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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꼽힌다.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치료’의 자리에 ‘진단’의 가치를 새롭게 이식하는가 하면, 대졸 고학력자가 홍수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다 유럽의 융성을 이끌었던 전문직업인 제도인 ‘마이스터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단순하게 마이스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청만 높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마이스터 육성프로그램을 도입해 미래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의식이 강해 ‘대학은 나와야 사람 노릇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의 묵은 의식에 과감하게 혁신의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 바로 한국로슈진단(주) 안은억 대표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개인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 소년  그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궁핍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1978년에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 시절에 ‘돈으로 다리를 놓는’ 귀족성 조기유학이 아니라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이 빈곤국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는 우리 4남매를 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겼다. 여섯살 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라 막막하기만 했다”면서 “그런 가운데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의 삶은 이렇게 반전을 이뤘다.  안은억 대표의 아버지는 해방공간을 살았던 여느 지식인들처럼 열렬한 좌파였다. 좌파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좌파 경향은 독립운동사에서도 나타나듯 현실 속 지식인의 뇌리 속에 박힌 뿌리 깊은 항일의식의 발현이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의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좌파적 성향에 빠져들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작은 아버지는 국군으로 싸우다 전사했으니, 불행한 역사가 만든 슬픈 가족사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었다. ■비극적 역사가 투영된 가족사  그러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훈이 그랬듯 그도 인민군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종전 후에 그런 사실이 밝혀져 옥살이를 해야 했다. 연좌의 악폐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그런 사상범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배제’와 ‘억압’의 굴레를 견디지 못해 술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어머니를 만나 누이 셋 등 4남매를 두었으나 어머니는 안 대표가 여섯 살 나던 해에 돌아가셨고, 현실에 절망해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여덟살 나던 해에 보육원에 맡겨져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 했고, 그의 스위스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그 때 내가 스위스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동네 불량배쯤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혈혈단신 스위스로 향한 그가 정착한 곳은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10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샹트 갈렌(St.Gallen)이라는 도시였다. 섬유산업으로 기반을 닦아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였다.  스위스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 물론 페스탈로치 장학생들이 모두 순탄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 프로그램으로 유학길에 오른 50여명 중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고, 더러는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산의 역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생의 초반을 산 그에게 스위스는 기회의 땅이었다. ■한 세대의 종언 그리고 또다른 시작  그에게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재회는 삶의 이유였으나, 비운의 역사에 온몸으로 맞섰던 아버지는 그가 스위스로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누나들은 어린 동생에게 이런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고,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때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운명을 알았다. 그로서는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희망의 축 하나가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이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가난한 나라, 불행한 아이’로 살면서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 하나로 버틴 그에게 비록 힘에 부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곧 희망의 소실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아버지와의 이별을 안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런 귀국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좌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고등학교와 상트 갈렌대를 마쳤으며,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딴 뒤 스위스 회사의 한국지사에 지원해 마침내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학연과 지연이 지배하는 고국에서, 가족이라고는 세 누이 뿐이고, 지연은 이미 의미가 없었으며, 학연조차 없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능력 뿐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힘을 기른 그는 2009년 로슈진단에 터를 닦아 생명과학 분야 본부장을 거친 뒤 2012년 드디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몸담은 조직에서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유일한 빽그라운드는 내 회사의 직원들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가 겪은 성공 체험을 한국에 이식하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하게 소통 지향적이고, 상향식이다. 그것이 조직의 힘이라고 믿고 거기에서 새로운 발상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그가 한국의 변혁을 기대하며 주창한 것이 바로 ‘마이스터 시스템’이었다. 의료 진단 분야에서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회사의 목표와 함께 추구하는 그의 마이스터 정신은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착을 시작했고, 그런 이상의 현실화를 목도하면서 그는 고국에서 색다르지만 의미 있는 씨앗 하나를 발아시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안은억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다. 마이스터 정신의 실천자 자격으로였다. 그가 로슈진단의 수장이 된 이래 경영 측면에서의 성과가 눈부신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이스터 정신을 보급하면서 얻는 보람도 컸다. “학력 과잉의 한국사회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 마이스터 정신에 있다”는 믿음을 그는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 최초로 조직검사용 첨단 샘플트렉킹 시스템인 ‘밴티지’를 설치해 병리 진단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그로서는 경영상의 수익이라는 기업적 지향과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에 스스로를 던진 셈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엄격하게  로슈는 현재 연간 매출액이 70조에 이르며, 특히 진단과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공고하게 세계 1위를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출 규모가 1700억원을 넘어서 진단 분야에서 단연 톱의 자리에 올라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1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역시 신뢰 기반을 존중한다. 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민군의 아들로 태어나 먼 이국에서 고아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서 고국이 더없이 값지고 귀한 그에게 역사는 그를 살아 숨쉬게 하는 자양분이며, 현실은 반드시 바꾸고 바뤄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며, 앞으로도 그런 지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그의 진정성은 그를 만나봐야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투철한 ‘열린 사람’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그의 정신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경기장 난입 팬 껴안고 보호한 로드리게스 “외모만큼 훈훈한 팬서비스” 감동

    월드컵 득점왕 하메스 로드리게스(23)의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이 돌발사건 덕에 더 달아올랐다. 23일(한국시간)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 따르면 홈구장 베르나배우에서 열린 로드리게스의 팬 대면식에는 관중 4만6천여 명이 운집했다. 로드리게스는 10번이 새겨진 흰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던지거나 차는 방식으로 관중석에 나눠줬다. 그 과정에서 한 남성팬이 운동장으로 뛰어들어 로드리게스를 껴안았다. 이 남성은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목이 졸린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로드리게스는 경호원들의 제지를 뜯어말려 팬을 다시 일으켜 세운 뒤 축구공 하나를 건넸다. 경호원들의 양해를 얻어 어깨동무하고 난입 팬을 필드 밖까지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훈훈한 장면에 관중의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운데 또 한 명의 팬이 난입했다. 이 팬은 로드리게스를 껴안기 전에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필드 밖으로 끌려나갔다. 로드리게스는 퇴장당하는 이 팬에게는 포옹 대신 축구공 하나를 직접 건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거액을 들여 영입한 슈퍼스타들은 열성팬들을 깍듯이 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작년 9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친선경기에 난입한 팬을 경호원들의 거센 제압으로부터 보호했다. 호날두는 난입 팬을 한참 껴안고 귀엣말까지 나누고 나서 필드 밖으로 보냈다. 알바니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 팬은 경기장 난입 때문에 기소돼 자국으로 추방될 처지에 몰렸다. 호날두는 나중에 이 상황을 전해듣자 미국 사법당국에 탄원서를 보내 해당 팬이 추방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하도록 돕기까지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지창·오연수 부부 미국행에 대해 “이민설 떠돌았지만...진실은”

    손지창·오연수 부부 미국행에 대해 “이민설 떠돌았지만...진실은”

    손지창·오연수 부부는 23일 오후 두 아들의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두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어바인에 자리를 잡고 2~3년 지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손지창·오연수 부부의 이민설과 관련,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자녀들의 미국 정착을 도와주기 위해 출국할 뿐”이라고 전했다. 또 “이들 부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기 활동과 사업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연수는 지난 22일 방송을 끝으로 MBC 월화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하차했다. ‘트라이앵글’은 24회에서 2회 더 연장했지만 오연수는 출국 일정에 맞추지 못해 유학을 떠나는 설정으로 마무리됐다. 손지창 오연수 미국행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손지창 오연수 미국행,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이기에” “손지창 오연수 미국행, 이민아니니 다행” “손지창 오연수 미국행, 모든 일이 잘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객정책·교육 실패 세월호 참사 불러와”

    “여객정책·교육 실패 세월호 참사 불러와”

    “우리는 내릴 수 없는 대한민국호에 타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100일째가 되는 24일, ‘내릴 수 없는 배’를 펴내는 경제학자 우석훈(46) 박사는 세월호 참사를 한마디로 ‘연안 여객 정책의 실패와 중등 교육의 실패가 결합한 결과’라고 요약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10월에 세상에 나올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국 사회가 참사를 쉽게 잊을까 두려워 펜을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07년을 관통한 사회과학 서적 ‘88만원 세대’의 저자답게 참사의 배경과 대안을 경제학 관점으로 풀어냈다. ●해운업계 부패로 치부땐 재발 자명 그동안 세월호 참사 요인으로 선박의 평형수 부족,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불법 개조 등이 거론됐다. 우 박사는 “사고 원인을 단순히 해운업계 부패로 보면 참사는 100% 재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해진해운은 업계 1~2위였지만, 비용을 최소화하려다가 참사를 냈다”면서 “고유가 시대에 저가항공, KTX 등에 밀려 수익을 낼 수 없던 선박업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즉, 선박업 자체가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수익을 억지로 내려다 보니 ‘안전’이란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연안 여객선 안전을 한국해운조합에 맡겼다. 그는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들이 재취업하는 한국해운조합에 안전 감독 권한을 내주고 당국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것은 언뜻 보면 안전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긴급 상황 때 청와대가 질 책임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세월호 참사를 중등교육의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2011년 부산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은 페리 산업이 어려우니 수학여행을 보내 달라고 교육당국 등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결국 수학여행 비용 일부가 페리 산업의 생존에 보태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동원해 업계의 이익을 보장해 줬다는 것이다. 이어 “석 달 만에 교육부가 수학여행을 재개한 것도 경제 논리에 밀린 것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1조 투입해 여객선 공영제 실시해야 ‘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인재(人災)가 날 때마다 ‘무서워서 자식 키우겠나. 이민 가야지’라고 말하는 국민은 많지만 실제 이민자, 유학생의 수는 나날이 줄고 있다. 그는 “결국 우리 모두 내릴 수 없는 대한민국호에 살고 있다”면서 “슬픔을 이겨내고 차분하게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자답게 그는 수익성이 바닥인 연안 여객선업 회사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운영할 방안으로 완전공영제를 주장했다. 그는 “연안여객업을 공영화하는 데 1조원이 채 안 든다”면서 “정부가 순차적으로 선박회사들을 사들여 충분히 이룰 수 있으며 구체적인 재발 방지 방안이 특별법에 포함되지 않으면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진로진학캠프 통한 현장 체험활동, 대학입시에서도 유리

    진로진학캠프 통한 현장 체험활동, 대학입시에서도 유리

    미래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2013년부터 자유학기제가 도입됐다. 현재 시범운영을 거쳐 2015년에는 전체 중학교의 50%, 2016년에는100% 자유학기제에 기반해 수업을 받게 된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업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과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진로탐색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교육전문가들은 일부의 우려와 달리 자유학기제가 오히려 성적이나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확실한 목표와 꿈을 가진 학생들이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학업성취도도 높다는 것이다. 실제 입시컨설팅이나 수시컨설팅에서도 진로를 명확하게 결정한 학생들이 유리하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목표의식의 경우 진로 맞춤형으로 학업을 진행하고, 면접이나 논술 등에서도 훨씬 유리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별도로 진로, 진학을 위한 다양한 주말체험학습, 현장체험학습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업 위주의 체험도 좋지만 목표로 하는 대학과 학과를 미리 체험하고, 미래의 선배 멘토를 만나 꿈을 키우고, 원하는 대학의 입시를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어 학부모와 수험생 모두 반기고 있다. 진로컨설팅 및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산교육(http://uod.co.kr)의 진로진학캠프도 국내 유명대학과 함께 현장체험캠프를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카이스트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 서울교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홍익대, 항공대, 국민대, 중앙대, 서울시립대, 서강대, 한국외대, 한양대, 동국대 총 15개 대학이 참가하는 지산 진로캠프는 전문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갖춘 현장 중심 교육이 진행된다. 커리큘럼은 △ 카이스트 과학 △ 연세대 금융∙기자∙아나운서∙약학 아카데미 △ 고려대 법의학∙법학∙티처∙PD∙행정 아카데미 △ 서울교대 초등교사 △ 성균관대 글로벌 경영 등 캠프는 특화대학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외에도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하는 S-camp와 드림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 공부 잘하는 법을 전수하는 교육컨설팅 시간을 갖는다.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캠퍼스 투어를 비롯해 전문가 강연, 수시컨설팅, 입시컨설팅 등 입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만한 대학입시정보가 제공된다. 특히 개인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진로컨설팅은 빅데이터 및 데이터마이닝 분석 기술을 이용해 지난 5년간 서울대, 연세대 등의 주요명문대 합격생들의 합격 수기, 합격 자소서를 토대로 한다. 권태욱 대표이사는 “주입식, 암기식 경쟁 교육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목표를 세우고, 꿈을 향해 미리 준비하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과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직업 체험은 물론이고 대학과 학과를 미리 체험함으로써 목표의식이 생기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참가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역단체장 인터뷰] “친박 계파 틀 갇힌 국정운영에 당원·국민들 마음 떠났다”

    [광역단체장 인터뷰] “친박 계파 틀 갇힌 국정운영에 당원·국민들 마음 떠났다”

    정치권의 ‘미스터 쓴소리’ 계보를 잇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사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 냈다. 그는 “친박(친박근혜)이라는 틀에 갇혀 국정운영을 해 왔기 때문에 당원·대의원은 물론 국민들의 마음이 떠났다”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현 정부의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과 관련, “모든 공무원을 도둑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정부가 집권 2년 차를 맞았는데. -집권 첫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발목을 잡혀 아무것도 못했다. 또 인사 문제로 1년 6개월을 허송세월했다. 집권 2기 내각의 목표가 국가개조(국가혁신)라고 했다. 이 부분에 상당한 회의감을 갖고 있다. 국가개조를 하려면 집권 초에 시동을 걸었어야 했다. 첫해에 힘없이 끌려다니다가 지금 와서 무슨 힘이 있어서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정부가 국가개조를 할 수 있다고 과연 믿을 수 있나. →국정운영이 꼬인 이유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두 달간의 준비기(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다. 이때 대통령은 임기 5년의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통틀어 보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두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선에 들떠 허송세월한 것 아닌가. 대통령 취임 전에 총리와 장관들을 엄선해 발표하고 여론 검증을 다 받고 인사청문회를 모두 마친 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소고기 파동 한 방에 5년 동안 무력화된 정부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인사 문제로 헤매다가 세월호 사태가 터지니까 이명박 정부보다 더 힘이 빠졌다. →불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박 대통령이 소통을 안 해서, 소통이 부족해서 불통 문제가 불거진 것은 아니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때 꼭 들고 나오는 단어가 소통이다. 정파적인 시각에서 계속 그렇게 사용해 왔다. 친박이라는 틀, 계파라는 틀 속에서만 국정운영을 해 왔기 때문에 당원·대의원의 마음과 국민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고 본다. 정치인은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새누리당 당원이나 대통령을 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 →집권 2기 국정운영의 주요 과제인 관피아 척결 방향은. -대한민국 정치가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도 경제성장을 이루고 또 나라 운영 체계가 굴러가는 것은 대한민국은 기업들의 노력과 관료 공무원들의 시스템화가 잘돼 있기 때문이다. 관피아는 일부 산하기관이나 그 이익 로비 단체들 사이 뇌물 스캔들의 문제다. 정부 기관이나 산하단체에 관료들이 내려가는 것을 비난하는 건 잘못됐다. 경험 없는 시민단체들이나 자기의 욕심만 부리는 정치인으로 채우라는 것인가. 뇌물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만 강구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과잉 확대해석해 관피아라는 말로 관료 전체를 도둑으로 몰고 간 것은 한국 사회 전체의 큰 잘못이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부와 신분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관료사회를 개혁한다고 행정고시를 없애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노무현 정부 때 사법시험을 없애고 난 뒤 유력 자제들만 로스쿨로 진학했다. 현대판 음서제도가 부활했다. 이제 외시·행시 계통도 그렇다. 외무공무원 특채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산 외교관 자제들이 유리하다. 스펙이 좋으려면 외국 유학을 갔다 와야 한다. 서민들은 무슨 근거로 추천을 받을 수 있겠나. 이게 바로 신분의 대물림이다. 재벌 비난과 함께 부의 대물림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하려던 것이 다시 사회 지도자 계층에서 신분의 대물림 현상을 낳은 것이다.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인재 등용 방법에서 객관적 지표인 고시제도를 모두 없앤다는 것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한다. 나라 발전을 가장 저해하고, 계층 간의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아 있는 3년 7개월 동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지지율 조사는 무의미하다. 다시 출마할 것도 아닌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보여 주기 위한 행사를 하고 재래시장이나 돌고 오고, 이것은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만이라도 지지율이나 대중적 인기에 얽매이지 말고, 집권 초기 세운 꿈을 소신 있게 펼치는 정부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여기저기 눈치 보고, 여론 눈치 보며 아무 일도 못하고 허송세월하면 나라도 국민도 불행해진다. →최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이 당선됐는데. -전당대회에 대통령이 참석했는데, 친박계의 서청원 의원이 현장 투표에서도 크게 졌다. 이미 당에 레임덕이 와 버렸다는 의미다. 또 전당대회 후보 가운데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키워드를 내세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무성 체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야당의 역할이지 여당의 역할은 아니다. 정부나 청와대를 보완해 주는 게 여당의 역할이다. 여당이 야당과 똑같은 잣대로 정부나 청와대를 비판하기 시작하면 당의 인기가 오를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같이 몰락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청와대가 잘못하는 것을 사전에 이야기해서 고쳐 주는 기능을 해야지 견제 기능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당까지 청와대를 견제하고 비판하고 나선다면, 모두 같이 몰락한다. →전당대회 이후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될 조짐이다. -일부 친박 핵심 세력들은 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정부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세력 확대에만 골몰했다. 가장 최근에 전국의 당 조직을 장악한 사무총장이 전당대회에서 떨어진 것만 보더라도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정권 출범 후에 친박들이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 당원과 대의원들의 마음이 왜 떠났는지 알 수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일부 친박들의 횡포가 심했다. (경선 경쟁 상대였던 박완수 후보를) 친박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도 밀었다. 일부 친박들이 나를 제거하려고 덤볐는데 내가 제거되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친박 세력이라는 것이 뿔뿔이 흩어져 없어지리라 본다. 정리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교황님도 뒷담화를 할까?

    교황님도 뒷담화를 할까?

    다음달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출판가에 교황 관련 서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천주교 관련 출판사는 물론 일반 출판사까지 앞다퉈 쏟아 내고 있는 책들은 교황의 강연과 대담을 통한 메시지 전달은 물론 교황의 재조명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이 가운데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진슬기 엮음, 가톨릭출판사펴냄)와 ‘교황의 10가지’(차동엽 지음, 위즈앤비즈 펴냄)는 비교적 프란치스코 교황을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사제들이 교황의 메시지에 천착한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뒷담화만’은 지난해 착좌 직후부터 6월 21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에게 전했던 따뜻한 위로를 모은 책. 로마 유학 중인 한국 신부가 교황의 강연에 감명받은 현지인들이 유튜브에 올린 내용들을 어감까지 살려 우리말로 옮겼다. 연인과 가족,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전하는 교황의 가르침을 목소리와 말투는 물론 관중 반응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풀어 쓴 게 특징이다. ‘교황의 10가지’는 교황의 핵심 메시지를 10가지로 추려서 정리한 책. 교황청 직속 라테란대학 교수진으로부터 기획자문을 받아 역대 교황들 계보 속 프란치스코 교황의 위치와 의미를 명쾌한 해설로 정리했다. 교황이 전한 기쁨, 행복, 사랑, 용서, 치유, 죽음, 고독, 축복, 비전, 혁명의 이야기들을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로 압축해 이끌어 낸다. 그런가 하면 신학자·사제가 교황과 직접 나눈 대담과 육성 소개, 분석집도 눈에 띈다.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안토니오 스파다로 지음, 솔 펴냄)가 교황의 숙소에서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담집이라면, ‘교황과 나’(김근수 지음, 메디치 펴냄)는 한국의 해방신학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이 가운데 ‘나의 문’은 단순한 교황 인터뷰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무대 뒷이야기’들을 곁들여 교황이 전하는 말의 의미를 설득력 있게 풀었다. 교황에게 영감을 준 문화적·인간적 배경까지 알 수 있도록 꾸민 게 특징이다. ‘교황과 나’는 교황 개인을 영웅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예수회, 프란치스코, 아르헨티나’라는 문화와 조직 차원에서 접근한 책. 보수적인 교황청이 왜 개혁 교황을 선택했는지와 한국 교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채병영 옮김, 하양인 펴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육성을 생생하게 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한 교황의 메시지를 통해 가정, 사회, 교회의 당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설명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규제 완화는 지방자치 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

    “규제 완화는 지방자치 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

    김대중 정부 이후 기업활동에 대한 지방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오히려 지난해 부처별 등록 규제 숫자는 7648건으로 전년보다 220건 증가했다. 규제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훨씬 많아 중앙정부 규제는 1만 5054건, 지방정부가 5만 665건으로 3.3배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선 ‘끝장 토론’을 벌였으나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정책 추진 동력이 주춤한 상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17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규제 개선방안을 제시하며, 규제완화는 지방자치 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방규제는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지자체 권한 확대와 함께 조례나 규칙 등으로 만들어져 국민의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앙정부의 상위 법령이 없어졌음에도 지방정부의 조례나 규칙은 폐지되거나 개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규제개혁 체감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4.8%가 조례나 규칙과 같은 지자체의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별로 규제가 많은 곳은 경기 5016건, 경북 4660건, 충남 4190건, 강원 3452건 등이다. 부문별로는 국토도시개발, 지방행정, 환경, 주택건축·도로 등에 대한 규제가 많다. 지자체에는 명확성이나 합리성이 없는 규제도 많아 중앙의 해당부처에 지방자치단체가 유권해석을 부탁하는 경우도 매우 잦다. 싱가포르나 두바이는 의료와 교육 부문의 규제 해제로 지역의 생산성을 높였다. 싱가포르는 월수입 2500달러 이하인 외국인 간호사, 방사선 기사, 물리치료사 등의 의료 인력에는 동거 가족의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 Q2비자가 발급됐으나, 긴급보호조치를 발동시켜 이들에게 월 급여 수준에 상관없이 Q1비자를 발급했다. 이와 같은 규제 해제로 싱가포르의 외국인 환자 숫자는 2007년 46만명으로 크게 성장했다. 두바이도 등록금 수입의 해외 송금 허용, 세금 면제 및 무상 토지 등을 해외대학에 제공했다. 미국 미시간대 등 해외 유명대학이 두바이에 모여 거대한 ‘대학도시’를 만들었으며, 외국인 유학생을 비롯한 2만명이 넘는 학생이 여기서 공부하고 있다. 지방행정연구원은 현장별로 특수성을 가지는 지방규제 개선을 위해서는 ‘규제 개선 닥터(doctor)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관계부처, 지자체, 전문가들로 구성한 닥터들이 현장 맞춤식 규제개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업 규제개선을 통해 행정기관으로부터 받는 다른 불이익도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공간사랑’ 되새기는 무대 줄 잇는다

    ‘공간사랑’ 되새기는 무대 줄 잇는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대표 건축으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 지하 1층에는 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을 불러모은 건 150석 규모의 국내 1호 소극장인 ‘공간사랑’이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집합소’였던 이곳에서는 연극, 전통예술, 현대무용, 실내악, 재즈, 시낭송, 건축 세미나 등이 매일 밤 이어졌다. 공옥진, 홍신자, 이매방,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당대를 풍미했던 예인들이 이곳의 기획공연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까지 사랑받는 연극 ‘관객모독’이 초연됐는가 하면, 사진작가 김중만이 1979년 사진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으로 소극장 운동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하지만 공간사랑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개관(1977년 4월)한 지 9년 만인 1986년 6월 김수근 건축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극장은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이후 1993년까지 드문드문 공연이 이어졌으나 대관이 대부분이었다. 이경택 김수근문화재단 부국장은 “공간사옥 1층에 있었던 카페는 당시 김수근 건축가가 직접 일본에서 콜롬비아, 과테말라산 원두를 사와 블렌딩해 내린 커피를 판 곳으로 유명한데 요즘 말로 하면 예술인들이 교류하던 가장 ‘핫한 공간’이었다”며 “하지만 공간사랑은 문화예술 키우기에 힘쓰던 건축가가 돌아가시면서 자금난, 극장 핵심 멤버들의 유출 등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간사랑은 특히 현대무용에 기회의 장을 열어 준 특별한 공간이다. 올해 주제를 ‘역사와 기억’으로 정한 국립현대무용단이 공간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문화계, 무용계에 미친 영향을 탐색하는 ‘공간사랑 프로젝트’를 내놓은 이유다. 1984년 데뷔작에서 이어진 ‘뿌리’ 연작 시리즈를 공간사랑에서 선보였던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공간사랑은 문화예술 기획이 처음 시도된 곳이자 많은 예술가들이 발굴되고 그들이 작가로 가는 발판이 된 곳이었다. 그 시대 모든 예술가들이 모여 ‘컨템포러리’를 고민하고 실현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오는 25~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렉처 퍼포먼스 ‘우회공간’이 막을 올린다. 주인공은 1970~80년대 당시 유학을 마치거나 전문 무용수로 데뷔하며 공간사랑에서 현대무용의 최신 흐름을 소개한 ‘전설’들이다. 이정희(67) 한국현대춤연구회장, 남정호(62)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안신희(57) 전 한국현대무용협회장 등으로 한국의 1~1.5세대 현대무용가다. 이들은 당시 공연했던 작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춤이 갖는 사회성, 현대무용의 현재 등에 대한 강연도 펼친다.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자인 김정후 런던대 박사는 공간사랑이란 공간이 갖는 의미를 설명할 예정이다. 1981년 ‘교감’으로 이곳에서 처음 전문 무용수로서 공연했던 안신희 전 회장은 “극장이 난립하는 요즘과 달리 예술가들에게 설 기회를 제공해 주는 장소가 없었던 그때 공간사랑은 현대무용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바로 앞에 자리한 관객들이 나를 떠받쳐 주고 밀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객석을 장악하는 기술을 배우고 창작열에 불타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극장 개관 1년 전인 1976년,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임헌정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의 지휘로 작곡가 백병동의 창작곡을 연주하면서 작품 ‘실내’를 선보였던 이정희 회장은 “(공간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융합하는 현재 컨템퍼러리 댄스의 정신이 처음 싹텄던 곳”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공간사랑 프로젝트’는 8월 31일 젊은 안무가들의 릴레이 무대 ‘여전히 안무다: 안무랩 리서치 퍼포먼스’, 10~11월 공간사랑에 관한 자료와 사진, 영상 등을 집약시킨 전시 ‘결정적 순간들: 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로 하반기 내내 이어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화 단신] ‘日 설화·신화로 역사 왜곡’ 밝혀

    한·일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신화와 설화로 일본 학자들이 왜곡한 역사의 진실을 밝힌 책이 나왔다. 김화경 영남대 명예교수가 펴낸 ‘재미있는 한·일 고대 설화 비교분석’(지식산업사)이다. 저자는 일본 유학 시절 접한 북한 학자 김석형의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 분국설’을 원용해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 학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는가 하면 설화의 비교 분석을 통해 일본 내 지역을 한반도 지역으로 왜곡하는 ‘일본서기’ 등 잘못된 기록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뉴스 플러스]

    아·태 환경공무원 서울에 집결 아·태 환경공무원들이 서울에 집결했다. 16~18일 열리는 ‘녹색성장을 위한 제9차 서울이니셔티브 정책포럼’에 23개국 환경공무원과 학계·산업계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가한다. 자원효율성 향상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주제로 아·태지역의 자원효율성 정책 등 5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한다. 정책포럼은 2005년 아·태환경개발장관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제안해 채택된 서울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만화로 보는 헌법재판소’ 발간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창립 25주년을 맞아 선정한 주요 결정 25건을 만화로 엮어 ‘만화로 보는 헌법재판소 결정 25선’을 최근 발간했다. 어려운 헌법재판 결정문과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낸 이 책은 지방자치단체 민원실이나 공공도서관, 로스쿨, 헌재 지역상담실에 비치된다. 또 헌재에서 매월 내려지는 주요 결정 가운데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을 만화로 제작해 홈페이지(www.ccourt.go.kr)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2014 행복학교 박람회’ 개최 교육부는 대구시교육청 및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17∼19일 3일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2014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를 개최한다. 박람회는 유치원 15개원, 초등학교 35개교, 중학교 45개교, 고등학교 45개교, 특수·각종학교 15개교 등 행복학교 총 155곳이 참가해 자유학기제·꿈·끼·행복이라는 4가지 테마로 학교생활 현황을 소개한다. 참가학교들이 펼치는 공연·체험마당, 포럼·세미나, 진학상담 등이 열린다. 경기 북서부 여성·아동센터 지정 여성가족부는 16일 경기 고양시 소재 명지병원을 경기 북서부 지역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로 지정했다. 리모델링 등을 거쳐 올해 12월 문을 열 이 센터는 여가부-경기도-경기지방경찰청-명지병원 4자 협약으로 여성 경찰관, 상담사, 간호사, 임상심리전문가, 심리치료사 등이 상주하며 여성폭력 피해자를 24시간 지원한다. 고양·김포·파주 지역 피해자들이 사건 조사와 의료·심리·상담 서비스를 가까운 곳에서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
  • [광역단체장 인터뷰] 전북도청 20년·행자부 5년… 공직생활 ‘뚜벅뚜벅’

    송하진 전북지사는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강암 송성용 선생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호남평야가 펼쳐진 김제시 백산면에서 출생한 그는 김제 종정초등학교, 익산 남성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예술행정으로 석사, 고려대에서 정책행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전북도 지역경제국장, 기획관리실장, 행정자치부 교부세과장, 지방분권지원단장 등을 지냈다. 전북도청에서 20년, 행자부에서 5년 등 25년간의 공직생활을 토대로 민선 전주시장에 도전했다. 2006년 민선 4기 전주시장에 당선돼 재선에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도백에 도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경선 과정에서 재정경제부 장관과 3선 의원을 지낸 강봉균 후보, 재선의 유성엽 의원 등을 물리치고 본선에 올랐다. 6·4 지방선거에서 69.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송 지사는 평소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한다. 논어에 나오는 글귀로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고 원칙과 소신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드럽고 웃음을 잃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송 지사의 집안은 전북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로 통한다. 부친인 강암 선생은 평생 상투를 고집한 유학자이고 큰형 하철씨는 관선 전주시장과 전북도 부지사를 역임했다. 그 아래 두 형은 국내 서예계의 거목이고 대학교수를 지냈다. 송 지사 역시 서예와 한학에 일가견이 있다. 명필인 데다 판소리 한 가락을 뽑을 만큼 예술적 감성도 풍부하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추억의 명화 ‘고통과 환희’는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천장벽화 ‘천지창조’의 탄생과정을 다룬 내용이다. 찰톤 헤스톤이 주인공 미켈란젤로를 맡아 명연기를 펼친다. 율리어스 2세 교황의 요청으로 벽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가 숱한 고통을 겪으며 완성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다. 미켈란젤로는 천장벽화를 그리기 위해 임시로 마련된 18m 높이의 설치대 위에서 웅크린 채 일을 하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하다 물감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작품은 4년에 걸쳐 완성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벽화를 그릴 때 대부분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다.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축축하고 신선하다’는 뜻이다. 프레스코화는 신선하고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를 말한다.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고 물에 용해되지도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프레스코화는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미켈란젤로 외에도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거장들이 주로 프레스코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유화가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고 20세기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 오로츠코 등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프레스코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61) 동국대 교수는 2007년 5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 때 다른 여러 그림과 함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의 그림 4점을 내걸어 화단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중견 화가가 프레스코 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단 그랬다. 당시 정영목 서울대(미술사)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의 진짜 프레스코를 처음 선보였다”면서 “젖은 듯 스며든 야릇한 색감과 그 기법상의 성격은 오원배 특유의 형이상(形而上) 회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데 아주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5년 뒤인 2012년 11월 오 교수는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 법당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후불 벽화를 그려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보통 불화는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하는데, 오 교수는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넣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프레스코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아트싸이드에서 그동안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스코화 3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600년 전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대가들이 즐겨 그렸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직접 재현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9일 동국대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작업과정에 대해 먼저 물었다. 방음벽을 만들 때 사용되는 흡음판을 들고 설명한다. “이 흡음판에 석회를 입히고 마르기 전에 스케치를 한 다음 색깔을 입히는 것이지요. 젖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야 화학작용이 잘 이루어지면서 흡착력이 좋고 오래도록 변색되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마르기 전에 그리는 전통기법을 사용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른 상태로 그리는 이른바 프레스코 세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여러 차례 보수된 것도 마른 상태에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프레스코 회화는 원래 크레타와 그리스 벽화, 폼페이 벽화 등에도 나타난다. 중세 초의 벽화에는 여러 가지 혼합 방법으로 사용되다가 14~15세기 이탈리아 대가들에 의해 프레스코화가 가장 활발해졌다. 또한 아시아 쪽에서는 11~12세기 인도 지방의 일부 벽화에서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미술사가들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장군총 등을 프레스코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류 최초의 회화는 프레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타미라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여러 벽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석회암 동굴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린 것이 오랜 세월동안 마모되지 않고 전해지게 된 것이지요.” 오 교수가 프레스코화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2년 프랑스 유학 때였다. 그는 당시 파리시내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마한 호텔에서 지냈다. 말이 호텔이지 꼭대기의 비둘기집처럼 작고 허름한 곳이다. 아는 사람도 없어 방안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열고 한참 밖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붕 굴뚝의 색깔이나 생김새가 각양각색이었다. 토기로 구운 것, 쇠로 만든 것, 구리로 만든 것 등 그 형태가 달랐다. 또한 같은 집이라도 방의 수만큼 굴뚝이 솟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시간만 나면 창문을 열고 빨강, 파랑 등 각기 다른 색깔의 지붕과 굴뚝을 보면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들레르의 플라네르(한가롭게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할 일 없이 파리시내 곳곳을 기웃거리며 스케치를 했다. 그러면서 프레스코를 꾸준히 익혔다. 1985년 유학길에서 돌아온 뒤 세 차례 더 파리에 갔을 때에도 계속 스케치를 하며 프레스코화를 틈틈이 그렸다. 그러다가 2007년 인사동 개인전 때 네 작품을 슬쩍 공개한 것이 처음이었다. 유학시절을 회고하던 그가 잠시 한 일화를 소개한다. “제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학과대표(아틀리에 양켈)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의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 둘레에 출입을 금지하는 펜스를 쳐놓은 것을 보게 됐습니다. 하루는 학생 10여명과 야간에 급습(?)을 했지요. 그 펜스에다 낙서화를 그린 뒤 ‘야음을 틈타 프랑스 졸개들을 데리고 와서 한글로 그림을 그리다’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매표소로 가려면 펜스를 돌아가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있었고 이를 보고 기분이 좋다는 한국 사람도 있었지요.” 유학시절 재불화가인 한묵 선생과의 인연도 잊지 못한다. 이에 대해 “1961년 홍익대 교수를 박차고 파리로 가서 신문배달, 페인트칠 등 궂은일을 하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신 분”이라고 말한다. 힘든 유학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또 앞으로 어떤 작가정신으로 걸어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형태의 짤막한 그림을 좋아해 흉내를 자주 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미술반에서 활동했다. 이때 화가인 미술선생을 만나면서 장차 화가를 꿈꾸게 된다. 크고 작은 규모의 미술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시간만 나면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주로 ‘인간’과 ‘소외’에 관심을 둔다. 1970년대에는 가면이나 탈을 쓴 인간의 이미지를 작품에 주로 담는다. 군대생활과 맞물려 통제된 사회, 언로가 막힌 시대상을 표현하고자 가면을 동원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짐승 혹은 중성화된 생명체(인체)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때는 그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시기에 해당한다. 유학시절에는 세계적으로 뉴페인팅이 주도하던 시기로 아방가르디아, 신구상회화 등에서 힘을 얻어 거친 표현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1990년대에는 ‘암울한 도심 풍경과 배회하는 유령(인간) 시리즈’,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화면이 양분되고 꽃이 등장하는 ‘이중적 풍경’ 시리즈 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대의 미술은 인간 정신의 표현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회화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표현 가능한 모든 기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제게는 프레스코화입니다. 프레스코화는 전통적 회화 기법이지만 제작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죠. 또 시도가 각기 다른 작품을 한데 모아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는 프레스코화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파리 유학 시절에 아름다운 지붕을 보면서 시작된 프레스코화를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프레스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도 이 같은 지난한 작가적 연구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나라 프레스코화의 전망에 대해서는 “사찰이나 여러 조형물 등에 반영구적인 벽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오원배 화가는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송도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했다. 19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85년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귀국했다. 1986년 동국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대학강단에 섰다. 그러면서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연구교수로 세 차례 다녀왔다. ‘이달의 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1989년), ‘올해의 젊은 작가전’(조선일보 미술관, 1993년) 등 13회의 개인전과 300회 넘는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아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아시아프’ 총감독(2012년)을 역임했다. 주요 상훈으로는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 1등상(1984), 프랑스예술원 회화 3등상(1985), 조선일보 올해의 젊은 작가상(1993년), 이중섭미술상(1997년) 등이 있다. 파리국립미술학교, 프랑스 문화성, 일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국내외 30여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동국대 예술대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임상효 남편 알고보니 태국 귀족…해외 재벌과 결혼한 다른 女연예인은?

    임상효 남편 알고보니 태국 귀족…해외 재벌과 결혼한 다른 女연예인은?

    임상효 남편 알고보니 태국 귀족…해외 재벌과 결혼한 다른 女연예인은? 슈퍼모델 출신인 임상효가 태국 귀족 가문 출신 남편과 결혼한 사실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임상효는 지난 2004년 태국 귀족 가문 출신 찻 차이라티왓씨와 결혼했다. 임상효 남편 찻 차이라티왓 씨는 태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엘리트 사업가다. 임상효와 찻 차이라티왓씨는 지난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만난 이후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임상효 남편 찻 차이라티왓씨는 태국 재벌 3세로 백화점과 쇼핑몰, 체인점, 건설회사, 리조트를 두루 소유하고 있다. 배우 임상효의 결혼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면서 해외 재벌이나 재벌 2세들과 연애하는 스타들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 하유미는 홍콩에서 유명 레스토랑 체인과 영화사를 운영하고있는 사업가 클라렌스 입과 지난 1999년 결혼을 했다. 이어 배우로 전향한 임성만 KBS 전 아나운서는 2011년 미국 재벌가의 아들인 마이클 엉거 서강대 교수와 백년가약을 맞었다. 임성민의 시어머니는 세계적인 감자칩 브랜드 레드닷 창업자의 외동딸이며 시아버지는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폭탄주 회식’ 이어 또 위증 논란… 靑·與, 정성근 처리 딜레마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마치고도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음에 따라 청와대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상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받은 지 20일 이내에 해당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청와대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20일째가 되는 이날까지 국회는 정 후보자 등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만료일 다음날부터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송부일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국회 사무처는 청문 절차의 본래 시한은 13일이지만 이날이 휴일인 일요일이라 민법을 적용해 하루 늦춘 14일을 만료일로 해석했다. 통상 대통령이 후보자 임명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청문보고서 제출 기한 연장을 요청하는 것이 관례다.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는 김명수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이다. 김 후보자의 경우 최근 청와대와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을 통해 야당이 요구한 ‘임명 재고 요청’이 수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종섭 후보자에 대해서는 야당의 ‘비토’가 지나친 정치공세라는 게 여권 내부의 판단이어서 임명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민은 정성근 후보자다. 주말을 거치며 사안을 주시해 온 청와대와 여권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 문제는 대통령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 비대위원장은 이날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동료 의원과 야당 의원 말을 조금 들어 봐야 할 것 같다. (정 후보자는) 위증 문제와 음주 운전 등 두 가지가 크게 문제 되는데 위증 문제는 오늘 아침 인터넷을 보니 정 후보자 자신이 (문제가 된 아파트에) 8개월 정도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금 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음주 운전 문제도 “20~30년 전 음주 문화와 오늘날 음주 문화가 다른데 지금 잣대로 하니 헷갈린다”고 덧붙였다. 야당은 이날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정 후보자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청문회 위증 논란에 이어 청문회 정회 후 ‘폭탄주 회식’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 후보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 후보자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 파주 시의원에 출마한 새누리당 당원 손모씨로부터 공천 대가로 손씨 건물을 공짜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라고 부인했었지만 실제로는 정 후보자와 정치활동을 함께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자가 2012년 대선 새누리당 파주시 갑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손씨가 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정 후보자가 특파원이 아닌데도 취재 비자를 발급받아 자녀를 유학 보냈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정성근 거짓말’ 논란에 인사청문회 파행되더니 결국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

    ‘정성근 거짓말’ 논란에 인사청문회 파행되더니 결국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

    ‘정성근 거짓말’ ‘정성근 인사청문회’ ‘정성근 거짓말’ 논란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앞서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위증 논란으로 정회하는 등 결국 파행됐다. 정성근 후보자가 일원동 아파트 거주 여부를 놓고 오전과 오후 발언을 번복한 게 발단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은 이날 청문에서 정성근 후보자가 일원동 기자협회 아파트를 1988년 구입했다 1991년 되판 사실을 언급하며, 사실상 거주하지 않은 채 전매금지 조항을 어기고 되판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정성근 후보자는 오전에는 “실제 거주했다”고 했지만, 오후에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록이 없고,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해 버렸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방송을 보고 아내가 전화를 해 왔다”면서 “당시 기자협회 아파트는 조합아파트였고 부끄럽지만 관행적으로 그렇게 (가등기 매매) 했는데 왜 기억을 못하느냐”면서 “거짓이니 순순히 인정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기억 못할 게 따로 있지 바로 샀다가 판 것을 기억을 못하고, 바로 오전까지 이 자리에서 중도금이 모자라 아는 지인한테 빌렸다고 했느냐”면서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통할 것 같느냐. 전부 거짓말”이라고 호통을 쳤다. 같은 당 김태년 의원도 “이런 기만이 어디 있느냐”면서 “본인 해명 여부를 떠나 미국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받고 알았다느니, 청문회를 이렇게 우롱해도 되는거냐”며 정회를 요청했다. 박혜자 의원도 “부인과의 통화기록을 확인해 달라”면서 “위원장께서 직접 부인하고 통화기록을 확인하는 게 최선”이라고 가세했다. 야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설훈 위원장은 “원만한 의사진행을 위해 잠시 정회한다”고 선포했다. 앞서 설 위원장도 정성근 후보자가 음주운전 적발 장소에 대해 말을 바꾸며 해명하지 못하자 “거짓말을 하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서 “제기된 문제들이 엄청난 범죄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후보자의 잘못은 전부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사과하고 잘못했다고 해야지 바보로 아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민주연합 교문위원들은 파행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정성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거짓과 위증으로 긴급 중단됐다”면서 “부동산 투기, 양도세 탈루 의혹, 잦은 음주운전, 자녀 불법 조기 해외유학 등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못지않은 의혹백화점이었던 정 후보자는 청문 시작부터 위증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역 급증, 지난해 107명→올해 상반기에만 370명으로 급증…원인은 해외에서?

    홍역 급증, 지난해 107명→올해 상반기에만 370명으로 급증…원인은 해외에서?

    ‘홍역 급증’ 홍역 급증 소식이 전해졌다. 외국에 나가 홍역에 걸려 들어오는 환자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름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할 때 홍역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9일 질병관리본부가 남윤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홍역 발생 현황’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홍역환자는 2012년 2명, 2013년 107명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370명으로 급증 추세다. 보건당국의 감염경로 조사결과, 특히 올해 상반기 홍역환자 370명 중에서 해외유입이 13명, 해외유입관련이 306명으로, 전체 홍역환자의 대부분인 86.2%를 차지했다. 나머지 51명에 대해서는 감염경로를 조사하고 있다. 해외유입이란 외국에서 감염되고 나서 국내에서 확인된 경우를, 해외유입관련은 해외유입에 의한 국내 2차 전파 사례 또는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 결과, 해외유입 바이러스로 분류되는 경우를 말한다. 홍역은 현재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주지역,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2만 6912명의 홍역환자가 발생한 데 이어 올해 5월 20일 현재 2만 3715명이 홍역확진 판정을 받았다. 베트남은 지난해 802명에서 올해 5월 20일 현재 1648명으로 홍역환자가 늘었다. 일본도 지난해 141명에서 올해 6월 4일 현재 352명으로 홍역환자가 증가했다. 홍역 퇴치 국가인 미국과 캐나다, 호주도 지난해보다 올해 홍역환자가 증가추세에 있다. 홍역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어린이가 환자와 접촉하면 95% 이상 감염되는 전염성이 매우 높은 질환이다. 따라서 생후 12~15개월, 만 4~6세에 각각 한 번씩 MMR(홍역·볼거리·풍진) 예방접종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방학과 연휴 전에 예방접종을 하고서 출국하도록 홍보하고 유학생이 국내 입학할 때는 반드시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홍역 확산을 차단하고자 힘쓰고 있다. 또 교육부와 협력해 학교 홍역감시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네덜란드 장학금 널리 알려져 한국 유학생 더 혜택 받았으면…”

    “네덜란드 장학금 널리 알려져 한국 유학생 더 혜택 받았으면…”

    “네덜란드가 한국 유학생을 위해 넉넉한 장학금을 준비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정레오(43) 네덜란드교육진흥원장은 네덜란드의 고등교육에 대해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상위권 대학에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대학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수준 높다”고 말했다. 그는 “2100여개에 달하는 학위와 단기과정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점도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이 본국의 언어로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여기에 장학금까지 많이 주기 때문에 네덜란드 유학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네덜란드진흥원은 네덜란드 고등교육국제협력기관인 ‘뉴픽’(Nuffic)이 한국에 설립한 비영리기관이다. 2010년 오렌지튤립장학금을 개설해 올해로 5회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 장학금은 매년 가을쯤 다음 연도분을 발표한다. 올해 장학금은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12개 대학과 1개 기업의 후원으로 마련됐는데 한국에 배정된 부분은 약 4억 8000만원(34만 2850유로)이다. 진흥원은 올해 장학금 중 2억 2000만원을 14명의 한국 학생들에게 지급한다. 1인당 1600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받게 된 이들은 올해 가을학기 에라스무스대, 티아스경영대, 틸부르그대, 레이든대, 암스테르담대학 등에 입학한다. 장학금 수여식은 오는 10일 서울 중구 진흥원에서 열린다. 정 원장은 “네덜란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굉장히 다르다. 특히 인생의 상당 부분을 유럽에서 보내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다”라며 “오렌지튤립장학금이 널리 알려져 한국학생들이 더 혜택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보면 볼수록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색깔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로 잘 어울려 은은함이 있다. 비색 유약 속에 대리석이 자유분방하듯 조용히 새겨져 있다. 여러 모양의 병(甁)도 있고 통(筒), 합(盒)도 있다. 이른바 연리문(練理紋) 기법으로 탄생된 도자기다. 연리문은 대리석 무늬를 의미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예기술이다. 당나라 때 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등장했던 도자기법이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백토, 흑토, 자토(紫土) 등 각기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해서 도자기를 빚어내는 제작과정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통 도예가 노경조(63) 국민대 교수는 그러한 연리문 도자기법을 부활시키고 40년 넘도록 일관되게 작업을 해와 연리문 도자기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론적 연구와 오래된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여러 도자 파편들을 채집한 뒤 고려시대의 전통 연리문 기법을 재현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는 동안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개국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보란 듯 전시할 정도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1982년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90년대, 2000년대 작품 등 10년 주기별로 그의 대표 작품이 이곳에 영구소장 됐다. 또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1990년대 대표작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보통 2년 주기로 주제를 바꿔 도자기를 전시하는 데 비해 노 교수의 작품은 보기 드물게 영구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독 수교 100주년, 한·미 수교 100주년 때에도 도자기를 들고 현지에 나가 한국 도자기의 강점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미술관에서 내년 2월까지 예정으로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다. 도자기 작업이란 얼핏 보면 단순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어렵고 까다롭게 진행되는 일이다. 노 교수의 작품은 서로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과정 속에 노 교수는 한국인의 감성, 한국의 산하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감성으로 세계를 매료시킨다고 할 수 있다. 2001년과 2011년 세계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30여명이 한국에서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다. 이때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이 노 교수의 작품을 보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한국의 유산을 이어주는 듯하다.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노 교수의 작품에 대해 “그의 연리문은 우리의 전통에서 터득한 여러 가지 맛을 자신의 조형감각에 호소해 새로 창조해낸 것이다”면서 “담담한 연리문 작업을 통해 흙의 참 아름다움과 흙의 참맛, 흙의 참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그는 연리문의 대가답게 천년 전의 도예기술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을 현대 도자공예 분야에서 차별화된 스타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래서 감상하는 이들에게 묘한 흙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그는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작품도 그리고 전시를 한다. 화가이자 도예가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지난 7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유럽은 18세기 돼서야 도자기를 자체 생산했고 일본은 17세기에 시작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15세기이고 고려는 더 앞서서 도자기를 생산했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아주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데다 역사가 담겨 있어 황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일본은 도자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서 2차 대전의 물자를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자기 강국답게 지금에라도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주제별로 정리를 잘해놓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 미술관에 가 보면 역사의 흐름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자기는 썩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에 따라 제대로 진열해 놓으면 오래도록 문화적 자긍심을 간직할 수 있으며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제공해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연리문의 특징을 물었다. “연리문은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무늬를 만드는 것이지요. 소고기에 마블링이 있듯이 대리석 물결무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토, 백토 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양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나라와 고려시대 때 사용됐는데 요즘 현대작가들이 즐기는 기법 중 하나가 됐습니다. 주로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합니다.” 원래 도자기라고 하면 둥근 모양을 떠올리지만 그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각형 등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내 마치 회화를 연상케 한다. 거치문 장식이 달린 도자기도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그의 작업실은 경기 양평의 자작나무 숲이 있는 곳에 자리해 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옹기들도 있다. 소주고리도 있고, 조선의 사방탁자도 있다. 이곳에서 자연의 놀라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등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또한 연작시리즈의 회화작품도 그린다. 전국의 도요지를 다니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자기의 파편들도 모았다. 그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파편들이다. 잠시 그의 손을 쳐다봤다. 나이에 비해 손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태어날 때 손과 발만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흙에는 미백효과의 물질도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이어 “흙을 다루는 일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할머니 손맛을 내는 것처럼 흙 반죽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1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도자기를 빚는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는 울고 웃으며 신호를 보내지만 흙은 절대 말을 안 합니다. 흙은 아무 말 없이 스스로 깨지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정성껏 살펴야 하지요.” 그는 1951년 서울의 학구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할머니는 일본의 우에노 음악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대 약대를 나왔다. 아버지는 국립중앙의료원 창립 멤버로 병원에서 초대 약국장을 지냈다. 어렸을 때 손이 유난히 커서 할머니는 장차 피아니스트가 되라며 피아노를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는 외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피아노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사춘기 방황도 그림으로 치유할 수 있었던 같다”고 회고한다. 그가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미술을 공부하는 동네 형 집에 놀러 다니다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따라 그리면서 시작됐다. 어릴 적 얘기가 나오자 추억 하나를 회고한다. 서울사범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하굣길에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의료원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파견된 의사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의사들의 자녀와 만나 친하게 지냈다. 레고 같은 장난감도 선물 받았다. 이 레고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는 골동품이 됐다. 또한 아버지는 당시 스웨덴 등 유럽 출장을 갈 때면 그림엽서를 자주 보내왔다. 그는 이 엽서를 자랑삼아 학교에 가지고 갔고 환경미화 시간이면 그림엽서를 벽에 떡하니 붙이고 그 옆에 세계지도를 그려넣곤 했다. 그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그림보다는 도자기가 더 생산적이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 그릇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거서 그릇을 만들어주면 추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 말씀’ 때문에 방향을 바꿔 대학에서 요업공예과를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삼으면서 도자공예, 재료학 등을 섭렵하고 틈나는 대로 옹기가마에 가서 수련했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논문 ‘고려 상감청자 연구’를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고 백자와 분청사기, 연리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도예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녀 얘기를 꺼냈더니 “아들 둘을 두었는데 다들 잘 자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성적표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졸업할 때 ‘사춘기를 잘 보내줘서 감사하다’라고 했다”며 웃는다. 현재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 미술관에 계속 전시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제자들도 그 뒤를 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경조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가수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경희대 입학 때 요업공예과를 택했다. 대학에서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졸업 때 ‘고려 상감청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7년 일본에 가서 우리 도자공예와 다른 도자기 공예를 2년간 접했다. 1979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리문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공간사 공모전에서 도예상을 시작으로 동아공예전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개인전은 일본 가나자와 갤러리(1979년), 서울공간미술관(1981년), 미국 버밍햄 박물관 초대전(1982년), 미국 뉴올리언스 박물관(1983년), 노경조 도예 30년전(서울, 2005년) 등 수십여 차례 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세인트 피터스버그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이탈리아 파엔자 도예학교, 중국 의홍박물관 등 해외 20여개국의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국민대 조형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안뉴!… 9만 타이완인 ‘제2한류’ 관광 열기 후끈

    안뉴!… 9만 타이완인 ‘제2한류’ 관광 열기 후끈

    “안뉴(安?·‘안녕’의 타이완식 표기) 대한민국!” ‘한류 발원지’ 타이완에 한류 관광의 불이 지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5, 6일 타이베이 국제무역센터 전시장에서 ‘안녕, Korea’ 행사를 열었다. 단일국가에서 열린 관광 홍보 행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관광, 정보기술(IT), 의료, 미용, 웨딩, 식품, 대학 등 86개 국내 기관과 업체들이 행사장에 부스를 설치했고 남성 그룹 신화의 신혜성 등 한류 가수와 ‘타이푼’ 등의 창작 공연단은 다이내믹한 공연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행사 참가 인원은 총 200명에 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이완의 상징인 ‘타이베이 101’ 옆 상업 중심지에서 열린 행사엔 이틀 동안 타이완 관람객 9만여명이 다녀갔다. 애초 예상치인 5만명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개막식이 열린 5일 오전 11시쯤엔 5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행사장 내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타이완 관객들은 한류 가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정확한 발음으로 가수 이름을 연호했고, 한국 전통 음식을 먹거나 한국 전통놀이를 즐기며 축제 같은 주말을 보냈다. 타이완은 지난해 54만명이 한국을 방문해 국가별 외래 관광객 4위를 차지한 중요한 국가다. 젊은 층과 여성의 선호율이 높아 타이완 해외 여행객 가운데 20~30대의 53%, 여성은 약 66%가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는 특히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으로 방한 관광객이 20% 이상 급증했다. 부족한 항공편이 확대될 경우 타이완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연간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관광공사는 보고 있다. 이번에 타이완에서 대규모 한국관광대전을 연 것도 이런 추세를 이어 가기 위해서다. 유진호(47) 관광공사 타이베이지사장은 “타이완은 한류의 근원지이자 동남아 지역에서 한류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며 “이번 행사의 성공은 이 지역 관광객의 한국 유입 가능성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고무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행사에는 K팝이 선봉에 섰다. 타이완 지역에서 변함없는 인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신화의 신혜성과 걸그룹 달샤벳, 울랄라세션 등이 팬들과 만났다. 특히 울랄라세션은 현지 한류 팬들이 참여한 K팝 커버댄스 경연대회 심사를 맡아 관심을 끌었다. 가수들이 막을 열고 넌버벌 공연팀이 분위기를 띄웠다. 타이푼, 판타스틱 등 3개 팀이 이틀 동안 번갈아 가며 한국의 수준 높은 공연 문화를 선보였다. 특히 마셜 아츠와 비보잉 등이 결합된 타이푼 공연은 단연 화제였다. 공연단을 이끈 손무명 롯데JTB 중화권 본부장은 “중화권 여행객들에게 공연 관광은 한국 여행의 필수 코스”라며 “다양한 공연단이 활동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국내 16개 대학이 참가해 벌인 한국어 연수생, 유학생 유치 활동도 관심을 모았다. 서원남 한양대 국제어학원장은 “한류의 종착지는 교육”이라며 “타이완 내 지한파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라도 교육 관광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관광공사는 최근 타이베이 번화가인 둔화난루(敦化南路)에 ‘코리아 플라자’를 개관했다. 264㎡(약 80평) 규모의 전시관은 타이완에 한국의 문화와 음식 등을 알리는 상설 홍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글 사진 타이베이(타이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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