둘째 전략은 자기본위의 길을 모색하는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이다. 한문학도 영문학도 아니고 소세키만이 쓸 수 있는 문학!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귀국 직후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1906.8)는 그가 품고 있던 위의 두 전략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이름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별반 하는 일도 없이 집안에서 소일하는 주인 선생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1905년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 열도가 들끓었던 해다. 신문 저널리즘은 날마다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미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소세키는 한가하고 찌질한 선생들이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세계를 그려보임으로써 사회진화론의 승전보에 맞서려 했다. 1907년 5월 소세키는 ‘대학이 지식을 사고파는 것이나 소설가가 글을 사고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동경제국대학 영문학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도쿄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장편을 연재했다. 대단한 집중력과 성실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후’(1909), ‘피안 지날 때까지’(1912), ‘행인’(1912~13), ‘마음’(1914), ‘유리문 속에서’(1915), ‘미찌쿠사’(1915), 그리고 미완작인 ‘명암’(1916) 등 작품 안에는 진화론적 고등교육 안에 갇혀서 자기 마음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나온다. ●근대인의 마음을 파헤치다 때때로 인물들의 얼굴에는 곰보자국이 있고, 또 많은 경우에 주인공들은 연애 후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모두 퇴화의 증거다. 소세키는 이들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질문하기를 유도하면서 결국 거짓된 욕망과 비겁한 자아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소세키에게 자기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사회가 칭찬할 만한 대단한 개성이나 새시대에 맞는 모범적 인간성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인생을 살라! 그 무엇보다 자기답게 살라! 소세키는 우리 각자가 지금 갖고 있는 부와 명예, 우정과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들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 자기본위를 위한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을 직시하는 일에 희망을 걸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제국주의와 같은 타인본위의 삶을 거부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청년과 지사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꿈꾸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오선민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이광재 7월 中유학길…내년 대선이슈 등 구상

    이광재 7월 中유학길…내년 대선이슈 등 구상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오는 7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 전 지사의 한 핵심 측근은 2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확정 발표를 보고 난 뒤 중국 칭화대에서 생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미 학교 근처에 집 계약도 끝냈다고 한다. 칭화대에서 공공정책관리 관련 교수로 직접 강의를 하거나 연구원 신분으로 생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조율 중이다. 그는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국내 활동에 제약이 많고 최문순 강원지사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어 이렇게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전 지사는 미국 유학도 고려했지만 남북관계에 있어 중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중시했다. 도지사 시절 이전에도 동북아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 부주석이나 공산주의청년단의 인사들과도 교분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지사는 귀국 시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잊혀진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물처럼 살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가 정치에 완전히 손을 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한 측근은 “내년 대선에서의 이슈를 발굴해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면서 “웅덩이에 물이 넘쳐야 다시 흐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친노 진영이 새판짜기에 애쓰고 있는 것과 관련, “친노가 하나의 정파가 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지사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도 역임하고 있어 중국과 한국을 종종 오갈 것으로 보인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필리핀 유학 한인여대생 총 맞고 숨져

    필리핀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숨진 채 발견돼 현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7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필리핀 모 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모(22)씨가 지난 24일 마닐라시의 한 호텔방에서 몸에 여러 군데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옆에는 현지인 남자친구가 총상을 입고 숨져 있었다. 이들은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방문을 열고 들어간 호텔 직원에게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가족들도 현지로 가 장례 절차를 모두 마쳤다.”면서 “호텔방에 외부인 침입의 흔적은 없지만 현지 경찰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하프타임] 김희태 바르샤 축구학교 개설

    스페인의 세계적인 축구클럽 FC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축구학교가 한국에 생긴다. 김희태축구센터(FC KHT)는 24일부터 제1기 교육생 모집에 들어간다고 25일 밝혔다. 교명은 ‘김희태 바르셀로나 축구학교’(cafe.daum.net/fckht)로 바르셀로나와 같은 색상의 줄무늬가 들어간 유니폼에 ‘FC KHT’ 엠블럼을 부착한다. 바르셀로나 구단이 파견한 코치가 상주하며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1부리그 유소년팀 등에 연간 6명 이상 유학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1년에 한번씩 현지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 26일부터 7월 14일까지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신청서를 받는다.
  •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서울은 좁다.’ 서울 자치구들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선진행정을 벤치마킹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단순 교류를 뛰어넘었다. 강남구는 26일 러시아 자치공화국 사하에서 ‘의료관광 설명회’를 개최한다. 의료 수준이 열악한 사하공화국의 부유층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의 14배에 달하는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로, 차가운 기후와 자원개발 등으로 인한 부작용 탓에 호흡계·암·심장·척추질환자 등이 적절한 진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는 공화국과 양해각서(MOU)를 교환, 지역 의료기관과 함께 어린이 대상 의료봉사활동, 의료 전문인력 육성 등의 활동도 펼 예정이다. 중구는 패션산업의 메카인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와 중국 패션의 중심지인 광저우 월수구 복장협의회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지원하고, 남대문시장의 해외판로 개척을 돕는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880만명 중 동대문패션타운 방문객이 45%인 399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패션을 통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송파구는 25일 신천동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편지와 축구공, 학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구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투게더’와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날(6월 16일)을 앞두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와 다디웨레다 지역 초등학생 300여명에게 초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그림 편지와 축구공 2500개를 전달한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빈국이지만 반세기 전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랜 우방국이다. 행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에티오피아 유학생 라지라 게타초 군이 참석해 구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구는 지난달 28일에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우물 개발사업과 태양광램프 지원 등 지구촌 희망나누기 사업도 벌였다. 광진구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자 기본소양교육의 일환으로 ‘생명의 우물파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식수가 부족한 캄보디아 농촌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사업으로 국제개발구호 단체인 ‘지구촌공생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기본 소양 교육을 받은 선화예술고와 대원고, 동대부속여고 등은 십시일반으로 모금활동을 펼쳐 지구촌공생회에 전달했다. 영등포구는 해외자원봉사활동 참여 방법 등 전문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해 다음달 7일부터 23일까지 문래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자원봉사대학’을 운영한다. 자원봉사대학은 2005년부터 다양한 자원봉사 관련 교육을 통해 전문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현재 수료생 2600여명을 배출했다. 서울시는 한국 관광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시는 다음 달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리는 ‘서울 서머세일’을 앞두고 25일 중국 항저우에서 대규모 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시는 지난달 중국 칭다오에서 관광설명회를 개최한데 이어 8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관광설명회를 열어 최근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동남아 관광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 ‘아시아의 미래’ 포스코 밝히다

    ‘아시아의 미래’ 포스코 밝히다

    포스코는 24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글로벌 트렌드의 변화와 아시아의 미래’라는 주제로 ‘2011 포스코 아시아포럼’을 열었다. 올해 5회째를 맞은 이날 포럼에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배용 국가 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박철 한국외대 총장, 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총장 등 국내 유수 대학의 총장과 교수, 아시아 연구 석학, 국내에서 유학 중인 아시아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정준양 회장이 대독한 개회사를 통해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21세기의 트렌드”라면서 “하지만 요즘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파괴와 금융위기 등을 보면 상호이해와 공동번영이라는 윤리의식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는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을 통해 밝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아시아포럼은 포스코가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을 위해 설립한 포스코청암재단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아시아의 문화와 가치 등 주요 이슈에 대한 과제를 선정, 1년간 총 4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해 그 결과를 발표, 토론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난해 응모과제 총 136편 중에서 아시아 지역 내 상호 이해 증진과 협력에 기여할 수 있는 과제로 선정된 23편 중 12편이 발표됐다. 한편 이번에는 분과를 동북아, 동남아, 중앙·남아시아 3개 지역으로 나누고 동일 지역 내 연구과제들을 묶어 발표함으로써 유사 지역 연구자들의 높은 관심과 토론을 이끌어 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정일판 남순강화’… ‘개방 성과’ 상하이·광저우 방문하나

    ‘김정일판 남순강화’… ‘개방 성과’ 상하이·광저우 방문하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방중 사흘째인 22일 자신의 특별열차를 타고 하루를 꼬박 달려 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과 중국의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쑤성 양저우(揚州)를 방문했다. 김 주석은 1991년 10월 마지막 방중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하고 있던 장 전 주석과 양저우를 방문한 바 있으며 옥으로 조각된 ‘팔준도’(八駿圖·8종류 명마 그림)를 선물로 받았다. 양저우 정부 공식 문서에는 장 전 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이 김 주석에게 양저우의 특산물인 옥기와 칠기를 여러 차례 선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일정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바오 총리가 전례 없이 “중국의 발전 상황을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초청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2001년 방문했을 때 “천지개벽했다.”며 깜짝 놀랐던 상하이를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저우와 상하이는 창장(長江) 삼각주의 핵심 산업지역으로 중국의 경제심장부라고 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내친 김에 개혁·개방의 성과가 뚜렷한 중국 동부해안을 따라 광둥성 광저우(廣州)까지 내려갔다가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일종의 ‘김정일판 남순강화’(南巡講話·톈안먼 사태 후 개혁·개방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지자 덩샤오핑이 1992년 남쪽 지방을 순례하면서 개혁·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인 셈이어서 북한이 중국 의도대로 개혁·개방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길어지면서 도대체 언제 정상회담이 열릴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 방중 행사의 백미이자 필수 코스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남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 또는 양저우를 찾아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후 주석은 지난해 8월 지린성 창춘(長春)으로 이동해 김 위원장을 만난 바 있고, 전임 장 전 주석도 1991년 김일성 주석과 난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2000년, 2001년, 2004년, 2006년, 2010년 5월 등 다섯 차례 방중에서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들러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만큼 이번에도 그 같은 전례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친 원자바오 총리도 이날 귀국하기 때문에 지난해 5월 방중 때와 마찬가지로 후 주석에 이어 원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방중 사흘 동안 모두 특별열차에서 숙박하는 강행군을 한 점도 특이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오후 9시 10분쯤 첫 기착지인 헤이룽장성 무단장을 출발, 하얼빈을 돌아가는 코스를 택해 11시간여 만인 21일 오전 8시 20분쯤 두 번째 기착지인 지린성 창춘에 도착했다. 창춘에 도착한 뒤에는 동북지방 최대 자동차기업인 이치(一汽)자동차를 시찰한 뒤 오전 11시 40분쯤 임시숙소인 난후(南湖)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 20분쯤 창춘역을 출발, 선양을 무정차 통과해 남행을 계속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기차에서 밤을 보내며 사흘간 무숙박 이동을 계속한 것은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는 한편 중국 지역을 보다 폭넓게 돌아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 위원장이 사흘간 기차를 타고 이동한 거리는 북측 지역을 빼고도 3200㎞에 육박한다.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중국 측 인사가 김일성종합대 유학 경험이 있는 장더장(張德江) 부총리라는 관측도 나오는 가운데 관례대로라면 김 위원장 방중행사를 전담하는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성광주(盛光祖) 철도부장이 밀착 수행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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