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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일본을 반면교사로 실업대란 탈출하자/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열린세상] 일본을 반면교사로 실업대란 탈출하자/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일본은 1964년 도쿄 하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한국은 1988년 서울 하계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다. 일본은 1991년 버블이 붕괴돼 20년간 장기불황을 겪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아직도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1946년에서 1949년에 태어난 단카이 세대가, 한국은 1958년에서 1963년까지 베이붐 세대가 700만명을 넘어섰다. 이제 그들은 은퇴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거의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산업 구조와 인구 분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소득원에서 57.4%가 공적연금, 6.6%가 자녀의 지원인 것에 반해 한국은 6.6%가 공적연금, 56.6%가 자녀의 지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노령화 사회에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1994년 필자가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이 1000엔이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또한 맥도날드의 햄버거, 스타벅스의 커피, 코카콜라, 휘발유, 편의점 도시락은 한국이 일본에 비해 이제는 비싸다. 또한 매년 되풀이되는 노사 갈등과 생산성 저하로 한국에서는 더이상 해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일본의 경우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일본 내 투자도 활발하다. 그래서 지금 일본은 구인난으로 인한 임금 상승을, 한국은 구직난으로 100만 실업대란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료, 교통비, 물류비 등 산업 인프라 비용면에서 한국이 아직은 일본보다는 경쟁력이 있다. 이에 재도약을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이 새로운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즉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미국의 신혁신 전략, 일본의 초스마트화 전략 등과 같은 국가 전반 혁신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현재 제조업혁신 3.0 등의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고 있으나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산업 구조를 식별하고 선진국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최근 일본 히도쓰바시대학의 혁신연구소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필자는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2000년부터 2014년까지의 세계산업연관표를 활용하여 일본과 한국의 ICT 산업과 기계?장비 산업의 파급 효과를 발표했다. ICT 산업에서 원자재를 공급받는 후방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한국이 일본보다, 완제품을 수요하는 전방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일본이 한국보다 높게 나타났다. 기계?장비 산업에서 후방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방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의외로 한국이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ICT와 기계·장비 산업 모두가 안정적이며 높은 파급효과가 있어 추구하는 혁신 전략의 시너지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며, 한국의 경우 산업의 파급효과 측면에서 ICT와 기계?장비 산업의 융합을 통해 로보틱스, 헬스케어,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과 같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신규 고용을 창출한다면 현재의 실업난을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국이 G2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드론, 핀테크, O2O, 전기차, 고속전철, 우주항공 등과 같은 새로운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성장의 동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려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의 제1 화두는 바로 규제개혁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가상화폐도 보안이나 거래 안정성과 같이 미비한 점이 분명히 있지만 이것을 보완하면서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금융권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을 사장시킨다면 신규 고용 창출은 요원해질 것이다. 신산업의 출현은 구산업 체계를 몰락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제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적기 조례와 같은 규제가 영국으로 하여금 제1차 산업혁명의 과실을 다른 나라에 넘긴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 ‘32세의 전성기 ’ 고다이라… 일본 첫 女빙속 금메달리스트로

    ‘32세의 전성기 ’ 고다이라… 일본 첫 女빙속 금메달리스트로

    18일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 나오(32)는 일본에서 ‘빙속 여왕’으로 불린다. 이날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그는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첫 일본 금메달리스트로 남게 됐다.고다이라는 2009~2013년 전일본종별선수권에서 4년 연속 500m와 1000m를 동시에 석권하며 일본 여자 단거리 간판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500m 12위,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500m 5위에 그쳤다. 이후 고다이라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28세 때 유학 길에 올랐다. 빙상 강국 네덜란드의 프로팀 ‘팀 콩티뉴’에 입단해 유럽 선수들과 경쟁하며 실력을 키웠다. 2014년 11월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 500m 1차 레이스에서 38초05를 기록했다. 38초18을 기록한 이상화를 처음으로 이겼고, 세계대회 첫 금메달도 챙겼다. 고다이라는 지난해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5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늦깎이 스타’로 무섭게 성장했다. 2017~18시즌에는 15개 월드컵 레이스를 모두 휩쓸며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평창올림픽 1000m 은메달, 500m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의 활약 덕분에 1960년 스쿼밸리동계올림픽부터 이어진 일본 대표팀 ‘주장의 저주’도 풀렸다. 일본 대표팀에서 금메달을 딴 주장은 5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14 소치올림픽 때 가사이 노리아키(스키점프)가 딴 은메달이 최고였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이호영의 그림산책6]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절규

    [이호영의 그림산책6]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절규

    붉은 노을.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다리 위. 난간 너머 휘어진 해변은 바다를 가두었다. 깃대를 올린 배들. 그 좁은 바다 위를 서성인다. 타오르는 노을과 푸른 그림자. 외마디의 소리가 솟아오르는 것은 화면 하단, 사람으로부터이다. 비명. 닫은 귀와 놀란 눈. 화면 안의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화면의 밖, 관람자 쪽의 상황이다. 두 귀를 막아야하는, 놀라운 상황의 전개. 무엇에 놀라고 무엇에 귀를 닫아야하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화면에서 솟아오른 소리. 소리이다. 절규(The Scream). 소리가 솟아올라 풍경을 지우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휘감아 버린다. 다리 이쪽과 저쪽을 잇는 것도 소리이다. 그림은 소리가 아닌 이미지(image)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지 속에 소리를 채웠다. 그 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보이는 소리이다. 그리하여 화면 속의 사람은 귀를 막고 있으며 동시에 입을 통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 소리는 보이지 않은 가슴 속의 어떤 것들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노르웨이의 화가. 그리고 판화가. 표현주의 작가로 알려진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며 성장한다. 1868년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1877년에 동일한 병으로 누나를 잃는다. 허약한 체질의 뭉크는 잔병치레가 많았으며 어머니의 죽음이후에 찾아온 아버지의 광기. 그로 인한 집안 가난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정신병으로 진단받은 누이동생,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 만에 죽은 남동생. 뭉크 또한 열병, 류머티즘, 불면증, 그러한 병들에 시달린다. 고통과 아픔으로 뒤범벅이 된 생.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이루는 삶이었다. 청년기에 겪은 실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의 상처 또한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후원자 프리츠 탈로(Frits Thaulow)의 형수 밀리 탈로(Milly Thaulow). 그의 첫사랑의 여인이다. 자유 분망했던 그녀와의 사랑. 성격 탓으로 인해 발생하는 끊임없는 질투와 의심. 그의 사랑은 마돈나이면서 동시에 메두사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였다. 그의 사랑은 행복이면서 동시에 질투와 의심으로 가득한 고통이었다. 그를 둘러싼 죽음과 광기와 사랑. 그의 앞에 던져진 고난들과 엉겨있는 상처들. 그리하여 죽음의 미학은 뭉크 전 생애를 통해 몰입하게 만드는 주제가 되었다.1889년 크리스티아니아에서 개인전을 계기로 파리로 유학하게 된 뭉크는 고갱, 반 고흐, 로트렉 등의 젊은 화가들의 작품에 흥미를 느꼈고 일정한 영향을 받는다. 1892년에 독일 베를린 미술협회의 초청으로 갖은 개인전. ‘뭉크 스캔들(Munch Affair)’이 됨으로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된다. 전시된 그의 작품을 가지고 일부 언론들이 혹평을 함으로서 전시의 지속여부에 대한 회원들의 찬반표결을 한 사건이 그것이다. 1893년 그려진 ‘절규’는 〔생의 프리즈〕의 연작(‘마돈나(Madonna)’, ‘흡혈귀(Vampire)‘, ‘절규’등이 포함된다) 중의 하나이다. 〔생의 프리즈〕는 1902년 베를린 분리파전을 통해 완성된 모습으로 발표되기 전까지는 부분적으로 발표되었다. 1888년부터 시작하여 30년간 지속적으로 작품을 이어간 〔생의 프리즈〕. 〔시리즈 연구: 사랑〕, 〔생의 프리즈- 삶, 그리고 죽음의 시〕의 연작과 더불어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고 있는 주제이다. 뭉크는 화가이면서 판화가이기도 했다. ‘마돈나’를 유화로 그리기도 했으며 동시에 판화로 제작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절규’ 또한 변형시킨 작품이 50여 점에 이른다. 많은 수의 판화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하였다. 작품이 팔리면 같은 작품을 제작해서 소장하고 있었던 뭉크의 태도는 작품을 자식처럼 여기는 그의 마음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판화의 복제가능한 방식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도 추측된다. 그만큼 판화에 대한 사랑 또한 지대하였다.그림 앞에 서면. 말이 필요가 없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절규’가 그러하고, ‘마돈나’가 ‘바닷가의 여인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림은 저 쪽에 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춘기’의 떨림과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누구나 겪었을 그 시기의 감각들과 감정들. 배움이 아닌 열린 감각과 감성. 감각과 감성이 다리가 된다.연결의 다리. 붉은 노을은 낮과 밤을 이어주는 경계에서 피어난다. 그러므로 낮의 속성과 밤의 속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것. 그러므로 경계를 잇는 것은 다리와 노을이다. 그 경계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심연의 나와 현실의 나, 그리고 당신을 연결하는 것. 다리. 그것은 소리이고 외침이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앎의 이전의 단계이다. 세상 밖으로 탄생한 아이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울음으로 소리치는 것이다. 울음은 생명의 인지와 동시에 안과 밖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살아 있기에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소리칠 수 있다. 뭉크의 절규는 그러한 의미에서 생의 외침이다. 그 외침은 강렬하면서 동시에 열려있다. 그 열린 외침 속에 당신의 외침도 스며있다.
  • [세종로의 아침] 핀란드의 그럼프 할배께/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핀란드의 그럼프 할배께/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듣던 대로 정말 까칠하시더군요. 올림픽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소설의 첫 줄을 읽자마자 빵 터졌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고요? 핀란드 썰렁 유머의 제왕인 저자 투오마스 퀴뢰(44)가 햇빛이든 파리 소리든 젊은이들의 게으름 때문이든 늘 기분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 친구들을 모델로 창조한 괴짜 노인 캐릭터시니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분 묘하게 정이 가고 끌립니다. 지하철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네 할배처럼 말이지요. 그는 화난 뚱보 소년과 대걸레 머리의 양키 대통령이 날 선 핵위협 발언을 쏟아낼 때 손녀의 서울 유학살이도 살필 겸 겨울스포츠 선진국 국민답게 스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시아인들이 동계올림픽을 잘 치를까 싶어 둘러본다는 것이 소설의 기둥입니다. 저자는 2년 전 구상을 끝내고 자료 조사를 마친 뒤 3부작 중 1부 ‘괴짜 노인 그럼프’를 옮겨 펴낸 국내 출판사에 방문 의사를 전달한 뒤 지난해 8월 3박 4일 동안 서울과 평창, 강릉을 돌아보고 두세 달 만에 원고를 보내왔답니다. 열세 살 때 태권도를 배웠고 한국 문화를 체감하고 싶어 2006년 찾았던 내력을 감안하더라도 고작 나흘 돌아보고 이런 책을 쓰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정도 많고 참견도 많습니다. 할배의 눈에 대한민국이란 요상한 나라지요.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만사태평이고, 편의점 문을 24시간 열며, 화장실에서 요상한 음악이 흘러나오거든요. 물론 삐딱한 시선과 과도하게 우릴 깔보는 듯해 불편할 때가 적지 않은데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넘어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회 첫날 점심 때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핀란드에 돌아간 작가가 원고를 마감한 지 넉 달 만에 느낀 어리둥절함은 어떨까 하는 것이었지요. 세상에나, 14일만 해도 남북 단일팀이 일본과 여자 아이스하키 대결을 벌였는데 역사적인 첫 골이 들어가는 순간 한반도기와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고 가슴에 인공기 마크가 선명한 북한 응원단이 손뼉을 마주쳤지요. 북한 피겨 선수들이 페어 경기를 마친 뒤 “저희 짝패(파트너)가 잘해 줘서”라고 말하는 게 한국 안방에 그대로 중계되고요. 대회 개회식에 남과 북이 공동 입장할 때 기립하지 않았다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외교적으로 패배했으며 “유치한 할배”라고 야단맞는 것도 참 얄궂지요. 이곳에 사는 우리도 어질어질한데 23장 제목을 ‘시대는 변한다’고 적었던 작가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난감할까요? 그래서 전 대회를 마친 뒤 저자 퀴뢰와 인터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냐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174쪽에 털모자 외교의 효능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다음 쪽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누가 더 세게, 더 높이, 더 빠르게 가는지 겨루기에는 세계 정치보다 올림픽이 훨씬 더 좋은 자리’라고요. 그리고 추신이 있습니다. 제목은 ‘뚱뚱한 소년에게’. 설 연휴 평창 중계 보며 한번들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bsnim@seoul.co.kr
  • 일제히 수십만원씩… 외국인 등록금 ‘묻지마 인상 ’

    대학 측 “인상 이유 말할 수 없어” 내국인보다 저항 덜해서 ‘봉 ’? 일부 “담합 아니냐” 비판도 서울 주요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을 일제히 5%씩 인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유학생 수 상위 10개 사립대 가운데 8곳이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안을 제시했고, 이 중 6곳에서 5% 인상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담합’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14일 대학별 등심위 회의록과 총학생회 등에 따르면 ‘고려대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 추진’ 보도<서울신문 1월 23일자 10면> 이후 고려대는 결국 외국인 신입생에 한해 등록금을 5% 인상하기로 했다.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건국대, 국민대도 등심위에서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을 5% 인상하고, 학부 등록금은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외국인 유학생 수가 상위 10위권 밖인 서강대와 홍익대, 숭실대, 상명대도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5% 인상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 수는 고려대(5938명), 경희대(3963명), 성균관대(3525명), 연세대(3443명), 한국외국어대(2274명), 한양대(2245명), 중앙대(2220명), 동국대(2218명), 국민대(2189명), 건국대(1889명) 순이다. 이 가운데 2년간 외국인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은 대학은 연세대뿐이다. 동국대는 3% 인상하기로 했다. 올해 동결 혹은 1% 인상안을 추진 중인 한국외대와 경희대는 이미 지난해에 각각 8%, 7%씩 올렸다. 하지만 대학 측은 ‘5%’ 인상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양대 등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학교 측은 “5% 인상률은 물가상승률 수준에 해당하는 1.8%와 외국인 학생들에게 추가 제공되는 각종 교육서비스에 대한 부담분”이라는 정도로만 설명했다. 성균관대 측도 등심위에서 “외국인들만의 서비스가 필요하고 2018학년도 외국인 장학금, 한국어 능력시험 지원, 문화행사 지원 예산이 확대됐다”고만 언급했다. 왜 일제히 5%씩 인상하느냐는 질문에 해당 대학 관계자들은 “정확히 모르겠다”라거나 “아직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아 인상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에 등심위 학생 측 위원들은 “사립대들끼리 똑같이 5%씩 인상하자고 입을 맞춘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등심위가 내국인 학생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학교 측의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안에 대한 저항이 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구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5차(최종) 등심위에 대학원 측 유학생 위원장이 들어오니, ‘내국인과 외국인 학생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던 학교 측 발언 강도가 약해졌다”면서 “외국인 유학생 위원회가 설립되도록 돕고, 내년 등심위에 유학생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세계 ‘자율주행차의 선도국’으로 부상한 중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세계 ‘자율주행차의 선도국’으로 부상한 중국

    중국이 지난 12일 베이징시 서북부의 하이뎬(海澱)구 베이안허루(北安河路)에 자율주행 시스템 관련 개발을 위한 시험장인 ‘국가 스마트자동차·교통 시범단지’를 개장했다. 이 시험장은 13만 3000㎡(약 4만 233평) 부지에 도시와 농촌의 다양한 도로 환경과 함께 100여개 종류의 정태적, 동태적 교통 환경을 갖추고 있다. 주위 배경이 될 일반 차량과 모의 행인은 물론 교통설비, 정류장, 도로공사 현장 등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 도로에는 인터넷 설비도 구축돼 있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커넥티드카 기술 등을 시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리옌훙(李彦宏) 바이두(百度) 최고경영자(CEO)가 자율주행 차량을 타고 베이징 제5순환도로를 달렸다가 벌금을 부과받은 일이 논란이 되면서 중국 정부가 자율주행과 관련한 제도적 완비에 두팔을 걷은 것이다.중국이 자율주행차 육성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베이징시 등이 지난해 말 자율주행 차량의 테스트를 승인한데 이어 자율주행 시스템 시험장까지 가동하는 등 차세대 자율주행 관련 산업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바이두를 비롯해 베이치(北汽) 자동차와 베이치 신넝위안(能源·에너지), 베이치 푸톈(福田)자동차, 화둬커지(禾多科技) 등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 차량들은 이 국가 스마트자동차·교통 시범단지에서 연구개발 측정시험을 실시하게 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베이치 자동차는 올해 베이징모터쇼에서 자율주행 차량을 공개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지난해 7월 세계 AI 최강국을 목표로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하는 등 2030년까지 AI 산업 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가 스마트 제조·의료, 스마트시티, 스마트 농업 등에서 광범위한 응용을 가능한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중국 정부는 우선 2020년까지 AI의 전반적인 기술 및 응용은 세계 선진 수준에 맞춰 AI산업이 중요 경제성장의 포인트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때가 되면 AI의 핵심산업 규모는 1500억 위안(약 25조 5000억원), 연관 산업 규모도 1조 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2단계인 2025년까지 AI 기초이론이 기술응용 방면에서 세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단계인 2030년까지는 AI이론 및 기술응용 방면 모두 세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세계 AI 혁신의 중심 국가가 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럴 경우 AI 연관 산업 규모는 폭발적으로 확대돼 10조 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바이두·알리바바·텅쉰(騰訊·Tencent) 등 중국의 3대 ‘글로벌 IT 공룡’은 AI의 유망 활용한 분야 중 하나인 자율주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두는 이 분야를 선도하며 ‘중국 자율주행차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경쟁사인 알리바바와 텅쉰이 각각 전자상거래와 SNS·게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 바이두는 AI와 자율주행차 연구에 매달렸다. 바이두가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투자한 자금만도 200억 위안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가 하락하고 ‘중국 IT 3강’ 구도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는 등 한때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와 서비스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당겨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바이두는 버스 제조업체 진룽커처(金龍客車)와 함께 오는 7월 말 소형 자율주행 버스의 양산과 시운영에 돌입할 계획이다. 대다수의 자율주행차 연구개발 기업이 2020년 양산 돌입을 목표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경쟁사보다 2년 앞당겨 양산체제에 돌입하는 셈이다. 현재 6000여개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사가 바이두 자율주행 플랫폼인 아폴로를 이용 중이고, 이중 1700개 업체가 아폴로 프로젝트에 가입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중국 업체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현대자동차차 등 한국과 외국 기업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다. 리옌훙 바이두 CEO는 “아폴로 플랫폼의 개방적인 운용과 다른 기업과의 협업으로 자율주행차의 양산 시기를 연내로 앞당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바이두는 올해 소형 자율주행 버스를 시작으로 2019년 장화이(江淮) 자동차, 베이치 자동차, 2020년에는 치루이(奇瑞) 자동차와 함께 자율주행차를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은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상용 서비스도 내놓았다. 바이두는 자율주행 차량 호출서비스를 출시했고, 해외 유학파 기술자와 전문 투자자가 모여 설립한 자율주행 기술 연구기업인 투썬웨이라이(圖森未來)는 대형 트럭 등 중장비 상용차의 자율주행을 선보였다. 자율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자율주행 호출 서비스는 초기에는 ‘AI 라이더’라 불리는 보조 기사가 탑승할 예정이다. 바이두는 100명의 AI 라이더를 모집, 특별 훈련을 거친 후 AI 차량의 안전한 운행과 실험을 진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차 렌털 서비스 업체 판다융처(盼達用車) 등과 손잡았다. 가오위(高鈺) 판다융처 CEO는 자율주행 차량 호출 서비스의 편리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집 밖을 나서면 스마트기기를 통해 호출한 차량이 대기하고, 자동차를 탄 후에도 사람이 길 찾기, 교통규칙, 사고의 위험 등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자동차가 스스로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달리고, 손님을 목적지에 모셔다 준다.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는 주차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은 차 문만 닫고 떠나면 끝이다. 차량이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주차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 상용차 부문에도 자율주행 기술 적용에 나섰다. 상하이에서 열린 2017 세계 스마트 커넥티드카 대회에서 중국 최초로 100% 자율주행이 가능한 L4급 자율 주행화물용 트럭을 선보인 투썬웨이라이는 산시(陝西)자동차와 협력해 2019년 자율주행 트럭의 본격적인 상용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2015년 9월에 설립된 투썬웨이라이는 작지만 강한 자율주행 기술 기업이다. 이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카네기멜론대, 싱가포르 난양기술대, 일본 와세다대, 홍콩과기대 등 해외 유명 이공대 박사 출신들이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에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설립 2년이 조금 지났지만 올해 9월 세계 자율주행 테스트 데이터 세트인 KITTI와 Cityscapes에 10개의 세계 기록을 세울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에서 도로주행 테스트 자격도 따냈다. 특히 인터넷 기술과 하드웨어 시스템, 차량 공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시장에 진출해 자율주행 관련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과 하드웨어 시스템 분야의 다탕커지(大唐科技)과 차량공유 기업 디디추싱(滴滴出行), 선저우좐처(神州專車) 등 여러 분야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중국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다탕커지는 드론과 자율주행차 등 무인 주행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시스템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기업이다. 핵심 부품을 외국산 수입품에 의존했던 기타 산업 분야와 달리 자율주행차 분야에선 중국도 핵심 부품을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선저우좐처는 2015년 미 실리콘밸리에 자율주행 기술 연구센터를 설립해 운전보조시스템(ADAS)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일부 차량에 적용했다. 디디추싱도 미 실리콘밸리에 디디 미국 연구원을 설립, 자율주행 기술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고향 가는 길 챙겨가면 유용할 인문학 책 5권

    고향 가는 길 챙겨가면 유용할 인문학 책 5권

    설 명절을 맞아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다. 이 자리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드물지만, 책이 화제에 오를 수 있다. 나올 수 있는 질문은 뻔하다. “요새 무슨 책 읽어?” 되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6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종이책을 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통계만 믿고 “난 책 따위는 안 읽는 사람이야”라고 외칠 수는 없는 일. 무슨 책 읽느냐는 질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릴 당신을 위해 인문학 책을 추천한다. 뜬금없이 인문학 책이냐며 손사래 치는 일은 금물.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인문학 서적은 세대별, 성별 취향 차이가 가장 적다. 게다가 온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뭔가 유식해 보이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인문학 책이 어렵다는 편견도 필요없다. “요즘 인문학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인기”라고 출판 전문가들은 말하니 걱정 마시라.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4곳의 인터넷 서점에서 10위 안에 든 인문학 서적들 가운데 상위권에 골고루 포진한 5권의 책을 소개한다. 한 권 챙겨간다면 고향 가는 길이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4곳의 인터넷 서점에서 인문학 분야 상위권에 포진한 책은 ‘라틴어수업’(흐름출판)이다. 교보에서 이번 주 해당 분야 1위, YES24에서 4위, 알라딘 1위, 인터파크에서 5위를 기록했다.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 교수가 2010~2016년까지 서강대에서 진행한 강의를 토대로 했다. 저자는 강의에서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의 언어들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사회 제도, 법, 종교 등을 강의에서 설명했다. 이밖에 저자가 유학 시절 경험했던 일들, 만난 사람들, 공부하면서 겪었던 좌절과 어려움, 살면서 피할 수 없었던 관계의 문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성찰 등 인생 화두가 책에 녹아있다. 강의가 유명해지면서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해 신촌 대학가 학생들이 청강하면서 강의실이 늘 만원이었던 뒷얘기도 챙기길 바란다.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웨일북) 역시 인터넷 서점 상위권에 포진했다. 교보 2위, YES24 5위, 알라딘 3위, 인터파크 2위다. 책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다루는 ‘타인’, 나와 세계의 관계를 다루는 ‘세계’,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들을 다루는 ‘도구’, 죽음을 다루는 ‘의미’의 4개 장으로 구성했다. 이 주제들을 중심으로 연애, 이별, 인생, 시간, 통증, 언어, 꿈, 죽음, 의식 등 손에는 잡히지 않지만 직접 설명하기 어려운 40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다른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야말로 명절에 특화된 책이긴 하다. 참, 혹여 조카가 “채사장이 본명인가요?”라고 물으면 씩 웃으며 “채사장 본명은 채성호야”라고 답해주길.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생각의길)가 교보에서 3위, YES24에서 2위, 알라딘 9위, 인터파크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13년 책임에도 여전히 인기를 끈다. 그가 요즘에 낸 글쓰기 관련 책들과 함께 서점가에 ‘유시민 코너’가 따로 마련됐을 정도다. 책은 저자가 정치를 떠나 지식시장으로 복귀하며 내놓은 첫 책이란 점에서 꾸준히 인기를 끈다.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인생의 기쁨과 아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자유와 공동선, 진보와 보수, 신념과 관용, 욕망과 품격, 사랑과 책임, 열정과 재능 등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논증을 기반으로 그의 쉬운 글은 이미 정평이 나 았다. 그만큼 쉽게 읽힌다. 정치색 강한 고모부가 술에 취해 “정치인 놈들은 다 똑같아!”라고 할 때 슬쩍 권해준다면 그야말로 센스 만점. 2015년 나온 ‘개인주의자 선언’(문학동네) 역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래 머물고 있다. YES24에서 1위, 교보에서 5위, 알라딘 6위, 인터파크 4위다. 현직 문유석 부장판사가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저자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이 ‘내가 너무 별난 걸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며 살아가지 말라고 충고하고,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큰 아버지의 “너는 왜 아직 결혼을 못했냐”, “올해도 취직 못했냐”라고 공격할 때 반박하기에 유용한 내용들이 많다. 물론, 분위기는 싸~해지겠지만. 마지막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다.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과 미래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아 있었는데, 왜 호모 사피엔스 종만 지구 상에 살아남았는지부터 시작해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까지 전 인류에 대한 폭 넓은 사고가 돋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인간의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란 경고도 새겨듣자. 인류의 출발에 대한 설명을 비롯해 지금과 미래의 세계를 조카들에게 설명해줄 때 ‘딱’인 책이다. 워낙 두툼한 책이어서 읽다 졸리면 베개로 삼을 수도 있다는 강점도 있으니 참고하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하태경 “김일성 가면, 김정은의 신세대 우상화 실험”

    하태경 “김일성 가면, 김정은의 신세대 우상화 실험”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나왔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13일 “김정은이 한국에서 신세대 우상화를 실험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하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북 응원단이 지난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쓰고 나온 남성 얼굴 가면이 김일성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앞서 통일부는 북측 설명을 인용해 미남 가면이며,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한 바 있다. 하 의원은 “미남 가면이라는 통일부의 설명은 내 주장을 반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도와준 것”이라면서 “수령사회인 북한 최고의 미남은 김일성이며 특히 북한 기성세대와 집권층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북한 배우 리영호의 얼굴 가면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하 의원은 “김일성의 젊은 시절 사진과 가면 사진, 리영호 사진을 비교해 페이스북에 띄우겠다. 누가 더 닮았는지 직접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지도자 사진이나 초상화를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김일성의 얼굴사진에 구멍을 뚫어 가면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게 북한 전문가, 탈북자들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하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특이한 논리를 폈다. 그는 “사람한테는 눈구멍, 동공이 있다. 3차원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를 2차원으로 형상화하려면 구멍을 내야 한다”면서 “구멍을 누가 뚫었겠나. 노동당에서 결정해서 뚫었을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인민은 한다’가 북한의 철학”이라고 주장했다.또 북한 안에서 금지됐다고 해서 북한 밖에서도 금지되는 건 아니라고 하 의원은 강조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이 평창동계올림픽 축하 특별공연에서 한국 노래 12곡을 부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 의원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같은 한국노래 10곡은 북에서 금지된 곡인데도 공연무대에서 부르는 게 허용됐다”고 말했다. ‘김일성 가면’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은 하 의원은 김정은이 새로운 우상화 실험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김여정은 북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해외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과 달리 수령화, 세뇌화가 안 돼 있다”면서 “김정은은 파격정치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허용하지 않은 핸드폰을 주민들이 쓰도록 하지 않았나. 이런 연장선에서 볼 때 김일성 가면은 신세대 우상화를 한국에 와서 실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방송에는 하 의원을 비난하는 문자메시지, 게시판 글 등이 1500통 넘게 쏟아지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재무의 오솔길] 한강 산책

    [이재무의 오솔길] 한강 산책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운전을 할 줄 모르니 당연히 차도 없다.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차도 없지만 전혀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앞으로도 나는 차 없이 살다 죽을 것이다.나는 산책을 즐긴다. 내가 산책을 즐기는 이유는 건강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강변을 느리게 해찰하며 걸으면서 나는 언어의 물고기를 낚는다. 강태공이 강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낚듯이, 청둥오리가 부리로 물고기를 사냥하듯이 나는 산책하면서 무의식의 낚시코에 걸려드는 언어의 물고기를 낚아채는 것이다.강태공과 청동오리가 순간의 집중을 다하여 물고기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과 달리 나는 방심한 상태에서 언어의 물고기를 낚는다. 언어의 물고기는 의식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순간의 방심 속으로 그것은 갑작스럽게 뛰어든다. 산책에서 생각에 골몰하는 일을 나는 되도록 삼간다. 무방비 상태로 나를 방치한다. 숙맥과 천치가 되어, 하나의 사물이 되어 서 있거나, 하나의 풍경이 되어 천천히 걷다 보면 의외의 대어가 걸려들 때가 있다. 늦은 밤 마포 한강변에 나와 강 건너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을 바라다본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았던 곳이다. 저곳에서 여섯 해를 사는 동안 나는 시집 두 권과 산문집 한 권을 냈고, 아내가 암수술을 받았고, 재수 끝에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 여의도는 의붓어미처럼 낯설고 어지럽기만 하더니 어느새 마음 안쪽에 서늘히 인정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슬픔의 줄기는 베어 낼수록 여름풀처럼 더욱 굵게 웃자랐지만 더러는 겨울 냉면처럼 소소한 맛의 위로와 기쁨을 안겨다 주기도 했다. 마포는 처음 상경해서 살림을 부렸던 곳이다. 이곳을 떠나 이곳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서른 해가 걸렸다. 서른 해 전 마포는 지금처럼 아파트 숲이 아니라 키 작은 지붕들이 연이어 잇대어 있는 좁고 가파른 골목의 산동네였다. “늦잠 자던 가로등/투덜대며 눈을 뜨고/건넌 집 옥상 위/개운하게 팔다리를 흔들며/옥수수 잎새/낮 동안 이고 있던 햇살을 턴다/놀이에 지친 아이들 잠들고/한강을 건너온 달빛/젖은 얼굴로/불 꺼진 창들만 골라/기웃거린다 안간힘으로 구름을 밀며/바람이 불고/일터에서 돌아오는 남도의 사투리들/거리를 가득 메운다/하나 둘 창마다 불이 켜지고/소스라쳐 빨개진 얼굴로/달빛 뒷걸음친다/비로소 가는 비 맞은 풀잎처럼/생기가 돈다, 마포 산동네”(졸시,‘마포 산동네’ 전문) 그사이 몇몇 지인들이 지상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고, 붉은 열정이 새어나간 몸은 알곡이 빠져나간 광목 자루처럼 헐렁해졌다. 꽃잎처럼 점점이 흩어진 불빛을 떠안고 흐르는 강물은 명일 아침 서해에 입을 맞출 것이다. 세상 모든 길은 내 집 문을 열고 나가 내 집 문으로 돌아온다. 이곳에 살며 또 새로운 인연들을 맺고 풀 것이다. 한강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둥지 안에 새알처럼 담겨 자는 식구들을 들여다본다. 첫 경험처럼 괜스레 들뜬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한강변을 거닌다. 나는 겨울 강물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예순을 살아오는 동안 여러 번의 공화국과 민간 정부가 들어섰지만 구호만 요란했던 시대의 희망은 집 없는 사람들을 거듭 울렸다. 두뇌가 우수한 인재들은 유학을 다녀와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거나 재벌가의 마름이 되어 가난을 더욱 능멸했다. 도시는 우울과 분노를 키우는 학교였다. 성실, 정직하게 사는 자들은 대개가 열등한 유전인자를 타고난 이들이었다. 한울타리에서 나고 자란 형제자매간에도 어른이 되어 계층이 달라졌고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영악한 아이들은 착하다는 칭찬을 무능하다는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더이상 범람할 줄 모르는 한강은 흐르는 시간보다 고여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강태공들이 건져 올린 물고기들은 비늘이 상해 있거나 지느러미가 잘려 있었다. 해마다 강의 괄약근은 느슨해지고 약해져 갔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강 안쪽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썩은 내가 떼 지어 스멀스멀 강둑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다. 나는 내일도 한강변을 걸을 것이다.
  •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어느 ‘58년 개띠’의 60년사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어느 ‘58년 개띠’의 60년사

    1958년생인 나는 올해로 환갑이 된다. 1960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53세였으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오래 산 셈이다. 70년대의 환갑잔치는 자손들과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수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100세 인생’ 시대를 예고하는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이 됐다.해인사가 있는 경상남도 합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동네 뒷산에서 나무를 잘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방을 데웠다. 겨울에는 얼음판에서 썰매를 지치고 팽이를 쳤다. 초등학교 교실은 부족하고 열악했다.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한 반에 60여명이 조그만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6·25 전쟁 이후 시작된 본격적인 베이비붐 세대인 개띠들의 숙명이었다. 점심은 학교에서 나줘주는 급식으로 때웠다. 미국 원조 식품인 옥수숫가루로 만든 죽이나 빵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전기가 들어왔다. 아버지 권유로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공부를 잘한 형님은 마산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한두 명 정도만이 도시 중학교로 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결정한 ‘장남’에 대한 특혜였다. 누나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했기 때문이다. 형님 덕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마산이라는 도시로 여행을 했다. 합천읍에서 마산까지는 비포장 산길을 버스로 4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텔레비전과 기차와 바다를 그때 처음 봤다. 서울 첫 나들이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코끼리와 호랑이를 처음 본 것도 이때였다. 교사인 아버지의 전보 발령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진주로 전학을 했다. 도시 생활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경남교육청으로 전근을 가셨다.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 부산대로 진학해야 했다. 교사 박봉으로 4남매 학비 마련이 어려워 서울로 갈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대학 정문 앞에서 아버지와 작은 방에서 함께 하숙을 했다. 아버지는 시내버스로 1시간 걸리는 대신동까지 출퇴근을 하셨다. 대학가의 하숙비가 저렴한 이유도 있었지만 대학 생활을 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즐거움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교수가 되기를 바라셨다. 나와 같은 58년 개띠들은 1977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과 부산 지역 동기들은 무시험으로 고교에 진학한 소위 ‘뺑뺑이 1세대’였다. 당시 유신정권 말기의 대학에서는 학생 데모가 끊이지 않았다. 개띠의 일부는 민주투사가, 다른 일부는 군 진압군이 돼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많은 친구들이 다치고 죽었다. 고통스러운 암흑의 시대였다. 교수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마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영국이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머니께서 어렵게 장만해 주셨던 일제 소니 워크맨을 들고 다니면서 모질게 영어 문장을 외었다. 부산대 교수로 임용되던 날 아버지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이란 붓글씨 액자를 내 연구실에 걸어 주셨다. 가르침으로 후세를 길러 나라를 세우라는 의미셨다. 그렇다. 6·25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불과 6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은 물론 자유민주 국가로 일어선 힘은 바로 교육이었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희망 사다리였다. 58년 개띠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사로서 각자 걸어온 길은 달라도 모두가 열심히 살았다.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때도 허리띠를 졸라 맸다. 그런 이들이 올해 60세를 맞아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들은 이제 또 다른 교육과 배움을 통해 ‘인생 제2막’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바로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희망은 다름 아닌 아버지께서 새겨 주셨던 ‘교육입국’이다. 교육의 향기는 백년을 간다고 했다.
  • [열린세상]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부소장

    [열린세상]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부소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스위스와의 경기는 감동적이었다. 수준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세계 랭킹 6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 근성은 내일을 기약하게 했다. 경기 내내 남과 북, 귀화한 선수까지 대한민국으로 하나 되어 투혼을 불사르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단일팀에는 북한 선수 15명이 합류했고, 매 경기마다 그중 3명이 출전한다. 정수현처럼 기량 좋은 선수가 있고 젊은 선수들이라 금세 체제를 넘어 하나 된 민족의 단결된 힘을 보여 주었다. 더 좋았던 것은 귀화 선수가 4명 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 대표팀 전체로는 144명 중 13%인 19명이 귀화 선수이고, 혈통과 무관한 선수도 13명이나 있다. 금발의 한국인, 벽안의 한국 사람이 태극 유니폼을 입고 뛰는 사실이 설레기까지 했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인구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북한 주민이나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상의 유일한 탈출구인지 모른다. 2016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생산 가능 인구, 즉 노동력이 적절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달리 브레이크를 밟을 방법이 없으니 2031년부터는 총인구도 5296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면 기업은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떠나게 되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 가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합계출산율을 2.0명 가까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은 인구절벽을 피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과거 헝가리, 체코 등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던 사례를 예방하고 건강이나 교육 등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노력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될 것이다. 북한의 젊은 인력은 말이 통하고 기술 습득 능력이 뛰어나 통일 이전이라도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면 노동력 부족 사태의 활로를 틔워 줄 수 있는 좋은 대안임에는 분명하다. 외국인을 활용하는 것은 현실이고 미래다. 이미 많은 외국 인력이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고 외국인 유학생도 재작년부터 10만명 시대로 진입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204만명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2007년 이후 1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우리 국적을 선택하는 사례도 2008년 이후 매년 1만명 이상이다. 생김새만 이방인이지 말씨나 식성이 영락없는 한국인인 사람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면 다양성이라는 이점까지 얻을 수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귀화 선수가 우리가 갖지 못한 기술과 능력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좋은 사례다. 이미 우리는 네트워크 전쟁 시대에 돌입해 있다.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만 주장해서는 지구촌 경쟁을 주도하기 어렵다. 활동 무대를 넓히고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면 외국인이 가진 언어나 문화적 능력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이 바로 그런 나라다. 1968년에 인구 2억명 수준이었으나 매년 100만명 이상의 이민을 받아들여 반세기 만에 3억명을 넘어섰다. 트럼프가 역주행 페달을 밟으려 하지만 미국은 이민으로 살찌우고 있는 나라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고령화 사회의 문턱에서 앵글로색슨이나 라틴 민족의 나라라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여러 민족이 같이 사는 나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여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중국은 뭉치는 차원을 넘어 민족적 자부심까지 공유하고 있다. 한족(漢族)의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50% 미만이어야 하지만 어머니가 한족이면 자식도 한족이 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높다. 아버지가 이민족인 사람에 대한 차별 의식도 전혀 없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이 늘어나고 외국인까지 포함해 그 모두를 아우르는 용광로가 될 때 우리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된 대한민국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비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올림픽은 그런 부정적 에너지를 일소하고, 우리 사회가 다양하고 건실한 미래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구체화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친절한기사단’ 고성희, “주량은 소주 3~4병...별명은 ‘소주요정’”

    ‘친절한기사단’ 고성희, “주량은 소주 3~4병...별명은 ‘소주요정’”

    ‘마더’ 배우 고성희가 주량을 공개해 놀라움을 주고 있다.7일 방송된 tvN 예능 ‘친절한 기사단’에는 배우 고성희(29)가 출연, 남다른 주량을 과시했다. 이날 방송에서 고성희는 “옆 동네에서 열심히 일하다 이수근 선배 일을 도와주러 온 고 기사 고성희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이어 이력서를 제출했고, 이수근은 고성희의 별명이라고 적힌 ‘소주요정’에 대해 질문했다. 고성희는 이에 “주량이 소주 3~4병이다”라고 답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 고성희는 이력서에 특기로 ‘영어’와 ‘일본어’를 적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본어는 인사 정도, 영어는 중·고등학교 시절 유학을 1년 반씩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방송에서 고성희는 출중한 영어 실력을 선보여 또 다른 매력을 자랑했다. 한편 고성희는 현재 tvN 드라마 ‘마더’에 출연,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 결국 방치하고 마는 혜나(허율 분)의 친모 자영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사진=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고교학점제ㆍ학종은 왜 겉도나… 밑바닥 토론부터 하자”

    “고교학점제ㆍ학종은 왜 겉도나… 밑바닥 토론부터 하자”

    고교학점제, 학생부 종합전형, 자유학기제.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이상적인 교육제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좋은 제도들은 왜 우리와 꼭 맞지 않고 겉돌며 논란을 부르는 걸까. 비교교육학자인 김선(37)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가 최근 낸 ‘교육의 차이’(혜화동)는 이런 질문에 참고할 만한 책이다. 7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김 교수는 교육 강국 5곳의 교육제도와 교육철학에 관해 설명하면서 “한국에 적합한 고유의 교육제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교육 강국들은 그 나라 맞는 제도 갖춰 “독일은 학생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노력합니다. 영국은 토론 교육을 중심으로 배려하는 교양인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둡니다. 미국의 교육은 모두에게 도전 기회를 주는 일을 강조합니다. 유능하고 깨끗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싱가포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게 목표인 핀란드를 비롯해 교육 강국들은 그 나라에 맞는 교육제도를 갖췄습니다.” 김 교수는 2001년 민사고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철학, 정치학, 경제학)를 전공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미국계 교육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했다. 2011년 결혼한 뒤 연구원인 남편을 따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1년 정도 살며 독일 교육을 경험했다. 옥스퍼드대에서 비교교육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재작년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부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남북 간 교육을 연구 중이다. 김 교수는 “또래에 비해 외국 생활을 많이 했고, 특히 교육 쪽 연구 경험이 많아 책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교육 강국 5개국 가운데 싱가포르, 핀란드의 정서와 상황이 우리와 가장 가깝다고 말했다. 식민 지배를 겪었고, 전쟁의 폐해에서 성장하기 위한 도구로 교육을 택했던 점, 그래서 우리나라 부모들처럼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강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는 “특히 핀란드는 민족성과 역사,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우리와 흡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대세’처럼 도입되는 핀란드 교육제도에 관해 “진보 진영에서 마구잡이로 들여오는 듯해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고교학점제는 핀란드에서 가져와 도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학부모나 학생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고교학점제는 학교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 수요를 조사해 개설하고 학생이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교사가 모자란 지방 고교에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대입제도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다른 과목을 선택할지도 의문이고요. 정부에서 좋은 제도라면서 도입해 ‘몇 년 뒤에 바로 시행하겠다’는 식인데, 핀란드가 1970년대 종합교육개혁을 세우고 수많은 토론을 통해 조금씩 제도를 바꾸는 점을 참고해야 합니다.” ●학종은 부모 재력ㆍ정보력이 당락 좌우 김 교수는 올 8월 교육부가 예고한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몇 가지 시사점을 던졌다.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지, 확실한 변별력이 있는지를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학생부 종합전형에 관해 “평가 기준이 불명확한 대입전형이고, 학생의 실력보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이 더 작용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해서도 “변별력이 낮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 “우리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인지, 우리의 교육철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밑바닥 토론부터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속보] “北, 고위급대표단에 김정은 동생 김여정 포함 통보”

    [속보] “北, 고위급대표단에 김정은 동생 김여정 포함 통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대표단 단원으로 방남한다. 북한의 김씨 일가를 뜻하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일원이 남쪽 땅을 밟은 것은 김여정이 처음이다. 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휘 당 부위원장과 남북 고위급회담 단장인 리선권 조국통일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대표단 단원으로 포함됐다. 통일부는 7일 오후 북한이 이같은 고위급대표단 단원 명단을 우리측에 통보했다고 밝혔특히 김여정은 작년 10월 열린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면서 선전선동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7일 전해졌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1990년대 후반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스위스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런 과정에서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사랑이 각별해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 김 위원장에게 쓴소리를 마다치 않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김여정이 유일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정권의 ‘이방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고위급대표단에 북한 권력의 2인자이기는 하지만 직언을 하는 데 부담이 있는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포함되는 것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포함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당 부장을 지낸 여동생 김경희와 오버랩되지만 김여정의 실질적 역할은 고모인 김경희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김여정은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고려호텔 등 일종의 안가에서 프랑스 등 외국인 초빙교사로부터 불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람이 좋다’ 강유미, 양악수술 후 떨어진 인기 ‘끝없는 변신 중’

    ‘사람이 좋다’ 강유미, 양악수술 후 떨어진 인기 ‘끝없는 변신 중’

    6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최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사랑받고 있는 개그우먼 강유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22살의 어린 나이에 개그우먼으로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녀에게 큰 성공이자 동시에 독이 되기도 했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시달려왔던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데뷔 후부터 줄곧 따라다니던 ‘못생긴 대표 연예인’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 불안감을 안고 양악수술을 감행,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강유미의 양악수술을 찬성하고 지지해주었던 사람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드라마 촬영 현장 일을 같이 다니며 직접 목격했던 그녀의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결국 강유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 수술을 감행했고, 아버지의 제안은 고민 앞에서 망설이던 그녀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형 이후 인기가 떨어지면서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고 한다. 한때 방송 및 행사 출연에 어려움을 겪던 강유미는 미국 유학과 케이블 프로그램의 작가 생활을 이어가며 돌파구를 찾았다. 현재는 유투브 방송 ‘좋아서 하는 채널’을 통해 1인 미디어의 길을 열며 새로운 인기를 얻고 있다. 채널을 만든 지 불과 9개월 만에 회원 수 27만 명을 돌파했고, 두 달 만에 5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투브로 100억 벌기를 꿈꾸는 요즘, 그녀에게는 새로운 기쁨이 찾아온 셈이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기 있는 여자 강유미. 개그를 넘어 다양한 영역의 방송인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오늘(6일) 밤 8시 55분에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길섶에서] 형식과 마음/손성진 논설주간

    매년 늦은 가을에 고향에 가서 선조의 시제를 지낸다. 그런데 시제를 진행하면서 절차를 누군가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적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젊은 세대는 시제 자체에 관심조차 없는데 어른들은 “제물을 여기에 놓아야 한다”, “술은 이렇게 따라야 한다” 하며 까다롭게 절차를 따진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 언쟁이 붙는 일도 자주 본다. 유교적 풍습 때문이다. 제사는 밤 11시가 지나서 지내는 게 맞는데 퇴계 이황의 후손이 생활 편의상 저녁 시간으로 바꾸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학의 거두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풍습을 버렸는데 일반 가정에서야 어떠랴. 그래도 집에서 지내는 제사의 시간이나 순서, 제물의 위치를 멋대로 바꾸지 못한다. 선조에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형식과 틀에 얽매여 살고 있다. 돌아가신 조상은 “너희가 편한 게 내가 편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일 터이다. 형식과 절차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조상을 섬기고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中사료들 “한사군, 요동에 있었다”… 韓은 일제 왜곡 학설 추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中사료들 “한사군, 요동에 있었다”… 韓은 일제 왜곡 학설 추종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7년 4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라고 말했으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일제히 나서서 반박해야 하는데 지금껏 조용하다. 대신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 당국자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대응했지만 제대로 된 반박은 아니다. 시진핑의 말이 실제 역사사실과 다르다는 구체적 사료를 가지고 반박해야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은 ‘따지면 불리’한 쪽에서 주로 쓰는 수사이기 때문이다.시진핑이 고려나 조선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발언의 근거는 한국고대사, 곧 한사군의 위치를 두고 나왔을 개연성이 크다. 필자가 ‘한국고대사는 영토 문제가 담긴 첨예한 현대사’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세기 전 조선총독부에서 집중적으로 왜곡한 분야도, 독립운동가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해 반박한 분야도, 지금 중국이 동북공정 등 각종 공정으로 집중적으로 왜곡하는 분야도 한국고대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中 동북공정에 韓 맞장구치자 자신감 시진핑의 발언은 느닷없이 나온 게 아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진행할 때만 해도 한국의 반발을 우려했다. 그 핵심 논리가 만주는 물론 북한 강역이 중국의 역사 강역이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에게 맞장구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서 중국은 2012년 미국 상원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 변천에 관하여’라는 자료를 제출했다. 한사군(漢四郡)을 근거로 북한이 중국사의 강역이었다는 자료다. 중국은 왜 이런 자료를 미국에 제출했을까. 중국의 부상에 줄곧 신경을 써 온 미국은 중국 측의 자료를 한국 정부에 전달하면서 답변을 요청했다. 중국의 주장을 반박해 달라는 의도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역사 관련 국책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민국의 공식 답변을 맡겼다. 2012년 12월 동북아역사재단 정모 이사장과 외교부 고위관리 및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고 47억원을 들여 만들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 책임자 격인 서울교대 임모 교수가 워싱턴에 가서 한국의 공식의사를 전달했다.●동북아재단 “강원 일부까지 한사군…” 한국이 미 상원에 제출한 자료의 한 대목을 보자.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부분이다. “한사군의 관할 지역은 현의 소재지로 보건대, 그 남쪽 한계는 황해도 재령강 연안 지역(멸악산맥 이북)과 강원도 북부에 그치고 있어, 그 이남 지역은 한사군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동북아역사재단, ‘CRS보고서에 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검토의견-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한국의 시각’, 2012. 8. 31).” 황해도 재령강 연안 이북과 강원도 북부까지는 모두 중국의 역사 강역이라는 내용이다. 시진핑은 외교부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미 상원에 제출한 이 자료를 근거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이다. 그 직후 중국 외교부의 루캉(陸慷) 대변인은 시진핑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국민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여유롭게 답했다. 그 역시 한국이 공식입장으로 미 상원에 ‘황해도~강원도 북부는 중국 땅’이라는 자료를 제출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책기관이 “만주는 원래 한국 땅이었다”라는 자료를 미 상원에 제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토 문제니 반역죄로 간주되어 책임자 처벌은 물론 그 기관도 폐쇄되거나 해체 후 재조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르다. 아직껏 조용할 뿐만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어떠한 공적 움직임도 없다. ●조선시대까진 한사군 요동 존재설 주장 ‘황해도 재령강 연안 이북과 강원도 북부’부터는 중국 땅이라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보고서는 사실일까. 한사군은 서기전 108년 한(漢)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설치했다는 ‘낙랑·현도·임둔·진번군’의 4개 행정기관이다. 한사군의 중심이 낙랑군이고 실제 사료도 낙랑군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니 낙랑군의 위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머지 3개 군도 그 부근에 있었다. 낙랑군 및 한사군의 위치는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지금의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있었다는 ‘한반도 북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요동설’이다.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한반도 북부설’의 뿌리는 고려·조선 유학자들의 기자 숭배 사상이었다. 고려 유학자들이 서기 12세기 이후 은(殷)나라 현자 기자가 평양에 왔다고 생각했고, 조선 유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기자 조선의 도읍지인 평양에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들어섰고, 그후 낙랑군이 들어섰다고 본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부인했지만 위만조선은 인정해서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험성을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낙랑군도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방 후 한국 고대사학계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북부설’을 그대로 승계해 하나뿐인 정설로 만들었다. ‘요동설’은 중국 사료에 기반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사군총고’(四郡總考)에서 “지금 사람들은 낙랑군 소속의 여러 현이 요동에 있었다고 많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학자들도 ‘요동설’을 주장했다는 뜻이다. 중국 사료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직접 명시한 사료 몇 개만 살펴보자. ‘후한서’(後漢書) ‘광무제본기’는 서기 30년에 낙랑사람 왕조(王調)가 낙랑군을 근거로 후한에 저항한 이야기를 실으면서 그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했다. 낙랑군은 산하에 스물다섯 개 현(縣)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장잠현(長岑縣)이다. ‘후한서’는 최인(崔?)을 장잠 현령으로 임명한 기사를 싣고, 그 주석에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其地在遼東)”고 말했다. 낙랑군 열구현(列口縣)은 열수(列水)라는 강의 하구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열수의 위치를 찾으면 열구현과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후한서’의 ‘군국지’는 “열은 강이름인데,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水在遼東)”고 말하고 있다. ‘대명일통지’나 ‘독사방여기요’ 같은 중국 지리지들은 낙랑군 조선현을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루룽(盧龍)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낙랑군이 허베이성에 있었다는 뜻이다.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없다. ●中 허베이성 일부도 韓역사 강역인데…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런 중국 사료들을 근거로 북한 강역은 물론 허베이성 일대까지 한국의 역사 강역이었다고 미국에 제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연간 1000억원 이상의 국고를 쓰는 기관들이 한국사 수호에 나섰다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비롯한 여러 역사왜곡 공정들을 진작 중단했을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이 북한 강역을 침략할 수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중국과 미국이 북한 강역의 처리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 강역의 역사적 귀속권은 지금의 영토 문제와 직결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의 제1순위가 식민사학 청산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외면받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역사 문제를 넘어선 영토 문제로 전환했다. 역사 강역을 지킴으로써 헌법상의 영토를 수호하는 일이야말로 모든 정권의 첫 번째 존립 이유일 것이다.
  • [자치광장] ‘빽’ 없는 ‘빽’이 더 좋다/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자치광장] ‘빽’ 없는 ‘빽’이 더 좋다/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공직생활에서 밀어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 즉 ‘빽’이 있어야 출세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변변한 ‘빽’이 없는 신출내기는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한다. 충청도 산골 출신인 나는 형편이 어려워 공고와 공대를 졸업한 후 서울시 공직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시청은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거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야 제대로 대접받는 분위기였다. 도와줄 지인 하나 없었던 나는 주변의 차별에도 설움을 감추며 늘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호 보직에서 밀려나 민원이 극심하고 사고 위험도 높은 부서로 발령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만의 ‘빽’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 맡게 된 도시 분야를 공부하러 유학도 가고 대학원도 다녔다. 전공 이외 연관 분야까지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하는 등 창의력을 발휘했다. 소관이 불분명한 남의 일도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해냈다. 상사는 물론 동료 부하 직원들의 신뢰를 쌓는 데 남달리 집중했다. 그 결과 지하철건설본부장, 뉴타운본부장 등 최고의 도시건설 책임자가 되고, 직업공무원의 꽃인 차관급 행정부시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7년 전 구청장이 되고 보니 구청의 분위기가 너무 낯설었다. 일만 너무 시킨다며 불평이 많았고, 출신 지역별로 갈등도 깊었다. 공직자로서 가장 중요한 청렴성, 도덕성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스스로 자존감이나 자긍심도 부족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고쳐 나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런 사내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의 ‘빽’이 돼 주기로 했다. 아무런 연고나 배경이 없어도 자기 일에 성심을 다하면 누구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 줬다. 외부의 부당한 청탁이나 위법한 압력을 철저히 막아냈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직무를 평가하고 특별한 성과를 내거나 남달리 고생하는 부서와 직원은 상응한 포상과 함께 승진 등 인사에 반영했다. 그간 줄서기 문화에 젖어 있던 직원들이 처음에는 무덤덤했으나 3년 정도 지난 후부터 적극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중구의 108개 사업이 정부, 서울시 등의 우수한 평가와 함께 사상 최대의 인센티브 사업비(약 140억원)를 지원받는 성과를 이루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저마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가장 큰 ‘빽’이라고 생각된다. 손쉽게 기댈 수 있는 ‘빽’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조직 내부에서 자신이 쌓아 온 신뢰나 본인의 능력은 오래될수록 많아지고 커져서 공직 생활을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자기 ‘빽’을 만들어 능력 있는 공직자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 알베르토 몬디 “아내 만나기 위해 한국行 결심, 정말 맘에 들었다”

    알베르토 몬디 “아내 만나기 위해 한국行 결심, 정말 맘에 들었다”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로 지금의 아내를 꼽았다.최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베네치아 부근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알베르토 몬디는 공부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대학 3학년 중국 유학 생활 중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알베르토 몬디는 “(중국) 유학을 했을 때 우리 반 안에 마음에 드는 한국 여자가 한 명 있었어요. 그 전에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되게 맘에 들었다.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여자친구와 저는 너무 잘 맞았다”고 말했다. 결국 알베르토 몬디는 대기업 입사 결정을 뿌리치고 그 한국 여자를 만나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알베르토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기차를 타고 왔다. 베네치아에서 출발해서 쭉 기차를 타면 비행기를 타는 비용과 똑같다. 베네치아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기차를 타고 갔다. 일주일 뒤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거쳐 모스크바로 향했다. 또 일주일 뒤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옛날에는 자루비노라느 항구에서 속초로 가는 배가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속초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국을 찾은 알베르토 몬디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사진=MBC ‘사람이 좋다’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그저 그런 사람들의 영화 같은 삶

    그저 그런 사람들의 영화 같은 삶

    인생극장/노명우 지음/사계절출판사/448쪽/1만 7800원영웅과 범인(凡人)의 차이 중 하나로 ‘기록의 유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구한 사람에 대한 칭송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널리 전해지는 법이다. 영웅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또렷이 새기는 반면 필부의 지난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24년 충청남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한 남자와 1936년 서울 종로구에서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난 한 여자의 삶도 어쩌면 ‘그저 그런’ 인생 중 하나로 묻힐 뻔했다. 역사라는 큰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삶은 아들이자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를 통해 되살아났다. ‘인생극장’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한 뒤 아들에 의해 비로소 자서전이 쓰인 셈이다.저자가 부모의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인생의 심층을 들여다본 이유는 뭘까. 책 첫머리에 놓인 “말 없는 피조물은 의미되면서 구원을 희망할 수 있다”는 발터 베냐민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흔적 없이 사라진 무명씨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그들이 공유한 한 시대의 궤적을 살피는 일이다. 책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겪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세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개인의 삶으로 엮어 낸다. 다만 세상을 떠난 부모의 개인적인 기록이 많지 않은 터라 저자는 1920~70년대 풍속을 반영한 대중영화를 통해 그 시절을 추적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당시 유행을 따라 만주로 떠났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만주는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1942년에 나온 노래 ‘만주 신랑’의 ‘꿈 하나 잘못 꾸어 헝큰 청춘아 눈물도 웃음 되는 만주러라’라는 가사를 통해 만주를 향할 당시 아버지가 가슴에 얼마나 큰 꿈을 품었을지 짐작해 본다. 의지로 떠난 만주와는 달리 강제징용으로 나고야 일본군 병사로 징집된 아버지의 심정은 징용병이 황군이 되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 ‘병정님’(1944)을 통해 느껴본다. 영화는 안심하고 자녀를 군대에 보내라고 부모를 설득하지만 누구도 제국의 질서에 얽매이는 것을 반가워했을 리 없다. 한편 당시 국민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머니는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지와 결혼해 파주 미군 기지 근처에서 미장원을 열고 ‘양공주’의 머리를 말았다. 어머니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나 ‘또순이’(1963)의 주인공처럼 그 시절 권장되었던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그대로 따른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었다. 큰소리치면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고 그저 내조에 충실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내는 것. “애비가 못 배웠으면 자식들이라도 가르쳐야지”라는 영화 ‘수학여행’(1969)의 대사처럼 공부가 출세의 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저자의 부모가 정착한 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950~70년대 세상물정이다. 달러를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에서 아버지는 사진관과 미군의 유흥공간인 ‘레인보우 클럽’을 열어 달러를 쓸어 담는다. 미군 부대가 철수한 뒤 양공주라는 ‘달러의 파이프라인’이 사라지자 ‘레인보우 클럽’은 한국 군인과 면회객을 대상으로 하는 ‘무지개 다방’과 ‘무지개 홀’로 모습을 바꾼다.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변모하는 파주라는 공간은 당시 체면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전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저자는 부모의 자서전을 끝맺으면서 부모가 살았던 시대를 회고하는 일이 과거에 머무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432~433쪽)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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