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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주보기] ‘코리안 드림’ 꿈꾸는 땅… 희망 도시, 대림

    [마주보기] ‘코리안 드림’ 꿈꾸는 땅… 희망 도시, 대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많은 중국동포들이 터를 잡고 사는 곳이다. 일부 영화에서 ‘범죄의 도시’로 묘사되면서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림동은 ‘코리안 드림’이 살아 숨 쉬는 희망의 터전이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국적 동포는 84만 130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중국동포는 70만 2932명(83.5%)으로 2009년 37만명에서 8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재외동포재단의 협조로 김가혜 길림신문, 정명자 흑룡강신문 기자와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중국동포의 눈으로 본 한국 속 ‘차이나타운’ 대림동을 둘러봤다.●중국동포의 메카, 가리봉동서 대림동으로 지하철 2·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서는 순간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먼저 귓전을 때렸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적힌 메모지를 들고 길을 찾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대림동에서 10년간 거주한 서모(53)씨는 “한국에 들어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중국동포들이 모두 이곳에서 만나 고향 얘기를 나누고 전통 음식도 즐긴다”고 전했다. 그랬다. 대림동은 중국동포들에게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바로 대림동이었고,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큰 고민 없이 “대림동”이라고 하면 다 통한다고 했다. 대림동이 처음부터 중국동포의 메카였던 것은 아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일자리를 찾아 넘어온 중국동포들이 머문 곳은 구로구 가리봉동이었다. 일자리가 많았던 구로공단과 가깝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지하철 1·2호선이 지나고, 안산 등 경기 서남부 쪽과 서울 강남으로의 교통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3년 가리봉동 일대가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나 중국동포가 살던 ‘벌집촌’도 재개발이 추진됐다. 이후 중국동포 상당수가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인 대림2동으로 하나둘씩 옮겨왔고, 2005년부터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림역을 중심으로 주변 약 1㎞ 반경에는 식당, 직업소개소, 여행사 등과 주거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대림2동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만 3398명, 가리봉동 9045명으로 나타났다. ●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편한 곳 대림동에서는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훨씬 잘 통했다.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거나 십중팔구 중국인 종업원이 상주하는 상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예 한국어를 못하는 상인도 많았다. 중국에서 온 김 기자와 정 기자는 그들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소통했다. 또 대림동에 중국보다 더 중국스러운 모습도 있다고 했다. 김 기자는 “대림동의 시장이 옌지(연길)의 시장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라면서 “조선족 자치주인 옌볜에서는 간판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적는 게 의무인데, 이곳은 다른 지역 출신도 섞여 있어서 그런지 간판에 중국어만 적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향신료 냄새를 따라 시장 안쪽에 들어서니 독특한 스티커가 붙은 양꼬치집이 나왔다. 15초 길이의 영상을 올리고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틱톡’의 아이디였다. 중국동포인 사장 김경희(35)씨는 “남편이 구독자 25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정 기자는 “구독자 250만명은 중국에서도 왕훙(많은 폴로어를 보유한 사람) 수준이라 제대로 홍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2015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와 금천구 시흥동에서 양꼬치집을 하다가 2년 전 이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현재 가게는 시댁 식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시흥동은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대림동은 90%가 중국인”이라면서 “임대료는 시흥보다 3배 높지만 생활하고 장사하는 건 여기가 더 편하다”고 했다. 김씨의 사례처럼 최근 중국동포 사이에서는 ‘기러기 이민’보다 가족 단위 이민이 늘고 있다. 대림동 내 공원 곳곳에서도 조부모가 어린 손주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부부가 자녀와 함께 오는 가족형 이민이 많아졌다”면서 “자녀 체류 조건이 완화되고 수속 비용으로 목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로 사라져 가는 ‘사진관’이 대림동에선 아직 활황이었다. 구직 이력서에 쓸 증명사진이나 체류증명서 등에 쓸 가족사진을 찍는 중국동포가 주요 고객이다. 대림동에서 28년째 사진관을 운영 중인 김모(59)씨는 “중국동포들이 명절이나 가족의 생일에 모여 단체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함께 사진을 찍고 나눠 가지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들보다 더 가족친화적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사진관 한쪽에는 고운 한복도 걸려 있었다. 김씨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동포가 많아 준비해 뒀다”고 했다. ●건물주로 성장한 동포들… 쓰레기 갈등도 시장을 빠져나가니 다세대주택과 빌라가 몰려 있는 주택가가 나왔다. 이곳의 부동산과 식당을 찾아 거주 실태를 물었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10여년 전부터 동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집주인을 제외하면 거주자 대부분 중국인”이라면서 “갈수록 주택과 상가를 실소유하는 동포도 늘어나고 있고, 대림동에 일찌감치 정착한 사업가 중에는 상가를 서너 채 보유한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26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해 온 한 한국인 사장은 “지금은 주민도 고객도 90%가 중국동포”라면서 “초창기 때부터 수십년간 이들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했다. 중국동포가 워낙 많이 살다 보니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도 없지 않았다.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와 길거리 흡연이 대표적인 갈등 요소다. 거리 곳곳에는 중국어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인 주민 김모씨는 “중국인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지정된 시간이나 장소를 지키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잦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경찰도 이들에게 국내법 규정과 문화를 알리는 교육에 열중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지만,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고 우범지역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어 치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와 대림파출소는 중국어가 유창한 한국인을 특별 채용해 주민과의 소통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동포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도 1주일에 3번씩 순찰을 한다. 경찰 관계자는 “같은 동포가 순찰을 하면 설득이나 훈방에 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림에서 자양으로…영토 넓히는 동포들최근에는 서울 광진구 자양4동에 중국동포들이 몰리고 있다. 성동구 성수동 공단 주변에 저렴한 주거지가 많고, 건국대와 한양대에 중국 국적 유학생도 많기 때문이다. 지하철 2·7호선이 동시에 지난다는 점도 대림동과 비슷하다. 광진구는 2011년 건대 입구 주변을 특화거리인 ‘중국 문화 음식의 거리’로 지정했다. 이 거리는 통상 ‘양꼬치 거리’로 불린다. 자양동은 대림동과 달리 ‘먹자골목’에 가깝다. 주요 고객도 중국동포보다 한국인이 많다. 2001년부터 자양동에서 양꼬치집을 운영 중인 박길자(47)씨는 “처음에는 거리가 어수선하고 식료품점 2곳뿐이었지만 3~4년 전부터 양꼬치, 마라탕 등 중국 음식점으로 거리가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자양동에서 4년째 살고 있는 한 중국동포는 “처음 오는 사람들이 대림동으로 간다면 한국 생활이나 법규에 더 익숙한, 경험 많은 동포가 자양동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에 동행한 두 동포 기자는 “서울 곳곳에 중국동포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한국인과 중국동포가 상생하며 발전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소통 위해 9시까지만 술잔 … 제주 먹거리에 올인”

    “소통 위해 9시까지만 술잔 … 제주 먹거리에 올인”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초임 땐 도민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며 요즘 저녁 자리에선 술잔을 주고받는다. 밤 9시까지라는 단서를 달아서다. 애주가였지만 2014년 귀향해 도지사 당선 후 ‘늘 맑은 정신으로 도정에 임하겠다’며 금주를 선언했다. 골프도 끊었다. 차가울 만큼 정치인으로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말을 듣는다. 제주 사람들은 그를 ‘제주의 아들’로 부른다. 1964년 현재 서귀포인 남제주군 중문면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82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꿰차 섬을 들썩였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1992년 사법시험에 수석합격을 차지한 뒤 검사로 4년, 변호사로 2년 뛰었다. 2000년 16대 총선 서울 양천갑 출마 뒤 내리 3선했다. 2012년 총선엔 불출마,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서울대 의대에 다니던 제주 출신 동갑내기 강윤형씨와 결혼한 그는 주말부부로 지낸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강씨는 서울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강의와 상담활동을 한다. 차기 대권, 보수 통합, 정당 가입 등 정치적 질문엔 “제주의 미래 먹을거리 고민만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포토다큐]그저 축구가 좋았습니다. 우리도 아이들도

    [포토다큐]그저 축구가 좋았습니다. 우리도 아이들도

    ·‘해체위기’ K리그2 아산 무궁화축구단 팩스로 전송된 단 1장의 문서였다. 리그 마감을 2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지난 9월 경찰학교는 더이상 아산 무궁화축구단 선수를 모집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구단에 통보했다. 이로 인해 의무경찰 선수로 이루어진 K리그2 아산 무궁화축구단은 해체 위기에 놓였다.·경찰학교, 갑작스런 선수모집 중단  2016년 창단한 아산 무궁화축구단은 상주 상무와 같은 군경 축구단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소속된 축구 선수들에게 군 복무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게 해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창단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올해는 리그 우승까지 차지해 1부리그 승격도 앞두고 있다. 구단도 2023년부터 의경제도가 폐지될 예정이라 시민구단으로의 변모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중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선수 모집 중단 통보로 손 쓸 겨를이 없게 됐다. ·의경선수들 창단 2년만에 우승... 내년은 기약못해  선수단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전역하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내년에는 14명의 선수만 남게 된다. 이 선수들은 팀이 해체될 경우 제대할 때까지 축구경기를 할 수 없게 된다. 14명의 선수로는 아마추어 대회 참가도 어렵기 때문이다. 의경 신분인 선수들은 인터뷰에 조심스러워했다. · 유소년 선수들 전학 불가능. 해체땐 미래 잃을 수도  구단과 존폐를 함께하는 것은 성인 선수뿐만이 아니다. 아산 구단은 18세 이하 유소년 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축구 하나만 보고 전국 곳곳에서 아산으로 거취를 옮겼다. 하지만 이들은 구단이 해체되면 그들의 꿈인 축구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나 클럽으로의 전학이 시기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년 제주에서 축구 유학을 온 양군호(17)군은 “해체란 말을 떠오르기도 싫고 상상하기도 싫다. 계속 축구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아산시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홈경기가 열렸다. 우승을 확정 지은 후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결승전을 뛰듯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경기는 드라마 같은 아산의 역전승이었다. 역전골의 주인공 임창균 선수는 “팀이나 개인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이 골로 시원하게 풀어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수들 혼란 속에서도 최선. 팬들은 변함없이 응원.  아직 무궁화축구단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축구계 유명인사들은 청와대 앞까지 가서 집회를 가졌고 지역사회는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다각도로 구단 존속의 방안을 찾고 있다. 그리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팬들은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단지를 축구를 하고 싶고 보고 싶어서다. 글.사진 정연호 기자
  • [포토 다큐] 그저 축구가 좋았습니다…우리도, 아이들도

    [포토 다큐] 그저 축구가 좋았습니다…우리도, 아이들도

    팩스로 전송된 단 1장의 문서였다. 리그 마감을 2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지난 9월 경찰학교는 더이상 아산 무궁화축구단 선수를 모집하지 않겠다고 구단에 통보했다. 이로 인해 의무경찰 선수로 이루어진 K리그2 아산 무궁화축구단은 해체 위기에 놓였다. ●경찰학교, 갑작스러운 선수 모집 중단 통보 2016년 창단한 아산 무궁화축구단은 상주 상무와 같은 군경 축구단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소속된 축구 선수들에게 군 복무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게 해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창단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올해는 리그 우승까지 차지해 1부리그 승격도 앞두고 있다. 구단도 2023년부터 의경제도가 폐지될 예정이라 시민구단으로의 변모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중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선수 모집 중단 통보로 손 쓸 겨를이 없게 됐다.●의경 선수들, 창단 2년 만에 우승… 내년은 기약 못 해 선수단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전역하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내년에는 14명의 선수만 남게 된다. 이 선수들은 팀이 해체될 경우 제대할 때까지 축구경기를 할 수 없게 된다. 14명의 선수로는 아마추어 대회 참가도 어렵기 때문이다. 의경 신분인 선수들은 인터뷰에 조심스러워했다.●유소년 선수들 전학 불가능… 해체 땐 미래 잃을 수도 구단과 존폐를 함께하는 것은 성인 선수뿐만이 아니다. 아산 구단은 18세 이하 유소년 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축구 하나만 보고 전국 곳곳에서 아산으로 거취를 옮겼다. 하지만 이들은 구단이 해체되면 그들의 꿈인 축구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나 클럽으로의 전학이 시기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년 제주에서 축구 유학을 온 양군호(17)군은 “해체란 말을 떠오르기도 싫고 상상하기도 싫다. 계속 축구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지난 4일 아산시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홈경기가 열렸다. 우승을 확정 지은 후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결승전을 뛰듯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경기는 드라마 같은 아산의 역전승이었다. 역전골의 주인공 임창균 선수는 “팀이나 개인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이 골로 시원하게 풀어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선수들 혼란 속에도 최선… 팬들은 변함없이 응원 아직 무궁화축구단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축구계 유명인사들은 청와대 앞까지 가서 집회를 가졌고 지역사회는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다각도로 구단 존속의 방안을 찾고 있다. 그리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팬들은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단지 축구를 하고 싶고 보고 싶어서다. 글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리네 - 의성 고운사(孤雲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리네 - 의성 고운사(孤雲寺)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추야우중 中 1, 2수, 최치원, 857~?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위치한 고운사(孤雲寺)는 특이하게도 신라 시대의 석학, 최치원의 자(字)인 ‘고운(孤雲)’을 따라 절 이름을 지은 곳이다. 최치원은 어느 국가, 어느 시대나 으레 있어왔던 불우했던 천재 유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신라 말엽 6두품이라는 신분의 벽, 혼탁한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그도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였다. 857년, 신라 사량부(沙梁部)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최치원은 당시 6두품들이 그러하듯 12세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상투를 매어 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천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불과 6년 만에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를 한다. 출셋길이 보장된 듯하였다. 기회마저 온다. 당나라 말기인 875년, 소금장수 황소(黃巢)가 일으킨 난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쓰고 문재(文才)를 날린다. 최치원은 당나라 정5품 이상의 신하만 지닐 수 있는 붉은 비단주머니인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는다. 그리고 그 주머니를 쥐고 꿈에도 그리워하던 고향, 신라로 돌아온다. “6두품은 집의 길이와 너비는 21자를 넘지 못한다. 금ㆍ은ㆍ놋쇠ㆍ백랍(납과 주석의 합금)ㆍ오색의 단청으로 집을 장식하지 못하고, 비단 보료의 사용도 금한다. 문은 겹문과 사방문을 설치하지 못하고, 마구간은 말 다섯 마리를 넘지 못한다” 최치원의 나이 만 28세. 885년 당황제의 국서를 가지고 신라로 귀환한 그는 결국 6두품이었다.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가는 문서를 작성하는 한림학사를 시작으로 외직(外職)인 태산군(정읍), 부성군(서산) 태수를 거쳐 6두품의 한계인 아찬(阿飡)까지 관등을 단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고 진성여왕에게 올린 개혁안 ‘시무 10조’는 성골과 진골의 비아냥만 얻게 된다. 결국 지리산으로, 가야산으로 떠돌던 그는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진다.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질 뿐이다. 바로 이러한 최치원의 열망과 좌절을 보여주는 장소가 고운사다. 원래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높은 구름’을 뜻하는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자인 고운(孤雲)을 빌어 현재의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최치원의 설화 이외에 고운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예로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 명부전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죽은 이를 모시는 법당인 고운사의 명부전은 이름나있다. 이외에 고운사에는 영조의 어첩을 보관하고 있는 ‘연수전’을 비롯하여 극락대전, 대웅전 등 천년고찰로서의 위의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현재는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시사철 느낄 수 있다. 또한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불자들의 다소곳하고 정감 넘치는 고운사만의 분위기를 항상 느낄 수 있다. 늦가을 심란한 마음이 든다면, 최치원의 맘을 비우게 했던 가운루에서 다시금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고운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의성 지역을 가 본다면. 최치원의 흔적을 찾아가려면 2. 누구와 함께? - 민가와 떨어진 고즈넉한 절집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오붓하게. 3. 가는 방법은? -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구계리116) / 의성이나 단촌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제일 낫다. 버스시간표는 홈페이지 참조. 4. 감탄하는 점은? - 조용하고 그윽하다. 특히 가을날의 맑은 풍광은 천년사찰답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위치상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명부전, 삼층석탑, 연수전, 가운루, 호랑이그림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백종원 3대 천왕 마늘통닭 ‘주영자마늘닭(구. 삼미통닭)’, 숯불갈비 ‘남선옥’, ‘의성마늘한우프라자’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gounsa.net/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조문국박물관, 산운마을, 빙계계곡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고운사는 최치원의 정신적인 흔적이 짙게 남은 곳이다. 고운사에서 마음을 비웠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조용한 산사(山寺)의 깊은 정취가 물씬 넘쳐나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문화마당] 유튜브 시대의 음악 스승/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유튜브 시대의 음악 스승/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나에게 누군가가 그랬던 적이 있다.“네 선생님과 똑같이 치는구나.”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선생님과 나는 성격이 극과 극으로 다르고, 음악적 이상과 추구하는 바 또한 너무나 다르다고. 젊은이의 호기 반, 알량한 예술가의 자존심 반일 수 있다.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학 시절 유럽의 여러 선생님에게 자주 듣던 소리가 있다. “우리 선생님이 가르쳐준 손가락 번호다. 우리 선생님의 선생님은 이렇게 페달을 사용했다….” 그들은 선생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그대로 보존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계보를 잇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생의 선생’ 정도면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의 제자’ 정도일 것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오늘날에는 옛 대가들의 연주가 저장된 음원이나 비디오를 원할 때마다 다시 꺼내서 들을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이뤄지는 연주를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보고 듣지 않는 이상, 찾아가서 문하생으로 배우지 않는 이상 어떤 연주법이 존재하고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므로 국지적으로 어느 나라 스타일, 혹은 누구누구 계보의 학파가 형성되는 건 당연했다. 리히터, 길렐스, 아슈케나지, 소콜로프, 플레트네프 등 반세기 이상을 주름잡았던 러시안 피아니스트들은 크게 넷으로 나누어진 학파로 대를 이어 왔다. 프랑스학파와 독일학파도 각자의 특색을 고수하며 오랫동안 건재했고, 그중에 미국으로 망명한 음악가, 특히 유대계 음악가들이 또 하나의 강한 학파를 미국에서 이루기도 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니 우리나라 학파 또한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할 것이라 생각한다. 산속에서 열심히 독학해 놀랄 만한 데뷔를 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독학으로 데뷔했다는 전설의 연주가들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데, 마케팅 차원의 ‘스토리 만들기’일 뿐 실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개성과 존재감이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예술가에게는 라파엘로, 피카소가 그랬듯 모방이란 딱지가 전혀 무섭지 않다. 개성이나 예술성은 배워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어서 스승에게 아무리 도제식 교육과 영향을 받는다 해도 젊은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된다. 그러므로 배워 온 스승들과 닮았다는 말을 다시 듣게 된다면 내가 그 학파의 계승자라는 말로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꽤 보수적이었던 러시아학파 출신 동료와 함께 이에 대해 말을 나눈 적이 있다. 이제 그 학파라는 것의 전통과 차별성이 모호해졌다고. 이미 러시아 선생들은 러시아가 아닌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르치고 있고, 배우려는 사람도 선생을 찾아가기보다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예술성은 독창적이고 차별화돼 있기보다 보편적이고 사회적이다. 모든 학파를 통합한 절대 학파가 나타났으니 요사이 자주 우스갯소리로 등장하는 ‘유선생 학파’다. 참고로 선생 이름은 ‘튜브’. 이 현상이 옳다 그르다 논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풍토와 시류는 우리가 원하는 바나 옳다고 생각하는 바와 상관없이 알아서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파의 구분이 정말 사라진다면 오늘날 취미로라도 피아노를 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베토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자부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조희연 “2022년 외고·자사고 5곳, 일반고 전환”

    조희연 “2022년 외고·자사고 5곳, 일반고 전환”

    “자발적 신청받고 성과평가 강화로 유도” 재학생 반발·교육청 권한 등 논란 일듯 중1 시험없앤 자유학년제 전면 도입도서울교육청이 2022년 서울시내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5곳을 일반고로 전환시키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중1 1년간 시험 없이 운영되는 자유학년제도 2022년까지 전체 중학교로 확대하기로 했다. 서울교육청은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공약을 바탕으로 임기 내 정책 목표를 제시한 ‘제2기 교육감 백서’를 발간했다. 분야별 31개 과제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106개 세부과제를 담은 백서에는 조 교육감이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외고·자사고 폐지와 혁신교육 확대 방안 등이 담겼다. 우선 외고·자사고는 2019년 1개교, 2020년 2개교, 2021년 1개교, 2022년 1개교 등 내년부터 4년간 총 5개교를 일반고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혔다. 서울교육청은 “강제 전환이 아닌 자발적 신청에 따른 전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운영성과 평가를 강화해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유도하기로 했다. 조 교육감은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는 1기보다 더 확고한 입장”이라면서 “교육부에 자사고 제도 폐지를 계속 요청하고 있고 이와 별도로 운영성과 평가를 통한 전환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고·자사고는 서울교육청이 실시하는 운영성과 평가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재지정 취소가 되는데, 서울시내 모든 외고·자사고는 2020년까지 운영성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운영성과 평가에서 각 학교가 기준점 이상을 받는다면 서울교육청이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킬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또 자발적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재학생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고, 최근 정시 확대 정책으로 인해 외고·자사고의 인기가 높아진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교육청은 중1 1년 동안 시험을 치르지 않고 체험 위주로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하는 자유학년제도 2020년까지 전체 중학교로 확대한다. 지금은 중1 한 학기만 시행하는 자유학기제가 전체 중학교에서 시행되고 있고, 자유학년제는 시내 중학교 중 17.1%만 참여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이 비율을 내년에 60%로 늘리고 2020년에는 전면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공립유치원 증설 방안도 담겼다. 지난달 30일 발표한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특별대책’에 따라 2022년까지 40개원 280학급의 유치원을 신·증설한다. 조 교육감은 “공립유치원 확대 외에 공영형 유치원 확대와 대형 유치원의 법인화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서울형 혁신학교는 현재 189개교(초·중·고 포함)에서 2022년 250개교로 32.3%까지 늘릴 계획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대구대, 중국 장춘이공대학과 공동 학위과정 운영

    대구대가 중국 장춘이공대학과 공동으로 학위과정을 운영한다. ‘중외합작판학’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공동교육과정은 중국 정부가 자국 학생들에게 선진화된 학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해외 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규 학부과정 프로그램이다. 중국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8월 총 300여개 중국 대학이 신청을 했지만, 단 22개 대학만이 선발될 정도로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된다. 22개 선발 대학 중 한국 대학과 공동 학위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은 3개뿐이다. 대구대는 2019학년도 9월부터 4년간 중국 장춘이공대학과 항노화 생명공학전공(융합전공)으로 공동 학위과정을 운영한다. 장춘이공대학은 학생 모집 시 ‘대구대학교’와의 공동 학위과정임을 명시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학생 모집인원은 매년 120명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자국에서 2년을 공부한 후 2년간 대구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 유학을 원치 않는 학생들은 졸업학점의 1/3이상을 대구대에서 파견된 교수의 수업을 수강해야 한다. 대구대는 ‘중외합작판학’ 프로그램 확대·운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근용 대외협력부총장, 이동춘 국제처장 등 대구대 방문단은 지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중국 장춘이공대학을 찾아 추가적인 복수학위과정 운영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또 대구대 방문단은 같은 지역에 있는 길림성경제관리간부학원(吉林省??管理干部?院)을 찾아 ‘중외합작판학’ 프로그램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이근용 대구대 대외협력부총장은 “중외합작판학 프로그램은 대구대의 우수한 학문 분야를 해외에 전파해 대학의 위상을 제고함은 물론 외국인 유학생의 안정적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학생 교육뿐만 아니라 공동 연구 등을 위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교류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1958년에 설립된 중국 장춘이공대학은 22,0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광학공학, 물리전자학, 광학 등의 분야가 1급 국가중점학과로 선정된 4년제 공립대학이다. 이 대학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대구대와 중외합작판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 “근육질 몸매 비결? 탄수화물 끊었다”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 “근육질 몸매 비결? 탄수화물 끊었다”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이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7일 tvN 불금시리즈 ‘톱스타 유백이’(극본 이소정·이시은/연출 유학찬/제작 tvN) 측은 김지석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극 중 김지석은 사고를 쳐 외딴섬으로 강제 유배 간 유아독존 대한민국 대표 톱스타 ‘유백’ 역을 맡았다. 김지석은 “대모도에서 거의 2달동안 살다시피 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자연 생태계가 발달돼 있어서 인지 맑은 공기와 절경이 일품이다. 대신 왕모기, 왕개미, 지네 등 다양한 벌레들 또한 감안해야 한다”며 “완도에서 1시간 거리의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실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의점, 슈퍼, 공중 화장실 등이 없다. 이에 늘 서울 가는 배를 타면 스태프들과 함께 “어떤 음식 가장 먼저 먹고 싶냐”고 얘기하는 게 아주 소박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됐다”며 섬 올 로케이션 촬영에 대한 이모저모를 밝혔다. 또한 “유백이만의 매력과 캐릭터 톤을 잡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운을 뗀 뒤 “모든 인물에게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 외의 이면이 존재한다 생각한다. 이런 유백이의 극과 극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출연 결심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혔다. 특히 전작과 180도 달라진 그의 비주얼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김지석은 “빠른 시간 내 근육질 몸을 만들기 위해 탄수화물을 끊었다. 유일한 낙이 먹는 건데 섬에서 촬영할 때도 홀로 식단 조절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유백이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적인 부분까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변신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전소민-이상엽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활짝 웃어 보여 기대를 높였다. 그는 “소민씨는 이번 작품에서 비주얼을 내려놓는 열연을 펼쳤다. 그만큼 굉장히 털털하고 늘 힘든 내색 없이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어준다”고 한 후 “상엽씨는 기본적으로 너무 따뜻한 사람이고 인정 많고 남을 잘 배려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극 중 라이벌 관계지만 재미있고 엉뚱한 케미가 생겼고 그 부분이 너무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이들의 호흡을 기대하게 했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촬영에 대해 묻자 의외의 답변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김지석은 “최근 염소와 함께 촬영했는데 생각보다 염소의 잠재적 연기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며 웃음을 터트린 후 “하지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염소 덕분에 재미있는 씬이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염소와 1:1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역시 사람과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tvN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는 대형 사고를 쳐 외딴섬에 유배 간 톱스타 ‘유백’이 슬로 라이프의 섬 여즉도 처녀 ‘깡순’을 만나 벌어지는 문명충돌 로맨스다. 오는 16일 오후 11시 첫 방송.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금숙의 만화경] 나이 드니까 여자로 안 봐

    [김금숙의 만화경] 나이 드니까 여자로 안 봐

    “나이 드니까 남자들이 먹잇감으로 안 봐서 좋아.”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그래픽노블 ‘풀’ 프랑스 출간을 기념해 작가와의 만남을 서점에서 가진 뒤 화가 A언니, 일인 출판을 하고 있는 B와 서촌의 수제 맥주집에서 한잔하던 중이었다. A: “나이 드니까 여자로 안 봐. 사람으로 봐. 그래서 좋아.” 나는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아이고, 언니 나이 아직 50도 안 됐거든” 하고 발끈했다. A: “그래도 갱년기야, 나.” 그녀의 표정이 웃프다. 나: “갱년기면 뭐 여자 아닌가? 80 먹어도, 90 먹어도 여자야.” A: “그렇지. 하지만 남자들한텐 아니거든. 크크크.” A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얼마 전엔 상 엎었어.” 놀라 쳐다보는 우리에게. “아니 글쎄, 내 엉덩이가 대문짝만 하다나 어쨌다나. 나도 애기 낳기 전에는 안 그랬거든.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래서 그대로 상 엎어 버렸어.” 상 엎었다는 A의 말에 실은 조금은 충격이었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와! 잘했다 언니. 절대 그냥 수긍하면 안 되지.” 옆에 있던 B도 한술 거든다. “설거지 좀 한다고 마치 지가 무슨 페미니스트 남편인 것마냥 거들먹거리는 남자들이라니. 아직 멀었어. 잘했다. 잘했어. 여성들을 위하여 건배!” 우린 쨍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곧 김빠진 맥주처럼 심드렁해졌다. “하긴 나도 절대 늙지 않을 줄 알았어. 난 나이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요즘엔 노안이 와서 눈이 정말 금세 피로해져.” 마음속에 있던 불안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왔다. “내가 언제까지 작업할 수 있을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는데 들었나 보다.A: “나도 요즘 통 작업을 못 하고 있어. 1년 전 개인전 한 이후로…. 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네. 후후…. 빨리 작업해서 그림을 팔아야 먹고사는데….” B: “형부는 뭐하시고? 일 안 하셔? 그림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정도면 언니 잘 나가나 보네.” A: “그래도 한 점 팔면 몇 달은 생활이 되지. 그이는 집에 있은 지 오래됐고.” A의 남편 이야기를 더이상 자세히 듣고 싶지는 않아 화제를 돌렸다. “만화보다 훨씬 낫네. 우리 쪽은 나처럼 출판 만화만 하면 어렵거든. 지원 사업이라도 안 되면 방법이 없어. 그림책 쪽은 어때? 견딜 만해?” B를 향해 물었다. “난 뭐 괜찮아. 올해엔 책 6권이나 냈어.” 반지하에 월세로 살면서도 늘 긍정적인 B가 참 대단하다. “작가들은 힘들지. 어떤 그림 작가는 일 년 수입이 이백이래. 그림책은 그림 수정 요구도 많고. 물론 나는 엔간한 출판사보다 선인세를 더 줘.” 나: “물가도 땅값도 매일 오르는데 작가들 인세는 몇 년 전보다 훨씬 못 해.” B: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나: 왜지? B: “노력하기 싫은 거지. 책 읽는 건 노력이 필요하니까.” A: “쥐꼬리만 한 봉급에 몇 시간 되지 않던 강사 자리도 잘리고. S대나 H대를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 소설을 써야 했나? 크크크.” 나: “갑자기 웬 소설? 그리고 언니는 유학도 갔다 왔잖아?!” A: “소설가는 인세가 몇 천, 몇 억이래. 글고 미국을 갔다 왔어야 했지. 프랑스는 뭐 끈이 없어요. 차라리 독일 유학파는 더 나아.” 나: “소설가도 베스트셀러 작가나 그렇겠지.” B: “한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고 사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성들이래. 인세 많이 받고 싶어? 독자들을 겨냥해 봐.” 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쓰는 데 좋은 작품이 나올까? 난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인데. 여튼 괜찮아 뭐. 고흐는 살아생전 평생 작품 딱 하나 팔았대. 근데 봐. 지금 얼마나 비싸게 팔리냐?” 위로한다고 한 말이 위로가 될 턱이 없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로 눈이 마주치며 빵 터지고 말았다. “슬픈데 왜케 웃기냐? 오~ 가난한 중년의 여성 예술가들이여! 크크크.” “그래 그나마 고흐는 예술에만 집중했지. 여성을 이용하진 않았어. 봐. 세계의 거장들을. 피카소, 자코메티, 고갱, 드가, 에곤 실레…. 하물며 우디 앨런까지.” 우리의 대화는 예술 작품과 예술가 삶의 모럴로 옮겨 갔다. 어두워진 경복궁역 가로수길엔 여름 햇살에 노랗게 타 버린 은행잎들이 바람에 뒹굴며 너울댔다. 술을 마시면 조금 덜 추워야 되는 거 아닌가? 갑자기 너무 추워져 버린 날씨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A와 B는 전철역 쪽으로, 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바삐 걸었다.
  •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죠.”서울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연출을 맡은 러시아 연극연출가 유리 부투소프(57)는 “저에게도 이제 이 작품을 다룰 적절한 시기가 됐고, 마침 ‘인형의 집’ 안에 담긴 문제들이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며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졌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5일 서울신문과 만나 “‘인형의 집’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모두 다 담고 있다”고 말했다. 부투소프는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꼽힌다. 2008년 한국 무대에 올린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원작을 뒤집는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가 됐다. 그는 현재 러시아 최고 극장으로 발돋움한 모스크바 바흐탄고프 극장의 수석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형의 집’은 순종적인 여성 ‘노라’가 자신의 굴레를 깨닫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는 여성 해방 이슈를 담고 있다. 1879년 발표 당시 유럽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부투소프는 ‘미투 사건’ 등 국내 연극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지인들을 통해 이미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일본 위안부 문제 등을 예로 들며 “(한국 사회가) 여성의 자유와 지위를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다양한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여성의 자유가 조금 더 커졌음을 느낀다”며 “느리게라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부투소프는 ‘인형의 집’ 출연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배우 오디션을 직접 본다”면서 “두 달 이상 배우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 잘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연극이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부투소프가 몸담은 바흐탄고프 극장 역시 지난 시즌 관객 수가 30만명에 달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연극전문학교가 설립된 게 100년이 넘고, 이 같은 역사가 바로 러시아 연극의 힘”이라며 “러시아로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연극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번 공연은 6~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81세에 정승 발탁된 원칙주의자 허목… 조선 유학사에 뚜렷한 족적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81세에 정승 발탁된 원칙주의자 허목… 조선 유학사에 뚜렷한 족적

    ‘예기’(禮記)에서는 ‘대부가 칠십이 되면 벼슬에서 물러난다’(大夫七十而致事)고 했다. 동양에서는 고래로 이 조항이 고위 공직자의 은퇴 시기를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칠십도 아닌 팔십 대에 우의정으로 발탁된 인물이 있다. 미수(眉) 허목(許穆·1595∼1682)이 그 주인공이다.# 조정을 뒤흔든 한 통의 상소 조선시대에 70세가 넘도록 정승으로 재직한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세종대 명상 황희는 87세까지 정승의 직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64세에 우의정이 된 뒤로 20년 가까이 줄곧 정승 자리를 지킨 사례다. 그런데 허목은 이와 달리 거의 평생을 재야의 학자로 지내다 81세가 돼 우의정으로 발탁됐다. ‘백세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진 현대라도 흔하지 않을 일인데, 그 시대에 이처럼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상황과 허목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진다. 허목이 우의정에 발탁된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고 하겠다. 1660년 66세로 사헌부 장령이 된 허목이 올린 한 장의 상소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 상소는 ‘예송’이라 불리는 논쟁의 발단이었다. 소현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 효종이 인조의 두 번째 장자로서 나라를 이어받았으니, 대왕대비께서 효종을 위해 재최 삼년복을 입어야 예법에 맞는데, 지금 예를 강등하여 기년복을 입으셨습니다. 서자(庶子)를 세워 후사로 삼은 경우에는 삼년복을 입지 못하니, 첩자(妾子)이기 때문입니다. -‘기언’ 추정상복실례소(追正喪服失禮疏) 1659년에 효종이 승하했을 때 효종의 어머니 자의대비의 복제(상복 차림에 대한 규정)를 기년복으로 정한 것이 오례(誤禮)라는 주장이었다. 이 상소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기년복은 효종을 인조의 적자가 아닌 첩자로 본 데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었다. 부왕 효종의 국상 복제가 잘못 정해졌다는 것만도 놀랄 일인데, 효종을 첩자로 취급했다는 말에 현종은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복제를 다시 검토하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기해년 복제는 송시열의 주도하에 서인들이 정한 것이었다. 실상 송시열은 효종을 서자로 본 것이지 첩자로 본 것은 아니었으나, 예학에 정통한 허목이 ‘의례’(儀禮)의 ‘상복조’를 근거로 제시한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집권 서인들은 장자와 차자를 구분하지 않은 ‘경국대전’에 근거한 것이라며 기왕에 정한 복제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더 큰 파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허목의 상소는 채택되지 못했고, 그가 삼척 부사로 좌천되는 것으로 일은 일단락했다.# 15년 뒤에 일어난 일대 반전 1674년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었을 때 예송이 재연됐다(갑인예송). 시어머니인 자의대비의 복제를 대공(大功·9개월)으로 정하면서 서인들이 효종을 서자로 보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경국대전’에는 장자·차자와 달리 장자부·차자부에 대한 복제가 기년복·대공복으로 구분됐기 때문이다. 갑인예송은 서인 고관들과 현종 사이에서 전개됐으나, 이 과정에서 15년 전 허목이 올렸던 상소가 다시 크게 부각됐다. 복제 문제로 서인의 주요 인사들이 축출되고 남인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정국이 개편됐다. 그러다 현종이 서거하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더 큰 반전이 일어났다. 숙종이 81세나 된 고령의 허목을 우의정으로 전격 발탁한 것이다. 왕실 복제의 중요성은 짐작할 수 있지만, 허목의 상소 한 통이 15년이 지난 뒤까지 그토록 큰 파급력이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허목이 왕실 예제의 특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송시열의 예론은 보편적 규범을 따르기 때문에 국왕도 사대부와 동일하게 다루어진다. 즉,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더라도 차자이므로 장자로 대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반면 허목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한 만큼 적장자의 예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왕은 사대부와 동일시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임을 인정한 것이다. ‘군약신강’(君弱臣强)이라 지칭되는 현종대를 이어 즉위한 숙종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였을 법하다.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려면 그에 맞는 논리가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허목의 상소에는 그에 맞는 정치이념이 제시돼 있었던 것이다.# “말을 하면 반드시 글로 써서 살펴보다” 이런 뚜렷한 행적 때문인지 허목은 사람들에게 정치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유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뛰어난 학자였다. 허목의 학문적인 업적과 특색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게 바로 ‘기언’이다. 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두려워하여 평소에 말을 하면 반드시 글로 써서 날마다 살펴보며 힘썼다. 그러므로 이 글을 ‘기언’이라 이름하였다. -‘기언’ 자서(自序) ‘기언’은 허목이 직접 엮은 문집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의 사후에 그 제자나 후손이 유작을 정리해서 만드는 것이 문집임을 생각하면, 기언을 자편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허목은 ‘기언’이라는 독특한 이름도 스스로 정했다. 기언은 ‘말을 기록하다’는 뜻이다. ‘언’은 모범이 될 만한 말과 글, 곧 진리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언’은 평범한 문집이라기보다 후대에 남기려는 의도로 적었던 ‘언’, 다시 말해 허목 나름의 진리라고 하겠다. 기언은 육경(六經)을 근본으로 삼고 예악(禮樂)을 참고하고 백가(百家)의 변론을 널리 포괄한 것이다. 이 글은 간략하면서도 두루 갖추어졌고, 장황하면서도 체제는 엄격하다. -‘기언’ 자서(自序) ‘자서’의 한 대목에서도 그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기언’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함은 글을 수록한 방식이다. 문집에 사용되는 문체별 분류가 아닌 학, 예, 문학, 고문, 유림 등 주제별 분류 방식을 택했다. 허목이 문체보다는 글에 담긴 내용과 사실(진실)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말을 기록하다’라는 기언의 뜻과도 상통한다. ‘기언’ 편집 작업은 88세로 임종할 때까지 계속됐다. 허목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서문을 두 번이나 지었다. 기언의 표제(標題)는 유서(類書)처럼 주제별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선생이 직접 편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이 만든 기준에 따라 간행한다. 학(學)·예(禮)·유림(儒林) 등 편목(篇目)은 중복된 듯하지만, 그렇게 한 데에는 선생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함부로 고치지 않는다. -‘기언’ 범례(凡例) 허목 사후 문집 출판을 담당한 제자는 범례에서 이렇게 밝혔다. ‘기언’의 독특한 구성에 대해 ‘선생님의 뜻’이라며 독자들에게 이해를 구한 것을 보면, 그 제자들도 기언의 편집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허목의 구상은 그만큼 독창적이었다. 어쩌면 그는 제자들이 자신의 의도에 맞게 문집을 엮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직접 편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허목은 ‘기언’을 완결하지 못했다. 범례에 언급되었듯 수고본에는 중복으로 수록된 작품도 있고 표제와 내용이 일치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첨삭을 가하지 않고, 허목이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엮어 가던 모습 그대로 ‘기언’을 간행했다. 유례없이 독특하고 독보적인 문집 ‘기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완성의 ‘기언’이 완성을 본 셈이다. 조순희 한국고전번역원 교수●기언(記言) 모두 93권 방대한 문집 원집·속집·별집 나눠져 모두 93권에 달하는 방대한 문집이다. ‘원집’과 ‘속집’은 허목이 직접 엮었다. 80세 이전 저술을 정리한 게 원집이고, 그 이후 저술과 원집에 빠진 글을 수록한 게 속집이다. 허목 사후에 제자들이 원집과 속집에 빠진 글을 정리해 붙인 ‘별집’은 문체별 분류 방식을 따랐다. 1689년 숙종의 명으로 간행했다. 연보는 5대손 허뢰가 1772년 간행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2006∼2008년 번역해 8책으로 출간했다.
  • 김혜선♥스테판 지겔 결혼식 사진 공개..남다른 등장에 ‘웃음 가득’

    김혜선♥스테판 지겔 결혼식 사진 공개..남다른 등장에 ‘웃음 가득’

    김혜선과 독일인 남편 스테판 지겔의 축제 같은 결혼식 현장이 공개됐다. 5일 해피메리드컴퍼니 측은 김혜선, 스테판 지겔 부부의 결혼식 본식 웨딩화보를 공개했다. 김혜선, 스테판 지겔 부부는 지난 3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 빛난이슬성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는 개그맨 정승환과 서태훈이 맡았으며, 축가는 KBS 26기 개그맨들과 김혜선의 친구 부부가 불렀다. 서태훈 정승환 신보라 이상훈 김영희 정진영 이문재 허안나 권재관 정해철 이상민 이상호 류근지 김민경 김재욱 등 동료 개그맨들이 결혼식에 참석, 김혜선, 스테판 지겔 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김혜선의 결혼식은 단연 독특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김혜선은 점핑 슈즈를 신고서 펄쩍 펄쩍 뛰며 입장했다. 덩달아 하객들도 웃으며 축복의 기분을 표현했다. 김혜선과 스테판 지겔은 독일 유학 당시 만났다. 2년 열애 끝에 결실을 맺은 두 사람은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즐길 예정이다. 사진=스튜디오원, 로자스포사, 드장플라워, 해피메리드컴퍼니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하이쿠에 뒤처질 것 없는 시조…왜 본고장서 ‘옛것’ 취급하나”

    [색다른 인터뷰] “하이쿠에 뒤처질 것 없는 시조…왜 본고장서 ‘옛것’ 취급하나”

    “시조가 하이쿠(俳句·일본 정형시)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인터넷 검색 창에 하이쿠(haiku)를 치면 수백개의 웹사이트가 뜹니다. 영어로 하이쿠를 창작하는 활동이 미국에서 그만큼 대중적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시조는 아직 많이들 모릅니다. 한국학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샘이 납니다. 그런데 정작 본고장 한국에서도 시조를 ‘옛것’으로 치부해 안타깝습니다.”미국에서 손꼽히는 ‘벽안의 한국학자’ 마크 피터슨(72·한국명 배도선) 미국 브리검영대(BYU) 명예교수는 지난 7월 퇴임한 이후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브리검영대는 모르몬교에서 운영하는 사립 종합대다. 모르몬교 지도자 브리검 영(1801~1877)의 이름을 땄다. 피터슨 교수는 선교를 위해 BYU 학생 시절인 1965년 처음 한국에 왔다. 6·25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때였다. 피터슨 교수는 당시 한국과 맺은 깊은 인연으로 지난 53년 동안 140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30년간 강단에서 한국 역사·문학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해온 피터슨 교수는 지난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어떤 일로 방한했는지 궁금하다. -지난달 25~26일 경북 청도군에서 국제시조협회가 주관한 ‘2018 청도국제시조대회’ 평가위원으로 왔다. 지난해에만 한국에 6번 왔다. 올해는 4번째인데 다음 달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한 번 더 오게 될 것 같다. 주로 학술회나 연구발표회에 참석하거나 강연을 하러 온다. 이번에도 ‘미국에서의 시조’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무엇이 한국학 연구로 이끌었나. -선교 활동을 하러 처음 왔다. 2년 6개월쯤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향수병이 생길 정도로 한국이 그리웠다. 한국을 더 알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한국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 거의 없었다. 원래 변호사나 외교관에 관심이 있었지만 교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운 좋게 하버드대 석·박사 과정에 입학해 ‘한국학 1세대’ 학자로 꼽히는 에드워드 와그너(2001년 별세) 교수(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초대 소장) 지도를 받게 됐다. 은사님은 족보 전문가셨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다. →한국학 전공자로서 한국 역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시기별로 작성 방식이 다르다. 조선 전기에는 입양이 거의 없었다. 적자(嫡子)가 없으면 족보에 무후(無後)라고 적었다. 대(代)를 이어갈 자손이 없어도 됐다는 뜻이다. 후기에는 꼭 입양을 했다. 무엇을 기점으로 달라졌는지 궁금해 분재기(分財記·재산 상속·분배에 관한 문서) 같은 여러 고문서를 찾아 분석했다. 조선 전기에는 상속 역시 남녀 균등하게 이뤄졌다. 제사도 윤행(輪行)이라고 해서 남녀가 차례대로 지냈다. 그러다가 17세기 후반 분재기가 아예 사라졌다. 장남이 모든 재산을 소유하는 것으로 상속 방식이 바뀐 것이다. 한국이 장자(長子) 중심 사회가 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고 그 전까지 남녀는 평등한 관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존여비 사상은 중국에서 수입된 유교를 조선 후기 더 강력하게 받아들이면서 뿌리내린 것인데, 마치 한국의 오랜 전통처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다. 또 유교 때문에 조선 왕조가 망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중국식 유교를 지나치게 흡수한 측면은 있지만 유교 사상 때문에 망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됐다. →‘한국 전도사’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일본의 하이쿠는 미국 모든 학생들이 배운다.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창의성을 위해 하이쿠 창작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하이쿠가 잘되니 한국학 교수들도 그런 심정이었다. 한국학자들 사이에서 ‘시조 짓기’를 전파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해마다 한 번씩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미 전역 중학교 교사들이 모인다. 학생들에게 ‘시조 짓기’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시카고에 사는 전문직 한인들이 주축이 돼 2006년 비영리 문화단체인 세종문화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해마다 세종작문경연대회를 연다. 벌써 올해로 13회째다. 내가 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 청소년과 청년이 모여 한국의 문학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조를 짓는다. 창의성을 기르는 데 시조 창작만한 것이 없다. 겪어본 바로 한국인은 똑똑한데 여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못하는 이유는 창의성이 무시되는 교육 방식과 시험 제도에 있다고 본다. 미국은 늘 학계에서 새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그것을 교육 과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이뤄진다. 또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선호한다. 객관식 단답형 문제로 대학 입학생을 뽑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를 때 한 학생이 쓴 에세이를 전혀 다른 지역의 학교 교사 3명이 평가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에서 빈번하게 불거지는 대입 과정에서의 공정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남북, 북·미 관계 진전을 어떻게 보나.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라는 말이 있다. 북한을 협상 무대로 이끌어낸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마음 속으로 통일이 되기를 염원해 왔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보다 햇빛을 통해 최대한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나는 요즘 탈북자 출신 유학생 부부와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원래 둘째 딸 부부와 함께 살던 아파트가 있다. 같은 건물이지만 살림은 구분된 형태다. 딸 부부가 분가하면서 집이 비어 학교에서 우연히 알게 된 탈북자 부부에게 들어와 살라고 제안했다. 아주 명랑하고 재미있는 분들이다.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접하는 북한의 실상은 더 참혹하고 안됐더라.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평생 학자로 살면서 한국에 대해 연구하고 책도 많이 썼다. 앞으로는 학자로서 연구만 하기보다 다른 걸 해보고 싶다. ‘정외와(井外蛙)연구소’ 설립을 준비 중이다. 정외와는 한자 그대로 ‘우물 밖 개구리’라는 뜻이다. 한국사를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보는 일부 한국인들의 인식과 유교 사상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고 싶다. ‘역사적으로 늘 외세의 침략만 당하고 살았다’는 한국인의 피해의식은 일제가 심은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외세 침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번이었다고 본다. 나머지는 침략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시조와 같이 훌륭한 전통을 ‘옛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 역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마크 피터슨 명예교수는 누구 1973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양학·한국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같은 대학원에서 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1993년 15년 동안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며, 국제한국어교육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1984년부터 브리검영대 아시아학부에서 한국 역사와 문학을 가르쳤다. 1996년 ‘유교사회의 창출, 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 논문으로 해외 한국학자에게 주어지는 ‘연암상’을 받기도 했다. 1999~2002년 미 아시아학회 한국학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 ‘제3의 매력’ 이상이, 모태 바람둥이→딸바보 “결혼 없이 공동육아”

    ‘제3의 매력’ 이상이, 모태 바람둥이→딸바보 “결혼 없이 공동육아”

    지난 2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극본 박희권 박은영, 연출 표민수)의 배우 이상이가 2018년 현재로 시공간을 옮겨오면서 박규영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함께 양육하는 ‘코-페어런츠’ 라이프를 선보여 과거 모태 바람둥이와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상반되는 모습에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이상이는 11회 방송에서 온리원(박규영 분)과 연애를 시작한 현상현으로 등장했다. 2013년의 상현은 리원을 만나면서 바람둥이 라이프를 완전히 청산한 듯, 리원을 신경 쓰는 모습 뿐만 아니라, 요리 공부를 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유학을 떠난 온준영(서강준 분)을 대신해 온남매 집에 드나들며 가족들을 살뜰히 챙겼다. 준영이 떠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상현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띄우려 “사실 강력반 형사가 애초부터 준영이랑 어울리기나 했나요? 이제서야 자기 자리를 찾은 거죠. 우리 준영이 요리 학교 수석 먹는 거 아닙니까?”라며 농담을 던졌으나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리원이 “한 사람 나갔으면.. 한 사람 또 들어와야지.. 인생이 그런 거니까..”라고 말한 뒤 임신 소식을 담담하게 알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현재, 서른둘의 상현은 리원과 함께 살지만 5년 전에 매꼬롬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딸 아이를 돌보는데 여념이 없는 딸바보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준영이 개업할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니가 도와줘야 된다. 매제!”라고 말하자, 상현은 코웃음을 치며 “매제는 무슨. 나 니 동생이랑 결혼 못 했거든? 애는 같이 키우지만 부부는 아니야.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내가 뭐 어쩌다가 코-페어런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에 코가 꿰어서..”라고 넋두리를 했다. 2018년의 상현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이상이는 과거에 모태 바람둥이이자 자유연애주의자의 삶을 꿈꿨던 상현이 리원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딸을 얻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함께 양육만 하는 ‘코-페어런츠’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미워할 수 없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표현해 극을 한층 더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다. 이상이는 드라마 ‘투제니’, ‘슈츠’, ‘의문의 일승’, ‘슬기로운 감빵생활’, ‘안단테’, ‘맨홀’을 비롯해 영화 ‘인랑’ 그리고 뮤지컬 ‘레드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인더하이츠’,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미친키스’ 등 브라운관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매 작품마다 높은 캐릭터 싱크로율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신흥 신스틸러’로서 앞으로의 활약에 더욱 기대를 더하고 있다. 한편 ‘제3의 매력’은 특별하지 않지만 내 눈에는 반짝거리는 서로의 ‘제3의 매력’에 빠진 두 남녀의 연애 대서사시를 담은 드라마로 JTBC에서 매주 금,토요일 밤 11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혜선 결혼식 참석한 신보라, 민폐 하객 등극 ‘이렇게 예뻤나’

    김혜선 결혼식 참석한 신보라, 민폐 하객 등극 ‘이렇게 예뻤나’

    개그우먼 김혜선의 결혼식에 참석한 신보라가 화제다. 3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김혜선과 독일인 연인 스테판 지겔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수많은 코미디언 동료들이 모였다. 류근지, 신보라, 김영희, 이문재, 이상훈, 정진영, 정해철, 허안나, 권재관, 김재욱, 김민경 등이 결혼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신보라는 신부를 위협하는 미모를 뽐내 ‘민폐 하객’으로 등극했다. 주례와 함께 결혼식을 치른 두 사람의 결혼식 사회는 코미디언 서태훈과 정승환이 맡았다. 축가는 김혜선의 공채 코미디언 동기들이 불렀다. 김혜선은 독일 유학 중 스테판 지겔을 만나 1년 6개월 열애 끝에 결혼의 결실을 맺었다. 두 사람은 한국에 신접살림을 차린다. 스테판 지겔은 한국에서 직장을 얻을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혜선 결혼, 3살 연하 독일인 스테판 지겔과 웨딩화보 공개

    김혜선 결혼, 3살 연하 독일인 스테판 지겔과 웨딩화보 공개

    개그우먼 김혜선이 결혼을 앞두고 웨딩화보를 공개했다. 김혜선은 3살 연하인 독일인 남자친구 스테판 지겔과 3일 경기도 파주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독일에서 3년간 유학 생활을 한 김혜선은 그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약 2년 간 교제를 이어왔다. 최근 결혼 발표와 함께 예비신랑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날 결혼식 사회는 정승환과 서태훈이 맡았으며, 축가는 김혜선의 KBS 26기 공채 개그 동기들이 부를 예정이다. 김혜선과 스테판 지겔 결혼 후 한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린다. 한편 김혜선은 2011년 데뷔해,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최종병기 그녀’로 이름을 알렸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금요칼럼] 절벽사회와 사다리사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절벽사회와 사다리사회/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사회구성원들의 수입 차이가 크지 않을수록 노동에 귀천이 없는 고른 사회다. 직급상 어떤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수입이 마치 2차 함수 그래프 휘듯이 치솟을수록 노동가치의 격차가 심한 사회다. 전자가 튼튼한 ‘사다리사회’라면, 후자는 사실상 ‘절벽사회’라 할 수 있다. 단일 직종에서도 직급이나 능력에 따라 수입이 사다리처럼 단계적이라면, 합리적 임금체계를 갖춘 직종일 것이다. 그런데 가파른 절벽이 존재한다면, 그 직종 종사자들 사이에는 심각한 신분차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전자가 근대 시민사회라면, 후자는 중세 신분사회에 가깝다.현재 내가 몸담은 대학사회를 예로 들어 보자. 나는 30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처자식과 함께 돈도 별로 없이 미국 유학길에 나서는 ‘무모함’을 단행했는데, 미국 대학사회는 그것이 결코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내게 증명해 주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대학원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학원생에 대한 재정지원 시스템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가진 돈은 정말 없었지만, TA(강의조교)를 시작하면서부터 기본 생활은 해결할 수 있었다. TA는 담당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매주 한 번의 토론분반을 주관하고 시험 채점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에 모든 등록금을 면제받고 봉급까지 받는 직책이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 박사과정 대학원생 TA로서 나는 한 달에 약 1600달러를 받았다. 당시 학교(UW)의 가족기숙사(2층 구조에 방 셋) 월세가 600달러였으므로, 나머지 돈으로 네 식구가 근근이 먹고살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는 독립강의를 맡았는데, 월 1700달러 정도 받았다. 이 모두는 한 학기에 한 과목을 가르칠 때 기준이고, 두 과목을 맡을 때 보니 월급은 정확히 두 배였다.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UCLA에 1년 계약으로 갔는데, 연봉 4만 4000달러였다. 이것저것 제하고 월 3300달러쯤 받았다. 그런데 같은 학과 조교수 연봉도 5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신분상으로는 나와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연봉은 약 5000달러의 근소한 차이였다. 그 차이 또한 신분에 따른 차이라기보다는, 계약직인 나와 달리 조교수에게는 학과 행정업무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원생부터 교수에 이르기까지 직급에 따른 봉급체계가 사다리처럼 가지런했다. 한국의 대학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원생과 교수는 수입에서 천지차이일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주노(主奴)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신분의 벽에 숨이 막힌다. TA라는 제도 자체가 거의 없으므로, 경제적 사다리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바야흐로 사회로 나가 홀로서기 해야 할 시점에 이르면 더 비참해진다. 시간강사로 두서너 강좌를 뛰어도, 연봉으로 1000만원을 넘기기 쉽지 않다. 자괴감과 감정노동의 극한직업이 바로 상아탑 안에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그런데 조교수가 되면 연봉이 5000만~8000만원 범주로 수직상승한다. 지위 보장도 확고해, 정년보장 심사에서 여간해서는 탈락하지 않는다. 참고로 미국 A급 대학의 정년보장 심사 탈락률은 60%를 조금 웃돈다. 그러니 박사 취득 후 조교수가 된다면, ‘노예’였다가 가파른 절벽을 운 좋게 올라 ‘귀족’으로 신분상승함을 의미한다. 미국 대학이 합리적 사다리사회인 데 비해 한국 대학은 비상식적 절벽사회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학이 여전히 중세 신분사회에 가까운 까닭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강사법을 내년부터 드디어 시행할 것 같다. 강사법을 백날 손질해 봐야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한 술에 배부르지는 않더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기초한 사다리사회를 큰 그림으로 그리고 꾸준히 추구해야 그게 바로 개혁이다.
  • 김영배 2억 5000만원어치 횡령·배임 혐의… 학자금 초과 수령·증빙 없이 업추비 사용

    김영배 2억 5000만원어치 횡령·배임 혐의… 학자금 초과 수령·증빙 없이 업추비 사용

    김영배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규정을 초과해 자녀 학자금을 지급받고, 정식 보고 없이 만들어진 업무추진비로 상품권을 구입해 쓰다가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김 전 부회장을 횡령과 회계부정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등을 비판한 것 때문에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고용부는 최근 경총 내부의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지난 9월 3~7일 경총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해 부절적한 회계운영과 정부용역사업 관련 리베이트 등 총 9건의 지적 사항을 발견했다고 1일 밝혔다. 경총 내규에 따르면 임직원의 자녀 학자금 한도 금액은 4000만원(8학기)이다. 하지만 경총은 김 전 부회장에게 2009~2017년 해외유학 중인 자녀 학자금 용도로 약 1억원을 지급했다. 고용부는 이 행위가 횡령·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지난달 5일 김 전 부회장에게서 규정 초과액인 6000만원을 환수했다.경총은 또 주무부처(고용부)에 보고하지 않은 특별회계 업무추진비로 1억 90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사서 김 전 부회장에게 전달했다. 고용부는 이 상품권 영수증과 상품권 사용처 등 증빙자료가 없는 점을 확인하고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해당 금액 역시 지난달 19일 김 전 부회장에게서 모두 환수했다. 고용부 점검 결과에 대해 경총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지적사항에 대해) 시정 조치하겠다”며 “오는 7일 이사회를 통해 회계와 예산 혁신방안을 확정해 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14년 동안 경총 상임부회장을 맡아 줄곧 경영계 입장을 대변해 온 김 전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획일적 접근으로 갈등만 부추기고 사회 전체 일자리를 감소시킬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경총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문제를 함께 책임져야 할 당사자인데, 이에 대한 반성 없이 잘못된 내용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정부와 갈등을 빚던 김 전 부회장이 지난 4월 물러나고 뒤이어 취임한 고용부 출신의 송영중 전 부회장이 회장단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가 3개월 만에 하차하자 고용부가 곧바로 경총에 대한 지도점검에 나서 ‘보복성 감사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28) SK그룹 형제 경영진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28) SK그룹 형제 경영진

    최신원 회장, 오너일가의 맏형으로 ‘형제경영’의 구심점최재원 수석부회장, 최고 엘리트지만 ‘험지경영’도 불사최창원 부회장, 화학·백신 글로벌사업 선도...‘야구광’  SK그룹은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이념 아래 형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종건 SK그룹 창업주는 1953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기도 수원시 평동에서 선경직물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1973년에는 서울 워커힐호텔을 인수해 일약 재벌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최종건 창업주는 폐암으로 눈을 감으면서 경영권을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당시 선경직물 부사장)에 맡겼다. 최종건 창업주가 20년간 SK의 섬유를 책임졌다면, 25년간 SK를 이끈 최종현 선대회장은 ‘석유’를 개척하고 ‘이동통신’의 길을 터놓았다. 1998년 선대회장이 별세하자 창업주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등 다섯 사촌은 한 자리에 모여 경영권을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에게 넘기기로 합의했다. 사촌 간 경영이다 보니 종종 계열분리설이 제기되지만 창업주의 차남인 최신원(66) SK네트웍스 회장은 그때마다 “SK는 하나의 뿌리에 비롯됐고 최종건·종현 형제간 책임경영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후대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며 일축하곤 한다. 실제로 최신원 회장은 오너일가의 맏형으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배문고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에 입사한 뒤 해외 사업에 주력하다 1998년 SK유통(현 SK네트웍스) 부회장으로 취임해 식품 및 컴퓨터 유통 위주였던 SK유통에 정보통신사업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발굴, 육성했다. 2000년 SKC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SKC에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2001년 화학사업을 시작하고, 2005년 미디어사업, 2007년 디스플레이 사업을 차례로 분할해 체질을 개선했다. 2016년 3월 SK네트웍스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신원 회장은 ‘모빌리티’와 ‘홈케어’를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원으로 육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AJ렌터카를 인수, 모빌리티 사업 성장을 가속화시켰다. 최신원 회장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최 회장은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의 창립멤버로 현재 총대표를 맡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8년 창립 당시 6명에서 시작해 현재 약 2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두 번째 규모의 고액기부자 모임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최 회장이 기부한 금액은 개인 최고 수준인 40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은 ‘영원한 해병’을 자처하는 해병대 예찬론자다. 1973년 해병대 258기로 입대해 경기 김포시 2사단에서 복무했다.최 회장은 백종성 전 제일원양 대표인 백해영씨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최 회장의 외아들 최성환(37) SK㈜ 상무는 최용우 신조무역 회장 자녀 최유진씨와 결혼했다. 최 상무는 중국 푸단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병대(1031기)를 제대했다. 맏딸 최유진(40)씨는 디자인 전공으로 미국 유학중에 만난 구 데니스(한국명 구본철) 에이앤티에스 대표와 혼인했다. 구씨는 LG가와 먼 친척뻘이 된다고 알려졌다. 최신원 회장의 차녀 최영진(38)씨는 장기제 전 동부하이텍 부회장의 아들 장용진씨와 결혼했다.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55) SK그룹 수석부회장은 탁월한 글로벌 감각은 물론 탄탄한 기획력과 재무분석 능력으로 SK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찾아왔다. 최 수석부회장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당시 자금조달 부분을 주도했다. SK E&S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며 차이나 가스 홀딩스를 통해 진출한 중국 도시가스 사업은 SK의 투자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최 수석부회장의 대표적인 경영 일화는 ‘험지(險地) 경영’으로 요약된다. SK그룹은 지난 2007년 쿠르드 자치지역의 유전개발 참여에 대한 제재조치로 2008년 이라크 지역내 석유개발 입찰자격을 박탈당했고 원유 금수 조치를 당했다. 당시 이라크는 분쟁지역이라 출장보험도 가입이 안될 만큼 위험한 지역이었지만 최 수석부회장은 제재조치 해결을 위해 2009년 12월 직접 방탄복을 입고 이라크 정유공장을 찾았다. 최 수석부회장의 노력으로 원유 수입량은 오히려 이전보다 늘었다. 최 수석부회장은 신일고와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사학위, 하바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아 웬만한 전문경영인의 스펙을 뛰어넘는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SK그룹의 계열사 출자금을 국외에서 불법적으로 쓴 혐의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아 2019년까지 SK그룹의 주요 관계사에서 등기이사를 맡을 수 없다. 최 수석부회장은 채서영(54) 서강대 교수와 결혼했다. 채씨는 여의도고 영어교사였던 채희경씨의 장녀다. 자녀는 2남 1녀.최신원 회장의 동생인 최창원(54)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및 가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SK와이번즈 구단주,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 부회장은 폴리에스터 등 섬유 중심이던 SK케미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개선해 SK케미칼을 코폴리에스터, 바이오에너지 등의 고부가 화학소재와 프리미엄 백신 중심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7월 백신 사업을 분할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했다. 2011년 최 부회장의 취임 이래, SK가스의 변신도 눈부시다. SK가스는 LPG 유통회사에서 벗어나 화학, 발전 등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글로벌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도약 중이다. 최 부회장은 여의도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 MBA를 취득했다. 최 부회장은 변호사 집안의 최유경(51)씨와 혼인, 1남 1녀를 두고 있다. 결혼식 전날 한국시리즈를 보러 야구장에 가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야구를 보러 갔을 정도로 ‘야구광’이다. 최종건 창업주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부인 김채헌(64)씨는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이며 1남 3녀를 두고 있다, 장녀 서희(41)씨는 미국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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