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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 체제’ 조기붕괴는 정조 탓?

    알려진 것과 달리 성리학적 세계관이 북학파와 개화파를 품고 있을 정도로 유연했다면, 조선이 망한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백성을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는 것은 ‘임금 탓’이다. 성리학 자체도 유연하고 우국충정 가득한 유학자들도 넘쳐났다면, 이를 잘 가려 쓰지 못한 왕의 잘못이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게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의 ‘정조 사후 63년-세도정치기의 국내외 정치연구’(창비 펴냄)다. 정조의 리더십을 연구했던 저자가 정조 이후 63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를 분석한 책이다. 박 실장이 보기에 조선의 최후는 이미 정조 시대에 잉태되어 있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박 실장이 거머쥔 키워드는 ‘공론정치’다. 공론정치는 사림의 여론정치로 조선 성리학이 드러나는 형식이기도 하거니와 이 때문에 당쟁으로 격하되기도 하고 붕당으로 부활하기도 한 개념이다. 조선 성리학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조선 왕조의 장기 지속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공론정치의 긍정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정조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바로 이 공론정치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정조실록을 토대로 정조 재위 기간 동안 고위 공직자에 대한 대간(臺諫·고위관료를 감찰, 탄핵하는 대관과 군주의 잘못을 지적하는 간관을 합쳐 이르는 말)의 탄핵 활동을 통계치로 뽑아봤다. 그 결과 재위 20년이 중요한 분기점으로 나왔다. 이때를 고비로 매해 7~40회에 이르던 탄핵 건수가 1~5건으로 급격하게 감소한다. 동시에 이 시기 이후 탄핵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0건이 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자체를 금지시키는 금령(禁令)도 빈번하게 행사됐다. 재위 기간 동안 정조는 모두 163건의 금령을 내렸는데 이 가운데 109건(66%)은 특정 사안에 대한 상소나 언급을 금지하는 등 공론정치에 관련된 내용이다. 널리 알려졌듯 정조는 조선의 개혁을 꿈꿨다. 왕과 백성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사림 세력이라 불리는 중간 세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이를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 체계를 수립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때문에 신하들의 목소리를 당쟁에 빠진 목소리라 규정해 국정에서 배제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박 실장은 정조 사후 ‘정조 체제’가 그렇게 빨리 무너져 버린 이유를 정조 자신에게서 찾는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린 것은 결국 “권력 독점 및 부패를 방지하고 정책 아이디어와 새로운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 조선 왕조의 공론정치 체제가 형해화된 상태에서 견제받지 않은 소수의 외척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정사회로 가려면 땅·주식 세금 강화해야”

    “공정사회로 가려면 땅·주식 세금 강화해야”

    정부가 지난달 19일 ‘1차 공정사회 회의’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를 처음 내건 지 반년 만이다. 공정사회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계간지 ‘역사비평’ 2011년 봄호는 공정사회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 세금 문제를 제기한다. ‘조세의 공공성을 묻다’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한 것. 역사비평 측은 “지난해 공정사회론이 나왔고, 마이클 샌델(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큰 화제가 됐다.”면서 “공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다 보니 세금 문제가 거론됐고 이에 맞춰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한국 근대 조세 100년사와 국가, 민주화, 조세공평의 과제’라는 논문을 통해 공정사회에 걸맞은 조세 제도로 자산·자본 소득자에 대한 중과세를 제시한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부동산과 주식의 순가치는 총 7500조원. 그런데 여기서 거둬들인 세금은 37조 8000억원(0.005%)에 불과했다. 같은 해 자동차 내수판매액 23조원에 대한 세금은 6조 8000억원(29.6%)이었다. 부과 세율 격차가 무려 5920배다. 건설 현장을 누빈 기업인 출신의 이 대통령은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정신으로 젊은이들에게 생산 현장에 나가 땀을 흘리라고 독려한다. 그런데 조세 제도는 애써 땀 흘리기보다 지적도나 주식 시세표를 뒤적이라고 권유하는 셈이라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잘못된 조세 정책이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냄으로써 자원 배분의 왜곡을 야기한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조세 제도 역사에서 이 같은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누적돼 왔다.”면서 “자산·자본 소득에 대한 추징은 면밀한 조사와 제도의 뒷받침이 따라야 하는데 국가체계가 엉성하던 시절에는 이런 노력을 들일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가장 만만한 게 소비와 임금소득이었다. “그래서 소비세(부가가치세·특별소비세 등)와 근로소득세만 집중적으로 거둬들이게 된 것”이라는 정 교수는 “예전에야 경제 발전이 급하다 보니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경제 발전의 과실을 가장 크게 누리고 있는 자산·자본 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맥락에서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본 한국 토지 보유세의 역사와 의미’를 통해 토지 보유세 강화를 주장한다. 0.2%에 불과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2017년까지 1%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여기서 조성된 34조원을 복지재원으로 써야 한다는 논리다. 국가 개입이나 세금 같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마저도 토지보유세만큼은 긍정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전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토지 보유세 강화가 시도됐으나 경제논리에 앞서 ‘세금폭탄’ 등으로 상징되는 여론전과 정치 공세에 좌초됐다.”며 아쉬워했다. 이정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은 더 따끔하다. 최근 ‘대동법:조선 최고의 개혁’이라는 책을 내놓은 이 연구위원은 ‘대동법을 통해서 본 조선 시대 공공성의 관념과 현실’이란 논문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부자 감세’가 주장되는 오늘날이 토지 생산력 중심 과세원칙에 기초한 17세기보다 공공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이 연구위원은 “대동법의 정착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당대 유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이 토지의 생산력에 맞춰 세금을 내도록 하는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더 많이 버는 자가 더 많이 내라는 것, 즉 이를 균(均) 혹은 평(平)이라 불렀다.”고 상기시켰다. 공정사회 기치를 내건 정부가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명연사, 명연설, 명강의(스콧 버쿤 지음, 이해영 옮김, 에이콘 펴냄) 절대 다수가 어쩔 수 없는 ‘마이크 울렁증’을 갖고 산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사회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움켜 쥐고 식은땀을 흘려야 한다. 이 책은 대중들 앞에서 잘 말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연단 위에 홀로 선 그가 느끼는 긴장감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고, 연설을 듣는 청중으로서 느슨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2만원. ●유엔 리포트(린다파술로 지음, 김형준 등 6인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미국 외교 정책의 집행 기구와도 같다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던 유엔(UN)의 지위가 최근 몇 년 새 많이 바뀌었다. 핵무기, 기후 변화, 인권, 테러 등 전 인류의 현안에서는 물론, 분쟁 지역에서 일방적 피해를 입는 무고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책은 UN의 기능과 역할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현직 반기문 총장은 물론 전직 총장인 코피 아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등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평가를 담고 있다. 1만 4500원.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儒醫列傳)(김남일 지음, 들녘 펴냄) 유학자로서 의학 연구에 몰두했던 이들의 활동과 기억을 더듬고 있다. 정약용, 박제가, 이익, 이황, 세조, 정조 등이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학제 간 연구에 힘쓴 통섭 학자라고나 할까. 그들은 왜 유의(儒醫)가 됐는지, 어떻게 연구했는지, 성과로 남긴 의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궁극적으로 중인들의 몫인 의학을 터부시하지 않았던 이들이 대중의 삶과 사회 변혁에 기여했음을 칭송하고 있다. 저자는 경희대 한의대 교수. 1만 5000원.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케빈 리 지음, 한겨레에듀 펴냄) 종합적 사고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도입됐던 논술고사도 극성 사교육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책은 논쟁(디베이트)이 죽어가는 한국 교육을 바꿀 것이라고 자신하며 디베이트 주제 설정, 찬반 의견을 풀어 가는 방법, 수업 모델 등을 운용하는 다양한 기술을 소개한다. 별명이 ‘미스터 디베이트’인 저자는 미국에서 디베이트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1만 3000원.
  • 조선 고종 어진화가 채용신 작품 엿보기

    조선 고종 어진화가 채용신 작품 엿보기

    조선 시대 마지막 어진(御眞) 화가로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던 석지 채용신(1850~1941)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선생의 70주기를 맞아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곽동석)이 다음 달 27일까지 ‘석지 채용신, 붓으로 사람을 만나다’ 특별전을 연다. 채용신은 무과 출신 관료였으나 그림에 탁월한 재주를 숨기지 못해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많은 인물화들을 남겼다. 그림을 보면 조선시대 전통 인물화의 바탕 위에 서 있으면서도 당대에 도입된 사진술을 많이 응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극세필을 이용해 얼굴에 드러난 주름살 같은 흔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콧대처럼 도드라진 부분에 흰색을 칠해 빛의 느낌을 주는 기법 등이 그렇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기법을 많이 쓴 것이다. 말년에는 전북 지역에 낙향, 그곳에 숨어든 유학자들을 주로 그렸다. 개화를 반대하는 원흉으로 불리기도 하고 조선 최후의 정통 성리학자라 불리는 전우(1841~1922)의 초상화 등이 이때 남긴 작품들이다. ‘무이구곡도10폭 병풍’ 등 그가 남긴 산수화 등도 엿볼 수 있다. 오는 26일에는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이 ‘석지 채용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주제로 박물관에서 특별강연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선의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영주

    조선의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영주

    23일 오후 7시 20분 방영되는 KBS 1TV ‘학자의 고향’에서 삼봉 정도전을 다룬다. 정도전은 널리 알려졌듯,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뒷받침한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개국공신이라면 조선조 내내 숭앙받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되레 줄곧 기피인물로 꼽히다가 500년이 지나서야 흥선대원군이 복권시켜 줬다. 대신 조선조 내내 유학자들이 떠받들었던 인물은 정몽주였다. 역성혁명에 반대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던 정몽주는 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킨 충절의 표상으로 떠받들어졌다. 한데 개국공신인 데다, 한양천도 작업을 총지휘했고, 법전 마련과 고려사 정리작업에 이르기까지 신생왕국 조선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정도전은 계속 묻혀 있었다? 프로그램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꿈꾸게 된 것은 유배지인 전남 나주에서 만난 백성들의 실태 때문이었다. 온갖 세금과 실정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위민(爲民) 사상을 되새겼다. 그가 웅대한 꿈을 펼칠 기회를 잡은 것은 이성계와의 만남 이후였다.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능히 국가를 취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게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이용했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자신이 조선의 장자방이 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도전에게도 걸림돌은 있었다. 그는 유학자임에도 명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며 요동정벌론을 내세웠다. 외이(外夷)론이 대표적이다. 한(漢)족 외 변경의 오랑캐도 중원을 차지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조선도 그리 될 수 있으니 굽히고 들어갈 일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는 왕권의 절대성보다 신권과의 균형을 강조한 왕도정치론자였다. 이방원에게 끝내 피살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내외적 안정을 추구했던 조선왕조에 걸맞지 않은 부분이다. 그를 죽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마자 영의정이 각부 신하들의 의견을 취합해 왕과 국사를 논의하던 제도를 각 부 신하들이 왕에게 직접 보고토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시크릿 가든(SBS 토요일 오후 9시 50분) 걸어가는 라임(오른쪽)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주원(왼쪽)은 뒤돌아보며 자신에게 예쁘게 손을 흔들어 주는 라임의 모습을 본다. 기억을 잃은 21살의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뛰어나가 라임을 잡고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라임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얼른 뛰어나왔어야지.’라고 말한 뒤, 미팅이 있으니 자신이 운전하게 차 키를 달라고 한다.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대유학자로 쌍벽을 이루었다. 남명에게는 당시 유학자들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평소 ‘성성자’라는 방울과 ‘경의검’이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선비인 그가 칼을 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 25분) 화려한 카니발, 정열의 삼바, 그리고 열광적인 축구응원으로 유명한 나라.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 브라질이다. 130여개의 다양한 민족이 사는 나라답게 다양하고,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브라질 사람들. 패션의 중심지인 봉헤치로 거리에서 브라질의 유행을 창조하는 한국인들을 만나 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산림원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잭.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이면서 그에게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 1942년 필리핀 마닐라. 일본은 마닐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필리핀을 격파할 계획을 세운다. 절체절명의 순간 필리핀 유격대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주말연속극 글로리아(MBC 토요일 오후 8시 40분)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진진. 강석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진진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건강을 챙긴다. 한편 만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동아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만석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오후 11시 10분) 메모지로만 7년을 대화한 노부부가 있다. 결혼 생활 40년을 끝으로 황혼 이혼을 한 노부부를 만나 본다. 그리고 횡성의 한 시골 마을에 꽃상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이용희씨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라진 짝은 어떤 존재로 와 닿는지 그녀의 망부가도 들어 본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10시 10분) 뉴질랜드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는 해안선을 따라 수십여 개의 폭포가 있다. 협곡들과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장엄한 폭포, 울창한 원시림을 마주하는 순간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오아시스가 되어 주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떠나 본다.
  • [씨줄날줄] 민귀군경(民貴君輕)/김성호 논설위원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천도교 교리쯤으로 알려졌지만, 이 땅에서 오랫동안 혁혁했던 사람 존중의 보편 정신이다. 민간은 물론 ‘하늘 아래 1인자’라는 통치인도 무시할 수 없었던 사상.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인간 사이에는 귀하고 천함의 차이가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는 하늘처럼 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천도교에선 실천요강으로까지 숭앙된다. 인내천과 사인여천이 정치와 통치의 영역으로 편입될 때 ‘민본’이란 주의로 되살아난다.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민본의 중시는 피할 수 없는 통치의 방향이었다. 고래로 많은 나라에서 백성은 물론 통치자를 배에 비유한 것도 민본 가치의 보편적 공유일 것이다. 물론 그 비유에는 전복의 뉘앙스가 스며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민본을 거스르는 통치의 비극적 결말 말이다. 성선설의 대가 맹자는 민본에 천착해 살았던 주유천하의 철학자다. 가는 곳마다 민본의 통치를 되뇌었던 유학자. 덕으로 어짊(仁)을 행하라는 왕도정치의 바탕도 민본이다. 유교의 으뜸 덕목인 인(仁)에 의(義)의 개념을 붙인 ‘인의’를 정치에 접목한 게 바로 왕도정치란다. ‘인은 사람이 거해야 할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이다. 그가 남긴 그 민본의 정신은 맹자 ‘진심’편 민귀군경(民貴君輕)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교수신문이 새해 신묘년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민귀군경’을 뽑았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고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절대 권력의 군주제 시대에서도 백성이 중함을 대놓고 부르짖은 왕도론의 요체. ‘두려워할 만한 것은 백성이 아닌가.’라고 한 전설적 성군(聖君) 순(舜)임금을 떠올리게 한다. 전국 대학교수 212명 중 39%가 택했다는 게 하필 민귀군경일까. 새해벽두의 희망 섞인 성어보다는 통치권을 향한 무거운 주문쯤으로 다가온다. 어진 마음으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왕도정치론, 백성을 두려워하라는 순임금의 고언이 먼 고대에만 통한 걸까. “관권이 민권 위에 군림하고 힘센 자가 힘없는 자를 핍박하는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는 교수신문의 ‘민귀군경’ 선정 이유. ‘한마음을 가지면 큰 의미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보합대화(保合大和)가 2위의 사자성어로 꼽혔다는데. 보합대화의 희망도 백성을 두려워하는 민본이 먼저 서야 하지 않을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세계 유학자들 서울서 머리 맞댄다

    세계 유학자들 서울서 머리 맞댄다

    세계 저명 유학자들이 서울에 모인다. 성균관대는 25~26일 이틀간 국제유학연합회가 주최하는 ‘유학부흥과 현대사회’ 학술대회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국제유학연합회는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21개국 연구기관이 참여해 결성한 단체로 ‘유학계의 UN’으로 불린다. 학술대회에는 등문생(滕文生) 국제유학연합회 상무부회장, 당유(唐裕) 싱가포르 상공회주석, 양국전(梁國典) 공자기금회 이사장 비서장, 탕은가(湯恩家) 홍콩 공교학원장, 성중영(成中英) 미국 하와이대 철학과 교수, 장립문(張立文) 공자연구원장, 진래(陳來) 청화대 국학연구원장, 위상해(魏常海) 베이징대 유장편찬센터 부주임 등 유교학계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가한다. 11개 분과로 나눠 ▲유학 부흥 운동의 세계적 확산과 발전 과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유교적 경제학과 군주론 ▲당대 신유학의 사상 발전과 미래 과제 ▲주자학적 경제학의 형성과 비판적 계승 등을 논의한다. 국제유학연합회 4기 이사장으로 이번 대회를 유치한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유학의 가치를 통해 경제, 윤리, 환경, 평화 등 현대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성, 지역 학생위해 美유학길 개척

    경남 고성군이 지역 학생들을 위해 미국 대학에 유학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경남 고성군은 11일 이학렬 군수 등이 미국 교육도시 5곳을 방문해 현지 중학교 및 2년제 공립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맞춤형 입학제도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고성군은 2009년 자매결연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글렌데일 커뮤니티 칼리지와 입학지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두 기관은 유학정보를 공유하고 고성군 출신 유학생이 졸업하면 4년제 종합대학 입학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글렌데일 시의회와 LA한인회도 필요한 지원을 약속했다. 고성군은 또 글렌데일시 윌슨중학교와 고성군 철성중학교, 샌프란시스코 도리스이튼스쿨과 고성중학교 등 4개 학교의 자매결연도 맺고 학생 및 교직원 교류, 학술 교류를 갖기로 합의했다. 휴스턴 커뮤니티대, 댈러스 브룩헤븐 커뮤니티대, 샌프란시스코 디아블로 밸리대 등과도 유학 협력관계를 맺었다. 고성군은 지역 학생 중 미국 유학자를 뽑아 미국의 공립대(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시킨 뒤 적성에 맞는 4년제 종합대학으로 진학하는 방식의 유학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이 군수는 “지역 출신 고교생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한식탐험대(KBS1 오후 7시 30분) 하루 일과에 지친 서민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술 한잔. 그러나 과음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괴로운 숙취. 사람들은 삼삼오오 해장국집으로 모여들어 뜨끈한 국물로 속을 풀고 든든하고 푸짐하게 건강까지 챙긴다. 소박함이 담긴 한국의 맛, 해장국.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한식탐험대가 떠난다. ●VJ특공대(KBS2 오후 9시 55분) 5년 전,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12개 명문대에 동시 합격해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쌍둥이 형제. 외모뿐만 아니라 재능까지 꼭 닮아 ‘대박’을 터뜨린 쌍둥이들의 두배로 행복한 성공기를 소개한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을 찾아간다.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 45분) 짧았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여진에게 경실은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유학 가서 공부를 더 해 보라는 말을 남긴다. 유학을 결심한 여진은 옥숙에게 자기 앞으로 되어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유학자금을 대 달라고 한다. 선호의 시골집에 갔던 주리는 선호 아버지가 쥐여 준 쌈짓돈 2만원을 보자 가슴이 뭉클하다. ●물은 생명이다(SBS 오후 4시 30분)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농지 감소, 환경오염 등으로 이 땅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졌다. 그중 황새와 따오기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이며 황새의 경우 예산에, 따오기는 우포늪에 야생방사 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건강한 서식지 마련이 시급한 상황.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10분) 경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석훈 박사. 그가 말하는 젊은 세대가 당면한 불안한 삶, 빈곤의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그 대안을 들어본다. 또한 우리 교육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는 ‘학교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것은?’이라는 유익한 강연도 마련한다. ●싱글즈 키친(OBS 오후 5시 10분) 외식과 인스턴트에 지친 싱글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자! 대한민국의 배고픈 싱글들이여, 주방으로 가라! ‘싱글즈 키친’은 남녀 싱글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젊고 세련된 20~30대 남녀 싱글 요리사의 주방 이야기와 상황별 요리법 안내 및 보양식 요리법, 비타민 강화 식단,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한다.
  • 충남 4대 문화권 총괄 ‘금강 재단’ 설립 추진

    충남 4대 문화권 총괄 ‘금강 재단’ 설립 추진

    금강·백제·내포·기호유교 등 충남 4대 문화권의 중장기 비전과 발전 전략을 추진할 ‘금강재단’(가칭) 설립이 추진된다. 충남도가 4대강사업 이후를 대비한 것으로 내년 안에 설립 계획이 구체화될 예정이지만 추진 중인 ‘충남문화재단’과의 통합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충남도는 27일 “금강재단은 충남 4대 문화권의 일관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서로 연계해 교육, 전시, 체험 기능을 발전시키는 ‘콘트롤타워’ 역할뿐 아니라 충청인의 젖줄인 금강의 역사, 문화, 관광, 생태 등을 연구·조사하는 기능도 적극 수행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충남도 4대강(금강)사업 재검토 특별위원회도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계획을 제안했다. 이 재단은 비영리 법인으로 금강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강의 역사, 생태와 민속문화 등을 한눈에 보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금강문화관’도 재단의 부대시설로 건립한다. 또 올해 성공적으로 치러진 세계대백제전의 토대인 백제문화제를 지원·육성하고, 순수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역할도 맡는다. 현재 4대 문화권 개발사업은 도 건설교통국 등이 나눠 추진하면서 일관성이 떨어지고 진척도 더딘 상태다. 게다가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교문화권은 별도 팀을 구성해 추진할 정도로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충남유교문화권은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자치단체만으로는 이들 4대 문화권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의 한 관계자는 “기호학파는 영남학파와 함께 유교문화권의 양대산맥이지만 대유학자 사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본거지인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가 피폐해 있는 등 기호문화권에 대한 정치적 배려가 없었다.”면서 “충남의 4대 문화권 발전 사업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충남의 기호학파 유교문화권은 김장생 선생의 본거지인 논산시와 계룡시가 중심이다. 논산에는 윤증 고택 등 유교문화 유적도 많이 있다. 금강문화권은 공주시, 부여·금산·연기·청양·서천군이 중심 지역이고, 백제문화권은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무령왕릉 등 대다수 백제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부여·공주와 논산 등이 중심지이다. 내포문화권은 백제시대에 불교가 전래되고 해상무역과 보부상 등 각종 상업이 발달됐던 홍성·예산·태안·당진군과 서산·보령시 등이 핵심 지역이다. 충남도는 금강재단의 초기 출연금을 200억~300억원으로 잡고 있고, 충남문화재단과 통합할 경우 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김종민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정부의 4대강사업 이후 계획으로 구상한 것인 만큼 4대강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 금강재단 설립 계획이 매우 구체화될 것”이라며 “금강재단은 도와 함께 4대 문화권의 개별 사업에 국비를 끌어오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객원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과 차례(茶禮)문화/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전 행정자치부 장관

    [객원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과 차례(茶禮)문화/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전 행정자치부 장관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의 가장 큰 뜻은 가을의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와 함께 무엇보다 돌아가신 조상의 묘를 찾고 차례(茶禮)를 올리는 일이다. 조상에 대한 차례는 불교를 국교로 한 고려시대에는 없었다가 고려 말기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제사가 시작되었다 한다. 원시 불교의 기본사상은 윤회사상으로 조상이 죽으면 곧바로 다른 대체물로 환생하므로 제사할 대상, 즉 혼령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조에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차례가 조상숭배의 최고의 의식이 되었고, 차례를 모시는 절차와 방법·내용이 주자학의 주된 관심사고 논쟁거리였으며, 여기서 예학(禮學)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나라에서는 유교의 비조인 공자의 위패와 그 제자 그리고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유교적 학문과 학덕이 가장 뛰어난 유학자 열여덟 분(소위 동방 18현 또는 동국 18현)의 위패를 함께 모신 문묘(文廟)에서 임금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올리게 되었다. 유교의 조상차례에 대한 기본사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은 죽어 육체는 소멸하지만 그 영혼은 살아 존재하기 때문에 제사를 효의 연장선상으로 보아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 효도와 동일시되어 미풍양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둘째, 죽은 조상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은 자손이 복을 받게 된다는 음덕사상과 기복사상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어 산 사람 이상으로 조상제사에 치중하게 되었다. 셋째, 조상의 영혼이 살아 있다고 믿는 이상 때에 맞추어 식찬을 갖추어 차례를 올리는 것은 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기독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인간사회의 최고의 덕목과 계명으로 강조하면서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상숭배의 한 형태로 여겨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죽어 천국에 이르러 내세를 이어가기 때문에 죽은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오직 추도 예배의 형식을 허용할 뿐이라는 게 그 기본사상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죽은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중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강해수(姜海壽)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비의 계모와 계모 소생의 아우 그리고 그의 아들이 청군에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청군이 철군하면서 약탈과 폭행은 물론 국왕의 장남, 차남, 대신과 그 부인들 200여명을 포함한 무려 50만명에 달하는 양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한다. 그런데 포로로 끌고 간 사람들을 심양에 노예시장을 열어 매매하였으며, 조선에서는 피랍가족을 속환(贖還)하기 위하여 가산을 팔아 주로 잎담배를 마련, 이 경매시장에 참가하였다 한다. 강해수는 세 사람을 속환하기 위하여 세 사람 분의 잎담배를 사가지고 심양 시장을 찾아갔으나 담뱃값이 폭락하여 두 사람분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강해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미 계모는 사망하였는데 청인들은 조선인들이 죽은 부모의 신주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죽은 사람의 신주를 산 사람과 똑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결국 강해수는 맨 먼저 죽은 계모의 신주를 선택하고 두 번째로 이복동생을 선택하고 끝내 그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물론 조정에서는 돌아온 이 강해수를 효의 표본으로 삼고 가문에 정문을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뿌리 깊은 조상 숭배 내지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하다 하겠다. ‘신주단지 모시는 듯하다.’는 표현이 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죽은 부모와 조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숭배보다는 살아계시는 부모에 대한 진실한 섬김과 공경이 몇 배 더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추석날 민족의 대이동이 죽은 조상의 차례에 대한 집착보다는 살아계시는 부모님에 대한 더 큰 효도를 향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 [씨줄날줄] 광화문 현판/함혜리 논설위원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긴 뒤 최고의 길지를 택해 지금의 경복궁을 지었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경복궁 건설 책임을 맡았던 정도전에게 모든 건물과 문의 이름을 짓도록 명했다. 정도전은 태조 4년(1395년) 10월7일 경복궁의 남쪽 정문이 정남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하여 정문(正門)이라 이름 붙였다. 이 문의 명칭은 세종 8년(1426년)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光化門)으로 바뀌었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 없어지고 고종 2년(1865년)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함께 복원됐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가 6·25전쟁 때 폭격으로 목조 다락이 불에 타 없어졌다. 현판도 이때 사라졌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광화문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 원래 자리에 세우고 박 전 대통령은 직접 한글로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써 걸었다. 광화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계속된다. 참여정부 시절 재야 사학계에서는 광화문 복원이 크게 잘못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위치가 13.5 m 뒤로 밀렸고, 문의 방향각이 3.5도 틀렸으며, 글자순서도 우좌횡서가 아니라 좌우횡서로 그 의미를 반감시켰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은 2006년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고, 한글 현판도 교체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이 사료 수집 중 다시 세워진 광화문의 현판을 경복궁 중건 공사를 총지휘한 훈련대장 임태영이 썼다는 것을 확인했다. 임태영을 광화문 현판의 서사관(書寫官)이라 표기하고 있는 공사일지 ‘경복궁 영건일기’에서였다. 일제시대 찍은 광화문 사진 등을 근거로 글씨체를 복원해 냈다. 오는 8월15일 광화문 새 현판 일반 공개를 앞두고 논란이 재점화됐다. 정부는 문화재 복원은 원형 그대로를 살리는 것인 만큼 옛 한자 현판을 거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글단체 등은 시대정신을 살려 훈민정음 글씨체로 된 현판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글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도 모자랄 판에 한자로 된 현판 제막식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등 20여개 단체는 광화문의 박 전 대통령 친필 한글 현판 철거가 ‘박정희대통령 흔적지우기’의 일환이라며 친필 현판을 다시 내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경솔한 결정으로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낳게 한 장본인은 부끄러워할 줄이나 아는지 궁금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대표적 양반마을… 새벽 낭보에 주민들 “경사”

    대표적 양반마을… 새벽 낭보에 주민들 “경사”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동성(同性)·반촌(班村)마을이다. 역사의 향기가 담겨 있는 조선시대 기와집과 초가 등 고 건축양식과 전통 생활·문화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돼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120여가구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 내에는 400~500년 된 고가옥을 비롯해 총 125가옥이 강을 향해 배치돼 있으며 가옥들은 기와집 162동, 초가집 211동 등 모두 437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9년 4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마을을 다녀간 뒤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했다. 경주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등 두 집안이 혼인을 맺은 이후 500년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깊은 반촌마을이다. 조선시대 신분 제도와 건축과의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18현(賢) 중의 한 사람인 저명한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에는 100채가 넘는 기와집과 초가집, 노비들이 살던 가랍집 등 150여채의 전통 가옥이 있으며, 가옥들은 설창산의 안골·두동골·물봉골·장태골 등 4개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배치됐다. 집의 위치에서 조선시대 신분사회의 위계 질서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한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1일 새벽 브라질에서 날아들면서 안동과 경주는 잔칫집 분위기다. 하회마을에는 아침부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알리는 현수막과 애드벌룬이 걸려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고 축하 탈춤공연과 나룻배 체험에 이어 풍천면 풍물패가 하회마을을 한 바퀴 돌며 잔치 분위기를 더했다. 경주 양동마을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했다. 이명환 양동마을보존회 총무는 “양동마을이 민속마을에서 세계적인 전통마을로 위상이 격상돼 기쁘다.”며 “앞으로 양동마을의 보존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동·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하회·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됐다

    하회·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1일 새벽(한국시간)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에 이어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하회와 양동마을의 전통 건축물과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문집, 예술작품 등 유학자들의 문화적 성과물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 전통 관혼상제 등 무형 유산이 세대를 이어 잘 전승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대표단을 이끈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유교사회의 개념이 마을 공간에 그대로 투입된 하회·양동마을의 가치를 국제 사회가 폭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회·양동마을은 앞서 WHC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지난 6월 공개한 사전 심사보고서에선 ‘등재 보류’(Refer)판정을 받아 최종 결과가 주목돼 왔다. ICOMOS는 하회·양동 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에는 공감하나 두 마을을 통합적으로 보존·관리하는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통합관리체계인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구성하고, 이와 관련한 설명자료를 세계유산센터에 보내는 한편 21개 위원국에 지지를 요청하는 등 다각적 노력을 통해 쾌거를 이뤄냈다. 하회·양동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 자체를 세계적인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해 9월 하회·양동 마을을 찾은 WHC 현지 실사단은 직접 한국 전통 의관을 갖춰 입고, 사당 참배의식에도 참여하는 등 마을 대대로 이어져온 유교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하회·양동마을은 국내외적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문화자산일 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조선왕릉은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7배나 늘었다. 문제는 개발과 보존의 적절한 균형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전세계 전통마을 상당수가 관광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100만여명이 찾는 하회마을의 경우 최근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하루 5000명으로 입장객을 제한키로 했는데 세계유산 등재 효과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리면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통해 일관되고, 통합적인 관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월드이슈] 정화 원정 왜 잊혀졌나

    정화는 19세기 영국 해군이 보유한 최대 전함보다도 세 배 이상 큰 배를 타고 15세기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누볐다. 하지만 중국은 대규모 해상사업의 성과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항해 기록은 대부분 유실됐다. 정화는 언제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 채 500여년 동안 잊혀졌다. 영락제가 야심차게 주도한 ‘남해원정’은 영락제 사후 유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부담이 빌미가 됐다. 특히 명나라는 이후 북쪽에서 몽골과 장기간 전쟁을 치르는 한편 남쪽에서 왜구 퇴치에 나서는 이른바 ‘북로남왜’ 속에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1433년 마지막 남해원정이 끝난 65년 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이끄는 소규모 함대가 희망봉을 거쳐 캘리컷에 도착했다. 중국이 민간상인들의 해외진출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정책을 수백년간 유지하는 동안 캘리컷은 유럽인들의 앞마당이 됐다. 콜럼버스 이후 물밀듯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간 유럽은 짧은 기간 안에 아메리카 전역을 식민지화하면서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막대한 은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토대를 쌓았다. 사실 19세기 초까지도 세계 제일의 생산력을 자랑하는 산업국가였던 중국의 명·청 왕조는 굳이 정부 차원에서 부담을 무릅쓰고 먼 바다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을 비롯해 내세울 게 변변찮았던 변방 유럽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했다. 일확천금을 꿈꿀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함이 역사의 시계추를 바꿨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삼국사기의 영원한 라이벌 ‘삼국유사’

    [고전톡톡 다시읽기] 삼국사기의 영원한 라이벌 ‘삼국유사’

    삼국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역사서는 꼬박 대칭을 이룬다. 정사와 야사, 유학자와 불승, 문헌조사 중심과 현지 조사 중심 등으로 대비된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를 읽으면 ‘삼국유사’가 궁금해지고, ‘삼국유사’를 읽으면 ‘삼국사기’를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기이편>에 동시에 실려 있는 신라의 박제상 이야기를 비교해 보자. 박제상은 계림의 신하다. 박제상은 고구려에 억류되었던 왕자 복호를 구하고, 일본에 억류되었던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작 박제상 자신은 일본 왕에게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죽임을 당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국사기’에서 죽은 박제상은 대아찬에 추증되고 그의 가족들은 후한 상을 받았으며 제상의 둘째딸은 미사흔의 아내가 된다. 미사흔의 귀환으로 왕실은 화락함을 되찾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뒷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박제상의 아내는 왜국으로 떠나는 남편을 따라잡지 못해 망덕사의 모랫벌 위에 누워 길게 울었다. 오래 뒤 제상의 아내는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신모가 된다. 김부식은 국가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기술한다. 김부식에게 국가는 주체고, 개인은 객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충신에게 부여한 영광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일연은 박제상의 부인을 주체로 다룬다. 왕실은 가족을 되찾았지만 정작 제상의 아내는 남편과 이별하게 되고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죽게 되는 이 역설. 명예와 영광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비감어린 가족사. 일연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김부식은 국가에 집중했고, 일연은 국가 외부의 개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해, 역사책으로서 그 우열을 판정하고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건 ‘삼국사기’가 국가 내부를 사유하게 한다면, ‘삼국유사’는 국가 외부를 사유케 한다는 점이다. 역사 기술의 출발점이 다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영원한 맞수이자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脫경제적 문화] 출판사 사재기… 외면받는 古典… 현실은 ‘돈의 논리’ 압도적

    안 그럴 것 같지만, 사실 문화계에서 돈의 논리는 압도적이다. 오히려 오래된 고질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산업계에 비해 시장이 작고, 규모가 영세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눈에 덜 뜨일 뿐이다. 가장 최근 일로는 법정 공방으로 치닫고 있는 출판계의 사재기 논란이 있다. 사재기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출판계 자체적으로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를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1~2월 두 달간의 조사를 거쳐 ‘네 개의 통장’, ‘마법의 돈 관리’ 같은 책 4종에 대해 사재기 혐의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하고, 대형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출판사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며 신고센터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명확한 조사 이전에 기자회견부터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논리다. 고전 출간 문제도 오래된 일이다. 최근 들어 조금 나아졌다지만, 우리 고전 번역 문제는 난관의 연속이다. 대표적 번역기관이었던 민족문화추진회가 민간단체였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청나라 때 지어진 ‘흠정 만주원류고’ 같은 책이 정식 연구자가 아닌 감사원 공무원이 완역해 출간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확대개편돼 사정이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우리 고전의 경우, 높은 유학적 지식체계 위에 서술되는 것이라 번역이 상당히 까다롭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은 완역에만 22년 걸렸다. 실록의 원사료로 꼽히는 승정원일기 완역작업은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 여기다 유학자들이 남긴 개인 문집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번역원 관계자는 “번역작업 속도를 올리지 못하면, 가장 기초적인 표점작업(한문의 문장을 나누고 마침표나 쉼표를 넣어 읽기 쉽게 하는 작업)만 해도 수십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계도 돈의 목소리가 커진 경우다. 특히 상업적 뮤지컬의 경우가 더 심한데, 2000년대 들어 오리온그룹, CJ엔터테인먼트, 롯데그룹 같은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들이는 큰 공연이 줄을 이었다. 물론, 이들 자본 덕에 완성도 높은 대작이 들어오면서 공연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대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라 우리 공연계 발전에 직결되는지 의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극단 대표는 “대기업의 문화사업이 더 풍성한 결과를 낳으려면 검증된 해외 라이선스 작품 지원 대비 창작작품 지원이 못해도 7대3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주희 ‘주자어류’

    [고전톡톡 다시읽기] 주희 ‘주자어류’

    <하루라도 음식을 어떻게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등을 걱정하지 않고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그 하루의 절반은 조용히 앉아서 지내고 나머지 절반은 책을 읽으며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성실한 학자이자 모범적인 스승이었다. 이 글은 한 제자에게 던진 덕담이었지만, 짧은 언급에서도 주자의 평소 스타일이 드러난다. 주자는 결코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주자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과거에 급제했고 관직에 나아가기는 했지만, 주자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일 뿐이었다. 주자는 19살에 공식적인 과거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그는 사실상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것이다. 주자 철학의 핵심은 흩어진 선배들의 생각들을 한데 모아 묶어낸 데 있다. 주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등 경서(經書)에 방대한 주석 작업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논어(語)’, ‘맹자(孟子)’, ‘대학(大學)’,‘중용(中庸)’을 사서(四書)라는 이름으로 묶어 주석 작업과 함께 편찬하고, 이를 경전화시켰다(죽기 사흘 전까지도 주자는 ‘대학’에 관한 경구 해석에 매달렸다!). 그런가 하면 주자는 ‘절친’인 여조겸과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북송대의 선배 유학자 글을 편집하여 ‘근사록(近思錄)’이란 책을 편찬했다. 주자는 ‘근사록’을 ‘사서에 이르는 사다리’에 비유했다. ●주자학의 가장 충실한 텍스트 ‘주자어류’ 주자에 의해 편찬된 사서는 유학의 공식적인 해석으로 인정되어 1313년부터 과거 시험의 척도가 되었다. 주자학의 영향력은 1912년 과거제가 공식 폐지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실은 주자의 사유가 700여년간 한 세계-사실상 중국은 당시 세계 그 자체였다-의 학문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 문인들과의 강학 및 대화를 기록한 방대한 양의 ‘주자어류(朱子語類)’는 바로 이러한 주자의 세계관과 학문에 대한 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주자학의 가장 충실한 기본 텍스트이다. 이와 같은 주자의 철학 정신은 오늘날 ‘집대성(集大成)’이란 말로 불린다. 주자의 철학적 관심은 새로운 개념의 창안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주자의 작업이 단순히 흩어져 있던 선배들의 자료를 한데 모아놓았다는 식의 의미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집대성이란 말 그대로 한데 모아 크게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집대성자로서의 주자는 오히려 ‘조술하되 창작해서 짓지는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창작 태도를 견지했던 공자의 학문 정신과 일맥을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집대성, 성실과 근면의 다른 이름 집대성, 그러므로 그것은 성실과 근면, 그리고 끈기로 똘똘 뭉친 한 위대한 지성의 작업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는 새로운 개념을 추구한 철학자였다기보단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던 다양한 원석(原石)들을 한자리에 모아 데코레이션을 가미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자는 앞선 문헌들에 대해 유학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른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시 말해 2차 해석에 불과한 주석 작업을 통해 주자는 서로 무관해 보이던 텍스트들 사이를 이(理)와 기(氣)라는 실로 메워주었던 것이다. 이와 기! 주자는 단순해 보이는 이 두 개의 용어로 우주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인식론으로부터 윤리론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이기론(理氣論)이란 간단히 말해 세상 모든 현상(기·氣) 이면에는 그 이치(이·理)가 존재한다는 사유다. 예컨대 하늘에는 하늘의 이치가, 사물에는 사물의 이치가,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각각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각각의 이치들은 또한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존재하게끔 되어 있는 또 다른 이치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원래 이(理)는 하나인데, 이 하나의 이치가 각기 다른 수많은 존재로 현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1000개의 달은 저마다 하나의 달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면, 1000개의 강과 호수마다 그 달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간혹 날이 흐려 달이 구름에 가려진다면 1000개의 달은 구름에 가려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즉 1000개의 달은 하늘의 달에 의해 그 존재 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달과 1000개의 달 사이의 관계가 서로 종속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1000개의 달의 존재 이유가 되는 하늘의 달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강과 호수라는 구체적 작용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다. 요컨대 하늘의 달 또한 1000개의 달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의 달과 강물 위에 뜬 1000개의 달을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하늘의 달과 강과 호수 위에 떠오른 1000개의 달은 어떤 관계인 것일까. 천지는 그 마음이 만물에 두루 미치기 때문에, 사람이 그것을 얻으면 사람의 마음이 되고, 사물이 그것을 얻으면 사물의 마음이 되고, 초목과 짐승이 그것을 얻으면 초목과 짐승의 마음이 되니, 오직 천지의 마음 하나일 뿐이다.(‘주자어류’) 주자는 하나의 달이 1000개의 달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이치(理)를 수많은 존재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이일분수·理一分殊)이라고 했다. 1000개의 달은 하나의 달을 1000개로 조각내 나눠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1000개의 달은 저마다 각각 하나의 달을 품고 있다. 다만 그 1000개의 강마다 서로 다른 기질적 차이 때문에 하나의 달은 1000개의 강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강의 달은 지형에 의해 일그러질 테고, 어떤 강의 달은 조도(照度)에 의해 더 하얗게 빛나거나 어둠 속에 잠길 것이고, 또 어떤 강의 달은 크거나 작게 현상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하늘의 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각각의 달들은 저마다의 조건, 혹은 기질에 따라 단 하나도 똑같은 달이 되지는 않는다. 주자는 말한다. 이와 기는 서로 섞이지 않으며(불상잡·不相雜), 서로 떨어지지도 않는다(불상리·不相離)고. 하지만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하는 이치가 있다는 주자의 생각은 사실상 기보다 이가 선차적인 것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주자는 이것이 시간적인 순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이가 기에 선행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순간, 주자의 이기설은 천 수백년 간 이어온 기(氣) 중심의 중국 철학 전통을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혁명을 시작한다. 문성환 수유+너머 강원연구원 서울신문 · 수유+너머 공동기획
  •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와 서원이 남아 있다고?” 서울시는 10일 시내에서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유학자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관(官)에서 만든 향교와 사림(士林)이 세운 서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소실됐기 때문이다.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건립 당시에는 경기 김포군과 양주군 소재였지만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들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면서 서울의 향교와 서원이 됐다. 양천향교는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를 그릴 정도로 풍경이 빼어난 지역인 가양동 궁산 아래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태종 11년인 1411년 건립됐으며, 1909년 보통학교령이 반포됨에 따라 교육 기능을 잃고 제사나 교화 사업만 담당하게 됐다. 1914년엔 김포향교에 통합됐다가 해방 후 다시 분리됐으며, 1981년 소실된 일부 건물을 새로 세우는 등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서울시는 1990년 양천향교를 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으며, 내년 600주년을 앞두고 오는 13일 ‘양천향교 창건 600주년 기념사업단 출정식’을 열 예정이다. 도봉산 계곡에 있는 도봉서원은 양주목사 남언경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선조 6년인 1573년 세웠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6·25전쟁으로 제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1972년 도봉서원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됐으며, 서원 주변에 당대 명필들이 빼어난 풍광과 학자로서의 이상과 다짐을 새긴 바위 11개가 흩어져 있다. 서울시는 서원과 주변 바위들을 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주변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은 중요 문화유적”이라며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선 선비들의 기상과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의 장으로서 충분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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