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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 6000억 탈루’ 서미경 35년 베일 벗고 금주 소환

    당시 정책본부장 신동빈도 수사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사실혼 관계로 35년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미경(57)씨가 탈세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이르면 이번 주 검찰에 소환될 전망이다. 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조재빈)는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1조원대 규모의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6.2%를 증여받고도 증여세 등 세금 6000여억원을 내지 않은 혐의로 서씨와 서씨의 딸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 신영자(74·구속기소)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조만간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전체 지분 가치는 16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검찰에 따르면 롯데그룹 정책본부 지원팀(재무·법무 담당)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신 총괄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세 사람에게 액면가로 넘겼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은 물론 차남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의 개입 여부도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2011년 이인원(69) 현 정책본부장이 후임으로 임명될 때까지 2004년부터 7년간 정책본부장을 지냈다. 정책본부 지원팀이 서씨 등에게 신 총괄회장의 지분을 몰래 건넨 시기와 겹친다. 롯데 측은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구조 자료를 제출할 때도 서씨 등의 보유 지분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씨는 금호여중 2학년 재학 시절인 1974년 제1대 미스롯데에 선발되면서 신 총괄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드라마 ‘토지’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1981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이후 1988년 딸 신유미(당시 5세)씨를 신 총괄회장 호적에 입적시키면서 풍문으로 떠돌던 ‘재벌 총수 스폰설(設)’의 실체가 확인되기도 했다. 서씨 모녀와 신영자 이사장에 대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증여로 신 총괄회장의 제왕적 경영 스타일에도 다시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씨 모녀와 신 이사장이 각각 보유한 3.1% 지분율은 경영 일선에 있던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1.6%)이나 신동빈 회장(1.4%)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자신에 대한 과신 때문에 후계 구도 구축이 늦어졌고 그 결과 비상식적인 지분 증여가 이뤄진 듯하다”면서 “향후 롯데 지배구조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서울포토]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

    [서울포토]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시립 어린이병원에서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에 참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어린이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6.08.05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서울포토]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

    [서울포토]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시립 어린이병원에서 ’서울시 글로벌 인턴십’에 참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환우들이 사용할 거즈를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6.08.05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文, 네팔방문 후 첫 공개행보로 주말 목포행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6일 1박2일 일정으로 호남을 찾는다. 네팔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가 지난달 9일 귀국한 이후 첫 공개 행보다. 4·13총선 당시 문 전 대표는 호남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더민주는 호남에서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이후 문 전 대표 측의 최우선과제는 꽁꽁 얼어붙은 호남의 지지를 되돌리는 방안이었던 터라 이번 일정에 더 관심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4일 “문 전 대표가 이번 주말 목포와 광양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공보 특보 및 수행팀장을 지낸 김 의원은 최근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단톡방(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언론 창구를 맡고 있다.  문 전 대표는 6일 오후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 열리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7주기 평화의 밤 콘서트’에 참석한다. 행사 주최 측의 참석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에는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둘의 조우가 이뤄질 전망이다.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대표나, 멀지 않은 전남 강진에 머물고 있는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참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문 전 대표는 이튿날인 7일에는 전남 광양에 있는 독립운동가 매천 황현 선생 생가를 방문한다. 김 의원은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문 전 대표가 지역을 방문하면서 주변 유적지도 함께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며 “구한말 외세에 맞선 대표적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매천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여고생과의 부적절한 성관계가 “실수였다”는 이동현 목사

    여고생과의 부적절한 성관계가 “실수였다”는 이동현 목사

    한국 교계의 대표적인 청소년 사역 단체 대표가 목사의 신분으로 신앙심을 내세워 과거 여자 고교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3일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국내 교계 청소년 사역 단체인 ‘라이즈업무브먼트’의 대표 이동현(49) 목사는 그가 37살 때인 2004년 당시 고3이었던 A씨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었다. 당시 이 목사는 기성 교회를 비판하면서 “청소년만이 썩어빠진 한국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설파해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A씨의 증언이다. 이 목사는 호의를 베풀며 A씨에게 접근했다. 따로 불러내 밥을 사주거나 자신의 자동차에 태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시켜주기도 했다. A씨는 점점 이 목사가 하는 말과 행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목사는 2004년 A씨가 고3인 시절부터 A씨에게 본격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A씨가 완강히 거부했지만 이 목사는 “이미 늦었다”면서 성관계를 맺었다. A씨는 “첫 성관계 후에 계속 울자 이 목사가 ‘그 어떤 여자애들도 자기가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들이대면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관계를 맺게 됐을 것이다’라면서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라면서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위치가 (사역) 단체 내 여자 고등학생, 대학생에게 다가가 잘해주면 넘어올 것이라는 지위상의 이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번 시작된 성관계는 그 뒤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이 목사는 A씨의 집 앞에서 교복을 입은 A씨를 차에 태워 교외 모텔로 향하기도 했다. A씨는 이 목사로부터 벗어나려고 거처를 수차례 옮기기도 했지만 이 목사는 어떻게든 A씨를 찾아냈다. A씨가 만남을 거부하자 이 목사는 “사탄이 사역을 흔들고 있다”면서 자신의 행위가 사역의 일종이라고 합리화했다. 협박성 발언도 일삼았다. A씨는 “이 목사는 어떻게든 나와 연락하고 또 설득해서 다시 성관계를 맺었다. 이런 관계가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면서 “이 목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네 인생은 망한다’랄지, ‘너 나랑 이래 놓고 이제 시집 어떻게 갈래’라는 말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당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A씨가 계속 성관계를 거부하자 “네가 입을 뻥긋하면 사탄이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사역을 망친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걸 참아라. 너 한 명만 참고 견디면 성령을 훼방하지 않게 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적절한 성관계가 사역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A씨 어머니는 이 목사에게 전화해 ‘더 이상 딸을 만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 하지만 이 목사는 그 후로도 A씨에게 거듭 연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A씨를 향한 이 목사의 집착은 심해졌다. A씨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불면증과 우울증이 겹쳐 눈을 뜨면 오후인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대학교 1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우울증 등에 시달려 학교를 그만뒀다. A씨는 이 목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학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목사는 A씨가 유학을 가기 전 배낭여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다녀오면 놓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목사는 또 한 번 A씨와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녀온 뒤에야 A씨와의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A씨는 그 이후로도 계속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한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다고 말했다. A씨는 “고3 때부터 나를 괴롭혀 온 우울증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면서 “자살할 때 쓰는 밧줄이 눈앞을 떠다닐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논란이 일자 이 목사는 이날 교계 언론에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역 초기 젊은 시절 실수한 것이 맞다”면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제가 범한 과오가 맞다”고 밝혔다. 결국 이 목사는 고교생을 상대로 한 부적절한 행동을 단순히 ‘실수’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최남선·이광수 문학상/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최남선·이광수 문학상/박홍환 논설위원

    육당(六堂) 최남선과 춘원(春園) 이광수. 동시대의 또 다른 걸출한 인물 벽초(碧初) 홍명희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던 한국 근대 문학사의 양대 거두다. 두 사람 모두 문인이면서 사상가였고, 문화운동가인 동시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씻을 수 없는 친일의 오점도 함께 남겼다. 한국의 현대 시는 각 7행씩 6연으로 구성된 육당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1917년 벽두부터 6개월간 매일신보에 연재한 춘원의 장편소설 ‘무정’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로 문단사에 기록돼 있다. 10대 청소년기 일본 유학 시절부터 교류한 육당과 춘원은 ‘소년회’ 활동과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로 꼽히는 ‘소년’ 창간 등을 통해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각성을 위한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이 창간한 ‘소년’ ‘청춘’ 등은 민중 계몽의 도구이자 문학 발전의 토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자들은 육당의 논문과 춘원의 글을 통해 시대정신을 깨우쳤다. 육당과 춘원은 독립운동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3·1독립선언서를 대표 집필한 육당은 2년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일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춘원은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춘원은 독립신문을 창간해 사장 겸 편집국장, 주필로서 임정의 선전활동을 담당했다. 역사가 여기까지였다면 두 사람에 대한 인물평은 긍정 일변도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육당과 춘원은 긴 일제 암흑기를 견디지 못하고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운동가보다는 학자이기를 원했던 육당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 설립한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으로 참여했는가 하면 각종 신문 등에 내선일체 등 친일 칼럼을 기고했다. 임정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춘원은 ‘민족개조론’을 통해 식민지 통치에 타협적인 입장을 내보이더니 이름까지 가야마 미쓰로로 바꿔 버렸다. 육당과 춘원은 태평양전쟁 시기에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 모인 1000여명의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두 사람은 황국(皇國)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육당과 춘원이 친일 행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한국문인협회는 “친일 행각과 문학적 성과는 별개”라며 내년부터 최남선·이광수 문학상을 시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문인들은 “친일 문학상을 만드냐”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문학사의 ‘문제적 인물’인 육당과 춘원이 또다시 문단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수요 에세이] 한국 제조업, 몽골을 개척하라!/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수요 에세이] 한국 제조업, 몽골을 개척하라!/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군사 전략가이자 제왕인 칭기즈칸(1162~1227)은 많은 이에게 강력한 리더십의 대명사로 존경받고 있다. 반면 13세기 당시 고려에 살던 우리 선조들에게 칭기즈칸은 고통의 이름이었다. 고려는 몽골(당시 원(元))의 계속된 침략으로 9번에 걸쳐 전쟁을 치렀고 결국 약 100년간 몽골의 간섭을 받았다. 고려의 관제와 호칭이 격하되고 민족의 자주성을 훼손당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몽골의 문화를 고려만의 색채로 발전시키는 등 한민족(韓民族)의 슬기로운 모습을 보여 줬다. 21세기 현재, 한국과 몽골의 관계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몽골의 수많은 근로자와 학생들은 ‘코리안드림’(Korean Dream)을 꿈꾸며 한국에서 취업하길 원하고 있다. 현재 3만여명의 몽골인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고 유학, 취업 등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사람만 해도 약 30만명에 달한다. 몽골 전체 인구가 300만명인 점을 고려한다면 몽골인의 약 10%가 한국을 경험한 셈이다. 근대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란 강대국 사이에서 대부분의 국토를 상실하고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몽골인들은 비슷한 처지에서도 세계적인 중견국가로 성공한 한국인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 내 친한(親韓) 정서는 케이팝, 케이드라마 등의 한류와 함께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한국을 방문하는 몽골인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8세기 전 몽골인에게 관리의 대상이었던 ‘코리아’가 이제 배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머지않아 한국인에게 몽골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은 금, 구리, 석탄 등 광업자원이 풍부한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이에 반해 제조업 비중은 총 산업의 10%에 불과한 수준으로 한국에서 사양산업(斜陽産業)화되고 있는 전통 제조업이 몽골에서는 이제 성장기에 있다. 몽골에서 광업자원을 이용한 레미콘, 벽돌 등의 제조기술은 한국으로 치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몽골 정부는 제조업 분야의 선진 기술과 기계 장비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있어 몽골 내 제조업 수요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국의 산업화 노하우와 제조기술력을 몽골의 풍부한 자원과 접목해 생산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점점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는 전통 제조 중소기업들에 몽골 시장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창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한국 기업에 경쟁력 있는 사업 영역과 투자 지역을 선정했는데 그게 몽골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해외 민간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MKI의 양윤호 대표의 말이다. 양 대표는 한국의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몽골에서 성공한 좋은 사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근무하던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몽골에서 레미콘 회사 창업에 뛰어든 양 대표는 당시 레미콘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 몽골에서 스스로 시장을 창조했다. 지속적인 현지화 노력으로 현재 ㈜MKI는 몽골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양 대표의 도전 정신과 끈기가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 전통 제조업의 기술력과 몽골의 풍부한 광업자원 간의 시너지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9개사로 구성된 경제사절단과 함께 몽골을 방문해 비즈니스 포럼, 일대일 상담회 등을 개최하며 한국 기업의 몽골 진출에 힘을 실어 줬다. “말은 타 봐야 명마인지 알 수 있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몽골 속담처럼, 이번 국빈 방문은 1990년 한·몽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 협력을 이어 오고 있는 양국 관계를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진 한·몽 관계는 한국 기업인들의 몽골 진출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땀과 열정으로 드넓은 몽골 땅을 개척해 나가는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길 바란다.
  • 봉화고, 등록금 지원 약속 깬 사연은…

    후원 기업 경영난에 지원 끊겨 시정명령한 공정위 “안타까워” 경기 악화로 3년 전 장학금 지급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방 공립고등학교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국내 상위권 대학 진학 시 4년 등록금 지원’이라는 신입생 모집 당시의 광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경북 봉화고에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봉화고가 학교를 대상으로 이뤄진 최초의 공정위 시정명령 대상이 된 데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농촌 지역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2007년 3월부터 봉화여고와 합쳐져 기숙형 공립고로 운영돼 왔던 봉화고는 대구나 인근 영주시로 유학을 떠나는 성적 우수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2012년 11월 1일부터 신입생 모집 안내를 하면서 “국내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경우 4년간 등록금을 지원하겠다”고 광고했다. 장학금은 봉화고 출신으로 중국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이창호 제성유압유한공사 대표가 대기로 했다.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해 전통을 이어 가고자 했던 봉화고의 생존 전략과 “가정 형편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후배가 없도록 돕고 싶다”는 이 대표의 바람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합격자는 등록금의 100%를,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양대, 인하대, 경북대, 부산대 합격자는 등록금의 50%를 지원받았다. 그 결과 2013년부터 매년 10명 넘게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제성유압은 최근 중국 경기의 악화로 사업부문을 축소해야 할 만큼 비상 상황을 맞았다. 장학 지원 규모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봉화고는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졸업생에게 1학년 첫 학기 등록금을 지원하면서 ‘향후 등록금을 계속 받으려면 학점 3.8 이상을 얻어야 한다’는 예전에 없던 조항을 제시했고, 부산대 입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장학제도가 입학 당시의 약속과 달라졌다”고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 공정위는 ‘거짓·과장광고를 했다’며 봉화고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조사를 담당한 박종일 공정위 대구사무소 소비자과장은 “지역 인재 육성으로 명맥을 이어 가려던 시골 학교가 힘을 잃게 될까 봐, 또 불경기에 어쩔 수 없이 모교 지원을 줄여야 하는 선배의 마음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절제되어 더 뜨거운… ‘덕혜옹주’의 남자 박해일

    절제되어 더 뜨거운… ‘덕혜옹주’의 남자 박해일

    “이제껏 겪어온 경험들, 터득한 노하우를 이번에 집약하고 정리, 융합해서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면 앞으로 (연기를) 새롭게 탐구해볼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죠. ‘덕혜옹주’라는 작품은 제게 어떠한 지점으로 가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부드러움에 단단함을 갖춘 박해일(39)은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상업 영화로, 때로는 독립 영화로 관객들과 20여편의 신뢰 관계를 쌓아오다가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전환기에 택한 작품이 바로 ‘덕혜옹주’(3일 개봉).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다간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주인공이다. 박해일은 덕혜옹주(손예진)를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김장한’을 연기한다. 원래 김장한은 실제 기록에선 고종이 환갑에 얻은 딸로 애지중지하던 덕혜옹주와 정혼시키려 했던 것으로 단 한 줄 언급되는 인물이다. 덕혜옹주는 그러나 고종이 돌연 세상을 떠나며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부의 반대에 막혀 좀처럼 고국 땅을 밟지 못하던 덕혜옹주는 1962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다. 이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서울신문사 김을한 기자로, 김장한의 형이다. 영화 속 ‘김장한’은 이들 형제를 하나로 녹인 캐릭터다. 여기에 허진호 감독은 김장한이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영친왕과 덕혜옹주 남매를 상해로 망명시키려고 일본에서 탈출 작전을 벌였다는 픽션까지 버무리며 자칫 분위기가 처질 수 있는 영화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덕혜옹주와 김장한은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미묘한 감정선을 오간다. 박해일은 감정신이 단 한 장면에 불과할 정도로 절제된 연기를 보탠다. 덕혜옹주에 대한 김장한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부분이 이번 작품에서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박해일은 말했다. “적정하게 거리를 두고 남녀 관계를 풀어가는 허진호 감독님만의 특화된 방식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감독님은 사소한 동작이나 모습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정서를 끄집어 내는 데, 정말 대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슬아슬하게 관계의 지점들을 풀어내는 데 거기서 깊이가 나오죠.” 덕혜옹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느냐에 대해 어느 정도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 영화는 애써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과 극화된 영화는 비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장르로 풀어왔고, ‘덕혜옹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더 나아가 이야기하려는 게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좋은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특수학교도 2018년부터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특수학교도 2018년부터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2018년부터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전국 모든 특수학교(중학교)에 박근혜 정부 대표 정책인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된다. 2013년부터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부터 일반 중학교에서 무리 없이 전면 시행하는 만큼 이젠 특수학교에까지 자유학기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1일 입수한 교육부의 ‘특수학교 자유학기제 시행계획’에 따르면 교육부는 2018년 전국 168개교 특수학교(중학교) 모두에 자유학기제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 연구학교 14개교를 선정해 시범 운영한다. 연구학교는 시각장애 2개교, 청각장애 2개교, 지체장애 1개교, 지적장애 9개교 등 모두 14개교다. 이 가운데 전북 전주선화학교가 지난 1학기 운영했고, 13개교가 오는 2학기부터 시범운영한다. 내년에는 서울맹학교와 한국선진학교 등 국립특수학교를 중심으로 연구학교 10개교가 추가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학교의 결과를 토대로 자유학기제 운영을 희망하는 학교들에 대해 별도 예산을 배분해 내년에는 운영 학교를 80여개교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지필고사에 대한 부담 없이 체험 활동에 집중하도록 하는 교육제도다. 특수학교의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은 일반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오전에는 학교 교과 공부를 하고, 오후 시간을 활용해 학기당 170시간 이상의 진로·예술·체험·동아리 활동을 편성 운영한다. 다만 장애 학생의 여건과 특수성을 고려해 구성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학생은 텔레마케터를 비롯해 장애 상황에 맞춘 진로 체험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중도·중복장애 학생이 포함된 학급은 가정, 학교,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체험을 의미하는 ‘생활기능 영역’이 강조된 활동 위주로 구성된다. 다만 일반 중학교가 1학년 1학기~2학년 1학기 가운데 한 학기를 시행하는 것과 달리 특수학교는 중학교 전체 학기 중에서 학교의 장이 교원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서 한 학기를 선택해 운영한다. 한편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전남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20번째 자유학기제 학부모 토크콘서트를 끝으로 지난 2월 29일 서울을 시작으로 5개월간 이어진 자유학기제 정착을 위한 학부모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장한은 실제 고종이 덕혜옹주와 정혼 시키려 했던 인물 ”

    “김장한은 실제 고종이 덕혜옹주와 정혼 시키려 했던 인물 ”

     “이제껏 겪어온 경험들, 터득한 노하우를 이번에 집약하고 정리, 융합해서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면 앞으로 (연기를) 새롭게 탐구해볼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죠. ‘덕혜옹주’라는 작품은 제게 어떠한 지점으로 가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부드러움에 단단함을 갖춘 박해일(39)은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상업 영화로, 때로는 독립 영화로 관객들과 20여편의 신뢰 관계를 쌓아오다가 어느 덧 마흔을 바라보는 전환기에 택한 작품이 바로 ‘덕혜옹주’(3일 개봉).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다간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주인공이다.  박해일은 덕혜옹주(손예진)를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김장한’을 연기한다. 원래 김장한은 실제 기록에선 고종이 환갑에 얻은 딸로 애지중지하던 덕혜옹주와 정혼시키려 했던 것으로만 단 한 줄 언급되는 인물이다. 덕혜옹주는 그러나 고종이 돌연 세상을 떠나며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부의 반대에 막혀 좀처럼 고국 땅을 밟지 못하던 덕혜옹주는 1962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다. 이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서울신문사 김일한 기자로, 김장한의 형이다. 영화 속 ‘김장한’은 이들 형제를 하나로 녹인 캐릭터다. 여기에 허진호 감독은 김장한이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영친왕과 덕혜옹주 남매를 상해로 망명시키려고 일본에서 탈출 작전을 벌였다는 픽션까지 버무리며 자칫 분위기가 처질 수 있는 영화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박해일은 ‘은교’에서의 파격 이후 이후 4년 만에 또 노인 특수 분장을 했다. 핸드헬드 롱테이크로 찍은 첫 장면에서부터 장년의 모습을 보이더니 일제강점기의 청년 시절을 오간다.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한 번 제대로 해봐서 그런 지 물리적인 불편함이 없이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분장을 받았을 때의 불편함과 예민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배우는 결국 감정으로 배우의 역할을 해내야 하잖아요. 그 부분에 집중하기가 좋았죠.”  영화에서 덕혜옹주와 김장한은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미묘한 감정선을 오간다. 박해일은 감정신이 단 한 장면에 불과할 정도로 절제된 연기를 보탠다. 덕혜옹주에 대한 김장한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부분이 이번 작품에서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박해일은 말했다. “적정하게 거리를 두고 남녀 관계를 풀어가는 허진호 감독님만의 특화된 방식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감독님은 사소한 동작이나 모습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정서를 끄집어 내는 데, 정말 대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슬아슬하게 관계의 지점들을 풀어내는 데 거기서 깊이가 나오죠.”  덕혜옹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냐에 대해 어느 정도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 영화는 애써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과 극화된 영화는 비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장르로 풀어왔고, ‘덕혜옹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더 나아가 이야기하려는 게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좋은 관심라고 생각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김동수 민생프리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단상

    [김동수 민생프리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단상

    블랙(black)이라는 돌림자가 들어가는 영어 단어들은 대부분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경우가 많다. 블랙메일(blackmail·공갈), 블랙아웃(blackout·정전), 블랙리스트(blacklist·요주의 인물), 블랙플래그(black flag·해적기)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금융시장에서도 주가가 폭락하는 날이면 미디어들은 어김없이 블랙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다. 이 모두가 로마제국시대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금요일을 가리켜 블랙프라이데이라고 불렀던 데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처방책처럼 제시되고 있으니 다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00여년 전에 미국에서 탄생한 블랙프라이데이는 연말 쇼핑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다. 11월 마지막째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날로 연중 최대의 세일과 쇼핑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수학할 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넉넉지 못한 유학생 신분에서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보고만 있었겠는가. 소매업체의 경우 한 해 매출의 70%가 이날 이루어진다고 할 정도니 가히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업체들의 장부상 적자가 연중 처음으로 흑자(black)로 돌아선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터다.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기획한 당국자들 역시 비슷한 효과를 기대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 소비 활성화와 경기 부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판단했는지 얼마 전 정부는 이 같은 대규모 할인 행사를 매년 정례화하는 내용을 경제정책 방향에 담아 발표했다. 올해도 9월 29일부터 한 달간 행사가 진행될 예정인데 그 거시경제적인 효과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내수를 진작시키는 단기 부양책으로서 실효성이 크다. 다른 한편에서는 할인 행사 종료와 함께 소비절벽이 찾아와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결과에 만족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납품 단가와 수수료를 둘러싸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간에 벌어졌던 갈등이 그 한 예라고 하겠다. 기획·재고상품 중심의 할인 판매에 대한 소비자 기만행위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발생했던 소비자 불만족 등도 주요한 이슈였다. 되돌아보면 이런 문제들은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다소 치밀하지 못했던 결과다. 미국의 경우에는 100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1년 가까이 꼼꼼하게 준비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단 3개월 만에 기획부터 집행까지 끝냈다고 하니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들이 속출했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를 거울삼아 올해는 정부가 민관합동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는 이름하에 대규모 세일과 해외 관광객 유치, 한류 등 문화가 어우러진 쇼핑관광 축제로 준비할 계획이다. 그간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류라는 문화 경쟁력을 토대로 외국인들을 불러들여 내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콘셉트는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다. 산업은 물론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융합현상이 경제 정책에도 투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아 기대감도 크다. 그렇지만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모든 경제 주체들이 만족하고 상생할 수 있는 성공적 경제정책으로 거듭나려면 미시적인 차원에서 검토돼야 할 사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우리만의 독창성이 가미된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렇고 그런 세일 행사 중 하나로 끝나 버릴 위험성도 있다. 지난해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하고 아쉬웠던 점들을 보완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부디 쇼핑과 관광·한류가 융합된 글로벌 명품 축제로 거듭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동시에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의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해 보다 정밀한 분석 작업과 함께 생산적인 토론이 진행되기를 희망해 본다. 고려대 석좌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
  • 귀향·귀순 → 생계 해결 → 한류 동경

    탈북은 한반도 분단 이후 지난 60여년간 사선(死線)을 건넌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탈북을 결심하는 요인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 왔다. 6·25전쟁 당시까지 탈북은 전장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자들의 탈북이었다. 그러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 시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탈북자들은 ‘귀순용사’로서 대접을 받았다. 이들은 출신 성분상 군인이 많았으며 체제 경쟁 시대였던 당시 남한 정치체제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1990년대부터는 외교관, 유학생, 무역상, 고위 인사 등의 ‘엘리트 탈북’도 많아졌다.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의 해체 등 역사적 사건을 잇달아 겪으면서 외국에 나와 있던 북한 엘리트층들이 북한 체제에 회의를 품고 탈북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는 정치적 동기보다 경제적 요인에 따른 탈북이 늘어났다. 1995년 북한의 대홍수와 고난의 행군으로 먹고살 길을 찾아 탈북을 결심한 것이다. 노동자, 농장 근로자, 군인, 학생, 주부 등 하위계층에 속했던 사람들이 식량을 구할 목적으로 중국으로 대거 유입됐고 이 중 일부가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량 탈북 사태에 대비해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탈북 요인이나 루트는 다양해졌다. 여전히 숙청 등을 피해 남한행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북한 중산층이 ‘삶의 질’을 찾아 탈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에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체제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서 남한 TV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면서 남한을 동경해 탈북을 감행하기도 한다. 지난 4월 중국에서 집단 탈북한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들은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 남북의 실상을 알게 되고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사설] 외국인 300만 시대 다문화 국가에 대비해야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 단일문화 국가에서 언어와 문화를 달리하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문화 지체, 이른바 아노미 현상이 발생해 개인 또는 사회 차원에서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폭증하는 갈등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기 전에 300만 다문화 국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법무부는 그제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200만 1828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의 3.9%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외국인 증가율 8%를 고려해 2021년이면 외국인 수가 300만명을 돌파, 전체 인구의 5.8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5.7%를 웃도는 수치다. 법무부가 밝힌 외국인 통계에는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뒤 국적을 취득한 11만여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외국인 숫자는 통계치보다 많은 셈이다. 유엔에서는 우리의 낮은 출산율을 고려해 2050년이면 외국인 숫자가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문화 국가에 걸맞은 대비책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다문화 이주자’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장기 체류 외국인, 국제결혼 이주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누가 뭐래도 사회 갈등이다. 최근 유럽 여러 나라가 겪고 있는 사회 갈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정부 차원에서 사회통합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이주자 정책은 기본적인 언어교육 등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분야에 제한돼 있다. 이제부터는 국민을 상대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종과 언어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의식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다문화 이주자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첨단과학 분야 등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 다문화 이주자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는 차이를 인정하고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중 언어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화교들에게 가했던 차별정책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다. 주거·고용·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동등한 대우를 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서울시의회 김광수의원, 강진 옴천초등 산촌유학센터 준공식 참석

    서울시의회 김광수의원, 강진 옴천초등 산촌유학센터 준공식 참석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광수 의원(국민의당 노원5)은 21일 전남 강진에 위치한 옴천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김 의원의 모교이기도 한 옴천초등학교는 이날 학교장을 비롯한 학생, 학부모, 기관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학센터 준공식 기념행사가 열렸다. 유학센터는 45평형 규모로 지어 졌으며,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기 위해 절대적으로 유학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지난해 옴천태양광법인에서 부지를 마련하고 전남도청, 전남 교육청, 강진군청, 수자원공사의 도움을 받아 1억 6천만원을 확보해 준공식을 갖게 됐다. 전국 3,816개 시·군·구 가운데 40번째로 작은 강진군 옴천면 산자락에 자리 잡은 옴천초등학교는 도시에서 유학 온 14명과 늦깎이 학생 2명 등 전교생 34명이 공부하고 있다. 현재 옴천면 인구는 783명이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0.7%로 이른다. 1928년 개교한 옴천초등학교는 지난 2013년 학생 수가 15명으로 줄어 폐교 위기에 몰였으나, 2013년 공모제로 부임한 임금순 교장이 아이디어를 내 ‘산촌유학’을 시작했다. 친환경, 청정지역의 장점을 살려 도시 학생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전남 강진군과 유학생 본인이 반반씩 부담해 홈스테이 생활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학교생활을 한다. ‘유학’이라 하면 해외유학, 혹은 진학을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학생을 떠올리지만 강진군은 도시의 아이들이 농어촌의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뛰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했다. 2014년부터 전국 최초로 유학생들에게 유학비 1인당 25만원을 지원하며 농촌 유학 활성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날 준공식에 참석한 김광수 의원은 “폐교의 위기에서 다시 일어선 옴천초등학교에 세워진 옴냇골 산촌유학센터 준공식은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영향으로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빠진 농촌 초등학교의 새로운 학교 모델이 될 것이며, 유학 활성화로 농촌에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로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중요한 게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특히 모교를 새롭게 일으킨 임금순 교장선생의 열정에 감사를 표했다. 임금순 교장선생님은 기념사를 통하여 많은 감회를 전했으며, 함께 참석한 내빈 중 특별히 멀리서 어려운 걸음을 해 모교를 빛내준 김광수 서울시의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앞으로 옴천초등학교 유학센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해외에서 학생들이 유학 오기를 기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 외국인 5년 뒤 300만 ‘다문화 국가’

    국내 외국인 5년 뒤 300만 ‘다문화 국가’

    중국인·유학생 등 늘어난 영향 단순 관광을 제외하고 취업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수가 전체 인구의 4% 남짓인 200만명을 돌파했다. 5년 뒤인 2021년에는 외국인 수가 300만명을 넘어서면서 우리나라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닌 본격적인 ‘다문화 국가’로 변모할 전망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 1828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의 3.9%를 차지했다고 27일 밝혔다. 법무부는 2011∼2015년 체류 외국인이 연평균 8%씩 증가한 것을 감안할 때 2021년에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300만명을 돌파, 전체 인구의 5.82%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5.7%를 웃도는 것은 물론 프랑스, 캐나다(이상 6%) 등 다민족 국가에 근접한 수치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절반은 중국인(101만 2273명, 50.6%)이 차지했다. 이어 ▲미국(15만 5495명, 7.8%) ▲베트남(14만 3394명, 7.2%) 등의 순이었다. 국내에 91일 이상 거주하는 장기체류 외국인은 2000년 21만 9962명에서 6월 말 148만 1603명으로 약 7배 증가했다. 국적별 비중은 ▲중국 54.5% ▲베트남 8.8% ▲미국 4.7% 순이었다. 장기체류 외국인 증가 이유는 중국인 체류자와 취업 외국인, 결혼이민자, 외국인 유학생 등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2007년 3월부터 방문취업제가 시행되면서 중국 동포의 국내 체류가 급속히 늘었고, 그 결과 중국인 장기체류자는 2000년 5만 8984명에서 6월 말 80만 7076명으로 14배나 늘었다.국내 취업 외국인도 2000년 2만 538명에서 6월 말 60만 8867명으로 30배나 증가했다. 2004년 고용허가제, 2007년 방문취업제 도입으로 단순기능 인력이 늘어난 것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국내에 90일 이내로 머무는 단기체류 외국인은 52만 225명으로 조사됐다. 국적별로는 중국 39.4%, 미국 16.6%, 태국 12.5% 순이었다. 특히 단기체류 중국인은 2000년 10만 491명에서 20만 5197명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불법체류자 수는 20만명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전체 체류 외국인 중 비율은 2000년 41.8%에서 10.6%까지 떨어졌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스몰비어 원조 봉구비어, 中 상해 메인 상권에 2호점 오픈

    스몰비어 원조 봉구비어, 中 상해 메인 상권에 2호점 오픈

    봉구비어가 중국 상해에 2호점을 오픈하면서 중국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봉구비어는 국내에서 매장운영 전략을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중국 상해에 1호점을 개점, 10개월 만에 2호점을선보였다. 봉구비어 중국 1호점은 중국의 상해양정찬음공사와 프랜차이즈 방식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1호점 매장의 성과를 바탕으로 동사에서 2호점까지 매장을 확장하게 됐다. 특히 이번에 개점한 봉구비어 중국 2호점은 27평 규모로 메인 주류상권인 홍첸루 거리 중심가에 위치해 봉구비어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중국 봉구비어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1인 운영이 가능한 오픈바 형태로 설계됐으며 이 브랜드 캐릭터만의 재치있는 유머와 따뜻한 감성을 녹인 인테리어도 그대로 적용됐다. 상해에 선보인 매장의 경우 한인타운에 인근에 위치해 대부분 유학생, 주재원 직원 등 한국 고객 위주였으나 최근 젊은 중국인 고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봉구비어를 운영하는 상해양정찬음공사의 황이원 대표는 “상해의 경우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음주를 즐기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식사에서 음주까지 한 자리에서 마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음식들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봉구비어가 이러한 문화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며 젊은 층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봉구비어 관계자는 “중국시장에서의 정착을 위해 단계별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국내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현지 메뉴를 개발하며 중국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봉구비어는 메인상권이 아닌 골목상권에 입점해 임대료 절감이 가능한 가운데 작은 크기의 점포와 간소화된 메뉴를 통해 인건비와 운영비 효율성을 높였다. 지난 2011년 11월 부산 전포동에서 1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내에 700여 개의 가맹점이 운영 중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정은, 한국인 테러 지시…北 3개 공작조직 움직임 포착

    김정은, 한국인 테러 지시…北 3개 공작조직 움직임 포착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찾는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지시한 가운데 테러를 위해 움직이는 공작조직이 3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중앙일보>는 북한 소식에 밝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4월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출해 한국에 입국했다는 통일부의 발표를 접하고 보복 테러를 지시했고, 테러요원이 파견된 곳은 중국 선양(瀋陽)·단둥(丹東)과 동남아 라오스·캄보디아 등이라고 보도했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있으면서 동시에 탈북자들의 주요 탈출 경로에 포함된 지역이라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인 테러를 위해 움직이는 북한 부서는 정찰총국 산하 해외정보국·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 3곳이다. 정찰총국 산하 해외정보국은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부부를 납치했던 대외정보조사부가 ‘35호실’로 이름을 바꾼 뒤 정찰총국으로 흡수된 조직이다. 문화교류국은 대남공작기구로, 연락부·문화연락부·대남연락부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지난해 봄엔 ‘225국’에서 문화교류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최근엔 남파 공작원 출신 윤동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국장에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문화교류국은 직제상 통일전선부 산하지만 김정은에게 직보할 수 있는 독립적 기관”이라며 “김정은이 이번에 전방위적 테러를 지시하면서 문화교류국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관원들은 주로 2~3인 1조, 많게는 4인 1조로 움직이고 있으며, 현재까지 10개 이상의 조가 파견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비밀경찰급인 국가안전보위부는 주로 북·중 접경지대에서 탈북자 및 이들을 지원하는 종교·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움직이고, 정찰총국과 문화교류국은 동남아 및 기타 중국 지역에서 한국 교민과 유학생, 관광객을 대상으로 테러를 꾸미고 있다고 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한국 공관과 한인회 사무실 등 테러 목표를 구체적으로 개별 할당하면서 ‘명령 즉시 실행하라’는 지시도 하달됐다고 한다”며 “사업 등을 미끼로 유인 납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전원일기] 유학파 총각 삼삼한 삼채와 사랑에 빠지다

    [新전원일기] 유학파 총각 삼삼한 삼채와 사랑에 빠지다

    “스펙 시대는 지났어요. 이제는 ‘에너지 시대’입니다. 에너지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20대의 풋풋한 외모지만 그의 생각과 태도는 단단했다. 이미 ‘삼채 총각’으로 유명한 김선영(28) 대표는 삼채영농조합과 네츄럴니즈농업회사를 이끄는 실력 있는 사업가다. 삼채를 재배하는 새로운 농법을 끊임없이 연구할 뿐 아니라 삼채로 만든 식품 개발에도 팔 걷고 나섰다. 이 모든 것이 농업에 뛰어든 지 불과 4년 만에 이뤄 낸 결과였다. 농촌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살아 본 적도 없으며, 농업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던 그가 선진 농업의 한 분야를 주도하는 리더가 되기까지 흘린 땀과 쏟아부은 노력은 얼마일까. 많은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과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요즘 그는 누구도 가려 하지 않는 농촌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농업은 돈 벌기가 어렵다는 편견을 뒤집고 삼채라는 특이한 작물로 억대 연봉을 올리면서 말이다. # 삼채를 아시나요 충북 진천군 덕산면 동산마을. 1만평 규모의 삼채 농장은 여름날의 불볕더위로 열기가 가득했다. 농사가 어려운 건 거부할 수 없는 이런 자연의 힘과 겨뤄야 하기 때문이리라. 갈증과 싸우던 우리 일행에게 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 시원한 삼채즙을 내밀었다. “삼채를 달인 물입니다. 처음 드셔 보시죠? 아마 정신이 번쩍 드실 겁니다.” 농장 주인 김 대표였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삼채즙을 냅다 들이켜고는 ‘캬~’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꺼번에 잔을 비우기엔 맛과 향이 다소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익숙한 풍미가 느껴졌다. 마치 파와 마늘과 양파와 부추 등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맛이었다. “삼채는 달고 맵고 씁쓸한 세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미얀마에서는 ‘주밋’이라고 부르는데 뿌리 부추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곳에서는 삼채가 특별한 농법으로 길러지는 작물이 아니라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거든요. 그들은 감기에 걸리거나 아플 때 뜯어서 먹는다고 해요. 하나의 약초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삼채가 여러 가지 효능이 있지만 그는 약초로 각인되기보다는 늘 곁에 두고 먹는 채소처럼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길 원한다고 했다. 집과 사무실 곁에 펼쳐진 삼채밭은 초록 물결로 넘실댔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녹색 바다에서 파도가 물결치듯 보여 그럴싸했다. 풍성하게 자란 삼채는 언뜻 보면 풀처럼 보이지만 녀석들이 갖고 있는 영양과 효용 가치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잎을 하나 따서 건네며 먹어 보라고 했다. 무농약 인증을 받고 재배하니 농약 걱정은 접어 두라며. 즙으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과 향이 났다. 부드러우면서 향이 좋았다. 나의 호들갑스런 반응에 그는 흥이 오르는지 삼채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놈으로 장아찌를 담그면 맛이 기가 막혀요. 우리가 고기 먹을 때 파무침이나 명이나물 장아찌를 함께 곁들여 먹잖아요. 그것처럼 고기와 궁합이 잘 맞아서 함께 먹으면 입맛이 돌아요. 게다가 삼채가 콜레스테롤을 분해하고 고지혈증에 효과가 있거든요.” 삼채는 장아찌를 비롯해 김치, 쌈, 초무침, 튀김 등 뿌리부터 잎까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에 모두 활용할 수 있어 매력 만점이다. 김 대표가 삼채에 푹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 장아찌를 제일 좋아해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 보며 최고의 맛을 찾는 중이란다. 그가 시도한 일이 어디 그뿐인가. 삼채로 소금, 김, 분말, 쌀, 사료 등을 만들어 8개의 특허까지 받아 놓았다. # 젊은이여, 도전하라 창농하라 김 대표가 농업을 선택한 것은 호주 유학 시절 어느 교수의 강의 때문이었다. 강의 내용 중에 “미래에 가장 유망한 산업은 농업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농업과 내가 전공하는 호텔관광학을 접목한다면 분명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평소 창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에게 교수가 던진 ‘농업’이라는 화두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인생의 확실한 전환점이 됐다. 꿈이 생기자 가슴속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창업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진 그는 돈을 모을 구체적인 계획부터 세웠다. 공부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찾아서 했다. 새벽 청소부터 관광 가이드, 웨이터, 인력거꾼 등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만만치 않은 유학 생활을 버텼다. 창업의 꿈을 키워 가던 어느 날 그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삼채라는 채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충분히 조사하고 알아본 후 삼채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 대표는 학업을 멈추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손에는 땀에 젖은 5000만원이 쥐여 있었다. 확실한 아이템과 목표가 생겼고, 바로 움직일 열정과 계획이 있으니 더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인 그는 정부에서 청년들을 위해 지원하는 여러 보조 사업을 활용해 최대한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단 500만원의 ‘지원 사격’이 있어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땅을 일궈 삼채 모종을 심었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삼채 재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첫해 삼채 농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수확한 삼채를 팔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농사만 잘 지으면 상인들이 알아서 가져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삼채에 관심이 없었다. “수확하기 두 달 전부터 판로를 알아봤는데 삼채가 이름부터 생소하니까 다들 ‘삼채가 뭔데?’라고만 하는 거예요. 정말 막막했죠.” 더 큰 난관은 삼복 더위에 수확한 삼채를 보관할 냉장고가 없다는 현실이었다. 10t이나 되는 삼채를 쌓아 놓고 한참 고민하던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무릎을 쳤다. ‘땅은 시원할 테니까 땅을 깊숙이 파서 그 안에 담아 놓으면 되겠구나.’ 엄청난 양의 삼채를 모두 묻으려다 보니 땅을 아주 넓고 깊게 파야 했다. 그래도 일단 땅속에 저장해 놓으니 안심이 됐다. ‘이제 판로를 알아볼 시간을 벌었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랜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늘 결정적인 순간에 반전을 가져다준다. 다음날 아침 삼채를 묻어 놓은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파 보니 삼채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반 이상을 버려야 했다. 판로와 경영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열정만으로 뛰어든 창업이 참혹하게 실패를 맞는 순간이었다. “아찔했죠. 냉장고의 소중함도 뼈저리게 알았어요. 그래서 돈을 벌자마자 제일 먼저 냉장고부터 지었습니다. 하하하. 그때 깨달았어요. 농업도 경영자 마인드를 갖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요. ‘농사도 창농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가는 돈을 벌기는커녕 농촌을 떠나게 되겠구나’라는 걸요.” 그는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직접 판매하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좀더 활발한 운영과 홍보를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서울을 오가며 블로그 마케팅을 공부했다. 1년 반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올린 결과 이제는 그의 블로그를 찾는 방문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섰고, ‘삼채 총각’은 하나의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매출도 서서히 올랐다. 그러나 소비자와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알리기 위해 삼채를 들고 서울에 있는 유명 음식점과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요리를 직접 선보이며 삼채의 효능과 요리법을 알렸다. “삼채라는 채소가 있고 이걸 누군가가 요리를 해서 맛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이면 무작정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특히 삼겹살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삼채 장아찌와 삼채 무침을 선호하는 곳이 많았다. 탄력을 받은 김 대표는 좀더 큰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삼채 관련 사업 계획서와 홍보 자료를 들고 대기업을 찾았다. 그 결과 품질과 가격 면에서 우수한 평을 받은 그의 삼채는 신세계 한식 뷔페 ‘올반’에 납품하게 됐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자 여러 기업에서 삼채를 납품받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제는 공급할 삼채 수확량을 걱정할 정도다. # 농업은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 “잠잘 때도 꿈속에서 삼채 생각을 해요.” 그렇다. 그는 아예 삼채에 푹 빠져 산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겁 없이 도전한다. 진천농업기술센터로부터 시범 사업을 지원받아 차광이 되는 그늘막을 만들어 더 품질 좋은 삼채 재배에 성공했다. 그늘막을 씌우면 연화작용에 의해 잎이 훨씬 더 부드러워질 거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였죠. 노지 삼채는 싱싱하지만 좀 질기거든요. 그런데 햇빛을 차단하면 연화작용에 의해 훨씬 더 연하고 부드러워져요. 바이어들도 먹어 보고 훨씬 부드럽다며 바로 계약하더라고요.”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봄부터 가을까지만 수확하는 삼채를 겨울에도 생산하고 싶은 마음에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물을 줘야 하고 여전히 풀을 뽑아야 하는 ‘전쟁’이 남아 있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양액 재배’를 시도했다. 양액 재배는 양액기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폴라이트 농법으로, 전문 농업인들도 성공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일반 비닐하우스는 이중인데, 양액 재배는 비닐이 삼중으로 필요해요. 게다가 양액 시스템까지 설치해야 하니 비용이 훨씬 많이 들죠. 하지만 노지보다 확실히 손이 덜 가요. 올해 처음으로 시도해 본 거니까 앞으로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야죠.” 요즘 그는 삼채 총각, 청년 농업인, 삼채 전문 강사, 청년 사업가 등 이름표가 늘어나고 있다.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예비 농업인들의 강연에는 단연 섭외 1순위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다. “농업은 미래를 위한 투자예요. 농촌이 살아나려면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들어와야 해요. 이제는 청년 농업인들 없이는 농촌이 발전하기 힘들어요. 저는 농업이 창업의 가짓수를 늘려 주리라 확신해요.” 대한민국의 농업계에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나올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김 대표, 그가 꿈꾸는 세상, 젊은 농촌을 기대해 본다. 글쓴이 방송작가 한정원 ‘6시 내고향’, ‘생방송 투데이’, ‘주주클럽’, ‘TV내무반 신고합니다’, ‘기분 좋은 날’, ‘여유만만’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 참여. ‘지식인의 서재’, ‘CEO의 서재’, ‘명사들의 문장강화’, ‘명인명촌’ 등 출간.
  • [열린세상] 알파고와 교육의 자율성/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열린세상] 알파고와 교육의 자율성/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교육 관련 정책 토론을 할 때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열정을 갖고 공부에 임하는 한국 학생들의 마음가짐과 교육 습관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하거나 “한국의 부모들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자식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높이 산 것으로 이해하지만, 사교육 열풍과 외국으로 나가는 유학생 규모를 생각하면 당혹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의 5번 공개 대국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4승 1패를 기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대결을 보며 과연 우리나라의 교육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인공지능 알파고를 보면 단순 지식과 정보 암기에서 인간은 더이상 기계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먼 앞날까지 내다보며 계획을 세워 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정책에 관해서는 국가가 개인의 교육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자유교육론에서부터 국가가 교육의 내용을 정해 국민을 교육할 수 있다는 국가교육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이 있다. 우리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면서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자유 교육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교육의 능률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초등학교 의무교육 등 일정한 범위에서 국가의 개입을 허용한다. 빈부격차에서 발생하는 약자의 교육 기회 차단 또는 불균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구조 개혁 평가를 통해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누어 정원 감축률을 정하고 대학 정원을 강제적으로 감축하는 구조개혁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대학 입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면 2018년부터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1만여명이 많게 되고 2020년 이후에는 15만명 정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회와 산업의 수요에 맞추어 인문·예체능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프라임사업을 위한 대학 평가를 마쳤다. 지역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강점 분야에 특성화하도록 대학을 유도하기 위한 대학특성화사업의 중간 평가가 올해 실시된다. 등록금을 인상하면 재정 지원 대학에서 제외하는 등록금 동결 정책도 같이 펴고 있다. 교육부의 임명 제청 거부로 총장이 2년 가까이 공석인 국립대학도 여럿 있다. 수조원의 재정지원을 무기로 등록금 동결, 입학 정원 감축을 요구하며 개별 대학 교과 과정의 편성, 학생의 선발과 전형, 연구와 교육의 내용, 인사까지 간섭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 교육 정책은 자기 자식만은 대학 교육을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유아 교육부터 고등학교 교육에까지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찍부터 헌법재판소는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학에 대해서는 공권력 등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학 시설의 관리·운영만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의 내용, 그 방법과 대상, 교과과정의 편성, 학생의 선발과 전형 및 교원 임면에 관한 사항도 자율의 범위에 속한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뉴노멀, 즉 구조적 저성장 기조를 이어 가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여러 가지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인구절벽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미국·일본 등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기계가 흉내 내고 따라올 수 없는 창의성과 윤리성을 갖춘 인재 양성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새로운 인재 양성과 기초 연구 환경을 책임져야 할 대학들이 정부 정책에 눈치를 보고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잃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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