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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롭게 바뀐 SAT·ACT 선택에 고민하는 유학 준비생들

    새롭게 바뀐 SAT·ACT 선택에 고민하는 유학 준비생들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가 2016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바뀐다. 변화한 SAT로 인해 미국유학 준비생들과 학부모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대안으로 ACT에 대한 궁금증과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의 유학대비 SAT/ACT전문학원 아너즈어학원은 2016년 바뀐 SAT정보와 함께 아직 한국에서는 응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ACT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16년부터 SAT는 필수적으로 쳐야 하는 섹션이 Reading과 Math 두 과목으로 포맷이 변경되었으며, 과거 Writing섹션에 포함되어 있던 Multiple Choice 파트가 Writing & Language 이름으로 Evidenced Reading파트에 통합되었다. 에세이는 옵션으로 빠졌으며, 보기는 다섯 개에서 네 개로 줄어들었고 오답에 대한 페널티가 없어졌다. 먼저 Reading 섹션 질문들은 고도의 논리력과 추론력을 검증하도록 고안되어 어떻게 지문이 논리적으로 구성되는가, 각각의 지문에서 어떤 연관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질문이 늘어나고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질문의 유형은 없어졌다. 오답을 이끌어 내는 미끼성 문제 보기들을 줄이고 내용은 어렵더라도 직선적으로 물어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 어려운 어휘에 대한 부담은 줄어든 대신 문맥 내에서 단어의 의미를 묻고 주장에 대한 증거와 논리적 주장, 과학적 추론 등이 강조된다. 에세이는 옵션으로 빠지지만 TOP 50 US Colleges 대부분 학교에서 에세이 성적 제출을 요구 혹은 권고하고 있어 명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유학생들의 경우 응시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바뀐 SAT Essay의 경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가를 분석하는 것이기에 한국 수험생들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된 포맷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분석능력과 논리적 오류를 찾아 글을 전개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입시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가질 수도 있다. 한편 ACT(American College Testing)는 미국의 모든 4년제 대학이 받아주고 있는 시험으로 2012년을 기점으로는 SAT응시자를 넘어섰다. 시험과목은 English, Reading, Math, Science이며, 에세이는 옵션이다. ACT의 영어과목은 속독과 지문의 빠른 이해가 필수적이며, 지문 발췌 분야는 New SAT와 대동소이하다. 수학의 경우엔 SAT는 대수(Algebra)의 비중이 높은 반면, ACT는 기하학(Geometry)과 삼각함수(Trigonometry)비중이 높고, SAT와 달리 기본 공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부산 센텀 아너즈어학원 관계자는 “SAT와 ACT 시험은 각각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겐 SAT가 유리하고 또 다른 누구에겐 ACT가 유리할 수 있다”며 “두 가지 시험 모두 레벨테스트를 해 보고 각자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전략적인 분석을 통해 자신에게 고득점이 유리한 방식의 시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미국을 비롯 20여 개국의 유학생들과 국내 국제학교, 외국인학교 학생들에게 입시준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유학대비 전문 부산 아너즈어학원은 2016년 여름방학 명문대 출신의 강사진과 함께 New SAT, ACT 집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TOEFL, SAT II, AP/IB 시험대비 특강과 수학과 과학분야의 내신대비 선행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영국문화원, 2016년 IELTS 장학생 모집

    영국문화원, 2016년 IELTS 장학생 모집

    영국문화원은 해외 유학을 희망하는 유학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2016~2017년도 영국문화원 IELTS(아이엘츠) 장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장학금 선발 대상은 2016년 4월 1일~12월 17일 사이 영국문화원에서 주관한 IELTS 응시 점수로 영국 및 미국 대학의 학부, 혹은 대학원 과정에 2017 학년도 최종 입학을 앞둔 한국인이며, 총 3명을 선발해 1인 당 35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이엘츠(IELTS)는 2015년 기준으로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270 만여 명이 응시한 대표적인 국제공인 어학능력시험이다. 리스닝, 리딩, 스피킹 등 총 4개 영역을 통해 실질적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며, 해당 점수는 미국 내 3,000여 곳을 포함해 전 세계 9,000개 이상의 대학 및 기관에서 공인된다. 국내 역시 아이엘츠(IELTS) 응시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서울 외 지방 주요 도시로 시험 운영을 확대하고 나섰다. 공식 주관사인 영국문화원의 경우 지난. 4월 16일 부산을 시작으로, 30일 인천과 대전, 이어 5월 7일과 21일에 부산 시험이 추가 실시할 예정이다. 그간 경남 지역 거주자들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 및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불가피했다. 영국문화원 관계자는 “전세계인이 응시하는 세계적인 영어시험인 IELTS의 우수성을 알리고 보다 많은 한국학생이 글로벌 리더로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당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문화원은 EBS의 외국어 학습 사이트 ‘EBSlang’과 함께 제작한 ‘Road to IELTS’를 운영 중에 있다. 기출 문제로 구성된 리뷰 테스트, 실전 문제 풀이, 원어민 선생님의 첨삭 등 입문자를 위한 15주 특별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의는 유학 준비를 위한 Academic 코스와 취업 및 이민을 위한 General Training 코스로 구분되므로 목적에 맞게 수강하면 된다. 영국문화원에서 인정한 13년 경력의 강사가 진행하며, 일정한 출석 기준을 달성하면 수강료 50% 환급이 가능하다. 장학생 지원 관련 자세한 내용은 영국문화원 IELTS 장학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의사도 라식 수술 기피하나요?” 직접 물었습니다

    [메디컬 인사이드] “의사도 라식 수술 기피하나요?” 직접 물었습니다

    의사 수술 안한다는 건 오해순전히 본인의 선택사항일 뿐 시력 교정술 하면 라식과 라섹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수술 기관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니 이미 30년에 가까운 역사를 남겼습니다. 현재는 한 해 20만명 이상이 수술을 받을 정도로 보편화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시력 교정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안과의사는 라식 수술을 기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불안과 의심만 팽배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안과의사는 라식 수술과 라섹 수술을 하지 않나요.” 김용란 건양대 김안과병원 원장은 24일 이런 질문을 듣자마자 고개부터 갸우뚱했습니다. 한 해 40만명의 환자가 찾는 국내 최대 규모 안과전문병원인 만큼 의료진도 비교적 많습니다. 김 원장은 “주요 대상인 40대 이하 여성 의사만 보더라도 절반 이상이 이미 라식 수술 같은 시력 교정술을 받았다”며 “1년에 1주일 정도밖에 휴가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진료 업무가 많고 여유가 없어도 라식 수술을 받고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안과의사회 총무이사인 류익희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은 “2007년에 나도 라식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류 원장은 “1980년대까지는 시력 교정술을 연구한 의사들이 거의 없었고 40대를 넘기면 수술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90년대부터는 숙련의들이 늘면서 70년대 출생, 90년대 학번 이후부터는 안과 의사들도 라식 수술을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시력 교정술 부작용이 무서워 안과의사들이 수술을 받지 않는다는 속설은 ‘오해’일 뿐이라는 겁니다. 류 원장은 이어 “안경이 편하면 안경을 써도 되고, 불편하다고 본다면 시력 교정술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 하지 말라거나 반대로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순전히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는 것처럼 라식과 라섹은 전혀 다른 수술법입니다. 둘 다 각막 내부에 레이저를 조사해 근시나 원시, 난시 등의 굴절 이상을 교정하는 수술인 것은 맞습니다. 라식은 각막 앞부분을 잘라 젖힌 뒤 레이저를 조사해 굴절 이상을 교정하고 다시 벗겨 낸 각막 절편을 덮어 주는 방식입니다. 라섹은 고농도 알코올을 이용해 얇은 각막상피만 제거하고 마찬가지로 굴절 이상을 교정한 뒤 일정 기간 치료용 렌즈를 덮어 회복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두 수술법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직업 야간 운전자 신중하게 판단해야 라식은 라섹과 비교해 시력 회복 기간이 빠릅니다. 수술 통증이 거의 없고 다음날이면 0.8 이상의 시력을 회복합니다. 다만 뚜껑 모양의 각막 절편을 만들기 때문에 수술 과정이 복잡하고 그 과정에 각막에 건조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라섹은 각막 상피만 얇게 잘라내기 때문에 건조증이 덜하고 각막 두께가 선천적으로 얇은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절편을 생성하지 않기 때문에 충격에 강합니다. 하지만 각막 상피를 벗겨 내기 때문에 통증이 생길 수 있고 회복 기간이 길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 수술법의 장점만 취한 수술법도 나왔습니다. 김 원장은 “군대 가기 전이나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각막이 얇은 사람은 라섹을 권하는 반면 당장 유학을 떠나야 한다든지 내일모레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라식을 권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급적 시력 교정술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 원장은 “야간에 직업적으로 운전을 하는 분은 꼭 해야 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고민하라고 말씀드린다”며 “또 수험생이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근시가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난 다음에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고 했습니다. 류 원장은 “단순히 콘택트렌즈 착용 때문에 생긴 건조증이라면 적극 수술을 권하겠지만 류마티스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루프스라든지 자가면역질환이 있으면 수술 뒤 건조증이 훨씬 심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력교정 효과 라식 95%·라섹 97% 시력 교정술의 부작용 비율은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반적인 의약품 부작용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 안과학회가 대규모 연구를 통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라식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전과 수술 후 시력과 부작용을 조사한 결과 수술 후 3개월 뒤 양쪽 눈 모두 1.0 이상의 시력을 얻은 환자가 전체의 95%를 넘었습니다. 수술 전 야간에 빛 번짐이나 시력 이상을 호소한 환자는 33%였지만 수술 후 6%로 줄고 수술 부작용은 0.7%에 그쳤습니다.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5109건의 시력 교정술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라식 수술의 시력교정 효과는 95%, 라섹 수술은 97% 이상이었습니다. 류 원장은 “안경은 대부분 오목렌즈인데 멀리 있는 상이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안경을 벗으면 상이 커지기 때문에 훨씬 더 잘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백내장 같은 질환이 생기기 전까지는 높아진 시력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수술법 고집하는 병원 피할 것 시력 교정술을 받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두 전문가는 되도록이면 개원한 지 오래된 믿을 만한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저렴한 가격만 보지 말고 최소 2~3곳의 의료기관을 방문해 충분히 상담을 받아 보고 본인에게 맞는 수술을 추천받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 오늘 당장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당일 검사, 당일 수술’이라는 시스템도 생겼는데 나는 가급적 정밀검사를 받은 뒤 약 기운이 빠지는 3일 뒤에 수술을 받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류 원장은 “경기 영향도 있겠지만 2010년 이후 서울 강남역 부근 저가형 라식 시술 기관의 40%가 문을 닫은 상태”라며 “대안 없이 단 한 가지 수술법만 고집하는 의료기관이 있다면 그곳만은 피하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먼 곳 자주 응시하고 여름엔 선글라스 라식 수술은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최소 1개월, 길게는 6개월~1년을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걸어다니며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일반인도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초점을 수시로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수술 효과가 낮아집니다. 김 원장은 “도저히 못 참겠으면 차악으로 고정된 TV를 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컴퓨터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 1시간에 1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먼 곳을 응시하려고 노력하고, 여름철에는 자외선 차단을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력이 좋다고 눈을 혹사시켜서는 안 됩니다. 류 원장은 “콘택트렌즈 중에서도 특히 렌즈 겉면에 색상을 입힌 컬러렌즈 사용은 피하는 게 좋다”며 “청소년 시기에 질 낮은 제품을 쓰다 염증 문제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전두환 회고록서 “계엄군 발포 개입 안 했다”

    전두환 회고록서 “계엄군 발포 개입 안 했다”

    5·18, 직선제 개헌 등 비화 담겨 발포 명령 놓고 논란 재점화될 듯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르면 올해 안에 회고록을 출간할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부인 이순자 여사도 회고록 집필을 끝낸 상태여서 ‘퍼스트레이디 스토리’도 곧 나올 전망이다. 전 전 대통령 측 인사는 이날 “원고가 거의 마무리 단계로 퇴고 중”이라면서 “작업 진행 속도로 봤을 때 상반기 중에는 어렵고 이르면 연내 출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00여쪽 3권 분량으로 예상되는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1979년 10·26 사건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3년 미안마 아웅산 테러, 19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과 직선제 개헌 등 재임 기간 겪은 일들에 대한 비화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는 전 전 대통령이 당시 계엄군의 발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은 전 전 대통령이 당시 신군부의 최고 실세였다는 점에서 계엄군의 발포 명령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전 전 대통령 측 인사는 “전 전 대통령이 (발포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고 관련자 진술도 일치한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계엄사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고 보안사령관에 불과했다”며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내용들도 (회고록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계엄군의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느냐가 다시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진 6·29 선언과 관련해서는 당시 유학 중이던 장남 재국씨가 6월 27일 귀국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와 전 전 대통령 간 메신저 역할을 한 과정 등도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 측이 6월 23일 이후 청와대와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는 또 퇴임 후 뇌물수수와 내란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이후 정치자금 문제로 추징금을 납부하게 된 경위 등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고(故)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박근혜 대통령 관련 내용도 언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여사도 퇴임 후 10년 넘게 준비해 온 회고록 집필을 몇 해 전에 끝내고 지금은 일부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사의 회고록에는 퍼스트레이디 생활부터 연애 시절 등 생의 전반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컷오프 인생/김경운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컷오프 인생/김경운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지난 4·13 총선은 유례없는 공천(公薦) 파동을 겪었다. 선거 기간에 유세 대결을 펼치기도 전에 유력 정당의 천거를 받는냐, 마느냐에 따라 미리 당락이 점쳐지는 기이한 현상과 이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공천이 어찌 보면 컷오프다. 컷오프는 본 진행에 앞서 불필요한 선발 절차를 간소화하는 일종의 예선 과정이다. 절차적 합리성 덕분에 컷오프라는 용어는 공학, 패션,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컷오프 과정은 그 불투명성 때문에 시퍼런 오점을 남겼다. 공천 탈락을 납득할 수 없는 후보들이 반발했고, 결국 유권자들은 무소속 당선자를 선택하고 말았다. 골프나 월드컵 축구대회의 컷오프 과정인 예선은 본선처럼 경기 규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도 결과에 불만이 없다. 컷오프가 자칫 경쟁의 기회조차 빼앗는 과정이 돼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려면 이제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거쳐야 한다.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부모의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서 개천의 용이 될 기회를 향해 고시에 매진하던 시대는 끝난 셈이다. 물론 고시 제도의 문제점은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소외받은 그들에게 인생 역전의 사다리조차 빼앗는 것이 과연 옳을까. 다양한 루트의 인재 천거 제도를 병행하는 게 그렇게 불가능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대학 입학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영어의 자격시험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어는 조기 유학 등으로 이미 상당수 학생이 능력을 갖춘 만큼 수험 과목에서 제외하고, 자격만을 검증하는 과목으로 격하시킨다는 뜻이다. 일부 대기업도 입사 시험 때 토익 점수를 제출하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학부모 중에선 재빨리 자녀의 영어 공부를 포기시키는 현상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기업들은 모든 인터뷰 과정을 아예 영어로 진행한다. 대입에서도 영어가 약하면 아예 시험을 볼 자격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 부담을 줄여 준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영어 실력은 뒤떨어져도 수학이나 과학을 더 잘해서 총점에선 합격선을 넘었던 학생은 역전의 기회를 잃었다. 컷오프 경쟁은 인정한다. 다만 그 과정도 합리적 평가의 범주에 들어야 한다고 본다. 1980년 이전의 대입 제도는 예비고사를 거쳐야 본고사의 자격이 주어졌다. 예비고사는 일종의 자격시험이기도 했지만, 그 점수가 나중에 본고사 점수와 합산돼 전형의 근거로 쓰였다. 예비고사와 같은 컷오프 과정에서 수험생의 숨은 노력도 적으나마 인정한 것이다. 우리 주변은 눈에 띄는 결과만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취업난의 컷오프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적어도 ‘실패할 수 있는 기회’라도 줘야 한다. 한두 번쯤 실패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는 그들이기에 부모 세대는 기꺼이 세금을 내서 그들의 실패를 감싸야 한다. 실패가 훗날 더욱 단단한 성공의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kkwoo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 나이로 67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고향은 대한민국이고 나이는 모른다”고 말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데 좁은 한국 땅에서 고향이 어디인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일에 빠져 사는데 생물학적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이보다 열 살은 적어 보이는 외모에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 감각.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에게 평범함은 ‘끝’을 의미한다. 지난 15일 2시간 가까운 열정적인 인터뷰가 끝난 뒤 지친 것은 일흔을 몇 년 앞둔 그가 아니라 40대 초의 기자였다. -“그래, 김 교수. 내가 뭘 해 주면 되겠어?” 1983년 봄 어느 날 서울역 앞 대우그룹 사옥 꼭대기층 회장실. 김우중 회장이 지긋이 날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 일류 디자인 회사를 제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 회사를 세우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차리면 당장은 일거리가 없을 겁니다. 대우그룹 사업 프로젝트들을 일단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골똘히 생각해 보던 김 회장은 나에게 수정 제안을 했다. “김 교수가 당장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는 힘들 거야. 일단은 우리 대우그룹 계열사 형태로 디자인 회사를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운영을 해 봐. 경영을 잘해서 3년 뒤에도 살아남으면 그때는 당신한테 그 회사를 온전히 넘겨주지.” 그때는 둘 다 젊었다. 김 회장은 마흔일곱, 나는 서른셋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학생들에게 산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창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차릴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를 거듭하던 차에 우연히 한국의 신흥 재벌인 대우그룹이 전자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바로 이거야!” 전자와 자동차야말로 결정적으로 디자인에서 승부가 갈리는 산업 분야가 아닌가. 원래 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 잠시의 지체도 없이 서울의 대우그룹 회장실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 -“이거 미국에서 전화드리는 건데요, 저는 일리노이대에서 교수로 있는 김영세라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들어간 김에 회장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한국에 갈 일이 있다는 건 알량한 자존심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그쪽에 너무 매달리는 것처럼 비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장 비서실의 회신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강의에서 돌아오면 전화기만 쳐다봤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김 회장이 너무 바빠서 평일에는 도저히 안 되고 일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얼마 후 김포공항에 내렸고, 곧장 대우빌딩 꼭대기층으로 달려갔다. 일요일인데도 김 회장은 계열사 사장, 임원 등 10여명과 함께 날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던 김 회장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세워진 것이 나의 첫 회사 ‘ID포커스’다. 흰색뿐이던 색깔을 7가지로 만들어 ‘컬러풀, 원더풀’이라고 광고했던 냉장고 시리즈도, ‘대한민국 첫 100만대 생산’을 기록했던 대우통신의 퍼스널컴퓨터 디자인도 다 그때 내가 했던 것들이다. 당시 나는 ID포커스 대표와 대우전자 디자인 총괄이사를 겸직했는데 그룹에서 가장 어린 임원이었다. -어느덧 김 회장이 약속했던 3년이 흘렀다. 1986년 어느 날 우리 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남을 가졌다. 일종의 담판이었다. “회장님, 3년 전에 하셨던 약속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는 말이 없었다. 김 회장으로서는 확고히 자리를 굳힌 디자인 전문 계열사를 선뜻 나에게 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입장이 이해됐다. ID포커스가 대우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대우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나만의 회사가 차려졌다. 회사 이름은 ‘이노디자인’.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에서 따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를 규칙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이는 걸 아주 싫어했다. 학생 때는 정해진 시간에 등교해야 하는 게 싫었고, 어른이 돼서는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게 싫었다. ‘수업은 왜 시간을 정해 놓고 하지?’ 덕수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밖에서 축구하는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지우개가 정통으로 얼굴을 때렸다. 내내 딴짓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부아가 치미셨던 것이다. 그런 폭력적인 훈육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저러실까.’ -당연히 공부를 잘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앞에 앉히셨다. “사람 구실 하려면 경기중학교에는 꼭 들어가야 한다.” “엄마, 거기 가려면 전교 400명 중에 못해도 40등은 해야 되는데 저 절대로 그렇게 안 돼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떨구셨다. 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날 이후 정말 코피를 쏟으며 공부했다. 나의 경기중 합격은 당시 우리 반에서 ‘인생 역전 드라마’라도 되는 양 화제가 됐다. -인생의 전환점은 중3 때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개구쟁이 클럽’이라고 해서 같이 어울리는 악동들이 있었다. 그중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마당에다 지하에 당구장까지 갖춘 집에 사는 ‘금수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집은 먹을 것도 많고 놀거리도 많아 늘 우리들 놀이터였다. 어느 날 지하에서 당구를 치는데 별 재미가 없어 혼자 그 집 2층에 올라갔다. 한 층의 절반 정도가 서재였는데, 벽 한쪽이 책으로 가득했다. 우연히 한 권을 툭 뽑아 들었는데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사진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잡지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책을 덮는 순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야. 세상에 이런 직업이 다 있구나.” 그때부터 영화, 자동차, 기차, 건물, 인테리어, 패션, 가구 등 모든 걸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는 습관이 들었다. 결심한 게 또 하나 있었다. “난 반드시 미국으로 갈 거야. 저 큰 나라 미국에서 내 인생의 승부를 걸어 볼 거야.” -“저 미술대학 갈래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고3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두 분은 기함을 하셨다. 요즘과 달리 당시는 미술을 한다고 하면 ‘환쟁이’라고 무시하던 때였다. 아버지도 예외일 리 없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의 아버지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밥은 먹고 살겠니.” 더이상 말씀은 없으셨다. 황당해서 혼낼 생각도 없으신 듯했다. 하지만 내가 의지를 꺾지 않자 얼마 후 아버지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설을 실천하셨다. “네 인생 네가 결정하는 것이니 미대 가는 것 더이상 반대하지 않겠다. 대신 나중에 먹고살기 힘들다고 나한테 손 벌려도 한 푼도 없을 줄 알아.” -미술만큼이나 좋아했던 게 음악이었다. 고2 때 친구들과 ‘다이아몬드 포(4)’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경기고 학교 마크가 다이아몬드 모양이었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국 밴드 ‘비틀스’를 흉내 내 4명이 모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만든 최초의 그룹사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확실한지 자신은 없다. 고2 여름에는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광고 포스터 디자인을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나의 미대 동기 중 한 명이 ‘아침이슬’의 김민기다. 경기고 동창이긴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고 대학 가서 친해진 케이스다. 신입생 환영회 때 목소리 좋은 민기가 고등학교 동창이란 걸 알게 됐다.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하라고 해서 둘이서 노래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도 장기자랑 때마다 둘이서 같이 했는데 결국 ‘도비두’라는 포크팝 듀엣을 결성했다. 선배들이 우리를 표현했던 ‘도깨비 두 마리’의 준말이었다. 도비두는 정식 앨범 녹음도 했다. 김인배씨가 편곡한 크리스마스캐럴집이었는데, 우리는 앨범 B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인 ‘친구’와 ‘세노야’를 함께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캐럴집으로는 뜬금없는 곡들이었다. -도비두 덕분에 아내를 만났다. 다른 학교 학생이던 아내가 학교에 놀러와 내 앞을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정지 화면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의 짝은 바로 저 여자야.’ 마침 그날 저녁 서울 명동 YWCA에서 공연이 있었고 “구경 오라”고 했는데 그녀가 선뜻 응해 줬다. 이전의 그 어떤 공연보다 멋있는 척을 하려고 애썼다. 공연이 끝난 후 곰 인형을 선물했는데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산다. 도비두 활동은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다. 민기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길을 걸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제대로 못 만나고 있다가 2004년 민기가 자신의 노래를 묶은 패키지 앨범(Past Life Of KIM MIN’GI)을 낸다는데 내가 앨범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중학교 때 품었던 뜻대로 미국으로 유학을 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설정했던 인생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일리노이대 석사과정)를 마치고 나니 사정이 달랐다. 디자인 회사들이 서로 모셔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수십 군데 지원을 했는데 죄다 떨어졌다. 간신히 GVO라는 디자인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2년쯤 일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 보고 싶었다. 때마침 모교인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분야 교수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뜻밖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교수 생활 2년 동안 언제나 마음은 ‘창업’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다. 회사를 차려 떠날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학생들한테도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우그룹을 떠나 이노디자인을 세운 후 처음으로 여행용 플라스틱 골프백 ‘프로텍’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디자인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IDEA’에서 동상을 받았다. 생애 첫 번째 수상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데 아직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디자인에서 ‘최고의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디자인은 계속 진화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작업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내 아이디어는 사람, 문화, 공간 세 곳에서 나온다. 내가 포함된 문화와 공간,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디자인의 원천이다. 아이디어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봤을 때 어떻게 도와주고 편리하게 만들어 줄까 하는 배려심에서 나올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보기에만 아름다운 작품은 절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아이디어를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또 한다. -우리 회사는 회의 시간이란 게 없다. 그냥 눈에 띄는 사람들을 불러 즉석에서 미팅을 하는 게 전부다. 국내 기업들의 회의는 획일적이다. 위에서 “이따가 오후 2시에 회의를 하겠습니다. 신제품 콘셉트에 대해 준비해 오세요”라고 하고, 아래에서는 “이따가 이런 얘기를 해야지”라고 하며 머리를 싸맨다. 그 결과로 갖고 오는 아이디어들은 절대로 팔딱팔딱 뛰는 활어가 될 수 없다. 죽어서 썩둑썩둑 썰려 나온 생명 없는 회라고나 할까. 죽은 아이디어는 디자이너에게 필요 없다. 미대 시절 소주병 들고 작업실에 들어가 몇 날 며칠 머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선배가 있었다.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는 그런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에게 그걸 보장해 주고 싶다. 그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국 디자인계의 구루(GURU·스승)’, ‘산업디자인의 미다스’로 불린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전문기업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극찬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와 삼성전자의 ‘가로 본능’ 위성DMB폰, LG전자 스마트폰 등의 디자인이 그의 작품이다. ‘디지털디자인 A to Z’ ‘12억짜리 냅킨 한 장’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퍼플피플’ ‘이매지너’ 등 틈나는 대로 펴낸 책들이 매번 베스트셀러가 됐다. ▲1950년 서울 출생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 교수(1980~1982년) ▲이노디자인 회장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 IDEA 금상(1993년), 한국 굿디자인전 대통령상(1999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디자인상(2005년), 독일 iF디자인 어워드 디자인상(2007년) 등.
  •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1970년 어느 추운 겨울날, 16살 소년은 상경한 동네 형 주소 하나만 들고 전라남도 나주에서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4남 1녀의 셋째인 그는 ‘농사를 지으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싶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낮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신문보급소 한쪽에서 공부하며 고달픈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얄팍한 침낭에 의지한 채 추운 겨울을 몇 해 보냈다. 낮에 돈 벌고 저녁에 공부하는 청년이 혼자만은 아니었겠지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1976년 어렵게 부산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1979년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36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헌병대와 교도소를 거쳐 다시 사회로 나왔다.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12년이 걸렸다. 참담한 심정이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사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던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동대문과는 당시 최훈 국회의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위와 외로움에 떨던 신문팔이 소년이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의 뜻을 행하며 이제는 37만 서울 동대문 주민을 책임지는 지역 수장이 됐다. 민선 2기에 이어 5기와 6기를 이어가며 동대문 발전을 이끄는 유덕열 구청장이 그 사람이다. ●부마항쟁 소용돌이 속 12년 만에 대학 졸업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우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흙수저로 태어나서일까. 유 구청장은 구정의 방점을 ‘복지’에 찍었다. 그는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이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동대문구청장을 하는 동안은 춥고 외로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주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 구청장은 민선 2기부터 1대1 희망결연 등 ‘동대문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자치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이웃 모두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소외계층을 위해 민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보듬누리 사업’은 구 직원들과 소외계층 간 결연을 민간으로까지 확대한 ‘희망의 1대1 결연’에 이웃의 복지를 주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자 꾸려진 ‘동(洞) 희망복지위원회’를 결합했다. 구 직원과 어려운 이웃을 연결한 ‘희망의 1대1 결연’만으로 복지사각 지대를 완전한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4개 동별 희망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자체적으로 각종 현안을 풀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30~80명 주민으로 구성된 희망복지위원회는 십시일반 자체 기금을 마련해 직접 어려운 이웃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돕고 있다. 복지의 그물망이 촘촘해지고 사각지대가 줄었다. 이런 노력으로 보듬누리는 ‘2013 지방 3.0 공모사업’ 대한민국 대표 60개 사업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2012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최우수상’, ‘제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복지서비스부문 최우수상’, ‘제1회 지방정부정책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유 구청장은 “다 같이 잘사는 동대문,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사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성취도 평가 성적 향상… 교육투자 ‘결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 구청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공교육’ 정상화에서 찾고 있다. 그는 “올바른 교육만이 가정의 행복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라면서 “지역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있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는 교육지원에 과감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인 결과 학생 1인당 지원액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다음으로 가장 많다”면서 “학생들의 학력 신장뿐 아니라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각종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우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동대문구가 속한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청 중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유 구청장은 가장 먼저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 범위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도록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따라서 2010년 68억원이던 교육예산을 2011년에는 112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렸고, 2012년에는 123억원 등으로 점차 늘려갔다. 학생 1인당 지원액 기준으로 서울에서 강남구 다음까지 늘렸다. 그 투자의 결과로 동대문구가 속해 있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지원청 중에서 3년 연속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교육 으뜸도시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학습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고 보통학력 이상인 학생은 증가하는 등 학생들의 성적이 지속적으로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지역 학생을 위해 지역 학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돕는 ‘희망드림 스터디 학습나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 학습나눔사업으로 현재 23개 학원에서 70여명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울러 구 교육비전센터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진로·학습상담 등 전문화된 교육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동대문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서는 자유학기제 지원프로그램, 진로탐색과 체험프로그램, 진로동아리, 직업체험페스티벌 등 총 6개 분야 19개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 있다. ●약령시 한방메카 개발 땐 ‘K의학’ 한류 동력 유 구청장은 동대문의 미래 먹거리 만들기도 고민한다. 사실 복지와 교육도 지역 경제발전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2017년이면 청량리역사 주변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고 국내 한방재료의 메카 약령시와 바이오·의료 연구단지인 홍릉 주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라면서 “꿈꾸던 동대문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칭 청량리 588 주변에 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사라지고 호텔과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가,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59층 4개 동, 1160가구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등 대표적인 구도심이었던 동대문구가 변신할 예정이다. 또 오는 12월 한방 공방과 카페, 족욕 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 공간 등으로 꾸민 한방진흥센터가 들어설 약령시도 국외관광객을 모으는 동대문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유 구청장은 “케이팝, K푸드 등에 이어 한약과 침술, 뜸 등 ‘K의학’이 한류를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한방진흥센터가 문을 열면 여행사와 관광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1만 3900가구가 들어서는 전농·답십리 재개발 사업은 입주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동대문=낙후지역’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유 구청장은 “45년 전 배고프고 외로웠던 신문팔이 소년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면서 “동대문구를 지역주민과 함께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봄볕 가득한 날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내비게이션이 이끌어주는 대로 몇 번 굽이진 길을 달렸고, 길 끝에 초원이 보인다 싶더니 은아목장이 나타났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하얀 집 몇 채가 하늘과 닿아 있었고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송아지와 자유로운 말 ‘벨라’와 그들이 노닐 법한 너른 마당이 보였다. 길을 오르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구름 아래 펼쳐진 방목의 초원이 보였다. 하늘 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유럽형 목장을 이룬 사람이 바로 조옥향(64) 대표다. 지체장애 3급의 그녀가 불편한 다리를 끌고 가족과 함께 이곳 경기 여주시 금당리에 들어온 게 벌써 33년 전의 일이었다. 긴 세월을 지나 지금 그녀의 남편 김상덕(67)씨와 두 딸이 은아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신림동에 서울대학교가 자리잡기 전 그곳엔 곳곳에 목장이 있었다. 은아목장의 조 대표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인 55년 전에 그녀의 아버지 친구분 목장을 구경 삼아 나들이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전거에 실린 우유통이 비포장도로를 지나가며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죠. 옛날엔 우유를 그런 깡통으로 배달을 했어요. 그 길, 구름, 나무, 자전거를 쫓아 달려가는 강아지 그리고 초원 같은 걸 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조 대표는 그 시절 그곳에서부터 낙농가의 꿈을 키웠으리라. # 목장의 여걸들 은아목장은 유럽형 축산을 실현한 국내 몇 안 되는 목장 가운데 하나다. 기술력이 뛰어난 친환경 목장이며 다양한 형태의 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한 ‘한국형 목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체험 목장으로 이름을 처음 알리던 2007년 무렵엔 200여명 남짓 다녀갔는데, 지난해에는 외국인 8000명을 포함해 2만여명이 다녀갔으며 체험교육비로 올린 매출액만 3억 5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은아목장의 총매출액이 7억원 정도였으니 그 절반은 목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조 대표가 황무지에 젊음을 바친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언덕에 텐트 쳐놓고 지내는데 밥 지을 물이 없어 몇 달 동안 개울물 떠다 지었죠. 그땐 가스도 안 들어와서 땔감을 모아와 불을 피웠어요. 하루는 비가 퍼붓는데 텐트 안에서 그 비를 보고 있자니 서글프고 괜히 여주로 내려왔나 싶기도 했어요.” 조 대표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은아목장은 평화와 자유가 가득했다. “이런 작은 목장은 사람을 많이 쓸 수 없어요. 체험이나 유가공 같은 일은 비수기가 있어서 작은 목장은 가족들끼리 꾸려 나가는 게 좋아요. 우리도 두 딸하고 남편이랑 목장을 꾸려 가고 있어요.” 그녀에겐 두 딸이 있다. 목장의 체험 프로그램을 맡은 큰딸 지은(31)씨와 목장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작은딸 지아(30)씨가 조 대표의 양 날개이자 은아목장의 여걸들이다. “딸들에게 미안해요. 아들이 없으니 목장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딸들밖에 없는 거예요. 시골에서 하는 일이 쉬운 게 없어요. 제 몸 불편하니까 남편이랑 딸아이들이 돕는데 얘들이 큰 후로는 사실 거의 목장 일꾼처럼 살았죠. 사춘기 시절부터 예쁘게 꾸며본 적이 없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죠. 지금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젖을 짜야 하는데 우리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 시간에 일어나 젖을 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소똥을 치우고, 건초를 준비하고, 밭일을 하고…. 예쁘게 자라야 하는 그 시간들을 목장에서 보내게 해서 늘 미안하죠.” 지금은 두 딸이 주력이 되어 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목장의 이름을 ‘은아목장’으로 만들 때 두 딸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따와서 만든 연유도 딸들이 목장을 꾸려 나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 딸은 소위 말해 유럽형 목장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아 왔다. 큰딸인 지은씨는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수제 치즈며 요구르트 그리고 피자와 쿠키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은아목장 내에 있는 ‘엘리 카페’는 연간 수천명이 다녀가는 아이스크림 체험장이 되었는데, 그녀가 구상해 일군 공방이며 요구르트를 만드는 균주실험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작은딸인 지아씨는 일본에서 낙농업과 유가공을 공부하고 돌아와 은아목장의 낙농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유학을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학원대학은 종합대학으로 한국인 출신 중 여학생은 지아씨가 처음이라고 했다.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맛봐야 한다는 소량 생산의 리코타 치즈부터 은아 플레인 요거트, 은아 버터쿠키, 은아 다쿠아즈 등은 두 딸에 의해 탄생한 지구상에 하나뿐인 은아목장만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두 딸은 결혼도 해서 아이들도 있는데 결혼 조건이 딸들이 목장 일을 해야 하니 그 점을 이해해 줄 남자여야 했다는 것이다. 두 딸과 조 대표, 그녀의 남편 그리고 손주들은 목장에서 지내고 그녀의 두 사위는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 내야 하는 일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래도 소음 한 자락 없고 찌든 때 한 점 없는 이런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랭보의 유명한 시 ‘나의 방랑’에 보면 ‘내 여인숙은 큰 곰자리’라는 노숙하는 자신을 표현한 시구가 있는데 은아목장이라면 노숙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삶을 조 대표는 물론 두 딸도 순응하며 살고 있다. # 서울 여자가 목장의 주인이 되기까지… 조 대표는 치과 의사였던 부친의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집안의 맏딸이었던 그녀는 목장을 꾸려 나가면서 다리뼈가 세 번이나 부러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 점을 부친께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 후에 경기도 여주행을 결심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던 남편과 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있는 여주로 내려왔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한심한 짓거리로 보였을 것이다. 다리 불편한 여자와 서울서 직장 생활을 했던, 목장 경험이라곤 전무한 부부 내외가 시골로 내려와 목장을 하겠다니 혀를 찰 법도 했다. 그녀 나이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주말이면 일찍 병원 문을 닫고 여주에 다녀가셨어요. 버스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가 그러셨죠. 농업은 창조적이고 경이로운 직업이라고요. 제 딸들을 이곳에서 낳았고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던 것도 그 시절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철학 그리고 아버지가 저를 믿어준 힘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초원 위에서 가족과 함께 수십 년을 버텨내고 개척하고 이루어냈다. 초원의 외로움과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식들은 쉬이 부모의 삶을 닮아가는 게 섭리일 터. 목장을 찾았던 한 낙농가가 아들도 없는 집안에서 목장을 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을 때 작은딸인 지아씨가 그런 말을 했다. “아저씨, 제가 이 다음에요, 아들 많은 집에서 아들 데려다가 이 목장 할 거예요!” 작은딸의 말은 절반은 맞았다. 결혼했고 사위도 생겼지만 사위가 아니라 작은딸이 ‘목부’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 대표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목장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다. 그녀와 그녀의 두 딸이 가꾸어 나가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2000년 우유값이 폭락한 ‘우유 파동’도 겪었다. 그때부터 조 대표는 ‘힘의 목장’이 아니라 노동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목장’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7년간의 준비 끝에 2006년 낙농진흥회로부터 체험목장으로 인증받았다. 가족 단위 혹은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젖도 짜고 치즈와 피자, 요구르트 등을 만드는 목장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는 나라 2000년 무렵 조 대표는 기존의 헌 우사를 체험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 차익을 노린다는 오해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또한 목장의 새로운 수익도 창출하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유제품 가공 공장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1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정부 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공무원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나 축산인 행사가 있을 때면 꼭 찾아가 은아목장에서 나온 우유로 만든 치즈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 노력 덕에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할 수 있었고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는데 그게 2009년의 일이었다. 그 덕에 소규모 낙농은 물론 산양 등의 축산업까지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목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낙농의 나라라면 어디든 연수를 떠났다. “일본은 목장 경영에서 우리보다 적어도 20년은 앞선 나라였어요. 우유를 가공하고 유제품을 만들고 목장을 가꿔 체험이 가능한 목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절감했죠. 둘째 딸을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대학으로 유학을 보낸 건 그 모든 걸 배워 오라는 뜻도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작은딸의 대학 지도교수이자 후견인이 되어 준 안도 고우치 교수를 만나 치즈 공방 설계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은아목장은 요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고급 치즈와 요구르트의 진정한 맛을 아는 소비자들 덕에 몇몇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있다. 생산량이 일정 궤도 이상 올라가면 중국 등 해외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녀와 같은 낙농가의 삶이 가능할까 싶어 물었다. “처음엔 자본이 굉장히 많이 들기 때문에 낙농 귀농은 어려워요. 축사며 착유기 등 돈이 많이 들어가요. 대신 가축 사육에 관심이 있다면 젖을 생산하는 산양으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절대적 믿음이에요. 남자라면 아내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래야 귀농이 가능해질 거예요.” 그녀가 오랫동안 회장을 맡고 있는 ‘여주 낙농검정회’는 농장의 후계자 8명과 함께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낙농가의 삶과 축산업에서 희망을 일구기 위한 시작이다. 검정회는 1998년 전국 최초로 설립됐으며 전국의 낙농가들이 롤모델 삼아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 30년 세월 동안 낙농가에게는 최고의 명예인 ‘홀스타인 품평회’에서 소규모 농가로서는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그랜드 챔피언을 2번 차지했던 조 대표와 두 딸은 세상의 여러 편견을 깨버린 여걸들임에 분명하다. 은아목장의 세 여걸이 그걸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다수
  • 세월호 2주년, 정부는 잊었다

    세월호 2주년, 정부는 잊었다

    세월호 참사가 지난 16일 2주기를 맞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안산 합동분향소, 진도 팽목항에는 굵은 빗방울과 강풍에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국민은 잊지 않았다. 2년 전 대한민국을 비탄에 빠트린 참사와 피지도 못한 채 스러진 단원고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과 승객들을. 또 유가족들과 함께 울었다. 하지만 “잊지 않겠다”던 정부는 그날의 아픔을 벌써 잊은듯하다. 19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공식 페이스북 등 SNS 계정에서 세월호와 세월호 참사 2주기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본 결과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 정부 기관은 대법원 등 8곳에 그쳤다.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행정자치부, 경찰청 등 주요 정부·공공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SNS에는 16일을 전후로 기관장 소식과 부처 사업 홍보 게시물만 있을 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청와대는 15일 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노르웨이 총리의 정상회담 소식을 올렸다. 17일에는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SNS에 담았다. 국회는 15일 SNS를 통해 정의화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유라시아 국회의장 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알렸다. 18일에는 정의화 의장이 ‘유라시아 국회의장 회의’에 참석한다는 내용을 게시했다.  세월호 참사와 가장 밀접한 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국민안전처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15일 세월호 추모 사진을 SNS 계정 배경으로 설정했다가 17일 오후 해양수산부를 홍보하는 그림으로 바꿨다. 국민안전처는 16일 SNS를 통해 ‘국민안전의 날’ 국민안전다짐대회 관련 영상을 게시했다. 반면 대법원은 48개 정부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세월호 추모 게시글을 자체 제작했다. “이 기록의 높이와 무게.. 그 이상으로 그 날을 아프게 기억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월호 사건 재판 서류가 180cm 높이로 쌓여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해당 사진에는 세월호 관련 대법원 판결 내용도 짧게 언급되어 있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범인 잡는 첨단장비 체험… 진로탐색 기회로”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범인 잡는 첨단장비 체험… 진로탐색 기회로”

    오리무중인 사건·사고와 귀신 같은 범인도 많지만 ‘귀신을 속였으면 속였지 과학수사대(CSI)를 속일 순 없다’고 합니다.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엿볼 수 있듯 날로 발전하는 과학수사 기술 덕분입니다. 과학수사엔 자연과학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철학 등 사회과학 분야 지식도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수사센터(KCSI)가 활약 중입니다. 이런 기관들에 충실하게 자료를 뒷받침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이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은수저 색깔로 음식에 독약을 넣었는지를 알아내는 등 과학수사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1955년 국과수 출범으로 본격화됐습니다. 국과수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18일 서정훈 국과수 연구기획과장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갈수록 대형화되는 사건·사고와 함께 재난영화, 언론보도 등 대중매체를 통해 국민들이 과학수사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높아지는 관심에 발맞춰 국과수에선 과학이 어떻게 범죄 증거물을 분석하고 범인 검거에 활용되는지를 실험·실습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짭니다. 원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자유학기제와 맞물려 최근엔 중학생 등 청소년으로 확대했죠. 일찌감치 꿈을 키우며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주게 된 셈입니다. 가변광원기를 사용한 인체분비물 찾기, 유전자(DNA) 관찰하기 등 밖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알찬 과정으로 구성돼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폐쇄회로(CC)TV나 블랙박스 등 영상에 찍힌 용의자와 검거된 용의자의 얼굴을 2D와 3D로 찍어 일치율을 살펴보는 ‘3D스캐너를 이용한 생체인식 알아보기’가 인기입니다. 체험 시간엔 연예인이나 국과수 직원들과 직접 매칭을 시켜 흥미를 끕니다. 실제로도 서울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배포돼 면허증 위조 사범을 한 달 만에 3명이나 검거하는 실적을 올렸답니다. 올해 체험교실은 1회당 30명 정원으로 꾸립니다. 여름방학 중엔 4회 잡혔습니다. 과학수사체험실 네이버카페에서 선착순으로 개별(동반 2명까지 가능) 접수합니다. 2학기 때 운영하는 자유학기제와 연계한 과학수사체험교실은 모두 8차례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모집 공고를 낸 다음 사전에 교육기관별로 공문을 주고받으며 예약하게 됩니다. 또한 2014년 세계과학학술대전(WFF), 지난해 세계과학수사박람회(IFE) 등 행사를 운영할 때 부대행사로 진행했던 과학수사 잡 코칭(Job-Coaching) 토크콘서트를 올해부터 정식으로 개설해 보다 다양한 과학수사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진로 상담에서 벗어나 국과수에서 일하는 미래의 선배 법과학자와 질의응답을 통해 진행합니다. 법의학자인 서중석 국과수 원장의 특강, 법의학과 DNA, 약독물·화학 분야는 물론 디지털 등 다양한 방면의 업무 소개를 들을 기회입니다. 오는 6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열리는 정부3.0 박람회에서 100분 러닝타임으로 첫 회를 시작합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4·19 정신 배우는 유학생

    4·19 정신 배우는 유학생

    4·19혁명 제56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외국인 유학생들이 서울 강북구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강북구는 이날 4·19 혁명 국민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희생자 넋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4.19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2016. 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4.19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2016. 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4.19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2016. 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4.19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2016. 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서울포토]국립4.19묘지 외국인 유학생들 참배

    4.19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2016. 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클래식·국악

    ●트리오 제이드 결성 10주년 음악회-셋을 위한 슈베르트 2006년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첼리스트 이정란,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트리오 제이드가 결성 10주년을 맞아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전곡을 연주한다. 2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4만원. (02)338-3816. ●한국문화의집 ‘가객’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0~40대 젊은 소리꾼 20명이 판소리, 가곡·가사, 서도소리, 경기민요 등에서 각자 자신 있는 눈대목을 뽐내며 자웅을 겨룬다. 19일~5월 31일 오후 8시 한국문화의집. 1만원. (02)3011-1720.
  • 미국서 R&D인재 영입 직접 나선 구본무 회장

    미국서 R&D인재 영입 직접 나선 구본무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직접 유학생 유치에 나섰다. LG그룹은 구 회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7개 계열사 경영진을 이끌고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LG 테크노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고 17일 밝혔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미주 지역에서 공부하는 우리나라 이공계 석·박사 과정 인재 300여명을 만나 LG의 기술 혁신 현황과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계획 등을 설명했다. 구 회장은 2012년부터 5년째 빠짐없이 국내외에서 열린 LG 테크노 콘퍼런스에 참석하며 우수 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그는 이날 “시장을 선도하려면 남다른 R&D가 필수”라면서 “여러분이 LG에 오신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인재들과 2시간가량 만찬을 하고 행사가 끝난 후 300여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직접 배웅했다고 LG 측은 전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공기업 사람들 (35)한국주택금융공사] “직원 전문성 키워 서민 금융 강화… 올 적격대출 16조로 늘려”

    [공기업 사람들 (35)한국주택금융공사] “직원 전문성 키워 서민 금융 강화… 올 적격대출 16조로 늘려”

    “올해 주택금융공사가 사람으로 치면 6학년이 됐습니다. 다른 금융공기업들과 비교해서는 어린 나이지만 그만큼 잠재력도 충분하지요. 이제는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워 나갈 때입니다.” 김재천(63)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택금융 전문가 양성과 중산·서민층에 대한 주택금융 지원을 올해의 중요한 추진 과제로 꼽았다. 2004년 설립된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007년 주택연금(역모기지론) 도입, 2010년 아시아 최초로 법정 커버드본드 발행, 201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격대출을 출시하는 등 업무 규모 면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앞으로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키려면 전문 인력 확보가 필수라는 설명이다. 이런 취지에서 올 1월 주택금융공사 산하 주택금융연구소를 주택금융연구원으로 승격시켰다. 조사연구 기능을 강화해 주택금융분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달 2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추가로 채용해 8명의 박사급 연구위원이 업무를 맡게 된다. 김 사장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대학이나 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달에는 SH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임대주택 공급확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바뀌는 요즘 임대주택 유동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해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특례 보증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올 초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와 협약을 맺고 그동안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던 저신용자에 대한 보증 지원을 시작했다. 신복위에 24회 이상 채무를 갚고 있는 성실상환자가 임차보증금 4억원 이하(지방 2억원 이하)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출을 받으면 최대 2500만원까지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해준다.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한 정책 모기지론(부동산 담보대출) 확대도 올해 역점 과제 가운데 하나다. 주택금융공사는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인 적격대출 공급액을 지난해 10조원에서 올해 16조원으로 대폭 늘렸다. 김 사장은 “안심전환대출이나 적격대출과 같은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점차 늘어나야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안심전환대출로 주택저당증권(MBS) 물량이 많이 늘어났는데 MBS 시장을 육성하고 리스크 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설 정도로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2014년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이후 지역민들과 화합하고 직원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역 은행과 열 쌍의 미팅을 주선했는데 거기서 한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김 사장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동아리 활동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대학 및 지역 금융사들과도 다양한 활동들을 연계해 협력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주택금융공사는 올해 직원 3명을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위해 외국으로 유학 보낸다. 그는 “조직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꾸준히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는 4명 이상에게 꾸준히 국내외 유학 기회를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불의 고리’ 강진 도미노] 정부, 日에 신속대응팀 4명 파견… 日 유학생·여행객 귀국 줄이어

    한국 정부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외교부 신속 대응팀을 17일 오전 현지에 파견했다. 4명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은 이날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고 현지에서 우리 국민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외교부는 관할 공관인 주후쿠오카 총영사관에 비상대책반을 두고 한국인 피해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이어지자 인근 지역에서 살던 교민과 유학생 및 여행객들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는 지진으로 공항이 폐쇄된 구마모토 대신 후쿠오카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발길이 이어졌다. 한편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에콰도르에서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현지 우리 국민의 피해가 확인된 것은 없으나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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