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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해외투표 어떻게] 민주당 해외 유권자 관리방안

    민주당의 ‘해외 표심’ 관리 방안은 유권자 등록운동과 투표율 제고가 초점이다. 우선, 본인이 현지 영사관에 가서 유권자 등록 및 투표를 하는 현행 ‘공관 직접 투표·이중 방문’의 법 개정을 주장한다. 공관을 직접 두 차례 방문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우편 등록을 가능하게 하거나, 총선과 대선이 1년 이내에 같이 실시되는 경우 총선 때 한번 등록하면 대선에서 별도로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8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추가 투표소 설치를 통해 공관 직접 투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개정안을 김성곤 의원이 제출했지만 공관 이외에서 이뤄지는 타국의 정치적 행위를 규제하는 일부 국가 사정으로 투표 기회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내년 선거에서 당장 적용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공간 투표의 제한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은 약 10~20%대의 투표율에 그칠 것이라고 민주당 측은 예상한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기반 활동이 중요하다. 민주당이 재외국민의 권익 보호와 정치적 활동 확대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이를 위해 재외국민 교육지원을 위한 특별회계 설치 관련 법안(안민석 의원), 정부 조직에 해외교민청을 신설하는 법안(박병석 의원), 재외국민 의료지원 등을 뼈대로 하는 재외동포재단법(박주선 의원) 등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의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구상은 ‘세계한인민주회의’(이하 민주회의)로 집결됐다. 지난해 10월 4일 창립됐다. 재외국민을 위한 당헌상 조직으로는 국내 정당사 최초의 시도다. 한나라당이 상설기구인 재외국민위원회를 둔 것과 견주면 상대적으로 위상이 큰 편이다. ‘세계한인민주회의’는 민주당의 재외동포 정책과 조직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손학규 당 대표가 당연직 의장을, 김성곤 의원이 수석 부의장을 맡았다. 지난 3월 재외국민 정책을 지원받기 위해 공모를 통해 1500여명의 민주회의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정광일 민주회의 사무총장은 “단순히 선거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고 소개했다. ‘민주주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통일, 재외국민의 권익신장, 한민족문화의 세계화’라는 4대 활동 방향이 민주당 재외국민 정책의 지향점을 가리킨다. 하지만 2012년 선거는 재외국민들의 표심이 처음으로 반영되는 무대다. 재외국민의 정치 활동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한 발 앞서 있다. 미국 LA만 하더라도 17대 대선 당시 이민 1세대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지지단체들이 난립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US 한나라 포럼’으로 통합됐고 지난해 2월 재외국민협력위원회를 구성해 100여명의 의원들을 대륙별로 안배했다. 야권 지지 단체들은 17대 대선 이후 급격히 축소됐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10여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미약한 편이다. 민주당은 이 때문에 조직 거점 확보가 시급하다고 인식한다. 미주 지역 조직은 시카고와 뉴욕, 워싱턴DC, LA, 캐나다 토론토 등 5곳에 있다. 중국은 상하이와 베이징, 홍콩, 선양, 광저우 등 공관이 있는 7개 지역에 있다. 올 상반기 중에 일본 8개 도시, 동남아 주요국가 및 유럽 지역에서 조직사업을 진행하려 한다. 그 밖에도 해외 1만 연고자 찾기 캠페인, 국가·대륙별 지원단 구성, 유학생 연대조직 발굴 지원 등의 사업을 펼친다. 유권자 최대 거주 지역인 미국의 경우, 이민 역사가 길다. 정 사무총장은 “한인회, 부인회, 향군회 등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정치성을 갖고 있지만 미국 내 주력 인사 대부분이 시민권자라, 영주권자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동남아는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거의 실시간대의 정보를 얻고 있어 국내 유권자와 동일한 정치 의식을 갖고 있다. 영주권 제도가 없어 2012년 총선에서 재외국민 부재자 선거를 할 수 있는 지역이라 전략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일본은 영남 지역 인력 송출의 역사를 갖고 있어 보수성이 강한 편이다. 민주회의 관계자는 “1980년대 이후 일본에 진출한 사람들과 유학생, 상사주재원 등의 투표율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 식 폭로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 식 폭로

    ‘빅토리아 시크릿’. 여신급 모델과 화려한 속옷으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는 브랜드다. 브랜드 이름은 중의적이다. 겉옷에는 정숙, 순결을 내걸되 속옷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의 태평성대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허위의식을 까발린다. 20일까지 서울 원서동 아트스페이스H에서 열리는 ‘오브제, 오브제, 오브제’ 전시에 걸린 박지혜(30) 작가의 작품 ‘빅토리안 스크랩 콜라주’도 마찬가지다. 정숙,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는 당연히 안온한 가정을 상정하기 마련.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적절하게 잘 수행해내야 한다. 그것은 비밀스럽고도 암묵적인 계약 같은 것이기도 하다. 박 작가는 그 시절 그림을 스크랩해 콜라주로 구성했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평온한 가정에서 곱게 잘 자랐을 것만 같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 뒀다. 작품 크기도 ‘내 집 거실에 걸어 두면 딱 좋을’ 중산층 잣대의 크기다. 고전적인 느낌의 금박 제목 명패까지 박아 뒀으니 한결 뜻이 더 명확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손은 2개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한국에서도 열혈 엄마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식 유모차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타고 있다. 평온한 아이들일까, 사육당하고 있는 아이들일까. 빅토리아적 세계관이 품고 있는 이중성에 대한 고발로 읽힌다. 아예 작가 스스로가 빅토리안 스크랩 콜라주에 등장하는 오브제가 되기로 자청한 비디오 작업 ‘깊은 물 속으로 사라진’(Lost in the Fathomless Water)도 같은 맥락 위에 서 있다. 10명의 작가가 참가한 전시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박 작가를 비롯해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졸업생들이 주축이라는 점이다. 널리 알려졌듯 골드스미스대는 영국이 현대미술 주도권을 미국에서 되찾기 위해 집중적으로 키운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스타들의 산실이다. 젊은 작가들의 감수성을 맡아볼 수 있는 자리다.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을 오브제를 통해 투사하려는 경향도 또렷하다. (02)766-50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 시각] 평창올림픽 적자라도 ‘계산된 적자’라야/김성곤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평창올림픽 적자라도 ‘계산된 적자’라야/김성곤 산업부 전문기자

    ‘K팝 유럽을 정복하다.’ “K팝요? 서구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지요. 지속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한국의 평창과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가 치열하게 경합하던 지난달 말 유럽을 다녀왔다. 그 며칠 전에는 소녀시대 등 K팝 스타들의 파리 공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리에서 한 교민을 만났다. 그는 K팝이 유럽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고, 이 음악에 열광하는 유러피안이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유럽생활 20년 동안 요즘처럼 한국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유학을 왔던 198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한국 하면 한국전쟁과 길거리 데모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남북한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했단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한국을 인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2002년 월드컵이라고 설명했다. 존재조차 미미하던 한국이라는 나라가 월드컵에서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4강에 오르자 유럽인들은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만명의 인파가 도심에 모여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은 유럽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 삼성이나 현대, LG가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이 브랜드가 한국기업인지 아니면 일본 기업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아닌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제대로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스포츠였다고 그 나름의 분석을 곁들였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의 K팝 열풍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해석했다. 워낙 다양성이 특징인 사회이다 보니 새로운 음악이나 조류가 들어오면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마니아는 쉽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감흥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이제는 비용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동계올림픽의 생산 유발 효과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술 더 떠서 올림픽 관련 직접 투자 및 소비 지출 등 직접적인 효과 21조원을 포함해 간접적인 효과까지 감안하면 무려 65조원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적자 올림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름 올림픽에 비해 겨울 올림픽은 비인기 종목이 많고, 또 시설 활용도도 낮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9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일본의 나가노는 올림픽 이후 100억 달러가 넘는 빚을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과 경합해 동계올림픽을 따냈던 밴쿠버도 적자 올림픽을 면치 못했다. 물론 흑자 도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레이크플래시드나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는 겨울 올림픽에서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도시도 단순한 장부상의 흑자일 뿐 실제 수지타산을 맞춰 보면 적자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평창은 흑자를 낼 수 있을까. 역시 비관적인 분석이 많다. 인구 5만명이 채 안 되는 지역에서 유치한 겨울 올림픽에 수십조원을 투자해 이를 뽑을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올림픽이 꼭 흑자여야만 할까? 수치상으로 너무 흑자에 얽매이다가 올림픽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적자를 낼 수 있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 제고 등 무형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를 내더라도 좀 더 치밀하게 계산된 적자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실제 개최는 차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투자도 피해야 한다. 평창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2018년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은 우리 국민 모두의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sunggone@seoul.co.kr
  • 옛 문인 거닐던 ‘이백리 양반길’ 생긴다

    옛 문인 거닐던 ‘이백리 양반길’ 생긴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송강 정철 등 옛 문인들의 발자취를 느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품길이 조성된다. 충북 괴산군은 내년까지 국비 10억여원을 지원받아 군자산 일원에 위치한 갈은·화양·선유·쌍곡 등 4개 계곡과 산막이옛길을 연결하는 총 80㎞의 친환경 명품 녹색길인 ‘이백리 양반길’을 조성, 트레킹 관광코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현재 실시설계 중이며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양반길은 총 7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는 이미 조성돼 있는 산막이옛길(8㎞)로, 괴산댐~산막이옛길~갈론마을, 2코스는 갈은구곡길(13㎞)로 갈론마을~갈은구곡~사기막마을, 3코스는 용추폭포길(7㎞)로 사기막마을~용추골~후영리이다. 4코스 화양구곡길(14㎞)은 후영리~화양구곡~송면, 5코스 선유구곡길(11㎞)은 송면~선유동~중관평, 6코스 절말길(12㎞)은 중관평~제수리재~절말, 7코스 쌍곡구곡길(15㎞)은 절말~쌍곡구곡~호롱소~다파리재~괴산댐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3코스가 3시간으로 가장 짧고, 나머지 6개 코스는 7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계곡마다 펜션들이 즐비하고 민박도 가능해 하루 이상을 묵으며 걸을 수도 있다. 양반길의 자랑거리는 선현들의 삶이 묻어나는 옛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양반길을 걸으며 마주치게 되는 계곡들은 퇴계, 우암, 송강 등 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사색에 잠기기 위해 즐겨찾던 곳이다. 선유계곡과 화양계곡은 절경에 반한 퇴계와 우암이 직접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양계곡 인근에는 우암의 뜻을 받들어 제자가 지은 만동묘라는 사당도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을 제사지내기 위해 1704년에 지어졌다. 군은 녹색농촌체험마을과 아토피문화생태마을 등 각종 체험시설과 연계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인근에 조선시대 재현마을도 조성하는 등 이곳을 관광명소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양반길 곳곳에 농산물판매장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괴산군 현민호 관광담당은 “현대적인 시설물은 코스 안내판 정도만 설치할 방침.”이라면서 “양반길과 괴산의 명산인 군자산과 칠보산 등산길을 연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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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물 수능’ 장관이 책임져라/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물 수능’ 장관이 책임져라/곽태헌 논설위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려면 1차에서 2과목, 2차에서 3과목 시험을 치러야 한다. 모든 과목에서 40점 이상을 받고,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지난해에는 6만 7000여명이 응시해 1만 5000여명이 합격했다. 평균 60점으로 합격하든, 100점으로 합격하든 개업하는 지역이 다른 것도 아니다. 성적에 따른 불이익도 없고 우대도 없다. 합격자는 똑같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대표적인 자격시험이다. 자격시험은 과락(科落) 없이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하는 게 관례다. 보통의 자격시험은 절대평가여서 응시생 중 몇등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반면 고등학교 3학년과 재수생이 11월 10일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공무원 채용 시험처럼 응시생 중 몇등인지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수능을 출제하는 기관의 장은 이상한 말을 한다. 지난달 1차 모의평가를 출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성태제 원장은 ‘물 수능’에 대한 비판과 관련, “수능이 자격시험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말했다. 자격시험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공인중개사 시험처럼 자격시험으로 한다면 많은 수험생을 합격시켜 놓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험생 간 경쟁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수능은 근본적으로 자격시험이 될 수 없다. 성 원장은 “수능은 상위권 학생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2학년도 4년제 대학의 모집정원은 38만명이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 지원만 하면 갈 수 있는 대학을 감안하면 올해 수능을 보는 70만명 중 20만명 정도만 수능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수능이 상위권만을 위한 시험은 아니지만 하위권을 위한 시험은 더더욱 아니다. 성 원장은 “수시전형이 확대되고 대입 전형요소가 다양화하면서 수능 의존도는 많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2012학년도의 경우 수시에서 62%, 정시에서 38%를 뽑는다. 수시에서는 학생부 성적, 논술·구술시험,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어학능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한다. 하지만 정시에서는 수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도 성 원장은 최악의 ‘물 수능’으로 혼란스럽게 한 뒤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에 모든 것을 떠넘기려는 듯하다. 수시가 뭔지, 정시가 뭔지 알고나 있는지…. 성 원장이 ‘물 수능’을 옹호하는 것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장관은 올초 언어·수리·외국어 과목별 만점 1%를 공언했다. 이 장관의 외동딸은 외고를 나와 미국대학에 유학을 갔다. 이 장관은 수능이 뭔지, 수시가 뭔지, 정시가 뭔지 알고나 있을까. 1차 모의평가 결과 인문계 언·수·외 만점자는 573명이 나왔다. 서울대 정시의 인문계 정원은 500명이 채 안 된다. 서울대는 물론 고려대와 연세대의 인기학과에 지원하려면 언·수·외 만점을 받아도 불안하다. 자연계 언·수·외 만점자는 160명이다. 서울대 의대를 비롯한 톱5 의대 정원을 훌쩍 넘는다. ‘물 수능’으로 논술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수능에서 실수하면 치명적인 탓에 당초 수시에는 관심 없던 상당수의 수험생이 수시 논술전형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을 잘 다니던 신입생들도 ‘물 수능’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장관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문제를 쉽게 내겠다고 말했으나 오히려 학원 배만 불려준 꼴이다. 학원연합회에서 이 장관에게 공로상을 줘야 할 판이다. 제비뽑기로 대학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시험은 시험다워야 한다. 70%를 EBS 교재와 연계해 출제하겠다면 나머지 30%는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지나치게 어려웠던 ‘불 수능’으로 사과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물 수능’으로 사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일이 터진 뒤의 사과는 의미도 없다. 이 대통령은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더 망치기 전에 당장 이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대통령이 수능 후에 돌아올 모든 것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tiger@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중동과 아랍에 ‘민주의 봄’을 안겨 준 ‘재스민 혁명’에 대한 전 세계 테드(TED) 마니아들의 찬사는 끝이 없었다.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의 공식 개막에 앞서 10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에든버러 EICC에서는 전 세계 테드x(지역별 테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운영자 교육행사 ‘테드x 워크숍’이 열렸다. 테드 측이 비영리 원칙을 실천하며 지구촌에 테드의 정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계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행사다. 44개국 110명이 참가했다. 워크숍에서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의 지평을 연 중동, 아프리카 지역 운영자들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폐쇄된 사회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테드x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재스민 혁명의 불을 댕긴 튀니지의 테드x 관계자는 “지식인들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모인 테드x가 ‘혁명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역할을 했고,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고 전했다. 이집트 테드x 카이로 운영자도 “독재정권 아래 하나의 시각만 강요받던 사람들이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자유에 대한 욕망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점차 상승효과를 본 것 같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네명의 운영자들이 참석했다. 테드x 부산의 김마니씨, 테드x 이화의 강지혜씨, 테드x 동성로의 신윤희씨, 테드x 경원대의 에이다이다. 에이다는 필리핀 출신 유학생이다. 대구대 특수교육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신윤희씨는 “한국에서 테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비영리의 원칙을 지키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다른 나라의 노하우를 배워 가고 싶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온 참가자는 “한국에서 테드 열풍이 거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라이선시들과 얘기해 보니 그 열정에 다시금 놀랐다.”면서 “기회가 되면 한국의 테드x행사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여연대 주장 ‘통신료 뻥튀기’

    참여연대가 11일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이동통신 요금 원가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낸 것은 기본료와 문자메시지 요금이 적정 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는 비판에서 시작됐다. 참여연대는 ▲기본료 최소화 ▲문자메시지 요금 대폭 인하 ▲과도하게 책정된 정액요금제 인하 등이 실현돼야 이동통신 이용자가 과도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동통신사가 유학이나 해외근무, 입대 등을 이유로 이용을 정지한 소비자에게 ‘이동통신망 사용 대가’로 매월 3500원을 부과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기본료도 이 정도 수준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동통신 이용자는 표준요금제를 쓸 경우 최소 1만 2000원의 기본료를 부담해야 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3500원도 통신사가 어느 정도 이윤을 붙인 가격”이라며 “이동통신망 유지를 위한 최소비용이 1만 2000원이라는 이동통신사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건당 20원씩 부과하는 문자메시지 요금도 지나치게 높다고 비판했다. 학계 연구 결과 문자메시지 발송 비용은 건당 0.1~3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4월 국회에서 “문자메시지 무료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문자메시지의 요금을 문제삼았다. 이동통신 요금이 지나치다는 정황은 각종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11’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 통신비 지수’는 1.607로 1.671인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은 1이다. 우리나라의 가계통신비는 OECD 평균보다 60%가 높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이동통신 요금은 10만 3370원으로 전년(9만 5259원)보다 8.5% 증가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SK텔레콤과 KT(무선 부문)의 원가보상률은 각각 122.72%와 108.83%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원가보상률은 원가(비용) 대비 수익(매출)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100% 이상이면 요금이 적정이윤을 포함한 원가보다 높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민영 아파트의 분양 원가도 공개되고 있는데 공적 영역인 통신비 원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원가가 공개되면 전문적인 분석 작업을 거쳐 적정 통신비를 산출하겠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한국인은 일본이나 중국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요? 겉보기엔 다들 비슷한데….” 파란 눈의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런 질문을 받아 봤을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나이도 잘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한테 중국 사람처럼 생겼다거나 일본인처럼 행동한다고 말하면 그걸 썩 달갑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은 분명히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이고 말도 다르며 국민성도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일만큼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나라들이 하나로 묶여진 동네가 있다. 지역은 유럽, 이름은 유럽연합(EU)이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출범 기준으로 반세기 이상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같은 화폐를 쓰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내려온 그들 각각의 민족 감정이나 국민 의식 같은 것들도 빠르게 옅어지고 얇아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한·중·일 국민 사이의 미묘한 경쟁의식이나 차이점이 EU 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영국 최고의 프랑스 전문가인 ‘폴 웨스트’를 만나 직격 인터뷰를 했다. 웨스트는 영국인 스티븐 클라크가 2005년 출간한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의 주인공으로, 프랑스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프렌치맨’ 속으로 뛰어든 열혈 ‘잉글리시맨’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뒤편의 한적한 거리에서 웨스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웨스트는 ‘정말 어이없다’는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프랑스인들 틈바구니에서 보낸 27세 청년은 여전히 파리지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강타한 소설의 주인공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다. 벌써 6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폴 웨스트. 27세다. 영국 런던 출신이다. 프랑스의 레스토랑 체인에서 영국 홍차 프랜차이즈 사업부를 맡아 1년간 일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9월에 시작해 5월에 끝난다. 제목엔 ‘1년’이라고 써 있는데 나머지 3개월은 어디 갔나. -프랑스에서의 1년이지 않은가.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의 1년은 9월에 시작한다. 다른 나라는 전부 1월에 시작하지만.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면 샹젤리제 거리에서 마치 신년 축하 키스를 나누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수백 쌍이 늘어서서 말이다. 그런데 그 키스의 이유가 “이제 휴가가 끝났으니 아쉽다.”는 것이란다. 정말 어이없지 않나. 소설을 5월에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가 휴가가 시작되는 때라서다. 뭐 한 3개월간은 나라 전체가 멈춘다고 보면 된다. 아! 여름에 파리가 붐비는 이유? 그 사람들 중에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다. 다 관광객이지. 휴가가 끝나자마자 “내년 휴가에는 뭘 하지?”라는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책임자로 일하면서 고생 엄청나게 했다. →책 제목이 비위생적이다. 그냥은 ‘똥’이고, 고상하게 말해 봐야 ‘대변’ 정도인데, 굳이 제목에 그걸 넣은 이유가 무엇인가(불어 ‘Merde’는 ‘제기랄!”, ‘빌어먹을!’ 정도의 의미를 갖는 가벼운 욕설로도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된다.). -처음 파리에 도착하고, 회사 면접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하나하나 적응해 가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애완견들이 나타나 내 가방에 실례를 하고 도망갔다. 주인도 같이 있었는데. 내가 파리에서 낯설고 어이없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난 그 기억 속에서 1년을 산 거다.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입장에서 실제로 들어 보니 어떻던가. -아,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 웃기는 건 자기들끼리는 그걸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특유의 악센트는 둘째치고 자기네 알파벳 읽듯이 영어 단어를 읽을 거면 그냥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 부하 직원 중에 하나는 분명히 자기가 영어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봐도 걘 헝가리어를 하고 있었다. →책에서 보면 당신은 부하 직원들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혀, 100%, 결코, 한 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 책임자로 스카우트하면서 나한테 직원을 뽑을 권리를 안 줬다. 참고 봐주려고 했더니 내는 아이디어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첫날 회의에서 밑에 직원들이 카페 이름을 ‘내 차는 부자다’(My tea is rich)라고 짓자고 주장하는데, 확 다 부숴 버리고 싶었다. 내가 며칠 동안 저건 문법상으로 영어가 아니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를 못 하더라. 그래서 보스한테 팀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원하는 팀을 꾸렸나. -웬걸. 팀원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보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펄쩍 뛰더라. 팀원을 자르면 회사 직원 전체가 파업을 하고, 그게 비슷한 업종 종사자들의 파업을 유도하면서 사회문제화되고 프랑스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했다. →에이, 말도 안 된다. 지나친 비약 아닌가. -그땐 나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프랑스인들은 파업을 거의 스포츠로 생각한다. 당연히 누구나 해야 하고, 재미도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아마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 설문조사를 한다면 1위는 ‘페탕크’(금속과 나무공을 던져서 가깝게 만드는 게임)가 분명하다. 영국에선 노인들이나 하는 스포츠인데 이걸 그렇게 좋아한다. 그 다음이 아마 파업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지하철이랑 버스 파업을 하는데 승객들한테 알려 주지도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좌절한 기분,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다. →영국도 가끔 지하철 파업을 하지 않나.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파업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하하. 정도가 있는 법이지. 프랑스인들이 파업을 참는 건 자기도 다음에 이 즐거운 스포츠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웨이터가 갑자기 디저트 차례를 남겨 놓고는 “파리의 웨이터들이 오후 1시부터 파업을 하기로 했다.”면서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이유가 뭐였는 줄 아나. 유로화가 통합된 이후에 사람들이 팁을 1유로 동전으로 주면서 예전에 프랑 동전을 받을 때보다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그래 갖고 파업을 하면 과연 손님들이 2유로 동전을 주겠는가. 완전히 파업을 위한 파업이다. 게다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의 웨이터들은 이미 계산서에 15%의 봉사료를 받고 있다. →달팽이(에스카르고) 음식에 도전하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그게 인상적이라는 건 당신도 끔찍하게 여겼다는 얘기지? 살아 있는 채 찜통에 집어넣고, 소금을 치고. 거참 그걸 왜 먹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 →책을 몇 권 써도 할 얘기가 끝도 없이 나오던데, 실제 만나 보니 정말 맺힌 게 많나 보다. -이왕 인터뷰를 하는데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혹시 ‘사데팡’(Ça dépend·그때그때 다르다는 뜻)이라는 말을 아는가. 아시아 친구들은 그게 프랑스에서 제일 싫은 거라고 하던데. 프랑스 애들은 무엇을 하든 처음에는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지만, 몇 번 조르면 오히려 안 되는 경우가 드물다. 유학생들, 특히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체류증 연장 신청을 하러 갈 때 아침에 부부싸움 한 공무원 앞에 서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나이와 성별, 학력까지 모두 같아도 담당자의 기분에 따라 허가가 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망할 놈의 사데팡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하나. →영국과 프랑스가 예전부터 견원지간이라고 하지 않나. 당신이 자꾸 이렇게 말하는 건 기본적으로 프랑스인을 싫어하기 때문 아닌가.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EU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 식민지에 불과했던 미국이 세계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고, 아시아까지 치고 올라오니까 함께 뭉쳐서라도 잘살아 보자고 만든 건데, 이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프랑스랑 이탈리아를 보자고. 우리가 보기에 둘은 너무 비슷해. 자기들 음식이 세계 최고라고 하고, 와인이랑 커피라면 환장하고, 휴가 긴 것도 비슷해. 슈퍼마켓에서 줄이 절대 줄어들지 않는 것까지 똑같단 말이지. 근데 프랑스 친구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어디에나 출몰하고 시끄럽고, 친한 척하면서 엉겨붙는다고 욕하기 일쑤거든. 반대로 이탈리아 친구들은 프랑스인들이 쓸데없이 딱딱하게 굴고, 음흉하다고 욕하는 게 일상이지. 프랑스 친구는 남한테 얻어먹는 걸 치욕스럽게 여기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집에 초대를 못해서 난리를 치거든. 심지어 잘난 조상 덕에 먹고사는 것까지 똑같은데 말이지. 아마 둘이는 서로 너무 닮아서 참지를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다들 다른데 똑같은 화폐 쓰고 국경 없애면 다같이 뭉쳐서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거란 안이한 발상 자체가 문제였던 거지. →영국 얘기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것 아는가. 사실 영국도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는 부지런한 편이지만 독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게으른 나라 아닌가. -독일 애들은 지나치게 꽉 막혀 있는 거고. 간단한 서류 하나 잘못됐다고 사람을 붙잡아 두거나 일을 중단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이 일을 하나. 뭐 이러고 저러고 다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이미 EU로 뭉친 거 다시 돌리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지. 근데 도청 범죄자나 키우는 우리 정치인이나, 스캔들에 시달리는 이 나라 대통령이나, 어린 여자애 돈 주고 사서 문제 생긴 옆동네나 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답이 없는 거다. 정치인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서는데. →사실 그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누구랑 누구랑 다르다는 얘기만 했는데, 전 세계가 같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1년 동안 파리지앵으로 살면서 느낀 게 바로 그거다. 당신이 나의 독설을 원하는 것 같아서 안 좋은 경험만 추려 얘기하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결국엔 다 맞춰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다만 나를 만든 스티븐 클라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심지어 책도 잘 팔리는 상황이니까 당분간은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서 마음껏 웃어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과장과 풍자로 채워진 책이고 실제 지은이의 직업도 방송 코미디 작가다. 프랑스의 실제 모습이 이와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니 절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편집자 주) 파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스티븐 클라크 영국의 언론인. 10년 가까이 프랑스 파리의 언론사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쓴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을 출간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폴 웨스트는 그가 경험한 내용을 보여 주는 실존 인물에 가깝다. 당초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200부만 찍었던 책인데 출판사의 제안으로 공식 출간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6년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클라크는 현재 라디오 방송의 코미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참고문헌 똥 속에서의 1년/ A year in the Merde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프랑스인을 혐오한 1000년/ 1000 Years of Annoying the French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달팽이에게 말하기/ Talk to the Snail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상반기 日 대지진 영향 부산 ‘귀국 이사’ 31%↑

    일본 대지진과 원전폭발 사고에 따른 방사성물질 공포로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부산으로 ‘귀국 이사’를 한 사람이 크게 늘었다. 11일 부산 용당세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의 귀국 이사는 86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658건)에 비해 31.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관은 대지진과 방사성물질 피해를 걱정해 일본에서 급하게 귀국한 교민이나 일본인이 늘면서 귀국 이사 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귀국 이사란 국외 근무나 유학 등의 목적으로 외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하고 난 뒤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을 말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데이비드 강·빅터 차 교수는 누구

    빅터 차(50) 조지타운대 교수와 데이비드 강(46) 남가주대(USC) 교수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다. 사석에서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이 분명하다. 차 교수는 컬럼비아대에 유학한 아버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1961년 태어났다. 그 역시 아버지를 따라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고 교수 생활을 하다 2005년부터 2년여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직을 맡았다. 부시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북 문제에 대해 조언한 측근으로 한국계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고위직에 진출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강 교수는 미국에 유학 온 평북 정주 출신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샌프란시스코 부근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남가주대(USC)에서 한국학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두 교수은 모두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하며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 ‘개입’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차 교수는 개입 정책이 인센티브 제공과 외교적 압력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 수행돼야 한다는 ‘매파적 포용’을 강조해 왔고 강 교수는 부시 행정부 때의 강압적 대북정책 탓에 한반도 상황이 악화됐다면서 적극적 개입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차 교수와 강 교수는 2003년 한반도를 바라보는 서로의 선명한 시각차가 담긴 공동 저작 ‘북핵퍼즐’을 내놓아 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피아니스트 손열음 “나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나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벌써 4차례나 ‘카레야’가 호명됐다. 잠시 뒤 ‘욜루음 쏭’이란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이 불렸다. 1974년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이 콩쿠르의 ‘꽃’이라는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한 데 이어 한국인으로는 37년 만에 2위를 차지한 손열음(25·독일 하노버국립음대)이 주인공이다. 25년 전 ‘열매를 맺음’이란 뜻의 이름을 지어준 어머니의 의도가 결실을 본 셈이다.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손열음을 만났다. 1998년 금호문화재단의 음악 영재 프로그램 1기로 뽑혀 첫 리사이틀을 금호아트갤러리에서 가졌던 그에게는 “집처럼 편안한 곳”이다. 지난 4일 금의환향(1974년 정 감독은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한 이후 고향 원주에서 휴식을 취한 덕인지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다만, 첫 인상이 예상을 비켜 갔다. 깔끔한 회색 원피스에 굽 높은 힐을 신은 것까지는 ‘예상 범주’였는데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 타고 헐레벌떡 왔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목에서는 적잖이 의외였다. 깨지기 쉬운 유리잔처럼 섬세한 음악인을 떠올렸던 게 착오였다. →인터넷으로 시상식을 봤는데 침착해 보이더라.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처방받아 놓은 지는 오래됐는데 혹시 중독될까 봐 한 번도 안 먹다가 그날 먹었다. 그런데 약효가 확실했다(웃음). 자신이 있어서 콩쿠르 내내 떨리지는 않았다. 콩쿠르를 한 번 할 때마다 1년씩 수명이 주는데 이번엔 정말 재밌었다. 내 연주에 만족한 건 아닌데 할 만큼은 했다. →성격이 긍정적인 편인가. -콩쿠르에 나갈 땐 당연히 제일 잘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1등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낙천적이다. →1등을 놓친 게 못내 아쉬운가. -지금은 괜찮다. 처음부터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소문도 많았고. 하지만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상관없다. 이제 더는 콩쿠르에 안 나갈 거다. 나이 제한이 보통 28~32세니까 그만 나갈 때도 됐다(웃음). →연주할 때 보면 쉴 틈 없이 입을 움직이는데. -(음)계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면서 친다. 오랜 습관이다. →8명이 겨루는 준결선부터 드레스를 검정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검정색을 입었다. 준결선부터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때문에 너무 묻히지 않으려고 붉은색을 입었다(웃음). →언젠가 쓴 칼럼에서 콩쿠르에 대해 ‘음악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만한 기회가 없으니까 나가는 것이다. →콩쿠르를 통해 얻는 것-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에게는 3년간 수많은 연주 기회가 부여된다-도 많지만 잃는 것도 있을 텐데. -어떤 친구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나가기도 하더라. 그러면 콩쿠르만을 위한 음악과 연습만 하게 되니까 본인에게도 손해다. 나는 1~2년에 한 번 정도라 그렇지는 않다. →피아노는 어떻게 시작했나. -한국 나이로 다섯 살 때 동네 교습소에서 맨 처음 배웠다. 내가 졸랐는지 엄마가 권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가 집에 있었는데 곧잘 갖고 놀았다. 아무래도 시골이니까 더 돋보인 모양이다. 절대음감이 있어서 선생님한테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한참 놀고 싶을 때인데. -피아노 때문에 못 한 건 거의 없다(웃음). 피아노 교습소 다니기 2년 전부터 미술학원도 다녔고,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예원학교 대신 원주여중을 다닌 건 굳이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아예 외국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러려면 가족들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희생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부터인가. -처음 피아노를 친 순간부터다(웃음).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그렇다. →손열음에게 음악이란, 피아노란 무엇인지 정의한다면. -음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피아노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지휘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 내가 직접 해야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는 흥미를 못 느낀다. 죽는 순간까지 피아니스트로 남고 싶다. →콩쿠르 수상자 중에 국내에서 영재 교육을 받은 이가 4명이다. 조기 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영재 프로그램 출신이라 객관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다만, 너무 어릴 때 유학을 가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봤다. 언어도 힘들고. 사춘기는 지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만 스무 살에 독일로 갔다. 물론 언어는 준비하고 가는 게 좋다. 나는 ‘프렌즈’ 같은 미드(미국 드라마)도 열심히 봤다. 지금은 영어가 한국말보다 편하다(인터뷰 중 가끔 뜸 들이며 답변하기도 했는데,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말로 ‘번역’해서 그렇다고 했다). →독서광에다가 미드까지 챙겨 보면 연습은 언제하나. -연습을 매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고 싶을 때만 한다. 그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6~7시간씩 꼼짝 하지 않고 한다. 하기 싫을 땐 아예 안 한다. 어떻게 매일 연습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다 보면 더 이상은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을 텐데. →음악가는 타고나는 건가, 길러지는 건가. -100% 전자다. 재능이 없는데 노력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당신도 타고난 것인가. -그렇다(웃음).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음악을 정말 좋아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나보다 음악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건 자신 있다. →롤모델이 있다면. -하하, 1년 단위로 바뀐다. 19세기 초에 마르셀 마이어란 프랑스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바로크는 물론 당대의 음악까지 섭렵했다. 나도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물론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만 꼽으라면 모차르트다. 레코딩도 하고 싶은데 음반사가 흥행성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웃음). →8월까진 한국에 머물 텐데 뭘 하고 싶은가. -매운 음식을 실컷 먹고 싶다. 매운 닭갈비와 떡볶이, 매운 건 다 좋다. 동부(원주 프로농구팀)의 경기를 보지 못해 아쉽다(그는 열혈 농구 팬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로또 된 듯 기뻐… 국제규격 연습장·실업팀도 생기겠죠”

    [평창, 꿈을 이루다] “로또 된 듯 기뻐… 국제규격 연습장·실업팀도 생기겠죠”

    떨리는 마음에 우황청심환을 깨물었다.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긴장되는 방송 출연, 게다가 생방송이었다. ‘방송 초보’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상황. 루지 대표팀 이창용(26) 코치는 모 방송사에 초대돼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발표 방송에 출연했다. ‘내 새끼’라고 표현한 국가대표 선수 6명 중 2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평창”이 발표되는 순간. 이 코치는 목이 메었다.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생소한 카메라에 긴장해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카메라가 꺼지자 비로소 실감났다. 이 코치는 방방 뛰었다. 꿈만 꾸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코치는 발표 전까지 마음을 다스렸다. 2010년, 2014년 동계올림픽에서 두번이나 실패했던 평창이었다. 그때마다 이 코치는 울었고, 방황했다. 상실감이 워낙 컸기에 이번에는 기대를 안 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는 “평창에서 올림픽을 열면 여건이 좋아지겠지만, 안 됐다고 풀죽어서 방황하는 건 선수 자격이 없는 거죠. 올림픽 개최와 상관없이 우리는 루지 국가대표인 걸요.”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다던 ‘쿨가이’는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어린아이처럼 표정관리를 못했다. 그동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숨을 고른 이 코치는 “로또 당첨된 것 같아요.”라고 했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미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던 빙상(스피드스케이팅·쇼트트랙·피겨스케이팅)도 그렇지만 특히 썰매 종목의 여건은 열악하다. 경기장은 당연히 없고, 스타트 훈련장도 지난해에 겨우 생겼을 정도. 이 코치는 “올림픽을 치르게 됐으니 국제규격 경기장은 당연히 생길 거고요. 실업팀도 창단하고 전지훈련 횟수도 늘려 준다고 했거든요. 루지 선수들한테는 혁명이죠.”라고 눈을 반짝였다. 루지 대표팀은 대부분의 훈련을 경기장이 아닌 필드에서 해왔다. 다른 나라가 국제규격의 슬라이딩센터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탈 동안, 우리는 경사진 아스팔트를 내려오며 긁히고 넘어지고 뒹굴었다. 여름 내내 아스팔트에서 좌우로 턴하는 연습을 하며 컨트롤만 배웠다. 그나마 지난해 생긴 스타트 연습장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코치는 “월드컵 대회에 나가면 1등하고 10등 차이가 0.1초거든요. 그게 다 스타트에서 갈려요. 그나마 스타트 연습장이 생겨서 기록이 줄었죠.” 1년의 절반 이상을 강원도 알펜시아에서 보내지만 실제로 루지를 타는 건 겨울 시즌 때 ‘반짝’일 뿐이다. 겨울에 전지훈련 가서 한 달 정도 훈련하면서 슬슬 감을 잡았고 바짝 컨디션을 끌어올려 기량이 절정일 때 시즌이 끝났다. 그리고 또 하릴없이 아스팔트를 누볐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즌은 늘 새롭고 생소했다. ●힘든 환경에서도 작년 아시안컵 우승 이런 환경 속에서도 루지는 희망을 쏘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아시안컵(일본 나가노)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차지한 것. 루지는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아시안컵이 사실상 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회다. 자신감도 부쩍 생겼다. 이 코치는 “우리나라에 경기장만 생기면 썰매도 세계 톱 클래스에 설 종목이라고 확신해요. 썰매는 일단 많이 타는 게 중요하거든요. 평창에 경기장이 생기면 매일 타면서 감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라고 기대했다. 이 코치가 처음 루지와 인연을 맺을 때만 해도 이런 ‘빛나는 순간’은 꿈으로 생각했다. 시작도 다소 무모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보고 루지에 ‘꽂힌’ 이 코치는 그해 3월 바로 무주로 내려갔다.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올림픽 때 루지에 반해서 3월 18일에 혼자서 전학갔어요. 꿈 하나만 믿었죠.” 선수조차 없는 생소한 종목이었지만 가족들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선수도, 실업팀도, 경기장도 없지만 언젠가 동계스포츠가 발전하면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루지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루지 감독은 황당하게도(?) 레슬링 선수 출신의 박순식(현 무주리조트 과장)씨였다. 당시 루지연맹 회장이었던 쌍방울 회장이 종목을 육성시키려다 회사 직원 중 ‘운동했던 사람’을 추천받았고 레슬링을 했던 박순식씨가 덜컥 루지 감독을 맡았다. 말이 감독이었지 거의 선수와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멤버가 ‘썰매박사’ 강광배 전 대표팀 감독과 이용 현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 등이다. 이들이 싹을 틔웠지만 강광배 감독이 오스트리아로 썰매 유학을 떠나면서 루지는 명맥이 끊겼다. ●이 코치 올림픽서 ‘썰매 전복’에 눈물 그 다음 세대가 이 코치. 겁 없이 덤비다 보니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부푼 기대를 안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 출전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공식 연습 때 60명 중 29등을 했던 이 코치는 실전에서 고꾸라졌다. 1차 시기에 썰매가 뒤집혔다. “관중들 환호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긴장했어요. 조종도 안 하고 그냥 정신없이 내려가다가 뒤집혔죠.” 참 많이도 울었단다. 올림픽 후 방황하던 이 코치는 2004년 루지를 그만뒀다. 군대 영장은 계속 날아오는데 철없이 돈만 써대며 운동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고. 마침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서 희망도 사라졌다. 직업군인을 하려고 특수부대에 지원해서 교육받다가 다쳤다. 다시 일반 육군으로 재입대하는 등 꼬이고 꼬여 무려 4년을 군대에서 보냈다. 전역 즈음, 연맹에서 대표팀 지도자를 해보라는 러브콜이 왔다. “콜!” 지난해 4월 지휘봉을 잡았고 선발전을 거쳐 뽑힌 6명(남3, 여3)의 감독이 됐다. ‘초짜’들과 함께 아시안컵 동반우승으로 사고를 친 루지 대표팀은 평창 유치로 쾌속 드라이브가 걸렸다. 이제 탄탄대로다. 이 코치는 “2014년 소치올림픽 때 루지 전 종목에 출전하는 게 목표예요. 평창에서도 화끈하게 달려 보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오토 마을 붕붕 친구들(KBS2 오후 3시 35분) 마일스와 조니, 그리고 마리아와 캘리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힘들 때가 많다. 프랭클린은 이들이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 보기로 한다. ●로맨스타운(KBS2 밤 9시 55분) 봉이는 순금 아버지에게 고스톱을 끊겠다고 약속하면 1급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순금 아버지는 강태원 집에 초대받는다. 한편 당첨금을 나눠 가진 식모들은 1번가 주인들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리고 다시는 복권 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황룡 앞에 1등 당첨 복권을 들고 있는 순금(성유리)을 닮은 여자가 나타난다. ●불굴의 며느리(MBC 밤 8시 15분) 지은이 영심에게 신우를 포기하라고 하자 영심은 기가 막힌다. 영심은 지은에게 홧김에 신우를 확 꾈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마침 신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고, 영심은 신우 보기가 민망해진다. 한편 비비아나는 혜원을 찾아 홀로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혜원은 비비아나와 함께 있는 호텔 사장이 진우임을 알게 된다. ●드라마 스페셜 시티헌터(SBS 밤 9시 55분) 진표는 나나를 향해 총을 겨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윤성은 급히 나나에게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낸다. 자신들을 향해 잔인한 웃음을 짓고 떠나버리는 진표를 바라보는 윤성은 분노로 이를 악문다. 한편 윤성은 김종식 처벌 계획을 세우고 이사장실에 잠입한다. 그런데 마침 그곳을 찾은 영주와 마주치고 만다. ●교육, 화제의 인물(EBS 낮 12시 10분) 도시의 아이들은 점수와 입시 경쟁 속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바쁘게 살아간다. 이런 도시 아이들이 회색빛 공간과 속도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색다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화제다. 그것은 바로 한 학기 또는 1년 이상 시골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먹고 즐겁게 생활하는 산촌 유학 프로그램이라는데….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과거 전설의 아이돌은 누구이고 어떤 모습이었을까. 10대는 모르는 30~40대 이상 사람들이 오빠를 외치며 열광했던 과거의 스타들이 궁금하다. 예전의 전설들을 만나 본다. 세상살이에 찌들어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된 이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설적 인물들의 달콤 살벌 즐거운 라이벌 대결 토크쇼를 함께한다.
  • “퇴직한 아버지 그림자 처신 신중케 하는 거울”

    “퇴직한 아버지 그림자 처신 신중케 하는 거울”

    “부친의 ‘후광’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자마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책임감이 생기고 처신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죠.” 대(代)를 이어 공직에 투신한 특허청 특허심사정책과에 근무하는 임현석(35·기시 33회) 서기관의 얘기다. 임 서기관의 부친은 2004년 특허청 상표의장심사국장으로 퇴직한 임육기(63·행시 13회)씨다. 공직이 ‘잘나가는 직장’이 되고 우수 인력이 수혈되면서 부부·부자·형제 공무원 등이 많아졌지만 2대가 한 부처에서 근무한 사례는 흔치 않다. 더욱이 특허청은 지방조직이 없어 평판이 그대로 유지되기에 후손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는 “솔직히 누구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면서도 “(부친에 대해)좋은 기억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 공직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허청 근무로만 보면 임 서기관이 부친보다 선배다. 임 서기관은 카이스트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7년 기술고시에 최연소 합격한 뒤 98년 특허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반면 부친은 산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국장으로 재직하다 2000년 특허청으로 옮겨왔다. 부자가 같이 근무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임 서기관은 2000년 입대(장교) 및 미뤄놓은 학업을 마친 후 2005년 복직했다. 임 서기관의 당초 꿈은 공직자가 아니었다. 그의 기억 속에 공직과 공무원은 바쁘고 힘든 직업. 어릴 적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고 주말과 휴일에도 출근을 했지만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86년 아버지의 유학으로 2년간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임 서기관은 “영국 생활을 통해 공무원 및 국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 것도 이때”라고 말했다. 임 국장은 아들이 공직의 길에 들어섰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성실과 청렴, 국가관을 설파했다. 업무 및 생활에 성실해서 남에게 인정받고, 봉급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점을 지금도 아들에게 강조한다. 임 서기관은 먼 훗날 아버지를 모시고 특허법률사무소를 경영하는 ‘꿈’을 남몰래 세워놨다. 그는 “부친이 공직자의 최고 롤 모델은 아니지만 선배로서 아버지의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한다.”면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자기 통제의 장치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 아이들 역시 저나 제 동료를 보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반대할 생각이 없다.”며 3대 공무원 탄생을 예고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금천 - 난징대 양해각서 교환

    금천구 고교생들이 중국 난징(南京)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최대 6개월까지 어학 연수도 갈 수 있다. 구는 지방자치단체로는 드물게 해외 유수 대학인 난징대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고 5일 밝혔다. 금천이 교육 낙후 지역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차성수 구청장은 지난달 난징대를 방문해 MOU를 이끌어 냈다. 구는 매년 4명씩 유학생을 보낼 예정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학생들을 난징대로 어학 연수를 보내게 되는데 구는 이들이 내년에 신입생으로 선발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상은 수학 능력을 갖추고 학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이다. 난징대는 국립으로, 중국 5위권의 명문대다. 난징대는 이번 MOU 교환에 따라 금천의 고교생들을 위한 특별입학전형을 신설하고 어학 연수 프로그램도 검토할 예정이다. 난징대가 금천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인이 많은 모여 사는 대표적인 지역이어서다. 이에 발맞춰 금천구도 지역 중국인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양국 문화 교류 활성화 방안을 세우고, 난징대에서 파견하는 연구원도 받기로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조선 로열패밀리’ 문헌 한데 모였네

    ‘조선 로열패밀리’ 문헌 한데 모였네

    “이거, 참 잘됐네.” 이항증(72) 선생은 꼼꼼했다. “이곳 전체가 오동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습할 때 물기를 머금고, 건조할 때 물기를 내뿜는 습성이 있습니다. 3층 전시장은 앞으로 더 많은 기증 기탁자료들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천장 높이를 7.5m로 설계했습니다.” 앞서 가던 송순옥 국학자료팀장이 수장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선생은 그 말 하나하나 다 확인해 보려는 듯 수장고 내부를 일일이 손으로 만져 봤다. 5일 경기 분당시 하오개로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에서 열린 장서각(藏書閣) 신축 개관식. 조선왕실의 모든 문헌이 집대성된 곳이다 보니 한중연은 또 한 가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사대부 명문가의 문헌까지 모아 보자는 것. 왕실과 사대부를 합쳐 이른바 ‘조선의 로열 패밀리’를 집대성하겠다는 포부였다. 한중연은 이를 위해 227억원을 들여 장서각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서 고문헌을 기증한 43개 가문 가운데 8개 가문 대표들을 개관식에 초청했다. 이 선생은 이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선생의 증조부는 석주 이상룡(1858~1932). 석주는 조선이 망하자 경북 안동에 있던 가산을 모두 정리하고 만주로 건너가 우당 이회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인물이다. 때문에 유학을 공부한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 전형으로 꼽힌다. 이후 집안은 파란만장했다. 아들 이준형은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내몰리다 결국 1942년 자살했고, 손자 이병화는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 정권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1952년 숨졌다. 이로 인해 이 선생은 어린 시절 한동안 고아원을 전전해야 했다. 이 선생은 개인적 고난보다 증조부의 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고 한다. “고문서를 많이 갖고 있는 분들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도난, 멸실 걱정이 제일 컸죠. 증조부가 남기신 소중한 자취를 내가 잘못 다루면 어쩌나 전전긍긍이었어요. 증조부가 가산을 정리해 고향을 떠난 뒤 안동 임청각에 제대로 된 주인이 살아본 적이 없어요. 눈에 띄는 대로 가져가면 그뿐이었죠. 그나마 다행인 건 1970년대 중반인가, 일부 유물을 정리해서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그게 언론에 보도되니 ‘이제 석주 집에는 더 볼 게 없다’며 도둑도 안 들어요. 그래서 한시름 놨죠. 하하하.” 그래도 결국 장서각 기탁을 결심했다.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자 씨름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봤자 이걸 내가 지켜낼 방법이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탁해버린 겁니다. 그 뒤 한중연에서 어떡하나 봤는데, 기록을 꼼꼼히 해제하더라고요. 동네 어르신이나 먼 친척분들이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던 것이 다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장서각이 재정비됨에 따라 한중연은 ‘21세기 장서각 연구사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1년에 20억원씩, 5년간 100억원의 돈을 들여 보유하고 있는 왕실·사대부 문서를 전부 해제·정리하기로 한 것. 김학수 한중연 국학자료조사실장은 “새로 지은 장서각은 고문헌 보관에서부터 연구, 수리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면서 “갈수록 고문헌 보존이 어려워지는 세상이니 장서각을 믿고 (고문헌을) 맡겨 달라.”고 당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5일 신축 개관한 장서각 수장고에서 송순옥 국학자료팀장이 ‘조선 왕실 족보’ 선원록(璿源錄) 편찬과정을 기록한 선원록의궤의 보관상태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내부가 모두 오동나무로 꾸며진 장서각 수장고 안에서 문헌 기탁자들이 문서 보관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용어클릭] ●장서각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한 뒤 황가의 문서를 한데 모으기 위해 1908년 설립했으나, 일제에 흡수되면서 유명무실해져 버린 기관이다. 요즘 떠들썩한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일부이고, 규장각은 이 장서각의 일부이다.
  • 재벌가 자녀는 외국大 좋아해

    재벌가(家) 자녀의 외국 대학 선호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재벌가 2, 3세들이 대부분 국내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뒤 경영학석사(MBA) 코스만 외국에서 밟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상당수가 중학생 때 아예 유학길에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4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 순위 30대 재벌그룹 총수의 직계 자녀와 4촌 이내 친족 중 만 20세 이상 146명 중 59명(40.4%)이 외국 대학에 진학했다. 10명 중 4명꼴로 외국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뜻이다. 외국대학 선호 현상은 최근 10여년간 더욱 뚜렷해졌다. 2000년 이후 대학에 들어간 재벌가 자녀 23명 중 20명이 외국행을 선택했다. 모두 20대 연령인 이들의 외국대학 진학률은 무려 87%에 달한다. 그룹별로는 효성과 롯데, 한화 총수 가족의 외국대학 진학률이 높았다. 효성그룹은 조사 대상자 7명 중 조석래 회장을 포함한 6명이 국내 고교 졸업 뒤 일본과 미국 등에서 대학을 다녔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가족도 6명 중 신 회장을 포함한 5명이 일본 등에서 대학을 나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가족은 김 회장과 세 자녀 등 4명이 외국 대학을 다녔다. 이 밖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태회 LS 명예회장 등 가족들의 국외대학 진학률이 높았다. 한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가족은 이 회장(일본 와세다대)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이 국외에서 대학공부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서울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연세대를 졸업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가족은 모두 국내 대학을 나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잉락 친나왓의 운명/김종면 논설위원

    “기업은 일종의 국가다. 국가는 하나의 기업이다. 둘은 같다.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62)은 그런 소신대로 나라를 경영한 정치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러니 국가와 자신의 사업을 혼동했다. 돈으로 권력을 얻고, 그 권력으로 다시 돈을 벌어들인 위험한 재벌정치가. 하지만 빈민과 농민층에겐 소외받는 대중을 일으켜준 영웅으로 통했다. 엘리트 경찰에서 동남아 최고의 통신재벌로, 총리에서 마침내 극좌 혁명가가 되기까지 극적인 삶을 산 그를 빼고 태국의 정치를 말하긴 어렵다. 태국의 현재 모순과 미래의 전망이 그의 한몸에 응축돼 있다. ‘탁신의 제국’ 태국에서 지금 거대한 정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제 치러진 총선거에서 탁신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44)이 이끄는 제1야당 푸어타이당이 승리, 태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하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전 총리가 남긴 부(負)의 유산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외신에선 잉락에게 온갖 달갑잖은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탁신의 트로이 목마’ ‘탁신의 아바타’ ‘태국의 에바 페론’…. 이쯤 되면 ‘남매 총리’ 기록을 세운 잉락에겐 반면교사도 정면교사도 탁신일 수밖에 없다. 잉락은 과연 탁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제2의 에바 페론 운운하는 불명예를 떨쳐버릴 수 있을까. 심각한 경제난에도 모든 농민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겠다는 등 선심성 공약을 쏟아냈으니 뒷수습이 문제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은 ‘포퓰리즘의 대명사’였다. 잉락이 에바의 길을 가느냐 않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에바와 잉락의 포퓰리즘은 뿌리가 다르다. 그런 만큼 전개 양상 또한 다를 수 있다.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에바의 포퓰리즘이 한맺힌 핏빛 포퓰리즘이라면, 유복한 가정의 유학파 잉락의 그것은 단순한 선거용 장밋빛 포퓰리즘일지 모른다.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래 18차례나 군부에서 들고 일어난 ‘ 쿠데타의 나라’. 어렵사리 점화된 민주화의 기운이 또다시 압사당해선 안 된다. 태국의 민주주의가 홍등가에 넘실대는 화려한 불빛만큼이나 허황한 것이란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탁시노믹스’(탁신경제) 향수 속에 봇물을 이룬 태국판 포퓰리즘을 보는 우리의 소회는 착잡하다. 포퓰리즘 망국론까지 나오는 대한민국 아닌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얘기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5) ‘금오신화’ 김시습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5) ‘금오신화’ 김시습

    다섯 살에 ‘대학’과 ‘중용’을 배우고 시와 산문을 지었던 신동,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저항했던 생육신, 천재 시인이자 전기소설의 저자, 공자적인 이상과 원칙을 죽을 때까지 고수했던 유학자, 세상을 등진 채 산림을 방랑하며 술 마시고 곡하며 노래했던 ‘거짓 미치광이’, 머리 깎고 유랑하며 불교 공부에 매진했던 비구, 노자와 장자를 공부하며 연단과 양생을 실천했던 도가. 김시습(1435~1493)의 화려한 이력이다. 김시습, 그는 평생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삶의 여정을 걸었다. 그는 유학의 원칙을 포기한 적이 없으면서도 승려로 자처하고,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의 길을 가면서도 불제자로 알려지기를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한 것을 탐구하고 괴이한 일을 행하는 색은행괴(索隱行怪)나 방외인’으로 단정 짓기도 어렵고, ‘행적은 승려지만 본마음은 유학자’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지기였던 대제학 서거정의 말처럼 그는 입산도 출산도 마음대로 하고 유학에도 불교에도 구애됨이 없었다. 그는 공자이면서 불자이자 노장이었고, 동시에 공자도 불자도 노장도 아니었다. 김시습의 사상적 방랑은 줏대 없는 흔들림과는 달랐으니 진리를 현현하는 구도자의 몸부림 그 자체였다. 김시습은 천재였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식별하여 말보다 먼저 천자문을 배웠으며, 세 살 적엔 글을 지을 줄 알았고, 다섯 살에는 시와 산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세종이 그 천재성에 감탄하여 비단을 하사하고 장성하면 크게 쓰리라 약조까지 내렸다. 그는 학문에 놀라운 진전을 보이며 관료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 ●불의한 세상에 맞서기… 비타협의 순수성 그러나 1455년 21살 그의 삶은 전변한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신하가 왕을 참람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절망하여 책을 불사르고 똥통에 몸을 빠뜨리는 등 미친 척 행동하며 유랑을 시작한다. 얼마 뒤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사형당하고, 끝내 단종도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다. 김시습은 저자에 버려진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고, 제사 지내주었다. 그는 희망 없는 세상과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 관서, 관동, 호남 등지를 떠돌며 때론 비분강개하고 때론 처절한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나그네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김시습이 머리를 깎고 승려를 자처하며 전국을 떠돈 이유는 단순히 목숨을 보존하고 세상을 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학자로서는 현실을 구제할 수 없고, 탈속한 승려로서만이 그 정의의 세계, 비타협의 정신을 현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멱라수에 빠져 죽음으로써 더러운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초나라의 굴원과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미치광이, 천치바보 등 사람들이 조롱하고 욕해도 김시습은 타협하지 않았다. 불의한 세상에 대항하는 길은 거기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김시습은 더욱 견결하게 세상을 비판하며, 혼탁한 세상과 대치했다. “이내 마음 못 꺾으리 어느 위력도/ 옛날도 지금도 이 마음 빛나리라/ 순 임금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높고 낮은 차이란 본디 없는 것/ 대장부는 언제나 염치가 있는 법/ 세상 눈치 보면서 이리저리 따르랴/ 학자와 문인은 역사에 남아 있다/ 제왕의 칼부림도 역사는 못 막으리(‘대장부’)” ●묘비에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라 써달라 1462년 28살, 김시습은 긴 유랑을 끝내고 경주 금오산(지금의 남산)의 용장사에 정착한다. 그는 매일 맑은 물을 올려 예불하고 예불이 끝나면 곡을 하고 곡이 끝나면 노래하고 노래가 끝나면 시를 지었다. 시가 끝나면 또 곡을 하고는 시를 태워버렸다.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조문하는 고통스러운 행위. 김시습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 서서 불의한 세상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절대 낙관할 수 없는 절망적 현실의 횡포, 그렇다고 비관만 하며 사람살이의 이상과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는 상황. 바로 이 지점에서 전기소설 ‘금오신화’는 탄생한다. 김시습은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인정과 진실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단코 포기될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장가도 못간 채 홀로 사는 양생, 왜구의 침입으로 절개를 지키다 결혼도 못하고 죽은 낭자, 이 두 사람의 기이한 만남과 사랑.(‘만복사저포기’)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간신배들을 물리치지 못해 원한을 품고 죽은 한 선비가 마침내 저승(남염부주)에서 간악한 무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고, 한미하지만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경주 선비 박생이 남염부주의 차기 왕으로 임명되는 이야기.(‘남염부주지’).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사랑이나 정의와 같은 진리들이 반드시 인간 세상 밖에서라도 해원될 수 있으리라는 불가사의한 희망을 보여준다.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일지라도 인간은 꿋꿋이 신념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함부로 낙관할 수는 없지만 신념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진리가 실현되리라는 것. 이것이 김시습이 은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진실을 믿는 김시습.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1471년 성종이 즉위하자 37살 김시습은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근처 폭천정사에서 10여년을 지낸다. 성종의 등극으로 김시습은 세상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며, 경세제민의 능력을 갈고 닦는다. “나라 창고에 쌓인 재물은 모두 백성들이 마련한 것이며, 윗사람들의 옷과 신발은 바로 백성들의 살가죽이며, 음식 요리는 백성들의 기름이며, 궁전과 수레도 백성들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며, 세금과 공물, 그리고 모든 용품도 죄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백성들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것은 원래 군주에게 총명과 예지를 다하여 백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다스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애민의’) 꺾이지 않은 예봉, 정치에 관한 확고한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훼손된 세상은 되돌아올 줄 몰랐다. 1481년 폐비윤씨 사건이 일어나자 47살 김시습은 다시 양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상의 처한 자리가 곧 깨달음의 장 김시습은 한 번도 안주한 적이 없었다. 세상을 등졌을 때도,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방랑할 때도, 정착했을 때도 어느 한 순간도 진리를 향해 가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방편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학의 도이기도 하고, 불교의 도이기도 하고, 노장의 도이기도 했다. 그에게 유불선은 ‘길은 달라도 마음을 기름은 한 가지’로 회통된다. 일상의 모든 행동에서 사심을 끊어버리고 공평한 마음을 회복하여 인을 실현하는 유교의 길, 양생이나 연단으로 탐욕을 끊음으로써 본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장의 길, 일상응연처(日常應然處)에서 모든 집착을 끊어내고 나라는 실상이 없음을 깨닫고 모든 존재들이 상호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불교의 길은 김시습에게 공히 진리를 찾아가는 방편들이었다. 일상의 처한 자리에서 필요에 따라 유자도 되고 불자도 되고 노장도 되었다. 그에게는 이 사상 사이에 어떤 차별도 없었다. 욕망이 들끓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불의한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그는 모든 사상의 자양분을 섭취하고 실천했다. 그에게 문제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일상과 진리 사이에 어떤 틈도 없게 하는 것. 진리 그 자체로 살아가는 일. “나의 삶과 부처 사이에 틈이 없으며 나의 유통이 곧 부처의 유통이다. 부처의 원이 자재하고 장엄하므로 나의 원도 자재하고 장엄하다.” 김시습은 부처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게 하고, 공자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게 하고, 노장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도록 방랑하고 또 방랑했다. 그 어느 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김시습의 삶은 결국 하나였다. 구도의 길이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길이 바로 그것.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夢死). 묘비명에 새겨달라고 했던 이 말보다 더 잘 그를 형용할 표현은 있기 어려울 것이다.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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